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2-03-02 09:39:02
<나이트 레이더스> 메시지만 강렬한 디스토피아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아네트>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2043년,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에는 새로운 제국을 세우려는 독재국가 에머슨이 들어선다. 거대한 새를 연상시키는 드론에 의해 감시받는 세상을 만든 가운데, 에머슨은 시민권이 없는 미성년자 모두를 군인으로 양성하기 위해 아카데미로 끌고 간다. 그러나 에머슨의 통치를 따르지 않는 '니스카(엘레 마이아 테일페데스)'는 딸 '와시즈(브룩클린 르텍시에 하트)'와 함께 숲 속에서 유랑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와시즈가 큰 부상을 당하고, 약을 구하러 마을에 온 니스카는 도리어 병사들에게 와시즈를 빼앗기고 만다. 딸과 헤어진 후 슬픔에 잠긴 채 살아가던 니스카. 그러 그녀 앞에 마찬가지로 에머슨의 지배에 저항하는 토착민 크리 족 사람들이 나타나고, 니스카는 그들과 함께 딸을 되찾기 위한 반격에 나선다.
제7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제46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유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바 있는 <나이트 레이더스>는 다니스 고렛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고렛 감독은 <나이트 레이더스>의 출발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토착민의 삶은 나날이 극심해지는 혐오와 차별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도 그간 제삼자에게 토착민의 이야기는 항상 신기하고, 민속적이고, 옛날이야기에 불과했다. 이에 현실에서 목소리를 내기 두려운 사람마저 목소리를 내게 하는 힘이 있는 SF 및 판타지와 같은 장르에 보편적인 역사이기도 한 토착민의 비극을 녹여내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이트 레이더스>는 세계 각지의 토착민, 원주민들이 겪은 구체적인 사건들을 한 데 모아 디스토피아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우선 다니스 고렛 감독 본인이 캐나다 사람인만큼 <나이트 레이더스>는 캐나다 역사 속 원주민들의 비극적인 경험을 스크린으로 불러온다. 작중 에머슨은 전쟁에서 패배한 이들에게 두 가지 차별정책을 시행하며, 이는 영화의 주요한 갈등을 유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하나는 거대한 벽으로 대표되는 분리 정책이다. 에머슨 시민이 사는 곳과 비시민권자가 사는 곳을 철저히 나누고, 비시민권자에게는 드론을 통해 식량을 배급하면서 철저히 통제하려 든다. 이러한 에머슨의 통치 정책은 캐나다 정부가 원주민들에게 시행한 탄압과 강압적 동화 정책과 똑 닮아 있다. 과거 영국령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들의 땅을 강탈하고 그들을 보호 구역에 집어넣었다. 또 보호구역 내에 부실한 인프라를 설치하거나, 보호 구역에서 나오면 연금을 받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본래 유목민이던 이들에게 낯설고 고달픈 생활을 강제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의존하도록 만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에머슨 아카데미의 존재다. 에머슨 아카데미는 과거 캐나다 정부가 설립한 '레지덴셜 스쿨(Residential School)'의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레지덴셜 스쿨은 반란과 분쟁의 빌미 근절하기 위해 같은 국가관과 동질성을 공유하도록 영국계 캐나다인의 가치관을 원주민들에게 주입하려는 목적으로 세원진 학교다. 이 학교들에서 원주민들은 영어식 이름으로 강제 개명되고, 영어만을 사용할 수 있었으머, 원주민 전통의상 착용을 금지당하고 백인들이 입는 양복, 양장 착용이 강제되었다. 이곳에서 어린 소년소녀들은 교사에게 자주 강간당하기도 했다. 결국 부모 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사육되다시피 한 아이들은 가족애를 잃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원주민들의 가정과 사회를 더욱 빠르게 파멸로 이끌었다.
영화는 이처럼 레지덴셜 스쿨에서 자행된 악습들을 아카데미라는 가상의 공간 안에서 묘사한다. 에머슨은 어린아이들에게 선진 교육을 통해 삶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하며 정체성을 약화시킨 뒤 철저히 국가에 충성하도록 강제한다. 곧 실제 역사적 사건이 와시즈가 아카데미 내에서 엘리자베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며 어머니 니스카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 아이들이 밤이면 기숙사에서 한 명씩 불려 나가 성폭행당하는 것,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젊은 아이들이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채 어머니에게 총구를 겨누는 장면으로 바뀌어 재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딸을 구하기 위해 아카데미에 침투하는 니스카의 모습에는 단순한 모성애를 넘어서는 의미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나이트 레이더스>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 족의 역사도 디스토피아 세계에 녹여내고 있다. 이는 본 작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토르: 라그나로크>와 <조조 래빗>의 감독을 맡은 바 있는 타이카 와이티티에 게 마오리족 피가 흐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중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드론의 존재가 단적인 예시다. 드론은 에머슨의 통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신무기로, 미등록 미성년자를 수색 및 추적하고, 전투용 내지는 식량 배급용으로도 활용된다. 이때 드론이 배급한 식량에 바이러스가 숨어 있었던 것은 유럽인들에 의해 새로운 전염병이 퍼져 나갔던 사례들과 오버랩된다.
이에 더해 드론의 존재는 유럽인의 등장과 동시에 당시 기준 최신 무기였던 머스킷 총이 뉴질랜드에 전래되고, 이 무기를 지닌 부족이 그렇지 못한 부족을 착취하고 노예로 만든 사건인 '머스킷 전쟁'이 마오리족 역사에 기록된 것을 연상시킨다.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머스킷 전열 보병처럼 길게 늘어서서 일제히 총을 겨누어 화망을 형성한 채 접근해오는 에머슨 군인들과 빈약한 무장으로 맞서는 크리 족의 모습도 영국군과 마오리 족 사이에 펼쳐진 '마오리 전쟁'의 변형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영화 속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드론과 와시즈가 지닌 독특한 능력이 더해져 전투의 향배를 뒤바꾸게 되는 전개는 결국 19세기 당대 신무기인 머스킷에 의해 피로 얼룩졌던 역사를 영화적으로 치유하는 장면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목은 나다와 뉴질랜드 두 사례에 대해 여러 토착민들의 역사가 공유하는 보편성을 맛볼 수 있는 지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페인군이 침입한 멕시코나 남아메리카의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신무기나 새로운 전염병 때문에 유럽 이주민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사례는 지구 이곳저곳에 모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이한 지역의 공통된 역사적 사건들을 한 데 모은 <나이트 레이더스>의 조각보 같은 매력이 온전히 스크린에서 전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르 영화로서의 완성도에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사실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루는 장르 영화인 관계로 <나이트 레이더스>에는 다른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유사함의 정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고, 익숙한 설정과 전개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그러다 보니 시도 자체는 인상적이었던 영화의 메시지와 감흥도 모두 깎여버리고 만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대표작인 <아바타>와의 비교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아바타>의 경우에도 충격적이었던 시각 효과와 달리, 스토리적인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가 판도라 행성의 원주민인 나비족의 구세주가 되어 인간의 침입을 막아낸다는 플롯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평면적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바타>는 나비족의 역사와 사회, 내외적 갈등, 그리고 그들의 신과 구세주인 에이와와 토루크 막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주었고, 그 결과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는 강력한 몰입감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반면에 <나이트 레이더스>의 메시지와 전개 양측면에서 모두 중심이 되어야 할 크리 족의 이야기는 디테일이 부족하다. 그저 몇 마디의 대사와 설정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토착민 출신이지만 토착민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살아가던 니스카와 와시즈 모녀의 이야기와 만나는 순간에도 별다른 갈등 없이 흡수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한 곳에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작중 크리 족의 서사는 토착민 공동체로서의 특색이 살아나지 않는다. 단지 독재국가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세계에 반대하는 저항군이라는 익숙한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이는 <나이트 레이더스>가 결코 인상적인 장르영화는 아닌 이유다.
유사성과 진부함을 넘어서지는 못한 것 외의 한계도 있다. 스릴러 영화인데도 긴장감을 거의 불어넣지 못하는 식이다. 실제로 영화는 제목인 'Night Raiders'가 '밤의 침입자'라는 뜻인데도 불구하고 밤에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에머슨 아카메디에 갇힌 와시즈를 구출하기 위한 니스카와 크리 족의 습격만 보더라도 작전의 중간 과정부터 아카데미에서 탈출하려는 과정에 이르는 세부 사항들이 지나치게 많이 생략되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해당 시퀀스는 클라이맥스로 고조되는 중간 다리로써 그 부조함을 숨기지 못한다. 그나마 숲에서 숨어 지내던 니스카 모녀와 그들을 습격한 드론 간의 짧은 전투가 세계관을 소개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뿐이다. 이처럼 <나이트 레이더스>는 뜻깊고 인상적인 아이디어의 잠재력을 실현하기에는 부족했던, 투박한 장르 영화로 남는 데 그치고 만다.
P(Poor, 형편없음)
어설픈 짜임새 때문에 빛이 바랜 역사적 비극의 영화적 위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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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잃었다. 어딜 가야 할까.
이 글은 영화 [스펜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생물 교과서에 나오는 혈우병(Hemophilia)은 유전병들 중 가장 슬픈 병임과 동시에 왕가의 집념이 보이는 병이기도 하다. 혈통 보존이라는 미명 하에 왕실에서는 사촌 간에 결혼을 하거나, 정략결혼을 통해 권력을 더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많았다. 덕분에 빅토리아 여왕의 유전자 하나는(참고 1) 온 대륙의 왕자들이 피를 멈추지 못해 죽어가는 것을 눈뜨고 지켜보아야만 하는 비극을 불러오기도 했다.
왕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렇게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되어 넘지 못할 것만 같던 두꺼운 담을 꾸역 꾸역 넘는다. 그리고 기어코 보통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 조심스럽고 비밀스러웠던 크기만큼이나 쾌감을 주는 이야기로 떠돌게 된다.
21세기인 지금도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왕족의 이야기는 이제는 대중 매체의 힘을 빌려 손쉽게 담을 넘는다. 가장 매력적이고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야기를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극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영화 제목과 일치하는 자신의 성(Family name)인 [스펜서]로 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다이애나의 이야기는 생소하면서도 신비롭다. 영화 속을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장면마다 인간 다이애나 스펜서의 슬픔이 묻어져 나오지만. 그녀의 고통과 용기도 함께 느껴져 마음이 몇 번이고 부서져 내리는 두 시간을 보내게 한 영화다.
윈저라는 이름의 왕관, 혹은 금고아;그것을 너무도 잘 표핸해낸 크리스틴 스튜어트
사진 출처:다음 영화
왕관을 쓰려는 자 무게를 견디라 했다. 그것도 영국 왕실의 왕관이라면. 목이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꼿꼿하게 지탱하려 애쓸 것이다.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스펜서의 모습은, 머리 위에 얹어진 원치 않는 왕관을 버텨내느라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자신의 차를 혼자 운전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펜서는 어딘가 경직되어 있는 동시에 안절부절 해 보인다. 무엇보다 그런 불안한 상태를 감출 수 없는 듯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의 손은 마음과 동기화되어 있는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이고. 스펜서의 한 손은 언제나 다른 한 손에 의해 꾹 눌러진 채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겨우 잠자코 숨을 죽인다. 두 손을 맞잡아야 자신을 진정시킬 수 있는 그녀의 의기소침한 어깨는 안쓰러울 정도로 작아 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다이애나 머리 위의 반짝이는 것을 가리켜 왕관이라 했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그저 손오공의 머리를 옥죄이는데 쓰는 금고아(긴고아)에 불과했던 셈이다.
난생처음 보는 다이애나의 모습을 이토록 잘 표현해낸 데는 틴에이지 영화배우라는 왕관을 쓰고 있는 줄 알았던 크리스틴 스튜어트 개인의 울분도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배우라고 부르기엔 한없이 모자랐기에.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금고아를 벗어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배우와 스펜서가 가진 공통된 욕망은, 영화 속에서 모든 것을 뒤로하며 달리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다른 무수한 영화 속 장면에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그 지점에서는 크리스틴과 스펜서 두 사람 사이의 구분선이 완벽히 사라진다.
두 여인은 자신을 통제하고 가둬두려던 그 무언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왕관이라 부르며 칭송하던 것을 벗어던지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달리기의 끝에 그녀들이 기어코 얻어낸 것에도 손뼉 쳐줄만하지만. 미친 듯이 달리느라 발을 다치지는 않았는지. 숨이 너무 차 기댈 곳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목걸이, 허수아비, 그리고 꿩;스펜서의 모든 모습을 나타내는 것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진흙탕이라는 단어에서 딱 한 뼘 정도 모자라는 땅에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
스펜서는 자신이 궁에서 속한 위치가 딱 허수아비 정도라고 생각했다. 남편 찰스는 바람까지 피운 주제에 불륜 상대에게 준 것과 같은 진주 목걸이를 선물했고. 그것은 자신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내려놓으려 할수록 옷에 가장 잘 어울리는 화려한 장신구가 되어 스펜서의 목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펄럭이면서, 아름다운 족쇄에 목을 맡긴 채 스펜서는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끝나리라 조금은 믿어버렸다.
하지만 스펜서는 자신의 두 아이만큼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왕가의 전통이라는 이유로 하고 싶지 않다는 아들의 마음은 가볍게 묵살당한 꿩 사냥에서. 아이들을 해방시키고 싶었다.
꿩은 영화 속에서 아름답지만 도망갈 머리는 모자라는 짐승 정도로 그려진다. 확실한 이유 없이 희생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지점에서 스펜서는 자신의 모습과 꿩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들의 꿩 사냥을 더 말리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아들의 총을 맞아 죽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고. 윈저가문의 이유 없는 전통에 의해 스펜서가 희생당하는 것을 막고 싶었을 테니까.
허수아비이자 꿩이었지만. 운명 같았던 진주 목걸이를 없애버린 스펜서는 그렇게 자신이 원하던 대로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신나게 도망을 친다. 벌판에 버려져 있던 그 허수아비에게는 스펜서의 옷이 아닌 윈저의 옷을 선물한 채로.
지금의 찰스를 보고 있자면. 다이애나의 저주(?)를 톡톡히 받고 있는 듯하다. 윈저 가문은 가장 매력적인 왕세자비를 영원히 잃었으며. 스펜서의 마음을 가지고 논 죄로 찰스는 왕위에서 어머니의 그림자로 남아있다. 이제 누가 정말로 허수아비가 되어버렸는지. 그 당사자는 알겠지.
스펜서, 길을 찾다.;메리크리스마스, 스펜서.
사진 출처:다음 영화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 심판]의 김혜수 배우는. 판사들이 걸어가는 긴 복도가 그 사람들이 가진 끊임없는 일들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많은 대사들이 복도에서 이뤄지는 것도 판사들이 가야 할 길 중간에 있는 일들 같게 느껴져서 좋았다고. 영화 [스펜서]에서 복도, 혹은 길이 상징하는 바도 이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스펜서는 영화에서 늘 길을 잃고 헤맨다. 그것이 자신이 살던 동네 근처였건. 혹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이한 미로 같은 궁궐이건 상관없이.
애처롭게도 스펜서는 그녀를 그 운명의 길고 긴 길 위에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지 못해, 몇 년을 가도 낯선 길 위에 정처 없이 눈물을 흩뿌리며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긴다. 모든 것을 토해내기 위한 화장실을 찾아서 겨우겨우.
그녀는 스스로를 죽여 이 길을 더 이상 걷지 않기보다, 자신을 죽이려 하는 이 길에서 도망치기로 했다. 덕분에 세 모자(母子)의 신나는 도망기(?)에서만큼은 스펜서는 망설이지도. 길을 잃지도 않는다. 그녀는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었고. 주저하지 않고 엉망진창이지만 그대로 완벽한 채로 뒤 한번 돌아보지 않은 채 궁과 멀어진다. 다 큰 어른이 되어버려 산타는 더 이상 그녀에게 내어줄 것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이번 크리스마스만큼은 스펜서는 자신에게 아주 큰 선물을 준 셈이다. 두 아들에게도 빼놓지 않고.
스펜서는 영화 말미에 아이들이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패스트푸드를 먹이며 홀가분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내겐 그 모습이 마치 영화 [졸업]과 같아 보였다.
우리는 보통 [졸업]의 결말을 사랑하는 남자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도망가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제 정말로 현실이 되어 버린 이 탈주극에 대한 대책 하나 없는 두 남녀의 소위 "현타"온 표정을 비추는 것이 영화의 "진짜"끝이다.
스펜서도 지금 이 순간이 지나고 밤이 되면. 잠든 두 아들을 보며 과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현재 가진 것으로는 얼마나 버티며 궁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 것인지에 대한 숫자 놀음을 멈추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스펜서]는 졸업의 결말보다 약 5초 정도 앞에서 끊은 기분이다. 스펜서의 눈에 언뜻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이 비치지만. 아직까지 그녀는 홀가분하며,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그 행복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5초만이라도. 자신이 스스로에게 선사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끽할 수 있었으면 한다.
마치면서+좋아한 장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왔다.어차피 우산이 없었기에 나는 주저 없이 빗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뎌야 했다. 모든 사람이 우산을 쓰고 있었고. 그들은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기꺼이 이상한 사람이 되기를 택했고. 한순간이었지만 스펜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그 모든 시선을 받아야 했을 그녀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도 그 장면들에 묻히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또 대단했다. 어차피 역사가 스포일러이긴 하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혹은 그녀의 마음이 십분 느껴지는 영화였기에 보는 내내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스스로에게 준 미래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조금 더 크고 길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마저 남는 영화였다.
[좋아한 장면]
정말 무수하게 많은 장면들이 마음에 날아와 꽂혔지만. 그중에서도 한 장면을 꼽으라면. 단체 사진을 찍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총총거리며 걸어와 여왕 외에는 아무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가족들 사이에 섞여버리는 장면. 다이애나는 그때 자신의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커가는 스펜서를 눌러 담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영화 가득 그녀만의 색이 묻어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순간만큼은 스펜서를 지워내야 했다. 모르겠다. 그냥 이 영화 자체가 계속 눈물이 났다.
참고 1
혈우병은 남자가 걸리기 쉬움.(성 염색체 유전). 여자의 경우 혈우병에 걸릴 경우 embryonic lethal 한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음. 그 당시 왕자들은 말 타다가 넘어져서 멍이 든 게(내출혈) 아물지 않아 죽었다고도 하고. 처형 당했는데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쏟아져내렸다고도 하고,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고도 함. 아 물론 후자의 경우는 파상풍일 가능성이 더 높음.
[이 글의 TMI]
1. 코로나 격리가 끝나고 회사 갔지만. 여전히 회사는 싫군요.
2. 컨디션은 평소의 70% 정도밖에 안됨.
3. 입맛 없는 게 제일 힘듦.
4. 약 먹어야 되니까 꾸역꾸역 먹고 다시 빠졌던 3Kg 회복함(응?)
#파블로라라인 #크리스틴스튜어트 #스펜서 #최신영화 #영화추천 #실화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내일은파란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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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필리아> 신화를 만나 자유로워진 비극의 여인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총명하고 본인 주관이 뚜렷한 소녀 '오필리아(데이지 리들리)'는 왕실의 연회 자리에서 기지를 발휘해 왕비 '거트루드(나오미 왓츠)'의 총애를 받고, 왕실의 시녀가 된다. 비록 규율이 엄격한 궁전에서 지내지만 오빠인 '레어티즈(톰 펠튼)' 어깨너머로 공부하는 등 특유의 자유로움을 잃지 않은 오필리아에게 왕자 '햄릿(조지 맥케이)'은 첫눈에 반해 열렬히 구애하고, 오필리아도 그 사랑을 이루려고 하나 신분의 격차가 두 연인을 가로막는다. 그러던 어느 날 선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덴마크 왕국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왕비와 선왕의 동생인 '클로디어스(클라이브 오웬)'간의 비밀은 물론 왕비와 숨겨진 자매인 '마틸드(나오미 왓츠)'의 과거사까지도 모두 아는 오필리아는 햄릿과의 사랑은 물론 자신의 인생까지도 바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
<오필리아>는 영국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림을 그대로 옮긴듯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원작인 <햄릿>대로라면 이 장면에서 물에 떠내려가는 오필리아는 이내 물 밑으로 가라앉아 사망한다. 하지만 원작에서 그녀의 최후가 사고인지 자살인지 애매하게 묘사되었다는 점에 주목한 영화는 이 장면 전후로 새로운 이야기를 붙여 넣는다. 총 스무 장으로 구성된 <햄릿>에서 다섯 장에만 모습을 드러냈던 오필리아는 물론 원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드러내지 않던 거트루드와 같은 여성 인물을 운명을 극복하고 삶과 사랑을 쟁취하는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캐릭터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때 영화는 그들의 이미지를 새로이 만들기 위해서 오래된 신화 속 두 여성의 삶을 재현하며 설득력을 더한다.
오필리아가 주체적인 여성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햄릿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그러지 않는 한 그녀는 영원히 햄릿이라는 지구 주위를 떠도는 달과 다름없는 여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필리아>는 이 달의 궤도에 자유와 진취성을 불어넣기 위해 제우스의 딸이자 아폴론의 쌍둥이인 아르테미스의 이미지를 빌려온다. 실제로 영화는 오필리아가 햄릿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그리스 신화에서 달빛의 신이자, 숲과 샘물, 산짐승과 소녀들, 그리고 처녀들의 수호신으로 등장하는 아르테미스의 성격을 그녀에게 투영시킨다.
미래에 자신이 몸을 던질 개울가에서 목욕을 하던 오필리아는 갑작스럽게 햄릿과 그의 친구 호레이쇼를 조우하고, 그녀는 자신에게 추근대며 말을 걸어오는 햄릿을 피해 도망친다. 이후 궁전에서 재회한 햄릿에게 오필리아는 같이 보고 있던 아르테미스와 악타이온의 그림, 곧 자신이 목욕하는 것을 훔쳐본 사냥꾼을 아르테미스가 사슴으로 변신시키는 순간을 묘사한 그림을 예로 들어 그를 비난한다. 사슴이 된 악타이온이 자신의 사냥개들에게 물어뜯겨 죽었다는 신화 속 결말을 고려하면, 이 장면은 원작에서 드러나지 않는 왕자와 시녀 간의 위계에 굴하지 않는 오필리아라는 인물의 이미지가 뇌리에 강렬히 각인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오필리아에게 아르테미스의 이미지를 거듭 덧입힌다. 예를 들어 오필리아는 숲에 발을 내딛고 밤에 궁전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여성이며, 그녀가 궁성의 망루에 올라갈 때면 항상 화면에 달이 등장한다. 특히 그녀는 자신을 따르는 요정과 여성들이 남신들과 영웅들에게 쫓길 때 그들을 지켜주었던 아르테미스처럼 여성들과 연대하고 보호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잃거나 어머니로서 아들을 지키지 못하는 거트루드나 마틸드는 클로디어스로 대변되는 가부장제의 피해자, 침묵하는 여성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왕비의 부탁을 받아 자매의 연락책으로 움직이는 오필리아는 그들의 아픈 과거사를 들어주고, 지켜주고, 그들이 클로디어스에게 맞설 수 있는 길을 귀띔해주며 영화의 끝을 장식하는 복수극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다.
한편 <오필리아>는 메데이아를 두 번째 모델로 삼아 침묵하던 피해자인 거트루드와 마틸드가 자신의 의지와 주체성을 되찾는 서사를 그려낸다. 메데이아는 그리스 신화의 여성 중 가장 주도적인 캐릭터다. 이아손에게 먼저 구애의 손을 내민 것도, 사랑을 쫓아 가족과 나라를 배신한 것도, 보물인 황금 양피를 훔치고 이아손을 구하기 위해 동생을 죽인 것도 그녀다. 모험을 끝내고 돌아온 이아손이 더 강한 권력을 좇아 새로 결혼을 하려 하자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남편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 아이들을 직접 살해하기까지 한다.
영화는 메데이아의 삶을 축약하는 세 키워드, '사랑'과 배신, 그리고 '복수'를 두 명의 여성, 왕비인 거트루드와 그녀의 언니이자 마녀인 마틸드에게 대입한다. 거트루드는 원작과 달리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욕망한다. 클로디어스의 추파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징표를 그에게 하사하며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한다. 마틸드 역시 젊은 날 사랑해서는 안될 한 남자를 뜨겁게 사랑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자매는 배신으로 사랑의 대가를 치른다. 클로디어스가 왕위에 오른 후 거트루드는 왕비(queen)가 아닌 왕의 아내(king's wife)로 종속당하고, 자신과 아들인 햄릿의 안위를 보장받지 못한다. 마틸드도 다르지 않다. 그녀는 연인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진 후 숲에서 은둔한 채 존재를 잃고 그저 거트루드의 자매로 살아간다. 결국 거트루드에게 마틸드가 젊음의 묘약을 만들어 주는 것은 먼저 사랑하고 배신당한 왕비이자 마녀인 메데이아의 이야기가 두 인물로 나뉘어 부여된 것이고, 이는 나오미 왓츠가 두 배역을 맡아 1인 2역의 열연을 펼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자매의 손을 통해 메데이아의 복수를 이룬다. 클로디어스가 가장 사랑하는 왕국과 그의 목숨까지도 파괴한다. 그렇게 이아손으로 하여금 사랑하는 이를 잃는 고통을 맛보게 했다는 결말과 이아손까지도 메데이아가 직접 죽였다는 또 다른 전승을 동시에 재현한다. 다만 결말에서는 약간의 변주를 준다. 의외로 행복한 삶을 누렸던 메데이아와 달리 과거의 복수에 사로잡힌 자매는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을 버리지 못한 햄릿과 레어티즈처럼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대신 자매는 미래를 위한 씨앗을 던져놓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애써 마음속 깊은 곳에 짓누르고 있던 진실, 아픔, 복수심을 끄집어 올리도록 도와준 오필리아의 목숨을 지켜준다. 그렇게 숲 속에서 시작된 비극 속 여성들의 연대는 메데이아와 같은 인간들을 계속해서 도와줄 존재를 남기려는 듯이 과거를 딛고 새로운 미래를 마주하는 오필리아의 모습으로 귀결된다.
다만 신화와 비극을 절묘하게 섞어 탄생시킨 오필리아의 새로운 이야기는 그 무게감에 비해 날카롭거나 힘 있게 와닿지는 못한다. 우선 주인공을 설명하는 방식이 너무 직접적이고, 지루하다. 첫 장면에서 오필리아는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말한 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 의견을 꺾지는 못하는 사람이라면서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이라고 선언하다시피 한다. 영화의 마지막도 비슷한 내용의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된다. 앞서 언급한 햄릿과의 언쟁이라든가 왕비의 시녀로 들어가게 되는 경위 등을 통해서도 새로운 오필리아의 모습을 유추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내레이션은 동어반복처럼 느껴지고, 굳이 삽입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또한 조급하다. 영화를 보다 보면 원작 속 굵직한 사건들에 가급적 모두 손을 대고 변형하려는 욕망이 강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결코 짧지 않은 <햄릿>의 앞뒤에 새로운 이야기까지 덧붙이다 보니 제한된 러닝타임 안에서 영화의 리듬이 굉장히 빠르다는 사실이다. 마치 RPG 게임에서 주인공을 따라 퀘스트를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건과 사건, 장면과 장면 사이의 시간 간격도 매우 넓은 가운데 인물들의 대사가 상당히 빠르게 오가다 보니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유추한다 하더라도 그 변화가 정확히 전달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오필리아>가 원작의 중심 메시지까지 삭제하는 급격한 재해석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더 두드러진다. 이번 영화에서는 햄릿의 명대사인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만날 수 없다. 아버지의 유령을 만난 후 있음과 없음, 선과 악,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뇌하고, 초연해지려고 마음 먹지만 끝내 그 이분법 안에서 고통받는 복잡한 인간이자, 그렇기에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었던 햄릿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햄릿, 레어티즈, 클로디어스가 얽히고설킨 결투와 거트루드와 마틸드의 복수극이 합쳐진 클라이맥스는 자연스러운 듯하면서도 묘하게 어색하고, 융화되지 않은 듯 느껴진다. 굳이 살려둔 햄릿과 레어티즈의 서사가 원작의 보존도 아니고 재해석도 아닌 애매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일까? 원작의 핵심 메시지를 챙기지 않을 것이라면 <햄릿>을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모티브로만 삼는 것이 나아 보인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 착안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을 새롭게 구성한 매들린 밀러의 소설 <아킬레우스의 노래>와 <키르케>처럼, 남성 주인공들과 관련된 원전의 내용을 더 쳐내고 그 빈자리를 더욱 온전히 세 여성들의 이야기로 채워 넣는 게 원작의 재해석이라는 취지에 더 적합해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상상력에 스스로 제동을 건 결과 비극을 신화적으로, 또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오필리아>는 미완의 시도로 남고 만다.
A(Acceptable, 무난함)
마지막 순간 몸을 사린 햄릿과 오필리아의 신화적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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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버스의 종결자 양자경에게 박수를
해외의 선풍적인 흥행과 호평을 발판으로 엊그제 시작된 제27회 부국제에서도 상영되어 12일 개봉을 앞두고 서서히 가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리뷰입니다. 국내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 잘 알려진 바 없는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가 상상한 형이상학적 다원우주를 향한 감정적이고 철학적이며 매우 기묘한 여행이 담겨있습니다. 이 여정에서 등장인물들의 인생은 끝은 끝이 아니었고, 시작은 시작이 아니었으니 근래 보지 못했던 영화적 상상력이 폭발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북미에서는 조금스럽게 아카데미 수상작으로 점쳐지는 만큼 극장을 찾아서 그 이유를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정보
우주는 생각보다 훨씬 거대해
테이블 넘쳐나는 영수증을 정리하며 세무 감사 준비로 지친 빨래방 주인 에블린, 미국에 방문한 아버지를 위해 중국의 신년 파티를 준비합니다. 이런 골아픈 상황에 하나뿐인 딸 조이는 커밍아웃 후 동성애자 여친 베키를 파티에 데려와 할아버지에게 소개하겠다고 하고 남편 웨이먼드는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지 이혼 얘기를 꺼내려 하죠. 다음날, 국세청에 감사를 위해 방문한 에블린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알파버스라 부르며 자신을 다른 버전의 웨이먼드라고 말하는 정신 나간 듯한 남편과 마주하고 이후 무엇이 현실인지도 모르는 멀티버스의 세계에 빠지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감독·각본: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출연진: 양자경, 스테파니 수, 키 호이 콴, 제이미 리 커티스, 제임스 홍 외 多
장르: 액션, 모험, 코미디│상영 시간: 140분
국가: 미국│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 더쿱디스트리뷰션│배급: 워터홀컴퍼니
공동제공: 비케이 시네윈, (주)노바미디어, (주)하이스트레인저, (주)아우라씨엔씨
평점: 기자·평론가 8.2, 로튼 토마토 신선도 95% 팝콘 89%, IMDB 8.1, 메타 스코어 81점
보러 가기: 개봉일 2022년 10월 12일, 아마존 프라임 개별 구매 가능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후기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난 너와 여기 있고 싶어
일명 ‘다니엘스’로 불리는 두 감독의 연출과 각본은 굉장히 영리합니다. 대부분의 액션 장면은 에블린의 가족들이 만나는 세무담당 디어드리의 사무실을 배경으로, 세계 여러 곳을 다닌 듯 실속 있게 촬영되었죠. 그곳에서 만나는 경비원 무리와의 일전은 웨이먼드를 맡은 키 호이 콴을 돋보이게 해주고, 어이없는 폭소들을 만들어내며 정신없는 난장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들은 세계관을 이해시키려는 장치로 넘치는 장난스러움에도 여러 우주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재미를 강조하는데 충분한 도움을 줍니다. 다른 자신과 링크가 되는 다양한 방식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도 유사 장르와의 확실한 차별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접해왔던 ‘매트릭스’부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더 원’, ‘화양연화’, ‘라따뚜이’등의 작품을 가져와 각각의 우주에 독특한 외관과 감각을 부여합니다. 이런 오마주들은 양자경의 홍콩 액션배우 시절로 비롯된 애정 어린 영상들로 이어지며 과거부터 그녀를 좋아했던 팬들에게 특별한 시간을 보여주죠. 뛰어난 무술 실력부터 코미디, 끝없는 깊은 풍부한 감정의 연기까지 그가 가진 폭넓은 재능의 배우임을 다시 상기시켜주며 우리 곁에 여전히 빛나고 있음을 조명합니다. 더불어 키 호이 콴 배우 역시 알파 버스 속에서 에블린을 공격자들로부터 보호하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상냥하지만 강한 남편 웨이먼드를 인상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독특한 커리어를 가진 배우라 이러한 설정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에블린과 웨이먼드의 관계를 통해 멀티버스가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핵심적 주제를 증명하는 것은 그들의 딸 조이로 세대 간의 분열을 나타냅니다. 태어났을 때의 기쁨도 잠시, 엄마의 모든 희생과 아메리칸드림의 실패는 큰 압력이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와 할아버지에게서 멀어져 가며 자신이 파탄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점들이 조부 투파키라는 다차원적인 인물을 통해 투영되고 모든 것을 공허 속으로 흡입하는 거대한 베이글 형태의 블랙홀로 형상화되어 크나큰 갈등임을 보여줍니다.
결국 감독은 그렇게 생긴 세대 간 트라우마가 복합화됨에 따라 어색한 거리가 생길 경우, 부모와 자식으로 계승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 인생 속 어느 순간의 선택을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빌려 비판과 거절보다 배려와 이해를 했다면, 혹은 반대 상황이었다면 겪었을 모든 시간이 소중히 여겨야 할 순간임을 보여주면서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사랑과 우정의 행복한 순간이 지금 우리가 있는 현재일지도 모른다는 즐거운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줍니다. 대형 블록버스터에 전혀 뒤지지 않은 시각적 효과와 창의적이면서도 몰입감 있는 이야기가 왜 주목받는지 입증해 주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즐거운 상상력을 경험하고 싶으시다면 꼭 한번 관람해 보시길 추천드리고 싶네요. :)
지극히 개인적인 한 줄 평 : 멀티버스 역행에서 찾은 일상의 사소함이 전하는 가장 독창적이고 현란한 유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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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손석구 혹은 전종서 배우를 좋아하시나요?!
작년부터 시작해서 올해까지 핫하디 핫한 배우를 뽑으라면 이 둘을 뽑을 수 있는데요.
이 둘이 만나 더욱더 재미있게 보게 된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현실적이면서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솔직 단백이 매력적인 영화
그럼,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멜로, 로맨스, 코미디
감독 : 정가영
각본 : 정가영, 왕혜지
출연진 : 전종서, 손석구
개봉일 : 2021년 11월 24일
평점 : 7.96
스트리밍 : tvN , NETFLIX, Whatch
기획 의도
일도 연애도 마음대로 되지 않은 스물아홉 '자영'(전종서) 전 남친과의 격한 이별 후 호기롭게 연애 은퇴를 선언했지만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못 이겨 최후의 보루인 데이팅 어플로
상대를 검색한다.
일도 연애도 호구 잡히기 일쑤인 서른셋'우리'(손석구) 뒤통수 제대로 맞은 연애의 아픔도 잠시
편집장으로부터 19금 칼럼을 떠맡게 되고
데이팅 어플에 반강제로 가입하게 된다.
그렇게 설 명절 아침!
이름, 이유, 마음 다 감추고 만난 '자영'과 '우리'
1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1일차부터 둘은 서로에게
급속도로 빠져들게 되고 연애인 듯 아닌 듯 미묘한 관계 속 누구 하나 속마음을
쉽게 터놓지 못하는데..
이게 연애가 아니면 도대체 뭔데?
발 빼려다 푹 빠졌다!
등장인물
함자영 | 전종서
방송국을 관두고 아버지의 와플 가게 일을 돕고 있다. 팟캐스트 사업을 위해
정부 지원을 신청한 상태.
데이팅 어플에서의 닉네임은 막자영.
박우리 | 손석구
잡지사에 입사한 문화창작과 출신.
19금 칼럼을 쓰라는 지시를 받고 반강제적으로
데이팅 어플에서의 이름은 직박구리.
여담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는 개봉 전 언론시사회를 가졌을 때부터 상당히 호평을 받으며 특히 전종서와 손석구의 연기 케미에 대해
호평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보편화되어 있는 연애 어플이라는 공감대가 많은 사람의 공감대가 한대 어우러지면서 솔직함으로 무장해서 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분명 15세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수위가 높은 19금 영화 같은 느낌이 난다.
그래서 오히려 더 좋다는 느낌이 대부분이다.
후기 및 결말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결말
우리(손석구)는 자영(전종서)이랑 있었던 이야기들을 칼럼으로 내면서 칼럼은 대박이 나지만, 죄책감으로 인해 괴로워하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편의점 알바를 하며 지내게 된다.
자영 또한 배신감으로 우리와 헤어지며 자신의 특기를 살려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지내게 된다.
이 둘은 첫 만남인 평양냉면집에서 만나게 되며
우리의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며 자영은 진심으로 용서해 준다. 이 둘의 화해와 다시 연애가 시작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손석구와 전종서라는 핫한 배우들의 만남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케미도 좋고 모든 게 다 좋았다.
매우 솔직한 이야기와 과감함을 더해줘서
조금 뻔뻔할 뻔한 이야기를 더욱더 잘 살려줘서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입니다.
한줄평 : 서른이 왜 서른인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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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독한 트라우마도 나아지게 되는 날이 온다.
시놉시스
타쿠미 아사는 중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친척인 코다이 마키오가 후견인이 돼주고 타쿠미 아사와 같이 살게 된다. 비참한 심정을 앓게 된 타쿠미 아사에게 중학교 졸업식이 다가오고 자신의 단짝 친구가 그 비밀을 말하게 된다.
결국 중학교 졸업식을 마치지 못하고 달려 나온 타쿠미 아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부모님이 있었던 과거만 바라볼 뿐... 그런데 타쿠미 아사를 곁에서 위로해 주는 코다이 마키오의 뜻밖의 행동에 따뜻함을 느끼는데? 과연 타쿠미 아사와 코다이 마키오는 서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타쿠미 아사는 외로움과 초조함을 달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친척인 코다이 마키오에게 어른이 되는 법이 무엇일까 물어보기도 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단짝 친구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밴드부 동아리에서 자신이 튀어 보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그러나 자신은 많이 사랑받지 못한 존재라고 생각이 들은 타쿠미 아사는 코다이 마키오처럼 언제나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코다이 마키오도 자신의 언니인 타쿠미 아사의 엄마를 싫어했고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 치부가 되어 기억에 깊이 박혀버렸다.
사실 코다이 마키오는 베스트셀러 소설가였으며 정작 자신은 고양이도 키우지 못하는 형편이었지만 자신의 친척이자 언니의 딸인 타쿠미 아사를 후견인으로 받아들이면서 많은 변화를 얻는다. 예전의 코다이 마키오의 삶은 정돈이 안된 지저분한 방의 책상에서 소설을 적는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된 게 타쿠미 아사의 엄마이자 자신의 언니 때문인데 코다이 마키오가 어렸을 적에 모욕을 많이 받았고 중학생 때 쓴 각본 20장을 버렸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비하하는 말도 서슴지 않게 들었고 그럼으로 인해 크면서 악착같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 원동력이 지금의 소설가를 만들어준 게 아니었을까 싶다.
타쿠미 아사와 코다이 마키오의 관계는 초반에는 서먹했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좋아진다. 타쿠미 아사가 코다이 마키오의 동창 친구를 만나면서 요리 레시피도 배우고 어른이 되는 법도 차차 알게 된다. 또한 코다이 마키오의 전 남자친구에게도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차차 어른이 되어가는 타쿠미 아사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어른 아이처럼 행동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이른 나이에 잃은 타쿠미 아사는 트라우마를 이겨내려 친구 간의 관계도 더 생각했고 주위 사람들의 눈치도 덜 보려고 노력한다. 상처가 깊은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을 했던 타쿠미 아사의 태도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 같다.
이 영화의 메세지는?
트라우마는 언제나 따라다니고 무섭다. 그걸 이겨내는 행동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큰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과거에서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언제나 비가 내릴 수만도 없고 언제나 해가 뜰 수많은 없다. 인생이란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없는 미지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자도 이 영화를 보면서 과거의 상처를 긍정적으로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용기도 얻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한줄평으로 남기자면?
트라우마의 싸움은 나 자신이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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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싹 속았수다 | 남녀노소 모두를 울린 구전의 위력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모두 울린 힘의 원천
솔직히 말해서 <폭싹 속았수다>를 볼 계획은 없었다. <우리들의 블루스>와 같은 드라마를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기 때문. 기대도 크지 않았다. 과거를 배경 삼아 펼쳐지는 박보검과 아이유의 청춘 로맨스 드라마 정도로 보였기 때문. 그렇지만 4막이 공개될 즈음에는 뒤늦게 몰아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궁금했다. 어떤 매력이 있길래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는 파급력을 보여주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첫인상은 예상대로 특별하지 않았다. 물론 '광례'(염혜란)의 모성애는 서글펐다. '애순'(아이유/문소리)과 '관식'(박보검/박해준)의 발칙한 로맨스도 귀여웠다. 딸의 인생을 지켜주려는 모성애, 가족을 책임지는 부성애, 가족을 못 지켰다는 죄책감이 한 데 모이면 눈물을 안 흘릴 수 없었다. 하지만 새롭지는 않았다. 전후 세대, 산업화 세대의 희생과 헌신을 조명한다는 점에서는 주인공 성별이 바뀐 제주도 버전 <국제시장> 같았다.
하지만 4막까지 보고 나니 비로소 <폭싹 속았수다>의 진가를 엿볼 수 있었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내용이 아닌 형식에 있었다. 특히 아이유가 맡은 내레이션이 핵심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점이자, 남녀노소 모두를 울린 힘의 원천이었다. 애순이가 아니라 금명이가 맡은 내레이션 덕분에 <폭싹 속았수다>는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풍부한 이야기와 의미를 구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금명이의 구전 동화
보통 영화나 드라마의 내레이션은 주인공의 내심을 들려주는 독백인 경우가 많다. <데드풀>처럼 주인공이 관객과 속마음을 공유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또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돌이켜 보는 장치로 활용되기도 한다. <폭싹 속았수다>의 내레이션은 이질적이다. 온갖 고생 끝에 시인이라는 어릴 적 꿈을 이룬 애순이 인생을 회고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금명이의 목소리로 애순의 인생을 들려준다.
이 이질감은 4막까지 다 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해소된다. 그제야 금명이의 내레이션이 필요했던 이유가 보인다. 1막에서 금명이는 부모님, 관식이와 애순의 로맨스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엄마, 고모와 치킨을 먹는 장면만 봐도 관식과 애순이 서로의 첫사랑이라는 사실, 자기 태명이 다이아인 이유를 전혀 모르는 눈치다. 자기 본적이 부산이라는 농담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
금명이는 관식이 입원한 후에야 부모의 사연을 깨닫는다. 관식은 딸에게 아내를 잘 부탁한다면서 밤을 새워 가며 그들의 로맨스와 인생사를 들려준다. 이 장면을 금명이의 내레이션과 연결 지어서 보면 <폭싹 속았수다>라는 이야기의 본질을 재발견할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일종의 '구전'이라는 것. 극 중 내레이션은 금명이 본인이 겪은 일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해주는 장치로 활용되었으니까.
사실 구전은 오래된 만큼 부정확한 기록 방식이다. 화자가 내용의 일부를 잊거나, 자기 뜻대로 왜곡하면서 원형과는 다른 결과물을 전달할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구전은 특별하다. 이야기를 듣는 청자도 화자가 될 수 있고, 화자가 자기 나름의 해석과 견해를 덧붙이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자율성 또한 구전의 본질적인 특성이기 때문이다.
뻔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신파
금명이의 내레이션도 마찬가지다. 금명이는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들려주지 않는다.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을, 특히 딸의 입장에서 부모의 인생을 관찰할 때 느낀 바를 섞는다. 애순이 금명이의 딸과 함께 출근하는 금명이를 베란다에서 배웅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금명이는 이 상황을 두고 딸이 손녀를 볼 때 어머니는 딸만 보고 있었다거나 엄마에 대한 기억이 어색한 표정의 사진으로만 남을지 몰랐다고 언급한다.
윗 세대의 이야기를 딸의 시점에서 읊는 구조는 다소 뻔한 <폭싹 속았수다>의 이야기를 되려 특별하게 만든다. <폭싹 속았수다>는 유독 세대를 뛰어넘는 접점과 연결고리를 강조하는 연출과 편집을 자주 선보인다. 임신한 채로 돈을 빌리러 다니는 애순과 금명이 오버랩되는 식이다. 또 상견례에서 예비 시부모에게 찌개를 떠주느라 바쁜 금명이와 시댁 아궁이 앞에서 하루 종일 음식하느라 바빴던 애순이가 겹쳐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구성은 자칫 인위적으로 느껴지고, 반복될수록 감흥이 덜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금명이의 목소리는 자칫 눈물을 짜내는 신파처럼 느껴질 수 있었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만든다. 내레이션을 통해 딸의 시점에서 보는 부모님의 이야기라는 전제를 마련해 두었기에, 모녀의 인생 중 유독 공통점이 자주 부각되어도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셈이다.
잊히는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다
구전이라는 형식은 <폭싹 속았수다>의 메시지도 뒷받침한다. 이 드라마는 할머니, 어머니 세대의 희생에 대한 헌사이자, 그들이 포기한 꿈을 잊지 말아 달라는 당부라 할 수 있다. 이 메시지는 구전의 본질과 친연성이 있다. 구전은 망각의 동물인 인간이 기억을 잃지 않으려고 고안한 전통적인 기록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구전의 형식미에 내포된 망각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곧 <폭싹 속았수다>의 메시지로 이어지는 셈이다.
임상춘 작가는 서서히 잊힐 수 있는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인생을 보상의 형태로 기억하려 한다. 실제로 드라마는 그들이 포기했던 꿈을 끝내 이뤄내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일례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시대에 태어나서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애순은 뒤늦게 보답받는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도 이뤘고, 딸에게는 다른 인생을 주고 싶다는 희망도 현실이 됐다. 금명이는 결혼도 취직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여성으로 거듭났으니까.
애순을 지킨 광례의 삶은 환생으로써 보상받는다. "책상머리에서 일하며 떵떵거리고 있나"라는 애순의 대사 직후 염혜란이 1인 2역을 맡은 편집장이 등장하는 것, 그녀가 애순의 원고를 읽고 "장하다"라고 말하는 것 모두 그녀가 광례의 환생임을 암시한다. 특히 그녀가 애순의 첫 시집을 출판해 주는 대목은 딸의 꿈을 마침내 이뤄주는 순간이자, 가장 감동적인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소 비현실적인 양관식 캐릭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거에는 사랑꾼인 관식보다 ‘부상길’(최대훈)처럼 가부장적인 아버지, 남편이 더 많았다. 즉, 관식의 존재는 과거에 상처 입은 어머니들을 위한 영화적 보상인 셈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상길이 악역으로 남는 대신 가족에게 다가서고, 가족들이 그의 변화를 받아주는 전개도 흥미롭다. 현실의 많은 아버지, 남편에게 안 늦었다며 변화를 촉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함께 살면 살아진다
망각될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구전의 위력은 공동체 차원에서도 발휘된다. 제주도의 해녀들을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정하고, 그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다. 소실되어 가는 제주도 특유의 삶의 양식을 기록으로 남겨둠과 동시에, 4.3 사건처럼 제주도에서 발생했으나 장기간 조명받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아도 환기하는 효과도 거뒀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구전의 형식미는 <폭싹 속았수다>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가 교조적이지 않고, 감동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이 드라마는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베풀었던 친절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되돌아오는 따뜻한 우연으로 가득하다. 애순과 관식이 가출 중에 베풀었던 호의는 20여 년 후 금명이의 절도 누명을 벗겨주고, 관식이 수십 년 전 목숨을 구해준 인연이 말년에 돈복이 되어 돌아온다.
드라마 대사를 빌리자면, 함께 살면 살아진다고 말하는 듯하다. 초코파이 포장지 아니면 보기 힘들어진 '이웃의 정'이라는 표현이 겉보기에는 하찮아도 실상은 위대하다는 것. 생활고 때문에 쓰려지려는 사람이나 아이를 일고 죽을 것 같은 사람도 살릴 만큼. 동업자 때문에 누명을 뒤집어쓴 채 찹쌀떡과 메밀묵을 파는 '은명이'(강유석)를 아버지와 장인, 이웃들이 함께 도와주는 모습에서 이 메시지는 더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의도치 않게 잊힌 이야기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폭싹 속았수다>가 의도치 않게 잊어버린 이야기도 있다. 전작 <쌈, 마이웨이>, <동백꽃 필 무렵>이 증명했듯이 임상춘 작가는 특히 딸의 시점에서 가족을 묘사하는 역량이 탁월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갱년기 호르몬과 딸의 임신 호르몬 중 후자가 이겼다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언제나 자기편이던 아빠가 처음으로 화를 내자 금명이의 얼굴이 삽시간에 서운함으로 가득해지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반면에 아들의 관점에서 가족을 그려내는 방식은 다소 투박하다. 일례로 <폭싹 속았수다>는 은명이의 입대를 혼전임신과 결혼이라는 해프닝을 보여주기 위한 포석으로 유머러스하게 짚고 넘어간다. 이는 어머니와 아들의 인생에서 군대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면 다소 단순한 묘사처럼 느껴진다. 군대를 접하지 못한 어머니들이 아들의 입대를 지켜볼 때 모자 관계가 변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포착하지 못하거나, 안 한 셈이다.
이는 더 나아가면 이상적이거나 획일적인 가족상만 부각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드라마가 철저히 '가족’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는 것에 비하면 가족의 다양한 형태와 구성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입체적인 갈등까지는 다루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잊히지 않을 드라마
그렇지만 유일한 옥에 티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화자와 청자 모두에게 자율성이 있는 구전의 형식을 차용한 덕분에 시청자가 드라마의 빈 공간, 부족한 지점을 알아서 채울 수 있으니까.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아도, 가족 관계나 사연이 비슷하지 않더라도, 화면 속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누나, 남동생으로부터 공통점이나 접점을 찾아낼 수 있는 자율성이 주어진 셈이다.
이러한 독특한 경험 덕분에 <폭싹 속았수다>는 단순히 애절하고 감동적인 가족 드라마를 뛰어넘어서 한 공동체를 아우르는 서사시로도 격상될 수 있다. 한국 현대사를 경험한 이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집단적 경험, 원형적 심상을 들려주는 구전 동화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폭싹 속았수다>는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이야기들 못지않게, 잊을 수 없는 드라마가 된 것만 같다.
과장하자면 현시대의 <토지>처럼도 보인다. 물론 한민족의 파란만장한 근세사와 당대 사람들의 일상을 총망라한 <토지>의 방대함, 생동감, 완성도를 따라가지는 못한다. 하지만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토지>의 역할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전쟁 이후로 반 세기가 넘는 기간을 경험한 현시대의 시청자에게는 <폭싹 속았수다>가 <토지>보다 친숙하고, 더 큰 울림을 줄 테니까.
Outstanding 특출남
20세기를 지나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구전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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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1월 1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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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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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지옥 결말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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