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3-01-03 15:38:39
독립을 위해 독립을 외치다
영화 <영웅> 리뷰
영웅
역사적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음에도 왜곡된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들에게 딱 맞는 영화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비롯한 이야기들이 '선동'으로 비롯된 것들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분명한 건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때이다. 영화 '영웅'은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다룬 국내 창작 뮤지컬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뮤지컬을 영화에 그대로 담아내며 웅장함을 더한다.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진실의 노래가 전체를 울린다.
투사들의 이야기
먼저 떠나보낸 동지들을 마음에 품고 앞으로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추운 곳에서 뜨거운 결심을 다지는 독립투사들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개개인의 의지는 반영되지 않은 채, 열강의 욕심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이 무력하지만 나라를 위해 자신의 운명을 건 이들에겐 그리 중요치 않다. 그런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어떤 순간에서도 강한 힘으로 치환되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을 헤쳐나간다. 그리곤 오직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친다.
누가 죄인인가.
그렇게 독립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지만 저마다 처한 상황 속의 사람들은 절망스러운 상황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점점 의지를 굳건히 다지며 앞으로 나아간다. 또한 그날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미미한 사건들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 듯하면서도 모두를 위한 일로 자리 잡는다. 그들이 지니고 있던 애국심이 영화 속 장면들로 인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조선 침략의 원흉을 제거하기 위한 거사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재판이 시작된다. 일본인 판사, 일본인 변호사, 일본인 방청객으로 구성된 이 부당한 재판 속 누가 죄인인가.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
역사영화의 대부분은 그 자체의 연출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의한 감동이 훨씬 앞서기 마련이다. 이 영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인지 큰 감정을 억지로 밀어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표현되고 뜨거운 웅장함을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또한 오글거릴 것 같았던 노래가 자연스럽게 흐르며 영화의 조화를 균형있게 맞춘다. 다소 빈약한 감정선과 부족한 내면의 소리로 인해 아쉽게 느껴지지만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그 미세함이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강렬해진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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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생물을 만나 얻은 삶의 동력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 큰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 상실감은 슬픔과 분노, 외로움 같은 다양한 감정들로 변형되어 퍼진다. 그런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며 삶을 살아내야 할 목적을 찾아 헤맨다. 대부분은 그런 의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죽음을 택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살고자 하는 욕구를 조금씩 느끼게 된다. 그것이 바로 상실감 속에 숨겨진 삶의 의지이고 그것을 꺼내게 되는 계기는 바로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로부터 나온다.
상실감이라는 감정의 파고는 언젠가 잦아들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 시간에 누군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도 하고, 때론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며 나의 감정을 이해받기도 한다. 상실감이 극에 달한 그 상황에서 결국 위로받는 건 주변에 다가오는 존재들로부터 온다. 그것이 바로 삶의 의지를 꺼내는 계기가 된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기생수 더 그레이>는 괴수 장르 혹은 외계인 크리쳐 장르에 속한다. 일본 원작 만화의 세계관을 따르고 있는 이 시리즈는 한국의 수인(전소니)이 중심인물이다. 여기에 건달 강우(구교환), 특수수사팀 그레이의 팀장 준경(이정현)이 등장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 세 인물의 공통점은 모두 상실감 속에 있다는 것이다. 세 인물 모두 상실감을 느끼고 있지만 그것이 연결되어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무척 다르다.
첫 번째 감정 - 수인의 외로움
수인은 부모를 모두 잃었다. 어린 시절 직접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떠나 다른 가정을 꾸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어머니를 몰래 찾아가 봤지만, 어머니는 5만 원 몇 개를 쥐어주고는 절대 다시 오면 안 된다는 말을 건넬 뿐이었다. 그러니까 수인은 부모에게 완전히 버림받은 존재다. 한 명은 육체적으로 수인에게 폭력을 가했고, 다른 한 명은 정신적으로 수인에게 폭력을 가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실감 속에서도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건, 형사 철민(권해효) 덕분이다. 철민은 무심한듯하지만 세심하게 수인이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도움을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인은 상실감이 만들어낸 외로움 속에서 평생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딜 가도 안 좋은 일만 생기는 듯한 그녀에게 우연하게 들어온 기생생물은 그녀의 뇌를 다 먹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지킬과 하이드처럼 수인의 몸속에서 다른 인격의 존재가 된다. 철저하게 외롭게 살아가야 할 수인에게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가야 할 존재가 생긴 것이다.
기생생물이 들어온 이후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저주 같아 보였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수인과 기생생물 하이디는 동화되어 간다. 각자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서로의 감정을 알게 된다.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수인은 좀 더 큰 용기를 내어 과감한 행동을 하는데, 그런 수인의 변화는 평생 같이 함께 하게 된 하이디의 존재가 무척 큰 동기가 된다. 수인의 외로움이 점점 약해지고 그녀의 주변에 그를 돕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길수록, 수인의 삶의 의지는 조금씩 커져간다. 그리고 수인이 가지고 있던 외로움과 상실감도 그녀가 가지게 된 삶의 의지를 꺾지 못한다.
두 번째 감정 - 강우의 슬픔
사실 강우와 슬픔이라는 감정은 잘 어울리는 감정은 아니다.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이야기 내내 그는 무척 가벼워 보이고 철없는 인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을 즉흥적으로 결정하거나, 대충 마무리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그는 도통 중요한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감독이 이 인물을 넣은 이유는 아마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회사원 같은 모범생 타입의 인물은 아니지만, 조금 철없지만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생생물에 감염된 누나에게 이상함을 느끼고 실종된 여동생을 찾으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어떤 상황을 맞이하고 큰 슬픔을 느낀다. 실제로 극 중에서 그는 꽤 많은 눈물을 흘리는데 그건 그의 주변에 그를 이해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의미이고, 실제로 이야기 속에서 그의 주변에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인물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간다. 그래서 겉으로는 무척이나 밝고 별 걱정 없어 보이는 강우지만, 그의 내면에 박혀있는 상실감은 더욱더 커져간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무너지기 직전에 수인과 하이디를 만난다. 전혀 연결점이 없을 것 같은 세 존재가 만나게 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상실감의 무게를 조금씩 나누어 가진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완전히 잡아먹은 기생생물들을 퇴치하고자 하는 공통 목표를 가지게 된 그들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 결국 강우의 슬픔은 두 존재와 나누면서 이겨낼 수 있는 감정이 되고, 강우에게도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의지가 만들어진다.
세 번째 감정 - 준경의 분노
준경은 <기생수 더 그레이> 안에서 가장 이성적으로 보이는 인물이다. 프로파일러 출신 경찰인 그녀는 약간 상대방에게 비아냥대는듯한 말투를 가지고 있지만, 기생생물을 찾아내고 처치하는 작전 수행능력은 무척 뛰어나다. 프로파일러가 가진 특유의 감은 그가 좀 더 옳은 판단을 할 수 있게 돕는다. 그녀는 기생생물을 잘 이용할 줄 알지만, 과도하게 기생생물 퇴치에 목을 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준경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그녀가 가진 분노다. 그녀는 기생생물 등장 이후, 그것에 감염되어 버린 남편을 잃었다. 바로 눈앞에서 기생생물에 전염된 남편은 준경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죽이려고 시도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을 죽인다. 비록 준경은 가까스로 자신의 목숨을 지켰지만, 손이 잘리고 심한 부상을 입었다.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그 상황은 그녀를 슬픔에 가두기보다는 분노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야기 내내 그는 무척 차가 워 보이고 기생수 퇴치가 전부인듯한 말을 내뱉는다.
그녀의 앞에 나타난 세 존재, 수인과 하이디 그리고 강우는 준경에게 그렇게 중요한 존재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그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정황들을 보면서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한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마음, 그 마음은 수인과 강우도 똑같이 경험한 감정이며, 기생생물인 하이디도 동일하게 느낀 감정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갑작스럽게 상실감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놓은 존재들이고, 우연히 만나 상실감으로부터 발현된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느끼게 된 존재들이다. 이들이 만나 세상에 흩어져버린 기생생물들과 벌이는 대결은 감정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며 끝까지 집중하게 만든다.
연상호 감독은 <기생수 더 그레이>를 짧은 호흡으로 구성했다. 총 6회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리즈는 다른 시리즈보다 짧은 호흡으로 전개되면서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본론으로 진입한다. 또한 각 인물들의 감정을 단순하게 표현하면서 좀 더 직관적으로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들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들은 꽤나 흥미롭다.
이 시리즈는 수인의 이야기다. 기생생물 하이디와 공생하게 된 수인은 끔찍하게만 느껴졌던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큰 용기를 내어 기생생물들과 대결을 벌인다. 비록 그녀의 가족은 그녀를 버렸지만, 수인은 혼자가 아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상실감과 외로움으로 시작하지만, 모두가 함께인 따뜻함으로 마무리된다. 무엇보다 시리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비밀스런 새로운 인물은 원작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더욱 반길 것이다. 그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HRDUH5A0Jbs?si=cIaXY3LwMKKkD36N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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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펜서’라는 미래
민주적 제도로 선출되지 않은 근현대 국가의 왕족 중 다이애나 스펜서만큼 전 세계적 이목을 끈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81년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 1위 찰스 왕세자와 결혼해 두 명의 아들을 낳고 1996년 이혼한 그녀는, 이혼 후 1년 만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의 외도, 왕가 사람들과의 불화, 비극적 죽음 등 다이애나 스펜서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녀가 왕실을 둘러싼 권위와 절제라는 암막을 뚫고 나왔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녀가 왕실의 고상함·비밀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다정함·활력·봉사활동 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말이다. 어쨌든 그녀에겐 ‘왕실의 의무’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다.
〈스펜서〉는 왕실의 권위에 짓눌려 질식해가는 다이애나 스펜서가 자신을 되찾아나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왕실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한 별장이다. 별장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별장에 들어갈 때부터 그렇다. 여왕을 포함한 모든 이는 별장 입구에서 몸무게를 재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으며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냈는지를 ‘1.4kg 증량’으로 추후에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다이애나에겐 누군가의 ‘위트’로 시작된 이 ‘전통’이 버겁기만 하다. 매 식사에 입을 옷이 정해져 있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보고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왕실의 의무, 권위, 품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모든 일에 그녀는 숨이 막힌다.
다이애나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 할수록, 그녀를 옥죄는 보이지 않는 사슬도 더 강해진다.* 그리고 끝내 다이애나가 ‘미쳤다’는 말이 돌기 시작한다. ‘미쳤다’라는 혐의는 통제되지 않는 여성을 굴복‧소외시키는 가장 손쉽고 강력한 방법이다. 그녀가 왕실의 권위와 의무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해왔던 모든 저항과 이로 인한 균열이 광기의 징후와 그 파괴적 결과물로 독해되기 시작한다. 다이애나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헨리 8세에 의해 간통‧근친상간 혐의를 받고 처형된 앤 불린의 환영을 마주하는 장면도 이 연장에 있다. 앤 불린의 환영은 다이애나에게 왕실의 의도를 체현하지 못하는 여자는 실제적 혹은 상징적 죽음이라는 형벌을 받아왔음을 일깨워준다. 다이애나의 첫째 아들 윌리엄의 말(“모두를 위해 잠깐 마음을 꺼줘”)도 그녀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어린이에서 소년으로 성장 중인 그는 어머니가 기로에 서 있음을 안다. 그래서 다이애나에게 ‘마음을 끄고’ 자신의 곁에 머물러달라고 애원한다.
다이애나가 윌리엄의 요청에 따라 마음을 끄고 왕실의 질서에 굴복해야만 할까? 그때 다시금 앤 불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앤 불린의 환영은 다이애나에게 도망치라고 말한다. 아들이자 왕자인 윌리엄은 ‘마음을 끄고’ 자신의 곁에 있어 달라고 요청하지만, 왕비인 동시에 자기 의지를 가진 여성이었던 앤 불린은 도망가라고 조언한다. 연대하는 자의 목소리가 피를 나눈 자의 목소리보다 강할 때도 있는 법이다. 앤 불린과의 조우 이후, 다이애나가 춤을 추는 장면, 자전거를 타는 장면, 어딘가를 향해 뛰는 장면이 뒤따른다. 춤, 자전거, 달리기는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행위다. 움직이는 자는 어딘가에 묶여 있을 수 없다. 다이애나가 그러했듯이.
영화는 사슬을 자르고 나온 다이애나의 움직임이 어디로 귀결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저 그녀가 내면의 죽음을 거부하는 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그 큰 용기 덕에 어떤 가능성을 얻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그 가능성의 크기는 그녀가 두 아들을 위해 들른 햄버거 가게 직원에게 자신을 ‘다이애나’가 아닌 ‘스펜서’로 소개하는 장면에서 가늠할 수 있다.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아닌 자기 내면에 솔직한 ‘스펜서’가 품은 가능성의 크기 말이다.
유폐된 과거‧현재로부터 벗어나 ‘스펜서’라는 미래로 나아가는 그녀의 여정이 불의의 사고로 너무 짧게 끝나버렸다는 게 아쉽다. 나는 영향력 있는 실존 인물이었던 스펜서에게 어떤 공과가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스펜서가 왕실의 권위‧품위와 여성 혹은 전통과 여성이 맺는 관계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의 영역을 극적으로 넓혀줬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펜서의 삶을 담은 책 《나, 다이애나의 진실》에 나오듯, 그녀는 “새로운 시대의 윤리”를 열었다. 여전히 강력한 권위와 전통의 질곡 속에서, 많은 사람이 다이애나가 스펜서로 나아가는 과정의 감동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 감독이 다이애나의 고통을 어떻게 조명할지 많이 고민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영화에는 다이애나가 왕실 구성원과 있는 자리에서 거북함을 느끼는 장면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대신 홀로 있을 때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다이애나의 표정과 감정을 그만큼 밀착하여 담는다. 얼굴 클로즈업 장면마다 절망과 고독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영화를 본 후, 기자 출신의 작가 앤드루 모튼이 쓴 《나, 다이애나의 진실》을 읽었다. 다이애나가 책을 낸다는 걸 왕실이 알아서는 안 됐기에 간접 인터뷰, 비대면 인터뷰, 서신 교환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비밀리에 완성한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을 통해 다이애나의 삶을 포괄적·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만, 시종일관 다이애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쓰인 책이어서 이 책만으로 그녀의 성취와 그 위상을 객관적으로 조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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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객전도가 낳은 형보다 못한 동생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런던에서 헤이그까지 킬러 ‘다리우스(사무엘 L. 잭슨)’의 경호를 맡은 이후로 보디가드 자격증을 박탈당하고 매일 밤 그의 악몽에 시달리는 ‘마이클(라이언 레이놀즈)'. 그는 당분간 휴식을 취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정신과 의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탈리아에서 안식년을 즐기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휴가 첫날 그의 앞에 다리우스의 아내 ‘소니아(셀마 헤이액)’가 등장하면서 그의 평화는 산산조각 난다. 그녀와 함께 납치된 다리우스를 얼떨결에 구해낸 마이클은 뒤이어 인터폴 요원 '바비(프랭크 그릴로)'의 강요 같은 의뢰를 받아 그리스의 갑부 테러리스트 '아리스토텔레스(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유럽 전역을 표적으로 계획 중인 테러를 막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속편의 저주'는 영화계에서 흔히 통용되는 표현 중 하나다. 센세이셔널한 평가를 받거나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한 작품들이 시리즈화될 때, 본연의 매력과 신선함을 잃어가면서 이전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이처럼 많은 속편이 저주에 시달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주객전도를 빼놓을 수는 없다. 전편에서 관객들에게 어필했던 매력을 강화하기보다는 규모를 키우거나 새로운 캐릭터를 투입하는 등의 변화를 추구한 결과 본연의 정체성을 잃고, 결국 관객들의 기대치와 만족도 또한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가장 대표적인 예시다. '차들이 로봇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실사로 보여주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트랜스포머> 시리즈이지만, 1편 이후 로봇의 변신이라는 핵심 테마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인간 캐릭터나 미군들의 무용담만을 늘어놓은 결과 실패를 맛봤다.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도 2편에서 신비한 동물들의 비중과 분량을 줄인 결과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고, 허당처럼 보이지만 실상 냉혹하고 천재적인 해적 잭 스패로우를 단순한 개그 캐릭터로 변질시킨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도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1편의 주역인 라이언 레이놀즈와 사무엘 L. 잭슨이 건재하고, 모건 프리먼과 프랭크 그릴로가 합류해 덩치를 불린 <킬러의 보디가드 2> 역시 실패한 속편의 전철을 착실히 따른다.
전편인 <킬러의 보디가드>를 돌이켜 보자.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버디영화다. 겉모습부터 상극인 두 주인공이 함께 여행을 떠나고, 갈등과 화해를 숱하게 반복하면서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서로의 개인사와 고충을 공유하고 또 해결하면서 같은 편으로 거듭나는 버디무비의 전형을 답습한다. 전반적인 내용만 놓고 보면 제91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그린 북> 같은 작품과도 하등 다를 게 없다. 단지 그 이야기를 화려함과 잔혹함 사이를 오가는 액션과 유쾌함과 저속함을 넘나드는 코미디, 그리고 데드풀 그 자체인 라이언 레이놀즈와 걸쭉한 입담이 시그니처인 사무엘 L. 잭슨이라는 배우들의 존재감으로 포장했을 따름이다.
이때 영화는 제목대로 두 주인공 중 보디가드인 마이클을 스토리텔링의 중심에 둔다. 마이클은 전 인터폴 요원인 전 여자친구의 부탁으로 악명 높은 킬러 다리우스의 경호를 부탁받았고, 실제로도 런던에서 헤이그까지 경호의 범주를 벗어난 일은 하지 않았다. 영화의 또 다른 축이자 악역인 벨라루스의 독재자 '블라디미르(게리 올드만)'의 음모를 알아내고 그를 심판하는 것은 모두 그와 악연이 있는 다리우스의 몫이었고, 이는 마이클의 서사에 종속된 하위 플롯에 불과했다.
흥미로운 것은 마이클을 철저히 보디가드의 본분인 경호에 충실하게 한 선택이 두 가지 측면에서 영화의 재미를 끌어올린다는 사실이다. 우선 보디가드인 주인공의 시점에서 액션신을 접하기 때문에 자연히 긴박함과 긴장감이 고조된다. 언제 어디서 공격당할지 모르는 와중에 어떻게든 다리우스를 지켜야 하는 의무감이 부각된 결과다. 그렇게 쉴 틈 없이 흘러나오는 액션은 강력한 몰입감을 선사하고, 액션 영화로서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또한 이는 코미디 영화라는 측면에서도 유용하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게 직업인 사람을 보호해야만 하는 아이러니가 영화의 기저에 깔려 있기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마이클과 냉소적으로 받아치고 비꼬는 다리우스의 호흡이 단순한 말다툼을 넘어 공감 섞인 웃음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작 <킬러의 보디가드 2>에서 마이클이 더 이상 보디가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번 영화에서 마이클은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보디가드이지만, 실상은 납치된 다리우스를 구하고 유럽을 노리는 테러리스트와 그의 정보를 추적하는 등 인터폴에 고용된 첩보원에 가깝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쫓기는 입장이 아니라 전 유럽의 테러를 막기 위해 누군가를 쫓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피렌체에서의 카 레이싱 장면만 보더라도 그는 쫓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추격전 역시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다가 발각된 결과일 뿐이다. 누군가의 보디가드라는 전편과 동일한 형식의 제목을 달고 나왔지만, 내용적으로는 쉴 새 없는 입담과 허술한 듯 뛰어난 액션, 능청스러움을 한 데 묶어 마이클을 마이클 답게 만들어주는 '보디가드'라는 정체성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분명 15세 관람가였던 전작보다 더 잔혹해졌고, 헬리콥터와 추격전을 펼치거나 호화로운 요트를 박살 내는 등 볼거리도 더 많아진 액션씬은 좀처럼 이목을 끌지 못한다.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도, 예상치 못한 습격을 경계하는 서스펜스도 없으니 좀처럼 집중이 되지도 않고, 긴장감도 없다. 세계 최고의 경호원과 킬러라고 추켜 세울만한 인물을 등장시키며 어떻게든 분위기를 고조시키려 해도 이미 전편에서 주인공들의 능력을 목격했기에 이러한 노력은 역부족이다. 이에 더해 코미디의 관점에서도 등장하는 횟수에 비해 유머가 터지는 타율이 극히 낮아진다. 마이클과 다리우스가 사소한 일로도 시종일관 말다툼을 벌이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소소한 다툼 하나하나가 웃음을 자아내던 전편의 매력은 찾아볼 수 없다. 킬러와 보디가드라는, 전혀 다른 가치관과 정체성을 지닌 채 살아온 두 사람 간의 간극과 아이러니라는 근간이 사라진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이렇듯 캐릭터, 플롯, 액션, 코미디가 모두 와해되자 <킬러의 보디가드 2>는 여러 시리즈의 속편들이 선택한 변화를 답습한다. 하지만 모든 변화는 악수로 귀결된다. 우선 악역의 스케일을 국가적 차원에서 대륙적 차원으로 확대시킨다. 전편의 악역인 블라디미르가 자국 내에서의 인권탄압 사실을 인멸하려는 독재자였던 것과 달리 새로운 빌런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전 유럽의 기반 시설을 파괴하는 테러를 준비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빈약하고 허황된 악역의 목적과 철학은 급격히 커진 스케일을 좀처럼 지탱하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를 제재하려는 EU의 경제정책이 그리스를 무시, 차별, 탄압하는 처사라면서 이에 대한 반대의 의미로 전 유럽을 겨냥한 테러를 계획한다. 그리스야말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유럽 문명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EU의 경제 제재는 그리스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이다. 코미디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인권탄압을 용인한 독재자라는 전편의 설정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신념과 목적은 현실성과 극 내부의 논리 모두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 결과 존재감이 미약해진 빌런은 극 전체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평면적인 캐릭터 구축으로 인해 스페인 영화 <페인 앤 글로리>에서 극찬을 받은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역량을 온전히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덤이다.
또한 새로운 캐릭터들을 투입해서 액션과 코미디 양쪽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마이클과 다리우스의 관계성을 변주한다. <킬러의 아내의 보디가드(Hitman's Wife's Bodyguard)>라는 영어 제목에 걸맞게 남편보다 입이 거칠고 두 주인공보다 망설임 없이 총을 쏘는 다리우스의 아내 소니아의 비중을 잔뜩 늘린 게 그 예시다. 프랭크 그릴로가 연기한 인터폴 형사 바비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세 주인공을 매정하게 배신할 수 있는 냉혈한으로 등장한다. 이에 더해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마이클의 아버지는 마이클의 가슴 아픈 과거사를 소개하고 약간의 반전을 통해 긴장감을 더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 중 기대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는 이는 없다. 소니아가 남발하는 19금 유머는 너무 직설적이라서 유머 같지가 않고, 오히려 그녀의 존재는 마이클과 다리우스의 케미스트리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액션 역시 더 과격하고 난폭해지는 것 외에 새로운 면모가 드러나지 않는다. 바비는 세 주인공을 첩보 작전에 투입시키고, 주인공들이 직면한 임신과 보디가드 자격증 회복이라는 개인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장치로 소비되는 데 그친다. 마이클의 아버지가 선보이는 반전 역시 복선과 암시가 전무한 수준이라서 전개의 편의상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사실 <킬러의 보디가드 2>는 어디까지나 재밌게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킬링 타임 영화다. 결코 작품 내적인 완성도가 만족도와 직결되는 류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지향점이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같은 재미와 쾌감을 추구한 전편과 비교할 때 거의 모든 부분에서 퇴보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고, 이러한 퇴보의 내용은 팝콘 무비로서의 장점까지 앗아갔기 때문이다. 결국 <킬러의 보디가드 2>는 주객전도가 낳은 형보다 못한 아우에 그치고 만다.
D(Dreadful, 끔찍한)
클래식한 속편의 저주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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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회] 바로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체험해야 할 영화
개봉 | 2025.06.03.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국가 | 독일
러닝타임 | 167분
배급 | 그린나래미디어(주)
시놉시스 |
꿈에 그리던 수사판사 승진을 하게 된 ‘이만’, 때마침 테헤란에서는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이만’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총을 지급받는다. 그러나 딸들과 논쟁을 벌인 어느 날, 총이 집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가족의 믿음에는 균열이 생긴다.
철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것은
빛이 아니라
목 잘린 발들이 일으키는 먼지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고
외부가 한낮으로 향해 갈 때
어둠이 숨어드는,
모두가 짙어지면 홀로 더 깊이 짙어지는,
땅보다 낮은 땅에서
절대 상하지 않겠다
박세미, <일조권>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영화관에서 보길 잘했다 싶은 영화 중 한 편인데요. 보다 많은 분들께 영화에 대해 알려드리고, 추천하고 싶은 마음으로 리뷰를 작성합니다.
영화는 테헤란을 배경으로 하며, 혁명 법원의 수사판사로 임명된 이만과 그의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만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사형 선고를 승인해야 하는 일을 맡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합니다. 일을 맡은 직후에는 양심의 거리낌을 느끼지만, 정신없이 일을 하며 그는 점차 무뎌지죠. 그가 일에 적응하는 한편, 그의 딸 레즈반과 사나는 세상의 변화에 눈을 뜨고 냉혹한 현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가 호신용으로 지급받았던 총을 집에서 잃어버리자, 그들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집니다.
라술로프 감독은 영화 속에 실제 2022년 이란의 '여성, 생명, 자유' 시위 장면을 삽입하여, 극 중 이야기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삽입된 시위 장면을 볼 때마다, 이 영화는 그저 영상으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영화관에서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 “시네마”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포스터 상단에 적힌 “반드시 목격해야 할 영화”라는 문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었고, 관객들이 모두 이란 정부의 잔혹한 폭력의 목격자가 되는 듯했습니다.
영화는 가족을 중심으로, 이란 사회의 전체주의적 구조를 하나의 가정에 빗대어 보여줍니다. 영화에 그려지는 가족은 서로를 지지하는 공동체가 아니며, 집은 가장 편안한 장소가 아닙니다. 가족식사 장면에서는 숨을 쉴 수 없는 압박감마저 느껴지죠. 말을 해도 서로에게 닿을 수 없고, 그 어떤 공간에서도 편히 쉴 수 없습니다. 아버지인 이만과 어머니인 나즈메에게는 총을 잃어버린 공간, 딸들이 총을 숨겼을지도 모르는 공간으로 불신의 공간이라면, 딸인 레즈반과 사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반복해서 총을 숨겼냐며 따져 묻고, 수시로 방을 뒤지는 불안함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갈등이 심화되며, 관객은 서스펜스를 느끼게 됩니다. 이 지점이 혼란감을 주기도 하죠. 다큐멘터리같은 이 영화를 보며 서스펜스를 느껴도 되는 걸까? 영화는 정치적 책임감을 갖고 보지 않아도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심리적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한 연출들이 눈에 띄기도 하죠. 영화는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비추면서도, “영화”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끝까지 가져갑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제작진의 신변에 대한 걱정이 될 정도인데요. 이란 내의 폭력 현장을 고스란히 영화에 담은 점으로 인해 개봉에 어려움이 있진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아니나 다를까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비밀리에 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 감독이 겪어야 했던 일들은 우리가 안일하게 짐작한 것보다 훨씬 고되고 심각했습니다.
라술로프 감독은 이 영화로 인해 이란 정부로부터 8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추가적인 형벌이 예정된 상태에 놓였습니다. 이에 그는 전자기기를 모두 버리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산악 지대를 도보로 넘어 이란을 탈출했죠. 그는 수감과 망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고, 결국 독일에 도착하여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습니다.
엄마 나즈메 역을 맡은 배우 소헤일라 골레스타니 역시 자국을 비판하는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태형 74대와 징역 1년형을 받을 위기에 처했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소헤일라 골레스타니는 실제로 2022년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에 연대하는 영상을 SNS에 올렸다가 체포되어 에빈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는데요. 영화가 개봉 이후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출국 금지 조치로 인해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라술로프 감독과 함께 이란을 탈출해 칸영화제에 참석했던 딸 역할의 두 배우 마흐사 로스타미, 세타레 말레키는 망명을 선택하고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감독과 배우들이 사생결단으로 만든 이 영화는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비롯하여,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습니다. 2024년 칸 영화제에서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상영된 후, 라술로프 감독은 "이란 영화인들에게 전하는 나의 메시지는: 두려워하지 말라"며, "그들은 우리를 낙담시키려 하지만, 우리는 존엄한 삶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그는 또한 영화제에서 이란에 남아 있는 배우들의 사진을 들고 나와,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답답하고 두렵지만, 결국은 싹을 틔우고 조금씩 뿌리를 내리며 억압을 무너뜨리는 영화.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진실을 가리는 베일을 벗어던지는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극장에서 한 분이라도 더 보셨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전하며 마치겠습니다. 함께 목격하고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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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도, 나도 이 청춘들일 수 있다
청춘의 방황은 보이지 않는 어떠한 벽을 깨부숨으로써 끝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브레이킹 아이스>의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얼음은 물이 될 수도 있고, 다시 얼음이 될 수도 있다. 온도에 따른 변화다. 그렇지만 녹음으로써 '변태'한 물은 언제든지 다시 얼어붙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 가능성을 철폐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려면 부수어야 한다. 얼음이 녹는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마침내 부숴야 깨어날 수 있을 것이며 그 흔적인 조각들의 형체를 치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얼어붙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브레이킹 아이스>가 전하는 메시지다.
청춘은 꿈을 꾼다. 그렇게 마음속에 꿈의 웅덩이를 둔다. 하지만 인생에 예측불가한 사건사고들은 항상 존재하는 법. 나나(주동우)는 어렸을 적 꿈꾸던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꿈을 부상이라는 한 순간의 일로 포기하게 된다. 그렇게 꿈의 웅덩이가 얼어붙는다. 한때 피겨 선수를 꿈꾸며 그 위를 유영했던 빙판이, 마음속에 남아 새로운 마음의 흐름을 멈추게 만든다.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순간에 갑작스레 찾아온 꿈과의 이별은 사람을 영원히 그 안에 가둔다. 작별할 각오가 생겨나기 전까지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한다. 그렇게 나나는 연길에서 여행 가이드로서 돈벌이를 하면서도 애써 마주하려 하지 않는 마음의 빙판을 갖고 살게 된다. 한때 함께하던 동료, 친구, 심지어는 가족과도 멀리한 채로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산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일 것이다. 혹은 도피하지 못해 선택한 '무모함'일 것이다. 얼음 안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행동이다.
샤오(굴초소)는 연길에서 친척의 가게 일을 도우며 지낸다. 스스로 빙판 아래에 가두고 그 안에서 방황하는 나나의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얼어붙은 청춘의 시간에서 방황하는 것은 나나뿐만이 아니리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는 가게 일을 붙잡고 있는 것은 샤오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형태를 가두고 있는 셈이다. 나 자신을 얼음으로만 존재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사는 샤오에게는, 자신이 물이 될 수 있음은 예상 불가능한 일이며 감히 꿈꿀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 된다.
샤오는 나나에게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와 그 가능성을 엿보지 못한다. 허나 그 일말의 희망을 나나에게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곁에서 나나의 얼음을 깨는 과정을 곁에서 지키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렇기에 나나에게 불러준 노래가 그 의의를 가진다. 나나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빙판 아래의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과정으로서.
그런 점에서 샤오는 나나를 짝사랑하는 관계성을 보여준다. 지금은 나나에게서 친구 그 이상의 관계를 약속받지는 못한다. 짝사랑이라는 관계가 변할 수 있는 계기가 어쩌면 샤오를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려면 나나가 샤오와의 관계를 어떻게 긍정하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것이 샤오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하오펑(류호연)은 그렇기에 이 삼각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나나와 잠자리를 가질 정도로 샤오보다 나나와의 관계에서 더 깊은 위치를 취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하오펑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나나의 관계성이 연길에서의 목적이 아니다. 하오펑은 상하이에서 일을 하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연길에 왔기 때문에,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하오펑이 연길이라는 공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징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단군신화의 골지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내용인 단군신화는 짐슴이던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긴 시간동안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오펑 또한 어릴 적부터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공부에만 매진해야 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노력은 보상으로서 하오펑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목적을 잃어버린 과정만 남은 하오펑이 우울증을 앓고 삶을 포기하려는 자세를 가진 것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납득된다. 그렇기에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선 그가 우연히 마주한 단군신화를 직접 마주하는, 그 상징인 곰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주인공들의 방황을 공간화한 것이 플롯의 주 배경이 되는 연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인이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 모호한, 그렇다고 한국인이라고 보기에도 모호한 존재가 '조선족'이다. 중국과 한국의 경계에 서있지만 연길이라는 공간에서는 그 장벽이 마침내 허물어진다. 그곳에서는 그 모호한 조선족이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자신들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기에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결혼식 장면은 상징적이다. 한국과 중국의 혼재가 그 결혼식에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방황하는 주인공들이 연길을 본능적으로 찾아들어가게 된 것은 어쩌면 그 각자의 방황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인 것일 수도 있다. 민족의 모호성이 그 특유의 형태를 찾을 수 있게 된 곳이 연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북한과의 경계를 나누는 국경이 등장하는 이유 또한 있을 것이다.
나나는 집에서 신발을 벗지 않는다. 동양권에서 실내는 신발을 벗는 곳이다. 바깥과 안을 경계짓는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는 것이 정론이다. 그렇기에 바깥에서 신었던 신발을 집에서도 신고 있다는 것은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나나가 애써 자신이 피겨 선수를 꿈꾸던 과거를 놓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그 모호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게 된다.
그 모호한 집의 경계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두 남자의 태도도 인상적이다. 그런 나나의 방황을 지금 당장 해결할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 주인공은 서로의 방황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자체를 공감하고 있다. 서로를 어떠한 해결해야 할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은 해결되어야 할 것임도 사실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우연 속에서 찾아질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도 자연스레 형태를 갖춘다. '무모한' 서점에서의 놀이가 하오펑의 방황을 찾게 할 어떠한 계기가 되어주었고, 그 계기를 통한 '깨어짐'은 다른 인물들의 방황도 깨부술 수 있는 연쇄 작용을 만드는 씨앗이 된다. 그들이 서로를 계몽시켜야 할 목적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그저 함께 이 모호한 시기를 이겨낼 것이라는 일종의 동료로서 바라본 것의 효용이다.
그래서 한때 뭉쳐진 삼각관계는 곰을 마주한 순간 이후로 순식간에 해체된다. 그 곰은 하오펑의 모호함을 분명하게 만들어주는 상징이었을 것이며, 곰이 나나의 아픔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것은 나나의 모호성까지 해결해낸다. 자기 자신의 방황을 깨어나야 할 것으로 인지한 나나는 마침내 샤오가 스스로의 짝사랑을 놓을 수 있게끔 하기에 이른다. 방황의 빙판이 연쇄적으로 파괴되는 과정이 순식간에 발생한다. 그렇게 그들은 연길에서 마주한 그들 저마다의 빙판 아래 모습들을 마주하고 극복한다. 방황을 깨고 육지로 올라온다. 그렇게 <브레이킹 아이스>의 메시지가 결론에 다다른다. 비로소 방황의 빙판이 깨어질 때, 내면에 숨어있던 자아를 마주할 때 진정한 성장의 서사가 영화의 수면 위에 올라선다.
* 이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다녀온 뒤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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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력 미친 사극 영화 추천 '사도' 후기
사도
15.09.16 개봉
드라마, 12세 관람가
한국 ,125분
감독: 이준익
출연: 유아인, 송강호 등
실화, 심지어 역사를 다룬 일인 만큼 리뷰를 쓰는 것도 쉽지 않네요
부끄럽지만 저는 역사에 무지하고 관심이 없었거든요
연모, 백일의 낭군님을 제외하고는
사극 드라마 영화를 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저를 사극의 세계로 이끈 '사도'!
도전했다 하차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었는데
참고 보길 잘한 것 같아요
역사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한 계기를 만들어 준 영화입니다
영화 '사도'는 '임오화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임오화변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 드리자면
영조가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를 서인(평민)으로 폐위시킨 뒤
뒤주에 8일간 가두고 굶겨 죽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파국을 맞이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왕위를 대한 영조와 사도세자의 태도 차이 때문입니다
영조는 당쟁 속에서 간신히 왕이 되었기 때문에
세력의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하던 반면
세자는 눈앞의 개혁해야할 문제들을 따지기 바빴습니다
세력 갈등은 겪어 본 적도 관심도 없는 사도세자였기에
둘의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나 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던 시기 갈등이 더욱 깊어졌겠죠
게다가 세자는 공부보다 그림, 소설, 무예를 더 즐겼습니다
어릴 때부터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누구보다 세자에게 힘을 기울였던 아빠 영조로서는
이를 납득하기 힘들었던 거죠
그래서 "나를 자식으로 생각했소!"라는 말이 나온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걸 요즘 말로 하면 극성부모라고 하려나요
실제 영조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웃으며 대화하다가도 세자에게 돌연 화를 내는 일이 잦았고
이로 인해 세자가 20대가 된 후에는
옷 입기를 꺼리거나 특정 옷감을 거부하는 의대증이 생겼다고 해요
의복을 갖춰 입으면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죠
영화는 병렬적 구조,
즉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8일간의 시간과
그렇게 되기까지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를
두 개의 에피소드를 교차하며 보여 줍니다
역사를 알리고자 하는 의도는 분명 있지만
대중문화인 영화이기에 관객을 끌어모으는 것도 물론 중요하잖아요?
그런 면에 있어서 구성을 잘 선택했다고 봅니다
세자가 태어났을 때부터 죽는 날까지
직렬적 구조로 진행했다면 사실 지루했을지도 몰라요
근데 처음부터 뒤주에 갇히는 사도세자를 보여 주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 궁금하게 만든 후
엔딩 부분에선 눈물이 나오게 만들거든요
사실 눈물이 나오게 만든 건
유아인 님의 열연 덕이 아닐까 싶지만요
이렇게까지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혹 아직 '사도'를 보지 않으신 분들이 있다면
정말 꼭 보시길 강추합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사도'는 픽션이 거의 없이 역사를 많이 반영한
최고의 영화라고 극찬한 바 있다네요~
*스토리: 5/5점
*연출: 5/5점
*영상미: 5/5점
*OST: 1/5점
*연기: 5/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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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라운 스토리 전개 / 인간들은 계획이 다 있구나 / 짝 시저 프록시무스 등장 / 새로운 리더 노아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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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게임」 이병헌 비하인드 스토리 최초공개(?)ㅣ팬메이드 스포일러 (*오피셜이 아닙니다)ㅣ오징어게임 리뷰ㅣSquid Game Review ByungHun Lee
? "오징어 게임 리뷰" 영상(*스포주의)"
오피셜이 아니라 제 멋대로 만든 겁니다
재미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프론트맨 이병헌 출연
팬메이드 비하인드 스토리
▶영상에 활용 된 이병헌 영화 및 드라마 필모그라피
- 번지점프를 하다
- 달콤한 인생
- 남산의 부장들
- 아이리스
- 쿠팡플레이 싱글라이더 배달 쿠팡이츠 SNL 이병헌
- 미스컨덕트
- 지아이조2
- 레드2
- 공동경비구역 JSA
- 악마를 보았다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놈놈놈)
- 쓰리 몬스터
- 그것만이 내 세상
- 결말포함 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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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상존재> 티저 예고편
인기 개그맨 유세윤은 14살의 어느 날 이상한 동작을 반복하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 행동은 점점 사라졌지만 그 당시 세윤을 목격한 가족들과 그의 지인들에겐 여전히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세윤에게 또다시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오고... '그것'은 점점 더 그를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인기 개그맨 유세윤을 둘러싼 15일간의 기록! '그것'의 충격적 정체가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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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TV+ <파친코> 공식 예고편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며 화제가 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파친코' - Pachinko는 한 한국인 이민 가정의 희망과 꿈을 장장 4대에 걸쳐 촘촘히 그려냈다.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윤여정을 비롯해 이민호, 진 하, 김민하 등이 열연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