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짱2022-03-19 23:24:17
영원한 이별이 없는 삶, <노매드랜드>
디즈니 플러스에 올라온 덕에 보게 된 <노매드랜드>.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작품이자 많은 평론가, 단체에서 극찬을 받았던 작품이라 한껏 기대하고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었고 소름도 여러 번 돋았던 명작이었다. 다음은 자아성찰에 가까운 주관적인 리뷰이다.
노매드
우리나라엔 흔하지 않지만, 바다 건너 대륙에서는 굉장히 흔한 주거 형태인 [Houseless]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노매드'라고 칭한다. 주인공 '펀' 또한 노매드로, 작은 벤 한 대에 몸을 실은 채 대륙을 정처없이 떠돌고 그 속에서 만나는 노매드들과 소통하며 어울린다. 매일 다른 곳에서 밥을 먹고 잠드는 그녀의 모습은 나에겐 마냥 '자유로운 영혼'으로만 보였고, 노매드로서의 삶이 얼마나 불편한지, 영화 속에 속속들이 들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이 된다면 노매드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만큼 내 눈에 펀의 삶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자아 실현의 경지에 오른 삶] 같았다. 누군가에겐 노매드가 실패자나 노숙자처럼 보일지언정, 집이 있는 나보다 훨씬 성공한 인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원한 이별이 없는 삶
영화 속 한 노매드가 말했다.
"이 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은 건,
영원한 이별이 없다는 거예요.
늘 '언젠간 다시 만나자'고 말하죠."
한참을 곰곰히 생각했다. 영원한 이별이 없다는게 좋은걸까, 나쁜걸까? 인간은 살아가면서 한 번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 보고 싶어도 못보고, 만지고 싶어도 못만지는, 영원한 이별, 죽음. 나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경험 속에서 내 주변 사람들을 더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되고, 나도 언젠간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날 것을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영원한 이별을 한다'는 현실은 너무 잔혹하고 버텨내기 정말 힘들지만, 인간으로서 꼭 겪어야 할 성장통이자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따라, 노매드의 말은 '영원한 이별'이라는 현실을 그저 도피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본인에겐 이로울 수 있다, 가슴 아픈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니깐. 그치만 마냥 좋다고는 할 수 없을 거 같다. '죽음'이라는 현상은 자연의 순리 앞에 몹시도 자연적인 것이며, 우주가 괜히 만든 현상은 아닐 것이기에, 영원한 이별을 거부하는 것은 우주를 거부하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영원한 이별이 없는 삶은 솔직히 부럽다.
황혼 (Twilight)
<노매드랜드>의 포스터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노을지는 하늘과 펀의 모습이 연출된다. 딱, 황혼의 시간이다. 이 장면이 연출될 때 괜시리 마음이 편해졌다. 펀이 노매드들과 거리낌없이 떠들고, 웃기도 했던 걸로 기억난다. 황혼기를 살아가고 있는 펀이 황혼을 바라보며 인생을 비로소 즐기고 있는 것, 이게 영화가 제시하는 노매드들의 행복한 삶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황혼, 생각보다 노매드와 잘 어울린다.
전체적인 평가
펀은 주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끝내 노매드로서의 삶을 택한다. 그녀는 아마 영원토록 노매드로 살아갈 것 같다. 노매드들은 캠핑족과 별다를바 없다는 나의 편협한 생각은 이 영화를 통해 확실히 고쳐졌다. 그들은 그저 물리적인 집이 없다는 것. 그들이 서있는 곳, 그 곳이 그들의 집이고 터전이라는 것. 수 십세기동안 인간이 집착해온 [의, 식, 주]는 더 이상 우리가 생각하는 의식주가 아니다. 21세기에 접어든 이후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고, 주거 형태도 다양해지며 다양한 소수자가 생겼다. 그리고 사람들은 소수자의 삶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젠, 노매드에 주목한다. 다음은 어떤 소수자들을 접하게 될까? 세상은 정말 넓고, 나는 정말 한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에 큰 자각을 느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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