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2-03-02 09:39:02
<나이트 레이더스> 메시지만 강렬한 디스토피아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아네트>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2043년,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에는 새로운 제국을 세우려는 독재국가 에머슨이 들어선다. 거대한 새를 연상시키는 드론에 의해 감시받는 세상을 만든 가운데, 에머슨은 시민권이 없는 미성년자 모두를 군인으로 양성하기 위해 아카데미로 끌고 간다. 그러나 에머슨의 통치를 따르지 않는 '니스카(엘레 마이아 테일페데스)'는 딸 '와시즈(브룩클린 르텍시에 하트)'와 함께 숲 속에서 유랑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와시즈가 큰 부상을 당하고, 약을 구하러 마을에 온 니스카는 도리어 병사들에게 와시즈를 빼앗기고 만다. 딸과 헤어진 후 슬픔에 잠긴 채 살아가던 니스카. 그러 그녀 앞에 마찬가지로 에머슨의 지배에 저항하는 토착민 크리 족 사람들이 나타나고, 니스카는 그들과 함께 딸을 되찾기 위한 반격에 나선다.
제7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제46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유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바 있는 <나이트 레이더스>는 다니스 고렛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고렛 감독은 <나이트 레이더스>의 출발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토착민의 삶은 나날이 극심해지는 혐오와 차별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도 그간 제삼자에게 토착민의 이야기는 항상 신기하고, 민속적이고, 옛날이야기에 불과했다. 이에 현실에서 목소리를 내기 두려운 사람마저 목소리를 내게 하는 힘이 있는 SF 및 판타지와 같은 장르에 보편적인 역사이기도 한 토착민의 비극을 녹여내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이트 레이더스>는 세계 각지의 토착민, 원주민들이 겪은 구체적인 사건들을 한 데 모아 디스토피아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우선 다니스 고렛 감독 본인이 캐나다 사람인만큼 <나이트 레이더스>는 캐나다 역사 속 원주민들의 비극적인 경험을 스크린으로 불러온다. 작중 에머슨은 전쟁에서 패배한 이들에게 두 가지 차별정책을 시행하며, 이는 영화의 주요한 갈등을 유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하나는 거대한 벽으로 대표되는 분리 정책이다. 에머슨 시민이 사는 곳과 비시민권자가 사는 곳을 철저히 나누고, 비시민권자에게는 드론을 통해 식량을 배급하면서 철저히 통제하려 든다. 이러한 에머슨의 통치 정책은 캐나다 정부가 원주민들에게 시행한 탄압과 강압적 동화 정책과 똑 닮아 있다. 과거 영국령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들의 땅을 강탈하고 그들을 보호 구역에 집어넣었다. 또 보호구역 내에 부실한 인프라를 설치하거나, 보호 구역에서 나오면 연금을 받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본래 유목민이던 이들에게 낯설고 고달픈 생활을 강제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의존하도록 만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에머슨 아카데미의 존재다. 에머슨 아카데미는 과거 캐나다 정부가 설립한 '레지덴셜 스쿨(Residential School)'의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레지덴셜 스쿨은 반란과 분쟁의 빌미 근절하기 위해 같은 국가관과 동질성을 공유하도록 영국계 캐나다인의 가치관을 원주민들에게 주입하려는 목적으로 세원진 학교다. 이 학교들에서 원주민들은 영어식 이름으로 강제 개명되고, 영어만을 사용할 수 있었으머, 원주민 전통의상 착용을 금지당하고 백인들이 입는 양복, 양장 착용이 강제되었다. 이곳에서 어린 소년소녀들은 교사에게 자주 강간당하기도 했다. 결국 부모 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사육되다시피 한 아이들은 가족애를 잃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원주민들의 가정과 사회를 더욱 빠르게 파멸로 이끌었다.
영화는 이처럼 레지덴셜 스쿨에서 자행된 악습들을 아카데미라는 가상의 공간 안에서 묘사한다. 에머슨은 어린아이들에게 선진 교육을 통해 삶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하며 정체성을 약화시킨 뒤 철저히 국가에 충성하도록 강제한다. 곧 실제 역사적 사건이 와시즈가 아카데미 내에서 엘리자베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며 어머니 니스카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 아이들이 밤이면 기숙사에서 한 명씩 불려 나가 성폭행당하는 것,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젊은 아이들이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채 어머니에게 총구를 겨누는 장면으로 바뀌어 재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딸을 구하기 위해 아카데미에 침투하는 니스카의 모습에는 단순한 모성애를 넘어서는 의미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나이트 레이더스>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 족의 역사도 디스토피아 세계에 녹여내고 있다. 이는 본 작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토르: 라그나로크>와 <조조 래빗>의 감독을 맡은 바 있는 타이카 와이티티에 게 마오리족 피가 흐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중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드론의 존재가 단적인 예시다. 드론은 에머슨의 통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신무기로, 미등록 미성년자를 수색 및 추적하고, 전투용 내지는 식량 배급용으로도 활용된다. 이때 드론이 배급한 식량에 바이러스가 숨어 있었던 것은 유럽인들에 의해 새로운 전염병이 퍼져 나갔던 사례들과 오버랩된다.
이에 더해 드론의 존재는 유럽인의 등장과 동시에 당시 기준 최신 무기였던 머스킷 총이 뉴질랜드에 전래되고, 이 무기를 지닌 부족이 그렇지 못한 부족을 착취하고 노예로 만든 사건인 '머스킷 전쟁'이 마오리족 역사에 기록된 것을 연상시킨다.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머스킷 전열 보병처럼 길게 늘어서서 일제히 총을 겨누어 화망을 형성한 채 접근해오는 에머슨 군인들과 빈약한 무장으로 맞서는 크리 족의 모습도 영국군과 마오리 족 사이에 펼쳐진 '마오리 전쟁'의 변형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영화 속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드론과 와시즈가 지닌 독특한 능력이 더해져 전투의 향배를 뒤바꾸게 되는 전개는 결국 19세기 당대 신무기인 머스킷에 의해 피로 얼룩졌던 역사를 영화적으로 치유하는 장면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목은 나다와 뉴질랜드 두 사례에 대해 여러 토착민들의 역사가 공유하는 보편성을 맛볼 수 있는 지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페인군이 침입한 멕시코나 남아메리카의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신무기나 새로운 전염병 때문에 유럽 이주민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사례는 지구 이곳저곳에 모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이한 지역의 공통된 역사적 사건들을 한 데 모은 <나이트 레이더스>의 조각보 같은 매력이 온전히 스크린에서 전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르 영화로서의 완성도에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사실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루는 장르 영화인 관계로 <나이트 레이더스>에는 다른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유사함의 정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고, 익숙한 설정과 전개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그러다 보니 시도 자체는 인상적이었던 영화의 메시지와 감흥도 모두 깎여버리고 만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대표작인 <아바타>와의 비교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아바타>의 경우에도 충격적이었던 시각 효과와 달리, 스토리적인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가 판도라 행성의 원주민인 나비족의 구세주가 되어 인간의 침입을 막아낸다는 플롯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평면적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바타>는 나비족의 역사와 사회, 내외적 갈등, 그리고 그들의 신과 구세주인 에이와와 토루크 막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주었고, 그 결과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는 강력한 몰입감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반면에 <나이트 레이더스>의 메시지와 전개 양측면에서 모두 중심이 되어야 할 크리 족의 이야기는 디테일이 부족하다. 그저 몇 마디의 대사와 설정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토착민 출신이지만 토착민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살아가던 니스카와 와시즈 모녀의 이야기와 만나는 순간에도 별다른 갈등 없이 흡수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한 곳에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작중 크리 족의 서사는 토착민 공동체로서의 특색이 살아나지 않는다. 단지 독재국가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세계에 반대하는 저항군이라는 익숙한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이는 <나이트 레이더스>가 결코 인상적인 장르영화는 아닌 이유다.
유사성과 진부함을 넘어서지는 못한 것 외의 한계도 있다. 스릴러 영화인데도 긴장감을 거의 불어넣지 못하는 식이다. 실제로 영화는 제목인 'Night Raiders'가 '밤의 침입자'라는 뜻인데도 불구하고 밤에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에머슨 아카메디에 갇힌 와시즈를 구출하기 위한 니스카와 크리 족의 습격만 보더라도 작전의 중간 과정부터 아카데미에서 탈출하려는 과정에 이르는 세부 사항들이 지나치게 많이 생략되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해당 시퀀스는 클라이맥스로 고조되는 중간 다리로써 그 부조함을 숨기지 못한다. 그나마 숲에서 숨어 지내던 니스카 모녀와 그들을 습격한 드론 간의 짧은 전투가 세계관을 소개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뿐이다. 이처럼 <나이트 레이더스>는 뜻깊고 인상적인 아이디어의 잠재력을 실현하기에는 부족했던, 투박한 장르 영화로 남는 데 그치고 만다.
P(Poor, 형편없음)
어설픈 짜임새 때문에 빛이 바랜 역사적 비극의 영화적 위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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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껍데기의 결말
도리언 그레이의 첫 묘사는 손때가 묻지 않은 연약함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는 그저 순진무구한 한 청년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던 한 청년이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로 인해 어떻게 악의 화신이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위 분석은 도리언 그레이는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가 도리언 그레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어린아이가 자아를 찾아나가는 관점과 관련 있다는 가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One and only 사랑은 없다. 당신의 착각이었을 뿐
그는 시빌 베인 자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시빌 베인이 연기한 캐릭터들, 그녀의 연기력, 즉, 그녀의 재능을 사랑한 것이었다. 그녀의 출중한 연기력으로 그녀가 표현해낸 줄리엣, 이모겐을 사랑한 것이다. 그녀는 도리언의 완벽한 외모에서 비롯된 그의 아름다움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갈구했다면, 그는 그녀의 연기만을 사랑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서로의 내면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겉껍데기를 사랑했다.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고 난 뒤, 배실 홀 워드의 초상화가 일그러지는 모습을 확인한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아름다운 젊음에 대한 찬미가 담긴 초상화에 대해서 진절머리를 느끼게 된다. 시빌 베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인해 완전무결하고,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완벽히 그려낸 초상화가 흉측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배실 홀 워드의 초상화는 그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도리언의 초상화는 그의 인생이 담겼고, 그의 영혼이 담겨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리언은 자신의 완전무결한 모습에 취해서 초상화에서 보이는 자신의 늙고, 흉측한 모습은 애초에 보고 싶어 하지도 않기 때문에 시빌 베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더 이상 내면이 아름답지 않은 자신의 초상화를 다락방에 가두어 버리는 선택을 하고야 만다.
이처럼 배실의 초상화는 도리언의 인생을 기록한 것이기도 하면서 도리언의 잘생긴 외모라는 가면 아래 남들에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던 악한 모습도 포함하고 있는 어쩌면 도리안의 진실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도리언은 배실에게 페로몬을 흩뿌려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래서 도리언에게 있어서 배실은 이성보다는 선에 기반한 감성을 더 자극하는 사람으로, 도리언의 나르시시즘을 발현시키는 것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는 도리언이 헨리와의 쾌락적이고, 비관주의적인 토론을 하는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들에 감탄하고, 그의 젊음을 찬미하기에만 바쁘다. 이런 배실의 탐닉적인 모습은 자신이 그린 초상화가 일그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비로소 무너지게 된다.
또다른 등장인물, 헨리 워튼 경은 도리언 그레이에게 “사상적인 분신”의 역할을 한 사람으로서 배신을 도리언에게 아름다움을 고취시킨 사람이라면, 헨리 워튼 경은 도리언의 악한 욕망에 눈 뜨도록 이끌어준 인물이다. 바질은 선에 입각한 인물이었다면 헨리 워튼 경은 사탄과도 같은 존재이다. 도리언에게 쾌락주의적 사상을 본의 아니게 주입시키는 인물로서 정신적으로 도리언 그레이를 망가뜨린 인물이다. 그의 상징적 이미지는 실낙원에서 선량한 아담과 이브를 고통의 세계로 이끈 뱀(serpent)의 이미지와 상통한다.
그리고 그는 영혼과 육체의 상관관계는 인간의 충동적인 결정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하는 부분으로 앞으로 도리언 그레이가 어떠한 충동적인 결정으로 크나큰 비극을 맞게 되는지에 대한 암시를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혼은 정말 몸 안에 존재하냐고 질문하는 부분은 구절은 이후 도리언 그레이가 영원한 젊음을 위해서 영혼을 파는 부분을 연상시키면서 더 이상 도리언 몸에 있지 않은 도리언 진짜 영혼에 대해 떠올리게 한다. 도리언의 추악한 본능을 담은 매개체는 도리언의 몸이 아니라 도리언을 그려낸 초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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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 시리즈 순위
분노의 질주 시리즈 순위
#10 : 외전 홉스 & 쇼 (Fast & Furious Presents: Hobbs & Shaw, 2019)
<데드풀2>의 데이빗 레이치는 드웨인 존슨과 제이슨 스타뎀의 출연작에 대한 메타유머를 활용하고, <007 시리즈>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한다. 런던,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모아로 공간적 배경을 옮겨 다니고, 007의 국제 범죄조직'스펙터'에서 영감을 받은 '에테온'을 등장시킨다. 또 런던 리든홀 활강 장면은 <미션 임파서블>의 부르즈 할리파 장면을 오마주했다.
<홉스 & 쇼>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라기보다는 '버디 액션 코미디'에 가깝다. 또 이야기가 허술한 것은 이해한다 손치더라도 액션조차 히어로영화스럽다. 또 '해티 쇼(바네사 커비)'는 등장할 때마다 빛나지만, 블랙 슈퍼맨 '브릭스턴(이드리스 엘바)'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진다.
#9: 2편 패스트 & 퓨리어스 2 (2 Fast 2 Furious, 2003)
전편의 답습, 마이애미로 이사 간 브라이언은 새로운 파트너 로만 피어스(타이리스 깁슨)와 콤비를 이루지만, 빈 디젤의 공백을 메우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테즈(루다크리스)가 코믹하게 등장한다.
1시간 반 남짓한 2편은 드라마를 듬뿍 덜어낸 대신 존 싱글턴은 '스트리트 레이싱'에만 집중한다. 문제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 속도감은 있지만 우스꽝스럽다. 아무리 저예산 B급 액션 영화라고 해도 동선조차 조잡하다. 이상 2편은 1편과의 연계성도 거의 없고, 엉성한 캐릭터와 부실한 볼거리, 뼈대만 남은 앙상한 스토리라인이 아킬레스건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로만과 테즈 콤비를 득템했다.
#8 : 3편 도쿄 드리프트 (Fast And The Furious: Tokyo Drift, 2006)
그야말로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인 ‘스트리트 레이싱’에만 올인한 3편이다. 특히 ‘드리프트’의 속도감과 긴박감을 살리기 위해 현역 드라이버 중심으로 구성된 스턴트 스태프들이 온몸을 불사른다. 이쯤 되면 <트리플 X>와 <분노의 질주>를 제작한 닐 오비츠의 성향이 나온다. 플롯, 캐릭터, 드라마, 리듬은 약하지만, 속도감과 볼거리만큼은 끝내준다. 설계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설득력을 갖춘 캐릭터가 없다. 이것이 패착이다.
새로 합류한 저스틴 린 감독은 시리즈의 전통인 '길거리 경주'와 '자동차 문화', '범죄' 등 향후 프랜차이즈를 구성할 방향성을 대폭 수정한다. 바로 '다민족 캐스트'를 강조하고, '해외 로케이션'을 적극 반영할 준비를 이미 3편에서 끝마쳤다. 향후 블록버스터로 나아갈 기초공사를 마친 셈이다.
#7 : 8편 더 익스트림 (The Fate Of The Furious, 2017)
프랜차이즈를 책임지는 작가 크리스 모건과 범죄영화에 특화된 F. 게리 그레이는 사망한 폴 워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분노의 질주>만의 포뮬러(공식)을 깨버린다. 리더 돔 토레토(빈 디젤)이 자신의 패밀리를 배신하는 영리한 조치를 취한다. 그 과정에서 한을 살해한 데커드 쇼(제이슨 스테이섬)에게 별다른 속죄 없이 면죄부를 부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특유의 가족드라마가 깨졌지만, 홉스(드웨인 존슨)와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워커의 부재로 말미암아 실종될 버디 코미디를 되살렸지만. 그 대가가 너무 컸다. 캐릭터쇼와 볼거리가 다양하고 액션 규모를 키운 반면에 메인 빌런인 샤를리즈 테론의 존재감이 너무 약하다.
5편부터 그 조짐이 보였지만, 액션 스타일이 007시리즈를 자꾸만 연상시킨다. 레티(미셸 로드리게즈 분)가 차량을 비스듬히 기울여 운전하는 장면은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를, 설원의 카 액션은 <007 다이 어나더 데이>를, 최종 병기로 잠수함을 활용한 클라이맥스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007 언리미티드>을 떠올리게 한다.
#6 :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F9: The Fast Saga, 2021)
유니버설은 ‘더 패스트 사가(The Fast Saga)’로 명명된 지난 시리즈를 정리하고 후속작(F10, F11)에 쓰일 복선을 미리 깔아놓는다. 그래서 9편은 드라마 비중이 상당하다. 또, 5편에서 '드웨인 존슨'을, 6편에서 '제이슨 스타뎀' 같은 유명 배우를 추가해서 얻은 효과를 존 시나를 통해 노리고 있다. 그래서 토레토의 가정사부터 3편<도쿄 드리프트>의 등장인물 백스토리까지 캐릭터 개발에 공을 들인다. 동창회처럼 시리즈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총집결한다.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인 터무니없는 액션과 캐릭터 쇼로 끊임없이 팬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존 시나를 추가하는 바람에 페이스가 느려졌다. 가족 드라마를 그리기 위해 긴박감과 박진감을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야기 얼개가 탄탄해진 것도 아니다. 이 시리즈는 불가능한 것이 없도록 스스로 세계관을 바꿔왔다. 이제 이 전략이 한계 지점에 다다른 것 같아 불안하다.
#5 : 4편 더 오리지널 (Fast & Furious, 2009)
4편은 사실상 리부트에 가까운 '기능적인 영화'다. 저스틴 린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크리스 모건은 폴 워커와 빈 디젤을 다시 등장시키며 1편을 리뉴얼한다. 초기 영화(1·2·3)의 스트리트 레이싱 드라마와 후기 영화(5·6·7)의 액션 블록버스터 사이 어딘가에 끼어있다. 이런 불균질한 영화의 톤이 몰입을 방해한다. 그리고 차량 투척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액션이 별 특색이 없다.
1편의 전개와 구도, 캐릭터를 동어반복한지라 작품 자체의 개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레티(미셀 로드니게스)에 대한 부주의한 대접은 <분노의 질주> 특유의 가족 드라마를 방해한다.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 이후부터 저스틴 린은 캐릭터를 조심스럽게 다룬다.
유일한 장점은 ‘한(성강)’을 도미닉의 친구로 등장시켜 외전에 가깝던 3편을 시리즈의 세계관에 편입시켰다는 정도다.
#4 : 1편 분노의 질주 (The Fast And The Furious, 2001)
이 저예산 범죄영화가 이후에 21세기 초 가장 중요한 영화 프랜차이즈 중 하나가 될 것을 알았을까?1편의 줄거리와 캐릭터, 설정은 <폭풍 속으로 (1991)>을 참조했다.
1편의 진정한 가치는 ‘길거리 레이싱’이라는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세운 점이다. 먼 훗날, 탱크와 핵잠수함, 헬기, 우주선, 슈퍼 카들을 고려하면 스케일은 소박하고 싱겁다. 하지만, 속도감 있는 아날로그 액션만큼은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순수하고, 날 것 그대로의 쾌감이 살아있다.
#3 : 6편 더 맥시멈 (Fast And Furious 6, 2013)
레티 오티즈(미셸 로드리게스)를 복귀시키기 위해 기억상실증으로 엉성하게 처리한 것처럼 이 영화는 말이 안 되는 것투성이다. 이제 질주는 뒷전이고, 고급차를 마구마구 ‘파괴’하는 분노에 집중한다. 게다가 이번 빌런도 '도플갱어'다. '팀 돔과 팀 오웬의 단체 대결'이 줄거리 전부이고, 슈퍼 카(심지어 탱크, 수송기까지도)들을 즐비하게 등장시키고 그것을 아낌없이 때려 부순다.
지젤(갯 가돗), 엘레나 네베즈(엘사 파타키)이 퇴장하거나 어정쩡해졌지만, 이 재밌는 난장판을 통해 도미닉 일당은 동료애를 넘어서서 '가족애'로 승화되고, 쿠키 영상으로 3편(도쿄 드리프트)와의 연결 고리도 확보한다. 007시리즈를 본받아 프랜차이즈는 '저예산 레이싱 영화'에서 '첩보 블록버스터'로 체급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2 : 7편 더 세븐 (Furious 7, 2015)
7편은 촬영 중 사망한 폴 워커에 대한 진심 어린 송사와 더 많은 캐릭터와 물량의 인해전술로 밀어부친다. 아제르바이잔 오프닝부터 관객의 시선을 뗄 수 없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액션 시퀀스를 쏟아 붓는다. 제이슨 스타뎀, 토니 쟈, 커트 러셀, 론다 라우지 같은 액션배우 올스타를 동원하고, 관객들이 지루할만하면 중력의 법칙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무지막지한 물량공세가 시청각을 장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질주 7>은 뒷골목 레이싱에서 벗어나 판을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슈퍼 카들의 무한질주'라는 초심을 놓지 않는다.
특수한 프로그램 '신의 눈'을 가진 테러리스트 '제케이드(자이먼 혼수)'를 찾기 위해 '데커드 쇼(제이슨 스타뎀)'을 만났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쇼와의 대결로 치닫는다. 7편부터 시리즈의 스토리가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개별 장면의 뛰어난 완성도에 비해 전체적인 맥락과 개연성은 희생되었지만, 도미닉 패밀리의 캐릭터 드라마만큼은 확실히 챙겼다는 점에서 제임스 완으로써도 쉽지 않은 임무를 훌륭히 처리했다.
#1 : 5편 언리미티드 (Fast Five, 2011)
5편은 프랜차이즈의 '포뮬라(공식)'을 확립된 작품이다. 첫째, <분노의 질주>는 뒷골목 레이싱에서 벗어나 판을 크게 키운다. 둘째, 홉스(드웨인 존슨)가 합류하면서 도미닉 일당의 윤곽이 확립된다. 셋째, 적과 맞써기 위해 '가족' 같은 일당을 지키기 위해 빠르게 질주한다가 줄거리의 전부다.
넷째, 레이스 자체는 볼거리중 하나로 축소되고, 대신에 여타 장르(5편은 하이스트 장르, 6편은 첩보물, 외전은 버디물, 9편은 SF물)를 도입한다. 그밖에 5편의 금고 장면 이후 탱크, 비행기, 드론, 헬기, 잠수함, 우주선을 추가되면서 테스토스테론 연료를 새로이 주입한다. 이로써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현대 액션의 총아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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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블로그 영혼아이 TERU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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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에서 영웅으로
<트랜스포머> 영화 시리즈의 첫 편이 나온 지 15년이 넘었다. 하지만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이야기의 초점은 흐려지고, 오로지 파괴적인 액션 장면들이 나열되는 느낌을 준다. 초기의 신선했던 감동은 점차 사라지고, 관객들 사이에서는 이 시리즈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포머의 세계관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특히 그들의 고향인 사이버트론이라는 행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애니메이션 영화 <트랜스포머 원>은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사이버트론의 기원을 다루며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단순히 로봇 전투 액션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들의 정치적 성장과 계급 갈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사이버트론의 노동자 계급을 전면에 내세우며, 각 인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감정을 통해 관객에게 정치적 함의를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흥미롭다. 이제, 이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주요 캐릭터들의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첫 번째 감정] 오라이온 팩스(옵티머스 프라임)의 자유
영화 <트랜스포머 원>에서 오라이온 팩스는 사이버트론 행성에서 평범한 노동자 계층에 속하는 광부로 등장한다. 그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깊었으며, 자신이 속한 세계의 질서가 올바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사이버트론의 지도부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오라이온 팩스에게 큰 충격을 주며, 그는 시스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진실을 알게된 그 순간은 그의 내면에서 자유를 향한 열망이 싹트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오라이온 팩스는 시스템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폭력적이지 않다. 그는 자유를 위해 싸우되, 과격한 방법 대신 온건한 접근을 택한다. 그의 목표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부패한 체계를 개선하고 바로잡는 것이었다. 이는 정치적으로 비둘기파에 가까운 온건한 이상주의자적 태도이며, 사이버트론에서 자유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영웅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오라이온 팩스가 선택하는 길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타협과 대화를 중시하는 방식이다. 그는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 안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리더로 성장한다. 이는 그의 차분하고 이성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단순한 전투영웅을 넘어선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한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이후 옵티머스 프라임으로 거듭나며 사이버트론의 지도자로 인정받게 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두 번째 감정] D-16(메가트론)의 분노
오라이온 팩스와 대조적으로 D-16, 즉 메가트론은 같은 노동자 계층에 속해 있지만, 그가 택한 길은 완전히 다르다. 메가트론은 처음에는 규칙과 질서를 중시하는 성향을 보인다. 오라이온 팩스와 함께 노동자로 살아가면서도, 메가트론은 체제의 틀 안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도부가 노동자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의 내면에서는 억눌렸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한다.
메가트론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 체제를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강한 욕망으로 변모한다. 그는 현재의 사회가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이 세상 자체를 파괴해야 한다고 믿는다. 메가트론의 이 파괴적인 성향은 그를 강경한 매파로 만든다. 그는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오직 새롭게 탄생할 세계를 꿈꾸며 폭력적인 혁명을 추진한다. 이는 그가 오라이온 팩스와 갈등하게 되는 핵심 원인이 된다.
하지만 메가트론의 분노는 단순한 파괴적 욕구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기존 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려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그가 오라이온 팩스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며, 이 영화는 메가트론이 가진 복잡한 감정을 더 깊이 파고들며 그의 폭력적 성향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메가트론은 단순한 악역이 아닌, 자기 방식대로 정의를 실현하려는 인물로서 그의 캐릭터가 확립된다.
[세 번째 감정] 사이버트론 고대 조상들의 믿음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사이버트론의 노동자 계급에서 시작한 두 인물이 결국 각기 다른 정치적 길을 걷게 된다는 점이다. 사이버트론의 고대 조상들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그들은 각 영웅들에게 지혜와 힘을 부여하며, 그들의 성장과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흥미롭게도, 고대 조상들은 자유와 정의를 상징하는 오라이온 팩스, 즉 비둘기파의 손을 들어준다. 그들은 사회를 파괴하기보다는 개선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개혁하는 것을 지지한다.
이러한 조상들의 믿음은 오라이온 팩스와 메가트론이 상징하는 두 가지 정치적 이념, 즉 온건파와 강경파의 대립을 더욱 부각시킨다. 영화는 결국 이 두 인물의 갈등을 통해 자유와 분노, 개혁과 혁명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들은 사이버트론의 미래를 두고 서로 대립하며, 그 과정에서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라는 두 영웅의 정치적 성장과 충돌을 보여준다.
조상들의 역할은 단순히 전설 속의 존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혜가 현대의 갈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이 남긴 유산은 두 인물의 행동에 방향성을 제시하며, 영화 속에서 사회적 진화와 혁신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제공한다. 사이버트론의 고대 조상들은 이 갈등의 심오한 철학적 배경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는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깊이
<트랜스포머 원>은 단순한 액션 애니메이션 이상의 깊이를 가진 작품이다. 영화는 사이버트론의 계급 갈등과 노동자 계층의 정치적 성장 과정을 그리며, 자유와 정의, 분노와 혁명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주제를 다룬다. 오라이온 팩스와 메가트론의 대립은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가 아니라, 각기 다른 정치적 이념이 충돌하는 과정이다. 이들은 자신만의 정의를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 영화는 특히 사이버트론이라는 세계의 기원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갈등을 세밀하게 다룬 점에서 주목받는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로봇들의 전투 장면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에서 영웅으로 성장하는 인물들의 정치적 여정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논쟁이 되는 정치적 주제들을 트랜스포머 세계를 통해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번 영화의 감독은 애니메이션계에서 유명한 조시 쿨리다. 그는 <토이 스토리 4>를 통해 이미 그 능력을 인정받은 감독으로, <트랜스포머 원>을 통해 트랜스포머 세계관의 깊이를 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이클 베이가 이끌었던 실사판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달리, 조시 쿨리는 이번 애니메이션에서 서사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특히 캐릭터들의 내면을 탐구하며 그들의 성장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내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목소리 연기도 눈길을 끌었다. 옵티머스 프라임, 즉 오라이온 팩스의 목소리를 맡은 크리스 햄스워스는 특유의 남성적이고 강렬한 목소리로 프라임의 리더십과 결단력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메가트론의 목소리를 맡은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는 그의 분노와 카리스마를 잘 전달하며 메가트론의 캐릭터에 깊이를 더했다. 두 배우의 목소리 연기는 영화의 감정선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트랜스포머 원>은 트랜스포머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서사적으로 깊이가 있는 작품이다. 단순한 로봇 전투를 넘어, 정치적 성장을 그린 이 영화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의 기원을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트랜스포머 팬뿐만 아니라, 정치적 서사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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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공화국에 던져 잔인할 정도로 짓궂은 질문
7★/10★
사상 초유의 대지진이 일어나 서울의 모든 건물이 무너졌고, 딱 하나의 건물만 살아남았다. 바로 황궁 아파트. 생존자들이 하나둘씩 황궁 아파트로 모여든다. 누군가는 그들을 자기 집에 들이고, 누군가는 자꾸만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불안을 느낀다. 아노미 상태가 이어지자 주민회의가 열린다. 몸을 던져 아파트 단지 내 화재를 막은 영탁이 대표로 선출되고 아파트는 빠르게 질서를 확립해나간다. 영탁의 지침은 간단하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 영탁은 기존의 모든 위계와 도덕, 질서가 무용해진 환경을 ‘주민 vs 외부인’의 단순하면서도 ‘합리적인’ 구도로 빠르게 정리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기존 재난 영화와 다른 길을 간다. 보통의 재난 영화는 재난 장면의 스펙터클을 향해 서서히 나아간다. 우리는 주인공들이 재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가던 사람들과 재난의 징조가 교차하는 장면이 포함된 영화를 여럿 떠올릴 수 있다. 이들 영화에서 거대한 재난은 영화의 중후반부, 즉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등장했다. 그러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미 재난이 일어난 후에 시작된다. 이유가 있다. 대지진보다 그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기존 생활방식이 대지진보다 더 큰 재난이 아니냐고 묻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수많은 사람이 아파트에 살길 희망한다. 그리고 개별 아파트는 거주민의 품격을 대변한다고 여겨진다.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바로 옆의 드림 팰리스 주민들에게 종종 무시당했다. 드림 팰리스 주민들은 황궁 아파트 주민이 자기네 단지 내부로 오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고, 그 근거로 종종 집값을 들먹였다. 아파트의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드림 팰리스 주민들은 더 비싼 아파트에 사는 자신들이 황궁 아파트 주민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난은 드림 팰리스와 황궁 아파트의 지위를 뒤바꿨다. 떵떵거리던 드림 팰리스 주민들은 황궁 아파트 주민들에게 제발 자신들을 받아달라고 읍소한다. 그러나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시큰둥하다. 지금껏 그들이 받아온 모욕을 생각한다면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들은 그저 재난 이전에 자신들이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줬을 뿐이니까.
물론 위계를 나누는 선은 두 아파트 사이에만 있지 않다. 자가, 전세, 월세, 대출 여부 등의 기준은 황궁 아파트 내부에서도 위계를 만든다. 그러나 대지진 후 황궁 아파트 주민회의 참가자들은 ‘너그럽게’ 모든 형태의 거주자를 주민으로 인정해준다. 그러나 여기까지. 그들의 온정은 더 넓게 확장되지 않는다. 재난 이후 아파트라는 특권은 오직 황궁 아파트 주민에게만 허락된다.
덥수룩한 머리에 별다른 존재감도 없던 영탁은 이 모든 과정을 능숙하게 처리해 재난 이전이라면 그가 결코 갖지 못했을 명예를 얻는다. 완장을 찬 영탁은 그 누구보다도 주민을 지키는 데 열심이다. 그는 드림 팰리스 주민들이 그러했듯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장벽을 쌓고 경계를 강화한다.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식량을 구하러 바깥으로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주민이 아니면서도 몰래 아파트에 숨어들고, 위험 끝에 얻은 과실을 무상 취식하는 자들이 있다. 영탁과 그를 따르는 대다수의 주민들은 그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른다.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존재들은 색출, 퇴출되어야 한다. 황궁 아파트 주민이라도 바퀴벌레를 돕는 자들은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황궁 아파트 주민들의 바퀴벌레 색출은 나치의 유대인 색출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는 나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이미 끝났고, 인류가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영탁/주민/바퀴벌레에게서 히틀러/나치/유대인(쥐)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다. 히틀러와 나치도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국가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었다. 영탁과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아파트를 사수하려 했듯이 말이다. 국가주의적 욕망이 아파트를 매개한 자본주의적 생존 욕망으로 변화한 것 말고는 둘 사이에 별다른 차이는 없다. 한국 현대사의 ‘빨갱이’ 색출 메커니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시대와 맥락을 조금씩 바꾸면 황궁 아파트의 ‘바퀴벌레 색출’과 닮은 폭력의 역사적 사례는 무수히 많다.
때문에 문제는 영화를 보는 누구도 영탁과 황궁 아파트 주민들을 쉽게 손가락질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간주하는 시대의 욕망이 폭력의 정당성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다. 혹은 외피를 바꿔 등장한 폭력의 체제에 손쉽게 속아 넘어갈 만큼 피상적으로만 역사를 배웠다고 할 수도 있겠다. 대지진보다 무서운 재난은 이미 집값과 아파트의 격을 따지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중이다. 단지 한 번에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대신 조금씩 우리를 좀먹으며 서서히 사회의 밑동을 갉아내는 중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기존 재난 영화와 전개가 다르다는 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있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다. ‘재미’에 관한 통상적 기준을 적용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이병헌이 있다. 매번 다른 결의 독보적 연기를 선보이는 그는 이번에도 존경과 미움을 한몸에 받는 영탁이라는 인물을 탁월하게 연기해내며 서슬 퍼런 존재감을 뽐낸다. 그의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리는 몇몇 장면이 이를 대변한다. 재난 영화의 문법 대신, 영탁이 변화와 그의 비밀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재미는 충분할 것이다. 평범한 공무원이었으나 서서히 영탁에게 물들어가는 민성과 영탁의 대척점에서 공동체를 대변하는 명화를 연기한 박서준, 박보영의 연기도 극의 몰입감을 더한다. 영탁의 든든한 조력자인 부녀회장을 연기한 김선영이 극에 선사하는 현실감도 몰입에 큰 역할을 한다.
장르의 관습을 비켜 간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무엇보다 ‘너라면 다를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잔인할 정도로 짓궂은 영화의 질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잠깐이라도 멈춰 설 계기가 필요한 우리에게 도착한 시의적절한 재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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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어른들은 이제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의 고독
감독: 다미앵 마니벨, 이가라시 고헤이
출연: 코가와 타카라
시놉시스
아버지가 새벽같이 일터로 나간 어느 날, 한 소년 타카라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전해주기 위해 일탈 여행을 떠난다. 아무도 모르게, 용감하게. 눈길을 헤치고 아버지를 찾아나서지만 아버지는 찾지 못하고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갇히고 만다. 타카라의 모험은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대사가 없는 영화
이 영화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 대사가 없고 아이의 표정만 보이며 아이의 행동들이 단편적으로 편집되어 있다. 영화 내에서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 타카라는 명랑한 아인지, 말을 잘 안듣는 유형인지 등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저 타카라에게는 아버지, 어머니, 누나가 있는 전형적인 가족 관계가 있다는 존재 사실만 보여준다. 가족 간의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는다.
모든 포커스가 타카라의 여정에만 맞춰져 있다. 타카라의 여정에 관계 없는 부가적인 설정은 설명이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타카라의 행동과 표정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 장면마다 하나의 사진집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였을 때의 기억을 장면장면으로 편집해 기억하고 있는 어른의 관점으로 말이다.
어른은 아이를 다 알지 못합니다.
감독은 "타카라의 여정에 초점을 맞춰 어른의 개입이 없는 세상 속 아이들의 모험"을 그려내고 싶었다. 위험해 보일 수 있는데도 어떤 어른도 "아이야, 무슨 일이니" 묻는 어른이 없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어른에게는 위험이지만 아이의 시각에서는 모험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핵심이었다.
아이들의 삶은 어른들에 의해 재단된다. 정작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표현할 기회가 없다.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른들의 시각에서 아이의 삶은 끊임없이 평가당한다. 어른들과 완벽하게 소통을 해내지 못하는 나이이기에 아이는 고독을 느낀다. 그 고독은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어른들을 향해 자신의 고독을 말할 능력과 의지의 부족함에서 나온다.
부모는 자식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부모는 자식을 반만 알아도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의 관점에서 평가당해온 삶 속 진짜 내 이야기를 했을 때 부정당했던 경험이 상처로 남았다면 '아이 시절의 고독'을 잘 숨겨온 사람은 아니었을까.
이처럼 타카라가 아버지를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그 어떤 가족도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아이의 웃는 낯 속 숨겨진 진실은 아이가 표현할 때까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타카라가 그런 모험을 자처할 만큼의 표현 말이다.
영화의 비하인드
감독에 따르면 상황 설정은 있었지만 전적으로 실제 타카라의 행동을 따라가며 찍은 다큐적 속성의 영화라고 한다. 그래서였는지 아이가 개와 목소리로 다이다이 뜰 때 그렇게 순수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건 연기라기 보단 찐텐이었을 테니까.
영화가 끝났는데도 수영을 했다는 제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산 시장 그림을 그렸기 때문인 걸까 생각했는데 관객과의 대화 중 한 의견을 듣고 아하! 했다. "설원에서 아이가 뒹구는 게 마치 수영하는 것 같았다"는 말이었는데 훨씬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래서 집단지성이 중요한가 보다.
영화 속 타카라는 꽤 오랜 시간 잔다. 그걸 보며 이 모든 모험이 사실 꿈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컷이 그토록 단편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했는데 감독이 이에 대해 확신을 줬다. '꿈에 대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어른에게 아이 시절은 꿈같이 희미해져 버렸으니 그런 연출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총평
영화가 대사가 없지만 내용은 명확한 편이다. 하지만 이해가 단박에 되진 않아 생각의 여지를 많이 주는 영화다. 영화 내용과는 별개지만 감독이 "타카라가 정말 눈 속에서 매번 뒹굴어 신기했다"라는 코멘트가 진심 너무 귀여워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그런 아이를 데리고 영화 한 편 찍겠다고 달려든 어른들의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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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되는 재회, 그리고 이별
김고은과 정해인이 커플로 나오면서 그 케미가 얼마나 좋을지 기대를 하게 만들었던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개봉 당시 봉오동전투를 밀어내고 박스오피스 1위를 계속 차지했던 작품이어서 기대를 했었지만 과연 그만큼 인기가 있었어야 했을 작품이었는지는 의문이 남은 작품이었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시놉시스
"오늘 기적이 일어났어요."
1994년 가수 유열이 라디오 DJ를 처음 진행하던 날, 엄마가 남겨준 빵집에서 일하던 미수는 우연히 찾아 온 현우를 만나 설레는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연락이 끊기게 된다."그때, 나는 네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기다렸는데…" 다시 기적처럼 마주친 두 사람은 설렘과 애틋함 사이에서 마음을 키워 가지만 서로의 상황과 시간은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계속되는 엇갈림 속에서도 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과 함께 우연과 필연을 반복하는 두 사람. 함께 듣던 라디오처럼 그들은 서로의 주파수를 맞출 수 있을까?
* 해당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운명인건가?
이어질 사람은 이어진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된다 라는 말을 여실이 보여주는 작품이었던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어쩜 저렇게 우연히도 계속 마주치는 인연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없는데 말이다.
소년원에서 나오고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현우가 떠난 뒤 우연히 빵가게 앞에서 다시 만나고 그렇게 군대를 갔다가 헤어지고 이메일 비번을 안 알려줘서 연락을 못하다가 미소가 원래 살던 집으로 들어가며서 기적적으로 다시 연락이 되고 그런데 하필 사고가 터져서 못만나다가 미소가 일하는 출판사 윗층에서 작업을 현우가 하게 되면서 다시 만나고 이 무슨 기적같은 우연인가? 영화기에 가능한 것인가 싶으면서도 10년에 해당하는 시간은 2시간 안에 압축시켜서 보다보니 여러번의 우연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좋았던 작품
스토리 전개가 5년 단위로 진행되다 보니 조금씩 뚝뚝 끊기는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하지만 그 스토리 전개를 이겨낸 김고은과 정해인의 연기력에는 박수를 보낼만 했다.
정해인은 그간 바른생활 사나이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소년원을 다녀온 캐릭터가 어울릴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괜찮게 어울렸던 것 같다. 김고은 역시 헤어지는 여자의 마음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을 때의 설렘을 정말 잘 표현했던 것 같다. 그래서 현우와 미소가 헤어지고 미소가 편집장의 차를 타고 떠날 때 그 무너지는 감정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서 같이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인기가 있을 작품이었나?
그러면서도 의문이 드는 점은 이 작품이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을만큼 작품성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걸작은 아니었다. 감수성을 충분히 자극할만큼의 연출이 뛰어났던 작품이라고 느껴질 만큼 무언가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한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러한 일상이 사람들에게 평범함으로써 인기를 끈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스펙타클하고 화려한 다른 영화에 비해 다큐멘터리라고 생각이 될 정도로 담백한 작품이어서 그런것인가? 솔직히 김고운과 정해인이라는 배우 덕에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던 작품이었다.
개봉 당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하지만 아직까지 그렇게까지 인기가 있었을 이유를 못찾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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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못건드리는 양아치가 탄 버스에 하필 동석이형이 ㅋㅋㅋㅋ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에취한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allwey01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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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종착역> 30초 예고편
사진 동아리 '빛나리' 부원인 시연, 연우, 소정, 송희는
'세상의 끝'을 찍어 오라는 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 지하철 1호선 신창역으로 향한다.
웃음이 끊이지 않던 친구들은 계획대로 잘 풀리지 않는 여정에 점점 지쳐가고,
낯선 곳에서 14살 첫 여름방학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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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tv+<파친코> 인사이드 스토리
더 나은 삶, 새로운 삶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한 여인의 고군분투와 불굴의 의지를 담아낸 대서사시 ‘파친코’ 그 제작 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