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4-29 00:41:01
오늘만큼은 맘껏 웃고 싶을 때, <패딩턴>
영화 <패딩턴> 리뷰
오늘의 영화는 바로,
맘껏 웃고 싶을 때 보는 영화 <패딩턴>입니다.
ⓒ 네이버 영화
정보
개요 코미디 | 영국 | 95분
감독 폴 킹
출연 벤 위쇼, 니콜 키드먼, 휴 보네빌 등
등급 전체 관람가
줄거리
폭풍우에 가족을 잃은 꼬마곰 ‘패딩턴’은 페루에서 영국까지 ‘나홀로’ 여행을 떠난다.
런던에 도착한 ‘패딩턴’은 우연히 브라운 가족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가족을 찾아 나선다!
한편, 말하는 곰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악당 박제사 ‘밀리센트’는 호시탐탐 ‘패딩턴’을 노리는데…
<패딩턴>의 T.M.I
ⓒ 네이버 영화
<패딩턴> 원작은?
1958년, 영국의 문학작가 마이클 본드의 '내 이름은 패딩턴'이 영국에서 첫 출간되면서 인기를 얻었고,
지금까지 패딩턴 베어 시리즈는 3,500만부 이상 판매, 4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패딩턴 속편
2015년에 패딩턴이 개봉한 후, 2017년에 패딩턴 2가 개봉했고,
현재 패딩턴 3 제작 중에 있습니다.
"맘껏 웃게 만들다!"
ⓒ 네이버 영화
<패딩턴>은 페루에 살던 꼬마곰이 런던에 오면서 벌어지게 되는 일을 담았습니다.
꼬마곰이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이 상황 자체도 너무 재밌긴 하지만,
꼬마곰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런던의 모습 또한 유쾌하게 담아냈습니다.
칫솔이 어떤 용도를 쓰이는 물건인지 모르고 귀를 닦기도 하고,
안내 문구를 잘못 이해하고 하는 행동, 패딩턴의 행동 하나하나가 웃음을 띄우게 만들었습니다.
"화려한 출연진"
ⓒ 네이버 영화
벤 위쇼, 니콜 키드먼, 휴 보네빌, 샐리 호킨스, 다들 한 번씩은 들어본 이름들이죠?
세계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여배우 중 한 사람으로 떠오르는 니콜 키드먼은
자신의 딸을 위해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냉정하고 집착이 강한 박제사 역을 너무나도 잘 소화해냈습니다. 주인공 '패딩턴' 목소리는 가디언의 Hot List 2007에 주목해야 할 배우로 선정된 벤 위쇼가 맡았습니다. 밝고 천진난만한 패딩턴 그 자체를 보여줘 극의 재미를 더해줬습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보고싶다?
-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찾고 있다?
-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
귀여운 캐릭터와 유쾌함이 더해져 큰 재미를 선사하는
지금까지 영화 <패딩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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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ria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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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토대위의 완성형 오컬트,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기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출처 : 왓챠피디아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과 ‘봉길’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이 합류한다.
“전부 잘 알 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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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2월, 오컬트를 좋아하는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던 영화가 개봉했다. 한 줌에 불과한 오컬트판에서 그저 작품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던, 절대 기대할 수도 없었던 천만 관객이 나온 <파묘>이다. <파묘>는 시작부터 달랐다. 웰메이드 오컬트 작품을 찾아보기 힘든 나로서는 큰 감명을 받았던 <검은 사제들>을 연출하신 감독님께서 또 다시 같은 장르의 영화를 만드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오매불망 극장 개봉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메인 포스터와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단숨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도 그럴게, 예고편에 드러난 스토리가 기대했던 만큼 흥미로웠으며 포스터 디자인은 그러한 기대감을 최대한으로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출처 : CGV
각 등장인물의 시선이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었다. 수많은 디자인 요소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미니멀한 형태로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가 쉽지 않은데, <파묘>가 그걸 해낸 것이다. 한국 오컬트의 근간에 있는 '풍수지리'를 활용함은 등장인물 중 '풍수사'가 있었기에 예상할 수 있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동서남북의 개념을 메인 포스터에 적용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더욱 새롭게 다가왔던 거 같다. 보통 극의 전체적인 내용과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담으려고 하지, 디테일한 소재를 활용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점부터 나는 '아, 감독님께서 기초부터 꽉 잡고 가는구나' 싶어서 스토리에 대한 기대가 더더욱 커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처 : CGV
위 버전의 포스터 또한 너무 취향이었다. 가장 먼저 공개되었던 캐릭터 포스터처럼 미니멀한 구성임에도 여느 포스터보다도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경문이 써져 있는 얼굴을 클로즈업함으로써, 긴장된 표정과 눈빛이 강렬하게 다가오고, 스토리의 진행이 얼마나 긴박할지 은연중에 상상하게 되는 즐거움 또한 이끌어냈던 거 같다. 각 캐릭터의 얼굴 일부만을 배경으로 사용하여 영화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하되, 여백을 살리는 디자인으로 타이틀 또한 각인되었기 때문에 '홍보' 포스터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고 감히 생각한다.
'파묘', 이토록 직관적인 단어를 제목으로 선택한 것도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한국 오컬트 중에서도 특히나 '묘'와 관련된 속설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퍼져 있기 마련이다. 묫자리는 해가 잘 드는 곳으로 해야 한다, 묘가 있는 부근에서 무언가 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 등 예로부터 이어진 유교 사상이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현상들을 위와 같은 미신들로 이미 인식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파묘>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공동체를 정확하게 건드렸다. 묘를 파헤쳤다고! 큰일났네, 대체 무슨 일이 생길까?
포인트1. 오컬트와 미스터리의 곁들임
오컬트는 곧 종교이자, (나에게) 종교는 곧 오컬트이다. 사람의 맹목적인 믿음과 순수한 신념은 아이러니하게도 괴기스러운 이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살린다. 장재현 감독의 연출작 중 <검은 사제들> 또한 이러한 공식을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서양 오컬트의 주요 소재인 '악마'와 '엑소시스트'를 거의 그대로 끌고 왔다는 점에서, 물론 연출은 독보적이고 완벽했지만, 여타 외국 작품들에서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미지를 떠나 이제는 조금 더 한국스러운 오컬트를 갈망하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파묘>가 이 부분을 완벽하게 간파한 것이다.
출처 : 왓챠피디아
한국식, 아니, 조금 더 넓게 가보자. 동양적인 오컬트란 뭘까? 개인적으로 동양의 오컬트 근간에는 '음양오행'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주의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어떠한 이상현상이나 초자연적인 일을 이해해보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바로 그 공식이다. '금, 수, 목, 화, 토'의 다섯 가지 원리에 따라 우주의 만물이 생성하고 또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보는 사주에는 수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퍼져 있는 '오행'은 스스로의 인생을 파악하기에 간단한 방법으로 일컬어진다. 예를 들어, 모 연예인의 사주에 '수'가 부족해 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승승장구했다거나 하는, 일반인들도 피해갈 수 없는 정설과도 같은 미신이다. 다른 예로 SNS에 밈처럼 퍼져 있는 일화를 보면, 문신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시선도 '사주에 ㅇㅇ이/가 부족해서 했어요'라고 하면 납득하게 된다는, 그런 우스갯소리로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 있기도 하다.
출처 : 왓챠피디아
<파묘>는 한국의 무교와 연관되어 있는 여러 직업이 한 데 모인다. 직접 영가를 파악하고 굿을 진행하는 무당, 그 옆에서 경문을 외는 또 다른 무당, 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지관, 그 옆에서 마지막까지 예우를 다 하는 장의사. 어떻게 보면 모두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이들이 '묘'라는 하나의 소재로 모여 각자의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매우 매력적이다. 여러 개의 장으로 나누어질 만큼 복잡했던 <파묘>의 극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이들이 처음 묘를 보러 갈 때 끝없이 이어지는 산 속을 굽이굽이 들어간다.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를 자처하여 들어가는 모습과도 같다. 그리고 이들은 경로를 잘못 들어가게 된다.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초~중반부까지 이어지는 숨막히는 전개로 한 사건이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숨을 돌릴 시간도 주지 않고 후반부가 시작되며 위 나레이션이 나온다. 내비게이션 음성을 활용한 트랜지션은 정말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미스터리함을 가중시키는 데 한 몫 했다. 이대로 끝이기에는 아쉬운 타이밍이었고, 그런데 대체 일이 어떻게 꼬이려나 상상도 안 되던 시점에 '첩장'이 나온다. 그리고 이 문제상황을 발견한 인물은 다름아닌 상덕이다. 처음부터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던, 피하고 싶어했던 상덕이 오히려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는 발걸음을 하게 된다. 수직으로 꽂혀 있는 거대한 무덤은 서양 오컬트의 '역십자가'를 떠올리게 했다. 순수한 믿음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거꾸로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죽은 자의 영원한 안녕을 바라는 무덤이 수직으로 서 있을 수는 없는 거다.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리는 본능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알아챈다.
포인트2. 인상깊은 연출
출처 : 왓챠피디아
여러 등장인물 중 무당 조합이 <파묘>의 흥행을 이끌었다는 데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현대적으로 풀어낸 무당의 모습만으로도 획기적인데, 생사가 오가는 오컬트 세계관에서 두 인물의 서사까지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병에 걸려 평범한 삶을 포기한 후배가, 선배와 같이 있기만 하면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완벽한 캐릭터 디자인은 감독의 투철한 자료 수집에서 기인했다.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무당에 관한 정보를 찾아 다니던 중, 신병을 겪고 무교에 발을 들이며 몸에 경문을 문신한 분을 뵐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봉길'의 삶은, 섬세한 고증을 통해 더욱 실감나게 구현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출처 : 왓챠피디아
이름 없는 묘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 또한 다시금 언급하고 싶다. 뱀의 움직임처럼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을 직부감으로 담아낸 쇼트와 긴장감을 더해주는 사운드가 나오다가, 한 순간 끊긴다. 적막이다. 무덤과 그 뒤쪽으로 이어지는 숲을 매우 넓게 잡은 롱 쇼트는 그러한 정적과 소름 돋게 잘 어울렸다. 광활한 풍경이 주는 압도감을 적절하게 활용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배경에서 이어지는 화림의 대살굿 씬은 컷 연결부터 사운드 디자인까지 정말 완벽했다. 새까만 재를 얼굴에 바르는 화림의 강렬한 눈빛과, 그 뒤를 받쳐주는 봉길의 기세 있는 목소리는 지금까지 접한 '굿'을 재현한 장면들 중 가장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서양의 엑소시스트와 동양의 굿은 어떻게 보면 일반인에게는 그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고, 현실적으로 성립이 되는가, 하는 갑론을박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분야이기에 조금 동떨어진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파묘>의 굿 시퀀스는 매우 차별적이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온 힘을 다 해 지금의 행위에 임하고 있는지 화면 너머의 관객인 나조차도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출처 : 왓챠피디아
이외에도 정말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있는데, 첫 번째 관이 열리고 그 혼령이 여기저기 날뛸 때, 과연 전화를 하는 상덕이 진짜일까, 문 앞에서 말하고 있는 상덕이 진짜일까? 하는 나폴리탄 괴담식 공포가 그대로 매체에 드러난 경우는 처음이라 속으로 굉장히 반가웠다. 공포 장르에서도 다른 시각/청각적 요소 없이 텍스트로만 즐기는 나폴리탄 괴담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소소하게 즐기고 있던 소재가 이렇게 영화의 한 장면으로 활용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롭고 흥미로웠다.
출처 : 쇼박스
그리고 도깨비놀이! 오컬트 장르답게 생소한 옛 설화를 기반으로 호러스러운 장면을 구현한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사실 '도깨비놀이'는 정확하지 않은 출처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명확한 행위가 있긴 하지만, '대화'만으로 영가를 속여 불러온다는 방법 자체가 오컬트에서 바이블로 등장하는 분신사바/위자보드와 같은 기묘한 분위기 그 자체이기에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미스터리함에 적절한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전통적인 기괴함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이에 더해, 제한된 공간에서 어떠한 물리적 상호작용 없이 네 사람만의 대화 흐름에 맞추어 카메라가 움직이며 다이나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부분 또한 감탄스러웠다. 도깨비놀이 자체는 제주도에서 발현된 일종의 굿이지만, 모든 지역의 사투리가 활용되었다는 요소도 꽤 매력적이었다. 절대 한 데 존재할 수 없는 각자의 지역적 특징을 지닌 것들이 일상적이지 않은 목표로 모여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고 이 세상 것이 아닌 무언가를 부르고 있다, 는 모순적인 상황에 혼란한 심리가 완벽하게 작용되었다고 본다.
물론, 아쉬웠던 부분도 몇 가지 있다. 초반에 화림과 상덕의 나레이션을 통해 사건의 시작과 등장인물들의 특성을 설명했던 만큼, 이후에도 설명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이 있었다. 특히 두 번째 관이 열리고 오니가 처음 등장한 직후, 화림이 혼령과 정령의 차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상덕에게 이야기할 때, 앞으로 우리가 결말을 위해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알게 되는 중요한 장면인 거 같은데 그저 말로만 설명하는 전개가 조금 아쉬웠다. 짧은 몽타주로 구성되고 끝났던 화림의 일본 요괴에 대한 끔찍했던 일화를 조금만 더 자세히 다루었다면 훨씬 매력 있게 표현될 수 있었을 거 같아서 더욱 마음에 남았던 거 같다.
1장에서 간접적으로 다가왔던 공포 요소와 달리, 2장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오니의 모습으로 인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표했을 것이다. 현실적인 공포가 아닌 판타지물에 나올 법한 크리처의 느낌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크리처 소재를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나로서는 마음 속으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커다랗고 붉은 공으로 디자인된 <파묘>의 도깨비불은 평소에 '도깨비불'이라는 소재 자체에 큰 흥미를 가지고 어떤 장르에서 어떤 형태로 활용될 수 있을지 상상해보던 나에게는 또 다시 실망스러운 부분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모든 이를 무력화시켰던 오니를 무찌르는 방법이 음양오행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인 '금과 목은 상극이다'였다는 게, 누구보다도 전문가인 지관 '상덕'이 마지막에서야 깨달았다는 설정까지 결정적인 단서라고 보기엔 부족했기 때문에 다소 아쉬웠다.
포인트3. 역사적 의의
출처 : 왓챠피디아
<파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탄탄한 역사적 소재의 기반 위에 오컬트를 잘 올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정기가 흐르는 산맥에 철심을 박아서 그 기운을 끊어버린다는 속설, 오랜 시간 동안 별 거 아닌 미신이라고 여겨졌으나 계속 회자되는 증거와 영화 개봉 당시 대중들의 반응으로 하여금 해당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언급할 필요성이 분명히 있었음을 입증했다고 본다. 당시 삼일절이 가까워지던 시기에 개봉했던 점과, 극중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이 독립운동가의 성함 그자체이며, 영화 구석구석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이스터에그를 심어 놓았다는 것이 결합되어 큰 시너지를 냈다고 판단된다.
올해로 제106주년 삼일절을 맞았지만, 일본의 만행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파묘>는 매우 직설적이고 명확한 연출로 일제강점기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의식하고 기억해야 할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독립운동과 광복을 넘어, 독재와 민주화운동까지. 말 그대로 피로 쓰여진 우리의 자유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여담으로, 명백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영화 <파묘>는 동물권에 대해 올바르지 않은 태도로 임한 사실이 있다. 제작사 측에서 피드백을 통해 자정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긴 했으나, 작품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 직접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는 부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배우가 먹어야 할 은어를 감쪽같이 젤리로 만들고 여우 또한 CG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을 뿐만 아니라 마케팅 요소로 활용했으면서, 오로지 촬영을 위해 살아 있는 은어를 대량으로 죽이고 실제 돼지의 사체를 폭력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작품을 소비해야 마땅하다고 판단된다. 이는 공포/오컬트 장르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관련 종사자와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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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의 방아쇠를 당기기까지의 여정
복수극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시원하고 짜릿한 맛이 일반적이겠지만, 영화 '리볼버'는 다소 다른 결을 띤다. "탕!" 복수의 총알을 한 방 발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다양한 구성을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리볼버'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갔던 전직 경찰 하수영(전도연)이 출소 후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직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무뢰한'에서 호흡을 맞췄던 오승욱 감독과 배우 전도연이 약 10년 만에 재회해 눈길을 끈다.
영화 제목만 보면 마치 총기 액션이 난무할 것 같은 복수극을 떠올리게 되고, 실제로 하수영에게 리볼버 권총이 쥐어지면서 '언젠가 저 총으로 누군가를 겨냥해 발사할 것이다'는 예상과 함께 긴장을 놓지 못한다. 그러나 보기 좋게 다른 노선을 보여준다.
교도소에 가는 조건으로 돈 7억과 서울 아파트를 약속받았지만, 출소 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하수영은 연관된 이들을 차례대로 만나며 정보를 수집한다. 정윤선(임지연), 조 사장(정만식), 앤디(지창욱), 신동호(김준한), 본부장(김종수) 등이 정보를 흘리고 이를 추적해 나가는데, 매우 저속으로 나아간다. 이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로드무비처럼 다가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하수영이 되찾기 위해 나선 7억과 서울 아파트는 본부장 말마따나 하수영이 목숨을 걸기엔 '그렇게 큰돈도 아니지만, 무시할 만큼 작은 돈도 아닌 것'처럼 표현된다. 돈 찾기보다도 하수영, 그리고 그와 얽혀있는 주변 인물들의 감정선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던 이들은 하수영과 접촉한 이후 미묘하게 관계성이 달라져 균열을 만들어낸다. 각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주진 않지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장면 곳곳에 던져주며 아슬아슬한 심리전의 재미를 만든다.
후반부에 모든 캐릭터가 한 장소에 모여 갈등이 본격 발화되면서 재미가 극대화된다. 여기에 조금씩 비튼 대사와 캐릭터성이 의외의 웃음보를 자극하기도 한다. 진득하기만 했던 '리볼버'가 막판에 가면서 다양한 매력을 분출한다.
'리볼버'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무뢰한'에 이어 영리하게 전도연을 활용하는 오승욱 감독의 '전도연 활용법'이다. 2년 전 하수영을 통해 파랑과 레드가 섞인 보라, 청색과 녹색이 모호한 청록 등 도드라지는 컬러로 부각했다면, 출소 후에는 어두운 의상을 입고 마른 수건처럼 생기를 잃은 무표정의 마른 얼굴을 보여준다. 코 앞에서 휘두르는 야구 배트에도 흔들림 없는 초점 잃은 눈빛과 함께 무조건 전진한다. 전도연의 새로운 얼굴이다.
그러면서 투샷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하수영과 '무뢰한'의 김혜경(전도연)을 연상케 하는 정마담의 묘한 워맨스(?), 온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하수영과 임석용(이정재), 진짜 관계가 무엇인지 감이 오질 않는 투자 회사 대표 그레이스(전혜진)와 앤디 등이 그렇다.
그리고 이 영화는 연기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하면서 아우라를 뿜어낸다. 이들이 있어서 '리볼버'의 흡입력을 더욱 끌어올리는데, 그중 인상 깊었던 건 지창욱의 새로운 모습이다. 그간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지질함을 장착하며 새 얼굴로 갈아 끼우는 데 성공했다.
다만, 다른 텐트폴 영화들에 비해 '리볼버'가 관객들의 관심까지 명중하기엔 장르나 분위기가 선택받기엔 쉽지 않다. '크로스' 대신에 여름 대전에 내놓은 배급사의 의도를 알겠지만, 모든 관객들을 사로잡기엔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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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 알아서 함께,<강변의 무코리타>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변의 무코리타 Riverside Mukolitta, 2021
일본 / 드라마 / 121분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각자 알아서 함께, <강변의 무코리타>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작은 어촌 마을에 있는 오징어 공장에 취직한 야마다의 목적은 오늘을 사는 것이다. 어제를 잊고 오늘을 무사히 넘겨 힘차게 내일을 맞이하고 싶단 희망적인 메시지로 읽을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오늘' 안에는 다음 날을 향한 기쁨이나 설렘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삶의 여유는 물론이고 이를 찾으려는 의지도 없다. 그저 하루를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인생을 알차고 즐겁게 살겠다는 다짐과는 아주 먼, 무기력하면서도 음울한 그의 억지다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야마다는 과거를 지우기 위해 도망쳤으나, 지울 수 없어 단순한 노동으로 몸을 혹사하지 않으면 정신이 미쳐버리는, 오늘 현재에 정체된 인물이다.
그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인물을 특이한 방식으로 소개하는 영화의 특성 덕분이다. <강변의 무코리타>는 모든 인물의 서사를 순간 포착한 사진(이미지)들로 설명한다. 사진 안에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겨 있다. 인물을 둘러싼 환경, 인물의 말과 행동, 인물이 겪을 사건과, 이미 겪었던 사건까지 어마어마한 수의 픽셀로 이루어졌다. 나아가 한 인물에 대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어, 보는 사람의 역량과 상관없이 누구나 영화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주인공 야마다로 예를 들자면, 누가 툭 치면 바로 쓰러질 것처럼 아무 의욕 없이 마을에 들어서는 그의 걸음걸이와 반가움에 건넨 사장의 악수를 받지 못하고 삐걱대며 주춤거리는 그의 옆모습이 대표적이다. 두 장의 이미지는 이야기 초반에 등장해 야마다의 현재 상황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그의 이전을 짐작하게 하며, 이후의 모습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특히 한없이 무력한 두 눈과 한껏 말린 어깨는 막 오징어 공장에 떨어진 그의 현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낸다.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공장 사장의 소개로 무코리타 연립주택에 입주한 야마다에게 막무가내 이웃, 시마다가 찾아온다. 얇은 벽 탓에 목욕을 방금 마친 걸 알고 있다며 뻔뻔하게 자신도 욕실을 쓰게 해 달라는 시마다. 야마다는 난처함을 표하며 그를 내쫓는다. 찰나의 순간, 시마다는 야마다에게서 자신과 같은 구멍을 발견한다. 분명 나와 다르지만, 내가 가진 것과 같은 구멍. 주택에 사는 사람들도 당연하게 품고 있고, 인간이라면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것.
"안심하세요,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답니다."
인간의 죽음. 태어난 순간 당연하게 예정되는 마지막 순간. 영화는 인물들의 살아있음으로 우리의 끝을 이야기한다. 주택 입주민들의 감춰진 이야기는 야마다에게 도착한 연 끊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시작으로 한 명씩 밝혀진다. 시마다는 자식을 잃었고, 미나미는 남편을 암으로 떠나보냈다. 미조구치는 아들과 함께 묘석 방문 판매를 하지만 반년째 집세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강변의 노숙자들은 여름 태풍이 올 때마다 친구를 잃고 있었다. 모두가 생의 끝자락에서 가족을 잃은 상실과 나를 찾지 못한 슬픔, 가치관을 바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무코리타 연립주택에 사는 이들에겐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내일을 생각하며 하루를 산다. 이웃의 이야기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눈과 귀로 담아내며 타인의 아픔에 소리 없이 공감한다. 세상으로 나와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몰라 밤마다 구구단을 거꾸로 세며 삶의 공포에서 도망가려는 야마다에게, 입주민들만의 방식은 좋은 본보기로 작용한다.
야마다는 마음을 열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마침내 자신의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멈춰있던 그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과 이별, 상실을 품고 사는 그들만의 방식을 보고 들으면서 자신이 의도적으로 감췄던, 이미 커다랗게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숨은 상처받은 어린 나를 구출한다.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텃밭을 가꾸는 시마다는 소소함에서 행복을 찾는 자칭 미니멀리스트다. 그는 자신의 가난을 타인에게 숨기지 않는다. 자신만이 줄 수 있는 소소한 답례로 타인에게 도움과 배려를 당당히 요구한다. 야마다의 욕실과 밥통과 선풍기까지 마음대로 쓰면서, 건네는 건 텃밭에서 난 채소뿐이다. 야마다는 그의 무례함에 대응하지 않는다. 시마다가 건넨 채소는 그를 굶주림에서 구해줬고, 더 나아가 아버지의 끝처럼 고독사로 죽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 줬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시마다를 무례한 이웃이 아닌, 좋은 밥 친구로 인식한다. 밉상으로 전락하기 쉬운 옆집 사람이 무코리타 주택에선 친근하고도 마음 따듯한 이웃이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주택 주인 미나미도, 반년 만에 묘석을 팔아 집세를 내는 대신 소고기 전골을 사 먹는 미조구치도, 말없이 눈빛만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스님도, 골동품으로 쌓은 쓰레기 산 위에서 외계인의 연락을 기다리는 두 아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각자 자신만의 속도와 흐름으로 야마다를, 이웃을 살피고 자기 자신을 돕는다.
물론 그들도 자기가 만든 구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야마다와 다른 점은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함께 견디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옥죄는 고통을 아주 조금씩 일상에 녹여내며, 언제 다 녹여내고 뿌리 뽑을지 생각하지도 않는다. 초조함이나 조급함 없이 묵묵히 내일을 살아가려 시마다는 텃밭을 가꾸고, 미조구치는 아들과 함께 계속 고객의 문을 두드린다. 야마다도 오징어를 손질하듯 자신만의 속도로 아버지의 죽음을 아주 천천히 들여다보며 해체한다. 자기를 버렸던 엄마의 기억을 떠올리고, 계속 따라다니는 두려움과 분노의 실체를 입 밖으로 털어놓는다. 이미 뚫려버린 구멍을 메우기 위해선 그 깊이를 먼저 알아야 하니까.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누구든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는 법이야."
야마다의 사정을 알고 있던 공장 사장의 첫마디, 영화는 처음부터 친절했다. 야마다를 위해 준비된 위로와 사람들, 끝내 미소를 되찾는 그의 정해진 미래까지 무난하고 뻔한 전개 방식이지만, 이는 <강변의 무코리타>가 의도한 것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현실 속 우릴 대변하는 건 인물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가장 두렵게 하고 움츠리게 하는 건 무엇일까. 영화는 죽음이 그 시작이라 봤다. 야마다와 이웃들을 통해 '인간이 죽는 건 당연하다'는 말속에 담긴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 가는데, 단순히 죽음을 좋고 친숙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같은 선상에 있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마땅하다는 것을 얘기한다. <강변의 무코리타>의 강점은 이를 위해 우리의 생을 가장 먼저 찬미한다는 것이다.
죽음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지만, 영화의 추는 늘 살아감에 위치해 있다. 반드시 찾을 수 있는 행복과 희망, 그리고 용기. 야마다는 몰랐던 것뿐이다. 갓 지은 밥을 코로 먼저 맛보고 목욕 뒤 맥주 대신 우유를 마시는 일이 사실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소소한 버팀목이었고, 민달팽이를 보며 어머니를 떠올리고, 과거에 발목 잡혀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은 ‘내’가 살아가고 있기에 겪는 과정이었단 진실을 말이다. 야마다는 이웃들과 똑같이 ‘종료되지 않는 치유 과정’에 들어가면서 생명의 전화를 거북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랬듯, 깊은 위로로 받아들인다.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강변의 무코리타>가 세운 확실한 전제가 좋다. 연립주택에 사는 이들이 구멍을 없애려고 일부러 함께 모여 살고 계획적으로 이웃에게 관심을 주는 게 아니라는 것, 각자의 방식으로 나의 아픔을 헤아리면서 무작정 타인의 아픔을 위로하지 않는 것. 무엇보다 의도적이지 않은 관심과 크기를 재지 않는 진심, 실없이 터지는 무해한 웃음으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서로를 보살피는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위로와 힘을 주는 영화다웠다.
야마다 아버지의 유골함, 미니멀리스트 시마다의 거미줄 이야기, 허기진 배를 채우는 미조구치의 상상극, 생명의 전화와 하늘을 헤엄치는 금붕어, 연립주택 사장 미나미가 품은 남편의 뼛조각, 외계인의 연락을 받기 위해 쌓은 전화기 산, 강변 노숙자의 기타 연주… 다양한 형태와 질감 그 속에 똬리를 튼 생의 의미까지 <강변의 무코리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구멍을 파고 또 파면서 이미지를 순간 포착해 생산하고, 비로소 단 한 장의 사진(영화)을 찍어 낸다.
그들의 가족사진에서 하늘을 헤엄치는 금붕어가, 떠난 이들의 유영이 보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강변에 노을빛을 뿜어내는 무코리타가 온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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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태어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이 오길
* <괴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괴물 (2023)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안도 사쿠라, 나가야마 에이타, 쿠로가와 소야, 히이라기 히나타, 다나카 유코
장르: 드라마, 스릴러
상영 시간: 127분
개봉일: 2023.11.29
"돼지 뇌를 이식한 인간은 인간일까? 돼지일까?"
'미나토(쿠로가와 소야)'는 동네 걸스 바 건물이 화재로 활활 불타는 장면을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와 함께 뜬금없는 질문을 내뱉는다. 엄마는 아들이 기이한 질문을 하게 된 저의나 아이의 생각보다 이런 말을 어디서 듣고 왔는지가 더 궁금하다. 학교에서 배웠다는 미나토의 대답. 사오리는 요즘 학교는 별 걸 다 가르친다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만다.
그 물음은 무언가 나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징후였을까. 어느 날부터 아들 미나토의 행동이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상처가 난 채로 집에 돌아오기도 하고, 물통에는 새까만 흙이 담겨 있을 때도 있고, 집에서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기까지 한다. 미나토는 번번이 핑계를 대며 상황을 무마시키지만, 결국 엄마는 아들의 학교에서 벌어진 진실을 직면하게 된다. 돼지 뇌를 이식한 인간이라는 폭언을 듣고, 교사에게 폭행까지 당한 아이가 바로 자신의 하나 뿐인 아들이었다는 것을.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홀로 세탁소 일을 하며 미나토를 키우던 싱글맘 사오리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억누르며 곧장 학교로 향한다.
미나토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뒤틀려 있었다. 아들에게 손찌검을 한 젊은 남자 교사 '호리(나가야마 에이타)'는 피해 아동의 학부모를 마주하고도 뉘우치는 기색이 전혀 없다. 남편의 실수로 손녀를 잃었다는 교장은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마치 자동응답기처럼 짜여진 각본을 감정 없이 읊을 뿐이다. 왜 아이에게 폭언을 했냐는 사오리의 다그침을 무시하듯 과자나 씹어대는 호리 선생의 태도는 뻔뻔하기 그지 없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대화를 거부하는 간부 교사들은 분노 유발자나 다름 없다.
감독이 나타내고자 하는 괴물은 이렇게 무책임하고 비겁한 어른들이었던 것일까? 사오리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전반부는 마치 호리 선생과 그를 비호하는 학교의 교사들을 두고 '괴물'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려고 할 즈음, 극의 시선은 사오리가 아닌 다른 인물으로 자연스럽게 뒤바뀌며 차마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행동을 조금씩 이해하게끔 만든다. 호색한에 파렴치한일 줄만 알았던 '호리'는 사실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대할 줄 아는 신임 교사였고, 퇴근 후에도 학생들의 일을 걱정할 정도로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이 강했다. 하지만 겹겹이 쌓여버린 여러 오해가 그를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내몰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모두가 그를 괴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인생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데는 '미나토'의 거짓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학생을 상대로 어떠한 폭언과 폭행도 일삼지 않았던 그를 왜 가해자로 낙인찍어야만 했을까. 자신을 비난하는 미나토의 엄마 앞에 앉아 할 말은 많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호리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모든 사태의 원흉과도 같은 미나토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물론 극의 초반부터 기행을 일삼던 미나토의 이야기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궁금했지만, 그 호기심이 극에 달했을 때 비로소 미나토의 진짜 속마음이 펼쳐진다.
미나토는 왜 그랬을까. 극이 미나토의 시선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의 실마리는 전부 풀린다. 미나토에겐 쉽게 수용할 수 없지만,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마음 하나가 생겼다. 그의 마음은 동급생인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에게로 향했다. 요리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같은 반 남자애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가정에서는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는다.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 즉 '괴물'은 요리의 친부가 아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천진난만한 아이. 미나토는 그런 '요리'에게 자꾸만 관심이 가고, 그 감정은 열두 살 소년이 감당하기 어려운 혼돈으로 변모한다.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애가 있어요.
그걸 말할 수 없어서 거짓말을 했어요.
내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게 들통날까봐 말할 수가 없었어요.”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미나토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요리와 같은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학교폭력을 모른 체 해야 했다. 그 마음은 자신을 홀로 힘겹게 키우는 엄마에게 들켜서도 안 됐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아들의 미래를 기대하는 엄마 앞에서 괴물 같은 자신의 모습을 꺼내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테니까. 그렇게 요리와 엮인 사건들을 설명하지 않기 위해서는 적당한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미나토는 거짓말을 하며 호리 선생을 괴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 앞에서 덤덤하게 속마음을 고백하는 미나토를 보면, 거짓말로 여러 사람을 곤혹에 빠뜨린 그의 행동을 무작정 비난할 수가 없게 된다. 호리 선생 또한 아이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미나토를 오해하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학교를 수차례 들락거리게 된 엄마 또한 악의 없이 뱉은 말이 아이의 여린 마음을 짓밟아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나.
누구든 괴물이 될 수 있고, 그 누구도 괴물이라 불려서는 안됐다. 그것은 단지 관점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만큼 사회가 만든 편견과 단편적인 외양만을 보고 이면을 판단하려는 사람들의 경솔하고 오만한 태도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지를 일깨운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관객인 우리도 어떤 인물이 과연 괴물인 지를 찾게 되지 않던가. 극중 한번이라도 괴물로 인식되었던 캐릭터들 모두 그들을 감싸고 있던 껍데기를 한 꺼풀 벗기기만 하면 선한 면도 존재하고, 각자의 삶에서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어떠한 관점에서 그 캐릭터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괴물이 될 수도 있었을 뿐이다. 인위적인 장치 없이 자연스럽게 여러 인물의 시각에서 극을 진행하는 연출은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아주 탁월했다. 이러한 전개 때문에 나도 모르게 괴물 찾기에 혈안이 되고 말았지만, 그로 인해 후반부 극의 메시지가 주는 충격은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애초에 누군가의 이면을 멋대로 생각하려 하지 않은 채 인물 한 명 한 명을 대하려고 했다면, 특정 캐릭터를 괴물일 것이라고 속단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선생님, 교장, 엄마, 남자 등 각 인물들을 지칭하는 수식어를 모두 떼어 놓고 본다면 이들은 모두 그저 소중한 하나의 개인이었을 뿐인데. 감독이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생각해본다면, 비록 자신의 미숙함이나 잠깐의 실수로 인해 '괴물'로 불릴 상황에 처했다 할지라도 이에 무력화되지 말고 나만의 모습을 잃지 말자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교사다움을 요구 받던 호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나토를 찾아가는 것처럼. 미나토가 요리에게 솔직해지는 것처럼. 학교를 지켜야 하는 본분에 충실했던 교장이 미나토에게 진실을 고백하는 것처럼. 학생다움, 남자다움, 부모다움, 교사다움 등 사회로부터 요구받는 나의 모습에 스스로를 빼앗기지 말고 나만의 모습을 아껴주자는 게 아닐까.
극의 결말부, 소용돌이 같던 태풍이 지나가고 맑게 갠 세상 밖으로 나온 미나토와 요리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에 치이고, 온갖 풍파에 지쳐 나만의 모습을 지켜내는 데 실패한 어른들과 달리 이 아이들(혹은 이 아이들과 같은 후세의 모든 어린 아이들)만큼은 너희들의 행복을 위해 다시 태어날 필요도,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결말을 택한 게 아닐까 싶다. 있는 그대로의 소중한 나 자신을 절대 잃지 말라는 뜻에서 말이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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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차'를 떠올리게 하지만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
8★/10★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리에와 그의 아들 유토. 리에는 둘째가 병으로 죽었고, 그 이후 남편과 이혼했으며, 최근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상실의 슬픔을 통과하는 중이다. 별일 없다는 듯 의연한 표정으로 가게를 정리하지만 느닷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이내 일그러지고야 마는 그녀의 얼굴과 함께 시작하는 영화는, 그녀가 마주한 압도적 슬픔의 크기를 관객에게 단번에 확인시켜준다.
그런 그녀에게 수줍은(혹은 음침한) 얼굴의 한 남자가 다가온다. 이름은 다이스케라 하고,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다이스케는 자주 리에의 문구점에 찾아와 그녀와 안면을 트고, 리에의 요구에 못 이기는 척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따뜻함이 묻어나는 그림이다. 곧 리에와 다이스케는 결혼한다. 다이스케는 과거가 알려지지 않은 외지인이기에 종종 마을 사람들의 근거 없는 험담에 시달린다. 하지만 리에는 사람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 유토를 자기 자식처럼 돌봐주고, 리에와 함께 예쁜 딸을 낳아 키우는 중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랑해주고 가정에 충실한 다이스케가 주는 일상의 안정감과 안전감이 리에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벌목 일을 하던 다이스케가 작업 중 사고로 사망한 것. 그러나 어렵게 찾아온 행복이 또다시 자신을 배신한 것과 사랑하는 사람이 허망하게 떠나버린 것을 슬퍼할 새도 없이, 리에에게 또 다른 혼란이 찾아온다. 다이스케의 제삿날에 찾아온 그의 친형이 영정을 보고는 그가 다이스케가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리에는 몇 년간 가족을 이루고 산, 사랑해서 아이까지 낳은 남자의 이름을 하루아침에 빼앗긴다. 이제 다이스케는 미지의 존재를 지칭하는 ‘X’가 된다.
리에는 전에 이혼 소송을 도왔던 변호사 키도를 찾는다. 능력 있는 변호사인 키도는 이 사건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강한 끌림을 느껴 X의 발자취를 좇는다. 키도의 아내가 사건에만 열중하느라 그가 가족에 소홀해지고 어딘가 변한 것 같다며 불만을 표할 정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키도가 만난 사려 깊거나, 소름 끼치거나, 리에처럼 수수께끼를 마주한 사람들을 거쳐 마침내 X의 정체와 함께 왜 키도가 이 사건에 그토록 열심이었는지가 드러난다.
X는 살인자의 아들이다. 키도는 재일 3세다. 즉, 둘은 모두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으나 필연적으로 혐오와 차별을 감당해야만 하는 삶을 살았다. X는 자신에게 살인자의 피가 흐른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괴로워햇고, 키도는 심지어 장인어른조차 ‘자네는 다른 재일과는 달라’라고 말할 정도로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했다. 두 사람 서사의 교차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면서, X가 다이스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건 자신의 의지로는 걷어낼 수 없는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기 위한 오롯한 선택이었음이 드러난다.
X의 선택, X에 대한 키도의 매혹, 그리고 재일조선인 키도가 X의 길을 따라간다는 결말부의 암시. 〈한 남자〉는 차별·낙인의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내면을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르 문법과 결합한다. 그럼으로써 장르 문법을 그저 훌륭히 활용한 것을 넘어 여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언제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될지 모르는 차별·낙인의 대상자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긴장감을 미스터리 장르 특유의 불편한 긴장감으로 변주해 펼쳐내는 것이다.
손가락질받는 소수자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연민과 공감의 정서는 〈한 남자〉가 갖는 드라마로서의 완성도를 높여주기도 한다. 미스터리와 드라마가 결합되었다고 하면 작위적 신파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 남자〉는 소수자의 삶을 서사의 핵심 동력으로 삼음으로써 그런 함정을 비켜 간다. 리에와 유토는 X의 과거를 알고도 그를 남편/아버지로 인정하고, 키도는 X의 용기에서 자신에게 다른 미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즉, X에서 리에로, X에서 키도로 이어지고 확장되는 낙인찍힌 자의 서사는 미스터리의 긴장감과 드라마의 따뜻함이라는 이질적 대상을 매끄럽게 연결한다. 주제와 형식, 장르의 측면에서 한국 영화 〈화차〉를 떠올리게 하지만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 놀랍도록 매혹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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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펄롱은 오늘도 석탄을 캔다. 그는 오늘도 열심히 석탄을 캐어 배달한다. 그는 건실한 석탄 운송 업체를 운영하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은 그를 아버지로서 인정해주고 화목함을 유지한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수녀원에 강제로 끌려가는 어린 여자를 보고 그의 평온한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의 안온한 일상이 무너지며 마을에서 금기시되어온 일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1. 결핍이 그저 나쁘게만 흘러가진 않는다.
영화의 시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펄롱의 어린시절, 그리고 가장으로서 건실히 살고 있는 현재 시점.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하게 된 여자들이 가족들의 수치로 여겨져 수녀원으로 보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녀들을 보며 빌은 자신의 어머니를 반추한다. 항상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던 그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수녀원에 끌려가듯 들어가는 소녀를 보며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했던 것 같다. 현재의 펄롱의 자상함이 어디에서부터 온 걸까 의심이 들 만큼 그의 어린시절은 몸은 안락했으나 마음은 가난했던 시절이었는데,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수녀원 속 소녀는 그의 안온한 삶에 돌을 던진다. 직감적으로 그는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소설을 읽진 않아서 그가 마을에서 수녀원이 일으키는 소동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도 지역 사회에서 수녀원이 행하는 권력이 막강한 것은 알았던 것 같다. 수녀원의 소녀를 구출하면 자신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는 계속 그 소녀를 구출하고 싶어서 고통에 휩싸인다.
그의 어린시절은 결핍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겠다. 결핍은 한 사람의 인생의 고통을 선사하지만 삶이란 참 간사해서 행복만 할 수 없고 고통이 지나고 그 고통에서 얻은 인사이트가 있어야 비로소 행복이라는 것에 가까워진다. 펄롱이 아버지가 없었지만 그를 보살펴준 삼촌의 존재가 있었고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지만 윌슨 부인의 지원이 있었기에 온전히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줄 수 있는 애정이 부재했던 탓에 결정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 분명 있었을 것인데, 그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결핍은 그의 인생의 고통이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 지금의 가정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펄롱의 인간성에 박수를 쳐주게 된다. 이런 밑도 끝도 없이 착한 캐릭터, 참 좋다.
2. 그를 움직이게 한 건 그저 어머니 때문이었을까.
수녀원에 끌려가는 소녀를 보며 그는 그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가 착한 심성을 가졌다고만 하기엔 그의 과거가 그 소녀에게 감정이입을 안 할 수 없다. 홀로 자신을 키워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그 소녀를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귀결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자신도 그 소녀와 비단 다르지 않은 처지였는데, 자신은 운이 좋아 윌슨 부인에게 거두어졌기 때문에 일종의 부채의식이 있었던 걸까. 이런 생각은 그가 자신의 아내와 이야기를 나눌 때 스쳤던 생각이다. '당신은 가난함을 모른다'는 뉘앙스의 아내의 말은 그의 삶이 안온했기 때문에 현실을 잘 모른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의 말도 틀리진 않다. 힘든 것을 안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선의를 베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힘든 것을 처절하게 겪은 사람일수록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오히려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소녀를 볼 때, 그가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기본 바탕인 선함이 발동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과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자신의 과거 속 무력했던 자신과는 달리, 지금은 행동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결의 고통을 겪고 있을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일말의 그의 선한 성격에서 나오는 선의였을 것이다.
3. 종교라는 이름의 폭력
우선 종교를 가지신 많은 분들이 욕하실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종교가 선함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종교를 가지는 사람들이 모두 선한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그 방식이 모두 공평하게 선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정 신을 믿으며 자신의 선함을 어필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선함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오히려 나에게 있어 선한 사람이란 개념은 유일신을 믿고 말고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 어떤 꺼려지는 일을 군말없이 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그게 바로 펄롱이다. 그를 말리는 사람들도 이기적이라고 할 순 없다. 그의 인간성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온전히 좋은 사람으로서 평판을 지켜나갔으면 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이들도 그렇게 악한 존재로 비춰지진 않았다. 지역 사회에서 평판이 어떻게 보면 삶의 전부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생리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그의 평판이 망가져 그를 오래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웠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들의 입장이 이해돼 그들이 처한 상황이 참 마음이 아팠다.
영화에서 제대로 나오진 않았지만 수녀들은 임신한 소녀들의 덜미를 잡아 착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습을 보며,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생각했다. 종교의 세계에는 선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이라는 대외적 이미지를 이용해 사람들을 간혹 이용하기도 하고 그들을 착취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아무래도 순결에 대한 강요등 그로 인한 억압적인 측면도 분명 존재하기에 억압이 심해지면 가끔 돌연변이들이 나오는 법이다. '스포트라이트' 속 동성애를 감추려는 사제들이나 여기 수녀들이나 종교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투명한 순결함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일종의 돌연변이같은 괴물들인 것이다. 그건 종교의 문제라기 보다는 어떤 정확한 규율이 요구되는 집단에서 으레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가끔 펄롱과도 같은 내부고발자 포지션의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은 세상은 그렇게 파멸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파멸하지 않았다면 계속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10번의 고난이 와도 한 번의 행복이 온다면 그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희망이라는 단어가 계속 떠올라서 이 조용한 영화를 보면서 흐뭇하게 볼 수 있었다. 펄롱은 평범하게 살고 있지 못한 사람들에게 평범하게 살 권리를 선물한 것 같았다. 사소함을 누릴 수 있는 삶이 복된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전해져 참 좋았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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