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서2023-02-27 03:23:28
<더 웨일/The Whale, 2023>
영화 <더 웨일> 후기
작년 9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이어서 오랜만에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아카데미에서의 수상 여부도 궁금했던 <더 웨일>입니다. 그나저나 이번 주에 <타르>도 그렇고 <서치 2>도 그렇고 볼 게 많은데 주말에 일정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서치 2>는 다음 주에 관람할 거 같네요.
하여튼 <더 웨일>은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 작품이라는 점에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애로노프스키 감독 작품은 <블랙 스완> 한 작품 밖에 관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블랙 스완>은 꽤나 강렬하고 지독한 영화였거든요. 그래서 조금 긴장을 하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무겁고 지독한 스타일의 영화는 아닌 편입니다. 그럼에도 쉬운 영화는 아닐뿐더러 여러모로 서늘하게 다가오는 부분들도 있더군요. 딸과 아내를 버리고 동성 연인을 택했지만 연인이 사망한 뒤 폭식증에 시달리며 죽음 앞둔 찰리가 자신의 딸과 화해하기 위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뒤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의 모습을 그리면서 삶을 살 때 고치고 또 고치며 진실되게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죠. 더불어서 애로노프스키의 가족 영화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도 합니다.
영화를 이야기할 때 브렌든 프레이저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작품의 그 자체처럼 보이기도 하는 브렌든 프레이저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진실한 연기를 펼칩니다. 개인적으로 <미이라>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브렌든 프레이저를 상당히 좋아하는데요. 그가 이렇게 복귀해서 너무 기쁘더군요. 여러 가지 일이 겹치면서 실제로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기도 했던 브렌든 프레이저가 그간의 삶에 대해 울분을 토하듯 선사하는 연기는 깊게 빠져들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영화 내 이야기를 떠나 그의 삶의 일부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굉장히 제한적인 공간임에도 상당히 동선이 많고 카메라의 워킹이 독특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연극을 원작으로 하더군요. 연극적인 느낌이 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272kg이라는 소재는 찰리 스스로 느끼는 자신에 대한 역겨움을 관객들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느끼게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인상적인 부분이 많긴 했어요.
다만 아쉬움도 있었는데 다소 과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고, 여러 인물에 대한 묘사가 조금 부족하거나 모호하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특히 딸과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약간 애매하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기도 했는데 이 때문인지 몰라도 클라이맥스에 대한 몰입감이 오히려 떨어지기도 하는 단점을 야기하기도 하더군요. 더불어서 그리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 플롯과 주제의식이 몇몇 사람들에게 조금은 평범하고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달까요.
걸작이라고 평할 수는 없는 영화이지만 훌륭한 영화고, 이와는 별개로 브렌든 프레이저의 연기는 이견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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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혼 더 파이널 / 銀魂 THE FINAL, 2021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혹은 소설까지 전체적인 맥락에서 조금은 세세하게 구분 짓는 걸 "장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액션"이나 "코미디"와 같은 명칭이 그런데 이를 거부하고 그 자체로 불리는 장르들도 존재합니다.
오늘 소개할 <은혼>이라는 작품도 특정 장르보다는 "은혼"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는 것이 더 편할 만큼 특정 장르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굳이 분류하면, "SF"이고 "대체 역사물"로 볼 수 있겠지만 '제4의 벽'을 깨는 유머는 실제로 "2008년 서브 프라임 사태로 '선라이즈'가 도산했다"라는 말로 회사의 주가가 떨어지는 건 <은혼>밖에 못하지만요.근데, 이번 <은혼 더 파이널>은 쉽사리 바라볼 작품은 아닙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을 1위에서 끌어내린 작품이 이전에 소개한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뿐만은 아니었으니까요.
특히, 일본 개봉 1주차 특전으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의 그림을 배부하는 기상천외한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은혼"스러운 퇴장을 했습니다. (이유에는 흥행 때문에...)
아무튼, 국내에서는 실사가 아닌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극장판으로 어떤 시작과 마무리를 보여줄지 - <은혼 더 파이널>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지구 멸망을 앞두고서 "긴토키"와 해결사, 그리고 모든 캐릭터들이 한데 모입니다.
부활을 앞둔 "우츠로"를 막기 위해서라도 꼭대기에 올라가려 하지만, 적들의 거센 저항에 도리어 위협을 느끼는데...은혼을 은혼스럽게!
1. 이거, 은혼 맞나요?
앞서 말했듯이 <은혼>은 "은혼"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쉬울 정도로 크게 이해를 바라는 스타일의 작품이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2년 후"라는 단어로 <드래곤볼>과 <원피스>의 그림체를 그대로 가져와 그들의 명칭까지 인용하는데요.
특히, "야무치"의 "낭낭풍풍권"을 대문짝하게 박거나 특유의 재배만 포즈까지 보여주며 "패배자"로 지칭하고 <드래곤볼>의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까지 직접 언급하는 등 저작권 인식을 아찔하게 만드는데요.
이에 캐릭터들이 직접 '은혼이 아니라 드래곤볼의 아류작으로 알겠다'라는 대사로 뒤늦게 정체성을 잡으려 하는데 이에 익숙한 팬들은 "평소의 은혼"으로 인식할 겁니다.여전히, 웃기는 놈들이구나!
그래서 <은혼 더 파이널>을 받아들이는데 호불호가 존재하는 게 바로, 이 유머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달려있습니다.
시종일관 심각한 분위기를 내뿜어도 갑작스레, 유머를 보여주니 상황의 언밸런스함을 '그대로 받아들일지, 불필요할 요소로 받아들일지'에 <은혼 더 파이널>을 넘어서 <은혼>이라는 작품을 보는데 당락이 결정될 겁니다.
<데드풀>에서 유명하게 된 "제4의 벽"을 깨는 행위는 "메타 유머"를 끌어오는 장치로 소위 아는 만큼 재밌게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제4의 벽"이라는 건 해당 이야기의 현실성을 지키는 방벽으로 이를 깬다면 관객들에게는 몰입이 해칠 수 있어 이야기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습니다.2. 이야기 예습하고 오세요.
앞에서 말했듯이 "2년 후"라는 단어로 많은 이야기를 함축시켰지만, 설명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느껴지는 건 <은혼 더 파이널>의 104분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설명이 제대로 이뤄진 모양새가 아닙니다.
이런 이유에는 앞서 말한 "유머"의 사용으로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것도 있지만, 정작 큰 이유는 이들의 관계가 영화가 의도한 만큼 관객들이 따라와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제목에서 생략된 "극장판"이라는 글자에 관객들은 <은혼 더 파이널>에 편차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극장판'이라는 한계치?
영화 <은혼 더 파이널>은 기존 TV 에피소드를 "극장판"으로 옮긴 작품으로 해당 극장판만으로 전부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저처럼 <은혼>을 즐겨온 팬들에게는 "긴토키"를 비롯해, "신파치 - 카쿠라"의 해결사, "카츠라", 그리고 "타카스기"까지 이외에 "신선조"와 다른 조연 캐릭터들까지 안면이 익숙하고 관계도 다 알 겁니다.
그렇기에 눈물도 날 것이고, 가슴도 울렁울렁하겠지만 이를 이번 <더 파이널>만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만큼 이번 <더 파이널>은 기존 TV에서 방영된 모든 에피소드까지 포함시켜 말하는 것이니 공부가 필요해도 많이 필요한 영화입니다.3. 언제든 돌아와도 어색하지 않다.
가뜩이나 <은혼>이라는 작품이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작품인데, 이야기에 느끼는 몰입마저 편차가 존재하니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은혼 더 파이널>입니다.
그래도, 이 모든 것들을 알고서 보는 <은혼 더 파이널>은 어떤 작품일까요?
흔히, 마지막이라고 하면 작품들이 진지해지기 마련인데 <은혼>만큼은 "은혼"으로 장르를 소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마지막 일상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쿠키 영상으로 준비된 "긴파치 선생"까지 "은혼"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보여주고 맙니다.네버 세이 네비?
이렇게, 마지막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이를 쉽게 믿지 않는 것에는 <은혼>이라는 작품의 특성 때문입니다.
한없이 진지해지는 몇몇 장기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일상 이야기를 내세우는 작품이라 언제든지 돌아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마지막이라 믿고 싶지가 않는데, 어떤 모습이 되었든 <은혼>은 또 "은혼"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봅니다.※ "엘리자베스", 너무 분량이 없는데...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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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낮에도 밤에도 고단한 사랑의 온도.
요즘처럼 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날과 참 잘 어울리는 영화 한 편을 만났다. 바로 박송열 감독이 연출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쌀쌀한 밤과 더운 낮 사이 그 틈에서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가끔 구름>에 이어 다시 호흡을 맞춘 두 배우는 부부로 돌아왔다. 현실적인 사랑과 일상의 온기를 담아내고 있는 이 영화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가능한 영화를 향하여> 섹션에서 상영된다.
영화정보
박송열
PARK Songyeol
Korea
2021
90min
DCP
Color
Fiction
12세 이상 관람가
시놉시스
불안정한 일자리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영태와 정희 부부는 사채는 절대 쓰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러던 어머니의 생일날, 다른 형제들이 모두 두둑한 돈을 선물로 줄 때 이들 부부만 아무것도 주지 못한다. 영태는 초라함을 느끼고 괜스레 정희를 탓한다. 이에 정희는 홧김에 사채를 빌리러 간다.
영화리뷰
척박한 현실을 이겨내고 끝내 사랑까지도 지켜낸 두 사람은 현재의 일상을 지켜내는 것에 열중한다. 때론 버거운 삶에 지쳐 주저앉기도 했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견디곤 했다. 영태는 영상을 작업해 왔고 정희는 학교 강사로 일해왔으나 두 사람은 현실의 문제로 공사장, 택배, 대리운전, 마트, 식당 등 일용직을 전전한다. 평화로운 그들이 갈등을 겪게 되는 큰 이유 역시 '돈' 때문이다. 돈을 갚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인해 적어도 이것만큼은 하지 말자는 금기를 깨고 말았다.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경제적 여유'는 더 빠르게 무너져갔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 현재를 유지하는 것조차 벅찬 삶 속에서도 삶의 질을 챙기는 모습이 무책임하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필수적인 요건 중 하나이다. 작은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들의 행동은 무모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존엄이었다.
영화가 현실에 맞닿아 있는 만큼 그 생생함은 스크린 너머로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영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에 집중하기보다는 두 사람이 함께 나누는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큰 사건이나 드라마틱한 반전 없이도 이야기의 단단함이 살아있고 그들의 일상은 선명하게 전달된다. 겉 보기엔 아무 일도 없지만 미세하게 흔들리는 감정선과 관계의 파동은 왠지 모를 이끌림을 선사한다. 어떤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채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그 막연한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그들에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 투박한 사랑을 지켜내려는 고단한 일상이 불안정한 계절의 온도처럼 위태롭게 흔들린다. 영화가 끝나도 현실의 갑갑함도 막막함도 해소되지 않지만 낮이 덥고 밤이 추운 게 당연한 것처럼 인생은 흘러간다. 삶은 노력한다고 해서 그 대가를 온전히 돌려받을 수 없고 때론, 무책임감에 한숨 쉬고 배신감에 치를 떨어도 삶은 계속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기보다는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 무척이나 현실적이었다. 사람들의 삶을 다정하게 응시하는 이 영화의 시선은 아무것도 아닌 듯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고귀하고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오가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에서도 이어질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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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마냥 웃을수는 없었던 홍상수의 하루
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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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홍상수
출연진 : 김민희,기주봉,김승윤,하성국,송선미
동상이몽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의 시점을 연이어 보여준다. 첫 번째 주인공은 상원이다. 상원은 여배우다. 상원은 친한 언니 정수의 집을 찾아간다. 상원은 잠을 많이 잔 것 같다. "언니. 왜 나 안 깨웠어?" "너 잘 자더라." "언니. 이런 일 있으면 다음에 좀 깨워." 영혼이 없어 보이는 투정 몇 마디를 나눈다.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둘. 하지만 서로가 이 대화는 껍데기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난데없이 시야에 들어오는 강아지. 강아지의 이름은 '우리'다. 우리야 안녕! 상원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먹이를 주는 상원. 정수는 상원에게 "먹이를 많이 주진 마라"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상원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주고 싶은 만큼 먹이를 주는 상원. 그 순간 두 사람에게 손님이 찾아온다.
두 번째 주인공은 시인 홍의주다. 홍의주는 유명한 시인이다. 폭넓은 인지도 덕에 젊은 사람들의 관심이 최근 급증했다. 하지만 홍의주가 원하는 건 넓은 인지도가 아니다. 바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삶이다. 사실 의주는 얼마 전에 '이제 술, 담배를 하다간 정말 위험하다'라는 진단을 받았다. 사력을 다해 금연에 절주 중인 의주. 이런 의주를 찍기 위해 영화과 학생 기주가 의주의 곁에 있다. 하하 호호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기주와 의주. 이 두 사람에게 낯선 손님이 찾아온다.
물안에서
글쓴이가 생각하는 홍상수의 최고 강점은 신선함이다. 홍상수는 매번 다른 영화를 만들었다. 가장 최근작 3편 <소설가의 영화> <탑> <물안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가의 영화>는 흑백과 컬러의 대비로 홍상수의 창작론과 동기부여에 다룬 영화였다. 홍상수 영화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쿠키영상에 들어갔다. 이 쿠키영상에 담긴 짧은 엔딩에 미적 아름다움을 눌러 담았다. 보통 무심하게 현상을 담았던 홍상수의 카메라가, 예전과는 다르게 극적인 연출력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탑>은 홍상수의 멀티버스 영화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건물이 단순히 주거공간으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각기 다른 세계관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러 여러 변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이 '변하지 않은 존재'가 진주인공인 영화가 <탑>이었다. <물안에서>는 영화 전부를 아웃포커싱으로 촬영했다는 점이 알려져 있다. 이 아웃포커싱은 아무 이유없이 들어간 것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어두운 분위기가 생과 사의 갈림길을 흐려놓는다는 점에서 ‘물 안’이라는 콘셉트와 어울린다. 홍상수가 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촬영으로 구현한 것이다.
본작 <우리의 하루>역시 신선하다. <낮과 밤> 이후에 오랜만에 자막으로 상황을 전달하는 장면이 나왔다. 자막이 들어가는 방식도 이후의 장면과 아이러니하다. 가령 두 번째 장면에서 시인 의주에게 손님이 인생, 사랑, 진리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 장면을 보면 의주는 거침없이 술술 대답한다. 하지만 이 장면 첫 자막에서는 ’의주의 마음이 복잡하다 ‘는 식의 대사가 적혀있다. 자막과 작중 실내 상황이 대치되는 것이다. 후반부에 정수가 고양이를 잃어버리는 장면에서는 ’정수는 고양이를 잃고 잃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라는 대사가 시퀀스의 시작이다. 영화에서 관객이 유추할 수 없는 것들을 일부러 자막으로 보여준 셈인데, 이는 홍상수의 필모그래피에서 볼 수 있었던 경향이다(대신 어떻게의 관점에서 이 연출법은 기존의 필모그래피에서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의미부여를 거부하는 것이다. 비단 자막뿐만 아니라 고양이 ‘우리’와 ‘고추장 풀어 먹는 라면’ ‘미안합니다’ 라는 대사 역시 마찬가지다. 두 주인공의 이야기 모두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받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둘이 영향을 받았다면 영화에서 의미부여를 인정한 셈이 된다. 하지만 홍상수는 이를 뒤엎는다. 작중에서 의주가 하는 말처럼 ‘네가 아는 답은 전부 오답‘이라고 영화가 연출 내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 쓸쓸함에 대하여
이 영화는 코미디로서도 탁월하다. 이 영화를 보고 2010년대 초반의 홍상수가 떠올랐다. 홍상수 특유의 19금 코미디는 물론이고 어색한 상황으로 웃기는 장면도 몇 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최고 웃긴 장면은 가위바위보 신이다. 기주봉 배우가 능청스러운 연기에 탁월한 것도 물론이지만 그 상황 자체가 워낙 재미있다. 김승윤 배우는 술자리 많이 불려 다녔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고밀도의 유머 밑에 깔려있는 그림자는 무시할 수 없다. 이전에 죽음에 대해 다룬 <강변호텔> <물안에서>는 아예 직간접적으로 죽음이 등장한다. 각각 두 영화의 엔딩이 그 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내내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하다. 바로 홍의주라는 인물 때문이다. 이 캐릭터는 욕망에 솔직하다. 딸을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가족들과 별거 중이고, 술, 담배 하지 말란 말이 무색하게 엔딩에서 치킨과 양주를 마신다. 또 젊은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가위바위보 게임’을 요청한다. 영화의 엔딩은 사실상 이 모든 것의 결과물처럼 보인다.홍의주는 영화의 모든 선택의 주체가 되어 자기 마음대로 인물들을 이끌고 있다 혼자가 된 것이다. 영화가 갖고 있는 이런 아이러니가 씁쓸하다. 영화에 내내 웃기다가도 엔딩의 홀로 있는 홍의주를 보면 그 웃은 만큼의 복잡 미묘한 감정이 올라온다.
홍상수의 하루
이 영화가 끝나고 난 후의 gv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아래에서 진행됐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질문은 영화가 다루는 몇 소재에 관한 것이었다. 우선 ‘고추장 라면’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박미소 배우는 이 장면에서 ”‘지수가 라면을 먹고 상당히 매워한다’는 부분이 그냥 각본에 있다“고 밝혔다. 극 중에 등장하는 ‘가위바위보 게임’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기주봉 배우는 “홍상수 감독이 실제로 술 마시면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답했다. 홍상수 감독의 연기 디렉팅에 대한 질문도 있었는데, 하성국 배우는 “홍상수 감독님이 정확히 원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유롭게 하라고 하신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하루>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0월 11일 오후 15시 30분에 상영된다. 장소는 롯데시네마 센텀시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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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 형사와 함께 펑펑 터져볼래?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범죄도시 2>가 개봉했다! 1편이 거의 나의 취향저격이었기 때문에 2편이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목 빠지게 기대하고 있었다. 이 시리즈 1편이 처음 개봉할 때는 영화를 지금같이 딥(?)하게 파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알던 정도였다. 근데 분명하게 알던 건 마동석 배우 특유의 캐릭터였다. 2015년에 <부산행>과 2016년 <베테랑>이 개봉했다. 여기서 나왔던 마동석 배우는 모두들 알다시피 싸움 잘하는 아저씨였다. 근데 싸움만 잘하냐? 아니다. 그 마초스러운 이미지에 귀여운 애교까지 장착하기 시작했다. 외적으로는 이랬고 또 배우의 본업 내적으로도 성과가 좋았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부터 <부당거래>까지 든든한 조연으로 필모그래피를 하나, 둘 씩 쌓아놓고 있던 터라 그가 잘 되는 건 그냥 시간문제였다. 아무튼, 이 영화 <범죄도시>는 이 배우의 유명세에 기름을 부은 작품이 됐다. 나 역시 마동석표 액션이 재미있다. 이런 사람들의 기대치에 힘입어 이 작품은 대박이 났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나 하얼빈의 장첸이야!!!!'나 '어 싱글이야'같은 유행어들이 우리나라를 강타했다는 건 아마 모두들 기억하실 것 같다. 나도 영화가 한참 유행할 때 보진 않았음에도 그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중에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된 나. 요즘에서야 책도 어느 정도 읽었고 영화도 보고 있지만 내가 나의 취향을 어림잡을 수 없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내가 한국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저씨>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최애까진 아니더라도 '마음에 든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나이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시리즈의 후속작을 엄~청 기다렸고, 정식 개봉일인 19일보다 며칠 일찍 극장에 가게 되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K-슈퍼히어로였다! 2008년의 대한민국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 일이 있고 4년 후
장첸과의 한바탕이 있었던 4년 후. 금천구 강력반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경찰 업무를 하고 있다. 그렇게 공을 세웠는데도 뭔가 처우가 개선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 금천구에 사건이 일어났다. 정신병동을 탈출한 남자가 여대생 하나와 가게 주인을 데리고 인질극을 벌이고 있었다. 홍석과 상훈, 동균은 상황에 어쩔 줄 모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석도의 행방을 찾는 금천구 강력반.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쿵쿵 걸으며 마석도가 등장했다. 흉기를 휘두르는 남자를 손쉽게 기절시킨다. 그런데 기절시키다 못해 일이 벌어졌다. 남자가 주먹 한방 맞고 전치 12주의 부상을 입은 것이다.
전일만은 금천구 강력반의 반장이다. 상관에게 불려 가서 와장창 깨졌다. 윗동네 어르신들에게 들었던 업무 지시사항을 마석도에게 전하게 된다. 그 지사사항은 '베트남에 가서 범죄자 하나를 인도해와라'였다. 듣자 하니 무슨 자수를 했다고 한다. 오케이. 그럼 휴가 쓰는 셈 치고 가지 뭐. 전일 만과 마석도는 더듬더듬 영어실력과 함께 베트남 비행기에 탑승한다. 어렵지 않게 베트남 영사관 쪽 담당자와 연결하고, 그 자수했다던 놈을 심문하기 시작하는 둘. 둘은 베트남에서도 진실의 방을 만들며 하나하나씩 정보를 얻기 시작한다. 뭔 베트남에서 베트남에서의 연쇄살인사건과 강해상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기 시작한다. 장첸과는 다른 부분으로 악랄한 강해상. 이 강해상은 극악무도한 범죄수법으로 사람들을 위협하기 시작하는데,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나쁜 놈을 때려잡는 마석도의 이야기가 영화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데 익숙해서 웃겨
5년 만에 돌아온 시리즈의 신작이다! 그 이유인지 전작에 대한 오마주가 몇 개 보인다. 초반부 마석도가 등장하고 칼을 휘두르는 남자를 제압하는 장면의 구도만 봐도 1편를 차용한 느낌이 난다. 또 예고편에서 나왔던 장이수 캐릭터 활용법도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다. 또 정인기 배우의 지역 경찰 계급 서장 캐릭터나 휘발유가 다시 등장하는 부분도 전 편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충분히 팬서비스 차원에서 만족할만하다. 엔딩부도 왠지 익숙한 느낌이 날 것 같다.
근데 이런 전편에 대한 오마주가 단순히 캐스팅에서 짠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사실 어찌 보면 뻔하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알고 봐도 웃기다. 예고편에도 나오지 않나? "넌 뭐야?" "까불인데요" "까불고 있어"식의 말장난이 극에서 자주 나온다. 이런 유머 방식은 1편에서 많이 쓰였다. "혼자 왔니?" "어 싱글이야"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 이런 유머 포인트가 1절 만하고 딱 끝나는 선이 아니라면 좀 식상해지기 쉽다. 그냥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같은 패턴의 유머를 반복해서 하는 사람을 보면 딱 느껴지지 않나. 진짜 재미없어서 말도 걸기 싫어진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르다. 뭐 말장난식 유머만 재밌는 게 아니다. 초반부 반장의 존재 유무도 재미있다. 또 반장이 서툰 영어를 구사하는데, 이거 2007년에 <무한도전>에서도 봤던 유머인데도 웃긴다. 뻔뻔하게 재미있는 영화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근데 또 막상 웃기기만 한건 아냐
이 영화가 단순히 웃기고 재밌고 이런 것에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다른 강점 중 하나는 촬영이다. 이 영화의 가장 첫 번째 장면에서 영화는 베트남의 풍광을 묘사한다. 베트남에서의 이야기와 한국에서의 이야기는 무게감이 살짝 다른데, 어쩌면 난잡해질 수도 있는 영화의 톤을 나름의 영상미로 풀어내는 것이 인상 깊었다. 해외 로케이션을 경제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타지의 모습과 범죄의 잔혹성이 매치가 잘 되니 연출의 승리였다. 그냥 자연스러운 풍광만 예쁜 것이 아니다. 베트남의 한 경찰서, 협소한 아파트, 봉고차 안, 식당까지 그냥 단순히 인물이 거기에 있어서가 아닌 소재를 활용하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적절한 촬영은 베트남에서만 적용되는 부분이 아니다. 가령 중후반부의 마석도 혼자 걸어가는 장면, 최후 반부의 특정 신은 감독이 이 장면에는 '관객이 이런 걸 느껴야 해!'를 생각했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아. 촬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롱테이크 신이 있다. 이 부분은 그냥 직접 보시라. 아마 올해의 베스트 신 TOP 3 안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당연히 액션이다. 액션 연출이 좋았다. 초반부 마석도가 흉기를 든 남자를 제압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마석도기 주먹으로 때리는 장면을 보면 무슨 돌로 사람을 머리 찍는 소리가 난다. 난 이걸 처음 들을 때 솔직히 작위적이라고 생각한다. 뭐 내가 적응을 해서인지 이 사운드에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가 전개될수록 맞은 인물들의 리액션이 나오는데, 이거랑 잘 맞는다. (이거 외엔 할 말이 없다. 극 중에서 마석도가 성장하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퍽 퍽 때리는데 역시 뛰어난 연출이 극의 생동감을 부여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이 사운드 연출이 아니더라도 맨몸 액션 자체가 확실히 보는 재미가 있었다. 초반부를 지나 한 30분쯤 됐을 때 마석도의 액션신이 나오는데, 뭐 사람 하나몇 대 연속해서 때리지 않아도 이 사람이 얼마나 센지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맨몸으로 두들겨 패기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장소마다 지형지물을 잘 활용하는 모습까지 있으니 몰입에 도움이 된다. <이터널스>의 길가메시보다 인물 연출이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마석도 캐릭터만 액션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강해상 캐릭터의 액션 연출도 탁월했다. 강해상 (일당)은 민첩성이 좋다. 이 인물은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람을 습격하는 방식의 캐릭터다. 앞에서 썼던 소리 연출이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조용하다가 쉭쉭 나타나서 공격하는데 그냥 간단하게 인물 액션만 보여주고서는 이런 디테일을 살릴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인물 설정을 십분 발휘했던 액션신도 기억에 남는다. 이 <범죄도시> 시리즈의 주요 재미 포인트는 무서운 빌런이 한몫할 텐데, 장첸과는 다른 연기 역시 보는 맛이 있었다. 주인공과 악역 액션 설정만 좋았냐? 아니다. 예고에서도 나왔던 장이수의 카체이싱, 다른 경찰 캐릭터들의 액션까지 전작 1편에서 너무 마석도에게 집중되는듯한 분량을 인물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관객에게 재미를 주는 방식을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역시 이상용 감독이 인물에 대한 사려 깊은 고민을 한 흔적이 난다.
사실 손석구 배우 작품 처음 봅니다
요즘 <나의 해방 일지>인가? 손석구 배우의 인기가 엄청나다고 들었다. 드라마는 사실 손이 잘 안 가는 나. 그의 활약상을 잘 보지 못했다. 목소리도 아예 처음 들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좀 놀랐다. 이 배우가 엄청나게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 물론 지금도 충분히 잘 나가고 있는 배우지만 이 사람은 <베테랑>의 유아인처럼 여기서 폭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장첸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빌런이었다. 뭐 강해상 역시 감정을 참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뭔가 절제하고 여유 있는 살인마였다. 이때의 강해상이 입에 품고 있는 미소 + 왠지 모를 자신감 + 꼼꼼한 성격까지 다방면의 특성을 가진 인물을 소화해냈다. 전작에서 윤계상-김성규-진선규 세 배우의 뛰어난 연기가 임팩트가 커서 아마 이 셋의 악역을 지울 수 있을까 싶은 분도 있을 텐데, 아마 이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셋의 존재감을 캐릭터 설정과 좋은 연기로 잘 틀어막았다.
통통 튀는 조연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조연들이다. 물론 마동석의 마석도, 손석구의 강해상의 카리스마는 탁월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 둘이 빛나기 위해 조연들이 배경을 깔아주다시피 했다. 인물들은 각각의 개성을 보여주며 이야기에서 적지 않은 위치를 차지하는데, 감독의 인물 설정을 알맞게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가 빛났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전작 1편에서 장이수 캐릭터가 살짝 허무했다고 생각한다. 흑룡파 3인방이 돋보여야 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개성을 줄였다고 하면 사실할 말은 없다. 물론 극에서 장첸에게 한방 먹이기에는 성공하지만 이것 말고는 좀 끌려다니는 느낌이 강했다. 가리봉동의 대표 조폭 아니었나? 장첸의 카리스마에 찍소리도 못하는 게 사실 좀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장이수가 2편에서는 단순히 유머 소재로만 쓰이지 않는다. 이 인물이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쌓아놨던 성격과 서사가 극에서 경제적으로 잘 쓰인다. 이런 인물 설정은 다른 조연들에게도 적용된다. 전일만-오동균은 전편이나 지금이나 마석도의 응원단장 같은 느낌이다. 사실 당연할지도 모른다. 장첸이나 강해상이나 싸움 자체는 잘한다. 그래서 이 둘과 전면전을 붙으면 영화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각각의 특정 시점을 지나가면서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앞에서도 언급했듯 홍석-상훈 둘에게 액션신을 준 것도 이 둘이 그냥 나이가 비교적 어리고 무력이 약하다고 해서 소모적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둘은 다른 부분에서도 주체적으로 활약한다. 그리고 한 특정 인물에 대해 쓸 수는 없지만, 이 시리즈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입체적인 인물이 등장했다. 후반부는 거의 이 인물 덕에 극이 전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리즈에서 생각할 수 없었던 캐릭터를 보고 싶다면 이 영화가 좋을 것이다.
그냥 재밌는데 어떡해
사실 길게 이 영화의 장점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 영화는 그냥 재미있다. 한 줄 요약. 잘 만든 영화다. 코로나19 여파로 우리나라 기대작들이 개봉이 많이 밀렸다. 이제 6월이 되고 나서야 한국영화 기대작들이 하나, 둘씩 잡히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이 레이스의 좋은 스타트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친구들이랑 삼삼오오 놀러 가서 봄 극장 나들이 하기 딱 좋은, 그런 잘 만든 킬링타임 영화다. 부럽다! 안 본 사람이 있어서! 이 시리즈의 3,4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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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이 건네는 말 '행복해지자꾸나'
글과 기억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다시 읽어보면 엥? 싶은 것이다. 나 나름대로 나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적었지만 신파 가득한 영화가 된 것 같아 '엥?' 싶다. 그럼 포스팅의 수정 버튼으로 마우스가 움직인다. 이거 고쳐야지. 저거 고쳐야지. '~하도록 하자'라는 말이 뭔가 어색하다. 읽는 사람들은 이 영화의 장단점을 읽고 극장에 가고 싶어서 이 포스팅을 클릭한 것인데 왠 알지도 못하는 놈이 설교하면 이상하잖아?
그래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 그리고 나와 입장이 비슷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게 뭐 나쁜 것도 아니고 그 나름의 의미는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타인이 나를 혐오하는 건 사실 그렇게 큰 페널티가 아니었다. 전 여자 친구 같은 존재가 아니면 신경 안 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삶을 마주하며 느끼는 감정 중에서 이겨내기 힘든 건 자기혐오였다. 그래서 난 <매그놀리아> 리뷰를 쓰며 신파와 유사한 글을 쓰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근데 뭐 그게 나쁜 걸까? 다들 그게 삶이라고 느끼니까 그와 관련된 많은 창작물이 나오는 거 아닐까 싶다. 옆 나라 일본에 사는 거장이 이런 우리에게 (비교적) 서툰 화법으로 따뜻한 진심을 건네고 있다. 프랑스 칸을 경유하고 입국한 영화를 지금 극장에서 만나보자.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
어딘가 머뭇거리고 있는 것 같다. 머뭇거리는 여자. 비가 오는 밖, 여자는 무언가를 어느 곳에 놓고 나왔다. 바바닥에 내려놓은 무언가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여자가 내려놓은 건 아이다. 그것도 방금 태어난 아기였다. 여자는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사라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여자. 그 다른 여자는 바닥에 놓여있던 아이를 상자 안에 밀어 넣는다.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상현. 상현은 아마 혼자 살고 있는 것 같다. 보육원에서 일하고 있는 동수. 동수의 보육원에선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고 있다. 상현과 동수는 이 베이비박스를 악용해서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 부모들에게 인신매매를 하는 일을 벌이고 있다. 엄연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둘. 둘에게 아이 한 명이 왔다. 아이의 이름은 우성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인신매매를 준비 중인 상현. 상현은 동수에게 감시카메라를 삭제하라는 말과 함께 다른 가족들을 찾기로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이의 엄마 소영이 다시 베이비 박스로 돌아왔다. 그렇게 계획대로 착착 이어질 것 같았던 둘은 새롭게 생긴 돌발변수를 맞이하게 된다. 소영과 상현, 동수는 그렇게 새로운 부모를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세 인물은 가까워지게 된다. 마치 월미도에 여행을 간 가족들처럼.
변주해서 만든 이야기
이 영화를 보다가 생각난 작품은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다. 일단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매그놀리아>의 하이라이트 신에 삽입되었던 OST를 주요 지점에 배치했다. 이 <매그놀리아>를 각본에서 삽입한 만큼 이 영화에도 그와 비슷한 모티브가 쓰였다. <매그놀리아>는 러닝타임이 3시간인 영화다. 3시간 동안 각자 다른 인물 9명이 자기혐오와 연민 속에서 빠져드는 이야기가 영화의 줄거리다. 이 러닝타임 동안 극의 전개를 비트는 장면이 있다. 이 인물들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삼아서 조금의 구원을 얻는다. 이 영화 <브로커>역시 각자 인물의 사정을 조금씩 다르게 묘사했다. <매그놀리아>에서 남자의 입장에서 여자를 섹슈얼리티로 유혹하거나, 마약과 매춘에 피해자였던 여자의 입장을 중후반부에 한 사건으로 엮어놓았던 방식은 '아기'로 인물들을 묶은 것과 유사하다. 네 명의 사람들에게 각자 다른 입장을 2시간 안에 때려 박고도 각본의 구멍이 없게 착착 녹아들었다는 것은 역시 '거장은 거장'이라는 수식을 주기 충분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내가 뭘 봤나' 생각해보면 인물의 말이나 제스처가 기억에 남는다. 근데 그 인물의 특성들이 꼼꼼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이라이트 신까지 극에 몰입하는데 용이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단점도 있다.
묘하게 느껴지는 이질감
영화에 단점이 없진 않다. 사실 분명하기까지 하다. 일단 예고에서도 나타났던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 이제 행복해지자꾸나' 이 말. 난 내가 하는 이 세상에서 몇 번 못 들어봤다. '우리 이제 행복하자'도 아니고 '행복해지자꾸나'라니. 보면 영화 대사가 아니라 2000년대 초반에 나올 법한 우리나라 단편소설 문장 같다. 이 이질감은 반복된다. 예를 들어 소영과 동수가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면서 '나 이 말 두 번 하는데'라고 하면서 손가락 두 개를 표시한다. 이게 뭐 무리수를 뒀다던가 그런 건 아닌데, 굳이? 싶은 것이다. 이게 고의적으로 디렉팅을 이렇게 한 거면 과하다고 생각한다. 일본 감독이 각본을 써서 그런지 이게 예전 우리나라 드라마에 나올 법하다는 걸 모르고 쓴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무언가 어색한 대사 방식은 이주영 배우가 맡은 이형사 역에도 똑같이 반복된다. 이형사의 상관인 수진과 차에 타고 있을 때 누군가와 대화하는 신이 있다. 이주영 배우가 평소에 쳤던, <메기>나 <꿈의 제인>, <이태원 클라스>에서 볼 수 있던 말하기 방식이다. 그런데 이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은 많이 어색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이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은 분명하다. 근데 단점도 그만큼 뚜렷한 셈이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거의 두 달 전에 우리나라 독립영화 <태어나길 잘했어>를 봤다. 이 <태어나길 잘했어>를 보고 느꼈던 건 좋은 작품인 건 안다. 그런데 뭐랄까 한국 예술영화들이 거의 이런 톤인 느낌? <벌새>, <우리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소공녀> 등등 버거운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우리에게 격려를 하는 건 좋다. 당연히 나 역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신에서 위로받았으니까. 그런데 <원더풀 라이프>에서 '당신을 대표하는 기억은 무엇인가요?'를 간접적으로 전했다는 것과는 뭔가 다르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구나' 느끼는 것이다. 퀄리티 있는 연출법을 갖고 있던 사람이기엔 엥? 싶은 구석이 있다. 또, 소영이 누군가에게 쌍욕을 늘어놓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강간'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영화 자체가 어떤 이야기를 허구를 중심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 대 사 자체의 개연성이 좀 많이 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거기서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은.. 한 20000명의 1명쯤? 솔직히 아예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근데 잘 만들었어
그렇게 단점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수작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앞에서도 썼듯 캐릭터 설정에 부여한 섬세한 디테일이 탁월했다. 특히 송강호 배우기 연기했던 상현은 나쁜 사람이다. 그 사람의 이유가 어찌 됐건 자기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인신매매를 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자기 딸과 아내에게도 잘 못했다. 아마 도박 빚 때문에 두 사람을 떠나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직업은 '세탁소 사장'이다. 무언가를 '빨아 다시 써야만 하는' 상현의 입장과 유사하다. 이뿐만이 아니라 이 인물은 자기 내면의 모순까지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소영이 상현에게 '이 사람들을 일찍 만났다면 우성이를 보내지 않아도 될 텐데'리고 말한다. 상현은 대답한다. '아직 늦지 않았어'라고. 근데 그 '아직 늦지 않았어'라는 대답이 소영에게 잘 들리지 않는다. "응? 뭐라고?" 소영이 답한다. 상현은 다시 대답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삶이 계속해서 같은 하향곡선을 계속 찍게 되면 세탁으로도, 비가 내리는 것만으로도 국면전환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쩌면 극에서 각본을 쓴 사람이 유지하고자 했던 거리감은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묘사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또 다른 장점은 수진 캐릭터다. 수진은 단서가 없는 인물이다. 수진이 왜 우성을 베이비박스 안에 놨는지도 제시되지 않는다. 그리고 왜 소영을 미워하는지, 엔딩부에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런 입장까지 놓였던 이유는 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철저한 의도 아래 놓여있는 인물 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과감하게 이 인물의 원인과 동기부여를 생략해서 감정적으로 진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을 넓혔다. 그리고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인지해서 경제적으로 극 전개를 이끌어낸다. 이 인물에게 <매그놀리아>의 래퍼런스를 넣은 이유는 분명히 있다. <매그놀리아>는 9명의 인물이 각자의 이유를 들어 자기혐오를 토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기혐오를 우연처럼 보일 수 있는 일을 바탕으로 극복해낸다. 그 에피소드가 각자가 갖고 있는 상처를 본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냐? 아니다. 전혀 상관없는 방식이다. 근데 이 사람들이 자기혐오를 겪는 이유를 일일이 찾으려면 너무 복잡해서 풀 생각조차 안 든다. 그렇게 복잡한 사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매그놀리아>가 던지는 해결 방식은 탄력을 얻는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 덕에 인물은 각자의 구원을 조금이라도 찾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 이런 방식을 택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은 자기혐오의 해결 방식을 얼핏 보면 생뚱맞은 수를 골랐다면 본 작의 각본가는 그냥 이유를 없애버렸다. '인과관계가 뚜렷한 해결책' 대신 '문제의 원인을 없애버린' 설루션을 고른 것이다. 이렇게 수진 캐릭터의 설정으로 영화는 관객에게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에게 용서할 수 있는 실마리를 안겨준다. 또 이렇게 괄호 쳐져 있는 인물을 배두나 배우가 잘 소화하기도 했다. 이미 합을 맞춰본 적이 있어서 그런가 배우의 장점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수진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감독 특유의 꼼꼼한 손길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중후반부 소영이 어떤 인물을 쳐다보는 신이 있다. 한 인물이 어떤 행동을 한다. 근데 카메라는 그 행동을 찍어주지 않는다. 그 대신 소영의 모습을 클로즈업한다. 감독이 생각하는 이 영화의 거리감인 셈이다. 그렇게 소영이 자기를 용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걸 묘사하는 꼼꼼한 연출이다. 또 월미도의 놀이동산에 가는 신이 있다. 이 부분도 인물들의 입장과 놀이동산이 잘 어울리는 부분이 있다. 또 장소 설정도 좋았다. 극본의 하나하나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에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아무튼 이 부분은 여러분이 직접 보시길 바란다. 극에서 엄청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난 엔딩도 이 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적절하게 끊었다. 덧붙이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많은 분들이 매긴 이 영화의 평점들이 0.5점은 더 깎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신에서 단점으로 작용했던 부분이 오히려 장점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버거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게 하고 싶던 말이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감독에게 감사한 마음이었다.
이유가 있었던 칸의 선택
이 영화로 송강호 배우가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7년 역시 송강호 배우가 나왔던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고 15년 만에 이룬 한국영화의 쾌거다. 이 영화에서 연기 정말 잘했다. 송강호 배우가 과연 어디에선 연기 못했나? 싶긴 하다. 근데 뭐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잖아? 이 작품에서 정말 반짝반짝 빛났다. 9할이 착하고 1할이 악한 인물의 이중성을 묘사하는데 탁월했다. 아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 송강호 배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든 것 같다. 전반부보다 후반부의 상현이 더 빛난다. <밀양>의 전도연 배우처럼 초장부터 끝까지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퍼포먼스가 아니더라도 이 영화의 배경을 만드는 연기였으니 과연 상 받을만하다. 근데 개인적으로는 송강호 배우의 최고작까지는 아니었다.
송강호 배우 이야기는 아니지만 배두나 배우의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에서 느껴졌던 '일본어를 한국어로 옮긴 괴리감'이 유일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배우이기도 하다. 또 뭔가 사연 있는 눈빛이나 후반부에 가서 드러나는 인물의 입장까지 뭔가 신비로운 캐릭터 설정을 잘 소화했다. 그리고 이지은 배우도 잘했다. 무난했다. 의외로 욕을 잘해서 놀랐다. 근데 몸싸움은 잘 못하는 듯하다. 아. 난 이 영화를 보고 아이유의 팬이 되었다.
너무 예쁘.....동수 역의 강동원 배우의 영화 필모그래피에서 이 <브로커>가 가장 기억에 남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유약해 보이지만 깊은 남자의 내면이 느껴지는 연기였다. 잘할 수 있는 연기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오리지널리티에 있었으니 과연 물 만난 물고기인 셈이다.삶이란 게 지겹긴 해도 좋은 게 맞는 것 같아
태어나길 잘했어라는 말, 사실 참 어려운 이야기다. 각자가 갖고 있는 상처는 가지각색으로 다르다. 0대 100쯤의 과실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린 인간이기 때문에 조금의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 일 때문에 태어나길 잘했다고 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은 참 어렵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이럼에도 불구하고 참 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지곤 한다. 이렇게 서글픈 우리를 <브로커>는 놀이동산으로 데려간다.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 또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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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을 위한 안녕
- *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으로 4월 29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해피엔드>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존재합니다.<해피엔드>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의 일본 도쿄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 시간, 그 공간에서 생기는 그 순간을 포착한다. 그저 흘러갈 것처럼 보이는 자그마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순간들. 하지만 그 순간은 누군가에게는 특별했다. 적어도 ‘코우’와 ‘유타’, 두 사람에게 그 순간은 잊혀지지 않았다.흔들림을 따라영화 속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지진이다. 조그마한 흔들림과 지진경보에도 두려워하는 사람들. 하지만 단 한 사람, 코우만은 다른 생각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코우는 흔들림을 두려워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지진을 두려워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 앞에 놓인 책상을 계속해서 흔든다. 마치 지진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코우는 재일교포 4세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코우 본인은 분명 태어난 곳부터 시작하여,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까지 완벽한 일본인이지만 사회는 그를 일본인, 그리고 그들의 국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의 초반 디제잉 공연을 보러간 코우와 유타. 클럽에 경찰이 들어 닥치게 되고, 공연은 중단된다. 그리고 경찰들은 고등학생인 코우와 유타의 신원을 묻는다. 경찰은 일본인인 유타의 신원을 확인하고 나서 유타에게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지만, 코우에게는 휴대의무도 없는 체류 허가서를 요구한다. 분명 같은 자리에 있었고, 같은 감정을 느꼈던 사람이지만 코우와 유타는 외부인과 내부인으로 구분된다.재일조선인인 코우를 비롯하여 대만 혼혈인 밍, 그리고 흑인 혼혈인 톰까지 이들은 모두 그 사회에서 철저한 외부인이었다. 극우 정치인이 권력을 잡고, 총리의 권한을 집중시키는 해피엔드 속 사회, 그리고 그곳에서 철저하게 외면받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어느 순간 ‘비국민’이라는 경멸적인 호칭까지 붙게 되었다. 함께 음악 감상 동아리를 하고, 서로가 함께 있는 것만 해도 좋았던 친구들. 하지만 사회는 잔인했다. 권력은 자신들의 두려움과 위기를 돌리기 위해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강조하기로 했다. 눈에 보이는 피부색과 종이에 적힌 출신성분. 그것들은 차별이라는 금을 조금씩 만들고, 금은 공고해 보였던 코우와 유타의 우정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자리잡은 금을 보며, 코우와 유타는 흔들림에 대해 조금씩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두가지 외로움어차피 망해버리는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끼리 남은 시간을 즐기자고 말하는 유타, 그리고 망해버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나서자는 코우. 세상이 망해버릴 것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은 서로가 같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너무나도 달랐다. 작품을 보면 유독 유타는 환하게 웃는 장면이, 코우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무표정을 짓고 있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실제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더라도, 유타는 환하고 넓으며 편안해 보이는 새하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에 반해 코우는 땀냄새와 음식냄새, 그리고 낯선이들의 고성이 오가는 식당에 살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개별적 삶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차이는 우리가 잠시 놓친 것들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그들이, 또는 우리가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하고 평생을 약속할 정도의 영원한 사랑과 우정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바로 그것이 그들 개인의 삶에서 천천히 커져간 가치관과 생각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들은 누군가가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 속 끝에 남아, 결코 채워줄 수 없는 그들 개개인의 것이었다.영화의 초반부, 경찰이 오니까 클럽에서 나가자는 코우. 하지만 유타는 여기까지 왔으니 더 즐겨야겠다면서 음악에 몸을 맡긴다. 그러자 코우는 고민하는 듯 하지만 유타의 말을 따른다. 그렇게 작품 처음부터 유타는 굉장히 주도적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한다. 유타는 유독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인지 유타는 자신의 집에서 친구들을 자주 부른다. 이에 반해 코우는 친구들을 자신의 집에 부르지도 못하며, 엄마와 교장의 말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연 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어떤 외로움을 가졌는지이다. 만약 코우가 느낀 것이 ‘사회 속 개인으로서의 외로움’이라면 유타가 느끼는 외로움은 ‘개인들 속 개인으로서의 외로움’인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자신들의 외로움의 심연 속에 빠져들었다.뒤집어진 우리이미 조금씩 흔들리던 그들의 세상에 지진이라는 개념이 가시화되어 나타난 것은 뒤집혀진 무언가였다. 디제잉 공연을 보고 학교로 돌아온 유타와 코우, 그리고 친구들. 그들은 평소 수직적이고 권위적이었던 교장의 스포츠카에 장난을 친다. 그런데 그날 우연히도 지진이 일어나고, 교장의 차는 뒤집힌다. 다음날 뒤집혀진 차를 본 교장은 노발대발하며 학교에 인공지능을 이용한 감시 카메라 체계를 도입하게 된다. AI로 학생들을 감시하고, 벌점을 매기는 감시카메라. 이것이 학교에 도입이 되자, 학교와 사회를 나누던 얇은 벽마저 무너졌다. 학문을 위한 곳을 넘어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는 곳인 학교. 하지만 이곳에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순간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운다는 학교의 가치는 희미해지게 된다. 누구나 실수하고, 싸우고, 무너지고 눈물 흘리면서 배우는 사람들. 그러한 과정들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사람다운, 아니 사람다운 척조차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안전이라는 고결해보이는 말로 그들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순간. 그들은 배움의 과정조차도 평가받고 제한된다.학교 밖에서는 수많은 시위가 발생하고, 정부와 국민이 충돌했다. 그러나 그러한 혼란 속에서 학교가 학생들을 보호해줬던 것은 그들이 결과보단 ‘성장’이라는 가치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었다. ‘무너져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우린 더 나아질거야’라는 그 가치들. 그 가치들은 안전과 같이 편리를 위해 지어진 허황된 말과는 다르게 고귀했다. 그러나 감시가 시작되고 결국, 그들이 성장을 위해 무너지고 실수하는 과정들조차 모두 실패로 여겨지게 되었다. 성장이라는 말은 결국 뒤집혀졌고 실패라는 꼬리표가 매시간, 매분, 매초에 붙여졌다.조금씩 일어나는학교 안과 학교 밖,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에 상처내며 일어나는 불합리적인 일들. 어른들과 사회에게 들려오는 사회부적응자, 양아치, 꼴통, 불량아라는 말들. 그렇게 아이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그 누군가에게도 위로 받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힘이 되던 것은 같이 있던 그들, 그리고 우리였다. 학교에 어느날 한 자위대 청년이 찾아온다. 잘생긴 청년의 외모에 웅성거리던 그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안보교육을 해야 하니 일본 국적이 없는 이들은 교육을 들을 필요가 없다며 다른 교실로 이동하라고 말하며 아이들을 분리시킨다. 학교 밖에서만 일어났던 차별과 계급화. 그것이 학교로 들어온 순간. 아이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시위에 참여했다며 원래 담임선생님이 교체되고, 징계를 받기도 했지만 참아왔던 아이들도 하나의 세대를 의미하는 하나의 반이 두 눈 앞에서 분리되는 순간을 견딜 수 없었다. 어쩌면 하나의 반의 분리가 결국, 우리 세대의 분리를 의미할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이들은 교장실에 찾아가 감시카메라 제도 철폐를 요구한다. 그러나, 교장은 안전이라는 이유로 거부한다. 하지만 점거시위까지 하면서 단호했던 아이들. 교장은 어차피 감시카메라가 철폐되어도 너희들이 졸업하고 나서 철폐된다고, 이럴수록 너희들만 손해라고 말한다. 교장의 회유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건네는 초밥을 통해 부각된다. 달콤하지 맛있어보이는 초밥. 그 값비싼 초밥이 갖는 의미는 명확했다. 그렇게 조금씩 무너지고 고민하는 아이들. 하지만 그 순간, 교장실로 오토바이 헬멧을 든 누군가가 나타난다. 김밥을 가지고 말이다.흔들리며 피어나“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꽃은 흔들리며 핀다는 그 말, 그리고 흔들려야 꽃이 핀다는 그 말. 그 말을 아이들도 알고 있었을까. 아이들은 흔들리고 또 흔들려도, 그리고 너무나 흔들려 뒤집혀져 버렸을지라도 꽃 피우고자 했다. 김밥을 들고 오토바이 헬멧을 쓴 채로 나타난 사람은 코우였다. 그리고 그 김밥은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 결국 감시카메라 제도의 폐지를 이끌어낸다. 기득권층의 양심으로 요구가 관철되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는 후미. 하지만 이럴 때는 웃어도 된다고 말하는 코우. 그는 늘 웃던 유타처럼 웃었다.졸업식날, 교장은 감시카메라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자신의 자동차를 뒤집은 범인이 나와야지 감시카메라 철폐를 검토해보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그러자, 후미와 코우를 비롯한 아이들은 반발한다. 그 순간 자신들은 안전을 위해 감시카메라 철폐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나타난다. 그 결과를 분명 어른들이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일본인과 외국인을 구분하고, 내부인과 외부인을 나눈 것이 만들어낼 당연한 결과는 졸업식장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누군가. 바로 유타였다. 그리고 유타는 자신이 교장의 자동차를 뒤집었다고 말한다. 시위와 감시 카메라 철폐 요구에 참여하지 않았던 유타. 망해버릴 이 사회에서 남은 삶이라도 즐기자는 유타. 하지만, 결국 세상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유타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 그리고 결국 감시카메라를 없애고 이 사회를 바꾸는 것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유토는 그 선택을 한다. 그리고 유타는 언제나처럼 웃는다.유타의 희생으로 아이들의 바램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유타는 퇴학당하고, 유타가 그렇게 두려워했던대로 친구들은 하나 둘씩 흩어지게 된다. 그리고 늘 헤어지던 그 육교 앞에 선 유타와 코우. 그들은 언제나처럼 작별한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장난치고 또 웃으며. 영원히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그렇게 하나가 된 그들, 아니 우리는 ‘안녕’을 말한다.결국 해피엔드<해피엔드>는 네오 소라 감독의 첫번째 극영화이다. 자신의 아버지,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피스>를 통해 섬세한 연출과 시선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극영화가 이렇게까지 좋은 작품일지 예측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첫번째 극영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품의 음악이나 비주얼적 요소들 모두 탁월했다.그러나 결국 영화가 이토록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큰 의미를 지녔다고 평가받는데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해피엔드만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은 자신이 살아가면서 본 여러가지 사건들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반원전 시위나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이 그러했다. 또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과 같은 역사들도 감독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사건과 역사를 통해 감독은 해피엔드를 만들었고, 과거에 대해 반성 하지 않는 일본의 미래를 그려냈다.
<해피엔드>는 미래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분명 SF 영화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했던 SF 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가까운 미래를 그렸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영화 속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의 일본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가끔씩 보이는 도시 전경에 섞인 사이버펑크적인 요소를 볼 때가 되어서야 이 영화가 SF 영화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만약 먼 미래를 그렸다면 감독의 상상력이 더욱 가미될 수 있었고, 영화의 가치와 철학에 대한 반박들에서조차도 훨씬 자유로웠을텐데 왜 감독은 가까운 미래를 영화의 시점으로 택한 것일까. 아마 그것은 영화가 다루고 싶었던 것은 결국 개인이었기 때문이다. 사회는 변하고 가치는 달라진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은 바로, 모든 것들 안에 개인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화가 원하는 것은 그 개인의 안녕, 그들만의 ‘해피엔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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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스트 스나이퍼> 메인 예고편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혹한의 겨울,
독일군에게 크게 패한 러시아군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이후 승리에 도취된 독일군들 앞에
‘레드 고스트’라는 보이지 않는 러시아 저격수가 나타나고,
그들을 한 명씩, 한 명씩 사살하면서 공포에 떨게 만든다.
한편, 전방으로 향하던 소수의 러시아군은
‘레드 고스트’의 행적을 쫓던 독일군과 마주하게 되고,
곧이어 그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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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어웨이크> 공식 예고편
알 수 없는 현상이 전 세계를 덮친다.
모든 전자 기기는 사용 불능 상태가 되고, 인류는 잠들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극도의 혼란에 빠진 세상.
과거의 상처를 간직한 전직 군인 질(지나 로드리게스)에게 이 현상을 치유할 열쇠가 있을지 모른다.
그녀의 어린 딸이 그 열쇠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