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2022-12-21 23:53:13
한 왕비의 삶, 보통 여성의 삶 <코르사주>
한 여왕의 일대기가 아닌 한 여성의 삶을 공유하는 영화

영화의 제목과 같이 주인공인 엘리자베트는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 역할이었다. 그녀의 뛰어난 지성과 신체력은 ‘여성'이라는 미명하에 국가라는 옷에 달린 왕비라는 코르사주가 되어버린다. 왕비라는 신분은 구속이나 억압 없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엘리자베트는 영화 초반부터 흉부를 꽉 조이는 코르셋 때문에 호흡곤란으로 귀빈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기절한다. 지난 역사 속 여왕의 이야기를 보고 있지만 보통 여성의 삶과는 다르지 않았다. 영화는 여왕이 자신의 코르셋을 조이는 하녀에게 ‘더 조여'라며 엘리자베트가 겪었을 숨 막히는 삶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어떤 비극적인 삶에도 희로애락은 있다. 작고 소소한 일상이 공유될 때 그 사람의 미소와 눈물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인물의 솔직한 욕망이 드러날 때 우리는 주인공에게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덕분에 한 여왕의 일대기가 아닌 한 여성의 삶을 공유하는 영화로 다가온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의 결말이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현실성 있는 삶이기에, 죽음만큼은 자유로웠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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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영화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결정의 순간을 맞이한다. 갓난아기 시절에는 먹을지 말지, 싫은지 좋은지로 의사를 표현하지만 조금씩 많은 것을 거부하고 결정해나간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고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그에 대한 의견 표시를 부모에게 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그 결정을 보조해주지만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면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한다. 특히나 입시 시험은 수많은 문제의 답을 결정해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성적에 따라 어떤 대학에 갈지를 결정한다. 수없이 이어지는 시험에는 정답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외의 문제들에 정답은 없다. 그리고 그 결정 이후 어떤 결과가 자신에게 주어질지 정확히 예측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정을 해야 한다. 결정을 하지 않으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데시벨>은 한순간의 결정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초반에 훈련에 참여하고 있는 해군 잠수함 안을 보여준다. 부함장(김래원)을 중심으로 훈련을 진행하던 중 정체불명의 어뢰 공격을 받고 바닷속에 잠기게 되는 상황이 긴박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영화는 바로 시점을 이동해 현재 부함장의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부함장은 폭탄 설계자(이종석)의 전화를 받고 설치된 폭탄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된다. 폭탄 설계자는 왜 폭탄을 설치했는지 초반에 설명해주지 않고 첫 번째 폭탄이 터지는 장면을 시작으로 두 번째 폭탄, 세 번째 폭탄으로 긴박하게 시선을 돌리려 노력한다.
어떤 결정을 한 이후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잠수함 부함장의 이야기
사실 현재 시점의 부함장은 과거 잠수함 사건 이후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잠수함이 가라앉았을 당시 그는 선원들을 최대한 살리려는 결정을 했지만 그 결정은 죽은 선원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선원 모두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 결정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부와 사회는 그를 일부 선원이라도 살린 영웅으로 대접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함장은 트라우마와 함께 죄책감을 같이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 폭탄 설계자가 그를 이끄는 곳은 바로 과거 잠수함의 트라우마 속이다.
영화에서 부함장은 시종일관 테러범에게 끌려 다닌다. 도움을 받기 위해 우연히 만난 취재기자(정상훈)와 함께 폭탄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정작 폭탄을 찾고 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는 폭탄을 해체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사람을 대피시켜도 폭탄을 터뜨린다는 테러범의 말에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부함장과 그와 관련된 사람의 트라우마를 영화는 드러내 이용하려 하지만 그것이 왜 폭탄 테러와 연결되어야 하는지 영화는 설명해내지 못한다.
부함장이 가진 트라우마는 사실 테러범인 폭탄 설계자의 정체를 파악하고 만나게 된 순간 더욱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 속에서 크게 폭발력이 있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폭탄 설계자가 굳이 소음 폭탄을 이용해야 했는지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과거 전문가가 아니었던 폭탄 설계자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복잡한 폭탄을 만들어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저 그가 멘사 회원이라는 아주 얕은 이유만을 던지고 있을 뿐이다.
영화에는 부함장의 아내(이상희)가 등장한다. 폭탄 해체반에서 일하고 있는 그가 유일하게 폭탄을 해체하면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부함장은 그와 어떤 상의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취재기자와 뛰어다닐 뿐이다. 또한 영화 속 취재기자도 어설픈 모습만 보여주며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개그를 선보인다. 부함장의 아내와 취재기자 모두 영화 속에 겉돌기만 하고 부속품으로 활용될 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긴박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김 빠지는 캐릭터와 이야기
종합해보면 부함장은 폭탄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폭탄을 찾아 뛰어다니고, 그의 주변 인물들은 폭탄 해체에 도움이 되지 못한 채 그저 소비되고 만다. 다른 무엇보다 폭탄 설계자가 왜 부함장을 괴롭혀야 하고 테러로 다른 사람들, 특히 부함장의 가족까지 희생시켜야 하는지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무척 공허하게 느껴진다.
영화를 보면서 이미 많은 폭탄 테러 영화, 잠수한 영화 등에서 보아왔던 장면들이 떠올라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많다. 그래서 영화가 꽤나 낡은 이야기와 액션을 재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소리를 이용한 폭탄이라는 좋은 아이디어를 사용하고도 전혀 신선함을 느낄 수 없게 구성된 이야기와 캐릭터는 무척 실망스럽다.
결국 이 영화는 부함장의 결정에 의해 발생한 트라우마와 영향을 다루는 이야기다. 영화의 과거 사건인 잠수함에서 살아남은 이가 그 결정을 한 부함장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노력이다. 부함장은 자신의 결정의 죄책감을 마음에 담고 살고 있다. 그리고 그때 살아남은 선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선원들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며 챙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결정을 반대했던 사람은 그에게 반기를 들고 테러로 공격을 한다. 그 결정이 이 영화의 비극을 낳게 되었지만 부함장은 자신의 힘으로 그 방법이 잘못된 길임을 알려주려 영화 내내 노력한다.
이야기와 캐릭터에 대한 실망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부함장 역할을 맡은 김래원과 폭탄 설계자 역할을 맡은 이종석의 연기는 나쁘지 않다. 두 인물이 가진 분노와 상실감을 무척 잘 표현하고 있다. 각자가 잘하는 연기를 하고 있다. 취재기자 역할을 맡은 정상훈의 연기도 나쁘지 않지만 이 영화의 상황에 맞지 않는 연기톤 때문에 돋보이지 않는다. 영화 <데시벨>은 기발한 폭탄에 대한 아이디어와 배우들의 연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에서 실망스러운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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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로의 또 다른 시도'라는 말도 이제 식상해
동상이몽
멀지 않은 미래의 대한민국. 현재 인류는 위기 속에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올라간 해수면. 인류는 우주를 뒤져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 인류가 그곳에 붙인 이름은 ‘쉘터’다. 80여 개의 쉘터를 만든 인류. 시간을 들여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 쉘터 중 8,12,13가 스스로를 ‘아드리안’이라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전쟁을 벌이는 인류.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이 아드리안과 인류의 전쟁을 위해 자원을 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 지구. 전설적인 군인 윤정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로봇 병사들이 떼거지로 몰려오고 있다. 힘든 싸움을 펼치는 정이. 부수고 뜯었다. 로봇들을 두들겨 패는 정이. 그런데 갑자기 정이가 정지됐다. 다른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알고 보니 정이는 AI였다. 인류는 실존인물이었던 정이를 AI로 개발하고 있었다. 이 인간만 아니었어도 마지막 작전이 성공했어. 투정하는 과학자들. AI인 정이가 괴로워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인류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려 한다. 한 사람만 다르다. 과학자 중 서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은 혼자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인물이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익숙한 연상호 유니버스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싶으면 맞다. 이 영화는 연상호 감독의 작품 세계의 연장선상같이 보인다. 우선 영화의 근본적인 장르 설정 두 개는 ‘디스토피아’와 ‘그 세계관 아래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행동’이다. 디스토피아적 세팅은 <반도>에서 봤었다. 좀비가 인류의 일상을 파괴시켰다가 영화에서 가장 기본적인 세팅이었던 <반도>. 많은 분들이 감독의 전작 <부산행>에서 봤던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뭔가 나사가 빠진 좀비들에게 실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좀비가 들어가는 장르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냥 소설 보는 셈 치고 봤다. 그런 것 때문인지 그냥 아무 무리 없이 봤던 기억이 있다. 이때 극에서 시각적인 효과를 나름 탄탄하게 잘 묘사했던 기억이 있다. 이 디스토피아적인 묘사는 살짝 다르지만 비슷한 결이었던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과도 이어진다. 사실 <지옥>의 공간적 배경인 곳은 완전 현대적인 대한민국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드라마의 설득력에 있어 가장 중요했을 ‘그것’ 묘사가 좋았다. 처형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이 덕에 많은 분들이 연상호 감독의 최고작 중 하나로 <지옥>을 뽑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제작하던 경험치는 역시 어디 가지 않는다.
‘세계관 아래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행동’ 역시 많이 봐 온 것의 연장선상이다. 우선 <지옥>에서 이 특성이 가장 두드러졌다. 이 드라마를 생각해 보면 인물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소개되는 선에스 끝난다. 극 중 범죄집단인 화살촉이 해체 위기를 겪긴 하지만 짠하고 사라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인류는 왜 ‘그것’이 등장하는지 증명할 수 없다. 이는 곧 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이 세게관 아래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서울역>이나 <부산행>에서도 극단적인 세팅 아래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핵심으로 설정되었다는 것이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이렇게 연상호 감독은 이런 작품세계의 연장선상을 이 <정이>에도 끌고 왔다. 영화에서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방식을 보면 이 미장센의 힘을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뭔가 축축하고 처지는 색감을 바탕으로 로봇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이야기에 몰입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게끔 보여준다. 역시 이런 SF 장르는 좀 있어 보여야 한다. 영화에서 주요한 활동반경이 되는 장소는 또 선명하지만 익숙한 맛으로 잘 만들어냈다.
보고 또 보고
영화에서 느껴졌던 가장 첫 번째 단점은 이걸 또 봐?라는 점이다. 글쓴이가 연상호의 영화를 이 것 하나만 봤다면 ‘볼만했다’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상호의 작품 세계를 몇 작품 봤다. 이런 입장에서 그의 <정이>가 신선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정이> 이거 <부산행>이랑 <반도> 합친 것 아닌가? 이야기 형식은 <지옥>을 빌렸다. 어떤 점에서 공통점을 가질까? 바로 주인공들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그 아래에서 인물들이 나름대로 살아가는 것을 묘사한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이 과정에서 품고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공략한다는 점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다. 뭐 같은 말을 하더라도 좀 신선하게 전달하면 색다르게 느꼈을 것 같다. 그런데 너무 기존 작들이랑 비슷하니 영화에서 신선하다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뭐 이렇게 배경이 인물들과 딱딱 맞아떨어지게 설정이 꼭 되라는 법은 없다. 단순히 전작 <지옥>만 봐도 그런 세팅 아래에서 하고 싶은 것들 다 할 수 있다. 그만큼 이야기를 잘 짜면 기획의도에 대한 설득력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데 영화가 굉장히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은 줄거리를 전개하는 방식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윤정이가 로봇들과 싸우는 액션 신이다. 이 액션 신은 정이가 AI라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신이다. 그런데 이 이후의 장면들이 좀 매가리가 없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인물들이 품고 있는 속사정이 극에서 이야기의 키포인트로 묘사된다. 이걸 처음부터 전개했어도 큰 무리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이야기를 전개할 때 에피소드처럼 삽입되는 장면들이 맥이 끊긴다. 이는 어떤 인물의 존재감이 큰 원인이 된다. 안 그래도 본 연상호의 세계관에 균열까지 가는 연출이 들어간 것이다.
초 치는 캐릭터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는 류경수 배우가 맡은 상현 역이다. 이 상현 역은 초반부부터 계속 나오면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야기의 행동대장격 악역 정도로 극에서 포지션을 잡았다. 이 인물의 작중 행적이 너무 작위적으로 짜였다는 것은 둘째로 둔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너무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신경 썼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 인물이 (나름 자기 딴에는) 웃긴 대사를 하는 장면이 몇몇 있다, 일부러 불쾌한 골짜기를 유도했는지는 모르겠다. 정말 하나도 안 재미있다. 또 말이 너무 많다. 극에서 서현의 감정선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 사람 때문에 신경 쓰여서 집중이 안 된다. 이 재미없는 유머는 후에 어떤 인물의 특성을 설명하는데 키포인트가 된다. 그런데 이 키포인트가 영화의 내적 논리에서 생략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냥 영화에서 '내가 그렇게 했다' 이 한 마디만 해도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떡밥 수거로 연출적인 쾌감을 주고 싶었던 걸까?
이 외에도 특별출연 정도로 등장한 한 캐릭터와 성적인 코드가 들어가는 방식은 도식적으로 뽑아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 인물이 좀 중요하게 나올 것 같이 하고 별 영양가가 없었다는 점이나 악랄한 내면을 묘사하기 위해 삽입된 장면은 불쾌한 골짜기만 두드러지고 영화에서 별로 기능하지 못한다. 그러나 상현 외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것 중 많은 분들이 그럴 것 같고, 또 글쓴이가 좋지 않게 생각한 것은 역시 ‘이 소재’다. 이 요소가 없으면 넷플릭스한테 투자를 못 받나? 그런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부산행>에서 이걸 넣었고 상업영화로서의 고점이 여기 있었으니 유사한 것을 넣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정이>가 이 요소에 임팩트를 주기엔 인물들과 배경이 큰 관계가 없다는 점이 역효과로 느껴진다. <지옥>은 감정적으로 과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선한 시도라는 말도 이제 식상해
<승리호>라는 작품이 공개되고 난 후의 반응이 생각난다. 아마 씨네 21이었나. 처음 발표되고 나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 솔직히 기대했다. 뭐 한국영화에서 SF를 새롭게 시도해서라는, 뭔가 거창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데 뭔가 어색했다. 영화와는 맞지 않아 보였던 외국인 배우들이나 이상한 대사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후반부 신파극은 뭐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영화를 뭐 좋아하는 분도 있겠지만 글쓴이는 이런 이유로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SF 세계관을 설명하는 비주얼은 잘 뽑았지만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남매의 집>과 <짐승의 끝>으로 기본적인 연출력을 보여줬던 건 우연일까? 경험치가 있는데도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것이 굉장히 아쉬웠다. 초반 평가가 좋게 나온 게 나만 몰카 찍는 줄 알았다.
이 감상은 2023년에도 이어진다. <지옥>의 연상호는 뭔가 달랐다. 다른 영화들에서 보여준 것과는 다르게 광기가 보였다. 오. 내가 아는 연상호의 연출력이 어디 가지 않았다. 이야기 전개도 처음엔 낯설었지만 식상하지 않고 오히려 신선했다. 유아인, 박정민 두 배우의 열연이 이에 힘입어 시너지를 냈다.
그러나 이 <정이>는 그를 상회할 정도의 단점만 느껴진다. 이제는 모녀간의 관계를 강조한 드라마를 좀 많이 본 듯하다. 인간사의 기본(?)과도 같은 모성애. 작년에 모든 것을 죄다 때려 박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있었다. 이것도 엄밀히 따지면 모성애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런데 어떻게? 의 관점에서 다른 방식을 썼다는 것이 영화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이>는 sf 시각화 방식도 연상호 영화의 연장선상이고, 많이 상투적인 모성애 모티브까지 매크로 같은 작품이 탄생했다는 점에서 아쉽게 느껴진다. 혹자는 이 영화를 두고 '신선한 시도가 좋았다' 혹은 '외국에서 시청자들이 많았다'라는 말을 할 것 같다. 글쓴이는 좀 반대로 생각하고 싶다. 정말 이 시도가 신선할까? 심형래 감독의 <디 워>부터 들렸던 이야기가 보고 또 보고 반복되는 것이 이젠 좀 진부하게 느껴진다. 결정적으로 한국 영화에서 신선하다는 말이 그냥 일반 관객들에게 얼마나 유의미한지 의문점이 든다. 외국영화든 한국영화든 그냥 똑같은 영화기 때문이다. 신선한 시도는 김현주 배우만 한 듯 하다.
하늘의 별이 된 강수연 배우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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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머리카락에 녹아 있는 기억
SYNOPSIS.
애착 인형 이름은 제프 브리지스, 애정하는 밴드는 플리트우드 맥. 감수성 넘치는 베니와 똘똘한 사촌 돈의 특별한 우정
PROGRAM NOTE.
때는 1990년, 록밴드와 인형을 사랑하는 원주민 혈통 소년 베니는 어느 여름날 부모님에 의해 난생 처음 도시를 떠나 애리조나 원주민 보호구역 내 양떼 목장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애로운 외할머니, 빵떡 소녀라는 별명의 사촌 돈과 자유로운 영혼 루시 이모, 마초맨 삼촌 마빈을 만나게 되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성인이 된 베니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도시 소년 베니의 시선 아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삶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조조래빗>을 연출한 타이카 와이티티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이 영화는 이제껏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원주민들이 중심이 된 가족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묘사한다. 록밴드와 TV의 시대였던 90년 미국의 멜랑콜리한 활기, 촌철살인의 유머가 넘치는 미국 인디펜던트 영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최은영)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룬 적이 있다. 머리카락에는 우리의 흔적이 남는다고. 프로그램에서는 국과수에서 머리카락을 분석하는 실험을 해 보였는데, 오랫동안 종사한 직업은 물론 최근 바다를 다녀왔다는 사실까지 맞출 수 있었다. 어딘가 오래 묻혀 있다 ‘미라’ 상태로 나온, 한때 살아있던 사람의 몸에서도 머리카락은 비교적 오래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몸이 발견될 때마다 뉴스 기사들은 하나 같이 “상태 양호”하다고 했다. 이런 머리카락을 통해 DNA를 분석하면 또 그 몸이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가 주렁주렁 올라올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파편적으로나마 알게 된 이후로, 가끔 머리카락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머리카락 하나는 평소라면 그냥 방바닥에서 증식을 하는지 의심될 만큼 치워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어떤 현장에서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줄 수도 있겠지. 마찬가지로 내가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감고 말리고 빗고 넘기는 머리카락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히 여길 무엇일 것이다.
<빵떡 소녀와 나>를 보고서는, 그게 그토록 애틋하고 찡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실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고른 영화였다. Frybread를 빵떡이라고 번역할 귀여운 생각은 누가 했을까. 유난히 잘 붓곤 하는 얼굴을 스스로 빵떡이라고 종종 말하긴 해도 그게 표준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어엿하게 영화 제목으로 들어가 있는 걸 보니 기특하기까지(?) 했다. 기특한 우리 탄수화물과 탄수화물의 조합 같으니.
귀여운 제목에 귀여운 스틸컷을 보고 골랐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옥수수죽처럼 슴슴하고 든든한, 어쩐지 따스하고 구수한 내음이 나는 영화였다.
1990년 미국. 키치하게 반짝거리는 도시 한 가운데서 베니가 열중하는 것은 헤드셋으로 쏟아지는 밴드 음악과 손에 쥐어지는 크기의 인형 (본인 주장에 따르면 '액션 피규어') 두 개다. 인형 두 개로 베니가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긴장 일촉즉발의 갈등 상황이다. 외부로 표현되지 않는 소리들이 베니 안에서 왕왕 울릴 때, 부모님 손에 의해 여름방학 동안 할머니댁 행이 갑작스럽게 결정된다. 베니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이럴 때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심각한 표정의 부모님의 긴장과 갈등이 이미 베니의 손 끝 인형에까지 묻어나고 있으니까.
한참을 달리고 또 달려 도달한 할머니 댁은 황량하기 그지없는 초원 한 가운데 있다. 지금은 다 집을 떠난 이모 삼촌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 여전히 벽에 붙어 있는 곳.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할머니와 나바호족 말을 할 줄 모르는 베니, 그리고 윽박지르기만 하는 삼촌. 그 사이로 빵떡이가 등장한다. 모두가 빵떡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름은 '새벽Dawn'인 소녀가.
영화는 실제로 방학 동안 할머니댁에 맡겨진 아이들의 일상처럼, 슴슴한 모험의 맛으로 가득 차 있다. 분명 애들한테 물어보면 "심심해 죽겠어!"라고 대답하겠지만, 먼 훗날 돌아보면 가장 소중한 추억이 거기 다 고여 있는 것처럼 느껴질 그런 날들. 아이들에게 호의적이고 다정한 태도를 보이며 아이들 마음을 풀어주는 이모가 있는가 하면, 있는 상처 없는 상처 박박 긁어 결국 갈등을 표면화하고 마는 삼촌도 있다. 그들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점점 쓸쓸해지는 풍경이, 그곳을 지키는 마지막 사람들 같은 스산한 기분이, 함께 올라온다.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동네의 마지막 젊은이 같은 기분이 든달까. 내가 한국인이라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지, 저들에게는 잃어가는 원주민 문화의 흔적에 대한 감정일 것이다.
그리고 영어 배우기를 거부한, 나바호족 문화를 꼿꼿하게 지키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양탄자를 만들어서 기념품 가게에 팔지만, 양탄자에 영혼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만은 할머니 곁에 모조리 남아있을 것만 같다. 양탄자 무늬의 의미와 거기 담긴 상징들, 나바호족에게는 '진실보다 중요한' 상징들을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이유식처럼 떠 먹인다. 할머니의 자장 안에서 나바호족의 문화는 보드랍고 편안하게 풀어진다. 비록 어른이 되면서 (영화에서는 서술되지 않는) 여러 원주민으로서의 어려움 속에서 제각각의 길을 가는 이모삼촌 삶의 궤적은 쓸쓸한 감정을 불러오지만, 아기의 '첫 웃음'을 축하하며 첫 웃음 잔치를 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이 영화 속 가족은 아주 애틋하거나 아주 냉담하지 않은, 그래서 나와 매우 다른 사람들임에도 어쩐지 더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볼 때쯤이면 할머니 댁에 다녀온 기분이 든다.
이 영화에서 가족들은 많은 순간 서로의 머리카락을 만진다. 손주들의 머리를 정성껏 감겨 주고, 머리를 묶어 주고, 어루만져 주는 할머니의 사랑. 머리카락은 기억이라는 말은 DNA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만이 아니라, 나바호족의 상징에서도 진실이다. 가끔은 사실보다 상징이 더 진실을 닮아 있는 세상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지혜가 고요히 빛난다.
사실은 서로 다 알고 있던, 녹록지 않은 가족사를 이고 '빵떡 소녀와 나'는 앞으로도 성장해 갈 것이다. 아이라 해서 모르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기억을 간직하듯, 가족 안에서 켜켜이 쌓이고 흐른 일들은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러나 할머니가 떠먹여준, 고요하게 빛나는 지혜와 상징이 촛불처럼 아이들의 삶을 밝혀주지 않을까. 나도 촛불 하나를 들고 영화관 밖으로 나서는 듯한 마음이다. 어쩐지 창포 향이 날 것 같은 기분.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이야기가 이렇게 우리네 이야기 같아도 되나? 아마 그게 영화의 힘이겠지. 이 기억 또한 내 머리카락에 남을 것을 안다.
9월 17일 20:00-21:29 롯데시네마 은평 7관
9월 18일 19:30-20:59 롯데시네마 은평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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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둘 (2019)
* 리뷰는 영화 <우리, 둘>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우리, 둘 (2019)
감독: 필리포 메네게티
출연: 바바라 수코바, 마틴 슈발리에
장르: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95분
개봉일: 2021.07.28
평화롭던 관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위태로운 사랑
아파트 같은 층에 서로 마주한 채로 살고 있는 '마도'와 '니나'는 여생을 함께 보내기로 약속한,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니나는 마도와 함께 로마로 떠날 것을 꿈꾸지만, 아직 가족들에게 니나와의 관계를 밝히지 못한 마도는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니나는 마도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채 로마로 떠나는 것마저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도에게 분노와 설움을 터뜨린다. 자녀들과 니나 사이에서 극심한 압박감을 느끼던 마도는 결국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마도가 쓰러진 이후, 니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연인 마도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 수 없다. 간병인과 마도의 딸이 걸림돌처럼 등장했고, 니나는 말도 할 수 없고 몸도 제대로 못가누는 마도를 한 시간이라도 더 보기 위해 온갖 애를 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은연 중에 파악한 마도의 딸 '앤'은 마도를 니나와 떨어뜨려 놓으려 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도 마도의 눈길은 니나를 향한다. 마치 술래잡기를 하듯 긴장감 넘치는 상황의 연속에서 니나와 마도의 서로를 향한 열망은 마지막까지 시들지 않는다.
로맨스보다 스릴러에 가까운 긴장감
<우리, 둘>은 노년에 접어든 두 여인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로 알려졌지만, 극의 전개 방식은 한 편의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에 가깝다.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진실을 숨긴 채 마도에게 접근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니나의 대범한 행동들과 미저리(?)로 보일 정도로 강하게 나타나는 상대방에 대한 열망은 절절한 사랑보다는 무서운 집착 정도로까지 보인다.
하지만, 이를 상대방에 대한 집착과 광기 어린 사랑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마도와 니나는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주변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한 채 온전히 둘만의 사랑을 이어온 사이다. 따라서 이들은 언제 두 사람의 관계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을 것이고, 가족 앞에서 한치의 애정을 표현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영화의 스릴러다운 연출은 퀴어의 일상을 매일같이 지배해왔던 공포와 불안을 표현한 것과도 같다. 마도의 가족에게 니나는 그저 옆집에 사는 이웃에 불과한 존재. 마도의 집을 드나드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으나 그가 쓰러진 이후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렸고, 이는 니나의 비이성적인 행동들로 이어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마도를 향한 니나의 사랑이 과할 정도로 공포스럽게 연출되지만, 이를 단순히 '공포'의 분위기로만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매혹적인 사운드의 활용, 퀴어 로맨스 영화의 새 장
<우리, 둘>의 백미는 단연 흡입력 있는 연출과 효과적인 사운드의 활용이다.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와 혼란을 표현하는데 주변 사물들의 소리를 굉장히 적절하게 활용한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엘리베이터 효과음, 초인종 소리 등을 기괴할 정도로 큰 볼륨으로 삽입함으로써 인물들이 느끼는 내적 갈등을 극화시킨다. 사소한 장면 하나마저도 심각한 분위기와 극적인 긴장감을 형성할 수 있는 것 또한 이에 기인한다. 최근 감상했던 영화 중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이 겪는 혼돈의 상황을 1인칭 시점으로 공포스럽게 연출했던 <더 파더>라는 작품이 있는데, 전혀 공포스럽지 않은 장면들을 스릴러처럼 연출했다는 점에서 <우리, 둘>과 어느 정도 닮은 부분이 있다. 퀴어 로맨스 영화를 스릴러와 접목시켜 매혹적인 연출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작품이다.
결국 중요한 건 함께하는 것
니나는 마도와 함께 로마로 떠나 행복한 여생을 보내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마도의 거동이 불편해짐으로써 두 사람의 꿈은 좌절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니나가 마도 때문에 행했던 기행들로 인해 모아둔 돈을 모조리 잃게 되면서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살아온 아파트에서 발이 묶인다. 하지만, 이동의 꿈이 좌절되었을 때 비로소 둘은 길고 지겹게 이어져온 술래잡기를 마치고 하나가 된다. 늘 함께 손을 마주잡고 춤을 출 때 틀었던 'Chariot, sul mio carro' 노래가 켜져 있지는 않지만 이들의 마음 속에는 두 사람의 애정을 꽃피우게 했던 사랑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니나와 함께할 때만 마도의 병세가 완화되었던 것을 보면, 어디로 가던 간에 두 사람이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사 자금을 모두 도둑맞았지만, 니나는 슬프지 않다. 지금 눈앞에 자신이 사랑하는 마도가 눈을 바라보며 함께하고 있으니까.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언론 시사회에 초청 받아 작성한 게시물입니다 *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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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세한 접근에서 강렬한 확장을 향해
사려 깊은 소거와 냉랭한 응시
김미조 감독이 연출한 영화 <갈매기>는 사려 깊으면서도 번뜩이는 영화다. 주인공 오복은 시장 상인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데, 이때 <갈매기>는 사건을 상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갈매기>는 오복의 심리를 묘사할 때에도 또한 관련 정보를 전부 드러내지 않는다. <갈매기>는 인물의 고통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 매우 섬세한 접근을 보여준다. 어떤 면을 소거하고 어떤 면을 부각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영화다. 그런 일관성은 영화의 진정성을 뒷받침한다. 이렇게 생략을 동반하는 <갈매기>의 화법은 영화를 지배하는 원동력이 된다. 카메라는 오복을 집요하게 따라가면서도, 시종 냉랭하고 건조한 시선을 유지한다. 즉 <갈매기>는 감상적 태도에 매몰되는 상황을 경계한다. 이 묘한 이중성,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태도와 쉽사리 몰입하지 않으려는 냉정함이 <갈매기>에 공존하는 듯 보인다.
전통 시장은 사람 냄새 가득한 정겨운 공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갈매기>의 수산시장 거리는 오갈 데 없는 오복을 서서히 조여오는 잔인한 공간이다. 사실 영화 속 오복은 시장에서 벗어나서 다른 공간에 몸담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위안 받지 못한 채 고립된다. 오복이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숨겨왔던 속내를 털어놓던 오복에게 치매가 걸린 어머니는 시큰둥한 반응과 함께 딴소리를 늘어놓는다. “뭐? 꼬막이 먹고 잡다고?”. 오복은 말문이 막혀 버린다. 가장 힘이 되어줘야 할 남편은 오복에게 크나큰 상처가 되는 추잡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낸다. 딸들이 엄마 오복을 도와주려 하나, 각자의 삶의 영역이 불편하게 들러붙는 가운데, 부질없는 갈등만 늘어간다. 전기세를 아끼려 에어컨 대신 선풍기 바람에 의지하는 억척스러운 오복은 집에서조차도 마음 편하게 의지할 대상을 찾지 못한 채 끙끙대며 속앓이만 반복한다.
<갈매기>는 이해관계로 둘러싸인 상황을 쉽사리 재단하지 않는다. 즉, 오복의 복잡한 심리부터 시작해서 그녀뿐 아니라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변인들의 사연까지 담아낸다. 오복을 성폭행한 기택은 시장 공동체를 이끄는 주축이라는 이유로, 상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오복과 친하게 지냈던 상인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보상금을 타낸다는 명목으로 오복의 편에 서는 걸 주저한다. 기택이 경찰서를 들락날락하게 된다면, 그를 중심으로 권리를 쟁취하려는 상인들의 공동체가 와해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들은 정당한 보상을 챙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갈매기>는 오복의 서사를 따라가는 영화임에도 한편으로는 그녀만의 이야기에만 몰두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내면을 환기하는 상황 또한 종종 등장하지만, 많은 장면에서 현실감을 한껏 부각하여 영화가 감상적으로 매몰될 가능성을 줄여나간다. 이 영화는 따라서 음악을 지운 자리를 현실과 맞닿은 퍽퍽한 요소들로 빼곡히 채운다.
<갈매기> 스틸컷 © 영화사 진진
강렬하게 부각하는 그 순간
소외된 타자의 사연에 주목하는 영화의 골격에서부터 제법 디테일한 영역까지 면밀히 따져봤을 때, <갈매기>에는 기존의 영화들을 참고한 지점들이 제법 보인다. 따라서 <갈매기>는 섬세하긴 하나 독창적이진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갈매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영화의 결단에 있다.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오복은 따스한 관심과 위로는 커녕 볼멘소리와 따가운 시선을 마주한다. 이후 오복은 결심한다. 오복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시위의 방식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신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 기택에게 호소문을 보여준다. 이 순간 카메라는 관계의 층위를 확장하는데, 오복을 바라보는 기택의 시점이 아니라, 정면 구도에서 오복을 응시하고, 오복 또한 카메라를 응시하는 듯한 오묘한 시선으로 관객과 대면한다.
다시 말해 <갈매기>는 시종 관조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관객에게 요청한다. 현실을 차마 벗어나지 못해 그저 맴돌 수밖에 없는 갈매기. 이 갈매기 오복이 선택한 행위가 카메라를 매개로 관객에게 가닿는다. 관객이 확인할 수 있는 건 종이 속의 내용도 아니고, 기택의 표정도 아니고, 오로지 오복의 얼굴이다. 오복은 기택을 향해 피켓을 들고 있지만, 카메라는 그 행위를 스크린 바깥의 관객이 목도하는 것으로 치환한다. 기택의 자리를 관객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를 통해 <갈매기>는 분명하게 묻고 있다. 오복의 인생을 망쳐놓고, 난관에 봉착하게 만든 걸로도 모자라 무심하게 방관하기까지 하는 섬뜩한 공동체는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소외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공동체는 바로 스크린 너머에 있는 현실 속의 관객들이 아닐까.
<갈매기> 스틸컷 © 영화사 진진
본 콘텐츠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은 '영화 <갈매기>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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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점이 아니야. 사랑이야.
<노웨어 스페셜>
개봉 2021.12.29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96분
감독 우베르토 파졸리니
출연 제임스 노튼, 다니엘 라몬트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하였습니다.
마지막이 아닌, 시작을 선물하는 법
창문 청소부인 존(제임스 노튼)은 시한부이다. 존은 4살짜리 자기 아들인 마이클(다니엘 라몬트)이 혼자 남지 않게 가정위탁을 하고자 한다. 시한부 아빠와 홀로 남겨질 아들의 이야기. 줄거리만 보고는 영화를 보는 동안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 휴지를 준비했었다.
하지만 영화는 ‘너네 울어. 울어야 해’ 하지 않았다. 덤덤히 죽음과 남은 빈자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화 속에서 그 누구도 죽음이 두려워 오열하며 울지 않았고 제발 죽지 말라고 사정하는 장면도 없었다. 영화는 이미 수많은 울분과 체념을 반복했을 존의 초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고조되는 감정 없이 차분히 흘러간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이별을 준비하는 두 부자의 모습은 몇 번이나 울컥하게 했다.
마이클은 34살 아빠의 생일에 35번째 초를 건넨다. 컵에 주스를 따르지도 못할 만큼 쇠약해진 아빠에게 따뜻한 담요를 덮어주기도 한다. 입양이 뭔지, 죽음이 뭔지 모르지만 어쩌면 마이클은 다 직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내뱉는 짧은 말들이 다 뭉클했다. 특히 입양을 신청한 여자에게 “아줌마는 언제 죽어요?” 묻던 장면이 그랬다.
죽음은 한순간이지만 남은 빈자리는 평생 채워지지 않는다. 존이 어린 시절, 엄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 울었던 때를 고백했다. 그는 그게 자신의 약점이라 말했다. 자신처럼 가정위탁 가정에서 자라게 될 마이클은 죽음이 뭔지 모르고, 자신도 기억하지 못한 채 그저 다정한 가정에서 자라길 바란다. 하지만 고백을 들은 동네 할머니는 그건 약점이 아니라 사랑이라 말한다. 엄마를 향한 사랑.
남편을 떠나보낸 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얼마 전에야 남편의 칫솔을 버렸다는 할머니는 '죽었지만 그들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어. 우리 주위에 있어.' 라고 존에게 말해줬다. 할머니의 말에 존은 마이클에게 사랑을 남겨주고 싶어졌다.
존은 나중에 마이클이 자신을 기억할 수 있게 '기억상자'를 만든다. 그리고 마이클에게 자신의 죽음을 설명한다.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거란다. 네 주변의 공기 속에서, 널 따듯하게 감싸는 햇살 속에서"
"빗물에도?"
"그래, 널 적시는 빗속에도."
이른 아침, 아빠의 손을 붙잡고 씩씩하게 앞서 걸어가던 마이클이 멈춘 곳은 입양을 신청한 한 여자의 집이었다. 아이는 떼쓰지도 울지도 않았다. 이것이 아빠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 줄 아는 듯 아이는 아빠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앞서 난 <부러움>이라는 글을 적었다. 존의 어린 시절처럼 나 역시 따듯한 가족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났다. 나도 이것이 나의 약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해줬다. 내가 흘린 눈물은 부러움과 나약함이 아니라 나에게도 있었던 그때의 가족을 사랑해서였다. 특히 '마지막이 아닌 시작을 선물하는 법' 은 영화를 완벽하게 설명한 문구라고 생각한다. 끝과 마지막만 떠오르는 시한부 이야기에 시작과 선물이라는 역설은 가슴 아픈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짓게하고 행복을 떠올리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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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날 헤어져본 사람...? 연애할 때 찌질해지는 순간들 (500일의 썸머, 연애의 온도) 연애 영화 현실 리뷰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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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돌 ATO6의 현우와 용국, 모델 출신 배우 고이진 그리고 여연희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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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썸머 #건축학개론 #연애의온도 #에이투식스 #ATO6 #현우 #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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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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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무도 없는 곳> 메인 예고편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어느 이른 봄,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소설가 ‘창석’이
우연히 만나고 헤어진
여기, 길 잃은 마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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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전드 스크라이커> 메인 예고편
20세기 소련의 축구 영웅 ‘에두아르드 스트렐초프’, 그의 파란만장했던 일대기!
시골 변두리에 살던 축구 천재 스트렐초프는 소련을 멜버른 올림픽 우승으로 이끌며 온 국민이 사랑하는 최고의 기대주가 된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그를 비판하는 사회주의 세력에 의해 그의 경력은 위기에 처하고, 벼랑 끝의 순간 그는 챔피언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