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6-08 15:57:03
성장이라는 공포
때로는 세상이 정의롭지 않다는 걸 배운다는 것
*해리 포터 시리즈에 대한 스포일러가 중간중간 노출됩니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프랜차이즈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한편 판타지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지나치게 어두운 색채로 아쉽다는 평을 듣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시리즈 중 박스오피스 성적이 가장 낮지만 나름의 매니아 층이 양산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금번 어린이날에는 지금까지 재개봉한 해리포터 시리즈의 순서를 거슬러 재재개봉되었다(현재 4편인 <해리 포터와 불의 잔>까지 4D 재개봉되었음). 영화 자체를 공포영화와 비슷하게 연출하기도 했지만 감독의 편을 들어준다면 원작 자체가 상당히 어두운 색채를 띠고 있기도 하다. 특히 사이빌 트릴로니 교수(엠마 톰슨 분)가 무언가에 빙의한 듯 예언을 하는 장면은 어린 시절 읽으면서 오싹한 느낌을 주었을 정도다. 사실 원작 시리즈 중에서는 특별하게 크게 평가받는 작품은 아니지만 다음 편인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성장통의 서막을 알리는 동시에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 분)의 유일한 가족인 대부 시리우스 블랙(게리 올드만 분)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건널목으로 기능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통해 해리는 때로는 모종의 이유로 진실이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세상이 생각보다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편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해리는 비록 숙적 볼드모트를 무찌르지는 못했지만 볼드모트에게 타격을 입히고 전교생의 이목을 끄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마법사의 돌을 파괴하고 퀴렐 교수가 죽음으로써 볼드모트의 회생 시도가 저지되며 덤블도어 교수는 해리에게 이젠 교내에서 그 사건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고 이야기해 준다. 심지어 그 사건으로 인해 해리와 해리의 친구들이 기숙사 점수를 무더기로 퍼받으며 그리핀도르 기숙사생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기도 했다(때문에 웹상에서 덤블도어 교수의 그리핀도르 편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듬해 비밀의 방에 있던 톰 리들의 일기장을 파괴하고 지니를 구한 해리는 연회장에서 환영받고 한 학년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연회로 그 해를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이르러 해리는 부모님의 배신자에 대한 진실을 깨닫고 자신의 대부와 살아갈 날을 꿈꾸지만 피터 페티그루(티모시 스펄 분)의 탈주로 진실을 암흑 속에 묻는 신세가 된다. 외려 무고한 시리우스 블랙을 디멘터들로부터 간신히 탈출시키고도 교수를 공격한 학생이 되었을 뿐이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한 해가 끝난 것을 축하하는 호그와트의 화려한 연회로 끝맺지 못하고 시리우스가 이름조차 쓰지 못하고 보낸 파이어볼트에 올라탄 해리로 마무리한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서사 자체로 비극이 난무하기도 하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많은 장면을 공포영화에 가깝게 연출했다. 해리가 프리벳 가에서 가출해 처음 죽음의 개(정체는 모두들 아실듯)를 마주치는 장면이나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디멘터가 객실로 들어서는 장면 모두 상당히 공포스럽다. 이전 두 영화에서 호그와트로 가는 길은 언제나 햇살로 가득했던 것과는 반대로 이제 성장통의 길목에 들어선 해리는 우중충한 날씨에 호그와트로 진입하며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시절의 공포와 마주한다. 그리고 어떤 여자가 비명을 지르지 않았냐고 묻자 헤르미온느(엠마 왓슨 분)는 무섭게도(!)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이외에도 자신이 유일하게 자신있었던 퀴디치에서조차 비오는 날씨와 디멘터라는 벽에 부딪혀 첫 패배를 경험한 해리는 자신이 아끼던 빗자루 님부스 2000마저 잃고 만다.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에 관한 진실 아닌 진실을 듣게 된 해리는 성장기를 맞이한 대담한 청소년답게 시리우스 블랙이 찾아왔으면 하고 바란다. 앞으로도 해리는 수많은 비극을 맞이할 예정(..)이지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그 서막을 알리는 종소리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알폰소 쿠아론은 이를 공포스럽게 연출함으로써 성장은 세상의 부조리를 깨닫는, 일종의 공포와도 같다고 선언한다.
돌이켜 보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언제나 성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인 <그래비티>는 라이언(산드라 블록 분)이 자신의 과거를 딛고 한발 나아가 재탄생하는 이야기였으며 마찬가지로 발 디딜 곳 없는 우주 공간에서의 공포를 놀랍도록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라이언은 성장 혹은 재탄생하기 위해 죽음에 이르는 극한의 공포를 겪어야만 했다. 역시나 세계적인 마니아층을 양산한 <칠드런 오브 맨>도 마찬가지로 죽음에 관한 비유(와 실제 죽음)로 넘쳐난다. 그리고 여러 작품을 거쳐 넷플릭스와의 협업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에서 꺼낸 <로마>는 대놓고 자신의 성장담이기도 했다. <로마> 또한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동시에 처연하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로마>라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본다면 어쩌면 쿠아론 감독은 자신의 성장기를 통해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공포가 동반되며, 때로는 죽음이 함께 하기도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달았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성장담 그 자체인 해리 포터 시리즈를 만났을 때, 그리고 시리즈 가운데 가장 어두운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만났을 때 그 스토리텔링 능력이 극대화된 것이 아닐까. 이후 스케줄 문제로 시리즈에서 하차했다고 하는데 크리스 콜럼버스가 떠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쿠아론 감독이 도맡았다면 이후 작품들은 어땠을지 궁금해진다(마이크 뉴웰, 데이빗 예이츠 감독은 솔직히 성에 안 찬다).
한편 쿠아론의 성장담이 비극으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다. 청소년 판타지 영화답게 서비스 장면도 쿠아론 감독은 잊지 않았다. 그리핀도르 남학생 기숙사에서 동물 젤리를 먹으며 장난치는 호그와트 학생들의 모습이나 호그스미드에서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네빌의 사탕을 훔치는 해리 등 곳곳에는 풋풋한 성장기 청소년들의 모습도 종종 보인다. 순간이지만 해리는 더즐리네를 벗어나 시리우스와 함께 사는 달콤한 상상을 하기도 하며, 아빠 제임스 포터가 자신을 구하러 와줬을 거라는 환상에 행복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구한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해리는 제임스를 만나지 못한 것에 슬퍼하는 대신 어려운 패트로누스 마법을 해냈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히포그리프 벅빅을 처음 만나 당황했던 해리는 용감하게 올라타 호그와트를 한바퀴 돌고는 빗자루를 타는 것과는 또 다른 짜릿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해가 마무리되었을 때, 비록 본인이 원했던 바로 그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빗자루인 파이어볼트에 올라탄 해리는 인생이라는 기나긴 비극에서 다시 한번 순간이나마 짧은 환희를 경험한다. 쿠아론 감독은 결국 해리에게 중요한 소품인 빗자루를 부러뜨리고 새로운 빗자루를 선사하면서 성장이란 이런 것이라고, 갖고 있던 것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는 동시에 새로운 것을 얻는 환희와도 같다고 말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해리 포터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장면은 영화마다 달랐지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마지막 장면이 파이어볼트에 올라탄 해리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마무리에서 독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석연치 않은 감정을 느꼈다. 본의 아니게 악역을 도맡아온 슬리데린 기숙사에게 한방 먹이고 떨떠름한 스네이프 교수(알란 릭맨 분)의 표정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이전 시리즈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해리가 믿고 따랐던 루핀 교수(데이빗 튤리스 분)는 결국 어둠의 마법 방어술 자리를 사임했고 해리의 대부 시리우스는 여전히 누명을 벗지 못하고 숨어 살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해석했던 바와는 달랐지만 트릴로니 교수의 불길한 예언은 결국 현실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며 울적해하는 해리 앞에서 루핀 교수는 바뀐 게 없지 않다며 해리를 달랜다. 해리는 무고한 생명을 구했으며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궁극적으로는 거대한 악이 사라지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서 희생되는 수많은 선인에 대한 이야기도 결코 잊지 않는다. 원작자인 J.K.롤링이 위대한 이유는 이렇듯 독자들이 항상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은 않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양면성을 무섭도록 현실적으로 그려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은 해리에게 인간은 보이는 그대로지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처음 맞닥뜨리게 하는 단계였다. 그리고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 이르러 해리는 생각보다 많은 악이 세상에 숨어 있으며, 그렇기에 자신이 바꾸려 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비현실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전세계의 청소년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낸 이야기는 많지 않다. 환상의 세계임에도 인물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은 정의로운 곳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해리는 이제 비가 내리고 디멘터가 활보하는, 어두운 성장의 터널을 거치며 세상이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배운다. 쿠아론 감독은 이 과정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리는 와중에도 인생이라는 비극을 관통해나가며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극을 놓치지 않았다. 해리가 처음 패트로누스 마법을 성공시키는 순간 떠올린 기억은 그 자체로 온전히 행복한 기억이 아니며 해리 스스로 복잡하다고 표현하는 것도 쿠아론 감독의 인생관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과연 시리즈 가운데 가장 뛰어난 평가를 받는 작품이며, 이를 몇 번이고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건 그 자체로 인생의 행운이자 희극이 아닐까. 이런 관객의 기대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크레딧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 해리는 속삭인다. "마법의 장난 끝".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레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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