rewr2022-01-23 12:58:52
기지촌 여성을 기리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작당질’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리뷰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저승사자가 말하듯, 체계적‧조직적 (국가) 폭력이 부정되는 데는 몇 가지 순서가 있다. 먼저 ‘사실’이 부정된다. 희생자 숫자가 터무니없이 축소된다거나, 사건의 선후관계가 뒤죽박죽이 된다.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고, 없었던 일이 ‘실제’ 발생한 일이 되기도 한다. 사실이 무너지면 ‘증거’가 심문되기 시작한다. 증거 조작설이 돌기도 하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국가) 폭력의 증거가 명백함에도 그 부분만 떼내 사실을 부정하는 단서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증거 다음은 ‘이야기’다. 사실이 틀렸고, 증거도 틀렸으니 희생자의 목소리(이야기)도 거짓말이라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희생자들이 보상을 바라고 거짓말을 한다는 둥, 이념‧사상에 경도되어 말을 지어낸다는 둥의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마지막은 ‘믿음’이다. 처음에는 사실, 증거, 이야기를 믿던 사람들조차 의심의 대열에 가담한다. 그 일이 정말 있었던 게 맞는 건지 회의하며 사건에 대한 믿음을 회수하는 것이다.
이런 메커니즘은 최근 (국가) 폭력을 부정하고 이를 반동적 기억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패턴이다. 광주 5‧18 민주항쟁을 부정하는 일부 보수 인사와 인터넷 커뮤니티의 행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명백히 존재했던 (국가) 폭력 사건이 ‘진위’ 여부를 따져야 하는 사건이 된다는 건 매우 슬픈 일이다. 성찰과 반성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가 무너지고 ‘사실 그 자체’를 두고 다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굉장히 독특한 연출로 미군 기지촌 여성의 문제를 조명하는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가 천착하는 지점이다. 미군 부대에서 성매매로 생활을 영위한 기지촌 여성들은 냉전이라는 국제질서가 추동하고 승인한 폭력적 체제를 몸으로 견디며 감당해온 자들이라는 점에서 (국가) 폭력의 명백한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몸을 팔았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관심받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기지촌 여성이 공적 영역으로 호명되는 건 ‘윤금이 피살 사건*’처럼 기지촌 여성이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존재로 독해될 수 있을 때뿐이었다.
때문에 철거 및 재개발을 앞둔 기지촌 뺏벌에 사는, 이제는 노년을 앞둔 기지촌 여성 박인순이 죽은 동료들을 저승사자로부터 숨겨주고 거둬주는 행위는 우정 그 이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녀의 행위는 오히려 ‘사실-증거-이야기-믿음’의 순서로 무너져가는 기지촌 여성의 삶을 기억하고자 하는 저항에 가깝다. ‘이야기가 되지 못한 것들’, 즉 귀신이 되어 이승과 저승 사이를 부유하는 동료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갈무리하여 ‘믿음-이야기-증거-사실’의 사슬을 복원하고 피해자의 영혼을 위로할 합당한 공적 기억을 형성하려는 저항 말이다.
흥미로운 건 주제를 전달하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방식이다. 기지촌 여성을 비롯한 (국가) 폭력의 피해자를 다루는 이야기는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다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진지한’ 태도로 폭력을 성찰하고, 피해자와 연대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조금 다르다. 다소 어설프고 귀여운 구석이 있는 저승사자, 때때로 ‘빈틈’이 보이는 구성을 더해 엄숙함뿐만 아니라 웃음과 해학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색다른 시도가 어색하게 다가갈 수도 있다(나 역시 그랬다). 그럼에도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혁신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알고 있다는 태도는 (국가) 폭력 사건의 현재적 중요성을 부정하고, 이를 ‘과거’의 일로만 치부해버리는 위험한 태도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알고 있다’는 오만이 여전히 발화되고 있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들고, 이를 과거에 박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독특한 연출이 빛나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 문제를 재현하는 새로운 방식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는 태도’, ‘더는 논의할 것이 없다고 여기는 태도’를 거슬러 사건의 현재적 중요성을 복원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광주 5‧18 민주항쟁을 다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아래와 같은 추천사를 썼다. 결이 다르긴 하지만,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도 비슷한 말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5월 광주에 대한 소설이라면 이미 나올 만큼 나오지 않았느냐고, 또 이런 추천사란 거짓은 아닐지라도 대개 과장이 아니냐고 의심할 사람들에게,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둘 다 아니라고 단호히 말할 것이다. 이것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박인순이 대변하는, 박인순이 지키고자 하는 이야기를 계승‧전달해야 한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저승사자도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죽은 자가 많은 뺏벌에서, 저승사자를 골탕 먹이고 죽은 자의 이야기를 계승‧전달하려는 박인순의 노력, 즉 ‘산 자와 죽은 자의 작당질’에 더 많은 사람을 동참케 하려는 유의미한 시도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C%A4%EA%B8%88%EC%9D%B4_%ED%94%BC%EC%82%B4_%EC%82%AC%EA%B1%B4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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