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2-03-02 09:39:02
<나이트 레이더스> 메시지만 강렬한 디스토피아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아네트>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2043년,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에는 새로운 제국을 세우려는 독재국가 에머슨이 들어선다. 거대한 새를 연상시키는 드론에 의해 감시받는 세상을 만든 가운데, 에머슨은 시민권이 없는 미성년자 모두를 군인으로 양성하기 위해 아카데미로 끌고 간다. 그러나 에머슨의 통치를 따르지 않는 '니스카(엘레 마이아 테일페데스)'는 딸 '와시즈(브룩클린 르텍시에 하트)'와 함께 숲 속에서 유랑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와시즈가 큰 부상을 당하고, 약을 구하러 마을에 온 니스카는 도리어 병사들에게 와시즈를 빼앗기고 만다. 딸과 헤어진 후 슬픔에 잠긴 채 살아가던 니스카. 그러 그녀 앞에 마찬가지로 에머슨의 지배에 저항하는 토착민 크리 족 사람들이 나타나고, 니스카는 그들과 함께 딸을 되찾기 위한 반격에 나선다.
제7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제46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유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바 있는 <나이트 레이더스>는 다니스 고렛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고렛 감독은 <나이트 레이더스>의 출발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토착민의 삶은 나날이 극심해지는 혐오와 차별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도 그간 제삼자에게 토착민의 이야기는 항상 신기하고, 민속적이고, 옛날이야기에 불과했다. 이에 현실에서 목소리를 내기 두려운 사람마저 목소리를 내게 하는 힘이 있는 SF 및 판타지와 같은 장르에 보편적인 역사이기도 한 토착민의 비극을 녹여내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이트 레이더스>는 세계 각지의 토착민, 원주민들이 겪은 구체적인 사건들을 한 데 모아 디스토피아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우선 다니스 고렛 감독 본인이 캐나다 사람인만큼 <나이트 레이더스>는 캐나다 역사 속 원주민들의 비극적인 경험을 스크린으로 불러온다. 작중 에머슨은 전쟁에서 패배한 이들에게 두 가지 차별정책을 시행하며, 이는 영화의 주요한 갈등을 유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하나는 거대한 벽으로 대표되는 분리 정책이다. 에머슨 시민이 사는 곳과 비시민권자가 사는 곳을 철저히 나누고, 비시민권자에게는 드론을 통해 식량을 배급하면서 철저히 통제하려 든다. 이러한 에머슨의 통치 정책은 캐나다 정부가 원주민들에게 시행한 탄압과 강압적 동화 정책과 똑 닮아 있다. 과거 영국령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들의 땅을 강탈하고 그들을 보호 구역에 집어넣었다. 또 보호구역 내에 부실한 인프라를 설치하거나, 보호 구역에서 나오면 연금을 받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본래 유목민이던 이들에게 낯설고 고달픈 생활을 강제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의존하도록 만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에머슨 아카데미의 존재다. 에머슨 아카데미는 과거 캐나다 정부가 설립한 '레지덴셜 스쿨(Residential School)'의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레지덴셜 스쿨은 반란과 분쟁의 빌미 근절하기 위해 같은 국가관과 동질성을 공유하도록 영국계 캐나다인의 가치관을 원주민들에게 주입하려는 목적으로 세원진 학교다. 이 학교들에서 원주민들은 영어식 이름으로 강제 개명되고, 영어만을 사용할 수 있었으머, 원주민 전통의상 착용을 금지당하고 백인들이 입는 양복, 양장 착용이 강제되었다. 이곳에서 어린 소년소녀들은 교사에게 자주 강간당하기도 했다. 결국 부모 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사육되다시피 한 아이들은 가족애를 잃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원주민들의 가정과 사회를 더욱 빠르게 파멸로 이끌었다.
영화는 이처럼 레지덴셜 스쿨에서 자행된 악습들을 아카데미라는 가상의 공간 안에서 묘사한다. 에머슨은 어린아이들에게 선진 교육을 통해 삶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하며 정체성을 약화시킨 뒤 철저히 국가에 충성하도록 강제한다. 곧 실제 역사적 사건이 와시즈가 아카데미 내에서 엘리자베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며 어머니 니스카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 아이들이 밤이면 기숙사에서 한 명씩 불려 나가 성폭행당하는 것,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젊은 아이들이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채 어머니에게 총구를 겨누는 장면으로 바뀌어 재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딸을 구하기 위해 아카데미에 침투하는 니스카의 모습에는 단순한 모성애를 넘어서는 의미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나이트 레이더스>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 족의 역사도 디스토피아 세계에 녹여내고 있다. 이는 본 작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토르: 라그나로크>와 <조조 래빗>의 감독을 맡은 바 있는 타이카 와이티티에 게 마오리족 피가 흐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중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드론의 존재가 단적인 예시다. 드론은 에머슨의 통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신무기로, 미등록 미성년자를 수색 및 추적하고, 전투용 내지는 식량 배급용으로도 활용된다. 이때 드론이 배급한 식량에 바이러스가 숨어 있었던 것은 유럽인들에 의해 새로운 전염병이 퍼져 나갔던 사례들과 오버랩된다.
이에 더해 드론의 존재는 유럽인의 등장과 동시에 당시 기준 최신 무기였던 머스킷 총이 뉴질랜드에 전래되고, 이 무기를 지닌 부족이 그렇지 못한 부족을 착취하고 노예로 만든 사건인 '머스킷 전쟁'이 마오리족 역사에 기록된 것을 연상시킨다.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머스킷 전열 보병처럼 길게 늘어서서 일제히 총을 겨누어 화망을 형성한 채 접근해오는 에머슨 군인들과 빈약한 무장으로 맞서는 크리 족의 모습도 영국군과 마오리 족 사이에 펼쳐진 '마오리 전쟁'의 변형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영화 속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드론과 와시즈가 지닌 독특한 능력이 더해져 전투의 향배를 뒤바꾸게 되는 전개는 결국 19세기 당대 신무기인 머스킷에 의해 피로 얼룩졌던 역사를 영화적으로 치유하는 장면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목은 나다와 뉴질랜드 두 사례에 대해 여러 토착민들의 역사가 공유하는 보편성을 맛볼 수 있는 지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페인군이 침입한 멕시코나 남아메리카의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신무기나 새로운 전염병 때문에 유럽 이주민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사례는 지구 이곳저곳에 모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이한 지역의 공통된 역사적 사건들을 한 데 모은 <나이트 레이더스>의 조각보 같은 매력이 온전히 스크린에서 전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르 영화로서의 완성도에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사실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루는 장르 영화인 관계로 <나이트 레이더스>에는 다른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유사함의 정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고, 익숙한 설정과 전개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그러다 보니 시도 자체는 인상적이었던 영화의 메시지와 감흥도 모두 깎여버리고 만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대표작인 <아바타>와의 비교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아바타>의 경우에도 충격적이었던 시각 효과와 달리, 스토리적인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가 판도라 행성의 원주민인 나비족의 구세주가 되어 인간의 침입을 막아낸다는 플롯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평면적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바타>는 나비족의 역사와 사회, 내외적 갈등, 그리고 그들의 신과 구세주인 에이와와 토루크 막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주었고, 그 결과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는 강력한 몰입감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반면에 <나이트 레이더스>의 메시지와 전개 양측면에서 모두 중심이 되어야 할 크리 족의 이야기는 디테일이 부족하다. 그저 몇 마디의 대사와 설정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토착민 출신이지만 토착민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살아가던 니스카와 와시즈 모녀의 이야기와 만나는 순간에도 별다른 갈등 없이 흡수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한 곳에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작중 크리 족의 서사는 토착민 공동체로서의 특색이 살아나지 않는다. 단지 독재국가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세계에 반대하는 저항군이라는 익숙한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이는 <나이트 레이더스>가 결코 인상적인 장르영화는 아닌 이유다.
유사성과 진부함을 넘어서지는 못한 것 외의 한계도 있다. 스릴러 영화인데도 긴장감을 거의 불어넣지 못하는 식이다. 실제로 영화는 제목인 'Night Raiders'가 '밤의 침입자'라는 뜻인데도 불구하고 밤에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에머슨 아카메디에 갇힌 와시즈를 구출하기 위한 니스카와 크리 족의 습격만 보더라도 작전의 중간 과정부터 아카데미에서 탈출하려는 과정에 이르는 세부 사항들이 지나치게 많이 생략되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해당 시퀀스는 클라이맥스로 고조되는 중간 다리로써 그 부조함을 숨기지 못한다. 그나마 숲에서 숨어 지내던 니스카 모녀와 그들을 습격한 드론 간의 짧은 전투가 세계관을 소개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뿐이다. 이처럼 <나이트 레이더스>는 뜻깊고 인상적인 아이디어의 잠재력을 실현하기에는 부족했던, 투박한 장르 영화로 남는 데 그치고 만다.
P(Poor, 형편없음)
어설픈 짜임새 때문에 빛이 바랜 역사적 비극의 영화적 위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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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의 무의미함
https://www.youtube.com/watch?v=ekWhDE1QagQ
심현정 - The Last Waltz를 듣고 혹은 들으며 이 글을 읽기를 바라며
(참고로, 위 곡은 영화를 가장 잘 담아낸 한국영화 OST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한다.)
복수는 박찬욱 감독의 상징적 원동력이다. 복수 3부작이라고도 불리는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는 한 개인의 다른 개인을 향한 복수라는 메인 플롯 하에 인물들이 행동을 시작하고, 죽임 혹은 죽임으로 끝을 맺는다. 이번 글에서 다루는 <올드보이> 또한 이유 없이 자신을 가둔 이우진에게 복수를 하는 오대수의 이야기이다. 복수는 일방적인 경우보다, 양방에서 발생할 경우 그것의 의미와 이해관계가 더욱 깊어진다. 박찬욱이 오대수와 이우진을 통해 복수에 대한 복수극을 어떻게 그려 냈는지 이우진과 오대수의 인물 설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복수를 시작하는 자 – 이우진
이우진의 사랑은 그의 약점이 된다. 단편적으로 보았을 때, 그의 ‘자신의 친누나와 사랑하는 사이’라는 설정은 오대수를 향한 복수를 다짐하는 계기로 전환된다. 자신의 약점을 상대에게 들켜 복수를 하는 것은 클리셰적이다. 그러나 박찬욱은 이 설정에 모호함을 추가하여 해석의 여지를 열어 두었다. 이우진이 다리에서 누나의 손을 자의/타의로 놓았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우진은 단순히 오대수에 대한 증오만으로 복수를 시행하지 않는다. 오대수 스스로 자신이 복수를 당하게 되는 이유를 깨닫기를 원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오대수라는 주체에 대한 원한보다는, 자신의 상황(친누나와의 사랑을 이어갈 수 없었고, 그녀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일까지 겪어야 하는 상황)을 비난하기 위해 오대수의 행동을 화풀이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복수를 끝내는 자 – 오대수
오대수는 위에서 언급한 이우진의 상황으로 복수를 당하게 된다. 엄연히 보았을 때, 이우진의 약점은 오대수가 아닌 오대수의 친구(이우진과 그의 누나가 교실에서 어울리는 모습을 오대수에게 알렸다.)에 의해 더욱 강조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제3자(관객)의 입장에서 비롯된 해석이며, 박찬욱은 복수의 주체인 '이우진'으로 하여금 복수의 계기를 오대수에게서 찾게끔 설정하였다. 오대수는 딸을 가진 아버지라는 설정으로 인해, 이우진의 복수가 원활히 진행된다.
또한,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자 소시민인 오대수의 위치는 비 오는 날 딸과의 전화부터 혀가 잘리기까지의 과정에서 비극성을 부각한다. 오대수의 신체 절단은 오대수의 실수와 이우진의 복수의 시발점을 보여준다. 여기서 관객은 이우진의 복수의 핵심이, 자신의 약점을 본 오대수가 아니라 이를 여러 사람에게 알린 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오대수는 상호 소통을 하지 못하는 공간에서 혼자 15년을 갇히게 하고, (의도적으로 풀어주었지만) 탈출 후에도 일반적인 어투로 대화하지 못하게 된다.
복수의 의미 – 복수의 동기를 중심으로
이우진이 행한 복수의 주요 요소는 근친상간이다. 다수의 국가와 한국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요소이다. 박찬욱은 근친상간의 자극성을 단순히 인물 설정에 소비하지 않고, 오대수와 이우진의 접점과 마침표(파멸) 구성에 정교하게 이용했다. 결과적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근친상간에 초점을 두지 않고, 한 개인의 복수와 행동이 다른 개인을 얼마나 파멸로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오대수에게도 근친상간을 행하도록 설계하여, (근친상간의 사회적 통념을 배제하고 생각했을 때) 역으로 이우진의 근친상간(사랑)이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관계임을 보여주었다.
결국 혀가 잘린 오대수, 총으로 자살한 이우진의 마지막을 보여주며 박찬욱을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였을까. 그 둘이 신체가 절단되고 생을 마감하여도, 오대수와 딸의 근친상간과 이우진 누나의 죽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감독은 ‘이우진과 오대수의 복수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라는 답 없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이우진과 오대수의 인물 설정을 중점으로, 박찬욱이 <올드보이>에서 복수를 풀어낸 방식을 정리해 보았다. 단편적으로 보았을 때, 근친상간과 복수라는 자극적 요소를 담은 스릴러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박찬욱은 극 중 이우진처럼 관객들을 두 남자가 행한 복수의 또 다른 가담자가 되게끔 설계해 내었다. 그렇지만, 두 남자의 복수극에 타당성을 판단할 기회를 주지 않고, 결론적으로 (판단 가치가 없는) 복수의 무의미함을 강조하며 영화를 마무리 짓는다.
박찬욱의 인터뷰에 따르면, 오대수는 정말로 기억을 잃었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필자는 오대수의 기억은 휘발되었다고 생각한다. 굳이 최면술사의 유도 하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괴로운 기억을 지운 것이다. 오대수의 기억 상실은 이우진의 입장에서는 인생을 건 복수가 무의미해지는 결과이다. 이는 <올드보이>에서 복수의 의미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박찬욱의 의도에 부합하게 된다.
이 글을 읽고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오대수의 기억은 잔재하는가, 휘발되었는가.
복수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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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7월 4주차 개봉예정작을 소개합니다
한국에서 적극적인 홍보를 펼치고 있는 데드풀과 울버린 !
데드풀 실사영화 시리즈의 주조연 캐릭터들의 재등장은 물론, 영화 로건의 타임라인까지 등장하는듯 한데요!
한국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고 개봉된 첫 번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자 영화 예고편 조회수가 3억 6천만회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 시청 기록했다고 합니다.
과연 데드풀의 대사처럼 마블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지
데드풀과 울버린
개요: 공포 | 미국, 이탈리아 | 89분
감독: 마이클 모한
주연: 시드니 스위니, 알바로 모르테
개봉: 2024.07.17.
배급: (주)디스테이션
히어로 생활에서 은퇴한 후, 평범한 중고차 딜러로 살아가던 ‘데드풀’이 예상치 못한 거대한 위기를 맞아 모든 면에서 상극인 ‘울버린’을 찾아가게 되며 펼쳐지는 도파민 폭발 액션 블록버스터
미니언즈 4
개요: 공포 | 미국, 이탈리아 | 89분
감독: 마이클 모한
주연: 시드니 스위니, 알바로 모르테
개봉: 2024.07.17.
배급: (주)디스테이션
슈트-업 하고 악당 전담 처리반 AVL이 된 ‘에이전트 미니언즈’와 미니언즈 만큼 귀여운 ‘그루 주니어’가 태어나면서 더욱 완벽해진 ‘그루 패밀리’. 이들 앞에 과거 그루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그에게 체포당했던 빌런 ‘맥심’이 등장하고, 오직 그루를 향한 복수심에 불타올라 탈옥까지 감행한 맥심은 그루 패밀리의 뒤를 바짝 추격하며 위협을 가하기 시작하는데...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개요: 공포 | 미국, 이탈리아 | 89분
감독: 마이클 모한
주연: 시드니 스위니, 알바로 모르테
개봉: 2024.07.17.
배급: (주)디스테이션
어릴 적에 부모를 여읜 폴은 말을 잃은 채 두 이모와 함께 산다. 이모들은 폴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만들려고 했지만 33살의 폴은 댄스교습소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웃 마담 프루스트의 집을 방문한 폴은 그녀가 준 차와 마들렌을 먹고 과거의 상처와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진주의 진주
개요: 공포 | 미국, 이탈리아 | 89분
감독: 마이클 모한
주연: 시드니 스위니, 알바로 모르테
개봉: 2024.07.17.
배급: (주)디스테이션
영화감독 진주는 촬영을 일주일 앞두고 촬영장소인 카페가 없어지는 일을 겪는다. 다행히 선배의 소개로 찾아간 진주에서 주환을 만나고, 영화 시나리오에 딱 맞는 낭만적인 카페 ‘삼각지 다방’을 발견한다. 50년 동안 지역 예술가들이 모이는 아지트였던 '삼각지 다방'은 사람들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만, 이곳 역시 철거가 예정된 상태. 엉겁결에 진주는 예술가들과 함께 철거 반대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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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차에 탄 사람들이 행방불명되다?
글이 스포성을 띄고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 바랍니다.
죄 없는 사람들에게 어금니를 겨누러 든다면 이 렌고쿠의 붉은 염도가 네놈을 뼈까지 태울 것이야!!
- 염주 렌고쿠 쿄쥬로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1월 23일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주말 특별 시사회를 보고 왔었는데요, 사실 22일 예매를 놓쳐서 한정 특전은 못받았었지만 가장 애정하는 장르라 눈물을 흘리며 주말 취소표라도 잡고 가게되었습니다..
간략적인 애니; 귀멸의 칼날의 줄거리를 말씀드리자면 주인공인 탄지로가 오니가 된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오니를 잡는 비공식 단체인 귀살대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곳에서 만난 귀살대 계급 중 가장 높은 계급인 12명의 주와 탄지로 일행이 오니를 말살하려는 결말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 중 주 중 한명인 렌고쿠와의 이야기가 바로 이번 영화에서 전개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존재하며 앞으로도 애니,극장판으로도 꾸준히 나올 예정이니 여러분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관람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극장판을 보기전 간략하게 1기 정리본이라던지, 애니메이션 요약본을 보고가시면 이해하시기 쉽습니다:)
[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줄거리 요약 ]
400명의 사람들이 기차에 올라탔다가, 행방불명인 상태로 사라져버린 무한열차.
그 행방의 요인을 찾기위해 렌고쿠는 무한열차로 떠나게 되고 그 뒤를 탄지로 일행이 합류하게 된다.
역시나 기차에선 오니의 냄새가 남아있었고, 탄지로 일행과 렌고쿠는 오니를 잡으며 기차의 승객들을 보호한다.
결국 하현인 엔무를 발견하고, 죽이는데 성공해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순간, 상현인 '아카자'가 나타나 렌고쿠와 탄지로 일행과 마주치게 된다.
[ 명대사 모음집 ]
"주로써 부끄럽군,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구나!" - 염주 렌고쿠 쿄쥬로; 무한열차 중
" 오니가 되어라, 쿄쥬로 " - 십이귀월 상현3 아카자; 무한열차 중
" 늙는 것도, 죽는 것도 인간이라는 덧없는 생물의 아름다움이다. 늙기 때문에, 죽기 때문에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럽고 존귀한거다. " - 염주 렌고쿠 쿄쥬로
" 힘이라는건 비단 육체에만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이 소년은 약하지 않아. 모욕하지 마라. 몇번이라도 말해주지. 너와 나는 가치 기준이 다르다. 나는 그 어떤 이유로든 도깨비는 되지 않는다. " - 염주 렌고쿠 쿄쥬로; 무한열차 중
" 가슴을 펴고 나아가. 네 약함과 불합리함에 얼마나 짓눌려도 마음을 불태워라. 이를 악물고 앞을 봐라. 네가 멈춘다고 시간의 흐름은 멈춰주지 않고, 같이 울어주지도 않아. 여기서 내가 죽는 것은 신경 쓰지 말거라. 주라면, 누구여도 똑같이 했을 거다. 새싹을 지게할 수는 없다. 카마도 소년, 멧돼지 머리 소년, 노란 소년. 더욱, 더더욱 성장하거라. 그리고 다음에는 너희가 귀살대를 지탱하는 주가 되는거다. 나는 믿고 있으마. 너희를 믿고 있으마. " - 렌고쿠 쿄쥬로
" 어머님, 저야말로 당신같은 분께서 낳아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 - 염주 렌고쿠 쿄쥬로; 무한열차 중
영화가 끝나고 왠만해서는 안우는 내가 눈물을 흘렸던 정도로 작화와 음향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사실 만화책으로도 접할 수 있어서 다 알고있는 내용이지만 극장판으로 보니까 감동이 훨씬 더 많이 받았던 것 같다. ( 역시 갓포터블.. ) 무한열차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유곽, 대장장이마을, 최종국면 편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였는데 극장판으로 나오게되서 너무 행복했었다.
현재 극장판은 내려간 상태지만 다른 사이트에서도 접할 수 있고, 현재 애니판으로 나온 무한열차에는 새로운 장면이 추가되어서 나오기도 했으니 한번씩 시청하시길 추천한다! 추가로 애니판에는 극장판과 다르게 오프닝도 새로 나왔다!
현재 2021년 12월 5일에는 tv애니메이션 유곽편도 방영되니 꼭 시청하시길..!
#파노라마_에디터_김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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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쓴 이야기의 여정
올해 초에 출판 편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편집 실무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을 배우는 수업이었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책의 무엇을 구매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는데 다른 것보다도 관점이 선명해서 흥미로웠다. 저마다 쉽게 대답할 수는 있지만 정답을 가늠하기란 어려운 그런 문제였다. 읽기 위해 구매하는 것이니 책의 내용을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책을 다 읽고 그 책을 팔면 기억이 사라지는가? 책이 더 이상 우리의 소유가 아니더라도 우린 그 내용을 알고 있다. 여타의 상품이라면 그럴 수 없다. 라면 한 봉지, 러닝머신, 양키캔들이나 책가방까지도 수중에서 사라지면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은 팔더라도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진 않는다. 뭐 유별난 차이인가 싶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그 얇고 세밀한 틈이 책의 지향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저작물이다. 저작권이 발생하는 저작물. 사상이나 감정, 아이디어와 같은 메시지를 일정한 표현 형식에 담으면 저작권이 발생한다. 그러니 아이디어 자체만으로는 저작권이 발생하지 않는다. 일정한 형태로 그 생각을 담아내야 한다. 저작물은 작가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책은 저자의 생각과 인격을 담아낸 저작물이다 보니 이를 편집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조심스러운 과정이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라고 하는 것이 미묘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함께 책을 만들어간다는 마음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책을 쓰고 편집하는 과정은 훨씬 어려워진다. 문장을 바꿔나가는 일에 있어서는 특히나 그렇다. 전하고자 하는 말뜻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꼭 작가 혼자만의 힘으로 책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편집자의 시선에서 비로소 더 정확해질 수 있으니까. 책을 만든다는 건 그런 점에서 파트너십이 필요한 일이다.
기묘한 협업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야 많지만 루시와 해리스의 관계만 한 상황이 또 있을까. 루시는 가업으로 물려받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 냈던 신간은 혹독한 평가를 들었고 경영난에 회사를 팔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지경까지 몰려있다. 다시금 좋은 작가를 찾아 신간을 만들어 반등의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데 마침 발견한 작가가 해리스 쇼였다. 아버지 대에 이미 계약금을 지불했고, 계약에 따라 책을 한 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단 한 권만 내고 50년째 신간 소식이 없었지만 유일한 기회기에 희망을 걸어야 했다. 다만 계약 조건이 있었다. 작가가 제출한 초고를 편집하거나 수정할 수 없다. 대신 작가는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책을 홍보해야 한다.
편집은 불가, 북투어는 가능. 인물들의 이유가 부딪히면서 상황은 흥미롭게 흘러간다. 아내와 사별한 후로 세상에 어떤 미련도 남지 않은 냉소적인 작가 해리스와의 북투어 과정은 험난했다.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던 이유가 사라졌으니 그의 입장에선 거리낄 것이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압류되어 빼앗길 위치에 놓인 집과 50년 전의 계약이었다. 노작가의 귀환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고 세상은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다. 해리스는 그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을 뿐인 루시의 실력을 의심하고, 루시는 해리스의 상태를 못 미더워한다. 여하튼 신간은 나왔으니 어떻게든 책은 팔려야 한다.
그동안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는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일을 하면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유독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만드는 건 '이건 일이니까 그냥 받아들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공동의 목표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의견을 아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으니까. 두 사람의 전사가 밝혀지는 과정은 그래서인지 여러모로 감동적이었다. 서로를 신뢰하는 결과를 얻기까지의 여정이 성실하게 묘사되니까. 신뢰라는 것이 그렇다. 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눈에 번해야 믿는다. 보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 신뢰에는 샛길이 없다. 빠르게 가로지를 방법도 없다. 관계에는 정독만이 존재한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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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태닝시 음료수를 갖고 가지 말 것, 통나무를 가득 적재한 트럭 뒤로는 차를 몰지 말 것 한 동안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금기가 되었던 행동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만약 어떠한 장면들이 파편처럼 머리를 스친다면 그는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살인마도 듣도 보도 못한 크리쳐도 아닌 주인공을 뒤쫓는 것은 바로 '죽음' 그 자체라는 주 내용을 필두로 시리즈화 되었던 영화가 14년만에 신작을 공개하게 되었다. 시리즈에서는 6편을 차지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 라인>은 오랜 공백을 거쳐 다시 리부트 된만큼 <스크림>에 이어 전세계 호래 팬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현재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 중에 있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영화이지만 관람에 앞서 시리즈를 굳이 챙겨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또 다른 장점이 되어준다. 다만 이 한 가지는 기억 하는 것이 좋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뒤를 쫓아갈 것이다.
유명 공포영화에는 대체로 법칙이 존재한다. 뒤를 돌아보지 말 것, 방심하지 말 것, 낯선 사람에게 오는 전화는 받지 말 것, 친구를 의심할 것 등 시리즈를 거치며 완성된 공식들은 본편을 기준으로 세계관을 점차 확장시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도 단연코 그 중 하나인데, 이 중 가장 명심해야 되는 것은 '예정된 죽음은 피할 수 없음. 만약 피했을 경우 죽음은 어떻게든 당신을 쫓아간다.' 이다. 신박하고도 끔찍한 죽음 쇼로도 잘알려진 해당 시리즈는 갑작스럽게 보게 된 예지로 대형 사고를 면한 주인공과 그 친구들이 죽음을 어떻게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주된 내용으로 삼는다. 1편에서는 여객기 폭발 사건에서 벗어난 주인공 일행을 다루며 2편에서는 대규모 차량 추돌 사고를, 3편에서는 롤러코스터 운행 사고를 다루고 4편과 5편에서는 각각 레이싱장 사고와 다리 붕괴 사고를 보인다. 대규모 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이들은 1편에서 다뤄진 알렉스의 사고를 떠올리며 저 나름대로 죽음을 피해보고자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은 죽음이 정한 법칙을 피하지 못한 채 각자 끔찍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는다. 슬래셔 물 특유의 개연성보다는 그런 개별의 죽음에서 오는 창의성과 잔인함을 엔터테인먼트적으로 그리는 것이 해당 시리즈의 특징이나 이번 공개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 라인>에서는 전체 시리즈를 통과할만한 중요한 메세지를 던지기에 이른다.
그 메세지를 살펴보기에 앞서 시초가 되어준 <데스티네이션>에 경우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 외로도 죽음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운 좋게 피했다 한들 죽음은 그 순서를 착실히 지켜나가며 그들을 도로 저승으로 인도하는데 이런 <데스티네이션>의 시리즈보단 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데스티네이션2>는 그 순서를 어겼을 시 건너 뛴 자는 일시적으로 도망칠 수 있으며 세상과 단절 될 경우 수명을 일시적으로 늘릴 수 있고, 한 번 심장이 멈춘 경우는 죽음으로 카운트 되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등 죽음에서 극단적으로 도망친 자들이 등장하게 되며 절대적이진 않으나 파훼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편 중 하나로 등장하게 된다. <데스티네이션2>는 본편에서 죽음을 피하는 것에 성공했던 클레어가 재등장하며 본편과 좀 더 접점을 갖고 세계관을 확장시키려 한 편으로도 역시 알려져있다. 하지만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즉, 3편부터는 프렌차이즈화의 포문을 열며 직접적인 본편의 언급보다는 색다른 방식으로 예견을 하는 등 같은 법칙 아래 가장 인상 깊은 죽음들을 보여줬던 편으로 남게 된다. 사실 죽음과 이를 피해 생존하고자 하는 이들 간의 대결처럼 그려지는 것은 물론 다양한 죽음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이다 보니 다소 메세지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슬래셔 물이 나타내고자 하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에 그 어떤 작품보다 충실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또한 대형 사고로 그 포문을 여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나 이를 방지하거나 예방하고자 하는 요소가 아닌 초자연적인 묘사를 통해 죽음이 확정된 이들을 무조건 죽이는 식의 장면이 다수 그려지기에 의미보다는 장르성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이기도 하다. 즉 억지로 죽여주는 묘사가 등장함에 따라 교차 편집이나 클로즈업을 통해 보여주는 위험 요소보다는 더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등 억지스러운 부분이 관람 포인트가 됨으로 개연성을 따지는 것이 상당히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 라인> 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대형 사고에서부터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은 한 여성의 가족을 중심으로 그 세계관을 확장 시킨다. 늘 그랬듯 누군가에게 찾아온 예지 그렇게 살아남은 다수의 사람들. 하지만 이전 시리즈가 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구함으로써 그들을 기준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이번 영화에서의 생존자 '아이리스'는 해당 사고의 피해자가 될 뻔 한 모든 사람들을 구하게 된다. 즉 죽음이 찾아가야 할 가정의 수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이것에서만 어긋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리즈가 늘 보여줬듯 왜 몇 일만에 모든 사람들이 정리 되지 않았을까. 즉 그 사이 아이를 낳거나 새로운 가족을 형성한 이들이 존재함으로 살아남은 다수의 사람들 그리고 그 사고로 인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들에게까지 그 죽음이 바삐 찾아갔던 탓에 '아이리스'는 남편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두 남매를 낳기에 이른다.
이 부분부터 리부트의 강점이 드러난다. 친구나 단순 지인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닌 '가족'이라는 관계의 형태에게 찾아오는 죽음은 그 고리를 끊고자 하는 이들의 적극적인 당위성을 만들어주고 긴장감을 깨알 같이 해소시켜줄 개그 요소도 등장시키는데 적합한 요소로 사용된다. 특히 긴장감에 지친 관객들의 웃음 요소가 되어준 배다른 자식 설정은 특정 인물이 죽음의 고리에는 포함되지 않는 인물이기에 안심을 유도했다가 다름 아닌 '죽음을 엿먹이려 하면 좋지 못한 결과가 따른다.' 라는 히든 법치을 해금함으로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해당 시리즈 중 가장 획기적인 죽음으로도 평가받고 있는 '에릭'의 죽음은 한 번 분위기를 조성했던 시퀀스로 인해 임팩트를 주기도 했다. 또한 해당 편은 메인으로 삼는 참사는 물론 마지막 남매를 덮치는 죽음의 요소로 다름 아닌 작은 동전을 사용하는데, 이는 영화 내에서 작은 요소라도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일종의 나비효과를 암시함과 동시에 이토록 작은 동전이라도 누군가의 끔찍한 최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전편들과의 연결점도 만들어내며 수미상관을 장식한다. 무엇보다도 이 연결점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본편의 장의사 '윌리엄 블러드워스'로 꾸준히 시리즈에 등장하며 마스코트 역할을 했던 이가 5편에 이어 그 정체의 비밀을 벗는 중요한 지점이 되기도 한다. 늘상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죽음의 법칙에 빠삭했던 것은 물론 늘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겼던 그가 다름 아닌 오래 전 '아이리스'가 구해주었던 꼬마였으며 그녀와의 교류를 통해 죽음의 패턴을 연구했던 사람임이 해당 편에서 밝혀지게 된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배우 토니 토드의 유작이기도 한 해당 영화를 통해 윌리엄은 25년동안 진행됐던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남긴채 그렇게 퇴장하게 된다. 너의 삶을 살아라. 죽음이 언젠가 당신을 쫓아올지라도.
죽음은 망토를 비롯한 그 어떤 외피도 쓰지 않지만 확실하게 해당 시리즈에서 슬래셔 물 속 살인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주인공을 끊임없이 추격하며 끝내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한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가 다른 장르 영화들에 비해 그 누구보다 강렬한 기억을 선사하는 것은 초반에 묘사되는 사고뿐만이 아닐 것이다. 실체가 없는 죽음이 너무나도 공평하게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순서나 죽음을 속이는 등의 소재적 법칙을 제외하면 모두가 한 번쯤은 영화를 보며 두려워했을 우리의 방어 기제가 만들어낸 상상의 끔찍한 죽음들이다. 영화는 이러한 죽음이 극단적으로 가까운 이들을 조명하며 불안에 떨고 도망치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이들을 보인다. 덩달아 그들의 모습에 불안해질 필요 없다고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말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삶을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일 뿐이라고 말하며 윌리엄은 아주 멋지게 그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난다. 초반 '스테파니'가 살아남은 '아이리스'와 대면했을 때 느꼈던 것은 단순 어색함 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죽음을 오랫동안 피하기 위해 도망치고 경계하는 삶은 과연 아이리스, 그녀의 삶이었을까? 혹시 죽음의 삶은 아니었을까. 아이리스는 다름 아닌 처음 보는 손녀에게 이것이 진짜임을 알리기 위해 도망을 포기한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스테파니를 위했지만 죽음의 삶을 물려준 셈이나 다름 없다. 피할 수 없는 것에 저항하는 인물들을 보며 우리가 진짜 집까지 가져가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삶이다. 죽음이 주는 불안이 당신을 지배하지 않도록 그저 삶을 살아가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것이 곧 죽음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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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SYNOPSIS.
‘예분’은 손녀 ‘수정’을 사고로 잃은 뒤 삶이 1년 전 그날에 멈춰버렸다.
손녀의 유해를 찾기 위해 매일 같이 강가에 나가는 ‘예분’ 앞에 손녀의 절친 ‘지윤’이 나타난다.
두 사람에겐 들어야 할 진실이 있고, 삼켜야 할 비밀이 있는데…
진실과 비밀 사이 깊은 슬픔이 일렁인다.
#각자의 물결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이 스쳐간 자리는 그 이전과 영영 같을 수 없다. 설령 떠나간 이가 나에게 아주 작은 조각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아주 작은 구멍이 난 유리창이어도, 깨진 곳 없는 유리창과는 같을 수 없다. 그 작은 구멍 사이로 바람이 숭숭 불어와, 누군가의 빈 자리를 절감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아주 작은 순간일지언정.
하물며 이 이야기 속 예분과 지윤에게는. 손녀를 잃은 할머니 예분, 가장 절친한 친구를 잃은 중학생 지윤. 이들은 다른 부위에 난 같은 상처를 안고, 매일 다른 물로 뛰어든다. 예분은 손녀를 삼킨 강에 금속 탐지기를 들고 나가 손녀의 유품으로 추정되는 것을 매일 찾고, 지윤은 친구와 함께 있던 수영장에 매일 들어간다. 하나의 상실이 남긴 각자의 상처, 각자의 물결 속에서 이들은 매일 허우적거리고 있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이들이 매일 뛰어드는 물 속의 축축함이 관객석까지 넘실넘실 전해진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문장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중간중간 교차하는 과거의 장면들을 보면서, 예분과 지윤의 시간을 순서대로 톺아볼수록 더욱 축축해진다. 그들의 과거와 그들의 현재, 그 사이 이들에게 있었을 무수한 감정들이 겹겹이 전해져서다.
#중첩되는 소리 속에서
이렇게 감정을 겹겹이 전달하는 데에는 소리가 큰 몫을 한다. 수정이 사고를 겪은 당일부터, 슬픔의 소리는 다른 소리들과 중첩되고 혼재되기 시작한다. 거센 빗소리, 경찰차 사이렌 소리, 수정을 잃은 엄마의 울음 소리...들이 어지러이 섞여들면서. 아주 거대한 슬픔의 소리는 다른 소리들을 쉽게 삼켜 슬픔으로 중첩시키고, 우리를 먹먹하게 한다. 예분의 금속 탐지기 소리처럼, 때로는 진실을 찾으려 날카롭게 세운 소리가 반대로 귀를 막기도 한다.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할 만큼 했다는 말을 격렬하게 거부하며 끊임없이 진실을 찾아 헤매는 예분처럼.
사실 예분에게, 지윤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진실을 드러내고 가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깊고 진득한 자책을 덜어낼 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이를 잃어버린 빈 자리를 돌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인간에게는 꼭 필요하니까. 그토록 숱하게 죽은 몸을 어루만지고, 누군가의 떠난 자리를 정리하며 살았던 예분이지만 정작 손녀의 죽음과 거기 어린 자기 감정들을 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토록 함께 뛰어들던 물 속, 그 익숙한 감각 안에서 친구를 잃은, 이어지는 상실 속에서 도저히 여유가 없는 지윤 또한 마찬가지다.
#물결도 소리도 없이 고요하게
이러한 두 사람이 부딪쳐 파장이 이는 자리마다 삶과 죽음이 물비늘처럼 몸을 뒤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치열하게 마주한 것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찾고자 혹은 감추고자 한 것이 정말 진실이었을까? 진짜 필요했던 것이 과연 진실이었을까? 가까워지고 다가서는 두 사람의 장면들을 통해, 두 사람의 거리 사이에서, 영화는 그 답을 조심스럽게 피워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죽음 이후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뭐부터 버려야 돼요?" 묻는 지윤에게 "남길 것부터 정리해야지." 말하는 예분의 차분한 어투다. 그렇게 죽음의 대처법을 가르치고서는 정작 지윤을 데려가는 곳이 병원과 식당으로, 죽음에 앞서 삶부터 가르친다는 점 또한.
죽음과 삶은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맞붙어 있다. 삶은 애초에 그렇게, 무수한 이들의 삶과 죽음이 조각조각 물비늘처럼 맞붙어 강을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하나의 물비늘, 그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지도. 그러나 설령 이 하나하나가 아무 것도 아닌 순간이라 해도, 강은 그런 식의 물비늘이 모여 반짝반짝 흘러 간다.
그렇게 끊임없이 몸을 뒤채는 만남과 헤어짐, 이해와 오해, 그 틈바구니 삶이라는 곳에 우리 그저 소리 없이 나란히 눕는다면. 다른 베개, 다른 이불, 다른 부위의 같은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그대로, 그저 같은 요 위에 나란히 눕는다면. 그때 비로소 이 마음에서 축축하고 눅눅한 습기를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사실, 모든 축축한 것을 마르게 만드는 햇볕이니까.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 개봉은 12월 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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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묘 - 굿판을 깔아준 베테랑 선배들과 칼춤을 추는 젊은 천재 후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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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내에 이도현 배우가 맡은 배역(봉길)의 이름을 '봉림'이라고 잘못 표기해둔 부분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조금더 유의하여 영상 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한다. “전부 잘 알 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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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모든 이들을 위한 가장 특별한 이야기?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 [위시] 1월,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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