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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your bunny2022-03-15 13:25:45

<스펜서>, 다이애나 스펜서의 고통과 자유, 그리고 고귀한 혁명

다이애나 스펜서가 가진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스펜서>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스펜서>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영화이다. 다이애나는 스펜서 백작의 셋째 딸로, 1981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찰스 왕세자에게는 오랜 연인인 카밀라 파커볼스가 있었고, 다이애나와의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한 결혼이 아니었다. 다이애나를 향한 찰스의 사랑은 한 왕세자가 왕세자비에게 가지는 사랑에 불과했다. 왕이 되고 싶었던 찰스 왕세자에게 가장 적당한 왕세자비는 다이애나였다. 다이애나는 계속되는 왕세자의 부정, 과도한 언론의 관심과 노출 등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고 이 고통은 꾸준히 쌓이고 또 쌓였다.

 

다이애나의 버팀목은 두 왕자 윌리엄과 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아들은 다이애나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존재였으며, 왕실 속에서 다이애나의 숨통을 터 주는 존재였다. 그녀는 두 아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였고, 꾸준한 자선활동을 이어나갔다. 자연스레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런 다이애나를 사랑했다. 이후 다이애나는 왕실에서의 자신의 생활을 모두 고발하는 책을 발간하였고, 마침내 찰스 왕세자와 이혼하며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스펜서>는 실제 인물과 사건들을 바탕으로 쓴 '허구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영국 왕실에서 크리스마스 기간을 보내는 다이애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곳에서의 경험을 끝으로 그녀는 마침내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이름을 되찾기로 결심한 뒤, '해방'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기 시작한다. 특히 이 영화는 한 인물의 일대기 보다는 '내면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통해 표현되는 다이애나 비의 고뇌, 고통 등의 심경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녀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늘 남들보다 느린걸요.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자신의 차를 타고 왕실로 향한다. 왕실에서 이루어지는 3일간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서이다. 다이애나는 늦을까봐 서두르지 않는다. 가는 길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허수아비에 걸려있던 아버지의 옷을 발견한 뒤 그 옷을 가져오기 위해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뛰기도 한다. 이때의 다이애나의 얼굴은 길을 잃었다며 왕실 주위를 배회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왕실에 도착한 다이애나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현실이 펼쳐진다. 처음부터 다이애나는 왕실의 감시 하에 강제로 몸무게를 쟀고, 남편인 찰스 왕세자가 선물한 진주 목걸이를 착용하고, 왕실에서 정해준 옷을 입고 모임에 참석했다. 찰스 왕세자가 선물한 이 굵은 진주 목걸이는 왕세자가 자신의 내연녀에게도 선물한 목걸이였으며, 다이애나는 이 목걸이를 뜯어서 스프와 함께 삼키는 상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한편, 끊임없이 옥죄어 오는 왕실에서 다이애나를 숨 쉬게 하는 존재는 두 아들 윌리엄(잭 닐렌)과 해리(프레디 스프라이)였다. 다이애나는 두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랍스터와 게 인형을 건넨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단단한 껍질을 가진 존재들. 두 아들이 그렇게 강하고 단단하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자신도 단단한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모두 투영된 선물이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왕실의 다른 사람들이 잠든 밤, 다이애나와 두 아들은 서로에게 질문을 하면 솔직하게 답을 하는 놀이를 시작한다. 윌리엄은 다이애나에게 무엇이 엄마를 슬프게 하는 것이냐고 질문한다. 다이애나는 과거로 인해 슬프다는 답을 한다. 왕실에는 미래가 없다. 과거에 정해 놓은 규칙들로 인해 현재와 미래가 바뀌는 모습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곳이다. 현재나 미래를 한 개인이 쉽게 바꾸기도 어려운 곳이다. 다이애나에게 왕실은 그렇게 과거로부터 비롯된, 굳게 닫힌 새장이었다.

 

다이애나는 중간에 큰 아들 윌리엄에게 '자신이 바보 같은 짓을 할 때면 막아달라'는 말을 전한다. 나는 이 말이 너무나도 아프게 느껴졌다. 문장 자체만으로 내 마음 속이 쿡쿡 찔리듯이 아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의 경우 이 문장이 그랬다. 아프고, 또 아팠다.

 

 

 

 

 

 

다이애나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토해낸다. 그리고 왕실 사람들은 요리사들이 정성스레 만든 음식들을 제대로 즐길 수는 없냐면서 이런 다이애나를 질책한다.

한편,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상을 입은 다이애나가 음식을 토해내는 곳은 동화 같은 파스텔 색감의 화장실이다. 스크린 속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 인물이 서 있는 공간이 너무 이질적이어서 해당 인물의 심정이 더 고스란히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다. 바로 이 장면들이 그러했다.

오로지 자신만이 있는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구토를 하고, 자신의 울분을 이렇게나마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그녀의 불행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더불어,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장면들과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화면, 마구 요동치는 듯한 사운드로 인해 다이애나의 숨막힘이 나에게도 느껴졌고, 영화 밖의 관객인 나조차도 '당장 저 왕실을 뛰쳐나가야 한다' 라는 생각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왕세자비' 인 그녀를 향한 언론의 지나친 관심은 그녀의 숨을 옥죄어 오는 또 다른 존재였다. 수많은 카메라를 마주할 때 그녀의 입은 웃고 있지만, 그녀의 눈은 항상 울고 있다. 혹은 울기 바로 직전의 위태로운 눈이다. 왕실에서는 언론에 비춰지는 그녀의 모습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꾸며나갔고, 다이애나가 의상 담당자가 정해준 옷을 입고 나가지 않았을 때는 질책하기도 했다. 다이애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렌즈들은 참 잔인하고 삭막하다. 

 

 

 

 

 

 

 

그녀의 자해 횟수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그녀의 불안감과 고통은 커져만 갔다. 그녀는 다른 이들의 저지를 뚫고 오랜 시간이 지나 폐가가 된 자신이 어린 시절 살던 집에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앤 볼린'의 허상을 마주한다. 앤 볼린은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로, 헨리 8세에게 이용 당한 뒤 결국 간통죄라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채 참수형을 당한 인물이다. 다이애나는 계단 밑으로 떨어지는 상상도 하였지만,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굳은 결심을 한다. 찰스 왕세자가 준 굵은 진주 목걸이를 마침내 뜯어내고, 왕실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이애나가 춤추는 장면, 달리고 또 달리며 끝없이 뜀박질을 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어린 시절 발레를 좋아하던 그녀의 모습도 나온다. 다이애나는 이렇게 맘껏 춤을 추고, 바람을 가로지르며 뛰어다님으로써 자신의 내면 속의 어떠한 심정들을 마구 분출해냈다. 혼동, 고뇌, 동요를 겪고 있던 그녀의 춤과 뜀박질은 그 행위 자체로 '해방'과 '자유'에 대한 갈증이 마침내 해소될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장면들을 보는 순간이 영화의 러닝타임 중 내게 제일 벅찼던 순간이었다. 그저 '벅찼다'. 이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다이애나는 허수아비에 걸려있던 아버지의 자켓을 입고 꿩 사냥을 하러 간 두 아들에게 찾아간다. 총을 쏘기 위해 규칙적으로 서 있던 왕실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등장하는 다이애나의 모습은 한 마리의 '새' 같았다. 새장 밖을 빠져나온 새. 자유를 갈망하는 새. 

그리고 다이애나는 총을 쏘기 싫어했던 두 아들을 데리고 자신의 차를 통해 왕실을 빠져나간다. 억지로 갇힌 새장을 숨 막혀 하던 새들은 모두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KFC에서 음식을 주문하며 자신의 이름을 묻는 직원에게 다이애나는 '스펜서'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 그리고 좋았던 부분은 모두 '매기(샐리 호킨스)'와 다이애나의 장면이었다. 매기는 다이애나의 전용 왕실 의상 담당자로, 두 아들과 함께 다이애나가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존재였다. 다이애나를 버티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중간에 매기 대신 다른 왕실 의상 담당자로 교체되며, 다이애나의 고통은 더 심화되기도 했다. 

 

 

- 전하의 무기는 전하 자신이에요.

자신을 무너뜨리지 말아요.


- 뜻밖의 말을 꺼내 (전하의) 어둠을 걷어내고 싶었어요.


- (전하의) 아이 같은 웃음을 좋아해요.


- 전하에게는 사랑, 충격, 웃음이 필요해요.



매기는 다이애나의 허상 속에 나와 다이애나에게 힘을 불어주기도 하고, 다이애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다이애나를 웃음 짓게 하기도 한다. 다이애나에게도, 그리고 관객인 나에게도 가장 큰 숨통이자 안식처, 미소 짓게 만드는 존재는 매기였다.

 

그리고 매기는 다이애나의 차에

 

 

'전하를 사랑하는 사람은 저 뿐만이 아닙니다.'


라는 메시지를 적어 남겨둔다. 다이애나를 가장 응원하고, 지지하고, 사랑하는 이의 찬란한 메시지.

샐리 호킨스의 모든 장면들이 찬란했다.

그래서 샐리 호킨스의 분량이 적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너무 아쉬웠다. 샐리 호킨스의 장면이 더 많았으면 영화를 보는 나도, 영화 속의 다이애나도 고통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비극을 바탕으로 꾸며낸 이야기' 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영화와 영화의 토대가 되는 실제 이야기는 비극이다. 영화 자체는 다이애나 스펜서가 자유를 되찾으며 끝나지만, 실제 '다이애나 스펜서'의 삶을 알고 있는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다. 마음 한 켠에서는 계속 그녀를 향한 슬픔이 차오르고 있다.

 

그렇지만 왕실을 뛰쳐나오는 다이애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고귀한 혁명'을 느낄 수 있다.

숨 막히고 고통 뿐이었던 왕실이라는 사회를 주체적으로 벗어난 이의 혁명,

자유와 해방을 좇아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간 이의 혁명.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서의 그녀의 고귀한 혁명을 마주함으로써 우리는 조심스레 그녀를 애도해본다.

 

 

 

 

 

 

 

'다이애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연기를 펼쳤고, 오직 표정과 눈빛, 몸짓 등을 통해 한 인물의 내면을 생생하게 표현해낸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만으로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스펜서>는 16일 개봉한다. 

 

 

작성자 . I am your bunny

출처 . https://blog.naver.com/meyou_saline/22267310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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