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2021-03-12 00:00:00
[넷플릭스] [결말포함 해석 스포] 그레이스 [Alias Grace] 캐나다 드라마 vs 퀵샌드 : 나의 다정한 마야 [Quicksand] 스웨덴 드라마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지인의 추천으로 그레이스를 보고, 몰입감 높은 드라마에 대한 열망에 이런저런 작품을 기웃거리다 아껴놓은 작품 중 하나인 퀵샌드를 보게 되었다.
보통은 한 작품 정리해 놓지만, 이 두 작품은 함께 정리하고 싶은 내용이 많아서 묶어서 올린다.
그레이스와 퀵샌드는 모두 살인범으로 몰린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래서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비슷한 듯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를 깊게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앞으로 작성될 글에는 결말과 개인적인 작품 해석이 들어갈 예정)
살인죄로 복역 중인 그레이스에게 한 정신과 의사가 찾아온다. 의사가 그레이스를 찾은 이유는 한 남자에게 그레이스가 풀려날 수 있게 정신감정을 내려 달라는 부탁 비슷한 압력을 받았기 때문. 하지만 의사는 어떤 편견도 없이 그레이스를 상담하기 시작한다. 그레이스는 그 의사에게 자신의 불후했던 과거를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한다.
드라마를 보는 이들은 의사와 함께 그레이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성추행과 학대, 가장 친밀했던 처음 사귄 친구의 죽음까지. 의사는 그레이스가 선량한 피해자이기를 바라지만, 그레이스의 작은 행동과 이야기 속에서 그녀가 선량한 피해자가 아닐 수 있다는 찜찜함을 지울 수가 없다. 나 역시 주인공인 그레이스가 선량한 피해자이기를 원했지만 그녀가 의사를 통제하려는 행동과 모든 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유리하게 전하는 과정에서 그녀에 대한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불행을 이야기하며 동정심을 얻는 한편, 죽은 친구의 이야기를 하며 자신 안에 그 친구의 영혼이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를 자꾸 흘린다. 마치 자신이 살인을 했을 수 있지만 그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레이스는 선량한 사람이 아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레이스가 살인에 동조했을 것이라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봤다. 그저 시대가 만들어낸 희생양인가, 아니면 소시오패스인가가 작품을 보는 내내 나의 관심사였다.
그레이스에 대한 의심의 씨앗은 그녀의 가정에 있었다. 그레이스는 아버지 손에 팔려 한 귀족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에게는 동생들이 있었는데, 그레이스는 자신이 떠나고 가족을 돌보게 될 여동생을 걱정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레이스가 동생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친구가 그레이스에게 "네가 돈을 보내봤자, 아버지가 그 돈을 탕진할 거야. 동생들은 돈을 받을 수 없어"라고 말하고, 그레이스는 마치 그런 말을 기다렸다는 듯 자신이 번 돈을 집으로 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뒤로도 동생들을 걱정한다거나, 동생들을 찾아가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학대받았던 소녀가 집에 동생이라는 인질이 있는데, 이렇게 대쪽같이 학대자인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을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그레이스와 엮였던 사람들은 그녀의 미모에 가려진 악랄함을 말한다. 그레이스의 말도 믿지 않았지만 그들의 말도 의심했던 내가 마지막 화를 보고 나서야 그들의 말을 반쯤 믿게 되었다. 그레이스가 자신은 타인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준다고 한 것. 그렇다면 의사에게 했던 말들은 그레이스가 선량한 사람이길 바랐던 그의 바람을 이야기했던 것이 된다.
그렇다면 살인 공범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또 다른 여인 마야는 어떤 사람일까?
앞에 몇 신을 놓친다면 퀵샌드는 로맨스 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다. 재벌집 소년의 사랑 고백을 받은 사랑스러운 평범한 소녀. 그리고 그 둘의 사랑 이야기. 마치 평범한 소녀가 왕자님을 만나 잘 먹고 잘 살았다로 끝날 것 같았던 드라마는 '사람이 늪에 빠진 것처럼 헤어 나오기 힘든 상황'이라는 뜻의 제목 '퀵샌드'처럼 스릴러로 끝을 맺게 된다.
재벌집 소년이 자신에게 고백했을 때 마야는 친구에게, 그는 원한다면 누구와도 사귈 수 있는 사람인데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 이야기를 한다. 마치 선택받았으니 그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듯 말이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돈 많은 남자가 자길 좋아해 준다고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거기에 한몫하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다. 성격적 결함이 있는 마야의 남자친구이지만, 사람들은 그가 많은 돈을 가진 아버지를 뒀다는 이유로 꽤 괜찮은 사람으로 봐준다.
모성애가 많은 마야는 어머니의 부재와 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진 재벌집 소년을 자신이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맨스였다면 소년은 사람이 되고 둘은 행복하게 살았겠지만, 퀵샌드는 매우 현실적인 드라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옛말처럼 재벌집 소년은 점점 더 비틀어지고 엇나가는 약쟁이가 된다. 그리고 그를 돌보는 동시에 그에게 지배당한 마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점점 더 망가진다.
그레이스를 보면서 주인공이 악녀인가 아닌가를 알고자 했다면, 퀵샌드는 주인공 마야가 언제 정신을 차리고 수렁에서 벗어날지가 관심사였다. 마야는 수렁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지만 주변에서는 아무도 그녀의 상황을 알아주지 않는다. 무뢰한인 남자친구 때문에 힘들다는 마야의 말에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가 한 말은, '그러니까 네가 그를 감싸주고 변하도록 도와줘야지'였다. 주변 사람들의 이런 태도 때문에 마야는 그에게 발목을 잡히게 된다.
남자친구의 약 중독과 무뢰한 적 행동이 계속해서 심해지고, 마야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그에게 헤어지자고 한다. 이때 그녀의 남자친구는 여느 심리조종자들처럼 자살시도를 하게 된다. 마야는 결국 그에게 다시 돌아간다. 사람들은 물론 마야 자신도 알고자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전형적인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였다. 더 이상 가해자인 남자친구를 떠날 수 없다고 느낀 마야는 그와 함께 점점 더 망가지고, 결국 그에게 휩쓸려 반친구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살인 공범으로 몰리게 된다.
상황은 비슷했지만 성격이 전혀 달랐던 두 주인공, 그레이스와 마야.
몰입도 높은 그레이스와 퀵샌드를 보면 누구나 시간 순삭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