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0-12 11:24:56
10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30일>이 입소문을 타며 흥행질주를 이어가며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을 밀어내고 일주일 넘게 정상을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개봉 주에만 누적 관객수 61만여명을 기록한 <30일>은 장기 흥행 열풍과 함께 올해 전체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영화 <엘리멘탈>의 개봉 주 스코어까지 뛰어 넘은 입소문 흥행 추이와 속도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의 행보에 귀추가 됩니다.
[국내 박스오피스]
실관람객의 뜨거운 입소문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30일>이 신작 공세에도 9일 연속 박스오피스 최정상 자리를 지키며 1위를 이어가고 있으며 10월 극장가에서 압도적인 흥행 강세를 이어나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30일>은 서로의 찌질함과 똘기를 견디다 못해 마침내 완벽하게 남남이 되기 직전 동반기억상실증에 걸려버린 정열과 나라의 코미디입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호러 명가 블룸하우스의 <엑소시스트: 믿는 자>가 북미를 포함한 18개국에서 개봉주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오리지널 <엑소시스트>로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오른 엘렌 버스틴의 합류와 한 악마에 동시에 빙의 된 두 아이라는 신선한 콘셉트가 흥미를 높이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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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첫째 주 OTT 추천신작 <마더/안드로이드>, <황무지의 괴물>, <네 명의 저녁 식사>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
2022년 새해 첫 인사드립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매 주 월요일,
한 주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다양한 OTT 플랫폼의 신작 소개를 하는 시간!
2022년의 새해를 여는 신작은 무엇이 있을지 다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네 명의 저녁식사(4 meta), 넷플릭스
로맨틱 코미디 | 이탈리아 | 90분
감독 : 알레시오 마리아 페데리치 | 출연 : 일레니아 파스토렐리, 마틸데 졸리, 주세페 마조, 마테오 마르타리
넷플릭스 공개일 : 2022년 1월 5일 (수요일)
"소울 메이트가 부질없다는 로맨틱 코미디가 왔다. 가상의 현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친구들의 색다른 커플 이야기.
다양한 커플 조합을 들여다보면 진짜 사랑의 모습이 보인다!"
*관전 포인트* : 로맨틱 코미디의 주요 소비층은 항상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현실이 아닌 가상의 배경으로 만약에 '나에게 사랑이 온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벌어지는 커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요.
소재가 비교적 독특하며 남녀배우들의 다채로운 커플 연기와 매력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녀 커플의 조합으로 진지하면서도 엉뚱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사랑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로맨틱 코미디가 될 것 같습니다.
2. 황무지의 괴물 (The Wasteland), 넷플릭스
공포, 드라마 | 스페인 | 92분
감독 : 다비드 카사데문튼 | 출연 : 인마 쿠에스타, 아시에르 플로레스
넷플릭스 공개일 : 2021년 1월 6일 (목요일)
"19세기 전쟁 중의 스페인. 외딴 황무지에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전쟁과 무관하게 평온하게 황폐한 오지에서. 괴물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가족은 시험에 들게 된다.
가족의 어린 아들 '디에고'는 공포심을 먹고 사는 사악한 괴물로부터 자신과 어머니 '루시아'를 지켜낼 수 있을까?"
*관전 포인트* : 공포 드라마 장르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스페인 작품. 92분의 러닝타임으로 관객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집중력있게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예고편에서 나와있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심을 먹고 사는 사악한 괴물의 존재가 어떻게 그려질 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목인데요.
엄마와 그의 어린 아들이 사건을 헤쳐나가는 연기 호흡이 기대됩니다. 어린 아들의 디에고 역은 스페인 영화 <페이 앤 글로리>의 '아시에르 플로레스'가 맡았으며, 이 아역배우의 연기 또한 무척 기대됩니다.
3. 마더/안드로이드 (Mother / Android), 넷플릭스
SF, 드라마, 스릴러 | 미국 | 110분
감독 : 맷스 톰린 | 출연 : 클로이 모레츠, 알지 스미스
개봉 : 2021년 12월 17일(북미 외)
넷플릭스 공개일 : 2021년 1월 7일 (금요일)
"인간의 일상생활에 안드로이드가 필수가 된 미래의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조지아(클로이 모레츠)는 남자친구 샘(알지 스미스)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조지아는 엄마가 될 자신이 아직 없었고 결국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한 채 대학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조지아는 폭력적으로 변한 안드로이들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샘과 조지아는 숲으로 달아나게 된다. "
*관전 포인트* : <더 배트맨>의 각본을 쓴 시나리오 작가 '맷슨 톰린'의 감독 데뷔작입니다.
안드로이드들의 공격을 받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SF장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주연 배우인 '클로이 모레츠'의 임신을 한 모습은 물론 SF장르 안에서의 클로이 모레츠의 연기 또한 기대하게 됩니다.
감독은 1989년 루마니아 혁명을 경험했던 부모님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라고 하니, 더욱 더 흥미가 가는 포인트인데요.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하고 바쁜 작가 중의 한 명인 '맷슨 톰린'의 감독 데뷔작을 기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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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오브 인터레스트: 사운드가 쌓아 올린 공포의 몽타주
존 오브 인터레스트: 사운드가 쌓아 올린 공포의 몽타주
(출처: 네이버 영화)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2024)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하지만, 전형적인 홀로코스트 영화가 아니다.
관객이 목격하는 것은 수용소 내부의 참상이 아니라, 담장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한 한 가족의 일상이다. 그러나 영화는 시각적인 정보만으로
이 가해자의 삶을 조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운드가 화면 위로 쌓이며
'수직 몽타주'를 통해 전율을 만들어낸다.
사운드의 대위법, 두 개의 세계를 가르는 수직 몽타주
에이젠슈테인이 제시한 수직 몽타주 (Vertical Montage)는 영상과 소리가
단순한 동기화가 아니라, 각자의 리듬을 가지면서 충돌하거나 병치되는 방식이다.
그는 사운드를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또 하나의 독립적인 층위로 작동시키며
의미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활용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글레이저는 수직 몽타주의 원리를 적용한다고 볼 수 있다.
화면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의 가족이 등장한다. 그들은 정원을
가꾸고,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며, 아내는 수영을 즐긴다. 그러나 사운드는
이 평온한 풍경을 허락하지 않는다.
① 가시화되지 않는 공포: 들려오는 참상의 소리
관객이 듣는 것은 울타리 너머에서 들려오는 처형 소리, 기차의 기적 소리,
희미한 비명과 절규이다. 하지만 인물들은 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수용소의 기계음과 끊임없이 타오르는 화염은 영화 내내 들리지만,
이 소리는 이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사운드의 병치는 시각적으로는 평온한 장면을 유지하면서도,
관객이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공포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② 음향적 충돌: 대립하는 리듬과 감정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 이론 중 '대위법적 사운드 몽타주'는 영상과 사운드가
조화되지 않고 충돌할 때 감정을 배가한다고 본다. 글레이저의 연출은 이러한
원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잔디 위를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가벼운
대화 뒤로 불길과 비명이 어우러진다. 이러한 음향적 몽타주는, 우리가
시각적으로 보고 있는 장면과 청각적으로 경험하는 장면이 충돌하며 형성되는
불협화음 속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미니멀리즘적 이미지와 음향의 폭력성
이 영화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공포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카메라는 학살의 현장을 직접 담지 않는다. 그러나 소리는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형태로 우리를 압도한다. 시각적으로는 단순한 인물의 움직임,
가정집의 평범한 풍경이 담기지만, 청각적으로는 아우슈비츠의 거대한 산업적
학살이 무겁게 다가온다. 즉,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시각적 충격이 아닌
음향적 공포를 통해 홀로코스트의 악몽을 환기한다.
정리하자면 조너선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사운드를 단순한
보조적 요소가 아니라, 의미를 창조하는 몽타주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에이젠슈테인의 수직 몽타주 기법과 같이 '보이는 세계'와 '들리는 세계'의
간극을 통해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전쟁영화, 홀로코스트 영화처럼 강제 수용소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그 참상 속에서도 일상을 지속하는
가해자의 무관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운드를 통해
구축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폭력을 내면화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듣고도 모른 척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스크린이 아니라 관객의 청각 속에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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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일 순위는 나여야만 해
제목의 '위국(違国)'이라는 단어는 직역하면 '어긋난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어긋난 나라에서 쓰는 일기'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왜 어긋난 나라인지는 영화 속 마키오와 아사의 불편한 동거를 보면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다.
그저 다른 것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그 무엇 하나도 끝까지 양보하려 들지 않는 양쪽의 지독한 고집이 서로를 끝끝내는 어긋나게 만들어 버린다. 보통이라면, 남들이라면 대체로 웃으면서 그러려니 넘어갈만한 지점들도 꼭 짚어내어 기어이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두 사람의 일반적인 생활 패턴이라 할 수 있다.
눈대중으로는 얼추 맞을 것 같은데, 기묘할 정도로 결정적인 곳에서 맞지 않는 이들의 성향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함을 유발한다. 칼각으로 접히는 수건이나, 틈새에 딱 들어가는 청소기같이 어딘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영상들이 있다면, 이 영화는 그의 정 반대다. 항상 삐걱거리고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없는 둘의 사이는 그야말로 '위국'이다.
"어른이 친구가 있는 건 처음 봤어."
아사는 이모를 보며 자신이 알고 있던 어른의 범주가 굉장히 좁았음을 알게 된다. 어른이라면 응당 이럴 것이라는 기대감과 선망이 사라지자, 그들 역시 인간에 불과하다는 뻔하고 지루한 진실만이 남는다. 하지만 이모인 마키오는 그런 것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주거나, 어른의 위상을 돋보이게 해줄 만한 행동보다는 '모든 어른이 그렇지는 않다'라는 것을 쉽게 인정할 따름이다.
"이모가 반대할까 봐 그랬어."
자신의 친구조차 쉽게 대하지 못하고 버벅대는 이모를 보는 아사의 심리는 조금씩 바뀌어간다. 세상 모든 어른의 기준이 자기 엄마였기에, 처음에는 모든 행동거지를 조심하려고 애쓴다. 밴드부에 가입한다고 하면 혼날까 봐, 말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아사가 엄마에게 꽤나 압박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엄마나 선생님과는 다른 어른 군상을 통해 아사는 조금 더 자유를 만끽하는 쪽으로 변화되어 간다.
"나는 네 엄마가 될 수는 없어."
아사의 불안감과 외로움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마키오였지만, 정작 아사를 가장 불안하고 외롭게 하는 것도 마키오였다. 아사는 마키오에게 자신이 첫 번째이지 않은 것, 마키오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더욱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장 빛나지 않더라도, 부모님과 있을 때는 언제나 자신이 우선순위였던 삶이 처참히 무너지면서 겪는 일종의 상실감일 것이다. 혼자가 될 때마다 '엄마였다면' 하고 되뇌지만 정작 그런 엄마가 자신을 홀로 남겨두고 죽어버린 것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 아사는 혼란스럽다.
"너와 나는 다른 주체니까. 네 인생은 네가 살아야 해."
그런 아사에게 마키오는 잔인하고 냉담하게 말한다. 엄마가 네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나 역시 마찬가지고,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는 것을. 그 말을 다르게 번역하면 '넌 결코 내 첫 번째가 될 수는 없어'라는 뜻과도 같다. 그리고 그건 모든 인물들에게도 통용된다. 마키오에게 첫 번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니까. 결국 마키오는 은연중에
"너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 첫 번째로 사랑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너야."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가 남겼던 일기를 보고 아사는 학교도 빠지고 할머니 댁으로 도망가 버린다. 아사는 자신이 생각한 엄마와 남들이 알고 있는 엄마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엄마'가 아닌 '코다이 미노리'라는 한 명의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아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에게도 결국 자신이 첫 번째는 아니었다는 것.
엄마가 했던 말과 행동들이 자신을 위했다기보다는 본인을 위한 것이었음을 느낀다. 그제야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슬퍼할 수 있게 된 아사. 마키오 이모의 품에 안겨 울면서 '과거가 바뀌었다면 어땠을까'라고 상상한다. 타임머신을 만들어보라는 마키오의 말에 아사는 질문을 던진다.
"그럼 만나지 못했으려나."
"누굴?"
표면적으로는 이모인 마키오를 두고 한 말이었겠지만, 더 깊숙이 파고든다면 말 그대로 '어긋난 나라'를 의미한다. 기묘하고 이상하게 어긋난 세상을 만났기에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한층 성숙한 '어른'으로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영화를 보며 아쉬웠던 것은 아사와 마키오의 이야기에만 집중하여 감정선을 끌어냈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부분이다. 물론 그 주변인들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불필요한 요소가 다소 존재한다고 느꼈다. 의도나 상징이 짙은 부분들에 있어서 영화의 맥락에 어긋나는 생뚱맞은 이야기를 한다고 느껴 약간 불편했던 것 같다. 그저 보여주기식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더 그랬던 것 같고.
그렇게 이것저것 다 뒤섞은 바람에 영화를 보고 나서도 큰 주제와 메시지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았다. 원작이 10권으로 구성된 순정만화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용적으로 각색이 있어야 할 터인데, 곁가지들을 애매하게 남겨놓은 것이 영화 감상 방해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일본 특유의 감수성만큼은 잘 살린듯한 영화였다.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 받아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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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세한 접근에서 강렬한 확장을 향해
사려 깊은 소거와 냉랭한 응시
김미조 감독이 연출한 영화 <갈매기>는 사려 깊으면서도 번뜩이는 영화다. 주인공 오복은 시장 상인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데, 이때 <갈매기>는 사건을 상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갈매기>는 오복의 심리를 묘사할 때에도 또한 관련 정보를 전부 드러내지 않는다. <갈매기>는 인물의 고통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 매우 섬세한 접근을 보여준다. 어떤 면을 소거하고 어떤 면을 부각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영화다. 그런 일관성은 영화의 진정성을 뒷받침한다. 이렇게 생략을 동반하는 <갈매기>의 화법은 영화를 지배하는 원동력이 된다. 카메라는 오복을 집요하게 따라가면서도, 시종 냉랭하고 건조한 시선을 유지한다. 즉 <갈매기>는 감상적 태도에 매몰되는 상황을 경계한다. 이 묘한 이중성,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태도와 쉽사리 몰입하지 않으려는 냉정함이 <갈매기>에 공존하는 듯 보인다.
전통 시장은 사람 냄새 가득한 정겨운 공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갈매기>의 수산시장 거리는 오갈 데 없는 오복을 서서히 조여오는 잔인한 공간이다. 사실 영화 속 오복은 시장에서 벗어나서 다른 공간에 몸담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위안 받지 못한 채 고립된다. 오복이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숨겨왔던 속내를 털어놓던 오복에게 치매가 걸린 어머니는 시큰둥한 반응과 함께 딴소리를 늘어놓는다. “뭐? 꼬막이 먹고 잡다고?”. 오복은 말문이 막혀 버린다. 가장 힘이 되어줘야 할 남편은 오복에게 크나큰 상처가 되는 추잡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낸다. 딸들이 엄마 오복을 도와주려 하나, 각자의 삶의 영역이 불편하게 들러붙는 가운데, 부질없는 갈등만 늘어간다. 전기세를 아끼려 에어컨 대신 선풍기 바람에 의지하는 억척스러운 오복은 집에서조차도 마음 편하게 의지할 대상을 찾지 못한 채 끙끙대며 속앓이만 반복한다.
<갈매기>는 이해관계로 둘러싸인 상황을 쉽사리 재단하지 않는다. 즉, 오복의 복잡한 심리부터 시작해서 그녀뿐 아니라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변인들의 사연까지 담아낸다. 오복을 성폭행한 기택은 시장 공동체를 이끄는 주축이라는 이유로, 상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오복과 친하게 지냈던 상인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보상금을 타낸다는 명목으로 오복의 편에 서는 걸 주저한다. 기택이 경찰서를 들락날락하게 된다면, 그를 중심으로 권리를 쟁취하려는 상인들의 공동체가 와해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들은 정당한 보상을 챙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갈매기>는 오복의 서사를 따라가는 영화임에도 한편으로는 그녀만의 이야기에만 몰두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내면을 환기하는 상황 또한 종종 등장하지만, 많은 장면에서 현실감을 한껏 부각하여 영화가 감상적으로 매몰될 가능성을 줄여나간다. 이 영화는 따라서 음악을 지운 자리를 현실과 맞닿은 퍽퍽한 요소들로 빼곡히 채운다.
<갈매기> 스틸컷 © 영화사 진진
강렬하게 부각하는 그 순간
소외된 타자의 사연에 주목하는 영화의 골격에서부터 제법 디테일한 영역까지 면밀히 따져봤을 때, <갈매기>에는 기존의 영화들을 참고한 지점들이 제법 보인다. 따라서 <갈매기>는 섬세하긴 하나 독창적이진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갈매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영화의 결단에 있다.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오복은 따스한 관심과 위로는 커녕 볼멘소리와 따가운 시선을 마주한다. 이후 오복은 결심한다. 오복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시위의 방식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신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 기택에게 호소문을 보여준다. 이 순간 카메라는 관계의 층위를 확장하는데, 오복을 바라보는 기택의 시점이 아니라, 정면 구도에서 오복을 응시하고, 오복 또한 카메라를 응시하는 듯한 오묘한 시선으로 관객과 대면한다.
다시 말해 <갈매기>는 시종 관조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관객에게 요청한다. 현실을 차마 벗어나지 못해 그저 맴돌 수밖에 없는 갈매기. 이 갈매기 오복이 선택한 행위가 카메라를 매개로 관객에게 가닿는다. 관객이 확인할 수 있는 건 종이 속의 내용도 아니고, 기택의 표정도 아니고, 오로지 오복의 얼굴이다. 오복은 기택을 향해 피켓을 들고 있지만, 카메라는 그 행위를 스크린 바깥의 관객이 목도하는 것으로 치환한다. 기택의 자리를 관객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를 통해 <갈매기>는 분명하게 묻고 있다. 오복의 인생을 망쳐놓고, 난관에 봉착하게 만든 걸로도 모자라 무심하게 방관하기까지 하는 섬뜩한 공동체는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소외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공동체는 바로 스크린 너머에 있는 현실 속의 관객들이 아닐까.
<갈매기> 스틸컷 © 영화사 진진
본 콘텐츠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은 '영화 <갈매기>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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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모던걸 모던보이는 다 독립군이 되는 것일까?
또다시 김남길 때문에 본 영화로 실망을 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한 사람의 리뷰를 시작한다,,, 김남길이 나온 작품을 찾다가 대학원 시절 학기말 페이퍼를 제출하기 위해 그 교집합을 찾던 중 발견한 작품이었던 영화 《모던보이》. 일제강점기 영화 중 모던걸, 모던보이를 테마로 한 작품이 무엇이 있을까 찾다가 발견한 작품이었다. 정말 보다가 재미가 없어서 잠이 들 정도였는데 쓰고자 했던 페이퍼의 방향과 너무나도 일치해서 꾸역꾸역 분석하면서 봤던 영화였다.
영화 《모던보이》 시놉시스
1937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1급 서기관 이해명은 단짝친구 신스케와 함께 놀러 간 비밀구락부에서 댄서로 등장한 여인 조난실에게 첫눈에 매혹된다. 온갖 방법을 동원한 끝에 꿈같은 연애를 시작하지만, 행복도 잠시. 난실이 싸준 도시락이 총독부에서 폭발하고, 그녀는 해명의 집을 털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난실을 찾아 경성을 헤매는 해명. 그가 알게 되는 사실은 그녀가 이름도 여럿, 직업도 여럿, 남자마저도 여럿인 정체가 묘연한 여인이라는 것! 밀려드는 위기감 속에서도 그녀를 향한 열망을 멈출 수 없는 해명. 걷잡을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선 그는 또 어떤 놀라운 사건을 만나게 될 것인가! 사랑과 운명을 건 일생일대의 위험천만한 추적이 펼쳐진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모던걸과 모던보이를 조명하다
모던보이 영화의 의의라고 한다면 그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경성의 거리를 조금 낭만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존재했던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을 극을 이끌어가는 중추적인 인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생각해보면 우리가 학교에서 받았던 공식적인 역사 속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인물군상이다. 역사 교과서에는 친일파와 독립군의 일부만 선택적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모던보이에는 이렇게 역사에서 배제되었고 망각된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모던보이와 모던걸을 대중들에게 상기시키고 공식 영삭의 틈을 메꿔주는 문화적 기억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알고보니 독립군, 갑자기 독립군이 된 그들
나름 의의가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영화 《모던보이》에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점은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알고보니 독립군이었고, 갑자기 독립군이 된다는 것이다. 역사 속 모던보이와 보던걸들을 보면 일부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유행을 쫓고 신식의 것을 몸에 두르느라 세상 정세에는 관심도 없는, 즉 독립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비판하는 대중가요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은 대부분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모던보이나 모던걸이라는 가면을 쓰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지인의 영향으로 독립에 투신하는 경우로 그려지는 거시 대부분이다. 영화 《모던보이》 역시 로라이자 조난실은 알고보니 독립군의 주요 요원이었고, 조난실을 사랑한 이해명은 그녀의 죽음으로 갑자기 독립군이 된다. 모던보이라는 컨셉을 전면에 놓고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 《모던보이》 역시 알고보니 조선의 독립을 그리기 위해 하나의 장치로서만 활용해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영화가 넘어야할 민족주의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매체에서 그 당시 실제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온상을 그려내기 보다는 우리가 모던보이와 모던걸에게 바라는 것을 투영시키는 욕망이 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라는 시기는 지나간 과거지만 아직 청산되지 않은 과거이기에 현재와도 같은 과거다. 그래서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에게 민족투사의 이미지를 덧씌워서 그들의 삶이 비극적이면서도 독립을 위해 살신성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이런 민족주의가 영화 스토리의 틀을 정해버리고 그 한계를 설정하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민족운동을 한 사람들은 왜 영화 속에서 다 죽어야 하는 것일까? 폭탄 날리고 집에 돌아와서 행복하게 살 잘면 안되는 것일까? 왜 그런 영화를 볼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영화의 내용으로만 보자면 크게 재미를 느낄 수 없는 작품이었지만 분석용으로는 꽤나 분석할 거리를 제공했던 영화 《모던보이》. 일제강점기 시기에 관련된 영화 작품에 대한 공부용(?)으로는 추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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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뚜기 월드'가 된 <쥬라기 월드 3>의 의미와 한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룡들의 터전이었던 이슬라 누블라 섬이 파괴되고, 섬을 벗어나 세상 밖에 자리 잡은 공룡들. 세계가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오웬(크리스 프랫)'과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공룡들을 보살피고, '메이지 록우드(이사벨라 써먼)'를 지키기 위해 작은 오두막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복제 인간 연구를 진행하려는 기업 '바이오신'에 의해 메이지가 납치당하고, 오웬과 클레어는 메이지를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한편, 미국 서부에 나타나 농가들을 휩쓸고 다니는 거대한 메뚜기 떼를 조사하던 '엘리 새틀러(로라 던)'는 오래된 친구 '앨런 그랜트(샘 닐)'과 함께 메뚜기들이 바이오신의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졌음을 깨닫는다. 이에 엘리와 앨런은 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과거의 동료인 '이안 말콤(제프 골드브럼)'의 도움을 받아 공룡들이 모여 있는 바이오신 소유의 보호구역으로 향한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1993년에 개봉한 <쥬라기 공원>을 시작으로 29년간 이어진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래서 <쥬라기 월드> 삼부작의 주인공인 크리스 프랫과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부터 <쥬라기 공원> 삼부작의 주인공인 로라 던, 제프 골드브럼, 샘 닐까지 한 자리에 모여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날레를 가장 화려하게 꾸며주는 이들은 역시나 공룡이다. 전편에서 이슬라 누블라를 탈출해 북미 대륙에 상륙한 공룡들은 이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항상 공원이라는 장소에 갇혀 있었던 공룡들은 이제 바다에서도, 눈 내리는 산맥에서도, 소들이 뛰어놀던 평원에서도, 심지어 암시장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한 가지 독특한 지점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공룡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을 배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영화는 정작 공룡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번 작품에서 세상을 위기에 몰아넣은 것은 온갖 곳으로 퍼져 나간 공룡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 메뚜기 떼이고, 영화의 메인 플롯도 유전자 조작 메뚜기를 개발한 기업인 바이오신을 고발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룡이라는 소재에 국한되지 않는 대목은 긴 시리즈에서 반복되던 메시지를 탈피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일견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만의 개성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리즈의 진정한 주역인 공룡의 임팩트가 약해지고, 시리즈의 마무리로서도, 또 단독 작품으로서도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주제와 메시지
그간 <쥬라기 공원> 삼부작과 <쥬라기 월드> 1편의 주제는 분명했다. 인간의 기술적 진보에 대한 경고였다. 공룡이라는 환상 속에는 윤리 없이 유전공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거대 기업들에 대한 비판, 돈과 명예를 좇아 경쟁적으로 발전할 뿐 자기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대 과학에 대한 경고, 인간이 자연을 제어한다는 것은 혼돈 효과에 의해 불가능하다는 통찰이 담겨 있었다. 이는 오리지널 삼부작에서 쥬라기 공원이 끝내 실패로 귀결되고, 성공적인 듯 보였던 쥬라기 월드마저 폐장해야 했던 공통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전편인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부터 시리즈는 기본적인 뼈대는 간직한 채 주제를 조금씩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화산이 폭발하며 파괴되는 이슬라 누불라 섬에서 공룡들을 구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오웬과 클레어의 이야기를 담은 전편은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었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 한 축이고, 다른 생명의 흥망성쇠에 인간의 개입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다른 한 축이었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도 마찬가지다. 콜린 트레보로우 감독의 인터뷰에서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위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이슬라 누블라 섬에서 데리고 나온 공룡들을 더 큰 세상 속에 풀어놓게 된 거예요. 그것의 결과를 탐험해 볼 수 있는 정말 멋진 기회였습니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우리가 자연계의 힘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영화입니다"라고 영화의 주제를 설명한다. 특히 '자연계의 힘'이라는 말은 영화가 공룡들이 일으키는 문제보다 거대한 메뚜기들이 일으키는 문제에 더 집중한 이유를 암시한다. 이제 <쥬라기 월드>는 단순히 공룡, 그리고 공룡과 인간의 공존을 넘어서서 인간과 공룡까지도 포함하는 쥬라기 '월드', 곧 공룡이 사는 '세계' 그 자체로 시선을 돌린다.
정치생태학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변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의 변화에서는 미국의 정치 철학자인 제인 베넷의 그림자가 짙게 느껴진다. 정치생태학자인 그녀는 자연과 물질도 인간처럼 세계의 변화에 반응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라는 주장한다. 그간 인간은 오직 인간만이 의지와 목적을 갖고 주변에 존재하는 환경, 사물, 비인간 생명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넷에 따르면 비인간 행위자에게도 인간처럼 의지와 목적을 가진 채 행동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비인간 행위자는 인간 행위의 방향성도 바꿀 수 있다. 인간은 식물, 동물, 무생물, 자연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에 속해 있고, 인간의 모든 행위는 매 순간 사물과 결합해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인간의 문화가 자연과 뒤얽혀 활기차게 반응한 결과이듯이, 인간의 의도 역시 거대한 비인간 행위자인 자연과 환경을 만나 실현된다.
거대 메뚜기의 등장도 정치생태학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이오신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곡물 종자들을 배포하고, 비대한 메뚜기 떼를 개발해 식량 공급망을 혼란시킨 후 식량 산업을 지배하려는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바이오신의 계획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메뚜기들 역시 그 계획에 반응하여 능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의 계획이 탄로 날 것을 우려한 바이오신의 CEO '도지슨(캠벨 스콧)'은 증거 인멸을 위해 키우고 있던 메뚜기 떼를 모두 소각 처분한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수준으로 질긴 생명력을 지닌 메뚜기들은 연구실을 탈출해 공룡이 거주하는 숲 전체에 불을 퍼뜨리며 도지슨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초래한다. 이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비인간 행위자의 의도와 반응과 만난 후에야 비로소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전편이 다른 생명체의 세계에 인간이 주체로서 어떻게 개입할 지에 주목했다면,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한 발 더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의 네트워크가 움직이는 방식을 비춘다.
영화는 이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정동(affect)하는 모습을 감정적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그 중심에는 오웬과 벨로시랩터 '블루'가 있다. <쥬라기 월드> 시리즈에서 오웬과 블루의 관계는 항상 특별했다. 비록 누구도 쉽사리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웬은 언제나 블루를 조련할 방법은 없으며 그저 그의 선택과 행위를 존중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즉, 오웬과 블루는 동등한 주체로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간과 공룡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 기제가 된다. 바이오신이 새끼인 베타를 납치하자 극도로 난폭해진 블루. 그런 블루에게 오웬은 메이지와 함께 베타도 구해오겠다고 약속한다. 이후 그의 약속에 예상치 못한 유전자 조작 메뚜기 사태가 더해진 결과 바이오신의 악행은 온 세상에 공개되고, 공룡들에게는 삶의 터전이 생기며, 블루와 오웬은 각각 가족을 되찾는다. 메이지와 베타의 관계가 오웬과 블루처럼 진전되는 것은 덤이다. 이렇게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공룡에 국한되지 않는 상상력을 통해 자연계의 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매력도, 비중도 없는 공룡들
문제는 공룡으로 인해 변화한 세계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정작 시리즈의 주역인 공룡의 매력과 비중이 모두 급감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중 공룡들은 전개에 따른 부속품 정도로 묘사된다. 이는 지난 시리즈에서 다양한 공룡들을 지속적인 등장시키고, 그들의 독특한 행동양식을 부각하며 개성을 어필해왔던 것과는 대비를 이룬다. <쥬라기 월드>에서 비정상적인 흉포함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인도미누스 렉스,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에서 생물병기로 길러졌던 인도랩터처럼 존재감을 과시하는 공룡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공룡들은 공룡 암시장이 있는 몰타에서, 하늘에서, 얼어붙은 댐 위에서, 그리고 지하 터널 등에서 주인공들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
구체적으로 보면, 스토리 진행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블루만 하더라도 그 중요성이나 비중과는 별개로 시작과 끝에 겨우 모습을 비추는 데 그친다. 시리즈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시'의 대우도 다르지 않다. 첫 등장부터 마지막 액션씬까지 기가노토사우루스의 힘에 밀려 시종일관 제대로 싸우지 못하던 렉시의 모습은 시리즈의 상징에게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렉시가 다른 공룡과 협력하면서까지 기가노토사우루스를 쓰러뜨려야 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다 보니 렉시의 등장에는 반가움과 의문이 공존하기도 한다. 빌런 포지션에 가까운 기가노토사우루스 역시 평범한 육식 공룡에 불과할 뿐, 뇌리에 각인될만한 캐릭터성을 어필하지는 못한다. 심지어 후반부 공룡들의 액션씬에서 카메라가 공룡보다 싸우는 현장을 탈출하려는 인간에게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이들의 존재감은 안타깝게도 더욱 줄어든다.
피날레로서도, 독립 작품으로서도 아쉬운 완성도
이에 더해 시리즈의 최종장으로서 <쥬라기 월드> 3부작과 <쥬라기 공원> 3부작을 모두 아우르려는 시도가 크게 성공적이지 못한 나머지 영화의 메시지가 묻히는 듯한 인상도 남는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크게 세 개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오웬과 클레어, 그리고 케일라가 바이오신에게 납치된 메이지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엘리 새틀러 박사와 앨런 그랜트 박사의 이야기로, 그들은 거대한 유전자 조작 메뚜기와 관련된 진실을 찾아 바이오신 보호구역으로 향한다. 마지막은 도지슨의 음모를 저지하려는 이안 말콤 박사와 램지 콜의 서사다. 서로 다른 세 개의 스토리는 제각기 진행되다가 3막에 이르러 하나로 합쳐지고, 다양한 오마주를 통해 시리즈를 하나로 종합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역으로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선 세 개의 이야기를 묶기 위한 작위적인 전개가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바이오신 건물에서 탈출한 엘리, 앨런, 이안 일행의 차는 숲 한가운데서 전복되는데, 이 사고는 때마침 오웬과 클레어가 있는 바로 그 장소에서 일어난다. 또 복제 인간인 메이지를 세 스토리의 교집합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영화의 잠재력을 온전히 살리지 못한 선택처럼 보인다. 전편에서 미처 다 공개되지 않았던 메이지의 과거사는 원본과 복제본의 가치에 관해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을 가능케 하는 극적 장치다. 그러나 메이지의 개인사를 철저히 가족애와 모성애를 강조하는 감정적 측면에만 제한한 결과, 그녀의 이야기는 다소 평범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만다. 두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하나로 묶어서 시리즈의 전통도 살리고 향수도 고취하려던 선택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마지막으로 다루고자 하는 바가 많다 보니 147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조연급 캐릭터들의 동기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제법 비중이 있는 조연인 '케일라 와츠(드완다 와이즈)'나 '램지 콜(마무드 아티)'만 해도 배경 설명이 없다. 케일라는 지나가다가 흘끗 본 아이(메이지)를 구하기 위해 직업과 목숨을 걸고 오웬과 클레어를 도울 정도로 정의감이 강한 인물이다. 그런데 영화는 케일라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해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다.
램지 콜 또한 바이오신 회사에 협력하는 중관 관리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부의 부패를 고발한 반전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시리즈의 메인 악역이었던 '헨리 우(B.D. 웡)'도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영화 내에서 그 과정은 제시되지 않는다. 이렇게 주인공들을 제외한 캐릭터들이 도구적으로 활용된 결과 영화 전반의 개연성도 부족해진다.
물론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오락영화로서, 또 블록버스터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해낸다. 특히 중반부 몰타에서 펼쳐진 공룡과의 속도감 있고 강렬한 추격씬은 마치 <분노의 질주>를 연상케 한다. 수많은 오마주를 통해 <쥬라기 공원> 시리즈 팬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점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러나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너무 힘을 많이 준 탓일까?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시리즈의 끝으로서도 독립된 작품으로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야심 차게 준비한 메시지마저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 채 일단락되는 듯 보인다.
A(Acceptable, 무난함)
쥬라기 '월드'와 '쥬라기' 월드 사이의 불협화음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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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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