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2-02-15 16:58:07
상실의 슬픔에 줌 인(zoom-in)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리뷰
상실 이후, 적절한 추모 기간은 얼마일까? 언젠가부터 사건사고, 재난에 희생된 사람들을 다루는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을 졸이게 된다. 당장은 모두가 가족‧동료‧친구를 잃은 슬픔에 공감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이제 그만하라’고 손가락질하는 모습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나만의 피해의식은 아닐 것이다. 일베 회원들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투쟁 중인 유가족 앞에서 ‘폭식 투쟁’을 전개한 이후부터였을까? 우리 사회가 슬픔에도 유통기한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은.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상실이 우리에게 남긴 흔적과 그 흔적이 나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을 천천히 좇는 영화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어린 사야카는 우연히 동네 펫숍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개 ‘루’를 발견한다. 루는 ‘믹스견’이라 품종이 분명치 않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상태였다. 우여곡절 끝에 함께하기로 한 사야카와 루는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추억을 쌓아 올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준다. 루가 수개월 만에 심장병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다시 혼자가 된 사야카. 그는 루가 떠난 후에도 일상의 모든 공간에 남은 루의 흔적과 마주하며 우울한 기분에 빠져 지낸다. 루와 행복했던 만큼, 그 공백도 크게 느껴져서다. 그러던 중 오래전 아들을 잃은 동네 할아버지 후세와 친구가 된다. 둘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상실이 남긴 흔적이 무엇인지를 차근히, 느린 속도로 마주해나간다.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개월 전 루를 떠나보낸 사야카와 수십 년 전 아들을 먼저 보낸 후세가 느끼는 슬픔의 크기는 같다. 오랜 시간이 후세의 슬픔을 덜어주지 않았다는 소리다. 이제 마을에서는 아들을 잃은 후세의 이야기가 슬픔이 증발한 건조한 소문으로만 떠돌지만, 후세는 여전히 수십 년 전에 머무르며 아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후세의 슬픔을 '과거'로 흘려보내는 동안, 후세는 그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홀로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상실의 슬픔은 진정 어린 공감과 연대의 마음으로 승화될 수 있다.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후세와 사야카가 끝내 미소 지을 수 있었던 건 이 때문이다. 서로의 슬픔에 공감해주는 사람을 만난 후에야 사야카와 후세는 상실한 존재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공감과 연대가 어렵다면 상대가 ‘이제 괜찮다’고 말할 때까지 마냥 기다려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무엇이든, 타인의 슬픔에 유통기한을 정해놓고 그만하라 닦달하는 것보단 낫다.
영화에는 성인이 된 사야카의 내레이션과 어린 사야카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는 사야카가 루를 잃은 상처와 ‘함께’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슬픔은 ‘극복’되어 ‘사라져야 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상실로 인한 슬픔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이를 바탕으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성숙한 존재가 될 수도 있고, 타인의 슬픔을 존중하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다. 다시 한번, 상실의 슬픔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루를 떠나보낸 사야카의 슬픔과 사야카가 이 슬픔을 마주하는 과정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가까이서 보여준다. 내게는 이 영화가 상실의 슬픔에 줌 인(zoom-in)함으로써 슬픔마저 ‘죄’로 몰아가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영화로 읽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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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의 힘, 이야기의 뚝심
7★/10★
사실 처음엔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코로나 팬데믹을 비롯한 제작상의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텅 빈 연극 무대에 몇 개의 소품만 놓고 연기하는 배우들을 다소 조악한 카메라로 담아내는 극 영화를 마주한다는 것이. 온갖 촬영 장비와 CG로 더 ‘리얼한’ 화면을 구성하는 게 영화 성패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지금, 독립영화라 하더라도 ‘형식의 실험’을 이유로 대기에는 아무래도 궁색해 보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진실의 힘, 이야기의 뚝심 앞에서 초반의 당혹감은 금세 사라졌다. 거짓말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구조하러 현장에 갔으나, 되레 공권력의 책임이 부재한 곳을 ‘어설프게’ 메우려 했다는 이유로 공권력에 의해 기소당한 민간 잠수사들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카메라의 공백을 애도와 연대의 마음으로 가득 채운다.
두바이에 ‘큰 건’이 잡혀 있던 민간 잠수사 나경수는 팀 막내가 세월호 참사 현장의 구조 활동에 자원했다는 소식에 팀원들을 데리고 사고 현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찬가지로 자발적으로 모인 다른 민간 잠수사들과 팀을 이뤄 혹시 생존해 있을지도 모를 참사 희생자, 그리고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맡는다. 작업은 고됐지만 지원은 부재했고, 해경은 자신들이 방기한 구조를 지원하기보다는 현장을 감추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난다. 열악한 상황에서 혹사하던 민간 잠수사 한 명이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국가의 대응은 기가 막혔다. 검찰은 오히려 민간 잠수사에게 희생의 책임을 물었다. 민간 잠수사들의 구조 활동을 지휘했다는 이유로 과실치사로 기소당한 한 잠수사에게 검사가 묻는다. 왜 안전 수칙을 위반해가면서까지 위험한 작전을 계속했느냐고. 민간 잠수사들은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국가와 달리 사고 희생자들을 마음 깊이 진심을 다해 구하고자 했다. 그게 전부였다. 이들은 물속에서 희생자의 시신을 보고도 울 수 없었다. 시야가 흐려져 구조 작업과 작업자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눈물로 슬픔을 달래지 못한 잠수사들의 몸과 마음에는 병이 생겼다. 무책임한 국가의 책임 전가가 더해져 그 병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누군가는 구조 과정에서 마주한 희생자들의 환영에 현실을 잡아먹혔고, 누군가는 심각한 잠수병 후유증에 시달렸으며, 누군가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들은 송사마저 ‘외주’로 치렀다. 어느 유명 로펌의 사회공헌 활동으로, 마찬가지로 국가의 책임을 외주받았다가 책임을 떠안은 잠수사들의 사건이 변호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신자유주의 한국의 모순 그 자체라는 세간의 진단은 틀리지 않았다.
나경수 역을 연기한 이지훈 배우를 비롯해 카메라의 빈 곳을 채우며 민간 잠수사들이 겪은 고통의 시간으로 관객을 들이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무척 인상적이다. 국가의 잔인한 추궁에 정말로 자신에게도 죄가 있을지 모른다고 자책하며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잠수사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유족과 연대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이 지점에 다다른 우리는 분명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영화는 끝나지 않은 세월호를 말하는 가장 적확한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아직도 세월호냐는 비아냥 섞인 물음에 가장 정확한 답은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세월호를 말할 것이다’일지도 모른다. 세월호는 그들이 조롱하듯 경제적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 책임과 연대, 애도와 추모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월호를 주제로 한 여러 영화가 있었다. 자녀를 떠나보낸 부모가 세월호를 놓지 않고 자신의 깊은 슬픔을 ‘공적 추모’로 승화해내는 과정을 담아낸 〈장기자랑〉(2023)과 〈목화솜 피는 날〉(2023), 참사 직전 우정에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두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선보인 〈너와 나〉(2023), 슬픔과 애도를 사회적 자원 삼아 더 크고 넓은 연대를 모색하는 가슴 벅찬 이야기 〈세월: 라이프 고즈 온〉(2024)과 〈바람의 세월〉(2024) 등등. 〈바다 호랑이〉는 세월호 영화의 기존 계보에 더해 왜 세월호를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지, 그럼으로써 우리 개개인과 우리 사회가 무엇을 성찰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우리’의 범주는 어떻게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는지를 또다시 분명하게 증명한다. 아직도 말해지지 않은 더 많은 세월호 이야기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발화될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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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시간
사라진 시간
정진영 배우의 첫 감독 연출작품. 그가 배우를 하기 전에 연출부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배우보다 감독이 되고 싶었고, 30여 년의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연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정진영의 첫 작품은 기존의 영화 문법을 따르지 않은, 신선한 시도였다.
이 영화를 두고 장자의 '호접몽'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꿈을 꾸는 나와 꿈속의 나, 꿈속에서 꿈을 꾸는 나에 관한 설정을 다룬 영화는 여럿 있다. 이 영화는 꿈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정체성'에 관한 영화로 읽는 것이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아의 정체성에 관한 최고의 작품은 카프카의 '변신'이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자기가 거대한 벌레로 변했다는 걸 알게 된다. 가족 모두 그레고르의 변신에 충격을 받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레고르 역시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부정하지만, 벌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카프카의 작품은 '변신'이라는 형태적 변화를 통해 개인의 '존재'와 '정체성'을 묻고 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인간'이 아닌, 가족에 기생하는 '벌레'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벌레'는 사회에서 도태한 한 인간의 '사회적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
'사라진 시간'의 주인공 '형구'는 자기가 인식하는 자아와 타인이 인식하는 자아가 다르다는 점에서 분열적 존재다. 그레고리는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벌레로 변신하기 이전의 자신과 벌레로 변신한 이후의 자신이 동일한 인물이라는 걸 분명 알고 있다. 육체가 벌레로 변했어도, 그레고리 잠자는 변하지 않는 자아를 갖고 있다. 이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자아'에는 분열이 없지만, 가족과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은 분열적이라는 점에서 '사라진 시간'의 형구와 큰 차이가 있다.
형구는 자기가 생각하는 정체성이 '형사'지만, 현실(?)의 모습은 '선생'이다. 형사였을 때의 형구는 가난하지만 결혼했고, 아들이 둘인 아버지이자 가장이다. 수사를 하던 중, 마을 주민이 준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잠들었다 깬 형구는 학교 선생님이다. 그는 자신이 학교 선생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아직 미혼이고, 자기가 수사하던 불탄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물론 불이 났던 집은 흔적조차 없고, 모든 것은 정상이다. 불이 났던 것은 상상일까, 불이 날 때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은 교사 부부는 환상일까.
형구는 자기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자기가 살았던 아파트를 찾아가고,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도 간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자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자기가 살게 된(불이 났던 집) 집에서 발견한 것은 형구가 교사가 되기 위한 증거들로 넘쳐난다. 그 서류가 조작이라고 믿는다면 거대한 음모론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누가, 왜 형구의 삶을 분리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일까. 오히려 형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아의 정체성은 그 모든 세계를 의심할 만큼 견고하다. 자기부정은 자신의 실존을 의심하게 되고, 자아의 분열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자신만은 그것이 옳다고 주장할 때, 둘 가운데 하나는 분명 틀렸다.
형구는 자신이 형사였을 때, 학부모 해균이 초등학교 동창 여자와 모텔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구가 선생의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울 때, 해균에게 초등학교 동창 여자와 모텔에 가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해균이 놀란 것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형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일종의 '키'로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형구가 해균의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해서 만난 경찰서장의 부인이 바로 자기의 아내-형사였을 때-라는 설정은 영화의 이야기 구조가 도치되었음을 말한다. 즉 형구는 이미 이 동창모임이 있기 전에 경찰서장 부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것은 영화에서 형구가 형사로 등장하기 전이며, 그때 이미 형구는 학교 선생으로 재직하고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앞부분, 교사 부부가 살고 있고, 수혁의 아내 이영이 밤만 되면 다른 사람으로 빙의한다는 것, 이 부부 교사가 결국 집에 갇혀 불에 타 죽게 된다는 내용은 형구의 꿈이거나 상상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이영은 읍내에 있는 주민자치센터에서 뜨개질을 배우는데, 형구가 온천에서 우연히 만난 초희(뜨개질 강사)에게서 형구가 뜨개질을 잘 한다는 말을 듣는데, 이영과 형구는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형구와 초희는 우연히 온천에서 만나는데,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진다. 두 사람 모두 나이가 꽤 있음에도 결혼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초희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자신이 밤만 되면 누군가의 모습으로 빙의한다는 사실을. 형구는 이 말을 듣고 소름이 돋는다.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만, 이야기는 순환한다. 형구는 초희와 결혼해 함께 살게 되고, 초희는 밤마다 누군가로 빙의한다. 이 사실을 마을주민 해균이 우연히 알게 되고, 이장에게 전달하며, 이장은 마을 주민에게 알리고,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마을 주민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 된다. 마을 주민들은 밤마다 빙의한다는 초희를 무서워하고, 형구에게 밤에는 집안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철창을 설치하기를 권한다.
이 모든 과정은 형구의 상상이지만, 형구는 이 일련의 상황에 몹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형구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어느 날 마을 잔치에서 독한 술을 잔뜩 마시고 정신을 잃은 것처럼 잠에 빠진다. 그리고 꿈을 꾼다. 상당한 미인이었던 경찰서장의 부인이 자기 아내가 되고, 자신은 형사가 되어 자신의 분열된 자아 - 교사 수혁과 이영 -가 행복하지만 결국 불에 타 죽는 장면을 보게 된다. 형사인 형구는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욕망을 실현 - 미인인 아내와 결혼하고 두 아이를 얻는 것 -하고, 불안한 욕망 - 뜨개질 강사를 좋아하지만 그녀가 드러낸 비밀(빙의) - 을 제거하기 위해 집이 불탄다. 형구는 뜨개질 강사 초희에게서 들은 빙의의 비밀에 충격을 받고, 자신이 꿈속에서 교사가 아닌, 형사로 빙의한다. 그리고 잠에서 깼을 때, 형구는 빙의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영화는 열린 구조로 되어 있어서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관객은 감독의 불친절한 결말에 불평할 수는 있지만,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어서 서사가 풍부해지는 장점이 있다. 단지 꿈에 관한 이야기일지, 평행우주에 관한 이야기일지, 장자의 호접몽을 말하는 것인지, 카프카의 벌레에 관한 이야기인지 관객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신선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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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로무비 | 그들이 영화와 멜로를 찍었던 이유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비디오 가게에서 안 본 비디오가 없을 정도로 영화를 사랑한 '고겸'(최우식). 그는 영화와 더 사랑에 빠지기 위해 단역 배우 활동을 시작한다. '마성우'(고창석) 감독의 촬영장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하던 중, 고겸은 촬영 스태프로 일하던 '김무비'(박보영)를 만난다. 첫눈에 그녀에게 반한 고겸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다가서고, 그를 부담스러워하던 무비는 볼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고겸에게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열기로 결심한다.
바로 그때 고겸은 돌연 모습을 감춘다. 교통사고로 인해 장기 입원 환자가 된 형 '고준'(김재욱)을 간호해야 했던 것. 영문을 모르는 무비는 어릴 적 딸보다 영화를 사랑했던 아빠처럼 고겸이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하고, 그와의 관계를 홀로 정리한다. 하지만 5년 후, 영화감독이 된 무비 앞에 고겸이 나타난다. 그것도 유명 영화 평론가가 되어서. 그를 다시 본 순간 무비는 깨닫는다. 그와의 멜로 영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멜로무비>를 보는 두 시선
'멜로드라마' 혹은 '멜로' 장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좁은 의미에서 멜로는 로맨스 장르,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를 뜻한다. 특히 분위기가 무거운 작품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흔히 '정통 멜로'라 하면 성인 간의 관능적이거나 진지한 로맨스를 연상할 수 있다. 물론 로맨틱 코미디에 멜로 향이 첨가되는 경우도 있다. 두 주인공의 사랑이 내적, 외적 이유로 위기를 겪을 때 자연스럽게 멜로로 전환되는 식이다.
넓은 범주에서 보면 멜로 장르는 연인 간의 로맨스 그 이상의 이야기를 포함한다. 본래 멜로는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주인공(특히 여성)이 겪는 여러 어려움과 고통을 감정적으로 분출하는 극을 의미했기 때문. 즉, 멜로는 연인과의 사랑은 물론,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부딪히는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인 셈이다.
<그 해 우리는>의 이나은 작가가 넷플릭스와 만난 <멜로무비>를 보고 나서 반응이 갈릴 여지가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멜로무비>는 두 주인공의 로맨스 비중이 작은 반면, 영화라는 매개체 덕분에 얽힌 다양한 사람들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아냈다. 따라서 만약 좁은 의미의 멜로를 기대했다면 예상과 달리 곁가지가 많아 보이고, 넓은 의미의 멜로를 원했다면 눈물샘을 자극하는 사랑 이야기에 저항 못할 수밖에 없다.
고겸과 고준의 멜로무비
<멜로무비>는 영화를 구심점 삼아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한 곳에 모은다. 그들이 영화와 사랑에 빠진 각기 다른 이유를 보여주면서 그들이 영화와 찍은 멜로무비를 틀어주는 셈이다. 가장 먼저 고겸과 고준 형제의 멜로무비가 눈에 띈다. 어려서부터 온갖 영화를 섭렵하고, 단역 배우로 활동하다가 영화평론가가 된 고겸. 그는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영화 속에서 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고겸의 말에는 속뜻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형 고준과의 관계 때문이다. 고겸은 초등학생일 때 부모님과 사별했다. 그런 그에게 현실은 두려운 존재였다.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형마저 자신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 무서움에 떨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현실이었다. 달리 말해 고겸에게 영화는 일종의 탈출구였다. 어린 나이에 마주하기에는 너무나도 차가운 현실을 잊게 만드는 환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고준이 영화와 사랑에 빠진 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인이 되자마자 어린 동생과 남겨진 고준. 그에게 현실은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그는 밀린 월급을 주지 않는 사장에게 항의하다가 모욕을 당해도 끓어오르는 감정을 마음속 깊이 눌러 담아야 했다. 그런 고준에게 영화는 온갖 감정을 눈물로써 승화하는 창구였다. 평상시에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그가 유독 슬픈 영화만 보면 펑펑 울었으니까.
더 나아가 두 형제에게 영화는 삶의 버팀목이었다. 둘이 같이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각자의 상처를 잊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고준이 교통사고 때문에 장기간 입원하고 재활 치료를 받는 동안 고겸이 영화평론을 직업을 선택한 것은 상징적이다. 두 형제에게 영화란 삶을 지탱하는 수단이자 가족을 뜻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무비와 아빠의 멜로무비
김무비의 멜로무비는 고겸의 것과 양상이 다소 다르다. 그녀에게 영화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영화는 좋아했지만, 아빠 때문에 영화가 싫어진 것. 자기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었던 무비의 아버지는 평생을 영화 스태프로 일했다. 딸과 약속이 있어도, 딸의 생일이어도 영화 제작 현장에 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 아빠를 보면서 무비는 그가 자신보다도 영화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아빠를 미워하기로 결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사랑한 아빠를 미워했기에 무비는 영화를 자기 진로로 선택했다. 아빠가 너무나도 미운 나머지 그에게 증명하고 싶었으니까. 그를 비롯한 다른 영화인들처럼 자기 인생을 갈아 넣지 않아도 충분히 영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그저 직장이자 일일 뿐이라는 사실을. 즉, 무비에게 영화는 의도치 않게 삶의 방향성을 정해준 이정표였던 셈이다.
이 이정표는 신인 감독이 된 무비에게 다른 길도 가르쳐준다. 그녀는 감독이 된 후에야 비로소 마음 한 구석에 품었던 미운 정을 떨쳐낸다. 아빠가 그토록 영화에 매달려야 했던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 영화는 혼자 만드는 예술이 아니니까. 영화감독이 된다는 것은 무비 아빠처럼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꿈과 열정을 책임진다는 의미였으니까. 그 무게감과 절실함을 마주하면서 무비는 비로소 진정으로 영화와 사랑에 빠진다.
무비와 고겸의 얕은 멜로무비
그런데 고겸과 무비는 정반대 방향으로 영화와의 사랑을 가꿔 나간다. 흥미롭게도 두 주인공 간의 멜로가 계기다. 고겸은 영화 그 자체보다는 형과 영화를 같이 보며 현실을 잊는 시간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형이 세상을 떠나자 영화에도 흥미를 잃는다. 평론도 그만두고, 그간 애써 모은 비디오도 정리한다. 빈자리는 무비가 대신한다. 형과의 추억이 뼈아파서 집에 못 들어가던 그를 무비가 데리고 들어가는 장면이 그 방증이다.
반대로 무비는 고겸을 만나 영화와의 멜로를 꽃피운다. 고겸이 그녀의 마음속 상처를 보듬어 줬기 때문. 무비는 영화감독이면서도 영화와 거리를 두었듯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영화를 쫓던 아빠처럼 다른 이들도 자신을 버릴까 두려워했으니까. 하지만 홀연히 떠난 것 같았지만 결국 되돌아온 고겸과의 로맨스 덕분에 무비는 달라졌다. 그와의 멜로 덕분에 영화와 사람에게 마음 주는 법을 배운 셈이다.
문제는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끼친 영향이 강조되지 못했다는 것. 달리 말해 두 주인공 각자의 인생사가 그들의 로맨스를 가려버린다. 그들이 영화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떠나보내야 하는 이유는 인생의 역경과 얽혀서 명확히 드러난다. 그에 반해 둘이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고 애정을 키워 나가는 과정은 그저 우연에 기댄다. 드라마의 분위기 자체는 영화적으로 꾸며주더라도 그들의 접점을 강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작가의 전작인 <그 해 우리는>과 비교하면 문제가 더 명확하다. 전작은 '최웅'(최우식)과 '국연수'(김다미)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묘사했다. 전 애인, 다큐멘터리 출연자, 마케터와 섭외 대상 작가 등 여러 관계를 중첩하면서 관계에 깊이감을 더했다. 반면에 고겸과 김무비는 운명적인 사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영화감독과 평론가라는 독특한 조합도 그저 둘을 재회시키는 도구일 따름이다. 자연히 둘의 로맨스는 표층적이다.
삐걱거려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이처럼 두 주인공의 서사가 잘 이어지지 않고, 멜로도 부각되지 않다 보니 <멜로무비>의 완성도에는 여러 문제가 생긴다. 우선 '홍시준'(이준영)-'서주아'(전소니) 커플의 이야기가 극에 녹아들지 못한다. 이 서브 커플은 고겸-김무비 커플과는 정반대 위치에 있다. 그들처럼 우연히 재회했지만, 장기 연애가 끝난 후에 만났다는 점이 다르다. 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대신 이별을 완성하는 이야기라는 점도 차이점이다.
그런데 고겸과 무비의 관계성이 각자의 사연에 가려지다 보니 서브 커플의 서사도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한다. 빛이 강해야 그림자도 짙어질 수 있는데, 정작 빛이 약한 모양새다. 이에 더해 꿈을 위해 이별을 선택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서브 커플의 플롯도 문제다. <라라랜드> 같은 이 이야기가 정작 '영화'와 접점이 없기 때문. 그 결과 이들의 로맨스는 다른 드라마가 중간에 삽입된 것 마냥 나머지 플롯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완성도의 결함으로 인해 기시감도 강조된다. 일례로 매 에피소드마다 반복되는 프롤로그-본편-에필로그 형식은 작가 고유의 스타일이지만, 마치 전작의 답습처럼 보일 수 있다. 다른 설정도 마찬가지다. 헤어진 연인이 5년 만에 재회하는 전개, 사람을 좋아하는 남자 주인공과 사람을 밀어내는 여자 주인공 조합도 큰 틀에서는 전작과 똑같다. 그러다 보니 최우식의 내레이션이 들리는 순간부터 진한 익숙함이 느껴질 여지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멜로무비>의 아쉬움과 단점은 긴 잔상으로 남지 않는다. 남녀의 로맨스보다 강조한 사랑 이야기가 충분히 뇌리에 각인되기 때문. 고겸과 고준 형제의 사연으로 가득 찬 일곱 번째 에피소드의 끝에서는 눈물을 참기 어렵고, 어릴 적 상처를 딛고 마침내 삶의 방향을 결정한 무비를 보면서는 공감과 격려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멜로무비>는 부족한 로맨스를 깊이감 있는 멜로로 대신하며 막을 내린다.
Acceptable 무난함
부족한 로맨스를 채우고 넘치는 멜로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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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형제인 베니 사프디와 연출한 <굿타임>, <언컷 젬스>로 전 세계 시네필에게 큰 지지를 얻었던 조쉬 사프디의 단독 연출작 <Marty Supreme>이 약 9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 제작사 A24의 역대 최고 예산 영화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Marty Supreme>는 티모시 샬라메, 기네스 팰트로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며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탁구 챔피언의 이야기로, 전형적인 전기 영화가 아닌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나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같은 "속도감 넘치는 세계 여행형 코미디 모험"으로 구상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베니 사프디는 최근 드웨인 존슨과 에밀리 블런트가 출연하는 A24의 스포츠 전기 영화 <The Smashing Machine>의 제작을 마쳤습니다. 두 형제의 작품은 모두 내년 개봉 예정으로, 칸 영화제에서의 동반 상영이 성사될 것인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출처: World of Reel)
송혜교, 전여빈 <검은 수녀들> 개봉일 공개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의 두 번째 이야기를 그린다고 알려져 화제가 된 송혜교, 전여빈 주연의 <검은 수녀들>이 국내 개봉일을 공개했습니다. 두 주연 외에도 이진욱, 문우진 배우가 출연하여 관객들의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2025년 1월 24일에 개봉 예정인 <검은 수녀들>은 강력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녀들의 오컬트 영화입니다.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 판권 미확보에 아쉬움 밝힌 리들리 스콧
리들리 스콧이 최근 ‘The Hollywood Reporter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성공시켰던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의 프랜차이즈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표하며,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카메론처럼 자신도 주요 작품에 대한 권리를 지켜야 했다고 언급했습니다.
한편, 최근 개봉한 <에일리언: 로물루스>의 성공으로 ’Fox’를 통해 새로운 에일리언 영화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IndieWire)
<밀수>, <스위트홈> 배우 고민시,
윤가은 감독 신작 <세계의 주인> 주연 확정
<밀수>, <스위트홈>, <오월의 청춘> 등 유수의 작품에 출연하여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배우 고민시가 윤가은 감독의 신작 <세계의 주인> 출연을 확정 지었습니다.
윤가은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세계의 주인>은 18살 평범한 여고생 이주인에게 어느 날 뜻밖의 일이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윤 감독은 장편 데뷔작인 <우리들>로 청룡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비롯하여 당시 많은 영화제를 휩쓸어 화제 된 바 있습니다. (*출처: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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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와 광기가 만든 지옥에서, 진짜 죄를 묻다.
지옥 (Hell Bound, 2021)
개봉일 : 2021.11.19. (넷플릭스 공개)
감독 : 연상호
출연 :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원진아, 양익준, 김도윤, 김신록, 류경수, 이레
공포와 광기가 만든 지옥에서, 진짜 죄를 묻다.
인간들이 풀지 못한 미스터리한 존재들을 초월적인 존재 또는 인간 사회를 벗어난 초자연적인 존재라고 한다. 우리는 항상 인간 세계를 초월한 어딘가에 있을 존재와 우리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반복해서 묻는다. 과연 인간을 초월한 존재, 신은 존재하는지, 존재하고 있다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 보고 있다면 어떤 눈빛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맹목적으로 믿는 건 아니지만, 만일 존재한다면 그는 어떤 존재일까. 궁금할 뿐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신에 대한 궁금증 또는 불신을 품고 있는 인간들이 초자연적 현상을 마주하게 된 후 나타나는, 지독하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들은 신의 심판이란 행위를 보며 고뇌한다. 신이 바라는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이 초자연적인 현상은 신이 내린 심판이 맞는 건가. 신은 과연 옳은 심판자인가. 우리는 이 심판을 피해 가기 위해 어떻게 변화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지옥>의 세계관 속 인간들은 맞설 수 없는 공포 아래 끊임없이 고민하고 변화하며 분해된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중심을 지키는 인물들을 무너트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드디어 공개된 시즌 1, 더 넓어진 연상호 유니버스
시즌 1은 화당 50분대의 러닝타임, 총 6화로 이루어져 있어 주말 하루를 투자한다면 무리 없이 정주행 가능할 만큼의 분량이다. 주제 특성상 다소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등장한다. 특히 반복되는 폭력과 이해할 수 없는 범위로 튀어나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불쾌감이 쭉쭉 상승하는 느낌이었다. 주제에 맞는, 당연한 연출들이었지만 마음이 무거운 날에는 절대 정주행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할 정도였다. (개인적으론 1부에 해당하는 1-3화가 특히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지옥>의 제작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원작을 접했을 때 느꼈던 신선함과 충격을 영상을 통해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다니, 거기에 박정민 배우님이 캐스팅되다니! 말 그대로 ‘지옥 공개까지 존버 모드’였다.
<지옥>의 원작자(스토리 작가)이자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님은 <돼지의 왕>, <창>, <사이비> 등의 애니메이션 영화와 첫 실사 영화 <부산행>을 통해 ‘연상호 유니버스’를 차근차근 쌓아왔다. 조금 슬프게도 최근에 발표한 <염력>, <반도> 같은 경우엔 호불호가 꽤 강하게 나뉘었던 기억이 있는데, <지옥>은 그 호불호를 절반 이상 뒤집어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배우 등 탄탄한 필모를 쌓아온 배우들과 원진아, 김신록, 류경수, 이레 배우 등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배우들로 구성된 라인업과 지옥의 사자들을 구현한 묵직한 CG, 그리고 신선한 스토리라인까지. 딱, 연상호 감독님이 담아내고 싶었던 것들을 욕심껏 밀어 넣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시즌의 엔딩을 보면서 웹툰의 스토리를 넘어 이 세계관을 더욱 크게 펼쳐나갈 시즌 2가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지금 작품에 대한 반응도 뜨거우니 감독님이 더 욕심내서 시 즌2를.. 꼬옥 제작해서 ‘연상호 유니버스’를 더 넓혀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공포를 마주한 인간들의 군상과 믿음의 충돌
<지옥>은 신에 대한 궁금증을 따져 묻는 작품이라기보단 신이 행했을 거라 추정되는 초자연적 현상 앞에서 만들어지는 인간들의 여러 모습에 주목한다. 그리고 신이 행하는 심판의 기준, 공포 앞에서 가진 믿음의 무의미함, 집단이 만들어낸 그릇되고 폭력적인 믿음에 대해 반복해 질문하고 이야기한다.
이 반복되는 질문을 던지는 인물과 폭력적인 믿음을 가진 인물들이 충돌하며 여러 군상을 만들어내고, 시간이 지나 <지옥>속 세상은 인간들이 그토록 피하고 싶어 하는 지옥의 모습과 가까워진다. 몇몇 인물들은 신이 만든 세상이 아닌 이전과 같은 인간들의 세상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마침내 아주 작은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에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희망, 누군가에게는 단단히 쌓아올린 믿음을 무너트릴지도 모르는 걸림돌. 지켜보는 입장에서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하지만 문득, 내가 <지옥>의 세계관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명확한 방향과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공포에 둘러싸인 채, 어딘지 그럴싸한 그들의 교리를 들으면서, “난 어찌됐든 속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당장 내가 시연을 당할지도 모르는 공포스러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신의 교리를 외치는 사이비에게 홀리지 않을 자신이라... 그래서 이 작품이 이토록 찝찝하고 공포스럽게 느껴진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말하는 죄와 우리가 만든 심판 방식이 무조건 올바르다고, 잘못됐다고 말할 순 없다. 인간의 법 아래서 교묘하게 이득을 보는 나쁜 인간도 있고, 억울함에 피눈물을 흘리는 인간도 있고, 그에 도움을 받은 인간도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주 혹여라도, 아주 적은 확률로라도 완전한 존재인 ‘신’이 질서를 잡는데 개입한다면 인간 세계에 무조건적인 선과 질서가 찾아올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선과 악, 그에 대한 심판에 대한 100% 올바른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답을 찾기 위해 각자의 삶이 다할 때까지 끝없이 질문을 던지며 살아야 한다. 어느 날 무거운 발자국 소리를 울리며 나타날 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스스로 고민하고 선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의무가 아닐까.
지옥 시놉시스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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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1부, 지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다.
지옥은 크게 1-3화에 해당하는 1부, 4-6화에 해당하는 2부로 나뉜다. 1부에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첫 시연이 일어나고, 새진리회의 1대 의장인 정진수가 세상을 향한 경고장을 날리며 시작된다. 20년 전에 받았던 고지를 숨기고, 마치 지옥에 떨어진 듯 공포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정진수는 세상을 뒤집고 시연을 통해 죽음을 맞이한다.
1부의 주요 인물들은 정진수 의장, 이동욱(화살촉), 민혜진 변호사, 진경훈 형사와 그의 딸 희정, 박정자로 구성된다. 정진수 의장은 ‘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의 시연을 받는다’, ‘인간들을 심판하기 위해 신이 나섰다.’는 교리를 펼치며 공포에 질린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한다. 그에 대립하는 인물은 민혜진이며 정진수의 교리에 아이러니를 더하는 인물이 진희정과 박정자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내려지는 심판은 과연 공정한가, 죄에 대한 심판은 누가 내릴 수 있는가
진경훈은 몇 년 전, 끔찍한 사건으로 아내를 잃고 자신만의 지옥에서 살아왔다. 진경훈과 그의 딸이 다스리기 힘들 만큼 큰 고통과 분노에 쌓여있을 동안,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은 심신미약 판정을 받고 6년을 복역해 사회로 돌아온다. 범인은 모든 걸 잊고, 속 편하게 소주 한 병을 비우면서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인간들이 만든 법으로, 인간들이 내린 심판으로 그의 죗값을 치르기엔 턱없이 모자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 순간, 정진수는 그의 죄를 심판하는 신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정진수는 희정의 범인을 잡아 불에 태워 사자들의 시연과 비슷한 모습의 시체를 만든다. <지옥>속 세계에선 새진리회의 말이 법이고, 그 집단을 이끄는 정진수는 신과 같은 존재다.
새진리회가 말하는 교리의 아이러니
정진수는 죄를 지은 사람들만 받는다는 시연의 순간을 맞이한다. 신과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가장 순결한 존재로 비치는 정진수 또한 새진리회의 믿음과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만약 이 사실이 외부로 퍼져나갔다면 새진리회의 교리는 순식간에 무너졌을 텐데, 다음 의장 정칠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 사실을 꽁꽁 숨긴다.
새진리회는 ‘죄를 지은 사람을 다스리기 위해 신이 개입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만 파고들어가보면 그들은 맞는 말을 하는 게 아닌, 자신들의 말을 믿도록 상황을 꾸며내고 있을 뿐이다.
죄가 없는 박정자가 시연을 당할 때, 사람들은 시연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온갖 추측을 내놓으며 그것을 기정사실화 시켜버린다. 모든 방송매체가 죄 없는 죄인을 화면 가득 담아낸다. 진짜 죄를 저지른 살인범의 모습은 피해자의 가족인 희정도 모를 만큼 꽁꽁 숨겨놓고, 초자연적인 현상이 개입되었다는 이유로 죄 없는 박정자의 얼굴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 만큼 널리 퍼져나간다. 진짜 죄인은 정진수의 손에 죽고, 죄를 저지른 적 없는 박정자는 시연을 받는다. 그리고 2부에 들어선 영재와 소현의 죄 없는 아기마저 고지를 받는다. 새진리회가 말하는 신의 심판이란, 정말 타당한 심판이 맞는 것일까.
공포 앞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인간들. 그들이 만든 지옥
새진리회는 시연이 시작되고 겁에 질린 대중들이 약해진 틈을 타 말도 안 되는 교리를 퍼트린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처음 겪는 현상 앞에서 사람들은 중심 없이 팔랑팔랑 흔들리게 된다. 그로 인해 광신도들이 생겨나고, 이들은 인간들이 앞서 정해둔 법의 선마저 가뿐하게 침범하지만 아무도 새진리회와 화살촉을 말리지 못한다. 그들이 가장 신에 가까운 존재들이고, 그와 동시에 미쳐버린 존재들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세상 존재들이 아닌 사자들에 대한 공포와 시연 대상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인간들을 ‘인간답게, 죄를 짓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끄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느 날 억울하게 일어난 사고처럼, 이유도 모르고 고지를 받은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밀고, 그들을 욕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배척시킨다. 정진수가 휩쓸고 간 세상은 어느새 지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신의 심판이 어그러지는 순간
이 공포의 시연과 새진리회의 교리에 반하는 인물은 민혜진 변호사와 배영재 PD, 그리고 그의 아내 소현이다. 화살촉 때문에 어머니를 잃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민혜진은 소도의 일원이 되어 새진리회의 교리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1부엔 다소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확 바뀐 모습으로 등장한 2부에선 이 영화의 액션과 흐름을 책임지는 큰 역할을 해낸다.
애초에 새진리회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던 배영재 PD는 선배의 죽음을 목격함과 동시에 자신의 아이가 고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듣고, 소도와 민혜진에게 도움을 청한다. 신은 대체 무슨 이유로 갓 태어난 아이에게 죄가 있다고 하는 걸까. 원망과 분노에서 시작된 이들의 물음은 결국 지옥 같은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을 틔우는 커다란 빛이 된다.
영재와 소현은 서로를 껴안고 아이를 시연으로부터 지켜낸다. 시연을 고지 받은 아이는 살아남고, 고지를 받지 않은 부모가 지옥으로 갔다. 이쯤 되면 신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과연 시연이란 것이 ‘죄인을 골라내기 위한’ 심판의 순간이 맞는 걸까? 심판이라기보단 랜덤하게, 아무에게나 들이닥친 초자연적인 사건에 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신은 실수하지 않는다는 절대성과 믿음이 깨져버리는 순간이다.
공포로 만들어낸 선
우리는 모두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들 나름대로의 선과 악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에 맞춰 살기 위해 노력한다. (아닌 악인들도 많은 세상이지만..)
새진리회의 1대 의장 정진수는 20년 전 받은 고지를 통해 공포를 느꼈고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바르게 살았다고 말한다. 그는 신이라는 절대적인 공포가 있어야만 사람들이 선을 행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의 심판인 시연이 시작된 인간들의 세상은 전보다 더한 지옥이 되어있었다. 무자비하게 사람을 폭행하는 화살촉, 사람의 죽음을 생중계하는 방송과 그 앞에서 시청률을 챙기며 웃고 있는 새진리회 사람들. 시연자 가족들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차라리 사고사와 자살을 선택하는 피해자들.
이것이 과연 정진수가 말하던 ‘선으로 가득 찬 세상’이란 말인가. 아니 이게 선으로 가득 찬 세상의 모습이라니. 말도 안 된다.
결국 심판을 내릴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새진리회는 자신들이 신의 말씀을 전하는 존재라 말하며 사람들을 홀린다. 실상은 있지도 않은 권한을 부여한다며 정수리를 연속으로 쳐대고, 말의 앞뒤조차 맞추지 못하는 집단이지만 인간들은 처음 겪는 공포 앞에서 이성을 잃는다.
자신들이 말하는 신의 의도와 전혀 관련 없는 시연은 숨기고, 또 사람들을 탄압하며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던 그들은 ‘신의 심판’을 증거 삼아 부정한 짓을 저지른다. 내가 만든 원칙이 있어야만 세상이 돌아간다고, 마치 자신들이 신인 것처럼 우기던 정칠의 모습에 치가 떨린다.
정칠과 새진리회가 주장하던 교리들은 결국 언젠간 탄로날 거짓말이었다. 사자들의 등장이 없었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하찮은 거짓말. 새진리회는 심판을 내릴 자격이 없다. 또, 시연을 하는 초월적인 존재들조차 인간에게 심판을 내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시연자가 지옥에 가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없으니까.
민혜진이 아이를 안고 올라탄 택시 기사의 한마디가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한다.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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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묘하지만 균형 잡힌 캐릭터, 크루엘라
삶을 살아가며 경쟁은 필수적이다. 어린아이일 때도 뭔가를 먹거나 얻기 위해 다른 친구들과 작은 경쟁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것이 가족이나 형제자매일지라도 그 안에서 경쟁이 벌어지는 순간이 있다. 청소년 시기가 되면 학교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며 공부의 성적으로 경쟁을 한다. 내가 몇 번째이고 친구는 몇 번째인지 순위를 알게 되고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앞으로의 진로에 꽤 많은 영향을 준다. 그렇게 유년기의 경쟁이 끝나고 성인이 되면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그 커리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더 큰 경쟁의 시장으로 나가게 된다. 그런 상황을 개인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상관없이 그런 경쟁 상황은 끊임없이 다가오고 또 도전하게 만든다.
그런 경쟁에서는 늘 라이벌을 만나기 마련이다. 좋은 경쟁 관계가 형성되면 상대방보다 앞서기 위해 계속 신경 쓰며 노력하게 된다. 일종의 공생관계처럼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완전한 경쟁관계가 되어 자신의 부족함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며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기도 한다. 자신의 경쟁자들을 어떤 방식으로 대하고 처리해 나가는지는 한 사람의 성공과 밀접히 연관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경쟁자를 인정하고 좀 더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경쟁자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방법으로 성공을 얻는 사람도 있다. 배타적으로 사람을 택하는 사람들은 경쟁자뿐만 아니라 자신을 돕는 사람들도 쉽게 제거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성공에 방해되거나 작은 의견 차이가 있으면 바로 그 상대방을 제거해 버리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독특한 기질을 가진 크루엘라의 이야기
영화 <크루엘라>는 주인공 크루엘라(엠마 스톤)의 유년기 삶을 보여주면서 성인이 되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경쟁상황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1996년에 개봉한 <101마리 달마시안>에 등장했던 악당 크루엘라를 재해석한 영화는 검은색과 하얀색 머리가 함께 자라고 있는 크루엘라라는 인물이 남다른 상황에서 성장해나가는 젊은 시절 이야기를 원작 영화와는 다른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크루엘라의 원래 이름은 에스텔라다. 엄마 캐서린(에밀리 비샴)과 보냈던 유년기를 보여주는 영화의 초반 20분은 에스텔라로서의 삶을 보냈던 크루엘라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엄마는 늘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생활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말대로 에스텔라는 노력하지만 그가 원래 가지고 있는 기질은 숨길 수 없으며 학교생활을 하며 지속적으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게 된다. 엄마와 그가 ‘크루엘라’라고 지칭하는 그 성격은 직설적이고 대범하고 또 지기 싫어하는 어찌 보면 엉뚱한 문제적 아이다. 그래서 남자아이들과 다투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똑 부러지게 말하지만 그로 인해 학교에서는 퇴학을 당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크루엘라의 지기 싫어하는 성향 때문이다. 크고 작은 놀림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일단 한 번 다툼이 일어나면 꼭 상대방을 밟고 이겨야 하는 성향이다. 또한 호기심이 강해서 이런저런 일에 참견하고 참여하게 되는데, 영화 초반에 벌어지는 파티에 참석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크루엘라는 일반적인 아이와는 완전히 차별화된다. 머리카락의 반은 검은색이고 나머지 반은 흰색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기이한 모습이겠지만, 딱 반반씩 나누어져 있는 머리는 영화 속에서 묘하게 균형 잡힌 것처럼 느껴진다. 학교에서 그는 그 자신의 머리와 자신의 성격을 일부러 애써 감추려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엄마를 잃고 아이가 다른 색깔로 머리를 염색하는 모습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선에 의해 억압받아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길을 택해 그간 가지고 있던 균형을 잃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고아로 같이 살아가는 제스퍼(조엘 프라이)와 호레이스(폴 월터 하우저)는 크루엘라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한 편으로는 바보 같아 보이지만 그들과 함께 지내며 크루엘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자유롭게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엄마의 빈자리를 이 두 명의 친구가 대체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제스퍼와 호레이스는 비록 모자라 보여도 그들이 가진 순수함은 크루엘라가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인격, 즉 에스텔라와 크루엘라의 성향을 균형 있게 삶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크루엘라의 경쟁자로 등장하는 남작 부인(엠마 톰슨)은 감정이 전혀 없는 인물처럼 보인다. 유명한 디자이너인 그는 자신의 경쟁자가 등장하면 상대방을 완전히 밟아버려 시장에서 퇴출시켜 버린다. 그리고 그 남은 시장 내 명성과 부를 혼자 독식한다. 그렇게 자신의 명성을 쌓고 자신감을 만들어낸 그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고용인들을 마음껏 부리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생기면 바로 해고를 시켜 버린다. 심지어 사소하게라도 방해되는 사람을 완전히 처단해야 할 일이 생기면 그 일이 살인이라 할지라도 주저하지 않을 성향을 가졌다. 그가 가진 이런 특성과 그가 가진 과거의 비밀은 크루엘라가 그의 경쟁자 반열에 올라갈 수 있게 만드는 도화선을 만들어준다.
모두 뛰어난 재능과 남다른 성격을 가졌지만 남작부인과 차별화되는 크루엘라
영화 <크루엘라>는 크루엘라가 전면적으로 남작부인에게 다양한 형태의 옷과 이벤트로 대중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는 장면부터 두 사람의 대결을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두 사람이 가진 머릿속의 패션 아이템들을 비교하는 런웨이가 어느 장소에서나 펼쳐지는 느낌이 드는 비교 장면들은 굉장히 매력적이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디즈니 영화답게 재해석된 이 영화에는 화려한 화면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포인트는 닮은 듯한 두 주인공의 대결 장면이다. 남작 부인과 크루엘라는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조금은 괴팍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가진 유년기 시절의 기억은 다른데 특히 크루엘라가 만난 엄마라는 존재와 그가 알려주었던 삶의 팁은 이 두 사람의 삶과 방향성을 크게 차이 나게 만든다.
남작 부인에게는 가족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없다. 그저 자기중심적으로만 사고하고 판단하는 그에게 다른 이들은 그저 성공을 위한 부속품 정도로 보인다. 친한 친구나 친지도 전혀 없어 보이는 그는 극단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고 관계를 만든다. 그리고는 가차 없이 필요 없는 사람을 내친다. 그것은 그를 가장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로 만들었고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뒤늦게 등장한 크루엘라는 사실 남작 부인과 같은 성향을 가지려 하지만 그에겐 가족이라는 존재가 있다. 돌아가신 엄마로부터 받은 기억과 추억들, 그리고 유년기를 함께 했던 제스퍼와 호레이스는 크루엘라가 제2의 남작 부인이 되지 않도록 영향을 준다. 그래서 크루엘라는 괴팍하지만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즉, 남작 부인은 극단적으로 무너지기 쉬운 아슬아슬한 길을 자신만의 강력한 힘으로 지탱해 왔지만 자신의 힘이 느슨해지는 순간, 금방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크루엘라 역시 아슬아슬한 길을 가지만 그가 떨어질 순간순간에 그의 손을 잡아 떨어지지 않게 해 줄 주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마치 크루엘라의 검은색, 흰색 머리처럼 그가 삶에서도 균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도 크루엘라의 관계나 행동에서 묘한 균형을 느끼게 만든다.
디즈니 영화답게 다른 의미, 다른 이미지의 공주 탄생을 보는 것과 같이 구성된 영화는 전형적인 악당이었던 인물을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하여 흥미로운 캐릭터로 탄생시켰다. 특히나 크루엘라를 연기한 엠마 스톤은 완벽하게 크루엘라와 맞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괴팍하지만 따뜻함도 가지고 있는 그는 큰 눈으로 경쟁상대를 제압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이용해 영화 전반을 압도한다. 특히나 크루엘라가 다양한 패션 센스를 뽐내는 영화 후반부는 그의 매력이 더욱 도드라진다. 또한 남작 부인을 연기한 엠마 톰슨의 연기도 훌륭하다. 성공했지만 괴팍한 패션 디자이너를 얄밉게 연기하고 있다. 그가 먹던 점심 그릇을 차장 밖으로 우아하게 던질 때나, 후식 디저트를 먹고 이쑤시개를 떨어뜨리는 모습 등 다양한 행동을 하는 장면을 통해 그 캐릭터의 오만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흑과 백이 대비되는 것처럼 묘한 균형을 보여준다. 남작 부인과 크루엘라, 크루엘라와 에스텔라의 대비는 궁극적으로 크루엘라의 발전을 이루는데 큰 영향을 주는데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는 둘의 특성의 균형점을 찾아서 그 발전점을 향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의 크루엘라는 일그러진 괴팍한 인물이 아니라 어떤 적절한 균형점을 스스로 찾아내 자신의 길을 만들어낸 인물로 재탄생하게 된다. 크루엘라는 주변 사람을 챙기며 협력하면서도 자신이 잘하는 것을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렇게 사람들의 호응까지 얻는 그는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 그 길은 남작부인이 갔던 길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감독 크레이그 길레스피는 직전 연출작인 <아이, 토냐>(2018)에서 악녀로 취급받는 피겨스케이팅 선수 토냐 하딩(마고 로비)의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 이기려고 노력하는 토냐의 모습에서 남작 부인의 모습이 보이니도 한다. 어쩌면 전형적인 악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온전히 자신의 성공만을 생각하는 인물이고 주변 관계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 캐릭터이기 때문에 감독이 추구하는 악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디즈니와 손을 잡은 감독은 꽤 매력적인 이야기를 매력적인 캐릭터와 함께 만들어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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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엘라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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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루이스 웨인 :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메인 예고편
모든 동물이 행복해지길 바랐던 엉뚱한 천재 화가 ‘루이스’(베네딕트 컴버배치).
그림 말고는 모든 게 서툴렀던 그의 앞에 어느 날 운명 같은 사랑이 찾아온다.
그의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삶의 전부,
‘에밀리’(클레어 포이) 그리고 고양이 ‘피터’.
모두를 다정하게 끌어안을 가장 사랑스러운 로맨스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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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정글 크루즈> 와일드 액션 60초 예고편
<캐리비안의 해적> 디즈니 제작! 이번엔 아마존이다!
미지의 세계 아마존에서 관광객들에게 최고의 스릴을 선사하는
재치 넘치는 크루즈 선장 프랭크(드웨인 존슨).
고대 아마존의 전설을 쫓아 영국에서 온 식물 탐험가 릴리 박사(에밀리 블런트)가
의학의 미래를 바꿀 치유의 나무를 찾는 여정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하면서,
순탄치 않은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은 아름답지만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열대우림으로 함께 모험을 떠나고
수많은 역경과 초자연적인 힘을 마주하게 된다.
고대 나무에 얽힌 비밀이 드러날수록 릴리와 프랭크는 더욱더 커다란 위험에 처하고
인류의 운명도 위태로워지는데…
전설을 믿는다면 저주도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