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선이정2022-08-27 22:32:33

[SIWFF 데일리] 유리병 편지에 답장을

<퀴어 마이 프렌즈> 리뷰

 

감독] 서아현

출연] 송강원, 서아현

시놉시스] 한국 사회에서 이성애자 여성이자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현이 절친한 친구이자 동성애자 남성인 강원과 우정을 쌓는다. 영화는 서로 다른 성 정체성과 삶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 크고 작은 다름과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공존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선다.

 

* * *

 

 

익명의 편지를 받다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편지를 받았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연자인 ‘강원’ 혹은 출연자이자 감독인 ‘아현’, 혹 다른 누군가일까요? 발신자를 알 수 없으니 이 편지를 유리병 편지라고 해 두겠습니다. 유리병 편지가 뭔지 아시나요? 편지를 유리병에 담아 봉해 바다에 띄워 보내는, 수신자와 발신자를 알 수 없는 편지입니다. 20세기의 낭만 같은 것이 묻어 있죠.

 

익명의 편지를 받고 또 누군가에게 답장을 건네는 심경으로 적어 봅니다. 일단 저에 대해 말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당신이 이 글을 읽을지, 이 영화를 볼 지 정할 수 있을 테니까. 저는 굳이 따지자면 이 영화의 아현처럼, ‘기독교인 이성애자 여성’이라는 축에 서 있습니다. 교회 품에서 자랐고, 지금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가장 따뜻한 말도, 가장 징그러운 말도 교회에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동성애자를 대하는 태도에는 꽤 오래 의문을 품어 왔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인데, 왜 콕 집어 동성애자만 배척하는 걸까요? 왜 동성애자는 ‘용서받지 못할 죄’ 취급을 받는 걸까요? 음란과 탐욕도 함께 기록된 죄인데, 왜 거기에는 아무도 돌을 던지지 않는 걸까요?

 

비슷한 의문을 품어 보았다면, 아니 꼭 의문이 아니어도 호감 혹은 멸시 어떤 감정이라도 품어 보았다면, 무색무취가 아닌 다른 색깔이 당신 안에 있다면 한 번쯤 보시면 어떨까 권해 보고 싶습니다. 결혼과 연애, 종교와 사랑. 스스로를 동성애자라 부르든 기독교인이라 부르든,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가 아닌가요? 한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생각해 보아서 나쁠 건 없습니다.

 

 

 

우리는 닮아 있다

‘기독교인 이성애자 여성’이라는 점에서 아현과 비슷한 축에 서 있었다고 말했죠. 착잡한 표정의 아현 뒤로 그의 방을 보았습니다. 영화 <레토> 미니 포스터, 바다가 그려진 엽서, 세이브더칠드런 마크. 비슷한 결의 그림들이 제 방 벽에도 붙어 있습니다. 이전의 세상과 섞이지 못하는 착잡함 또한, 제가 최근 몇몇 기독교인 친구들과 말해왔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한편 강원을 보면서도 저와 비슷한 축에 서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특히 “공동체community”를 계속 이야기하는 그가, 공동체의 힘을 믿는다는 말이, 상처받았을 때에도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던 그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배운 좋은 말 중에서도 손꼽아 좋아하는 말이 ‘공동체’거든요.

 

 

아현과 강원처럼, 우리 같이 친구 되어 고민하면 안 될까 하는 말랑말랑한 생각이 올라옵니다. 나와 다른 이들과 섞이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정말 두려운 건 섞이지 못하는 감각입니다. 돌이켜 보면 나와 다른 사람들과 서로 마음을 열고 섞이는 순간의 대화가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많은 공통점이 있어도 차돌처럼 단단한 마음 앞에서는 결국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고요. 상대가 절 볼 때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래서 쓴 답장

 

모두가 모두의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랬다면 여기가 천국이겠죠. 가끔 반목하거나 튕겨 나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순간도 있습니다. 상처받고 싶지 않고, 동시에 상처 주는 것조차 지긋지긋해서 도망치고 외면하는 마음도 알고 있잖아요. 그러나 그 최후의 순간까지는, 서로의 다양한 면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서로 반목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만으로도 이미 너무 어려우니까요. 각자 소용돌이를 안고 걸어가는 세상이니까요.

 

몇 년에 걸쳐 오랫동안 강원을 담은 영상들을 보며, 아현은 물론 강원 본인조차 자신에게 스스로 몰랐던 여러 가지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떤 일면들은 카메라의 시선으로 찬찬히 담을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런 소중한 유리병 편지를 받게 되어 고마운 마음입니다. 웃고 울고 각양각색의 감정들을 오랜 시간 동안,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서 담아 준 두 사람에게 답장할 수 있다면… 짚어주어 고마운 지점이었다고 인사하고 싶습니다. 교회에서는 물론 퀴어 퍼레이드에서도 들리지 않을 ‘회색’의 이야기, 소중히 건네받았습니다.

 

추신. 이 영화를 꼭 같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기를.

 

 

* *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22. 08. 25 ~ 2022. 09. 01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상영

2022. 08. 26. 20:00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1관

2022. 08. 28. 13:00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관

작성자 . 선이정

출처 . https://brunch.co.kr/@sunnyluvin/258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Relative content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