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실2023-01-25 17:00:39
[42호실] 다들 당시에는 모르는 마음들이 있으니까
영화 <애프터썬> 리뷰
aftersun(2022)
첫 장면부터 관객에게너 이 영화 좋아하게 될 걸? 너 마음에 박히게 될 걸? 하고 통보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어떤 영화는 러닝타임을 따라갈 수록 그 감동이, 여운이, 감정이 올라오게 한다.
애프터썬은 완벽히 후자의 경우를 따른다.
사실 영화가 시작된 이후로 큰 감동이나 감정이 찾아오지는 않았는데 영화의 중반부에 다다르자 아, 이 영화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가 느껴지고 후반부에 이르면 음악의 힘을 받아 성인이 된 소피의 마음을 따라가게 된다.
이렇게 감정을 고조시키는 데에 사운드트랙이 큰 역할을 했다. 모든 사운드트랙이 다 좋았다! 삽입된 씬과 어우러져 자아내는 분위기도 정말 좋았음. 영어가사에 익숙했던 곡들이 한글 자막으로 스크린에 비춰지고 그 글자들이 화면과 어우러지면서 단순히 화면만 존재할 때보다 감정이 더 큰 파도로 찾아오는거야. 특히 Queen, David bowie의 under pressure.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걸 알지만 모국어인 한글로 가사를 읽을 때 느껴지는 직관적인 느낌을 크게 받을 수 있었다고 해야하나. 영화 보고 집 가는 내내 under pressure를 들으며 소피와 칼럼의 불안이 밑에 깔린 행복한 시간을 머릿속에서 돌려보게 되는 그런 사운드트랙이었다 이 음악 때문에 영화가 더욱 좋아지는 그런.
사실 친절한 영화는 아니고 계속 영화에 집중해서 따라가고 또 생각해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그 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건 한 시간 반 동안 쌓아온 소피, 칼럼의 이야기와 감정을 마지막 10분 동안 관객들이 마음에서 같이 열어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제 막 커가면서 새로운 것들을 궁금해하고 경험하는 소피. 소피가 이제 막 해가는 것들을 이미 다 해보고 잠깐 흔들리는 중인 칼럼. 서로 이해하는 부분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두 명의 여행이 아름답고 행복해보였다.
캠코더로 계속해서 아빠의 모습을 담으려 하던 소피는 열한살에는 몰랐겠지 아빠가 무슨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성인이 되어 그 영상을 재생해 이미 눈으로 봤던 광경을 다시 한 번 보면서는 그제서야 칼럼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다들 당시에는 모르는 마음들이 있으니까
그 마음을 되새기며 다시 한 번 더 과거를 재생해 보면 또 새롭게 칼럼과 떠났던 튀르기예 여행을, 칼럼을 생각할 수 있겠지. 여운을 깊게 주는 영화 참 좋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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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 박스오피스 1위 깜짝 흥행작
이틀간 개봉작인 ‘랑종’에 1위를 잠시 내어준 뒤, 곧바로 왕좌를 탈환한 마블의 <블랙 위도우>가 2주 연속 주말 국내 박스오피스 순위 1위를 차지하며, 개봉 12일만에 누적관객수 200만 을 돌파하였습니다. 이는 지난 5월 개봉한 또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의 19일보다 7일 빠른 기록인데요.
<블랙 위도우>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역대급 불황 속에서도 주말 북미 오프닝 스코어 8000만 달러를 기록하였고,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을 제치고 당당히 역대 마블 솔로무비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하지만 단비 같은 흥행을 기록한 국내와는 달리 북미에서는 개봉 2주 차 주말, 위도우들이 다른 캐릭터들에게 1위 자리를 내어주었다고 하는데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1위의 주인공은 바로, 25년 만에 돌아온 워너브라더스의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였습니다. 역대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마이클 조던’의 뒤를 이어 21세기 농구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실사 애니메이션 영화는 ‘루니 툰’을 비롯한 워너 사의 모든 캐릭터들이 총출동하는 작품인데요. 개봉 전, 로튼 토마토 지수 31%로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을 듣지 못했기에, 개봉주 최대 2000만 달러 정도의 수익을 낼 것이라 점쳐졌던 영화는 개봉 이후 관객들로부터 정반대의 평을 이끌어내며 개봉주 3일 동안 3160만 달러의 수익과 함께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 수익이 워너브라더스 사에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가 자사 OTT 플랫폼인 ‘HBO Max’에 추가 비용 없이 공개되었기 때문인데요. 이는 디즈니-마블의 <블랙 위도우>가 디즈니+ 구독자들에게 30달러의 추가 요금과 함께 공개되었던 것과 대비되며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델타 변이와 HBO Max 동시 공개라는 악재 속에서도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는 가족 단위의 관객을 대거 흡수하며, 어린이 관객 및 가족 관객의 부활을 기대해볼 수 있게 하였는데요.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가 한국에서는 큰 흥행을 이끌어내지 못하며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6위에 머물렀지만, 가족 단위 관객의 부활 예고는 차주 개봉 예정인 <보스 베이비2>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발맞춰, UPI 또한 3인 이상 관객에게 특별 경품을 증정하는 등 가족 관객을 겨냥한 프로모션을 진행 중에 있는데요. 개봉 전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보스 베이비 2>가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올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북미에서는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의 깜짝 흥행 덕분에, <블랙 위도우>는 개봉주 대비 67% 감소한 수익을 보였는데요. 이에 북미 극장주들은 하나둘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와 같은 텐트폴 영화의 극장-OTT 동시 개봉을 택한 디즈니에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하에 제작비 2억 달러의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나름의 생존전략이었음에도, 공생을 포기한 대형 스튜디오의 선택에 많은 후폭풍이 예상 되는데요.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대책 또한 시급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돌아올 일상을 위해 그리고 계속될 영화를 위해
오늘 하루도 안전하고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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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으로 둘러쌓인 세계에서 기대한 사랑
거짓으로 둘러쌓인 세계에서 기대한 사랑
영화 <무뢰한>
감독] 오승욱
출연] 전도연, 김남길, 박성웅
시놉시스] 범인을 잡기 위해선 어떤 수단이든 다 쓸 수 있는 형사 정재곤. 그는 사람을 죽이고 잠적한 박준길을 쫓고 있다. 그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는 박준길의 애인인 김혜경. 재곤은 정체를 숨긴 채 혜경이 일하고 있는 단란주점 마카오의 영업상무로 들어간다. 하지만, 재곤은 준길을 잡기 위해 혜경 곁에 머무는 사이 퇴폐적이고 강해 보이는 술집 여자의 외면 뒤에 자리한 혜경의 외로움과 눈물, 순수함을 느낀다. 오직 범인을 잡는다는 목표에 중독되어 있었던 그는 자기 감정의 정체도 모른 채 마음이 흔들린다. 그리고 언제 연락이 올 지도 모르는 준길을 기다리던 혜경은, 자기 옆에 있어주는 그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스포일러 유의#
느와르라는 장르를 선택한 멜로
언더커버, 살인, 경찰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영화 무뢰한이 느와르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본 이들 중에서 과연 무뢰한을 느와르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영화 느와르는 정재곤와 김혜경의 멜로를 위해 장르적으로 느와르라는 조미료를 조금 섞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살인마 박준길을 잡기 위해 혜경이 일하는 술집의 언더커버로 들어가면서 밤에 만나는 화려한 혜경이 아닌 모든 일이 끝나고 아침 해와 함께 평범한 여성으로 돌아가는 혜경을 목도하면서 그녀가 가진 삶의 무게와 상처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자신 역시 현재 자신의 상황이 범죄자와 형사의 갈림길에서 그 정체성을 스스로 의심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흔들리는 혜경을 보며 자신을 보는 것과 같은 측은함과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특히, 서로의 몸에 난 상처들을 공유하면서 그 상처가 전혀 아름다운 기억이 아님을 알게 되고 서로의 아픔을 말없이 이해해줄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그 둘은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재곤은 경찰로서 박준길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사살을 하게 되고, 이를 목격한 김혜경은 배신과 분노에 치를 떨며 다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간다. 그렇게 다시 조우한 정재곤과 김혜경. 재곤은 혜경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자신은 배신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런 그에게 혜경은 칼을 찌르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처럼 영화 무뢰한 정재곤과 김혜경이라는 캐릭터가 서로를 경계하다가 잠시 공감하고, 그리고 한 사건으로 인해 헤어지는 어찌보면 사랑과도 같은 그 이야기를 느와르라는 장르를 통해 표현을 해내고 있었다.
확답을 하지 않는 영화
많은 이들이 후기에서 이렇게 찝찝할 수가 없다며 영화평을 남기곤 했었다. 결말 부분만 봐도 김혜경의 칼에 찔린 정재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영화 속 두 남녀, 정재곤과 김혜경 사이에서도 그 관계를 정의하기 힘들 정도로 애매한 관계를 이어나간다. 이 둘이 과연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언더커버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그런 감정을 꾸며내는 것인지 처음봐서는 도통 알 수 없는 애매한 대사들로 영화는 진행된다. 이러한 애매함과 오묘함 때문에 감정선을 제대로 캐치하고 싶은 사람들은 결국 N차 관람을 이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를 반복해서 보다보면 대사에서 가려져 있던 캐릭터의 심리가 행동을 통해서 그리고 한 프레임에 잡히는 구도를 통해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 캐릭터가 현재 어떤 상태이고 상대방이 던진 질문에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캐치할 수 있다. 재곤과 혜경의 첫만남 후 해장국 집에서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 서로에게 경계심을 품고 있을 때는 한 프레임 속에서도 여러 장치를 통해 둘 사이에 선을 그려놓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이들이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이 둘을 가르던 선은 점차 사라진다. 하지만 재곤의 배신 이후 다시 만난 곳에서는 재곤이 혜경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선이 등장하지 않지만, 혜경이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재곤을 선 밖에 두고 있다. 특히 칼을 들고 나가며 재곤과 조우할 때는 그림자 속에 있는 혜경과 빛 속에 있는 재곤과 같이 뚜렷한 구분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아마 혜경은 재곤의 행동을 배신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존재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지만 혜경을 알게된 순간부터 재곤은 자신은 일로써 해야할 행동을 했을 뿐 혜경에게만큼은 진심이었음을 알려주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나름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둘은 순수한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두 주인공, 정재곤과 김혜경은 사랑에 목말라 있는 인물들이었다. 경찰로서 재곤은 다양한 범죄자를 만나며 그들의 거짓말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자신 역시 그들과 비슷해지진 않을까 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아내와 이혼을 한 상태다. 그리고 김혜경 역시 마담으로서 웃음을 팔며 다양한 사람들의 거짓에 노출되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박준길이 자신으로 인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책감과 자신의 돈으로 도박을 하며 돈을 다 잃어버린 그에 대한 답답함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들의 환경이 거짓으로 둘러쌓여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한 거짓 속에서 재곤과 혜경은 서로에게 비슷한 상처와 아픔이 있음을 알게 되고,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닌 그저 인간 정재곤과 인간 김혜경으로서 순수하게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특히, 정재곤은 경찰이라는 직업적인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오히려 이영준이라는 새로운 인물로서 자신을 감추면서 이 변화가 오히려 정재곤에게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일깨우게 해준 것이 아닐까 싶다. 서로의 정체를 숨기고 그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며 친목을 다지는 가면무도회 속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렇게 자신 곁으로 온 혜경에게 재곤은 우리 함께 살까? 라며 혜경의 마음을 떠보자 해경은 ‘진심이야?’하면서 영화 속에 가장 행복한 미소와 기대감을 표현한다. 하지만 바로 재곤은 ‘그걸 믿냐’며 자신이 표현한 진심을 다시 쓸어담자 혜경은 활짝 열렸던 마음을 황급히 닫으며 그저 잡채를 먹을 뿐이었다. 이 장면에서만 봐도 혜경이 얼마나 순수하게 한 남자와의 사랑을 원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기대에 재곤은 형사로서 언더커버였음 밝힘으로써 져버리게 되고, 더욱 큰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혜경은 자신의 순수함을 짓밟은 재곤에게, 그리고 순수했던 자신에 대한 분노를 칼로 재곤의 배를 찌르며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칼에 맞은 재곤은 그녀를 향한 마음만은 진심이었기에 상처를 감추며 동료 경찰들에게 먼저들어가라는 손짓을 하고 마지막까지 그녀를 지켜준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 무뢰한은 남녀의 오묘한 감정선을 다룬 작품으로, 다시 볼 때마다 보지 못햇던 작은 요소들을 더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다음에 다시 본다면 새롭게 발견한 요소들로 그 감정선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남기는 수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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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브 마이 카
흩어지며 죽어가는 이야기들에 숨을 불어넣는 손길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
이야기를 읊듯 시작되는 극 전반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상실감에서 시작되었거나 혹은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방에 자신의 증표를 남기는 것처럼 남자의 마음에도 점점 쌓인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 상황들이 나도 그 사람도 볼 수 있지만 나만 보고 있는 그 거울을 빗겨나간 채 자리를 비우고 고개를 돌리며 독백이 자기 생각처럼 스며든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내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 채 테이프는 계속 같은 음성을 뱉어낸다.
그렇게 마음을 숨긴 채 세상에 하나 남은 소중한 차를 운전하는 가후쿠는 새로운 연극에 들어가며 의도치 않게 기사를 두게 되면서 기사 미사키를 만나게 되고 미사키를 비롯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국적 / 성별 / 나이,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들과의 조우로 그의 무미건조한 삶에 약간의 파도가 친다. 다른 언어로 같은 뜻의 말을 해도 연극이 진행되는 것처럼 인생도 달리는 자동차처럼 누군가가 사라져도 계속된다. 그리고 그 말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을 마주 보게 되고 뒤늦게 감정이 휘몰아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타인이지만 왠지 모르게 닮아있는 그를 안으며 살아갈, 살아 숨 쉴 자신을 향해 달린다.
상영 시간이 길어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테이프처럼 늘어지지도 않고 꽤 따뜻하고 단단하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품이라 좋았다. 상영 시간이 더 길었어도 좋을 '드라이브 마이 카'는 시작점을 어디서 잡느냐에 따라 또 다르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굉장히 좋은 영화였다. 다른 언어로도 소통할 수 있지만,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쓰는 언어를 알아야 그에 대해서 다가갈 수 있는 첫걸음에 닿을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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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인간다움을 만드는가?
* 본 포스팅은 많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감상하신 후에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어른들의 동화라는 소문대로 정말 아름다운 우화였다. 회화적인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물속에서 끌어안은 서로 다른 종의 연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 음악 선정도 적절하다. 아름답다.
인간과 비인간의 결합에 대해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이 영화는 뭔가 특별하다. 기존의 작품들이 지극히 인간중심적이었다면, 이 영화는 그러한 '인간 중심'의 사고 바깥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작품 속의 '어인(수륙양용(?)이니 양서인이라고 불러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편의상 어인이라고 부르겠음.)'은 우리와 다르다. 이질적이다. 그에게는 아가미와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고, 두 눈은 물고기의 그것처럼 크고 둥그며, 사람과는 달리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인간의 감정과 언어를 이해하며, 그들의 문화를 즐길 줄 안다. 엘레이자와 교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은 혼란에 빠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필자는 그랬다. 영화 초반까지만해도 끊임없이 한 물음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이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이들의 사랑을 응원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
우리는 지금껏 많은 비인간과 인간의 사랑에 대한 서사를 경험해 왔지만 돌이켜보면 이토록 이질적인, 그러니까, 인간의 외모, 인간의 유머, 인간의 문화와 동떨어진 존재와의 결합은 그다지 빈번하게 목격하지 못한 것 같다. 미녀와 야수의 야수도 결국은 언어를 구사하고 옷을 입는 존재였고(사실 원래부터 인간이었으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슈렉은 인간들이 혐오하는 오거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의 사정 역시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인간인 관객이 보기에 그다지 큰 거부감이 없도록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커녕 기괴한 꺽꺽거리는 소리만 내는 이 생물은 인간과 너무나 다르다. 때론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친구(?)의 애완 고양이를 잡아먹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과연 이 존재를 인간과 같은 선상에서 보아도 좋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엘레이자의 절규에 찬 대사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훌륭한 해답을 제시한다.
'나도 그 사람처럼 입을 뻥긋거리고 소릴 못 내요. 그럼 나도 괴물이에요?'
그녀의 이러한 발언은 '무엇이 인간을 정의하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트릭랜드는 인간을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로 정의 내린다. 그리고 어인을 인간과 구별되는 야만적인 짐승으로 치부한다. 이러한 구분은 우리에게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다. 이러한 서열화 혹은 자기우열화는 우리 인간 내부에서도 다시금 되풀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세계에서는 흑인보다는 백인이, 여성보다는 남성이, 성소수자보다는 성다수자가 우월하고, 더 '신의 모습에 가까우며' 따라서 더 '완벽한 존재'이다. 그에게 '인간답다'는 것은 요약하자면, '서구 가부장 사회의 백인이자 헤테로 섹슈얼인 남성답다'라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서열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우열을 가린다. 그 악독한 스트릭랜드도 결국 호이트 장군의 아래에 있다. 호이트 장군의 위에 또 누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누군가를 끝 없이 자신의 아래에 놓고, 위로는 끊임없이 '더 인간다운', '더 완전한', '더 그럴싸한' 삶을 갈구하는 그들(스트릭랜드와 호이트 장군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의 삶은 강박적이고 피로하며, 속에서부터 썩어들어있다. 결국 썩어버린 스트릭랜드의 두 손가락처럼.
반면 엘레이자와 그 친구들은 앞선 인물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인간'(혹은 인간에 비견되는 지적 생명체)을 바라본다. 엘레이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자일스는 늙은 게이이며, 젤다는 흑인 여성이며,드미트리는 냉전시대의 러시아인 스파이이자 과학자다. 이들은 모두 냉전시대 미국 사회에서의 사회적 약자로, 스트릭랜드의 정의에 따르자면 열등하거나 배척되어야 할 대상들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불완전한 존재'로 정의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성 혹은 인간애(humanity)'라고 부를 만한 어떤 관념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엘레이자와 자일스의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 우정을 보라. 그리고 엘레이자와 젤다의 끈끈한 유대감과 의리를, 어인을 살리고자 했던 드미트리의 노력을 보라. 이들은 불합리한 권력에 저항하는 동시에, 선뜻 타인을 위해 손을 내밀고 그를 돕기 위해 애를 쓴다.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와 감정을 이해하는' 어인이 이들에게 하나의 아름답고 경외로운 지적 생명체이자,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비롯된다. 어인이 처한 상황은 그들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엘레이자와 어인의 결합은 이들에게 그다지 꺼림칙한 일이 아니다. 두 존재는 정신적인 교감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육체적인 결합까지 이루어내지만, 그것은 두 지적 생명체가 서로의 고독을 이해하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장면이다. 엘레이자와 어인 본인은 물론, 드미트리도, 젤다도, 자일스도 이들의 사랑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 그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비로소 인간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이 작품은 어인과 여인의 사랑을 다룬 우화를 통해 인간 군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러나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인물들의 선악구도가 매우 명확한 편인데, 극 중 스트릭랜드는 지독하게도 악랄하면서도 현실에 최소한 하나쯤은 있음직한 악역이라는 점에서 소름이 돋았다. 화장실에서 손 안 씻고 나오는 데다 부하 여직원에게 추악한 시선을 던지는 남자, 다른 인종, 성별, 성소수자 등을 열등하게 여기는 편협한 우월주의자, 멀쩡하게 평범한 가정에서 잘 살고 있으면서 더 나은 삶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허영덩어리... 작품 속에서는 소련과 미국이 살벌하게 경쟁하는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글쎄, 오늘날 우리나라의 사정도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이런 사람은 꼭 있으니까.
4. 어인이 자일스의 고양이를 잡아먹은 장면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필자는 자일스가 충격에 휩싸여 어인을 비난할 줄 알았다. 그러나 자일스의 태도는 이 얼마나 관용적이었던가. '그는 야생이니 고양이를 먹은 건 어쩔 수 없어.'라고 이야기하는 자일스의 모습은 작품이 추구하는 '인간성'에 대한 관념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그는 엘레이자와 마찬가지로 문화적인 우월성을 가지지 않고 어인을 대한다. 그에게 어인은 좀 다른 문화를 가진 대상일 뿐이다. 그는 어인을 용서했고, 어인은 그에게 사죄한다. 진정한, 성숙한 문화와 문화 간의 교류다.
이 장면은 언젠가 시끄러웠던 한 네덜란드 선수의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들'에 관한 발언과 비교된다. 자일스에 비하면,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다름을 '틀림'으로 섣불리 단정짓고 비난했던 그 선수의 태도는 이 얼마나 편협하고 오만한가. (필자는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개고기 문화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데에 동의한다. 비판받아야 할 것은 비윤리적인 도축과 유통 과정이지, 문화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5. 엘레이자는 정말 사람이었을까? 강에서 발견되었다던 그녀의 목에 있던 아가미같은 흉터는 극의 후반부에서 정말 아가미로 변한다. 그녀의 조상 중에는 어인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단순히 어인의 전지적인(??) 능력으로 바다 생활에 적합하게 변하게 된 걸까? 오픈 엔딩이니 상상의 여지가 있어 좋다. 확실한 것은, 그 둘이 행복했으리라는 사실이다. 그 둘은 더 이상은 고독하지 않을 것이다.
6. 생각의 여지를 많이 남겨주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간만에 정말 좋은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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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승-전까지 전력질주, 결에서는 경보 '베테랑 2'
선하게 생긴 막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이다. 말 그대로 베테랑인 서도철. 오늘도 범죄자들 잡기에 여념이 없다. 팀은 그대로다. 상관은 오재평(오달수). 동료는 봉윤주(장윤주), 왕동현(오대환), 윤시영(김시후)다. 네 명의 팀원끼리 주부 도박단을 해치운 서도철의 팀. 어느 날 대학 교수가 살해됐다는 뉴스를 본다. 앵커는 살해당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 이 사람은 과거에 제자를 성폭행한 전력이 있지만 의심만 남겨둔 채 무혐의로 풀려났다. 제자는 충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분을 샀던 교수. 하지만 교수는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적절한 처벌을 받지 못한 범죄자가 살해당한 것이다. 연쇄살인이라는 직감이 문득 드는 서도철. 이미 과거에 처벌을 적게 받은 범죄자들이 연이어 살해당한 바 있기 때문에 연쇄살인마일 거라는 추측이 어렵지 않았다. 이 연쇄살인마 '해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려고 했던 어느 날. 경찰 내부에서 전석우(정만식)가 출소할 거라는 말이 들린다. 전석우는 과거에 어떤 여성을 밀쳐 죽게 한 혐의가 있었다. 혐의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감옥에 있지 않았던 전석우. 한국사회가 들끓는다. 1편에도 나왔던 박승환/정의부장(신승환)이라는 유튜버는 온 사회에 미움을 뿌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화가 난 여론에 불을 붙이는 소셜 미디어와 유튜버들. 온 세상이 범죄자들에게 응당한 처벌을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어수선한 강력범죄수사대에 막내 형사 박선우(정해인)가 합류한다. 과연 서도철과 동료들은 '해치'를 잡을 수 있을까?
<괴물>
글쓴이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봉준호의 <괴물>이다. 그 이유는 <괴물>이 한강 대로변에 튀어나온 괴물만을 보여주려 했던 건 아니듯 <베테랑 2>도 서도철이 범죄자들을 잡는 것만이 핵심인 영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두 영화는 '어떻게'의 측면에서 공통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들어간다. 위에서 쓴 바와 같이 글쓴이는 <괴물>처럼 <베테랑 2>가 세계의 구성요소를 그렸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바로 빌런 '해치'의 캐릭터 세팅과 미디어를 활용한 방식 때문이다.
이 영화의 메인빌런은 '해치'라는 연쇄살인마다. 해치는 쉽게 말해 자경단이다. 자경단의 뜻은 간단하다. 경찰이 아닌데도 타인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 내지는 치안유지를 위해 시민들이 결성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해치는 이 단어의 정의에 따라 움직인다. 한국사회에서 악하지만 올바른 처벌을 받지 않았던 사람만 골라 살해하는 것이다. 이 자경단 연쇄살인마와 베테랑 형사 서도철의 대립이면 사실 '범죄도시'랑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해치를 둘러싼 환경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 환경이 이 영화가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것 그 자체다. 이 영화를 이끄는 질문 두 가지는 '해치가 과연 누구일까?'와 '해치가 언제 잡힐까?'라는 서스펜스라고 생각한다. 후자는 영화가 메인빌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어렵지 않아 이해하기 쉬운데 전자를 놓치면 이 영화의 미덕을 잃기 쉽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가 해치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써 본다. 이 영화는 사실 거대한 속임수를 통해 해치를 묘사하고 있다. 이 영화의 모티브 중 하나는 자경단이 가진 딜레마인 판단이다. 판단이라는 게 뭘까? 어떤 인간이 타인 간의 사건에 대해 이거다!라고 의견을 내는 일이다. 우리 직업이 대법원장이 아닌 한 이건 실수하기 쉽다. '네가 뭔데 남을 판단해?'라는 말에는 '나 혹은 너의 판단이 매번 올바르지 않다'는 불확실성을 전제로 깔고 간다. 이 영화는 그 불확실성을 동력 삼아 질주한다. 어떤 인간이 나와서 누구를 판단한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른 사건이 영화의 플롯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 판단에 깔린 감정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본 작은 묘사 한다. 이렇게 <베테랑 2>가 영화 안에 빼곡한 정확한/부정확한 판단으로 구성된 것은 <괴물>이 당시 한국사회라는 괴물을 묘사한 것과 유사하다. 단순히 영화가 서도철의 추격극만 담은 것이 아니라 시대상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해치는 한 명이 아니다. 여러분도 눈 크게 뜨고 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영화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미디어를 표현한 방식도 흥미롭다. 정의부장이 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정의부장이 이 영화에서 구사하고 있는 논리가 영화의 통일성을 살리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중략한다). 이것에 연장선상에서 영화 안의 정보가 어떤 도구로 통제되고 있는지가 흥미로웠다. 이게 1차원적으로 무작정 나쁘다는 식의 묘사가 있었다면 영화가 가진 깊이를 더 얕게 만드는 수가 됐을 텐데 이걸 경제적으로 활용한 덕에 논리적인 접근법에는 여지가 없다. 이 영화가 구사하는 게임 중 하나는 '이게 정의라고 생각해?'다. 이 말은 곧 '저거도 정의고 이거도 정의 같은데?'라는 양자택일의 딜레마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을 미디어를 통해 잘 살렸다. 영화가 기본적인 설계에 있어 성실했다는 의미다.
이질감이 크다고 생각할 것 같은
이 영화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캐릭터는 바로 주인공의 아들서우진(변홍준)이다. 해치의 자경단 활동을 막는 게 영화의 핵심인데, 아들 서우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인물 역시 영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의 핵심 중 하나는 타인이 타인에 대해 쉽게 가하는 폭력이고, 이것이 온라인상에서 쉽게 유통된다는 것이 그렇다. 영화는 이 쉽게 유통되는 폭력을 우진이가 겪게 만든다. 사실 아버지 서도철은 이 문제를 근작에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형사 서도철은 직업인으로서의 자신에 취해서 이 문제를 깊게 이해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중요하다. 이야기의 해결과정에 있어 꼭 필요하니까. 이게 단지 부자간의 관계만 1차원적으로 보이면 흔히 말하듯 '기능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적어도 류승완 감독이 진단한 한국사회의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 들여다볼까? 아예 아버지 서도철의 입에서 나오는 몇 대사와 아들 서우진이 보여주는 행동을 보면 그 근원이 설정되어 있다. 이 부분은 영화가 시대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어쩌면 이게 원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내면의 무언가를 이 영화에서 분명하게 강조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무리라는 측면에서도 아들 서우진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 영화가 뭘까? 이 한국사회를 가로지르고 있는 수많은 분노에 대해 해부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진 역시 마찬가지로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분노를 내면에 갖고 있다. 이 인물을 둘러싼 두 가치가 충돌한다. 사회가 미디어를 통해 만든 분노 vs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지는 것의 충돌이다. 영화가 전자를 지배적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에 후자가 좀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물론 후술 하겠지만 영화가 실제로도 후반부를 갑자기 마무리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것에 대해, 그러니까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진 분노에 대해 대비되는 가치로 서우진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온갖 오판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우리에게도 남아있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다.
충무로 액션 키드?
보통 류승완 감독하면 관객들이 바라는 건 액션 연출일 것이다. 우선 좋았던 것부터. 이 영화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박선우의 액션은 내내 호쾌했다. 이 인물은 이야기 전개상 액션이 굉장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사용하는 액션 장르(?)상 몸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면 유치해지기 쉽다. 정해인 배우는 합을 맞추기 이전에 동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하고 구사한다. 장면을 짧게 잘라서 빠른 템포로 이어 붙인 연출이 아니라 그 장면을 찍기 위해서 여기선 이렇게 움직이고 어떤 인물은 저 방향으로 빠지는 식의 동선을 잘 정립한 티가 났다. 대표적으로 박선우와 서우진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 몇 있는데 이 시퀀스는 인물의 카리스마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좋은 선택이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어떤 액션 장면은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여러분이 이 <베테랑 2>의 예고편이나 포스터를 보면 눈에 띄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서도철과 박선우가 빗속에 있는 장면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생각나 류승완이라는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해 보면 잘 어울리는 장면인 듯하다. 물론 이 장면은 실제로 영화 안에서 처절하게 잘 구현됐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장면 역시 이 영화가 핵심으로 다루고 있는 딜레마를 정통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지점은 영화가 통일성이 있다는 점에서 나름 류승완 감독이 공을 들인 티가 난다. 심지어 비가 누구한텐 안 내리고 또 특정인에겐 내리고 하는 게 아니잖아?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점에서 빗속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당위성도 가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 글쓴이는 액션의 핵심 중 하나가 전달력이라 생각한다. 누가 어떻게 뭘 때리고 받고 해야 액션의 박진감이 살아 숨 쉰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 영화에서 정해인, 황정민 두 배우가 보여주는 액션은 정말 온갖 고생 다 했다는 점에서 대단했지만 장르적인 특성을 잘 살린 선택이었는지는 미지수다. 화려해서 전달력이 좋은 것과 너절해서 복잡해 보이는 것이 한 영화에 다 들어가 있다.
경향성을 띈다고 봐도
언제부턴가 류승완 감독의 영화들이 올드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 <베테랑 2>는 류승완의 올드화(?)가 두드러지는 영화였다. 아마 많은 분들이 지적할 것 같은 오프닝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모르겠다. 이 영화는 엄연히 전작이 있는 시리즈물이다. '조태오'라는 단어가 영화 전면에 등장하고, '내가 죄짓고 살지 말랬지?'라는 말이 본작에도 등장한다. 그래서 오프닝이 시리즈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한 것 같다. 선의로 해석하면 이렇고 사실 영화를 보고 느낀 그대로 써보자면 이게 아니어도 시리즈의 연결성은 파악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또, 액션 장면이 들어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게다가 장면이 영화 후반부까지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더 나아가 오프닝이 자경단 부추기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단 조금도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건 봉윤주(장윤주)가 이상한 자세로 누워있는 것뿐이다.
그리고 어느새부턴가 류승완의 영화들이 후반부가 엉성해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정말 중요하다. 영화가 보여주려고 하는, '어떻게 악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에 집중한 연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상업영화다. '베테랑'이라는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다. 그렇다면 마무리에 있어 더 숙고했어야 했다. 사이다를 고르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더 정의의 의미에 탐구하고 싶었던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영화가 내적 논리를 지키기 위해 둔 선택이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후반부의 전개가 허점이 크다는 걸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그 단점을 가리지 못했다는 게 패착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렇게 해야만 해!'라는 판단이 느껴지기는 하나, 영화가 '이렇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데에는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군함도>에서 억지로 감정적인 울림을 유발했던 점이나 <밀수>에서 VFX가 엉성했던 것이 연상된다. 이 단점은 치명적이라 영화 전체적인 완성도에 태클이 들어올 수준이다. 영화가 내내 윤리 게임을 벌이다가 갑자기 대충 수습한 다음 '이거 보고 싶었지'하고 끝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 영화가 류승완 감독의 야심을 오롯이 담았다는 데에는 여지가 없다. 이 영화는 류승완 감독이 <부당거래>가 공권력의 그림자를 다루듯 전하고자 하는 바를 가감없이 표현한 영화이기도 하고, <짝패>에서 다룬 처절한 액션을 구현한 영화이기도 하다. 또 황정민이라는 베테랑의 역량이 발휘된 영화이자 정해인의 여러 얼굴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류승완이라는 예술가가 이젠 그의 거대한 천재성을 혼자서만 발휘하기는 어렵지 않나라는 우려가 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문제만 해결하면 장땡이라는 것, 그러니까 자경단의 속성으로 한국사회를 들여다보겠다는 야심은 눈에 들어오나, 그걸 잘 마무리했나?라는 관점에선 아니오라는 답이 딸려오는 영화가 <베테랑 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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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하루의 총합
전쟁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굉음이 터지고 피가 터지고 시체가 터지고 마음이 터지는, 뭔가 많은 것들이 팡팡 터지는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반대쪽이다. <덩케르크>도 "이것은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는 카피가 아니었으면 보지 않았을 테고, <1917>도 그다지 볼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1917>을 보고 너무 좋았다고 할 땐 좀 놀랐다. 자꾸 같이 보러 가자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친구 얼굴 봐서 한 번 보러 갔다. 그리고... 같이 미쳤다. 용산 아이맥스에 출근 도장을 찍고 포토티켓을 뽑아대는 우리는 누가 봐도 과몰입 오타쿠였다. 아무리 정상인인 척 리뷰를 써보려고 해도 잘 안 된다. 그래서 또 <러브레터> 때처럼 과몰입 오타쿠답게 구구절절 써보려 한다. 스포일러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영화 전체를 서술하고 있으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해 주시길.
영화 <1917>의 수식어는 항상 "원 컨티뉴어스 숏" 이야기다. 2시간짜리 원테이크처럼 보이게 촬영했다는, 물론 당연히 2시간을 원테이크로 찍은 건 아니고 그렇게 보이게끔 잘 연결한, 즉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기법을 활용한 것이라는. 최신 기술을 집약한 영화라는.
어마어마하긴 하다. 그렇게 찍기 위해 모든 세트장을 직접 제작하고, 그 세트장 동선에 맞춰 대사 길이까지 세밀하게 조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6개월의 리허설 끝에 찍었다니 부분적으로 연극 같은 느낌마저 든다. 자본과 기술의 냄새가 물씬 나는 설명에 압도되어서인지, <1917> 이야기는 평론부터 리뷰까지 기술 이야기 일색이었다.
그러나 <1917>은 기술 이야기만 하고 떠나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과시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 영화가 아니라 시나리오가 탄탄한 영화다. 풀어가고 싶은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기법이라 그렇게 찍은 것뿐이다. 배우들의 세밀한 연기, 탁월한 연출, 감정 머리채를 잡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가 가진 장점 중 하나지 전부는 아니다. 이 모든 장점들을 모아 더없이 주제에 집중한 영화다.
영화는 노란 꽃과 흰 꽃이 섞여 산들거리는 들판에서 시작한다. 관 속의 시체 같은 자세로 누워있는 블레이크와, 나무에 적당히 기대 눈을 감은 스코필드. 블레이크를 부르며 누구 한 명 데려오라는 목소리를 듣고, 블레이크는 스코필드에게 손을 내민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 채.
두 사람은 참호로 들어가 장군에게서 임무를 받는다. 적진이 후퇴했으며, 데번셔 제2연대가 후퇴한 적군을 총공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항공사진을 보면 적군은 작전상 한 발 물러난 것뿐이라, 위기에 빠진 건 오히려 데번셔 제2연대라는 것. 적군이 통신망을 끊고 갔기 때문에 인편으로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해야 한다는 것. 해당 연대의 1,600명 중에는 블레이크의 형도 있고, 블레이크는 지도를 잘 보기 때문에 선택되었다는 것. 그리고 얻어걸린 스코필드도 함께 간다는 것.
참호를 빠져나가 허허벌판을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스코필드는 경악한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었다. 대량 살상 무기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말 타고 창 찌르고 칼 휘두르던 전쟁은 종말을 맞았고, 공격을 피하기 위해 참호를 파는 것이 당시 전쟁의 기본 포맷이 되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어깨와 등을 따라가면서 좁은 참호를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시작부터 보여주고, 짐짝처럼 참호에 몸을 기대어 죽음의 냄새를 맡는 병사들의 얼굴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시체가 그대로 썩어 지저분해진 진흙, 시체를 파먹고 자란 큰 쥐들을 보면 적군의 공격 못지않게 비위생적인 환경 또한 1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의 생존을 위협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그 참호 밖으로 빠져나가는 건 상상 못 할 일이었다.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블레이크에 비하면, 솜 전투에도 참전했다는 스코필드는 전쟁의 참상을 좀 더 겪어보고 그만큼 노련해진, 동시에 내상도 더 깊게 입은 병사로 보인다. "정말 적군이 후퇴했다면 보급품에 수류탄을 왜 줬겠냐"라고 꼼꼼히 따져보지만, 형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씩씩거리고 있는 블레이크를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참호를 벗어나기 전 그는 "Age before beauty," 장유유서라고 억지로 웃어 보이며 블레이크보다 앞서 미지의 위험에 발을 딛는다.
스코필드도 높은 직급은 아니지만, 무자비한 살육 현장이었다던 '솜 전투'를 경험했고, 거기서 훈장도 받았다. 목숨이 오가는 장면을 많이 보았고 또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순간순간 구체적인 두려움과 싸우고 있고, 말을 아낀다. 아직 순진한 블레이크에 비해 그가 좀 딱딱해 보일 수 있지만, 그가 참 좋은 사람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다. 이 장면도 그랬다.
두 사람은 아군의 참호와 적군의 참호 사이 무인지대를 지나간다. 질척한 진흙에 썩어가는 시체들만이 가득한 곳. 나무와 철조망이 기이한 형태로 뒤틀려 있는 공간. 시체가 마치 지형지물처럼 늘어져 있는 이상한 광경이다. 총검을 세우고 엄폐물을 찾으며 그들은 적진의 참호로 천천히 다가간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말 시체를 한 번 더 뒤돌아보는 표정을 봐도, 철조망에 쉽게 걸리거나 미끄러운 진흙을 올라갈 때 손 잡아달라고 이름 부르는 걸 봐도 블레이크는 전쟁터에 있기엔 아직 너무 어린 소년이다.
스코필드는 그런 블레이크를 알게 모르게 잘 챙긴다. 철조망을 잡아주다 손을 찔려도, 그 손을 썩어가는 시체에 푹 담그게 되어도 블레이크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블레이크가 앞만 보고 가면 그 뒤에서 총으로 엄호하고 있다. 두 배우의 섬세하고 탁월한 연기가 돋보이는 대목들이다.
정말 비어 있는, 그러나 적군이 떠난 지 오래되지는 않은 적진의 참호는 반파되어 있다. 땅굴로 들어서니 곰팡이 냄새 날 것 같은 병사 숙소가 보인다. 누군가 미처 챙기지 못한 흑백 가족사진 앞에 잠시 멈춰서는 스코필드와 침대에 앉아 방방 스프링을 튕겨보는 블레이크. 두 사람은 부비트랩을 발견한다.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처음부터 거슬렸던 커다란 쥐 때문에 목숨의 위기를 맞는다.
사실 둘이 출발했으니 하나는 죽거나 다치겠구나 싶긴 했다. 두 사람이 이 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단순한 플롯이면 분명 중간중간 위기를 맞고 그 위기를 해결하고 그러면서 더듬더듬 나아가는 이야기일 것이고, 그러는 동안 두 사람 모두가 무사하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영화니까. 그럼 여기서 죽나, 하는데 블레이크의 발 빠른 대처로 스코필드는 목숨을 구하고, 첫 위기는 다행히 벗어난다.
전쟁터의 긴장감은 사람을 순식간에 옥죄었다 풀었다 한다. 사지를 벗어나고 블레이크의 농담으로 풀어지는 것 같았던 공기는 하늘을 가르는 정찰기 소리로 단숨에 다시 굳어진다. 블레이크는 때마침 나타난, 다 뭉턱뭉턱 베어졌지만 아직 꽃이 하늘거리고 있는 체리나무로 다시 분위기를 풀어본다. 5월이면 형과 함께 어머니의 과수원에서 체리를 딴다는, 아마도 가족에게 다정하고 싹싹한 둘째 아들일 그는 전장에 비현실적으로 나부끼는 꽃잎 사이를 거닐며 몇 마디 대사만으로 자신의 전사를 풍성하게 풀어놓는다.
영화가 사용한 기법 상, 그리고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 로드무비 느낌을 전쟁에 버무려놓은 배경 상, 게임 스테이지를 하나씩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참호의 위기를 체리 꽃잎으로 마무리하고 꼭 '2단계, 버려진 농가' 같은 느낌으로 눈앞에 집 한 채가 나타난다. 젖소 한 마리와 우유 한 통이 있을 뿐 별스러울 건 없는 공간이었다.
퇴각하던 독일군은 협상국 군대의 식량 확보와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나무도 베고 젖소도 죽였는데, 한 마리가 비현실적으로 살아남아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한 연대가 이런 젖소를 발견했고, 암소를 연대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스코필드는 어쩐지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예감은 현실이 된다.
공중전에서 패한 적기가 추락하고, 몸에 불이 붙은 독일인 파일럿을 "편히 가게 해주"려던 스코필드와, 안 된다며 물을 가져오라고 하던 블레이크. 사제가 되는 걸 고민했던 만큼 자연스러운 반응일지 모르지만 전쟁은 나이브한 선의를 봐주지 않는다. 스코필드는 자신이 폭발에 쓰러졌을 때 블레이크가 그랬듯, 칼에 찔린 블레이크를 들어올려 보려 하나 이번에는 되지 않는다. 블레이크는 결국 눈을 감는다. 힘없이 떨군 그의 손 옆에 마지막 노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아무나 한 사람 골라잡은, 처음부터 이 작전에 반대할 수 있었다면 반대했을 이는 그렇게 유일한 전령이 된다. 동시에 군사적인 사명뿐 아니라 친구의 유언을 건네받은 개인적인 사명까지 그의 어깨에 얹힌다.
블레이크의 시체를 움직여보려 할 때 아군이 나타난다. 여태까지 두 명에 몰입해 따라가고 있다 보니 아군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이건 전쟁이고,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뿐 아니라 어딘가에서 모두가 다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그 상대가 적군이든, 시간이든, 죽음이든, 부상이든, 적막이든.
스코필드의 사정을 들은 스미스 대위는 가는 길이니 태워주겠다며 스코필드를 사병 트럭에 태운다.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 사병들과 어깨를 부딪혀 가며, 스코필드는 혼자서만 다른 곳을 멀거니 바라본다. 멀어져 가는 블레이크의 시체를,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를 생각하며 전해야 할 편지를 틴케이스 안에 소중히 집어넣는다.
트럭을 타고 가는 길도 쉽지만은 않다. 독일군이 길을 막도록 베어놓은 나무를 치우고, 진흙탕에 빠진 차를 밀어가며 스코필드는 시간과 싸워야 하는 간절함을 드러낸다. 그를 이상히 여기며 묻는 사병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그들의 태도가 묘하게 바뀐다. 다들 말을 아끼지만,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은 작전과 무의미하게 터덜터덜 실려가는 그들의 현실은 곧 1차 세계대전 자체의 현실이다.
무너진 다리 때문에 다른 길로 에둘러갈 사병 트럭에서 내려, 스코필드는 조심스레 무너진 다리를 건넌다. 그 앞 버려진 저택에 있는 저격수와 맞붙게 되고, 명중 확인을 위해 들어간 곳에서 저격수와 대치하며 그도 죽음 코앞까지 다녀오게 된다. 영화가 잠시 암전되는데, 인도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아마도 여기서 인터미션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노골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끊어냈다. 다시 눈을 뜬 스코필드는 뒤통수에서 피를 흘리고 있고, 시계가 깨져 더 이상 시간을 알 수 없게 되었으며, 어느덧 세상은 어두워져 있다.
카메라는 죽은 저격수를 넘어 창문으로 쭉 내려가고, 음악은 서서히 고조되면서, 반쯤 무너진 마을로 스코필드가 천천히 들어가는 장면. 살아있는 적군을 찾아 끝까지 말살하려고 적기가 조명탄을 쏘며 날아다니고, 조명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한 번씩 낮처럼 밝아지는 광경, 적기의 움직임에 따라 건물 그림자가 유유히 자라나듯 펼쳐지는 광경은 너무나도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보이는 것과 음악이 어우러져 가슴을 쥐어잡게 하는, 놀라운 장면이다.
평화로웠던 시절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분수대와 커다란 교회가 있는 광장. (저 장면을 조명으로 만들었다니 놀랍다.) 역시 무사한 시절에 붙였을 서커스 공연 포스터. 그러나 구석에 피 묻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곳. 이 뒤틀리고 모순적인 공간에서, 그만큼이나 반대되는 상대들을 마주치게 된다. 얼굴도 나오지 않지만 금방이라도 닿을 듯 추격해 오던 독일군과, 그를 피해 들어가다가 만난 프랑스 여성과 아기.
이 영화에 나오는 단 두 명의 여성이자, 체리나무 장면 이후 처음으로 평온하게 숨 고르기를 하는 장면이다. 짤막한 프랑스어와 영어를 섞어 두 사람은 대화한다. 독일군이 아님을 설명하며 여성을 안심시키고, 여성은 스코필드의 뒤통수에서 피를 살짝 닦아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던 스코필드가 고개를 든 건 아기 울음소리가 났을 때였다.
그는 아기를 보고 가방에 있던 부식과, 이렇게 쓰일 줄 모르고 담아뒀던 우유까지 모두 꺼내준다. 조심스럽게 아기의 손을 어루만지고 시를 읊어주는 걸 보며, 아마도 그가 "집에 가는 게 더 괴롭다"라고 할 만큼 괴로워한 데에는 후방에 아이까지 두고 떠나온 이유가 있겠거니 느끼게 된다. 더불어 이 시는 무모해 보이지만 단단한 의지가 돋보이는,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같은 시이기도 하다.
They went to sea in a Sieve, they did,
In a Sieve they went to sea:
In spite of all their friends could say,
On a winter’s morn, on a stormy day,
In a Sieve they went to sea!
그들은 바다로 갔네 체를 타고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
모든 친구가 말려도
폭풍우 치는 한겨울 아침이었어도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
And when the Sieve turned round and round,
And every one cried, ‘You’ll all be drowned!’
They called aloud, ‘Our Sieve ain’t big,
But we don’t care a button! we don’t care a fig!
In a Sieve we’ll go to sea!’
체가 빙빙 돌고 돌아갈 때
모두가 "너희 다 익사할 거야!" 소리칠 때
그들은 외쳤네 "우리 체는 크지 않지만
신경 안 써! 하나도 신경 안 쓴다고!
체를 타고 우리는 바다로 갈 거야!"
Far and few, far and few,
Are the lands where the Jumblies live;
Their heads are green, and their hands are blue,
And they went to sea in a Sieve.
저 멀리 점점이
머리가 초록빛이고 손이 푸른빛인
점블리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영화에서는 1연의 처음 5행과 마지막 5행만 읽는다. 가운데 5행은 읽지 않는다.)
때마침 시계탑 종이 울리고, 시간을 가늠한 스코필드는 단꿈에서 서둘러 일어난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이름을 모르는 아기를 거둬 기르고 있을 만큼 인간애 있고 단단한 프랑스 여인은 스코필드를 걱정하지만 그는 고마운 마음을 유감으로 전하고 단호하게 일어선다. 그리고 독일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강에 뛰어든다.
힘이 빠진 나머지 본인이 읽(지 않)은 시 구절처럼 익사할 뻔했지만, 때마침 거짓말처럼 하얀 벚꽃 잎이 흩날리고 새 소리가 들린다.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의 큰 축인 블레이크를 떠올리며 그는 다시 한번 힘을 낸다. 아름다운 벚꽃잎과 퉁퉁 불어 터진 시체들까지 건너 그는 목숨을 건졌지만, 이미 사위는 밝아져 있다. 참아온 눈물을 터뜨리는 것도 잠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간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이승인 듯 저승인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장송곡을 듣는다.
그들이 데번셔 2연대 후발대라는 사실을 알고 그는 마지막 전력을 다해 뛴다. 몸을 웅크린 이들, 정신을 놓고 울음을 터뜨린 이, 동료를 붙드는 이들... 다양한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나치다가, 이렇게 가서는 시간 내 닿을 수 없음을 깨닫고 참호 위로 올라서 평야를 달린다. 포탄 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리면서도, 부딪혀 넘어지면서도, 병사들과 종횡을 달리해 그는 뛰어간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가 내게로 뛰어온다. 전쟁의 내상과 외상을 모두 가진 이가, 전쟁을 막기 위해 달린다. 모두가 무의미하고 적막하게 괴로워하며 앉아있다가 우르르 뛰어가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때, 그 흐름을 끊고 달리는 사람이 된다.
영화 내내 궁금해하게 만들었던, 이전의 대사들을 통해 어쩌면 답 없는 전쟁광일 수도 있겠다 싶었던 인물 매켄지 또한 이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희망을 품었지만 희망은 위험한 것이라며 머리를 쓸어내리고,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Last man standing.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스코필드는 고개를 든다.
자막에는 "마지막 단 한 사람까지 죽는 것"이라고 번역되었다. 매켄지의 캐릭터를 감안하면 맞는 번역이지만 사실은 중의적인 문장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 전투를 끊어낸 이가 고개를 꼿꼿하게 들어 반듯하게 서는 순간.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몰살도 있지만, 이건 아니라고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인간 그 자체도 있다.
전투를 막았다고 그의 사명을 마친 것은 아니다. 그는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유품을 건넨다. 이제 다시는 두 형제가 함께 체리를 딸 수 없겠구나, 슬퍼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블레이크의 형은 인사를 나누며 스코필드의 이름을 묻는다. 윌리엄. Thank you, Will. 고맙다는 인사를 짧게 건넨다. Will은 의지의 이름이었다. 시작부터 형에게 갈 거라고, 내가 할 거라고 단단하게 말하던 블레이크의 의지가 스코필드의 이름에도 들어있었다.
모든 사명을 마친 그는 더 이상 노란 꽃이 없는 들판에 혼자 앉는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마다 열어보던, 소중해진 것을 집어넣던 틴 케이스를 열어본다. Come back to us. 꼭 우리에게 돌아오라는 말과 함께 담긴 가족의 사진. 일상은 비일상이 되고, 비현실은 현실이 되고 만 전장에서 그는 잠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눈을 감는다.
이 영화는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 알프레드 멘데스를 비롯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일화에서 따와서 만들었다. 특정 실화를 모티프로 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실화의 가닥가닥을 엮어 만든 것이다. 참호 속에서 담배를 피우고 부식을 먹고 개를 쓰다듬고 서로의 상처를 싸매는 사람들의 시간,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거둬 기르고 낯선 군인의 상처에서 피를 닦아주는 사람들의 시간으로.
이들은 생각보다도 많고, 다양한 곳에 있다. 심지어 인도계와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참호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 중엔 인도 남부 출신임이 틀림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고, 스코필드가 노래를 들으며 나무에 몸을 기댈 때 그 자리에는 흑인도 있었으며, 사병 트럭에는 터번을 쓴 시크교도 병사가 등장한다. 가볍게 억양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딱히 희화화하는 경향이 보이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에 비해 철저하게 유럽 중심이었던 1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영화 속 이들의 존재는 놀랍다.
(실제로 1917년은 인도 남부에 있는 하이데라바드 토후국에서 영국군에 전투기를 선물한 해다. 토후국의 왕 니잠은 엄청난 부와 탄탄한 사회를 이룬 군주였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패권 다툼이라는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 싸움에 가담하여 자신도 당당히 패권국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인도계나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것은, 실제로 그들이 참전했음을 고증하는 것임인 동시에 자본의 영향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인도 최대 기업인 릴라이언스의 엔터테인먼트사가 이 영화 제작에 참여했으므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서 찾아와 뜻밖의 만남을 가진 이들이 실은 각각 고립되어 있다시피 한 것. 각자 자기의 죽음과 싸우고 있다는 것. 그게 전쟁의 무의미한 본질이다. 그러나 전쟁은 보통 큼직한 것들로만 기억된다. 솜 전투, 인천 상륙 작전, 한산도 대첩 같은 웅장한 이름들로. 수많은 전쟁 영화도 그런 순간들을 많이 담곤 했다. 일반인들의 미시사는 전쟁의 본질이 아니라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전쟁이 깨뜨린 일상의 대조점으로 주로 담기곤 했다.
그러나 전쟁 자체를 이루는 것은 거대한 전투와 군함, 장군보다 그냥 수많은 보통 사람들임을 이 영화는 담는다. 스코필드는 그중 한 사람이다. 참호 속 혹은 트럭 속의 다른 병사들은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같은 사람들이 무수히 존재했으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시계가 깨져도 잔혹하게 흘러가던 스코필드의 하루는 그런 여상한 하루하루의 총합이 전쟁임을 알려준다. 그냥 보통 좋은 사람들의 얼굴로, 그들의 하루하루의 총합으로 전쟁은 이루어진다. 스코필드의 어떤 하루는 전쟁이라는 전체를 닮은 프랙탈이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선이정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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