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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2023-02-02 13:16:30

모두를 돌아버리게 만드는 마지막 턴

[영화] 블랙 스완 스포일러 리뷰

일주일 전 블랙스완을 봤다. 지금까지 본 영화들 중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봤던 몇몇 영화들이 있지만 블랙스완은 그중에서도 가장 지루할 틈이 없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처음 봤을 때보다 이번에 봤을 때 여운이 더 길게 남았는데, 심지어 영화를 본 후 집에서 백조의 호수를 계속 틀어놓고 있다 보니 클래식 음악에까지 관심이 생겨 자기 전 조금씩 듣게 되었다. 발레라는 장르 역시 잘 모르는 상태로 상대적으로 지루한 이미지가 아닌가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그런 선입견이 사라졌던 것 같다. (이후 스포일러)

 

 

출처: 유튜브 영화

 

이  영화가 여운이 길게 남는 이유는 영화의 스토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블랙스완 이전이든 이후이든 예술적 성취를 위해 자신을 한없이 깎는 내용의 영화는 존재했다. 내러티브의 결이나 주제는 다를 수 있어도 아마데우스가 그러했고, 등장인물 간의 관계성이 다를 수는 있어도 위플래쉬가 그러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위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발레라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예술적 소재를 활용해 백조와 흑조라는 개념의 대비를 이뤄 영화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인공 - 엄마', '주인공 - 단장', '주인공 - 라이벌', '주인공 - 주인공'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갈등 구조는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가 정말 무서운 장르였구나 다시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출처: 유튜브 영화

 

주인공인 니나는 작중 묘사되는 바에 따르면 발레리나 출신 어머니의 과보호 속에 살다가 성인이 되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의 백조 여왕 역으로 캐스팅된다. 온실 속 화초로 자란 그녀는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완벽한 백조 연기를 펼치지만 마음속에 일말의 검은 부분도 없어 흑조 연기를 할 수가 없다. 영화 속에서의 발레단장은 저질이고 인간으로서 최악이지만 "너 자신을 버려라", "너를 가로막는 것은 너 자신뿐이다"등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예술, 완벽함의 핵심을 짚은 조언을 니나에게 한다. 조언을 듣고 흑조의 관능을 연기하기 위해 기존의 자신을 깎아가던 그녀는 비록 환각이지만 흑조의 날개를 가진 릴리를 자신의 몸속으로 흡수하는 듯한 행위를 통해 마침내 흑조로 각성하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니나는 발레 연습에 처음으로 지각을 하고(릴리가 그러했듯이), 착한 딸을 찾는 어머니에게는 그녀는 죽었다며 반항하기도 하며 마음속을 검은색으로 칠한다. 끝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의 최고인 살인까지 저지른 니나는 그대로 무대에 올라 백조로서도, 흑조로서도 완벽한 연기를 펼친 후 만족한다. 니나의 살인은 물론 환각을 본 후 자신을 찌른 것이었지만 환각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성취하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려 한 의지 자체는 진짜일 것이다. 성적인 타락, 부모를 상처 입히는 패륜, 마지막으로 살인까지를 저지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는 자신을 가로막는 자신을 죽이고 완벽 그 자체로 거듭난다.

 

출처: 유튜브 영화

 

아마 이 영화에서 표현되었던 니나의 일탈은 흔히들 쓰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는 말에 빗댈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예술은 미쳐야 할 수 있고, 완벽에 대한 집착은 결국 자신과 타인의 파멸을 부른다는 주제를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본 후 우리는 파멸한 개인에 대한 아쉬움이나 분노보다는 마치 우리가 완벽을 성취한 것 같은 짜릿함을 느낀다. 이는 우리 모두 마음속에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욕망을 영화 속에서 대리만족시켜 주는 부분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출처: 유튜브 영화

 

또한 이 영화가 단순히 예술을 위해 나쁜 심성을 가지게 되어 타락하는 개인에 대한 영화인가? 를 생각해보면 나는 아니라고 느낀다. 개인적으로 타락 전 니나의 삶도 이상적이고 좋은 삶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영화 속 단장 역시 니나에게 '인생을 좀 살아봐'라고 말한다. 뭐든 중용이 최고 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영화 전 시점 니나의 인생은 말을 만들어내자면 너무나 순종적이고 고지식한 '백색 타락'속에 빠져 있는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영화 속에서는 극단적으로 표현되기는 했지만 '흑색 타락'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으로서 선악이 공존하는 완벽한 상태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예술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영화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유튜브 영화

 

I felt it. I felt perfect. I was perfect.

작성자 . 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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