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파로2022-11-22 23:15:37
묻어둔 죄책감에 커지는 불안함
영화 세이레 리뷰
아이가 태어난 뒤 7일이 세 번 지날 때까지 21일간 산모의 건강을 도모하고 집 안에 삿된 것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음양오행의 동양 사상, 더 멀게는 단군신화에서도 언급된 삼칠일이라는 금기의 신성기간을 통해 내재된 불안감과 죄책감을 파고드는 심리 미스터리 한국 독립 영화 세이레 리뷰입니다. 서현우, 류아벨, 심은우, 박강 감독이 함께한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먼저 접할 수 있었고 기자분들의 질문과 준비된 진행을 통해 관람 이후 좀 더 디테일한 장면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독립·저예산 영화가 많아진 현재 좋은 선택으로 즐거운 감상하셨으면 좋겠네요. :)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영화 세이레 줄거리
자기한테 상갓집에서 뭔가 붙어 온 거야
얼마 전 아기가 태어난 우진과 해미 부부, 구전으로 내려오는 민간 신앙을 많이 믿는 장모님의 영향으로 아내 역시 그 말을 따라 현관문에 금줄도 치고 금기사항을 철저히 지키지만, 그런 미신이 우진은 썩 이해되지 않습니다. 초보 아빠로 회사 다니며 틈틈이 육아도 돕고 바쁘게 보내던 어느 날, 과거의 연인 세영의 부고 문자가 도착합니다. 가야 할지 고민하는 그에게 해미는 아기가 태어난 집에서 장례식 가는 게 아니라며 반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녀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악몽도 꾸고 아기가 아프게 되면서 아내가 말한 미신에 대한 불안감을 날로 커지는데...
예고편│ Trailer
영제: Seire│감독·각본: 박강
출연진: 서현우, 심은우, 류아벨 외 多│장르: 드라마, 스릴러, 미스터리
상영 시간: 102분│국가: 한국│등급: 15세 관람가
제작: K'ARTS│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개봉일: 2022년 11월 24일
수상 이력: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수상
# 영화 세이레 평점
불안과 두려움으로 잠식되는 정신
마음의 안정을 줘야 하지만 왠지 모를 서늘함이 느껴지는 집이지만, 비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동서 관계가 바로 앞 집에 살아서인지 아기를 낳았다는 기쁨에도 남모를우울함도 있고 아내 역시도 약간은 우위에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보입니다. 이런 외적 압박감은 분명 우진을 억누르는 요소로 보이며 진행되지만 반복된 악몽의 원인은 죄의식에 따른 불온감과 이를 숨기는 불안감에 따른 것임을 차차 알려줍니다. 여기에서 유독 새빨갛지만 속은 검게 썩은 사과나, 마주하게 된 쌍둥이 예영의 사소한 습관과 행동은 꿈과 현실을 분간치 못하는 현 상황을 확연히 드러내주며 관객에게 끝까지 긴장감과 혼란을 주는 효과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진의 시선을 따라 줌인과 줌아웃을 반복하는 카메라 움직임은 서서히 죄어오는 인물의 심리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혼란으로 초대하는 서현우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다채로운 작품 활동을 펼치며 여러 모습을 소화한 서현우는 이번에도 좋은 연기력을 선보입니다. 서서히 옥죄여오는 세영의 존재는 현실과 환상 사이에 놓인 과대망상 환자처럼 행동하는 그의 눈빛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관객을 초대합니다. 그의 시선에 담긴 이해할 수없이 이어지는 착각과 착시는 혼란을 가중시키고 발단이 무엇이었는지 궁극적인 궁금증을 일으킵니다. 숨겨둔 과거의 행위와 현재 상황에 대한 죄의식과 책임, 그리고 지금의 가정이 부서질까 두려워하는 불안과 두려움까지 형언할 수 없는 미스터리함이 눈빛으로 전달됩니다. 더불어 1인 2역의 류아벨과 뭔가 서늘함을 풍기는 심은우의 서포트 또한 좋아서 연기와 분위기가 더 맛깔났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우진의 전사에 대해 디테일하게 나오진 않지만,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잘못이 현재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인이라면 한 번은 들어봤을법한 민간 토속신앙, 미신이라 여겨지는 삼칠일을 활용해 그러한 믿음의 형태가 묻어둔 죄책감을 가중시키고 팽팽히 조여오는 심리를 펼쳐냈기 때문이죠. 어쩌면 믿음을 떠나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막연함이 끝나지 않은 죄의식의 도화선을 건드려 서서히 한 인간을 잠식해가는 매우 독특한 설정이라 생각됩니다. 이래서 죄를 짓고 살면 안 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
한 줄 평 : 깊은 곳에 남은 죄의식이 불러들인 악몽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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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능성을 잃은 사람의 가능성 전쟁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은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기능성이 사라진 직장인의 말로
<어쩔수가없다>는 제지 회사에 25년 간 근무했으나 회사에서 한순간에 잘린 만수의 이야기이다.
작중에서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 역시 만수의 경쟁자로 모두 만수와 비슷하게 경력을 쌓았고 회사에서 잘려서 각자 나름의 방법을 강구해보고 있는 캐릭터들로 구성된다.
주인공 만수는 회사 제직 당시에는 '올해의 펄프맨'이라는 제지 전문 잡지에서 주는 상도 받았을 만큼 뛰어난 인물이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잘리면서 그가 가진 제지 회사 전문가로서의 기능성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뿐만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기능성 역시 함께 무너지고 그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점점 곪아간다.
만수는 재취업을 위해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노력하지만 쉽게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유력한 경쟁자들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는 만수가 현재 자신이 가진 시장에서의 가치로는 취업이 어렵다고 판단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에서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외부의 가능성을 좁히는 방법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극 중에서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100세 시대인데 제지 말고 다른 일 해보는 건 어떠냐는 질문에 25년 간 종이만 만들던 사람이다. 내가 살아온 게 그렇다는 대답은 캐릭터들의 고정되어 버린 기능성을 의미한다.
<어쩔수가없다>는 한 가지 기능에만 고정되었던 사람이 그 기능을 잃었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극단적인 형태의 서로 다른 캐릭터로 보여준다.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기능의 상실을 인정하지 않은 도피
처음 만수의 타깃이 된 구범모는 만수와 동일하게 직장에서 잘리고 나서 자신의 기능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술에 빠져서 알콜 중독자처럼 지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가장의 역할도 포기하고 남편으로서의 역할도 마다한 채 지나간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제지 회사 일자리만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그가 열심히 키우던 배 나무가 온갖 벌레에 휩싸여 곧 죽을 것 같은 모습인 것처럼 그 역시도 곧 죽을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작중 등장하는 실직자 중에서 가장 베테랑이고 실제로 만수와 다른 경쟁자들이 면접을 본 회사에 가장 먼저 합격한 인물이기도 하다.
결국 그의 고집은 어느 정도는 근거 있는 고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만수가 그를 바라보던 시점의 구범모는 술에만 빠져서 아내의 신뢰도 완전하게 잃은 채 고집만 부리는 자신의 예정된 미래처럼 보인다.
만수 역시 과거에 술에 빠져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있고, 술만은 절대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자신이 경쟁자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구범모처럼 술에 빠져서 가정과 기능 모두를 잃는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만수는 구범모에게 가장 큰 연민을 느낀다. 특히 그의 가정까지 부서지는 모습에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구범모의 도피는 결국 가정도 기능도 모두 잃은 채로 가장 처참한 끝을 마주하게 된다.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새로운 기능을 찾아서 노력 중인 현실
두 번째로 만수의 타깃이 된 고시조는 기능의 상실을 인정한 케이스다. 그리고 가정을 위해서 스스로 새로운 시작을 자처하고 자존심 상해가면서 구두가게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지내는 인물이다. 가장 현실적인 형태이며 어쩌면 만수가 본받아야 했을지도 모르는 인물이다. 하지만 가정도 본인의 욕심도 직장인으로서의 기능도 모든 것을 잃고 싶지 않았던 욕심 가득한 만수가 바라봤을 때는 자신을 잃어버린 쓸쓸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시조와는 많은 교류를 하지 않는다. 그저 일처럼 그에게 접근해서 빠르게 해치워버린다. 그는 가장 가정적인 인물이었으면서 결과적으로는 본인의 높았던 기능성을 놓아줌으로써 안정감 있는 현실을 찾았다. 그래서 그의 삶에 전처럼 성공한 사람의 여유는 없었을지라도 행복과 배려는 있었다.
고시조가 살해당하기 전 고장 난 척 세워진 만수의 차를 고쳐줄 때, 기계를 잘 다루는 본인의 기술로 차를 손봐주던 그의 행동은 구두가게에서 구두를 추천할 때보다 훨씬 자신 있고 기뻐 보인다. 그 역시도 다시금 자신의 기술과 기능이 인정받기를 누구보다 바라던 인물이었음이 느껴졌다.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기능성을 더 높이기 위해 다른 것을 버린 삶
마지막으로 가장 잘 나가는 제지 회사에서 재직 중인 최선출은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보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만수가 선망하면서 가장 가깝게 접근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까이서 바라본 그의 삶은 기능만 남아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이룬 건 외부적인 성공뿐이었고, 가정은 이혼했으며, 주변에 친한 친구도 잘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시골의 전원주택은 시골살이를 싫어하던 아내에게 이혼을 당한 원인이었으며, 그가 꿈꾸며 자랑하는 바비큐 파티는 부를 사람이 없어서 꿈만 꾸는 장식이었다. 결국 그 역시도 술에 빠져있었으며, 심지어 그가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회사도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사람 한 명 더 뽑자는 말도 못 하고 혼자 감내하던 사람이었다.
이런 모습은 어쩌면 만수가 고집하던 것들과 닿아있으면서 만수가 부리는 고집이 얼마나 허망한지 보여주고 만수가 바라는 성공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보여준다. 최선출은 만수가 가장 죽여야 하는 사람이었음에도 가장 죽이고 싶지 않아 했던 인물이었고 결국 앞에 두 사람이나 죽였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덧붙이며 그를 살해한다.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살인으로 부정한 삶의 모습들, 그렇게 끝난 전쟁과 후유증
주인공 만수는 자신과 비슷한 혹은 자신의 다른 가능성들처럼 비치는 인물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경쟁자로 소개된 그들의 삶의 모습은 어쩌면 만수가 살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삶들이다. 그래서 그는 구범모의 삶을 안타까워했고 결국 그 삶으로부터 도망쳤다. 만수 역시 그러한 삶을 살았다면 자신의 아내인 이미리에게 버려질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두 번째 타깃에게 간다.
고시조를 보면서 만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만수는 그 당시 친구와 도둑질을 해 경찰서에 간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우리는 전쟁 중이고,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 이것이 만수가 내린 결론이다. 고시조를 죽임으로써 만수는 제지 회사 베테랑이라는 입지, 든든한 가장, 사랑하는 남편, 내 집에서 살아가는 성공한 삶. 이 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가족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결코 본인을 희생하지도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을 위해서 베테랑이 아닌 굽신거리는 구두가게 점원이 되는 가능성을 죽여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선출을 죽이면서 만수는 이 이야기를 정리하려고 한다. 최선출을 죽이는 시점에서 만수가 그를 죽이는 이유는 이제 남아있지 않다. 그저 어쩔 수가 없어서, 그를 죽여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술을 마시고, 앞에 두 사람이나 죽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역시 죽인다. 최선출은 만수와 술을 마시면서 만수를 엄청 마음에 들어 했다. 아마 그 둘은 아주 잘 어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만수는 최선출보다 욕심이 많았고, 더 많은 기능성을 갖고 싶어 했다. 한번 직장을 잃었던 사람으로서 다시는 그 자리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그는 최선출을 통해서 일자리를 소개받거나 둘이 함께 근무하는 것이 아닌 그를 죽이는 것을 택한다.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만수가 치르던 모든 전쟁이 끝났을 때 평화는 찾아왔는가. 만수는 결국 직장을 얻었다. 그가 처음에 이야기하던 직원들과 함께하는 그런 일자리는 아니지만 목표로 하던 본인의 자리 하나만큼은 만들어냈고 차지했다.
집도 팔지 않기로 했고, 장인어른에게 맡겼던 강아지들도 되찾아왔다. 그가 원하던 모든 것을 쟁취해 낸 전쟁이었다. 하지만 전쟁에는 항상 후유증이 있는 법, 그의 가정은 이전과 같지 않고 그의 직정도 이전과 같지 않다. 심지어 집 앞에 들어온 대단지 빌라를 보면 그의 집마저도 전과 같지 않다.
결국 변화를 거부하고 치러낸 고집스러운 전쟁의 결과는 자신의 기능성을 모두 고집한 끝내 모든 기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제 사랑받는 남편의 기능도 하지 못하고, 직장에서의 업무는 모두 AI가 대체한다. 동일한 관리직이지만 사실 경비에 더 가깝다. 그가 아끼던 보금자리도 사과나무와 함께 시체가 묻혀있는 범죄 은닉처가 되어버렸다. 전쟁의 끝에 평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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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쁘진 않았는데 낯설어서 그래
내가 만약 돈이 무진장 많으면 난 어떻게 변할까? 예쁜 여자 만나 행복하게 살겠지. 그럼 나도 감사함을 몰라 점점 이상하게 변할까? 26살쯤 되니 내가 한 건 없고 내 주위 사람들이 나를 만들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서 이 생각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종종 들 곤 한다. 이제까지 만났던 부자들은 다 성격 좋았다. 남들 배려할 줄 알고. 따뜻하고. 근데 이 세상 사람들 다 성격 똑같은 것 아닌 거처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내가 만난 부자들이 못돼먹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그런 존재가 된다는 보장이 있나?
오늘도 글을 쓰면서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을 한다. 사실 간단하다. 그냥 매일 염두하고 책 많이 읽으며 살면 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지금이라도 일단 부자가 되기 위해 비트코인과 주식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싶지만 역시 돈은 일해서 벌어야 얻는 게 많아지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야 사람 고마운 걸 알아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난 일 많이 해서 돈 벌거고 밥맛 떨어지는 나쁜 놈이 될 생각 없다. 이왕에 어려운 사람들 도우고 사는 게 재미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저번 주에 밥 맛 떨어지는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왔다. 다른 때 같으면 영화를 추천했을지도 모르지만 난 사실 잘 모르겠다. 여러분들이 보고 어떤 작품인지 다들 생각해보길 바란다.
인생은 원래 생각지도 못한 것의 연속이지
남자가 느닷없이 한 건물 문을 연다. 시선을 어디로 둘 지 몰라 고정하지 못하는 이 남자. 집주인이 빈 시간에 딱 맞춰 올 정도로 주도면밀했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남자는 뒤적뒤적 집주인의 물건들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남자는 도둑이다. 도둑이 들어간 이 별장의 주인은 IT업계의 억만장자 CEO다. 집주인이 외부 행사로 잠깐 비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도둑. 금세 주인장의 롤렉스와 현금을 찾아 도망치기로 한다. 그렇게 주섬주섬 모든 짐을 챙기고 도망치기만 하면 된다. 아. 그전에 오줌 한번 시원하게 누고 가야지. 마치 자기 집에 온 사람처럼 도둑은 최후의 끝마무리(?)까지 하고 문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원래 외부 행사로 별장 주인이 자리를 비워야 이치에 맞는데, 느닷없이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생겨버렸다. 당황하는 도둑. 그 주인 부부가 별장에 들어온 것이다. 도둑은 숨었다가 아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혼자 있던 아내. 아내는 인질로 잡혔고 부부는 이도 저도 못 가게 손발이 묶이게 된다. 도둑은 이 집에 있는 모든 카메라를 찾아 기록을 은폐하고 남편이 도주를 위해 제시한 금액을 위해 부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이 이후의 영화가 작품의 줄거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묘하게 느껴지는 계급 차이
이 영화는 계층에 대해 다룬 영화다. 주인공 도둑은 최근에 어떤 일이 있어 빈곤을 겪는 것 같아 보인다. 이 덕에 인물은 도둑질을 계획하게 된다. 이 계획이 원래대로 이뤄졌다?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부부가 들어와서 다 엎어지게 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세 명이 처해있는 처지를 대비시키며 계급 격차를 부각한다. 예를 들어 50만 달러라는 금액에 대해 논할 때, 도둑이 제시한 15만 달러를 남편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조소한다. 이 대사를 듣고 도둑이 답한 것이 있다. '우리 생각하는 삶의 질이 다르네'였다. 이를 기점으로 영화는 계속해서 남편과 도둑의 관점 차이를 보여준다. 빈곤과 부유의 뚜렷한 대조인 셈이다. 그리고, 계급과 입장에 대한 차이는 하나 더 있다. 이 부분은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엔딩과 관련이 있어서 더 쓸 수는 없을 듯하다. 각본의 완성도를 떠나 인물의 캐릭터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캐릭터의 대비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계급 갈등 문제를 묘사하는 데 있어 살짝 기시감이 드는 부분이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
좁은 공간. 계급 격차.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것 그리고 엔딩까지. 이거, 난 <기생충>에서 본 내용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기생충> 만큼이나 철저하지는 못하다. <기생충>은 계단을 비롯한 여러 도구와 '냄새'라는 모티브로 기득권층의 모순과 계급에 의한 전락을 탄탄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전적으로 주인공들의 대사에 의존하는 계급 격차를 보여준다. 이러다 보니 극 자체의 보는 재미는 좀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영화 자체가 무난해도 어쩐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뭐 다른 영화를 의식할 필요야 없겠지만 사전 조사가 좀 더 철저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는 감독도 관객이라 연출자가 제일 중요하나, 두번째로는 역시나 타인이 보기 때문에 염두해야 할 구석이 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기생충>과는 다른 스탠스를 유지하며 이런 류의 영화들과는 다른 차이점을 찾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이왕에 미국의 계급 격차를 다룰 것이었다면 밑도 끝도 없이 도둑질하는 것부터 보여줄게 아니던가, 결말을 좀 수정하는 식으로 인물에게 감정 이입할 만한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 별장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굳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거 영화 배경을 바다나 성당으로 바꿨어도 크게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이 역시 뭐 영화를 보는데 심각하게 지장이 가는 건 아니나 극의 전개를 좀 더 천천히, 깊게 제시했으면 극이 충분히 꼼꼼했을 것이라 예상한다.
좀 더 꼼꼼하면 좋았을 걸
이 영화가 조명하는 문제가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닐 것이다. 계급 문제 물론 심각하다. 당연히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배려받아야 하는 것은 맞다. 이 극의 주인공이 벌였던 강도라는 범죄가, 사회가 만든 비율이 단 1%라도 없다면 거짓말 아닌가. 그러나, 한 처지에 있는 인간이기를 떠나서 영화 전체적인 전제들이? 쳐지는 구석이 많다. 빈곤하거나 부유해도 전적으로 사람 아닌가? 영화의 메시지를 위해 인물들이 희생된 느낌이 있다. 또 다른 '계급 격차'역시 묘사가 아쉽다. 이 갈등 역시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이 영화에 굳이 묘사되어야 했나?라는 것도 의문점이다. 결말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순 있으나 깊게 생각하면 몰입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기생충>이 선택과 집중으로 밀도 있는 이야기를 만든 반면 이 <윈드폴>은 분산으로 몰입도가 떨어진다. 배우들의 호연이 좋았고 메시지 자체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이야기라 나쁘지 않았지만 극이 좀 구멍이 나있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부부 둘의 좋은 연기
제시 플레몬스 연기 좋았다. 극을 보면서 주먹으로 한대 치고 싶었다. 자기밖에 몰라 부끄러움을 까먹은 후안무치의 CEO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또 아내 역의 릴리 콜린스도 내면에서 꾹꾹 참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이 둘의 연기만으로도 극을 보는데 무리 없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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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고통과 비극, 그 속에 남겨진 사랑을 건져올리며
* 이 리뷰는 영화 <그을린 사랑>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을린 사랑>은 쌍둥이 남매에게 도착한 편지 한 통으로 시작한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나왈 마르완. 쌍둥이 시몬과 잔느의 어머니다. 나왈 마르완이 최근 유명을 달리하며 쌍둥이에게 유서를 남긴 것이다. 유서에는 자신의 시신을 엎어달라, 비석에 비문도 새기지 말라는 충격적인 부탁이 단호하지만 간결한 어투로 쓰여있다. 나왈은 쌍둥이에게 한 가지 부탁을 더 남긴다. 두 통의 편지를 주인에게 전해주라는 것. 한 통의 편지는 쌍둥이의 형이자 오빠, 또 다른 한 통은 쌍둥이의 아버지에게 남긴 것이다.
쌍둥이는 어머니로부터 생전에 자신들에게 이부형제가 있다는 사실은 물론,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서도 듣지 못했기에 이 부탁을 다소 황당하게 여길 수 밖에 없다. 공증인은 쌍둥이가 어머니의 유언대로 편지를 전달하고 나면 제대로 장례를 치러도 된다는 이야기를 마저 전해준다. 시몬은 분노한다. 시몬은 나왈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남들처럼 장례도 치르고 비석도 새길 것이라 하지만, 잔느는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주고자 한다. 그렇게 잔느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어머니의 편지와 여권을 받아, 어머니가 살았던 고향으로 떠난다.
어머니가 아닌 나왈 마르완을 찾아
쌍둥이를 낳고 기른 어머니의 이름은 나왈 마르완.
쌍둥이는 어머니의 이름을 알고 평생을 함께 살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다. 잔느는 어머니 나왈 마르완의 고향에 도착해 어머니가 남긴 흔적들을 차츰 찾아간다. 영화는 잔느의 발걸음과 오래 전 나왈의 발걸음을 교차하여 보여주며,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되짚어준다.
사막, 비포장 도로가 널리 펼쳐진 뜨거운 중동 한복판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왈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지만, 와합이라는 무슬림 난민과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아이를 가지게 되고 도망치려 하지만 가족에게 발각당해 명예 살인 당할 위험에 처한다. 와합은 목숨을 잃지만 나왈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지만, 아이를 잃게 된다.
나왈은 아이 고아원에 보내면서 발 뒷꿈치에 문신을 새긴다. 점 세 개가 일렬로 늘어선 모양의 문신을 통해 아들과 언제라도 다시 만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이후 나왈은 대학에 진학하지만, 점차 내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이가 있는 지역까지 내전이 번져오자, 나왈은 아이를 구해오기 위해 내전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사라진 아이와 옮겨온 분노
<그을린 사랑>은 가상의 중동 국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첨예한 종교 갈등과 내전 상황을 통해 레바논 내전을 모티프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와 무슬림의 첨예한 갈등이 반복되던 당시, 두 집단은 서로에게 학살에 가까운 복수를 일삼는다.
나왈은 난민 캠프가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던 중 기독교군에게 습격을 당하고, 기독교인임을 밝힌 나왈을 제외한 모두가 살해 당한다. 특히 나왈은 버스에 타고 있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엄마인 척 하지만, 기독교군은 이를 비웃듯 자신의 엄마에게 달려가는 어린 소녀에게도 총구를 겨눈다. 총에는 신의 이름으로 행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나왈의 아이가 있던 고아원도 흔적도 없이 불 타 있다. 나왈이 타고 온 버스도, 그 안에 타고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불타는 버스, 사라진 아이, 잿더미가 된 마을 안에서 분노는 나왈을 집어삼킨다. 이후 나왈은 복수를 꿈꾸며 반란군에게 합류해, 기독교 인사를 살해하려다 붙잡혀, 감옥에 수감된다.
노래하는 여인
정치범들이 수감되는 감옥 안에서 나왈은 무려 15년 동안 수감된다. 의연한 표정, 투신하지 않는 꼿꼿함, 어떤 상황에서도 노래하는 나왈의 모습에 감옥 속 이들은 나왈을 "노래하는 여인"이라 기억한다. 하지만 나왈에겐 노래를 멈추지 못한 이유가 있다. 감옥 안에서 울리는 타인들의 비명 소리, 고문 소리. 반복적으 이루어진 잔인한 고문과 강간. 그 안에서 나왈은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려 했던 것이다. 결국 나왈은 고문관이었던 아부 타렉의 성폭행으로 아이를 임신하고 감옥에서 출산하게 된다.
두 통의 편지, 한 명의 주인
잔느와 시몬은 나왈이 감옥 안에서 출산한 아이가 자신들의 형이자 오빠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감옥에서 나왈의 출산을 도왔던 간호사를 통해 나왈이 출산한 아이들이 자신임을 알게 된다. 시몬은 나왈이 함께 일했던 반란군의 수장을 만나는데 성공하고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만류에도 진실을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시몬은 자신의 형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고아원에서 군 조직으로 가, 군사로 키워졌다는 것.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했다는 것. 그리고 이후 고문관이 되어 감옥으로 향했다는 것. 그리고 이름을 "아부 타렉"으로 바꿨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나왈이 쓴 두 통의 편지의 주인은 단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왈은 죽기 전, 캐나다에서 자신의 아이를 마주한다.
발 뒷꿈치에 새겨진 문신을 보고 다가갔던 나왈은 그의 얼굴을 확인하지만, 아부 타렉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왈을 알아보지 못한다. 나왈은 편지에 그 사실을 적는다. 당신으로 인해 아이를 낳았고, 고통스럽고 괴로웠지만 자신이 낳은 쌍둥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또 다른 고백을 한다.
이 비극을 덤덤히 밝히는 동시에, 여전히 자신의 아들을 사랑한다고. 네가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어떤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하기로 했던 것처럼 여전히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며 아부 타렉을 용서한다.
진실을 마주한 뒤 분노와 고통 속에 남겨진 쌍둥이들에게도 편지를 남긴다. 너희 아버지이자 형이자 오빠를 가졌을 때, 그 시작은 분명히 사랑이었다고. 그러니 너희는 증오와 고통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아니라 사랑 속에서 태어난 이들이라고. 사랑을 잊지 말라고 말이다.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진실과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2시간 넘게 스크린을 채운다. 영화관 곳곳에서는 한숨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는 비극 속에서도 '사랑'을 이야기하는 나왈은 이 고백을 통해 대를 이은 비극의 뿌리를 끊고 싶었을 것이다.
지키지 못했던 아들은 폭력의 도구가 되어 자신의 앞에 나타났고, 아이들은 고통 속에서 잉태되었다.
언젠가 드러날 진실은 나왈이 낳고, 사랑했던 자식 모두를 상처 입히고 나왈이 겪었던 오랜 고통을 다시 반복시켰을 것이다.
독방에 갇혀 15년을 보냈던 나왈보다 더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 갇혀 보낼 것이다.
나왈은 이를 끊어내기 위해 고백을 택한 것이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비극에 휘말려 서로를 훼손한 가족들이, 이 삶을 형벌로 여기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더는 이러한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마음을 걷어내고 비극으로 불탄 삶 속에서 한 줌 재가 된 사랑과 애정을 건져냈던 것이다.
더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며, 나왈이 남긴 사랑이라는 거대한 마음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초청받아 참석했습니다.
영화 <그을린 사랑>
6월 25일 4k 리마스터링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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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방에서 떠나는 세계여행; 해외여행 뽐뿌 자극하는 영화 추천
내 방에서 떠나는 세계여행;
해외여행 뽐뿌 자극하는 영화 추천
1. 미드나잇 인 파리 (2011)
[배경 - 프랑스 파리]현재와 과거의 프랑스 ‘파리’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약혼녀와 파리에서 여행을 하던 도중
우연한 기회로 밤마다 1920년대의 파리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 주인공 ‘길’과
당시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이 영화는 뛰어난 영상미와 아름다운 색감의 영화로 유명한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 황홀한 파리의 풍경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끔 만든다.
‘파리 헌정 영화’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파리의 예술, 낭만, 그리고 사랑을모두 엿볼 수 있는 최적의 영화이며 이로 인해 ‘미드나잇 인 파리’ 촬영지 투어가 나올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파리 여행에 대한 욕구를 자극해 준다.
2.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2010)
[배경 -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삶에 회의감을 느낀
주인공 ‘리즈’가 무장적 떠나게 된 여행기를
그려낸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주인공이 여행을 하는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 발리’가 모두
이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다.영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지만 해외여행 욕구를 자극시키는
영화로는 제격인데, 특히나 먹방 장면이 많이 나와 해외여행 시 ‘음식’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영화이다.
또한 이 영화의 마지막 촬영지였던 인도네시아 발리의 ‘우붓’의 경우,
밀림 속 편안한 휴양지의 모습을 어필하여 발리 여행을 하고 싶게끔 유도할 것이다.
3. 우리 사랑하는 동안 (2012)
[배경 - 이탈리아]남편과의 이탈리아 여행 중 갑작스레 찾아온 운명적인 만남에
위험한 사랑을 펼치는 로맨스 영화, ‘우리 사랑하는 동안’.
잔잔하고 감성적인 영화인만큼 주인공의 섬세한 표정과 연기는 물론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배경과 영상미, 음악까지 모든 부분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주어
1시간 반 동안 진짜 이탈리아를 여행한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영화의 주 촬영지가 된 곳은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이스키아 섬’이라는 곳인데
유럽여행을 계획 중이거나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보기를 추천한다.
4. 다즐링 주식회사 (2007)
[배경 - 인도]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어머니께 전하기 위해
인도로 떠난 3형제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그린 영화, ‘다즐링 주식회사’.
대표적인 연출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으로,
인도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색감과 영상미, 그리고 독특한 미장센을 담아낸 영화이다.주인공 세 명이 펼치는 기차여행을 통해 인도의 곳곳을 보여주며,
인도만의 독자적인 문화와 생활 방식들을 디테일하게 보여줌으로써
실제로 인도 여행을 체험해본 듯한 느낌을 준다.
갑갑한 일상에 치이고 있을 때, 쳇바퀴 같은 생활에 권태를 느낄 때충동적으로 어딘가 떠나고 싶은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는 역할을
바로 이 영화가 해줄 것이다.
5. 러브레터 (1995)
[배경 - 일본 홋카이도, 나가노]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명대사 “오겡끼데스까~”만큼은 다들 알고 있는
일본의 로맨스 명작 “러브레터”는 일본의 ‘홋카이도’와 ‘나가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재 추운 겨울인 만큼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의 참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이 영화를 조심스레 권해본다.
‘홋카이도’의 ‘오타루’를 중심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일본 겨울의 모습을
아름다운 영상미로 담아내고 있으며 어렵지 않게 관객들을
영화 속 배경으로 깊숙이 끌어들일 것이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겔겔겔스타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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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 위쇼의 방
-벤 위쇼(Ben Whishaw) 배우론
* 언급하는 작품들의 핵심 전개 포함
* 2022년 5월에 완성한 글입니다.
벤 위쇼의 주인공들은 좀처럼 ‘세계’와 화합하지 못했다. <향수>(2006)나 <아임 낫 데어>(2007)의 ‘반사회적 예술가’(오정연, 2008.05.29. [씨네21])에서 시작해, <할로우 크라운>(2012)에선 한 나라의 ‘주인’이 돼서도 예정된 실패를 맞이하고 눈물을 흘렸다. <크리미널 저스티스>(2008)와 <런던 스파이>(2015)에선 ‘로맨스에 휘말려’ 누명을 쓴 청년, <브라이트 스타>(2009)에선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요절한 시인 존 키츠였다. 이는 인물의 소수자성과 연결되기도 했는데- <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2008)의 세바스찬은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정체성을 부정 당하다 알코올에 중독됐고,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 속 로버트 역시 남성에게 끌린다는 까닭으로 협박 당했으며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2018), 노만의 사랑과 존재는 불법이었다.
허면 무대 위 벤 위쇼는 늘상 보편에 속하지 ‘못하고’ 고통 받는 대상이었는가? 그의 연기를 목격했다면 그렇지 않음을 알테다. 앞서 부러 표면적으로 요약했으나, 그의 주인공들은 늘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에 맞서며 중심을 지켜냈다. 몹시도 흔들리며 괴로워하더라도, 여린 눈빛과 신체가 파헤쳐진 밑바닥엔 항상 꺾이지 않는 ‘곤조’가 있었다. 그게 사랑이건 정의건 예술이건, 넘어져도 놓지 않고 ‘세계’에 저항함으로써 주제를 관통하거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배우가 지은 독특한 감정의 집과 만나 탄생한 캐릭터성이었는데 -벤 위쇼의 인물들에겐 ‘벤 위쇼’가 가득했다.
연기법에 메소드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던 시기는 지났고, 그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표하는 배우들도 있으나, 여전히 메소드는 ‘serious acting’의 가장 추앙받는 방법론이다. 다만 현대에는 오프라인 GV나 인터뷰는 물론 수많은 플랫폼을 통해 관객이 당사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스크린 밖의 배우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고, 미디어는 대중이 배우의 본래 모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음을 전제로 ‘그가 자신과 아주 다른 이 인물이 되기 위해 얼마나 극단적으로 노력했는가’를 화제로 삼는다. 한편으로는 ‘배우 본인’의 모습만으로 팬덤이 형성되기도 하고, 어떤 배우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공개하고 닮은 역할을 맡음으로써 스크린에 자리 잡았다.
벤 위쇼의 케이스는 조금 특이하다. 스크린 밖의 모습은 공개하기를 꺼리면서 연기에는 그 자신이 묻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배우 개인을 알지 못함에도 관객은 (이상하게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앞에 언급했듯 인물의 특징에 유사성이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그게 다는 아니다. 그는 시대적 배경과 캐릭터성, 포지션을 막론하고 스크린 속에서 ‘자신’이 되곤 했는데, 그것이야말로 그 인물(:타인)이 되고 관객에 닿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기능적 조연일 때조차 어느 정도- 벤 위쇼는 화면에 마련한 제 방에서 주변 인물이나 서사와 소통하며 재빠르게 제자리를 찾았고, 영화/TV시리즈/연극 등 다양한 무대에서 그 범위를 넓혔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신체보다는 두뇌/‘심장’에 재능이 있는 자가 되었던 벤 위쇼는, 오히려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워 그 예리함을 입는다. 눈을 굴리는 건 남들의 눈치를 보기 위함이 아니다. 내면의 고민이나 불안, 혹은 오감으로 흡수되는 다량의 정보나 빠른 머리 회전 때문이다. 고개나 손목을 꺾는 것은 특정 이미지를 내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감각이 신체에 묻어 절로 그리 된 것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느끼느라 외부의 시선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지만, 그렇다 하여 그들 모두가 저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임 낫 데어>(2007)
‘세계’와 불화하며 비범하게 존재하다
여성을 대상으로 ‘비정상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남성. 앞 문장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향수> 속 벤 위쇼의 그루누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행동의 폭력성과는 별개로 스크린 속 그의 몸짓은 오히려 남성/여성을 초월한 기이하고 불온한 선지자의 그것에 가깝다. 단편 <더 뮤즈>(2014), 뮤즈에게 집착하다 결국 익사하는 남자의 변태적 우울에도 닮은 데가 있다. 이들이 궁금해지는 것은, 그 ‘괴상한 욕망’이 벤 위쇼의 피부에 안착함으로써 ‘어느 정도’ ‘시대와 불화한 비범한 예술’의 정서를 입는 까닭이다.
<아임 낫 데어>, 덥수룩한 머리의 젊은 ‘시인’. 담배를 물고 삐딱하게 카메라를 향하는 그의 눈빛도 불온하다. 언뜻 ‘메인 롤’은 케이트 블란쳇의 ‘록스타’나 히스 레저의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의 ‘무법자’ 등 비중과 활동성이 높은 자들의 몫인 듯하지만, 흑백 화면에서 한 공간에 머무르며 말을 이을 뿐인 ‘시인’이야말로 가장 자유롭다. 그의 뾰족한 신체는 플롯들 사이의 중심을 잡고, 대사는 작품의 메시지를 관통한다. 유사하게, <클라우드 아틀라스> 속 로버트 프로비셔의 편지는 정교하게 뒤섞이는 서사의 기준을 잡고, 곡은 화면을 아우른다. <브라이트 스타>, 존 키츠의 운명이자 고통인 시 또한 사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작품 전체에 흐른다.
존 키츠는 화면에 잡히지 않은 채 타인의 언어를 통해 등장하고 퇴장했다. 그러나, ‘집구석에 박혀 있는’, ‘요새 슬픈 생각을 많이 하는’ 따위의 말이 불러일으킨 예상을 깨며- 세상 맑은 얼굴로 평가를 백지화했다. ‘날 똑바로 보라’고 요구하듯 첫인상을 남겼다. 병이 목숨을 앗아가기 전 이미 연인과 작별의 밤을 보내며 차분히 죽음을 예견했다. 어느 정도 자신을 ‘실패작’으로 여기더라도 사랑과 예술에 대한 확신만은 뚜렷한 채였다. 로버트 역시 스스로 마지막을 만든다. 유서 격의 편지와 함께 등장하기에 관객은 자연히 그가 삶을 ‘포기’하게 된 과정을 궁금해하게 되는데, 이 자살은 사실 ‘포기하지 않음’에 가깝다. 세상이 정한 바운더리에 속하지 않기에 무시당하고 협박당하지만, 제 존재를 의심치 않는다. 죽어가는 영혼을 곡에 담는 모습에는 절망이나 파멸의 정서가 없다. 초월적 아름다움의 흔적을 남기는 과정이자, 자신을 짓누르는 세계에 순응하느니 존엄하게 사라지겠다는 선언이다, 그가 편지에 적은 대로. (“진실된 자살은 세심한 준비와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야.”, “더 나은 세상이 있다고 믿어, 먼저 가 있을게.”)
<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 세바스찬은 가난한 예술가가 아닌 귀족가 도련님이었으나, 세상에 ‘fit in’ 되지 못했다. ‘남색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관람되며’ 처음 등장하는데, 그 역시 편견에 빼앗긴 첫인상을 제 언어로 재정립한다. 꽃다발과 편지, 이어 테디 베어와 행복에 대한 의심으로. 가족과 자신을 단호하게 분리하며 이방인을 자처하는 세바스찬의- 텅 빈 저택을 휘감는 위화감은, 미묘하게 구르는 벤 위쇼의 눈동자로 완성된다. 미래의 불행을 확신하고 ‘죄인’이 되어 슬픈 얼굴로 기도하면서도 절대 존재를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 “Just to fit in.그냥 너한테 맞추려고.”이라던 찰스에게, 그는 “Well, than don’t!그럼 하지 마!”이라고 말했다. 저들의 ‘선의’에 흔들리느니 차라리 스스로 망가지고 고립되기를 택했다. 사과하는 찰스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그는 작별의 순간 “Not a word.한 마디도 하지 마.”라고 선을 긋던 존 키츠와 겹친다. 타인의 죄책감이 되거나 ‘구원’되기를 거부하며, 연약하나 평온한 모습으로 원하는 순간 이별(퇴장)을 선언한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침착하게 각도를 맞춰 입에 총구의 자리를 만드는 벤 위쇼의 동작은 분명한 정서를 섬세하게 전달했다. 시대의 룰에 억압당한 그의 인물들은 -병으로 인한 죽음이든, 권총 자살이든, 이민이든- 결국 제 식대로 ‘세계’와 헤어지기를 택하며 고유의 언어로 존재를 정의했다. 이 남다른 자들이 거의 거리감 없이 관객에게 닿았던 것은, ‘두꺼운 피부나 굳건한 심지로 대수롭지 않게 억압을 받아치거나 무시하’기는커녕, 오히려 몸을 숨길 요령 없이 최전선에 던져져 끊임없이 흔들리고 괴로워하면서도 결국 존재를 지켜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캐릭터 묘사의 일등공신은 절대 벤 위쇼였다.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
평범하고 무해한 마스크 속 내면의 힘
단편 <러브 헤이트>(2008) 속 ‘착하지만 수완 없는’ -증오조차 ‘제 hate에게 휘둘려’ 어설프게 표출하며, 욕이 가득한 메일을 쓰며 울먹이거나, 사람을 ‘죽이려’ 나서서도 주먹 한 방에 자빠지고 마는- 톰처럼, 벤 위쇼의 어떤 주인공들은 가장 평범하고 순수한 영혼이었다. 대개 사람이나 상황에 ‘말려’ 곤경에 처하고 위험에 노출되었는데- 그 ‘순수’는 대다수의 사람이 지닌 것은 아니어서, 관객은 이 영혼이 ‘더럽혀지지 않고’ ‘구해지기를’ 바라며 안타까워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 받는 피해자로만 남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끝내 스스로를 구한다.
<크리미널 저스티스>, 벤의 변호사는 법정에서 평정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며 말한다, “Be yourself, Ben.네 모습 그대로 있으면 돼, 벤.” 벤 위쇼의 얼굴은, 작품이 ‘크리미널 저스티스’의 모순과 부정의를 강조하는 제1의 방법이다. 메시지를 분명히 하려면 주인공의 캐릭터성에 물음표가 생겨선 안 되고,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6) 속 카세 료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그의 ‘무해한’ 인상은 의심의 여지를 효과적으로 지웠다. (‘매력적인 보호자’와 로맨틱한 긴장감을 유지하다 ‘구원’되는 연약한 주인공의 남성형인 듯 하다 그것을 ‘배반’하기도 하는데,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제스처였음을 전하는 것도 벤 위쇼다.) 후반부 결코 전처럼 해맑지 못한 눈빛은 시스템에 의해 개인의 마음이 조각난 모양을 빚어낸다. 최종적 설득력은 대사나 행동 자체보단, 섬세하고 개인적인, ‘두려움을 내보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기에 있었다. 특수한 상황임에도 인물과 같은 것을 겪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몸도 마음도 최대한으로 여린 듯 보이나 숨겨진 내면의 힘으로 포기하지 않는 캐릭터들. 연인의 죽음 이후 누명을 쓰고 괴로움과 혼란에 휩싸이지만 진실을 알아내려 애쓰는 <런던 스파이>의 대니,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의 노만 스콧 또한 그 맥을 잇는다. 벤과 노만 모두에겐 법정에 서는 장면이 있는데, 강압적인 시선 한가운데 자리한 무방비한(무방비하나 무력하지는 않다.) 이미지가 이미 ‘결백’을 주장한다. 벤 위쇼는 ‘연기’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모든 자극을 견뎌내며, ‘울음을 계속 참고 있는, 그러다 참지 못하기도 하는’ 모양을 유지한다. 그 터질 듯한 상태 그대로 결국 말들을 당당하게 뱉어내는 모습은, 고통스럽고 벅찰 수밖에.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의 경우 노만 스콧의 특수한 서사, 복합적인 내면과 매력을 드러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데, 벤 위쇼는 조심스러우나 방어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이를 수행한다. 노만은 제레미 소프의 서술을 통해 일종의 ‘안타고니스트’ 포지션에서 시작하지만, 짐작은 곧 깨진다. 감정과 ‘약점’을 다 드러내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는 그 속수무책의 순수. 모델로서 포즈를 취할 때도 어느 정도 수줍고, 협박을 해도 어설프다. 내내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즐겁고 당당하게 세상에 외칠 때, 엉엉 울고 나서도 활짝 웃을 때, 관객은 이것이 ‘노만 스콧의 이야기’임을 의심치 않게 된다.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2018)
비범하나 보편적인, 평범하여 특별한.
‘천재’라는 수식에 기자는 어울리는 업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 아워>(2011-2012) 프레디의 재능은 절대로 비범하다. 그에 대해 의심하는 이는 없지만, ‘안 예쁜 태도’에 대해서도 모두 입을 모은다. 열변을 토할 때 그의 표정은 ‘관리’되지 않고 생생하게 굳어진다. 프레젠테이션보다 내용이 중요하고, 제 평판보다 진실이 중요해서다. 모두 어느 정도 연기하며 사는 세계에서, 홀로 연기할 생각을 않고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기꺼이 골칫거리가 되는 자. 프레디가 맘에 없는 말을 하는 대상은 벨 하나다. 감정을 덮으려 부러 장난을 걸거나 상대를 깎아내리지만, 아련한 눈빛이 진심을 다 드러낸다-기보단 숨기지 못한다. 외부 압박에 타협하지 않는, 남달리 똑똑하고 위트있는, 그러나 로맨스엔 젬병인- 주인공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프레디 라이언은 유일하고 그 까닭은 벤 위쇼라는 이름으로 설명된다. “He sees extraordinary in ordinary.그는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봐요.”(벨 롤리) 프레디가 그렇듯 벤 위쇼도 그렇다.
1화 첫 장면은 대뜸 클로즈업된 벤 위쇼의 얼굴, 거울을 보고 연설문을 읊는 모습이다. 따라서 관객이 보고 있는 상은 프레디 본인의 눈에 비친 것과 동일하다. 이처럼 작품은 자주 그의 시선을 따라가는데, 이 과정에서 관객은 그 뛰어난 감각이 인식하는 바를 어느 정도 느끼게 된다. 벤 위쇼가 샅샅이 드러내는 보편적인 감정의 떨림 덕이다. 그러고 보면 프레디는 여성을 ‘구하는’ 강하고 멋진 남성이기보단, 루스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그늘지거나 잔뜩 얻어맞고 벨에게 발견되는 자다. 인간적인 ‘보통’의 정서를 지님에도 물러서지 않기에 더 ‘보통이 아닌’- 이 위대한 기자의 여정을 그저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이입해 가슴을 졸이며 응원할 수밖에. 비범하면서도 보편적인, 평범하기에 특별한. ‘세계와 불화하는 그들’의 내면에 있는 힘을 벤 위쇼는 오롯이 소화해 전했다. 그 컴플렉스complex함을 절대 단순화하는 법 없이.
어떤 인물들: ‘유해한 세계’에 벤 위쇼가 편입되는 법
아르튀르 랭보, 존 키츠, 노만 스콧, 리처드 2세와 최근의 아담 케이까지. ‘실존 인물’에 그를 캐스팅하며 외모의 유사성은 애초에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었을 테고, 기대한 바도 완벽한 ‘재현’과는 멀었을 것이다. 그가 ‘벤 위쇼 아닌 자’이려면, 애니메이션 곰이 되거나, 판타지적 디스토피아의 무감정이라도 입어야만 했을테니. 그러나 <패딩턴>(2015), 마음껏 정신없이 명랑했다가도 풀이 죽어 무방비하게 처량해지는 벤 위쇼의 정교한 미성이 사고뭉치 패딩턴을 ‘지구상 가장 순수한 생명체’로 만드는데 필수적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듯- ‘기능적 조연’들 역시 벤 위쇼를 통함으로 인해 달라진다.
<007> 시리즈나 <제로법칙의 비밀>(2013) 속 ‘박사들’ 외에 그가 맡은 일부 조연들은 어쩐지 의외다. 빈민가 소년, 시인, 기자, 귀족 자제, 심지어는 왕의 모습으로-세계의 법칙이/을 거부하는 자였던 벤 위쇼는, 몇 년 후 여성 주연 작품들에서 ‘유해한 규범을 기꺼이 따르고 재생산하는 남자들’이 되었다.(‘절름발이 남자’는 규칙을 어기지만, 세계에 편입되기 위함이었다.) 맡는 역할의 범위를 넓히며 늘 ‘특정한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캐스팅으로 ‘효과’를 본 것은 사실 배우보다는 작품이다. ‘규범’이 현실적인 경우 개인이 아닌 불평등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면, ‘영화적일’ 때는 화면에 미묘한 불쾌감을 부여한다.
<서프러제트>(2015) 속 남성의 유형은 다양하다. 습관적으로 폭력을 즐기는 자, 권력을 쥐고 놓지 않는 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법을 집행하는’ 자, 아내를 지지하는 자- 그들 모두가 ‘악해서’ 여성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며, ‘대표적’ 가부장의 마스크를 벤 위쇼가 가져가며 이는 최대한으로 어필된다.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착실한 남자’로 등장한 소니는, 모드가 여성 참정권 집회에 나가도 먼발치에서 예민하게 주시하거나 부드러운 말투로 걱정을 내비치는 정도였다. 그 ‘배려’의 정체는 인물의 불안과 함께 밝혀지고, 카메라는 그가 ‘자상한 남편’, 이어 아버지이기를 포기하는 순간을 노린다. 악의 없이 울먹이며 흔들리는 낯을 잠시 클로즈업함으로써, 이 남자가 그저 평범하고 유약하며 특권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가부장임을, 그 무책임한 몰인지가 그의 잘못이며 폭력과 차별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음을 강조한다.
<더 랍스터>(2015)는 남다른 이입이 특기인 벤 위쇼에게 언뜻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다. 그러나 요구되는 연기 스타일이 일정함에도, 이곳의 배우들은 의외로 ‘텅 비지’ 않았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연출을 거듭할수록 더) 배우의 개성을 지우기보다 ‘세계’의 룰에 맞게 돋보이도록 조율하며, 행동과 정서가 뻔하게 이어지지 않도록 활용해 장면을 ‘흥미롭게’ 만든다. ‘비정한 여자’가 안젤리키 파풀리아의 얼굴을 통해 기본적 우울을 입듯,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절름발이 남자’의 바탕에 있는 불안은 벤 위쇼의-기계적인 톤을 적절히 입고도 예민하게 구르는 눈동자를 통해 드러난다. <리틀 조>(2019), 크리스의 변화를 미묘하고 ‘극적’으로 드러내기에도 그는 가장 적합한 배우였다. 주인공 여성을 사로잡는 매력적 남성의 전형이 아닌, 잔뜩 긴장해 머뭇머뭇 데이트를 신청하는 소심한 연구원. 그 조심스러움, 어색함과 함께 무해함이 사라지고 결국 무감정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크리스가 지닐 기이함을 예시카 하우스너는 벤 위쇼의 실루엣에서 찾았다. ‘변화’ 이후의 폭력성 역시 계산된 각도로 침착하게 주먹을 뻗는 종류의 것으로, 색다른 공포와 불쾌감을 야기한다. 엄격한 디스토피아에 편입되는 남성들, 그 유해함마저 벤 위쇼만의 것이었다. 특정한 ‘악인’이 되려 애쓰지 않고 ‘세계’를 거역하지 않는 선에서 저만의 위치를 찾는다.
<리틀 조>(2019)
예민함이라는 재능: 타인의 얼굴로 가장 솔직한 자신이 되다.
단순히 마른 것이 아닌 ‘가녀린’ 실루엣, 쉽게 긴장해버리는 근육. 같은 작품에 출연했던 동세대 잉글랜드 배우들: 톰 히들스턴(<할로우 크라운>)이나 짐 스터지스(<클라우드 아틀라스>), 매튜 구드(<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와 같은 ‘남성 리드’가 되기 어려운 이미지고, 에디 레드메인(<대니쉬 걸>)의 ‘무던함’도 없다. 유사하게 ‘세상과 불화하는 천재’ 타이틀을 유독 많이 달았던 베네딕트 컴버배치처럼 ‘뭐든 가능한’ 마스크도 아니어서, 드물게 이성애 로맨스 서사의 주인공이 될 때도 제 1화자나 ‘관계의 리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많은 동료 배우와 평론가, 관객들로부터 ‘동세대 최고의 배우’라는 찬사를 받는 까닭의 핵심은 이 ‘예민함’에 있다. “주변 사람들보다 피부를 한 겹 덜 가지고 있는 것 같은”(트레버 넌),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감각을 전제하는 천재성,은 ‘축복’이라고 하기엔 망설여짐에도- 그의 예민함은(‘예리함’으로 바꿔 적어서도 안 된다) 절대로 ‘결점’이 아니다.
“세 시간 만에 모든 인생사를 겪고 자살을 결심하는 젊은이”(벤 위쇼, 2004.04.29. [인터뷰: AP Archive]), 비니에 후드티 차림으로 약병과 주머니칼을 꺼내며, ‘사느냐 죽느냐’를 논하-기보다 온몸으로 겪-는 트레버 넌의 ‘뉴 햄릿’은, 벤 위쇼의 운명과도 같았다. 아니, 이 역할의 운명이 그였다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 이 주연 데뷔 퍼포먼스로 그는 수없이 공연되고 인용됐던 대사가, 관념에서 떠도는 대신 관객의 가슴에 내려앉게 하고 말았다. <할로우 크라운>, 리처드 2세의 슬픔이 밴 엷은 미소에는 귀족과 군인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분투했던 열 살의 어린 왕마저 비친다. 그는 짓무른 눈가에 자기파괴적 저항과 조롱의 뉘앙스를 드리우고 스스로 ‘폐위’ 씬을 써내려가며 ‘텅 빈 왕관’의 의미를 들이밀었다. “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외치며 안경을 든 손을 섬세하게 놀리던 브루투스가 그랬듯, ‘폭정’으로 수식되기도 하는 리처드 2세의 말년 역시, 벤 위쇼와 만나 풍부하고 ‘현대적’이기까지 한 정서를 입었다. 현대의 일반인과는 한참 먼 이 셰익스피어의 남자들이 벤 위쇼와 만나면, 어찌하여 ‘인간’으로 다가와 버리는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이 되고 싶지 않다.”(벤 위쇼, 2022.01.29. [인터뷰: The Guardian])던 그는, ‘모순적’이게도 스크린을 통해 가장 적나라한 자신이 된다. ‘연기하지 않는’ 이들을 연기하는 벤 위쇼는 그들인 동시에 ‘벤 위쇼’이며, 보고 있는 관객 하나하나다. 그가 불어넣는 개인적 에너지는 작품 전체로 확장되어 관객을 인물의 내면으로 끌어들인다. 그것은 평범과 비범, 특수와 보편을 가리지 않는다. 중세 왕의 대사조차 개인적 감성을 완벽히 드리워 읊어버리고, ‘특별할 것 없는’ 청년일 때도 남달리 고통 받는다. 어떤 전형성조차 저다운 방식으로 수행한다. 배우로서 ‘이점’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특징을- 벤 위쇼는 애써 지우고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않고, 타인/인물이 자신의 피부에 착륙하여land on one’s skin 파고들도록 허락한다.
배우가 게이인 캐릭터를 연기하면, ‘OOO게이’라는 검색어가 자동으로 따라붙고, ‘아니라는 부정’이나 커밍아웃에 대한 기대(유명인의 커밍아웃은 퀴어의 가시성visibility을 높이고 인식을 향상시킬 가능성을 지니기도 하지만, 여기서 ‘기대’는 그러한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한 종류의 것이 아닌 단순 가십을 위한 ‘기대’를 일컫는다.)가 뒤따른다. 벤 위쇼 역시 그에 시달렸고 아웃팅outing으로 성 지향성이 대중에 알려졌으나, 이후로도 소수자적 정체성을 ‘공개’하거나 숨기려고 애쓰지 않았다(벤 위쇼, 2016.04.03. [인터뷰: The Guardian]) 이미지가 굳어지기를 걱정해 의식적으로 ‘다른 방향의’ 배역을 맡지도, 반대로 전략적으로 특정한 이미지를 대중에 ‘어필’하지도 않았다. “배우들은 어떤 것이든 구현하거나 표현할 수 있고, 그 자신이 무엇인가,로만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벤 위쇼, 2019 골든 글로브 백스테이지 인터뷰)고 벤 위쇼는 말했다. 그의 인물 중엔 게이도 바이도 스트레이트도 있으며, 이는 표현의 깊이나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스스로 ‘양쪽 모두의 에너지에 매료된다’(벤 위쇼, 2022.01.29. [인터뷰: The Guardian])고 말하기도 했듯, ‘남성성’ 혹은 ‘여성성’의 전형을 답습하지 않고 -그것을 ‘거부하거나 깨트린’다기보다는- 다만 가장 정직한 인간이 된다. 카메라 앞에서 기꺼이 무방비해지는 그 솔직함과 용기 역시 재능이다. <리틀 조>의 서사를 가져온다면, 그야말로 가장 ‘리틀 조 행복 바이러스’에 덜 감염된 사람 중 하나일 테다.
아르만도 이안누치식 찰스 디킨스 각색에서 ‘밉상 빌런’ 유리아 힙의 옷을 입기도 했던 그는, <파고>(시즌4, 2020)에서는 총을 겨누고 협박하다가도 “내겐 아내가 있어요.”, “난 아내가 없는데 내가 죽으면 개밥은 누가 줘요.” 따위의 말에 눈가를 떨고 마는 ‘정이 가는 범죄자’ 라비 밀리건의 복잡한 캐릭터성을 한 톤 낮춘 목소리에 드리웠다. 프로듀싱을 겸한 <디스 이즈 고잉 투 허트>(2022)에서는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unlikable’’(벤 위쇼, 2022.01.29. [인터뷰: The Guardian]) 프로타고니스트 아담 케이가 되어 바쁘고 예민하게 이 병실 저 병실을 오가거나 우울하게 입꼬리를 내렸다. 벤 위쇼는 여전히 범위를 제 식대로 넓히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공연예술계에 혈연이 없음에도 젊은 나이에 무대 정가운데에 올랐던 그의 연기에는 초반부터, ‘타고난 천재성’ 따위 문구 없이는 수식하기 힘든 완전함과 특별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흔치 않은 재능’이란 흔한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것 역시 안 될 말이다. 그가 지나온 예술의 여정엔 소수적 정체성을 지닌 내성적 남성으로서의 경험과 고민의 과정, 그것을 드러낼 용기와 감수성, 인물을 존중하는 섬세한 접근법, 어느 하나로 정의되기를 거부하는 배우로서의 프라이드와 철학이 녹아 있다.
연기는, 벤 위쇼가 타인을 자신의 공간에 초대하는 방법이다. 세상이 화면 밖의 그를 궁금해할 필요나 권리는 없다. 그는 어느 정도, 데뷔 초부터 그 선언을 마쳤다. 연기예술가 벤 위쇼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의 예술을, 픽션의 옷을 입은 채 내보이는 자신을 들여다보면 된다. “Give him a mask, and he’ll tell you the truth.가면을 씌워 주면, 그는 진실을 말할 거야.” (1998, <벨벳 골드마인>, 오스카 와일드 재인용)
* 주 참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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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넷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수학과 로맨스라는 두 개의 우주가 만나며
또 한 평 넓어진 성장영화의 스펙트럼”
명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재학 중인 수학 천재 ‘마거리트’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칠판 너머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 성장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마거리트의 정리>가 개봉을 앞두었습니다.
실제 파리고등사범학교 교수이자 프랑스 유명 여성 수학자 아리안 메자르의 자문을 통해 탄생한 모든 수학 공식과, 수학자를 맡은 주연 배우들을 위해 오랜시간 트레이닝을 거쳤다고 하는데요.
철저한 준비로 탄생한 싱크로율 100%의 사실감 <마거리트의 정리> 예고편 같이 보아요
핸섬가이즈
Handsome Guys
개요: 코미디 | 한국 | 101분
감독: 남동협
주연: 이성민, 이희준, 공승연, 박지환, 이규횽, 우현
개봉: 2024.06.26.
배급: (주)NEW
시놉시스
자칭 터프가이 ‘재필’과 섹시가이 ‘상구’ 현실은 잊지 못할 첫인상으로 이사 첫날부터 동네 경찰 ‘최 소장’과 ‘남 순경’의 특별 감시 대상이 되지만, 꿈꾸던 유럽풍 드림하우스에서 새출발 한다는 것에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물에 빠질 뻔한 ‘미나’를 구해주려다 오히려 납치범으로 오해받는 상황이 이어진다. 한편 ‘미나’를 찾으러 온 불청객들을 시작으로 지하실에 봉인되어 있던 악령이 깨어나며 어두운 기운이 집안을 둘러싸기 시작하는데… “왜 다들 우리 집에 와서 죽고 난리야!”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A Quiet Place: Day One
개요: 스릴러 | 미국, 이탈리아 | 99분
감독: 마이클 사노스키
주연: 루피타 뇽, 조셉 퀸, 디몬 하운수, 알렉스 울프
개봉: 2024.06.26.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쉿, 살고 싶다면 절대 소리내지 말 것! 평균 소음 90 데시벨을 자랑하는 미국 최대도시 뉴욕, 고양이 ‘프로도’와 함께 간만에 외출을 나온 ‘사미라’는 공연을 보고 돌아가던 중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섬광을 목격하고 곧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는 정체불명 괴생명체의 출현에 충격에 휩싸인다. 아수라장이 된 뉴욕 도심에 ‘절대 소리 내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맨해튼의 모든 다리가 폭격으로 끊어지고, 사람들은 온갖 위협이 도사리는 도시에 고립되고 만다. 살아남기 위해 홀로 사투를 벌이던 '사미라'는 우연히 또 다른 생존자 ‘에릭’을 만나고 두 사람은 괴생명체를 피해 지하철역부터 시가지, 할렘까지 숨죽인 여정을 이어 나가는데…
마거리트의 정리
Marguerite's Theorem
개요: 드라마 | 프랑스 | 113분
감독: 안나 노비온
주연: 엘라 룸프, 장 피에르 다루생, 줄리앙 프리종
개봉: 2024.06.27.
배급: 영화사 진진
시놉시스
명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가장 인정받는 수학 천재 ‘마거리트’는 세계 난제 ‘골드바흐의 추측’에 관한 연구를 증명하는 세미나에서 오류를 범하고 만다. 그날 이후 충격에 빠져 학교를 그만둔 ‘마거리트’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며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내가 증명하고 싶은 건 나일지도 몰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You Are the Apple of My Eye
개요: 멜로/로맨스, 드라마 | 대만 | 107분
감독: 구파도
주연: 가진동, 천옌시
재개봉: 2024.06.26.
배급: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와이드 릴리즈㈜
시놉시스
이제 막 17살이 된 ‘커징텅’은 ‘쉬보춘’, ‘아허’, ‘라오차오’, ‘랴오잉홍’과 친한 친구가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학교 최고 모범생 ‘션자이’를 좋아한다는 것! 어느날, 수업 중에 상상도 못할 장난을 치다 딱! 걸린 ‘커징텅’은 ‘션자이’에게 특별 감시를 받게 된다. 잘해보려는 속마음과 달리 자꾸만 엇나가는 순간, ‘커징텅’은 자기 나름대로 마음을 고백하지만 ‘션자이’는 대답하지 않고, 15년이 지난 후에야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는데… 반짝이는 열일곱, 첫사랑이 시작됐다! 영원히 기억될 두근거림이 다시 한번 극장가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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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헐크버스터가 온다!
#왓이프 #아이언맨 #마블레고
2021. 06. 08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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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왓이프 아이언맨!
00:41 유출된 레고
02:32 왜 사카르에?
03:06 레고가 페이크라면?
03:55 접점이 없는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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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프링 블라썸> 메인 예고편
"이번에 맞이한 봄은 어딘가 달라요"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이 난 수잔은 극장 앞에서 연극배우 라파엘을 만난다.
함께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사람
모든 것이 따분했던 수잔에게 설렘과 함께 첫 번재 봄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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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재개봉 예고편
기차가 서로 스쳐 지나갈 때 ‘기적’이 일어난대~
그래서 소년이 바라는 건.. 화.산.폭.발?!!나는 엄마랑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삽니다. 동생 류랑 아빠는 저기 멀리서 따로 삽니다. 엄마랑 아빠랑 맨날 싸우더니, 이런 꼴이 될 줄 알았습니다. 나의 소원은 우리 가족들이 다시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저기 저 위에 있는 화산이 폭발해서 아빠랑 류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면 됩니다. 형은 화산이 꼭 폭발하게 해달라고 매일매일 기도하는데 철부지 내 동생은 가면라이더가 되고 싶다고나 하고, 정말 어린이 같은 소원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하는 말이 새로 생기는 고속열차가 반대편에서 서로 달려오다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아싸~ 그럼 거길 가서 소원을 빌면 되겠네! 그래서 좋아하는 선생님이랑 결혼하고 싶은 친구랑,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친구랑 거길 가려고요. 동생도 오라고 해서 나랑 같은 소원을 빌라고 해야겠어요. 난, 우리 가족이 꼭 같이 살았으면 좋겠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