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2-15 15:15:10
흉터는 과연 훈장인가.
영화 [브루탈리스트] 리뷰
이 글은 영화 [브루탈리스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단순하게 나쁜 놈들이고, 나는 복잡하게 착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자신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는 얼마나 냉정하고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글귀였다.
그리고 보통의 영화에서는 단순하게 나쁜 놈과 단순하게 착한 놈이 나와서 지지고 볶다가 어느 한쪽의 손이 번쩍 들어 올려지며 승부가 결정지어진다. 그 끝이 감상하는 사람의 선호도와는 다를 수는 있을지언정. 그 끝에는 언제나 확실함이 보장되어 있기에. 영화의 결말은 관객들이 가장 기대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세 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괴롭혔던 이 영화의 결말은, 마치 기회비용이라도 받아내려는 것처럼 더욱더 기다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브루탈리스트의 결말에는 요즘의 우리가 선호하는 "사이다"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대체 누가 승기를 거머쥔 것인지에 대해서도 쉽사리 답을 내어놓을 수가 없다. 그저 사람이, 그리고 인물이 살아온 인생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라즐로 토스(에드리언 브로디) 개인의 허물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다. 하지만 타인도 복잡하게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그를 들여다보다 보니. 단 하나의 물음만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과연 흉터라는 것은 훈장이 될 수 있을까.
예전의 나였다면. 당연히 그렇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흉터는 남았지만. 새 살이 돋아 났으니 그것이 살아남은 승리자의 징표이며 더 강해졌음을 상징하는 것이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상처를 매번 마주해야 하는 사람의 의견 또한 그럴지에 대해서는 사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영화 속 라즐로는 그가 가진 재주 덕에 건축물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세월을 간직할 수 있다. 그 건축물을 볼 때마다 자신이 설계도를 그리던 순간부터 시작해 공사가 끝나던 생각이 나는 것은 물론. 영화에서처럼 자신을 감싸고 있었던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휘몰아쳐 생각날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자, 크고 작은 상처이며 흉터이자 동시에 훈장이 될 건물의 공개 순간을 보며.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뭉텅이 속에서 조금이라도 우세한 감정은 과연 무엇일 될지. 궁금했다.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그는 늙고 병들었으며 이제는 명민함이라는 화로의 불도 곧 꺼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의 인생을 담고 올려 세운 결과들을 보면서. 당신은 대체 어떻게 느끼고 있냐고. 그 희미하고 복잡한 미소 외에 내던지고 싶은 말은 없느냐고.
라즐로는 내가 세워야 할 건물의 주춧돌을 덩그러니 남긴 채 나를 떠났다. 영화를 보고 나온 직후에는 이 모든 감정을 외면하고 싶어 했으나. 어째서인지 자꾸 곱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마도 나만의 건물은 완성이 될 것이다. 그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의 인생을 오롯이 담아서,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린 다음에야.
그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나 스스로가 질문한 물음에 대한 답을. 혹은 답에 준하는 근사치를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소망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작품들이 훈장에 가깝기를 바란다.
그의 힘들었던 삶을 기리는 공로상 같은 훈장이 아닌. 여태껏 해온 자신의 업적을 인정하는 심플한 훈장이 되기를. 그 이외에 어떤 의미도 담지 않은 훈장이길 바란다. 부디.
마치면서
어떤 영화를 해석하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나 개인 SNS에 올라오는 "끝장 해석" 류의 콘텐츠를 거의 소비하지 않는다. 물론 맞는 방향이나 해석이 있기는 하겠지만. 감상의 영역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은 결국 개인이라는 렌즈를 통해 관찰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무언가와 결합했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될 테니까.
두 세대에 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만큼 무자비한(?)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무수히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작품이다. 그 어떤 부분을 붙잡고 늘어져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이 글의 TMI]
1. 베이글 살까 말까.
2. 말린 고구마 친구가 줬는데 혼자 1톤 먹을 기세
3. 청소하기 싫다.
#브루탈리스트 #최신영화 #영화리뷰 #에드리언브로디 #영화리뷰어 #munalogi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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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다시 사랑하기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다시 사랑하기
어느 날, 눈을 뜨자 우리가 사랑한 모든 시간이 사라졌다. 베스트셀러 작가 '리쿠'는 8년을 함께한 첫사랑 '미나미'와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린 낯선 세계에서 깨어난다. 너였기에, 빛나던 우리의 세계. 너였기에, 난 사랑을 할 수 있었어... 잃고 싶지 않는 그녀를 다시 되찾기 위해 시간을 넘어 여기, 다시 시작되는 우리의 평행세계 로맨스
- 네이버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소개 -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그녀를 사랑하다
'칸바야시 리쿠'는 대학생 시절 우연히 만난 '미나미'에게 첫눈에 반한다. '리쿠'에게 같은 호감을 느낀 '미나미'는 '리쿠'와 연애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둘은 결혼하며 행복한 생활을 지속해 나간다. [청룡전기]라는 소설을 작성하며 대학생 때부터 작가를 준비하던 '리쿠'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신의 꿈을 이루지만 가수를 꿈꾸던 '미나미'는 반대로 가수라는 자신의 꿈을 점점 마음속에만 담아둔다.
베스트셀러로 바빠져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진 '리쿠'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미나미'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침대에서 눈을 뜬 '리쿠'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한다. 바로 '미나미'가 곁에 없는 세계! 더 충격적인 것은 바뀐 세상 속에서 '미나미'는 인기 있는 유명 가수이고 자신은 출판사의 일반 사원이라는 것! 그리고 '미나미'는 '리쿠'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이후 영화는 사랑을 다시 이루기 위한 '리쿠'의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다양한 사랑의 형태 속 피어난 두 사람의 사랑
영화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의 클리셰를 모두 담고 있는 영화이다. 따라서 사랑을 이루기 위한 남자 주인공의 사투를 전반적으로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여러 방해 요소와 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을 돕는 사랑의 조력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장애물을 모두 밀어내고 마침내 사랑을 쟁취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다른 로맨스 코미디 영화와 다른 점은 영화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리쿠'와 '미나미'의 사랑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관객은 총 네 가지의 사랑을 마주한다. 첫 번째로 '미나미'와 '미나미'의 프로듀서 간의 진정함이 없는 사랑이다. '미나미'와 '미나미'의 프로듀서는 연인 관계이지만 진정한 사랑이 빠져있다. 프로듀서는 항상 '미나미'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 뒤에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미나미'와 '리쿠'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이다. '미나미'의 할머니는 '리쿠'가 '미나미'와의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응원하며 애정하는 눈빛으로 둘을 바라본다. 할머니의 사랑과 도움 속에서 '리쿠'는 '미나미'에게 다가가고 그녀와의 사랑을 다시 이룬다. 세 번째로는 '리쿠'를 향한 신인 작가의 잘못된 사랑이다. '리쿠'는 신인 작가를 담당하여 그녀의 작품을 보조하고 돕는다. 그러자 그녀는 '리쿠'를 좋아하게 되고 그에게 그녀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러나 '리쿠'가 그녀의 마음을 거절하자 사실이 아닌 사건을 언론에 퍼뜨린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상대방에게 그녀의 잘못된 사랑은 결국 '리쿠'를 곤경에 처하게 한다. 마지막은 '리쿠'의 선배인 '케이스케'의 볼 수 없는 아내를 향한 그리움의 사랑이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사랑 속에서 '미나미'와 '리쿠'의 사랑은 더욱 소중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언제나 서로를 볼 수 있고 아낄 수 있으며 진실 사랑이 존재하는 둘의 관계는 여러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의 흐름 속에서 돋보인다.
마무리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다양한 모습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보여주어 주인공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의미 있고 특별하게 만들었다. 또한 '미나미'를 연기한 배우 '미레이'가 직접 부른 OST는 영화 속 장면들을 풍성하게 채우고 둘 사이의 감정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여름이 다가오기 전 봄 같은 사랑 이야기를 느끼고 싶다면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를 추천한다.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참석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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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착적 소유욕, '사랑'이 되다
7★/10★
폴 토마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에서, 알마는 사랑하는 레이놀즈를 자기 곁에 붙들어두기 위해 음식에 독을 넣는다. 치사량은 아니지만 레이놀즈의 몸이 허약해져 알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는 많다. 알마를 그저 자기를 구성하는 여러 세계 중 하나로만 대우했던 레이놀즈는 기꺼이 알마의 요리를 먹는다. 그러고는 “사랑해”라고 말한다. 더는 알마가 아닌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애정을 나눠주지 않겠다는 듯이. 이렇게 알마는 레이놀즈를 완벽하게 소유하고, 둘의 사랑은 ‘완성’된다.
〈엘리자벳과 나〉는 사랑의 권태를 피학과 가학으로 돌파하고자 했던 알마와 레이놀즈의 길을 잇는다.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이자 헝가리 왕국의 왕비인 엘리자벳과 그의 시녀 이르마다. 엘리자벳은 19세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왕족으로 손꼽힐 정도로 타고난 외모를 엄격하게 관리한 여인이다. 173의 큰 키임에도 평생 50kg 이하로 몸무게를 유지했다고 한다. 지독할 정도로 엄격한 관리가 동반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는 대중이 생각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외모로 살기 위해 부단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황후를 맞이하러 나온 대중 앞에서 기절할 만큼 코르사주를 꽉 조일 정도로 말이다. 여성의 섭식장애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획득할 수 없는 공적 권력‧역능을 향한 욕망의 방향을 바꿔 자기 몸에 행사하는 일일 때가 많다. 엘리자벳이 주인공인 또 다른 영화 〈코르사주〉에서 드러나듯, 그녀의 공적‧사적 욕망이 ‘황후’라는 이름으로 제한될수록 엘리자벳은 더욱 엄격한 자기 통제로 이를 보상하려 했을 것이다.
이르마는 백작 가문 출신의 42세 미혼 여성으로 결혼하지 않으면 수녀원에 가야만 한다. 결혼과 수녀원은 모두 이르마에게 답답함을 상징하기에 그녀는 황후의 시녀가 되고자 한다. 엄격한 식이요법과 활동적인 운동을 즐긴 엘리자벳의 시녀가 되기 위해 달리기 테스트까지 마친 후 엘리자벳의 시녀가 된 이르마. 그녀는 금세 엘리자벳과 가까워지며 총애를 받는다. 그리스의 한 휴양지, 즉 엘리자벳의 의지와 명령만이 중요한 장소에서 남성 사회에서 가져온 습관(식이요법)을 유지하면서도 자신들만의 가능성(여성들의 우정과 사랑)을 벼려내기도 한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발랄하면서도 격정적인 친밀성은 마찬가지로 비극적 황후의 삶을 조명한 〈코르사주〉와의 결정적 질감 차이를 만든다. 〈코르사주〉가 질식 직전의 삶에서 황후가 갈망한 자유를 그녀 삶 전반에 걸쳐 풀어냈다면 〈엘리자벳과 나〉는 황후의 삶과 그런 황후를 사랑하는 이르마를 통해 남성 사회가 여성의 욕망을 취급하는 방식을 고발한다. 〈코르사주〉가 전반적으로 질식할 듯한 답답함으로 점철된 엘리자벳의 삶을 담담히 애도‧추모한다면, 〈엘리자벳과 나〉는 폭발할 듯 분출되는 황후의 욕망과 자유의지가 끝끝내 좌절하고야 마는 현실과 그에 괴로워하며 변덕을 부리는 엘리자벳을 사랑하는 이르마의 관계성에 천착하여 영화를 황후에 대한 헌사를 넘은 여성 친밀성과 사랑에 대한 통찰로 이끈다.
엘리자벳과 이르마의 사랑은 다정하거나 살갑지 않다. 상호적이지 않다. 황후의 변덕에 이르마는 늘 안달한다. 엘리자벳 시동생의 말마따나 이르마는 또 하나의 “쓰고 버릴 여자”일지도 모른다. 즉 이르마에겐 황후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인물이지만, 엘리자벳에겐 이르마가 억눌린 욕망과 자유의지를 분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시적 대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헌신적일수록 멀어지기만 하는 엘리자벳을 보며 이르마는 황후를 완전히 소유할 방법을 찾는다.
역사 속 실제 인물 엘리자벳은 1898년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그러나 〈코르사주〉는 상상력을 발휘해 황후에게 대안적 역사, 품위 있는 죽음을 선물했다. 〈엘리자벳과 나〉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번에는 그 목적이 다르다. 〈코르사주〉의 상상력이 황후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엘리자벳과 나〉의 상상력은 잡히지 않는 황후를 자기 곁에 붙들어두기 위한 이르마의 결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팬텀 스레드〉의 레이놀즈가 독약을 탄 알마의 음식을 기꺼이 먹으며 사랑에 투신하듯, 죽기 직전의 엘리자벳도 이르마의 집착적 소유욕을 사랑의 표현으로 용인해준다. 이제 황후는 죽었고, 더는 자신을 떠날 수 없게 된 황후 앞에서 이르마는 평온을 얻는다. 더는 위기에 빠지지 않을 영원한 사랑을 획득한 자의 표정이다. 소유욕이 사랑일 수는 없다. 동시대의 감각으로는 오히려 범죄에 가깝다. 그럼에도 〈코르사주〉를 경유해〈팬텀 스레드〉로 나아가는 〈엘리자벳과 나〉의 극단적 소유욕이 ‘사랑’일 수 있는 건, 사랑의 불확실성과 필멸성을 온몸으로 거부하겠다는 광기에 우리가 무언가 애잔한 공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르마가 언제나 두 사람의 관계성에 더 목말랐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납득이 되는 집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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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사람냄새'가 그 '사람냄새'일 줄이야
- 사람냄새 이효리Super Star Lee HyoriCast감독: 이옥섭출연: 이효리, 구교환, 홍시영, 심달기Synopsis슈퍼스타 이효리에게 삼 남매가 찾아온다. (출처: 서울국제여성영화제)Review티빙 리얼리티 '서울체크인' 프로젝트의 하나로 진행된 이효리의 스크린 데뷔작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관객과 만났습니다. 모든 행보에 관심과 지지를 받는 이효리와 뜨는 영화 듀오 2X9(이옥섭, 구교환)의 만남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죠. 과연 2X9는 ‘슈퍼스타 이효리'를 어떻게 그려냈을까요? 참으로 묘한 영화, <사람냄새 이효리>입니다.⊙ ⊙ ⊙그간의 이미지를 몽땅 깨부수는 새로운 ‘효리’의 탄생<사람냄새 이효리>는 불우한 삼 남매 ‘교환', ‘시영', ‘달기'와 슈퍼스타 ‘효리’의 이야기입니다. 코피가 멈추지 않는 질병을 가진 ‘교환'은 코피로 쓴 혈서를 판매하며 살아갑니다. 어느 날, 슈퍼스타 ‘효리'가 ‘교환'에게 혈서를 부탁하고, 삼 남매는 ‘효리’의 집을 방문하죠. 그리고 삼 남매와 ‘효리'가 맺었던 과거의 인연이 드러납니다.‘이효리' 하면 자연스럽게 몇몇 이미지들이 떠오릅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셀러브리티, 대중에게 긍정적인 임팩트를 전달하는 영향력자, 동물을 사랑하는 동물애호가이자 채식주의자. 하지만 이옥섭 감독은 “관객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난 이효리를 보여주는 것"이 <사람냄새 이효리>의 연출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감독의 말을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그럼 슈퍼스타 이효리의 소탈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려나 보다. 그래서 제목도 <사람냄새 이효리>구나.’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효리는 방송에서 소탈한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연예인이니까요.(※스포일러 주의) 발상의 전환은 언제나 신선한 충격을 선사합니다. 2X9는 동물권을 지키는 이효리에게, 이효리 자신을 연기하는 이효리에게, 식인하는 범죄자의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2X9가 ‘사람냄새난다'는 말에서 찾아낸 또 한 가지 의미, ‘효리'는 사람을 먹었기 때문에 입에서 (말 그대로) 사람냄새가 났던 겁니다. <사람냄새 이효리>라는 제목을 보고, 사람들은 지금까지 봐왔던 소탈한 이효리의 이미지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옥섭 감독은 정말로 관객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난 이효리를 그려냈죠. 남매의 원망을 받는 ‘효리', 살인을 합리화하는 ‘효리’, 혈서 대필을 요청하는 ‘효리’, 그릇된 방식으로 동물권을 지키는 ‘효리’. <사람냄새 이효리>의 ‘효리’는 이효리의 이미지를 몽땅 깨부숴 버리는 인물입니다.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작은 생각 하나가 스멀스멀 피어올랐습니다. ‘‘효리’를 연기하는 이효리는 꽤 해방감을 느꼈겠는걸?’ 대중은 열띤 논쟁이 벌어지는 이슈에 대해 특정한 입장을 표명한 셀러브리티나 영향력자에게 더 예리한 잣대를 들이밉니다. “이효리, 채식주의자라더니 가죽 재킷 입었네?”, “이효리가 이렇게 해외에 오래 있으면, 강아지들은 누가 돌봐?” 같은 식이죠. (임의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실제라고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그러나 이효리는 언제나 자신의 입장에 부합하는 행보만을 보여왔습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어떤 순간에도 자기 자신과 타협한 적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멋지고 대단하지만, 알게 모르게 그녀는 꽤 많이 지치지 않았을까요? 세상이 기대하는 이미지와 반대되는 자신을 연기한 이효리가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만큼은 조금의 해방감을 느꼈길 바랍니다. 가끔은 행복한 척하는 것만으로도 진짜 행복해지기도 하니까요.⊙ ⊙ ⊙오묘하고, 기묘하고, 미묘하다<사람냄새 이효리>는 한 마디로 난해합니다. 코피로 혈서를 써서 판매하는 행위, 수십 마리의 햄스터에게 집을 빼앗겼다는 삼 남매의 이야기, 자꾸 트림하고 뜬금없이 요가 하는 슈퍼스타… 솔직히 말해 19분 내내 영화는 이상한 이야기만 늘어놓습니다. 러닝타임이 짧은 단편 영화는 함축과 생략이 많아 이해하기가 더 어렵기도 하고요. 만약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 누군가 제게 영화가 어땠냐고 물었다면, 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무엇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든요.하지만 모든 것이 난해한 이 영화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냄새 이효리>를 보고 나면, 열이면 열, 거듭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유고걸(U-Go-Girl)’ 시절의 2008년 ‘효리'와 혈서 대필을 요청하는 2022년 ‘효리'의 차이에 대해, 햄스터를 갖고 싶다는 ‘달기'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원을 전국 방송에 공개해버린 ‘효리'의 행동이 불러온 나비효과에 대해, 반려견을 잡아먹은 아저씨를 잡아먹을 만큼 동물에 진심인 ‘효리’가 삼 남매를 거리로 내쫓은 햄스터에 별 관심이 없는 이유에 대해 자꾸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것이 <사람냄새 이효리>의 오묘하고 기묘하고 미묘한 매력이죠.‘오묘하다'는 심오하고 미묘하다는 뜻입니다. ‘기묘하다'는 기이하고 신기하며 묘하다는 뜻이고요. ‘미묘하다’는 아름답고 교묘하다는 뜻이죠. <사람냄새 이효리>는 심오하고, 기이하고, 색다르고, 규정하기 어려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재치 있고, 결국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 ⊙생각거리가 많은 영화는 여러 번 반복해서 시청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사람냄새 이효리>는 2X9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으니, 오묘하고 기묘하고 미묘한 이 영화의 매력을 양껏 느껴보시길 바랍니다.Schedule in SIWFF2022.08.26(금)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MX관 16:002022.08.28(일)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MX관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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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릿한 얼굴 위로 하얀 빛
SYNOPSIS.
그녀는 하오하오와 헤어졌지만 그는 늘 그녀를 찾아냈다. 주술이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늘 돌아왔고 스스로 다짐했다. "은행에 있는 50만 대만달러를 전부 써 버리면 그를 영영 떠날 거야"
그녀는 클럽에서 잭을 만났다. 잭은 항상 그녀를 데리고 다녔고 그녀를 가장 친한 친구처럼 대해 줬다.
이 일은 10년 전인 2001년의 일이었다. 세계는 21세기를 맞이했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축하했다.
POINT.
✔️ <비정성시>, <카페 뤼미에르>, <쓰리 타임즈>, <자객 섭은낭>... 대만 뉴웨이브의 대표자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작품
✔️ 세기말 청춘의 정서를 흠뻑 느껴볼 수 있는 작품.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요즘 젊은이들"의 빠른 속도 속 젊음을 담았다고 평한 바 있습니다.
✔️ 대배우 서기의 저력을 볼 수 있는 작품. 시나리오 없이 시놉시스로 시작해서 촬영한 영화라고 (아니 뭐라고?) 해요.
✔️ 금마장 영화제 촬영상, 영화음악상, 음향효과상 + 겐트 영화제 감독상. 칸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초청받았어요.
✔️ (재)개봉은 2024년 12월 31일. 밀레니엄처럼 찾아올 새해의 새벽에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빛이 어슴푸레한 터널 안으로 배우 서기가 분한 '비키'가 터널을 가로질러 걸어간다. 뚝뚝 비트가 떨어지는 음악 위로, 긴 머리가 흩날리고, 현란한 무늬의 옷에 감싸인 팔을 휘적거리기도 하고... 그 위로 영화 시놉시스가 내레이션으로 등장한다. 헤어져도 계속해서 찾아오는 연인과 매인 듯 자꾸 돌아가게 되는 연인. 3인칭으로 담백하게 풀어낸 내레이션 이후 터널 끝에서 계단을 내려간 비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나면, 방금 들은 내레이션이 영화에 그대로 펼쳐진다. 영화 전반은 비키의 내레이션이 나온 후 그 내용을 화면으로 풀어내는 식이다. 내레이션은 2001년으로부터 '10년 후', 즉 2001년작인 이 영화를 기준으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비키는 '나'라는 1인칭 대신 '그녀'라는 3인칭을 사용해 내용을 풀어낸다. 우연히 만나 불 같은 사랑에 빠져 모든 걸 버리고 서로에게 엉겼던 진득한 풋사랑은, 회상의 말보다 영상 속에서 더 지리멸렬하다.
어리고 철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연인의 관계는 대부분 어두운 조명 속에서 흘러간다. 밤의 간접 조명, 거의 블랙라이트 조명에 가까워 흰 옷이 푸르게 비치는 클럽의 조도, 희미한 빛, 깜빡이는 불빛 아래서나 그들은 서로를 원하고 있다. 그들에게 투명하고 올곧은 직사광선은 내리쬐는 법이 없다. 아침이 되어도 빛은 간유리나 비닐이 덕지덕지 발린 창을 투과하여 들어오며, 그나마도 끊임없이 소리를 빚어내는 유리 문발에 걸려 갈가리 조각난다.
유리알 부딪는 소리는 이내 관계의 파열음으로 발전한다. 목욕 수건과 샤워 타올 차림으로 경찰을 맞이하는 이 커플의 결말은 결국 (이 시대 창작물에 흔했던 방식 중 하나로) 비키를 몰아넣으며 일단락되지만, 내레이션에서 "주술" 같다고 표현했던 것처럼 이 사랑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파멸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까닭은 아마도... 파멸의 원인이 남긴 자욱이 너무 깊어, 설령 내게 해롭다는 사실을 안다 해도 떼어내기 쉽지 않은 탓일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무감하게 삐그덕거리며 공허하게 지속된다. 하오하오가 몇 번이나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강조하듯 상반된 빛이다. 검푸른 클럽 디제잉의 빛을 집안에까지 가져오는 하오하오와 달리, 붉은 계열 물건이 많은 비키의 방은 언제나 난색 조명으로 밝혀져 있다. 간유리와 유리 발로 깎이고 깨져 들어오는 빛일지언정 같은 빛 안에 있던 날들은 이미 바랬다.
사랑이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와도 발을 내딛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사랑을 징검다리처럼 밟아야만 발을 내딛는 이들이 있다. 땅 위에 단단히 두 발을 딛고 서는 대신, 사랑에서 다음 사랑으로, 때로는 불안한 발을 서서히 옮기느라 두 개의 돌 위에, 발을 괴고 있는 것이다.
휘적휘적 걷던 비키는, 유리알 같은 파열음을 남기며 끈질기게 이어져온 하오하오와의 인연이 잠시 소강 상태에 들어섰을 때 잭을 만난다. 잭은 의아하리만큼 충성스러운 자세로 비키를 보호한다. 억지로 약을 빼앗아야 했던 하오하오와 달리, 그는 부엌에 서서 비키에게 먹일 무언가를 요리한다. 끊임없이 괜찮다는 말을 해준다.
그러나 잭의 요리는 비키의 입맛에 맞지 않아 매운 소스를 몇 번이나 다시 뿌려야 하고, 반대로 잭의 담배는 비키에게 너무 강하다. 도무지 맞지 않는다. 내레이션이 먼저 펼쳐진 후에 영상이 펼쳐져 비교적 알기 쉬웠던 전반부와 달리, 잭의 시간은 영상이 먼저 펼쳐진 후 내레이션으로 정리된다. 하오하오에 비해 잭은 알기 어려운 인물이다.
엉망진창으로 자기를 좀먹는 관계라는 걸 알았다 해도, 요즘 같으면 인터넷에 올리자마자 헤어지라는 댓글이 빗발칠 (아니면 <무엇이든 물어보살> 나와서 서장훈에게 한 소리 씨게 듣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박제될) 하오하오여도, 그와의 관계는 최소한 비키에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잭이 아무리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해도 그는 비키에게 미지의 세계다. 그가 해결하려고 애쓰는 일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알 수 없다.
결국 잭과의 관계 속에서도 비키의 얼굴은 내내 흐릿하다. 잭의 집 부엌에는 큼직한 창이 나 있지만, 비키에 앉아있는 거실은 여전히 난색 조명으로만 겨우 밝혀져 있다. 잭의 자동차를 타고 그에게 얼굴을 온통 기대고 있을 때조차, 비키의 얼굴은 터널 속에서 스치는 조명으로 짧고 흐릿하게만 보인다.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조차 햇빛이 유리에 푸르게 반사되어 얼굴은 흐릿하다. 손에 쥔 머그컵에도 흐린 얼굴 무늬가 찍혀 있다.
영화 내내 비키의 얼굴은 흐릿했다. 흐릿한 간접 조명에 그림자 져서, 클럽의 검푸른 조명에 실루엣만 남아서... 심지어 일본 혼혈 형제와 함께 향했던 유바리 시에서 신나게 눈밭을 뛰어 다니던, 모처럼 생기 있어 보이던 그 날조차 눈밭에 푹 찍은 얼굴은 흐릿한 흔적만을 남겼다. 사랑 비슷한 것에서 사랑 비슷한 것으로, 제 발로 땅 딛고 가기보다 불안하고 빠른 발걸음으로 겅중겅중 넘어온 비키의 사랑이 그랬듯.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서 눈 쌓인 유바리 영화의 거리를 걸을 때, 낯선 외국어를 입내 내어 따라할 때 비로소 비키의 얼굴은 환하게 빛난다.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내레이션은 잭과 하오하오의 순간들을 무감하게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에 대한 감상을 밝힌다. 그리움이 묻어 있던 잭의 외투를. 해가 뜨면 사라져 버리는 눈사람처럼 느껴졌던 하오하오, 그의 불안을 끌어안고 사랑을 나눈 추억을. 비로소 비키는 사랑의 온전한 서술자가 된다.
그 자리에 영화가 있다. 정갈하게 낡아 가는 오래된 포스터들이,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우리의 흐릿한 얼굴을 비춘다. 흰 눈처럼 빛을 반사해 우리 마음을 들여다 보게 하고, 1인칭의 언어로 나의 사랑을 서술하게 한다. 아무 것도 없이 흰 눈만 내리는 것 같은 그 거리에, 영화가 있다. 우리의 마음이, 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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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럭키,한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매일 먹고 자는 아파트에 무슨 럭키, 한 일이 생겼을까? 내용을 유추하기가 쉽지 않은 <럭키, 아파트>라는 제목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이런저런 상상을 했었다. 막상 영화가 시작하면 럭키, 한 일은커녕 힘든 일만 잔뜩 일어난다. 깁스를 한 다리, 산더미처럼 쌓인 대출 이자, 피곤하기만 한 영업직, 그리고 9년을 쌓아 올려 약간 미지근해진 연인 관계. 설상가상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의 환풍구를 타고 악취가 풍기기 시작한다. 강유가람 감독의 스릴러는 이렇게 열린다. 오래 연애하고 함께 보금자리를 마련한 커플에게 생길 수 있는 일, 한국의 젊은이들이 겪을 수 있는 일.
그러나 주인공들은 일상에서 순항을 방해하는 요소들에 자꾸만 부딪힌다. <럭키, 아파트>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거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드라마를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선우와 희서의 관계와 감정 속에 깊이 들어가고 그 존재를 온전히 느끼고 있을 때, 사람들이 주인공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을 제시한다.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는 관계들, 제도에 두 사람이 진입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좌절한다.
악취의 원인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 원인이 아니라 주인공인 선우가 그것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이유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우리는 알게 된다. 악취는 잠깐 참으면 끝나는 불쾌함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이다. 사람들이 우리 둘을 못 본 체 한다면, 제도가 우리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그래서 선우는 깁스를 한 다리를 끌고 아래 층의 문제, 즉 다가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돌보기 위해 애쓴다. 관객에게 분명히 전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연출이 흔들릴 때조차, 그런 불안과 어려운 현실에 맞서고 있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관객은 동요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결국에는 모든 선우와 희서들에게 럭키,한 세상과 보금자리가 오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온라인 영화 매거진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참석 후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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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의 천국은
자유와 번영의 나라가 반듯하게 서 있는 곳. 이곳은 불과 몇 백 년 전까지 황량한 땅이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온 이들 바로 뒤에는 경제적 자유를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미국은 그렇게 태어났다. 다른 모든 건국처럼 이 건국에도 명과 암이 있었다.
자유와 금을 향한 거침없는 행보는 명암 모두 강렬했다. 역사책뿐 아니라 영화사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서부의 휑한 땅에 있는 마을, 주로 보안관으로 묘사되는 총잡이 히어로, 문제를 일으키는 무법자, 풀이 굴러가는 벌판에서의 결투,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거나 술잔을 들이키거나 석양 너머로 떠나는 히어로…
역사는 흘러가고 영화도 그렇다. 카우보이나 보안관이 총을 쥐고 나서는 서부극은 이미 클리셰가 되다 못해 비틀고 뒤집는 것조차 유형화되었다. 서부극에서 새로운 것이 더 나올 수 있을까 싶지만, 서부극의 영향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점점이, 새로이 흐르고 있다. 서부극의 장르적 재미를 영화사에서 제할 수는 없지만, 서부 개척시대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아지는 이들의 눈에는 반가운 흐름이다. <노매드랜드>나 <미나리>에서 서부극의 냄새를 (기존 서부극에서라면 절대 등장하지 못했을 이들의 얼굴이기에 더욱) 신선하게 맡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 서부극이라는 장르에 부드러운 우유를 붓는 <퍼스트 카우>를 만난다.
영화는 서부 개척시대를 정면으로 마주본다. 하지만 여기에 낭만의 색깔은 한 겹 사라져 있다. 서부 개척시대는 황금과 총으로 거침없이 나아간 이들만 존재한 시대가 아니다. 광야에 가까운 땅을 밟는 이들의 신발 밑창이 진흙탕뿐 아니라 어떤 이들의 삶까지 짓밟는 시대였다. 기존 서부극에서는 진흙탕보다 크지 않은 존재감으로 그려지던 이들의 삶.
<퍼스트 카우>의 두 주인공 쿠키와 킹 루도 어쩌면 그런 존재들이다. 쿠키는 사냥꾼들과 함께 다니며 식사 담당을 맡고 있는데, 사냥에도 그들이 퍼붓는 폭력에도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덫을 놓아 동물을 사냥하기보다는 숲 속을 걸으며 버섯을 딸 때 전심으로 집중한 모습이고, 그때마다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러시아 강도들에게 쫓기던 초면의 킹 루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줄 만큼 따뜻한 사람이다.
킹 루는 서부극에서는 드문 황인종의 얼굴을 하고 있다. 거기에도 중국인이 사냐는 질문에 "모두가 살지", 사실상 "아무나 다 살지"에 가까운 현답을 덤덤하게 던진다. 인종적으로도 홀로인데다 쫓기는 신세지만, 기회를 보아 영민하게 움직일 줄 알고 강단 있는 성격이다.
쿠키와 킹 루는 어느 마을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다. 킹 루는 생명의 은인이 된 쿠키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술을 나눠 마시고 묵묵히 집안일을 함께 돌보던 두 사람은 어느새 같이 지내게 된다. 그때 마을의 유지 팩터 대장은 제대로 된 티 타임을 갖겠다고 암소를 데려오고, 쿠키와 킹 루는 거기서 돈 벌 기회를 모색한다. 우유가 없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우유를 넣은 케이크라면 떼돈을 벌 수 있겠지. 두 사람은 밤에 몰래 우유를 짜 와서 반죽에 넣고 튀겨 튀김빵 같은 케이크를 만들어 판다. 꼬리가 길어져도 밟히지 않을 수 있을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얼핏 야심차 보인다. 그러나 백인 남성들이 총 들고 싸우던 배경에서,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비주류 인종의 두 사람이니, (영화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쿠키의 성은 '피고위츠'로 감독은 인터뷰에서 쿠키가 유대인임을 밝혔다.) 사실 그렇게 대단히 야심찬 이야기도 아니다. 게다가 이야기는 잔잔한 우정의 빛깔을 하고 풍광에 스며든다.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라는, 영화 시작 시 나온 윌리엄 블레이크의 구절은 이들의 행동 곳곳에서 묻어난다. 인간에게는 우정이야말로 집이 되어준다는 포근한 구절은 쿠키와 킹 루의 관계뿐 아니라, 쿠키와 젖소 사이에도 존재한다. 사람에게 말을 걸듯 소에게도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감정을 전하는 쿠키의 다정한 눈은 소의 그것과 닮아 있다.
게다가 영화 중간중간 비춰지는 '인디언' 원주민들의 모습은 착취나 왜곡 없이 잔잔하기만 하다. 말간 눈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어린아이부터 덩치 큰 팩터 대장의 집사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존재한다'. 이야기 진행을 위한 도구가 아닌, 그 땅의 거주자로.
“런던의 맛”과 “파리의 유행”에 곁눈질하며 몸만 여기 있는 ‘나으리’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이들이 사람을 보는 시선은 딱 두 가지다. 상위의 사람이라면 정치의 상대고, 하위의 사람이라면 그저 당연히 착취할 수 있는 노동력이다. 모두 제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돈을 추구하는 것은 킹 루나 쿠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타인의 자리까지 빼앗으며 돈을 추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으리’들은 총과 칼로 황야를 “개척”하고 그 자리에 당연하다는 듯이 군림한다. 팩터 대장의 집이라는 작은 공간에서도 이들이 상위를 차지하고 앉은 계층도가 층층 드러난다.
소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런던에서처럼 티 타임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 우유 맛이 그리워서 소를 들여왔지만 팩터 대장에게 그 소는 혈통의 산물이다. 무슨 혈통과 무슨 혈통을 교배한, 우수한 소. 소의 본질은 바라보고 있지 않다. 킹 루나 쿠키, 잠깐씩 등장한 인디언들처럼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보는 눈은 이들에게 없다.
무법자outlaw만이 악당은 아니다. 치안이 불안한 서부극의 세계에서 법망을 어그러뜨리고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자들만이 악당은 아니다. 때로 악당은 가장 견고한 치안의 얼굴, 가장 단정한 법망의 얼굴을 하고 올 수도 있다. 이분법적으로 선악을 분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서부극의 세계에서 배제되던 인물들이 둥실 떠올라 있는 이 영화를 보다 보면 현실의 서부세계에서 과오를 저지른 얼굴들이 떠오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토해냈던 마음처럼, 어디선가는 토해져야 할 마음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이 마음을 그저 서부 백인 남성들의 것만으로 치부하고 마음 편하게 다리 뻗을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동물을 혈통으로 이름 붙이는 데 익숙해진 현대인으로서, 19세기 서부극에서 동시대의 무언가를 본다. 이들이 총과 칼로 이룬 “당신들의 천국” 한구석에 나도 살고 있다. 어쩌면 이 당신들의 천국은, 누군가가 바람처럼 가만히 존재하던 자리를 짓누르고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꿈꾸던 이들이 잠자는 위에 쌓아 올린 것인지 모른다. 발끝을 내려다 본다. 내 디딘 발 아래에는 무엇이 묻혀 있는가.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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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어른은 없다, 주름진 아이만 있을 뿐
#기쿠지로의_여름 #스포일러_없는 #리뷰
최신 일본 영화를 리뷰하고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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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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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독전 2분만에 끝내는 리뷰, 그래서 이선생이 누구야?
**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고 감상해주세요!
** 영화나 특정인물에 대한 비하의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영화 '독전'을 감상했습니다.
이해영 감독의 신작이자, 故김주혁 배우의 유작이죠.
영화의 스타일은 독보적이지만 단점도 명백한 영화였습니다.영화 '독전'을 2분만에 제 나름대로 재밌게 구성해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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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전 #류준열 #조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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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내일> 공식 예고편
ㄴ듣도보도 못한ㄱ 사람 살리는 저승사자들의 등장! 저승 오피스 휴먼 판타지, [내일] 4월 1일 첫방송 본방 놓쳐도 가장 빠른 다시보기는 웨이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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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휴먼 보이스> 메인 예고편
떠난 연인과 함께 살던 집에서 그의 마지막 전화를 기다리는 여자.
드디어 전화가 울린다.
조심스럽게 대화가 오가고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있기만을 바라며
여자는 행복했던 추억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랑이 식은 남자는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고,
여자는 그의 대답을 받아들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