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0932023-02-15 20:38:06
혹때려다 혹이 붙었다? | 영화 담보
승이의 울고 웃기는 담백한 영화
혹시 영화 담보라고 아시나요?~ 요즘 꾸준하게 넷플릭스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어린 승이의 매력에 빠지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요!
영화 담보는 영화 하모니를 연출한 강대규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우리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해 주고 있어요. 영화 담보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코미디, 시대극
감독 : 강대규
각본 : 윤제균, 손주연
출연진 : 성동일, 하지원, 김희원, 박소이
개봉일 : 2020년 9월 29일
평점 : 9.17
스트리밍 : 티빙, 웨이브, 넷플릭스
기획 의도
거칠고 까칠한 사채업자 두석(성동일)과 종배(김희원)는
떼인 돈 받으러 갔다가 얼떨결에 9살 승이(박소이)를 담보로 맡게 된다.
"담보가 무슨 뜻이에요?"
뜻도 모른 채 담보가 된 승이와 승이 엄마의 사정으로 아이의 입양까지 책임지게 된 두석과 종배.
하지만 부잣집으로 간 줄 알았던 승이가 엉뚱한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승이를 데려와 돌보게 된다
돈 받으러 갔다가 인생의 보물을 만났다
여담
영화 담보는 추석 연휴에 개봉하면서 기존의 추석영화는 뻔하고 재미없다는
평가를 지우고 많은 사람들의 소문으로 박스 오피스 1위와 OTT에서도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성동일의 부성애 연기와 더불어 어린 승이 역을 맡은 박소이의 매력에 풍덩 빠져 뻔한 스토리와 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한가득 받았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담보 결말을 살펴보자면 승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두성은 친딸처럼 지극정성을 다하여 승이를 보살펴 키워준다.
승이 또한 아빠라고 부르며 진짜 가족이 된 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기쁜 마음으로 승이를 만나러 가다가 머리 통증이 심각하여 운전 중에 다치고 만다.
10년 동안 두석이 사라지게 되자 승이와 종배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두석을 찾으러
다니다 비슷한 나이대 환자를 찾으면서 극적으로 서로 다시 재회하게 된다.
마지막은 승이와 함께 결혼식장에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영화 담보는 어찌 보면 결말이 뻔한 결말을 예상하지만,
어린 승이의 연기력에 웃으면 관객도 웃고, 울면 관객도 우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아줬다.
한줄평 : 담보가 보물이 되는 순간.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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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곡성> 제친 <파묘>
<파묘>는 16일만에 700만 관객을 넘어서며 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넘어 오컬트 장르 최고 흥행작이 되었는데요. 한국은 지금 파묘들었다. 이번주 주말 박스오피스 씨네픽과 함께해요[국내 박스오피스]
장재현 감독의 <파묘>가 지난 주말에도 흥행 독주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누적 관객 수 804만여 명으로 <서울의 봄>보다 일주일 빨리 800만 관객을 넘겼습니다. 다음으로 <듄: 파트 2>가 누적 관객 수 128만 명, <웡카>가 340만명을 기록하며 각각 2위,3위를 기록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에선 <쿵푸팬더 4>가 <듄: 파트2>를 밀어내고 1위에 올라섰습니다. <쿵푸팬더4>는 모든 쿵푸 마스터들의 능력을 복제하는 빌런 ‘카멜레온’에 맞서기 위해 용의 전사인 자신마저 뛰어넘어야 하는 ‘포’의 새로운 도전을 그립니다. 앞서 <쿵푸팬더> 시리즈는 국내에서 약 1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 전 세계적으로 약 20억 달러의 수익을 낸 드림웍스 최고 흥행 시리즈로 국내에서는 오는 4월 10일 개봉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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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전 2> 기대 이하의 스릴과 예상외의 헛헛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용산역 혈투 이후 모습을 감춘 '서영락'(오승훈). 경찰이 성과를 자축하는 사이, '원호'(조진웅)는 계속해서 서영락을 쫓는다. 그가 이선생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대신 이선생의 수법까지 자세히 알고 있는 그를 붙잡아 진짜 이선생으로 가는 길을 알아내려 한다.
그러나 원호는 서영락을 체포하지 못한다. 그의 위치를 파악해 검거하기 직전, 중국에서 온 진짜 이선생의 대리인 ‘큰 칼/섭소천’(한효주)이 사태 수습을 위해 서영락을 태국으로 납치했기 때문. 또 여전히 이선생의 마약을 탐내는 ‘브라이언’(차승원)의 계략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원호는 태국으로 향한다. 이선생에 대한 단서를 찾고 마약을 둘러싼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독전 2>, 미드퀄이라는 실험
<독전>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속편 <독전 2>. 감독도 바뀌고 일부 배우도 달라졌지만, <독전 2>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미드퀄이라는 형식이다. 미드퀄은 전편 이후 시점을 다루되 결말은 동일한 속편을 말한다. <300>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300>은 테르포밀레 전투를 중심으로, 플리타이아이 전투를 에필로그로 등장시켰다. <300: 제국의 부활>은 두 전투 사이에 벌어진 살라미스 해전을 다뤘다. <독전 2> 역시 전편 용산역 시퀀스와 노르웨이 결말 장면 사이의 시점을 다룬다.
<독전 2>가 한국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미드퀄 형식을 택한 이유는 짐작가능하다. <독전>은 개봉 당시 후반부 전개가 어설프고, 결말이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이선생의 정체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너무 급하게 끝나고, 결말로 이어지는 내용이 빈약했기 때문. <독전 2>는 이처럼 관객들이 전편 결말에 품은 의문을 해결하려는 작품이다. 즉, 마지막에 누가 왜 총을 쐈는지 묻는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줘야 했다.
고로 미드퀄은 일종의 절충안이다. 3/4 지점까지는 전편의 연장선상이다. 진짜 이선생을 찾는 악전고투를 또 한 번 보여준다. 그 이후로는 인물의 전사(前事)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덧붙이며 정해진 결말로 나아간다. 속편 느낌을 주면서도, 나름의 재해석을 통해 중간 과정의 완결성을 높이려 했다. 안타깝게도 <독전 2>의 실험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독전 2>에 무엇을 기대하든 간에 기대를 채우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캐릭터로 전편을 재해석하다
사실 <독전>에서 돋보인 지점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임팩트였다. 특히 '진하림'(김주혁)과 그의 파트너 '보령'(진서연)이 마약을 하는 연기가 화제였다. <독전>은 마약이라는 소재의 자극성을 강조하고, 이를 발판 삼아 스릴러 형사물로서의 장르적 쾌감도 덩달아 살려냈다. 개연성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우직하게 강점을 극대화한 영화가 <독전>이었다.
그런데 <독전 2>에는 전편의 핵심이었던 두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다. 이에 <독전 2>는 아예 새로운 길을 걷는다. 새롭게 투입된 섭소천을 단순한 대체재 이상으로 써먹는다. 둘에 비해 임팩트는 약하더라도 스토리텔링에 힘을 줄 수 있는 새 구심점으로 활용했다.
실제로 섭소천은 미치광이 악역이 아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이선생이 거둔 불쌍한 소녀였고, 그녀는 평생 동안 이선생을 아버지로 따랐다. 더 나아가 그에게서 가족으로 인정받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 그녀가 이선생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신종 마약을 개발하고 마약 판매처를 늘린 이유다.
이러한 캐릭터의 변화는 곧 <독전 2>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전편이 마약을 둘러싼 이전투구였다면, 이번에는 마약이 아닌 마약을 이용하려는 인물들의 동기에 주목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이처럼 <독전 2>는 새로운 캐릭터와 미드퀄이라는 형식의 특징을 최대한 활용해 속편이지만 전편의 재해석까지 야심 차게 시도한다.
마약과 인생의 허무함
<독전 2>의 실험은 일정 부분 성공했다. 우선 캐릭터들의 성격이 더 확실하게 부각된다. 특히 마약에 대한 집착보다는 개인적인 목적이 전반적으로 강하게 드러난다. 서양락은 변화가 가장 크다. 전편에서는 이선생 이름을 판 이들을 응징하는 최종 빌런이었다. 반면에 이번에는 친부모의 죽음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이선생을 만나 사과를 듣고, 복수하려는 인물로 그려진다.
원호의 캐릭터성도 선명해진다. 전편에 그는 조카처럼 아끼던 정보원 수정을 잃은 분노와 마약상을 검거하겠다는 경찰로서의 책임감이 더해진 캐릭터였다. 동료를 또 잃는 <독전 2>에서는 경찰로서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개인적인 원한에 사로잡힌 인물에 더 가까워진다. 브라이언은 여전히 이선생의 마약과 이권을 쫓지만, 그 와중에도 서양락이 안겨준 모멸감을 되돌려주겠다는 복수심으로 충만하다.
그 덕분에 전편에서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지만, 후반부 급전개 때문에 부각되지 못한 감정선이 제대로 살아났다. 열린 결말이었던 마무리도 확실한 메시지로 수렴한다. 노르웨이 설원을 배경으로 한 결말은 헛헛함이라는 종착지를 보여준다. 각자 인생을 걸고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마침내 이뤘다고 생각한 순간 불쑥 찾아오는 공허함이 담겨 있다. 복수 혹은 인생이라는 마약이 선사한 쾌감 후에 찾아오는 쓸쓸함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래서 <독전>이라는 제목의 의미도 새로워진다. 1편이 누가 이선생이라고 믿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독전 2>는 자기 인생의 신념과 목표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묻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독전> 시리즈의 영어 제목이 괜히 'believer(믿는 사람)'가 아닌 것. 일반적이지 않은 하얀 배경의 엔딩 크레디트를 배경으로 들려오는 OST 'Hallelujah' 역시 실험적인 속편의 성격과 지향점을 한 번 더 강조한다.
<독전 2>의 실험이 독이 된 이유
그러나 과감한 도전인 만큼 뒤따르는 부작용도 크다. 사실 <독전>의 흥행은 드라마의 완성도보다는 배우들의 연기력, 소재의 자극성과 장르적 쾌감이 이뤄낸 결과였다. 그러니 전편의 쾌감을 기대한 관객 입장에서는 <독전 2>의 후반부는 의아하거나 맥 빠진다는 인상으로 남기 충분하다. 반대로 1편에서 더 완성된 서사를 기대한 관객은 전편에서 이미 본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인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독립적인 완성도도 아쉽다. 의도한 측면이 있더라도, 섭소천을 다소 형식적으로 묘사한 결과 빠진 돌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섭소천은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중국 출신 악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장된 몸짓과 늘어지는 말투로 시비를 걸고, 슬로 모션이 그녀를 꾸며준다. 전형적이다. 그러다 보니 섭소천이 다른 캐릭터를 완전히 압도하는 느낌도 없고, 태국에서의 총격전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도 어려움이 생긴다.
영화 구성도 최선은 아닌 듯하다. 시간대가 엉키면서 복잡하게 느껴지는 대목이 있기 때문. 섭소천의 사연, 브라이언과 이선생의 인연을 보여주기 위해 과거 시간대가 현재 시간대 중간중간 삽입된다. 그런데 이 부분이 최후반부 드라마와는 직결돼도, 중반부까지 극의 중심을 차지하는 이선생 추격전과는 크게 연관되지 않는다. 오히려 템포를 끊고 루즈하게 만들 뿐이다. 카 체이싱을 비롯해 규모감이 상당한 총격전이 등장하는데도.
차라리 태국에서의 클라이맥스를 기점으로 삼고, 기점까지 이르는 각 인물의 행보를 각기 따로 쫓은 후 과거 이야기를 보여주면 어땠을까 싶다. 어차피 여러 챕터로 나눠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만큼, 클라이맥스 즈음에 각 캐릭터의 사연을 조각모음하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뚜렷하게 보였을 테니. 덩달아 각 인물의 동기나 행보를 추측하는 미스터리도 더 강해지고, 전체적인 긴장감도 더 높아졌을지 모른다.
넷플릭스라 다행일지도
이처럼 시리즈물로서 <독전 2>는 호불호의 여지가 크다. 전편을 기대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결이 다른 영화로 느껴질 수 있다. 안 나오는 캐릭터도 있고, 캐릭터성의 변화도 크다. 또 열린 결말로 남겨둔 마무리에 명확한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자유로운 해석을 통제한다는 인상도 남을 수 있다. 즉, <독전 2>는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부정적인 반응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업 영화다.
그러나 플랫폼이 넷플릭스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OTT 작품에 대한 관객의 심리적 저항, 만족도의 기준점이 극장 개봉 영화와 다른 것은 이미 경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니까. 그렇기에 넷플릭스라면, 시리즈물 중에서도 꽤 도전적이었던 <독전 2>의 실험이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물론 서영락을 연기한 배우가 류준열에서 오승훈으로 바뀐 것만큼이나 이질적인 속편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Acceptable 무난함
어떤 이유로도 헛헛하거나 허탈할 미드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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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꼼꼼히 판 묫자리, 깔끔하지 않은 뒷정리
<파묘>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쓰자면 <파묘>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동시에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는 영화였다. 왜 아쉬웠을까? 설명하기 이전에 이 이야기의 줄거리부터. 박지용(김재철)이 화림(김고은)에게 의뢰할 것이 있다. 바로 자기 집안에 관한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림의 동료 봉길(이도현), 아는 아저씨였던 영근(유해진)과 상덕(최민식)이 출동한다. 영화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이야기로 삼고 있는데, 이 도중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또 알지 못했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줄거리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당연히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상덕과 화림이고, 영근과 봉길이 상덕과 화림을 지원하는 사이드킥쯤 된다. 왜 <파묘>는 이렇게 줄거리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장재현 감독이 친일파라는 소재를 다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인물들은 영화를 이끌어가며 여러 사건들을 마주한다. 그중 가장 대표격인 사건은 박지용의 집안이 친일행각에 가담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 하에 박지용의 끔찍한 죽음을 비롯해 상덕의 보국사 방문이나 봉길의 부상 같은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루는 사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첩장'이다. 이 영화는 그 무엇보다 세로로 관을 묻고 그 위에 가로로 덧댄 형태를 핵심 모티브로 활용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우선 글쓴이에게 이 파묘라는 것을 통해 첩장이라는 모티브를 제시하는 것 자체는 신선했다. 일단 '파묘'라는 단어, 여러분은 들어본 적 있는가? 들어본 적은 있어도 이걸 직접 하는 것은 보기 힘들다. 글쓴이는 평범한 벌초정도는 해봤어도(요즘은 그마저도 안 한다지만) 묘를 판다는 것 자체를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단어 뜻은 유추할 수 있는 정도다.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곧 기괴함을 느끼기 쉬운 조건이 된다. 그리고 이 파묘라는 행위는 오컬트라는 장르와 매우 친해지기 쉽다. 사람이 죽어있는 묘를 들춘다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과 가까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곧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유령, 귀신같은 초자연적인 일들에 노출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력 중 하나인 직업영화로서의 박력도 이 '파묘'라는 설정 덕에 힘을 얻는다. 묘는 본질적으로 조상님이 들어가 계신 곳이다. 그리고 무당은 이 들어가 계신 조상님 내지는 하늘의 신과 대화하는 직업군이다. 주인공 화림이 이야기에 개입하는 이유가 자연스레 성립하는 것이다. 이는 상덕의 직업인 풍수지리사에도 적용되는 부분이다. 풍수지리사는 '좋은 땅을 찾는' 직업이다. 그러려면 땅에 서려있는 기운을 분석해야 하는데 이는 상덕과 화림의 협업이 필연적이라는 근거가 된다.
이야기의 주제에 대한 관점에서, 파묘라는 것은 그 의미 자체만으로 친일파라는 소재를 소환하기에 적합하다. 왜? 파묘는 무덤의 근원을 파헤치는 일이다. 친일파는 근원이 어디인지 쉽게 와닿지 않는 사람들이다. 누가 보면 원래 일본인인 것처럼 조선과 대한제국을 팔아넘긴 자들을 친일파라고 하지 않나? 일제강점기 때 했던 창씨개명을 생각해 보면 그 의미가 더 쉽게 다가온다. <파묘>에서 보여줬던 첩장의 모티브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친일파는 진짜 근원지를 숨기고 다른 인간인 척하는, '그냥 미국 부자'나 '세로로 묻힌 관'같은 존재인 것이다. 또한 현재 2024년 일제강점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파묘가 필요하다. 이들이 언제부터 득세했는지 그 근원지를 좇는 것이다. 윗문단과 이 문단을 종합하자. 이 영화는 파묘와 첩장이라는 모티브를 메시지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원동력의 양 측면에서 성공적으로 잘 가져왔다. 이 똑똑한 선택을 강조라도 하듯 <파묘>는 영화의 핵심 사건에 이 모티브를 끌고 온다. 이 영화에서 진짜 흑막이라고 볼 수 있는 세로로 묻힌 관을 빠르게 규명할 수 없었던 이유는 원인을 진작에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현대사회에서 친일파들이 득세했던 그 근원지를 명확하게 찾을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첩장'처럼 곳곳에 둘러싸여 있는 장벽들이 많은 것이 그 이유다.
영화는 파묘라는 소재를 여기에서 활용하고 끝내지 않고 한 차원 더 깊게 들어간다. 파묘를 하는 이유. 알 수 없는 것의 근원을 찾기 위해. 그 이면에 깔린 것은? '무엇인지 알지 모른다'라는 일종의 무기력함이다. 사실 이 무기력함과 무지라는 감정은 오컬트의 클래식과도 같다. 알 수 없는 것에서 온갖 방해꾼이 몰려들어와 공포감이 조성되는 걸 활용하는 영화가 많았다. 비단 <악마의 씨> 같은 영화가 그랬으니까. 아, <악마의 씨> 개봉한 지 50년도 더 넘었다. 현대의 장재현 감독은 정서적인 측면에서 더 나아가 이 '알지 못한다'라는 또 하나의 모티브를 강박적으로 반복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가령 박지용 일가의 묘와 관련된 부분이 그렇다. 우리 조상들은 쇠말뚝을 뽑아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온 것으로 영화 안에서 묘사된다. 하지만 그 절을 오랫동안 지켜온 스님도 사진 속 안의 인물들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제대로 몰랐다. 박지용의 조상이 들어간 관에 대한 부분도 이 무지에 관한 부분을 녹여낸 장면이다. 관을 화장하면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아래에 묻힌 또 다른 관이 있던 것은 이 영화가 인간의 무지와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다른 근거다. 봉길이 부상을 입은 후에 의사가 내린 진료도 이 인간의 무지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의사들이 아닌 화림과 친구 무당들이 봉길이 의식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 장면에서 무지와 무기력함을 활용한 서스펜스를 보여준다. 박지용이 혼자 방 안에 있는데, 전화가 온다. 발신자는 상덕이다. 그런데 때마침 문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상덕이다. 공포에 질린 지용. 지용은 당연히 전화를 건 사람이 상덕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지용만 속이지 않는다. 상덕이 호텔 건물로 올라가는 걸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서 관객을 속이기 위해 전화부터 건다. 전화가 진짜 상덕일 거라고 속임수를 둔 것이다. "창문 열어!"라는 소리를 듣고 난 다음의 관객은 '전화가 가짜구나'라는 걸 깨닫고 이내 이 영화의 박력에 압도당하게 된다. 이 장면은 그냥 단적으로 '뭐가 근원인지(진짜 상덕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서스펜스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이 영화가 이 모티브를 다룰 것이에요!'라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겉으로 보기에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분이 안된다는 의미는 '그 대상의 원인과 실체를 규명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모티브는 <파묘>의 카메라나 조명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상덕은 유달리 혼자 움직인다. 그리고 카메라는 성실하게 이를 활용한다. 묘 근처에 혼자 있는 상덕의 모습을 황량하게 보여주면 주인공이 겪는 무기력함을 깊게 체감할 수 있다. 그리고 밤을 활용한 장면도 일부 있다. 화면 구도도 고의적으로 이 고립감과 답답함을 강조하기 위해 촬영된 부분도 어느 정도 있고, 채도 대비나 사무라이 귀신의 형상을 처음 찍는 방식을 봐도 관객이 대상을 쉽게 파악할 수 없게, 그러니까 이것이 뭐가 원인인지 간단하게 이해할 수 없게 설정했다.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 역시 이와 통하는 것이다. 이에 연장선상에서 <파묘>의 카메라는 굳이 담지 않아도 될 것도 담았다. 초반부 영근이 물건을 훔치는 장면이다. 이 장면만 보면 후에 관을 열 사람이 영근일 것 같지만 영근은 그 시간에 국밥 먹고 있었다. 이 관을 여는 연출도 외부에서 누군가가 문을 여는 듯한 연출이기도 했지만 전적으로 '원인을 쉽게 판단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카메라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이렇게 '파헤침'과 '원인을 알 수 없음'이라는 모티브를 반복한 이유가 무엇일까? 글쓴이는 '여우가 뱀의 허리를 끊었다'라는 플롯을 각본으로 형상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영화는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또 '파헤치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되지만 '파묘'하는 행위는 두 번으로 나뉜다. 허리를 끊은 플롯을 구사하는 것이다. 초반부. 박지용의 집안에서 일아난 일을 알지 못해서 묘를 파헤친다. 그 결과 박지용의 집안이 친일파 집안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후반부. 세로로 된 관을 뽑아 결국 오니를 타도하는 데 성공한다. 초반부와 후반부가 나뉜다는 것은 그 지점을 나눈다는 분기점이 있단 의미이다. 초반부와 후반부를 가로지르는 구분선은 박지용의 죽음과 조부상을 화장하는 일이다. 박지용은 죽으면서 상덕에게 '여우가 뱀의 허리를 끊는다'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는 점은 당연히 그 구분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또 다른 부분에서 이 영화가 플롯을 친일파로 치환하고 있다. 사실 이 치환과 비유를 굳이 설명해도 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이야기의 도착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쉽다. 이 신체와 유령으로 치환시킨 일제의 만행은 결국 '한반도의 흐름을 끊은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플롯의 결과만 따져봐도 이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간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 영화의 인물들에게 상처를 내는 캐릭터는 모두가 알고 있듯 사무라이 귀신과 친일파들이다. 이 요소들이 어떤 인물에겐 치명상을 입혔다. 그 인물은 봉길과 상덕이다. 곧 젊은 남자와 나이 든 남자다. 젊은 남자와 나이 든 남자는 과거 조선과 대한제국을 이끌던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이야(그리고 더 독려받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과거에는 그런 영향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거짓말이다. 이 둘은 사실 이야기의 흐름상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굳이 허리를 다치거나 생명에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 부상을 입는다. 왜? 젊은 남자와 나이 든 남자로 암시한 조선/대한민국 사회의 허리를 친일파가 끊어버린 것을 암시해야 하기 때문임과 동시에 상업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하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한반도를 인간의 생로병사로 치환한 부분이 더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글쓴이는 두 가지를 들고 싶다. 결혼과 아이, 그리고 죽음과 노인이다. 결혼이라는 사건만 빼면 나머지 두 캐릭터가 이야기에서 그렇게까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광심(김선영)이 굳이 임신할 필요 없고 첫째로 공격당하는 대상이 아이가 아니어도 된다. 마찬가지로 생사를 오가는 인물이 할아버지 일 필요도 없다. 하지만 굳이 이 둘에게 이런 속성을 부여한 것은 이유가 무엇일까? 고의적으로 이 한반도를 둘러싼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것에 영향을 주는 친일파들을 묘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사실 탄생과 죽음이 우리 인간사의 전부라는 점은 당연지사다). 여기에 덧붙여 <파묘>의 유령이 박지용 일가를 전부 죽이겠다고 선언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글쓴이 입장에서 영화가 흑막을 악마화하기 쉽기 때문에 넣은 대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대상들이 가한 상처를 더 이상 과거와 현재에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까지 향할 것'이라는 경고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렇게 영화가 치밀하게 친일파와 그들의 악행들을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글쓴이는 상덕의 대사에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자손들이 밟을 땅 아니냐!"라는 대사는 자연스러웠다. '원인을 알 수 없어 벌어진 문제'에 대해 근원을 찾아 없애겠다는 대사가 흐름을 깬다고 볼 수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본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 영화에 유령의 실체가 등장한 것도 나름 근거가 있다고 본다. 원인을 찾아야 하고, 그에 응당하게 해결하기 위해선 직접적으로 그 대상이 눈에 들어오는 게 합리적이다. 또 그 귀신이 엄청난 크기의 귀신인 것도 나름 그 역사의식에 대한 코멘트 같기도 했다. 그 당시의 일본 군국주의는 아시아에 그 정도의 공포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끔찍한 상처를 낸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연출들은 당연히 상업적으로도 기승전결이 명확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고른 선택지이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내적 논리에도 걸맞은 흐름이기도 했다. 그리고 상업영화로서 일반적으로 공감하기 쉽다. 보이지 않은 것이 사라졌다는 찜찜한 결론보다 눈에 보이는 게 없어졌다는 엔딩이 이해하기 쉽다. 눈에 보이는 대상이니까. 다만 이런 연출들을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무조건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연결들이 매끄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장점을 위에 길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불호평을 납득할 수 있는 이유는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게 대비되는 것에서 온다. 영화가 스스로의 발목을 여우가 뱀의 허리를 끊듯 끊어버린 것이다. 이 영화의 크게 나눈 1부와 2부는 두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이 등장하는 것과 등장하지 않는 것. 전자는 장재현 감독이 그동안 보여줬던 오컬트 외길인생으로 돌파하고, 후자는 크리쳐가 등장하는 크리쳐물로 변한다. 뿐만 아니라 인물의 동기도 명확하다. 1부에서 인물들은 5억이라는 쉽지 않은 돈을 받기 위해 노력하거나 / 불가해한 악을 규명하기 위해 힘쓴다. 하지만 2부에선 그 동기를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갑자기 상덕이 직업윤리에 투철한 인물이 되거나 그냥 직장상사, 하사 관계인 줄 알았던 화림과 봉길의 과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 1부와 2부의 지향점을 드러내는 방식도 명확하게 꽂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비가 된다. 1부는 할아버지 관을 태울 것인가 / 혹은 아닌가로 갈등한다. 2부는 정보량이 갑자기 느닷없이 많아지는 바람에 글쓴이는 자세한 것들을 나무위키를 읽고 이해했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의 흐름에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가령 주인공 4인방이 보국사로 가는 과정과 '곰'이라는 동물에 관한 부분이 그렇다. 그런 꼴을 굳이 하고 벌초를 하러 갈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그 관문에서 검문하던 인물들은 너무 쉽게 이들을 통행시켜 주는 것은 아닌가. 차라리 그 인물들이 없어야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 산에 곰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라면 보국사의 스님에게는 연락했을까. 산에서 사무라이 귀신의 한바탕이 열릴 때 곰은 과연 무얼 했는가. 상덕이 크게 부상당한 것치고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는 것 아닌가. 공권력이 아예 기능하지 않는 세계관인가. 이야기의 중심을 아주 꽉 쥐고 있다가 후반부에 최소한만 유지하고 풀어지는 플롯 때문에 이런 디테일한 요소들이 이물질처럼 다가온다.
왜 이 이야기의 흐름이 최소한만 유지하고 풀어졌을까. 글쓴이는 인물들 간의 동기를 영화가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부는 오컬트. 2부는 판타지. 영화가 장르를 바꾸지 말란 법은 없다. 가령 <헤어질 결심> 같은 경우 기도수를 죽인 인물을 추적하다가 서래와 해준의 사랑이야기로 결론을 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다만 이 <파묘>는 <헤어질 결심>과는 다르게 이야기를 하나의 동력으로 끌고 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 동력은 인물 간의 동기부여다. 가령 도입부에 잠깐만이라도 상덕이 무슨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를 보면서 애국심이 투철한 인물로 묘사됐다면, 풍수지리사라는 직업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는 인물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더라면, 평소 직업윤리를 잘 지키는 인물이었더라면 상덕의 대사에서 당위성이 생긴다. 또 상덕이 이 영화의 핵심 사건에 매달리는 이유에 조금이라도 근거가 생긴다. 마찬가지로 화림과 봉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봉길이 다쳤다. 화림은 그걸 알면서도 위험을 감수한다. 글쓴이는 당연히 화림이 저 때 저 선택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이런 류의 관계는 보통 로맨스로 결론 내리는 게 일반적이니까. 그리고 <파묘>는 그 선택지를 고른 것으로 보인다. 봉길이 무당이 된 이유가 화림을 좋아해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약 봉길이 화림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무라이 귀신을 보고 도망치지 않았을까? 의협심이 강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후 화림의 행보까지 감안해 본다면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이것까지 담으면 이야기가 난잡해진다고 판단했는지 도입부에 이를 생략해 버린다. 아무 암시도 없다 봉길이 화림을 살리는 선택만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왔던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급작스럽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캐릭터 영근 역시 마찬가지다. 영근은 상덕을 굉장히 신뢰한다. 이 '굉장히 신뢰한다'라는 대사가 직접적으로 '난 형님만 믿어요~'식의 대사로 전개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저 사람은 상덕을 친 형처럼 모시니까 저렇게 행동해!'라고 유추하기 때문이다. 근데 영화는 그 유추의 근거를 주지 않는다. 단지 상덕의 입에서 "여기까지 따라와 줘서 고맙다"라고 말한 것이 전부다. 그 이외에 이에 감정이입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유해진, 최민식 배우가 술 먹고 노는 장면을 쉽게 그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관습적으로 영화를 봐온 것에 기댔기 때문이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글쓴이는 상업영화로서의 노선과 하고 싶은 주제 사이에서 어느 정도는 갈팡질팡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뿐만아니라 원래 대놓고 등장하지 않는 귀신이 등장한 이유. 도입부에 인물관계를 드러낸 이유. 다 속도감 있고 시원한 전개를 위해 과하게 디테일을 생략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빚어진 빈약한 인물서사 때문에 영근의 대사 "말뚝의 99%는 거짓"이라는 말도 뭔가 숙제처럼 들린다. 차에서 "야 김상덕 좀 일어나 봐!"라는 대사도 유해진 배우가 잘 살린 거지 감정선이 급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상황에서 둘이 반말까지 하는 사이인가? 이는 영화에서 "우리 비즈니스 관계지만 부탁 하나 하자"는 대사 때문에 더 두드러지는 단점이다. 영화가 인물들의 인간관계성에 전혀 생각하지 않은 건 않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치명적인 것으로 보이며, 이야기의 몰입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장르적으로 '왜 오컬트 맛 만 줘요'라는 비판을 듣기 아주 쉽다.
이 <파묘>는 장재현 감독이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에 이어 세 번째로 만든 오컬트 영화다. 이런 이유로 이 <파묘>를 기대하시는 분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분들에게 오컬트를 기대하지 말라고 말한다. 왜? 오컬트로서의 장르적 특성을 후반부에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 응당한 근거들을 갖춘 것 같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는 흐름에 맞게 전개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느슨한 밀도를 감당하지는 못했던 <파묘>. 난 재밌어도 이 영화의 불호평에 공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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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주 차 개봉작,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이번 주에는 지상 최대 블록버스터의 피날레부터 많은 어른이와 어린이가 좋아하는 포켓몬스터 극장판 등
다양한 극장 개봉작부터 OTT 공개 예정작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그럼 6월 첫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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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개봉 영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147분
감독: 콜린 트레보로우
출연: 크리스 프랫,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등
개봉: 2022.06.01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줄거리
공룡들의 터전이었던 이슬라 누블라 섬이 파괴된 후, 마침내 공룡들은 섬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출몰한다.
지상에 함께 존재해선 안 될 위협적 생명체인 공룡의 등장으로
인류 역사상 겪어보지 못한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이한 인간들.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 자리를 걸고 인간과 공룡의 최후의 사투가 펼쳐진다.관전 포인트
쥬라기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만큼 압도적인 스케일과 극강의 액션을 담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게다가 북미보다 무려 9일 이상 빠르게 개봉해 전 세계 최초로 대한민국에서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을 즐길 수 있다.
영화는 쥬라기 월드의 스토리의 결말뿐만 아니라 쥬라기 공원의 결말도 담고 있다고 한다.
극장판 포켓몬스터DP: 기라티나와 하늘의 꽃다발 쉐이미
ⓒ 네이버 영화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96분
감독: 유야마 쿠니히코
출연: 이선호, 김영선, 마츠모토 리카 등
개봉: 2022.06.01
배급: (주)NEW
줄거리
끝나지 않은 전설의 포켓몬들의 배틀로
위험에 빠진 반전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감사포켓몬 ‘쉐이미’와 ‘지우’, ‘피카츄’가 나서면서 시작되는 모험 이야기관전 포인트
화제의 포켓몬 띠부띠부씰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 불문하고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는 '포켓몬스터'
DP 극장판 중 유일하게 미개봉 극장판이었지만, 개봉이 확정되면서 아르세우스 3부작 모두 국내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카시오페아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02분
감독: 신연식
출연: 안성기, 서현진, 주예림 등
개봉: 2022.06.01
배급: (주)트리플픽쳐스
줄거리
이혼 후 변호사, 엄마로 완벽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수진은 하나뿐인 딸 지나의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정신없이 바쁜 수진을 위해 아빠 인우가 손녀를 돌보게 되면서 세 사람은 함께 살게 된다.
얼마 후 수진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에서 알츠하이머라는 뜻밖의 결과를 듣게 된다.
사랑하는 딸을 잊을까 봐 두려워하는 수진을 위해 아빠 인우는 수진의 곁을 지키고,
기억을 잊어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들 부녀만의 애틋한 동행이 시작된다.
관전 포인트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넘나들며 매 작품 섬세한 연출력으로 이목을 끈 신연식 감독이
<카시오페아>의 감독을 맡으며 기대를 높이고 있다.
무엇보다 매번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안성기 배우와 서현진 배우가 출연을 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애프터 양
개요: 드라마 | 미국 | 96분
감독: 코고나다
출연: 콜린 파렐, 조디 터너 스미스, 저스틴 H.민 등
개봉: 2022.06.01
배급: (주)영화특별시SMC, (주)왓챠
줄거리
함께 살던 안드로이드 인간 ‘양’이 어느 날 작동을 멈추자 제이크 가족은 그를 수리할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중, ‘양’에게서 특별한 메모리 뱅크를 발견하고 그의 기억을 탐험하기 시작하는데…관전 포인트
애플 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를 공동 연출한 코고나다 감독이 선보이는 SF 드라마라는 점에서
기대를 높인 작품이다. 또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되어 예매 오픈 3분 만에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작으로 등극한 작품이다.
OTT 공개 예정작
오션스 8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110분
감독: 게리 로스
출연: 산드라 블록, 케이트 블란쳇, 앤 해서웨이 등
공개: 2022.06.01
스트리밍: 넷플릭스
줄거리
전 애인의 배신으로 5년간 감옥에서 썩은 ‘데비 오션’(산드라 블록)은 가석방되자마자
믿음직한 동료 ‘루’(케이트 블란쳇)와 함께 새로운 작전을 계획한다.
그들의 목표는 바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미국 최대 패션 행사인
메트 갈라에 참석하는 톱스타 ‘다프네’(앤 해서웨이)의 목에 걸린 1천 5백억 원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치는 것!
디자이너부터 보석전문가, 소매치기와 해커까지, 전격 결성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마침내 실행에 나서는데…관전 포인트
오션스 트릴로지의 스핀오프 작품인 <오션스 8>은 파격적인 라인업으로 화제를 모았다.
무엇보다 역대 오션스 시리즈 중 가장 높은 첫 주 성적을 거둔 작품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140분
감독: 스티븐 스필버스
출연: 마크 라이런스, 사이먼 페그, 올리비아 쿡
개봉: 2022.06.01
스트리밍: 넷플릭스
줄거리
2045년, 암울한 현실과 달리 가상현실 오아시스(OASIS)에서는
누구든 원하는 캐릭터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고 상상하는 모든 게 가능하다.
웨이드 와츠(타이 쉐리던) 역시 유일한 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를 보내는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것이다.
어느 날 오아시스의 창시자인 괴짜 천재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는 자신이 가상현실 속에 숨겨둔
3개의 미션에서 우승하는 사람에게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막대한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그가 사랑했던 80년대 대중문화 속에 힌트가 있음을 알린다.
제임스 할리데이를 선망했던 소년 ‘웨이드 와츠’가 첫 번째 수수께끼를 푸는 데 성공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현실에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IOI’라는 거대 기업이 뛰어든다.
모두의 꿈과 희망이 되는 오아시스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
그리고 우승을 위해서는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세계의 우정과 사랑의 힘이 필요하기만 한데…관전 포인트
어니스트 클라인이 쓴 동명의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을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으며 기대작으로 꼽힌 작품이다.
56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11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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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믿음을 믿으십니까?
종교가 있는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믿음은 어떻게 생겨?" 친구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해주었습니다. "믿으니까 그냥 믿는 거지." 분명하면서도 모호한 답변에 마음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 믿음이란 뭘까?
- 믿음은 어떻게 작동할까?
-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어떻게 확신할까?
- 만약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결되지 못한 채로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질문들은 '이 영화' 이후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클럽 제로> 프라이빗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클럽 제로>는 2023년 1월 24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클럽 제로
Club Zero
엘리트 기숙사 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양 교사 '노벡'은 아이들에게 의식적 식사를 가르치는 특별한 수업을 진행합니다. 의식적 식사는 말 그대로 의식적인 섭취를 통해 과식을 줄이고 주체적으로 음식을 먹는 식사법입니다. 어떤 아이는 아무런 의심 없이 의식적 식사법을 따르고, 어떤 아이는 친구 그룹에 머물기 위해 의식적 식사법을 따릅니다. 또 어떤 아이는 끝까지 거부하다가 학점을 잘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의식적 식사법을 따르죠. 의식적 식사법을 따르게 된 배경은 각기 다르지만, 아이들은 점차 의식적 식사와 영양 교사 '노벡'을 향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아이들이 의식적 식사를 받아들이자 '노벡'은 음식을 아예 섭취하지 않는 극단적인 식사법을 권하기 시작합니다. 올바른 믿음을 가진 몇몇 사람들만 절식의 이점을 누리며 '클럽 제로'의 일원으로 살고 있다는 말과 함께 말이죠. 아주 적은 양의 음식만을 의식적으로 섭취하던 아이들은 결국 '클럽 제로'의 규칙에 따라 아무것도 먹지 않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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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쯤에서 '노벡'이 제시한 의식적 식사를 실천하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음식을 먹기 전에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눈앞의 음식에 정신을 집중하고, 최대한 천천히 음식을 섭취합니다.
적은 양의 음식을 천천히 섭취하는 것에 충분히 적응했다면, 다음 단계는 한 번에 한 가지 종류의 음식만 먹는 것입니다. 역시 음식을 먹기 전에는 심호흡하고 음식에 온전히 집중해야 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절식입니다.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의식적으로 신체와 정신을 통제합니다.
글로 읽어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 설득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이 식사법을 믿고 따르게 된 걸까요? '노벡'은 은밀한 전술을 통해 아이들의 믿음을 조종합니다. 처음에는 과식이 신체, 정신,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설명하며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가르침을 전합니다. 적게 먹는 것이 어떻게 몸의 자정 작용을 일으키고, 어떻게 하고자 하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하며, 어떻게 세상을 더 지속가능하게 하는지 설명하죠.
그런데 섭식을 통한 변화를 이야기하던 '노벡'의 논점이 조금씩 섭식 그 자체로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그럴싸한 명분들은 사라지고, 섭식이 단지 관습적인 것일 뿐이라는 급진적인 주장으로 전환되죠. 평생 먹지 않고 사는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냐고 묻는 아이에게는 "자신이 직접 몸으로 증명했기에 답을 찾으려 들 필요가 없다"는 말로 홀려 버립니다.
교육과 보호를 목적으로 엄격하게 통제된 공간인 엘리트 기숙사 학교에서, 선생님은 최고의 권위자입니다. 아이들은 가르침으로 포장된 조종을 피하기가 어렵죠. 일순간 '노벡'을 깊이 신뢰하게 된 아이들에게 절식은 또 하나의 이상적이며 바람직한 새로운 식사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믿음이 눈을 가린 아이들에겐 생기를 잃어가는 서로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 ⊙ ⊙
의식적 식사법을 웰니스, 자아실현, 지속가능성을 위한 식사법으로 소개한다는 면에서 '노벡'의 말은 언뜻 현혹적이기도 합니다. 이 가치들은 영화 밖 현실에서도 간헐적 단식, 미라클 모닝, 채식주의와 같은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킨 촉매제니까요. 이렇듯 변화들은 으레 그래왔던 관습('하루 세 끼를 먹어야 건강하다', '잠은 충분히 자야 한다', '영양소를 고루 섭취해야 한다')과는 다른 모습을 띱니다. 과거엔 관습만을 단 하나의 진실로 여기는 보수적인 경향이 있었지만, 다양성의 시대인 요즘은 다릅니다. 오히려 관습만을 정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배척당하기 쉽죠. 관습을 부수는 새로운 움직임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된 겁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급진적인 사상들은 더 자유롭게 세상 밖으로 나오죠.
그런데 만약 <클럽 제로>의 의식적 식사법처럼 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사상이 '관습을 깨부수는 새로운 움직임'인 양 모습을 드러낸다면 어떨까요? 누군가 당신에게 세상을 바꾸는 바람직한 식사법이라며 의식적 식사를 제안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가짜 진실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급진적인 움직임인지, '급진'의 탈을 쓴 어불성설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면서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저 관습일 뿐이라고 말하는 '클럽 제로'와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이 관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잘못된 가설일 뿐이라고 말하는 지구 평면설 추종자들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이 진짜 진실이고, 이 시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급진적인 움직임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에겐 그들의 말이 '급진'의 탈을 쓴 어불성설로 들리죠. 그러나 하지만 아주 먼 과거로 돌아가 보면, "지구는 둥글다!"고 말하는 제가 '클럽 제로'나 오늘날의 지구 평면설 추종자처럼 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사상을 따르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관습을 깨부수는 움직임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이 세상에서,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배우는 이 세상에서, 진짜 진실을 쫓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과연 제가 믿고 있는 것들 중 진짜 진실은 몇 개나 될까요? 자기만의 세계 안에서만 존재하는 진실을 진실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클럽 제로>는 누구도 진짜 진실을 알아차릴 수 없으며, 진실은 결국 나의 세계 안에서 형성된 하나의 믿음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썩은 해골물을 맛있게 꿀꺽꿀꺽 마셨다는 원효대사처럼 말이죠. 비슷하게 <클럽 제로>에서도 아이들 중 한 명인 '엘사'가 '의식이 섭식을 통제한다'는 자신만의 진실을 피력하고자 먹은 것을 게워 낸 뒤 그 토사물을 다시 섭취하는 시위를 벌입니다. '엘사'의 현실에서는 그것이 진실이기에 토사물을 다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진실은 믿음이 만드는 허상이라면, 우리는 믿음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 ⊙ ⊙
<클럽 제로>는 소재도 급진적이지만, 연출도 그러합니다. 평범하게 구성해도 무방한 공간들을 형형색색의 화려한 색으로 채우고, 러닝타임 내내 신경에 거슬리는 난타음, 기계적인 줌인, 슬로우 모션 같은 촬영기법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죠. 이러한 연출들로 영화는 한 편의 잔혹동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비현실적인 기묘함이 영화 속 세계에서는 당연한 현실이었다는 걸 생각해 볼 때, 어쩌면 그 세계 안에서 절식은 채식주의와 비슷한 수준의 급진적 움직임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끝까지 진실과 탈진실, 그리고 믿음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영화, <클럽 제로>였습니다.
Summary
최고급 기숙사 시설에서 학생들에게 일대일 특별 교육을 제공하는 엘리트 학교의 새로운 영양교사로 임명된 ‘미스 노백’. 건강을 유지하면서 학습 능력을 키우는 ‘의식적 식사법’을 가르치는 ‘미스 노백’의 다정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수업에 아이들은 점차 빠져들게 되고 더 극단적이고 위험한 식사를 이어가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
출연: 미아 와시코브스카, 마티유 데미, 엘자 질버스테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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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습하면서도 독특했던 5년만의 '봉준호스러운' 금의환향
예술은 자기만의 색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노란색에도 개나리 노란색이 있고, 연노랑색이 있고, 진한 노란색이 있듯, 같은 계열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디테일과 각종 포인트들을 통해서 각 분야의 예술과 그 안에서 예술을 행하는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색깔을 찾고, 만들어나간다. 영화예술을 현 시대의 예술이 선사할 수 있는 최정점의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영화예술만큼 그 색깔이 진한 예술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디테일, 구도, 연결 이음새의 모양, 세트를 만들 때에나 CG처리를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려 할 때 등 형언하기 힘들만큼 많은 부분들에서 영화예술가들, 특히 감독들은 자기만의 색깔을 연구하고, 탐구하고, 제작하여 이 점을 의식하든, 무의식적이었든, 본인이 만들어낸 예술품에 자연스레 녹여들게 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감독님 중 항상 1순위로 꼽히는 감독님 중 한 분이신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론, 감독론, 그만의 색깔은 결코 따라하기도, 흉내내기도 쉽지 않아 보이고, 감독님 스스로도 그게 본인의 무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런 뚜렷하면서 미학적인 색깔에 새로운 터치를 가미하게 된다면 금상첨화이지 않을까?
영화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님의 이전 작품들의 특장점들만을 모아 그만의 색깔을 표출해낸 작품이면서 동시에 그가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또다른 어떤 색깔을 통해 표현해내려 하는지, 또 그걸 통해 어떠한 이야기를 어떠한 식으로 풀어내려 하는지 예고편을 보여주는 것같기도 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 구조와 "미키"의 물아일체(物我一體)
영화 <미키 17>은 기본적으로 소설 원작 '미키 7'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같은 이야기, 같은 등장인물들을 두고 있지만, 봉준호 감독님만의 색다른 이야기와 영화적으로 추가한 캐릭터들을 통해 감독 본인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추가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어떠한 걸까? 죽는 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이러한 질문들을 지속적으로 영화 내에서 인물들의 입과 대사, 행동을 통해서도 표현하지만, 가장 특이한 점은 이를 영화적 구조, 연출적 방법을 통해서도 그러하다는 점이다. 영화는 시작함과 동시에 주인공인 "미키 17"이 크레바스로 떨어져 기절했다가 다시 깬 상황을 보여준다. 이윽고 "미키 17"을 구하러 와준 줄만 알았던 친구 "티모"가 화염방사기만 챙긴 후 '넌 다시 재생하면 되잖아'라는 말을 전한 후 버리고 떠나기 전 '죽는 것은 어떤 기분이야?'라고 질문한다. 인상적인 건, 이 지점부터 "미키 17"의 목소리가 나레이션, 보이스 오버되고, 영화적 구조는 루핑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쩌다가 "미키 17"이 재생형 인간이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과거사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이는 영화의 종반부, 버튼을 눌러 재생장치를 폭파시키 전 일종의 트라우마가 상기되듯 다시 한번 루핑되어 과거의 시간대로 돌아가 니플하임 총사령관 "마샬"의 아내 "일파"를 만나게 되는 씬에서 반복된다.
영화는 루핑을 통해 영화 자체에 순환적 구조를 취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주인공 "미키 17"이 죽음 이후 재생되는 삶, 반복되는 삶을 영화적으로도 구조화한 것처럼 보인다. 더불어, 그런 순환적인 구조를 영화의 극초반부와 극후반부에만 배치해두고, 정작 본 이야기에서 영화는 순환을 그리 사용하지 않는다. 어쩌면 영화는 "미키"의 죽음이 가볍게 처리되고, 소비되는 극초반부와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죽음을 맞닥뜨린 "미키"의 이야기를 다룬 본 이야기에 극명한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 이를 구조적으로도 표출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듯, 또 하나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바로 보이스 오버이다. 봉준호 감독님의 이전 필모그래피를 보게 되면 본 작품만큼 보이스 오버를 빈번히 사용한 작품이 또 없다. 이런 차이가 존재할 수 있는 데에는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성에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영화 <기생충>에서의 주인공인 '기택 가족'을 영화는 주로 비추고, 그들이 겪는 이야기를 통해서 서사를 풀어나가지만 결코 그들의 이야기가 오로지 영화의 메시지가 되지는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 그들이 행하는 행동들, 겪게 된 순간들로 무언가 다른 메시지를 함축시키고, 관객들은 이를 통해 세 가족 간의 복잡한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그 메시지를 찾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영화 <기생충>의 기본 틀이다. 영화 <미키 17>은 그와는 달리, 오로지 "미키"라는 인물이 그동안 겪어왔던 시련들과 아픔들을 비추고, 사건을 헤쳐나가면서 결국 성장하게 된 일련의 과정을 관객들에게 직접 보여줌으로써 보다 주관적이고, 1인칭 시점스러운 관점에서 인물에게 이입할 수 있는 틀을 가지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시시각각 이야기의 배경사를 알려주고, 본인의 과거 이야기를 관객에게 소개하듯 들려오는 보이스 오버는 관객을 인물에게 몰입시켜 "미키"리는 인물이 변하게 되는 과정을 온전히 느끼게 한다.
- '봉준호'식 블랙코미디로 사회를 꿰뚫다.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를 솔직히 셀 수 없지만 그 중에서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블랙 코미디'이다.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 세계를 보게 되면 한번쯤은 어느 포인트에서라도 웃게 하고, 특유의 재치와 유머를 통해 관객들을 즐겁게 하지만 동시에 그를 통해서 사회적 통념을 꿰뚫게 하고, 유머가 지속되다 순간 바뀌어버리는 상황 속에서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에게도 영화의 메시지와 질문을 반문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은 봉준호 감독님만의 영화적 센스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영화 <미키 17>은 이전 필모들과는 굉장히 다르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작품이고, 또한 특유의 재치와 유머에 사랑스러움까지 입혀져 이전 작품들에선 느낄 수 없었던 행복의 감정까지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결코 이런 점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우리 사회를 직시하게 하고, 마치 현 상황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지금 당장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적 문제, 형언할 수 없는 혐오와 차별의 시대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이 바로 이번 작품, 영화 <미키 17>이었다.
영화는 초반부와 중반부 심지어 후반부까지 "미키"에게 죽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지 물어보는 인물들을 마치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관객에게 이 질문에 대해 결코 잊지 말라는 듯하는 것처럼 들린다. 물론 그들 중에선 진심으로 그 감정이 궁금해서 일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대부분 이 점을 통해 "미키"를 비꼬기 위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생각해볼 점은 "미키"가 익스펜더블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맞지마 익스펜더블을 만든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지구에서의 상황이 채무로 인해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이었어서 다른 선택을 하기 힘들었기에 내린 결론이었지만, 남들이 기피했던 익스펜더블을 선택했고, 극한직업이라는 사실까지도 알았지만 결론적으로 다른 이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먼저 해주는 개척자이면서 희생자이고, 영웅이기도 한 인물이 바로 "미키"이다. 그를 추대하고, 영웅처럼 모시지는 못할 망정 그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어차피 다시 재생되기 때문에 처분해도 된다는 이유로 그를 무시하고, 매몰시키고, 버리는 행위들을 "미키"에게 일삼는 장면들이 빈번히 등장하는데, 이 점이 영화를 관람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새로운 곳을 개척하고, 이주 지역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너무도 필요했기에 그 역할을 만들었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역할로서 따가운 시선을 받는 직업을 택한 사람마저 무시하고, 천대하고, 끝까지 실험용 쥐로서 사용하려는 영화 속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이는 영화에서만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지금도 그러한 인식과 시선으로 인해 우리를 위해 험한 일까지 도맡아 고생해주는 이들에게 오히려 무시하고,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끔 한다.
영화 <미키 17> 속 "미키"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 바로 니플하임 총사령관 "마샬"과 그의 아내 "일파"이다. 리더십도 없고, 본인의 자유의지로 무엇을 하려는 듯한 생각도 없어보이는 "마샬"과 그를 뒤에서 조종하고, "미키"와의 식사 중 고통에 몸부림칠 때에도 본인의 카펫의 보존만이 중요했던 "일파"는 어찌보면 니플하임 행성 개척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젯거리로 보인다. 쓸데없이 큰 돌을 가져와서 하는 거라곤 돌 안에 이름을 새겨 기념을 하자는 얼토당토않은 행사를 개최하고, 탐사 중 동료가 눈 앞에서 죽은 대원들에게, 특히 "미키"에게 '너가 죽었어야지.'라는 말을 일삼으며, 심지어 대원 중 한 명인 "카이"에게 끔찍한 제안까지 건네는 "마샬"은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최악의 리더의 표본이면서 동시에 그런 그의 죽음은 그런 리더의 말로는 이러함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어쩌면 작품 속 "마샬"보다도 "일파"가 더 중요해보인다. 그러한 데에는 그들이 대화를 하거나 "마샬"이 무언가 연설을 하던 와중에도 "일파"가 자료를 주거나 연설 내용을 바꾸고, 바꾸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그녀가 '소스'에 극도로 집착한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그토록 소스에 집착했던 이유, 이를 영화에 연출한 이유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일파"는 소스를 첨가하는 건 그 행위 자체로 본인들의 고결성을 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저히 사람이 먹는 것이라고 말하기 힘든 음식을 제공받아 먹는 대원들과 달리 신선한 과일, 신선한 육류로 만든 무언가를 먹으면서, 심지어 소스까지 더해먹는 본인들은 평범한 그들과는 다른 무언가의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건, 다른 무언가로 존재하고 싶고, 군림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 소스를 첨가하는 이들이, 정말 남들과는 다른, 그래서 차별받고 무시받는 "미키"를 더 가세해서 무시하고, 멸시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녀 자체가 소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음식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맛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신선한 원재료들로 만들어진 디쉬 위에 올려간 소스는 맛을 증폭시키고, 배하긴 하지만 그 자체로 음식이라고 표현하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일파"의 과거 이야기는 영화 속에서 등장하지 않았지만 사실 "일파"라는 인물은 남편인 "마샬"이 니플하임의 총사령관이 아니었다면, 혹은 "마샬"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그토록 무시하는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보통의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마샬"을 뒤에서 조종하고, 종속시켜 스스로의 뜻을 풀어나가려 하지만 정작 구속되고, 종속되어있는 것은 본인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하는 "일파"는 원재료와 디쉬의 메인에서 벗어나지 못해 메인을 더 밝게 비춰줄 수 밖에 없는 소스에 불과하다.
니플하임에 이주하여 정착하게 된 지구에서 온 인간들. 맞닥뜨린 불명의 존재에게 그들은 '벌레'를 뜻하는 "크리퍼"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마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으로 도착하여 이미 정착해있던 원주민들에게 본인 마음대로 '인디언'이라고 명명한 것처럼 말이다. 인간을 해하려고도, 침범하려고도, 위해를 가하려하지도 않았던 "크리퍼"들은 미지의 존재에 그저 놀라 공포에 휩싸인 인간들에 의해 공격받아 한 마리가 죽게 된다. 이런 상황은 물론 영화적으로 연출된 상황이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우리가 역사적으로 꽤 반복해왔던 일들이다. 영화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외계인인 상태에서 이미 정착해있던 원주민들, 토착민들에게 외계인이라는 별칭을 부여하게 되는 우리의 습관, 이는 인간의 오만함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이 인간의 오만함을 비판하려고 하는 것인지, "마샬"의 행동, 그가 내리는 어리석은 지령들, 사람들의 "크리퍼"에 대한 인식들에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대사 속에도 깨알같이 이를 녹여내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재밌는 건 작중 시점이 2054년이라는 점 그리고 인간 재생장치가 개발된 시점이라는 걸 감안하고 본다면 우주선 내부나 니플하임 속 개발 상황이 굉장히 최첨단이고, 하이 테크놀로지스러운 분위기를 취할 수 있을텐데 그렇지 않고, 노출 콘크리트 카페와 같이 배관이 그대로 들어나고, 각종 가스들이 여러 군데에서 분출되는 배경을 보여주어어 스스로를 굉장히 우아하고, 고결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의 그 오만함을 깨뜨리는 또 다른 독특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 반복되는 죽음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가 되어 성장하다.
16번의 죽음을 맞은 "미키". 어느날 기계의 오류인지, 과학자들의 실수인지 살아있는 상태에서 또 하나의 본인이 복제되어 "미키 17"과 "미키 18"이 공존하게 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카이"가 죽는 것은 어떤 느낌이냐고 물었을 때, 이에 대해 "미키 17"이 죽는 것이 아직도 두렵다고 말하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시간이나 목숨이나, 삶이나, 죽음 등을 뒤바꿀 수 있는 여타 영화들에선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그 반복되는 상황을 또 한번 맞닥뜨리게 되는 것들에 대해 그리 두려움을 느끼지 않거나 두려움을 느껴도 내색하거나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영화 <미키 17>에서의 주인공 "미키"는 반복되는 죽음, 16번째의 죽음이 이어졌음에도 아직까지도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는 장면은 마치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라는 점에 대해 영화가 직접 답을 해주는 것만 같았다.
영화 <미키 17>이 SF의 장르를 띄는 특징을 제외하고, 다른 어떤 장르를 차용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다면 필자는 주저 없이 '성장 영화'의 장르를 띄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나 영화 <보이후드>처럼 성장 영화가 서사의 주를 잡고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작품을 전부 보고난 후면 영화가 성장 영화의 한 축을 서고 있음을, "미키"라는 인물이 성장했음을 그리고 최초에 영화가 타이틀을 보여줄 때 '미키 17~19'으로 넘어가는 장면이 종반부에서 '미키 반즈'로 변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사고로 인해 "미키 17"과 "미키 18"은 공존하게 되었고, 이 둘은 '멀티플' 상태에 놓여지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미키 17"의 온순하고, 착하면서 다소 멍청한 성격과는 달리 "미키 18"은 다혈질에 항상 화가 나있는 성격을 가졌다. 영화가 성장 영화적 특성을 지닌다는 특징은 "미키 17"과 "미키 18"의 성격 차이 그리고 그 성격 차이가 결국 서로 융화되어 변하게 되었다는 결론에서 드러난다. 항상 누군가를 '죽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미키 18"의 최초 살해 타겟은 바로 "미키 17"이었다. 당연히 멀티플 상황이 발생하면 누구 하나는 죽어야 둘 다 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에 있어 "미키 17"은 늘 겪는 죽음이라 괴롭고, 공포스럽지만 이에 순응할 줄 알았으나 인상적인 대사 하나를 던지게 된다. '이번에 죽으면 정말 죽는 것만 같다.' 동일 인물이고, 두 인물 모두 하나의 몸에서 재생되어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만 "미키 17"이 죽는다면 "미키 17"으로서의 재생이 이루어지지 않고 현실에 남겨져 있는 "미키 18"이 그 삶을 이어나간다는 사실은 굉장히 복잡하면서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서로를 죽이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던 와중 "미키 17"이 "마샬"에게 받은 수모를 듣던 "미키 18"은 "마샬"을 죽이자는 결론에 도달하여 죽이려 다가가는데, 이 지점으로부터 영화의 변화가 시작된다. 계속해서 서로를 죽이려 하고, 서로의 존재를 탓하던 둘은 결국 서로에게 공감하고, 서로의 존재에 위안이 생겨 서로의 공통된 타겟인 "마샬"을 죽여야 되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는 이러한 인물의 관계의 변화뿐만 아니라 각 인물의 성격마저 변하여 결국 성장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미키 17"과 "미키 18"은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인물처럼 비춰지게 되고, 외양만 같지 사실은 다른 인물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 그런 관점에서 "미키 17"의 고통을 다혈질적이고, 욱하는 성격의 "미키 18"이 공감하고, 위안하려는 모습, "미키 18"의 분노서린 성격을 억제하여 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이 한 몸 바치려 하는 쭈굴이었던 "미키 17"의 변화가 이어진다. 이는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격발하게 된다. "마샬"은 급기야 "크리처"들과 전쟁을 펼치려 했고, 이를 저지하여 세상을 구하러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키 17"과 "미키 18"은 밖으로 향한다. 각종 사투를 벌이다 스스로를 영웅 추대하러 나온 "마샬"을 죽이러 "미키 18"은 달려가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 그때 버튼 한 개만 누르면 "마샬"을 죽이는 동시에 본인도 함께 죽을 수 있는 상황과 부딪히다. 잠시 죽음에 망설이던 찰나, 그는 "미키 17"을 쳐다보고 버튼을 눌러 그를 희생해 세상을 구하게 된다. 늘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혈안되었던 "미키 18"이 결국엔 자신의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그 삶이 마무리되는 장면 은 "미키 18"이라는 인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동시에 "미키 17"에게도 변화의 또 다른 밑거름이 되어준다.
"미키"의 여자친구이자 작중 가장 강단있고, 리더십이 있는 "나샤"가 위원장이 되어 더이상의 익스펜더블은 존재하지 않음을, "미키"도 익스펜더블로서의 무시와 멸시에서 벗어나 인간들을 구한 영웅임을 선포했다. 재생장치 폭파 버튼을 손에 쥐고 있던 "미키"는 빨간색 버튼을 보고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는 어릴 적 본인이 빨간색 버튼을 잘못 눌러서 엄마가 사고로 죽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느 누가 생각해도 억지라고 하겠지만 "미키"만큼은 너무도 이에 대해 진지해서 아직도 트라우마에 빠져있다. 생각에 잠긴 "미키"는 다시 과거 시간대로 돌아가 재생장치 앞에 서 있다. 그곳엔 소문으로 자살했다고 했던 "일파"가 있었고, 폭발로 사망한 "마셜"이 재생되고 있었다. "일파"는 그에게 너무도 심한 모욕서린 말들을 내뱉었고, 그녀의 손으로 붉은 피들이 모여 버튼의 형상을 띄게 되었다. 그녀는 본인의 특제 소스이니 한번 먹어보라고 전한다. 아마 그녀는 "미키"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모두 "미키"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트라우마들이 모여 만들어진 허구의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키 18"을 만나 세상을 구하고, 희생을 배우고, 다름을 알아가며, 본인에게 주어진 마지막 삶에 기쁨을 알게 된 "미키"는 "미키 18"에게 배운 강단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버튼을 눌러 재생장치를 폭파시킨다. 영화는 최종장에 이르러 "미키"라는 인물이 어떤 식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성장하게 되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주면서 결론을 짓고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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