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yun2023-12-03 22:32:47
세계관 확장하고픈 욕망만 한가득
드라마 '스위트홈 2' 리뷰
'스위트홈 2'를 정주행 한 감상평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즌 1 성공에 힘입어 세계관을 확장하고픈 욕망만 가득한 반면, 어디 하나 쉽게 몰입할 구석 없이 산만하기만 하다.
3년 만에 시즌 2로 돌아온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은 욕망이 괴물을 만드는 디스토피아를 배경을 삼고 있다. 시즌 1에서는 생존을 위해 그린홈 아파트에서 정체불명의 괴물과 사투를 벌이던 차현수(송강)와 그린홈 주민들에게 포커싱 했다면, 시즌 2에선 그린홈 밖으로 나온 이들의 생존기와 또 다른 존재의 등장,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현상들까지 드러난다.
'스위트홈 2' 스토리 초반은 다양한 이야기 갈래로 나눠서 조명한다. 정의명(김성철)에게 몸을 탈취당한 편상욱(이진욱)은 군인들에게 잡혀가던 차현수를 빼돌려 신인류가 되어보자며 자신의 편이 되길 회유하고, 임신한 서이경(이시영)은 남편을 찾기 위해 밤섬특수재난기지에 숨어들어 진실에 접근한다.
그리고 이은유(고민시)와 윤지수(박규영)를 비롯한 그린홈의 나머지 생존자들은 군인들을 따라 안전캠프로 가는 길에서 예상치 못한 역경을 겪는다. 여기에 탁상사(유오성)가 이끄는 까마귀 부대와 괴물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임박사(오정세)의 이야기가 맞물린다. 그러면서 주무대는 그린홈 아파트가 아닌 안전 대피소 스타디움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이야기와 갈등으로 엮어낸다.
시즌 1이 공개될 당시 시청자들에게 혹평을 받았던 '몰입도 빌런' OST 삽입은 말끔하게 해결됐다. 최대한 극에 집중하게끔 최대한 잔잔한 톤으로 깔아 두면서 자신들의 장기인 '한국적 정서'로 끌어들인다. 이번 시즌에선 가족애, 모성애로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려는 게 보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링크에서 확인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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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공개 될 <지옥>의 뒤를 이을 넷플릭스 기대작
출처 : 넷플릭스
" 게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으로 큰 흥행을 이루었는데요.
뒤이어 <부산행>, <반도>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신작, <지옥>이 오는 19일 공개된다고 합니다.
<지옥>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지옥에서 온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나는 상황속에서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외치는 종교단체 새지닐회와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지옥의 뒤를 이어 <고요의 바다>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었는데요.
<고요의 바다>는 동명의 단편영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필수 자원 고갈로 황폐해진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에 의문의 샘플을 회수하러 가는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SF 미스터리 스릴러 입니다.
공유, 배두나 주연과 함께 '정우성'배우가 제작자로 참여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출처 : 넷플릭스
다음은 마찬가지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한 <지금 우리 학교는>입니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에 고립된 이들과 그들을 구하려는 자들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겪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완벽한 타인>의 감독인 이재규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특히 웹툰 <지금 우리 학교는>은 팬층이 두텁기에 실사화 되는 것에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내년 초 공개 예정이라고 합니다.
출처 : 넷플릭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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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래서 '헬조선'이 싫어요
"추운 겨울, 해가 뜨기도 전 어두컴컴한 새벽. 집에서 머리카락도 말리지 못하고 급하게 뛰어나간다. 사람들이 가득한 초록색 마을버스를 탄다. 정거장 12개를 지나 내린다.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싣는다. 서울로 가려는 사람들로 지하철도 만원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다. '지옥철'에선 스트레칭조차 사치다."
"신도림역에서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탄다. 다시 12개 정거장을 가 강남역에 내린다. 강남역 근처 회사로 뛰어간다. 엘리베이터도 발 디딜 틈이 없다. 겨우 ‘대리’라는 직함이 붙어 있는 회사 자리에 도착해 외투를 벗고 한숨을 쉰다. 집에서 회사까지 걸린 시간만 2시간. 출근길이 아니라 전쟁을 치른 것 같다."
영화 시작과 함께 보여주는 계나(고아성)의 출근길과 내레이션은 보고 듣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젊은이들의 일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다. 우리는 이 같은 사회구조를 향해 '헬조선'이라는 단어로 비하하곤 한다.
장강명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행복을 찾아 직장과 가족을 두고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행을 택한 20대 계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앞서 언급한 내레이션과 함께 계나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별다른 것이 없다. '지옥의 통근길'이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고, 7년간 사귄 취준생 남자친구, 넉넉하지 않지만 자식들을 사랑하는 부모님. 20대 젊은이들의 평균치다. 물론 계나는 이 지점들이 지긋지긋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해 '한국이 싫어서' 떠나려고 결심한다.
뉴질랜드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시계열을 따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 계나의 뉴질랜드 라이프와 한국에서 겪었던 삶을 끊임없이 교차하여 보여준다. 계나를 중심으로 7년 간 사귄 남자친구(김우겸)와 가족, 장수 고시생 대학 동기 경윤(박승현), 뉴질랜드에서 만난 유학원 동기 재인(주종혁)과 앨리(트래 테 위키), 유학원 가족과의 만남 등으로 관객들의 숨통을 죄었다 풀었다 한다.
원작이 출간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헬조선'이고, 팬데믹을 겪고 난 뒤에는 더욱 팍팍해졌다. 고통 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욜로', '소확행' 등 행복론들이 스쳐 지나갔고, 영화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확신 없는 것들을 상기시킨다.
물론 계나의 뉴질랜드 라이프도 녹록지는 않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느끼고, 인종차별을 겪기도 한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 한국생활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행복이 과대평가됐다고 생각하며 남의 기준에 맞춰 막연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사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며 따라도 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서인지 뉴질랜드에선 미소 짓는 계나의 얼굴이 많이 잡힌다.
원작을 먼저 읽었던 관객들이라면 '한국이 싫어서'가 다소 판타지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한국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발생하는 불공정과 불평등사회에서 허덕이는 계나의 모습은 사라졌고, 이를 기민하고 날카롭게 찌르는 시선 또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장건재 감독이 "뉴질랜드를 낭만화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밝히긴 했지만, 여전히 뭔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호불호가 갈리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법한 영화 이야기를 몰입하게 만드는 건 주연인 고아성 덕분이다. 현실 앞에 숨이 턱 막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실감 나는 얼굴로 분노하다가 해방감을 누리고, 어떤 때에는 다시 좌절하기도 하며 관객을 끌어당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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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
모든 존재는 태어난 이상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자주 품곤 한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모호한 문제다. 때로는 그 질문을 깊게 고민하면서 존재론적인 문제에 매달리기도 하고, 때론 이 고민이 답답하고 불편해 외부로 짜증과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이런 고민들은 철학적으로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뚜렷한 답을 찾기 어렵다. 우리는 그저 삶의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불쑥 솟아오르는 의문들을 마주할 뿐이다.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순간들은 특별히 예측할 수 없다. 연애, 결혼, 아이의 탄생,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과 같은 중요한 사건들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인간 존재의 사이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특히 죽음은 삶의 끝을 알리는 동시에, 그 자체로 큰 고통을 동반한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삶의 고통과 죽음을 연결해 우울함에 빠져들기도 한다. 사춘기는 이러한 생각들이 더욱 예민해지는 시기이다.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겪으며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이 더욱 깊어지고, 많은 청소년들이 불안과 혼란 속에서 이러한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이 성장의 시기에는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이 깊어진다. 청소년들은 자주 자신이 세상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철저히 질문하게 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불안과 혼란을 동반하는데, 이 혼란을 잘 견뎌내는 것만이 삶의 복잡성을 받아들이고,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과정에서 죽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적인 화두로 등장한다.
[첫번째 감정] 리디아의 혼란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의 리디아(위노나 라이더)는 삶 전체가 혼란스러운 인물이다. 그녀는 과거 <비틀쥬스> 1편에서 이미 사춘기를 겪으며 죽음을 동경하던 청소년이었다. 당시 리디아는 세상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과 죽음에 대한 동경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 영화의 설정에 따르면, 죽은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죽음 이후에도 일종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간다고 묘사된다. 그래서 리디아는 죽음이 곧 끝이 아니라는 생각에 빠지며, 죽은 사람들조차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리디아는 죽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그녀에게 삶의 불편함과 혼란스러움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죽음이 곧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리디아는 죽음을 동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비틀쥬스(마이클 키튼)라는 혼돈의 존재와 마주하면서, 실제로 죽음이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삶 역시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며, 죽음도 그렇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1편에서 리디아는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힘을 얻었다.
이번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리디아는 중년이 되어 등장한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 리디아는 사춘기 시절과는 또 다른 혼란에 직면한다. 딸 아스트리드(제나 오르테가)와의 관계는 원활하지 않으며, 결혼 생활 역시 만족스럽지 않다. 그녀는 여전히 삶의 혼란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된 리디아는 자신이 청소년 시절에 가졌던 의문들을 다시 꺼내어 묻는다. 이번에도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녀는 딸에게 자신이 겪었던 혼란을 물려주고 싶지 않지만, 딸은 엄마를 부끄러워하고 그들 사이의 소통은 단절된다. 어쩌면 리디아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 투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비슷한 시기에 혼란과 방황을 겪고, 그 답을 찾으려 애썼으니까.
[두번째 감정] 아스트리드의 혼란
리디아의 딸 아스트리드 또한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있다. 어머니와의 소통 문제,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겹쳐 그녀는 끊임없이 불안감을 느낀다. 아스트리드는 어머니처럼 죽음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거나 유령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쩌면 이는 그녀가 아직 삶과 죽음의 경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스트리드는 죽음이란 것이 그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가족의 죽음, 특히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며 겪는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테마는 아스트리드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팀 버튼의 세계관에서는 죽음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처럼 묘사된다. 죽음은 삶의 일부일 뿐이며, 죽음 자체는 슬픔의 대상이 아니다. 아스트리드는 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결국 어머니 리디아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스트리드가 죽음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삶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머니가 자신 곁에 늘 있었음을 깨닫고, 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죽음은 한편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묘사된다. 팀 버튼이 창조한 이 세계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희미하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죽음조차 비극으로 다뤄지지 않으며, 그저 일상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이는 죽음이 곧 삶의 일부이며, 둘은 별개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세번째 감정] 비틀쥬스의 혼란
비틀쥬스는 그 자체로 혼란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그의 존재는 리디아와 아스트리드가 겪는 혼란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비틀쥬스는 스스로 혼란을 일으키는 존재이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가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누군가 그의 이름을 세 번 불러야 소환된다는 것이다. 이는 혼란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 누군가에 의해 촉발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리디아나 아스트리드가 겪는 혼란이 결국 비틀쥬스를 소환하게 된다는 설정은, 우리가 삶에서 겪는 혼란이 결국 외부의 영향과 내부의 불안이 결합해 터져 나오는 방식과 유사하다.
비틀쥬스는 단순히 악당이나 장난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그는 리디아와 아스트리드,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혼란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전달한다. 그가 끊임없이 일으키는 혼란은 마치 우리 삶의 불확실성과도 같다. 비틀쥬스는 우리가 직면한 혼돈을 극대화시키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나가는 인물들처럼, 관객들 또한 그 혼란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팀 버튼 감독은 독특한 상상력과 기괴한 미학으로 유명하다. <비틀쥬스> 1편은 80년대 당시에도 파격적인 연출로 주목을 받았고, 이번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그 후속편으로서 팀 버튼다운 세계관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그가 30년 만에 이 시리즈를 다시 꺼내든 이유는, 아마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시 한 번 탐구하고자 하는 그의 철학적 고민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1편이 내포했던 혼란과 유머, 그리고 기괴함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2편에서는 중년의 리디아를 통해 성숙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는 이러한 복잡한 감정들을 잘 전달한다. 위노나 라이더는 리디아로서의 혼란과 방황을 탁월하게 표현했고, 제나 오르테가는 신세대 캐릭터인 아스트리드를 통해 새로운 시각에서 삶과 죽음을 탐구한다. 비틀쥬스를 연기한 마이클 키튼 역시 특유의 괴짜스러움을 유지하면서도 캐릭터의 혼란스러운 본질을 완벽하게 살려낸다.
결국 이 영화는 혼란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영화 속 리디아나 아스트리드는 자신의 삶 속에서 보이지 않았던 따뜻함과 사랑을 영화 말미에서야 발견한다. 그것이 곧 삶의 의미이자 살아가야할 이유다. 또한 영화의 맨 마지막, 리디아의 새엄마인 딜리아(캐서린 오하라)이 죽음 이후 아무렇지 않게 저 세상 열차를 타는 모습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3QpAc6i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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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기, 우리가 스쳐간다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터에 현미경을 갖다대면 역사적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평범한 인간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면 뭐가 될까? 이 영화가 된다.
영화 <히어>다.
들어가며 : 먼저 남기는 총평
제리 맥과이어의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히어>는 포레스트검프의 감독인 로버트 저메키스와 각본가인 에릭 로스가 협업을 했고 톰행크스도 주역으로 참여했다. 이래저래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쁘지는 않았다. 식상함과 실험의 밸런스에서 개인적으로는 호의 영역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사덕후의 개취로는 메인메뉴보다 가니쉬가 맛있는 영화라고 해야겠다. 드라마는 새로울 것이 없는데 그 드라마를 전달하기 위한 영화적 실험기법들이 새로워서 스토리 외적으로 상상력이 구동되는 영화랄까. 특히, AI와 CG 기술로 구현한 젊은 톰행크스의 모습은 필연적으로 관객인 나와 내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도 했으므로 이제는 영화의 주제가 AI기술을 통해서 와닿을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구나를 실감하게 되었다. 이 영화의 특별함에 대해 하나씩 알아보자. 일단 줄거리부터다.
<히어>의 줄거리와 등장인물들 : 주인공은 집입니다만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것이 주인공이라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장소’다. 그 위로 백악기 시절부터 코로나19가 창궐한 현재까지 한 공간에 살았던 존재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생로병사 희노애락이 옴니버스식으로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은 아래와 같다.
그러니까 <히어>는 일반적으로 영화의 내러티브를 만드는 ‘한 명의 주인공이 등장해서 자신의 초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시간을 일직선으로 전진시키는’ 법칙을 따르는 대신 자연의 내러티브라 할 수 있는 탄생과 소멸, 그 사이의 길흉화복을 기승전결로 따른다. 굳이 말하자면 옴니버스적 구성에 가깝달까. 그렇다보니 이야기 자체는 서스펜스도 없고 심심하게 느껴진다.
언급했던 것처럼 주인공을 ‘집(공간)’으로 볼 때, 인류의 삶은 어느 시대이건 반복된다는 전제 하에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역사성(시간)’을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한 그 곳에 인물들이 생기는 느낌. 이런 이야기에서 인물들에게 캐릭터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메인스토리라인에 등장하는 리차드의 인생은 다른 인물들에 비해 풍부하게 그려진다.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리차드는 로즈와 알의 첫째 아들로, 화가를 꿈 꾸는 소년이었다.
세계대전을 경험한 아버지 밑에서 대공황을 겪으며 어른이 된 그는 고등학교에서 만난 마가렛과 일찍 결혼을 하게 된다. 마가렛은 대학을 포기하고 (한국식으로 시부모의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시작한다. 그녀는 분가를 희망하지만 경기는 계속 나쁘다. 리차드는 딸의 학비를 벌기 위해 노력하고 마가렛도 비서로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한다. 장성한 그녀의 딸은 로펌에 들어가고 그 사이 로즈와 알은 쇠약해진다. 부모들이 캘리포니아의 요양원으로 떠난 뒤에야 비로소 마가렛이 그토록 원하던 ‘둘만 사는 집’을 갖게 되지만 그녀는 이혼을 원한다. 이 순간을 위해 달려왔는데 말이다. 잠시나마 리차드의 인생에 몰입했던 우리는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원하는 걸 갖는 순간은 왜 이토록 찰나인가?
이 필연적인 질문 위로 리차드 이전에 이 곳에 살았던 인물들의 인생들이 겹쳐진다. 만나고 꿈꾸고 떠난다.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도구적으로 사용된 것 같던 인물들의 삶은 사실 하나의 질문을 위한 반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나니 이 영화에 한 명의 주인공이 없는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의 인생만 특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럴 이유도 없다. 이 집이 역사적으로 남은 유명 정치인(아마도 프랭클린)의 저택이 아니라 그의 앞집에 사는 평범한 가정집으로 설정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유추해본다.
우리는 죽는다. 그러나 모두 꿈이 있다.
<히어>는 결국 심심하게 만나고 헤어지고 죽는 이야기다.
허무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왜 이렇게 따뜻할까? 아마 그것이 우리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2시간 내내 정박되어있던 카메라를 객석으로 돌려보자. 주인공이 된 우리의 인생은 카메라 너머 캐릭터의 삶과 얼마나 다른가? 또 얼마나 같은가? 아무리 특별한 사건도 둘러보면 나만의 사건이 아니게 되는 보편의 인생일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입장에서 본인들의 삶이 평범하고 심심하기만 할까? 아닐 것이다. 그렇다. 이 작품에 짧게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는 희망과 좌절 그리고 꿈이 있었다. 각자의 객석의 앉은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이 대목에서 마가렛의 50살 생일파티 장면이 떠오른다. 그녀는 그 동안 미뤄왔던 꿈들을 이야기하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녀가 그것들을 이루는 것을 담아준다. 이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인생은 짧고 우리는 결국 죽는답니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들을 놓치지 마세요.”
집은 언젠가 빈집이 되고 우리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이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남이 어떻게 보든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하나쯤은 가진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결심을 하게 된다.
이제는 맛있는 가니쉬에 대해서 이야기할 차례 : 이 영화는 클로즈업이 없다.
<히어>에서 작품의 의미와 개성을 만드는 포인트는 역시 포인트다. 지구의 기나긴 역사에서 공룡이 등장했다 퇴장했던 것처럼 인류도 그리고 그 안에 나라는 인물도 등장했다 퇴장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메타포를 가장 잘 활용한 매체는 사실 연극이다. 전통적인 연극은 인물의 등장과 퇴장을 통해 무대 위에서 사건을 전개시켰다. 이 작품은 매우 영화적이지만 프레임인-아웃이 마치 연극의 등퇴장처럼 느껴지는 효과도 백분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무대는 정박되어 있고 객석도 고정되어 있으니 궁금하다고 가까이 가서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럴거면 영화일 이유가 없다. 감정을 전달받아야 하는 씬은 어떻게 하지?
정답! 배우들이 다가온다.
<히어>의 싱글 카메라의 위치는 집안의 중심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거실과 부엌 사이의 어느 벽 또는 경계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다. 연극으로 치면 무대의 외곽이다. 연극에선 인물들이 은밀한 이야기를 할 때 상수든 하수든 사이드로 내려오면 관객에게는 가까워지고 무대의 균형은 깨트리게 된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듯 튀어나온 것에 눈과 마음이 더 가는 법이다. 그렇게 전달받는 정보는 자연히 귀기울이게 된다. <히어>는 클로즈업이 필요한 씬에서 배우들이 직접 카메라 가까이로 오게 만드는 방식으로 카메라 거치라는 컨셉을 유지하면서 감정 전달을 해냈다.
예컨대 로즈와 집주인이 개인적인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씬, 성장한 리차드(=젊은 톰행크스)가 등장하는 첫 씬, 원주민족의 여성(태초의 여성)의 시체를 운반하는 씬, 가족들의 추수감사절 식사씬, 분가를 원하는 싸움신 등에서 배우들의 동선은 무대의 외곽이자 카메라 가까이로 조정된다. 기발했다. 위치를 정할 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히어>에는 정말 카메라 무빙이 없나요?
사실 있다. 딱 한 번. 영화의 엔딩에 단 한번 카메라의 무빙이 있다. 치매로 기억을 잊어가는 로즈를 위해 리차드는 빈집에 그녀를 데리고 오는 장면이다. (사실 영화의 첫 장면이기도 하다.) 그녀는 집을 둘러보고 문득 기억을 찾는다. 집을 둘러보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이제껏 벽이라고 생각했던 관객의 시점은 마치 새의 시점처럼 집의 반대편을 처음으로 보게 되고 그녀의 회한에 젖은 표정을 가까이서 바라보게 된다. ‘이 곳을 좋아했다’는 마가렛의 대사를 끝으로 창밖으로 빠져나간 카메라는 관객들 역시 이 영화라는 공간에서 퇴거시킨다. 시간이 되었다는 듯. 그리고 평범한 집들이 보이는 풍경에 고대의 새 한 마리가 날아오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여담이지만 : 다 좋았냐?
그렇지는 않았다. 특히 가장 현재의 집주인이었던 아프리카계 가족들의 삶의 쓰임이 현대적 인물로서의 특성이 있기보다 오직 앞서 보여준 에피소드와 대응하는 위치에서 식민지 시대와 달리 개선된 인권, 달라진 생일파티 풍경, 코로나, 그럼에도 남아있는 사회적 차별 같은 걸 보여주는 기능으로만 쓰였다는 생각을 한다. 아쉬운 점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자연의 공간이었던 곳에 원주민이 살게 되고 그곳이 어는 미국인 가정의 자산이 되어 가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 역시 미묘하게 불편한 지점이었다.
사실 영화예술이 모든 면에서 육각형이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침략을 당해온 민족의 입장에선 침략을 해온 민족들의 영화는 어느 순간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좋은 점이 9개가 있는 영화에도 이 부분에선 늘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하게된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인가 고도의 문화통치인가. 이거 뭐 답이 있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여담이지만2 : 어떻게 찍은걸까?
<히어>를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집 자체가 변화무쌍한 캐릭터 같다. 초기의 빈집부터 맥시멀리시트의 집까지 그 사이 가족구성원들의 변화와 크리스마스처럼 특수한 날을 연출하기 위해 동원한 소품과 미술이 장난이 아니다. 심지어 같은 시간대 내에서도 밤과 낮에 따라 리얼리티를 느끼게 하는 미묘한 변화들이 굉장하다. 그런데 이 복잡한 작업을 하면서 카메라 한 대를 어떻게 단일 장소, 단일 지점에 고정해서 찍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스튜디오 집 내부에 두 개의 세트를 만들어서 한 세트에서 촬영하는 동안 다른 세트에서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식으로 찍었다고 한다. 방의 창문 뒤에 위치한 LED 벽은 배경이자 방의 조명기이기도 했다고.
총 촬영기간은 33일에 불과했지만 첫 촬영 몇 달전부터 블로킹을 해서 완벽한 타임라인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컷이나 다른 각도가 없었기 때문에 촬영이 끝나면 모두 카메라 뒤로 돌아가서 테이크를 확인했다는 것도 대단하다. 알면알수록 어마어마한 제작진에 어마어마한 작업물이다.
여담이지만3 : 영화의 미래
<히어>의 장르는 휴먼드라마지만 여느 SF장르 영화와 견주어도 될만큼 화려한 기술력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나 CG야! 느낌은 전혀 없다. 그만큼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얘기다. 사실 동일 배우가 20대부터 80대까지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 입장에서도 굉장한 부담이었을텐데 다운에이징 스킬, 디지털 메이크업 기술 등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주연 배우들도 20대였던 시절의 신체반응이나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러프버전이나마 현장에서 바로 AI기술로 20대의 얼굴로 바뀐 자신들의 연기를 모니터하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는 인터뷰를 봤다. 스토리에 완벽히 스며드는 기술이라니, 앞으로 펼쳐질 영화스토리텔링의 변화도를 상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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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모던걸 모던보이는 다 독립군이 되는 것일까?
또다시 김남길 때문에 본 영화로 실망을 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한 사람의 리뷰를 시작한다,,, 김남길이 나온 작품을 찾다가 대학원 시절 학기말 페이퍼를 제출하기 위해 그 교집합을 찾던 중 발견한 작품이었던 영화 《모던보이》. 일제강점기 영화 중 모던걸, 모던보이를 테마로 한 작품이 무엇이 있을까 찾다가 발견한 작품이었다. 정말 보다가 재미가 없어서 잠이 들 정도였는데 쓰고자 했던 페이퍼의 방향과 너무나도 일치해서 꾸역꾸역 분석하면서 봤던 영화였다.
영화 《모던보이》 시놉시스
1937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1급 서기관 이해명은 단짝친구 신스케와 함께 놀러 간 비밀구락부에서 댄서로 등장한 여인 조난실에게 첫눈에 매혹된다. 온갖 방법을 동원한 끝에 꿈같은 연애를 시작하지만, 행복도 잠시. 난실이 싸준 도시락이 총독부에서 폭발하고, 그녀는 해명의 집을 털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난실을 찾아 경성을 헤매는 해명. 그가 알게 되는 사실은 그녀가 이름도 여럿, 직업도 여럿, 남자마저도 여럿인 정체가 묘연한 여인이라는 것! 밀려드는 위기감 속에서도 그녀를 향한 열망을 멈출 수 없는 해명. 걷잡을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선 그는 또 어떤 놀라운 사건을 만나게 될 것인가! 사랑과 운명을 건 일생일대의 위험천만한 추적이 펼쳐진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모던걸과 모던보이를 조명하다
모던보이 영화의 의의라고 한다면 그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경성의 거리를 조금 낭만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존재했던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을 극을 이끌어가는 중추적인 인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생각해보면 우리가 학교에서 받았던 공식적인 역사 속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인물군상이다. 역사 교과서에는 친일파와 독립군의 일부만 선택적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모던보이에는 이렇게 역사에서 배제되었고 망각된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모던보이와 모던걸을 대중들에게 상기시키고 공식 영삭의 틈을 메꿔주는 문화적 기억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알고보니 독립군, 갑자기 독립군이 된 그들
나름 의의가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영화 《모던보이》에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점은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알고보니 독립군이었고, 갑자기 독립군이 된다는 것이다. 역사 속 모던보이와 보던걸들을 보면 일부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유행을 쫓고 신식의 것을 몸에 두르느라 세상 정세에는 관심도 없는, 즉 독립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비판하는 대중가요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은 대부분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모던보이나 모던걸이라는 가면을 쓰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지인의 영향으로 독립에 투신하는 경우로 그려지는 거시 대부분이다. 영화 《모던보이》 역시 로라이자 조난실은 알고보니 독립군의 주요 요원이었고, 조난실을 사랑한 이해명은 그녀의 죽음으로 갑자기 독립군이 된다. 모던보이라는 컨셉을 전면에 놓고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 《모던보이》 역시 알고보니 조선의 독립을 그리기 위해 하나의 장치로서만 활용해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영화가 넘어야할 민족주의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매체에서 그 당시 실제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온상을 그려내기 보다는 우리가 모던보이와 모던걸에게 바라는 것을 투영시키는 욕망이 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라는 시기는 지나간 과거지만 아직 청산되지 않은 과거이기에 현재와도 같은 과거다. 그래서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에게 민족투사의 이미지를 덧씌워서 그들의 삶이 비극적이면서도 독립을 위해 살신성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이런 민족주의가 영화 스토리의 틀을 정해버리고 그 한계를 설정하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민족운동을 한 사람들은 왜 영화 속에서 다 죽어야 하는 것일까? 폭탄 날리고 집에 돌아와서 행복하게 살 잘면 안되는 것일까? 왜 그런 영화를 볼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영화의 내용으로만 보자면 크게 재미를 느낄 수 없는 작품이었지만 분석용으로는 꽤나 분석할 거리를 제공했던 영화 《모던보이》. 일제강점기 시기에 관련된 영화 작품에 대한 공부용(?)으로는 추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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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위한 마음, <풀타임>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풀타임 Full Time, 2021
프랑스 / 88분
감독: 에리크 그라벨
나를 위한 마음, <풀타임>
<풀타임>은 일상의 반복을 외피이자 내피로 효과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이혼 후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엄마, 쥘리의 출퇴근이 이야기의 뼈대이자 전부지만, 그것이 영화가 내놓은 모든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요소를 섞어 복잡하게 느낄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굉장히 간단한 방법으로 명확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이어간다. 망설임 없이 표면 서사와 심층 서사를 능숙하게 넘나드는 쥘리의 일상은 환경, 온도 등에 따라 몸의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다가온다. 두 서사 사이의 간격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하기도 하는데, 그로 인해 너무나 평범해 쉽게 지나치기 쉬운 하루를 역동적인 사건으로 느끼게 하고, 그 결과 별거 아닌 것을 한순간에 마음 쓰게 만든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을 옆집 할머니에게 맡기고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는 쥘리가 특별한 지점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졸이게 하는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영화는 도로를 뛰고 있는 것 같은 쥘리의 거친 숨소리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있다. 꿈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알람 소리로 눈을 뜬 순간부터 쥘리는 숨 돌릴 틈 없이 움직인다. 직장에 늦지 않기 위한 뜀박질로 시작해 집에 무사히 돌아오기 위한 뜀박질로 끝나는 하루. 스펙터클한 일상을 더 완벽하게 완성하는 건 따로 있다. 시끄러운 파리의 소음만큼이나 가슴을 갑갑하게 만드는 쥘리의 문제들. 교통을 마비시킨 대규모 파업과 갚지 못한 대출 빚, 옆집 할머니의 직언, 연락 부재중인 전남편, 사랑하는 아들의 파티 준비까지, 쥘리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쳇바퀴 안에서 바쁘게 살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발적으로 수많은 문제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는 점이다. 쥘리는 오래전부터 직장 상사 몰래 이직을 꿈꾸고 있었다. 이미 5성급 호텔에서 동료 직원들을 평가할 수 있는 고참 룸메이드로 일하고 있지만, 마케팅 회사를 더 원한다. 호텔 룸메이드 처우보다 조건이 좋은 건 당연하고, 궁극적으로 과거 잘했던 일을 늦지 않게 다시 하고 싶기 때문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 더 좋은 조건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싶은 마음, 더 확실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마음. 쥘리의 강력한 동기는 호텔 룸메이드란 현실 속 직업을 위태롭게 만들기 시작한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우린 때때로 앞에 산적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중요한 일과 진짜 중요한 일을 나누곤 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모두 잘 해낼 수 없을뿐더러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부분 일의 순서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여기면 될 일이니까. 난제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쥘리는 자신의 문제에 순서를 배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순서가 사실은 선택이란 단어를 감추기 위해 쓴 용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쥘리에게 선택은 있을 수 없다. 그녀의 현실에서 선택은 사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조차 허용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건들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서 하나를 포기하면 전부를 포기해야 한다. 달리는 열차에 손을 뻗어 맘에 안 드는 열차 칸을 뜯고도 기차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나이는 이미 한참 지났으니까.
그녀를 둘러싼 사건들은 죄다 단기간에 확실한 답을 찾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쥘리는 참고 견디는 일에 익숙하다. 익숙함에 젖어서 다른 일을 게을리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에 능숙하진 않지만 최선을 다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녀에게 익숙함은 현실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교통 파업은 교통마비의 원인이지만 쥘리에겐 주어진 환경일 뿐이다. 자연재해와 같아서 남 탓은 불가능하다. 물론 교통마비 현상이 쥘리의 고통을 가장 극대화하고 즉각적으로 보여주지만, 쥘리의 적대자는 아니다. 그녀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며 자기 자신이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두 아이를 돌봐주는 옆집 할머니의 오지랖(주제넘은 말)에 성심성의껏 대답하고, 그만두겠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그녀에게 꽃다발을 선물한다. 하루는 부탁하다가 다른 날엔 할머니의 말에 동의하는 척하고 또 다른 날엔 애처롭게 애원한다. 양육비를 보내지 않는 전남편에게 매일 전화하면서 자괴감과 무력함을 느끼지만 내일이 되면 다시 그에게 전화해 음성메시지를 남긴다. 면접을 보러 다니는 와중에 아들의 생일 파티를 위한 준비를 잊지 않고 카풀과 차 렌트로 출퇴근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능하게 한다. 마케팅 최종면접을 위해 그동안 쌓아놓았던 호텔 룸메이트 마일리지도 거침없이 사용한다. 내가 이렇게 몇 년간 헌신했으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란 심보로 말이다. 그 일이 사실상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나쁜(?) 일이다. 가능한 모든 힘을 쥐어짜고 기용할 수 있는 자신의 인적자원을 이용한 결과, 쥘리는 호텔에 출입하지 못한 채 길거리에서 일자리를 잃는다. 과거 나를 위해 했던 일들이 현재 나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됐다.
한 번쯤은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벌이거나 난동을 피우며 해결되지 않는 화를 표출할 법한데, 그녀는 묵묵히 벌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집중한다. 교통마비가 끝나기를 견디는 것처럼, 옆집 할머니가 마음을 바꾸길 기다리듯이, 최종면접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바라듯이, 쥘리는 끝까지 자신에게 올 긍정적 신호를 기대한다. 그 모습이 너무 간절해 안쓰러워 보이지만, 상관없다. 우린 그녀를 당연하게 응원하고, 쥘리는 모두가 예상했듯 합격 소식을 들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출퇴근이 전부인 <풀타임>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힘은 쥘리를 향한 관객의 진한 공감에 있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사실 달라지는 현실은 없다. 여전히 쥘리의 출퇴근은 난항일 거다. 아니 이젠 그 안전한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 그전보다 훨씬 빨리 일어나 뛰어다녀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봐줄 사람도 찾아야 하고, 답답한 전남편에게 똑같은 음성메시지를 남기겠지. 하지만 쥘리는 끝까지 파업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전남편과 직장 중간에 위치한 파리 외곽에서 꿋꿋하게 두 아이를 키웠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니까. 쥘리는 보통 사람들을 대변한다. 적당히 합리적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사람이다. 나아가 가끔은 과한 요구도 나를 위해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보통 인간이다. 개인적인 문제들이 곪아 터지면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언제든 나의 현실이 될 수 있고,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해서 그 고통이 말끔하게 해결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녀는 우리처럼 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으로, 보통의 삶을 치열하게 사는.
단단하게 잡고 있는 것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나만 힘들고 나만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며 더는 나오지 않는 한숨을 토해내려 애쓰는 날도 있다. 쥘리의 일상이 그랬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넘어지거나 고꾸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나'를 위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현실에 맞춰 사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자기가 원하는 인생의 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희망적인 결실까지 얻었으니 해피엔딩은 당연한 결과다. 평범함이 위대함이 되는 건 쉽다. 물론 아찔하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갖게 한다. <풀타임>이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과 함께 쥘리를 달리게 한 건 그 대단함에 숨어있는 힘을 눈앞에 보여주기 위함이다.(영화 내내 들리는 소음과 어지러운 카메라 무빙도 같은 목적을 위해 달려왔다.) 따라서 첫 장면부터 관객의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꾸는 힘엔 조금의 다급함도, 조급함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화무쌍한 현실을 견디는 나에게 작은 위로와 위안을 전달한다. 그리고 난 그게 참 반가웠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자연스럽게 쥘리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곧 나를 위한 마음이 될 때, 마침내 영화는 그녀를 멈춰 세운다.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놀이기구 앞에서 새로운 출발을 앞둔 쥘리의 모습.
홀로 멈춰 있지만, 그녀는 이미 뛰고 있다.
또다시 자신이 가진 시간을 전부 다 꺼내놓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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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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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무간귀도> 메인 예고편
간악한 음모를 파헤쳐라!
명나라 말, 염당 조직의 일원인 ‘형강봉’은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해
부현의 우두머리 격인 ‘조통’의 심부름꾼을 자처하며 살아간다.
살해 용의자 독룡방 방주를 처단하는 임무를 마지막으로 떠나려면 ‘형강봉’은
‘조통’과 그를 둘러싼 관리들이 관직과 재물을 탐하는 간악한 음모를 꾸민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형강봉’은 자유를 위해, 백성을 위해 그들을 처단하기로 마음 먹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