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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DAY2023-02-24 11:48:00

양자 영역과 함께 사라진 시리즈의 매력

<앤트맨 앤 와스프: 퀀텀매니아>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타노스로부터 우주를 구한 후 당당히 어벤져스의 일원이자 슈퍼 히어로가 된 '스콧 랭(폴 러드)'. 그는 앤트맨으로서의 업적을 책으로 써내는 등 화려한 셀러브리티의 삶을 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스콧은 가족 식사 자리에서 깜짝 놀랄 소식을 듣는다. 딸 '캐시 랭(캐서린 뉴트)'의 주도 하에 파트너 '호프 반 다인(에반젤린 릴리)', 그리고 은사인 '행크 핌(마이클 더글라스)'이 미지의 세계인 양자 영역에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기계를 개발했다는 것.

하지만 스콧보다 더 놀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수십 년을 양자 영역에서 보냈다가 간신히 지구로 되돌아온 '재닛 반 다인(미셸 파이퍼)'. 그녀는 기계를 보자마자 당장 파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그녀도 기계가 오작동해 앤트맨 일행이 양자 영역에 빠지는 걸 막지는 못했고, 그들은 양자 영역을 돌아다니며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다. 그 사이, 양자 영역에 갇혀 있던 '정복자 캉(조나단 메이저스)'도 유배지에서 탈출할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면서 앤트맨 일행을 위기에 빠트린다.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소설, 드라마 등이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당연히 매력적인 캐릭터, 뛰어난 기술력, 탄탄한 시나리오 등 여러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그럴듯함'이 있어야 한다. <스타워즈> 속 타투인이나 나부 같은 외계 행성이든, <반지의 제왕> 속 중간계든 그 공간이 실제로 존재하는 듯 느껴져야 한다. 이는 CG와 같은 시각적인 요소만 뜻하지 않는다. 영화가 디테일함으로 가득할 때, 비로소 실제로 주인공이 살아 숨 쉬는 시공간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빌뇌브 감독의 <듄>에서 주인공인 폴 아트레이스(티모시 샬라메)의 대련 장면을 보자. 이 장면 속 주인공들은 일반적인 액션과 달리 찌르거나 베려고 하는 순간 속도를 급격히 늦춘다. <듄>의 세계관에서 사람들은 일정 속도 이상이면 무조건 튕겨내는 방어막을 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도 호그와트, 버로우, 다이애건 앨리, 마법 정부 등에서 마법사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행동하는지를 세밀히 보여주면서 숨겨져 있던 마법 세계의 매력을 각인시킨 바 있다.

즉, 사람들의 행동 하나, 말 하나에도 이유와 맥락을 불어넣을 때 관객들은 비로소 가상의 공간을 실제처럼 인식한다. 달리 말해 그 이유와 맥락을 보여주지 못하면, 아무리 화려한 그래픽과 특수 효과를 동원해 새롭고 다른 걸 보여준다고 해도 가상공간은 진짜가 될 수 없다. 이는 MCU 페이즈 5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 <앤트맨 앤 와스프: 퀀텀매니아>(이하 <앤트맨 3>)가 공허해 보이는 결정적인 이유다.

양자 영역을 배경으로 모험을 펼치는 <앤트맨 3>는 시리즈 중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다. 본래 <앤트맨> 시리즈는 아기자기한 하이스트 영화이자 유쾌한 가족 영화였다. 주인공인 스콧 랭의 특징 때문이다. 우선 스콧은 도둑이다. 애초에 행크 핌의 집에 강도로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스콧은 앤트맨 슈트를 입을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매 작품마다 앤트맨은 항상 어딘가에 침투하고, 무언가를 훔친다. 1편에서는 어벤져스 기지에 침투했다가 팔콘을 만난다. 옐로우 재킷과의 마지막 전투에서도 생각한 것보다 더 몸 크기를 줄여서 상대의 슈트에 침투해 문제를 해결한다. 2편에서는 양자 영역에 잠시 들어가 빌런이었던 고스트를 위한 치료 입자를 가져오기도 한다. <시빌 워>에서도 스파이더맨이 잠시 뺏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다시 되찾아오기도 하고, <엔드게임>에서는 아예 시간을 강탈하자는 계획을 제안하기까지 한다.

한편 그는 지극히 소시민적이다. 앤트맨 슈트를 벗은 그는 그저 캐시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을 신경 쓰는 평범한 사람이다. 감옥에서 출소한 그는 범죄에 손대지 않는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다시 도둑질을 한 것도 캐시를 만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비록 도둑질을 하다가 행크 핌에게 붙잡히기는 했지만, 행크의 요구대로 앤트맨이 된 것도 다시 한번 범죄에서 손을 떼고 속죄하기 위해서였다. 즉, 기본적인 정의감은 지니고 있지만, 우선 가족부터 챙기고 지키려는 마음이 더 큰 바로 그 지점이 앤트맨이라는 히어로만의 매력인 셈이다. 그래서 <앤트맨> 시리즈는 항상 가족 영화로서의 분위기를 공유한다. 1편에서는 스콧과 캐시의 만남만큼이나 행크와 호프 부녀의 화해도 중요한 소재였다. 2편은 아예 행크의 아내이자 호프의 어머니인 재닛을 찾는 이야기가 중심 스토리였다.

그런데 <앤트맨 3>의 분위기는 이전 작품들과 다소 다르다. 유쾌함 대신 진지함이 가득하다. 막중한 임무를 맡은 까닭이다. 이번 작품은 <어벤져스: 캉 다이너스티>와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로 나아갈 페이즈 5의 시작을 알리고, 타노스의 뒤를 이을 빌런 캉을 소개해야 한다. 그래서 <앤트맨 3>는 이전까지 맛보기로 등장했던 양자 영역을 활용해 본격적으로 스케일을 키운다. 작중 양자 영역의 묘사를 보면 이는 나름대로 흥미로운 설정이다. 비록 물리적으로 지구 외부에 있는 우주는 아니지만, 외우주에 못지않은 스케일과 다양성을 자랑하는 소우주로 양자 영역이 등장하니까. 닥터 스트레인지가 멀티버스의 문을 열었듯, 이제 앤트맨은 숨겨진 우주를 탐험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앤트맨 3>는 가족 영화이기 이전에 새로운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스페이스 오페라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다 보면 거대해진 스케일을 온전히 즐기기 어렵다. 규모는 커진 반면, 이 넓고 새로운 우주를 어떻게 채울 지 고민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자 영역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주인공들이 펼치는 모험은 이미 다른 영화에서 본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재닛이 양자 영역의 원주민을 만나 탈 것을 빌리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사막 같은 비주얼은 <스타워즈> 속 타투인 행성을, 헬멧을 쓰고 있는 유목민과 그들의 탈 것은 타투인에서 사는 '터스켄 약탈자'를 빼닮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캉의 군대는 스톰트루퍼를, 캉의 제국은 은하제국의 수도인 코러산트를 떠올리게 한다. 사막에 숨어 있는 저항군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는 몇몇 신선한 요소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양자 영역에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캐릭터가 등장한 것은 맞다. 해파리나 브로콜리를 변형한 듯 보이는 생명체가 여럿 눈에 띈다. '자유의 투사들'의 일원인 베브도 민달팽이처럼 생긴 독특한 생김새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이들은 이내 배경으로 밀려나고, '젠토라'나 '쿼즈'처럼 인간 형태의 조력자만 남아 분량과 비중을 차지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로켓이나 그루트, <토르> 시리즈의 코르그와 미에크처럼 전향적으로 활용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베브와 살아 움직이는 건물들 정도가 임팩트를 남길뿐이다. 결국 <앤트맨 3>에서 양자 영역은 MCU의 지평을 한 차원 넓힐 공간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저 정복자 캉이라는 새 빌런을 등장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될 뿐이다.

그 결과 <앤트맨 3>는 시리즈의 본래 개성과 지향점 사이에서 부유하는 듯 보인다. 스콧이 정복자 캉에게 저항하는 양자 영역의 원주민들, 곧 자유의 투사들을 돕는 전개만 봐도 문제점을 알 수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자서전도 내고 사인회를 다니며 셀러브리티로서의 삶을 누리는 스콧. 그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대신, 마침내 되찾은 가족과 일상을 누리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양자 영역에 빠지거나 정복자 캉에 맞서 싸우는 이들을 만난 후에도 얼른 집에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스콧은 끝내 다시 히어로의 길을 외면하지 못한다. 캐시 때문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아빠를 설득한다. 스콧이 좀처럼 설득되지 않자 독단적으로 캉의 군대와 싸우기도 한다. 이에 스콧도 결국 자유의 투사들 옆에서 캉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스콧이 마음을 바꾼 이유를 시리즈 내내 강조되었던 그의 부성애로부터 찾는다. 확률 폭풍 안에서 캐시의 외침을 들은 스콧의 모든 가능성들이 힘을 합쳐 진짜 스콧을 도와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장면은 스콧이 모든 선택의 기로마다 언제나 캐시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기에 스콧은 이번에도 캐시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는 앞으로 어벤져스와 캉이 멀티버스 속에서 펼칠 싸움을 암시하는 대목이기에 더욱 인상적이기도 하다. 멀티버스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나'에게는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사실 중요한 건 가능성이 아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단 하나의 희망과 가치를 깨닫고, 이를 지켜내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스파이더맨, 닥터 스트레인지, 그리고 이제 앤트맨이 그러하듯이. 그렇지 못하면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나'는 절망하고 좌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캐시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스콧이 생판 남인 자유의 투사들을 돕는 이야기가 말이 되는 이유다.

그런데 정작 영화는 자유의 투사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정복자 캉에게 맞서 자유를 갈망한다는 언급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그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고 캉이 그들을 어떻게 억압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양자 영역에 대한 설명과 상상력이 부재한 만큼이나 이들에 대한 설정도 대사 몇 마디를 제외하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캐시 랭을 가교로 삼아 사람들이 마음을 합치는 모습에서는 당위성을 찾기 어렵다. 왜 앤트맨이 그들을 도와서 모험을 떠나야 하는지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캉이 죽고 자유를 찾아다며 기뻐하는 사람들의 카타르시스를 공유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덩달아 스캇 일행과 이들 간의 가교가 되어야 할 캐시의 역할도 애매해지고, 캐시를 따라 이들을 도와준 스콧의 이야기도 힘이 빠진다. 이처럼 양자 영역 안에서 <앤트맨> 시리즈는 본연의 매력과 개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심지어 스콧 랭만 양자 영역에서 길을 잃은 것도 아니다. 앞으로의 MCU를 지탱할 빌런 정복자 캉도 헤매기는 매한가지다. 작중 캉은 다른 변종 캉들이 보기에도 너무 위험하기에 외부의 시공간과 분리된 양자 영역에 갇혀버린 인물이다. 어찌나 위험한 사상과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재닛 밴 다인이 가족과의 재회를 포기하면서까지 캉을 양자 영역에 가두기 위해 수십 년 간 노력했을 정도다. 그런데 정작 영화를 보고 나면 캉이 과연 타노스만큼 위협적인 빌런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힘이나 능력이 인상적이지 않다. 개미 군단의 공격에 쩔쩔 매고, 앤트맨과 와스프에게 고전하기 때문이다.  인피니티 스톤 없이도 헐크를 무너뜨리던 타노스와 비교하면 더욱 평범해 보인다.

물리적으로 위협을 가하지 못하며 사상적으로라도 어벤져스의 적수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지만, 그조차도 실패한다. 연출 상의 문제로 캉의 과거사나 그의 사상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캉이 앤트맨에게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는 대목을 보자. 캉은 자기가 수없이 많은 어벤져스를 죽였다고 말한다. 이때 영화는 플래시백과 같은 연출 기법을 활용하는 대신 그저 캉의 설명을 고스란히 들려줄 뿐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의 과거사를 설명한 대목을 떠올려 보면, 지나치게 정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재닛이 캉과 겪었던 일을 털어놓는 장면도 다르지 않다. 재닛, 행크, 호프는 한 테이블에 나란히 둘러앉아 있다. 재닛은 어떻게 캉을 만나고, 그의 우주선을 고쳤고, 그를 양자 영역에 가둔 이유를 몇 분에 걸쳐 설명한다. 나머지 둘은 그저 리액션을 할 뿐이다. 이처럼 설명을 위한 시퀀스가 계속되다 보니 자연히 영화는 지루해진다. 설명의 내용 역시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캉이 등장하는 쿠키 영상에서도 그들이 딱히 무섭지 않은 이유다. 그들의 목적이나 사상, 대립 구도가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복자 캉의 데뷔전은 어떤 의미로든 만족스럽지 않다.

사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MCU가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은 이제 새롭지 않다.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페이즈 4를 구성하는 영화와 드라마들이 줄줄이 혹평과 부진한 흥행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앤트맨 3>의 어깨는 무거웠다. 시들어가는 관객들의 관심을 다시 점화하고 멀티버스 사가에 몰입할 유인을 제공해야 했다. <앤트맨> 시리즈로서의 재미도 선사해야 했다.

하지만 <앤트맨 3> 실패했다. <앤트맨> 시리즈의 연장선상이라고 보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확실하게 페이즈 5의 초석을 놨다고 하기도 어려운 결과물을 내놓고 말았다. 의문을 더 키우는 것은 덤이다. "시끄럽던 옆동네 DC 확장 유니버스가 전면 리부트를 선언한 가운데, 과연 마블의 멀티버스 사가는 평탄히 목적지까지 항해할 수 있을까?" 미래는 모를 일이나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마블에게 남은 기회가 이제는 정말 많지 않다는 것. 개봉까지 두 달여를 남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로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P(Poor, 형편없음)

큰 그림도, 시리즈의 매력도, 빌런의 위압감도 양자 영역과 함께 사라지다

작성자 . KinoDAY

출처 . https://blog.naver.com/potter1113?Redirect=Write&categoryN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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