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2-03 12:25:14
마틴 스코세이지, 알폰소 쿠아론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신작 <나이트메어 앨리>를 극찬하다
기예르모 델 토로 <나이트메어 앨리> 극찬 세례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의 해외 소식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나이트메어 앨리> 소식입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멕시코 출신 감독으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아카데미 2관왕에 오른
명실상부 세계적인 거장 감독인데요.
2022년 2월 국내개봉 예정인 <나이트메어 앨리>는 브래들리 쿠퍼,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토니 콜렛 등
이름만 들어도 영화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영화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아이리시맨>, <셔터 아일랜드>, <디파티드> 등을 연출하며 아카데미 감독상과 칸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모두 휩쓴
할리우드 거장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는 지난 1월 ‘Los Angeles Times’에 기고한 글을 통해 “<나이트메어 앨리>는 더욱더 특별하고 큰 울림을 주었다”,
“불편하지만 동시에 흥분되고 여운이 오래가는 영화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이다”라며 러닝타임 내내 심장을 조여오는 충격적인 스토리와
뛰어난 작품성에 대해 극찬을 남겼다고 합니다.
또한 <그래비티>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촬영상을 거머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나이트메어 앨리>는 마스터피스다! 정말 훌륭한 작품이자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최고의 작품이다. 그는 정말로 대단하다”며 <나이트메어 앨리>를 극찬했습니다.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는 이미 북미 개봉 후 전 세계에서 호평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상 수상, 제27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 시각효과상, 주제가상등
무려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전 세계 유수 시상식에서 14관왕 석권과 무려 70부문 노미네이트 행진을 기록 중입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뿐만 아니라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주요 부문에 노미네이트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강력한 작품이며,
자연스럽게 작품상 수상의 가능성도 높을 것으로 많은 영화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수려한 외모와 현란한 화술을 가진 스탠튼(브래들리 쿠퍼)이 유랑 극단에서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는 기술을 터득해
뉴욕 상류층을 현혹하며 점점 더 위험천만한 욕망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그린 범죄 스릴러입니다.
주요 관전 포인트는 브래들리 쿠퍼를 포함한 할리우드 명배우들인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토니 콜렛, 윌렘 데포 등의 출연일 것입니다.
특히 영화의 메인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브래들리 쿠퍼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8회 노미네이트되며 명실상부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사랑받고 있는 배우인데요.
이번작품의 제작에도 참여한 브래들리 쿠퍼는 기예르모 델 토로과감독와 긴밀히 협업하며 <나이트메어 앨리>만의 환상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세계관을 배가시켰다는 후문입니다.
지난 10년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엔딩이라는 해외 평론가들의 평만큼 너무 기대되는 영화인데요.
매혹적이면서 그동안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마스터피스, 새로운 장르의 영화를 보고싶은 분들은 꼭 2월 극장에서 <나이트메어 앨리>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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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바비는 뭐든 될 수 있어, 아주 잘 알지
바비는 뭐든 될 수 있어
영화의 주인공인 ‘전형적인 바비’는 바비랜드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바비. 밝은 미소로 수많은 켄과 바비들을 대한다. 행복한 하루. 밝은 것으로 가득 찬 세상에 바비가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어느 날 이상한 변화가 생긴다. 죽음이 뭘까? 고민하는 바비. 사람이라면 낯선 고민이 아니지만 바비는 인형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가 영 어색하다. 바비의 내면에만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갑자기 샤워하다가 찬물을 얻어맞는다던가, 매일 먹던 와플이 탄다던가, 하이힐을 신지 않아도 까치발을 들었던 발이 내려앉는다던가 하는 일이 있었다. 왜 이러지? 난생 겪어보지 않았던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비에겐 쉽지 않았다.
원인이 뭘까 진단하는 바비. 바비는 ‘이상한 바비’에게 찾아가 보기로 한다. 들려오는 답은 어렵지 않았다. 평행세계의 지구에서 널 갖고 노는 주인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겼고, 그 부정적인 에너지가 바비에게 영향이 갔다는 것이다. 직접 주인을 만나기로 한 ‘전형적인 바비’. 현실세계의 캘리포니아로 향할 채비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차를 타고 이동 중이다. 저절로 나오는 콧노래. 조수석에 손님이 있었다. 손님은 ‘바비의 남자친구’ 켄이었다. “안녕, 바비.” 예상하지 못한 동행자와 함께 바비의 모험이 시작된다.
켄은 그냥 켄
영화의 강점 중 하나가 되는 부분은 바비/켄 캐릭터의 근원을 찾았다는 점이다. 바비의 기원은 1950년대 시대상에서 기인한다. 당시 20-30대의 미국 여성들은 아이를 키우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 어린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기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제품이 없었다는 점이 바비가 탄생하는 배경이 됐다. 바비를 처음 고안한 루스 핸들러는 이런 토대에 근거해 ‘바비’를 만들었다. 변호사 바비, 선생님 바비, 야구선수 바비, 판사 바비 등등 온갖 직업군의 바비가 탄생했다. 아이들이 보고 동기부여를 얻어 ‘나 역시 뭐든 될 수 있다’라는 힘을 얻고, 장난감 시장의 다양한 선택지를 늘렸다는 것이 좋은 기획력을 바탕으로 구현된 것이다. 영화는 이 바비의 기원에 대해 꼼꼼하게 묘사했다. 우선 ‘바비는 뭐든 될 수 있어’라는 말이 현대에도 관통하는 지점이 있다. 이와 관련한 부분을 한 인물을 통해 소화하는 부분이 있다. 반대로 이 ‘바비’가 2023년 현재에도 인기를 얻기에 살짝 무리가 되는 부분이 있다. 이 지점을 역시 캐릭터 중 하나로 묘사하는 장면 역시 흥미롭다. 각본을 집필한 노아 바움백 특유의 강박적인 터치가 눈에 들어온 지점이다.
반대로 켄 역시 이 캐릭터의 기원을 적절하게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켄 캐릭터의 기원은 굉장히 간단하다. 바비가 처음 유행을 끌 때 주요 소비층이었던 아이들이 메텔 사(바비를 발명한 기업)에 편지를 보내 남자친구를 만들어 달라고 한 점이다. 켄은 그냥 바비의 남자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이 영화에서 굉장히 흥미롭게 묘사되는 부분이다. 이 인물의 실존적인 문제는 바비가 초반에 겪었던 죽음에 관한 고민,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진주인공, 후반부의 하이라이트신까지 영화에서 핵심으로 기능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인물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렸다는 점에서 충분히 영화의 장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난해할지도 모를
영화에서 바비랜드는 작품의 주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공간은 영화에서 특정 계층이 주도권을 잡은 사회가 얼마나 우악스러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할이다. 초반부 바비랜드는 바비/켄이 등장한 방식처럼 바비가 중심인 세상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반대 측면에서 켄이 바비의 들러리가 되는 것처럼 묘사한다. 바비는 이 켄의 존재 때문에 늘 아름답고 똑똑하며 근사한 모습이어야만 한다. 일종의 연극을 하는 셈이다. 이 바비랜드에서 벌어지는 인물의 동선, 대사, 행동, 사건 묘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인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 바비랜드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대비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중반부를 넘어가서 바비랜드의 속성이 바뀐다. 이 부분은 글쓴이가 생각했을 때 다른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 웨스 앤더슨의 <애스터로이드 시티>나 아리 애스터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와의 공통점을 갖는 지점이기도 하다.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서 한 세계를 새롭게 구현한 것이다. 어떤 관객에 따라서는 그레타 거윅(내지는 노아 바움백)의 급진적인 성향을 드러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굉장히 극단적으로 인물들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화가 어렵다고 느껴질 만하다. 하지만 후반부의 이야기 전개를 본다면 영화가 누구 편을 들려고 했던 건 아니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 역시 전반부의 바비랜드와 대비를 이루며 ‘누군가에게 기댄 사회상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보여준다. 작품의 주제에 대해서 후반부에 몰아치는듯한 부분이 있지만 사실 영화는 이야기의 구조로도 하고 싶은 말을 보여줬다.
진짜 바비인형인 줄 알았잖아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마고 로비와 라이언 고슬링은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마고 로비가 맡은 바비에게 영화가 내린 임무는 반복을 통해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비랜드의 속성이 바뀐다는 부분, 바비의 ‘이상한 변화’를 드러내는 방식, 인물들 간의 차이점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가 영화에서 바비를 통해 보여줘야 할 것이었다. 마고 로비는 캐릭터를 찢고 나온 비주얼을 바탕으로 인형과 인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섬세한 감정연기를 보여준다. 켄 역할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인물의 리액션에 의존해서 영화가 주제를 드러내는 측면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이다. 이 인물 역시 바비와 마찬가지로 근원이 인간이 아닌 캐릭터다. 이러면 캐릭터의 의도를 어떻게 선하게 흐릴 것인지가 영화에서 중요했다. 글쓴이는 이를 라이언 고슬링이 처음부터 끝까지 작위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연기로 돌파했다고 생각한다. 좀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을 강박적인 일관성으로 돌파한 배우의 개인기가 돋보인다. 아마 내년 2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주연 후보로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다. 이 외에도 시무 리우가 맡은 캐릭터는 다양성이라는 키워드에 알맞았다는 점이나 이야기의 소소한 유머포인트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캐스팅이었다.
영화의 미술 역시 훌륭했다. 영화 자체가 우화 같은 속성이 있다. 이 메시지를 우화로 만들어서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시각적으로 어떻게 관객을 설득시킬 수 있는가? 에 대한 부분이다. 이게 현실이랑 다를 바가 없다고 체감하는 순간 리얼리티가 이야기의 핍진성/개연성을 해친다. 우리가 사는 곳과 명백히 다르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 조명의 톤이나 건물들의 색감, 인위적인 인물의 동선까지 그레타 거윅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영화를 구현하고 싶었는지 명백하게 드러난다.
갑자기 수습하는 듯
영화에서 단점으로 느껴졌던 부분은 이야기의 흐름이다. 영화 후반부는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집약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런 이야기의 마무리는 전작이었던 <작은 아씨들>이나 <레이디 버드>에서도 볼 수 있었던 사려 깊음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천천히 밟아나가는 것 없이 모두가 만족할만한 것들을 너무 의식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레타 거윅이라는 예술가가 이런 영화를 만든다는 점에서 충분히 사회의 호평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사회가 만든 가스라이팅을 비판하다가 갑자기 다른 결론으로 향하니 엔딩이 생뚱맞아졌다. 그레타 거윅의 전작들에서 인물의 감정선에 서서히 스며들었던 것과는 과정의 측면에서 좀 다르다고 느꼈던 부분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인물들이 말하는 대사들이 소모적이다. 영화가 지적하는 문제들이 몇 있다. 맨스플레인을 위시로 한 것들인데, 이 인물들이 말하는 대사가 문제의 본질적인 것, 깊이 있는 무언가에 닿고 있을까라는 점에서는 의문이 있다. 그냥 ‘이건 이러저러해서 문제야’만 지적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이 지점을 과연 모르고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많은 수의 관객들 역시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동의한다. 이걸 굳이 두 번 느끼려고 극장에 간다면 좀 아쉽다. 사실 이 <바비>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에 대한 부분이 <결혼 이야기>와 <화이트 노이즈>에서 봤던 바움백의 위트와는 좀 많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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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설>
<청설>
로맨스 장르 속에 숨겨진 달달한 주제의식
영화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로맨스 장르가 떠오른다. 혼자 사는 게 익숙해지면서 죽은 감성 되살리는데 로맨스만 한 장르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로맨스 영화를 찾아볼 때 나는 몇몇 필터를 끼워두고 영화를 찾아보는 편인데,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작품이 어디서 탄생했는지를 보는 것이다. 배경만으로 영화를 판단해서 본다는 것이 우습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효과가 있는 편이다. 팬심으로 가득 채워서 보는 나라가 바로 대만영화인데 대부분의 작품들이 내게 실망 없이 비교적 좋은 인상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부러 재미있을 것 같은 영화는 몇 편씩 뒤로 미뤄놓고 나중에 봐야지 하고 아껴두는 편인데 그중 하나가 바로 <청설>이다. 영화를 습관적으로 보던 때부터 눈에 띄어서 '봐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아까운 마음에, 마치 맛있는 음식을 제일 뒤에 먹어야 할 것처럼 미루어두다가 마침내 보게 되었다.
<청설>을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대충 '내가 듣기로는' 정도가 되겠다. '내 말을 들어주세요'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기엔 전자가 오히려 영화의 주제나 분위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청설>의 시놉시스는 비교적 간단하다. 손으로 말하는 양양(진의함 분)과 그녀에게 반하게 된 티엔커(펑위엔 분)의 연애 스토리다. 양양은 청각장애인 언니 샤오펑(천옌시 분)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손으로 말한다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기 전에 시놉시스를 보는 편일 텐데, 개인적으로 시놉시스가 영화에 비해서 조금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로맨스라고만 정의하기엔 가족애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고, 사랑이라는 주제를 넘어서 이해에 관한 직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였다. 영화의 비중만 따져보았을 때에도 남녀의 로맨스보다 이해에 관한 메시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 그 특유의 무드를 유심히 관찰하는 편인데. 영화 초반부 10분 내에 탐색전을 끝마치는 편이다. 전개 속도는 어떤지, 영화의 전체적인 색감은 어떤지, 영화 배경의 비주얼은 어떤지 등등 보다 보면 10분 안으로 마음에 드는 영화인지 아닌지가 금방 판명나버린다. 때문에 아깝게 놓친 몇몇 작품들도 있겠지만, 첫인상에 마음이 가지 않는 것만큼은 돌릴 방도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청설>은 마음에 꼭 들어맞는 영화는 아니었다. 색감이나 비주얼은 마음에 들었지만, 배경 설명조차 없이 전개되는 10분의 시간 동안 영화를 단번에 파악하기가 조금 어려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초반 10분에는 주인공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대사가 말이 아닌 수화로 진행되기 때문에 자막을 놓치면 인물들의 감정조차 읽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설>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개인적인 취향의 무드를 잘 지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만영화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부모님의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인화해 보는 그런 기분이 든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유난히 짙은 따뜻한 색의 톤과, 그런 톤에서 오는 청량함, 고전적인 배경음악, 오래된 것 같은 장비와 순진한 인물들의 성격까지. 영화 자체가 2009년 개봉작이다 보니 오래전처럼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최근에 개봉하는 영화들을 보더라도 그 감성을 자극할 줄 아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무드들에 어울려 떨어지는 스토리가 후반부까지 잔잔하게 이어진다. 뚜렷이 매력적으로 끌어당기는 것과는 다른 삼삼한 맛이 있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영화 중반 중반마다 의도적으로 연출한듯한 여백 또한 마찬가지로 그런 맛을 위한 첨가물 정도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하나, 대놓고 말하자면 스토리 전개 방식은 진부한 편이다. 로맨스 영화의 뻔한 답습을 그대로 이어서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녀가 우연하게 만나고, 반하고, 오해하고, 화해하고 ... 내용만 꺼내놓고 보자면 심심하기 짝이 없지만 영화의 부소재들을 잘 활용했기 때문에 높은 평점을 주고 싶다. 영화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인물 한 명의 감정에만 초점을 맞춰 서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꽤나 급작스러운 전개에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지킬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인물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스토리의 본질을 잊지 않는다. 청각장애인이라는 소재를 덧대어 대사 몇 마디 없는 이 영화가 주는 감정과 메시지는 무엇일까.ㅍ영화가 조용했던 탓에, 영화를 보며 이런저런 사색에 빠지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도리어 좋은 기회를 주었던 셈이다.
영화 정보를 보면서 단순한 로맨스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영화 소개를 잘 못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맨스 장르로만 판별하기엔 가족애를 이야기하고픈 장면들이 많이 보였다. 언니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희생하는 동생이 결코 아름답게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도 일차원적인 인물의 서사로 잘 보인다. 남녀의 감정 변화보다 자매의 감정 변화가 더욱 초점이 맞춰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동시에, 남자 주인공 티엔커의 가족 또한 이러한 모습을 더욱 부각한다. 청각장애를 가진 여자 친구를 들이는 일은 분명 큰 고민이었을 것이다. 아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믿어주는 것에 대해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을 보는 과정은 즐겁지만, 현실에 맞대어 비추어 보았을 때 괜히 씁쓸한 감정이 들었던 것만큼은 부정하고 싶지 않다.
청각장애인도 똑같은 일상이 있다는 누군가의 리뷰가 흥미로웠다. 그토록 영화를 많이 봤던 내게도 일종의 프레임이 있었다는 게 동시에 부끄러웠다. 맞는 말이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손과 입이었을 뿐이었다. 밥을 먹고, 꿈을 꾸고, 잠을 자고 이런 모든 행동들이 매번 희생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내 꿈을 빼앗지 말라는 강한 어투에서 마침내 양양은 착각에서 벗어나 샤오펑과 진심을 공유한다. 언니의 응원이 되어주고 싶었던 삶이 의무로 바뀌는 순간이 얼마나 큰 부담이었을지, 깨닫은 순간에서야 서로에게 진심이 되어준다. 그리고 양양은 그 순간에 성장의 길로 걸어간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깨닫고, 자신의 사람에게로 돌아가도 괜찮다는 각오를 한다. 이 과정을 관객은 같이 걸어간다. '수화를 하는 사람이니까 말도 못 하겠지'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결말에 당도하는 순간 알게 모를 희열을 느끼게 된다. 결국, 오해는 주인공과 마찬가지인 우리도 함께 했었던 셈이다.
'말 안 했어요, 수화로 얘기했어요.' 이 대사 한 줄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한다. 들을 수 없어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한다는 것. '사람과 꿈은 기적 같은 일이다 들리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통역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영화는 직접적으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하지 않는데 내 모든 진심이 통하길 바라는 것은 이기적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때문에 소통은 가끔 불통이 되고, 어긋나고 오류를 범한다. 주인공은 그래서 고민하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탓하기보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다시 노력한다. 마침내, 이뤄낸 사랑 앞에서 두 주인공 모두 깨닫는다. 사랑이나 꿈 모두 굳이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이다. 가족이라면 희생이 아닌 믿음으로 응원할 수 있고, 사랑이라면 노력하려 애쓰지 않아도 마음은 통한다는 것까지 영화 전반적으로 거듭 강조해서 이야기한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이 메시지는 역으로 더 강하게 드러난다. 눈치챌 것만 같은 반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까지 다다르게 하는 힘은 바로 메시지에 있었던 셈이다.
<청설>은 맘 놓고 쉽게 보기에 편한 영화다. 극적인 영화 장치나, 판을 뒤집을만한 갈등이나, 무지막지한 반전이 있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두 남녀가 조금 특수한 상황에서 사랑을 이루어가는 뻔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이런 로맨스 영화를 두고 나는 '순수하다'라고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유치하다는 표현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표현을 하고 싶은 일종의 팬심일지도 모른다. 기대를 하고 보면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밤에 맥주 한 캔 꺼내놓고 가벼운 안주랑 보기에는 딱 적절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코로나 때문에 영화 시장이 완전히 기울고 말았다. 영화관이 문을 닫으며 제작사들은 제작을 멈추고, 큰 규모의 영화들의 대부분이 개봉을 연기하거나 심지어는 취소하기도 했을 정도니까 영화계 여파가 얼마나 큰 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화라는 하나의 장치를 통해 로맨스를 보며 죽어있던 감정을 깨우고, 액션을 보면서 꿈을 키우며, 다큐멘터리를 보며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으면 한다.
사진 출처 : <聽說> In Mo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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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 액트 (The ACT, 2019) - '끊어내지 못한 집착의 말로'
디 액트 (The ACT, 2019)
감독 : 로르 드 끌레르몽-토네르, 스티븐 피에트, 애덤 아킨, 크리스티나 최
출연 : 패트리샤 아퀘트, 조이 킹, 안나소피아 롭, 클로에 세비니, 케일럼 월디
‘끊어내지 못한 집착의 말로’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린 충격 실화’, ‘아픈 줄로만 알았던 한 소녀의 이중생활’, “날 위해 엄마를 죽여줄래?”
<디 액트>의 홍보영상과 기본 줄거리 설명을 본다면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이중생활을 숨기고 있던 딸이 엄마를 죽이거나, 최소 죽이려고 시도 정도는 할 것이다.’라고. 몇 개의 멘트만 봐도 어느 정도 그려지는 결말을 가진 작품인데, 왜 8부나 되는 이 드라마를 몰입해서 보게 되는 걸까.
<키싱 부스>에 나왔던 그 여배우(조이 킹)가 삭발을 하고, 충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고? <디 액트>가 공개되었다는 소식과 홍보 영상들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궁금하니 1화만 한번 봐보고, 별로다 싶으면 보지 말아야겠다- 하며 1화를 재생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마지막 화까지 모두 달리고 먹먹함과 자유로움, 그 뒤에 따라오는 불쾌감과 이물감을 느끼고 있는 내가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동화 속 공주 같은 삶을 꿈꾸는 소녀 집시 로즈 블랜처드. 오랜 시간 병치레를 해온 딸 집시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어머니 디디 블랜처드. 사춘기에 접어든 집시는 옆집 언니 레이시처럼 화장도 하고 남자친구도 사귀어 보고 싶지만, 디디는 집시를 걱정하며 아무것도 못 하게 한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상을 향한 집시의 열망이 날로 커질 무렵, 집시는 자신이 아픈 환자가 아니고 그동안 엄마의 과잉보호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두운 비밀로 가득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집시는 홀로서기를 계획하고, 머지않아 엄마에게서 완벽히 벗어날 극단적인 방법을 찾아낸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날 위해서 우리 엄마를 죽여 줄래?”
<디 액트>의 주인공은 집시 로즈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와 엄마 디디다. 남편 없이 아픈 딸을 홀로 키워온 디디는 사랑의 집짓기 프로젝트를 통해 집시와 함께 오래 살수 있는, 진짜 우리 집을 마련하는데 성공한다. 디디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딸 집시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집시 또한 웃으며 디디를 바라본다.
동네 사람들의 온정이 담긴 분홍색 집, 귀여운 인형이 가득한 아이의 침실, 아프지만 밝은 웃음을 가진 아이와 그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 외적으론 아무 문제도 없는, 아니 오히려 많은 고난과 역경을 함께 해쳐온 ‘기특한 모녀’의 모습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를 향한 사랑은 집착으로 변하고, 집시의 세상은 엄마 디디의 ‘너를 사랑해서 그래’라는 변명으로 가득해진다. 엄마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해본 적 없었던 집시는 새로 이사 온 마을에서 이웃들을 만나며 엄마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던 본능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관념적으로 분홍색과 가장 대비된다고 생각하는 파란색의 집에 살고 있는 이웃, 레이시 모녀는 집시 모녀와 다르다. 레이시는 자유롭게 친구들을 만나고, 화장을 하고, 운전을 하고, 남자친구를 만난다. 핑크색으로 도배된 집시의 집과는 반대로 레이시 모녀의 집은 파란색이며 공주 드레스, 왕관을 제외하고 ‘어른스러운’장신구를 해본 적 없는 집시와 달리 레이시는 마음대로 옷을 입고 남자친구가 준 목걸이를 목에 차고 있다. 레이시의 손길과 알록달록한 색을 가진 화장품이 집시의 얼굴을 스쳐간 날 이후로 집시는 자연스레 또래 아이들의 생활을 궁금해하고, 또 바라게 된다.
“집시에겐 저밖에 없어요.”
디디는 집시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어 한다. 집시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올해의 아동으로 신청하고, 있지도 않은 질환이 있다며 간식조차 먹지 못하게 하고, 사전 설명 없이 집시의 이빨을 뽑는다. ‘내 딸은 내 손안에 있어야 한다.’는 철칙이라도 있는 건지, 집시는 혼자 걸을 수도 씻을 수도 먹을 수도 없다. 휠체어에 앉아 엄마가 갈아 넣어주는 음식을 기다려야 한다.
디디는 작고 약했던 딸이 소녀를 지나 어엿한 성인이 될 무렵까지 가스라이팅을 계속한다. “너는 몸이 약하니까”, “너에겐 엄마밖에 없으니까.”, “너는 나를 사랑하니까.” “우리 사랑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니?”.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 앞에선 딸을 가장 사랑하는 엄마 코스프레를 한다.
그녀는 이제 성인이 된 딸에게 의료보험 카드가 잘못됐다는 거짓말까지 치며 ‘너는 아직 어른이 아닌 내 손안에 있는 아기.’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주입한다. 매일 샤워를 위해 엄마에게 알몸을 보이고 병원을 잘 다녀온 보상으로 폭신한 인형을 선물받고, 엄마의 품 안에서 잠드는 집시는 언제까지나 디디의 아기다. 아니 아기여야만 한다. 디디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디디가 모든 걸 통제하고 집시를 속이려 해도 소녀(Girl)였던 집시가 여자(Women)가 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남자와 성에 대해 눈을 뜬 집시는 이제 자신을 소녀가 아닌 여자로 인식한다. 얌전하게 올려 입었던 드레스의 어깨춤을 살짝 내리고, 코스프레 행사장에서 왕자님을 만났다며 결혼을 생각한다. 너무 오래, 강하게 눌려있어서인지 집시의 욕망과 비밀은 빠르게 자라난다. 자유를 향한 갈망은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진 닉을 만나면서 가속도가 붙고, 엄마를 죽이지 않는 이상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집시는 닉과 함께 디디를 살해하게 된다.
1화부터 4화까지는 'The Act'라는 타이틀이 인물에게 가려져 일부 보이지 않는 형태를 하고 있지만, 집시가 본격적으로 비밀을 갖기 시작하고 성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5화부터는 'The Act'라는 타이틀이 인물의 앞으로 나와 온전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타이틀의 변화는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향한 의지를 갖고 행동하기 시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집시와 닉이 디디를 살해한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순 없으나 디디가 집시를 평생 동안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한 건 사실이다. 멀쩡히 걸을 수 있는 아이를 자신의 통제권 아래 놓기 위해 휠체어에 앉혔고 성욕과 식욕, 그리고 사회를 향해 보일 수 있는 당연한 호기심마저 ‘하면 안 되는것’이라고 말하며 집시의 모든 행동을 제한한다. 근데 여기서 좀 안타까운 건 디디 또한 자신과 비슷한 엄마 밑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딸에 대한 집착과 가스라이팅은 당연하게도 대물림되었고, 딸이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결말까지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디디는 엠마(디디의 엄마)가 자신의 모성애를 무시하고 몸이 약한 딸 집시를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지속적으로 시달린다. 어릴 적부터 엄마의 통제 아래 자란 그녀는 몸이 약한 집시를 두고 교도소에 수감된 후부터 더욱 심한 집착 증세를 보인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날 집시는 디디를 알아보지 못했고, 몸이 약해 특별히 관리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집시는 트램펄린을 타다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디디의 불안감은 점점 고조된다.
엄마가 우리 딸을 빼앗아갈지도 몰라, 몸이 약한 딸이 언제 다칠지 몰라. 이 두 가지 불안감은 디디를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결국 디디는 집시를 휠체어에 앉히고 병든 엄마에게 내성이 생길 걸 알면서도 새로운 진통제를 쥐여준다. 그리고 디디의 집착과 폭력 아래 자라온 집시는 디디의 등에 꽂을 칼을 산다. 하지만 디디가 죽고도 집시는 디디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집시는 디디의 환영을 보고, 단 걸 먹으면 안 된다고 했던 디디의 말처럼 아이스크림 금지 표시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는다. 그리고 닉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엄마가 닉에게 먹을 것을 구해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모든 행동과 가치관은 디디가 남긴 흔적이었다.
엔딩 장면에서 ‘집시는 복역을 끝마치고 가정을 이룰 예정’이라고 적힌 글씨를 보자마자 나는 이 끔찍한 집착의 고리가 또 이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연관도 없는 내가 그 결정에 대해 뭐라고 말할 자격은 없지만, 그 결정이 또 다른 불행을 만드는 건 아닐까? 집시가 피해자임은 틀림없지만 어쨌든 그 집착과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으니까 말이다.
“휠체어에 갇혀있었어요.” 집시는 이렇게 말한다. 평생을 갇혀있었고 엄마의 등에 칼을 꽂은 그 덕분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그가 나를 구했다고 말이다. 매일같이 사랑한다고 말했던 엄마의 등에 칼을 꽂아야만 하나의 인격체, 온전한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그녀의 운명이 너무도 기구하다.
<디 액트>의 결말을 보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보고 싶어 여기까지 달려온 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디디가 죽고 나면 속이 시원할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집시를 응원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이 폭력과 집착이 끝나기만을 바랐고, 조금 소름 끼치게도 디디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드디어!”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사이다 ~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대물림의 순간, 그리고 사랑이라는 변명 아래 행해지는 지독한 폭력. 이 모든 걸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은 또 다른 폭력뿐이었다는 사실이 아쉽고, 안타깝고, 찝찝하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Kyung film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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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썸머 필름을 타고! (2020)
썸머 필름을 타고!
감독: 마츠모토 소우시
출연: 이토 마리카, 카네코 다이치, 카와이 유미 등
장르: 로맨스, 청춘, SF
상영시간: 97분
개봉일: 2022.07.20 (국내 개봉일 기준)
걸작으로 남을 우리들의 여름
주인공 ‘맨발(이토 마리카)’은 청춘 로맨스에 열광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무협 시대극에 마음이 끓어오르는 여고생. 영화 동아리에서 자신이 쓴 <무사의 청춘>이 탈락하고 ‘카린’의 러브 스토리가 제작되면서 친구들과 함께 아쉬움을 달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극장에서 자신이 상상한 주인공의 모습에 딱 맞는 소년 ‘린타로(카네코 다이치)’를 발견하게 되고, 그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한다. 절친 ‘킥보드(카와이 유미)’와 ‘블루 하와이(이노리 키라라)’, 그리고 영화 제작에 필요한 재능을 갖춘 다른 친구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한다. 하지만 의문의 정체를 가진 ‘린타로’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맨발의 영화 제작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귀여운 청춘물에 SF 한 스푼
십 대의 청춘과 여름이라는 싱그러운 계절, 그리고 언제나 좌충우돌한 사건이 펼쳐지곤 하는 고등학교 동아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실패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2000년대 일본 하이틴 로맨스 영화의 클리셰로도 볼 수 있는 뻔한 구성이기는 하지만 <썸머 필름을 타고!>는 범상치 않은 주인공들의 캐릭터와 함께 몇 가지 장르를 함께 섞는다. 시대극 마니아인 주인공은 2020년대인 현재 완벽히 비주류로 자리잡은 사무라이 영화를 기획하고,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된 소년은 영화가 사라지고 없는 먼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나타났다. 청춘 로맨스 소재에 시대극과 판타지적 요소가 섞이니 스토리가 정신 없어 지기는 했지만 난장판이기에 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십 대 소년소녀의 이야기를 뻔하지 않고 다채롭게 그릴 수 있었다. 어디로 튈 지 가장 알 수 없으면서도 말도 안 되는 것도 과감하게 해낼 수 있는 시절이 아닌가. 물론 SF 요소를 대사를 통해서만 대강 해치우려는 연출이 미흡하기는 했지만 작품이 가진 귀엽고 통통 튀는 매력에 취해 그마저도 눈감을 수 있게 된다.
사랑은 영화를 타고
극중 맨발이 쓴 <무사의 청춘>은 우정과 갈등 사이를 오가는 두 사내의 이야기를 다룬 시대극이지만, 그 작품 속 주인공은 감독인 ‘맨발’의 삶과 맞닿아 있다. 맨발은 마지막까지 영화의 결말을 어떻게 맺을지 정하지 못하고 끝없는 고민에 시달린다. 미래에 영화가 사라지게 된다는 ‘린타로’의 말이 그의 열정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인 못지 않게 열정을 갖고 촬영에 임하는 린타로의 진심을 듣고 맨발은 라스트 신에서 두 명의 무사가 서로 싸우지 않고 함께 나아가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는 다른 세계에서 온 린타로에 대한 사랑이 싹트고 그와 함께 계속 나아가고 싶은 맨발의 속마음과도 같다. 하지만 축제 상영회 당일, 영화의 엔딩 장면이 나오기 직전에 맨발은 상영을 중단해 버린다. 이제 와서 결말을 다시 찍고 싶다는 맨발의 의견에 따라 두 명의 무사가 최종 결판을 벌이는 장면을 다 같이 부랴부랴 준비한다. 그리고 감독이 아닌 또다른 주인공으로서 린타로 앞에 칼을 들고 맞서는 맨발. 이는 미래에서 온 린타로 때문에 벌어질 타임 패러독스를 막으려면 <무사의 청춘>의 파일을 삭제해야 하고, 린타로를 좋아하지만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맨발의 심리 변화에서 비롯된 행동일 것이다. 아픈 결투 끝에 성장하는 무사의 청춘처럼 맨발은 린타로에게 느낀 감정, 그리고 환상일 수만은 없는 현실에 정면으로 맞선다. 청명한 여름의 계절, 사랑과 우정 그리고 꿈에 대한 열정을 모두 경험하고 성장한 ‘맨발’이 곧 한 명의 사무라이였던 셈이다.
필름을 타고 맺어진 ‘린타로’와 ‘맨발’의 사랑은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없었지만 영화가 맺어준 두 사람의 끈끈한 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맨발의 첫 작품을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게 큰 도움을 준 린타로는 훗날 맨발이 거장 감독으로 성장하게 될 최초의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맨발은 영화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린타로에게 영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심어주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같은 시간대에 있지 않지만, 각자의 시공간에서 뜨겁게 교감했던 영화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고 영화를 만드는데 그 감정을 한없이 쏟아냈을 것이다.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두 남녀가 만나 잠깐의 신기루 같았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자신의 꿈과 목표로 이어 나간다는 것이야 말로 건강한 청춘 로맨스가 아닐지.
영화 속 맨발에 빗대어 본 과거의 나
영화를 진심으로 애정하고, 동아리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맨발의 모습은 고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과도 제법 닮았다. 나는 그 당시 방송부와 영상제작 동아리 소속이었고, 영화를 촬영해본 적은 없지만 공모전에 제출하기 위한 영상들을 여러 편 찍었다. 맨발의 우당탕탕 영화 제작기를 보며 한 가지 인상깊었던 부분은 아무도 그에게 화를 내거나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맨발의 팀원들은 대부분 영화와 거리가 먼 친구들이었지만 길어지는 촬영 시간에도, 같은 장면을 수십 번 촬영하는 감독의 태도에도, 제작비를 벌기 위해 시키는 이삿짐 센터 아르바이트에도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그리고 맨발 또한 자신을 도와주러 온 친구들에게 단 한 번도 미안해 하지 않는다. 나도 과거에 동아리에서 영상을 찍을 때 거의 대부분 주변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언제나 촬영 시간은 길어지고, 스케줄은 빡빡하기 마련이라 늘 친구들에게 미안해 했고, 같은 장면을 수차례 찍어야 할 때는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그 친구들 역시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바쁜 시간을 쪼개 참여한 거라 은근히 눈치를 주었다.
맨발과 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얼핏 보면 맨발이 학교 안에서 아무나 스태프로 기용한 것 같지만, 사실 친구들의 재능을 미리 캐치하고 각자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역할만을 배분했다. 그리고 주인공이 영화에 미쳐 있는 것처럼 친구들 모두 야구, 조명, 천문학, 검도 등 다들 한 번쯤은 무언가에 제대로 빠져본 적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친구들은 자신과 비슷한 맨발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본인들의 능력을 인정해 준 맨발에게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맨발 못지 않게 영화 촬영을 즐기고, 맨발 또한 친구들이 이번 여름의 청춘을 자신에게 완전히 빌려 주었음을 알고 있다. 맨발의 꿈과 열정을 존중하는 여러 친구들과 그들에게 잊을 수 없는 18세의 여름을 선물한 맨발의 우정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다. 물론 역할에 딱 맞는 친구들이 나타나준다는 것은 천운이기에 어느 정도 영화적 설정이 가미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나는 친구들을 섭외할 때 맨발처럼 세심한 접근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맛있는 걸 사준다든가 물질적인 대가를 제공하려 했을 뿐 내 진심을 솔직하게 털어놓거나 그들이 참여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곁에 좋은 친구들을 둔 맨발이 부럽게 느껴지면서도 과거에 부족했던 내 자신의 모습을 왠지 모르게 되새겨 보게 된다.
영화의 종말, 왠지 가능할 것 같다는 씁쓸함
요상하게 생긴 타임머신을 타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감독(맨발)의 데뷔작을 보기 위해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다는 설정은 판타지 그 자체다. 하지만 미래소년 린타로가 살고 있는 시공간에 더 이상 영화가 실존하지 않다는 것만큼은 생각보다 억지스럽지 않다. 2022년인 지금도 영상 콘텐츠의 트렌드는 점점 더 짧은 길이의 영상들로 변화해가고 있다. 사람들은 3분짜리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것보다 30초 남짓 되는 틱톡, 릴스 영상들을 즐겨 보고, 예능이나 드라마도 한 회를 통으로 감상하기 보다는 15~20분 정도의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짧게 감상한다. 주변을 살펴보면 지루함이나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유튜브 요약 영상을 통해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다. 내가 구식인 걸 수도 있지만, 고작 10여 분짜리 편집 영상을 봐 놓고는 어떻게 자신이 그 작품을 봤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이게 현실이고, 앞으로는 영상 트렌드가 더욱 짧아질 것이라는 의견에도 매우 동의한다. 몇 십 년 후 미래에서 온 린타로의 세계에서는 영화가 단 10초 길이에 불과하다는 설정은 다소 극단적일 수는 있어도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래에 영화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영화에 대한 꿈을 놓지 않는 맨발 같은 사람도 있고, 영화가 사라진 세계에서도 여전히 과거의 작품들을 보며 향수에 젖어 사는 린타로 같은 사람도 분명 계속해서 남아있을 것이다. 대사는 '사랑해' 뿐인 단순한 러브스토리가 더 잘 먹히는 2020년대에 시대를 역행하듯 흑백 사무라이 영화를 찍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란 본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렇게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자들이 우리 곁에 계속해서 남아준다면, 영화의 종말이라는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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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포용일까, 포섭일까?
중국 영화 당국이 11월 17일 수요일, 할리우드 개봉작인 <듄>과 <007 노 타임 투 다이>를 지역 극장에서 한 달 추가 상영하기로 결정하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2달 내내 세계 최대 영화 시장에 걸려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10월 22일 개봉작인 <듄>은 12월 22일까지, 10월 29일 개봉작인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12월 29일까지 상영될 예정인데요. 세계적으로 극장이 살아나는 연말 상영이 확정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입니다.중국 시장에서 영화들은 기본 한 달 동안 상영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흥행이 보장된 영화의 경우 두 달까지 연장될 수 있는데요. 그 이상의 장기 상영은 '선전 영화'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2020년 7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약 3달 동안 상영되었던 할리우드 대작들 덕분에 중국 시장도 한 숨 돌릴 수 있었 던 건 사실인데요. 이 시기에 할리우드 영화들이 중국 시장 매출 회복에 도움이 된 것이 이번 연장 상영에 기여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듄>과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팬데믹 이후 할리우드 첫 연장 상영작의 주인공이라는 것은, 2021년 5월 이후 그 어떤 영화도 중국 시장에서 1달 이상 상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데요. 심지어 지난 5월 21일 개봉한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중국 시장에서 2억 400만 달러를 벌어들였음에도 불구하고, 7월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영화 상영을 위해 한 달 만에 극장에서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8월 말 개봉한 <프리 가이> 역시 9,48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충분한 흥행 성적을 달성하였음에도, 10월 1일 국경절로 인하여 극장에서 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세계 최대 시장이 된 중국 시장에서 할리우드 대작들이 연장 상영을 따낸 것이 제작사 입장에서 반가운 소식임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듄>과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연장 상영 기간동안 기타 중국 영화들에 밀려 충분한 스크린 수를 확보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큰 매출 상승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현재까지, <듄>은 중국에서 세계 매출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인 3,900만 달러 (약 2억 4900만 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경우, 전 세계 매출 7억 달러 중 6,290만 달러를 중국 시장에서 벌어들였는데요. 이는 중국 시장에서 각각 흥행 수입 영화 7위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향후 더 커질 가능성이 큰 중국 시장인 만큼, 할리우드 대작들이 중국 작품들 사이에서 얼마나 큰 팜을 가져갈 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바입니다.
위드코로나와 함께 다양한 영화들이 극장을 찾아주고 있는 요즘
극장 영화들과 함께 영화로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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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바웃 타임> 시간여행, 사랑, 가족, 그리고 인생
안개 같은 비가 흩날리는 날씨, 차가운 창가에 앉아 푸른 초록의 정원을 바라보며 따뜻한 밀크티를 마시는 듯한 느낌. <어바웃 타임>은 그런 영국 로맨스 영화의 분위기를 풍기며 시작된다. 거기에 장미처럼 붉은 드레스를 입고 꾸밈없이 밝은 웃음을 띠는 레이첼 맥아담스의 포스터가 이 영화의 상징과 같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래서인가 붉은 장미가 피는 6월, 비 내리는 오후가 찾아오면 어김없이 <어바웃 타임>이 그리워진다.
비를 맞으며 그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짓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 <어바웃 타임>의 포스터 (C) Universal Pictures
<어바웃 타임>은 성년이 되던 날, 아버지로부터 뜬금없이 '우리 집안 남자들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단다'라는 비밀을 전해 들은 팀(돔놀 글리슨)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간 여행 능력을 깨달은 팀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내는데, 그는 시간을 돌려 창피한 과거를 극복하기도, 이뤄지지 않았던 첫사랑을 이루려 하기도 한다. 그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모여 팀의 인생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가 <어바웃 타임>이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생 영화'로 손꼽히는 이번 작품은 나에게 또한 인생 영화가 되어주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시간 여행, 사랑, 가족, 그리고 인생에 관한 이야기 덕분이다.
영화는 그 시작의 리더 필름부터 마지막의 엔딩 크레디트까지 하나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하나의 이야기 속에 감독, 배우, 제작진은 ‘인생’을 담아낸다. 한 작품에 녹아든 인생의 가치가 얼마나 깊고 다양하며 슬프고도 아름다운지. 그래서 좋은 예술 작품은 볼 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는 한다. 그런 이유로 같은 영화를 몇 달,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찾아보는 취미가 있는 내게 <어바웃 타임>은 처음 네 번의 시간에서 모두 다른 의미의 영화로 다가왔다.
* 본 게시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간 여행, 가능과 불가능 사이
시간 여행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두 눈을 꼭 감고 주먹을 꽉 쥐는 팀 (C) Universal Pictures첫 번째 <어바웃 타임>은 시간 여행 영화였다. 집안 대대로 남자들이라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의 삶에서 원하는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 팀. 해야 할 일은 폐쇄된 공간으로 들어가서 두 손을 꽉 움켜쥐고 눈을 감는 것뿐. 팀의 시간 여행은 때로는 훨씬 나은 결과를 만들기도,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초능력을 지녀도 없던 사랑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말이다.
‘시간 여행’이라는 요소는 영화에 공상과학적 매력을 가미해 주지만, <어바웃 타임>은 공상과학 혹은 판타지 영화라기보다는 드라마 장르로 분류할 수 있다. 놀랍게도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시간 여행’은 영화의 시작부터 등장하고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요소이지만, 그 요소가 스토리를 과격하고 스펙터클한 방향으로 이끌어가지는 않는다. 주인공 팀은 자신의 시간 여행 능력을 그저 자신의 삶에서의 순간순간에 변화를 주는 데 사용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이 경험했던 순간으로만 갈 수 있다는 능력의 한계도 있지만, 집안 대대로 내려온 능력에 대해 아버지가 전해준 선조들의 이야기 덕분에 그는 이를 나쁜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바웃 타임>은 영화를 빌런이나 히어로가 등장하는 스토리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지극히 평범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시간 여행을 하는 영화로, 왠지 다른 시간 여행 영화보다는 현실에 있을법하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사랑, 작고 간질거리는 그 순간
사랑이 시작될 때와 사랑을 하는 모든 순간은 얼마나 작고 소중한, 간질거리며 설레는 순간인가 (C) Universal Pictures주인공 팀과 그의 사랑 메리와의 첫 만남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색다르다. 둘은 시각장애인 웨이터들이 운영하는 암흑 속 레스토랑에서 만난다. 영화의 화면조차 새까만 화면에 식기에 반사된 듯한 반짝이는 불빛 몇 개만 등장한다. 가끔 등장하는 시간 표시만이 화면에 문제가 없음을 알려주며, 영화는 관객들까지 함께 영화의 암흑 식당 속으로 데리고 간다. 이후 식당에서 나와 다음 약속을 기약하며 각자 방향으로 돌아가는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나오는 Paul Buchanan의 노래 <Mid Air>. 사랑에 스며 들어가는 간질간질 설레어오는 그 순간을 이처럼 잘 표현한 노래와 장면이 또 있을까.
<어바웃 타임>은 사랑을 느끼는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잘 녹여냈다. 헤어지는 길에서 아쉬움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보내는 작은 미소, 아침 햇살 아래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 이불로 빠져드는 모습, 지하철 플랫폼을 중심으로 지나가는 시간 속 추억들. 그래서 두 번째로 만난 <어바웃 타임>은 로맨스 영화였다.
가족, 영원하지 않은 시간에서 오는 소중함
그립고 그리웠던, 그리고 그리워질 아버지와의 산책 (C) Universal Pictures“바즈 루어만의 ‘선스크린’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건 풍선껌을 씹어서 방정식을 풀겠다는 것만큼이나 소용없는 짓이라고 했다. 인생의 진정한 문제는 항상 생각조차 해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만난 <어바웃 타임>은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전해준 영화였다. 말괄량이 같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품고 자란 여동생과 그 어떤 친구보다 친구 같았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영화 후반부 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여동생과 아버지를 통해 전해주는 가족의 소중함은 시간 여행을 통해 더욱 애절하게 표현되었다. 시간을 돌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며, 모든 것에는 끝이 있듯 가족과의 관계에도 마지막이라는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이 존재했다.
인생, 시간 여행자가 전하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
우당탕탕 정신없어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그보다 멋진 하루가 또 있을까 (C) Universal Pictures그리고 네 번째로 비가 내리는 봄과 여름 사이, 그 어딘가의 오후에서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만난 <어바웃 타임>은 인생에 대한 영화였다. 주인공 팀과 메리의 결혼식 장면은 영화를 본 많은 관객이 손에 꼽는 명장면이다. 색다르고 매력적인 결혼식이 진행되는가 했더니 역시 영국 날씨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태풍 같은 바람에 갑자스런 폭우까지. 하지만 비에 쫄딱 젖어도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계획이 모두 틀어져도 밝은 미소를 잊지 않을 수 있다면 말이다. 비바람에 하객들이 넘어지고 웨딩 케이크가 폭우에 적셔져도 순간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웃음을 잃지 않는 팀과 메리의 모습은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처럼 빛난다. 인생에 관한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영화의 포스터를 왜 결혼식 장면이 장식하고 있는지는 영화를 보았다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팀의 아버지는 그에게 시간 여행으로 같은 날을 두 번 살아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긴장과 걱정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두 번째에서는 느끼며 살라고 말이다. 아쉽게도 시간 여행자와 달리 우리는 인생을 두 번씩 살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인생을 두 번 살아본 시간 여행자는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런 경험담을 전한다.
“이제 난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단 하루도 말이다. 그저 내가 이날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고 즐겁게 매일을 지내려고 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하루하루를 시간여행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다.”
<어바웃 타임>을 통해 팀은 ‘시간 여행을 해 보니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사는 방법은 매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고,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빛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경험담을 전한다. 시간, 즉 인생을 가장 잘 보내는 방법은 긴장과 걱정에 싸여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되돌려 변화를 만들려 시도하는 것 또한 아니라, 인생이라는 시간 여행을 즐기는 것이라고.
결국 시간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 (C) Universal Pictures
마지막으로 이 글을 위해 지난 영화의 감상을 되돌아보며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기록하며 본 <어바웃 타임>은 지난 네 가지 다른 영화로 다가왔던 매력들이 얼마나 잘 어우러져 있는지. 어떤 시간 여행자의 일기장을 훔쳐본 것만 같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할 시간에 대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어바웃 타임 About Time> (2013)
감독 리처드 커티스
제작 워킹 타이틀 필름
출연 돔놀 글리슨, 레이첼 맥아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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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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