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2-04-11 23:51:06
아무리 태어나지 말아야 할 팔자라도...
태어나길 잘했어 시사회 영화 후기
춘희는 다한증이 있어서 손에 땀을 많이 쥔다. 그래서 수술비를 모으기 위해 자신이 직접 깐 마늘을 사촌 오빠의 식당에 갖다주는 일당으로 3만 원을 받는다. 사실은 춘희는 손과 발을 뻗을 수 없는 다락방에서 자랐다. 고등학생 시절 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다한증이 있다고 말하다가 구박을 받는다. 상처받은 어린 춘희에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불에 손을 대서 흉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춘희는 성인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간다. 오랫동안 살아온 이 집에서 얹혀사는 신세라 친척들에게 오랜 구박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사랑해 줄 남자를 만나는데 주황이라는 말을 더듬는 남자였다. 주황은 어렸을 적에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해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춘희와 주황은 연애를 하게 되고 서로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춘희에게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과연 춘희와 주황의 연애는 성공할 수 있을까? 또한 자신의 삶을 앞으로 잘 개척할 수 있게 될까?
춘희에게 다한증은 극복해야 되는
오래된 상처 자국이다.
하니엘
춘희는 어린 춘희의 상처에서 벗아났을까?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춘희는 외숙모처럼 외지인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아마도 어린 시절에 쭉 뻗고 잘 수 없는 단칸방에서 살았는지 삶에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많았다. 이것만이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소외당하고 항상 혼자였다. 그리고 사촌 오빠도 과거에 명문대생이었지만 데모만 하는 학생이고 염세주의자였다. 자신의 누나도 학교에서 담배 피우다 걸린 신세였고 불량한 학생이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린 춘희가 항상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태어나질 말아야 할 팔자였다는 것을 미리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된 춘희의 모습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기억에서는 단칸방에서 얹혀살던 집 안에서도 가족들이 항상 싸우기만 했기 때문에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고 자랐다. 그런 그녀에게 주황이라는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도 마음속에 가둬둔 상처들 때문인지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고 다시 혼자가 되는 일을 경험한다. 괴롭던 기억과 외로움으로 가득 찬 춘희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춘희: 모두 다 네 잘못이 아니야!(어린 춘희에게)
영화에서 본 명대사에서 발췌했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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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구찌가 될 상인가.
이 글은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수선화"와 "나르시시즘"이란 단어 사이에는 매우 큰 간격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두 단어가 이야기로 엮이게 되면 우리는 이들이 얼마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지를 알게 된다.
알쓸 신잡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말씀하셨듯, 이야기는 그 무언가를 기억하게 하고, 잘 전달하게끔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토록 다른 카테고리에 있는 무작위로 뽑은 단어들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살을 붙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얼핏 보면 "구찌"와 "살인"도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이 둘 사이의 거리도 좁혀질 수 있을 만큼의 접점이 존재한다고 속삭인다.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전해주는 이야기이니, 믿고 시간과 우리의 마음을 맡겨도 손해는 없을 것이다.
두 번째, 그 애매함을 넘어서기.;두 주연이 이뤄내는 반란.
사진 출처:다음 영화
숫자 2는 참 이상하다.
소수(Prime number, 참고 1) 중 유일한 짝수인 점도 그러하지만. 성공적인 영화의 2편(혹은 후속편)의 제작은 가장 많은 욕을 먹을 각오로 제작해야 하는 리스크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속담만 들어봐도 이 2라는 숫자가 가진 위치와 애매함은 불완전함, 혹은 사족을 뜻하기도 한다.
두 주연 배우에게도 이 2라는 숫자는 여러모로 많은 부담을 안게 하는 숫자였을 것이다.
한 번 일한 배우와는 일을 안 한다는 말이 돌 만큼 캐스팅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리들리 스콧과 전작인 [라스트 듀얼]에 이어 두 편의 영화를 찍는 영광 아닌 영광을 가진 아담 드라이버에게도.
[스타 이즈 본]에서 성공적인 연기를 보였지만, 소포모어 신드롬(Sophomore syndrome, 참고 2)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두 번째 작품으로 이 영화에 참여한 레이디 가가에게도 말이다.
두 번째.
하지만 자신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줘야만 하는 단 한 번의 기회.
이 상황에서 두 배우는 서로의 손을 잡아 불안한 하나 보다 온전한 둘이 되는 것을 택했다. 숫자 2에 숨은 또 다른 의미를 슬며시 끌어온 것이다.
덕분에 영화는 걱정했던 불완전함이 묻어나 껄끄럽거나 삐걱거리지 않는다. 안정적이고 세련된 연기로 영화 내내 관객의 마음을 오롯이 구찌 가문의 안위만을 걱정하는데 쏟게 한다.
껍데기의 싸움.;결국 껍데기는 알맹이를 이길 수 없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화투.
꽃을 가지고 하는 싸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정마담이 영화 타짜 1편의 시초가 된 화투를 그렇게 정의했다면, 구찌 가문의 또 다른 축이었던 알도 구찌(알 파치노)는 이 모든 가족 싸움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구찌 가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껍데기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브랜드 구찌가 만들어낸 상품들이 보이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기도 했겠지만, 실제로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자신들이 원하고 탐하다 못해 선택해서는 안 되는 방법까지 기꺼이 행하게 하는 "Gucci"라는 껍데기를 차지하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혹자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혹자는 자신에겐 허락되지 않은 이름을 결혼을 통해서라도 갖기 위해.
또 누군가는 아들에게 이름을 물려주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독을 바른 손톱을 잔뜩 세워 희생양이 사정권 안에 들어오기를 몸을 낮춰 기다리며 상대를 찔러보는 싸움을 하고 있지만. 마우리치오 구찌(아담 드라이버) 만큼은 이 껍데기가 죽도록 싫어 벗어나려고 애쓰는, 혹은 사업을 위해 매진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자신은 이런 싸움은 관심이 없는 듯한 독야 청청한 자세로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서. 나는 "당신들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몸으로 소리치듯이.
하지만 그는 단 한순간도 구찌라는 이름을 버린 적이 없었다. 소극적인 태도, 정면으로 나서지 않으려는 뉘앙스로 구찌를 원하지 않는 척했을 뿐. 그는 항상 그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것"이라는 껍데기를 찾아 익숙한 것에서 도망치려 했다.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을 늘 가지려 애썼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그 역시도 같은 인물일 뿐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언제나 결말이 그러하듯.
아무리 화려한 껍데기라도 알맹이를 이길 순 없었다.
구찌는 가짜들의 싸움이 아닌, 진정으로 구찌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간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만 했던 "껍데기"구찌와 알맹이 구찌가 모두 같은 고귀한 모습을 지니기를 바란 사람들이 이긴 셈이다.
명감독은 명감독이다.;이걸 누가 이기니.
사진출처:다음 영화
가끔 캐릭터가 가진 모든 이야기의 끝까지 다 박박 긁어 쓰는 영화를 만날 때가 있다. 애석하게도 그런 캐릭터는 배우의 연기에 상관없이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때가 많다. 영화가 나눠 가져야 할 처절함이나 진중함을 캐릭터 하나 몽땅 갈아 넣는 것으로 됐지?라며 선심 썼다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가 조금은 다르다고 느껴지는 지점은 아마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그의 전작들도, 그리고 이번 영화에도 처절한 인물들은 늘 등장하지만, 어쩐지 그가 만들어낸(혹은 실존한) 인물들은 소모된다는 인상보다는 함께 숨 쉬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며 영화에 참여하다 보면, 감독이 만들어낸 영화에는 그 어떤 캐릭터도 소모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덕분에 인물들의 몸짓과 말 하나하나에 마치 폐부를 찔린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영화에서 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레이디 가가, 아니 파트리치아 구찌가 마지막 대사를 내뱉을 때, 그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지저분한 가족사를 관음증 환자처럼 끝까지 들여다본 관객은 어떤 껍데기에 집착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참고 1
소수는 1을 제외하고 자신만이 약수가 되는 수를 말함. 즉 3은 1과 3. 5는 1과 5. 이런 식의 숫자를 말함. 2는 유일한 짝수인 소수임.
참고 2
소포모어 신드롬(Sophomore syndrome), 혹은 슈퍼 루키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첫해에 정말 엄청난 활약을 보인 선수가 두 번째 해에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내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평균으로 회귀한다는 쪽으로 해석한다는 사람도 있으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뭐 어떻게 매년 잘하냐.
[이 글의 TMI]
아직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2022의 새해 스케줄의 소용돌이에서 정신을 놓기 직전에 마치 휴식처럼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조금 빨리 입장한 영화관에서 내 자리를 찾던 도중, 어둑어둑한 상영관 안에서 작은 노트를 펼쳐놓고 글(이라고 추정함)을 쓰시는 분을 발견했다.
순간 아주 많은 생각과 감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보통 기억력이 좋지 않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서 대충 잊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며칠이 지나도 계속 잔상처럼 그분의 글 쓰시던 자세나 분위기가 마음에 남아 맴돌았다.
마치 알게 모르게 계속 글이 쓰고 싶었는데 그런 내 마음의 응어리가 모여 현실로 쨘 하고 나타난 것처럼.
결국 나는 글 쓸 시간을 짜내기 위해 앞으로 회사에서 대충 샐러드를 저녁으로 퍼먹고 집으로 오기로 했고, 덕분에 이번 주말에나 겨우 쓸 수 있을까 말까 점쳐야 했을지도 모를 영화 리뷰글을 쓰고 있다.
혹시라도 뭐 그럴 리 없겠지만.
그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그것도 여기까지 읽으시는 불상사(?)가 생긴다면.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롯데월드타워 금요일(1/14) 19시에 하우스 오브 구찌를 보시던 그분. 덕분에 약간 정신 차릴 수 있었습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리들리스콧 #하우스오브구찌 #레이디가가 #아담드라이버 #자레드레토 #구찌는커녕팔찌도없음 #영화인플루언서 #네이버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브런치작가 #영화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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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을 뱉어냈으니, 이제 행복을 삼킬 차례.
모든 것을 통제당하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궁지에 몰린 채 살아온 헌터는 마리오네트처럼 표정도 머리도 생활도 정해진 대로 남에게 맞춰 살아간다. '자신의 의지'는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생활 반경에서 수동적이며 불안한 상태를 지속하는 헌터, 그에게도 자그마한 꿈은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헌터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내뱉는다. 그럼에도 그들 사이에서 인정받기 위해 ‘임신’을 선택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주변의 모습은 헌터가 어떤 선택을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헌터가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던 이 행동은 가족의 문제가 되어 상담받게 되지만 그 상담조차도 헌터의 마음이 아닌 집안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한 절차가 된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헌터는 침대 밑에 숨어 자신의 불안함을 외부로부터 숨긴다. 그런데도 해결되지 않은 본질적인 문제는 헌터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리고 마침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의지’로 도망친다.
상처의 완전체라고 볼 수 있는 헌터는 끊임없이 자신의 안을 상처입히다가 그 상처를 직면하게 된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한마디가 “매일 예상치 못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라” 라는 말로 억지로 잡으려 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게 한다. 보이는 것이 다른데, 이해하려 하지 않는 주변에 의해 끊임없는 불행을 삼켜내야 했던 헌터가 ’자신의 의지’로 불행을 배출해 내는 모습이 너무나도 홀가분해 보였다. 또한 헌터는 이제부터 수많은 사람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은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행할 것이다. 보는 내내 헌터가 무언가를 삼키는 모습이 남편과 시가 식구들이 가스 라이팅으로 헌터를 압박하는 순간보다 덜 갑갑한 느낌을 받았다. 불완전함은 완전하기 위해 소리를 내고 그 소리는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그려낸 '스왈로우는 내적 트라우마가 내면으로 스며드는 순간을 정면으로, 또 세심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특히 헤일리 베넷의 표정과 연기가 이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 생생하게 살아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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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분명히 톱스타였던 내가 갑자기 무명 재연배우?
안하무인의 톱스타
오빠 일어나!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에 박강은 부랴부랴 눈을 뜬다. 우리 기사 났어! 동침을 한 동료 여배우의 말에 눈이 뜨인다. 핸드폰을 키는 박강. 뉴스란에 박강의 스캔들이 대문짝 하게 걸려있다. 연말에 귀찮은 일 생겼네. 기사를 처리할 생각에 매니저부터 생각난다. 그런데 눈치 없이 박강은 매니저만 찾지 않았다. 파트너인 동료 여배우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다. "이거 너네 회사가 낸 거 아냐?" 발끈하는 동료 여배우. 집에 크게 걸려있는 박강의 초상화에 커피를 뿌리고 집 밖을 나선다.
박강의 직업은 배우다. 배우라고 하는 것은 연기를 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박강은 톱스타다. 사생활은 더럽지만 연기는 곧잘 하는 박강. 한국영화대상이라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정도였다. 올해도 후보 지명뿐만 아니라 수상까지 성공하는 주인공. 박강은 수상소감으로 감사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할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그동안 함께했던 회사 식구들이나 스태프들에게 고맙다고 할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초심 잃겠다'라는, 말실수 아닌 말실수를 해 실검에 등장한다. 안하무인의 톱스타 박강. 온 세상이 우습지만 특히 더 만만한 건 친구 겸 매니저 조윤이다. 회사가 대형 에이전트는 아닌 탓에 박강의 흥망성쇠에 조윤 가족의 일상이 달려있다. 분명 연극 같이 하던 친구이자 동료였는데 조윤은 박강이 하라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한다. 자기가 했던 수상소감처럼 초심을 완벽히 잃은 박강. 이런 박강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 도착했다. 택시 하나를 탔을 뿐인데 자기가 톱스타였던 세계관에서 무명 재연배우인 세계관으로 옮겨진 것이다!
왜 지금 개봉을?
영화에서 중요한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다. 이 영화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구색을 갖췄다고 느낀 것은 이 시간적 배경 덕분이다. 영화의 이야기에서 이 작품이 왜 이 시기로 잡았는지 설명하는 편이다. 일단 크리스마스가 있다는 것은 시기가 연말이라는 것이다. 연말이기 때문에 시상식이 있다. 이 시상식에서 박강이라는 인물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묘사하는 대사가 있다. 또 크리스마스 자체가 가족들이랑 보내는 시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만큼 감독이 이야기의 완결성을 잘 생각했다고도 볼 수 있다. 또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와도 연관이 있다. 이 상징적인 의미는 후반부에 어떤 대사와 이어진다. 각본을 쓴 마대윤 감독이 이 부분을 일부러 만들었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또 영화 전체적으로 크리스마스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이야기의 터닝포인트로 활용한 부분이 몇 개 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라는 소재에 여러 키워드를 넣다 보니 좀 아쉬워지는 부분이 있다. 왜 개봉시기가 2023년 1월일까? 하는 생각이다. 2022년 12월에 <아바타 : 물의 길>이라는 자연재해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런데 글쓴이는 11월 말에도 개봉시기로 적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새로운 인생의 탄생’이라는 관점이 극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모티브이기 때문에 1월의 개봉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올빼미>나 <육사오>처럼 장르적인 개성을 어느 정도는 잡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자의 영화(<육사오>)의 경우처럼 나름의 뚝심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한다. 적당히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후에 개봉하는 <유령>, <교섭>보다 더한 임팩트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예감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시기가 좀 아쉬운 영화가 됐다.
심심하면 만날 수 있어
영화의 소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작년 11월에 개봉했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다. 찡한 가족드라마이자 ‘당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 영화. <덩케르크>처럼 미니멀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닌 넣을 수 있는 건 죄다 때려 박아서 내내 폭발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그 하나하나 빼곡히 넣은 소재가 영화의 주제 중 하나(‘모든 것을 경험하고 난 후의 삶’)과 이어져서 의미 없이 소모되는 것이 없었다. 이 <에브리씽~>은 이렇게 연출과 이야기가 맞아떨어지는 쾌감 덕분인지 많은 분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하려고 하는 말의 방식이 신선해서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과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전 세계의 영화인들이 사골국같이 우려낸 소재다. 이제 <에브리씽~>의 연출방식이 아니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비단 <소울>만 봐도 이런 소재 영화가 재작년에도 있었다.
이 <스위치>는 이렇게 익숙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개성이 느껴졌다. 바로 영화에서 기본적인 구성이 어느 정도는 갖춰졌기 때문이다. 이는 <올빼미>나 <육사오>와 유사한 느낌이다. <올빼미>가 대체역사물과 스릴러라는 익숙한 맛을 살렸다면 <육사오>는 그냥 순수하게 웃기는데 집중한 영화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위치>는 가족구성원들의 캐릭터를 잘 살렸고, 가족의 유대감을 살려 코미디로 소화하는 연출이 몇몇 보인다. 대표적으로 아내 수현 캐릭터가 박강의 행보를 설명해주는 인물처럼 보인다는 것이 그를 설명할 수 있다. 수현이 어떤 캐릭터로 설정됐느냐에 따라 박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좋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나름 잘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인물이 좋은 사람이라 마음이 간다. 그런데 아쉬운 부분도 있다. 수현의 몇몇 대사는 좀 오그라든다. “이렇게 예쁜 선물을 받아서 화가 난고야?”같은 대사는 아쉽다. 이 부분은 영화의 가장 큰 단점과도 이어진다. 수현에게 비교적 올드한 연출이 집중되기 때문에 거의 주인공쯤 되는 분량인 이민정 배우 부분이 약간 숙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사 몰입에 집중이 안 되는 것이다.
다른 가족구성원으로 나오는 어머니, 아들/딸은 나름 연출로 잘 살렸다. 자녀가 되는 로이, 로하 역할은 살짝 아쉬운 박강의 감정선에서 관객을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무슨 말이냐고? 아이들이 귀엽다. 특히 박소이 배우도 귀엽지만 그 동생으로 나온 분이 애가 이쁘다. 극 중에서 그렇게 잘생긴 아이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냥 귀엽다. 캐릭터를 살리는 인물 설정이나 촬영방식에서 이 둘을 살리는 연출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캐릭터인 어머니 역은 두 인물의 차이를 보여주는 역할을 나쁘지 않게 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처음 등장할 때 어떤 위치에서 나왔고, 두 번째 등장할 때 어디서 만났는지를 보다 보면 가족구성원의 위치가 박강을 설명하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스위치>에서 신파극적인 요소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의 근거는 중 후반부쯤에 어머니가 어떤 연기를 보여주는 신이 있다. 뭐 다른 분들은 글쓴이만큼 좋아하진 않겠지만 나는 이 장면이 감정적으로 찡했다. 어머니와 아들 간의 관계를 이렇게 엉엉 울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다. 좋은 연출의 예시였다.
살짝 새는 구멍
영화에서 가장 근본적인 세팅은 역시 멀티버스다. 영화에서 직접적인 '다중우주' 언급이 없긴 하지만 뭐 다른 평행세계의 삶을 그렸다는 점에서 멀티버스를 언급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영화 자체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깊게 안 하고 지나가는 것이 좋았다. 단순히 작년만 해도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에서 이에 대한 묘사가 나왔다. 이 이유의 연장선상에서 다중우주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는 많았다. 당연히 이를 두 번 세 번 설명하면 좀 지루하다고 느꼈을 것 같다. 영화는 이 설정을 과감히 생략하며 이야기의 선택과 집중을 강점으로 발휘시켰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가족영화적 특성'에 임팩트를 집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집중하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살짝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박강이라는 인물을 곁에 둔 주변인들의 리액션이다. 영화에서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세계관이 바뀐 박강의 상태 묘사다. 박강은 다른 세계관에서 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다른 세계에서는 슈퍼스타였던 그가 서프라이즈 재연배우로 만족한다는 게 말이 쉽지 막상 내 입장이 되면 나 같아도 저렇게 행동한다. 여기에 물리적인 분량을 할당하고 인물의 서사를 쌓은 방식 자체는 코미디로서도 좋고 영화의 매끄러운 연결이라는 측면에서도 탁월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영화에서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박강의 가까운 지인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묘사된다. 여기서 박강의 인물선은 입체적인데 주인공과 친한 인간관계의 감정선은 평면적인 쪽에 가깝다. 설정에 대한 설명 이전에 박강이 어떻게 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렇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인물 서사에서 이를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후반부의 어떤 이야기전개는 숙제를 푸는 듯이 쉭쉭 넘어간다. 수현이 좋은 사람인 것에 의존하는 셈이다.
그리고 어떤 떡밥은 영화가 강박적으로 풀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영화 전체적으로 따뜻한 가족영화적인 특성을 살렸다. 이를 위해서 떡밥을 푸는 행동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 중 ‘와 이건 좋았다’ 싶은 부분도 있다. 가령 수현이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라는 것, 박강의 가족관계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수현이 그림을 그리는 부분은 이 부부에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소재가 된다. 박강의 가족관계에 대한 부분은 후반부까지 이야기를 나름 잘 챙겨서 이야기 서사에 굴곡을 부여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이것이 ‘강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영화의 엔딩 장면에 대한 이야기다. <헌트>의 엔딩에 대해서 써보자면, 이 작품의 끝 장면은 고윤정 배우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이정재 감독이 나중에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이랬겠구나’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반대다. 영화의 인물들이 뭘 어떻게 했는지를 너무 대놓고 다 보여준다. 만약 처음 만난 그 장면에서 끊었으면 여운이 엄청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지나치게 친절한 셈이다.
낡은 구석들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이야기를 잘 갖춘 영화지만 나이 든 영화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바로 권상우 배우의 상의 탈의 신 몇 개다. 영화에서 권상우 배우가 상의탈의를 한 장면이 다섯 번 정도 된다. 여기서 두~세 번 빼고는 사실상의 탈의 안 해도 된다. 특히 찜질방에서 조윤과 대화하는 신은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권상우 배우 멋있는 걸 굳이 이 영화를 통해서 알아야 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여기서 보여주는 코미디 신은 호보다 불호가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박강이 슈퍼스타인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장소에서 어떤 행동을 한다. 아 진짜 싫다. 이걸 재밌어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글쓴이는 진짜 너무 싫었다. 왜 저러지? 싶었다. 이후에 박강과 어머니의 대화 신에서 느껴지는 뭉클함이 인상 깊어서 이게 더 두드러졌다.
그리고 수현이라는 캐릭터의 연출 방식도 살짝 아쉽다. 수현 캐릭터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다. 배우로서의 성과가 시원찮은 박강을 굳게 일으켜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로서도 두 아이들에게 좋은 어머니가 되어준다. 그렇다고 인물을 납작하게만 설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인물에서 몰입이 깨지는 느낌은 대사(들)에서 나온다. ‘나 같은 예쁜 선물을 받아서 기분이 나쁜 거야?’식의 대사는 이민정 배우가 처음 등장했던 <그대 웃어요>에서나 본 대사다. 이런 대사가 이야기가 잘 전개되다가 갑자기 등장해서 좀 의아해지는 부분이 있다. 이민정 배우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영화에 플러스가 되는 셈이다. 근데 수현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할 때 이것만 기억나는 거라면 이런 연출방식이 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직업은 배우
사실 권상우 배우에게 예술가적인 기대를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다. ‘옥상으로 따라와’와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빼곤 20대 후반인 글쓴이에게도 뭔가 신선한 느낌이 없다. 저번 작품인 <히트맨>에서도 뭔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이 <스위치>에서 권상우 배우는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왠지 불쌍한 무명배우와 슈퍼스타의 간극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를 잘 연구해서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극에서 굉장히 찡한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도 권상우 배우가 이렇게 감정적인 전달이 좋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안하무인 톱스타가 어떻게 이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느끼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외로운 눈빛과 몸짓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 분이 새삼 직업이 셀럽이 아니라 배우인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 권상우 배우의 최고작 갱신에도 불구하고, 오정세 배우의 퍼포먼스가 압도적이었다. 이 배우가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극 중 극 연기다. 이 영화 안의 드라마 연기와 영화 자체의 퍼포먼스를 비교하면 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또 조윤이 톱스타가 된 세계관에서의 연기도 나름 충실했다. 대놓고 조윤을 안 챙기는 박강과는 다른 대비되는 모습을 '어떻게 하면 인물들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지'를 연구하고 표현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과시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절제된 인물로 톱스타의 오만과 미덕에 대해 연기하는 좋은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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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왕을 차지하라. 영화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THE FAVOURITE, 2018)제작 : 미국,드라마 │ 감독 :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 올리비아 콜맨(앤 여왕), 엠마 스톤(에비게일), 레이첼 와이즈(사라)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19분영화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은 18세기 영국 왕실의 이야기다. 유럽 중세, 근대의 시대극은 항상 나를 사로잡는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화려한 의복들(특히 드레스)이 가득하고, 궁정생활은 또 어찌나 신기하고 재밌는지. 게다가 제목을 보라. 왕의 여자도 아닌, 여왕의 여자다. 재밌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야기임을 단박에 눈치챘다.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는 영화는, 1700년대의 영국 궁정을 배경으로 다룬다. 그 당시 영국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통합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앤' 여왕이 즉위해 통치하고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앤 여왕은 개인사가 눈물겹다. 어릴 때부터 나약했던 여왕은 젊은 시절부터 비만이 심각했고 통풍을 앓았다 한다. 18번의 임신 중 대부분은 유산하거나 사산했고, 나머지 출생한 자녀들도 10살이 되기 전 죽는 불행을 겪었다. 개인사가 너무 비극이라 그랬을지, 여왕은 근엄하고 리더십 있는 군주라고 보긴 힘든 모습이다. 늘 쉬고 싶어 하고, 변덕스럽고, 충동적이고, 아무튼 여러모로 군주감은 아닌 듯 보였다.
(앤 여왕과 그녀의 최측근 사라)
그런 여왕 앤의 곁에는 '사라'라는 인물이 있다. 어릴 적부터 앤 여왕의 소꿉친구였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몸이 약한 앤을 대신해 국정을 돌보는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왕정은 사라가 실세가 된 섭정의 모습으로 흘러간다. 그러던 중 사라에게 한 인물이 찾아오는데. 사라의 먼 친척이자 몰락한 귀족인 '에비게일'이다. 알거지가 되어 뭐라도 일거리를 달라던 그녀는, 사라의 호감을 사 궁정의 하녀로 일하게 되는데.
그렇게 궁정생활을 시작한 '에비게일'이 자신을 가난에서 구제해준 사라를 따라 끝까지 신의를 지켰더라면 좋았겠지만. 얘기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우연히 여왕의 서재에 들어갔다가 앤 여왕과 사라가 밀애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 에비게일. 그때 그녀의 머리에 야망의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그 이후, 에비게일은 작정하고 앤 여왕을 유혹하기에 이르고. 머지않아, 여왕의 침대에서 나체로 여왕과 끌어안고 자는 모습을 사라에게 들키고 만다. 서슬 퍼런 고의였음은 물론이다.
(여왕의 호감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에비게일)
앤 여왕을 곁에서 40년 가까이 보필한 사라의 마음은 어땠을까. 얼마나 큰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였을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최고 권력자는 철저히 앤 여왕이며, 여왕 곁에 남을 수 있는 길은 에비게일과의 투쟁에서 이기는 법 밖에는 없었다. 그때부터 사라와 에비게일이, 남자도 아닌 여왕을 두고 치정극을 벌이기 시작한다. 실제로 셋의 관계가 성적인 부분까지 내포한 관계였는지까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왕의 신임을 얻기 위한 권력다툼 자체는 실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치정극의 배경이 왕실이니 만큼, 이 싸움에 그저 왕의 애정 유무만이 작용했던 건 아니다. 영국의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중심에 있었다. 당시 영국은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와 동맹해 프랑스, 스페인과 전쟁 중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두고 전쟁을 찬성하는 휘그당과, 화친과 평화를 주장하는 토리당이 존재했다. 문제는, 앤 여왕을 40년간 돌본 사라의 남편, '말버러 공작'이 이 전쟁에서 엄청난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사라는 당연히 팔이 안으로 굽어 전쟁을 부추기는 쪽이었고,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던 앤 여왕과 점점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다. 시종일관 이 문제로 부딪치는 사라에 비해 여왕님 편만을 들던 에비게일이, 여왕 입장에서 더 예뻤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까.
에비게일의 계략과 더불어 이런 에비게일에게 힘을 실어준 토리당이 결국 실세가 되면서, 사라는 결국 궁에서 쫓겨나고 만다. 영화에서는 세 여자의 암투극에 더 초점을 맞추었지만, 실제론 전쟁이라는 정치적 문제로 사라와 앤이 대립했던 것이 사라가 쫓겨난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흡사 조선의 한 역사가 떠오른다. 각각 서인과 남인을 등에 업고 왕 곁에서 싸우던 인현왕후와 장희빈 말이다. 조선이나 영국이나 궁정의 모습은 근본적으로 다 비슷했던 모양이다. 심각하고 지루할 수 있었던 역사의 한 부분을, 세 여자를 필두로 한 코믹 암투극으로 풀어냈기에 영화가 더 재밌게 느껴진 것 같다. 왕, 그것도 여자인 왕을 두고 싸우는 두 명의 여자라니.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신선한 이야기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그녀들은 과연 왕을 인간으로 사랑해보기는 했을까. 권력욕에 불타 있던 사라, 출세욕에 불타 있던 에비게일. 그들이 뚱뚱하고 변덕스럽고 무능한 여왕을 사랑했던 건, 단지 그녀가 왕관을 쓴 권력자였기 때문 아닐까. 그런 면에서 왕은, 왕관의 빛으로 유지되는 참 고독한 존재가 아닌가 싶다. 18명의 아이를 잃고 그 상실감에 18마리의 토끼를 기르던 여왕 앤의 모습은, 왕이라기보단 그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던 평범한 인간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게 사라든 에비게일이든, 그녀는 진정한 친구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앤 여왕은 결국 비만으로 인한 여러 질병으로 일찍 죽었다. 죽기 직전에는 휠체어 없이는 이동도 못할 만큼 거동이 힘들었다고 전해진다. 반면 사라는? 궁에서 쫓겨나고도 84세까지 살았다고. 권력이 다 무엇이고, 그를 향한 암투가 다 무엇일까. 어떤 역사를 뒤져봐도 세상에 마냥 행복한 왕은 없고, 영원한 권력도 없는 것을.
영화가 끝난 뒤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에비게일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내게도 일말의 출세욕 같은 게 모락모락 피어나, 나를 구제해준 친척 언니 사라를 제치고 왕의 사랑을 받고자 애썼을까. 음, 아닐 것 같다. 소심한 나는 일단 나를 구제해준 사라 언니를 위해 열심히 일했을 것이다. 공작부인인 사라 옆에만 잘 있었어도 남은 내 여생은 그럭저럭 괜찮았을 테니까. 내가 사라였다면 또 어땠을까. 나는 치정 싸움 그 멀리까지는 가지도 않고, 그저 앤 여왕의 말벗 정도로만 만족하며 살았을 것 같다. 여왕의 친구로만 있었어도 분명 편안히 살 수 있었을 테니까. 괜한 권력 욕심의 끝은 언제나 비극인 법, 절레절레 사양이다. 역사시간에 아무리 졸았어도 내 그쯤은 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역사는 그야말로 선택과 선택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앤 여왕이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에비게일이 이렇게 했더라면. 모든 역사는 조금씩 다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역사는 재미있고, 늘 영화의 흥미진진한 소재거리가 되나 보다.
이 이야기는 20년 전에 이미 각본이 쓰여진 바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이 무려 셋이나 되는 왕정 이야기를 아무도 영화화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란티모스 감독이 이 각본을 보게 되면서 현재의 영화가 되었다고. 여자들 얘기가 얼마나 재밌는지 왜 옛사람들은 몰랐던 걸까. 적당한 풍자를 곁들인 이 여성들의 맛깔난 권력 찬탈 이야기는, 아마도 내가 본 궁정 영화 중 최고가 아닌가 싶은데 말이다. 이 각본을 알아본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혜안에 엄지를 치켜들어 본다.
글쓰는우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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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 시리즈 순위
분노의 질주 시리즈 순위
#10 : 외전 홉스 & 쇼 (Fast & Furious Presents: Hobbs & Shaw, 2019)
<데드풀2>의 데이빗 레이치는 드웨인 존슨과 제이슨 스타뎀의 출연작에 대한 메타유머를 활용하고, <007 시리즈>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한다. 런던,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모아로 공간적 배경을 옮겨 다니고, 007의 국제 범죄조직'스펙터'에서 영감을 받은 '에테온'을 등장시킨다. 또 런던 리든홀 활강 장면은 <미션 임파서블>의 부르즈 할리파 장면을 오마주했다.
<홉스 & 쇼>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라기보다는 '버디 액션 코미디'에 가깝다. 또 이야기가 허술한 것은 이해한다 손치더라도 액션조차 히어로영화스럽다. 또 '해티 쇼(바네사 커비)'는 등장할 때마다 빛나지만, 블랙 슈퍼맨 '브릭스턴(이드리스 엘바)'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진다.
#9: 2편 패스트 & 퓨리어스 2 (2 Fast 2 Furious, 2003)
전편의 답습, 마이애미로 이사 간 브라이언은 새로운 파트너 로만 피어스(타이리스 깁슨)와 콤비를 이루지만, 빈 디젤의 공백을 메우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테즈(루다크리스)가 코믹하게 등장한다.
1시간 반 남짓한 2편은 드라마를 듬뿍 덜어낸 대신 존 싱글턴은 '스트리트 레이싱'에만 집중한다. 문제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 속도감은 있지만 우스꽝스럽다. 아무리 저예산 B급 액션 영화라고 해도 동선조차 조잡하다. 이상 2편은 1편과의 연계성도 거의 없고, 엉성한 캐릭터와 부실한 볼거리, 뼈대만 남은 앙상한 스토리라인이 아킬레스건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로만과 테즈 콤비를 득템했다.
#8 : 3편 도쿄 드리프트 (Fast And The Furious: Tokyo Drift, 2006)
그야말로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인 ‘스트리트 레이싱’에만 올인한 3편이다. 특히 ‘드리프트’의 속도감과 긴박감을 살리기 위해 현역 드라이버 중심으로 구성된 스턴트 스태프들이 온몸을 불사른다. 이쯤 되면 <트리플 X>와 <분노의 질주>를 제작한 닐 오비츠의 성향이 나온다. 플롯, 캐릭터, 드라마, 리듬은 약하지만, 속도감과 볼거리만큼은 끝내준다. 설계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설득력을 갖춘 캐릭터가 없다. 이것이 패착이다.
새로 합류한 저스틴 린 감독은 시리즈의 전통인 '길거리 경주'와 '자동차 문화', '범죄' 등 향후 프랜차이즈를 구성할 방향성을 대폭 수정한다. 바로 '다민족 캐스트'를 강조하고, '해외 로케이션'을 적극 반영할 준비를 이미 3편에서 끝마쳤다. 향후 블록버스터로 나아갈 기초공사를 마친 셈이다.
#7 : 8편 더 익스트림 (The Fate Of The Furious, 2017)
프랜차이즈를 책임지는 작가 크리스 모건과 범죄영화에 특화된 F. 게리 그레이는 사망한 폴 워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분노의 질주>만의 포뮬러(공식)을 깨버린다. 리더 돔 토레토(빈 디젤)이 자신의 패밀리를 배신하는 영리한 조치를 취한다. 그 과정에서 한을 살해한 데커드 쇼(제이슨 스테이섬)에게 별다른 속죄 없이 면죄부를 부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특유의 가족드라마가 깨졌지만, 홉스(드웨인 존슨)와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워커의 부재로 말미암아 실종될 버디 코미디를 되살렸지만. 그 대가가 너무 컸다. 캐릭터쇼와 볼거리가 다양하고 액션 규모를 키운 반면에 메인 빌런인 샤를리즈 테론의 존재감이 너무 약하다.
5편부터 그 조짐이 보였지만, 액션 스타일이 007시리즈를 자꾸만 연상시킨다. 레티(미셸 로드리게즈 분)가 차량을 비스듬히 기울여 운전하는 장면은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를, 설원의 카 액션은 <007 다이 어나더 데이>를, 최종 병기로 잠수함을 활용한 클라이맥스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007 언리미티드>을 떠올리게 한다.
#6 :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F9: The Fast Saga, 2021)
유니버설은 ‘더 패스트 사가(The Fast Saga)’로 명명된 지난 시리즈를 정리하고 후속작(F10, F11)에 쓰일 복선을 미리 깔아놓는다. 그래서 9편은 드라마 비중이 상당하다. 또, 5편에서 '드웨인 존슨'을, 6편에서 '제이슨 스타뎀' 같은 유명 배우를 추가해서 얻은 효과를 존 시나를 통해 노리고 있다. 그래서 토레토의 가정사부터 3편<도쿄 드리프트>의 등장인물 백스토리까지 캐릭터 개발에 공을 들인다. 동창회처럼 시리즈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총집결한다.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인 터무니없는 액션과 캐릭터 쇼로 끊임없이 팬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존 시나를 추가하는 바람에 페이스가 느려졌다. 가족 드라마를 그리기 위해 긴박감과 박진감을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야기 얼개가 탄탄해진 것도 아니다. 이 시리즈는 불가능한 것이 없도록 스스로 세계관을 바꿔왔다. 이제 이 전략이 한계 지점에 다다른 것 같아 불안하다.
#5 : 4편 더 오리지널 (Fast & Furious, 2009)
4편은 사실상 리부트에 가까운 '기능적인 영화'다. 저스틴 린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크리스 모건은 폴 워커와 빈 디젤을 다시 등장시키며 1편을 리뉴얼한다. 초기 영화(1·2·3)의 스트리트 레이싱 드라마와 후기 영화(5·6·7)의 액션 블록버스터 사이 어딘가에 끼어있다. 이런 불균질한 영화의 톤이 몰입을 방해한다. 그리고 차량 투척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액션이 별 특색이 없다.
1편의 전개와 구도, 캐릭터를 동어반복한지라 작품 자체의 개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레티(미셀 로드니게스)에 대한 부주의한 대접은 <분노의 질주> 특유의 가족 드라마를 방해한다.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 이후부터 저스틴 린은 캐릭터를 조심스럽게 다룬다.
유일한 장점은 ‘한(성강)’을 도미닉의 친구로 등장시켜 외전에 가깝던 3편을 시리즈의 세계관에 편입시켰다는 정도다.
#4 : 1편 분노의 질주 (The Fast And The Furious, 2001)
이 저예산 범죄영화가 이후에 21세기 초 가장 중요한 영화 프랜차이즈 중 하나가 될 것을 알았을까?1편의 줄거리와 캐릭터, 설정은 <폭풍 속으로 (1991)>을 참조했다.
1편의 진정한 가치는 ‘길거리 레이싱’이라는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세운 점이다. 먼 훗날, 탱크와 핵잠수함, 헬기, 우주선, 슈퍼 카들을 고려하면 스케일은 소박하고 싱겁다. 하지만, 속도감 있는 아날로그 액션만큼은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순수하고, 날 것 그대로의 쾌감이 살아있다.
#3 : 6편 더 맥시멈 (Fast And Furious 6, 2013)
레티 오티즈(미셸 로드리게스)를 복귀시키기 위해 기억상실증으로 엉성하게 처리한 것처럼 이 영화는 말이 안 되는 것투성이다. 이제 질주는 뒷전이고, 고급차를 마구마구 ‘파괴’하는 분노에 집중한다. 게다가 이번 빌런도 '도플갱어'다. '팀 돔과 팀 오웬의 단체 대결'이 줄거리 전부이고, 슈퍼 카(심지어 탱크, 수송기까지도)들을 즐비하게 등장시키고 그것을 아낌없이 때려 부순다.
지젤(갯 가돗), 엘레나 네베즈(엘사 파타키)이 퇴장하거나 어정쩡해졌지만, 이 재밌는 난장판을 통해 도미닉 일당은 동료애를 넘어서서 '가족애'로 승화되고, 쿠키 영상으로 3편(도쿄 드리프트)와의 연결 고리도 확보한다. 007시리즈를 본받아 프랜차이즈는 '저예산 레이싱 영화'에서 '첩보 블록버스터'로 체급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2 : 7편 더 세븐 (Furious 7, 2015)
7편은 촬영 중 사망한 폴 워커에 대한 진심 어린 송사와 더 많은 캐릭터와 물량의 인해전술로 밀어부친다. 아제르바이잔 오프닝부터 관객의 시선을 뗄 수 없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액션 시퀀스를 쏟아 붓는다. 제이슨 스타뎀, 토니 쟈, 커트 러셀, 론다 라우지 같은 액션배우 올스타를 동원하고, 관객들이 지루할만하면 중력의 법칙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무지막지한 물량공세가 시청각을 장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질주 7>은 뒷골목 레이싱에서 벗어나 판을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슈퍼 카들의 무한질주'라는 초심을 놓지 않는다.
특수한 프로그램 '신의 눈'을 가진 테러리스트 '제케이드(자이먼 혼수)'를 찾기 위해 '데커드 쇼(제이슨 스타뎀)'을 만났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쇼와의 대결로 치닫는다. 7편부터 시리즈의 스토리가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개별 장면의 뛰어난 완성도에 비해 전체적인 맥락과 개연성은 희생되었지만, 도미닉 패밀리의 캐릭터 드라마만큼은 확실히 챙겼다는 점에서 제임스 완으로써도 쉽지 않은 임무를 훌륭히 처리했다.
#1 : 5편 언리미티드 (Fast Five, 2011)
5편은 프랜차이즈의 '포뮬라(공식)'을 확립된 작품이다. 첫째, <분노의 질주>는 뒷골목 레이싱에서 벗어나 판을 크게 키운다. 둘째, 홉스(드웨인 존슨)가 합류하면서 도미닉 일당의 윤곽이 확립된다. 셋째, 적과 맞써기 위해 '가족' 같은 일당을 지키기 위해 빠르게 질주한다가 줄거리의 전부다.
넷째, 레이스 자체는 볼거리중 하나로 축소되고, 대신에 여타 장르(5편은 하이스트 장르, 6편은 첩보물, 외전은 버디물, 9편은 SF물)를 도입한다. 그밖에 5편의 금고 장면 이후 탱크, 비행기, 드론, 헬기, 잠수함, 우주선을 추가되면서 테스토스테론 연료를 새로이 주입한다. 이로써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현대 액션의 총아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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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블로그 영혼아이 TERU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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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죽음이 중첩된 곳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파동
8★/10★
종군기자로 일한 마사가 과거를 회고한다. 그녀는 전쟁터에서 한 가톨릭 수사를 만나 취재했다. 그 수사는 위험천만한 전쟁터를 떠나기를 거부했고, 동료 한 명과 그곳에 남기를 택했다. 수사의 또 다른 친구에게서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은 마사는 추측한다. 아마 그와 함께 전쟁터에 남아 있기로 한 동료는 수사의 연인일 것이며, 두 사람은 섹스의 환희로 일상에 깃든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것이라고.
여기서 전쟁과 섹스는 각각 죽음과 삶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들은 늘 함께다. 비단 전쟁터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마사는 현재 말기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다. 암 선고는 또 다른 전쟁이다. 즉 마사는 죽음에 밀접해 있다. 그런 그녀에게 ‘섹스’, 즉 죽음의 공포를 상쇄해주는 삶의 순간은 무엇일까? 원하는 때에 삶을 끝낼 수 있는 약이다. 다크웹으로 존엄사 약을 구한 마사는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해줄 친구를 찾는다.
잉그리드는 유명한 작가다. 최근 그녀는 자신이 죽음에 느끼는 두려움을 주제로 책을 냈다. 우연히 옛 친구 마사의 소식을 들은 잉그리드는 병문안을 가고 묵혀둔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마사에게 부탁을 받는다. 비밀을 지킨 채 자기 삶의 마지막을 함께해달라는 제안이다. 공포와 혼란 속에서도, 잉그리드는 마지못해 그 제안을 수락한다. 잉그리드에게는 마사에 대한 우정과 작가로서의 호기심이 죽음의 공포를 상쇄시켜주는 ‘섹스’ 역할을 한다.
〈룸 넥스트 도어〉에는 삶과 죽음이 병치되어 있다. 마사에게 딸을 주었으나 베트남전 후유증으로 사망한 남자, 마사 커리어의 원천이었던 수많은 전쟁터, 삶의 마지막 순간을 결정할 수단을 확보한 후 마사가 누리는 평온함, 개인 잉그리드의 두려움과 작가 잉그리드의 호기심, 한때는 섹스에 열정적으로 탐닉했으나 지금은 비관적 기후 위기론자가 된 두 사람의 옛 연인……. 마사와 잉그리드가 나누는 이야기와 공유하는 일상에는 늘 죽음과 삶이 달라붙어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마사 사후 잉그리드가 이를 미리 알고 있었으리라 추궁하는 기독교 신자 경찰과 마사가 자신에게도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경찰에게 폭로한 또 다른 친구가 그렇다. 이들은 마사, 잉그리드와 달리 지극히 단조롭고 따분하게 재현된다. 짜증이 날 정도다. 삶에 대한 애착만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 짝을 이루는 죽음을 품지 못할 때 우리 삶이 얼마나 밋밋하고 멍청해지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북미에서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차기 시민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계급과 인종, 장애, ‘존엄함’의 정의 등 명쾌히 답변되지 않은 지점이 많기는 하지만(이 영화에서도 존엄사/안락사는 두 상류층 백인 여성의 이야기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죽을 권리’를 갈망한다. 마사는 분노에 차 왜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은 죽을 권리가 필요하다는 외침이라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죽을 권리를 획득한 사람이 누리는 삶/죽음의 환희다. 마사는 불법으로 약물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마사 사후 ‘상식’을 대변하는 경찰은 잉그리드를 심문하려 든다. 하지만 영화 속 카메라는 두 사람이 마지막을 스스로 정하기로 한 후 발생하는 미묘한 떨림을 포착하는 데 훨씬 더 큰 중점을 둔다. 마사의 마지막 선택을 암시하는 신호, 그 신호를 오인한 잉그리드의 감정,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삶을 마감한 마사가 확보한 ‘존엄’의 내용 등 삶과 죽음이 중첩된 곳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파동을 담아내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정서가 ‘잔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밀도 높은 드라마에 긴장과 스릴이 더해졌다는 인상이다. 우리의 일상적 사고 습관이 삶에 달라붙은 죽음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죽음의 가능성을 환기하는 것만으로도 종종 서늘한 긴장감이 발생하는 것은. 〈룸 넥스트 도어〉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죽을 권리’에 대한 사유를 촉발하는 영화다.
*다이앤 렘, 《나의 때가 오면》, 성원 옮김, 문예출판사, 2024.
**미국에서는 일부 주에서만 약물을 활용한 존엄사가 합법이고, 이 경우에도 승인받기 위한 몇몇 절차가 필요하다. 앞의 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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