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2023-01-08 22:44:53
기억의 편린을 붙잡고
영화 <애프터양> 리뷰
인간은 기억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 활짝 웃으며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던 기억, 가장 좋아하는 계절의 어느 날 유난히도 맑아보였던 하늘.
행복했던 기억을 마음에 한가득 담은 채, 그렇게 기억의 편린을 붙잡고서.
안드로이드 인간 '양'(좌)
우주를 연상시키는 공간 속에서, 별을 닮은 기억의 조각들이 빛나는 연출이 좋았다. 안드로이드 인간 ‘양’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양의 시선이 머문 삶의 기억 속 순간들은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처음 동생에게 인사를 건네던 순간,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 반짝거리던 나뭇잎, 벽에 비친 잎사귀의 그림자.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안드로이드 인간 ‘에이다’와 함께했던 시간들. 그는 이러한 기억을 꺼내어 몇 번이고 곱씹었을 것이다. 소중했던 순간들을 오래도록 추억하기 위해.
(사진)_안드로이드 인간 ‘양’과 ‘에이다’.
‘양’이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가족은 양의 메모리 뱅크 속 기억을 재생하며 그의 삶을 이해하고 경험한다. 이는 SF 장르인 이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의 애도이자 사랑인 것 같다. 가슴이 먹먹했다.
찰나의 순간은 기록함으로써 기억이 되고, 기억함으로써 기록이 된다. 나를 미소 짓게 한 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 기록하며 기억해야지. 그리하여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떠나보내야 할 때, 이별이 다가왔을 때, 마음속에 담아둔 추억들을 두고두고 꺼내봐야지.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조금은 덜 아플 것 같다.
양, 가족들은 잘 있어. 너와의 기억을 마음에 한가득 담은 채, 그렇게 기억의 편린을 붙잡고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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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 위한 나의 백야행
가난한 집안 환경, 장및빛 미래라는 미끼로 아이들을 성적 경쟁으로 몰아넣는 선생님, 성적 경쟁 속에서 생겨나는 집단의 서열, 이런 시궁창 속에서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는 첸니엔, 빛의 영역에서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길에서 양아치에게 잡혔는데, 그 과정에서 함께 맞고 있는 샤오 베이를 만난다. 시궁창 속에서도 빛을 쫓아가고 있는 그녀는 여전히 시궁창에 적응하며 살고 있는 베이를 한심하게 여기며 무시하지만 동급생의 폭력이 점점 더 심해져 갈 곳 잃은 첸니엔은 베이에게 자신을 지켜달라 요청하게 된다. 그렇게 내심 니엔에게 호감이 있었던 베이는 니엔을 도와주는 음지의 보디가드가 된다. 하지만 동급생의 괴롭힘에 견디지 못한 그녀는 결국 일을 내고야 마는데, 그녀는 과연 꿈에 그리던 베이징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까?
1. 어른들이 외면한 세계에서 사는 아이, 첸니엔과 샤오 베이.
첸니엔과 샤오 베이의 첫 만남은 폭력 현장이었다. 맞고 있는 샤오 베이를 보고, 양이치들을 신고하려다 덩달아 붙잡혀 버린 첸니엔은 함께 구타당하다 양아치들이 뽀뽀하라고 강요하자, 첸니엔은 뽀뽀로 그 끔찍한 상황을 모면한다. 이렇게 두 아이는 그저 어른들이 외면한 세계 속에서 하루하루 견디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첸니엔은 학교 폭력으로 경찰에 신고해 봤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아주 미미했기 때문에 여전히 가해자의 협박, 폭력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상황이 시사하는 점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빛을 쫓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지만 그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는 관리하지 못해 문제가 생기면, 선생님들은 철저하게 교사가 아니라 공무원이 된다는 것이다. 학교는 피해 학생을 보호하려는 조치보다는 가해 학생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려는 결정을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에서 살던 첸니엔은 어른들의 가해자 한정 인도주의적인 결정으로 어둠 속으로 들어가 버리게 된다. 경찰에 신고한 이후로, 동급생이 첸니엔을 괴롭히는 수위는 점점 심해지고, 과감해진다. 더 이상 이들은 학교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체계적인 입시 제도에 아이들이 잘 맞춰주기만 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아이들을 현혹한다. 하지만 어른이든 어린 아이들이든 사람이 많이 모여들어 집단이 되면 그 집단 안에서 서열이 생겨난다. 나이가 각각 다른 집단은 나이로 서열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지만 같은 또래가 모인 집단일 경우, 집단에서 가장 영악한 아이들이 집단 장악의 우선권은 획득한다. 그렇게 한 세력이 장악하면, 그 세력의 지도자가 던진 조그만 돌에 유독 세게 맞는 불가촉천민 계급이 생겨난다. 그 계급을 사회에서는 왕따라고 칭한다. 한 세력의 지도자가 그 집단에서 가장 엘리트라면, 어른들은 그 집단에서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맹신한다. 지도자는 선생님 앞에서는 모범생인 척 위선적인 행동으로 선생님을 속이고, 불가촉천민은 보복이 두렵기 때문에 지도자의 눈에 띌만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첸니엔은 그 반에서 불가촉천민이었다. 공부를 가장 잘 하던 웨이 라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반 친구들은 모두 알지만 그걸 막으면, 첸니엔에게 향하던 화살이 자신에게 올 것을 알기에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방관할 뿐이다. 어른들은 학교라는 집단을 아직 때묻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사회에 나갈 공부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학교에서 학생들은 특정한 지식보다 더 절실히 배우는 것은 부당한 일이 발생했을 때, 적당히 눈치게임을 해야 내가 이 집단에서 매장당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어른이 되면서 잊었을 지도 모르고,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학교에서 한 번이라도 집단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눈치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영화는 그저 아이들의 집단도 어른들이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아이들도 자기 나름대로 학교에서 정치를 한다는 것을 아주 극적인 요소를 담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샤오 베이도 엄마의 부재로 인해 미성년자가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불법을 서슴치 않고, 행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했던 13세 아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길거리의 양아치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어둠 속에서 나가려고 발버둥치는 첸니엔은 순수한 존재로 보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상의 때란 때는 다 묻어버린 그에게 여전히 유토피아는 있다고 믿으며 공부에 매진하는 세상물정 모르는 그녀의 모습은 그에게 꽤 신기한 존재였을 테니까.
2. 영화 속에서 보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이 났던 한 소설이 있는데, 그것은 일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백야행이었다. 이 소설 속의 두 주인공 유키호와 료지의 경우, 료지는 유키호를 지키기 위해서 무조건적인 희생을 하고, 유키호는 료지의 희생을 발판삼아 빛의 영역에서 고고한 백조처럼 살아간다. 이 영화의 결말과는 다르긴 하지만 영화 속 두 인물과 소설 속 두 인물이 비슷해 보였던 이유가 뭘까 고민해보니, 베이도 료지처럼 첸니엔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너는 세계를 지켜, 난 너를 지킬게
더 이상 어른을 믿지 못하게 된 두 커플은 서로만을 의지하기로 한다. 어른들은 료지와 베이에게 묻겠지. 그렇게까지 유키호 그리고 첸니엔을 지켜서 얻을 수 있는 게 뭐냐고. 그렇다면 그들은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유키호와 첸니엔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어둠 속을 걷더라도 값진 인생이 될 거라고.
영화 속 형사가
"남을 위해 그렇게까지 희생하는 사람은 없어."
라고 했지만 시궁창 아래만 바라보며 한숨 쉬던 베이에게는 같은 어둠 속에서 살면서 하늘 위를 바라보는 그녀를 지지하며, 도와주어 그녀가 성공하면 자신도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녀를 통해 자신이 대리만족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은 찾아볼 엄두도 나지 않는 그 유토피아를 찾는 과정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은 세상의 비정함에 실망했을지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있는 아직 어린 청춘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 그에게 첸니엔은 그의 암울한 인생의 이정표가 되어줄 세상의 전부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녀가 무너지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을 테니, 어른들은 할 수 없는 무조건적인 희생이 가능했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그 여형사는 첸니엔을 투영시켜 그렇게 무대뽀로 누군가를 지켜야할 만큼 결핍이 있는 베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영화 속 대사
"엄마는 나이들면 좋은 게 있대요. 다 잊어버린다고.
어쩌면 그 여형사도 어른이 되어갈수록 과거를 빨리잊어버리기 마련이기에 자신도 한 때, 다른 사람들에겐 쓸데없을지도 모를 무언가에 집중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대사가 베이가 여형사와 대비되어 아직 청춘에 머물러 있음을 강조했던 것 같다.
어떤 어른들은 뉴스에서 발생하는 왕따 사건, 자살 사건 등을 보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요즘 애들은 우리 때 같지 않게 영악하다고. 아니면 요즘 애들은 우리 때 같지 않게 의지가 약하다고.
그렇게 요즘 애들은 어떻고, 옛날에는 어떻고를 따지기 전에 한 번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정말 옛날엔 학교 내에서 알력 다툼이 없었냐고, 유달리 약한 아이들이 없었냐고. 그냥 잊으신 거 아니냐고.
"나는 원래 자는 걸 싫어했는데, 요새는 좀 자고 싶을 때가 있어. 보고 싶지 않은 사람 보기 싫은 세상이 가끔 있거든."
영화 속 형사의 말처럼 여러번 잠을 잔 결과로 시간이 흐르니, 잊혀진 거 아니냐고.
3. 이 영화에 대한 평가
이 영화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빛의 세상에서 어둠 속을 기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굉장히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른에게 보호받지 못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야 했던 또다른 유키호, 료지와 첸니엔, 베이는 지금도 이 세상 도처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찾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아이들에 대한 소식을 매스컴이든 주위에서 듣게 된다면, 괴롭힌 아이든,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든 아이들을 탓하지 말고, 그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깊게 고찰해 주십사 하는 요청이 담긴 영화라고 생각한다. 학교 생활은 좋은 성적을 가져야 좋은 인생이라는 프레임을 걸고, 지식이 가득한 인재를 육성하는 곳이라고들 생각하지만 학교 안에서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교내정치, 사회생활 등을 배우기도 한다. 따라서 교내 왕따 사건이 발생하면, 아이들도 잘못했지만 어른들도 아이들의 잘못을 방치했다는 점에서 책임이 있기에 이 영화는 학생들에 대한 조금 더 사려깊은 관찰과 왕따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어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배우의 연기도 너무 좋고, 내용도 좋기 때문에 이걸 왜 영화관 가서 보지 못했나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한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고민하게 되는 영화였다.
※ 해당 영화는 왓챠(Watcha)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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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호크 다운 Black Hawk Down
블랙호크 다운 Black Hawk Down
저녁에 영화가 보고 싶어서 DVD를 뒤적거리다 이 영화를 골랐다. 이미 본 영화지만, 이번에 다시 보니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그 명성에 걸맞게 액션 씬이 매우 뛰어나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 같은 생동감이 관객을 긴장하게 만들고, 전투 현장에 있는 듯한 긴박함을 느끼게 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마크 보우든이 쓴 같은 제목의 넌픽션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소말리아 내전에 관해 알아봤다.
소말리아는 영국 보호령이었던 북부와 이탈리아의 신탁통치를 받던 남부로 갈라져있었다가 1960년에 통일되어 소말리아 민주 공화국이 탄생했다. 1969년 시아드 바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1991년까지 22년간 소말리아 대통령을 역임했다.
미국은 친소정부였던 시아드 바레를 지지했다. 1986년 시아드 바레가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부족들을 특수부대인 레드 베레로 공격하자, 소말리아 혁명이 시작되었다.
1991년 1월 26일 시아드 바레 대통령이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가 이끄는 군벌연합의 쿠데타로 축출되어 퇴임한 이후, 소말리아 혁명에 반대하는 혁명이 발생했다. 내전에 따른 폭력의 증가는 인권 마비, 무정부상태를 초래했다.
내전이 격화되자, 소말리랜드라고 불리는 소말리아 북서부 지역이 소말리랜드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독립을 승인하지 않았다. 북동부 지역은 푼트랜드라고 불린다. 푼트랜드도 1998년 자치 공화국을 선포했으나, 인접한 소말리랜드와 달리 푼트랜드는 소말리아에 대해 명백하게 독립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는 남부 지역에 속해있다.
미국은 1993년 소말리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델타포스를 모가디슈 전투 (1993년) 에 파병했다가 현지 민병대원에게 헬기 두 대가 격추당하고 18명의 병사가 체포돼 목숨을 잃었던 이른바 "블랙호크 다운"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1991년 부터 20년간의 내전속에서 소말리아인 40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며 57만명은 난민이 돼 인접국으로 떠돌고 140만명이 살던 곳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소말리아인들은 지금의 무정부 상태보다 시아드 바레 정부 시절이 훨씬 좋았던 '황금시기'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소말리아 인권단체들은 정부군의 20%(5000∼1만 명), 반군 병력의 80%가 소년병이며 9세 어린이까지 전장에 투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키 백과'에서 가져 옴)
결국 미국은 세계경찰을 스스로 떠맡아 여러 분쟁 국가에 개입을 했는데, 소말리아에서는 체면을 구긴 셈이다. 영화 끝에서도 나오지만, 이 전투로 소말리아 민병대는 약 1천 명이 사망했고, 미군은 19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소말리아 반군 지휘관인 아이디드는 결국 미군에 의해 암살당한다.
이 영화는 당연히 미국의 시각에서 보여지고 있고, 소말리아 민병대를 '적'으로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소말리아 반군은 미국을 내정간섭을 하는 적으로 여기고 있고, 그들의 전쟁에 개입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미군(미국)의 국제 분쟁 개입은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니, '정의'니 '평화'니 하는 수식어는 가당치 않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미군 병사들의 전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들이 어떻게 작전을 수행하는가 하는 전술적인 면과 실제 전투를 하는 듯한 생생한 전투 씬이 관람의 포인트가 되겠다.
소말리아는 약소국으로 유럽과 강대국에 의해 분할 통치되어 결국 내전까지 일으키게 되는 불쌍한 나라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듯, 강대국에 의해 착취당하는 약소국의 설움과 분노를 이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영화는 미군이 소말리아 반군 지도자를 체포하러 도시로 진입하면서 발생한 전투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영화를 거듭 보면서 새롭게 발견하게 된 내용은, 1) 지휘관의 전략, 전술이 얼마나 중요한가, 2) 현대의 시가전 양상, 3) 정규군사조직과 민병대의 차이, 4) 무기의 차이에 따른 전력의 크기, 5) 전우애 등이다.
반군 지도자를 체포해야 한다는 명령은 '백악관'에서 강력하게 내려오고 있는 상황이고, 소말리아의 모가디슈에서 부대 전체를 지휘하는 윌리엄 개리슨 소장이 부대와 군인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다. 소말리아의 미군은 모두 특수부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군 정예 가운데서도 정예라고 자부하는 '델타포스', '제75레인저연대',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 부대가 연합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미군은 소말리아 민병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무장을 했고, 압도적 화력을 가졌지만, 시가전은 예측할 수 없는 전투라는 걸 가볍게 생각한 면이 있다. 미군이 본격 시가전을 치른 것은 2차 세계대전 말엽, 유럽의 도시에서가 전부였으니 50년 전의 상황이었고, 그나마 중동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라고 해봐야 아주 작은 국지전 정도였으니, 소말리아에서 시가전을 벌이는 것도 그 정도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지휘부에서 시가전에 대한 심각성을 병사 모두에게 인지하지 않았다는 건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병사들도 두어 시간이면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올 걸로 생각하고, 전투에 필요한 준비물을 완벽하게 챙기지 않고 전투에 나서는 모습이 보인다. 이것은 전투의 승리와 병사의 생명을 다루는 전투에서 가장 옳지 않은 태도였다.
시가전투의 전형은 2차 세계대전에서 쏘련군과 독일군이 벌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들 수 있다. 독일군은 레닌그라드 바로 코앞의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으로 수십만 명의 독일군을 투입한다. 이 당시 전쟁의 전략적 위치로만 보면, '스탈린그라드'는 독일군이 굳이 점령하지 않아도 되는 지역이었다. 독일군은 쏘련의 서남부 지역을 점령해서 유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히틀러가 스탈린과의 자존심 대결을 벌이며, 쏘련의 상징이기도 한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면 쏘련과 스탈린의 자존심을 꺾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스탈릴그라드는 약 90%까지 독일군에게 빼앗긴 상황까지 몰렸지만, 쏘련군은 병사를 전장에 갈아넣는 인해전술로 독일군의 마지막 진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건물 잔해가 자연스럽게 은폐물이 되었다. 시가전은 게릴라 전투 형식을 띄는데, 최소 단위의 부대가 움직이면서 적을 치고 빠지는 전투가 끊임없이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쏘련군과 독일군이 담장 하나 사이로 지나치기도 하고, 같은 건물에서 뒤섞여 전투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조금 크게 말하면 서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전투를 하니 대형무기보다는 소형무기와 수류탄 따위의 개인화기 중심으로 싸우게 된다.
모가디슈의 시가전에서도 민병대는 소총과 RPG, 기관총이 무기의 전부였다. 비정규군이고 대형무기를 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해서 소말리아 민병대의 무기 보유는 개인화기가 중심이다. 반면 미군은 장갑차를 비롯한 중장비와 월등한 개인화기는 물론 '블랙호크'와 '코브라' 공격형 헬기 등도 보유하고 있어 화력에서는 비교할 필요도 없이 월등한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미군이 시가전에서 큰 피해를 당한 이유는 전술이 없었고, 도시의 지형지물을 몰랐으며, 지형의 유리한 위치를 민병대가 선점했기 때문이다. 시가전에서 유리한 위치는 전투의 승패를 가를 정도로 중요하다. 시내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민병대는 건물 옥상과 주요 길목을 선점했고, 미군 장갑차를 공격했다. 이 영화의 핵심이 되는 '블랙호크'가 추락하는 건 민병대가 쏜 RPG 한 방이었는데, 단순한 비용으로만 봐도 몇 십만원짜리 포탄 하나로 500억짜리 전투기를 격추한 것이니 엄청난 전과다.
그럼에도 이 시가전의 결과는 미군의 압도적 우위로 드러났다. 미군이 19명 사망, 87명 부상인 반면, 소말리아 민병대는 약 1천 명이 사망했다. 처음 작전 투입에 대대 병력이 들어갔다면, 블랙호크가 다운되고, 지상군이 도시의 골목에 막혀 심하게 공격 당하자 개리슨 소장은 대규모 병력 지원을 요청한다. 기존의 유엔군과 다른 기지에 있던 미군까지 총동원하면서 헬기와 탱크 등 중화기와 수백 명의 병사를 추가 투입한다.
영화에서 시가지 전투를 벌이기 전까지, 미군 기지에서 생활하는 병사의 모습이 조금 지루할 정도로 보이는데, 이것은 영화의 주제에 해당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서 죽거나 부상당하는 병사가 발생하고, 병사들은 이들을 끝까지 보호하고 후방으로 옮긴다. 개리슨 소장 역시 전장에 병사를 남기고 돌아온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단 한 명의 병사라도 반드시 귀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막강한 화력을 지원하면서 시가전을 펼쳤고, 실제 피해 규모로만 보면 소말리아 민병대가 밀린 것 같지만, 이 전투는 명백히 미군이 패한 전투였다.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한 것, 시가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 미군의 피해가 상대적으로는 적지만, 전투의 규모로 보면 매우 크다는 것 등을 패배의 원인으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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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속작이 있기에 원작일 수 있던 것들
전작보다 후속작이 더 좋은 영화는 도통 찾기 어렵다. 한 영화에서 사건은 이미 마무리되고, 인물들의 정체성도 완성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완성조차 코끼리의 일부이자 하나의 시선에 불과할 뿐이지만, 어쨌거나 시선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하나로 동의할 수 있었고 그것이 작품이 완성이라 불릴 수 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작품의 세계를 창조하는 욕심과 세계를 연명하려는 의지는 엄연히 다른 듯하다. 이미 완성되었으니까. 선택의 폭은 줄어든다. 완성된 시선에서 벗어나 위험하게 다른 곳을 비추어보던가. 혹은 그 시선을 뚜렷이 한다거나. 물론 그럼에도 창작자에게 수많은 선택과 실험의 기회가 있으며, 어느 방향으로 가든 좋고 전작보다 더 좋아지는 사례도 수도 없이 많지만, 결정적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으니. 바로 전작과의 비교다.
단순히 무엇이 낫냐는 평가가 아니다. 어떤 방향으로 작품의 세계를 발전했는지, 새로운 요소들은 세계의 본질을 홰손하지 않는지. 이전 작품에 대한 오마주를 표했는지 등. 무수한 작품의 가능성만큼 잣대도 수없이 생기고, 시리즈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 잣대는 끝없이 올라간다. 그런 어려움을 뚫고 좋은 후속작을 만들다니. 그 어려움을 어렴풋이라도 느끼면 후속작들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간도2>는 그중에서도 최고라고 생각한다.
<무간도2>는 전작의 프리퀄이다. 참신하고 날카로웠던 전작에 비하면 여러모로 파격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쇼트는 길어지고 카메라는 더 이상 역동적이지 않다. <대부>에서 느끼던 중후한 기운이 거리의 네온사인을 압도하는 듯 한편으로 공존하는. 짧은 러닝타임을 제외하면 연출 면에서 전작을 넘어 홍콩영화 대부분과 비교해도 이질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분명 이들과도 연결점이 있으니. 바로 시대와의 작별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역사는 그것의 정당성이나 비판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나 탐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그것의 이해관계는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완전히 해소될 수 없고, 삶의 터전과 순수함이 훼손된 채 다른 세계로 내몰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무간도2>에서 선역과 악역은 없으며 모든 인연이 꼬여있다.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혹은 자발적으로 머무르는 인물들이 서로를 탓하고 있다. 신분을 숨긴 채 조직에 잠입하고, 이득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영원한 고통을 뜻하는 무간지옥에 어울리는 모습, 이러한 점에서 <무간도2> 역시 홍콩영화이고, 어쩌면 더욱 처절하게 시대상을 표현했을지 모르겠다.
특정 시대상을 잘 담은 명작은 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느낄 수 있는 여운이 있다. 기원전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건 물론 그리스에 가본 적조차 없는 사람도 고전을 통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역사와 사상을 공부하고, 그것을 현재의 시대로 치환해 교훈을 얻곤 한다.
시대 불문이랄까. 당시의 홍콩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복합적인 시대상을 그대로 떠안는 젊은이들이 있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 그 속에서도 사랑은 불안하게나마 피어난다. 하지만 그 순수함만큼은 불안해질 수 없기에 항상 고뇌하고 희생을 감수한다. 무엇보다 그 영화의 끝이 행복하든 슬프든 시대의 변화를 역행할 수 없다는 진리를 끝내 이기지 못한다. <무간도2>는 이 점을 영리하게 이용한다. 촬영이나 편집 기법은 독창적이고, 되려 주제 의식을 보강했다. 전작의 당위성을 보여주고 인물들에 입체감을 더해준다. 본작의 빌런이라 할 수 있는 예영효는 그 구심점을 확실히 해주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리고 엔딩은 지나간 시대에 헌사를 보내며 과거의 향수를 원동력으로 미래를 살아갈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무간도'라는 강렬한 제목처럼 이전도 그다음도 인생은 시대 불문 지옥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연과 사랑이 언제나 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흔히들 홍콩영화는 이제 끝이 나버렸다고 말을 한다. 실제로 2010년대 이후 두각을 드러내는 영화가 적은 것도 사실이니. 철거된 네온사인들처럼 그때의 스타들도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직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전의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시대 불문의 가치를 상기한다면. 독창성을 되찾는다면. 무엇보다 목소리를 낼 용기를 되찾는다면 홍콩영화는 다시금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무간도2>가 홍콩영화의 황금기 마지막 세대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무간도 2>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속작’을 애타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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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표 없는 마음의 계절
현재에 없는 걸 그리워하는 미련함일까. 아니면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일까.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청개구리 같은 마음은 계절마다 계절에 반하는 상념들을 끌어오고는 한다.
여름에는 녹아 버릴 것 같은 온도, 숨이 턱턱 막히는 습도, 줄줄 흐르는 불쾌한 땀, 살을 콕콕 찌르는 뜨거운 햇볕... 같은 것들로 괴로워하면서, 회상 속에서는 여름의 청량한 감각만을 그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유리잔의 얼음 잘그락거리는 소리, 빨간 수박을 가득 베어 물 때의 감각, 매미 소리 들으며 올려 본 나무 사이 햇살.
반대로 겨울은 늘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눈 덮인 풍경마저 어쩐지 포근해 보인다. 어쩐지 마음을 따끈하게 데워 주는 겨울 영화들도 찾게 된다. <러브레터>, <러브 액츄얼리>, <캐롤>, <윤희에게>... 그러나 이 영화들이 불러일으키는 겨울의 감각은 어쩐지 현재보다 과거를 닮았다. 내 마음속 따뜻한 겨울 또한 올해 혹은 작년의 겨울이라기보다 기억 속 겨울의 집합체 같은 느낌이다.
올해는 조금 다르다. 현재에 단단히 서 있는, 추억이 아니라 오늘 내가 걸어 다니는 골목 같은 겨울 영화를 만났다. 포근하게 덮인 설경도 없고 마음을 데워 주는 편지 한 장도 없이 마음 어딘가에 스며드는, 어느 새 다가와 있는 계절을 닮은 영화 <창밖은 겨울>을 들여다본다.
겨울 해의 그림자는 낮고 길다
영화 <창밖은 겨울>은 서울이 아닌,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보다 보면 창원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지만 사실 대한민국 웬만한 소도시는 다 비슷한 무드를 갖고 있다.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곳에서 우르르 내리고, 젊은 사람은 점차 줄어들고, 밤이 되면 골목은 조용해진다. 상념을 품고 있는 젊은이에게는 한없이 외로운 곳이 될 수도 있는, 눈도 오지 않는 긴 겨울밤.
영화감독의 꿈을 막 시작하려던 석우(곽민규)는 어떤 이유인지 고향에 돌아와 버스 운전을 하고 있다. 운전을 마치면 늘 아버지 삼촌뻘 기사들과 같은 식당에서 같은 밥을 먹고, 그들이 치는 탁구 심판을 보면서 말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불 꺼진 방에서 무료하게 탁구공을 벽에 툭툭 던진다. 대회를 나가겠다며 의기투합하는 기사들과 달리 그의 탁구공은 자신과 자신 사이에서 튀어 오를 뿐이다.
단조로운 일상에 생긴 아주 작은 변화는 대합실에서 우연히 누군가 분실한 MP3를 줍는 데서 시작된다. 유실물 보관소를 담당하는 영애(한선화)에게서 당일 가져가지 않는 물건들은 사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는 MP3 주인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요즘은 찾아보기도 힘든 MP3에 석우가 보이는 기묘한 집착을 보며 영애도 호기심을 품고, MP3를 둘러싼 두 사람의 대화는 탁구처럼 이어져 간다. 이 영화의 어떤 면을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두 사람이 서서히 가까워져 가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연결점을 톡톡 찍어,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서로 알아가고 애정을 품고 서로를 연인이라 명명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몇 개의 연결점을 비틀비틀 가로지르는 단선적인 이야기라기에는, 이 영화에서 창문 넘어 들어오는 겨울 오후 햇빛이 너무나 다정하고 포근하다. 유실물을 보관하던 공간으로, 과거에 두고 온 꿈을 봉인해 둔 방으로, 낮은 대신 길고 묵직하게 들어선다. 이들 각자의 삶을, 지금 마주한 서로의 면뿐 아니라 그 뒤로 양감 있게 펼쳐져 왔을 시간 모두 따스하게 끌어안을 만큼.
영화에서 겨울은 대화의 소재조차 되지 않지만, 낮은 각도로 기울어져 창문으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은 '창밖은 겨울'이 꼭 그렇게 차갑고 비정한 계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실제로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서로를 마주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각자의 뒤를 바라보는 이야기가 되어 간다.
계절을 이루는 작은 조각들
두 사람이 과거를 안고 오늘을 살아가는 곳, 지방 도시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기묘하게 다른 속도로 흐른다. 서울에선 자취를 감춘 물건들이 일상에 속속 등장하고, 서울에선 사용하지 않는 말들도 툭툭 튀어나온다. 귤을 담아 놓는 빨간 바구니, 옛날식 등유 난로, 자판기 커피... 소도시의 겨울을 이루는 작은 조각들이 이 영화에는 소중하게 담겨 있다.
이 잔잔한 일상의 배경은 인물들의 잔잔한 감정과 함께 유유히 흐른다. 거친 강물보다는 잔잔한 호수의 윤슬처럼 반짝반짝. '우리는 오늘부터 연인!' 식으로 관계를 규정하고 선포하는 말도 없이, 밀고 당기는 게임 같은 티키타카 말장난도 없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눈에도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두 사람이 각자의 어제를, 오늘을, 내일을 어떻게 마주하며 일상을 툭툭 살아나가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눈도 내리지 않는 찬 겨울을 걸어 다니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다지 추워 보이지만은 않는 것은 그래서가 아닐까. 아름답게 그려진 소도시의 골목을 차분하게 걷고,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헤매다 보석 같은 장소를 발견하기도 하고. 두 사람이 가까워가는 과정은 연애만을 위해 비현실적으로 세팅된 공간이 아닌, 각자의 일상에 발붙인 자리에서 일어나기에 더욱 맑게 빛난다. 그 담백하게 맑은 기운이 이 영화의 힘이다.
그 마음은 어쩐지 순정을 닮았다. 가끔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클래식>을 필두로 하는 당시 로맨스 영화는 상당수가 수채화 같은 느낌의 순정을 담고 있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20년 가량 흐른 세월까지 입어 더욱 유리알처럼 영롱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는 그 빛을 닮았다. 온통 자극적인 '빨간 맛'이 범람하는 시대, 사랑도 속전속결 '사이다'로 해야 하는 시대에는 맞지 않는 결이다. 그러나 이 감성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어딘가 창밖의 풍경처럼 점점이 박혀 있음을 알고 있다.
닫아 두어도 반쯤 열리는 문처럼
그 안에서 석우와 영애는 서로 가까워져 가는 동시에, 각자 자신과도 가까워진다. 자판기 커피처럼 따뜻한 관계가 이 영화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자신의 시간을 버스 노선처럼 휘휘 돌며 이루어진다. 멜로 영화와 성장 영화라고 요약할 수 있을 그 마음을 어쩐지 이 영화에서만큼은 따로 이름표 붙이고 싶지 않다. 단어로 딱 잘라 말하기보다 그냥 이 영화 속 겨울 햇살처럼 은은하게 내리쬐는 마음을 느끼고 싶다.
그래서일까. 보고 있노라면 영화가 괜찮다고 다독다독, 어깨를 두드려 오는 기분이 든다. 과거를 돌아봐도 괜찮다고. 뜯기듯 갑작스럽게 잃은 시간에 대한 미련이어도, 후련하게 떠나온 시간이더라도. 아무튼 다시 톺아 보아도 괜찮다고. 그러기 위해서 좀 헤매도 되고, 찾아 헤맨 것이 잘 나오지 않아도 되고... 그 길을 같이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기쁘겠지만, 그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한 번쯤 버스가 철길을 가로지르는 달밤처럼 기적 같은 장면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고.
석우가 과거의 '영화'를 담아 둔 방문이 자꾸만 다시 빼꼼 열리는 것처럼, 마음 한구석에 자꾸만 빼꼼 열리는 어떤 문이 있다면 어쩐지 용기를 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노란 귤을 까먹으면서, 믹스커피를 훌훌 타 마시면서, 찌개에 밥을 씩씩하게 먹고 오늘의 일을 하면서, 틈틈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어진다. 씩씩한 오늘을 걷는 영화를 보고 나와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가는 길, 몽글몽글 차오르는 감정들에 이름표는 붙이지 않기로 한다. 다만 이 마음들이 담긴 계절의 감각을 코끝으로 기억해 두기로 한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 초청으로 시사회에 참석하여 영화를 감상하고 작성하였습니다. 영화 개봉일은 2022년 11월 24일입니다. 개봉 일자가 영화의 무드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 같아요. 딱 지금 영화관에서 즐기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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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기억만 하겠습니다
이일형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던 데뷔작 <검사외전, 2016>은 천만 영화에 불과, 30만명이 모자랐다. - 데뷔작으로 천만 관객을 넘긴 감독은 <변호인, 2013>의 "양우석"감독과 <범죄도시 2, 2022>의 "이상용"감독이 있다!
국내 영화로는 가장 적은 수치이지만, 가장 적은 격차는 <보헤미안 랩소디, 2018>가 기록한 994만명이다. - 재개봉 안 해주나?
시작부터 제대로 흥했기에 그의 차기작에 거는 기대치도 있는 이번 영화 <리멤버>에서도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근데, 오리지널은 아니고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출연했던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 2015>의 리메이크이다.영화는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점차 잃어가는 80대 노인 "필주"가 과거, 자신의 가족들을 파멸시킨 친일파들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1. 익숙한 영화들이 많이 보이는데...
먼저, 원작 영화가 있다는 <리멤버>에는 익숙한 영화들이 겹친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점차 잃어가는 "필주"의 모습에는 <메모리, 2022>의 리암 니슨", 문신을 새겨 복수의 대상을 잊지 않으려는 모습 또한 <메멘토, 2001>의 "가이 리치"가 생각나며, 그의 운전을 도와주는 "인규"와의 합은 <콜래트럴, 2004>이 연상되니 잘 짜깁기만 하면 새롭진 않더라도 재밌어 보인다.
무엇보다 "복수극"을 띄우는 이야기의 뻗어나가는 이야기의 힘이 상당히 좋다!물론, 준비 자세를 갖추는 데에 어려움이 있지만 '오랫동안 준비했다'라는 말과 함께 "플래시 백"으로 정리해 동기들을 설명하나 전개의 개연성을 따진다면 한없이 파고들 수 있겠지만 개의치 않음으로 "고구마"로 정리되는 답답한 전개를 없앤다.
결국, 폭발이 예고됐음에도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2. 역사 책과 다른 게 없더라!
그렇다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aka. 반민특위)"은 뭘까?
1910년 경술국치를 시작으로 1945년 광복까지 지난 35년간 일제 치하에 충성과 다른 시민들에게 위해를 끼친 인원들을 조사하는 조직위이다.
1948년에 조직해 집행유예 5인, 실형 7인, 공민권 정지 18인 등 총 30명에게 법원 명령을 내렸지만, 결과적으로 처벌받은 이들은 없다. - 이후 1949년, 1년 만에 해산되었다.
이는 지금까지도 일부 친일 세력들이 대한민국 사회 구조의 위에 있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영화 <리멤버>, 역시 처단해야 하는 대상들이 "초대 국방부장관"과 "기업 대표", 그리고 "작가" 등. 사회에서 위치를 차지하는 것과 달리, 주인공 "필주"는 레스토랑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하다.
극 중. 법원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들을 앞서 언급한 예고된 폭발로 보여줘 관객들에게 시원함을 안겨주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활극이 좀 더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는다.3.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이런 이유에는 "필주"를 비롯해 복수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들의 이미지와 설명이 스크린 너머 "국사책" 혹은 뉴스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설명이 쌓기도 전에 캐릭터들이 자꾸만 퇴장하니 난감할 상황이긴 하다.
그렇기에 "필주"의 옆에서 도움을 주는 "인규"의 모습은 역사를 대면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 "꼭 이래야만 하느냐"라는 "인규"의 말에 총으로 응수하는 "필주"의 장면이 그러하다.
마지막 할아버지의 치부를 듣는 손녀 딸의 표정은 그 간격을 줄여줄지도 모른다!· tmi. 1 - 본 작품의 원작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2015>의 각본가 '벤자민 어거스트'는 '나이 든 배우들이 주연을 적게 맡는다고 느꼈고, 그래서 나이 든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를 쓰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 tmi. 2 - 영화 <암살2015>의 "염석진"이 "내가 독립운동가였다!"라며, 항변하는 장면이 "반민특위"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 tmi. 2. 1 - 재밌는 건 "염석진" 자신을 재판에 넘긴 검사의 멱살을 잡고서 "이 친일파 아들놈의 새끼가 니가 지금 와세다 법대 나와서 꽃방석에 앉았다고 내 앞에서 떵떵거려? 니 애비도 우리 암살 리스트에 있었어, 이 새끼야."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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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의 본질, 음악의 본질
자히아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소음까지 전부 악기의 선율로 느낄 정도로 음악을 사랑한다.
교외의 작은 마을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파리의 명문 음악원 졸업반에 입성한 자히아. 그런 그녀의 꿈은 지휘자가 되는 것. 여자인데다 이민자이기까지 한 그녀에게는 결코 만만한 꿈이 아니다. 함께 수업하는 학생들은 그녀를 무시하고 깔보며, 자히아가 지휘자가 되자 연습을 이탈해버리기까지 한다.
어쩌면 그렇기에 자히아는 훨씬 더 '완벽'이라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을까.
영화 내내 자히아는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지휘를 이어간다. 그녀는 작곡가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해 내서 한 음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연주해 내고자 한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자히아의 표정과 손끝을 확대하여 보여준다. 스승이자 세계적인 지휘자인 세르지우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모든 단원들과 눈을 맞추고 연주하라 지시한다. 하지만 자히아는 함께 있는데도 외롭다며 자신의 고충을 토로한다.
아직 그들과 함께하지 않는구나. 언젠가 너도 알게 될 거다. 그들과 하나가 되는 순간을.
지휘 대회에서 떨어져 의기소침한 자히아는 자신을 이끄는 소리에 밖으로 나오게 된다. 자신이 한 명, 두 명 모집해 구성한 오케스트라 '디베르티멘토'가 거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간 꽉 묶은 머리와 정돈된 복장으로만 단원 앞에 섰던 자히아는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가벼운 재킷만 입은 상태이다. 그러나 자히아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단원들과 함께 연주하는 법을 알게 된다.
그동안 자히아만을 비추던 카메라는 여러 방면으로 움직이며 단원들을 담아낸다. 보면대도, 악보도, 의자도, 격식이라곤 갖춰지지 않은 이 무대에서 지치거나 슬픈 표정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동감 넘치는 연주자들의 손끝과 자히아의 손끝은 닮아있다. 낙후된 지역이지만 사람들은 한 편의 즐거운 음악을 듣고 박수를 보낸다. 자히아는 마지막에서야 '본질'을 찾은 듯하다.
"난 악보에 있는 것만 연주해."
"악보에는 모든 것이 있으니까. 본질만 빼고."
아마 자히아가 더 강인한 사람이었어도 동생인 파투마가 없었다면 결코 지휘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오케스트라를 가지라는 조언과, 누구나 음악을 즐길 자유가 있다는 것을 몸소 알려준 것은 전부 파투마였으니까. 때론 훌륭한 스승의 한 마디보다 분신 같은 친구의 별것 아닌 행동이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영화 [디베르티멘토]를 통해 지휘자의 세계에서도 여성은 외면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김은선 지휘자도 세상에 자신을 널리 알리고 있듯이 그 성역은 결국 무너지고 깨어질 것이다. '함께'의 가치를 모르는 자들은 결국 스스로 예술을 파멸시키기 마련이니까.
*이 영화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관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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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모입니까? 학생이니? 선생님? 꼭 기억되어야 할 영화[인생걸작/영화리뷰]
#명화#학생영화#죽은시인
▼구독은 여러분의 큰 힘입니다https://www.youtube.com/channel/UCNqd...
▼무비워크 먹여살리기???
https://toon.at/donate/637245550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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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신공룡> 2차 예고편
도라에몽 50주년 기념대작!
오리지널 스토리로 돌아온 진구와 쌍둥이 공룡의 대모험!진구는 공룡 엑스포 화석 발굴 체험에서 발견한 화석을 공룡알이라고 굳게 믿는다.
도라에몽의 비밀도구 타임 보자기로 화석을 되돌리자 새로운 종의 쌍둥이 공룡이 태어났다!
진구를 닮아 미덥지 못한 큐와 말괄량이 뮤.
사랑을 듬뿍 주며 키우지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진구는
큐와 뮤를 원래 시대로 데려다 주기로 결심하고,
친구들과 함께 6,600만 년 전 백악기로 모험을 떠난다!
도라에몽의 비밀도구와 공룡들의 도움으로 공룡의 발자국을 따라
진구와 친구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수수께끼의 섬.
공룡이 멸종했다고 알려진 백악기에서 큐와 뮤, 그리고 진구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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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수리남> 공식 예고편
속이면 살고 속으면 죽는다 거짓으로 쌓아올린 거대한 왕국 그리고 목숨을 건 생사의 비즈니스 살아남는 자 누구인가 실제로 있었던 가장 위험한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