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9-26 06:32:24
9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9월 23일~ 9월 25일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공조2: 인터내셔날> (-)

▶ 지난 번에 예상했던 대로 <공조2: 인터내셔날>가 5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셋째 주와 비교했을 때 주말 관객 수가 반절이 줄어들었지만, 누적 관객 수 600만도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주말 동안 (9월 23일- 9월 25일) 관객 수 48만 4,43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555만 5,40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지난 번에 예상했던 대로 <공조2: 인터내셔날>가 5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셋째 주와 비교했을 때 주말 관객 수가 반절이 줄어들었지만, 누적 관객 수 600만도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주말 동안 (9월 23일- 9월 25일) 관객 수 48만 4,43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555만 5,40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2. <늑대사냥> (NEW)
▶ 한국 영화 업계에서 보기 힘들었던 하드보일드 액션 장르를 제작해 기대를 자아내기도 하는 한편,
우려를 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수의 영화제에서 초청 받은 작품이자 화려한 배우진이 한자리에
모인 작품인만큼 많은 관객을 모은 것 같다.
주말 동안 (9월 23일~9월 25일) 관객 수 19만 4,94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2만 4,80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한국 영화 업계에서 보기 힘들었던 하드보일드 액션 장르를 제작해 기대를 자아내기도 하는 한편,
우려를 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수의 영화제에서 초청 받은 작품이자 화려한 배우진이 한자리에
모인 작품인만큼 많은 관객을 모은 것 같다.
주말 동안 (9월 23일~9월 25일) 관객 수 19만 4,94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2만 4,80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줄거리 |
동남아시아로 도피한 인터폴 수배자들을 이송할 움직이는 교도소 ‘프론티어 타이탄’.
극악무도한 이들과 베테랑 형사들이 필리핀 마닐라 항구에 모이고
탈출을 꿈꾸는 종두(서인국),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도일(장동윤)을 비롯해
이들은 각자의 목적과 경계심을 품고 탑승한다.
한국으로 향하던 중,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이들에게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극한의 상황과 마주하게 되는데…
줄거리 |
동남아시아로 도피한 인터폴 수배자들을 이송할 움직이는 교도소 ‘프론티어 타이탄’.
극악무도한 이들과 베테랑 형사들이 필리핀 마닐라 항구에 모이고
탈출을 꿈꾸는 종두(서인국),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도일(장동윤)을 비롯해
이들은 각자의 목적과 경계심을 품고 탑승한다.
한국으로 향하던 중,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이들에게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극한의 상황과 마주하게 되는데…
3. <아바타 리마스터링> (NEW)
▶ 전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아바타>가 4K HDR로 새롭게 리마스터링 되었다.
지난 2009년에 개봉했던 영화보다 더욱 선명하고, 생생한 화면을 즐길 수 있다.
주말 동안 (9월 23일~ 9월 25일) 관객 수 8만 8,918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1만 2,9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줄거리 |
지구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판도라 행성으로 향한 인류는 원주민 ‘나비족’과 대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가
‘아바타’ 프로그램을 통해 ‘나비족’의 중심부에 투입되는데…
▶ 전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아바타>가 4K HDR로 새롭게 리마스터링 되었다.
지난 2009년에 개봉했던 영화보다 더욱 선명하고, 생생한 화면을 즐길 수 있다.
주말 동안 (9월 23일~ 9월 25일) 관객 수 8만 8,918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1만 2,9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줄거리 |
지구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판도라 행성으로 향한 인류는 원주민 ‘나비족’과 대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가
‘아바타’ 프로그램을 통해 ‘나비족’의 중심부에 투입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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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이번 주 119회 예측 이벤트는 <늑대사냥>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유저분들이 예측해주신 영화 <늑대사냥> 의 9월 23일, 9월 24일, 9월 25일의 관객 수 스코어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19회 예측 이벤트는 <늑대사냥>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유저분들이 예측해주신 영화 <늑대사냥> 의 9월 23일, 9월 24일, 9월 25일의 관객 수 스코어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늑대사냥>의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먼저 <늑대사냥>의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62%, 여성 38%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20, 30대가 동일한 비율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40대, 50대, 10대 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늑대사냥>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20대 후반 여성과(28만 9,995명)과 40대 초반 여성(232,358명)이었습니다.
또한 <늑대사냥>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0.4%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늑대사냥>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남성 62%, 여성 38%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20, 30대가 동일한 비율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40대, 50대, 10대 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늑대사냥>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20대 후반 여성과(28만 9,995명)과 40대 초반 여성(232,358명)이었습니다.
또한 <늑대사냥>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0.4%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늑대사냥>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4. <육사오> (▼2)

▶ 9월 셋째 주에 2위를 차지했던 <육사오>는 두 단계 떨어진 4위를 차지하였는데요.
현재 누적 관객 수와 주말 관객 수를 보았을 때, <육사오>가 200만 관객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주말 동안 (9월 23일~ 9월 25일) 관객 수 5만 39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92만 9,450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9월 셋째 주에 2위를 차지했던 <육사오>는 두 단계 떨어진 4위를 차지하였는데요.
현재 누적 관객 수와 주말 관객 수를 보았을 때, <육사오>가 200만 관객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주말 동안 (9월 23일~ 9월 25일) 관객 수 5만 39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92만 9,450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정직한 후보2> (NEW)

▶ 아직 개봉을 안 한 <정직한 후보 2>가 시사회 등 여러가지 이유로 누적 관객 수 3만 명을 넘었는데
개봉 이후에는 훨씬 더 많은 관객이 모일 것으로 예상한다.
주말 동안 (9월 23일~ 9월 25일) 관객 수 2만 431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만 2,738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개봉과 동시에 1위를 차지하며, TOP 5 순위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 영화 <Don't Worry Darling>.
주말 동안(9월 23일~ 9월 25일) <Don't Worry Darling>의 매출액은 19,200,000 (한화 약 273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총 누적 매출액 역시 동일합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9월 16일 ~ 2022년 9월 18일)
1. <돈 워리 달링> 1920만 달러 (누적 1920만 달러)2. <더 우먼 킹> 1114만 달러 (누적 3,629만 달러)3. <아바타l> 1000만 달러 (누적 1000만 달러)4. <바바리안> 480만 달러 (누적 2843만 달러)5. <Pearl> 191만 달러 (누적 665만 달러)...씨네픽의 9월 넷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 아직 개봉을 안 한 <정직한 후보 2>가 시사회 등 여러가지 이유로 누적 관객 수 3만 명을 넘었는데
개봉 이후에는 훨씬 더 많은 관객이 모일 것으로 예상한다.
주말 동안 (9월 23일~ 9월 25일) 관객 수 2만 431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만 2,738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개봉과 동시에 1위를 차지하며, TOP 5 순위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 영화 <Don't Worry Darling>.
주말 동안(9월 23일~ 9월 25일) <Don't Worry Darling>의 매출액은 19,200,000 (한화 약 273억)의
씨네랩 에디터 Hizy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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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저는 단순히 영화는 영화, 내 삶은 내 삶이 아니라, 내 삶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크리에이터 '선이정'님 인터뷰
방자까님에 이어 오랜 시간 씨네랩과 함께 해온 크리에이터 선이정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세상 곳곳의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 애쓰는 선이정님의 일과 영화 그리고 글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볼까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네, 저는 씨네랩에서 ‘선이정’이라는 크리에이터명으로 글을 쓰고 있고, 본업은 NGO에서 해외 사업을 합니다. 시민분들께서 후원해주신 후원금으로 아프리카에 식수를 전달하거나, 학교를 짓거나, 여자아이들에게 생리대를 전달하는 등의 일이에요.
그동안 계속 궁금했었는데 크리에이터명을 ‘선이정’으로 짓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제 이름이 ‘선’으로 끝나요. 그래서 예전에 인도에 살 때 사람들이 저를 ‘Sunny’라고 불렀거든요. 그때 미국인 한 분이 잠깐 오셨었는데, 한글을 배우는 분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제 이름을 한글로 쓰면 ‘써니’라고 쓰는데, 이분은 항상 ‘선이’라고 쓰는 거예요. 그게 너무 귀여워서 사용하게 되었어요. 거기에 이제 성씨인 ‘정’을 더하면서, ‘선이정’이 된거죠.
NGO 단체에서 처음 일하게 되신 것도 인도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나요?
저는 원래 인도에 있을 때 NGO 파견 단원이었어요. 그래서 인도에서 귀국할 때 ‘NGO 일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어요. 싫었던 건 아니지만 할 만큼은 한 것 같아서 다른 일을 하려고 생각하며 한국에 왔고, 수험생활을 한 1년 정도 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하나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거예요. 제가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라서, 저한테 그 친구의 존재가 너무 당연했더라고요. 저에게는 처음 겪어보는 상실이었어요.
그 일을 겪고 우울한 시기를 보냈는데, 도저히 온 힘 다해 공부할 힘이 나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진로를 고민하다가 인도에 살 때 그곳의 아이들을 위해서 일할 때가 제일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슷한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공부를 할 때 매일 국제 뉴스를 봤거든요. 그때가 한창 시리아 내전이 심할 때라서 뉴스마다 시리아 아이들 사진이 나왔어요. 울고 있는 것도 아니고, 멍한 표정의, 아이들이 지을 수 없는 수준의 절망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예요. 그 모습이 마음에 많이 남았어요.
마음이 힘들었던 차에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진로를 정하게 됐죠.인도에서의 생활과 개인적인 경험 자연스럽게 현재의 일로 이끌었네요. 그래도 이 길을 걷고자 하신 지 꽤 시간이 지났어요. 그 사이에 다른 일을 해보고 싶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NGO 단체에서 일하게 되는 동력이 무엇인가요?
저도 일의 기쁨과 슬픔이 있기는 해요.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그래도 이 일을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다른 세상에 있는, 저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직업은 이야기를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 손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또, 후원자와 후원아동,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일들도 즐거워요.
(선이정님 추천작, <목소리들>(2025))
하시는 일을 통해 경험하시는 일들이 영화의 취향이나 선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할 것 같아요.
네, 엄청이요. 저는 영화제를 처음 다니게 된 계기 자체가 인도 영화 보기 위해서 였어요. 3년을 살았기 때문인지 인도가 가끔 그리울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영화제에 가서 인도 영화를 한두 편씩 봤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리아 다큐멘터리처럼 본업과 연관된 작품도 보게 되고 하면서 영화제를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지금도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나 사람들이 잘 안 보는 영화, 그런 영화를 엄청 좋아해요. 제3세계 영화 있잖아요. 제작 국가에 국가 이름 5개 정도 들어 있는… 그런 영화 있죠? (웃음) 딱히 국가를 보고 고르는 건 아닌데 시놉시스를 읽고 고르면 국가가 그렇게 분포가 되어 있어요. (웃음) 또, 개봉 절대 안 할 것 같은 영화도 영화제에서 영화를 고르는 포인트 중 하나죠.(개봉하는 영화는 나중에 봐도 되니까요. 영화제에서는 특히 여기 아니면 절대 못 보겠다 싶은 영화들이 있죠.)
네, 특히 영화제때 보면 난민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영화가 많잖아요.
이것도 일종의 자해라고 느껴질 때도 있어요. (웃음) 왜냐하면 다큐는 특히나 푸티지 자체가 정제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보기 힘들기도 하고, 폭력 상황은 배경도 비슷하게 보이거든요. 미얀마나 홍콩이나… 흔들리고, 최루탄 터지고 이러면 비슷한 장면들을 계속 보다 보면 멀미도 나고 힘들거든요. 그래도 약간 의리를 지키는 느낌으로 보러 가죠.그렇게 일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 영화를 좋아하다 보면 피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일을 하다가 힘들어지는 부분을 오히려 영화를 보면서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동기부여를 얻기도,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는 거죠.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있잖아요. 그 말에서 저는 희망을 얻어요.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외로울 때가 있거든요. 요즘 누가 후원해? 아프리카 아동이 중요해? 자기 삶이 중요하지! 그런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릴 때가 있어요.영화는 안 그렇죠. 각자도생을 주장하는 영화는 보통 별로 없잖아요. ‘영화’라는 매체 자체도 협업을 통해 완성되고, 영화에서 전하는 메시지도 대부분은 희망을 말하고 싶어하죠. 그렇게 영화 사이에 담긴 희망을 발견하면서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힘을 내게 돼요.
관련해서 영화를 보고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소셜 모임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처음에는 영화 얘기를 하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기존에 있는 활성화된 일반 영화 사교 모임을 나가기엔 에너지가 없고,
진짜 조예가 깊은 영화인들 모임에 나가기엔 그곳에서 제가 할 말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갈 수 있는 영화 모임은 어디일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영화 얘기는 뭘까’ 고민 했죠.
몇 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시리아에서 탈출하여 난민이 되기 전까지의 과정들을 이야기로 담은 <전장의 피아니스트>(2022)라는 영화를 본 생각이 났어요.
그 영화를 보고 나와서 혼자 있는데, 너무너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영화가 개봉하고 동종업계 친구들 데려가서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눴죠.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영화를 매개로 소셜 이슈를 이야기하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어요.
근데 모든 영화가 난민 같은 이슈를 주제로 하고 있지는 않잖아요. 그런 얘기만 하다 보면 한계가 있어서, 현재는 넓은 범위의 소셜 이슈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플랜 75>(2024)를 보고 나서 ‘우리는 과연 불안 없이 노년이 된 우리를 상상할 수 있는가?’, ‘이런 법안이 시행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런 얘기를 함께 나누죠,하나의 영화를 보더라도, 함께하는 사람들 각자의 해결하고 싶은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니까 전 방향으로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혼자였다면 생각하지 못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그럼 소셜 모임의 처음과 지금, 선이정님에게 변화를 가져온 것들이 있을까요?
저는 영화 얘기 같이 하고 싶어서 시작하긴 했지만 이 모임이 저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냥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좀 더 알게 되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소셜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을 같이 하는 것. 또,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많아요.
거기에 영화가 진짜 좋은 매개체라는 걸 느끼죠. 정말 난생 처음 보는 사람끼리 이름도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데, 본인의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영화를 매개로 하다 보니 인물에, 스토리에 기대 예민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게 되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느끼게 되었어요.(선이정님 추천작, <되살아나는 목소리>(2024))
영화 질문으로 넘어가볼게요. 선이정님에게 삶의 이정표 같은 영화, 내가 흔들릴 때마다 보고 싶은 영화가 혹시 있을까요?
음, 삶의 이정표까지는 아닌데 저는 마음이 힘들 때 <아멜리에>(2001)를 봐요.
쭉 한 번에 보지도 않아요. 그냥 틀어 놓고 밥 먹으면서 오늘 여기까지 보고, 그 다음 날 청소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보고 하는 식으로 보죠.
<아멜리에>를 보면 행복해져요. 주인공도 그렇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가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거든요. 그리고 혼자 살다 보니까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지친 감각이 아멜리에가 처음에 도시에서 느끼는 외로움, 그리고 사랑을 찾아 나서는 마음과 공명이 되더라고요.
또, 색감이나 이런 것도 예쁘니까 그냥 보고 있으면 저한테는 약간 행복특효약 같아요. 어떤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틀어 놓으면 행복해지는 영화예요.그리고 제일 많이 본 영화는 <러브레터>(1995)예요.
<러브레터>는 영원히 사랑할 것 같아요. 작년에 오타루를 갔거든요. 홋카이도에서 오타루로 가는 기차에 올라 내리는 눈을 보며 OST를 듣는데, 진짜 첫사랑 만나러 가는 기분인 거예요. 진짜 첫사랑을 만나러 갈 때도 그렇게 설렌적이 없는데. (웃음) 내 첫사랑이 이 영화였구나 그 때 다시 한번 느꼈어요. (웃음)음, 영화를 볼 때 이 작품 명작인 건 알지만 나의 5점을 줄 수 있는 영화는 다르잖아요.
4.5점을 주는 영화와 5점을 주는 영화의 차이점을 만드는 기준이 있을까요?심장을 쳐야죠. 내 심장을 폭행했다. 그럼 5점이죠. 근데 그게 기준이 없어요.
그냥 얻어맞는 거예요. (웃음)((웃음) 어떤 영화에 심장을 때려 맞은 건가요.)
작년에 개봉한 <되살아나는 목소리>(2024)라는 독립 다큐가 있어요. 박수남, 박마의 감독님이라고, 모녀가 같이 만드신 작품이에요. 그걸 보고 저렇게 살고 싶다, 저렇게 혁명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최근에는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님 작품 중에 개봉 안 한 작품인데,
<천상의 육체>(2011)라는 작품이 있어요. 그게 또 제 심장을 치고 갔어요.그럼, 일반적으로 영화를 볼 때 가장 주목해서 보는 지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의외로 영화 속의 공간을 주의 깊게 보는 것 같아요.
사실 예산의 차이가 있으니까 예산이 작은 영화는 공간도 조금 어설플 수 있잖아요.
그래도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그 에너지가 저를 그 영화에 스미도록 만들면 좋다고 느껴요. 다큐 같은 경우는 공간을 고를 수 없으니까 조금 다르긴 하지만요.(제일 좋아하시는 영화 속 공간이 있을까요?)
지금 생각나는 건 <페인 앤 글로리>(2019)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워낙 원색 많이 쓰고 공간을 예쁘게 쓰잖아요. 그 중에서도 어린 시절 장면에 등장하는 공간이 따뜻해서 좋았어요. 진짜 ‘이거다!’ 싶은 공간은 지금 딱 기억이 안 나네요. (웃음)
아, 최근에 좋았던 영화는 <더 폴: 디렉터스 컷>(2024)이 생각나네요.
어렸을 때 봤을 때는 그 정서가 잔인하다고 느껴졌어요.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잔인하게 느껴졌는지 말을 못 했거든요. 장면만 놓고 보면 더 잔인한 영화들이 많은데, 나는 왜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해서요.
그런데 커서 다시 보니까 그 ‘왜’가 제 안에서 언어화가 되더라고요. 절망에 빠진 사람을 절망의 끝까지 밀어 넣는 과정이 잔인했던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에서 빠져나오려 싸우는 모습이 지금은 좋게 느껴지더라고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화죠.
저 주목하는 거 공간 아닌가 봐요. 그런 에너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웃음)
청춘 영화들도 왜, 그런 에너지 있잖아요.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그런 느낌의 에너지를 전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시작되는 영화들이요.
공간은 아닌 걸로, 그냥 허세의 답변이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공간도 좋고 에너지도 좋고 둘 다 중요한 것으로 하겠습니다.(웃음))
남들은 잘 모르지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영화도 있을까요?
아직 개봉 안 했어요. 아마 곧 개봉할 것 같은데 <호루몽>이라는 작품이에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다큐멘터리 작품인데, 자이니치로 살아가시는 분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헤이트 스피치와 싸우는 인물의 법정에서의 시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어>(2022), <카운터스>(2018) 하셨던 이일하 감독님 작품이예요.
저는 보면서 힘을 많이 얻었어요.구성적 측면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결국은 그 주인공이 되는 인물을 사랑하면 그냥 사랑하게 되잖아요. 그분이 에너지가 넘치고, 또 혐오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굉장히 많은 힘을 얻게 된 영화예요.
글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처음에 영화로 긴 글의 리뷰를 쓰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단순히 좋아서 시작했어요. 제가 어떤 영화를 봤는데, 제 눈에 이런 것들이 보였다는 게 너무 좋아서 시작했죠. 제가 초반에 쓴 글은 거의 그냥 줄거리 요약이에요.
그저 신나가지고 써서 인터넷에 올려놓았는데, ‘진진’에서 개봉하는 영화 시사회를 초대해 주신거예요. 신기했죠. 그렇게 보고, 쓰고 것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쌓이고 쌓여서 여기까지 왔네요.글을 쓰다 보면은 감상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가 가끔 있죠. 요즘은 영화를 볼 때 쓰면서 보거든요.
시사회나 영화제 같은 경우에는 리뷰를 제한된 시간안에 쓰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일을 하니까 하루 종일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영화를 볼 때 꼭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노트에 필기를 하면서 보는 거죠. 그래서 감상이 잘 변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있기는 해요.
쓰다 보니 더 좋아지는, 그러니까 볼 때는 감정만 있었다면, 쓰면서 좀 더 명확해지는 때가 있어요.그런데 글로 기록하는 것의 장점은 영화를 만든 사람의 시간에 대해 내가 애정을 갖게 되는데에 있는 것 같아요. 자세히 뜯어보면서 글을 쓰다 보면 만든 사람의 의도를 알아채고, 이해하게 되는 거죠.
(선이정님 추천작, <말없는 소녀>(2022))
보니까 거의 150개의 리뷰를 올리셨어요. 꾸준함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어떻게 계속해서 지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나요?일단은 아직 좋아서 해요. 영화 보는 것도 좋고, 그걸 글로 쓰는 것도 좋아요. 게다가 씨네랩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계속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죠.
예전에는 제가 이걸 계속해도 될까 고민이 많았어요. 혼자 좋아서 하는데, 취미라기에는 들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거죠. 그쯤에 씨네랩를 만나서, 계속 새로운 기회들이 만나게 되었거든요. 이제 더이상 이걸 계속해도 될까 라는 질문은 하지 않아요.그럼, 안 써지는 글들을 쓰시는 노하우 같은 것도 있을까요?
없는데, 있으면 정말 배우고 싶네요. (웃음)
저는 만약 어떤 영화의 메시지가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면 왜 그랬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태풍 클럽>(1985)이 그런 작품이었거든요. 사람들이 이 영화에 감탄하는 이유는 알겠지만, 저에게는 너무 불편했어요. 아주 옛날 영화라서 중간에 폭력적인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저한테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이 영화가 전하는 대단함이 저는 유쾌하지 않았죠.이 감정에 대해 한참 생각을 하다가, 긍정적인 리뷰는 아니었지만 박경리 작가가 일본에 대해서 쓴 ⟪일본 산고⟫라는 책과 연결지어서 리뷰를 작성 했어요.
반대로 <서브스턴스>(2024) 같이 너무 좋은 감정에 압도되어서 정리가 안 돼서 못쓰는 경우들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도 다른 책과 연관 짓거나 해서 작성하죠.
결국 영화만으로 정리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경우에는 책과 같이 다른 인풋이 많아야 글도 잘 쓰게 되는 것 같아요.그리고 예전에 도움 많이 받은 말이 있어요. ‘정확하게 칭찬하는 글을 쓰고 싶다.’라는 신형철 평론가가 하신 말씀인데, 그 말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이 영화의 장점을 못 봐도, 이 영화의 장점이 분명히 있고, 그것들을 잘 찾아내고 싶다. 그저 단어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감정의 이유를 좀 더 정확하게 말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을 할 때 그 말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씨네랩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 주셨어요. 계속 함께해 주시는 마음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처음에는 멋 모르고 시작을 했어요. 계속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하이스트레인저 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죠. 그러면서 너무 이 영화 생태계에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영화 업계에 진짜 맑은 물 붓는 것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엔 긴장도 했죠. 그런데, 앞으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다짐하며 말씀해 주셨던 부분들, 시사회나, 영화제 프레스 같은 부분들과 같이 점점 뭐가 늘어나는 것을 눈으로 보이니까 더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그럼, 오랜 활동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두 번의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제천은 비도 많이 오고 처음 가본 곳이라 동선이나 시간을 정하는 데 미숙했다 보니 정말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요. 두 번째 제천은 정말 행복해서예요.
둘 다 다른 의미로 강렬해서 잊혀지지가 않아요. (웃음)
첫 번째 제천은 기자단 활동을 함께한 방자까님과 한동안 제천 얘기밖에 안했어요.그리고 그다음 제천에서는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이와이 슌지 감독님과 사진도 함께 찍고 해서, 제천이 강렬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때 인터뷰도 진행 하셨잖아요. 이번에 인터뷰 준비하면서 그 때 인터뷰를 진행해 주신 크리에이터분들의 대단함을 느꼈어요.
저는 직업상 종종 인터뷰를 할 때가 있어요.
현장에서 주민들이나 아동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할 때가 있는데, 사실 되게 힘들거든요.
인터뷰를 해본 적이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제가 원하는 답으로 유도하는 것처럼 될 수 있어서 질문을 잘 짜야 해요.
하지만 감독님들은 본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가 된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즐겁게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최근에 회사에서 영화 상영회 분기별로 진행해서 GV를 함께 하고 있거든요.
그것도 처음엔 정말 무서웠는데 세상에 완벽한 GV는 없다는 마음과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만 전달되게 하자고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그럼, 선이정님께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꼭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영화들이 있을까요?작년 8월에 개봉한 <이오 카피타노>(2023)라는 영화가 있어요.
사람들이 난민이 주인공인 영화를 생각하면 시리아같은 분쟁 지역을 생각하는데, <이오 카피타노>의 주인공 에드는 세네갈에서 왔어요. 거기에도 많은 문제가 있지만 분쟁이나 어떤 특정한 사건이 있는 곳은 아닌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세네갈을 나와서 유럽까지 가는 여정을 담았어요.이 영화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진짜 난민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세상에 내가 모르는 현실이 이렇게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영화예요. 국제개발협력 업계에 있는 제게도 너무 낯선 현실이었어요. ‘리비아 불법구금’이라고 흔히들 얘기하는 걸 들어만 봤거든요. 그냥 불법 구금 하나 보다 했는데, 그 불법 구금이 얼마나 끔찍한 형태인지를 이 영화로 처음 본 거죠.
그리고 또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2022)인데요. 누구나 어떤 상황에 처해 목소리를 내게 되는 일이 삶에 찾아올 수 있잖아요. 그들을 지켜줄 보호 장치가 없을 때 정말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죠. 그 상황에서 너무 아름다운 저항을 하는 영화였어요. 게다가 영화에서 보여준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통해 고민하게 만드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와 같은 영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이런 영화 리뷰를 쓰실 때 리뷰를 봐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쓰시기도 할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영화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영화의 숨어 있는 의미를 잘 찾는 사람도 아니예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영화가 촉발한 감정을 적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이 이제 제 일과 관련된 영화일 때는 그것에 대한 설명을 좀 더 서술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이 설령 본인이 이 영화에 대해 느낀 감정이 아니더라도, 제 글에서 묻어나는 감정을 읽고 ‘그래 이런 감정도 느낄 수 있지.’하고 공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업에 관련된 영화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친절하게 정리된다고 느꼈으면 좋겠고요.
예를 들어 <신성한 나무의 씨앗(2024) 리뷰 같은 경우에는 제가 이란의 상황을 같이 정리해서 올렸거든요. 이런 내용이 영화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인지 그것을 나누려는 마음은 또 어떤 마음인지 들어보면서 오늘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제가 살면서 겪어볼 수 있는 일의 총합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어떤 경우에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 못할 때가 있잖아요. 힘든 일을 겪으면 힘들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 힘듦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이 보여지는 지 상상할 수 없죠.
영화는 살아본 적이 없는 삶을 간접적으로 상상하게 하고, 살게 하면서 내 안에 나도 몰랐던 나를 끄집어내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좀 더 풍성해지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힘이 더 좋아지는 거죠.
저는 단순히 영화는 영화, 내 삶은 내 삶이 아니라, 내 삶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이 저에게 있어 영화의 가장 큰 의미인 것 같아요.
사람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을 살피는 선이정님의 따듯함을 느끼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영화를 사랑하는 한 명으로서 큰 힘을 얻은 시간이었습니다.세상을 연결하고자 하는 선이정님의 마음이 더 많은 분들에게 닿아 세상에 필요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선이정님이 추천하는 '몰랐던 세상을 알게 만들어주는 영화' 3편!
🎬 <목소리들> / 지혜원 감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책을 아시나요? 그 책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입니다. 모든 분쟁과 재난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를 먼저 칩니다. 약자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취약한 자리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다시 말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기에 분쟁과 재난 앞에 더 민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주 4.3사건은 분쟁/재난이라기보다는 국가폭력사건이지만, 약자의 얼굴이 더 쉽게 지워진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김군> 볼 때도 느낀 건데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사건이라고 해서 상처도 과거의 문장이 된 건 아니라는 걸... 이 영화에서 덜덜 떠시는 한 분의 모습 앞에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 <되살아나는 목소리> / 박수남, 박마의 감독
다큐멘터리를 좋아합니다. 특히 이런 어마어마한 분의 다큐멘터리는 마음을 쉽게 떠나지 않아요. 기억은 기록이 되고, 기록은 또 다시 기억이 되고, 그 사이 감상과 해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박수남 감독님의 탁월한 기억과 기록을 보며 “저런 삶이 가능하구나! 너무 멋지다!” 하고 무릎을 쳤어요. 이 영화를 스무 살에 보았다면 아마 다짜고짜 일본에 가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무릎을 꿇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록하는 삶이 얼마나 힘있는지, 제게 그 경계를 폭발적으로 열어준 영화입니다.
🎬 <말없는 소녀> / 콤 베어리드 감독
클레어 키건 소설 <맡겨진 소녀>를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 원작 소설과 각색 영화가 결이 너무 일정해서 경이롭습니다. 클레어 키건을 좋아하신다면 꼭! 추천드려요.
제게 이 영화가 인상깊었던 이유는,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돌봄의 객체일 뿐 아니라 돌봄의 주체가 되기도 해야 하는구나 느껴서예요. 우리는 흔히 돌봄 받지 못하는 아동들을 생각하고, 의무감이나 선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기 쉽습니다. 그러나 돌봄은 받는 사람 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요즘 세상에 너무 쉬이 잊힌 마음이지만, 제가 일할 때마다 생각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나는 행복하였네라!“ (시 <행복>, 유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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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터는 과연 훈장인가.
이 글은 영화 [브루탈리스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다른 사람들은 단순하게 나쁜 놈들이고, 나는 복잡하게 착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자신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는 얼마나 냉정하고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글귀였다.
그리고 보통의 영화에서는 단순하게 나쁜 놈과 단순하게 착한 놈이 나와서 지지고 볶다가 어느 한쪽의 손이 번쩍 들어 올려지며 승부가 결정지어진다. 그 끝이 감상하는 사람의 선호도와는 다를 수는 있을지언정. 그 끝에는 언제나 확실함이 보장되어 있기에. 영화의 결말은 관객들이 가장 기대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세 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괴롭혔던 이 영화의 결말은, 마치 기회비용이라도 받아내려는 것처럼 더욱더 기다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브루탈리스트의 결말에는 요즘의 우리가 선호하는 "사이다"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대체 누가 승기를 거머쥔 것인지에 대해서도 쉽사리 답을 내어놓을 수가 없다. 그저 사람이, 그리고 인물이 살아온 인생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라즐로 토스(에드리언 브로디) 개인의 허물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다. 하지만 타인도 복잡하게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그를 들여다보다 보니. 단 하나의 물음만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과연 흉터라는 것은 훈장이 될 수 있을까.
예전의 나였다면. 당연히 그렇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흉터는 남았지만. 새 살이 돋아 났으니 그것이 살아남은 승리자의 징표이며 더 강해졌음을 상징하는 것이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상처를 매번 마주해야 하는 사람의 의견 또한 그럴지에 대해서는 사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영화 속 라즐로는 그가 가진 재주 덕에 건축물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세월을 간직할 수 있다. 그 건축물을 볼 때마다 자신이 설계도를 그리던 순간부터 시작해 공사가 끝나던 생각이 나는 것은 물론. 영화에서처럼 자신을 감싸고 있었던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휘몰아쳐 생각날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자, 크고 작은 상처이며 흉터이자 동시에 훈장이 될 건물의 공개 순간을 보며.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뭉텅이 속에서 조금이라도 우세한 감정은 과연 무엇일 될지. 궁금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그는 늙고 병들었으며 이제는 명민함이라는 화로의 불도 곧 꺼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의 인생을 담고 올려 세운 결과들을 보면서. 당신은 대체 어떻게 느끼고 있냐고. 그 희미하고 복잡한 미소 외에 내던지고 싶은 말은 없느냐고.
라즐로는 내가 세워야 할 건물의 주춧돌을 덩그러니 남긴 채 나를 떠났다. 영화를 보고 나온 직후에는 이 모든 감정을 외면하고 싶어 했으나. 어째서인지 자꾸 곱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마도 나만의 건물은 완성이 될 것이다. 그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의 인생을 오롯이 담아서,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린 다음에야.
그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나 스스로가 질문한 물음에 대한 답을. 혹은 답에 준하는 근사치를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소망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작품들이 훈장에 가깝기를 바란다.
그의 힘들었던 삶을 기리는 공로상 같은 훈장이 아닌. 여태껏 해온 자신의 업적을 인정하는 심플한 훈장이 되기를. 그 이외에 어떤 의미도 담지 않은 훈장이길 바란다. 부디.
마치면서
어떤 영화를 해석하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나 개인 SNS에 올라오는 "끝장 해석" 류의 콘텐츠를 거의 소비하지 않는다. 물론 맞는 방향이나 해석이 있기는 하겠지만. 감상의 영역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은 결국 개인이라는 렌즈를 통해 관찰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무언가와 결합했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될 테니까.
두 세대에 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만큼 무자비한(?)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무수히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작품이다. 그 어떤 부분을 붙잡고 늘어져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이 글의 TMI]
1. 베이글 살까 말까.
2. 말린 고구마 친구가 줬는데 혼자 1톤 먹을 기세
3. 청소하기 싫다.
#브루탈리스트 #최신영화 #영화리뷰 #에드리언브로디 #영화리뷰어 #munalogi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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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영국] 친애하는 이디스에게
<X를 담아, 당신에게(Wicked Little Letters)>(2023, 테아 샤록)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서프러제트 운동이 한창이던 1920년대 영국, 작은 마을. 부모와 함께 사는 독실한 여성 이디스는 욕설이 잔뜩 담긴 편지를 여러 통 받는다. 이디스의 부친은 옆집 거주자 로즈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경찰은 정황과 ‘평판’(…)을 근거로 로즈를 체포해 버린다. 이디스는 ‘고난을 극복한 순수한 크리스천 여성’ 포지션으로 종교 행사에 참석하며 유명인사가 되고, 로즈는 다른 의미로 유명인사가 된 채 꾸준히 무죄를 주장한다.
사건의 공적인(그런데 비공식적인) 실마리는 글래디스로 인해 풀린다. 백인 남성으로 가득한 경찰서에서 홀로 비백인 여성 경관으로 일하는 글래디스는, 증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로즈가 범인으로 몰리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비밀리에 재조사를 시작한다. 그가 그 시대에 여성으로서 경찰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아버지가 경찰관이었기 때문으로 짐작되는데, ‘네 아버지는 위계를 잘 지켰다’는 상관의 말에서 레이시즘이 감지된다.(판사 역 캐스팅처럼 픽션적 허용이었다고 해도.) 글래디스는 동료 남성 경관처럼 사건을 배정받는 대신 리셉션에서 종일 민원을 접수받거나, ‘여성 피해자가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킬 것을 대비’해 남성 경관이 진술을 받는 가운데 동석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호칭 “woman police officer”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위계에 순응하고’ 시키는 일을 하다 보면 수갑을 채울 권리가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이후 그는 “police officer” 앞에 붙은 “woman”이 자격과 지위를 제한하기 위한 꼬리표였음을 깨닫고, 이는 비공식 수사를 멈추라는 상관의 협박에 순응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
영화는 글래디스가 로즈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권한 밖의’ 수사를 진행하거나 이디스가 그것을 눈치채고 따돌리는 모습을 통해 일종의 버디 수사물적 재미를 가져가고, 로즈와 이디스에게 질문하는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을 통해 법정물의 긴장감까지 더한다. 그러나 범인 색출과 정의 구현으로 간편하게 결론을 내지는 않는다. 영화가 보다 클로즈업하는 바는 로즈의 심리와 이디스의 동기다.
영화는 거침없이 매력적인 로즈를 활용해 코미디를 연출하는 와중, 그가 느끼는 억울함이나 분노만이 아니라 공포나 자기 혐오, 때로는 고독을 포착한다. 제시 버클리는 로즈의 다소 드라마틱한 캐릭터성을 천연덕스럽게 입어 혼을 쏙 빼놓고, 별안간 무방비한 표정을 드러내 극에 몰입하게 했다. 맨발로 당당하게 거리를 다니고 일상적으로 유쾌하게 욕을 내뱉곤 하는 로즈는 한편으로 스스로를 경멸한다. 가난하게 자랐고, 어려서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도둑질을 했고, 결혼 없이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그는 경찰서 리셉션에 있는 글래디스를 조롱하고 모욕한다. 나이트 클리닝 레이디라느니, 수갑은 있냐느니 하고 비꼬는 로즈의 말은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하지만, 그 저변에는 로즈 자신을 포함한 여성에 대한 경멸, (어쩌면 열등감,) 현실에 대한 포기가 있다. 로즈는 딸 낸시가 ‘나와는 다른’ 여자이기를 바란다. ‘나이스 걸은 기타를 치지 않는다’며 기타를 빼앗고, 낸시가 미래에 ‘잘은 모르지만 좋은 직업’을 가진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자신에게 “slut”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과 한 편에 서서 로즈는 조용히 제 인생을 손가락질해왔다. 무죄가 밝혀진 후 로즈는 낸시에게 기타를 선물한다. 낸시가 스스로를 미워하는 여자로 자라지 않게 하려면, 로즈가 로즈를 미워하는 것을 멈춰야 하는 것이다.
이디스는 ‘욕설 편지 키트’를 방에 숨겨두고, 온갖 저주가 담긴 편지를 자신에게 익명으로 부쳤다. 사건이 알려지고 관심을 받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그저 로컬 셀러브리티(?)가 되고자 한 행위 같지는 않다. 이디스는 부친의 소유물 취급을 받으며 자라 왔고, 현재도 그렇다. 부친의 감시 속에서 가사노동을 도맡고, 자신을 비하하거나 구속하는 말을 일상적으로 듣는다. 부친을 거역하지 못하는 것은 수 해에 걸쳐 학습된 결과다. 그가 편지를 쓴 범인임이 드러나는 시점은, ‘벌로 성경 구절을 이백 번 쓰라’는 부친의 지시를 수행하던 도중이다. 성경 구절을 옮기던 정갈한 필체가 공격적으로 어긋나고… 이디스는 구두를 벗고 살금살금 걸어가 편지지를 꺼낸다. “친애하는 이디스에게” 전송할 욕을 적어내려가는 그는 거의 희열을 느끼는 것만 같다. 자주 성적인 표현이 들어간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기독교적 윤리에 기반한 가부장제에 갇혀 사는, 그것을 충실하게 내면화해온 여성의 자학적인 해소.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도, 그는 다만 멈출 수가 없다. 편지를 계속 부칠 경우 로즈에게 있는 혐의가 희미해질 가능성이나, 필기체로 꼬리를 잡힐 가능성 따위를 고려할 여유는 없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이디스와 로즈의 대립을 그리지만, 그들이 서로 ‘적’이 아님을 설득한다. 두 사람은 원래 친구였다. 이디스는 낯선 마을에 이사온 로즈에게 친절히 대해 주었고, 로즈는 이디스가 ‘감히’ 하지 못하던 말들을 시원하게 지르며 이디스가 조용히 해방감을 느끼도록 해 주었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두 사람은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로즈는 이디스의 속에 그 엄청난 말들이 쌓이게 된 원인과 과정을 대강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디스의 아버지를 옆집에서 목격한 이웃으로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게 훨씬 쉽다는 걸 아는 동료 여성으로서. (물론 로즈는 굉장한 대인배이지만… 그러고 보니 그들 사이가 서먹해진 계기마저도, 이디스의 부친이었다.)
이 작품이 훌륭한 까닭은 이디스에게 제대로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를 단순히 ‘서프러제트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구시대적 가부장제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규범에 충실하지 않은 이민자 여성을 대상으로 마녀사냥을 꾸민 보수 기독교 신자 여성의 전형’으로 만들어버리지 않고,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그의 내외면에서 벌어졌던 일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 주목의 효과를 극대화한 것은 올리비아 콜먼이다. 글로만 쓰던 욕을 사람들 앞에서 입 밖으로 내뱉고 반사적으로 활짝 웃는 이디스, 수갑을 차고 낙담한 얼굴을 하면서도 묘하게 홀가분해 보이는 이디스, 로즈와 훈훈한(!) 작별 인사를 나누며 미소 짓는 이디스. 그리고 교도소로 끌려가며 마침내 부친을 향해 욕을 쏟아내는 이디스가 있다. 저도모르게 튀어나온 언어들에 당황하면서도 흥분하는, 이내 통곡처럼 폭소하는. 올리비아 콜먼은 인물이 못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순간을 관객과 공유한다. 이디스의 의뭉스러운 선이 명확한 악의로 반짝이기까지의 흐름은 경이로웠다. 그 악의가 향하는 곳을 알려주는 것도, ‘사랑스럽지 않은’ 캐릭터에게 마음을 주고 끝내 이입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도 콜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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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고민이 필요했던 부분은 두 여성이 남성들과 맺거나 맺었던 로맨틱한 관계였는데, 결론에 닿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먼저, 이디스의 가능했던 탈출구가 남성과의 결혼으로 언급된다는 점인데, (일단 이디스가 ‘시드니를 정말로 좋아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영화의 초점은 그의 옛 약혼자가 아닌 부친에게 있다. 픽션에서 ‘아들에게 집착하는 어머니 전형’이 혐오스러운 것으로 그려지는 반면, 마초적 아버지들의 딸에 대한 지나친 (이성애적) 통제는 ‘남다른 사랑’이나 ‘보호’로 미화되는 현상을 재고하게 하는 극단적 사례?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다음으로, 법정에서 ‘남편이 전사했다’는 로즈의 말이 거짓임이 드러나고, 빌이 화내며 떠났다가 용서하듯 돌아오는 전개가 있다. 조금 단순하게 연출되긴 했으나, 영화의 중심 플롯은 그들의 로맨스가 아니었으니 부족하진 않았다. ‘로즈의 거짓말’은 당시 만연했던, 결혼 제도에 대한 맹신과 여성의 ‘행실’에 대한 터무니없는 터부, 낙인을 짚기 위한 설정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빌이 화냈던 까닭은 바람직하게도 거짓의 내용이 아니라 ‘나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으니. “내가 갈 곳이 달리 어디 있냐”며 짓는 미소에 담긴 의미가 ‘네 잘못을 용서한다’보다는 ‘네가 왜 그랬는지 이해한다’라면… 문제없다. ‘로즈가 빌이 인정한 좋은 엄마/연인’이어서가 아니라, ‘빌이 낸시가 인정한 좋은 대리 아빠’이므로 이 가족이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에 더해, 죽은 남편의 옷을 입고 출근하며 큰 소매를 그대로 두는 케이트나 (남편을 줄곧 애도하는 것이라기보단, <Godless> 속 메리 애그니스처럼 ‘남성의 옷을 입은’ 케이스에 가까워 보였다.) 바지를 즐겨입고 늘 먼지 범벅으로 나타나며 연애보다는 닭이나 돼지, 헛간에 채울 겨에 훨씬 진심인 앤이- 결혼 제도를 벗어났거나 애초에 속할 생각이 없었던 여성들의 예시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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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삶을 살 거야. 영화 <레이디 맥베스>
레이디 맥베스 (Lady Macbeth, 2016)
제작 : 영국, 드라마 │ 감독 : 윌리엄 올드로이드
출연 : 플로렌스 퓨(캐서린), 코스모 자비스(세바스찬), 나오미 아키에(안나)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러닝타임 89분영화 <레이디 맥베스>의 배경은 19세기 영국이다. 원작은 러시아의 소설 <므첸스크 군의 맥베스 부인>이며, 젊고 예쁜 여성이 시아버지를 끔찍하게 살해했다는 형사재판소의 실화 기록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 시절 치고는 특이한 살인사건이라 그럴까. 이 영화는, 젊고 예쁜 지주의 부인이, 대체 무슨 연유에서 시아버지를 그토록 처참히 살해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에 포커싱 된 듯하다.
신분사회의 최종 보스이던 영국의 19세기. 영화의 주인공 '캐서린'은 열일곱의 나이에, 얼굴도 모르는 늙은 지주에게 팔리듯이 시집을 가게 된다. 괴팍하기 그지없는 시아버지, 어린 신부에게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는 나이 든 신랑. 캐서린의 결혼은, 그저 관습에 따라 맺어진 온기라곤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배곯을 일은 없는 집안이었지만, 쌀쌀맞은 시댁은 그녀에게 간단한 외출조차도 허락하지 않고 그녀를 감옥 같은 저택에 가두어둔다. 그럼에도 캐서린은 매우 순종적으로 시댁 식구의 뜻에 따라, 집안에서 그저 창밖만 보며 무료한 나날을 지내는데.
그러던 어느 날, 운 좋게도 남편과 시아버지가 동시에 멀리 출장을 떠나게 된다. 결혼 후 처음으로 캐서린에게 자유가 찾아온 것이다. 그래 봐야 그녀가 만끽한 자유라곤 그저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것, 소파에 맨발로 누워 낮잠을 자는 것 등이었지만.
어쨌거나 그 소소한 자유라도 즐기고 있던 캐서린. 하루는 우연히, 역시나 지금까지는 본 적도 없던 하인들의 공간에 들어가게 된다.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고 있다가 마님의 방문에 깜짝 놀란 하인들. 그런데 그중 한 하인이 유독 캐서린에게 대든다. 그는 이 저택에 얼마 전 새로 온 흑인 하인 '세바스찬'이다. 하인인 데다 흑인이라. 당시 영국의 신분제에 따르자면 세바스찬은 분명 마님의 눈도 못 마주쳐야 마땅한 최하위 계층이었다. 그런데 캐서린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건지 겁도 없이 마님에게 들이대는 세바스찬. 그를 계속 눈여겨보고 있던 캐서린은 세바스찬의 박력에 넘어가고, 결국 출타 중인 시댁 식구의 눈을 피해 하인과 정통으로 바람이 난다.
당시 영국의 사회 분위기가 어떤지 알기에, 둘이 마음이 통했다는 걸 알면서도 흑인 하인이 안주인의 뽀얀 침대 시트에 나신으로 누워있는 장면은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회통념은 누구로부터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 그 둘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게 된 흑인 하녀 '안나' 역시 몹시나 그 사실을 불편해한다. 어디 하인 주제에 안주인 마님과! 자신도 백인에게 종속된 몸이며, 괴팍한 주인들에게 푸대접을 받으며 살았으면서도, 그나마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던 캐서린의 일탈을 이르고 싶어 안나는 똥줄이 탄다.
캐서린의 총애에 힘입어, 하인 세바스찬의 침상이 마구간에서 안주인 침대로 격상된 지 꽤 지났을 무렵. 집으로 돌아온 시아버지는, 하녀 안나의 밀고로 캐서린과 하인의 관계를 알게 된다. 시아버지는 정작 제 아들놈이 캐서린을 여자 취급하지 않는 데에는 무책임하면서, 집안 망신이라며 캐서린을 들들 볶는다. 온기도 낙도 없는 감옥 같은 저택에 자신을 가두는 결혼생활에 질려버린 캐서린은, 시아버지에게 독버섯을 먹이게 되는데.
부유하고 어린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죽였다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않은 채 시아버지의 장례식이 거행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돌아온다. 그러자 이번엔 남편이 "나 너희 관계 다 알고 있어. 너 이제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성경이나 읽어"라고 일갈한다. 자신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면서 억압하려고만 드는 남편에게 단단히 화가 난 캐서린. 남편 앞에 세바스찬을 끌고 와 당당히 몸짓으로 선포한다. 아니, 나 그렇게 살기 싫다고.
예상된 수순이었지만 남편과 세바스찬 간에 격한 몸싸움이 일어나고, 캐서린은 제 남친이 다칠까 둔기로 남편을 내리찍는다. 하인과는 겸상도 못하던 시절이었건만. 마님 캐서린의 선택은 이름 좋고 돈 있는 남편이 아닌, 쥐뿔도 없지만 사랑하는 세바스찬이었다. 지독한 관습의 사회에서 보자면 파격적인 동시에 참으로 순수한 선택이 아닐 수가 없다.
그 가문의 남자들이 모두 세상을 뜨고 나니 남겨진 재산은 모두 캐서린의 몫이 되었다. 캐서린은 이제 자신의 저택이 된 그곳에서 세바스찬을 남편처럼 여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그 행복이 드리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남편이 밖에서 싸지른 어린 혼외자식과 그의 할머니가 찾아온다. 영문도 모르는 작은 꼬마 아이가 이 재산에 지분이 있다고 서류를 내미니, 캐서린은 자신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들을 거두는 수밖에는 없었고, 이로 인해 세바스찬은 그들의 눈을 피해 다시 마구간 신세로 돌아간다.
도대체 이 막장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려는 걸까 종잡을 수 없어지던 찰나. 설상가상으로 캐서린은 세바스찬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남편의 혼외자식에게도 캐서린이 모정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이 모습에 세바스찬은 질투심에 휩싸인다. 그녀의 애정이 그리웠을지 아니면 자신의 지분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재산이 그리웠을지는 모르겠지만, 세바스찬은 어긋난 질투심으로 캐서린에게 매정하게 굴고, 세바스찬의 냉대에 불안해진 캐서린은 오로지 세바스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익숙한 묘안을 떠올리는데. 바로 세바스찬과 공모해 남편의 혼외자식 꼬맹이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
이리하여 이 커플은 세 번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어떤 살인에도 정당성이 부여될 수는 없으나, 시아버지와 남편을 처단한 것 까지는 보는 이가 감당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가 있었다. 하지만 고작 6살이 됐을까 말까 한 꼬마 아이를 쿠션으로 짓누르는 장면은 왠지 보기가 불편했다. 그 살인에서, 둘의 순수한 사랑을 넘어선 욕망과 배신이 비쳤기 때문일까.
막상 어린아이를 죽이고 나니 세바스찬은 뒤늦게 눈물 콧물 쏟으며 죄책감에 휩싸인다. 뒤이어 결국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세바스찬이, 아이의 죽음을 수사하러 온 경찰에게 '저 여자가 죽였다'고 고백해버리고 만 것이다. 세바스찬의 폭로에 캐서린은 엄청난 배신감에 휩싸인다.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뻣뻣한 표정에 담겨있던 모든 감정들. '네가 어떻게?'라는 소리 없는 물음. 죄 없는 어린아이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힘들어하는 세바스찬이 이해되면서도, 그녀 혼자가 아닌 함께 벌인 일에서 발을 빼려는 세바스찬이 역겹기도 했다.
온갖 악행을 저질러 그와 나의 자유를 꿈꿨는데 배신당한 캐서린은, 자신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려는 사람들 앞에서 결심한다. 자신의 사랑 세바스찬에게 지금껏 한 번도 휘두른 적 없던 권력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용하기로. "내 하녀와 저 하인 놈이 죽인 거예요. 난 몰라요"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부유한 미망인인 그녀의 편을 들어주고, 결국 세바스찬 그리고 내내 캐서린의 심기를 거스르던 하녀 안나가 체포되어 끌려간다.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파란만장한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엔딩신이다.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 저택에 홀로 남은 캐서린이 푸른 드레스를 차려입고 거실로 나와 앉아있는 장면.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이를 죽였다. 남편이 밖에서 낳아온 얼굴도 사연도 모르는 자식도 이미 처단한 지 오래다. 그녀의 배에는, 그녀가 원해서 그녀의 뜻으로 잉태된 세바스찬의 아이가 있다. 캐서린이 꿈꾸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세 번의 살인과 배신의 얼룩을 지워낸다면, 그녀가 원했던 건 그저 관습의 사회가 강제로 부여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자유로운 삶 아니었을까.
거실 소파에 앉아 침묵의 눈을 한 캐서린을 오래도록 비추는 엔딩신은, 소름끼치기 보다는 슬프게 와 닿았다. 그 시절 여자의 삶이 어땠는지, 캐서린처럼 행동할 수 없었을 여인들이 어떤 결의 삶을 감내했을지가 그려져서.
다행이다. 그리고 참 감사하다. 결혼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세상, 내 신랑은 내가 고르는 세상, 남편의 혼외자식을 거둘 어떤 명분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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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이 번식하는 사악한 방법
논어에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에서 '예가 아닌 것 = 사악한 것'으로 인식되어 이 말은 일본에서 귀와 눈과 입을 가린 원숭이로 표현된 것으로 유명하다. 서양에서는 이를 'See No Evil, Hear No Evil, Speak No Evil'이라고 표현한다. 제목은 그 마지막을 따온 것이다. 원작은 동명의 덴마크 영화지만, 결말이 다르다. 하지만 이번에 개봉한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스픽 노 이블>이 더 제목에 걸맞은 메시지를 주고 있다.
미국인 가족인 벤과 루이스, 딸 아그네스는 이탈리아 휴양지에서 한 영국인 가족 패디, 키아라, 아들 앤트를 만난다. 나중에 벤과 루이스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를 하게 되고, 거기서 패디와 키아라 가족의 초대를 받고 그 집으로 주말여행을 가게 된다. 거기에서 패디 가족의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된다. 줄거리만 보자면 뻔한 스토리의 스릴러물 같고, 캐릭터도 엄청 독특하거나 다층적이진 않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스릴러와 조금 다른 지점이 있다. 광기의 살인마와 그 공포를 기대한다면 초반이 아주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덩치 크고 조금 무례하게 느껴지는 이 묘한 인물인 패디(제임스 맥어보이)는 등장부터 불편하다.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게 조용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벤과 루이스에게, 패디와 키아라 가족은 아무렇지 않게 시끄러움과 무례함으로 조금씩 선을 넘나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버릴 수 없는 것이, 중간중간 들어가는 친절함과 솔직한 모습들이 보여주는 매력이다. 이 영화는 낯선 환경, 낯선 문화, 낯선 사람들,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을 교묘하게 잡아낸다. 불편하지만 감당해야 하고, 싫어도 좋은 척해야 하는 우리의 삶 그 자체다. 영국에서 운전하던 벤은 자신이 살던 미국과 운전 방향을 헷갈려 교통사고를 낼 뻔한다. 서로 다른 삶에서 무엇이 선한지, 무엇이 악한지 구분해 낼 수 있을까? 좌측 운전이 선한가 우측 운전이 선한가?
패디가 이 가족들을 옭아매는 방식은 너무나 헐렁해서, 그냥 벗어나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그 지점에 함정이 있는 것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수준의 불편함이라, 그것은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을 만나서도 서로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악인 줄도 모르고 악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만드니까. 그렇게 악은 우리 안에 교묘하게 스며든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앤트의 이상한 행동들이 조금씩 보일 때, 이 영국인 가족의 진실이 드러난다. 패디는 여행 중인 가족들을 초대해 살해하고, 그 아이를 잡아두고 키우고 다시 죽이는 연쇄살인범이었다는 것. 앤트는 이전에 여행온 덴마크 부부의 아들이었고, 앤트의 친부모는 죽었으며 앤트는 혀가 잘린 채 아들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초반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고, 범죄 스릴러에서 종종 나오는 콘셉트의 살인범 유형이라 크게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 영화의 메시지는 반전이나 잔혹한 싸움과 살인의 모습 등이 아니다. 사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악의 대물림이고, 그것이 대물림되는 방식이다.
패디는 자신의 아버지를 언급하며 거의 악마처럼 묘사하고 굉장히 힘들어한다. 그리고 키아라가 자신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라며 고마워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전체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그 아버지라는 인물도 역시 연쇄살인범이었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범죄자였거나, 패디 자신도 친아들이 아닌 납치된 아들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행했던 악한 일들을 증오하지만, 역시 자신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일들을 저지르고 있다.
루이스가 죽기 직전 커터칼로 패디를 그어 창고에서 도망칠 때, 갑자기 패디의 부인인 키아라는 자신도 데려가 달라며 자신 역시 피해자라고 말을 한다. 어릴 때 잡혀와서 지금까지 그러고 있다고. 패디가 키아라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그 말은 사실처럼 보인다. 하지만 키아라는 앤트처럼 적극적으로 도망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패디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이것은 피해자에게 자신의 범죄를 돕게 만들어, 가해자로 만들어 묶어두는 악랄한 방식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되었던 <나는 신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사이비 종교의 여신도들에게 성폭행을 하고 그들에게 여자를 데려오게 시킴으로써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다. 그럼으로써 더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 교묘한 가스라이팅이 들어가, 피해자의 정신에는 자신이 원해서 악을 행한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는다.
언듯 스쳐가지만, 패디가 키아라에게 하는 '네가 원해 이 짓을 한 거야''이것은 네 탓이야'라는 가스라이팅은 결혼기간이라고 밝힌 17년간 이어져 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단순 피해자가 아닌 적극적인 범죄자가 되었다.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기에 몸서리치게도 끔찍한 부분이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자신의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범죄자와 하나의 정신을 공유한다. 그렇게 악은 대물림되고 번져나간다.
결말에서 가장 악랄한 부분은 바로 부모가 살해당하고 혀를 잘린 채 아들노릇을 해야 했던, 앤트의 모습이다. 벤과 루이스는 쓰러진 패디를 두고 빨리 도망치려 한다. 그러나 앤트는 패디에게 부모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복수를 한다. 그 상황에서 악은, 패디의 입을 통해 사악한 방법으로 자신의 번식을 시도한다. "그래, 그래야 내 아들이지."
나이가 어릴수록, 사람은 주변 어른들에게 큰 영향을 받는다. 부모가 아이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하지만 패디는 자신이 그렇게 벗어나지 못했던 잔혹한 아버지의 악을, 앤트에게 그 말로 물려주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앤트를 더욱 자극해 앤트는 잔혹하게 패디를 살해한다.
'사악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라고 한 것은, 악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쉽게 스며들고 번지므로 악한 것 근처에는 아예 가까이하지도 말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그것은 분명 복수였다. 그리고 그렇게 끝을 내야,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악은 정말 대가 끊긴 것일까? 적어도 몇 개월 이상 악과 같이 살았던 앤트에게 패디는 어떤 존재가 되었을까. 그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을 평생 되새기며 살게 되진 않을까? 또 우리는 내가 당했던 피해의 악을 다른이에게 같은 모습으로 가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영화 시작에 조용하게 계속 비추던 백미러 속의 앤트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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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크 오션 픽 감각적인 영화 7선
씨네필 프랭크오션 그가 선택한 영화 그의 앨범만큼이나 감각적이다.
노래작업에 영감이 되었을까요? 그가 선택한 영화 100개중 7개를 선정해왔습니다.
브라질
정보화로 인해 모든 것이 획일화된 시간을 알 수 없는 미래의 도시. 소심한 성격의 샘 로리(Sam Lowry: 조나단 프라이스 분)는 거대한 정보국 산하에서 서기로 일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공장 같은 회사에서 반복되는 일상, 그리고 기계와 정보로만 움직이는 모든 생활 속에 지친 샘은 중세의 기사가 되어 하늘을 날며, 환상의 여인을 만나는 꿈속에서만 오로지 자유를 느낀다. 그러던 중 늘 꿈속에 나타나던 여자인 질 레이튼(킴 그리스트 분)을 현실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꿈속에서와는 다르게 거친 트럭 운전사이자 반정부주의자다. 샘은 그 자리에서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녀로부터 미치광이 취급만 받는다. 그러던 중 자신의 집에 고장난 파이프를 고치러 찾아온 해리 터틀(로버트 드니로 분)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터틀은 사실 배관공으로 위장한 테러리스트였다. 한편, 파리를 쫓던 정보국 직원이 테러리스트인 터틀을 체포하기 위한 문서를 작성하던 중 그만 타자기를 오작동시키고, 그 바람에 버틀이라는 무고한 시민이 테러범으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난처해진 샘의 상관은 버틀의 가족에게 보상금을 전달하는 일을 샘에게 시키고, 샘은 버틀의 집을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질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가 법망에 쫓기는 도망자 신세라는 것을 안 샘은 최고위층의 컴퓨터를 조작해서 그녀가 사망했다고 기록함으로써 그녀를 구해내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붙잡혀 고문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마는데.
메트로폴리스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지상세계의 프레더는 어느날 마리아를 통해 지하 세계의 비참한 생활상을 알게된다. 프레더가 그의 아버지 프레드슨에게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해 줄 것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하고 오히려 마리아가 주도하는 지하 세계의 집회를 목격한 프레드슨은 로트왕에게 마리아와 똑같은 로봇을 만들어 지하세계의 노동자들을 교란할 것을 명령한다. 마리아를 복제한 로봇은 노동자를 선동하고, 지하세계는 홍수가 나며 공장이 노동자들에 의해 파괴된다. 그러나 마침내 지상세계에 모여든 노동자들은 로봇의 정체를 알게 되고, 프레더의 중재로 프레드슨과 화해의 악수를 나눈다.
파리, 텍사스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 지역 부근, 텍사스주의 어느 황량한 마을에 탈진한 듯 보이는 한 남자가 걸어온다. 그의 이름은 트래비스. 의식을 잃은 트래비스의 소지품에서 ‘월트’란 이름을 발견한 의사는 연락을 취하게 되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살던 동생 월트가 형인 트래비스를 데리러 온다. 4년 만에 소식을 접한 월트는 병원에서 말 없이 사라진 형을 바로 찾아내지만, 형은 계속 침묵으로만 일관한다. 그동안 형의 아들인 헌터를 맡아 기르던 월터와 그의 아내 ‘앤’은 헌터가 트래비스를 아버지로 인정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른 정에 얽매여 헌터를 잃게 되진 않을까 우려한다. 월트는 형이 텍사스에서 헌터의 엄마, ‘제인’과 살다가 왜 갑자기 헤어지게 됐는지 털어놓지 않자 답답해하고, 트래비스는 앤으로부터 제인이 헌터에게 매달 정기적으로 송금해오는데, 휴스턴의 한 은행을 이용하고 있다는 애기를 듣고 직접 찾아보기로 결심하는데..
로얄 테넌바움
로얄 테넌바움과 그의 아내 에슬린 테넌바움에게는 세 명의 어린 자녀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 세 명의 자녀는 부모가 별거하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산다. 채스(벤 스틸러)는 10대 초의 나이에 부동산 투자 전문가가 됐고 국제금융에 관해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입양된 딸인 마고(기네스 팰트로)는 극작가이며 15세 의 나이에 브레이버만 그란트(Braverman Grant) 상과 부상으로 5만 달러를 받은 경력이 있다. 훗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다. 리치(루크 윌슨)는 주니어 챔피언 테니스 선수이며 3년 연속 US 오픈 타이틀을 획득한 경력이 있다. 하나같이 천재였던 이들 세 남매들의 어린 시절은 20여 년에 걸친 배신과 실패 그리고 비극적인 사고로 인하여 그들의 기억 속에서 모두 사라져버린다. 그들의 천재성이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은 모두 그들의 아버지 탓이었다. <로얄 테넌바움>의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산산조각 난 가족들이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겨울 날,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알려온 아버지 때문에 으로 한 집에서 다시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파이트 클럽
비싼 가구들로 집 안을 채우지만 삶에 강한 공허함을 느끼는 자동차 리콜 심사관 ‘잭’.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거친 남자 ‘테일러 더든’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싸워봐야 네 자신을 알게 된다”라는 테일러 더든의 말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잭. 두 사람은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파이트 클럽’이라는 비밀 조직을 결성하고, 폭력으로 세상에 저항하는 거대한 집단이 형성된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파이트 클럽’은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변질되고, 잭과 테일러 더든 사이의 갈등도 점차 깊어져 가는데… 거침없는 진짜 남자들의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시계태엽 오렌지
노숙자 폭행, 집단 싸움, 차량 절도, 주택 침입… 10대 소년 ‘알렉스’는 친구들과 어울려 극악한 비행을 저지르고 다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저택에 침입해 주인과 싸우고 달아나려던 순간 경찰에 검거된다. 살인죄가 적용되어 14년 형을 살게 된 ‘알렉스’. 좀 더 빨리 감옥을 탈출하고자 ‘루도비코 갱생 프로그램’에 자원한다. 루도비코 실험은 재소자에게 약물과 충격요법으로 각종 범죄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교화 방법이다. 과연 알렉스의 범죄 본능이 치료될 수 있을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최고의 문제작.
타락천사
킬러가 청부 살인을 하는 동안 그의 파트너는 주인 없는 방에서 침대 시트를 정리하거나 쓰레기를 검사한다. 그들은 동업한 지 155주나 되었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킬러는 이제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파트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다른 방법을 선택한다. 한편, 수감번호 223 하지무는 5살 때 유통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고 말을 잃었다. 밤마다 주인 없는 상점에 무단 침입해 장사하던 그는 어느 날 떠나버린 남자 때문에 힘들어하는 찰리를 만나고 그녀를 도와 밤거리를 헤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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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피 아워> 메인 예고편
30대 후반에 접어든 네 명의 친구 아키라, 사쿠라코, 준, 후미. 모든 것을 공유하며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말할 수 없는 고민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준은 이혼 소송 중이라는 폭탄선언을 하고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그러면서 이들은 "진짜 행복이란 게 무엇인지" 자신을 솔직히 들여다보며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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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헤어질 결심> 1차 예고편
짙어지는 의심, 깊어지는 관심" 박찬욱 감독X탕웨이X박해일, 가장 매혹적인 만남 [헤어질 결심] 1차 예고편 드/디/어/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