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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까2025-06-17 19:07:35

사랑스러운 반골들의 체제 전복기

영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

친구들과 '우리는 왜 반골 성향의 사람들에게 끌리는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반골'은 어떤 권력이나 권위에 순응하거나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기골, 혹은 그런 기개를 가진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정의만 봐도 반골이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질서에 맞서는 용기, 뚜렷한 신념과 가치관, 기존의 틀을 뒤흔드는 태도. 이 모든 것이 반골을 특별하게 만들지요. 

 

그래서일까요, 수많은 이야기 속에도 반골은 대체로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저는 대부분의 반골 이야기에 마음이 가지만, 그중에서도 '이건 반골의 이야기야!'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기운을 품고 있는 영화를 특히 좋아합니다. 이 영화도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체 속에 담긴 반골들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은 2025년 6월 11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

Ernest & Celestine: A Trip to Gibberitia


 

Summary

세상의 편견을 뛰어넘은 절친, 음악가 곰 ‘어네스트’와 꼬마 생쥐 ‘셀레스틴’. 둘은 ‘어네스트’의 망가진 바이올린을 고치러 그의 고향 ‘샤라비’로 향한다. 오랜만에 찾은 거리에는 음악이 금지되어 침묵만이 흐르고 ‘어네스트’의 숨겨진 과거가 드러나는데… 사라진 멜로디를 되찾기 위한 ‘곰’과 ‘생쥐’의 특별한 우정이 다시 시작된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장-클리스토페 로저, 줄리엔 청

 

 

때론 지배적인 게 우스울 때도 있지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은 2012년에 개봉한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후속작입니다. 1편이 편견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였다면, 2편은 권위, 체제, 그리고 질서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어네스트'의 바이올린이 망가지자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이를 고칠 수 있다는 악기상을 만나러 고향 '샤라비'로 떠납니다. 음악이 살아 숨 쉬는 도시였던 '샤라비'는 명성과 달리 고요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거리의 음악가는 오직 박자만으로 승부하는, 기이한 한 음 연주를 뽐낼 뿐이죠. 모스부호 뺨치는 음악에 분개한 '어네스트'가 반도네온으로 신나는 멜로디를 연주하자 경찰들이 달려들어 그를 체포해 버립니다. 알고 보니 이 도시는 법으로 음악의 멜로디를 금지된 상태였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음악 되찾기 운동을 펼치고, '어네스트'와 '셀레스틴'도 이에 동참합니다. 

 

이 도시에는 멜로디가 금지된 것 외에도 우스운 법들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부부가 이혼하면 집을 케이크 자르듯이 반으로 쪼개 산다거나, 길거리의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지면 누구든지 '그대로 멈춰라'를 해야 한다거나, 자식은 반드시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것들이었죠. 우리 사회에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체의 안정을 영위하기 위한 만들어진 법, 제도, 관습 안에 이처럼 우스운 것들이 껴 있습니다. 아무리 우스워도 다들 따르기에 그대로 따르는 것들이지요. 

 

그중 하나로 과격하고 지저분한 한국의 페미니즘 갈등과 젠더 논쟁들이 떠올랐습니다. 때때로 '페미니즘'과 '페미'라는 말이 금기어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이 우습게 느껴지곤 합니다. 멜로디가 금지된 탓에 한 가지 음으로만 '띠- 띠-' 연주하는 음악가들의 모습에 실소가 픽 터지는 것처럼요. 하지만 '샤라비'의 시민들은 그 모스부호 멜로디를 기꺼이 즐기는 모습으로 관객을 더 어이없게 만들지요. 우리나라의 페미니즘도 딱 그러한 국면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우습고 어이없는 와중에, 어쩐지 그 시도가 먹혀드는 상황 말입니다. 

 

이번에 치러진 제21대 대선도 돌이켜 보면 우습습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하는 후보가 있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양당에서 여성 공약을 물밑으로 숨겼습니다. 아무리 후보들의 성향이 전체적으로 보수화되었다고 해도, 우스운 현실에 터지는 실소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음악이 살아 숨 쉬던 도시에서 멜로디가 사라진 도시가 된 '샤라비'와 다를 바가 없지요. 물론,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이 살아 숨 쉬었던 적도 없지만요. 

 

 ⊙ ⊙ ⊙

 

체제를 전복하는 건 어쩌면 극단주의자

 

다시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셀레스틴'은 '샤라비'에 와서야 고향 방문을 마뜩잖게 여기던 '어네스트'의 속마음을 알게 됩니다. '샤라비'의 법에 따르면, 아들은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야 했는데요. 음악을 하고 싶었던 '어네스트'는 판사가 되기 직전에 고향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멜로디를 금지하는 법은 바로 '어네스트'의 반항에 분노한 판사 아빠의 독단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아들이 판사가 되지 못할 바엔 아들을 망쳐 놓은 음악을 없애버리겠다'라는 심보였습니다.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세상을 안타깝게 여긴 것도 잠시, 우리나라라고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에 다시금 봉착했습니다.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긴 했으나, 오늘날의 대한민국 부모들은 부자의 가치관을 세습하는 형태로 아이들의 직업을 좌지우지하려 하니까요. 지위, 위신, 재력과 같은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돈이 많은 직업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피력합니다. 오죽하면 어린아이들의 꿈이 '건물주'일까요. 실제로 제 주위에는 의대에 가기 위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준비하던 엄친딸(엄마 친구 딸)도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과연 의사가 되고 싶어서 의대를 준비하는 것인지, 매번 의구심이 들었지요. 

 

모두에게는 태생적인 재능이 있고, 자라나면서 생겨나는 관심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두 가지 사이에서 직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반골들의 눈에는 그저 우습게만 보이는 관습의 테두리 안에서, 그 두 가지를 꾹꾹 누르며 살다 보면 어떻게 될까요? '어네스트'의 판사 아빠처럼, 직업의 세습을 따르기 위해 음악을 금지해 버렸으나, 음악에 대한 재능과 관심으로 죄인(음악가)들에게 압수한 악기를 몰래 모아두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음악이 금지된 끝에 직업의 세습이 무너진 도시 '샤랴비'. 문득 어떠한 체제의 전복은 극도로 치우친 사람('어네스트'의 판사 아빠)의 극단적인 어떠한 선택(음악을 없애버림)에 의한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또한 참 우습습니다. 

 

  ⊙ ⊙ ⊙

 

사실 1편을 보지 못한 채로 2편을 보았습니다. 곰과 생쥐의 '친해지길 바라' 여정을 먼저 보았더라면 이 영화의 매력이 배가 되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왕이면 순서대로 보시기를 추천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2편이 단독 영화로서 매력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저항적인 평을 썼지만, 보기 껄끄러울 정도로 메시지가 그득하거나 뾰족한 영화도 절대 아닙니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인데도 이런 반골이 느껴지니, 잘 만든 영화라 이야기할 수밖에요. 

작성자 . 방자까

출처 . https://brunch.co.kr/@hreecord/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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