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12-03 18:32:13
물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영화 <물비늘> 리뷰

SYNOPSIS.
‘예분’은 손녀 ‘수정’을 사고로 잃은 뒤 삶이 1년 전 그날에 멈춰버렸다.
손녀의 유해를 찾기 위해 매일 같이 강가에 나가는 ‘예분’ 앞에 손녀의 절친 ‘지윤’이 나타난다.
두 사람에겐 들어야 할 진실이 있고, 삼켜야 할 비밀이 있는데…
진실과 비밀 사이 깊은 슬픔이 일렁인다.

#각자의 물결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이 스쳐간 자리는 그 이전과 영영 같을 수 없다. 설령 떠나간 이가 나에게 아주 작은 조각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아주 작은 구멍이 난 유리창이어도, 깨진 곳 없는 유리창과는 같을 수 없다. 그 작은 구멍 사이로 바람이 숭숭 불어와, 누군가의 빈 자리를 절감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아주 작은 순간일지언정.
하물며 이 이야기 속 예분과 지윤에게는. 손녀를 잃은 할머니 예분, 가장 절친한 친구를 잃은 중학생 지윤. 이들은 다른 부위에 난 같은 상처를 안고, 매일 다른 물로 뛰어든다. 예분은 손녀를 삼킨 강에 금속 탐지기를 들고 나가 손녀의 유품으로 추정되는 것을 매일 찾고, 지윤은 친구와 함께 있던 수영장에 매일 들어간다. 하나의 상실이 남긴 각자의 상처, 각자의 물결 속에서 이들은 매일 허우적거리고 있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이들이 매일 뛰어드는 물 속의 축축함이 관객석까지 넘실넘실 전해진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문장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중간중간 교차하는 과거의 장면들을 보면서, 예분과 지윤의 시간을 순서대로 톺아볼수록 더욱 축축해진다. 그들의 과거와 그들의 현재, 그 사이 이들에게 있었을 무수한 감정들이 겹겹이 전해져서다.
#중첩되는 소리 속에서
이렇게 감정을 겹겹이 전달하는 데에는 소리가 큰 몫을 한다. 수정이 사고를 겪은 당일부터, 슬픔의 소리는 다른 소리들과 중첩되고 혼재되기 시작한다. 거센 빗소리, 경찰차 사이렌 소리, 수정을 잃은 엄마의 울음 소리...들이 어지러이 섞여들면서. 아주 거대한 슬픔의 소리는 다른 소리들을 쉽게 삼켜 슬픔으로 중첩시키고, 우리를 먹먹하게 한다. 예분의 금속 탐지기 소리처럼, 때로는 진실을 찾으려 날카롭게 세운 소리가 반대로 귀를 막기도 한다.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할 만큼 했다는 말을 격렬하게 거부하며 끊임없이 진실을 찾아 헤매는 예분처럼.

사실 예분에게, 지윤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진실을 드러내고 가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깊고 진득한 자책을 덜어낼 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이를 잃어버린 빈 자리를 돌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인간에게는 꼭 필요하니까. 그토록 숱하게 죽은 몸을 어루만지고, 누군가의 떠난 자리를 정리하며 살았던 예분이지만 정작 손녀의 죽음과 거기 어린 자기 감정들을 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토록 함께 뛰어들던 물 속, 그 익숙한 감각 안에서 친구를 잃은, 이어지는 상실 속에서 도저히 여유가 없는 지윤 또한 마찬가지다.

#물결도 소리도 없이 고요하게
이러한 두 사람이 부딪쳐 파장이 이는 자리마다 삶과 죽음이 물비늘처럼 몸을 뒤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치열하게 마주한 것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찾고자 혹은 감추고자 한 것이 정말 진실이었을까? 진짜 필요했던 것이 과연 진실이었을까? 가까워지고 다가서는 두 사람의 장면들을 통해, 두 사람의 거리 사이에서, 영화는 그 답을 조심스럽게 피워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죽음 이후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뭐부터 버려야 돼요?" 묻는 지윤에게 "남길 것부터 정리해야지." 말하는 예분의 차분한 어투다. 그렇게 죽음의 대처법을 가르치고서는 정작 지윤을 데려가는 곳이 병원과 식당으로, 죽음에 앞서 삶부터 가르친다는 점 또한.
죽음과 삶은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맞붙어 있다. 삶은 애초에 그렇게, 무수한 이들의 삶과 죽음이 조각조각 물비늘처럼 맞붙어 강을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하나의 물비늘, 그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지도. 그러나 설령 이 하나하나가 아무 것도 아닌 순간이라 해도, 강은 그런 식의 물비늘이 모여 반짝반짝 흘러 간다.
그렇게 끊임없이 몸을 뒤채는 만남과 헤어짐, 이해와 오해, 그 틈바구니 삶이라는 곳에 우리 그저 소리 없이 나란히 눕는다면. 다른 베개, 다른 이불, 다른 부위의 같은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그대로, 그저 같은 요 위에 나란히 눕는다면. 그때 비로소 이 마음에서 축축하고 눅눅한 습기를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사실, 모든 축축한 것을 마르게 만드는 햇볕이니까.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 개봉은 12월 6일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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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크릿 윈도우
시크릿 윈도우
스티븐 킹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스티븐 킹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만 50편이 넘는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공포, 호러에 바탕을 둔 장르소설로 분류하지만, 환타지, SF, 추리, 심리, 액션 등 거의 모든 장르를 넘나들기 때문에, 스티븐 킹의 작품 세계를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
'리타헤이우드와 쇼생크 탈출'처럼, 소설보다 영화가 더 유명한 경우도 있지만,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 가운데 성공한 작품을 보면 '캐리', '미저리', '쇼생크 탈출'처럼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한국에서 번역 출판산 스티븐 킹의 소설을 거의 다 읽은 독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샤이닝'이고, '샤이닝'과 같은 계열의 심리 스릴러 작품들이 다른 작품들보다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 '시크릿 윈도우'도 '샤이닝', '미저리'와 같은 심리 스릴러에 속하며, 주인공의 정신 분열을 영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물론, 중반 이후에는 관객이 이야기의 전개를 눈치 챌 수 있어 드라마틱한 반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원작 소설은 '소설을 훔친 남자 Secret Window, Secret Garden'로 중편 소설이며, 소설가 '모튼'을 찾아오는 남자 '슈터'와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영화보다는 소설을 읽는 재미가 더 크다. 스티븐 킹의 최대 장기인 심리 묘사를 통해 독자는 주인공의 감정에 거의 동질화할 정도로 깊게 이입하며, 주인공이 왜 이상하게 변해가는지, 서서히 광기를 띄며 미치광이로 변해가는 과정을 공감하게 된다.
모튼은 뉴욕주에 있는 여름 별장에서 살고 있다. 그의 집을 청소하고, 식사까지 챙겨주는 마음 좋은 아주머니 - 당연히 임금을 준다 - 가 있고, 그는 노트북 컴퓨터에 워드를 띄워 놓고 소설을 쓰려 하지만, 소설은 쉽게 써지지 않는다. 하루 하루를 빈둥거리며 낮잠을 자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모튼.
어느 날, 누군가 찾아온다.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키가 크며, 조금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불쑥 원고 다발을 내밀며, 내 소설을 표절한 파렴치한 놈이라고 모튼을 향해 소리지른다. 모튼은 황당하고 불안하다. 자신은 결코 다른 사람의 작품을 표절한 적이 없다고 맹세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남자는 표절한 작품을 원래대로 돌려 놓으라고 협박한다.
'슈터' 역을 하는 배우는 '존 터투로'로, 코엔 형제의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오, 형제여, 어디로 가는가'에서도 조지 클루니와 함께 중요한 역을 맡은 '피트'가 존 터투로인데, 코미디 영화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연기가 돋보이지만, 이 영화처럼 심리 스릴러 영화에서는 진지하고 무서운 연기를 보여주는 뛰어난 배우다.
주인공 '모튼'을 연기하는 조니 뎁은 '팀 버튼'의 영화에 자주 출연했고,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에도 나온다. '가위손'으로 이름을 크게 알린 이후, 헐리우드 최고 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그가 진지하면서도 분열적 인물을 연기하는 걸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샤이닝'에서는 잭 토렌스가 '오버룩 호텔'에서 관리인으로 가족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극심한 고립감, 호텔에 존재하는 거대한 악령의 영향,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 소설을 쓰지 못하는 초조함 등이 뒤섞이면서 미치광이로 변해가는 과정을 눈부시게 썼다면, 이 작품에서는 외부의 악령이나 미지의 힘에 의한 영향 없이,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분열만으로 변해가는 개인의 정신과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모튼이 여름 별장에서 지내는 건, 아내와의 이혼 수속 때문에 별거 중이라 그렇다. 그는 뉴욕에 있는 집을 나와 이곳 여름 별장에서 혼자 지낸다. 아내 에이미는 새로 만난 남자 테드와 살고 있으며, 이혼 수속은 모튼이 도장만 찍으면 끝나는 상황인데, 모튼은 선뜻 도장을 찍지 못하고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튼은 아내의 불륜 현장을 급습해 에이미와 테드가 모텔에서 벌거벗고 있는 장면을 봤다. 에이미는 엄연히 모튼과 결혼한 상태로, 모르는 남자와 불륜을 저지른 것이다. 모튼은 심한 배신감과 분노로 피가 끓었지만,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날 갑자기 '슈터'라는 남자가 찾아와 자기 소설을 표절했다는 말을 하니, 모튼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슈터'가 타고 온 자동차 번호를 보니 '미시시피주'였다. 남쪽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왔다면 돈이나 뜯어낼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양아치는 아닌 듯 하고, 무엇보다 '슈터'의 표정은 진지하고 심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모튼에게 유리했다. 모튼이 '시크릿 윈도우'를 발표한 시기는 1992년이었고, 슈터가 자기 작품을 표절했다고 밝힌 창작 연도는 1994년이었으므로, 오히려 슈터가 모튼의 작품을 표절했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슈터는 모튼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증거를 가져오라고 다그친다. 그러면서 모튼이 키우던 개를 죽이고, 모튼과 슈터가 대화를 나눌 때 차를 타고 지나가던 마을 주민도 죽였으며, 모튼의 변호사도 살해한다. 그 모든 것이 모튼이 증거를 내놓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심지어 모튼의 아내 에이미까지도 그냥 두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그러면서 에이미가 살고 있는 집에 불을 질러 집이 모두 타버리고, 에이미는 애인 테드와 함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다.
이 와중에 에이미와 테드는 이혼 협상을 위해 변호사와 대동해 모튼을 만나지만, 모튼은 이혼서류에 싸인을 해주지 않고 버틴다. 에이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모튼의 여름 별장으로 달려가 이혼 서류에 싸인하라고 말하는데, 이때 모튼은 사라지고, '슈터'가 나타난다. 모튼의 모습으로.
모튼은 아내의 불륜으로 증오가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는 한때 잘 나가던 소설가였으나 그가 소설을 쓰느라 보내는 시간 동안 아내 에이미는 마치 버림받은 사람처럼 소외당하고 있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에이미가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된 것도 오로지 에이미의 탓만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모튼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다시 잘 나가는 소설가가 되려고 새로운 작품을 쓰려 하지만, 소설은 마음대로 써지는 것이 아니어서 몹시 초조하고 답답한 심정이다. 여기에 아내의 불륜이 준 충격으로 그의 내면은 이미 분열되고 있었고, 미움, 증오, 초조, 우울한 감정이 뒤엉켜 증폭하면서 그 내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자아를 만든다. 그가 바로 '슈터'다.
실제로 '다중인격'과 관련한 사례는 많은데, '싸이빌'에서는 주인공이 열여덟 명의 인격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다중인격자의 특성은 주로 어렸을 때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의 자아로는 그 고통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고통을 상쇄하고,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전혀 다른 인격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모튼의 경우, 다중인격으로 보기 어렵다. 그가 만든 '슈터'라는 인물은 자신이 하지 못하는 더러운 일을 맡아서 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그것이 내면의 분열을 통해 새로운 인격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기 보다는, 오히려 매우 영리하고 교활한 방법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마치 자신이 아닌, 정신분열 상태에서 다른 존재가 나타나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보이기 위한 계획된 행동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즉, 모튼은 매우 뛰어난 싸이코패스이거나 머리 좋은 살인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경찰의 추적을 받으며, 용의자로 분류되지만 '슈터'가 저지른 여러 건의 살인은 결정적으로 증거가 없다.
슈터를 보지 못했다는 이웃 주민과 변호사는 차와 함께 강물에 가라앉았고, 아내 에이미는 집 뒤뜰에 묻혔다. 에이미의 실종은 테드의 증언으로 모튼의 여름 별장으로 갔다는 것이 확실해졌지만,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정황이 모튼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섣불리 체포, 기소를 할 수 없는 것이 경찰의 딜레마인 것이다.
모튼은 자신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광기를 분명 느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다는 걸 알았고, 에이미의 배신으로 더욱 확실해졌다. 소설은 써지지 않고, 작가의 명성은 사라졌으며, 미래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변호사는 시간당 2백 달러를 주어야 하고, 이혼하면서 재산도 거의 다 사라졌다. 모튼에게 남은 것은 고통과 증오, 분노 뿐이고, 스스로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면서 극단적으로 행동하는데, 그는 또한 냉정한 계산으로 일종의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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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선과 넘지 못한 마음
<공동경비구역 JSA>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북한 초소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건 현장에는 총에 맞아 사망한 북한군 정우진과 그 옆에 쓰러져 있는 오경필이 있었고, 이 사건의 용의자로 남한군 이수혁이 지목된다.
그러나 이수혁은 아무런 진술 없이 묵묵히 수사에 임한다.
사건의 진실은 다음과 같다. 북한군 정우진과 오경필, 남한군 이수혁과 남성식은 남과 북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서 우정을 나누는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공기놀이를 하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또 다른 북한군 병사에 의해 발각되고 만다. 그 순간, 오경필의 설득으로 서로 겨눴던 총구를 내리지만, 무전기로 향하는 북한군의 손짓을 총을 꺼내려는 것으로 오인한 남성식이 먼저 방아쇠를 당긴다. 결국, 네 사람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비극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영화는 분단된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아픔과 트라우마를 깊이 있게 건드린다. 함께 웃고 지냈던 시간, 그리고 인간적인 정은 '적'이라는 이름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아무리 가까웠던 사이도 '북한군'과 '남한군'이라는 소속이 그들을 다시금 적대적인 위치로 돌려세운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투입된 중립국 수사관 소피는 진실에 알게 된 후 이렇게 말한다. ‘정우진을 죽게 한 것은 남성식의 총알이 아니라, 그보다 몇 초 먼저 발사된 이수혁의 총알이었다’고. 하지만 그녀는 이어 말한다. ‘누가 몇 초 먼저 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이다.
이미 수많은 총탄을 맞은 정우진에게 그런 차이는 의미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수혁에게는 그 ‘몇 초’가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게 할 만큼 큰 무게였다. 이 짧은 장면은 영화 전체를 요약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느끼는 인간적인 정, 결국에 적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 앞에서 무너지는 우리, 그리고 남겨진 죄책감. 이 모든 복잡한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위 장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하나의 프레임 안에 함께 서 있는 오경필과 이수혁의 모습을 보여준다.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이 장면은,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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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물 속에 녹아든 미국 사회의 풍자
2019년 겨울왕국이 영화관을 지배하고 있을 때 입소문이 퍼지던 작품 하나가 있었다. 바로 영화 <나이브스 아웃>이다. 추리물인데 그렇게들 재밌다고 해서 N차 관람각이라기에 기대를 했으나 솔직히 추리물은 그저 그랬고, 오히려 사회 풍자가 군데군데 있어 재밌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시놉시스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각 85세 생일에 숨친 채 발견된다. 그의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경찰과 함께 탐정 브누아 블랑이 파견된다. 그렇게 집안 사람들을 한 명씩 조사하던 중 탐정 블랑은 간병인 마르타를 사건의 중심에 두며 수사를 펼쳐나간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나이브스 아웃>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기존 추리물을 한 데 모아놓은 듯한 느낌
영화 <나이브스 아웃>을 보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이 작품이 원작이 있는 작품인가?였다. 그만큼 익숙했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등장인물을 용의선상에 올려둔다는 점, 단조롭지 않고 굉장히 다양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점, 정치적 풍자나 약물오용, 그리고 히피문화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이 많이 생각났다. 또한 사건의 대략적인 구조를 알려준 후 이를 추적해나가면서 퍼즐을 끼워맞추는 블랑의 수사 방법은 형사 콜롬보과 굉장히 유사했다.
지루함과 긴장감의 핑퐁게임
그래서 그런지 영화 초반에는 조금 지루했다. 뭐 이렇게 떡밥들을 많이 뿌려놓나 싶었다. 사건의 진전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아서 좀 휘몰아쳤으면 좋겠는데 하는 감정이 종종 들었다.
중반부터는 간병인 마르타가 범인임을 단정지어 놓고 사건을 전개해나간다. 그래서 마르타는 자신이 범인임을 감추기 위해 블랑과 함께 수사를 하면서 수사를 방해한다. 그런데 뭔가 퍼즐조각이 안 맞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도대체 이 쎄한 감정은 무엇일까? 이미 범인이 밝혀졌는데 이 찝찝함은 무엇일까? 하면서 긴장감이 감도는데 영화 전반적으로 텐션이 낮게 흘러가서 함께 공존하기 힘들거라 생각했던 지루함이 느껴졌다. 이 부조화는 도대체 무엇인가? 물음표는 머릿 속에 자꾸 뜨는데 은근히 지루했던 작품이었다.
블랙코미디 덕에 웃을 수 있었던
지루함과 긴장감이라는 오묘한 감정 속에서 정말 재밌게 웃을 수 있었던 부분은 블랙코미디가 다량으로 등장했던 부분이었다. 아직도 생각하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굉장히 고전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요소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해서 이 작품이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할런의 엄청난 재난으로 인해 야기된 가족 간의 깊은 불화가 주요 소재인 이 작품에서 인플루언서 조니와 백인 우월주의에 물든 제이콥, 인종차별주의자 리처드 등 각각의 캐릭터에 미국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사회, 정치적 현안들을 부여해 익살스럽게 풍자하고 있어서 작품을 보는 데 재미가 있었다. 특히 할런의 85세 생일에 벌어진 이민자에 대한 토론이야기는 정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합법적인 이민자들의 성실함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이 기여를 하지 않고 들의 세금만 축내는 불법 이민자들은 마땅히 추방되어야 한다는 리처드의 모습은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집안의 이단아였던 랜섬의 행동을 보고 자신들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할런의 가족들을 볼 때는 점잖게 자신들을 포장하느라 참 애썼다는 측은한 감정까지 느낄 수 있었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기대만큼 엄처난 재미를 안겨주진 않았지만 블랙코미디를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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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북유럽 복수극의 창조적 파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동으로 파견되어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덴마크군 군인 '마르쿠스(매즈 미켈슨)'. 그는 아내와 딸 '마틸드(안드레아 하이크 가데버그)'가 열차 충돌 사고에 휘말렸고, 아내가 끝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한다. 좀처럼 아내와의 사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지내던 그의 앞에 어느 날 아내와 같은 열차 칸에 탔던 통계학자 '오토(니콜라이 리 카스)'가 등장한다. 그는 데이터 분석가 '에멘할러(니콜라스 브로)', 해커 '렌나르트(라르스 브리그만)'와 함께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열차 충돌 사고가 계획된 범죄였음을 알려준다. 이에 분노로 가득 찬 마르쿠스는 직접 범인들을 심판해 아내의 복수를 이루려 한다.
여기까지가 덴마크의 국민배우 매즈 미켈슨이 주연을 맡은 앤더스 토마스 옌센 감독의 영화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의 줄거리다. 사실 줄거리만 보면 이 작품은 리암 니슨의 대표작인 <테이큰> 시리즈나 최근에 개봉한 <캐시트럭>을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복수극이다. 이들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 혹은 사랑하는 이의 신체나 정신을 파괴할 정도로 강력한 범죄를 경험한다. 이후 주인공은 자신의 피해를 되갚아 주기 위해서 범인을 추적하고 계획을 세운다. 마지막으로 그는 범인과 대결하고 피비린내 나는 계획을 실천에 옮긴다.
하지만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를 앞서 언급한 예시들과 동일한 범주에 놓는 것은 부적절하다. 영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는 복수의 결과를 보여주기보다는 일반적인 상업 영화 속 복수극의 단계를 뒤틀어 복수의 이면과 본질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이를 위해 옌센 감독은 복수극의 공식을 파괴하는 네 장의 카드를 꺼내 보인다.
첫 번째 카드는 복수극의 단축과 서스펜스의 실종이다. 작중 복수의 계획과 범인의 추적은 막힘 없이 진행된다. 마르쿠스는 직접적인 범인으로 판단한 이를 이렇다 할 저항 없이 죽인다. 범인이 속한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라는 이름의 갱단 구성원과 보스가 누구인지, 그들의 집합 장소와 시간을 알아내는 작업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궁극적인 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갱단 보스와의 대결도 총알이 그의 머리에 꽂히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고 깔끔하게 끝난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숙명의 대결은 없다. 그 결과 영화는 러닝타임을 30분가량 남겨둔 상태에서 이미 마르쿠스의 복수를 일단락시킨다.
두 번째 카드로 영화는 일단 복수가 끝난 극의 전개를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중 어느 것에도 도달하지 못한 충격과 혼란 속에 빠트리면서 복수의 이면과 의미에 대한 고찰을 풀어놓는다. 성공적인 복수를 자축하던 찰나에 마르쿠스와 동료들은 지나치게 수월히 진행된 복수가 열차 충돌 사건과 무관한 이를 죽이고, 관련 없는 갱단을 공격하는 것으로 귀결되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들의 복수는 완벽한 헛발질이었고, 더 나아가 그들의 위치를 복수의 주체로부터 아무 이유 없이 봉변을 당한 갱단의 복수 대상으로 뒤바꿨을 뿐이다.
그 순간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마르쿠스의 반응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깊이 절망한다. 단지 자신이 잃은 것을 되갚아 주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에게 복수는 구원을 얻기 위한 속죄 행위이기 때문이다. 중동 파견 군인이라서 아내와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그들이 사고가 발생할 기차를 타는 원인을 직간접적으로 제공했다는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던 그. 그의 입장에서 성공한 복수의 아이러니한 실패는 아내와 딸에게 사죄하고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길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더해 그가 복수만을 바라보며 아등바등한 모든 시간이 무의미하다는 진실도 그의 절규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사실 마르쿠스의 복수극은 명백한 팩트(fact)가 아닌 한 가지 전제 위에서 이루어진다. 바로 모든 사건에는 우연이 아닌 인과관계가 존재하며, 그 인과관계를 파악하면 특정 사건을 예측할 수 있고 동시에 특정 사건의 원인도 밝혀낼 수 있다는 가설이다. 그래서 오토, 렌나르트, 에멘할러는 마르쿠스에게 수상한 탑승객의 행적이나 갱단의 보스와 관련된 이슈 등을 근거로 내밀며 단순한 사고로 보이는 열차 충돌 사건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정되었던 테러라고 주장할 수 있었고, 이는 그가 복수에 나서는 방아쇠가 된다.
따라서 그들의 총알이 과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을 깨닫는 순간, 열차 충돌 사건이 테러가 아니라 의도가 섞이지 않은 우연이 낳은 사고라는 것을 알아챈 순간 복수는 역으로 그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다. 복수는 본질적으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현재에 전복하는 행위이기에 과거의 사건들이 현재 상황에 영향을 끼쳤다는 근거가 있어야만 복수의 대상이 특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는 마르쿠스의 절규를 통해 복수극을 지탱하는 전제를 파괴하고 기존 복수극의 전개와 구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의미심장하게 연출되었던 자전거 도둑 사건이나 값비싼 샌드위치를 그냥 버려버리던 수상한 남자 등도 이 시점부터는 전부 아무 의미 없는 맥거핀이 되어버린다.
대신 옌센 감독은 복수극의 의미가 없어진 자리에 한 편의 힐링 드라마를 채워 넣는 세 번째 카드를 꺼낸다. 그 중심에는 마르쿠스와 함께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오토, 렌나르트, 에멘할러 삼인방이 위치한다. 그들은 마르쿠스와 계획을 세우고 범인을 찾아다니는 동안 예상치 못한 기행을 하나씩 저지르면서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마주한다. 원하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신체적 콤플렉스에 시달린 이, 헛간에서 가정폭력을 경험한 피해자, 자신의 실수로 가족을 떠나보낸 아버지까지. 여기까지만 보면 그들이 처한 상황은 아내와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분노로 삭히지 못해 폭력을 자제하지 못하는 마르쿠스와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아픔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르쿠스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서로에게, 또 한 팀을 이룬 마르쿠스와도 자신들의 상처를 공유한다.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아닌 척 서로 신경 써주며 웃음과 유머로 고통과 상처를 보듬어 안으며 마치 가족과도 관계를 이룬다. 이는 삼인방 서로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렌나르트와 에멘할러는 자신들이 받은 심리치료를 바탕으로 아버지 마르쿠스와의 관계가 무너지진 마틸드의 콤플렉스를 발견하고 치유해주며, 오토는 엄마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그녀의 죄책감을 덜어준다.
영화에서도 언급된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슬픔의 5단계' 안에서 삼인방과 마르크스의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삼인방은 상실과 슬픔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새롭게 살아가는 법, 즉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보듬어주는 방법을 깨우치고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중 마지막인 '수용' 단계로 넘어가 있다. 반면에 마르쿠스는 여전히 절망과 슬픔 같은 강렬한 감정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우울' 단계에 머무르는 데 그친다. 다만 그 역시 마지막에는 오토에게 안겨 울면서 자신이 외면하던 과거와 진실을 받아들이고,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온전히 상처와 고통을 나누고 서로 보호하는 관계에까지 이른다. 이는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가 이미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형체 없는 대상을 쫓는 복수극 대신, 현실의 아픔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면서 보다 나은 미래를 다짐하는 힐링 드라마로 거듭나려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카드로 영화는 덴마크, 곧 북유럽권의 고유한 정서를 부각하며 분량의 절반 가량을 맥거핀으로 만드는 플롯을 매끄럽게 다듬는다. 그 독특한 분위기는 비장함과 황량함, 그리고 이를 버텨내는 일상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뛰어난 북유럽 범죄소설에 주는 유리열쇠상을 '해리 홀레' 시리즈로 수상한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가 2014년 방한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작품이 "북유럽 특유의 슬픈 감성"을 담고 있으며, 그 감성은 "커다란 재난이 일어나서 겪게 되는 슬픔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축적된 슬픔"이고, 사람들이 "그 슬픔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소설에 주로 담는다고 밝힌 것이 단적인 예시다. 이러한 북유럽 고유의 감성은 일 년 내내 춥고 거친 황량한 환경에서 생존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심성적 측면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동일한 정서는 북유럽 신화에서도 느낄 수 있다. 북유럽 신화는 신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극복할 수 없는 세계의 종말인 라그나로크에서 대부분의 신이 사망하는 결말을 맺는다. 신보다 운명이 더 우위에 있고, 신이라 해도 세계의 운명을 극복할 힘은 없다. 단지 운명과 현재를 받아들이면서 견뎌낼 뿐이다. 다만 북유럽 신화는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라그나로크를 피한 몇몇의 신과 단 한 쌍의 인간이 새롭게 황금시대를 만들 것이라고 노래하며 종말 그 너머에 있을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만큼은 간직한다. 이처럼 운명에의 순응과 실낱같은 기대가 담긴 신화는 신과 운명에 저항하는 영웅을 사랑하는 그리스 신화 및 비극의 전통과 뚜렷이 구분된다.
영화는 이러한 감정들을 주인공들의 서사에 깊숙이 녹여낸다. 성당 장례식에서 모든 비극은 우연이라는 추모사를 모두 부정하며, 신과 산타클로스 따위는 없다던 마르쿠스가 태도를 바꾸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피에타 상처럼 동료의 품에 안기는 그는 아내의 죽음을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연에 가까운 확률이 빚어내는 현실과 운명에 순응한다. 그러면서도 세계의 멸망 속에서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희망과 낙관을 버리지 않는 신화처럼, 마르쿠스와 동료들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날에 프렌치 호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각자의 슬픔과 아픔을 딛고 지금보다 따뜻한 미래를 다짐한다. 이처럼 북유럽만의 감성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마무리와 함께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는 복수극이라는 껍질을 깨부수면서 한 편의 진중하고 따뜻한 힐링 드라마로 온전히 탈바꿈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플롯의 공식과 장르의 관습을 깨부수는 노르딕 복수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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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유리병 편지에 답장을
감독] 서아현
출연] 송강원, 서아현
시놉시스] 한국 사회에서 이성애자 여성이자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현이 절친한 친구이자 동성애자 남성인 강원과 우정을 쌓는다. 영화는 서로 다른 성 정체성과 삶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 크고 작은 다름과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공존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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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편지를 받다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편지를 받았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연자인 ‘강원’ 혹은 출연자이자 감독인 ‘아현’, 혹 다른 누군가일까요? 발신자를 알 수 없으니 이 편지를 유리병 편지라고 해 두겠습니다. 유리병 편지가 뭔지 아시나요? 편지를 유리병에 담아 봉해 바다에 띄워 보내는, 수신자와 발신자를 알 수 없는 편지입니다. 20세기의 낭만 같은 것이 묻어 있죠.
익명의 편지를 받고 또 누군가에게 답장을 건네는 심경으로 적어 봅니다. 일단 저에 대해 말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당신이 이 글을 읽을지, 이 영화를 볼 지 정할 수 있을 테니까. 저는 굳이 따지자면 이 영화의 아현처럼, ‘기독교인 이성애자 여성’이라는 축에 서 있습니다. 교회 품에서 자랐고, 지금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가장 따뜻한 말도, 가장 징그러운 말도 교회에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동성애자를 대하는 태도에는 꽤 오래 의문을 품어 왔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인데, 왜 콕 집어 동성애자만 배척하는 걸까요? 왜 동성애자는 ‘용서받지 못할 죄’ 취급을 받는 걸까요? 음란과 탐욕도 함께 기록된 죄인데, 왜 거기에는 아무도 돌을 던지지 않는 걸까요?
비슷한 의문을 품어 보았다면, 아니 꼭 의문이 아니어도 호감 혹은 멸시 어떤 감정이라도 품어 보았다면, 무색무취가 아닌 다른 색깔이 당신 안에 있다면 한 번쯤 보시면 어떨까 권해 보고 싶습니다. 결혼과 연애, 종교와 사랑. 스스로를 동성애자라 부르든 기독교인이라 부르든,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가 아닌가요? 한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생각해 보아서 나쁠 건 없습니다.
우리는 닮아 있다
‘기독교인 이성애자 여성’이라는 점에서 아현과 비슷한 축에 서 있었다고 말했죠. 착잡한 표정의 아현 뒤로 그의 방을 보았습니다. 영화 <레토> 미니 포스터, 바다가 그려진 엽서, 세이브더칠드런 마크. 비슷한 결의 그림들이 제 방 벽에도 붙어 있습니다. 이전의 세상과 섞이지 못하는 착잡함 또한, 제가 최근 몇몇 기독교인 친구들과 말해왔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한편 강원을 보면서도 저와 비슷한 축에 서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특히 “공동체community”를 계속 이야기하는 그가, 공동체의 힘을 믿는다는 말이, 상처받았을 때에도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던 그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배운 좋은 말 중에서도 손꼽아 좋아하는 말이 ‘공동체’거든요.
아현과 강원처럼, 우리 같이 친구 되어 고민하면 안 될까 하는 말랑말랑한 생각이 올라옵니다. 나와 다른 이들과 섞이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정말 두려운 건 섞이지 못하는 감각입니다. 돌이켜 보면 나와 다른 사람들과 서로 마음을 열고 섞이는 순간의 대화가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많은 공통점이 있어도 차돌처럼 단단한 마음 앞에서는 결국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고요. 상대가 절 볼 때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래서 쓴 답장
모두가 모두의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랬다면 여기가 천국이겠죠. 가끔 반목하거나 튕겨 나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순간도 있습니다. 상처받고 싶지 않고, 동시에 상처 주는 것조차 지긋지긋해서 도망치고 외면하는 마음도 알고 있잖아요. 그러나 그 최후의 순간까지는, 서로의 다양한 면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서로 반목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만으로도 이미 너무 어려우니까요. 각자 소용돌이를 안고 걸어가는 세상이니까요.
몇 년에 걸쳐 오랫동안 강원을 담은 영상들을 보며, 아현은 물론 강원 본인조차 자신에게 스스로 몰랐던 여러 가지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떤 일면들은 카메라의 시선으로 찬찬히 담을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런 소중한 유리병 편지를 받게 되어 고마운 마음입니다. 웃고 울고 각양각색의 감정들을 오랜 시간 동안,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서 담아 준 두 사람에게 답장할 수 있다면… 짚어주어 고마운 지점이었다고 인사하고 싶습니다. 교회에서는 물론 퀴어 퍼레이드에서도 들리지 않을 ‘회색’의 이야기, 소중히 건네받았습니다.
추신. 이 영화를 꼭 같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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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22. 08. 25 ~ 2022. 09. 01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상영
2022. 08. 26. 20:00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1관
2022. 08. 28. 13:00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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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더우먼1984](2020) - 신발에 주목하라!
최근 이하늬 주연의 SBS 드라마 [원더우먼](2021)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글은 드라마가 아닌 영화 이야기라는 것을 먼저 밝힙니다. 패티 젠킨스(女) 감독의 2번째 원더우먼 영화인 [원더우먼 1984](2020)는 일반적으로 아주 재밌다라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1편인 [원더우먼](2017)에서는 조연급의 갤 가돗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동시에 포텐이 터지면서 내세우며 재미를 봤었죠. [원더우먼]이 절대적으로 잘 만들었다기보다, DC 영화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그나마 나았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시리즈의 2번째에서, 너무나 빨리진짜 실력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1편에서는 여러모로 운이 많이 작용했던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만약, 내용에서 큰 재미를 못 보신 분이라면, 신발에 주목하여 다시 한 번 보세요! 거의 신발영화거든요.[원더우먼 1984]에는, 신발에 클로즈업 되는 장면들을 모아봤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스토리를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함께 한 번 보시죠.
[1] 여성슈즈
1. 아이언맨 시그니쳐 컬러를 가진 글래디에이터 타입 신발을 장착한 원더우먼 첫 등장
2. 나중에 빌런이 되는 바바라(크리스틴 위그) 첫 등장. 이 때는 단정한 신발.
3. 호피무늬 킬힐 (원더우먼): 이때부터, 신발에 집중하며 봤는데, 진짜 신발에 클로즈업을 많이 하더라구요. 이 신발을 보고, 바바라는 치타가 되기를 결심한 듯
4. 점점 화려해지는 스타일을 싡는 바바라. 민트색 오픈 토
5. 완전 각성한 바바라 (수수한 신발에서 화려한 발목 스트랩 금장 초고가 신발로)
6. 니하이 부츠 (바바라): 이 스타일은 정말 패피들도 평상시에 입고 다니기 힘듭니다.
[2] 남성슈즈
1. 남자 빌런인 맥스(페드로 파스칼)의 어린시절의 가난함을 찢어진 신발로 표현. 여기까지 신발이 등장하더라구요.
2.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 맥스의 발목에 채찍을 휘감은 원더우먼. 역시 신발 부분. 이것을 위해서 시종일관 신발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릅니다.
[3] 나이키
1. 대 놓고 나이키 광고 : 나이키 운동화가 신기한 남우조연(크리스 파인).
2. 나이키(바바라)
정말 다양한 신발들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미 보신 분이라면 신발에 주목하여 다시 한 번 보시고, 보실 분 역시 신발에 주목해 보세요!
전, 패티 젠킨스 감독이 신발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이거 뿐만 아니라 액션과 갤 가돗의 연기에도 신경을 썼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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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 게임 2] 끝장리뷰 | 반기독교 ?! | 성기훈과 프론트맨 관계성 | 십자가 상징 | 형제애, 모성애 | 핑크모텔, cctv 해석 | 납득되지 않은 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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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2] (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에피소드 1 ~ 4
Chapter 2 에피소드 5 ~ 7
00:00 오징어 게임2
01:28 반기독교
02:55 십자가 상징
04:15 형제애와 모성애
07:03 차별반대
07:47 성기훈과 프론트맨
09:52 납득되지 않는 지점들
11:23 별점 및 한 줄 평
11:36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징어게임2 #오징어게임2리뷰 #오징어게임2후기 #오징어게임2해석 #오징어게임시즌2 #오징어게임시즌2리뷰 #오징어게임시즌2후기 #오징어게임시즌2해석 #이정재 #강하늘 #이병헌 #임시완 #황동혁감독 #squidgame2 #squidgame2review #squidgame2netflix #최승현 #박성훈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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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K-좀비는 더이상 그만
#영화 #반도 #리뷰
액션, 드라마│한국│116분
감독 연상호│출연 강동원, 이정현전대미문의 재난 그 후 4년
폐허의 땅으로 다시 들어간다!
4년 전, 나라 전체를 휩쓸어버린
전대미문의 재난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던 ‘정석’(강동원).
바깥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반도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제한 시간 내에 지정된 트럭을 확보해
반도를 빠져 나와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던 중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와 4년 전보다
더욱 거세진 대규모 좀비 무리가 정석 일행을 습격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폐허가 된 땅에서 살아남은 ‘민정’(이정현) 가족의 도움으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고
이들과 함께 반도를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기로 한다.
되돌아온 자, 살아남은 자 그리고 미쳐버린 자
필사의 사투가 시작된다!#리뷰문의
adonai0919@gmail.com#트위치
https://www.twitch.tv/sura_chtr#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writer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Watch: https://youtu.be/pZzSq8WfsKo
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Gizmo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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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피엔드> 메인 예고편
점멸등이 일렁이는 근미래의 도쿄. 음악에 빠진 고등학생 ‘유타’와 ‘코우’는 친구들과 함께 자유로운 나날을 보낸다. 동아리방을 찾아 늦은 밤 학교에 잠입한 그들은 교장 ‘나가이’의 고급 차량에 발칙한 장난을 치고, 분노한 학교는 AI 감시 체제를 도입한다. 그날 이후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감독: 네오 소라 -출연: 쿠리하라 하야토, 히다카 유키토, 하야시 유타, 시나 펭, 아라지 -개봉: 2025년 4월 30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공동배급·제공: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류이치사카모토오퍼스 #네오소라 #Neo무비 #해피엔드 #Happyend #4월영화 #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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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적 : 도깨비 깃발> 티저 예고편
“가자, 보물 찾으러!” 드디어 출항! 2022년 극장가를 평정할 해적이 온다? 역대급 스펙터클 어드벤처 [해적: 도깨비 깃발] 티저 예고편 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