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6-23 15:57:25
가장 먼 곳에서 느끼는 아늑함.
영화 <그랜마> 리뷰
연인과 헤어진 날 아침, 손녀 세이지가 찾아와 임신 중단 수술을 위한 돈을 빌려달라고 찾아오지만 엘이 가진 돈은 43달러뿐이었다. 당장 오늘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에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잠깐의 외출에도 찾아오는 불합리한 모습을 마냥 지켜만 보지 않는 엘의 거침없는 분노가 때론 무례하게 비치기도 하지만 방관 없는 당당함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강한 외면과는 달리 조금씩 불안정한 엘의 마음은 6개의 에피소드와 자신과 연결되어 있던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 단단한 마음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했다. 철저히 자신에 대해서 부정했던 시간을 지나 자신으로 당당할 수 있었던 현재의 모습이 세이지와 함께하는 여정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처음에는 마냥 불친절하고 퉁명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세이지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느껴지는 따뜻함이 인상적이었고 뭔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세이지에 당당함을 불어넣어 주는 모습을 보며 왠지 나도 힘이 났다. 특히 세이지의 임신에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던 녀석을 혼내주는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폭력의 순간이든, 대화를 통한 재회의 순간이든 남은 평생 매일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될 일을 인정하는 자세를 잘 드러낸 영화였다. 어른의 모습이 완벽함을 갖추기도 어렵겠지만 자기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어 불안감보다는 단단함을 가진 사람이 어른의 모습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회피하고 싶었던 순간을 당당히 마주하는 엘의 모습을 통해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움을 채워가고 있었다. 우리가 보통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조금 다른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불안정한 모습도 어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낙태 시술소가 있었던 곳에는 카페가 들어서고 그곳에서 낙태라는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 그 공간에 있을 수 없게 하고, 함께 책임을 져야 할 이는 책임을 회피한다. 또, 낙태 시술소 앞에 있는 여자가 낙태를 반대하는 시위를 펼친다. 그리고 이런 상황들이 모여 홀로 남는 여성을 홀로 걸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끌지만 영화의 상황과 엘은 그 상황에 젖어들지 않고 같이 걸어나간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정상에서 정상을 외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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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져도 기억될 영화와 마음, 좋아하는 마음으로도 충분하니까.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주인공은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을 하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속해있는 영화 동아리는 카린을 중심으로 로맨스 영화만 촬영한다. 사무라이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맨발은 불만을 품지만 <무사의 청춘>을 만들겠다는 마음만큼은 절대 져버리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담고 싶은 영화의 주인공과 닮은 린타로를 만나게 되면서 꿈을 현실로 만들 기회가 눈앞에 다가온다. 과거를 아는 것보다 미래를 아는 게 더 희망적일까. 불확실함에서 확실함을 찾아가야 하는 현재는 용기를 내기가 어렵고 또 겁난다. 자신의 현재이자 미래를 바꿀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영화는 말이야, 스크린을 통해 현재랑 과거를 이어준다고 생각해. 난 내 영화를 통해 미래를 연결하고 싶어” 오해와 어려움을 거쳐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영화를 통해 마주하게 된다. 기록에는 남지 않아도 기억에는 남을 열정과 영화 그리고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다.
영화관에서 만나기 전에 재팬 필름 영화제에서 만난 작품 중 하나로 어느 것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만난 착한 영화였다. 그때는 봄이었는데 지금은 뜨겁고 끈적이는 여름이 되어 그 자체가 싫어지는 와중에 다시 이 영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여름이었다’ 라는 흔한 말과 ‘청춘’이 그대로 담겨있는 이 영화는 민낯의 청춘들을 사랑하고 있다. 성공, 인생의 목표, 뚜렷함과 같은 것들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지만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도 만든다. 그런 나를 위로하듯 활활 타오르는 열정을 영화에 한가득 담아낸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맨발은 좋아하는 것을 영화에 진심을 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끊임없이 자신의 두려움의 감정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만들어내는 단어들이 떠오르고 뒤보다는 앞을 바라보게 만드는 용기를 얻어갈 수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마주하고 바라보고 있는 영화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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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명쯤 마음에 품고 있잖아요 지브리 남주. 최애 지브리 남주 고르기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이자 지브리의 신작이 공개되었습니다!!
항상 따듯한 분위기의 영상과 함께 아련하고 설레는 이야기들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는데요 오늘은 줄거리와 더불어 지브리 최애 남주를 선택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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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공화국에 던져 잔인할 정도로 짓궂은 질문
7★/10★
사상 초유의 대지진이 일어나 서울의 모든 건물이 무너졌고, 딱 하나의 건물만 살아남았다. 바로 황궁 아파트. 생존자들이 하나둘씩 황궁 아파트로 모여든다. 누군가는 그들을 자기 집에 들이고, 누군가는 자꾸만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불안을 느낀다. 아노미 상태가 이어지자 주민회의가 열린다. 몸을 던져 아파트 단지 내 화재를 막은 영탁이 대표로 선출되고 아파트는 빠르게 질서를 확립해나간다. 영탁의 지침은 간단하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 영탁은 기존의 모든 위계와 도덕, 질서가 무용해진 환경을 ‘주민 vs 외부인’의 단순하면서도 ‘합리적인’ 구도로 빠르게 정리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기존 재난 영화와 다른 길을 간다. 보통의 재난 영화는 재난 장면의 스펙터클을 향해 서서히 나아간다. 우리는 주인공들이 재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가던 사람들과 재난의 징조가 교차하는 장면이 포함된 영화를 여럿 떠올릴 수 있다. 이들 영화에서 거대한 재난은 영화의 중후반부, 즉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등장했다. 그러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미 재난이 일어난 후에 시작된다. 이유가 있다. 대지진보다 그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기존 생활방식이 대지진보다 더 큰 재난이 아니냐고 묻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수많은 사람이 아파트에 살길 희망한다. 그리고 개별 아파트는 거주민의 품격을 대변한다고 여겨진다.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바로 옆의 드림 팰리스 주민들에게 종종 무시당했다. 드림 팰리스 주민들은 황궁 아파트 주민이 자기네 단지 내부로 오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고, 그 근거로 종종 집값을 들먹였다. 아파트의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드림 팰리스 주민들은 더 비싼 아파트에 사는 자신들이 황궁 아파트 주민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난은 드림 팰리스와 황궁 아파트의 지위를 뒤바꿨다. 떵떵거리던 드림 팰리스 주민들은 황궁 아파트 주민들에게 제발 자신들을 받아달라고 읍소한다. 그러나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시큰둥하다. 지금껏 그들이 받아온 모욕을 생각한다면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들은 그저 재난 이전에 자신들이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줬을 뿐이니까.
물론 위계를 나누는 선은 두 아파트 사이에만 있지 않다. 자가, 전세, 월세, 대출 여부 등의 기준은 황궁 아파트 내부에서도 위계를 만든다. 그러나 대지진 후 황궁 아파트 주민회의 참가자들은 ‘너그럽게’ 모든 형태의 거주자를 주민으로 인정해준다. 그러나 여기까지. 그들의 온정은 더 넓게 확장되지 않는다. 재난 이후 아파트라는 특권은 오직 황궁 아파트 주민에게만 허락된다.
덥수룩한 머리에 별다른 존재감도 없던 영탁은 이 모든 과정을 능숙하게 처리해 재난 이전이라면 그가 결코 갖지 못했을 명예를 얻는다. 완장을 찬 영탁은 그 누구보다도 주민을 지키는 데 열심이다. 그는 드림 팰리스 주민들이 그러했듯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장벽을 쌓고 경계를 강화한다.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식량을 구하러 바깥으로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주민이 아니면서도 몰래 아파트에 숨어들고, 위험 끝에 얻은 과실을 무상 취식하는 자들이 있다. 영탁과 그를 따르는 대다수의 주민들은 그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른다.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존재들은 색출, 퇴출되어야 한다. 황궁 아파트 주민이라도 바퀴벌레를 돕는 자들은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황궁 아파트 주민들의 바퀴벌레 색출은 나치의 유대인 색출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는 나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이미 끝났고, 인류가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영탁/주민/바퀴벌레에게서 히틀러/나치/유대인(쥐)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다. 히틀러와 나치도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국가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었다. 영탁과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아파트를 사수하려 했듯이 말이다. 국가주의적 욕망이 아파트를 매개한 자본주의적 생존 욕망으로 변화한 것 말고는 둘 사이에 별다른 차이는 없다. 한국 현대사의 ‘빨갱이’ 색출 메커니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시대와 맥락을 조금씩 바꾸면 황궁 아파트의 ‘바퀴벌레 색출’과 닮은 폭력의 역사적 사례는 무수히 많다.
때문에 문제는 영화를 보는 누구도 영탁과 황궁 아파트 주민들을 쉽게 손가락질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간주하는 시대의 욕망이 폭력의 정당성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다. 혹은 외피를 바꿔 등장한 폭력의 체제에 손쉽게 속아 넘어갈 만큼 피상적으로만 역사를 배웠다고 할 수도 있겠다. 대지진보다 무서운 재난은 이미 집값과 아파트의 격을 따지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중이다. 단지 한 번에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대신 조금씩 우리를 좀먹으며 서서히 사회의 밑동을 갉아내는 중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기존 재난 영화와 전개가 다르다는 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있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다. ‘재미’에 관한 통상적 기준을 적용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이병헌이 있다. 매번 다른 결의 독보적 연기를 선보이는 그는 이번에도 존경과 미움을 한몸에 받는 영탁이라는 인물을 탁월하게 연기해내며 서슬 퍼런 존재감을 뽐낸다. 그의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리는 몇몇 장면이 이를 대변한다. 재난 영화의 문법 대신, 영탁이 변화와 그의 비밀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재미는 충분할 것이다. 평범한 공무원이었으나 서서히 영탁에게 물들어가는 민성과 영탁의 대척점에서 공동체를 대변하는 명화를 연기한 박서준, 박보영의 연기도 극의 몰입감을 더한다. 영탁의 든든한 조력자인 부녀회장을 연기한 김선영이 극에 선사하는 현실감도 몰입에 큰 역할을 한다.
장르의 관습을 비켜 간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무엇보다 ‘너라면 다를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잔인할 정도로 짓궂은 영화의 질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잠깐이라도 멈춰 설 계기가 필요한 우리에게 도착한 시의적절한 재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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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망진창 하이틴도 하이틴이니까!
엉망이어도 괜찮아 🤯
그게 하이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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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워즈 영화 랭킹 Star Wars Film Ranked
조지 루카스가 구상한 [스타워즈 9부작] 혹은 [스카이워커 사가]은 한마디로 '다스 베이더의 비극'라는 거대한 서사시다. 그 비극을 지켜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파토스(Pathos, 연민을 자아내는 힘, 측은지심)'을 자아내기 때문에 전설의 위치에 올랐다.
마블과 DC를 포함한 대부분의 장르물이 그렇듯이 [스타워즈] 역시 개연성을 지닌 영화는 아니다. 지난 42년간 [스타워즈]는 MCU처럼 독창적인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무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이전에 팬들에 의해 대중문화 최초로 ‘확장세계관(EU)’를 정립했다. 그런데 [시퀄 3부작]은 [스타워즈] 특유의 ‘설정 놀음’을 간과했다. 특히 캐슬린 케네디 루카스필름 대표와 밥 아이거 디즈니 회장이 그랬다.
◆평가 기준
1순위 시리즈로써 의의
2순위 공유 세계관 기여도
3순위 단일 작품으로써 완성도
#11 : 에피소드 9: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Episode IX: The Rise Of Skywalker, 2019)
디즈니는 ‘스카이워커 사가의 종결’을 홍보했지만, 9편의 실제 임무는 ‘브랜드 관리’다. J.J. 에이브람스의 최우선 과제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라스트 제다이]에 대한 팬들의 반발을 잠재우는 것이다. 거기다 자신이 던져놓은 7편의 떡밥을 회수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따지고 보면 라이언 존슨이 8편에서 7편의 떡밥을 싹 무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제작을 맡은 밥 아이거 디즈니 회장이 ‘팬 서비스’를 핑계 삼아 8편의 아이디어를 깡그리 쓰레기통에 버린다. 속편이 나올 때마다 전편을 부정하는 [시퀄 3부작]은 구체적인 청사진 없이 팬들의 반응만 살피며 돌려 막기 하다 보니까 캐릭터, 설정, 세계관, 스토리 전부 일관성을 잃어버린다. 거기다 캐슬린 케네디가 꺼내 든 황제 클론 아이디어는 그 자신이 2014년 4월 25일에 폐기한 레전드에서 가져왔다. 캐슬린 케네디의 '빈곤한 상상력'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느라 포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만능키)' 되고, 레이는 '메리 수(천하무적)' 화 되어 시리즈 전통을 더더욱 망가뜨린다. 이게 다 라제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전부 다 수습하려고 노력하면서, 9편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시퀄 3부작 내내 기존 시리즈에 대한 지나친 오마주를 하면서 전통 파괴를 일삼는 모순을 매번 일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도통 [시퀄 3부작]의 주제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세 편 모두 제각각 따라 놀며 [시퀄 3부작]의 정체성과 주제를 전부 잃어버렸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문제는 빈곤한 상상력과 방향성의 부재다. 이것이 디즈니가 '새로운 스타워즈'를 내세우면서도 [스타워즈 6부작]을 의존하는 [시퀄 3부작]의 한계다. 고로 창의적인 비전이 결여되었을 뿐 아니라 제작진이 [스타워즈] 시리즈 자체를 오독하고 있다는 말밖에 더 되겠는가? 실로 안타깝다.
#10 : 에피소드 8 : 라스트 제다이 (EPISODE VIII - THE LAST JEDI, 2017)
당연하게도 시리즈물은 단 한 편의 완성도로 평가할 수 없다. 라이언 존슨은 우리가 익히 알던 스타워즈의 영웅 서사를 해체시킨다. 영화 전체에 걸쳐 낡은 스타워즈를 새롭게 갈아엎지만, 5편 [제국의 역습]처럼 하는 일마다 죄다 실패하는 통에 다 보고 나면 허무하다. 왜 [제국의 역습]을 레퍼런스한 [라스트 제다이]는 감흥이 적을까? 비극은 공포와 연민을 통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완수한다. [제국의 역습]은 '부살(父殺·Patricide)' 모티브를 차용해 루크에게 감정 이입하게 되지만, [라스트 제다이]의 성장 자체가 없는 레이에게 어떻게 연민과 공포를 가지겠는가?
라이언 존슨이 전통에만 기반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는 '미래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따르는 건 좋다. 해체하기에 앞서서 우선 시리즈의 본질을 제대로 통찰했어야 했다. 아니면 아예 과거와는 선을 긋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덧붙여서 차라리 [라스트 제다이]를 첫 번째 영화로 내세워 [시퀄 3부작]에 걸쳐 차근차근 진행되었다면, 훨씬 순조로웠을 것이다. 결국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일부터 저지르는 8편은 J.J. 에이브람스를 포함한 스타워즈 팬들에게는 40년 동안 쌓아왔던 공유 세계관에 대한 '반달리즘'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라이언 존슨은 제다이와 시스로 구분 짓지 말자고 계속 설득하지만, 정작 '저항군 VS 퍼스트 오더' 선악구도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또, 영화 내내 탈영웅 서사를 부르짖지만, 결국 시련과 고초를 한 번도 겪지 않는 완전무결한 레이의 영웅 서사를 보면 자기모순처럼 읽힌다. 거기다 서스펜스에 약한 라이언 존슨의 약점이 겹치면서 저항군을 계속 위기로 몰아넣지만, 지켜보는 관객 입장에서 긴박감이 전혀 와닿지 않는다. ([나이브스 아웃]을 보면 그는 미스터리에 강점이 있는 감독이다.) 전부 라이언 존슨이 별다른 설득 없이 시리즈의 요소들을 본인 입맛대로 취사선택하고 변용한 결과였다. 왜 그랬을까?
포스트모더니즘의 거두, 자크 데리다는 흔히 '선과 악' 같은 이항대립 체계를 종언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 가르침대로 라이언 존슨 역시 제다이와 시스의 대결을 종식시키고 싶었을 테다. 그러나 사실 데리다는 이항대립의 경계, 울타리를 이야기할 뿐 종언을 고하지 않았다. 데리다는 이항대립을 해체하되 이항대립 그 자체가 종결될 수는 없다고 봤다. 왜냐하면 성경을 포함한 서구인의 사고체계 전부를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라이언 존슨도 그런 포스트모더니즘의 맹점에 빠졌던 것이다.
결국에는 괜찮은 완성도임에도 불구하고, 후속작인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 그 즉시 기록 말살 형에 처해진다. 이제 루카스 필름 내부에서조차 ‘흑역사’로 공인된 셈이다. 그러나 조만간 재평가 받을지도 모른다. 현재 라이언 존슨이 집필하는 구 공화국 시점의 신규 3부작(10,11,12편)이 2022년 12월, 2024년 12월, 2026년 12월 개봉 예정으로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케빈 파이기가 제작하는 스타워즈 작품 역시 2022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어 동일한 프로젝트로 예상된다.
#9 :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 (EPISODE VII - THE FORCE AWAKENS, 2015)
첨 볼 때는 클래식 느낌이 나서 반가웠다. 다시 보니 [깨어난 포스]는 [에피소드 4·5]을 리뉴얼했을 뿐 아니라 개봉 당시 과대평가보다 실제 완성도가 떨어지고, 의미 없는 서사가 많았다.
물론 당시에는 이러한 구멍들이 차기작을 위한 떡밥으로 간주하고 넘어갔었는데, 라이언 존슨의 8편 [라스트 제다이]이 떡밥 자체를 무시하고, 세계관 자체를 붕괴시키는 바람에 에이브람스가 직접 연출한 9편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 망가진 세계관을 수습하고, 설정 구멍을 막는데 급급하게 되었다.
문득 왜 에이브람스가 ‘떡밥의 제왕’이 되었을까? 가 궁금해진다. ‘쌍제이 특유의 떡밥 투척’은 독창성이 부족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약점을 가리기 위해서다, 맥거핀(떡밥)을 많이 설정해서 재빨리 흥미를 유발하고, 연속된 위기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며 돌려 막기일 뿐이다. 7편과 9편에서 쌍제이의 단점이 크게 부각되는데, 새로운 맥거핀이 파생될 때마다 또 다른 플롯 포인트가 생긴다는 점이다. 무언가 흥미로운 떡밥을 던지긴 하는데 전체적인 흐름은 전진된 게 없다. 게다가 쌍제이가 캐릭터들조차 도구적으로 정보와 아이템을 주는 용도로 쓴다. 아마 데이지 리들리조차도 레이가 어떤 역할인지 잘 몰랐을 것이다. 3편 내내 자꾸 설정이 바뀌니까 말이다. 핀과 포 다메론도 마찬가지다.
디즈니가 안정된 돈벌이를 위해 ‘추억 팔이‘에 안주한 결과, 시리즈로의 신규 관객 유입에 실패한다. 진부한 [시퀄 3부작]으로 스타워즈를 처음 접한 세대들에게 "개연성도 부족하고 재미없는" 시리즈로 받아질 수밖에 없다. '영혼 없는' 팬 무비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시퀄과 프리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깨어난 포스]에서 레이가 모아 온 고물을 수거하는 배급소 주인 '운카 풀럿'은 뚱뚱한 구두쇠 정도로 단편적으로 묘사한다. 반면에 [보이지 않는 관계]의 부품가게 주인으로 나오는 '와토'는 어떤가? 이방인 '콰이곤 진'을 경계하지만 장사치답게 흥정을 건다. 자신의 노예인 아나킨의 포드 레이싱 재능을 인정해서 포드를 제공해준 적이 있으며, 경주 도박을 하기도 한다. 또, 자바 더 헛을 두려워하고, 세불바가 아나킨에게 해코지 못하도록 단속한다.
루카스는 '단역'이라고 해도 그 전후 배경와 상호작용을 미리 설정해둔다.
그렇기에 루카스의 형편없는 연출력에도 불구에도 [스타워즈]가 확장세계관의 선구자로 매김 할 수 있었다. 간과하기 쉽지만, 조지 루카스 세계관과 캐릭터를 설정할때 입체적 사고로 그린다. 거대한 세계관을 창조하려면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언뜻 별 관계가 없는 대상과 우리는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명시적으로 표시되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와 관습이 있지 않은가? 제임스 카메론도 조지 루카스처럼 인류학적·미학적 맥락을 철저히 따진다. 그는 [아바타]를 제작할 때 나비족 언어와 종교, 규범, 문화, 지리까지 미리 설정한 다음에야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6편 [제다이의 귀환]에서 은하 제국이 멸망하고, 들어선 신 은하 공화국이 어떤 과정으로 붕괴되었는지 7편 [깨어난 포스]가 전혀 설명하지 않아서 납득이 가지 않았다. 즉, 정체불명의 퍼스트 오더가 왜 위협적인지를 관객 입장에서 와닿지 않기에 [시퀄 3부작] 내내 ‘긴장감의 부재’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부실한 세계관 구현이 2020년 현재 [시퀄 3부작] 관련 작품보다 이전 [프리퀄 3부작] 혹은 [클래식 3부작]에 기반한 미디어 믹스 및 파생상품이 더 많은 이유다.
#8 : 솔로 : 스타워즈 스토리 (SOLO: A STAR WARS STORY, 2018)
크리스 밀러 & 필 로드의 급작스러운 해고로 말미암아 캐슬린 케네디가 싹 다 갈아엎도록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즈] 간판을 떼고 보면 괜찮은 하이스트 무비다. 다만, 구원투수로 등판한 론 하워드가 산으로 갈 뻔한 작품을 겨우겨우 수습한 티가 난다. 예를 들면, 항공권이 없는 한은 제국군에 의해 수배령이 내려지지만, 정작 제국군 입대 담당관은 그에게 성을 붙여준다. 이렇듯 얼렁뚱땅 넘어가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베테랑 론 하워드가 촉박한 제작 기한 내에서 균열을 최소화했다.
해리슨 포드를 닮지 않은 엘든 이렌리치는 차분하게 연기를 잘했고, 까칠한 드로이드 L3-37과 도널드 글로버의 랜도 칼리시안은 씬 스틸러다. 그럭저럭 즐길만하지만, 애초부터 3부작으로 기획되어서 그런지 속 시원한 기원담을 들려주지 않는다. 꽁꽁 싸맨 채 이야기를 진행시키려다 보니 자꾸만 여타의 SF 영화들이 연상될 뿐 특별한 인상을 안겨주지 못한다. 문제작 [라스트 제다이]의 여파까지 겹치면서 프랜차이즈 최초로 적자 흥행을 기록하게 된다. 이 사단의 원흉인 캐슬린 케네디는 어쩔 수 없이 한 솔로의 속편 계획과 [오비완 케노비], [보바 펫]의 앤솔로지 시리즈를 취소한다.
그러나 [더 만달로리안]에 앞서 시리즈 최초로 '암시장의 밀수와 범죄'를 조명한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 자바 더 핫이 이끄는 핫 카르텔, 코렐리아 행성에서 제국 전함이 건조되는 장면, 우주 공항의 묘사, 코악시움 광산의 묘사, 츄바카와 우키 종족의 묘사 등 [시퀄 3부작]이 등한시했던 세계관 구현에 노력했다.
#7 :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 (EPISODE I - THE PHANTOM MENACE, 1999)
[프리퀄 3부작]의 밑바탕을 깔기 위한 거대한 예고편에 불과하다. 포드 레이스 장면과 다스 몰과의 검투신만 보거나 [보이지 않는 위험]을 통째로 건너뛰더라도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상상력이 결여된 ‘시퀄 3부작’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는 위험]의 세계관 확장이 긍정적인 평가로 돌아섰다. 살다 살다 [프리퀄 3부작]을 응원하는 날이 오다니
무역협상, 분리주의 연합 등 진지한 정치적 담론, 자자 빙크스의 고통스러운 CG 슬랩스틱, 부재한 주인공, 처참한 대사, 느슨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3부작과는 확연히 차별화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바로 로마 공화정이 제국화되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주인공의 결함으로 인해 자신과 주변인이 파멸로 치닫는 셰익스피어리언 비극을 시리즈에 훌륭하게 이식시켰기 때문이다.
또, [클래식 3부작] 과는 이질적이었던 디자인이 클래식의 변영에 지나지 않는 진부한 디자인을 선보인 [시퀄 3부작]으로 말미암아 지금에 와서는 과감한 도전으로 재평가를 받았다.
끝으로 미디클로리언을 통해 '기(氣)'에서 착안한 포스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이 개념으로 노예 신분인 아나킨을 '선택받은 자'로서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8편 이전부터 누구나 포스를 가질 수 있다는 '포스 에브리웨어' 설정은 이미 존재했었다.
#6 :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 (EPISODE II - ATTACK OF THE CLONES, 2002)
[클론의 습격]은 조지 루카스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사와 형편없는 연출, 헤이든 크리스텐슨의 발성 문제가 겹치면서 '역대 최악의 로맨스 영화'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그러나 영화사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100% 디지털 촬영으로 완성된 첫 블록버스터이며, 이 영화를 기점으로 영화 산업은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다와 두쿠 백작의 라이트세이버 결투, 제다이 기사단와 분리주의 연합의 드로이드 간 전투 등으로 액션을 강화했으며, 의회를 장악한 팰버틴 의장이 무역 연합에 대항하고 분리주의자들로부터 은하 공화국을 방어할 목적으로 비상 권한을 부여받는다거나 보바 펫과 클론 트루퍼를 결부 짓는 아이디어 자체는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법이다. 루카스의 탁월한 기획력에 비해([시스의 복수]을 위해 아껴둔) 드라마의 부재를 막을 캐릭터 묘사에 실패하면서 시리즈 사상 가장 지루하다는 혹평을 면치 못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점은, 조지 루카스가 프리퀄을 만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인 '클론 전쟁'의 개전만을 알린다는 점이다. 추후 전쟁의 진행 상황은 [클론 전쟁(2003/2008)]로 대체됐다. 있으나 마나 한 ‘제다이의 결혼 금지 규율’ 따위보다 '클론 전쟁' 자체에 포커스를 뒀다면, [에피소드 1·2]가 이리 허무하게 낭비되지 않았을 터, 무척 안타깝다.
하지만 2편의 숨은 장점은 비극의 단초인 ‘하마르티아(Hamartia)’를 제공했다는 데에 있다. '하마르티아’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화살이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가다’ ‘길을 잃고 헤매다’이지만, 하마르티아는 주인공이 지닌 결함으로, 아나킨은 금혼 계율을 어기고 파드메와 결혼하고, 제다이답지 않게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감행한다. 이것이 아나킨의 하마르티아다. 그의 판단 실수는 '비극'이라는 커다란 기계를 작동시킨다. 마치 브레이크 페달이 고장 나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된 자동차의 결함처럼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2편의 빌드업이 있었기에 3편에서 극적으로 반등할 수 있었던 것이다.
#5 :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 (EPISODE VI - RETURN OF THE JEDI, 1983)
놀란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처럼, 3부작을 마무리 짓는 일은 어렵다. [제다이의 귀환]은 전편 [제국의 역습]이 근사하게 던져놓았던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고, 지금까지 끌어온 시리즈의 결말을 내야 하는 힘겨운 미션이 남아있었다. 그럼 [스타워즈]의 주제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파우스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과 동일하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이 어떻게 타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결국 자신의 구원을 가능케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제다이의 귀환]라는 제목은 아나킨이 메피스토펠레스(팰 버틴)을 원자로에 던져버리며, 인간성을 회복하는 걸 의미한다. 가면을 벗어던지고 아들의 얼굴을 마주함으로써 부자간의 화해가 이뤄진다. 여기서 그리스 비극과 [스타워즈]의 차이점이 발견한다. 그리스 비극은 신이 정한 운명론에 의존하지만, 팰버틴에게 끌려다니던 다스 베이더가 자신의 의지로 다시금 아나킨 스카이워커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타락한 영웅이 스스로 선택해서 악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바로 '포스의 균형'이다.
더욱이 6편은 분명히 4편 [새로운 희망]의 아이디어를 재탕하고, 인물 간의 갈등구조가 할리우드 영화답게 안전하다.
그것이야말로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게 [배트맨 비긴즈]을 참고하라는 교훈으로 받아졌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제다이의 귀환]는 클래식 3부작이 남긴 수많은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무용담을 장중하고 우아하게 마무리했다. 이후 루크와 레아를 중심으로 레전드 확장 세계관(EU)이 진행되고, 팬들로 하여금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악당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뒤에 팬들의 소원은 마침내 이뤄진다.
#4 : 로그 원 : 스타워즈 스토리 (ROGUE ONE: A STAR WARS STORY, 2016)
드디어 디즈니 스타워즈가 재탕을 멈추고, [스타워즈]의 감춰진 이면을 파헤친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저항군 특공대들의 희생을 다룬다. 원래 [스타워즈] 자체가 제2차 대전 전쟁 영화들에게서 착안한 작품이었다. 은하제국 군복은 나치 독일과 매우 유사하며, 저항군은 연합 군을 연상시키지 않은가? [로그 원]은 한발 더 나아가 ‘레지스탕스‘의 이미지를 덧입힌다.
다시 말해 스타워즈 특유의 유치한 가족영화의 틀을 버리고, 본래 스타워즈 세계관에 지니고 있던 2차 대전 특공대를 내세운다. 그러면서도 [스타워즈 6부작]과 연결성을 중시한다. 무엇보다 가렛 에드워즈의 장단점이 다 발휘됐다. 무미건조한 캐릭터 구축과 초반부의 산만한 드라마가 아쉽지만, 스펙터클하게 규모를 살리는 연출이나 사실성을 강조한 서사구조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요즘 미드 [만달로디안]가 호평을 받는 이유는 [로그 원]과 동일하다. 기존 스타워즈 설정을 존중하면서도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참신한 시도가 병행되었다는 점이 성공 비결이다.
#3 :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 (EPISODE III - REVENGE OF THE SITH, 2005)
조지 루카스의 여전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이야기의 본질에 다가선다. 아나킨은 한 개인이 막을 수 없는 불행이 연달아 닥치며 타락하게 되고, 공화국 역시 멸망하게 되고,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가지게 한다. [프리퀄 3부작]을 통해 ‘제다이 vs 시스’로 세계관이 확장하게 되면서 클래식 3부작의 ‘부자간의 골육상잔'은 수 천 년간 이어진 제다이와 시스의 대립 중 하나로 재정립한다.
시스 로드인 황제가 제다이 기사단의 '선택받은 자'를 회유하며 시스의 복수를 완성한다. 스타워즈 팬들은 아니킨 스카이워커가 다스 베이더가 되는 결말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창시자가 새롭게 공개한 사실들에 놀람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스승과 제자의 처절한 혈투는 물론이고, 요다가 황제 암살에 실패하면서 은거한다거나 오더 66에 의한 제다이 기사단이 몰락하고, C3P3와 R2D2가 기억을 잃는 과정, 오비완이 포스의 영이 되는 법을 요다에게 전수해준다거나 파드메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들쑥날쑥한 [프리퀄 3부작]을 매끄럽게 마무리하면서도 [클래식 3부작]에서 빠진 빈틈을 세심하게 메웠다.
또, 시리즈 최초의 배드 엔딩에도 불구하고, 라이트 세이버가 누군가에 전해지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다. 서사와 액션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 유일한 스타워즈 작품이며, 밝고 유쾌한 [클래식 3부작]과는 180도 다른 어둡고 진지한 [프리퀄 3부작]을 성공적으로 완결 지었다.
만약 ‘현자 다스 플레이거스의 비극’이 없었다면 9편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의 황제 클론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될 만큼 확장 세계관과 캐릭터 정립에 큰 기여를 한 작품이다.
#2 :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 (EPISODE IV - A NEW HOPE, 1977)
대중문화를 영원히 바꾼 영화다. 처음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정의 내리고, '콘텐츠 산업'으로의 패러다임을 바꿔, 부가상품을 대중화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영화산업 역시 [스타워즈]를 기점으로 현실의 영역에서 ‘판타지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국내에서 [스타워즈]가 유치하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그러하다. 원래 조지 루카스가 어릴 적 즐겨본 코믹스 [플래시 고든], 구로사와 아키라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1958)], 조지프 캠벨의 원형 신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동양의 '기(氣)' 개념을 서양식으로 재해석한 포스 등의 철학적 우화, 전쟁영화, 갱스터, 호러, 뮤지컬, 서부극의 요소를 섞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가족영화이자 밝고 경쾌한 어드벤처 SF 영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복합장르 전략은 이후 영화 제작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스타워즈]는 조지프 캠벨의 원형 신화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칼로 총알(빔)을 막거나 우주가 배경인데 18세기 라인 배틀을 펼치는 광경이 의아할 것이다. 이는 시대와 문화권에 구애받지 않는 원형 신화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5편부터 '다스 베이더'를 그리스 비극처럼 그리면서 시리즈로써 환골탈태한다. 이때부터 할리우드 극작술에 '원형 신화'가 도입된다.
#1 :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 (EPISODE V - THE EMPIRE STRIKES BACK, 1980)
루소 형제의 말마따나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이 관객의 예상과 기대를 배반한 용기는 [제국의 역습]에서 배웠다. 당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모두 "도대체 뭘 본 거지?" 싶었다고 한다. 악에게 패배한 주인공, 어긋난 로맨스, 새드 엔딩은 상업영화의 오래된 금기들이었다.
전편 [새로운 희망]이 한 편의 독립된 영화로서 완결성을 갖춘 반면에 [제국의 역습]은 어떻게 이야기를 확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선례로 여전히 남아있다. 스타워즈 9부작의 밑그림은 여기서 출발했다. 한편 팬들은 [새로운 희망]과 [제국의 역습] 사이의 설정 구멍을 메우며 [확장 세계관 (EU)]를 만들고 놀았다. 바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기원’인 것이다, 이것이 ‘스타워즈’를 신화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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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찰라와는 달랐던 슈리의 블랙 팬서
아수라장
오래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걸. 의지하고 있었다.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 슈리는 어느 때와 다름없는 큰 빈자리를 체감하고 있다. 오빠 트찰라는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었다. 좋은 오빠였고 멘토였으며 훌륭한 국왕이었다. 그리고 둘도 없는 슈퍼히어로였다. 타노스와의 전투 이후에 병이 생겨 건강이 위독해진 것이 계기가 됐다. 온갖 방식으로 발달한 와칸다의 기술이었지만 트찰라의 병을 치료하는 건 불가능했다. 좌절하는 슈리. 블랙 팬서는 현재 공석이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에 왕이 두 명이나 세상을 떠났다. 빈자리인 국왕은 슈리의 어머니 라몬다가 통치하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라몬다의 등장에 혼란스러운 와칸다. 와칸다에는 비브라늄이라는 특수 물질이 있다. 혼란스러운 와칸다를 공략해 비브라늄의 활용법에 제약을 두고 싶어 하지만 온 세상의 간섭을 피하는 건 사실 현실적으로 어렵다. UN 청문회장에 불려 나가 와칸다에 간섭하지 말라고 맞서는 라몬다. 내외적으로 빗발치는 침략 시도에 와칸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날의 저녁에 이르렀다. 비브라늄 채굴선이 대서양에 갑자기 덩그러니 나타났다. 채굴선에서 두 사람이 배에서 내린다. 잠수복을 입고 비브라늄 근처로 다가가는 두 사람. 갑자기 두 사람의 연락이 끊긴다. 무슨 일이지? 두 사람과 교신하려뎐 채굴선. 채굴선은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 채굴선에 정체불명의 굉음이 들려온다. 귀를 막는 채굴선 안의 사람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자기 발로 직접 바다에 빠진다. 끔찍한 광경. 채굴선의 책임자였던 두 사람은 헬기로 탈출 계획을 세운다. 헬기가 이륙해 공중에 떴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가 튀어 오르더니 헬기를 집어던져 바다에 빠트렸다. 수십 명이 바다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소식을 듣는 에버렛 로스. 와칸다와 직접 접촉해서 무슨 일이지 묻는다. 당연히 바다 위의 살인사건은 와칸다와 관련이 없다. 그럼 뭐가 문제지? 에버렛 로스와 슈리, 라몬다는 비브라늄을 갖고 대립을 벌이는 집단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집단의 위치는 땅 아래 바다였다. 터전인 발로칸에 비브라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수장 네이머는 터전을 지키기 위해 미국인 과학자, 리리 윌리엄스를 찾고 있었다. 와칸다와 네이머는 이 과학자의 거취, 그리고 나라를 지도하는 방향성에 대해 대립하며 전투를 벌인다. 과연 슈리와 라몬다는 와칸다를 지킬 수 있을까?
벌써 11월
올해 개봉한 세 번째 마블 영화다. 작년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의 두 번째 쿠키영상을 보고 '오오' 하던 때가 어느새 1년이 지났다. 5월에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마지막으로 이번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가 이번 22년을 장식한다. 사실 올해 마블의 타율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 저번 <토르 : 러브 앤 썬더>의 평가가 좀 많이 별로였다. 글쓴이의 기억 상으로 마블에서 '스피드 쿠폰' 같이 선착순 할인 이벤트를 연 적이 없다. 아마 <토르 : 러브 앤 썬더>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에서도 알 수 있듯 마블의 타율은 솔직히 최근 들어서 많이 낮은 편이다. 체감상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이 없다. 특히 이 낮은 평가는 드라마에서 더 명확해진다. <미즈 마블>은 3화 보고 접었다. 왜냐하면 이 이 히어로가 다른 슈퍼히어로와의 차별성이 그렇게 안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드라마 <변호사 쉬헐크>는 초중반까지 쭉 잘 만들다가 엔딩에서 전부 부숴 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데어데블’을 가볍게 만든 것 까지는 좋다. 그런데 엔딩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주제 ‘헐크의 거취’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헛스윙이었다. 마블의 헛스윙은 왠지 글쓴이만 느끼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블랙 위도우>는 엔딩을 알고 영화를 본다는 한계, <샹치 : 텐 링즈의 전설>과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빌런의 존재감이 컸던 것, <토르 : 러브 앤 썬더>는 ‘뇌절’의 향연이었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완다비전>과 <로키> <문나이트> <호크아이>가 좋은 평을 받긴 했지만 이 드라마들이 마블의 악평을 덮어주지는 못했다.
이 정도면 괜찮았지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의 MCU는 무엇을 목표로 생각하고 만드는지 잘 모르겠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는 스릴러와 전쟁영웅, 시간여행이라는 뚜렷한 키워드가 있었다. <아이언맨> 시리즈는 전쟁 무기 매출 업자의 개과천선이라는 것, <스파이더맨>은 소년 히어로 피터 파커의 성장담 등등. 잘하고 있던 굳이 반복시켜 지루하게 만드는 선택이나 ‘히어로를 조명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건가’ 싶은 것들이 과거의 명성에 누가 되고 있다. 최근 <블랙 아담>에 대한 호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액션 신에서 더 락의 캐릭터를 잘 살릴 만큼 좋은 묘사가 들어갔다는 칭찬이 적지 않았다.
이런 지점에서 이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는 글쓴이의 생각에 선택과 집중이 잘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전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포스터에서 대놓고 스포 하고 있듯) 슈리가 어떻게 블랙 팬서를 승계하냐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부터 트찰라를 떠나보낸 슈리의 감정연기에 힘을 주고 시작한다. 이 감정선은 진중한 영화의 톤에 힘이 실리며 엔딩부까지 이르러 진한 감정적인 여운을 남기는데 효과적이다. 이 처음부터 엔딩까지의 단적인 장면 연출뿐만 아니라 요소요소마다 슈리가 어떤 계기 때문에 블랙 팬서가 됐고, 네이머와의 차별점은 어느 지점에서 생기는가? 는 극에서 대놓고 임팩트를 주고 있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 전반적으로 유럽인들의 아프리카 침략에 대해 감독 라이언 쿠글러가 코멘트하는 듯한 느낌도 있다. 뾰족하게 다가오는 것이 없는 것 같았던 마블의 영화들과는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훨씬 더 진중해진 느낌?
가볍지 않은 분위기
이 진중해진 분위기에는 슈리, 라몬다, 네이머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두드러진다. 물론 나머지 배우들도 연기는 다들 잘했지만 이 세 배우의 호연은 어마어마하다. 먼저 슈리 역을 맡은 레티샤 테이트는 깊은 감정연기를 보여줬다. 초반부 트찰라와의 이별 직전 받아들일 수 없어 애써 부정하는 모습을 기점 찍고 영화의 중심 서사인 슈리의 성장기를 무리 없이 전개한다. 이 인물에게 가장 중요했던 정서는 혼란과 분노다. 후자는 영화에서 후반부에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쓰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분노가 글쓴이 입장에서 선명하게 느꼈던 점은 레티샤 테이트가 감정연기를 능수능란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극에서 이 사람이 화를 내야 할 이유가 명확하니 이게 다른 블랙 팬서와의 차이점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초대 블랙 팬서의 부재라는 안타까운 상황에 누가 되지 않는 가볍지 않은 템포가 필요했다. 영화는 이를 슈리의 연기로 메꾼다. 혼란이라는 정서는 후반부의 분노와도 연관이 있다. 내가 블랙 팬서를 승계받아도 되는지. '미국인 과학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와칸다는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같은 실존적인 고민을 러닝타임 동안 반복하다 후반부에 감정을 터트린다.
또 슈리의 어머니 역을 맡은 라몬다의 연기도 훌륭했다. 라몬다는 사실 모순된 과제를 안고 있다. 평화를 유지하고 싶어 하면서 네이머는 견제한다. 혼자 남은 유일한 가족 슈리를 지키고 싶어 하지만 그녀가 블랙 팬서를 승계하길 원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여러 역할과 갈등 사이에서 단단하게 버텨야 하는 라몬다. 단단하게 버틸 땐 믿음직스럽게,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무너져 내릴 때는 무너지는 감정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극에서 중후반부까지 굉장히 중요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주요 터닝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강약 조절의 능수능란함으로 러닝타임을 돌파한다. MCU의 조연들 중에서 이 영화의 라몬다를 기억할 분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네이머 캐릭터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이 캐릭터가 영화화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극에서 중용될 것이며, 후에 어벤저스의 일원이 될 수도 있지만 뒤통수 칠 여지도 있다는 걸 캐릭터의 퍼포먼스로 보여준다. 액션 연기도 후술하겠지만 슈리 쪽이 아쉬운 부분이 큰 반면에 네이머의 전투는 시원시원한 맛이 있어 좋다. 상의 탈의한 캐릭터의 콘셉트도 이를 덧붙이는 좋은 설정이었다.
색다른 블랙 팬서
그러나 이러나저러나 해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블랙 팬서'의 재해석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어떻게 그녀가 슈퍼히어로가 됐는지를 조명하고 있다. 이는 전 블랙 팬서 채드윅 보스먼이 맡았던 트찰라는 너무 숭고한 존재였다. 제모 남작이 아버지를 살해했지만 정작 남작을 죽이지는 않았다. 이는 인피니티 사가에서 캐릭터들이 맡았던 희생과도 연관이 있다. 아이언맨은 결국 버키의 행방을 끝까지 찾지 않았고, 캡틴 아메리카는 자기 삶을 포기해 전설적인 군인이 됐으며 토르는 아스가르드를 지키려다가 가족들을 잃었다. 블랙 위도우는 타노스를 제지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던졌다. 이런 맥락에서 트찰라가 왜 어벤저스의 일원이 됐는지를 설명하는 공통점이 됐다. 어찌 보면 다 비슷비슷한 사건 같은데 캐릭터만의 개성이 살았던 이유도 이런 섬세한 설정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인피니티 사가 이후 MCU는 다른 방식으로 히어로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는 더 특별하다. 트찰라가 했던 희생을 어느 정도는 승계하며 반대 측면에서 슈리의 분노를 구석구석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 '블랙 팬서'의 차후 행보에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감정적으로 슈리가 어떤 상태인지 설명하는 영화의 수는 유효했다. 이 설명을 위해 전편의 설정을 갖고 오는데, 입체적인 캐릭터 설정을 위한 좋은 차용이었다고 생각한다. 네이머와의 공통점도 부각하면서 이를 뒤집는 반대 기능도 실현한다. 어느 정도는 '토니 스타크'가 생각나는 인물의 감정선이었다.
팥이 별로 없는 찐빵
그렇게 드라마를 잘 충족한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단점은 있다. 영화에서 액션이 약하다는 것은 분명히 단점으로 작용할 것 같다. 드라마를 보고 가서 좋았다는 것은 글쓴이 입장이다. 기존에 마블(을 비롯한)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분들 중 화려한 액션 연기를 기대하고 가시는 분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장르적인 특성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 슈리의 액션은 낙폭이 크다. 멋있을 땐 검은색의 색감과 함께 빠른 톤으로 액션을 보여준다. 이는 최후반부 가장 마지막 전투에서 두드러진다. 영화의 가치 중 1/5를 차지한다고 생각할 정도다. 얼핏 보면 이게 가능한가? 싶은 액션이 이 사람의 몸 쓰는 방식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영화 내내 이런 액션만 반복되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이라이트 신의 초반부, 어떤 장소에서 아크로바틱 하게 몸을 움직이며 전투를 한다. 여기서 몸은 유연한데 카메라는 그렇지 못하다. 이 각도에서 찍고 저 각도에서 찍어서 계속 흔들린다. 편집의 템포도 살짝씩 끊긴다. 이러다 보니 감독이 분명히 장르적인 특성을 부여하기 위해 액션 시퀀스를 넣었을 텐데 전투 신만 나오면 정신없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이는 슈리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코예와 와칸다 군인들에게도 성립하는 이야기다. <캡틴 아메리카>의 루소 형제가 이 액션을 맡았다면 훨씬 더 멋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아쉬움은 '리리 윌리엄스'라는 캐릭터에게도 이어진다. 리리 윌리엄스가 등장하는 계기나 캐릭터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살짝 생각해보면 이 인물이 굉장한 트롤링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글쓴이는 리리에게 잘못이 없다고 본다. 가령 내가 우리가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해보자. 내가 쓰는 글이 어느 나라 정부의 허점을 찌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걸 의도하고 쓸 수는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 불가능하다. 또 이 인물의 거취가 어떤 사람의 입장과 큰 관련이 있다는 부분은 절대 그냥 만든 점이 아닐 것이다. 이 인물관계는 또 다른 영화의 키워드인 '과거 유럽인들의 식민지배'와도 연관이 있으니 기능적으로 캐릭터를 설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리리 윌리엄스'와 관련한 큰 단점은 슈트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난 모르겠다. 너무 전형적인 슈퍼히어로처럼 만들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인물이 슈트를 입고 하는 행동이 멋이 없다. 판은 잘 깔아줬는데 이상한 시각화 때문에 히어로의 이미지 전달에 어느 정도 손해를 보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사람이 왜 등장했는지는 기억에 남았는데 '아이언 하트'의 비주얼은 전혀 기억에 남지 않았다.
또 부분 부분 시각화에서 아쉬운 부분이 돋보인다. 위 문단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시각화가 강점으로 작용한 부분은 있다. 바로 와칸다와 발로칸의 시각화다. 와칸다의 시각화는 이미 전작에서 묘사가 됐다. <블랙 팬서>와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에서 볼 수 있던 와칸다 묘사가 이번 영화에서 더 업그레이드된 채로 묘사된다. 와칸다는 문명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경한 나라다. 이를 섬세한 방식으로 빼놓지 않게 구현해서 슈리의 활동이 어색하지 않게 보여준다. 반대로 발로칸의 묘사도 훌륭했다. 해양 도시 발로칸. 바닷속에 생긴 왕국은 얼핏 보면 식상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왕관 묘사나 거기 사는 사람들의 집 터나 하나하나 사실적으로 설계를 짜서 구현한 티가 난다. <아바타> 시리즈의 네이티리 족이 사는 곳이 생각나는 묘사다. 물론 바다와 육지라는 공간적 배경이 대비되기는 하지만 익숙한 것에서 살짝만 틀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생길 것이다. 이 영화를 지루하다고 볼 분들은 많을 것이다. 어느 정도 그런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발로칸 묘사 하나만큼은 많은 분들의 머릿속에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전체적으로 파란색 톤으로 빼면서도 그 안에 있는 세부적인 장치들, 요소들을 주제적인 것과 잘 어울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각화에서 아쉬운 것을 빼먹을 수 없다. 가령 슈리는 극에서 와칸다 산 비행기를 여러 번 탄다. 당연히 극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이 비행기를 탈 때 굉장히 어색하다. 잘 만들어진 긴장감이 깨질 정도다. 이는 많은 분들이 완성도로 지적할 만큼 조악하다. 또 초반부 트찰라가 사망하고 시체가 운구되는 신이 있다. 여기서도 트찰라의 관이 너무 지나치게 클로즈업되어있어서 이질감이 크다. 아이언 하트가 슈트를 입고 전투하는 신이 있다. 여기에 <아이언맨>의 삽입곡이 쓰이면서 토니 스타크를 오마주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슈트 퀄리티는 절망적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아이언맨을 좋아하는 분들이 불쾌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단순히 컴퓨터를 이용한 시각화만 문제인 건 아니다. 물리적으로도 구현할 수 있는 시각화도 아쉬웠다. 단 한 부분에서. 바로 슈리의 체형이다. 슈리가 너무 말랐다. 액션 할 때는 그게 티가 잘 안 나지만 와칸다를 지휘할 때는 단점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는다. 라몬다나 트찰라, 음바쿠는 큰 체구로 보이는데 슈리는 그 반대다. 슈퍼파워가 없었다면 블랙 팬서 라고 느끼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느 정도 벌크업을 생각하고 영화를 찍을 수는 없었던 걸까? 감독의 선택에 아쉬움이 생긴다.
좋은 영화
아마 이 영화를 좋게 평가할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최근 마블의 아쉬운 행보 속에서 국면전환을 시킬 만큼 잘 만든 영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액션이 부실하다는 건 또 다른 단점이 될 수밖에 없다. 드라마적으로 잘 만들었기 때문에 부분 부분 보이는 슬로우모션은 영화를 더더욱 아쉽게 만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올해 개봉했던 마블의 영화들 중에서든 돋보이며 입체적인 슈퍼히어로가 나왔다는 점은 분명하게 주장(?)하고 싶다. 이 히어로는 우리가 알던 히어로들과는 아주 살짝 다르다. 또 시각화가 아쉽긴 하지만 강점으로 발현되는 부분은 엄청나다. <아바타 : 물의 길>을 앞두고 CG 맛보기를 하고 싶다면 이 영화도 좋은 선택이다. 아. 이 영화가 이렇게 아름다운 시각화를 보여주기 위해서 차용한 영화가 몇 편 있다. 글쓴이는 <문라이트>라고 생각했고 같이 갔던 일행은 <아바타>라고 느꼈다. 이 영화들에서 사용했던 연출이나 시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또 영화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방식도 마냥 깊지는 않았지만 옅지도 않았다는 문장을 쓰고 싶다. 페이즈 4가 되고 나서 개봉했던 마블 영화들 중에서는 가장 탄탄한 이야기를 구성한 느낌이다. 풍부한 이야기를 시도해서 하고 싶은 것을 전달하는 데에는 좋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는 그런 영화였다. 아. 쿠키 영상 엄청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꼭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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