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서2023-02-27 03:23:28
<더 웨일/The Whale, 2023>
영화 <더 웨일> 후기
작년 9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이어서 오랜만에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아카데미에서의 수상 여부도 궁금했던 <더 웨일>입니다. 그나저나 이번 주에 <타르>도 그렇고 <서치 2>도 그렇고 볼 게 많은데 주말에 일정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서치 2>는 다음 주에 관람할 거 같네요.
하여튼 <더 웨일>은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 작품이라는 점에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애로노프스키 감독 작품은 <블랙 스완> 한 작품 밖에 관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블랙 스완>은 꽤나 강렬하고 지독한 영화였거든요. 그래서 조금 긴장을 하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무겁고 지독한 스타일의 영화는 아닌 편입니다. 그럼에도 쉬운 영화는 아닐뿐더러 여러모로 서늘하게 다가오는 부분들도 있더군요. 딸과 아내를 버리고 동성 연인을 택했지만 연인이 사망한 뒤 폭식증에 시달리며 죽음 앞둔 찰리가 자신의 딸과 화해하기 위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뒤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의 모습을 그리면서 삶을 살 때 고치고 또 고치며 진실되게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죠. 더불어서 애로노프스키의 가족 영화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도 합니다.
영화를 이야기할 때 브렌든 프레이저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작품의 그 자체처럼 보이기도 하는 브렌든 프레이저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진실한 연기를 펼칩니다. 개인적으로 <미이라>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브렌든 프레이저를 상당히 좋아하는데요. 그가 이렇게 복귀해서 너무 기쁘더군요. 여러 가지 일이 겹치면서 실제로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기도 했던 브렌든 프레이저가 그간의 삶에 대해 울분을 토하듯 선사하는 연기는 깊게 빠져들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영화 내 이야기를 떠나 그의 삶의 일부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굉장히 제한적인 공간임에도 상당히 동선이 많고 카메라의 워킹이 독특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연극을 원작으로 하더군요. 연극적인 느낌이 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272kg이라는 소재는 찰리 스스로 느끼는 자신에 대한 역겨움을 관객들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느끼게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인상적인 부분이 많긴 했어요.
다만 아쉬움도 있었는데 다소 과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고, 여러 인물에 대한 묘사가 조금 부족하거나 모호하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특히 딸과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약간 애매하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기도 했는데 이 때문인지 몰라도 클라이맥스에 대한 몰입감이 오히려 떨어지기도 하는 단점을 야기하기도 하더군요. 더불어서 그리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 플롯과 주제의식이 몇몇 사람들에게 조금은 평범하고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달까요.
걸작이라고 평할 수는 없는 영화이지만 훌륭한 영화고, 이와는 별개로 브렌든 프레이저의 연기는 이견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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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진짜 그렇게 별로였어?
그가 돌아왔다! 최동훈 감독이 돌아왔다! 이창동 감독이 <버닝>을 내고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냈으며 홍상수 감독이 <소설가의 영화>를,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을 내고 나서야 그가 신작을 발표했다. 제목은 <외계+인>. 우리나라 충무로의 슈퍼스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무려 김태리, 류준열, 김우빈이다! 최근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호평을 받았던 두 배우와 류준열이라는 스타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감독이 최동훈인데 믿고 보는 배우 세명이 등장했다. 이거 실패할 수가 없는데?
그런데 영 시원찮다. 시사회 평부터 관객 평까지 안 좋은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이를 증명하듯 관객수도 200만 명이 안 된다. 손익분기가 700만 명인데 관객수가 200만이다. 또 다음 주에 <한산 : 용의 출현>부터 조던 필 감독의 <놉>까지 기대작이 주마다 한 번 있기 때문에 여기서 터트려야 관객을 더 모을 수 있다. 그런데 영 답답한 흥행성적은 아쉽기만 하다. 나는 이 영화가 좀 아쉽다. 근데 이 정도면 여름 한국영화 대작 상영회의 좋은 스타트를 끊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기대했던 신작이 지금 극장에 걸려있다. 1380년의 고려와 2022년의 대한민국으로 날아간다. <외계+인>이다.
두 시점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가드는 일을 하고 있다. 가드가 하는 일은 탈옥한 외계인을 잡아 포획하는 것. 고려시대의 어느 시기로 돌아간 가드. 도착하니 한 여자의 몸이 부유하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것 같은 여자. 이미 죽은 여자를 뒤로 하고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썬더가 가드를 멈춰 세운다. 아이 한 명이 저기서 울고 있다는 썬더. 아이를 해치려는 불량배들을 손쉽게 때려잡고 다시 현재로 돌아간다.
어느덧 현재. 아이는 학교에서 적응하는 게 어려워 보인다. 깔끔한 슈트를 입고 아버지처럼 교장실에 앉아있는 가드. 딸이 경찰에게 아버지를 신고했던 것 같다. 뇌를 자극해 실험 개체로 사용하고 있다는 걸 폭로한 것 같다. 황당할만한 이야기지만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다. 로봇이라 그런가? 아무렇지도 않게 썬더에게 영상 삭제를 주문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 가드에게 누군가가 말을 간다. 아마 같은 학부형인 것 같다. 누가 봐도 가드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 할 일이 또 생겼기 때문에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차를 탄다. 썬더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외계행성이 침입해 인간의 몸에 침투하려는 일을 계획하는 것 같다. 모든 인간들을 서서히 포박시켜 일을 벌이는 외계인. 그런데, 가드가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일어났다.
시점은 과거로 돌아간다. 도사 무륵은 동네 주막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냥 조용히 도술만 부리고 사는 게 아니다. 사람들 앞에서 도술을 뽐내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는 무륵. 무륵은 현상금 사냥꾼이다. 어느 날 현상금이 꽤 달려있는 여인과 신검이라는 무기를 보게 된다. 엥? 이 정도나 해? 개똥이를 찾아가 신검에 대해 묻는 무륵. 신검은 개성에 있는 현감 도사에게 있었고 이를 찾기 위해 수도에 도착한다. 그렇게 만난 현감의 집에서 21세기의 수트를 입은 남자를 찾은 무륵. 저 놈 뭐지? 금세 남자는 현감을 살해하고 신검을 찾아 도주한다. 무륵을 어렵지 않게 제압한 현감 도사이기에 무륵 일행은 놀란다. 그렇게 신검을 찾는 모험을 떠나는 무륵. 여행을 지속하면 할수록 이상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7년 만에 돌아오다
최동훈 감독이 7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재미있는 영화 만들기로는 서러운 최동훈 감독이다. 타짜>부터 <도둑들>까지 캐릭터 설정과 서스펜스 만들기로는 둘째 가기론 서럽다. 이 감독 손 아래에서 만들어진 밈도 굉장히 많다. 오래전 밈인 ‘나 이대 나온 여자야’부터 비교적 최근 것인 ‘묻고 따블로 가!’까지 섹시한 대사 작문법이라고는 우리나라 최고다. 또 캐릭터 간 갈등 구성을 잘 만들었다. <도둑들>에서 마카오박을 중심으로 짜인 갈등이나 <도둑들>에서 나온 친일파 처단 서사는 흥미롭다. 친일파 처단 서사는 안성탕면 같은 느낌이다. 사실 너무 많이 나온 이야기다. 근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일제의 만행에 분노했던 적이 한번쯤 있기 때문에 알면서도 시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이유는 당연히 감독의 연출 능력 때문 아니겠어? 염석진 캐릭터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는 건 이 인물이 무작정 악하다는 식의 묘사가 아닌 인간적으로 나쁜 내면을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아는 맛’을 맛깔라게 살린 후반부의 ‘그리 될 줄 몰랐으니까!’와 함께 시너지를 낸다.
또 기존 배우들의 다른 면모를 뽑아내는 시각 역시 최동훈 감독의 특장점이다. 이정재 배우가 <암살>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는 상한가를 제대로 치고 있었다. <관상>에서 수양대군을 맡아 악한 캐릭터도 잘 소화했고, <도둑들>에서도 뭔가 찌질해 보이는 나쁜 놈 역할을 잘 묘사했다. 근데 이 두 악역과는 살짝 결이 다른 염석진 캐릭터로 이정재 배우의 (당시까지) 최고작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앞서 쓴 바와 같이 친일파 서사는 다 아는 맛이다. 그 아는 맛이 시원하긴 한데 전형적인 느낌이 강하단 건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이정재 배우에게 특별히 악한 캐릭터를 덧붙인 최동훈 감독의 개인 역량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당시 라이징 스타 바로 직전이었던 김수현 배우를 섹시하면서도 순수한 이미지를 부여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또 <전우치>에서 강동원 배우가 맡은 전우치 역도 이 배우가 아니면 소화하기 어렵다. 일단 잘생겨야 하며 액션 연기도 괜찮아야 한다는 기본 전제조건에서 벗어나 꼼꼼한 설정을 잘 소화했으니 전형성에서 벗어나 임팩트 있는 인물을 만든 건 감독의 특장점 중 하나다.
그리고 이 감독은 근본이 있다. 무슨 말이냐면.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이야기 잘 만든다. 흥행이 잘 된다? 대중적인 이야기를 잘 만든다는 말이 된다. 평균 관객 810만 명대의 수치가 증명한다. 이 이야기 만들기의 최고 강점은 <범죄의 재구성>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뭐 없는데 이야기랑 대사만으로도 빨려 든다. 아무 생각 없이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잘 만드는 최동훈 감독. 자타공인 영화 덕후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호불호가 안 갈리게 추천할 수 있는 그의 필모그래피다. 이 <외계+인>에서도 세 장점이 발휘되었다고 생각한다.
희미하게 박혀있는 인장
그의 장점을 역시 영화에서 확인할 수는 있다. 일단 캐릭터 설정이다. 조우진, 염정아, 김의성 세 배우의 열연은 대단하다. 일단 이 세 배우들은 충무로에서 입증이 된 배우들이다. 근데 뭔가 내 기억 속에 이 배우들이 전형적인 조연은 맡은 적 없던 것 같다. 그나마 <부산행>에서 본 느낌? 이 영화에서 세 배우가 맡은 캐릭터들이 어느 정도는 뻔함에도 불구하고 개성이 있고 생생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최동훈 감독이 장점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우진, 염정아 배우는 시종일관 빛난다. 뭔가 루즈한 부분 부분마다 적절하게 등장해서 분위기를 환기한다. 후술 하겠지만 뭔가 좀 달라붙지 않는 대사 톤을 이 둘의 개인기로 주파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또 김의성 배우가 맡은 역도 연기에 페널티가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또 다른 역으로 소지섭 배우가 맡은 역할도 초반부가 좀 많이 어색해서 그렇지 중후반부 이야기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되어준다. 뭔가 네 배우가 이런 역을 잘 맡았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막상 하니 너무 잘해서 오히려 그게 신선한 느낌? 조연진이 아니더라도 류준열-김태리-김우빈 배우는 개성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배우들이 얼마나 뛰어나냐! 의 차원이 아닌 캐릭터의 개성이라는 관점에서 이 세 배우는 기억에 남는다. 특히 김우빈 배우는 정말 열심히 연기했다.
그러나, 이 캐릭터 설정이라는 장점이 뒤돌아와서 단점으로 작용됐다. 바로 썬더 역이다. 극의 설정상 썬더는 목소리 더빙으로만 출연한다. 이 목소리 더빙은 차라리 없는 게 나았다. 담당 배우가 중성적인 톤이라서 넣은 것 같은데 기계와 어울리지도 않았고 연기 디렉팅도 어색했다. 이게 단순히 디렉팅의 문제로 끝나면 다행인데 이는 극에서 번갈아 제시되는 현대 서사의 응집력까지 깨버린다. 대비가 될 정도로 고려시대 서사에서 잘 된 집중을 썬더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전부 해체시킨다는 건 이 영화의 접근 장벽을 높이는 장애물이 된다. 이 단점은 유머가 재미없다는 것과 이어진다. 현대 시점의 유머는 재미까지 없고 어색한 썬더의 목소리 톤 때문에 산만하기까지 하다. 이 현대시점의 영화의 요소들끼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치명적이다. 안 그래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액션신에 불호 요소를 덧붙히기까지 하니 말이다.
또 이야기 구성 역시 잘 짰다. 이 영화의 장르는 여러 가지가 있다. 스릴러, 미스터리, sf, 다크 판타지, 스페이스 오페라, 액션, 로맨스, 드라마까지 여러 요소를 붙여놓은 것이 이 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알겠지만 사실 겉으로 보이기에 그렇게 보이는 거지 영화는 자체는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SF 탈을 쓴 미스터리 영화다. 부차적으로 코미디 요소가 들어가거나 로맨스 코드가 들어가긴 하지만 극을 이끄는 원동력은 미스터리다. 이 미스터리로 밀어붙이는 힘 자체는 좋은 편이다. 이 때문에 여러 단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을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은 이유가 된다. 감독의 연출력이 발휘된 셈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단점으로 발현된다. 일단 이야기에 떡밥이 너무 많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MCU 영화들도 다른 작품에 대한 떡밥이 많다. 일단 글을 쓰며 갑자기 생각나는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와 <팔콘 앤 윈터 솔저>다. 마블 코믹스 원작에 '썬더볼트'라는 조직이 있다. 어쩔 땐 빌런이 되고 히어로가 되는 조직이다. 이 팀을 조직하는 건 헬무트 제모다. 제모는 끊임없이 <썬더볼츠> 떡밥을 던졌다. 그리고 이 떡밥은 실현된다. 차후에 mcu에서 <썬더볼츠> 관련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mcu도 떡밥을 천천히 던진다. 앞에 쓴 <시빌 워>에서도 후반부 반전 요소도 mcu의 다른 영화들 속에서 끊임없이 제시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주인공 3인방의 서사 + 신검의 용도 + 외계인들의 목적까지 2시간에 다 때려 박았다. 이 때려 박은 떡밥들이 중후반부에서는 어느 정도 치환되긴 하지만 좀 영화가 급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이 떡밥을 전부 소화시키기 위해 극이 너무 친절하기까지 하다. '전투 승리까지 1%, 2%' 식의 대사는 거의 한 4년 만에 들은 대사 같다. 의도가 보였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2부 흑막과의 대결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장점도 분명하고 단점도 명확했던 셈이다. 물론 이런방식과 퀄리티도 최동훈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너무 조급했는지 마블이 서서히 쌓아 올린 이야기를 너무 간단하게 접근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 단점은 앞에서 쓴 '대사 톤이 따로 노는 것'과 어울려서 불호 요소를 하나 더 추가한다. 심지어 유치한 대사들이 도드라지기까지 하니 최선의 선택지에 딸려온 단점이 되는 셈이다. 분명 이야기는 재밌다. 잘 만들었다. 근데 안 좋은 것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그래서 이런 불호 요소가 모이다 보니 영화 자체가 2부를 위해 소모적으로 쓰인 느낌이다. 영화가 왜 유치하냐. 이 세계관을 확실하게 설명해야 하니까. 왜 코미디 요소를 넣었냐. 대중적인 코드를 공략해야 2부의 이야기를 소화할 수 있으니까. 떡밥 왜 많냐. 자신 있으니까. 다 이해는 된다. 그런데 이런 극의 방향성이 2부의 완결성을 위해 제시됐다는 느낌이 강하니 이런 표현방식이 과연 옳은지는 모르겠다. 영화 재밌었다. 근데 아쉬운 게 너무 많다. 돈 많이 쓴 티 난다. CG도 좋고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하나로 해소되는 쾌감도 좋다. 그런데 이게 정말 최선일까? 싶은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나의 이 영화 총평은 '재밌었다'다. 엄청 잘 만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 만든 것도 아니다. 그냥 액션/sf 영화로 보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여름 기대작 4편의 스타트를 잘 끊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게 가하는 혹평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분명히 단점이 맞다. 이 사람이 만들었다고 볼 수 없는 유치함은 크리티컬 하다. 그런 안 좋은 평에도 이 영화는 극장에서 볼 가치는 있다. 섬세하게 끝내지는 못했어도 단점들에 대한 성찰이 보이기는 하며, 감독의 장점도 발휘되는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 주 수요일(7월 27일) 개봉하는 <한산 : 용의 출현> 평가가 지금 심상치 않다. <명량>에서 제기됐던 악평을 보완한 좋은 영화가 나왔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탑건 : 메버릭>과 <헤어질 결심>의 뒷심이 무서워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흥행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이런 혹평에도 이 영화의 장점이 외면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재미있다. 기대치를 높이던 안 높이던 보기는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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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2022)> 리뷰
- 다니엘 콴 &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2022)>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없는 시간을 쥐어짜며 두 차례나 볼 만큼 좋았고, 처음 울었던 것과 똑같은 부분에서 눈물을 흘린 영화인데도 주변 사람들에게 제대로 추천하지 못했다. 물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곳곳에 등장한 매니악한 개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이 엄청난 영화를 고작 몇 마디의 말로 응축시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더글라스 애덤스 식으로 요약하자면 '42'에 대한 영화라고 하겠지만.). 플롯을 설명하려 시도할 때마다 나는 항상 대단한 벽에 부딪혔다. 이 영화는 선형적이지도, 순환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끝나지 않는 하나의 그물망과 같은 영화이므로. 설명하자니 고난 그 자체이지만, 도무지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나는 오늘 감히 불가능한 일을 시도한다.영화의 주인공인 에블린 콴(양자경)은 일상에 지친 중년 여성이다. 남편 웨이먼드 콴(키 호이 콴)은 다정다감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은 영 떨어지고, 하나뿐인 딸 조이(스테파니 수)는 대학교를 중퇴한 후 동성 연인 베키(탤리 메델)와 함께 집을 나가 산다. 에블린의 아버지(제임스 홍)는 자신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에블린을 조금쯤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 보이는데, 콴 부부는 부유하고 여유롭게 살며 능력을 증명하긴커녕 세무조사로 인해 운영하는 코인세탁소마저 가압류 명령을 받을지도 모를 만큼 위태롭다. 설령 실망으로 가득하다 하더라도 에블린 자신이 거듭 선택하고 판단한 삶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녹록지 않은 일상 속에서 피어날 듯 말 듯 한 상상력조차 에블린은 스스로 차단하며 삶에 책임을 지고자 한다. 그런데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다른 우주를 살던 알파 웨이먼드가 나타나 이렇게 속삭인 것이다. 거대한 악, 조부 투파키를 막아야만 해.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어.이미지 출처: IMDb가까운 사이가 친밀한 사이와 동의어가 아니라는 건 이미 영화 <레이디 버드(2017)>가 짚었더랬다. 사랑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어색한 모녀, 그저 딸이 최고의 모습으로 살길 바라는 엄마 마리온(로리 멧칼프)을 떠올려보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에블린 역시 비슷한(그리고 한국인에게 너무도 익숙한) 캐릭터다. 메인 우주 속 에블린은 딸의 동성 연인을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소개하지 않고, 이미 상처 입어 뛰쳐나가는 딸에게 살쪘다는 말을 거침없이 꺼내는 부류의 엄마다. 그렇다면 에블린이 성공한 과학자였던 알파 우주에선 어땠을까? 그는 다중 우주를 넘나들 방법을 개발하던 도중 딸 조이의 정신을 산산이 조각낸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던 딸은 그렇게 모든 장소에, 모든 것을 경험하며,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 ‘조부 투파키’가 되었다. 그러니 사건의 진원지는 알파 우주가 틀림없다. 그런데 영화는 에블린이 성공한 과학자였던 알파 우주를 주요 무대로 삼지도 않고, 조부 투파키의 역사를 구구절절 풀지도 않는다. 알파 우주는 순전히 뒷전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누군가의 파멸을 낱낱이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파멸처럼 보이는 순간이라 하더라도 기실 완전한 끝은 아니라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 세계의 조이를 조부 투파키가 깃들 수 있는 그릇으로 보지 않고 제 딸로만 바라보는 에블린이 있는 한 낙관적인 희망은 유효하다. 지금까지 에블린이 딸을 사랑한 방식이 지극히도 좁은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 조이를 계속 상처입혔을지라도.흥미로운 건 알파 웨이먼드가 묘사한 조부 투파키와 실제 조부 투파키 사이엔 적지 않은 간극이 있다는 사실이다. 알파 웨이먼드는 조부가 목적도 욕망도 없이 모든 것을 파괴하려 한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조부 투파키가 행하고자 한 건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는 악의에 가득 찬 시도가 아니었다. 조부 투파키는 영화 속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자신을 이해해줄 에블린을 찾고 있다고. 그렇다. 다중 우주라는 특수한 무대가 설정되어 있지만 에블린과 조이는 지상에 발붙인 다른 흔한 모녀와 같이, 정체성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흉터에서 발을 구르는 퍽 평범한 사람들이었다.정체성을 공유한다고 표현하기야 했다지만, 에블린과 조이는 매우 다른 사람들이다. 세대는 물론이요, 사용하는 모국어나 성장한 문화적 환경 역시 판이하지 않은가. 그러나 동시에, 에블린과 조이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두 사람은 부모 앞에서 실패한 딸이라는 속성을 공유하고, 이 씨앗은 두 사람의 심연에 항시 똬리를 틀고 있다. 생각해보자. 알파 우주에서 조이가 분열된 까닭은 에블린이 진행한 실험 때문이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어머니에게서의 인정욕구를 간절히 바랐던 조이의 욕망에 기인하지 않았나. 하지만 두 사람의 욕망이 충돌하는 순간 알파 에블린은 목숨을 잃고 알파 조이는 조부 투파키로 각성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을 뿐 모녀 사이의 교착상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여러 우주를 전전하지만 조부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실패한다. 자신이 갈 수 있는 ‘모든 곳’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음에도 상대는 변하지 않고 자신은 거부당한다는 결과패만 바라보게 된다. 실망은 축적되고 절망은 베이글을 통한 자기 파멸로 체현된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상실을 경험했음에도, 그러나, 조부는 여전히 에블린에게로 향한다. 어째서일까.이미지 출처: NY Times여기서 잠시 조부가 구현해낸 새카만 베이글에 관해 이야기 해 보자. 사실 베이글이 아니라 도넛이었어도 상관없다. 그 형태가 어떻든 조부가 말하고자 하는 건 변함없을 테니. 모든 것을 올려놓자 새카맣게 타버렸다는 베이글은 새하얗게 스러진 공허를 둘러싼 검은 한계이다. 조부가 외치는 것은 에블린과 함께 자신이 존속함으로써 계속되는 무의미한 세계를 멈추자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기대, 새카맣게 타버린 가능성이자 한계를 없애달라는 절박한 요청이었을 것이다.박종천(2020)은 논문을 통해 현상적 불화의 한계에 갇힌 개인이 비가시적인 사랑과 배려를 통해 구원받는 영화적 양상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는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조이-에블린의 관계가 제법 유사해 보인다. 방금 언급한 조부의 베이글은 영화 속에서 몇 차례, 마치 거대한 눈동자처럼 연출되는데, 이는 알파 우주의 조이가 조부 투파키가 되던 순간 잃어버린 눈을 대체하는 듯하다. 하지만 제대로 시야를 확보하고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선 두 개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조이의 여정은 자신이 잃어버린 남은 눈을 찾아 다니는 것일 테다. 영화는 조이가 잃어버린 다른 하나의 눈을 제시한다. 바로 에블린이 이마에 붙인 인형 눈이 그 해답이다. 에블린이 갖게 된 제3의 눈은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하므로.알파 웨이먼드는 여러 우주를 넘나들고, 이 우주의 에블린을 각성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준 유능한 남자지만 조이를 이해하는 데엔 철저히 실패했었다. 하지만 여러 실망과 실패가 이끌었다는 우주의 웨이먼드는 조이를 아낌없이 포용한다. 그는 에블린에게 말한다. Be Kind. 유약해 보였던 웨이먼드의 굳건한 강령은 에블린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된다. 우주를 넘나드는 싸움을 통해서 해결할 수 없던 교착상태는 웨이먼드 식의 다정함으로 무너진다(사실 이 영화가 불교적 연기론을 상당수 차용한 듯 보이기에 웨이먼드의 대사는 자비를 보이라는 말에 가까우리라 보인다). 갈등이 커지기 직전 역지사지의 자세를 갖추자 세무관인 디어드리 보베어드라(제이미 리 커티스)를 포함한 많은 문제가 싱거우리만큼 부드럽게 해결된다.게다가 Be Kind라는 강령은 비단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충분히 적용된다. 무수한 우주를 유영한 에블린은 비로소 자기 자비를 실천하여 스스로를 구원한다–이는 너무도 어린 청년인 조이에겐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이 남긴 자산이다-. 자신이 열망한 이상향에선 오히려 세탁소를 운영하며 징그러울만큼 아등바등한 삶을 꿈꾸기도 하고, 시력을 잃는 끔찍한 사고는 성공의 발판이 되기도 하는 등,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에블린의 시야가 확장되자 그가 평생 품고 살았던 한계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윽고 확장된 ‘모든 곳의 에블린이 가진 모든 것’이 ‘단 한 순간’으로 집중된다. 놀라우리만큼 파괴적인 가능성을 찰나에 집중시키자 에블린이 발견하는 건 단 한 가지다. 가장 순수한 감정. 그러하므로, 한 줌의 시간일지라도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길 거라는 에블린의 고백은 시간을 초월하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이런 제목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너와 여기서, 언제나.이미지 출처: Daily Sabah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가 집필한 책 제목,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처럼, 친절은 우주를 막론하고 강력한 힘이다. 그런데 이 말을 꺼낸 건 우주를 한 번도 건넌 적 없는 웨이먼드였다. 그러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가 얼마나 낙관적인 영화인지 새삼스럽게 감탄하게 된다. 각자가 가진 단일한 정체성을 유동적인 정체성으로 변환하는 힘, 피를 나눈 모녀관계라 한들 완벽과 거리가 먼 미완의 관계로 남을 수 있음을 성숙한 자세로 선언하는 힘, 전 우주를 구하는 힘은 버스 점프를 익히지 못한 당신 역시 실천이 가능한 '친절, 다정, 자비, 그리고 공감'이란 테제다. 설령 우스꽝스러운 환경에 처해 있다 해도(핫도그 손을 가진 인류 진화 단계에 들어선 건 아닐 테니!)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가치이지 않은가. 아주, 아주 약간의 따뜻함만 있다면, 문제투성이인 삶조차 충분히 긍정함으로써 모두는 우주를 나를 그리고 당신을 구할 수 있다.<참고문헌>박종천 "불화와 화해의 영화적 변주곡" 국학연구 41 pp.493-535 (2020) : 493.양대종 "허무주의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 - 니체 철학을 중심으로" 철학탐구 35 pp.131-161 (2014) :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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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듄' 리뷰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습니다.
**주로 영화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세계관에서 파생되는 생각을 쓰겠지만,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SF 영화에서 던지는 주제의식은 언제나 미래지향적일까? 21세기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지금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듄은 이런 생각들이 자유롭게 떠올랐던 영화였다. 나는 정확하게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를 신뢰하는 이유는 경계 없는 사유의 여지를 만들어두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에서도 내가 생각했던 부분의 이유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온다면 영상화를 굉장히 잘 해낸 것이라 생각한다. 실물로 구현해낸다고 했을 때 원작에 구체적으로 묘사된 내용을 표현하는 것보다 구현하기 어려운 건 저 세계관에서 통용되는 상식이나 통념, 구조를 시각화하는 일이다.
이게 말이 쉽지 단지 몇 마디로 퉁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인물들의 대사나 자막 몇 개로 설득할 수는 없다. 극 중에 등장하는 사건-대화-도구를 종합해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 사고방식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면 관객들은 그 세계에 몰입한다. 스크린이라는 벽을 넘어서 주인공의 여정에 함께하는 느낌을 받는다. 여기서 드니 빌뇌브 감독은 긴 호흡으로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길다는 특징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이야기 자체를 까다롭게 고르지 않는 편이라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지만 주변에선 몰입이 아예 어려웠다고 말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내가 이 영화에 재미를 붙이고 몰입할 수 있었던 근거는 영화에서 묘사하는 사회 구조에 있었다. 영화에는 제국과 공작, 남작과 같은 작위가 등장하며 향신료와 '상호 간의 계약'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 지점이 영화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키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봉건제 구조를 SF 배경으로 옮겨놓았다. 귀족 집안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역학 관계의 현실감이 굉장히 핍진했다. 현실 세계의 역사를 상징으로 치환해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면 더욱 명확해질 거 같지만, 이런 이유로 배경은 익숙하지 않아도 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저 봉건적 구조의 작동 원리를 안다면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가주인 레토 공작의 행동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봉건제는 계약을 통해 형성되는 주종 관계다. 유럽의 봉건제는 아시아의 봉건제와는 다르기에 레토 공작의 행동도 그런 배경을 염두하고 보면 이해가 쉽다. 그가 함정임을 알면서도 임무를 수행했던 이유는 충성과는 거리가 멀다. 아들인 폴의 생모인 레이디 제시카와의 관계도 그렇다. 그녀는 레토 공작의 연인이지만 부인은 아니다. 정략혼인은 봉건적인 정치 체제 아래에서 동맹을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니까 레토 공작은 부인의 자리를 비워둘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은 머나먼 미래지만 그 사회를 이루는 구조는 고전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생각해보면 SF를 다루는 다양한 문학이나 영상 작품들을 보면 꼭 '은하 제국'이 등장한다. 각 행성마다 지적 생명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서 은하계를 다스리는 제국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다. SF 세계 속의 정치 체계가 전제군주정이라는 점은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만약 행성 간 여행이나 이동이 자유로워지는 시점이 오게 된다면 우리가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의 규모도 달라질 것이다. 행성 단위로 주거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에 차이가 발생할 것이고 국가라는 단위의 인식 체계 또한 바뀔지 모른다. 혹시 모르지 그때가 되면 한국 사람이라는 설명보다 '지구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자유로운 이동의 수준에 따라 수많은 시스템이 바뀐다. 성간 이동의 연료가 되는 스파이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 이 장대한 서사시는 그래서 매혹적이다. 이권을 중심으로 인물 간의 당위와 목적이 명확하게 엿보인다. 저 스파이스의 유통권을 쥐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렇기에 유통시켜야만 한다 '스파이스는 흘러야 한다'. 성간 이동이 어려워지면 궁극적으로는 저 체제를 유지하는 게 어려울 테니까. 그만큼 귀중한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명확하게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자원의 생산부터 정제, 활용까지의 과정이 막히면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민주정, 공화정은 행성 규모의 생명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듄을 보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 '은하영웅전설'도 생각이 나고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도 생각이 났다. 은하영웅전설을 통해서는 카리스마를 지닌 걸출한 한 인물에 집중해서 정치 체제를 고찰해볼 수 있고 크루세이더 킹즈를 통해서는 가문의 존속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을 알아볼 수 있다. 아무래도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그런 작품들이 떠올랐다. 이 시리즈 자체가 거대한 프로젝트인 만큼 이번 편은 주인공인 폴의 기원을 다루고 있지만 앞으로 나올 내용에는 정치적인 내용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우주 사극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근사한 영화였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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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히 당신을 사랑해 줄 단 하나의 아이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작품 속에서 로봇, 인공지능을 소재로 다루지만 이를 통해 명백해지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지점은 어디인지, 인간을 인간이 아닌 것과 구분 짓는 요소는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하게 만든다.
인간은 어떻게 인간이 되는가?
에이 아이 (A.I)
기후 변화로 인해 만년설이 녹고 해수면이 상승해 많은 도시가 물에 잠겼다. 선진국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엄격한 임신 허가제를 도입했다. 로봇은 인간을 대신해 많은 일을 도맡게 된다. 사회 경제를 유지하는데 로봇은 필수품이 되었다.
로봇 제작 회사인 '사이버트로닉스'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부부를 위해 부모로 지정된 존재를 순수하고 영원한 마음으로 사랑해 주는 로봇 아이를 만든다. 잠재의식과 꿈, 즉 내면의 세계가 있는 로봇 '데이빗'(할리 조엘 오스먼트)이 탄생한다. 하비 박사(윌리엄 허트)는 데이빗이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리라고 확신한다.
모니카(프랜시스 오코너)와 헨리(샘 로바즈) 부부의 아들 마틴(제이크 톼스)은 극저온 상태에서 간신히 생명만 유지한 채 5년째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이버트로닉스는 회사의 직원인 헨리를 통해 로봇 데이빗을 테스트하고자 한다. 로봇 아이를 등록하기 위해서는 일곱 개의 단어를 순서대로 말해야 하며 한 번 등록하면 되돌릴 수 없다. 등록 절차는 구매자를 부모로 만들고 로봇은 그 부모를 영원히 사랑하게 된다. 만약 부모가 로봇 아이를 거부하면 해당 로봇은 폐기된다. 모니카는 등록 절차를 거쳐 데이빗의 '엄마'가 된다. 데이빗은 모니카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쓴다. 데이빗이 조금씩 적응해 갈 때쯤 마틴이 깨어나 집으로 오게 된다. 데이빗은 진짜 자식처럼 엄마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 인간의 외로움
"로봇이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해 준다면 사랑받는 사람은 그 메카에게 어떤 책임을 져야 하죠?"
작품 속 슈퍼 토이 곰돌이 인형 '테디'와 자식 대행 로봇 '데이빗' 그리고 애인 대행 로봇 '조'(주드 로)는 모두 인간의 적적함과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들은 변하지 않고 인간을 따르며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심지어 데이빗은 인간에게 영원하고 순수한 사랑을 제공한다. 인간이 계속해서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 줄 존재를 생산해 내는 이유는 아마 인간 사이에서 더 큰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조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고객은 데이트 폭력 피해자다. 두 번째로 간 곳에서는 남자에 의해 살해된 여성이 침대에 누워있어 곤란에 빠진다. 사랑을 말하며 폭력과 살인이 빈번히 일어나는 곳에서 인간 사이의 사랑이 어떻게 순수할 수 있을까? 조를 부르는 이들은 주로 외롭고 약한 사람들이다. 영혼이 기댈 곳을 찾아 신과 성당을 찾듯 로봇에게 육체를 기대고자 하는 것이다. 조는 약자를 보호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데이빗을 돌보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모니카의 집에서 데이빗이 바라보던 가슴에 하트 모양의 구멍이 나 있는 모빌은 외롭고 공허한 인간이다. 자신의 사랑에 보답해 주지 못하는 그 공허한 모빌을 데이빗은 계속해서 바라본다. 로봇에게는 감정이 없다고 하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아니다. 데이빗의 순도 높은 사랑에 비하면 인간은 그저 태어나서 먹고, 자고 그러다 사라져 버리는 존재다.
▶ 인간의 특별함
영화의 초반에 데이빗은 로봇으로서 대상화된다. 사이버트로닉스의 조형물이 창문에 비친 형상과 데이빗의 첫 등장에서의 형상은 같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데이빗은 사이버트로닉스에서 제작된 로봇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각인시키며 '아이'이기 전에 로봇이라는 정체성에 방점을 찍는다. 그렇기에 모니카의 거부 반응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아이가 아닌 로봇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로봇의 뛰어난 기능이나 능력 혹은 멋진 모습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주목할 점은 로봇을 대하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모니카의 아들 마틴은 데이빗과 달리 자신은 진짜 사람이고 엄마의 아들이므로 우위를 점하고자 한다. 피노키오 동화책을 모니카에게 읽어달라고 하고, 인간이 할 수 없는 능력들을 보여달라고 한다. 모니카가 고장 난 데이빗을 걱정스러워하며 손을 잡아 주자 마틴은 데이빗에게 모니카의 머리카락을 잘라오라고 부탁한다. 마틴은 데이빗에게 끊임없이 경쟁심을 느끼고 우위에 서고자 한다.
로봇을 잔인하고 화려하게 파괴하며 즐기는 로봇 축제는 인간 종이 로봇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려는 의식이다. 인간은 로봇을 만들었지만 로봇의 성능이 좋아지고, 개체 수가 많아질수록 위협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을 부수며 안도감을 느낀다. 인간의 특별함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온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특별함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다. 로봇 축제를 감독하는 존슨은 데이빗을 두고 '목적 없는 특별함은 골칫덩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존재 자체가 목적이다. 어떤 인간도 자신의 특별함에 목적을 찾지 않는다. 존재 자체가 목적인 인간에게 어떠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로봇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데이빗 역시 인간처럼 자신은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라고 여긴다. 그렇기에 하비 박사의 방에서 상자에 들어 있는 수많은 데이빗을 발견했을 때 공포를 느낀다. 자신의 특별함과 유일성이 깨어질 위기에 처한 데이빗은 무너진다. 데이빗이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었기에 특별했듯이 인간의 특별함 역시 믿음에서 온다.
▶ 동화+ 객관적 사실
데이빗은 피노키오를 소년으로 만들어준 '파란 요정'을 찾기 위해 유식 박사를 찾아간다. '동화'와 '객관적 사실'의 카테고리를 결합해 어떻게 해야 로봇이 인간 소년이 될 수 있는지 묻는다. 파란 요정은 결국 '진짜 소년'이 되게 해 달라는 소원을 이루어 주지 않는다. 2000년이 지나 지구를 방문한 외계 생명체에 의해 단 하루 복원된 엄마를 만날 기회를 얻었을 뿐이다.
모든 동화의 마지막 장면이 그러하듯 데이빗의 하루는 평생 그가 바라왔던 대로 행복하다. 엄마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사랑해준다. 2000년을 기다려 데이빗에게 주어진 그 하루는 평생의 소원이었던 '사랑받음'을 이뤄준다. 동화적이지만 마법적이지는 않은 이 슬픈 해피 엔딩은 '동화'와 '객관적 사실'이 결합된 결말이다.
결국 우리는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에 우리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데이빗이 인간과 구별되는 점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계속해서 욕심을 내고,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다만, 인간에게 받은 상처만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코두 codu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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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범벅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동물소환 닌자 배꼽수비대' 스포일러 포함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4월 29일 ~ 30일 이틀 동안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에서 유료 상영회를 했는데요!
저는 무려 1등으로 예매를 했었는데 며칠 후 공식 SNS 투니무비 이벤트에 당첨,,,!!
유료 상영회보다 30분 일찍 시사회를 볼 수 있었어요
아무튼!
이번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30기는 제목과 같이 '동물소환 닌자 배꼽수비대'가 주제였어요
생각해 보니 모든 소재가 다 들어가 있는 제목이네요
1. '동물소환법'으로 세계를 구하는 짱구와 친구들
2. 한순간에 '닌자'가 된 짱구
3. 짱구의 목적은 지구의 '배꼽'을 수비해야 하는 것
예고편에서 보신 것처럼
수상한 아줌마가 찾아와 짱구와 진구라는 아이가 산부인과에서 서로 바뀌었다~ 고 하는데요
이는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아줌마의 정체는 닌자인데요 평범한 가정에 자신의 아들을 숨기고 싶어 해요
그렇게 선택된 게 같은 산부인과 출신 짱구네 집이고요
그런데 우연히 짱구가 닌자 마을에 같이 잡혀가게 되고...
그곳에서 며칠간 닌자로서 지내게 돼요
개인적으로 최근 나온 극장판 중에서 가장 슬프고 눈물 나는 극장판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왜냐하면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는 짱구가...... 울었기 때문이에요.......
어른 제국 신영식 회상 씬을 잇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닌자 마을에 갇힌 짱구가 엄마, 아빠가 자신을 잊었을까 봐, 그리고 보고 싶어서
가족들 꿈을 꾸면서 울어요
하필 아빠가 악당 닌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짱구와 전화 연결이 되어서
같이 있던 짱아, 진구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쳤는데 그 비명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기거든요
짱구는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짱아, 진구의 이름만 부르니 속상하고 서운했던 듯해요
계속해서 폰을 만지작거리며 동네를 혼자 걷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쓸쓸해 보일 수가 없었어요
아 이거 쓰면서도 또 울었어요 ;; 진짜 슬퍼요 ㅠㅠ,,,
자 이번엔 감정 쏙 빼고 이성적인 리뷰!!
일단 갈수록 극장판 빌런들이 약해진단 느낌을 받아요
저스티스 시장, 파라다이스 킹, 닥터 때바라 등
옛날 극장판엔 작화부터 성격까지 화려한 빌런이 주를 이뤘잖아요
근데 요즘엔 그림체도 단순하고 성격도 단순해서 빌런이 빌런이란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이번 동물소환 닌자 배꼽수비대에서도 단역의 한 마디로 빌런이 두손두발을 들었는데
그렇게 쉽게 물러나면 빌런이 못 된단 말씀 ㅠㅠ,,,
그리고 그런 명대사도 왜 단역이 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촌장 바로 옆에서 당하는 캐릭터였어도 그런 명대사는 봉미선, 신형만 담당이라구요...
그리고 캐릭터가 너무너무 많아요
떡잎학교에서도 지적했던 점인데 캐릭터가 많다 보니까 정신이 없어 보인달까요?
보통은 짱구네 vs 빌런 한두 명의 구도였는데
요즘 나오는 극장판은 짱구 가족, 떡잎마을방범대, 빌런, 빌런2, 기타 무리
이렇게 모든 캐릭터가 총출동해 버리니까
어떤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번 극장판에서도 떡잎마을방범대는 없어도 됐고
짱구네 가족, 진구네 가족, 촌장(빌런 무리) 이 정도면 충분했을 거 같아요
바람이랑 기타 닌자들은 왜 나온 건지 모르겠어요 ㅠㅠ
마지막으로 이상한 소재에 집착한다는 것...
이번 기수는 지구의 배꼽, 지난 기수는 흡덩귀, 신혼여행은 코알라......
신박한 소재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족들이 모여 단란하게 불고기를 먹고자 하는 불고기 로드, 20세기 향수에 흠뻑 빠진 어른들을 소재로 한 어른 제국 등
일상에서 풀어낼 수 있는 소재가 얼마나 많은데
자꾸 웃긴 소재로 끌고 가려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저는 쿵후 보이즈 이때보다는 훨씬 코믹하고 슬픈 감정은 잘 이끌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극장판에서도 굉장히 많이 웃었거든요!
무엇보다 짱구가 동물로 변할 때 진짜 귀여워서 찢어 버리고 싶었어요...... ㅠㅠ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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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판타스틱 Mr. 폭스>
영화 〈판타스틱 Mr. 폭스〉
2009, 미국/영국, 87min,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 스포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으니, 영화 감상 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노골적이지 않은, 설득적이지 않은 영화였고, 그래서 좋았다. 보통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할때, 의식하지않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가 전달할 수 있는, 품고있는 교훈에 대해서, 그리고 의미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하게된다.
이것은 물론 잘못된 것은 아니고, 일면 긍정적인 효과도 물론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구성해가는 작가의 입장에선 오히려 이것들에, 즉 교훈과 의미들에 대해 과도히 집착하게 되고, 그들을 뒷바침하기위한, 또 그들에 적합한 구성들로만 서사를 채워나가게 되는 경우도 많이 생기는 것 같다. 그렇게 된 이야기들은 때때로 너무나 폭력적이다. 실제로 피가 난무하거나, 격한 말투를 사용해서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이야기 이면의 작가가 하나의 생각, 하나의 아이디어를 너무나 일방적이고, 단편적으로, 계속해서 피력하기 때문에 폭력적이다. 관객은 이러한 이야기를 경험하면서, 자신 나름의 여러 생각들을 전개해볼 수 있는 기회를 잃게된다. 왜냐면 작가가 감독이, 그들에게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해볼 수 있는 틈을 전혀 내주지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 점에 있어선 매우 타영화들과 비교해보았을때, 독보적으로 자유롭다. 하나의 메세지, 주장, 교훈을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모든 런닝타임과 인물, 소재, 상황과 사건들을 소비하지 않는다. 이 깨달음은 현재 내가 진행하고 있는 졸업 애니메이션의 이야기 구성과정에서도 스스로 간과하였고, 또 매몰되었던 오류를 재발견해볼 수 있는 기회로도 작용하여서 크게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판타스틱 Mr. 폭스>에서 이 폭스는 마치 웨스 앤더슨 같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왜냐면 그의 영화 속 이미지들과 사건의 전개를 보여주는 방식들이 정말 폭스가 말한 판타스틱, 즉 특별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당연 시각적인 효과와 구성이며, 그와 더불어 카메라의 움직임도 너무나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았다.
가장 먼저 시각적으로 이 영화에선 매우 신중한 프레임과 화면 구성이 인상깊다.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이미지의 향연’, ‘컬러의 향연’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정도로, 예술적인, 감각적인 다양성을 80분 내내 자극한다. 어떤 프레임에 영상을 멈춰세워도, 모든 장면들이 예술적이다. 이 사실은 조금은 충격적일 정도였다. 물론 영화를 보다보면 아름다운 장면들을 많이 마주하게된다. 특히 나에게 인생영화라 할 수 있는 영화는 무엇보다도 <블레이드 러너 2049>, <컨택트>와 같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인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 또한 어떤 프레임에서 화면을 멈춰세워도 모두 예술작품과 같은 견고한 아름다움을 느끼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형의 시각적 효과를 줄곧 보여주는 영화는 사실 조금은 드물다고 생각되고, 그런 면에서 이 <판타스틱 Mr. 폭스>는 앞서 언급했던 영화만큼이나 끈질길만큼 정교한 화면을 보여준다고 생각되었다. 즉 수많은 화면들이 크고 작은 소재들과 다양한 컬러감들의 조합으로 굉장히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철저한 균형을 보여주고 있었고, 수평과 수직으로 거의 대부분 화면이 구성되긴 하지만 그 속에서도 계속 다양한 깊이감을 매우 정면인 방향에서 드러냄으로서 단순히 지루한 평면으로 느껴지지 않고 확실한 직선적 공간감이 느껴진다. 물론 사건의 진행상황을 풀어내고 조망하는데 있어서, 인물들을 따라가는 단 하나의 방식만이 아니라, 아이콘적인 시각효과를 활용하거나, 미세즈 폭스가 그리는 그림을 이용하거나, 또 완전한 단면을 드러내면서 전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방식들을 활용함으로서 관객이 진행되는 사건들을 좀 더 다른 시각적 소재들을 통해 재조명,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 및 환기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도 매우 인상적이다.
다음으로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역시 화면 구성과 비슷하게 매우 수직, 수평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특히 완전한 수평으로 인물들 혹은 사건의 발생 등을 트랙킹하는 모습이 자주 드러난다. 이런 움직임은 물론 장단점을 지닌다. 강렬한 역동성을 강조해내기는 다소 부족함이 있을 것이고, 안정적으로 영화 속 세계를 조망하기에는 상당히 적합할 것이다. 결국 이것은 선택의 문제라 생각되고, 이런 조금은 차분한 카메라 무빙이 앞서 말한 아름답고 구성적인 프레이밍을 시각적으로 확실히 전달하는데 있어서, 난 매우 적합했다고 생각하며, 또 전에 언급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도 이런 수직, 수평이 강조된 픽스된 화면과 차분한 카메라 움직임을 선택함으로서, 이 영화와 같은 아름답고 견고한 화면구성을 매우 잘 강조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의 구체적인 효과들도 물론 배울만한 점이지만, 내가 가장 크게 깨달음을 얻었던 부분은 사실 움직임의 이유에 대해 진심어리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데에 있었다. 즉 사실 영화를 보면서, 때때론 카메라의 움직임, 화면의 전환 등에 대해 이유를 알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스톱모션 영화는 정말 중요한 순간에, 매우 이유있는 방식으로 카메라 움직임을 드러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정 인물에게 클로즈업을 하는 순간, 다른 방식으로 화면을 보여주는 순간, 또 비슷한 상황이나 인물들이 내뱉는 동일한 키워드들을 통해 장면을 연결 및 전환하는 순간 등 카메라의 움직임과 누구를 어떻게 화면에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모든 타이밍과 방법들이 매우 타당하게 느껴지고, 이유없는 영화 속 순간들이 거의 부재한 듯이 느껴졌다. 이 점 역시 앞으로 어떠한 종류의 영상을 제작한다하더라도 매우 크게 배움을 얻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되었다.
처음 문단에서 말했었듯, 이 영화는 특정한 메세지나 교훈을 단정적으로 강요하지 않고있고, 그에 따라 나 역시 많은 가능성과 호기심을 가지고 각 영화 속의 인물들과 그들의 언행, 취향 등을 자유롭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맹목적인 하나의 메세지를 향해 모든 요소들이 질주하고 있지않는 이 영화에선,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각 소재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재밌기도 하지만, 역시나 이 이유 덕분에 이 영화의 서사를 한 갈래로 설명해 풀어내기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의 서사 속에서 가장 흥미로웠다 말하고 싶은 부분은 결국 각 개인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이는 물론 미세즈 폭스가 아들인 애쉬에게 말하는 “그래도 다르다는 건 환상적인 일이잖니”라는 대사와도 매우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개성은 사실 이 영화 속에서 난 인물들의 두려움을 통해서 가장 직관적으로 와닿았었다. 대표적으로 폭스는 늑대를, 미세즈 폭스와 카일리는 천둥을 두려워한다. 이와 관련하여 상당히 인상깊은 장면은 처음 보기스, 번스, 빈이 폭스의 집을 파기 시작할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폭스와 미세즈 폭스의 안방 안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인데, 이 때 몇번의 컷들을 통해 여러번씩 드러나는 그 방의 벽면을 보면 천둥이 그려진 그림들이 가득한 게 강조되고 있다. 결국 미세즈 폭스의 두려움이 현실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천둥은 결국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인간들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엔 잘 인식하기 어렵지만, 이 세 농부 사업가들의 공장을 견고히 지키는 매우 폭력적인 장치인 전기 울타리의 안내판이 나타나고나서는 분명하게 알 수 있게된다. 실제로도 미세즈 폭스는 폭스가 인간을 상대하는 위험한 행동을 두려워하며 그만두길 바란다는 점에서 이 천둥에 대한 두려움은 분명하게 그녀의 본성,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폭스가 두려워하는 것은 영화의 중후반부에서 알 수 있게되고, 그에 따하 앞서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늑대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게된다. 폭스는 굉장한 절망적 상황을 마주하며, 하수구에 쏟아지는 폭포 앞에서 미세즈 폭스에게 자신의 솔직한 진심을 토로하는데, 이때 그는 영화의 제목과 같이 자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특별하게 환호받는 ‘판타스틱 Mr. 폭스’가 되기를 너무 바랬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야기하고 이 말에 따라, 당연 늑대는 ‘판타스틱’하지않은 자신의 모습을 상징하는 소재라 볼 수 있다. 실제로 늑대와 여우는 같은 개과이기도 하며, 둘 다 가족단위로 공동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어쨌든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설정에 따르면, 폭스는 많은 다른 종의 동물들과 함께 마치 인간처럼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늑대는 홀로 추운 산위에 우뚝 선채, 어떠한 옷차림도 갖추지 않은, 또 말이라는 타인과의 소통 수단도 익히지않은 매우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즉 영화 후반부에서 폭스가 늑대를 실제로 마주하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장면은, 폭스가 막연하게 ‘판타스틱’한 존재, 즉 타인들에게 특별하고 대단한 존재로 갈채받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 그러한 자신의 분신같은 존재, 늑대를 실제로 마주하자 생각과 달리 그러한 모습도, ‘판타스틱’하지 않은 모습도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닌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이렇게 늑대를 만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이 영화를 각 개인의 개성을 중요한 핵심으로 보았던 이유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에 있다. 결국 미세즈 폭스의 그림에선 천둥은 사라지지만, 허리케인이라는 새로운 견제와 위협의 대상이 등장하고, 나무 위에서 살다가 결국 하수구에서의 배고픈 삶으로 폭스의 행동들은 조금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 다시 세 농부 사업가들의 슈퍼마켓을 약탈하는 위험한 행동을 개시한다. 이처럼 결과적으로 이 장면들은 그들의 타고난 본성이자, 성격들이 결국은, 어떻게 해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반복적으로 발현될 수 밖에 없다는 걸 뜻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게한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Aya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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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로리콘의 충격적인 최후
#롤리타 #로리타 #lolita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질 않습니다
시국이 정말 뒤숭숭한 요즘이 시국 이 시점에서
우리에 책임은 없는가
우리를 되돌아봤으면 합니다영화 롤리타를 통하여
성과 성욕 그리고
올바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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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 https://youtu.be/pZzSq8WfsKo
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Gizmo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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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티탄> 리뷰 예고편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뇌에 티타늄을 심고 살아가던 여성이 기이한 욕망에 사로잡혀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다 10년 전 실종된 아들을 찾던 슬픈 아버지와 조우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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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더 버블> 공식 예고편
《더 버블》은 팬데믹 시국, 영화 제작 현장의 소동을 그린 코미디이다. 촬영을 위해 호텔에 모인 배우들. 촬영장이자 격리 장소가 된 이곳에서, 하늘을 나는 공룡에 관한 블록버스터 액션 시리즈의 속편을 찍어야 하는데. 과연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