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8-18 10:33:10
[JIMFF 인터뷰] 운명처럼 찾은 제천
'오늘의 장내' 이호현 감독 인터뷰
운명처럼 찾은 제천, 영화 '오늘의 장내' 이호현 감독 |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충청북도 출신 혹은 지역에서 활동 중인 제작자가 만든 제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 4편을 ‘메이드 인 제천’ 부문으로 선정하였다. ‘오늘의 장내’는 4편 중 유일한 장편영화로,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코믹하면서도 극적으로 담아내었다. 지난 8월 15일,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에서 ‘오늘의 장내’의 이호현 감독님을 만나 영화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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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메이드인제천’ 부문에선정었는데, 소감한말씀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전부터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게 영화 음악이 아니라서 출품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요. 이 작품을 제천에서 촬영하게 되고, 출품할 영화제를 찾아보던 중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메이드 인 제천’ 부문이 있음을 알게 되었죠.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감사한 생각입니다.
영화의 배경을 제천으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장소만이 가진 고유의 캐릭터가 있다고 생각해서 시나리오를 작성할 때 어떤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설정하는데요. 예전에 제천에서 조수 생활을 하면서 머문 적이 있었어요. 너무나 깔끔하게 정돈된 수도권의 배경들이 아닌, 세월이 묻어나 있는 건물, 제천이 갖고 있는 역사가 이 영화와 맞는다고 생각해서 제천을 영화 배경으로 선택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상은이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을 연기하면서 시작해요.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인트로 장면을 쉽게 썼었어요. 하나와 전화 통화를 하며 버스를 내리는 장면으로 썼는데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게 들어간 거 같아 고민했죠. 상은이와 딱 맞는 장면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고민하던 중 ‘오디션’이라는 소재가 생각났어요. ‘상은이가 어떤 대본을 갖고 오디션을 볼까?’ 상은 역할의 지홍 배우와 함께 계속 고민하다가 8월의 크리스마스의 ‘정원’과 오늘의 장내 ‘상은’이가 닮아있다고 생각해 쓰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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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래딧에 나오는 ‘그곳’ 이라는 곡을 직접 작사하셨어요. 건방진 생각일 수 있는데, 저는 영화 음악이 들어가지 않고 이야기의 힘만으로도 관객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화 음악을 아예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음악 감독님을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 엔딩곡만큼은 이 영화를 대변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작사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관통할 수 있는 가사를 며칠 동안 고민해서 보내드렸어요. 음악 감독님이 마음에 드셨는지 제 가사를 보고 5분 만에 데모를 보내주셨어요. (웃음) 남자 보컬의 목소리를 얹으니, 마치 상은이가 부르는 것 같더라고요.
등장인물이 상영, 상일, 상이, 상삼까지 있는데 왜 상은이만 ‘상은’일까요? ‘상은’이라는 이름은 제 영화에서 항상 나오는 이름이에요. 매번 주인공이 아니어도 ‘상은’이라는 캐릭터는 항상 등장하죠. 저만의 재미입니다. 상은이라는 이름을 먼저 정하고 나머지는 돌림자를 생각해서 이름을 지었어요. 상영, 상일, 상이, 상삼 친구들과 달리 상은은 조금 사람다웠으면 하는..? (웃음) 나머지 사촌들과 다른 캐릭터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상은’이라는 이름은 감독님의 이스터에그인거네요. (웃음) 그러면 마지막으로 짐프 관객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발리 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도 좋은 평을 많이 들었는데, 이번 제천에서 상영하며 한국 관객들은 어떤 반응일까 해서 긴장이 많이 되었어요. 너무 많은 분이 재밌게 봤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무척 감사했습니다. 만약 이 영화를 보신다면 런닝 타임이 길지 않아 즐겁게 보실 수 있다고 확신해요. 제천 영화제에서 미처 못 보신 분들은 다른 영화제에서도 상영이 된다면 꼭 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죽음을 다룬 영화이지만 역설적으로 열심히 살고 싶어지는 영화,’ 오늘의 장내’. 비 오는 날 제천에서 관람하면 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덤으로 얻어갈 수 있다. 은근한 웃음과 파도치는 감동, 영화를 아름답게 매듭짓는 음악 ‘그곳’까지.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이제 막을 내리지만 ‘오늘의 장내’가 주는 감동은 계속될 것이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시은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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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날 보기 좋은 영화 추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늘의 큐레이션 주제는 바로 '비 오는 날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이 게시물 혹은 씨네픽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동일 내용의 콘텐츠 게시물에
자신이 보고싶은 영화에 대해 적어주신다면 다음 콘텐츠를 올릴 때 여러분들의 댓글을 바탕으로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작해볼까요?٩( ᐛ )و
노트북
ⓒ 네이버 영화
synopsis
17살, ‘노아’는 밝고 순수한 ‘앨리’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빠져드는 둘.
그러나 이들 앞에 놓인 장벽에 막혀 이별하게 된다. 24살, ‘앨리’는 우연히 신문에서 ‘노아’의
소식을 접하고 잊을 수 없는 첫사랑 앞에서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cine pick!
관객 선정 '다시 보고 싶은 최고의 로맨스 영화' 1위에 선정되기도 한 <노트북>은 로맨스 소설의
대가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The Notebook]을 원작으로 하는데 작가의 장인, 장모의 실제 러브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실화로 밝혀지며 더욱 주목을 받았다.
클래식
ⓒ 네이버 영화
synopsis
지혜와 수경은 연극반 선배 상민을 좋아한다. 지혜의 대필 편지로 상민과 수경은 맺어지고,
엄마의 비밀 상자에서 지혜는 자신과 닮은 엄마의 클래식한 사랑을 알게 된다.
cine pick!
한국 로맨스 영화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영화 <클래식>은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영화 <클래식>은 개봉 후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손꼽힌다.
연애소설
ⓒ 네이버 영화
synopsis
수인에게 용기를 내어 고백했지만 거절당한 지환은 그녀에게 친구가 되자고 제안한다. 수인의
단짝 친구 경희까지 셋이 함께 어울려 다니며 소중한 시간을 보내던 중, 그들에게 낯선 감정들이
찾아온다.
cine pick!
멜로 영화의 황금기였던 2000년대에 개봉한 영화 <연애소설>은 이한 감독의 데뷔작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을 담아 꾸밈 없는 진솔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어바웃 타임
ⓒ 네이버 영화
synopsis
아버지에게 가문 대대로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들은 팀. 우연히 만난
메리에게 반한 팀은 완벽한 사랑을 위해 능력을 마음껏 사용하고, 그럴 때마다 주변 상황들이
점점 어긋나기 시작한다.
cine pick!
해외 유수 매체들과 관객들의 호평이 이어지며 흥행성과 작품성을을 입증한 <어바웃 타임>은
국내에서도 누적 관객 수 344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을 입증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 네이버 영화
synopsis
비의 계절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미오가 이전의 모든 기억을 잃어
버린 채 남편 타쿠미와 아들 유우지 앞에 나타난다.
cine pick!
이치카와 다쿠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 로맨스
영화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며, OST도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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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 선택했지만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줄평 : 인간이 만든 도덕적 기준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신의 선택
▷영화 : 콘클라베(Conclave), 2025.3월
‘하나님의 선택’,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 ‘열쇠로 걸어 잠글 수 있는 방’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주1는 그렇게 불린다.
신적 대리인으로서 최고 권위를 가지는 교황을 뽑는 성스러운 과정으로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된다.
콘클라베에 참여하기 모여든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묵는 '성 마르타의 집'과 선거 장소로 사용되는 '시스티나 성당'은 외부와의 통신조차도 차단된다.
외부에서 이곳의 투표 결과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성당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의 색깔뿐이다. 하얀 연기는 교황이 선출되었다는 표시이다.
교황 선출 결과를 보기 위해 모여든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의 수많은 군중과 전 세계 TV들은 이 굴뚝만을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다.
종교 권력은 그렇게 철저히 성(聖)과 속(俗)을 구분해낸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콘클라베 장면(2013.3.12~13, 이틀에 걸쳐 총 5회 투표로 선출) / 출처 : 가톨릭평화신문(cpbc)
그러나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 선출 과정의 숨겨진 이면을 드러내며,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거침없이 허문다.
유명 여행지를 찾은 관광객처럼 캐리어를 끌며 숙소로 모여드는 107명의 추기경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다 흩어진 자리에 남겨진 담배꽁초들,
그리고 손에 아이폰을 쥔 채 대화를 나누는 모습까지 - 이 모든 장면은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향하는 추기경들과 바닥에 나뒹구는 담배꽁초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결국 사람을 통해 성취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교황 선출을 위한 투표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정치 행위다. 이 과정에서 교황이 되고자 하는 이는 자신이 적임자임을 설득해야 하고, 지지 세력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최고 권력을 향한 욕망이든, 세상을 자신의 신념대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종교적 이상이든, 가톨릭교회의 정점에 도달하고 싶은 열망이 없을 리 없다.
오랜 세월 추기경으로서 교회 정치에 깊이 관여해 온 이들에게 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욕구일 것이다. 이를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이곳에 모인 추기경들은 가톨릭 교회의 최고 지도자로서 적합한 인물이 누구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뿐이다.
그런 베일에 싸인 콘클라베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선택은 어떤 결말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갑작스러운 교황의 선종으로 이번 콘클라베를 주관하게 된 토머스 로런스 추기경(레이프 파인스)의 첫날 연설은 이 영화의 핵심 주제를 담아낸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다양성이고,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의심 없는 확신은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것은 의심과 함께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믿음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영화 <콘클라베> / 토머스 로런스(레이프 파인스)어쩌면 주인공 토머스 로런스(Thomas Lawrence)는 예수의 부활을 의심했던 열두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Thomas)를 모티브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요한복음 20장) [27절]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절]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좌)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 이번 콘클라베를 주관하는 토머스(Thomas) 로런스 추기경, (우) 카라바조(1573년~1610년)의 <의심하는 도마(Thomas)>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맹목적인 ‘확신’이 아니다. 오히려 믿음은 의심에서 비롯된다.
도마가 예수의 옆구리 상처에 손을 넣어본 뒤에야 부활을 믿게 되었듯이,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믿음은 내가 본 것이 틀릴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한 것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의심’으로부터 출발한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가 무오(無誤)한 존재가 아님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심’은 나를 변화로 이끄는 출발점이며, ‘확신’은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영화 <콘클라베>는 신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한 본질을 탐구하며, ‘의심’으로 가득 채운다.
과연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교황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말이다.
이 의심의 실체를 확인하고, 확신으로 바꿔야 할 책임이 토머스 로런스 추기경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감춰져 있던 아픈 과거도 드러나고, 세속적인 정치적 모략과 술수가 난무해진다.
교황청이라는 신성한 공간에서조차 세상 정치판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걱정은 이르다. 세상의 모든 조직이 그러하듯,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내적 역량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폐쇄된 공간에서 72명, 즉 투표인원의 3분의 2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엄격한 규칙 아래, ‘의심’은 반드시 ‘진실’로 귀결될 것이라는 당위성만은 변함이 없다.
이 제한된 시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선택의 과정은, 결국 하나님의 섭리가 깜짝 놀랄 방식으로 드러나는 무대가 될 것이다.
***이후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 이번 콘클라베를 주관하는 토마스 로런스 추기경
영화 <콘클라베>는 토마스 로런스의 시선을 따라 끊임없이 ‘의심’의 과정을 추적해 간다.
선거는 최선을 뽑는 것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것이라는 경구는 교황 선출 과정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런 선거에서는 예의 보수, 중도, 진보 성향의 진영 다툼과 각 진영을 대변하는 후보를 승리하도록 돕는 세 결집을 위한 노력도 치열하다.
네 명의 유력 후보가 앞서거니 뒤서기니 경합을 벌인다.
사회적 보수주의자인 나이지리아의 조슈아 아데예미(루시언 음사마티), 온건주의자인 캐나다의 조지프 트랑블레(존 리스고),
진보주의자인 미국의 알도 벨리니(스탠리 투치), 확고한 전통주의자인 이탈리아의 고프레도 테데스코(세르조 카스텔리토)이다.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 콘클라베 투표 특성상 참석한 추기경 중 한 명은 교황으로 선출되어야 한다
우선 초반 제3세계 국가의 추기경들로부터 지지를 받아 유력한 1순위로 치고 나가던 나이지리아 출신의 조슈아 아데예미 추기경이
30년전 저질렀던 수녀와의 성 추문이 드러나면서 자연스럽게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또 한 명의 유력 후보였던 조지프 트랑블레 추기경은 성직매매 비리가 드러나면서 교황 자리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유력한 두 후보가 가시권에서 멀어지면서 이제 남은 것은 진보진영의 알도 벨리니 추기경과 강경 보수파인 고프레도 테데스코 추기경.
내심 진보 성향인 토머스 로런스는 강경보수파인 고프레도 테데스코 추기경이 교황 자리를 차지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같은 진보진영의 알도 벨리니 후보가 있지만 세 결집이 미약하다.
이런 연유로 기도의 어려움을 겪으며 자신은 결코 교황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주인공 토마스 로런스는 어느새 교황의 자리를 욕망하게 된다.
‘의심’의 조정자 역할을 자임하던 주인공이 그 '의심'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격이다.
그 순간 성 베드로 광장에서 발생한 이슬람 세력의 폭탄 테러는 이 모든 상황을 반전시킨다.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 테러와 종교전쟁에 대한 토론은 추기경들의 가치관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강경 보수파인 고프레도 테데스코는 이때다 싶어 이런 이슬람 테러가 '상대주의 교리의 결과물’이라고 전임 교황의 정책을 비판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 전쟁과 저 짐승들과 싸울 전쟁을 이끌 지도자다'라고 극단적인 발언을 퍼붓는다.
이에 대해 그동안 조용히 투표에 참여해 오던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멕시코인 추기경인 빈센트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스)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방금 전쟁이라 하셨는데, 여러분이 전쟁에 대해 무엇을 알고 계신지 궁금하다. 카불에서 선교를 하면서 수많은 크리스천과 무슬림들의 시신을 보았다.
방금 우리가 싸워야만 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진정 싸워야만 하는 것은 오늘 아침 이 사건을 일으킨 것처럼 그런 망상에 빠진 사람들이 아닌, 우리 각자의 마음속이다.
우리는 지금 증오에 굴복하고 편을 가를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과 남성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화 <콘클라베> / 빈센트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스)
급격히 합리적 평화주의자로 보이는 빈센트 베니테스 추기경으로 표가 쏠리고, 최종 투표 결과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이제 토머스 로런스의 ‘의심’은 해소되었고, 바라던 교황이 선출되었다.
흡족해하며 토머스 로런스는 빈센트 베니테스를 향하여 교황 수락을 공식적으로 요청한다.
‘당신을 교황으로 선출하는 것을 받아들이십니까?’ 영화 <콘클라베>/ 토머스 로런스(레이프 파인스)
이제 마지막으로 대중에게 공표를 앞둔 시점, 토머스 로런스는 빈센트 베니테스 추기경에게 과거 제네바의 한 의료원을 방문했던 이유를 묻는다.
그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의심’을 완전히 지우고 싶었던 것이다.
충격적이게도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인터섹스(간성)’임을 고백한다.
신학교 시절에도 그는 다른 남성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맹장수술을 위한 건강검진에서 자신의 몸에 자궁과 난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임 교황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의심’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영화는 신임 교황 인노첸시우스(‘순수한’ 또는 ‘정결한’이라는 뜻)의 선출에 환호하는 성베드로 광장의 함성소리와
성 마르타 집의 평화로운 창문 밖 풍경을 보여주며 황급히 막을 내린다.
비로소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음을 선언해 버린 것이다. 신은 그를 교황으로 선택한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스크린을 보고 있노라니 슬며시 화가 났다. 마음을 추스를 시간은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시간이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 여전히 지금까지도 그 ‘의심’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의심을 거둬들일지는 온전히 관객들의 몫으로 남았다.
과연 ‘우리는 그/그녀를 교황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 영화 곳곳에 ‘소수자’의 그림자를 남겨 놓았다. 이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 참조자료(YouTube)
1. [cpbcTV가톨릭콘텐트의모든것] 하느님의 선택, 콘클라베
https://youtu.be/DXdxzv4ayz8?si=4vkhBO5R9QRTtBEL
202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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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심한 밤, 다섯 대의 택시에서 벌어진 일
8★/10★
다섯 개의 도시 그리고 다섯 대의 택시. 야심한 밤, 각 택시에서는 특별한 일이 벌어지는 중이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지는 영화 속 기묘한 사건들은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풍자적인 웃음을 자아낸다.
먼저 로스앤젤레스. 거친 느낌을 지닌 소녀 배우를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는 캐스팅 디렉터가 택시를 탄다. 캐스팅 문제로 여기저기 통화하며 골머리를 썩는 중, 내내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택시 기사가 보인다.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그녀는 제작자가 애타게 찾던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다. 캐스팅 디렉터는 드디어 적임자를 찾았단 안도감에 기사에게 캐스팅을 제안하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은 정비공이 되는 게 꿈이라며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 허탈한 웃음. 할리우드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대신 정비공의 꿈을 추구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바보 같은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린 택시 기사에게는 일확천금의 기회보다 자신의 꿈을 성실히 좇는 게 더 중요하다.
다음은 뉴욕이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애태우다 간신히 탑승한 택시 기사가 어딘가 이상하다.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심지어 운전도 제대로 할 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손님과 기사가 자리를 바꿔 목적지로 향한다. 승객은 동독에서 서커스 단원으로 일했다는 기사에게 친근감을 표하면서도 그를 다소 우습게 보는 듯한 기색도 보인다. 그러나 정작 마지막에 편안한 웃음을 짓는 건 영어도, 운전도 할 줄 모르는 뉴욕의 택시 기사다. 때로는 내면의 단단함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매너가 엉망인 손님들을 태운 후 기분이 상한 상태인 파리의 택시 기사. 그의 택시에 시각장애인 여성이 탑승한다. 기사는 무지가 깃든 호기심으로 승객에게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할 수 없는지를 구체적으로 캐묻는다. 여자는 자신이 보지 못하는 대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의연하게 대답한다. 택시 기사는 믿지 못하는 눈치다. 그에게 시각장애인은 무언가를 ‘결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팡이에 의지해 안전하게 목적지로 걸어가는 그녀와 달리, 택시는 그녀를 내려준 후 곧바로 사고가 난다. 이제 보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네 번째 이야기는 장난스러운 수다쟁이가 주인공인데, 그는 로마에서 택시를 운전한다. 심심하던 차에 때마침 신부가 택시에 오른다. 택시 기사는 다짜고짜 고해성사를 하겠다며 자신이 호박에 자위한 일, 양과 수간했던 일, 동생의 아내와 부정한 일을 저질렀던 일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기사가 자기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끝없이 수다를 떠는 동안, 뒷자리의 신부는 약을 제때 먹지 못해 숨을 헐떡이다 이내 사망하고 만다. 수다스러운 택시 기사의 방정맞은 고해성사를 감당하지 못하는 신부. 보편적‧도덕적 권위의 담지자인 신부가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이 처연하면서도 우습다.
마지막 택시는 헬싱키에 있다. 만취한 친구를 포함한 세 명의 남자가 택시에 탄다. 그들은 술에 뻗은 친구에게 아주 딱한 일이 있었다며 기사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차가 망가지고,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딸이 임신하고, 아내에게 이혼 통보를 받아 술을 진탕 들이켠 후 쓰러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내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기사가 그 정도면 감당할 만한 슬픔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승객들은 딸을 먼저 떠나보낸 기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먹이고, 그의 고통과 자신의 현재를 견준 후 큰 위안을 얻는다. 정작 가장 큰 위로가 필요했던 남자는 내내 뻗어 있느라 아무 위로도 받지 못했지만 말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가장 필요한 이에게 가 닿지 못하는, 가장 필요한 이가 소외당하는 위로와 연대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영화 도입부에서 톰 웨이츠가 걸걸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Back in the good old world〉)의 가사처럼, 우리 삶은 기껏해야 무덤 위 꽃다발밖에 남기지 못한다. 덧없는 허무함으로 점철된 삶에도 기억할 만한 순간이 있다면, 아이러니와 따뜻함을 동시에 품어 엷은 미소를 자아내는 사건들, 즉 영화 〈지상의 밤〉이 보여주는 장면을 닮았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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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 번 때리기만 하는 세상에게 어퍼컷 한 방
웩. 몸에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땀이 잘 나는 체질이라 그런가? 오늘 스웻셔츠 하나만 입고 돌아다녔는데 이런 냄새가 나는 건 좀 그랬다. 또 몸에 거북한 느낌이 있다. 위산이 역류하는 따가움이 싫었다. 그래도 책은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꾸역꾸역 읽는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오늘 비상금을 털어서다. 이렇게라도 오늘을 보내지 않으면 완벽한 잉여의 삶이 될 것 같았다. 어찌어찌 곳간을 털어서 3만 원을 갖고 왔다. 밖에 외출하기 위한 보람이 있다. 날씨도 때마침 좋았다. 비상금을 털어 버스를 탔다. 계속 방구석에 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기엔 인생이 아쉬웠다. 모처럼 게임 파일들도 다 지워 하나만 남겨놨다. 좋아. 다시 하나에 집중해보자고. 내가 살아온 갓생이 대학생이라는 허울 아래서만 가능했다면 여러모로 자존심이 상하다. 원래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해야 하는 거잖아? 아무도 동의 안 할지도 모르지만 난 그동안 이기고 있는 삶을 걸어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이 내가 탄 버스도 승자의 여유 같은 느낌이다. 뭐랄까, 내 또래에 책 읽는 사람 없는 것 같거든.
그럴 리가 있나. 갑자기 오늘 돈이 없어했던 행동들이 떠올랐다. 위에 썼던 곳간은 게임 머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아끼는 여동생의 생일선물도 없어 '카톡 메시지면 충분하겠지' 싶은 나의 정신승리가 오늘 일상의 발단이 됐다. 금세 하는 게임에 눈이 갔다. 모여있는 게임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 팔까? 어차피 모아봤자 디지털 쪼가린 거 이럴 때 써야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7개월 차 사회복무요원 생활. 이제까지는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지만 컴활 예약부터 영화 예매까지 돈 쓸 일이 많아 생활고에 직면했다. 이제는 팔 스니커즈들도 없다. 950원짜리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까지 와버렸다. 와. 그렇게 좋아하는 친한 여동생에게 생일 선물도 못 줘 안달복달하는 하루라니. 금세 내 삶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열심히 살아 모아놨던 돈이 없는 게 이렇게 돌아왔다. 그러니까 군것질 좀 적당히 쳐하면 될 일인데 역시 나는 모지리가 맞다. 여자 친구도, 넓은 인간관계도, 술과 담배도 하지 않거나 없는데 이럴 때 돈이 없어서 밖으로 못 나가는 처지다. 이기고 살았던 갓생을 산 사람 치고는 과연 궁색하기 그지없다. 아. 내 또래 중에 책 안 읽는다는 생각도 그냥 나의 생각이다. 주위를 들여다봤을 때 책 많이 읽는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도 있다. 에휴. 그럼 그렇지. 내가 만든 나의 기대를 내가 부숴버렸다. 나는 3만 원에 울고 웃는, 그 정도짜리 인간이다. 이런 나의 한 구석도 웃음으로 마무리 짓고 싶은데 말이지. 어떤 노래 가사처럼 지면서 배우는 게 삶이라지만 난 세상에게 너무 자주 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만든 세상은 참으로 광활해서 현실로 나가려면 긴 시간이 걸린다. 젠장. 언제 한번쯤 이길 수 있을까? 늘 세상에게 지고만 사는 것 같다. 미생의 삶으로 그렇게 가다 끝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근데 이런 나에게, 또 지루한 일상을 버티는 우리에게 아마추어 복싱 선수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딱 100엔짜리의 이야기라고 하는데, 실상 까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왓챠에 절찬 스트리밍 중인 <백 엔의 사랑>이다.
100엔짜리 인생
주인공 이치코는 일본 어느 곳에 사는 32세 여성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쭉 백수인 이치코. 어린 조카가 한 명 있다. 조카는 허구한 날 괴롭힘이나 당한다. 이모가 돼서 이런 조카와 같이 운동을 한다거나 자신감, 자존감을 키워주면 좋겠지만 이치코에게 그런 건 없다. 하는 일이라곤 조카와 게임을 하는 게 전부인 이치코. 맨날 '나 언니처럼 되면 어떡하지'식의 시비 걸기가 전부인 동생과 크게 싸우게 된다. 머리에 케첩을 붓고 식탁을 엎은 꼴에 어머니는 폭발해 이치코에게 독립을 권유한다. 그렇게 반강제로 집에서 쫓겨난 이치코. 다행히 어머니와 절연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임대주택으로 거처를 옮긴 이치코, 평소에 자주 가던 100엔 숍에 취직하게 된다. 이왕 일자리 구한 거 좋은 곳에 들어갔으면 좋았을 걸 그거랑은 거리가 멀다. 가게 점장은 우울증 환자다. 또 동료직원 노마는 띠동갑인 주제에 이치코에게 치근덕대는 게 일쑤다. 또 말도 더럽게 많아서 여러모로 사람을 귀찮게 한다. 게다가 도둑질을 해서 잘렸던 한 할머니는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이나 가락국수를 지맘대로 가져가곤 한다. 역시 사회생활에 쉬운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다니는 이치코. 뭔가 큰 임팩트가 있는 사건 없이 그렇게 일상이 흘러갈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100엔 숍의 단골쯤 되는 사람이다. 스윽 나타나서 바나나만 사 가는 사람이라 '바나나맨'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바나나맨은 말투부터 표정까지 건조한 사람이다. 웃지도 않고 말투도 그렇게 예의가 바른 사람이 아니라 영 까칠해 보인다. 그런데 그 남자가 어쩐지 이치코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32년의 인생 동안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이치코. 바나나맨의 정체는 알고 보니 전직 복서였다. 바나나맨과 사랑에 빠진 이치코. 바나나맨이 선수로 뛰었던 복싱 운동장에 등록해 뭐라도 부딪혀보기로 한다. 영화는 잘하는 것도, 재미있는 것도 없었던 이치코가 사랑을 만나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원히 지고 사는 거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원한 건 없다. 이는 사람이 있으면 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 뜻은 패자가 되는 일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냥 피하기만 어려우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런 경험들은 사람의 마음속에 축적된다. 이런 과정을 안 거치고 싶지만 사실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렇게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다. 패배자. 루저. 뭐 그런 생각을 스스로에게 품게 된다. 가끔은 '이런 말로도 이 상황의 위로가 될까'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점점 사람이 외로워지는 이유도, 그런 실패의 경험을 타인이 짐작할 수도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럴 때 사람에게 뭔가 색다른 위로가 필요하다. 단순히 '그냥 잘 될 거야'식의 위로가 아닌 새로운 시각의 무언가가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그래서 연애를 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내가 사랑하면서 날 아끼는 이에게 기대면 행복해진다. 근데 매 순간 연인에게 기댈 수 없는 노릇이다. 그/그녀가 도라에몽이 아니니까. 항상 내가 원하는 걸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 '색다른 위로'에 관한 영화다. 영화는 여주인공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온갖 방식으로 괴롭힌다. 특히 동료였던 노마 캐릭터는 진짜 한 대 때려버리고 싶은 첫인상을 끝까지 유지한다. 또 바나나맨이나 복싱같이 이치코가 사랑했던 대상들도 한 방씩은 먹인다. 그렇지만 이것들 덕에 그녀가 웃는 날이 몇 번은 오는데, 이게 '이치코가 어떤 걸 바쳐서 이 결과들을 얻었나'를 생각해보면 영화가 하려는 말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 것이다.
솔직히 좀 과하긴 해
극을 보면서 느껴지는 단점은 살짝 과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게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크게 지장이 가는 정도는 아닐 것이지만 작위적인 설정이 있기는 했다. 일례로 주인공의 100엔 숍에서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을 가져가던 아주머니 묘사가 그렇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이 사람이 굳이 이럴필요가 있나? 싶은 구석이 있다. 인물의 귀결을 안 내도 되는데 급 마무리한 느낌? 또 노마 캐릭터도 보면서? 싶은 구석이 있다. 이 사람의 패고 싶은 캐릭터성은 그 값을 충분히 하지만 벌인 일에 책임을 안 지는 느낌이다. 이 둘의 인물 설정이 영화니까! 실제가 아니니까!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극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좀 기능적으로만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설정이 어느 정도는 작위적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좋은 편이다. 일단 바나나맨과 이치코의 캐릭터 설정이 좋았다. 바나나맨이 좀 나쁜 놈이긴 해도 이치코에게 동기부여를 심어주는 역할을 제대로 했다. 적당히 나쁜 놈이라 거리감에서 오는 그 매력이 딱 잘 느껴졌다. 자기 이야기라곤 도통 안 하는 바나나맨. 바나나맨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가 복싱선수였다는 점이다. 인물 설정과 여주인공의 각성 계기가 연관이 있어 이 부분의 개연성이 딱딱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 남주인공에게 관심이 생기고 이와 나서도 비슷하다. 복싱이라는 스포츠는 상대방을 주먹으로 때리는 스포츠다. 근데 이치코는 처음 여동생과 싸우고 집에서 쫓겨난다. 개싸움으로는 케첩도 붓고 별의별 짓을 다하지만 이치코는 복싱에 문외한이다. -물론 복싱을 하나둘 씩 배워 엔딩신에서 결투를 벌인다.- 난 비유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힘을 영 못쓰는 우리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무슨 기계도 아니고 늘 잘할 수는 없다. 언제는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애가 됐다가 내일 성숙해지는 게 우리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복싱(실전)에는 약해도 내 만만한 선에서(가족)는 여포가 되는 우리 모습이다. 보통 이런 내 모습을 알게 되면 자괴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챔피언이 될 수는 없어도 100엔짜리 개싸움은 가능한 여주인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물은 더 나은 선택지를 위해 미친 듯이 산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이 사람에게 이입이 가능하게끔 극본이 인물 간의 연출과 사건 배치를 잘한 편이다. 즉 영화를 주인공의 매력 하나만으로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말씀!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백조로 날아오르는 이치코에게 뭔가 정이 간다.
안도 사쿠라의 격이 다른 루저 연기
안도 사쿠라라는 이름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느 가족>에서 우는 연기가 칸에서 엄청 극찬을 받았다고 알고 있다. 이 사람이 연기하는 건 이번에 처음 봤다. 뭐랄까, 처음에 덩치가 좀 있게 나올 때는 이렇게 미련해 보일 수가 없다. 그냥 눈빛이랑 뒤태만으로도 둔해 보인다. 또 극 중반에 고기를 먹는 신이 있는데 젓가락질도 서투른 사람이다. 아니 젓가락질을 서투른 연기를 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극도로 섬세한 사람이 아니면 이런 디테일을 포착하지 못할 것 같다. 또 바나나맨에게 지나치게 순종적인 여자 친구 역할도 잘 수행해낸다. 자칫 보면 지 가족에겐 나빠도 남자 친구에겐 착한 이중적인 모습이 밉상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선을 잘 탄 느낌이다. 이 영화에서도 사랑의 힘을 받아 변하기는 했다. 그런데 안도 벚꽃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찌질이 연기를 하면서도 하이라이트의 당당한 모습을 2시간 내내 유지한다. 뭐 루저였던 사람의 성장 서사는 다른 영화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사람은 뭔가 느낌이 다르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자기가 루저였던 시기가 있지 않고 나서 이런 게 가능할까? 싶은 연기다. 일본식 찐따 코미디로도 괜찮은 작품이다.
이게 전부는 아닐 거야 웃는 날 꼭 올 거야
이 영화는 잔인한 현실을 담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치코의 삶과 우리는 그렇게 다르지 않다. 인생은 원래 지면서 배우는 거라지만 어째 가슴속에 패배 소식이 너무나도 많이 쌓였다. 그러다 보면 이 세상에 난 어울릴 수 없는 걸까, 루저가 되는 기분이다. 이치코도 마찬가지다. 37살에 복싱 시합에 나가 두들겨 맞았던 바나나맨처럼 삶에서 피동적이었던 이치코. 이치코는 마음이 자라 이제 세상에게 반격을 준비한다. 우리 모두 이치코가 하려고 했던 이 '반격'의 한 갈래 안에서 살고 있다. 1인분의 삶을 하고 싶어서가 열심히들 사는 이유 아닌가. 그렇게 세상에게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더라도 뭐라도 미친 듯이 부딪히는 게 우리 모습이다. 영화는 이런 우리에게 글러브 하나를 건네준다. 싸우라는 것이다. 어차피 이 삶에서 이기고 살 수는 없다. 그러려면 이왕에 다 걸어서 뭐라도 얻고 끝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감독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야 엔딩처럼 좋은 시간이 올 테니까. 다들 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피투성이가 되야 세상이 우리에게 잠깐의 시간을 주곤 했으니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왓챠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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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했지만 발전하지는 않은 마동석 유니버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베트남 납치 살해범 검거 후 7년 뒤, 광역수사대로 소속을 옮긴 ‘마석도’(마동석). 어느 날, 그는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사망 사건을 조사하다가 신종 마약 범죄가 개입한 정황을 포착한다. 이에 그는 강남 클럽과 술집을 중심으로 마약 수사를 벌이기 시작하고, 일본 야쿠자가 마약을 유통한 증거를 확보한다.
한편, 마약 공급 책임자인 '주성철'(이준혁)은 야쿠자로부터 받은 마약을 빼돌려 사업을 키우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이에 야쿠자는 킬러 '리키'(아오키 무네타카)를 보내 주성철을 제거하려 한다. 때마침 야쿠자와 협력한 한국인 공범을 쫓는 마석도의 수사망도 주성철을 향해 좁혀 오면서 마약 사건 규모는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변화를 천명하다
2017년에 첫 발걸음을 내디딘 <범죄도시> 시리즈. 영화 2편으로 MCU(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말이 나올 만큼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예상치 못한 흥행이라서 더 빛났다. 1편은 역대 한국 청불 영화 흥행 3위라는 기록을 썼다. 2편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팬데믹 기간 최고 흥행작 자리도 차지했다.
한계도 있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단순했다. 마석도 대 범죄자. 악랄한 범죄자를 마석도가 시원하게 때려잡는 내용이었다. 1편도, 2편도 다르지 않았다. 한계는 캐릭터로 극복했다. 배우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가져온 마석도, 감초 같은 활약을 보여준 장이수, 서로 다른 결의 잔인함을 보여준 빌런 장첸과 강해상까지.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인물들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범죄도시3>는 변화를 추구했다. 시리즈의 새 동력을 찾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마석도 못지않은 인기 캐릭터인 장이수를 과감히 배제했다. 마석도의 팀원도, 액션 스타일도 달라졌다. 빌런이 둘 등장해서 대립 구도가 복잡해졌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다. 영화는 더 통쾌하고, 더 웃기다. 하지만 발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순간 머뭇거린다. 시리즈의 관성에 기대면서 자기 발목을 붙잡고 말았다.
통쾌한 주먹과 유쾌한 웃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액션이다. 전편에서 마석도는 주먹 한 방을 앞세워 범죄자를 제압했다. 이번에는 복싱 액션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거리에서 행패 부리는 불량배를 만난 마석도. 그는 날렵한 몸놀림, 간결한 펀치, 연속적인 공격으로 그들을 제압한다.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던 괴한을 힘으로 제압한 전편과는 사뭇 다르다. <이터널스>에서도 볼 수 있었던, '마동석'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잘 드러난다.
기존 장점은 유지하면서 액션은 더 통쾌해졌다. <범죄도시> 표 액션은 리액션이 특징이다. 마석도가 주먹을 휘두른 뒤의 상황을 역동적으로 담아낸다. 깡패는 주먹에 맞아 날아간다. 그들 덕분에 주변에 있던 벽이나 가구 같은 구조물도 같이 깨진다. 슈퍼맨 때문에 무너지는 건물과 폭발하는 주유소를 강조한 <맨 오브 스틸>을 보는 듯하다.
코미디 분량도 늘었다. 2편도 1편보다 코미디에 힘을 준 인상이 강했는데, 3편에서는 강도도 세지고 빈도도 늘었다. 특히 시리즈를 모두 본 관객이 지루하지 않게 하는 연출이 돋보인다. "5 대 5 중에 누가 5야?"와 같이 전편에서 화제가 된 대사를 변형하거나 일반적인 예상이 아닌 허를 찌르는 상황 전개를 보여주는 식이다. MCU라는 같은 줄임말을 쓰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가 보여주는 유머와 결이 유사하다.
현실을 놓치지 않는 이야기
현실을 품은 서사도 인상적이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사회적 열망을 반영한 일종의 집단 판타지라고 볼 수 있다. 근래 한국 사회에서는 엄벌주의에 대한 갈망이 커졌고 형량 강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처럼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상황에서는 환상 하나가 필연적으로 생겨난다. 강력한 힘을 가진 누군가가 정의를 실현해 주기를 바라는 열망이다. 마석도의 속 시원한 주먹을 향해 환호와 탄성이 쏟아지는 이유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절묘한 타이밍에 적절한 환상을 보여줬다. 각 시점마다 대중적으로 주목받은 범죄를 소재로 삼았다. 1편은 조선족 범죄를 다뤘고, 2편은 연쇄살인범이 빌런이었다. <범죄도시3>도 마찬가지다. 최근 이목을 끌었던 마약 범죄를 다룬다. 그 덕분에 마석도의 활약은 또 한 번 쾌감을 선사한다. 주먹이 변호사라고 하거나 조금 더 맞아야겠다는 대사도 시리즈의 정체성과 매력을 보여준다.
새로운 빌런 활용법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더 짜릿하다. 만약 <범죄도시3>가 마석도 대 범죄자 구도를 답습했다면 자칫 역풍을 만날 수도 있었다. 피로도가 쌓일수록 자기 복제라는 비판 여론을 피하기 어려울 테니. 하지만 이번에는 함정을 잘 피해 갔다. 악역 한 명의 역할을 주성철과 리키로 나눴다. 지략이 돋보이는 부패 경찰과 일본도 달인 야쿠자가 서로 견제하는 신선한 구도를 만들었다. 관계는 복잡해지고 서사는 풍부해졌다. 더 많은 적을 상대하는 마석도의 분투도 자연히 돋보인다.
결정적인 순간 망설인다
아쉽게도 <범죄도시3>는 변했지만, 발전하지는 않았다. 변화를 진보로 이어가는 데 실패했다. 눈에 띄는 문제는 빌런이다. 악역을 둘로 나눠서 색다른 구도를 만든 시도는 좋았다. 활약도 없지는 않다. 리키는 무자비하게 상대방 숨통을 끊는 위압감을 발산한다. 주성철은 마석도와 리키를 모두 속이고 목적을 이룰 뻔한 지략을 자랑한다. 그러나 둘 모두 강한 임팩트는 없다. 장첸이나 강해상하면 생각나는 명대사도 없다.
눈에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중요한 설정이 정작 서사에 제대로 녹아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성철은 부패 경찰이다. 경찰 직위를 악용해서 자기 범죄를 감추고 사업을 넓힌다. 부패 경찰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악역은 시리즈에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내부의 적은 사법과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마석도의 영웅성도 한 차원 더 파고들 기회였다.
즉, 마석도와 주성철의 대립은 관객인 신뢰하는 판타지 속 경찰과 불신하는 현실 속 경찰의 대결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판타지와 현실의 대결인 셈이다. 따라서 이 설정을 잘만 활용한다면 영화의 결말에는 더 강렬한 카타르시스가 깃들 수 있었다. 실제로 작중 주성철의 존재감이 가장 큰 장면은 그가 사람을 죽이거나 음흉한 미소를 지을 때가 아니다. 정체를 숨긴 채 경찰 대 경찰로 마석도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영화는 부패 경찰이라는 설정을 그 장면에서만 활용한다. 다시 꺼내지 않는다. 주성철이 '경찰'로서 마석도를 위기에 빠뜨리거나 수사를 방해하는 대목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그저 평범한 범죄자이자 마석도에게 붙잡힐 어린양에 불과하다. 오히려 중간 빌런처럼 등장한 리키가 마석도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힌다.
변화와 발전은 다르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범죄도시3>는 도전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시리즈의 관성에 의지한다. 물론 장수 시리즈라면 일종의 공식을 갖기 마련이다. 8편까지 나온 <해리포터> 시리즈도 프리벳가 4번지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는 해리가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고, 호그와트에서 사건의 흑막을 밝히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래도 잘 나가는 장수 시리즈는 각 단계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장면만큼은 바꾸려고 노력한다. 해리가 아니라 볼드모트 시점에서 영화를 시작하기도 하고(불의 잔), 호그와트로 가기 전에 그리몰드 광장 12번지나 마법 정부 같은 새 장소를 등장시키거나(불사조 기사단), 프리벳가 4번지가 등장하지 않기도 한다(혼혈왕자).
<범죄도시3>에서는 이런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는 악역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제목이 나온 다음에는 길거리에서 벌어진 범죄를 간단히 정리하는 마석도를 보여준다. 농담을 주고받는 마석도와 팀원들이 그 직후에 나오고, 본격적인 사건이 등장한다. 전편의 전반부와 토씨 하나 빼지 않고 똑같다. 등장인물과 대사만 조금 다를 뿐이다.
마무리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혼자 걸어가는 마석도의 뒷모습을 비춘 후, 회식으로 끝낸다. 시리즈 관성에 그대로 기댄다. 좋은 설정을 손에 쥐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이유다. 그러다 보니 장이수의 복귀를 암시하는 쿠키 영상은 반가운 만큼 걱정된다. 혹시나 익숙한 길로 회귀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깃들기 때문이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이미 한국 영화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한국 영화계가 양극화됐다는 비판을 받을지언정, 이처럼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닌 프랜차이즈는 찾아보기 어렵다. 주말 사전 개봉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위협할 정도니까. 이 시리즈의 흥행은 한국 영화 부흥과 큰 관련이 없다고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확실한 매력으로 무장한 <범죄도시> 시리즈가 앞으로는 조금 더 나아지길 바란다. 단순히 변하는 게 아니라, 진일보하고 발전하길 바란다. 이미 8편까지 기획된, 이 유쾌하고 통쾌한 시리즈를 오래도록 만나고 싶으니.
Acceptable 무난함
일보 전진과 일보 후퇴. 시원한 주먹만큼 과감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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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한 켠에 항상 살아 숨 쉬고 있을 나의 할아버지.
자유와 혼돈이 공존하던 그 시절을 조명하는 영화 '아마겟돈 타임'은 자유로움을 원하는 소년이 다소 무모하지만 자신이 살고 싶었던 세상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내어 다양한 군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모순을 담고 있는 불편한 감정들까지도 솔직하게 풀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지인 줄 알았더니 인생이라는 선물로 가득한 이 영화는 이름처럼 웅장하지 않지만 잔잔하고 따뜻함이 흐르는 인생이 지속된 상실을 깨끗이 씻어준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남은 적막은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고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맴돌며 자신을 이끌게 했다. 기회가 된다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루 종일 머금고 싶은 영화다.
개인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가 얽혀 혼란을 불러왔던 1980년의 어느 날, 소년 폴의 모습을 보여준다. 폴은 종종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시간에 빠지곤 한다. 그 모습이 어른들에게는 좋게 비칠 리가 없었고 잇따른 통제는 미성숙한 일탈로 이어져 자신이 누리고 있던 자유까지도 잃게 된다. 성공이라는 예술과 내면의 본질이 충돌하며 방황이 이어지고 그 곁을 지키는 할아버지 '애런'은 적막과 함께 찾아온 사랑이라는 따뜻함이다. 내면의 본질을 또렷하게 만들어주고 비정한 현실 앞에서 따뜻하게 안아주는 그런 따뜻함으로 자신의 꿈을 더욱 굳건하게 빚어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키고 싶은 세상을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진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어른들의 선택으로 인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오기를 불러일으켜 무모한 용기로 번진다. 그에 따라 편견과 애써 싸우려는 노력은 비정한 세상 앞에서 물거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세상 앞에 놓인 부당함을 외면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폴은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이 머릿속에 그려졌던 세상이 얼마나 좁고 얕았는지를 알게 된다. 선택은 자유롭게 할 수 있으나 그 선택의 책임이 특권을 가지지 않은 누군가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된 것이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반복되는 차별은 곳곳에 피어나고 있으며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인종, 집안, 학력으로 구성된 다양한 편견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자신과의 길과는 다르길 바라는 마음에 의해 차별을 습득한다. 그 과정에 이루어지는 훈육으로 가장된 체벌은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훈육하는 과정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누구나 경험했듯 그 순간의 두려움을 일으켜 행동을 멈출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폭력적인 부모님의 순간보다 따뜻한 할아버지의 순간이 폴에게 깊게 스며들었다는 것을 폴의 방 안에 맴도는 목소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인생은 불공평함을 끊임없이 깨닫는 여정이다. 누군가에게는 무모함의 결과를 깨닫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달라지지 않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 과정은 매우 아프고 내면을 찢는 듯한 느낌까지 선사한다. 자신이 나아가고 싶은 올바른 길을 위해 세상과 싸워보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더욱이 한 사람의 움직임과 생각은 이 사회에 미미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더욱 무력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넓고 불평등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참고할만한 해설과 앞서 나간 사람들의 발자취는 무수하다. 과거에 갇혀 현재를 외면하느냐, 미래를 설계해나가느냐는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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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사제들의 뒤를 잇는 "검은 수녀들" / 단순하지만 독특한 설정 / 크게 무섭지 않은 순한 맛 호러 /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검은 수녀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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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에이이치로가 그린 사상 최고 인기 만화를 실사로 옮긴 작품, 그 대망의 첫 영상을 지금 공개한다. 《원피스》, 8월 31일 출항.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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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다이노 특공대, 과거로 출동~!
공룡 세계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어드벤처가 시작된다!공룡 연구를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떠난 뒤 사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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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를 발견한 기쁨도 잠시, 뜻밖의 위기에 빠진 ‘우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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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초식동물 마을을 탐내는 포악한 공룡 ‘디에고’의 등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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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두 친구는 위기에 처한 공룡 마을을 지켜내고
‘우디’는 무사히 현재로 돌아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