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2-04-11 23:51:06
아무리 태어나지 말아야 할 팔자라도...
태어나길 잘했어 시사회 영화 후기
춘희는 다한증이 있어서 손에 땀을 많이 쥔다. 그래서 수술비를 모으기 위해 자신이 직접 깐 마늘을 사촌 오빠의 식당에 갖다주는 일당으로 3만 원을 받는다. 사실은 춘희는 손과 발을 뻗을 수 없는 다락방에서 자랐다. 고등학생 시절 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다한증이 있다고 말하다가 구박을 받는다. 상처받은 어린 춘희에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불에 손을 대서 흉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춘희는 성인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간다. 오랫동안 살아온 이 집에서 얹혀사는 신세라 친척들에게 오랜 구박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사랑해 줄 남자를 만나는데 주황이라는 말을 더듬는 남자였다. 주황은 어렸을 적에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해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춘희와 주황은 연애를 하게 되고 서로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춘희에게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과연 춘희와 주황의 연애는 성공할 수 있을까? 또한 자신의 삶을 앞으로 잘 개척할 수 있게 될까?
춘희에게 다한증은 극복해야 되는
오래된 상처 자국이다.
하니엘
춘희는 어린 춘희의 상처에서 벗아났을까?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춘희는 외숙모처럼 외지인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아마도 어린 시절에 쭉 뻗고 잘 수 없는 단칸방에서 살았는지 삶에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많았다. 이것만이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소외당하고 항상 혼자였다. 그리고 사촌 오빠도 과거에 명문대생이었지만 데모만 하는 학생이고 염세주의자였다. 자신의 누나도 학교에서 담배 피우다 걸린 신세였고 불량한 학생이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린 춘희가 항상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태어나질 말아야 할 팔자였다는 것을 미리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된 춘희의 모습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기억에서는 단칸방에서 얹혀살던 집 안에서도 가족들이 항상 싸우기만 했기 때문에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고 자랐다. 그런 그녀에게 주황이라는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도 마음속에 가둬둔 상처들 때문인지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고 다시 혼자가 되는 일을 경험한다. 괴롭던 기억과 외로움으로 가득 찬 춘희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춘희: 모두 다 네 잘못이 아니야!(어린 춘희에게)
영화에서 본 명대사에서 발췌했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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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 리뷰
<라우더 댄 밤즈(2015)>, <델마(2017)> 등으로 이미 몇 차례 한국에 소개된 바 있는 노르웨이의 감독 요아킴 트리에가 신작으로 찾아온다. 나는 감상한 적 없으나 이번 영화는 그가 감독한 오슬로 3부작을 장식하는 마지막 작품이라 한다.
제74회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겠지만,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여성 주인공이 빛나는 작품이다. 요아킴 트리에는 미래와 사랑과 그 밖의 많은 외부적 요소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여성의 성장 서사를 스크린을 통해 근사하게 보여준다. 어떤 면에선 노아 바움백의 <프란시스 하(2012)>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지만, 두 작품의 주인공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방법 혹은 자아를 모색하는 방식이 완전히 닮아 있지는 않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진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진 않”더라도 삶에 있어 ‘무용’이라는 최소한의 방향성을 쥐고 있던 27살 프란시스와 달리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속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조차 힘들다고 토로하는 스물아홉 살 청춘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일러 주의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고전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글쎄, 이젠 고전이 된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로는 무엇을 떠올려 볼 수 있을까?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로마의 휴일(1953)>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라면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나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5)> 정도라면 충분한 걸까? 궁금하긴 하지만, 이 질문에 너무 많은 힘을 쏟을 필요는 없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엔 우리가 모두 아는 클리셰, 그러니까 보장된 플롯이 존재하니까. 영화 초입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남녀는 서로가 남극과 북극에서 온 사람처럼 설정되어 있지만,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온갖 사건을 통해 놀라우리만큼 가까워지고, 말미엔 완벽한 한 쌍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정석’이지 않나.
그런데 트리에 감독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다르다. 영화엔 분명 로맨스가 등장하고, 상당 부분의 서사가 주인공의 연애에 치중한 듯 보이나 그저 그뿐이다. 그 어느 누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율리에가 사랑을 쟁취하는 순간을 꼽겠는가. 감독은 망망대해 같은 인생의 한 지점, 로맨스라는 거대한 파도를 만난 율리에가 부단히 헤엄치는 모습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낭만적인 마술을 부리긴커녕, 시니컬한 태도로 로맨틱 코미디가 선사하는 장르적 환상을 걷어내는 데에 여념이 없다. 율리에가 동거하던 남자 친구 악셀(앤더스 다니엘슨 라이)에게 헤어지자고 말을 꺼내는 순간 악셀은 율리에의 거주 문제를 꺼내고, 율리에와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룸)가 아이를 갖지 말자고 합의한 기저에는 전 지구적 환경 문제가 얽혀 있다. 그래, 오로지 사랑에 기대어 모든 현실을 헤쳐 나가기엔 참으로 세상이 버겁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자. 20세기를 살던 청춘에게도 미래가 그저 황금빛이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사랑이 무용하다 말하기보단, 차라리 율리에의 세계가 너무나 연약하다고 표현하는 편이 보다 옳으리라. 그는 진로를 결정할 때조차 자신을 탐구하다기보단 성적에 기대어 의학도가 되었다가,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또다시 자신의 심연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표면을 부유하다 사진을 배우게 된다. 누군가는 이러한 선택을 용감하다 하였으나 서점에서 일하며 때때로 글을 쓰는 율리에는 여전히 자신에게 확신이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맨날 이거 했다가, 싫으면 저거 했다가, 끝까지 해내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자아를 확립하지 못한 율리에가 찾은 해결책은 자기의 외부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언뜻 그의 시도는 성공적인 듯 보인다. 악셀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에이빈드와 새로운 인연을 이어가던 그가 이렇게 고백한다. “너와 있을 때 완전한 내가 되는 것 같아”. 그러나 이 말은 더없이 공허하다. 스스로를 외부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결국 헛된 것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므로.
물론 이것이 개인의 성장에 있어 로맨스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율리에는 연인과 함께하던 순간에도 변화했고, 이별 후 자신에게 남겨진 옛사랑의 흔적을 통해서도 성장한다. 기실 영화는 악셀과 율리에가 사랑을 하던 순간보다, 사랑이 끝난 이후의 지점에 많은 공을 들였다. 율리에의 남자 친구 혹은 만화가로서의 악셀을 반기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네가 얼마큼 대단한 사람인지 믿게 해주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하는 그에게 애틋함을 느끼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악셀은 시한부 선고까지 받는다. 소울메이트라 불러도 괜찮을 만큼 끈끈한 관계가 된 악셀과 율리에 사이에 남은 시간은 너무도 적다. 이별하던 날, 나중에 재결합을 할지도 모르지 않겠냐고 했던 율리에의 말은 그리하여 가정법으로만 머문다. 감독은 특별히 두 사람의 끝을 쓰라리게 그려내진 않지만, 그렇다고 미화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초가을의 밤공기처럼 건조하다. 악셀과의 만남 이후, 에이빈드의 아이를 잃게 되는 율리에의 감정선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 삶이 끝난다는 것을, 다가온 삶의 한 국면을 예비하고자 애쓴다 해도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채 가능성이 소멸할 수 있음을 배우는 것으로 그친다.
그러하니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로맨틱한 정서는 굉장히 다면적이다. 마냥 행복하다고 말하는 대신 율리에에게 로맨스는 생명수였던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독이 될 수도 있었다고 의심할 법한 무엇으로 다가온다. 어찌 보자면, 자아가 불안정한 상황에서의 사랑이란 우리 문화의 기대처럼 삶 전체를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대단할 수 없음을 꼬집는 듯도 하다. 더불어 결말부에서 감독은 율리에를 어떤 남성과도 맺어지지 않도록 설정하여 할리우드 특유의 로맨틱한 마법 장막이 오슬로에 드리워지지 못하도록 막았다.
단 한 번뿐인 미지의 삶
이렇듯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기꺼이 탈피한다. 영원한 사랑의 지속을 속삭이는 대신 오히려 매 선택이 불가역적이라는 지점을 강조한다. 율리에는 악셀과 헤어지기 전으로도 에이빈드를 만나기 전으로도 되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로맨스가 아닌 한 인물의 성장 서사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노르웨이라는 지구 반대편 국가, '2022 세계 행복 보고서'(2021 World Happiness Report)에서 8위를 차지한 나라에선 인생을 배회하는 청춘을 어떻게 그려내는가.
열두 개 챕터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갖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이야기가 시작하기도 전, 친절하게 영화의 구성을 예고한다. 그래서 더더욱 이 영화는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표지와 목차를 읽은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되니, 영화관에 앉아있더라도 관객은 이 영화가 지금 이야기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아무리 각 챕터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들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혹은 소설- 속 주인공인 율리에는 자신이 현재 인생의 어떠한 지점에 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 그는 그저 언젠가 무엇이 이루어지리라는 막연한 예감과, 지금 이 상황보다는 더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초조함만을 품은 하나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선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넘어야 한다. 유명하디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인용할 필요도 없을 만큼, 이 과정은 당연히 평탄할 수 없다. 개인의 자아는 치열하게 고민한 후 비로소 이룩할 수 있는 것이지 손쉽게 구매하거나 덧씌울 수 있는 페르소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좋은 학생으로서의 율리에만 연기해도 문제가 없었던 학업과 달리, 연애를 통해 율리에는 부딪히고 때로는 도망가며 많은 것을 경험한다. 자신이 남자 친구 악셀에 비해 어리고, 이룬 것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기도 하고 위트있는 대화를 이어나가거나 춤을 추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예상치 못했던 갈등을 목격하기도 한다. 에이빈드를 만나 바람을 피우고 환각제를 흡입하며 회피하기도 하지만, 끝내 발붙인 현실을 떠날 수 없는 율리에는 자신의 가장 빈곤한 부분을 몇 번이고 마주한다. 이윽고 선택의 무게를 깨닫게 된 그는 느리게 자기 파괴적 상태에서 벗어난다. 거대한 산처럼 보였던 사람을 비로소 친밀했던 한 명의 인간으로 동등하게 여길 수 있게 됨으로써 미지의 운명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선택의 폭이 지극히 좁아 고민의 여지없이 아이를 낳고, 낳고, 낳았던 조상들로부터 21세기 서른 살 여성에게까지 이어진 어떤 굴레는 더 이상 율리에를 옥죌 수 없다. 분명히.
영화 속에 몇 번쯤 등장하였던 타이밍이 잘못되었을 뿐이라는 말은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한 변명처럼, 혹은 상대방을 위한 위로처럼 몇 번쯤 사용되었다. 이 말이 어떤 의미로든 옳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아닐 것이다. 인생에 있어 올바른 타이밍과 잘못된 타이밍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무심하리만큼 중립적인 순간들의 총합일 뿐이니. 그러니 그렇게 미사여구를 붙이며 상실한 기회를 정당화하지 않아도 괜찮다. 일회성 삶 속 실패는 한낱 흔한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저무는 여름에 새로이 섞여있을 웃음과 눈물과 설렘의 찰나만을 기억하자. 이것은 온전히 율리에와 당신, 그리고 내가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순간이다.
한국에서는 <사랑할 때는 누구나 최악이 된다>로 번역되었지만, 이 영화의 원제는 <세계 최악의 인간(Verdens verste menneske)>이다. 흥미롭기도 하고, 당연하기도 한 제목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최악의 인간일 수밖에 없으므로. 어쩌겠는가.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인 것을. 타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무대 뒤편의 모습까지 오롯하게 바라볼 수 있는, 드러내지 않는 속내까지 모조리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상 위의 유일한 인간이 나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러나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경험한다는 것, 그것은 부득이하게 잘못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그러하니 스스로를 추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너무 스스로에게 무자비해지지는 말자. 우리는 우리를 가장, 최선을 다해 경험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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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그리고 이름없는 여자들
<미싱타는 여자들>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나, 본문에 영화 전체 내용을 포함합니다.
*1.
올해도 훌쩍 가버렸다. 크리스마스를 보름 조금 넘게 앞두고, 청계천변에는 오색찬란한 등을 밝힌다. 일 년에 한 번, 청계천변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한다. 종교에 대해 말하는 건 아니고, 나는 언젠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이란 뭘까 생각했다. 마굿간에서 태어났을지언정 백인 남성의 지위는 너무 높은 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박태원의 작품 <천변풍경>에서는 한국전쟁 직후 대규모 판자촌을 이루며 살아갔던 청계천변 사람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도 유명하지만, 이제는 봉준호 감독의 외조부로 더 유명해진 듯하다.
그리고 시인 김종삼의 시 <장편2>에서도 청계천변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주 짧으니 인용해본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십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 짜리 두 개를 보였다.
이야기가 다른 길로 빠졌는데, 하여튼 청계천은 그런 곳이다. 복개된 청계천을 따라 동대문에서 시청을 거쳐 광화문까지 이어진, MB의 업적으로 칭송되는 바로 그 하천. 그 하천이 시작되는 동대문 평화시장은 아직도 뜨개며 자수, 캔들, 커튼, 봉제 등등 오만가지 부자재들을 사러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더 지난 시절에는,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를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돌았던 평화시장 피복공장이 있었다.
2.
우리는 전태일을 기억한다.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빈번히 거절당한 그의 몸에는 휘발유가 뿌려졌다. 불 붙은 그의 몸을 그 누구도 덮어주지 않았다. 불에 타들어가며 평화시장을 뛰었다. 결국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치료도 못 받고,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에게 후일을 맡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 이후 무엇이 바뀌었을까. 전태일이 분신까지 해가며 외쳤던 '근로기준법 준수'가 지켜졌을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 그러나 그 뒤에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나도 그중 하나이다.
한강의 기적을 말할 때, 흔히들 중공업과 국가기간사업을 떠올리지만 그전에 가발공장과 봉제공장이 있었다. 여자는 공부시키는 게 아니라는 말이 통용되던 시절, 어린 여자아이들은 공장으로 향했다.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딸들을 갈아넣는 일은 특별하지도 않았다. 우리 엄마와 이모들도 그랬다. 그렇게 공부한 아들들은 사무원이 되고 은행원이 되고, 대학에 가고, 판검사가 되는 동안 공장에 다니면서 살림 밑천을 대고, 달러를 벌어들이던 딸들의 이름은 지워졌다.
3.
청계피복노조는 전태일의 죽음 이후 결성되었다. 노동교실을 만들어 어린 시다와 미싱공 등을 교육시켰다. 그들은 교복 입고 학교에 가지는 못했지만, 노동교실에서 배움을 이어간다. 그러나 지배계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피지배층이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것도 몰라야 돈을 떼먹어도,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않아도, 사람 취급을 안 해줘도 아무 말도 못하니까.
결국 노동교실을 지원하기로 한 사업주는 9월 10일까지 짐을 싸라고 통보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노동교실을 지키기 위해 9월 9일에 농성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죽고, 다치고, 구치소에 갇히고, 구속되는 일들이 발생한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청계피복노조의 노동교실을 지키고자 했던 어린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신순애, 이숙희, 임미경은 구속까지 당했다. 아주 오랜 세월 가슴에 묻고 살았던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세상 밖으로 풀어낸다. 세 인물은 각각 그시절에 함께했던 인물들과 대화 방식으로 그때를 회상한다. 회상의 단서는 주로 편지, 사진과 같은 사적인 기록물들이다.
이제와 돌아보는 사진 속 그들의 모습은 너무도 어리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소녀들은 공장에서 잠도 못 자고 밥도 겨우 먹으며 일했다. 근로기준법은 개나 줘버린 시절이다. 전태일이 분신까지 하며 세상을 바꾸어보려 했지만 세상은 바뀐 게 없다. 그것도 모자라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까지 구속되기에 이른다.
여공들은 이소선 여사가 구속되었던 구치소 앞에서 밤마다 "어머니!"를 외친다. 어머니를 풀어달라고. 그런데 어머니, 어머니 소리 한다고 빨갱이란다. 이북에서는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하는데, 이소선 여사에게 어머니라고 하니 빨갱이가 아니겠냐고.
거기다 9월 9일에 농성을 하니 빨갱이란다. 9월 9일이 무슨 날인지 아냐고. 누가 알겠나. 학교도 못 다닌 어린 여자아이들인데. 김일성 생일이란다. 그리하여 그들은 별안간 빨갱이가 된다. 빨갱이라고 이름붙이는 순간, 모조리 잡아넣는 건 일도 아니었던 시절이다.
4.
여자의 일은 너무도 쉽게 지워진다. 얼마 전 계단청소를 하다 돌아가신 노동자가 '고된 노동으로 인한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결국 한 남성변호사가 노동체험을 하고,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증명해낸다. 독립운동을 했던 수많은 여성들이 있고, 노동운동, 인권운동을 한 여성들이 분명히 존재하나, 그들의 존재는 미미하다.
가발공장인 YH사건은 부마민주운동의 불씨를 당겼다. 그 역시 여성노동자들의 일이다. 그러나 누가 그들을 기억하는가. 뼈 빠지게 일한 아버지는 불쌍하지만, 그 집안을 돌보아온 어머니의 노동은 쉽게도 잊힌다.
<미싱타는 여자들>의 미덕은 과거를 재현하거나 동정하기 보다, 그동안 이름 불리지 않았던 이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기억하는 데 있다. 그시절 여공들은 그토록 뜨거웠던 젊은 날의 자신을 기억해낸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고생 많았다고, 잘 했다고.
얼마 전 한 대선후보가 최저임금보다 낮은 조건으로도 일할 사람 널렸다는 발언을 해서 뭇매를 맞았다. 국가의 역할이란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아도 돈을 벌어야만 하는 절박한 사람과, 최저임금도 주기 싫은 업주가 매칭되지 않게끔 하는 것이 아닐까.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싸워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고, 고작 30년 전 이야기이다. 그들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인물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싱타는 여자들>을 보는 관객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태일이>도 12월 1일에 개봉을 했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캐롤도 없고 거리두기로 모임도 없는 조용한 연말이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이란 어떤 모습일까 다시금 생각해본다. 올겨울도 청계천에는 빛초롱축제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청계천을 따라 반짝반짝 빛나는 등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시사회에 참석한 후 남기는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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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주말은 건강히 잘 보내셨나요?
오늘은 2월의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를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씨네픽과 함께 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
'주말 박스오피스 예측(결과) 콘텐츠'도 같이 알아보도록 할게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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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위. <나일 강의 죽음>(NEW)
▶<나일 강의 죽음>이 2월 2주차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 (2월 11일~13일) 관객 수 9만 461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4만 1198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현저히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35만 7천여명으로 주말 관객이 40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개봉 직적인 2021년 12월 둘째 주(38만 8천여명)이후 두 달만이라고 하는데요.
다시 국내 극장가의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 걱정도 됩니다. 한편 <나일 강의 죽음>은
추리소설의 여왕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추리 드라마 장르로 '케네스 브래너' 감독,
'케네스 브래너', '갤 가돗' 주연의 영화입니다.
2위. <해적: 도깨비 깃발>(▼1)
▶이번 주 주말 박스오피스 2위는 <해적: 도깨비 깃발>입니다.
주말동안 (11일~13일) 주말 관객 수 6만 5298명을 동원했고, 총 누적 관객 수는 121만 2392명입니다.
<해적: 도깨비 깃발>은 올해 개봉작 중 첫 1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으로 기록됐는데요.
영화 <나일 강의 죽음>이 개봉을 하게되면서 지난 주에 비해 박스오피스 순위는 1계단 하락했지만
극 중 배우들이 선사하는 유쾌한 에너지와 재미, 그리고 매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3위. <킹메이커>(▼1)
▶주말 박스오피스 3위는 <킹메이커>입니다.
같은 기간(11~13일)동안 주말 관객 수 4만 8709명을 동원했으며, 충 누적 관객 수는 70만 7272명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특히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여파로 다시 한번 극장가의 관객이 현저히 떨어진만큼
<킹메이커>의 앞으로의 박스오피스 순위는 계속해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87회 예측 이벤트는 2월 2주 차 박스오피스 예측입니다.
한 주동안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는데요.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박스오피스 결과는 어땠는지 다같이 확인해보도록 할게요!
그럼 제87회 씨네픽 주말 박스오피스 예측 이벤트에"에 한 주동안 참여한 씨네픽 유저들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위의 표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한 주동안 씨네픽 참가자분들은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주셨습니다.
또한 이번 주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에 참가하여 모든 순위를 맞힌 분들은 모두 32명으로 5,718P의 상금이 주어질 예정입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 88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1)
▶주말 박스오피스 4위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입니다.
주말동안 주말 관객 수 2만 1692명을 기록, 총 누적 관객 수는 748만 9384명을 기록했습니다.
꾸준히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주에 비해 순위는 1계단 하락했습니다.
또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는 곧 누적 관객 수 75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5위. <355>(NEW)
▶ 주말 박스오피스 5위는 박스오피스에 첫 진입한 영화 <355>가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 1만 7963여명의 관객 수, 총 누적 관객 수는 3만 545명을 기록했습니다.
영화 <355>는 화려한 할리우드 캐스팅과 압도적 액션 규모로
개봉 첫날부터 실관람객들의 폭발적인 호평 리뷰를 얻으며 입소문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작품인데요.
영화 <355>는 인류를 위협하는 글로벌 범죄조직에 맞서기 위해 전 세계에서 뭉친
최정예 블랙 에이전트 팀355의 비공식 합동작전을 그린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로
제시카 차스테인, 다이앤 크로거, 페넬로페 크루즈 등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국내 박스오피와 동일한 <나일 강의 죽음>이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11~13일) 북미기준 $12,800,000 (한화 약 153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
▶ 새롭게 북미 박스오피스 3위에 진입한 작품은 <Marry Me>입니다.
영화 <Marry Me>는 제니퍼 로페즈, 오웬 윌슨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북미의 2009년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서로 알지 못하는 남녀가 결혼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북미에서는 2월 11일 개봉했고, 국내에서는 아직 개봉 미예정인 것 같습니다.
▶ 북미 박스오피스 5위는 영화 <Blacklight>입니다.
영화 <Blacklight>는 테이큰 시리즈로 유명한 '리암 니슨'의 새로운 액션 영화입니다.
'트래비스 블럭'이라는 정부 요원으로 등장하며 시민들을 노리는 정부의 음모를 알게됨과 동시에
FBI국장의 계략에 걸려들어 자신의 가족들마저 위험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인데요.
테이큰 시리즈와 비슷한 결의 영화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 관객들의 잦은 '리암 니슨'표 액션영화에 대한 피로도가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영화가 흥행을 할지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TOP 10> (2022년 2월 11일 ~ 2022년 2월 13일)
1. <나일 강의 죽음> 1280만 달러 (박스오피스 첫 진입)
2. <잭애스 포에버> 805만 달러 (누적 3742만 달러)
3. <매리 미> 800만 달러 (박스오피스 첫 진입)
4.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715만 달러 (누적 7억 5900만 달러)
5. <블랙라이트> 360만 달러 (박스오피스 첫 진입)
6. <씽2게더> 295만 달러 (누적 1억 4338만 달러)
7. <문폴> 285만 달러 (누적 1515만 달러)
8. <스크림> 283만 달러 (누적 7317만 달러)
9. <리코리쉬 피자> 92만 달러 (누적 1399만 달러)
10.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43만 달러 (누적 3674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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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2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씨네픽은
다음 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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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의 세상에 사랑을 담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다가온다. 친척이나 지인, 가족 중에서 돌아가시는 분이 있을 때 처음 경험하는 죽음은 때론 슬프고 때론 조용하다. 조금 가까웠던 사람의 죽음을 만나게 된다면, 슬픔과 처음 맞닥뜨리게 된다.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된 이후에는 상대방을 현실에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길게 남는다. 장례식을 통해 짧게나마 작별인사를 하지만, 더 이상 상대방의 반응은 들을 수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렇게 죽음은 아주 긴 이별이 된다.
여기에 특별한 AI프로그램이 있다. 죽음을 맞은 가족이나 지인의 디지털 데이터와 정보가 있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AI 프로그램 안에 그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준다. 만들어진 가족과 영상통화 형식을 통해 대화하고 소통을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 직전에 자신의 정보를 관련 회사에 보내 자신의 모습을 AI 프로그램 안에 만들어둔다. 장례식이라는 이별의 절차를 보내지만, 그 이후에도 가족들은 큰 상실감 없이 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다루는 영화가 바로 <원더랜드>다.
[첫 번째 감정] 엄마 바이리의 배려
바이리(탕웨이)는 불치병에 걸려 죽음 직전에 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될 자신의 딸을 걱정한다. 그 걱정은 결국 원더랜드라는 AI 서비스를 신청하게 만든다. 자신을 디지털화하는 그녀의 결정은 바로 딸을 배려한 것이었다. 직접 만나는 건 더 이상 할 수 없지만, 영상 통화를 통해 딸은 엄마와 계속 소통할 수 있다. 실제로 바이리의 죽음과 장례식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딸이 바이리와 영상 통화하는 장면은 실제 살아있는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딸을 위한 그 배려로 딸은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 바로 바이리의 엄마 화란(니나 파우)다. 그녀는 화면 속의 바이리를 진짜 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화를 하면서 진짜 딸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화란은 이미 딸의 죽음을 받아들인 상태고 개인적으로 장례를 치르고 난 이후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란에게는 AI로 만들어진 바이리가 아무리 딸과 똑같은 말투와 행동을 하고 있더라도 인정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원더랜드라는 AI 세상 속의 바이리는 생전의 그녀가 원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고고학자로서 유물을 탐사하는 장소에서 일을 하는데, 그런 모습을 자신의 딸에게도 보여주어 꿈을 키워주는 역할도 해주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죽음 직전 만들어낸 원더랜드의 세상은 모두 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대화를 하고,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주면서 그는 딸에게 무한한 사랑을 선사한다.
모든 진실이 딸에게 공개된 순간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감정적인 장면이 만들어진다. 딸은 그 사실을 생각보다 금방 받아들이고, 이내 그 상황에서 자신이 계속 엄마와 소통할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이 장면은 아직 어린 딸의 심리를 무척 현실감 있게 담은 장면이다. 딸은 화면 속 엄마에게 잘 때 책을 계속 읽어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 옆에 있던 바이리의 엄마 화란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 역시 무척 좋은 장면이다. 화란은 화면 속 바이리를 그제야 비로소 딸로 인정한다. 그리고 딸이 죽은 이후의 슬픔을 그제야 터뜨린다.
[두 번째 감정] 연인 정인의 그리움
원더랜드에 자신이 그리워하는 존재를 넣은 다른 사람이 있다. 정인(수지)은 연인인 태주(박보검)를 원더랜드의 세계에 만들어 넣어두었다. 실제 태주는 사고로 혼수상태로 병원에 누워있다. 매일 찾아가 자신의 연인을 보고 오지만 현실에서는 대화할 수가 없다.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서 정인이 택한 건, 이별이 아니라 자신만의 태주를 AI로 만드는 것이었다. 혼자 남았다는 그리움은 정인을 원더랜드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세계와 접속하면서 정인은 자신이 가진 그리움을 잊어간다.
아침마다 정인을 깨워주는 AI 태주는 친절하고 밝다. 늘 웃는 얼굴로 우주비행사의 모습을 한 태주가 화면 속에 등장하면 정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해진다. 화면을 보며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같이 게임을 하기도 한다. 여느 연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비록 현실의 태주는 누워있지만 정인의 태주는 원더랜드의 세계 속에 이미 존재한다. 그렇게 정인은 현실의 태주와 점점 멀어진다.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태주는 진짜 태주의 모습과 진짜 똑같을까?
현실에서 결국 태주가 깨어나는 걸 본 정인은 원더랜드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아직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현실의 태주는 삶의 안정성을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듯, 여러 실수를 반복하면서 정인을 당황스럽게 한다. 하지만 AI에 만들어놓은 태주는 그렇지 않다. 정인이 원하는 정보를 알려주고, 자신의 기분에 맞춰 대해주는 존재다. 현실의 태주와 AI태주 사이의 괴리를 느낀 정인은 꽤 오랜 시간 동안 혼란스러워한다. 정인이 자신이 사랑하는 태주를 너무나 그리워해서 만들어낸 AI 태주는, 어쩌면 정인이 기억하는 태주의 좋은 면만 담긴 것이 아닐까.
[세 번째 감정] 원더랜드에 담긴 사랑
AI프로그램인 원더랜드는 아직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근미래에는 이런 서비스가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미 특정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가상 VR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영화 <원더랜드>의 설정은 충분히 현재의 우리들이 공감할 만한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원더랜드에 특정 인물을 넣어두는 것은 대부분 사랑 때문이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혹은 곧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을 사랑해서, 그 존재를 AI로 만들어 프로그램 속에 넣고 시간이 날 때마다 평소처럼 대화를 해나간다. 그렇게 상대방을 보고 위안을 얻고 관계를 계속 이어나간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과한 욕심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이런 원더랜드와 같은 기술이 발전하여 실제로 실현 가능해진다면, 죽음은 완전한 이별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랑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다. 지금 현재 시점에 AI 와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를 던진다.
가족을 위해서, 연인을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영화 속 사람들은 AI 세상 속에 자신을 넣는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서로 상대방의 사랑을 확인한다. 기술로 만들어진 사랑의 세상이 바로 원더랜드다. 원더랜드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때론 그 기술적인 것들이 과하게 느껴지지도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사랑은 영원히 이어진다. 영화는 각 인물들이 이 새로운 세계 때문에 겪게 되는 혼란과 고민을 세심하고 감성적으로 담았다.
영화 <원더랜드>는 다양한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특히 바이리 역을 맡은 탕웨이는 엄마로서 자신이 가진 감정을 극에 그대로 녹여 폭발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들보다 바이리의 서사가 특히 더 인상적이다. 여기에는 탕웨이와 바이리 엄마를 연기한 니나 파우의 연기가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정인 역을 맡은 수지의 얼굴에선 이제 비로소 배우의 느낌이 나고, 정인의 감정이 널뛰는 모습을 잘 표현해 냈다.
무척 아름다움 화면과,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감성적으로 풍부한 느낌이 드는 영화음악을 사용해 원더랜드라는 새로운 세상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이 기술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 영화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은 이 시스템으로 인해 변화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은 긍정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다. 각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각각 따로 노는 느낌을 주지만, 적어도 바이리 가족의 에피소드는 이 영화의 단점을 상쇄할 힘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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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 의심에 대한 재기발랄한 영화
메기리뷰
줄거리 보다는 장면 위주의 주관적 해석이 듬뿍 담겨있는 리뷰
"사람들은 왜 서로를 의심할까요?"
우리는 평소에도 수십번, 아니 수백번 의심을 하며 살아간다.
낯선 사람은 물론이고 친숙한 사람에게도 수십, 수백번도 의심을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를 믿지 못하며 살아갈까?
'메기'는 의심과 믿음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영화 오프닝 장면
영화는 엑스레이 실에서 사랑을 나누는 남녀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때 누군가 엑스레이 촬영 버튼을 누르고, 그 엑스레이 사진은 마리아 사랑병원 앞의 동상에 걸린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일제히 저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에만 관심을 가진다.
누가 '찍었는가' 가 아니라 누가 '찍혔는지'에만 관심이 팔려있다.
-도시에 싱크홀이 생겨 신난 성원이 다리를 지나가는 장면
도시에 싱크홀이 생긴 것은 분명히 기쁜 일은 아니지만 백수인 성원의 입장에서 보면 일자리가 생겨 좋은 일이다.
사회적 문제인 싱크홀의 발생이 한 청년에겐 기쁜 일이라니 참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까 ?-성원이 새벽에 일하러 나가며 캔을 밟는 장면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땐 별 생각없이 '되게 웃긴사람이네~' 하며 지나간 장면이었는데, 다시 영화를 보니 이 장면이 굉장히 섬뜩하게 느껴졌다. 이 장면은 윤영이 성원의 전여친과 대화를 나눈 후 나오는 장면인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 캔을 밟는 이 장면뿐만 아니라 성원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바뀐다.
그저 엉뚱하고 재밌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장면이었다.-마지막으로는 엔딩장면.
윤영이 결심하고 성원을 찾아가서 '여자 때린 적 있어?'라고 묻고, 성원은 덤덤하게 "응, 전 여친 때린 적 있어."라고 말하는 순간, 메기가 튀어오르고 성원은 싱크홀로 빠져버린다.
성원의 대답을 듣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유에 대하여 묻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는 가해자의 변명을 많이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변명을 들어줄 필요가 있는가,,?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고 나면 굉장히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였다.
'메기'는 은유와 비유로 가득 찬 영화이고, 처음 봤을 때에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고,조금은 어려운 영화라고도 느꼈다. 하지만 다시 영화를 감상하며 이런 비유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힌 양화였다.
불법촬영, 청년실업,데이트 폭력 등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이지만, 굉장히 재치있고 발랄하게 풀어냈다고 생각한다.이 영화는 꼭 여러번 보면서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또한 영화에 쓰인 음악들도 굉장히 좋았는데 유튜브에서 한번 다 들어보길 추천한다.'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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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은 너무 쉽고 다정은 너무 어렵다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디태치먼트(Detachment)'는 '무심'을 뜻한다. 애착을 뜻하는 'Attachment'에 부정 접두어 De-가 붙어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애착의 반대는 무심이다.
열네 살 때 누군가가 물었다. 사랑의 반대말이 뭔지 아니.
나는 대답했다. 미워하는 거?
아니. 무관심이래.
중학생의 감수성으로도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안다.
내가 미워하는 무언가는 나와 닮아 있다는 것,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 정도.
결핍은 사랑 받기를 원했던 대상에게 사랑 대신 무심, 무관심을 받을 때 생긴다. 누구나, 여러모로, 다양한 종류의 결핍을 가지고 있겠으나 가장 대표적인 결핍이 애정결핍이 아닐까. 실제로 '나 애정결핍이야' 하고 말하는 사람도 꽤 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자. 그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나. 어린애처럼 행동하거나, 지나치게 의존적이거나, 자학적이거나, 너무나 거만하거나, 혹은 너무나 세상에 무심하거나. 프로이트식으로 심플하게 리비도로 보아도 무방하겠지만 그러기엔 찜찜하고 인간은 복잡한 존재다.
무심은 사람을 건조하게 한다. 자신에 대한 무심, 타인에 대한 무심, 세상에 대한 무심.
인터넷을 보다 보면 '중립기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자동차를 중립기어로 두면 자동차는 기울어진 방향, 즉 비중이 큰 쪽으로 미끄러진다. 중립과 침묵은 힘이 센 쪽을 지지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무심은 세상을 바꿀 수 없고, 힘 센 쪽이 제멋대로 세상을 굴려가도록 내버려 둘 뿐이다.
'무심한 편'이라는 사람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무심할 수 있겠나. 우리는 쉽게 무심해지고, 노력을 필요로 하는 다정함을 잊는다.
애착과 관심이 필요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자. 절대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던 어른들 비슷하게 성장한 청소년기 정도. 다 큰 것 같지만 아기 같고, 아기 같지만 생각보다 성숙한 존재들. 누군가의 인정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존재들.
<디태치먼트>의 주인공 헨리가 기간제 교사로 만나게 되는 학생들도 그러한 존재들이다. 선생들이 기어이 학생을 포기하게 만드는 학교의 문제아들. 아무리 앉으라고 해도, 조용히 하라고 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선생의 권위 따위는 이미 저세상 갔다. 대관절 선생의 권위라는 건 무엇일까. 특히나 헨리가 가르치는 문학 수업 따위를 대체 어디다 써먹는다는 건가.
헨리의 반에도 헨리의 가방을 던지고, 위협을 가하려 하며 반항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러나 정교사가 될 생각이 없는 베테랑 기간제 교사 헨리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당신을 조져버리겠다는 학생을 '네 행동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며,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상대한다. 이렇게 대단한 선생이, 한 직장에 안정적으로 다니지 못하는 것에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헨리는 배움이 왜 필요한지를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왜 배워야 할까.
그의 요지는 "우리의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배워야 한다는 것.
역설적으로 영화에는 마음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한 트럭이다.
우선 헨리. 헨리는 어릴 때 엄마가 화장실에서 자살했고, 그 장면을 목격했다. 남겨진 헨리는 외할아버지가 키워주셨는데 그 할아버지도 치매다. 모두 다 잊어도, 딸이 화장실에서 죽었다는 사실만은 잊지 못한다. 화장실 문을 닫을 때마다 병원이 발칵 뒤집어진다. 학교에서 참을성 있던 헨리도 병원에서 실수로 화장실 문을 닫는 바람에 난리가 나는 것만은 참지 못한다.
그렇게 병원을 뒤집어놓고 엉엉 울며 버스에 탄 헨리의 눈에 몸을 파는 가출 청소년 에리카가 들어온다. 에리카는 말해 뭐하겠는가. 갈 곳도 없고, 몸팔아 번 돈으로 하루하루 그냥 존재할 뿐이다. 삶이라는 것도 없다. 헨리는 갈 곳 없는 에리카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에리카는 헨리가 당연히 관계를 요구할 줄 알았지만, 헨리는 에리카를 잘 돌봐준다.
학교 선생들도 다 상처투성이다.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학교를 책임지는 교장은 가뜩이나 학교도 머리가 아픈데 남편과의 관계도 엉망이다. 남교사는 학교 마치고 집에 가도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다. 학교에 찾아오는 학부모들은 대개 반쯤 정신이 나갔다. 중요한 건, 그들이 학생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거다. 난 얘 뒤치닥거리 할 시간 없다. 학교에서 애를 잘 돌보면 집에서 신경 쓸 일이 없지 않느냐. 너희가 그러고도 선생이냐.
동네 이사장은 학교가 구려서 동네 땅값이 떨어진다고 한바탕 연설하고, 공개수업일에는 단 한 명의 학부모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메레디스. 학교에서는 레즈비언이라고 놀리고, 집에서는 뚱뚱하다고 윽박지르고, 제법 소질을 보이는 사진을 쓸데없는 일로 치부한다. 햄버거 하나도 마음껏 먹지 못해 화장실에 숨어서 먹는다. 뭘 먹는 걸 보면 놀릴 테니까. 메레디스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찍는다. 그의 렌즈에는 사람만 있다. 헨리는 메레디스의 외로움을 빠르게 읽고, 에리카에게 한 것처럼 도움의 손을 뻗는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선생으로서 메레디스를 안아주었지만 메레디스는 이성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또한 청소년기에 흔히 느끼는 전위일 뿐일 것이다.
집에 있는 아버지와는 다른, 이상적인 아버지 상이다. 그러나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기도 얼마나 쉬운가.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는 많은 여성들이 그들의 마음 속에 '이상적인 아버지'를 두고, 그런 남자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아버지가 될 수는 없으며, 이상적인 아버지는 더더욱 힘들다.
썸타는 관계였던 동료 교사에게 목격되고, 아동성애자로 몰린 헨리는 종전에 볼 수 없던 분노에 휩싸여 학교를 떠난다. 그리고 얼마 뒤, 헨리에게 약속된 기간이었던 한 달이 끝나고 마지막 수업날. 그날은 메레디스가 예쁜 컵케익을 잔뜩 구워서 학생들에게 나누어준다. 흰색 크림이 얹힌 컵케익들 사이에 검은색 크림이 얹힌 컵케익이 있다.
헨리가 검은색이 맛있어 보인다고 하자, 메레디스는 그건 자기 거라고 말한다. 컵케익을 손에 들고 있는 학생과 선생님들 사이, 처음으로 메레디스가 사람들 앞에서 컵케익을 입에 문다.
그리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메레디스. 헨리는 인공호흡까지 하면서 메레디스를 살리려고 하지만, 결국 메레디스는 헨리가 보는 앞에서 자살한다.
헨리는 아동보호소에 보냈던 에리카를 찾아간다. 처음 보호소에 갈 때는 울고불고 난리였던 에리카도 나름 적응해서 잘 살고 있다. 헨리가 찾아오자 에리카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런 애다. 길거리에서 매춘을 하며 살 때의 되바라지고 무례한, 못된 10대가 아니다.
헨리의 행동이 과했는가. 오해를 살 만했는가. 아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마땅히 보여야 할 호의 정도다.
약자 혐오가 만연한 현 시대가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딱 <디태치먼트> 속 학교의 모습이 될 것이다. 주어를 지칭하기 어려우나, '그들'이라 하자. 그들은 한 번도 아이인 적 없던 것처럼 아이들을 혐오하고, 영원히 늙지 않을 것처럼 노인들을 혐오한다. 혐오의 지점을 발견한 자신을 예리하고 냉철한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웃자고, 농담이라고,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하겠다는 궁색한 변명들과 함께.
전세계 IT 강국 코리아에서는 혐오의 언어가 네트워크를 타고 광속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간다. '배움' 자체를 조롱하기 시작한 그들은 가르쳐주려는 사람에게 꼰대, 틀딱이라고 부른다. 사흘이 며칠인지 안다는 이유로, 명징과 직조라는 언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아는 체 하는 재수없는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워야 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배워야 한다. 조롱과 혐오의 언어만을 학습하다 보면, 그 언어의 화살이 마침내 자신을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헨리는 수업시간에 애드가 앨런 포의 <어셔 가의 몰락>의 한 문장을 언급한다.
"구역질나는 마음의 냉정함"
어찌 보면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의 배경 학교와 학생들이 꼴통인 지점은 비슷한데,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에서는 어른이 존재하고, 어른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돌봐주며 관심을 갖는다는 차이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결과는 달라진다. 우리는 '마음의 냉정함'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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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TV+ <럭> 공식 예고편
Apple Original Films와 Skydance Animation이 선보이는 세상에서 가장 운 없는 소녀, 샘 그린필드의 이야기. 어느 날 낯선 운의 왕국을 발견한 샘은 그곳에 사는 마법의 생명체들과 힘을 합쳐 자신의 운을 완전히 바꾸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