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2-10-09 19:37:30
애증의 모녀에게 멀티버스가 필요했던 이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중 국세청 조사에 시달리기 시작한 '이블린(양자경)'. 국세청에 제출할 수많은 관련 서류를 검토하던 그녀는 남편 '웨이먼드(케 후이 콴)'의 이혼 요구와 연애 중인 여자 친구를 인정해달라는 딸 '조이(스테파니 수)' 때문에 대혼란에 빠진다. 그때 이블린의 눈앞에서 멀티버스가 열리고, 알파 지구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를 만난 그녀는 수많은 자신이 다른 우주를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알파 웨이먼드는 이블린에게 그녀가 무한한 다중 우주의 절대 악 조부 투파키에 대항할 유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녀는 수많은 이블린 중 가장 최악의 선택만 한 이블린이기에 모든 멀티버스의 이블린으로부터 능력을 빌려 온다면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할 수 있다는 것. 또 알파 지구의 이블린이 딸 조이에게 권위적으로 윽박지른 결과 조이가 흑화 해 조부 투파키가 되었으니, 이블린만이 조부 투파키를 막을 수 있다는 점도 알려준다. 이에 이블린은 멀티버스의 운명과 딸과의 관계를 모두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참신한 소재라면 가만두지 않는 창작자들 덕분에 '멀티버스', 다중 우주 개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익숙한 소재를 선택하는 것과 그 소재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멀티버스도 마찬가지다. 필연적으로 다양한 설정을 필요로 하는 다중 우주 개념은 마치 복어와도 같다. 당장 지난 10년 간 할리우드의 정점에 있던 MCU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제외하면 이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두 명의 다니엘이 만든 액션 코미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원>)는 다르다. 시작부터 멀티버스 세계관을 숨기지 않으며 러닝타임 내에서 완벽하게 소화한다. 영화는 이블린이 책상에 가득 쌓인 서류를 뒤적이는 가운데, 거울에 비친 그녀를 담아내면서 시작된다. 두 명의 이블린을 함께 잡아주던 카메라는 이내 거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지금 보이는 이블린 말고도 다른 이블린이 있다는 걸 암시하듯이. 거울을 활용한 도입부는 흥미롭게도 <에에원> 속 멀티버스만의 한 가지 특징을 암시한다. 영화에는 다중 우주의 다양한 이블린이 등장하지만, 마치 거울 안에 갇혀 있듯 그들이 직접 만나는 장면은 없다.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모든 것(Everything)"이 있는 멀티버스, 인터넷
<에에원>의 멀티버스는 MCU를 비롯한 다른 영화의 멀티버스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멀티버스 영화는 우주 간의 경계가 없어져 '내'가 다른 '나'를 만나는 사건을 다룬다. 반면에 <에에원>의 멀티버스에서는 다른 우주의 '나'에게 있는 능력과 특징의 일부를 '내' 우주로 끌어올 수 있다. 실제로 이블린은 필요한 순간마다 적재적소의 능력을 다른 우주의 이블린으로부터 빌려온다. 괴력의 '디어드리(제이미 리 커티스)'에게 쫓기자 쿵후 마스터 이블린의 격투 실력을 끌어온다. 다수의 적과 싸워야 할 때는 피자집 아르바이트생 이블린의 광고판 돌리는 능력을 가져온다. 조부 투파키도 마찬가지다. 불의의 사고로 모든 우주에 접속할 수 있게 된 그녀는 각종 기상천외한 능력을 끌어다 활용한다. 이 아이디어는 <에에원>의 연출과 프로덕션이 특히 인상적인 이유다. 사실상 세탁소와 국세청 건물 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진행되는데도 <닥터 스트레인지 2> 못지않은 스케일을 뽐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에에원>의 멀티버스는 낯설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필요한 순간 모든 것을 가져다 쓸 수 있는 멀티버스는 어딘가 친숙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멀티버스는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요리 레시피부터 지하철 배차 시각에 이르기까지 실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암기하거나 알지 못한다. 대신 필요한 순간마다 인터넷에 접속해 가장 적절한 정보를 찾아내 활용할 줄 안다. 이 맥락에서 보면 이블린과 조부 투파키의 갈등은 단지 멀티버스의 운명을 건 대결이 아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서로 다른 세대의 갈등이다. 멀티버스를 처음 접한 이블린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모습에서는 인터넷을 비롯해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세계를 처음 접한 기성세대를 엿볼 수 있다. 반면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멀티버스를 다루는 조부 투파키에게서는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을 서핑하던 새로운 세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다니엘은 <에에원>이 "세대 차이와 인터넷, 현대인들에게 만연한 잠재된 공포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 말한다. 당장 전화번호를 모두 외우고 다니던 사람들의 눈에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치 다른 우주에서 온 사람을 보는 것처럼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숨 쉬듯 당연한 삶의 방식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들처럼 숨 쉬고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인해 정보가 넘쳐 나고, 같은 시공간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시대에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일상이 아니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골라하는 철천지원수 간의 싸움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이블린이 동성애자인 조이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이자, 이블린이 막아야 하는 빌런 조부 투파키가 알파 지구의 조이인 이유다.
멀티버스 속 "모든 곳(에브리웨어)"의 의미
그렇다고 해서 <에에원>이 어머니, 부모님, 기성세대가 마주한 놀라움과 혼란에만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멀티버스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울 조이의 내면을 장악한 공허함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녀는 멀티버스 안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삶은 역으로 무의미하다. 이는 SNS와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곳에서 접하는 정보에 압도되거나 좌절하거나 공허함을 느끼는 일이 많아진 현대인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그 결과 조부 투파키가 된 조이는 모든 것을 파괴할 블랙홀, 검은 베이글을 만든다. 세상을 휩쓸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서. 이렇게 조부 투파키는 이름만 다른 같은 공간에 사로잡혀 삶의 의미와 이유를 잃어버린 인물을 대변한다.
조부 투파키의 캐릭터성은 <에에원>을 단순히 코미디와 액션으로 점철된 오락 영화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진중함까지 맛볼 수 있는 깊이감 있는 영화로 만든다. 삶의 의미를 잃은 조부 투파키는 바위만 존재하는 우주에서 비로소 평온해진다. 모든 것들에게 개입하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우주의 고요함만이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이블린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모든 일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생생히 흘러가는 지금 이 순간의 경험과 선택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뜻깊은 것이고, 당장 옆에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조부 투파키처럼 모든 멀티버스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을 얻은 이블린은 무위의 우주에서 딸을 끄집어 내려한다. 자신에게 권한 검은 베이글을 거절하고, 돌이 된 우주에서도 딸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블린과 조부 투파키의 논쟁은 두 다니엘이 <에에원>에 "가족 드라마용, 공상과학용, 철학용 답이 각각 따로 있다"는 말로 이어진다. 철학적, 종교학적 사유가 함축되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모녀는 마치 해탈의 경지에 올라 모든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모녀의 갈등은 깨달은 자가 현실 세계를 무의미하다고 여겨 도덕적 규범을 무시하거나 외면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들도 자신처럼 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며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주며 살 것인지에 대한 논쟁인 것이다. 그래서 이블린이 끝까지 조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모성애이자 멀티버스의 붕괴를 막는 히어로의 자세이지만, 동시에 종교 철학적 선택이기도 하다. 특히 이블린이 제3의 눈을 개안하는 것, 불교 미술 양식인 탱화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메인 포스터, 부처의 깨달은 마음을 상징하는 원불교의 일원상처럼 생긴 베이글의 존재는 오랜 시간 종교를 막론하고 이어진 논쟁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단 번에(All at once)" 모든 것의 의미를 알게 된 사람의 마무리
이렇게 조부 투파키와 조이의 마음을 읽은 뒤 영화는 이블린의 시점으로 되돌아온다. 그녀가 온갖 우주를 경험하며 단 번에 깨달은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에블린은 마침내 딸을 이해한다. 그녀는 조이가 레즈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딸과 매번 싸웠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문제일 뿐 핵심은 자신과 딸의 세상이 같지 않으며 모녀가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설령 딸의 세상이 두렵고 혼란스럽더라도, 발을 내디뎌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고, 딸의 관점에서 딸의 고충에 공감하되 먼저 살아 본 이만이 알 수 있는 변치 않을 삶의 지혜를 일러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터득한다. 이렇게 먼저 다가가서 위해서 그저 평범할 수 있었던 가족 드라마에는 멀티버스가 필요하다.
이처럼 <에에원>은 두 다니엘의 말마따나 수많은 혼란 속에서 "가족에게 관심 갖는 법을 배우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딜도와 애널 플러그, 장난감 눈깔 등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등장하는 B급 코미디 요소는 익숙함에 신선함을 더하는 양념일 뿐이다. 영화는 줄곧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엄마가 딸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를 마침내 깨달은 후 화해하는 익숙한 흐름을 따라간다. 그래서 온갖 장르적 특징을 다 섞어 놓아 왁자지껄하고 정신없던 멀티버스는 결국 눈물 한 방울과 함께 가족 드라마로 귀결된다.
이는 마지막 장면이 영화의 시작만큼이나 인상적인 이유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와 사정을 알게 된 이블린이지만, 그녀는 멀티버스 속으로 빠지지 않고 눈앞에 있는 세무국 직원 디어드리에게 주목한다. 설명을 제대로 못 들었으니 한 번만 다시 말해달라면서 디어드리에게 관심을 쏟는다. 서류에 눈이 고정되어 있을 뿐 정작 가족이나 손님에게 제대로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오프닝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 나는 변화다. 멀티버스가 이름만 다른 인터넷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만 <에에원>에도 단점이 없지는 않다. 우선 뒷심이 부족하다. 사실 영화는 템포가 상당히 빠르다. 세탁소에서의 오프닝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만 쇼트 하나하나가 굉장히 짧고, 화면 전환도 빠르다. 그런데 러닝타임도 짧지 않다. 2시간 19분에 달한다. 그 결과 영화는 상대적으로 길게 체감되고, 피로감이 쌓인다.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이블린과 조이의 화해 장면이 생각보다 늘어진다는 인상이 남는 이유다. 확실한 임팩트를 주려는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전개를 의도적으로 끈다. 말 한 마디면 종결될 상황에 굳이 부연 설명을 덧붙이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누적된 피로감에 약간의 지루함이 더해지면서 감흥이 덜해진다.
호불호가 나뉠 가능성도 크다. 장르를 하나로 단정 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에에원>은 기본적으로 가족 드라마와 코미디 영화의 혼합이다. 그런데 이 코미디가 미국식 B급 감성을 적잖이 풍기는 관계로 취향에 어긋나는 순간 영화는 전반적으로 혼잡하다. 조부 투파키가 남성 성기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장면이나 성인 기구를 활용한 코미디가 대표적이다. 관객을 웃기겠다는 목표 충족에는 적합한 아이디어일지 몰라도, 그 자체로 다소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여지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취향 차이를 제외한다면 <에에원>이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120% 살려낸, <탑건: 매버릭>과는 또 다른 의미로 올해의 '시네마'라는 점에 동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붙잡고 고생 중인 MCU 입장에서는 다소 쓰라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의 감독인 루소 형제가 <에에원>의 제작자이니, 그들과 재계약하지 못한 걸 땅을 치며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마블이 보고 배워야 할 멀티버스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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