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1-03-16 00:00:00
철서구 - 551분 이라는 시간, 그 안에 담긴 2년의 세월
영화중에서도 보기 힘든 영화가 있다. 여기에서 보기 힘들다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영화가 어렵거나, 수위가 높거나, 말 그대로 접하는 것 자체가 힘들거나. 왕빙 감독의 영화 철서구는 마지막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먼저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놀란 점은 이 영화에게 바치는 수많은 평론가들의 찬사와 호평도 있었지만, 특히 '러닝타임'이 놀라웠다. 필자가 과거에 러닝타임이 길었다고 평한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3시간 58분), '아라비아의 로렌스(3시간 48분)', '유레카 (3시간 38분)', '아이리시맨 (3시간 30분)'의 러닝타임 따위는 우습게 뛰어넘는 9시간 11분이라는 러닝타임은 필자에게 안 당황스러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기가 들어서 더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필자말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한건지, 202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선택 2위를 차지했다) 대체 감독은 무엇을 얘기하고 싶어서 551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쓴 걸까. 보고 나서 느꼈다. 아, 551분을 날린게 아니구나. 그 시간을 써서 담고 싶은 게 있었구나. 이걸 읽어보고 괜히 러닝타임 기니 있어보이는 척 하고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하지 마시길. 단순히 러닝타임이 길다고 호평받는 거라면 '모던 타임즈 포에버 (2011, 10일)'는 시민 케인, 게임의 규칙을 뛰어넘는 걸작이 되는 것이란 말인가?
철서구는 왕빙 감독이 2년 동안 철서구의 주민들과 직접 생활하며 공업지구의 쇠퇴와 그 주민들의 삶을 그대로 담은 영화이다. 왕빙 감독이 단순히 영화를 찍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진심으로 다가갔다는 것을 느낀 것은, 주민들이 카메라 앞에서도 꺼리낌없이 삶 그 자체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1부에서는 카메라가 있어도 서로 싸우고, 씻고 나온 공장 직원의 성기가 그대로 보이기도 하니) 러닝타임을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관객들에게도 감독 처럼 그들의 삶을 최대한, 가능한 직접 느껴보도록 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9시간 11분은 하루에서는 학교에 있는 시간, 근무 시간보다 조금 더 되는 시간이지만 2년이라는 세월에 비할바는 못된다. 다만 영화관에서의 9시간 11분은 긴 시간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어느새 그들의 삶을 직접보고, 직접 느끼게 되며 그들의 삶에 공감하게 된다.
필자가 본 영화들 중에 정말 잊지 못한 경험이 될 정도로 좋은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정말 보기 힘들다. 러닝타임이 긴 것도 그렇고, 애초에 정식 수입이 된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보기 힘들 수 밖에 없다. 영상도서관이나 필자처럼 영화제 상영으로 봐야하는 수 밖에. 현재 유튜브에 업로드도 되어있지만 집에서 보면 이 영화의 의미는 희석된다고 생각하기에 추천 하지 않는다. 어떠한 외부 요인의 개입 없이, 영화 스크린과 나만의 커뮤니케이션, 교감만이 있는 씨네마에서 봐야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번 보기는 정말 힘들지만, 한번 꼭 본다면 분명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두 번 보기도 힘든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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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 뉴욕 다이어리>영화리뷰
<마이 뉴욕 다이어리>(2021.12.9 개봉)
감독: 필라프 팔라도
출연: 시고니 위버, 마가렛 퀄리
1995년, 작가 지망생 조안나(마가렛 퀄리)는 조안나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작가 에이전시의 CEO 마가렛(시고니 위버)의 조수로 입사한다.
설렘에 부푼 마음으로 출근한 첫날, 조안나는 예상과 달리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업무에 당황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잘 알려진 작가 J. D. 샐린저에게로 오는 수많은 팬레터에 그저 양식에 맞춘 건조한 답장으로 일관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
하지만 문학과 작가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조안나는 그들에게 진심 어린 답장을 보내고 싶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평범하기보다 특별해지고 싶었던 한 여성의 일화를 통해 순수한 열정을 지닌 이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따스한 영화다.
특히 책과 작가를 사랑하는 문학청년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보다 폭넓은 공감대를 자랑할 만하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쳐야만 하는 단계들에 관해 조명하는 차분하고도 포근한 영화이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의 집시 소녀로 얼굴을 알리고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조용한 희망>에서 어지러운 현실에서 다시 일어서는
싱글맘을 연기한 마가렛 퀄리가 이번 영화에서는 조안나로 분해 꿈을 가진 젊은 여성을 능숙하게 연기했다.
또한 <에이리언> 시리즈와 <아바타> 등으로 일찌감치 믿을 만한 배우의 대열에 오른 시고니 위버가 CEO 마가렛 역할을 맡아 호연을 펼쳤다.
화려한 뉴욕의 풍경들 또한 이 영화의 주요한 볼거리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90년대이며 장소적 배경은 누구나 한번쯤 살아보길 꿈꾸는 낭만적인 도시 뉴욕이다.
따뜻하고 포근한 우드톤의 작가 에이전시 사무실,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각종 소품들과 주인공 조안나의 레트로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의상 또한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젊은이들의 로망의 도시, 뉴욕의 감성있는 풍경을 담아 많은 영화관객들에게 따뜻한 감성과 향수 또한 불러일으킬 것 같다. 극 중 조안나가 걷는 빌딩숲, 뉴욕 곳곳의 거리와 카페들은 지금 제한된 삶을 살고 있는 시국 속에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저 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위로와 힐링, 따스함을 자아내는 건 역시 등장인물이다.
CEO 마가렛의 조수가 된 조안나는 물론 뉴욕의 직장생활에 적응하는 것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기를 겪는다.
남자친구와의 연애, 일, 그리고 작가가 되길 원하는 진로 속에서 고민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조안나는 성장해간다.
조안나의 사랑과 일, 그리고 진정 작가가 되길 원하는 꿈 사이에서 그녀는 도전하며 나아간다.
잔잔히 흘러가는 영화이지만 그 덕분에 과장없고 화려한 치장없이 우리 자신을 건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영화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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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트로 분위기 속 경쾌한 액션
성장기에 엄마는 절대적인 존재다. 부모이기에 앞서 여러 가지 행동과 선택을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스승 같은 존재로 그가 걸어가는 삶의 모습은 아이에게 그대로 영향을 준다. 아이는 부모가 하는 일이나 행동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비슷한 직업을 갖게 되거나 그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일을 찾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보호자로서 가장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인 엄마는 아이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는 아이 옆에서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 존재다. 사랑하는 사람이고, 보호자이면서 스승이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아이는 굉장한 혼란 속에 살게 될 것이다. 그간 엄마가 해주었던 모든 일들을 받지 못하게 되면 아이는 절망 속에 보내다 자신만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만약 어느 정도 의식이 있는 청소년 정도의 나이라면 아이는 엄마에게 배웠던 것을 이용해 자신의 다음 삶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엄마가 했던 일들, 행동들을 떠올리며 자신 만의 커리어를 만들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간다. 그런 일련의 활동들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하더라도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과 타인에 대한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잠적해 버린 엄마를 잊고 스스로 살아가는 딸의 이야기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사라진 엄마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샘(카렌 길런)은 킬러 생활을 하는 엄마 스칼렛(레나 헤디)을 보며 성장기를 보냈다. 성장기의 어느 시점, 스칼렛은 갑자기 샘을 떠나 잠적해버린다. 그 후 샘은 떠난 엄마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하면서 성인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사라진 엄마에게 엄청난 서운함과 무수한 질문을 가지고 있지만 엄마와 똑같은 일을 택해 같은 길을 걸어간다. 그의 차가운 말투와 넘치는 에너지는 스칼렛이 가지고 있던 모습이다. 자신의 일을 할 때, 그에겐 상대방을 향한 감정이 전혀 없어 보인다. 누구도 믿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한 편으론 여전히 엄마를 잃고 슬퍼하는 소녀 같아 보이기도 한다.
샘을 돕는 회사의 간부인 네이선(폴 지아마티)은 과거 스칼렛을 도와줬고, 이제는 샘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일하는 지금의 샘에게 네이선의 도움은 필요 없어 보인다. 영화에서 회사라고 불리는 청부살인 업체의 간부는 모두 남자가 중심이 된다. 특히 그 중심에 있는 대표자 격인 네이선은 선한 의도를 가진 듯 보이고 마치 아버지가 하는 것처럼 샘이 가야 할 길을 지정해 알려준다. 하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네이선이 가진 의도가 회사라는 시스템 보호라는 것이 천천히 드러난다.
사실 네이선은 회사가 문제없이 돌아가게 함으로써 만들어진 안정감을 구성원들에게 제공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강화시켜나갔던 인물인지 모른다. 그가 만든 그 안정감은 한순간에 엄마가 사라진 샘에게 어느 정도 의지할 구석을 만들어줬다. 그렇게 형성된 안정감은 샘에게도 실력 있는 킬러라는 직업의 전문성을 만들어주게 된다. 그런데 그 회사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에게 가진 신뢰는 깨지기 마련이다. 영화 속에서 샘이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어떤 사건은 회사의 안정적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다시 그 안정을 찾기 위해 네이선은 샘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자기반성 없는 보수적 시스템과 철저한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조직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다르게 보면 시스템의 안정을 강조하는 가부장적 조직과 대결을 벌이는 여성들에 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회사로 명칭 되는 조직을 움직이는 이들은 모두 남성들이다. 그리고 그 회사의 안정을 깨트려 부도덕을 드러내고 대결하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다. 이렇게 이 영화를 남성과 여성의 대결로도 볼 수 있겠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보수적인 시스템과 진보적인 사람들 간의 대결을 담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보수적인 시스템은 영화 속에서 한 순간도 반성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안정화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반면 시스템과 대항하는 입장에 있는 샘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하며 반성한다.
샘의 반성을 이끄는 건 그가 죽인 어떤 인물의 딸인 에밀리(클로에 콜맨)이다. 실수로 에밀리의 아빠를 죽였지만 그 이후 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찌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갑자기 혼자 남겨진 에밀리를 보며 그를 지키기 위해 그 옆을 떠나지 않는다. 또한 후반부에 샘을 돕는 조력자로 다시 등장하는 엄마 스칼렛, 애나(안젤라 바셋), 플로렌스(양자경), 매들린(칼라 구기노)은 그들의 위치와 지위를 정확히 인지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면서 시스템에 대항해 싸운다.
영화의 전반적인 등장인물과 구성을 보면 영화 <존 윅> 시리즈가 떠오른다. <존 윅>에서 킬러들이 도움을 받는 호텔은 이 영화에서 도서관이 되고, 킬러들에게 임무를 주고 대가를 주는 회사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존 윅>은 개인과 시스템의 대결이 좀 더 강조된다면,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시스템에 반기를 든 작은 조직이 대결을 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또한 <존 윅>에는 꽤 유능한 킬러들이 존 윅을 죽이기 위해 대결을 자처했다. 하지만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의 조직에서는 그런 유능한 킬러가 등장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위기를 맞은 시스템을 지켜줄 유능한 존재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샘과 친구들을 제거하려 하는 건 시스템의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의 경쟁 조직을 이끄는 인물이다. 이런 무능한 시스템은 영화의 전반적인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영화의 구성이 어떠하든 이 영화는 액션 영화다. 배우 카렌 길런이 보여주는 액션은 꽤 다채롭고 사실감이 넘친다. 긴 팔과 다리를 이용해 격투 액션을 벌이는 그의 모습은 꽤 빠르고 매력적이다. 이 영화에 담긴 액션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그의 액션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액션 장면을 책임지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샘을 도와주는 애나, 플로렌스, 매들린과 스칼렛은 총기나 도구를 활용한 액션을 보여주기 때문에 주로 근접 액션을 보여주는 샘의 액션 장면과는 다른 액션 장면을 보여준다.
레트로 한 액션과 분위기, 그럼에도 떨어지는 긴장감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략 2,000년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등장하는 음악과 레트로 감성이 듬뿍 담긴 화면은 과거의 모습들을 떠올리게 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이런 이미지들은 영화의 액션이 벌어지는 볼링장이나 작은 식당의 이미지와 융합되며 꽤 근사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영화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있음에도 액션만큼은 돋보인다.
결국 이 영화는 샘과 에밀리가 유사 모녀관계를 맺는 것으로 보인다. 엄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샘은 자신의 엄마 스칼렛이 범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지 않는다. 자신의 엄마의 실수를 바로잡고, 또 자기 자신이 저지른 잘못까지 반성하면서 에밀리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런 철저한 자기반성과 상대방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에밀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시스템에 대항하는 용기로 전환된다. 샘은 자신이 엄마에게 받지 못한 신뢰와 믿음을 에밀리에게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 아마도 에밀리도 샘이 하는 일과 행동을 따라가겠지만 적어도 엄마라는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겪었던 혼란과 아픔을 에밀리가 겪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샘은 그렇게 엄마에 의지하고 신경쓰던 삶 뿐만아니라 자신이 얽매고 있었던 조직에서도 독립함으로써 진정한 독립을 이루어냈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 나봇 파푸샤도는 이스라엘 출신으로 이스라엘에서 스릴러나 공포 영화들을 주로 연출해 왔다. 특히 그가 2013년 연출한 영화 <늑대들>은 여러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번 연출작인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그가 할리우드에서 연출한 첫 장편 영화다. 그가 가진 감각과 연출 스타일을 그대로 뽐냈는데 여러 가지 좋은 이미지와 액션 연출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가진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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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이라는 공포
*해리 포터 시리즈에 대한 스포일러가 중간중간 노출됩니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프랜차이즈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한편 판타지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지나치게 어두운 색채로 아쉽다는 평을 듣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시리즈 중 박스오피스 성적이 가장 낮지만 나름의 매니아 층이 양산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금번 어린이날에는 지금까지 재개봉한 해리포터 시리즈의 순서를 거슬러 재재개봉되었다(현재 4편인 <해리 포터와 불의 잔>까지 4D 재개봉되었음). 영화 자체를 공포영화와 비슷하게 연출하기도 했지만 감독의 편을 들어준다면 원작 자체가 상당히 어두운 색채를 띠고 있기도 하다. 특히 사이빌 트릴로니 교수(엠마 톰슨 분)가 무언가에 빙의한 듯 예언을 하는 장면은 어린 시절 읽으면서 오싹한 느낌을 주었을 정도다. 사실 원작 시리즈 중에서는 특별하게 크게 평가받는 작품은 아니지만 다음 편인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성장통의 서막을 알리는 동시에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 분)의 유일한 가족인 대부 시리우스 블랙(게리 올드만 분)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건널목으로 기능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통해 해리는 때로는 모종의 이유로 진실이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세상이 생각보다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편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해리는 비록 숙적 볼드모트를 무찌르지는 못했지만 볼드모트에게 타격을 입히고 전교생의 이목을 끄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마법사의 돌을 파괴하고 퀴렐 교수가 죽음으로써 볼드모트의 회생 시도가 저지되며 덤블도어 교수는 해리에게 이젠 교내에서 그 사건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고 이야기해 준다. 심지어 그 사건으로 인해 해리와 해리의 친구들이 기숙사 점수를 무더기로 퍼받으며 그리핀도르 기숙사생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기도 했다(때문에 웹상에서 덤블도어 교수의 그리핀도르 편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듬해 비밀의 방에 있던 톰 리들의 일기장을 파괴하고 지니를 구한 해리는 연회장에서 환영받고 한 학년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연회로 그 해를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이르러 해리는 부모님의 배신자에 대한 진실을 깨닫고 자신의 대부와 살아갈 날을 꿈꾸지만 피터 페티그루(티모시 스펄 분)의 탈주로 진실을 암흑 속에 묻는 신세가 된다. 외려 무고한 시리우스 블랙을 디멘터들로부터 간신히 탈출시키고도 교수를 공격한 학생이 되었을 뿐이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한 해가 끝난 것을 축하하는 호그와트의 화려한 연회로 끝맺지 못하고 시리우스가 이름조차 쓰지 못하고 보낸 파이어볼트에 올라탄 해리로 마무리한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서사 자체로 비극이 난무하기도 하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많은 장면을 공포영화에 가깝게 연출했다. 해리가 프리벳 가에서 가출해 처음 죽음의 개(정체는 모두들 아실듯)를 마주치는 장면이나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디멘터가 객실로 들어서는 장면 모두 상당히 공포스럽다. 이전 두 영화에서 호그와트로 가는 길은 언제나 햇살로 가득했던 것과는 반대로 이제 성장통의 길목에 들어선 해리는 우중충한 날씨에 호그와트로 진입하며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시절의 공포와 마주한다. 그리고 어떤 여자가 비명을 지르지 않았냐고 묻자 헤르미온느(엠마 왓슨 분)는 무섭게도(!)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이외에도 자신이 유일하게 자신있었던 퀴디치에서조차 비오는 날씨와 디멘터라는 벽에 부딪혀 첫 패배를 경험한 해리는 자신이 아끼던 빗자루 님부스 2000마저 잃고 만다.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에 관한 진실 아닌 진실을 듣게 된 해리는 성장기를 맞이한 대담한 청소년답게 시리우스 블랙이 찾아왔으면 하고 바란다. 앞으로도 해리는 수많은 비극을 맞이할 예정(..)이지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그 서막을 알리는 종소리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알폰소 쿠아론은 이를 공포스럽게 연출함으로써 성장은 세상의 부조리를 깨닫는, 일종의 공포와도 같다고 선언한다.
돌이켜 보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언제나 성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인 <그래비티>는 라이언(산드라 블록 분)이 자신의 과거를 딛고 한발 나아가 재탄생하는 이야기였으며 마찬가지로 발 디딜 곳 없는 우주 공간에서의 공포를 놀랍도록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라이언은 성장 혹은 재탄생하기 위해 죽음에 이르는 극한의 공포를 겪어야만 했다. 역시나 세계적인 마니아층을 양산한 <칠드런 오브 맨>도 마찬가지로 죽음에 관한 비유(와 실제 죽음)로 넘쳐난다. 그리고 여러 작품을 거쳐 넷플릭스와의 협업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에서 꺼낸 <로마>는 대놓고 자신의 성장담이기도 했다. <로마> 또한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동시에 처연하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로마>라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본다면 어쩌면 쿠아론 감독은 자신의 성장기를 통해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공포가 동반되며, 때로는 죽음이 함께 하기도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달았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성장담 그 자체인 해리 포터 시리즈를 만났을 때, 그리고 시리즈 가운데 가장 어두운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만났을 때 그 스토리텔링 능력이 극대화된 것이 아닐까. 이후 스케줄 문제로 시리즈에서 하차했다고 하는데 크리스 콜럼버스가 떠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쿠아론 감독이 도맡았다면 이후 작품들은 어땠을지 궁금해진다(마이크 뉴웰, 데이빗 예이츠 감독은 솔직히 성에 안 찬다).
한편 쿠아론의 성장담이 비극으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다. 청소년 판타지 영화답게 서비스 장면도 쿠아론 감독은 잊지 않았다. 그리핀도르 남학생 기숙사에서 동물 젤리를 먹으며 장난치는 호그와트 학생들의 모습이나 호그스미드에서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네빌의 사탕을 훔치는 해리 등 곳곳에는 풋풋한 성장기 청소년들의 모습도 종종 보인다. 순간이지만 해리는 더즐리네를 벗어나 시리우스와 함께 사는 달콤한 상상을 하기도 하며, 아빠 제임스 포터가 자신을 구하러 와줬을 거라는 환상에 행복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구한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해리는 제임스를 만나지 못한 것에 슬퍼하는 대신 어려운 패트로누스 마법을 해냈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히포그리프 벅빅을 처음 만나 당황했던 해리는 용감하게 올라타 호그와트를 한바퀴 돌고는 빗자루를 타는 것과는 또 다른 짜릿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해가 마무리되었을 때, 비록 본인이 원했던 바로 그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빗자루인 파이어볼트에 올라탄 해리는 인생이라는 기나긴 비극에서 다시 한번 순간이나마 짧은 환희를 경험한다. 쿠아론 감독은 결국 해리에게 중요한 소품인 빗자루를 부러뜨리고 새로운 빗자루를 선사하면서 성장이란 이런 것이라고, 갖고 있던 것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는 동시에 새로운 것을 얻는 환희와도 같다고 말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해리 포터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장면은 영화마다 달랐지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마지막 장면이 파이어볼트에 올라탄 해리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마무리에서 독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석연치 않은 감정을 느꼈다. 본의 아니게 악역을 도맡아온 슬리데린 기숙사에게 한방 먹이고 떨떠름한 스네이프 교수(알란 릭맨 분)의 표정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이전 시리즈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해리가 믿고 따랐던 루핀 교수(데이빗 튤리스 분)는 결국 어둠의 마법 방어술 자리를 사임했고 해리의 대부 시리우스는 여전히 누명을 벗지 못하고 숨어 살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해석했던 바와는 달랐지만 트릴로니 교수의 불길한 예언은 결국 현실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며 울적해하는 해리 앞에서 루핀 교수는 바뀐 게 없지 않다며 해리를 달랜다. 해리는 무고한 생명을 구했으며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궁극적으로는 거대한 악이 사라지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서 희생되는 수많은 선인에 대한 이야기도 결코 잊지 않는다. 원작자인 J.K.롤링이 위대한 이유는 이렇듯 독자들이 항상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은 않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양면성을 무섭도록 현실적으로 그려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은 해리에게 인간은 보이는 그대로지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처음 맞닥뜨리게 하는 단계였다. 그리고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 이르러 해리는 생각보다 많은 악이 세상에 숨어 있으며, 그렇기에 자신이 바꾸려 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비현실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전세계의 청소년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낸 이야기는 많지 않다. 환상의 세계임에도 인물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은 정의로운 곳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해리는 이제 비가 내리고 디멘터가 활보하는, 어두운 성장의 터널을 거치며 세상이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배운다. 쿠아론 감독은 이 과정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리는 와중에도 인생이라는 비극을 관통해나가며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극을 놓치지 않았다. 해리가 처음 패트로누스 마법을 성공시키는 순간 떠올린 기억은 그 자체로 온전히 행복한 기억이 아니며 해리 스스로 복잡하다고 표현하는 것도 쿠아론 감독의 인생관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과연 시리즈 가운데 가장 뛰어난 평가를 받는 작품이며, 이를 몇 번이고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건 그 자체로 인생의 행운이자 희극이 아닐까. 이런 관객의 기대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크레딧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 해리는 속삭인다. "마법의 장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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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미남 계보를 잇는 배우들의 개봉예정영화
2000년대 초, 시대를 풍미했던 인터넷 소설 열풍을 혹시 기억하시나요?
그때 그 시절, 영화화된 많은 '인소' 작품들엔 소설 속 묘사 그대로의 캐릭터들이 출연하여 인소 팬들의 감성을 지켜주었는데요.이와 함께, '꽃미남' 열풍이 한반도를 강타하기 시작했죠! 원빈, 현빈, 강동원 등의 꽃미남 배우들은 물론이고, 예능부터 영화까지 대부분의 작품들이 꽃미남 소재를 차용하며 많은 세대를 공략하였습니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미남의 척도가 조금씩 달라져왔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꽃미남'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세계 각국의 배우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100m 밖에서도 향기날 것 같은 외모는 물론, 연기력까지 갖춘 각국의 꽃미남 배우들과 그들의 2021년을 장식할 영화를 같이 한 번 만나볼까요?
잇츠 CINE PICK!!박보검, <원더랜드>
SF, 드라마 | 한국
감독 : 김태용 | 출연 : 박보검, 수지, 정유미, 최우식, 탕웨이
세상을 떠난 가족, 연인과 영상통화로 다시 만나는 이야기씨네pick : 한국의 '꽃미남' 계보를 강력하게 이어가고 있는 '박보검'은 브라운관은 물론 스크린에서도 열일해온 배우인데요. 특유의 사슴 같은 눈망울은 관객들을 스크린에 빠져들게 합니다. 그리고 그가 입대 전 남기고 간 작품 <원더랜드>는 김태용 감독이 <만추> 이후 9년 만에 '탕웨이'와 함께 돌아온 작품인데요. 캐스팅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던 작품 <원더랜드>는 화려한 올해의 국내 라인업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작품입니다. 코로나의 여파로 일부 국가에서는 넷플릭스 공개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는데요. 국내에서는 꼭 스크린에서 볼 수 있길 바라게 되네요.
티모시 샬라메, <프렌치 디스패치>, <듄>
<프렌치 디스패치>
코미디, 드라마, 멜로/로맨스 |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 108분
감독 : 웨스 앤더슨 | 출연 : 틸다 스윈튼, 프란시스 맥도먼드, 빌 머레이,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20세기 프랑스의 한 가상 도시에서 발행되는 미국 잡지와 관련된 세 가지의 스토리
<듄>
모험, 드라마, SF | 미국, 헝가리, 캐나다
감독 : 드니 빌뇌브 | 출연 : 티모시 샬라메, 레베카 퍼거슨, 오스카 아이삭, 젠데이아
신화적이고 감동적인 영웅의 여정인 듄은 위대한 운명으로 태어난 '폴 아트레이드'의 이야기이다.
그는 가족과 백성들을 위해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행성으로 가야한다.
그는 행성에서 가장 소중한 자원을 두고 악의 세력과 투쟁한다.
씨네pick : 세계 어딜 가도 이국적으로 느껴질 외모의 소유자 '티모시 샬라메'는 단편 영화부터 차근차근 필모를 쌓아온 배우입니다. 차세대 배우라기엔, 이미 슈퍼스타인 그는 2021년에만 대작 두 편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하는데요. 코로나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개봉 연기였지만, 덕분에 올 하반기가 훨씬 풍성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드니 빌뇌브와 웨스 앤더슨이라는 세계적인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니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특히, <프렌치 디스패치>는 최근 칸 프리미어에서 9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하니 어찌 기대를 안 할 수 있을까요?
스다 마사키, <큐브>
판타지, SF, 공포 | 일본
감독 : 야스히코 시미즈 | 출연 : 스다 마사키, 와타나베 안, 오카다 마사키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는 큐브 안에서 깨어난 낯선 이들.
감옥같은 방에서 탈출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만 한다.
씨네pick : 스며든다 스며든다 스다 마사키가 스-며들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핫한 배우라는 '스다 마사키'는 <귀멸의 칼날>을 제친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로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데뷔 당시 '예쁜' 외모로 주목받은 그는 이후 영화에서 여장남자 역할을 맡기도 했죠. 게다가 이미 일본 아카데미 우수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하였다고 하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이기도 한데요. 그의 차기작은 호러 명작 <큐브>의 일본 리메이크작이라고 합니다. 아직 국내 여봉 여부는 미정이라고 하니,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려봅니다.
허광한, <여름날 우리> (2021 여름 개봉)
멜로/로맨스 | 중국
감독 : 한톈 | 출연 : 허광한, 장약남
"처음이었다, 사랑이 싹트는 기분"
너에게 풍덩 빠져버렸던 17살의 여름.
너를 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21살의 여름.
그리고 몇 번의 여름이 지나고 다시 만난 너,
이젠 놓치지 않을 거야.
씨네pick : 앓다 죽어도 좋을 허광한.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앓게 만든 장본인 허광한은 전 세계 10억뷰의 화제의 대만 드라마 "상견니"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핫-가이입니다. 청순미 뿜뿜하는 외모로 첫사랑 추억 보정하게 만드는 허광한이 "상견니"에 이어 또 한 번 기억 조작에 나선다고 하는데요. 훈훈한 외모뿐 아니라 탄탄한 연기력까지 겸비한 그가 이번에는 여름 특유의 풋풋함과 청량함으로 국내 관객을 설레게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중국 개봉 당시 1,4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하니, 이미 작품성은 입증된 것 같은데요. 이제 광한에게 더 빠져들 일만 남은 건가요?
10월 개봉을 확정 지은 영화가 많이 보이는 가운데,
여름의 끝자락을 청량하게 장식할 영화까지.
비주얼 폭발 영화들을 기다리며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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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배터드 바스터즈 오브 베이스볼
더 배터드 바스터즈 오브 베이스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보는 내내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즐거운 영화. 이 영화를 보고나서 조금 밉상이었던 영화배우 커트 러셀이 멋지게 보일 정도였다. 커트 러셀은 쿠엔틴 라탄티노 감독의 영화 '데스 프루프'에서 악당으로 나와 세 명의 여성에게 곤죽이 되도록 맞아죽는 역할을 하는데, 영화의 엔딩 장면은 남성우월주의, 여성혐오, 남성가부장제, 페미니즘 등을 모두 내포한 상징적 장면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 가지는, 커트 러셀의 집안, 정확히는 아버지 빙 러셀의 일대기에 관한 이야기와 미국 프로야구의 민낯이다. 빙 러셀은 자신의 삶에서 야구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야구 팬이자 직접 선수로도 활약한 인물이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커트 러셀도 한때 아버지가 운영하는 구단, 포틀랜드 매버릭스에서 선수로 활동했었다.
싱 러셀이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홉 살 무렵이라고 그의 아내 루 러셀이 증언한다. 싱 러셀의 아버지가 수상비행기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으니, 러셀의 집안이 기본적으로 상류층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싱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 레프티 고메스로, 당시 뉴욕 양키스 투수였다. 이후 싱 러셀은 뉴욕 양키스 선수들과 함께 생활할 정도로 가까웠고, 루 게릭의 마지막 홈런 방망이를 가질 정도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는 선수들이 타는 버스를 함께 타고 다녔고, 연습장에서 마음껏 선수들 사진도 찍는 귀염둥이였다.
결국 싱 러셀은 독립구단의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 선수생활을 했으나, 머리에 폭투를 맞고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싱 러셀은 가족을 이끌고 동쪽 끝 메인주에서 서쪽 끝 캘리포니아 헐리우드로 이주했다. 싱 러셀은 배우가 될 계획을 세웠는데, 헐리우드로 이주해 곧바로 조연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승마 실력이 좋아서 서부영화에 악역 조연으로 출연했고, 그가 출연한 '보난자' 시리즈는 인기를 끌었다. 그는 당대 유명배우들과 함께 출연했으며, 특별한 존재로 부각하지는 못했어도 꽤 성공한 배우였다.
그런 싱 러셀이 배우를 하면서도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은 야구였다. 그는 야구 교습용 비디오를 제작했고, 이 비디오는 미국 프로야구 선수들도 참고할 정도였다. '보난자' 시리즈가 막을 내리면서, 40대의 싱 러셀은 갑자기 백수가 되었다. 1973년, 포틀랜드 비버스 야구팀이 연고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포틀랜드에 야구팀이 사라졌다. 비버스는 인기 없는 팀이었고,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어서 더 작은 도시로 이전한 것이다.
이때 빙 러셀이 포틀랜드에 싱글A 야구팀을 창단하기로 결정한다. 포틀랜드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빙 러셀이 유명한 사람도 아니어서 포틀랜드 주민들은 빙 러셀의 야구단 창단을 믿지 않거나, 이상하게 생각했다.
빙 러셀은 헐리우드로 이주하기 전에 독립구단에서 프로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으니, 그가 독립구단을 창단한다고 생각한 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이미 미국에 독립구단이 존재하지 않았고, 메이저리그의 하위 리그 구단도 모두 메이저리그에 소속되어 있었다.
포틀랜드 주민들이 싱 러셀의 야구단 창단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직전에 다른 연고지를 찾아 이전한 포틀랜드 비버스는 트리플A(AAA) 팀으로, 메이저 리그 바로 아래의 수준이었는데, 싱 러셀이 창단하겠다는 야구팀은 고작 싱글A(A) 팀으로, 이제 막 동네 야구의 수준을 벗어난 사회인 야구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포틀랜드 주민들은 이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구단주는 빙 러셀, 감독은 프랭크 피터스, 단장은 래니 모스였다. 당시 미국 프로야구의 유일한 독립구단으로 출발한 것이다. 선수는 신문광고를 내서 공개모집했는데, 모두들 어처구니 없어했다. 어중이떠중이들만 모일 거라고 예상했고, 몇 명 오지도 않을 거라고 했는데, 공개 선발시험에 무려 400명 넘게 참가했고, 미국 전역에서 모여들었다. 이 무명의 선수들은 오로지 야구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몰려든 것이다.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날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선수를 선발하고, 싱글A 리그에서 경기를 시작한다. 이들이 소화할 경기는 모두 84게임. 매버릭스 선수들은 모두 저마다 개성 있는 사람들이어서 언듯 보기에 오합지졸로 보였다. 마침내 첫 경기가 열렸고, 매버릭스는 4대 0으로 완봉승, 심지어 투수 진 랜섬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다. 이후 11-1, 11-4, 10-4, 12-5, 7-1 등 다른 팀을 압도한다. 별 볼일 없는 팀이라고 무시했던 포틀랜드 주민들은 놀라운 경기를 보여주는 매버릭스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기 시작했고, 지역신문에도 소개된다.
메이저리그 산하 구단 가운데도 싱글A 팀이 많았고, 이들은 독립구단인 매버릭스에 번번이 깨졌다. 메이저리그 구단주들은 독립구단 매버릭스가 눈엣가시였다. 매버릭스의 인기는 마침내 미국 전역에 알려졌고, 1974년, 싱 러셀은 '올해의 구단주' 상을 받기도 했다. 이것은 독립영화로 오스카상을 받는 것과 같다고 포틀랜드 지역신문 기자들이 증언한다.
1975년에 싱 러셀은 공중파TV NBC에 출연하고, 매버릭스 팀과 선수들도 자세하게 소개되면서, 매버릭스는 전국에 널리 알려진 스타 팀이 된다. 이 팀에 '짐 버튼'이라는 투수가 등장하는데, 뉴욕 양키스의 주전 투수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최고의 투수였으나, 그가 쓴 책이 메이저 리그의 추문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구단에서 쫓겨나 야구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때 싱 러셀이 매버릭스에서 함께 뛰자고 제안했고, 짐 버튼은 매버릭스의 투수로 활동한다. 이후 짐 버튼은 1978년 메이저리그에 복귀한다.
포틀랜드에서 야구는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야구장을 찾았다. 독립구단에 싱글A팀이 하는 야구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관중 숫자는 미국야구에서 신기록을 세운다. 예전 팀인 비버스의 경기에는 겨우 30-40명 정도가 경기장을 찾았지만, 매버릭스 경기 때는 평균 4천5백명, 시즌 전체 12만 7천 명으로 마이너리그 신기록이었다.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한 야구를 하는 매버릭스의 경기는 그 경기를 보러 오는 관중들까지 동화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운영하는 싱글A, 더블A, 트리플A 팀은 메이저리그 선수를 기르기 위한 육성팀의 역할에 불과했으므로, 메이저리그에서 하위 리그 경기의 승패나 즐거움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버릭스는 독립구단이었고, 무엇보다 야구를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자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관중도 그 느낌을 안 것이다.
빙 러셀은 기존의 메이저리그 시스템에 맞서고 있었다. 빙 러셀이 그걸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빙 러셀의 야구철학이 자연스럽게 메이저리그와 대립하게 된 것이다. 1977년에 매버릭스는 승률 66%로, 미국 전체 야구팀 가운데 1위였다. 메이저리그 산하구단은 매버릭스의 리그 우승을 막기 위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최고의 선수를 내려보냈다. 노스웨스트 리그 최종 결승전이 열리고,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매버릭스는 2-1로 패한다.
1978년, 포틀랜드를 떠났던 트리플A 팀이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때 메이저리그의 법은 상위 구단이 들어오면 하위 구단은 그 지역을 떠나야 했다. 상위 구단은 지역에서 반경 145km 이내에 다른 구단이 존재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메이저리그가 독립구단인 매버릭스를 없애기 위한 작전인 것이 분명했다. 그걸 알면서도 빙 러셀은 일방 당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포틀랜드로 들어올 구단은 빙 러셀에게 이전 비용은 2만6천 달러를 제시하면서, 기존의 관례보다 5배를 더 주는 것이라고 했다. 빙 러셀은 그 제안에 대해 무려 10배가 많은 20만6천 달러를 제시했다. 결국 이전 비용 문제는 법정으로 갔고, 법원은 중재를 거쳐 최종 결론으로 빙 러셀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 역시 마이너리그 사상 최고 금액이었다.
빙 러셀과 매버릭스 선수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 멋진 시간을 보냈다. 미국 야구역사에서 매버릭스의 존재는 즐겁고, 재미있는 야구, 행복한 야구를 하는 마지막 독립구단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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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도를 희생해 시리즈의 초석을 두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판도라 행성의 자원을 개발하려던 RDA의 공격을 물리친 '제이크 설리(샘 워딩턴)'와 '네이티리(조 샐다나)'. 그들은 '네테이얌(제이미 플래터스)', '로아크(브리튼 달튼)', '투크티리(트리니티 블리스)'를 낳고 '그레이스 박사(시고니 위버)'의 딸 '키리(시고니 위버)'와 인간 아이 '스파이더(잭 챔피언)'를 입양해 행복한 가족을 꾸려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크는 밤하늘에 낯선 불빛을 발견하고 RDA와 인간들이 판도라에 귀환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가진 무기와 자원을 총동원해 인간들을 공격하나, 도리어 아바타로 되살아난 '쿼리치 (스티븐 랭)' 대령의 기습에 가족을 잃을 뻔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에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위기를 피하고자 '로날(케이트 윈슬레)'과 '토노와리(클리프 커티스)'의 도움을 받아 온 가족을 데리고 바닷가에 사는 멧카이나 부족 사이로 피신한다. 그러나 포기를 모른 채 복수심에 불타는 쿼리치의 추격은 제이크의 가족에 새로운 시련을 선사한다.
<아바타: 물의 길>은 올해 개봉한 작품 중 가장 많은 기대를 받은 작품이었다. 이유는 많았다. 역대 월드와이드 흥행 1위 영화이자 3D 혁명을 일으킨 <아바타>의 속편이라는 점, 개봉일이 숱하게 연기되어 13년 만에 공개된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라는 점, 제임스 카메론 감독 본인이 가장 비경제적인 영화일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자된 작품이라는 점 빼놓을 수 없다. 전편의 주역인 샘 워딩턴과 조 샐다나는 물론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시고니 위버와 스티븐 랭이 복귀했고, 케이트 윈슬렛 등이 새로이 합류한 배우들의 면면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아바타: 물의 길>은 감독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에이리언 2>와 <터미네이터 2>로 속편의 대가임을 증명한 바 있는 제임스 카메론도 이번에는 자기 장기를 온전히 발휘하는 데 실패했다. 13년간의 준비 기간 때문이다. 카메론 감독은 5편까지 이어질 시리즈를 모두 계획하기 위해 13년이 필요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각본을 모두 완성하고, 모든 캐릭터와 생물을 미리 만들며, 제작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을 사전에 구축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이번 속편이 큰 그림의 일부라는 의미이며, 바로 이 대목이 양날의 검이다. 앞으로의 로드맵이 확실하다 보니 <아바타: 물의 길>이 암시하는 향후 시리즈의 내용이나 전편으로부터 더욱 발전한 주제 의식과 메시지는 화려한 영상미 못지않게 흥미롭다. 반면에 한 편의 독립된 영화로서 완성도는 현저히 떨어진다. 시리즈의 초석을 놓는 데 열중한 나머지 무엇 하나 온전히 완결 짓지 못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캐릭터 '로아크' & '키리'가 암시하는 시리즈의 길
우선 <아바타: 물의 길>은 새로운 캐릭터들을 차례대로 소개하면서 앞으로 <아바타> 시리즈가 나아갈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주력한다. 이는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로맨스가 가족 드라마로 확장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인물을 자연스럽게 극의 흐름에 끼워 넣고 동시에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 제격이므로. 실제로 영화의 내용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양육 방향을 둔 아버지와 어머니의 충돌, 형제자매 간의 다툼 등으로 가득하다. 특히 둘째 아들 로아크과 양녀 키리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들의 서사에 담긴 비유와 클리셰는 시리즈의 지향점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일단 로아크는 신약 성경 속 '돌아온 탕자'의 판도라 버전으로 보인다. 로아크는 나비족의 영웅이자 위대한 전사인 아버지처럼 되고 싶은 욕망에 들끓지만, 동시에 아바타의 특징이 강한 외모 때문에 소외감을 느낀다. 아버지처럼 강한 전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완벽한 아들이자 형인 네테이얌처럼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자격지심이 공존한다. 그 때문에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 몫만큼의 유산을 받아 집을 나선 '탕자'가 된다. 그는 만용을 부리다가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해 가족과 동료들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하고, 좀처럼 가족들과 융화되지 못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자신만의 여정을 겪는다.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한 단계 성숙해진다. 자신처럼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툴쿤 파야칸을 만나 안정을 찾고, 형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아버지를 위험으로부터 구해내면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온다'. 결국 <아바타: 물의 길>은 로아크가 물속은 물론 인생의 길까지 찾는 이야기인 셈이다.
미스터리로 가득한 신비한 캐릭터 키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아바타에서 태어난 아기이자, 그 누구도 아버지의 정체를 모르는 존재인 그녀는 등장부터 범상치 않다. 유달리 에이와와 강하게 교감할 뿐만 아니라, 따로 훈련하지 않고도 물속에서 능숙하게 잠수할 줄 안다. 또 온갖 동식물과 소통하고 그들을 뜻대로 조종하기도 한다. 이러한 묘사는 그녀가 마치 판도라 버전의 예수와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인간과 나비족의 대립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구세주 메시아로 거듭날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본래 '아바타(avatar)'라는 단어가 지상에 내려온 신의 분신을 의미하는 만큼, 키리가 에이와의 아바타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로아크와 키리의 서사가 중심이 될 <아바타> 시리즈는 제임스 카메론이 써 내려가는 신약 성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시점 알려진 시리즈의 4편과 5편의 부제가 각각 <툴쿤의 기수(The Tulkun Rider)>와 <에이와를 찾아서(The Quest for Eywa)>이기에 더욱 그렇다.
전편으로부터 진일보한 생태학적 메시지
무분별한 환경 파괴와 개발에 반대하며 자연을 보호하자는 메시지도 더욱 깊어졌다. <아바타>는 인간과 다른 존재들의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판도라의 모든 생명체는 에이와의 자식으로서 동등한 존재다. 따라서 그들을 소유하고 이용하는 대신 그들과 소통하며 허락을 구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는 제이크가 이크란을 탈 때 그들과 진정으로 교감할 수 있어야 했던 이유였고, 또 사냥할 때마다 "당신을 봅니다(I see you)"라고 말하며 명복을 빌었던 이유였다. 판도라의 모든 나무가 마치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인간처럼 의사소통할 줄 안다는 언급도 같은 맥락에서 등장한 설정이었다. 다만 이러한 묘사에도 한계는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설정과 설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판도라의 신기한 생태계와 삶의 방식을 관찰할 뿐, 다른 생명과 존재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아바타: 물의 길>은 한발 더 나아간다. 지구의 고래를 닮은 생명체, 툴쿤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작중 툴쿤은 멧카이나 부족의 형제자매, 외관만 다른 부족의 일원으로 여겨진다. 멧카이나 부족과 툴쿤들이 재회하는 장면은 오랜 기간 보지 못했던 가족이나 친척들이 추석이나 설날에 만나 수다 꽃을 피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단지 멧카이나 부족이 일방적으로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툴쿤들도 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영화는 로아크와 파야칸이 처음 만난 순간부터 툴쿤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파야칸의 시점에서 로아크가 말을 걸고, 대화를 시도하고, 도움을 주고, 친분을 맺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 결과 동등한 두 주체가 진정으로 우정을 쌓아나가는 과정에는 설득력이 더해진다. 또 인간과 멧카이나 부족이 결국 전투를 벌이는 결정적인 계기도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체험할 수 있는 주제 의식
즉, 전편이 인간도 자연계의 구성원 중 하나로서 선순환하는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속편은 인간 이외의 주체를 강조하여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정동(affect)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자연과 물질도 인간처럼 세계의 변화에 반응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체이며, 인간처럼 의지와 목적을 가진 채 행동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들도 툴쿤 사냥선을 급습하는 파야칸처럼 인간 행위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능동적인 반응에 따라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특히 영화 초반부에 RDA의 목적이 망가진 지구를 대신해 판도라를 개척하고 이주를 도모하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이는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자연과의 공존을 더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한층 깊어진 주제 의식은 <아바타: 물의 길>이 선보이는 화려한 영상미가 빛을 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이 작품의 CG 효과는 전편 수준의 충격적인 영상미를 재현하지 못한다. 3D 효과도 익숙해졌고, 판도라 행성의 경관도 한 차례 맛을 봤기에 13년 전만큼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판도라를 체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마치 지구의 바다를 촬영하듯이 다른 세상에 있을법한 바다의 상세한 모습을 그래픽과 상상력으로 표현한 결과, 주인공들과 함께 판도라의 바다를 진짜로 경험하고 경이로움을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해양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본의 고래잡이를 비판하는 듯 보이는 툴쿤 사냥 시퀀스도 마냥 교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관객들은 해당 장면에 심정적으로 몰입하고, 영화의 메시지도 자연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한 편의 영화가 아닌 시리즈의 부속품에 가까워진 결과물
그러나 한 편의 독립된 영화로서 <아바타: 물의 길>은 전편에 비하기 어려운 완성도를 보여준다. 전반적인 스토리의 구성과 흐름, 캐릭터의 구축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전편과 달리 몰입도가 떨어진다. 1편은 인간과 아바타(나비족) 중 한 정체성을 골라야 하는 제이크의 고뇌를 그려냈다. 이러한 존재론적인 내적 갈등은 누구나 자신의 성장 경험과 사회적 위치를 떠올리며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반면에 이번 작품은 내적 갈등을 사회적인 이야기로 다양하게 확장한다. 일례로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아이들은 혼혈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심적으로도 괴로워하고 멧카니아 부족의 아이들과도 충돌한다. 이는 현실 속 인종 차별이나 다문화 청소년들이 겪는 집단 따돌림 등에 대한 비유처럼 보인다. 이는 수용자의 경험과 태도에 따라 공감의 수준이 달라질 수 있는 화제이고, 결국 그 때문에 직관적인 몰입도도 덜할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수많은 캐릭터의 활용법도 최선은 아닌 듯 보인다. 다음 세 편을 위한 준비 단계에 불과하다 보니 캐릭터들의 이야기도 간신히 시작될 뿐 진행되는 내용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제이크의 서사만 해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사전 작업에 머무르고 있다. 줄곧 인간을 피해 도망치던 그가 인간과의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만으로 3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스파이더의 활용도 애매하다. 인간과 나비 양쪽을 오가면서 비극적인 개인사와 가족사를 지닌 인물인 만큼 그는 분명히 향후 시리즈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정작 이 중요한 캐릭터가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주지 않는다. 그는 나비족의 습관과 정서를 이해하고 깊이 사랑하는 캐릭터에서, 말 몇 마디에 쿼리치의 제이크 추적을 돕는 등 소극적으로 협력하는 캐릭터로 변해 버린다. 이렇게 일관성 없이 플롯의 필요에 따라 캐릭터성이 달라지다 보니 그는 자연히 극의 흐름에 녹아들지 못한다.
갈등의 규모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얼핏 보기에는 전편보다 더욱 커진 전쟁을 그려내는 듯하다. RDA가 아예 실거주 목적으로 판도라 행성에 귀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다음 편을 위한 복선에 불과하다. 정작 종족의 생존을 두고 벌어지는 인간과 나비족의 결전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제이크, 네이티리, 그리고 쿼리치 대령 간의 오래된 악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쿼리치 대령은 개인적인 복수심을 이유로 제이크와 네이티리를 추격하며, 그저 도망치기에 급급하던 제이크와 네이티리 역시 아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쿼리치의 도발에 응수하기로 한다. 그 결과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전편에 비해 다소 맥 빠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액션의 스케일이나 전투 시퀀스의 규모도 줄어들었고, 싸움에 임하는 비장함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바타: 물의 길>을 보다 보면 생각나는 두 작품이 있다. 바로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와 <호빗: 뜻밖의 여정>다. <아바타>를 일종의 프롤로그였다고 친다면, <아바타: 물의 길>의 목표는 <반지 원정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시리즈의 세계관을 전반적으로 설명하고, 거대한 전쟁에 앞서 선악을 대표하는 인물들 간의 추격전을 그려낸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각각의 인물이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하고 편을 정한 후 본격적인 전쟁에 나서기로 하는 흐름도 유사하다.
그러나 목표와 달리 <아바타: 물의 길>은 정작 <호빗> 1편을 보는 듯한 인상을 남기고 만다. 시리즈의 진행에 필요한 복선을 깔아 두는 데 지나치게 열중할 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는 않으며, 많은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했지만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 인물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유사한 문제점을 공유하는 까닭이다. 내용의 부실함을 전편에 비해 화려해진 시각 효과로 벌충하는 것 역시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아바타: 물의 길>은 장단점이 명확히 갈리는 가운데 향후 시리즈의 향방에 따라 재평가의 여지를 남겨두는 작품인 셈이다. 대서사시를 위한 완벽한 가교이거나, 시리즈의 진행을 위해 소비되어 버린 평범한 속편이거나. 2년 내지는 3년 안에 나올 것이라 공언한 <아바타 3>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재평가는 속편들의 몫으로 남겨둔, 흠잡을 데 없는 시리즈의 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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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헬’s 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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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중 가장 바쁜 크리스마스, 런던의 고급 레스토랑.
셰프 ‘앤디’는 사고 없이 음식과 직원, 손님 모두를 살펴야 한다.
쏟아지는 주문으로 정신없는 가운데
반갑지 않은 위생 관리관의 급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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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통제되지 않는 현장에
`앤디`는 점점 끓어오르기 시작하는데…
단 한 번의 테이크로 질주하는 키친 서스펜스를 경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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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위도우 영화 후기 / 나타샤가 돌아왔다 / 캡아:시빌워-어벤져스:인피니티워 사이에 그녀가 한 일은? / “레드 룸”, “레드 가디언”은 들어나 봤나?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블랙 위도우” 후기입니다.
당연히 꼭 봐야할 쿠키영상이 있습니다.#스칼렛요한슨, #블랙위도우, #나타샤, #레드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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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Tekken: Bloodline> 공식 티저 예고편
"힘이야말로 전부다."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가문의 호신술인 '카자마류 고무술'을 배운 카자마 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공할 악이 갑자기 나타나자 무력했다. 그 결과, 소중한 모든 것이 파괴당해 삶이 영원히 바뀐 진. 아무것도 막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난 진은 복수를 다짐하고, 이를 위한 절대적인 힘을 추구한다. 그 여정은 세계 무대에서 펼쳐지는 궁극의 배틀인 킹 오브 아이언 피스트 토너먼트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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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30초 예고편
1995년 작가를 꿈꾸는 조안나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작가 에이전시에
CEO 마가렛의 조수로 입사한다.
출근 첫날,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D. 샐린저의
팬레터에 기계적으로 응대하라는 지시를 받지만,
조안나는 그들에게 진심 어린 답장을 보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