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2-03-30 11:08:49
미안해요 콜텍 노동자, ‘해결’된 줄 알았어요
영화 〈재춘언니〉 리뷰
4464일. 콜텍 해고 노동자가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이다. 투쟁하며 길가에서 보내기엔 너무도 긴 시간이다. 이 길고도 긴 시간이 지나서야 회사는 ‘유감’을 표했고, 3명의 조합원에 대한 명예 복직, 25명의 조합원에 대한 보상금을 약속했다. 2019년 4월의 일이다. 2007년 부당해고 후 13년이 지난 때였다.
2010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꿈의 공장〉을 보면, 콜텍 박영호 사장이 기존의 인천 공장을 ‘노조가 점령한 공장’이라 비난하며 새로 지은 대전 공장을 ‘꿈의 공장’이라 불렀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큐멘터리 〈재춘언니〉의 주인공 임재춘 씨가 일했던 곳은 ‘꿈의 공장’이었다. 임재춘 씨에게 공장은 그 '이름값'을 했다. 그는 그곳에서 무려 30년 동안 기타를 만들었다.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임재춘 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하루에 200~300개의 기타를 만들었다고 한다. 회사가 기타를 배우지 못하게 해 연주할 줄은 몰랐지만, 그럼에도 그에겐 한때 세계 기타 생산량의 30%를 점유했던 콜텍은 자부심 그 자체였다. ‘꿈의 공장’에서 노동하며 두 딸의 아버지이자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년 동안 쌓은 자부심이 허탈함, 분노, 좌절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공장 운영을 무기한 중단한다는 통지문 한 장에 30년 세월이 부정당했다. 자그마치 30년이다. 부당해고를 당한 임재춘 씨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이 빼앗긴 일상과 꿈을 되찾기 위해 투쟁에 나선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투쟁 3년 차에 제작된 〈꿈의 공장〉과 13년 투쟁 기록을 담은 〈재춘언니〉를 비슷한 시기에 함께 본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임재춘 씨를 비롯한 해고 노동자들은 그들의 투쟁이 13년 동안 지속된다는 것을 알고서도 이 투쟁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임재춘 씨는 투쟁이 1년 안에 끝날 거라 예상했다 한다. 허망할 정도로 ‘낙관적인’ 전망이었다. 〈꿈의 공장〉에는 투쟁하는 해고 노동자 십수 명 나오는 데 반해, 〈재춘언니〉에는 임재춘 씨를 포함해 세 명의 해고 노동자만 남았다는 데서 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어떤 시간을 견뎌왔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재춘언니〉가 천착한 건 바로 이 지점이다. 투쟁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다는 감독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해고 노동자들이 그 긴 시간을 무엇으로 버텨왔는지를 조명한다.
강한 투쟁력만큼이나 감성적인 요소도 중요하다는 게 〈재춘언니〉의 대답이다. 여장을 하고 〈햄릿〉의 오필리아를 연기하기, 천막 농성장 근처에 텃밭 가꾸기, 투쟁하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시든 방울토마토를 보며 서운해하기, 성별‧나이를 불문하고 연대 방문자와 수다 떨기, 표정만 보고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 알아채기. 모두 중년을 훌쩍 지난 남성 임재춘 씨가 한 일이다. 그는 이렇게 13년을 버텼다. 농성장을 떠난 동료 노동자들을 이해한다는, 자신도 이제 투쟁은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던 임재춘 씨. 그는 나이와 성별에 어울리지 않는 관계 맺기 방식으로 ‘언니’라 불리며 자기 자신과 동료를 챙겼다. 나는 임재춘 씨가 있었기에 그토록 길고도 가혹했던 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이 성과를 내며 마무리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략적 사고, 장기적 전망, 완고한 의지, 투철한 정의감에 다정한 관계 맺기가 더해질 때야 투쟁 현장에 생기가 돌고 사람들은 서로를 보듬을 수 있음을, 〈재춘언니〉는 지난 13년의 세월을 통해 증명한다.
〈꿈의 공장〉을 보면, 콜텍의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투쟁이 국제적 투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여러 뮤지션뿐 아니라 기타를 사랑하는 수많은 해외 뮤지션, 일반인 애호가 등이 콜텍 해고 노동자에게 깊은 연대를 표했다. 국내에서도 콜텍의 투쟁은 꽤 많은 사람에게 여러 곳에서 회자되었다. 그런데도 13년이 걸렸다. 부끄러움이 솟구쳤다. 2010년대 초중반, 콜텍을 규탄하는 집회에 두어 번 참석한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도 종종 뉴스로 콜텍 노동자들의 소식을 접했다. 긴 투쟁 끝에 콜텍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는 관심을 껐다. 콜텍의 투쟁이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영화의 마지막, 임재춘 씨는 한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최근 영화 시사회 인터뷰에서는 경비 노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재춘언니〉를 처음 본 임재춘 씨는 울컥했다고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대한민국에 콜텍 투쟁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콜텍 투쟁이 대한민국의 마지막 투쟁이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TV에 나오고 해도 사회 현실이 변화되는 것은 없더라”는 그의 말에 울적해진 것은.
누군가가 13년의 긴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바쳐 의미 있는 성과를 얻어내는 동안,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얼마나 바뀌었나? 지금껏 우리는 얼마나 많은 투쟁 현장에서 약간의 연대와 죄책감만을 느끼다가 잊어버린 후, 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자위하고는 돌아서버렸는가? 그래서 나는 〈재춘언니〉를 본 후, 콜텍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여긴 것을 반성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동 투쟁 현장이 어떤지 함께 느끼”는 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재춘언니와 관계를 맺자. 그리고 그 관계를 키워나가자. ‘해결’이란 말이 부끄러움을 동반하지 않을 때까지. 이것이야말로 누군가의 간절하고 절박한 투쟁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공당의 대표에게 조롱당하는 요즘의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분노만큼이나 서로를 북돋는 다정한 관계 역시 중요함을 새삼 일깨워준 재춘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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