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8-18 10:32:00
[JIMFF 인터뷰] 성장통을 그리다
'낮은 목소리' 박영광 감독 인터뷰
성장통을 그리다, 영화 ‘낮은 목소리’의 박영광 감독 |
박영광 감독의 ‘낮은 목소리’는 어린이 합창반의 맑은 목소리와 아이의 불안이 대비되면서, 변화를 받아들이고 다음 페이지의 악장을 넘기는 아이의 성장통을 담은 영화다. 8월 15일,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에서 박영광 감독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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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낮은 목소리’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낮은 목소리’는 11살 동윤이라는 합창단 솔로이스트가 자신의 변성기와 가정의 붕괴가 함께 겹치면서 어떻게 보면 하나도 힘든 성장통을 동시에 두 개를 겪으면서 변화하는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고 거기에 저항하는 그런 내용을 담은 영화입니다.
‘낮은 목소리’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낮은 목소리’는 어린이 영화이면서 합창이라는 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영화인데요. 성장 영화이지만, 성장을 막연히 아름답게만 그리지는 않으려고 했어요.
제목을 ‘낮은 목소리’로 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이가 변성기를 겪으면서 목소리 음계가 낮아진다는 의미도 있고요. 또 ‘목소리가 크다’라는 표현을 하잖아요. 이를 층위에 대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이 아이가 ‘나는 이렇게 하고 싶어요’, 혹은 ‘우리 집이 이렇게 붕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라는 표현을 해도 힘이 없다는 의미에서 ‘낮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아역 배우의 연기와 합창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는데요, 혹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배우에게 특별히 요청하신 부분이 있으실까요? ‘무심함’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던 것 같아요. 우리 일상이 어떤 감정이나 표정으로 차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저는 오히려 그사이 빈 공간들에서 더 마음에 와닿는 순간들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게 이 영화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했어요. 무심하게 목적성을 갖지 않고 하는 반응과 표현을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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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동윤이라는 인물이 합창단 테스트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아이들이 하얀 옷을 입고 다 모인 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솔로이스트를 뺏기는 장면이에요. 물론 합창을 같이 만드는 모든 파트에 있는 아이들이 다 훌륭하고 좋지만, 동윤이에게 있어서 솔로이스트의 자리는 좀 남다르기 때문에 저는 그 장면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이의 성장기 중 변성기를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모두가 ‘변성기’ 같은 시기를 겪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변성기를 중요한 소재로 선택했고, 보시는 분들도 ‘내가 그때 그랬지’ 그리고 ‘그때의 그 일들로 지금의 내가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한 번씩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과거의 성장통이 지금은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무섭고 그게 굉장히 커다란 일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때를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고통을 끄집어내서 다시 고통을 느끼라는 것이 아니고, 그런 상황들을 기억하고 곱씹어 보는 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영화 ‘낮은 목소리’는 변화의 기점에 서 있는 이들에게 공감과 응원을 전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영광 감독은 머지않은 시간에 장편 영화를 찍고 싶다는 계획을 전했다. 앞으로 그가 그려나갈 또 다른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문숙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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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거미 소년이 살아갈 익명의 삶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스테리오’의 계략으로 인해 세상에 정체가 탄로 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영웅으로 포장된 미스테리오를 죽인 살인자로 몰리면서 갑작스레 평범한 고등학생으로서의 일상을 잃어버린다. 문제는 본인뿐만 스파이더맨의 조력자로 알려진 여자친구 'MJ(젠데이아)'와 절친 '네드(제이콥 배덜런)'의 대학 진학까지 막힌 것. 이에 피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찾아가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임을 온 세상이 잊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실패한 닥터의 마법 때문에 뜻하지 않게 열린 멀티버스에서 피터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아는 빌런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불시착한 빌런의 처리를 두고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충돌하면서 더 큰 위기 속으로 빠져든다.
MCU로 돌아온 스파이더맨의 세 번째 이야기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여러모로 어깨가 무거운 작품이었다. 우선 닥터 스트레인지를 등장시켜 향후 MCU가 펼칠 멀티버스의 맛을 보여주고, 다음 영화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야 했다. 그린 고블린, 일렉트로, 닥터 옥토퍼스와 같은 과거의 빌런들과 추억이 된 두 스파이더맨의 복귀를 통해서는 지금까지 제작된 스파이더맨 프랜차이즈에 대한 헌사도 바쳐야 했다. 또 이른바 '홈커밍' 트릴로지의 대미를 장식할 필요도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이 수많은 과제를 한 가지 주제 안에서 엮어낸다는 점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익명성이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속 피터의 이야기를 간략히 요약하면 스파이더맨이 피터 파커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어 익명을 되찾고자 하는 사투라고 할 수 있다. 당장 피터의 얼굴이 뉴욕의 모든 전광판에 등장하는 오프닝은 영화 속 모든 사건의 직간접적 발단으로 작동한다. 실제로 익명성의 상실은 피터와 주변 사람들의 실제 삶까지 망가뜨리며, 이에 피터는 자신은 물론 친구들까지 대학 진학이 어려워진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자신의 익명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문이 실패로 돌아간 후 나타난 빌런들이 공통적으로 스파이더맨이 피터 파커라는 사실을 안다는 점, 또 빌런들을 막을 수 있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더 강력한 익명성의 획득이라는 사실도 이번 스파이더맨 영화가 말하려는 바를 잘 보여준다.
이때 익명성이라는 특성이 현대 사회의 삶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작중 피터의 모습은 마치 현대인의 잔혹동화 같기도 하다. 피터에게 익명성이 뉴욕의 빌딩 사이를 웹(web) 스윙하며 스파이더맨으로서 살아갈 기회이자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패였듯이, 현대인에게도 익명성은 웹(web)을 통해 연결된 인터넷 공간을 열어주고 그 안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어수단이 된다는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보호막을 잃은 피터가 무차별적인 비난의 표적이 된 것은 이른바 현실 속 '신상 털기'의 히어로 영화적 묘사나 다름없고,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은 상황에 대한 간접 경험이라 할 수 있다. 피터가 학교 복도나 집 앞에서 수많은 카메라와 시선 앞에 서야만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익명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노 웨이 홈>을 본다면 영화의 주요 소재인 멀티버스와 빌런들 및 또 다른 스파이더맨의 등장도 팬서비스 이상의 행간을 지님을 알 수 있다. 영화가 익명성의 야누스적 얼굴에 대한 경계심과 책임질 줄 아는 개인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성은 본질적으로 무한한 해방감과 동시에 그 못지않은 비도덕성을 내재한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SNS와 커뮤니티, 게임에 존재하는 수많은 익명의 '나'는 자유롭게 행동하는 만큼 수많은 갈등을 빚을 수 있으며, 그 갈등과 충돌은 때때로 인터넷 공간 밖의 현실 공간에 존재하는 '나'에게까지 실질적인 피해를 안기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MCU의 피터는 현실의 '나'이고, 스파이더맨이 존재하는 수많은 멀티버스는 익명의 '내'가 살아가는 수많은 공간이며, 피터가 스파이더맨임을 알고 찾아온 빌런들은 익명의 '내'가 만들어낸 충돌에 대한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이라는 쉽고 매끄러운 해결방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도 피터의 고민과 고난이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결코 동화적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피터 파커로서의 삶과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삶을 모두 살려는 게 문제라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말은 피터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이름들 간에 균형점을 찾지 못해 현실의 삶과 일상이 무너지는 모든 이들을 향한 지적인 셈이다.
또한 영화는 빌런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인 스파이더맨을 소환해 해결방안에 대한 힌트를 보여준다. 서로 다르지만 또 같은 존재로서 동질감을 느끼는 스파이더맨들은 공통의 경험을 토대로 위로와 격려, 그리고 조언을 건네며 트라우마의 극복을 돕는다. 이때 멀티버스를 넘나드는 스파이더맨 간의 연대는 인터넷 공간 속을 부유하던 서로 다른 '나', 수많은 부캐들과 본캐 사이의 만남과 일치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삶의 균형을 찾지 못한 뼈아픈 대가를 치러야 했던 피터가 또 다른 피터들을 만나 방황을 끝낼 힘을 얻었듯이, 현실의 '나' 역시 익명으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세상이라면 내적으로 단단해져서 삶의 주도권을 쥘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의 주도권이 곧 책임감을 뜻한다는 점에서 '큰 힘에 따르는 큰 책임을 깨닫는' 스파이더맨의 성장 서사 역시 새로운 보편성을 갖는다. 본래 고등학생에 불과한 피터 파커가 거미에게 물려 엄청난 근력과 특수한 능력을 지닌 영웅이 되는 것은 청소년기에 누구나 겪어야 하는 신체적 변화를 상징한다. 또 그러한 변화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아픔과 슬픔을 겪어야 하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은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어가는 우리 모두의 고단함이 함축되어 있다. 즉,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이 유명한 대사는 슈퍼히어로가 되는 것 이전에 온전한 성인이자 개인이라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을 정의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큰 힘과 큰 책임의 범주를 익명성이라는 맥락 안에서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한 명의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보다 현대적인 조건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원래도 성장 영화였던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변화한 시대에 발맞추는 새로운 성장 서사로 탈바꿈한다.
이에 더해 익명성에 따르는 책임감이라는 메시지는 빌런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스파이더맨의 도덕성과 선량함이 영화 내내 강조되는 이유와도 직결된다. 작중 팟캐스트 진행자 혹은 유튜버처럼 묘사된 JJJ의 방향 설정에 따라 많은 이들이 대중이라는 익명에 기대어 스파이더맨을 비난하듯이, 현실에서도 가짜 뉴스 유포와 사이버불링은 더욱더 만연하고 있다. 영화는 이런 상황을 예방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결국 익명으로 활동하는 개개인의 도덕성과 책임감에서 찾고자 한다. 그래서 개개인의 선량함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행간을 담아낸 "누군가를 돕는 것은, 모두를 돕는 것이다(When you help someone, You help everyone)"라는 대사는 피터가 진정으로 친절한 이웃이자 익명의 히어로인 스파이더맨으로서 다시금 활동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또한 MCU의 스파이더맨이 이전의 시리즈들과 달리 스파이더맨답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을 고려할 때, 익명성에 중점을 둔 이야기 전개는 '홈커밍' 트릴로지를 영리하게 마무리하는 최선의 선택처럼 보인다. 사실 토니 스타크가 선물한 최첨단 나노 슈트와 화려한 어벤져스 인맥을 가진 MCU의 스파이더맨에게서는 가난하지만 친절한 이웃이라는 소시민적 이미지를 찾기 어려웠다. 또 마블의 유일한 고등학생 히어로라는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지난 두 편에서 너무나도 손쉽게 사고를 저질러 버리는 피터는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아는 영웅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철저히 정체를 감추는 슈퍼히어로라는 정체성도 스스럼없이 통성명하는 스파이더맨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MCU의 스파이더맨은 스파이더맨보다도 아이언맨의 후계자라는 이미지가 더 확고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마블은 스파이더맨의 본래 특징이기도 한 익명성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춰서 두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주제를 계승함과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덧붙이는 데 성공했다. 일관되면서도 현대적인 주제와 메시지를 통해 MCU의 일원으로서, 동시에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일원으로서 어엿한 영웅의 탄생을 그려낸 것이다. 그렇기에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재미와 감동 사이로 쓸쓸함과 짠함이 흘러나오는 복합적인 매력이 넘치는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도 인상적인 스토리텔링과는 별개로 몇몇 단점이 존재한다. 일단 수많은 캐릭터의 과거가 철저히 대사로만 언급되다 보니 이전에 나온 총 일곱 편의 스파이더맨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그 기억이 희미한 경우 영화의 전개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본질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처럼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이 실패하는 장면 등 영화의 수월한 전개를 위해 개연성을 포기한 몇몇 대목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블록버스터 영화로서의 볼거리가 기대에 못 미치는 인상을 남긴다. 비록 2억 달러가 채 되지 않는 제작비가 블록버스터 영화치고 적은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어설픈 CG 장면이 몰입을 저해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기 때문이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으로 인해 뉴욕의 공간이 뒤틀리는 장면은 <닥터 스트레인지> 1편 속 유사한 장면과 비교했을 때 부자연스러움을 숨길 수 없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자유의 여신상에서 펼쳐진 전투도 그 배경이 지나치게 어두워서 어떤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보기 어렵다는 문제를 노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게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평가가 주어지는 것은 결코 과하지 않아 보인다. 이는 프랜차이즈의 일원으로서 서로 다른 제작사의 시리즈를 한 데 묶고, MCU의 일원으로서 멀티버스라는 세계관의 확장에도 한 몫하며, 홈커밍 트릴로지를 마무리 짓는 최종장으로서 그간의 비판점을 해결하는 어려운 미션을 준수하게 엮어낸 것만으로도 정당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대적이면서도 일관된 익명성이라는 주제와 메시지를 통해 스파이더맨의 성장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만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독립된 작품으로서도 호평받아 마땅한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익명이라는 거미줄을 잡고 마침내 영웅이 된 거미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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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램덩크' 원작 잘 모르는데 이 영화 봐도 될까요
봄날은 바로 지금
영화의 카메라는 북산고와 산왕고의 토너먼트로 향한다. 땀냄새나는 코트. 10명의 선수들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전력적 열세인 북산고. 그렇지만 이번 경기에서 모든 걸 다 걸어야만 한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다섯 명의 학생들이 오랫동안 바라왔던 전국제패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전력 차를 극복하는 것 같다. 경기 초반, 비등하지만 앞서 나가고 있는 북산고. 의외로 별로 차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이대로만 가면 되겠는데? 이렇게 가만히 있을 산왕고가 아니다. 산왕고의 벤치가 뭔가 심상치 않다. 전략을 바꾸는 산왕고. 전략을 새롭게 도입하며 경기의 흐름을 바꾸려고 한다. 고전하는 북산고. 특히 강백호와 송태섭은 뭔가 문제가 있는 듯하다. 특히 태섭의 얼굴 표정에는 비장함이 서려있다.
무언가 놓고 온 게 있었나. 다른 선수는 안 그랬나 싶지만 유독 태섭이 승리를 원했던 이유는 색다르다. 태섭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었다. 가장이 없어진 집안. 남은 것이라곤 형 송준섭과 동생 송태섭, 그리고 여동생과 어머니다. 농구선수였던 형 준섭. 준섭이는 농구를 놓을 수 없다. 농구선수로서의 출세를 꿈꾸던 준섭.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어선을 탔다. 태섭은 눈물을 흘린다. "나랑 같이 농구 한 판 하기로 했잖아!" 배를 타기 전에 형의 손을 잡을 수 있었지만 화가 난 마음에 거절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준섭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혼자 남은 태섭. 형이 남기고 간 농구공을 잡아, 새로운 무언가를 향한 도전을 꿈꾸려고 한다. 이제 태섭이가 코트에 우뚝 설 일만 남았다. 영화는 태섭의 이야기와 산왕전을 엇갈리게 제시하며 그가 왜 절실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원작 보고 가야 되나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보고 가는 것이 좋다. 시간이 없다면 인물이 누구인지 정도는 알고 가는 것이 좋다'다. 글쓴이는 영화 중반부까지는 잘 집중이 됐다. 그러나 중후반부 즈음에 살짝 졸아서 밖에 나갔다 왔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이야기가 흥미롭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산왕전의 결과가 궁금했다. 송태섭을 처음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 서사와 산왕전이 엇갈리는 영화의 형식이 가끔 흐름을 깬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송태섭 서사가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봤던 것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소담한 감성이 중심이긴 하다. 이런 연출 방식을 좋아하는 분들은 송태섭 서사를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걸 잔잔하게 받아들인다면, '특정 인물'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의 템포를 확 바꾸지는 못한다. 이는 영화에서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 중후반부 이야기 전개를 통해 '왜 이렇게 영화를 보여줬는지' 다 설명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불친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글쓴이는 사실 원작을 보고 가는 게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강백호, 서태웅, 정대만, 채치수, 송태섭, 안 선생님이 누구인지, 산왕고는 극 중 어떤 위치인지 정도는 무조건 알고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솔직히 글쓴이는 90년대생 중에 슬램덩크 짤 단 한 번도 안 본 사람 1만 명도 안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살짝의 배경지식은 다들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해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원작을 봤던 분들이라면 흥미롭게 받아들일 부분이 많다. 만화에서, 영화 주인공인 송태섭은 존재감이 부족하다고 한다. 이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인물의 특성은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원작을 많이 봤던 팬들이라면 송태섭이 다른 북산고 멤버들과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를 테니 이에 대해 보여주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강백호와 서태웅이라는 슬램덩크 시그니쳐들과는 다른 이미지에서 극을 시작한다는 점이 아는 이야기를 좀 더 다르게 전달할 수 있다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또 원작 이야기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영화가 살짝 뻔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팬들 입장에서야 송태섭 서사가 신선하지 모르는 관객들 입장에선 그냥 다 똑같은 농구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이 송태섭 이야기로 만든 가족드라마와 스포츠 영화는 기존에도 있었다. 글쓴이는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아도 <스텐바이, 웬디>와 <족구왕>이 생각난다. 이뿐인가? 이 두 작품 외에도 이와 유사한 영화들은 수도 없이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비슷한 서사가 많다고 해서 이야기 흐름을 바꾸기엔 위험부담이 있다. 자기가 만든 만화를 뒤엎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극전개에 있어 좀 다른 방식으로 아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주인공을 바꾸는 게 제격이다. 같은 일을 받아들이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인간의 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질감과 운동
영화 전반적으로 '참 따뜻하다' 싶었던 것은 극의 색감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무조건적으로 화사하진 않지만 따뜻한 색감을 잘 활용했다. 가령 이 영화의 가장 첫 번째 시퀀스는 태섭이 형 준섭과 이별하는 장면이다. 처음부터 감정적으로 센 장면을 배치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를 보다 보면 '왜 태섭의 이야기를 영화에서 엇갈리게 제시했을까' 의문이 든다. 초반에 이 인물이 이것에 대해서 그렇게 깊은 의미부여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바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뭔가 따로 노는듯한 송태섭의 서사를 고립되어 있는 공간감과 살짝 탁한 색감으로 소화한다. 러닝타임동안 태섭에게 이 상실의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데, 이를 연출로 잘 보여준 셈이다. 혼자 있어 외롭고, 어두운 세상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관점을 영화언어로 보여준 것이다. 이는 극후반부 엔딩과 대비된다. 글쓴이는 엔딩 신과 초반부의 장면 색감이 좀 차이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첫 장면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입장 변화를 색감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이 송태섭 서사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산왕전이다. 살짝 잔잔한 톤으로 전개되는 송태섭 서사와는 반대로 산왕전은 인물들의 농구경기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 중요성과는 반대로 산왕전의 초반부를 볼 때 뭔가 어색하다고 느껴졌다. 약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보는 느낌? 그런데 초중반부를 넘어가면 극 이해에 큰 문제가 없다. 이 영화는 인물들의 운동능력에 대한 큰 동선을 잘 잡았다. 스포츠에 정답은 없다. 공 갖고 하는 운동이면 닥터 스트레인지가 와도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간다. 당연히 농구에서도 리바운드나 덩크슛 같은 상황이 매번 다르게 나타난다. 이를 잘 이해하듯 영화 내적인 이야기에서 인물들의 상황에 맞게 움직임을 잘 짰다. 이 덕에 농구경기라는 영화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생동감이 생긴 것이다. 그중 제일 좋았던 운동 묘사는 산왕고의 전략 변경이다. 산왕고가 경기를 다르게 운영함으로써 북산고 멤버들이 어떻게 느낄지를 잘 표현해서 영화의 생동감을 살렸다.
영화여야만 해
글쓴이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또래들이 좋아하는 <원피스>나 <나루토>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다. 당연히 이 <슬램덩크> 시리즈 역시 보지 않았다. '불꽃남자 정대만' '강백호'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하나도 성장하지 않았어'같은 유행어들은 알았지만 그게 슬램덩크 것이라고는 알지 못했다. 이 영화에 대한 평이 하도 좋아서 표 예매하기 20분 전에 부랴부랴 인물들에 대해 읽어본 게 전부다. 영화 보기 전에 생각했던 것이 '이거 좀 전형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건 아닌가' 싶었다. 금세 티켓값 10000원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냥 원래 계획대로 안 보는 게 나았나?
글쓴이는 영화를 보기 잘했다고 느낀다. 이유는 이 영화는 영화여야만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원작의 연장선상? 만화를 본 분들이라면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핵심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어떤 대사를 한다. 질문의 형식이다. 이 대사가 영화의 핵심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질문이긴 하지만 작품 형식에서 이 문장에 힘을 빡 주는 연출을 보여줬기 때문에 이 작품 자체의 오리지널리티가 된다고 생각한다. 또 영화가 갖고 있는 다른 핵심 소재는 용서와 화해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용서/분노/혐오를 조금씩을 갖고 있는 듯하다. 강백호나 정대만도 양아치였던 시절이 있고, 서태웅과 강백호는 라이벌이다. 이런 식으로 각자가 마음속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다. 이 마음속의 응어리를 농구경기를 통해 해소한다는 점에서 '왜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가'에 대한 답변이 된다고 생각한다. 왠지 모르게 영화의 엔딩을 보고 나서 내가 농구경기를 다 뛴 느낌이 들었다. 후반부에 많은 분들이 언급하는 '그 청각효과'때도 마찬가지다. 극장이 고요한 느낌이 <드라이브 마이 카> 이후 오랜만이었다.
물론 원작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만큼 행복한 기억이 없을 것이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서 이제 '톰스파'가 아닌 다른 두 스파이더맨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이제 스포일러가 아니다. 이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짧은 기간에 3명의 주인공을 만들어냈다. <탑건 : 메버릭>이 36년 만의 후속작을 낸 것과는 대비된다. 이렇게 짧은 기간으로 인물들을 찍어냈기 때문에 시리즈 내적으로 다른 스파이더맨과의 차이점을 만들어야 한다. 이 차이점은 관객에게 하여금 '이 스파이더맨을 볼 때 내가 어떤 상태였지'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영화는 이렇게 추억팔이가 갖는 힘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강백호, 서태웅, 정대만, 채치수 등 주요 인물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 농구공을 건네는 듯하다. 어린 시절 만화를 보던 그 때에서 시작해 그동안 잘 지냈구나 싶은 안도감이 드는 것이다. 자, 원작 만화와 영화까지 20여 년이 걸렸다. 긴 시간 동안 품어온 여러분의 미련은 무엇일까? 태섭이가 질문하고 있다. 답할 준비가 됐다면 코트로 달려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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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을 수 없는 운명일까
이 글은 넷플릭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구글 Chan's Note/
한때 넷플릭스와 후발주자였던 왓챠를 죽어라 비교해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같은, 혹은 비슷한 돈을 내고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 OTT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방법이 공식처럼 나돌던 시절도 있었죠. 각각의 서비스가 가진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 좋다.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넷플릭스가 가진 오리지널 시리즈의 힘 덕분에 아주 약간 더 넷플릭스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긴 합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날 때마다 저는 넷플릭스에서 가장 먼저 오리지널 시리즈를 훑어보곤 합니다. 위시 리스트는 늘어만 가고 지워갈 수 없음이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그 위시 리스트를 보면 휴가를 받았을 때 심심하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오늘처럼 찰나의 시간이 날 때도 그 작품들 중 하나를 택하면 성공할 확률도 많고요.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보는 내내 마치 불교의 윤회 사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돌고 도는 같은 운명의 굴레에 갇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죠. 그 어떤 주제 의식도 없어 보일 수 있을 만큼 처음엔 이게 뭐야. 싶지만. 다 보고 나니 명작이었구나.를 깨달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기분으로 리스트 중 하나를 지워낼 수 있어서 기분 좋은 토요일입니다.
주인공이 없어 보이는데 다 주인공이네
적절한 균형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진짜 이 캐스팅 실화냐.
이 영화에는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처음에 캐스팅을 흘깃 보고는 와... 피 튀기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경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영화에 대한 내용을 상상했을 땐, 미친 연기력의 향연 같은 영화일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조금 다른 방향을 선택합니다. 마을 자체에서 반복되는 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그리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알 수 없는 힘에 등 떠밀려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운명을 살아야 하는 부속품처럼 느껴집니다.
바꿔 말하면 인물들은 이 영화 안에서 큰 조명을 받지 못합니다. 이 쟁쟁한 스타들 중 누구 하나 톡 튀게 하이라이트를 받는 일은 없다는 것이죠. 두드러진 주인공이 없어 보이는데, 다 주인공인 셈인 영화랄까요.
이야기는 정말 큰 틀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 인물들을 가지고 뜨개질을 해 갑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인물을 엮어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표현일 것 같네요.
뜨개질을 해 가는 속도 역시 정말 일품입니다. 이게 이렇게 연결된다고?라는 생각이 적절한 타이밍에 들 수 있게끔 너무 느슨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빠르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 속도대로 따라만 가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새 이 영화는 우리에게 끝매듭을 마무리하고 있는 시간으로 데려갑니다.
얼굴만 잘 생긴 줄 알았더니. 이것들이.
연기도 잘하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진짜.. 나쁜 역할도 이렇게 잘 어울리는구나.
우리의 마음속에는 덕질을 하게 만드는 많은 배우들이 들어차 있을 겁니다. 그들은 신체적인 뛰어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죠. 소위 말하는 것처럼 키가 크고 잘 생긴 경우를 여기서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보면 스타들의 "미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배우들의 경우 자신의 이미지가 잘 생겼다.라는 것으로 국한되어버리면. 그걸 오히려 깨기가 정말 힘들다고 합니다. 비슷한 역할만 들어오거나. 혹은 자신의 외모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오히려 힘을 더 많이 써야 된다고 하죠. (참고 1)
그랬기에 저 역시 엘리오가 더 킹 헨리 5세에서 연기자가 되었을 때 기뻐했습니다. 그의 포효 안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뚝 서겠다는 열망이 담겨있는 듯했죠. 그것을 지켜보며 저 또한 희열을 느꼈던 이유 역시 또 다른 연기자 탄생의 순간에 내가 함께 했다.라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일 테니까요.
이 영화에서는 거의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서로 자기주장을 하느라 바쁩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대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대표적인 영국 배우들은 자신의 악센트를 너무도 감쪽같이 버렸고. 세바스찬 스텐은 처음엔 못 알아볼 정도로 살을 찌운 채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어디서 봤는데 봤는데 하다가 출연 배우 리스트를 보고 그제서야 알아볼 정도로 말입니다.
자신들의 연기 리즈를 갱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 노력이 빛을 뿜다 못해 섬광처럼 쏟아져내리는 그 자리에서 저는 그들의 진정성에 또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과 악은 과연 무엇인가.
과연 답이 있을까?
사진 출처:다음 영화/ 빌 스카스가드조차 여기서 이런 역할이라니.
전설의 영화 타짜에서. (1편임. 2편도 3편도 아니고 1편임) 평경장은 고니에게 세상이 아름답다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고니는 마치 녹음한 것처럼 그래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평경장은 그런 세상에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며 면박을 주죠. (참고 2)
우리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쁜"것과 "착한"것이 부딪치고, 끝에는 선한 것이 이긴다.를 원하죠. 물론 저 역시도 만약 어벤저스 마지막에 벌크업한 보라돌이 농사꾼이 이겼다면 루소 형제 나오라고 소리쳤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나쁘다. 혹은 착하다.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단지 이해한다.는 말 외에는요. 그나마 이 뜨개질에서 가장 굵고 독특한 색을 가진 실에 가까운 톰 홀랜드 역시도 그러합니다. 복수 혹은 죽어 마땅한 놈이라는 이유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데. 속이 마냥 시원하지만은 않더군요. 분명 그는 감옥에서 생의 일부분을 보낼 것이고. 그 일부분 역시 순탄치만은 않을 테니까요. 이 복잡한 우리의 마음을, 마지막 부분의 내레이션이 대변한다고나 할까요.
그만 말해. 이제.
토요일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보면서 최근에 썼던 다크 히어로 관련한 글이 다시 한번 떠올랐습니다. 아주 근소하게나마 시대를 앞서간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고. 선과 악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 수 있었죠. 소비하는 책이나 영화마다 요새 제게 많은 생각을 안겨줘서 감사함과 동시에 여태 대체 어떤 우물 안에서 살았던 것일까.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러닝 타임이 두 시간이 훌쩍 넘지만. 정말 시간 순삭 하게 만드는 영화이니. 꼭 한 보셨으면 합니다.!!
참고 1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랬다고 함. 연기를 안 봐주고 자꾸 얼굴만 봐서 교정기를 끼고 연기했다고 하는데. 아니 그래봐야 교정기 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잖아.
참고 2
진짜.. 거짓말 아니라 타짜 대사 거의 다 외움.
[ 이 글의 TMI]
1.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타이밍이 왔다.
2. 이제 왜 주중에 휴일 없죠?ㅠ 추석까지 존버인가ㅠ
3. 선풍기를 꺼내야 할까.
4. 과일 먹고 싶다. (요새 과일 끊음)
5. 나중에 잠시 회사 가야 하는데. 너무 가기 싫다.
6. 요새 무가당 두유 먹고 있는데(당류 1%, 진짜 그냥 콩물) 그거 먹고 2주일 만에 식욕을 잃음.
7. 그러나 그러기엔 너는 아직도 너무 많이 먹고 있지.
함께 읽으면 좋을까?
https://blog.naver.com/virgonmalta/222244860880
엘리오, 헨리 5세로 왕위에 스스로 앉다;넷플릭스 더 킹 헨리 5세 리뷰
#악마는사라지지않는다 #로버트패틴슨 #세바스찬스탠 #톰홀랜드 #빌스카스가드 #넷플릭스 #넷플릭스추천
* 본 콘텐츠는 블로거 Rigo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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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존하는 삶의 공포를 뒤로한 마지막 인사!
“신세(身世) 지기 싫다!” 나이 들면 자식들이나 손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형식적으로 내뱉는 경우도 있지만, 이 말은 아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시니어들이 가진 공포 중 하나는 바로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일 것이다. 더 이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열패감과 두려움은 아래 세대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어떻게 단정 짓냐고? <소풍>을 보면 안다. 극 중 주인공들은 이 두려움과 싸우며, 마지막 결단을 내리기 때문. 영화는 신세 지기 싫어하는 노인들의 마지막 몸부림과 그 선택을 따라간다.
요즘 은심(나문희)은 걱정이 많다. 파킨슨병이 날로 심해지고, 현실인지 꿈인지 돌아가신 엄마가 자꾸 눈앞에 보인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해웅(류승수)은 돈 문제로 속을 썩인다. 이때 고향 절친이자 사돈인 금순(김영옥)이 집에 찾아오고, 이들은 오랜만에 고향인 남해로 향한다. 부모의 죽음 이후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된 은심은 하나둘씩 이곳의 추억을 음미하던 중, 과거 자신을 짝사랑하던 태호(박근형)를 만난다.
<소풍>은 제목이 갖고 있는 중의적인 의미를 그대로 옮긴 듯하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 중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이란 소절처럼, 이들의 고향 나들이는 그 자체로서의 오랜만에 떠나는 소풍이자, 생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소풍이다.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아온 후, 노년이 되어서야 누리는 이 소풍의 분위기는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과 즐거움, 따뜻함이 가득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이 부각되는 건 생의 마지막이라는 지점에 있다.
영화는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도 노인이 겪는 신체적 아픔을 즉시 한다. 파킨슨병에 의한 손 떨림은 물론, 허리가 아파 거동 자체를 못하는 모습, 뇌종양 등 질병으로 인한 고충 등을 가감 없이 전한다. 특히 금순이 허리가 아파 움직이지 못하고 소변을 실례하는 장면은 적지 않은 충격을 전한다. 이처럼 노인들의 치부를 전시하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이들의 아름답고도 행복한 짧은 여행이 곧 마무리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신세 지는 일 없이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삶을 마감하겠다는 이들의 다짐을 굳건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존엄사라는 뜨거운 감자를 수면위로 올려놓은 영화는 윤리적인 잣대가 아닌 당사자들의 고통과 공포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감독은 중반부에 은심과 금순의 미래를 보여준다. 자식이 걱정할까봐 병을 숨기고 살아온 친구의 죽음은 은심의 미래를, 요양병원에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친구가 죽은 듯 사는 모습은 금순의 미래를 보는 듯하다. 이 장면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면서 노인들이 가진 고통과 공포다. 두 친구는 이런 공포에 휘감겨 살다가 가느니, 차라리 존엄을 택한 것. 후반부는 이들의 존엄 투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소 아쉬운 지점은 이 문제의식이 개인만의 문제로 그친다는 점이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노인들이 겪는 다수의 문제를 개인이 감내하고 존엄으로서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각 자체가 이들에게만 국한된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플랜 75>의 경우 고령화 사회 문제를 사회적 시각으로 넓혔던 것에 비해, <소풍>은 그 부분이 다소 약하다. 물론, 은심과 해웅 사이에 빚어진 중산층 가족의 민낯, 리조트 개발 위기에 놓인 시골 마을 등 가족 및 사회로 눈을 돌리긴 했지만, 이 부분마저 두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부가적으로 설명하는 구실로만 작용한다. 더불어 특별함 보단 안전함을 택한 듯 너무나 밉지만 그럼에도 도와주는 어미의 모습, 그 모든 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는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지켜보게 하는 건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등 노배우들의 연기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실제 은심, 금순, 태호로 살아온 것처럼 느껴지는 이들의 존재감은 영화의 빈 공간을 채우고도 남는다. 특히 세 배우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80대 노인들의 고통과 아픔을 연기로 승화시킨다. 여기에 요양병원에 갇혀 사는 이들의 친구 청자 역에 최선자, 은심을 질투하는 맹희 역에 이용이, 마을 터줏대감 영배 역에 한태일 등 스테레오 타입의 역할이지만 각자 자신이 맡은 연기를 수행하는 노배우들의 연기 또한 영화에 힘을 싣는다.
배우들의 연기만큼이나 큰 힘을 발휘하는 건 임영웅의 ‘모래 알갱이’다. 영화를 위해 만든 곡은 아니지만, 마치 이 영화를 위해 탄생한 곡처럼 은심과 금순의 이야기에 잘 스며든다.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 나는 가벼운 모래 알갱이 / 그대 이 모래에 작은 발걸음을 내어요 / 깊게 패이지 않을 만큼 가볍게” 아등바등 가열차게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누군가에게 신세 지지 않고 의존하지 않고, 모래 알갱이처럼 홀연히 떠나며 건네는 이들의 인사. 이 노래와 함께 마주해보길 바란다.사진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평점: 3.0 /5.0
한줄평: 의존하는 삶의 공포를 뒤로한 마지막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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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스러운 반골들의 체제 전복기
친구들과 '우리는 왜 반골 성향의 사람들에게 끌리는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반골'은 어떤 권력이나 권위에 순응하거나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기골, 혹은 그런 기개를 가진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정의만 봐도 반골이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질서에 맞서는 용기, 뚜렷한 신념과 가치관, 기존의 틀을 뒤흔드는 태도. 이 모든 것이 반골을 특별하게 만들지요.
그래서일까요, 수많은 이야기 속에도 반골은 대체로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저는 대부분의 반골 이야기에 마음이 가지만, 그중에서도 '이건 반골의 이야기야!'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기운을 품고 있는 영화를 특히 좋아합니다. 이 영화도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체 속에 담긴 반골들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은 2025년 6월 11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
Ernest & Celestine: A Trip to Gibberitia
Summary
세상의 편견을 뛰어넘은 절친, 음악가 곰 ‘어네스트’와 꼬마 생쥐 ‘셀레스틴’. 둘은 ‘어네스트’의 망가진 바이올린을 고치러 그의 고향 ‘샤라비’로 향한다. 오랜만에 찾은 거리에는 음악이 금지되어 침묵만이 흐르고 ‘어네스트’의 숨겨진 과거가 드러나는데… 사라진 멜로디를 되찾기 위한 ‘곰’과 ‘생쥐’의 특별한 우정이 다시 시작된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장-클리스토페 로저, 줄리엔 청
때론 지배적인 게 우스울 때도 있지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은 2012년에 개봉한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후속작입니다. 1편이 편견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였다면, 2편은 권위, 체제, 그리고 질서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어네스트'의 바이올린이 망가지자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이를 고칠 수 있다는 악기상을 만나러 고향 '샤라비'로 떠납니다. 음악이 살아 숨 쉬는 도시였던 '샤라비'는 명성과 달리 고요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거리의 음악가는 오직 박자만으로 승부하는, 기이한 한 음 연주를 뽐낼 뿐이죠. 모스부호 뺨치는 음악에 분개한 '어네스트'가 반도네온으로 신나는 멜로디를 연주하자 경찰들이 달려들어 그를 체포해 버립니다. 알고 보니 이 도시는 법으로 음악의 멜로디를 금지된 상태였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음악 되찾기 운동을 펼치고, '어네스트'와 '셀레스틴'도 이에 동참합니다.
이 도시에는 멜로디가 금지된 것 외에도 우스운 법들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부부가 이혼하면 집을 케이크 자르듯이 반으로 쪼개 산다거나, 길거리의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지면 누구든지 '그대로 멈춰라'를 해야 한다거나, 자식은 반드시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것들이었죠. 우리 사회에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체의 안정을 영위하기 위한 만들어진 법, 제도, 관습 안에 이처럼 우스운 것들이 껴 있습니다. 아무리 우스워도 다들 따르기에 그대로 따르는 것들이지요.
그중 하나로 과격하고 지저분한 한국의 페미니즘 갈등과 젠더 논쟁들이 떠올랐습니다. 때때로 '페미니즘'과 '페미'라는 말이 금기어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이 우습게 느껴지곤 합니다. 멜로디가 금지된 탓에 한 가지 음으로만 '띠- 띠-' 연주하는 음악가들의 모습에 실소가 픽 터지는 것처럼요. 하지만 '샤라비'의 시민들은 그 모스부호 멜로디를 기꺼이 즐기는 모습으로 관객을 더 어이없게 만들지요. 우리나라의 페미니즘도 딱 그러한 국면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우습고 어이없는 와중에, 어쩐지 그 시도가 먹혀드는 상황 말입니다.
이번에 치러진 제21대 대선도 돌이켜 보면 우습습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하는 후보가 있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양당에서 여성 공약을 물밑으로 숨겼습니다. 아무리 후보들의 성향이 전체적으로 보수화되었다고 해도, 우스운 현실에 터지는 실소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음악이 살아 숨 쉬던 도시에서 멜로디가 사라진 도시가 된 '샤라비'와 다를 바가 없지요. 물론,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이 살아 숨 쉬었던 적도 없지만요.
⊙ ⊙ ⊙
체제를 전복하는 건 어쩌면 극단주의자
다시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셀레스틴'은 '샤라비'에 와서야 고향 방문을 마뜩잖게 여기던 '어네스트'의 속마음을 알게 됩니다. '샤라비'의 법에 따르면, 아들은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야 했는데요. 음악을 하고 싶었던 '어네스트'는 판사가 되기 직전에 고향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멜로디를 금지하는 법은 바로 '어네스트'의 반항에 분노한 판사 아빠의 독단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아들이 판사가 되지 못할 바엔 아들을 망쳐 놓은 음악을 없애버리겠다'라는 심보였습니다.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세상을 안타깝게 여긴 것도 잠시, 우리나라라고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에 다시금 봉착했습니다.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긴 했으나, 오늘날의 대한민국 부모들은 부자의 가치관을 세습하는 형태로 아이들의 직업을 좌지우지하려 하니까요. 지위, 위신, 재력과 같은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돈이 많은 직업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피력합니다. 오죽하면 어린아이들의 꿈이 '건물주'일까요. 실제로 제 주위에는 의대에 가기 위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준비하던 엄친딸(엄마 친구 딸)도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과연 의사가 되고 싶어서 의대를 준비하는 것인지, 매번 의구심이 들었지요.
모두에게는 태생적인 재능이 있고, 자라나면서 생겨나는 관심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두 가지 사이에서 직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반골들의 눈에는 그저 우습게만 보이는 관습의 테두리 안에서, 그 두 가지를 꾹꾹 누르며 살다 보면 어떻게 될까요? '어네스트'의 판사 아빠처럼, 직업의 세습을 따르기 위해 음악을 금지해 버렸으나, 음악에 대한 재능과 관심으로 죄인(음악가)들에게 압수한 악기를 몰래 모아두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음악이 금지된 끝에 직업의 세습이 무너진 도시 '샤랴비'. 문득 어떠한 체제의 전복은 극도로 치우친 사람('어네스트'의 판사 아빠)의 극단적인 어떠한 선택(음악을 없애버림)에 의한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또한 참 우습습니다.
⊙ ⊙ ⊙
사실 1편을 보지 못한 채로 2편을 보았습니다. 곰과 생쥐의 '친해지길 바라' 여정을 먼저 보았더라면 이 영화의 매력이 배가 되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왕이면 순서대로 보시기를 추천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2편이 단독 영화로서 매력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저항적인 평을 썼지만, 보기 껄끄러울 정도로 메시지가 그득하거나 뾰족한 영화도 절대 아닙니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인데도 이런 반골이 느껴지니, 잘 만든 영화라 이야기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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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야기는 내가 직접 만들어주지
여기.
잠들지 못하고, 밤마다 뺏벌을 걸어다니는
한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박인순.
뺏벌이라 불리는 미군 기지촌에서 양공주로 살았으며, 그 이후에도 죽은 동료들과 함께 기지촌에 남아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보았으며, 늘 죽음 가까이에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튼튼한 두 다리로 이 세상에 굳건히 서 있다.
밤새 뺏뻘을 돌아다니는 인순을 보며, 저승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죽어야 잠들 수 있겠군”
그러나 평생을 비가시적(서류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이중으로 은폐된) 존재로 살아온 인순에게는 저승으로 가는 길도 그리 간단치 못하다. 이승에서의 호적은 거짓으로 꾸며진 것이기에 저승 명부에도 그녀의 이름이 없으며, 저승길에 필요한 ‘그녀만의 이야기’ 또한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과거 여러 차례 문서와 미디어를 통해 기록되고 재현되어왔지만, 그 이야기들은 그녀의 진짜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 오래된 편견으로 만들어진 진부한 이야기일 뿐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만들고자 한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메인 포스터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큐멘터리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김동령 감독과 박경태 감독이 기지촌 여성인 박인순과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두 감독은 이미 각자 작업한 <나의 부엉이(2003, 박경태)>, <아메리칸 엘리(2008, 김동령)>와 공동연출한 <거미의 땅>(2016)을 통해 박인순의 이야기를 담아온 바 있으며, 이 같은 작업을 통해 미군 기지촌 위안부 여성들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또한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감독들의 앞선 작업들과 분명한 차별점을 지니는데, 그것은 바로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다. 감독들이 이전까지는 ‘기지촌이란 무엇이며 기지촌 여성들은 누구인가?’에 대해 탐구하였다면,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서는 ‘기지촌 여성의 이야기는 왜 살아남지 못했는가?’를 탐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동령 감독은 이 영화가 “기지촌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기지촌에 관한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가 만들고 그러나 어떻게 사라지는가에 관해 탐구하는 프로젝트”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픽션과 논픽션, 그리고 가상 캐릭터와 실존 인물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재현되는 이미지들 속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판명하는 일은 무의미한 행위일 것이다(심지어 이러한 판단은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우리는 그 와해되고 중첩된 영화적 공간 속에서 ‘이야기가 되지 못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이야기’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밤마다 뺏벌을 돌아다니는 '인순'(논픽션/실제인물)과 뺏벌의 유령들을 저승으로 데려가려는 '저승사자들'(픽션/허구의 캐릭터)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박인순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만드는 과정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녀가 재현하는 이야기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오히려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그녀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첫 시작부터 영화는 전지적 시점에서 서술되는 나레이션이 삽입된다. 그리고 구술 채록을 위해 인순을 찾아온 교수와 뺏벌을 자신의 작품 소재로 사용하고자 하는 대학원생이 등장하여, 그녀들의 삶이 어떻게 타인에 의해 이야기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살해된 기지촌 여성의 기사 사진과 인순의 과거 인터뷰 장면을 통해 그녀들의 삶을 기술하는 미디어의 방식을 폭로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감독 자신이 (아마도 과거에) 핸디 카메라로 촬영하였던 다큐 영상들도 포함된다. 이러한 재현들은 모두 4:3의 답답한 화면비로 삽입되어, 인순을 비롯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어떠한 프레임 속에 가두고 있음을 은유한다.
필자는 태어나서부터 출가를 선언한 27살 이전까지 의정부에서 살아왔다. 그 때문에 뺏벌이라는 공간의 지리적 위치 정보가 등장하기 전부터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저곳이 의정부임을 금새 알아차렸다. 남들보다 먼저 알아보았음을 자랑하기 위해 나의 출신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고, 나 또한 영화 속 대학원생과 같은 마음, 즉 그녀들의 이야기를 이용해보려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일어났음을 고백하려 함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 속 대학원생 아해는 인순을 인터뷰하러 온 교수를 따라 뺏벌에 오게 되었다. 인터뷰 과정에서 인순과 뺏벌에 흥미를 갖게 된 아해는 홀로 인순을 찾아왔다가 인순이 집에 없자 폐허가 된 기지촌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작품 소재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기지촌의 여러 공간을 카메라로 담아내기도 하고, 기지촌 내 클럽에서 술잔과 벽에 붙은 기지촌 여성들의 사진을 몇 장 챙겨가기도 한다. 이러한 수집행위와 더불어 아해는 “이번 전시는 기억과 공간에 관한 작품으로 기획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작가가 이곳을 발견하기 전에 빨리 작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덧붙인다.
기지촌에서 작품의 소재를 물색하는 '아해'와 클럽 안에 산재한 '그녀들의 흔적'
여기서 필자의 탄식이 새어나왔다. ‘아니, 나는 의정부에 30여년간 살면서 왜 저곳을 직접 들어가볼 생각은 하지 못했는가... 내가 먼저 발견했으면 나는 지금쯤 엄청난 작가가 되어있었을 텐데...’라고. (참고로 필자는 의정부에 살 때까지만 해도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의 삶을 산 바 있다. 지금은 아님.)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 다다라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깨달았을 때, 잠시 저런 생각을 했던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넘어, 나 또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만들고, 변형시키고, 제거하는 행위에 동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부끄러움과 성찰의 순간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박인순이 우리에게 보내는, 그리고 멋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어대었던 세상을 향한 통쾌한 복수극일테니.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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