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좋아하는 콘텐츠가 생기면, 본 방송을 보고, OTT 플랫폼에서 또 보고, 메이킹영상까지 찾아보게 되는 적극적인 콘텐츠소비자입니다. 저 장면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촬영할 때는 어떤 분위기일까? 완성된 장면 뒤 편, 제작 현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궁금해집니다. 종영한 지 한 달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N차 관람을 하고 있는 <선재 업고 튀어>의 메이킹 영상이 본 방송의 조회수보다 10배가 넘는 것을 보며, 나만 촬영 현장이 궁금했던 게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했어요.
메이킹 영상을 보면 대체로 배우와 감독님 외에는 대부분 블러 처리가 되어 있더라구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극의 완성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의상을 매만져 주고, 분장을 다시 하고, 소품을 배치하고, 커다란 장비를 들고,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기 위해 백여 명의 스태프들이 일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카메라 뒤에서 열심히 영상을 만드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저는 이전에 방송사 PD로 일했지만, 보통 교양프로그램을 연출할 때는 카메라 감독님 그리고 어시스턴트 이렇게 카메라 하나에 촬영팀은 두 명이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는 조금 다르더라구요. 오늘은 누구나 알만한 작품의 카메라팀 막내로 시작해 차근 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형정훈 카메라 감독님을 만나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형정훈 감독님 ! 어떤 작품을 해오셨는지 궁금해요.
A. 여러분들이 아실만 한 작품은 처음에 OCN의 <다크홀>이라는 드라마의 촬영팀으로 시작했고, tvN의 <배드 앤 크레이지> 넷플릭스 <더 글로리><마당이 있는 집> 그리고 최근에 <유괴의 날> 까지 촬영팀을 하고 또 이제 방영 예정 작품은 <중증 외상센터>라는 작품을 최근에 마쳤습니다.
Q. <더 글로리>가 필모그래피라니 대단하시네요. 실제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A. <더 글로리>의 경우 사전제작으로 진행이 되어서 끝냈을 당시에는 분위기를 몰랐어요. 방영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모든 스태프가 ‘이건 잘 될거다’, 잘 될 수 밖에 없다’라는 마음이 있었고 끝나고 뒤풀이 당시 김은숙 작가님이 자리에 오셨는데, 스태프들에게 ‘ 이 작품은 자신 있다. 여러분들에게 하이커리어가 될 거다’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며 ‘아 이건 정말 기대할 만한 작품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저에게도 정말 좋은 하이커리어가 되었구요.
Q. 촬영팀의 ‘워크플로’가 궁금해요!
A. 메인 감독님이 계시고, 카메라를 2대를 운용을 해요. 메인 카메라와 B 카메라를 운용 하는데 카메라별로 포커스 풀러, 세컨드, 써드 막내까지! 총 10명이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Q. 카메라 한 대에 5명의 스태프가 있는 거군요. 그럼, 현재 형정훈님의 촬영팀 포지션은 무엇인가요?
A. 첫 작품이 2020년부터 시작했으니까, 햇수로는 올해로 5년 차가 되었고 일한 기간으로는 4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첫 작품을 막내로 시작했고, <더 글로리>도 막내로 일했어요. <마당이 있는 집> 부터는 써드 역할을 하고, 최근에 들어간 작품까지도 써드로 역할을 끝냈습니다. 근데 다음에 들어가는 작품은 세컨이라는 포지션으로 일을 할 예정입니다.
Q. 마치 직장에서 승진하는 것 같은 느낌일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작품 수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포지션이 올라가나요?
A. 보통이라고 하면, 제가 막내에서 써드까지 간 과정이 가장 이상적인데요. 한두 작품에서 세 작품? 근데 이제 사람마다 다른 게, 결국에는 그 사람의 능력이 되어야지만 올라갈 수 있는 거라서 ‘작품 수로 꼭 올라갈 수 있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작품 수가 적어도 본인의 능력이 되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고, 또 위에 자리가 있어야만 올라갈 수 있는 거니까 본인이 판단하는 능력도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팀별로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직(팀 이동) 같은 것도 생각할 수도 있는 거구요.
Q. 본인이 다음 포지션을 갈 준비가 되었다,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군요.
A. 네, 저는 이 나이쯤에 이렇다, 저렇다 남들을 기준으로 생각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늘 올라가고 싶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하는 일에 안정됐다고 생각하고 이 자리에서만 이 포지션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하면 사람이 발전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저는 항상 위에 자리를 위해서 노력했는데 감독님들이나 상사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남들보다는 적은 경력으로 감사하게 올라갈 수 있었던 것 같은데…(웃음)
Q. 혹시 막내 시절을 못 견디고 그만두시는 분들도 많나요?
A. 오히려 막내나 써드까지는 모두가 열심히 하려고 하고, 이 길에 대해서 본인이 생각이 있기에 일을 시작하는 것 같아서 거의 한두 작품하고 ‘이건 아닌 것 같아’하고 그만두는 분은 못 봤는데, 오히려 위의 포지션을 갔을 때 체력적인 한계나 본인의 한계에 부딪혀서 그만두는 사람은 봤던 것 같아요.
Q. 필모그래피를 보면 쉬지 않고 작품을 하신 것 같아요.
A. 가장 큰 영향은 촬영 감독님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희는 프리랜서고,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게 아니거든요. 촬영 감독님이 운영하는 촬영팀에 속해 있는데, 촬영 감독님이 작품이 들어와야만 저희도 일을 하는 시스템이 대부분이에요. 만약 촬영 감독님이 작품이 없다면 저희 팀이 다른 감독님을 찾아서 일을 하는 경우는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희는 함께 하는 감독님이 작품을 계속 찍는 분이셔서, 운 좋게 지금까지 많이 작품을 찍은 것 같습니다.
Q. 포지션을 올리기 위해서 팀을 옮기기도 하고, 팀이 함께 촬영 감독님을 찾기도 하는 게 흥미로운데요. 그럼, 촬영팀은 어떤 소속인거죠?
A.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제가 tvN 드라마를 하면 ‘너는 tvN 소속이냐’라고 물어보시는 분이 많거든요. 방송사 소속인지, 제작사 소속인지 많이 여쭤보시는데, 사실 계약은 프리랜서로 1:1로 계약해요. 저희가 감독님한테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제작사에 급여를 받는 거죠. 한 명 한 명이 다 프리랜서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래서 작품이 끝나면, 사실 저희한테는 암묵적으로 팀이라는 게 있지만, 이 팀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무도 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 부분은 팀별로 상황이 조금씩 다르기도 합니다.
Q. 개인으로 일하지만, 팀과의 관계도 중요하겠어요. 자유로움 속 불안함은 없으신가요?
A. 그렇죠. 있죠. 좀 고정적이지 않다고 해야 하나? 물론 수입은 내려놓을 순 없는 부분인 것 같은데, 저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촬영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흔히 말하는 업계에 평균적인 금액도 전혀 모르고 시작했거든요. 내가 보는 TV 속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내가 참여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돈에 흔들리지 않고 작품과 촬영에 쫓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매번.
Q. 업계의 평균적인 금액을 모르고 시작하셨다구요. 그야말로 열정으로 일에 뛰어들었는데 혹시 첫 작품의 페이를 여쭈어봐도 괜찮을까요?
A. 다행히 업계 평균 금액보다 조금 잘 받았던 것 같아요. 일을 시작할 땐 몰랐는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 알게 된 케이스예요. 대부분 지금 막내 하루 페이가 회차당 20만 원으로 측정이 되는데 제가 일했을 당시에는 18만 원? 17만 5천 원? 이 금액으로 받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저는 그때 20만 원을 받았어요. 근데 그땐 몰랐죠. 지금 생각해 보니 감사한 일이네요. (웃음)
Q. TV 속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내가 참여하면 어떨까? 하고 마음을 먹고 처음 촬영팀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바로 실행해 보기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A. 제가 군대 전역을 하고, 학교 복학을 해서 제 작품을 하나 찍었는데 부끄럽긴 한데, 저는 제가 촬영을 제일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웃음) 그래서 ‘아 나는 이제 배울 게 없다. 뽐내기만 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때 당시 코로나 시절로 힘든 상황이었는데, 저희가 찍게 될 작품이 울산국제영화제에서 제작 지원을 받았죠. 힘든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을 텐데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니까 정말 제 꿈을 펼칠 기회가 생긴 거죠. 그래서 그 당시에 ‘RED’라는 카메라를 이용해서 스테디캠도 제가 직접 해보고,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고, 결과물이 울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이 되었는데,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웃음). ‘아, 내가 나를 정말 과대평가했구나, 난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가(대학교) 3학년이 끝났을 때였거든요. 마지막 제 졸업 작품이 1년이 남은 거죠. ‘아 이 졸업 작품마저 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찍게 된다면 정말 후회할 것 같다.’ 싶어서 휴학하고 촬영팀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배우려고 드라마 팀에 들어간 거죠.
Q. 배우기 위해 실전에 뛰어들었군요. 그때가 코로나19였는데요. 촬영팀에는 어떻게 들어갔나요?
A. 사실 밖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그 당시가 황금기’였어요. 작품이 너무 많은데 사람이 없어서 아무나 해도 할 수 있을 정도의 느낌이었거든요. 만나서 하는 면접이 아니라 수기로 하는 면접이었구요. “그러면 다음다음 주부터 출근이 가능하세요?”라는 연락이 와서 좀 의아했죠. 저도. ‘ 어?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내가 일을 시작해도 되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덕분에 그래도 좋은 기회가 되었죠.
Q. 얼굴 한번 보지 않고, 바로 실무를 하게 되었는데 두렵진 않았나요?
A.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은 것도 있고, 그래도 학교에서 촬영팀을 계속했었으니까, 물론 긴장은 했지만 ‘난 잘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일을 했던 것 같아요.
자신을 믿고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촬영팀 형정훈님이 코로나19에 대면 면접도 없이 촬영 감독에 합격하고, 페이도 모른 채 일을 시작한 이야기가 정말 흥미로웠어요.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 5년 차에 세컨드이라는 포지션에 오르신 것도 너무 대단한 것 같구요. 오늘은 실제 OTT 드라마 촬영팀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셨는데요.
다음 주에는 촬영 공부에 도움이 되는 영화, 촬영 감독이 가져야 할 자세와 태도, 그리고 촬영 감독을 하기 위해 어떤 것을 준비했는지 들어보려고 해요. 촬영 감독님들은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나요? 형정훈 감독님의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 드릴 다음 주 콘텐츠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
촬영팀 형정훈님의 인터뷰 영상은, [여기]서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