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2-27 13:48:29
진짜가 나타났다!
영화 [퇴마록] 리뷰
이 글은 영화 [퇴마록], [검은 수녀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라떼는 학생들이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일이 흔치 않았다. 덕분에(?) 지금처럼 "즐길거리"는 많지 않아서 독서 정도가 만인의 취미 정도로 여겨졌다. 만인의 취미는 또 다른 이름의 교과서가 되어 유명 대학교 추천 어쩌고 100선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가슴속에 짐짝처럼 올려져 있었기에. 장르 소설인 퇴마록의 인기와 재미는 마치 금서를 펼쳐보는 것과 같은 짜릿함을 학생들에게 선사했었다.
나라는 학생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삼촌 책장에 고이 꽂혀 있는 책을 한 권씩 읽어내려가며 부모님은 모르는 세계에서 유영하는 바람에 모든 중간, 기말고사를 망하고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어른이 되어버렸지(?).
사진 출처:다음 영화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서 모든 책의 내용이 기억난다고 하지는 못하지만. 그 책을 읽어 내려갈 때의 비밀스러움과 전율만큼은 아직까지도 기억해 낼 수 있을 정도로 이 책의 의미는 학창 시절의 나에겐 대단했다.
그런 대단한 원작을 바탕으로 실사도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개봉까지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의 반응은 당연하게도 물음표였다. 과연 그 특유의 어둡고 먼지 가득한 이야기를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많았지만. 영화가 초반부터 날려댄 일침은 이 오만하고 늙은(?) 관객이 정신을 차리다 못해 무릎을 꿇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가 꽤 괜찮은 오컬트 영화임을 설명하려면. 안타깝게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검은 수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영화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한 지점을 [퇴마록]은 꽤 적절한 수준으로 보수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각 인물들의 플래시백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지만 과하거나 지루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았다. 덕분에 이 퇴마 원정대가 모이게 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명쾌하면서도 충분했다. 충분하다는 말은, 자세하게 설명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적당하다는 말로 통용해도 무리가 없다.
덕분에 이 편에서 궁금증을 느낄만한 장면들은 후속 편을 향한 자연스러운 떡밥으로 이어지는데. 아주 묘한 점은 마치 수많은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다음 편을 위한 징검다리로 본편을 소비해 버리지는 않기에, 강호를 구하지 않으면 정말로 밀교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긴장감이 극 중 내내 유지된다.
그뿐인가.
단 하나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선(善)을 위한 종교 대통합(?)은 이렇게 이루는 것이다. 를 몸소 보여준 탓에. 그 어떤 이질감이나 모독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적절하면서도 합당한 설명이 이뤄졌기 때문에 오는 안정감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게다가 이 영화는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이야기들은 거의 다 들려줬다. 휘몰아치는 1.5시간 정도의 러닝 타임 속에서 뛰고 구른 덕분에 힘은 들고 지치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개운하게 극장을 나설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속편이 기대되는 작품이라니. 게다가 그 속편을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영화라니. 편견 아닌 편견을 깨준 덕에 즐겁게 시간을 채울 수 있는 영화를 만나 행복했다.
[이 글의 TMI]
1. 연휴 기다리며 참는다.
2. 빵을 끊어야 하는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3. 겨울 워커도 세탁 맡기면 되는 건가?
#퇴마록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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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5월 둘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이번 주는 맑고 따뜻한 봄날씨가 예상된다고 하는데요.다만, 이번 주에도 일교차가 심하다고 하니 겉옷 챙기셔서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의 개봉 주 주말의 관객 수'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은 마블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많은 마블 팬을 보유한 나라인데요.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박스오피스 순위인 것 같습니다.
주말 동안 (5월 13일~5월 15일) 관객 수 83만 8,901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490만 6,526명을 돌파하였습니다.셋째 주에는 누적 관객 수 5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입니다.2. <범죄도시2> (NEW)▶ 아직 개봉 전인 <범죄도시2>가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였는데요.
개봉 전 주말 프리미어 유료 상영회가 열리며, 개봉 전부터 박스오피스 순위권에 들게 되었는데요.
개봉 전부터 뜨거운 반응과 호평이 연달아 나오는 것으로 보아, 좋은 성적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말 동안 (5월 13일~5월 15일) 관객 수 17만 1,732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8만 2,93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가리봉동 소탕작전 후 4년 뒤, 금천서 강력반은 베트남으로 도주한 용의자를 인도받아 오라는 미션을 받는다.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와 ‘전일만’(최귀화) 반장은 현지 용의자에게서 수상함을 느끼고,
그의 뒤에 무자비한 악행을 벌이는 ‘강해상’(손석구)이 있음을 알게 된다.
마석도’와 금천서 강력반은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역대급 범죄를 저지르는 ‘강해상’을 본격적으로 쫓기 시작하는데...3. <배드 가이즈> (▼1)▶ 가족 관람객을 사로 잡은 드림웍스의 <배드 가이즈>가 둘째 주에 누적 관객 수 30만명을 돌파하였는데요.
주말 동안 (5월 13일~5월 15일) 관객 수 5만 8,831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3만 855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씨네픽의 이번 주 100회 예측 이벤트는 5월 2주 차 박스오피스(순위) 예측입니다. 한 주동안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는데요.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5월 2주 차 박스오피스 순위의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
정답자 비율(%)
▶ 한 주 동안 많은 씨네픽 유저분들이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 주셨는데요. 박스오피스 1위 순위를 가장 많은 분들이 맞혀주셨고,
그다음으로 3위, 2위 순으로 많이 맞춰주셨습니다. 90% 이상의 사람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예측에 성공하였는데요. 이에 비해 2위와 3위를 맞춘 비율이 굉장히 적었습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98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3주 동안 박스오피스 TOP 5 순위권 안에 들었는데요. 저번 주말 순위를 유지해 4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주말 동안 (5월 13일~5월 15일) 관객 수 2만 3,729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9만 3,16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극장판 엉덩이 탐정: 수플레 섬의 비밀> (▼2)▶ <극장판 엉덩이 탐정: 수플레 섬의 비밀>은 두 단계 내려가 5위를 차지하였는데요.
이번 주 개봉 예정작을 생각했을 때 셋째 주에는 TOP 5 순위권 밖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주말 동안 (5월 13일~5월 15일) 관객 수 1만 9,18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37만 7,22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국내 박스오피스와 동일하게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가 차지했습니다.
또한,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성적과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성적은 하나 빼고 모두 동일하였는데요.
<Firestarter>가 개봉하면서 순위권에 올라갔고, <Fantastic Beasts: The Secrets of Dumbledore>가 순위권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주말 동안(5월 13일~5월 15일)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의 매출액은 $61,003,000 (한화 약 783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총 누적 매출액은 주말 매출액과 동일하게 $291,862,523 (한화 약 3,747억)을 기록했습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5월 6일 ~ 2022년 5월 8일)1.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6,100만 달러 (누적 2억 9,186만 달러)2. <배드 가이즈> 689만 달러 (누적 6628만 4,000만 달러)3. <수퍼 소닉2> 455만 달러 (누적 1억 7,570만 달러)4. <파이어스타터> 382만 달러 (누적 382만 달러)5.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330만 달러 (누적 4,710만 달러)...씨네픽의 5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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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인과 악인, 그 사이에 서 있는 흑기사의 라스트 미션!
2015년 위험에 처한 콜걸을 도와주며 시작한 맥콜 아저씨의 여정이 끝이 났다. 약자를 위해 나선 흑기사 맥콜의 마지막 여정지는 이탈리아 시골 마을. 이곳에서 그는 시리즈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하라는 그 임무를 멋지게 수행한다. 1, 2편과 마찬가지로 맥콜은 존 윅처럼 화려한 건(gun)격 액션이 난무하거나 제이슨 본처럼 리얼리티 액션과 거리가 먼 그저 무겁고, 조용하고, 강력한 한 방을 보여준다. 그것도 9초 안에. 더불어 시리즈를 관통하는 맥콜의 부채감과 선인과 악인 그 사이에 놓인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뇌도 잊지 않는다.
맥콜이 앉아 있는 곳은 어느 이탈리아 포도 농장 지하창고다. 보나마나 마피아 소굴인 이 곳에서 그는 시계 타이머에 맞춰 악인을 심판한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등에 총을 맞은 그는 사력을 다해 차를 몰고 그곳을 빠져나가지만 결국 어느 해변 도로에서 의식을 잃는다. 마을 경찰관과 의사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맥콜은 상처가 아무는 동안 그곳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처음에는 이방인이었지만, 차츰 마을 사람들과 유대감을 나누는 그는 오랜만에 평화를 느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는 마피아 집단이 등장하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경찰관 가족은 물론, 사람들을 공격한다. 잠자는 맥콜의 코털을 건드린 마피아. 그것도 모른 채 오만방자함의 극치를 달리고, 맥콜은 보란 듯이 어둠 속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이들을 처단한다.
<더 이퀄라이저> 시리즈는 1980년대 중반 방영했던 <맨하탄의 사나이>를 각색한 작품이다. 감독과 배우, 그리고 주된 이야기는 달라졌지만, 근간은 1980년대 감성을 오롯이 옮긴 스타일과 권선징악의 주제는 변함없다. 약자를 위해 나서고, 악인은 무조건 처단한다는 맥콜의 기조는 영화의 중심이 되며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안긴다.
이번 3편에서도 그 기조는 변함없다. 주요 무대와 주변 인물이 달라졌을 뿐이지 맥콜의 흑기사 활약은 계속된다. 초반 등 총상 이후 지팡이를 든 그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지만, 이는 후반부 지역 마피아를 상대로 인정사정 봐줄 것 없이 휘두르는 폭력의 파괴력을 더하기 위한 장치처럼도 보인다. 전편들 모두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지만, 3편의 액션 수위는 좀 더 강하다. 마지막 편에 걸맞은 피날레를 장식하듯 액션은 좀 더 강하고, 잔인하다. 물론 이를 자행하는 맥콜은 눈 하나 깜작하지 않지만 말이다.
<더 이퀄라이저> 시리즈는 액션에 치중한 작품이고, 악을 처단하기 위해 오로지 전진하는 한 남자의 단선적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단순 액션 영화로 치부하지 않는 건 맥콜의 고뇌 덕분이다. 감독은 맥콜의 액션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 과묵한 남자에게 죄책감을 안긴다. 1편에서는 사랑하는 아내, 2편에서는 사랑하는 동료, 3편에서는 사랑하는 마을 사람들 등 실력이 출중한 요원이지만 결국 사랑하는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힌다.
이런 상황에서 맥콜은 1편에서 자신의 고뇌에 발버둥치고, 2편에서 과거 자신이 살던 집을 찾아가면서 내면의 고통을 들여다보며, 3편에서 이 모든 걸 고통과 속죄에서 벗어나 비로소 구원받는 지난한 과정을 통과한다. 특히 3편에서 마을 의사와의 대화 내용은 그가 구원의 길을 걷게 된다는 걸 암시한다. 의사는 맥콜에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물어보는데, 정작 맥콜은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이 말을 들은 의사는 나쁜 사람은 잘 모르겠다는 답변 조차 안한다며 그를 선인으로 인정하고 포용한다. 마치 예수가 죄인을 사하여 주는 것 처럼 말이다.
덴젤 워싱턴은 액션은 물론, 자신이 가진 연기 스펙트럼을 최대한 활용해 맥콜이란 캐릭터를 감정적으로 공감하게 한다. 그는 단순히 정의 구현에 그치지 않고, 이 남자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만들어내는데, 이는 앞서 소개한 의사와의 대화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액션의 파괴력이 현란한 촬영과 움직임이 아닌 감정의 진폭에서 비롯된다는 걸 스스로 증명한다.
<더 이퀄라이저 3>에는 특별한 손님이 참여했다. 바로 덴젤 워싱턴과 연이 깊은 다코타 패닝이 등장한다. 극중 CIA 금융 작전팀 소속 콜린즈 요원으로 나온다. 오지랖 넓은 맥콜 아저씨와 알게 모르게 공조 수사를 하는 다코타 패닝의 연기는 반가움 그 자체 <맨 온 파이어>에서의 연이 이 영화를 통해 이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놀랍다. 물론, 캐릭터 구축이나 활용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기지만, 한 장면 안에서 이들을 함께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게는 큰 즐거움. 후반부 맥콜이 수많은 요원 중 콜린즈 요원을 선택했는지 그 이유도 나오니 끝까지 집중하시길.
사진: IMDB
평점: 3.0 / 5.0
한줄평: 이름처럼 시원하고 마무리. 흑기사여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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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눈은 온종일 그녀를 향해 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개 로맨스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마침내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고백 장면은 그간 작품이 쌓아온 두 사람 간의 로맨스 서사를 완성하는 하나의 장치이다. 반면 수많은 로맨스 작품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오만과 편견>에서는 고백 장면이 이 작품의 백미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만과 편견>에서 ‘사랑’은 한 사람의 사랑 고백 이후부터 시작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의 ‘자각’은 그 고백을 거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오만과 편견>을 조 라이트의 영화로 처음 접한 이들에게 엘리자베스를 향한 다아시의 고백은 당황스럽다. 소설의 방대한 분량을 2시간짜리 영화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둘 사이의 서사를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 감독의 실수라 탓할 수도 있지만, 원작 소설에서도 다아시의 고백은 엘리자베스에게나 독자에게나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이는 작품이 철저히 엘리자베스의 시점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곧 엘리자베스의 사랑은 다아시의 고백 이후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다아시의 사랑은 어느 시점부터 시작한걸까.
소설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엘리자베스를 위주로 전개하나 그와 동시에 소설의 특성을 살려 다아시의 내면까지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적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감독의 입장에서 본래 말수가 적은 다아시의 감정을 대사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감독은 다아시의 시선과 손을 클로즈업하는 등 비언어적 표현을 사용한다.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마음에 천천히 스며들었듯이 영화는 점차 선명해지는 다아시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설명하려 노력한다. <오만과 편견>을 처음 관람할 때는 엘리자베스의 감정선을 따라가게 된다면, 관객은 두 번째 관람에서야 엘리자베스에 대한 다아시의 감정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고로 다아시의 입장에서 <오만과 편견>을 해석하여 엘리자베스를 향한 다아시의 감정 변화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영화의 첫 무도회 장면에서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의 춤 신청을 사실상 거절한다. 이에 화가 났던 엘리자베스는 사랑의 묘약이 무어냐는 다아시의 질문에 춤이라 응수하며 마지막에 “Even if one’s partner is barely tolerable“(비록 파트너가 끔찍할지라도)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 말은 앞서 다아시가 절친 빙리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엘리자베스를 ‘tolerable‘(봐줄 만한)이라 평가한 말을 몰래 들은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비꼰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엘리자베스의 비꼬는 말을 듣고 화를 내거나 당황한 표정을 지었겠지만 다아시의 표정은 그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무뚝뚝하고 감정을 읽기 힘든 표정이다.
그 뒤로 엘리자베스는 아픈 언니 제인이 빙리의 집에서 간호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빙리의 집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다아시를 다시 마주친다. 빙리의 여동생과 함께 있는 내내 무표정이었던 다아시는 갑자기 찾아온 엘리자베스를 보고 당황해하다 곧바로 정중하게 인사한다. 이러한 다아시의 태도는 먼 길을 걸어오느라 엉망이 된 엘리자베스를 싸늘하게 바라보는 빙리의 여동생과 대비된다. 더 나아가 다아시가 만족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빙리의 여동생은 까다로운 조건들을 내놓는다. 이때 다아시는 책을 읽고 있던 엘리자베스를 보고선 독서를 통해 지성을 쌓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가 엘리자베스를 신경 쓰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관객은 엘리자베스를 향한 다아시의 마음이 이성적 호감이라 확신하기 여전히 어렵다.
영화는 다아시의 무뚝뚝함이 엘리자베스에 대한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의 내성적 성격 때문임을 설명하기 위해 영화 곳곳에 복선을 배치한다. 앞서 사랑의 묘약이 무어냐는 다아시의 질문에 자신과 춤을 추지 않은 다아시를 겨냥하여 춤이라 대답한 엘리자베스의 행동을 설명했다. 그 이후에 열린 무도회에서 다아시는 먼저 엘리자베스에게 다가와 정중히 함께 춤추기를 요청한다. 사랑의 묘약이 춤이라고 답한 엘리자베스의 말을 기억한 것이다. 또한 다아시는 애초에 엘리자베스가 싫어서 함께 춤추길 거절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중반부 캐서린 대부인의 집에서 둘이 마주치는 장면으로 설명된다. 여기서 엘리자베스가 춤을 거절당했던 무도회에서의 부정적인 첫인상을 이야기하자, 다아시는 처음 만난 사람과 편히 대화하는 재주가 없어 그랬다며 처음으로 자신의 태도를 해명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여전히 다아시가 오만하다고 평가하며 그에 대한 편견을 지우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초반부와 달리 슬픔이 서린 다아시의 눈빛을 통해 관객은 그의 감정 변화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매 장면마다 엘리자베스를 향해 고정된 그의 시선은 관객이 천천히 다아시의 진심에 다가서게 한다.
다음으로 영화는 다아시의 손을 총 두 번 클로즈업 한다. 두 번의 클로즈업은 다아시의 사랑 고백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지며 이는 관객이 엘리자베스를 향한 다아시의 마음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언니 제인의 건강이 좋아졌을 무렵 엘리자베스의 가족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차를 탄다. 이때 다아시는 자연스럽게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아 부축해주며 영화는 곧바로 다아시의 손을 클로즈업한다. 긴장한 듯 손을 폈다 다시 쥐는 다아시의 손과 당황한 엘리자베스의 표정을 교차하여 보여주는 연출은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을 나타낸다.
이러한 복선을 통해 관객들은 엘리자베스를 향한 다아시의 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다아시의 고백은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기보다 그의 돌발 행동에 가깝게 느껴진다. 처음부터 다아시를 오만하고 잘난 체하는 남성으로 평가해온 엘리자베스는 그의 고백과 해명에 혼란스럽다. 그런 엘리자베스는 다아시를 의도적으로 피하나 결국 그와 마주치게 된다. 영화는 횡설수설 끝에 황급히 다시 돌아가는 엘리자베스를 비춘 뒤 마지막으로 다아시의 손을 클로즈업한다. 예전과 달리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아주지도 못하고 데려다주겠다는 요청까지 거절당했다. 더욱이나 엘리자베스의 내적 갈등을 알 리 없는 다아시의 손은 더욱 쓸쓸해보인다.
영화는 다아시의 손뿐만 아니라 ‘hand(손)’라는 단어를 활용해 둘의 관계를 암시한다. 다아시가 청혼할 때의 대사는 ‘부디 나와 결혼해줘요’라고 번역된다. 이 대사는 이후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마음을 받아줄 때의 대사와 연결되기 때문에 영어 원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이때 다아시는 “Please do me the honor of accepting my hand.”라고 말한다. 직역하자면 부디 제 손을 받아주는 영광을 허락해달라는 정중한 청혼 표현이다. 다아시가 영화의 결말부에 다시 한번 사랑한다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때 엘리자베스는 자신도 그러하다는 식으로 대답하지 않고 “Your hands are cold.”(손이 차네요)이라고 대답하며 그의 손을 맞잡는다. 이는 처음 그가 제 손을 받아달라며 청혼했던 대사에 대한 늦은 응답이자 그의 사랑을 이제야 온전히 받아들였음을 드러내는 대사이다.
결국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끝내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 아니다. 고백 이후 다아시의 마음을 알아챔과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스며들었던 엘리자베스의 사랑을 자각하는 과정, 곧 서로에 대한 편견을 벗고 오만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고백 이후의 여정이 이 작품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다. 소설은 이를 인물들의 내면 묘사를 통해 나타냈다면 영화는 비언어적 표현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여 이를 드러냈다. <오만과 편견>은 원작의 명성을 바탕으로 기존 팬들에게는 원작의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재현해 선물하고, 처음 작품을 접하는 이들에게는 원작 소설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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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는 죽지 않았어!
하시모토 나오키 / 일본 / 2022 / 126분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 루가 봄과 함께 떠났다 사야카는 처음 겪는 이별이 낯설기만 하다 오래전 아들을 잃은 할아버지 후세와 함께 헤어진 이들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려 하는데… 그곳에서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재일 한국인 2세인 작가 이주인 시즈카(본명 조충래)의 동명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아쿠타가와상과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대중소설 작가에게 수여하는 가장 높은 상이기도 한 나오키상 수상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단행본 소설이다. 하시모토 나오키 감독은 소설을 처음 접하고, 영화화하기까지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마음을 아리게 만들기에 변함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루는 죽지 않았어-
영화는 난생처음 상실과 이별을 경험하게 된 8살 소녀 사야카(니이츠 치세)와 오래전 아들을 잃은 할아버지 후세(오이다 요시)의 만남을 10년 후 사야카의 내레이션(아리무라 카스미)을 통해 들려준다. 소중한 관계의 상실과 이별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야카가 맞이하는 이별은 작별인사 기회조차 주지 않는 어린이에겐 너무 어려운 경험의 연속이다. 이렇게까지 잔인한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하기엔 영화는 슬프고 우울한 분위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살랑한 봄의 여행길 같다.
좁은 문을 통해 강아지 루를 따라 들어간 벽으로 둘러싸인 들판은, 말 그대로 둘만의 공간이었다. 유일한 친구인 루만이 함께하는 공간은 그 어디보다 외롭지 않고 벽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가장 자유로운 공간처럼 느껴진다. 벽 너머로 수평선까지 보이는 듯한 바다조차 맑은 하늘에 푸르게 반사되지만 사야카 혼자 다시 들판에 갔을 때는 벽의 헤드룸을 좁혀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는 일반 공터로 만들어버린다. 그만큼 세상을 다르게 느끼게 해주는 존재에 대해 보여준 덕에 사야카의 상실감의 폭은 더욱 크게 와닿는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첫 장면이다. 첫 장면이 강렬한만큼 후반부는 약해지기 마련이다. 사야카가 느끼게 된 소외의 너무 짧은 전사나 스토리 전개의 속도, 카메라를 바라보는 듯한 사야카의 시선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적어도 루와 사야카의 관계는 의심할 수 없는 꾸밈없는 관계였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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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들의 앙상블을 확인하다
지난 2018년 청룡영화상에서 한지민에게 여우주연상을 선사한 영화 <미쓰백>. 한지민의 연기는 언제나 실망한 적이 없지만 과격한 배역을 맡았던 것을 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 과연 교도소도 다녀오고 사회에 버림 받은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하면서도 여우주연상을 받았다니 그 연기가 궁금하다는 생각에 보기 시작했다.
영화 <미쓰백> 시놉시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매 순간 날 배신하는 게 인생이야”
“이런 나라도, 같이 갈래?”스스로를 지키려다 어린 나이에 전과자가 되어 외롭게 살아가던 백상아. 누구도 믿지 않고 아무것도 마음에 두지 않던 어느 날 나이에 비해 작고 깡마른 몸, 홑겹 옷을 입은 채 가혹한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아이 지은을 만나게 된다. 왠지 자신과 닮은 듯한 아이 ‘지은’을 외면할 수 없는 상아는 지은을 구하기 위해 세상과 맞서기로 결심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미쓰백>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배우들의 앙상블
영화 <미쓰백>을 보면서 좋았던 부분은 배우들의 앙상블이었다. 타이틀롤로서 영화를 이끌어가는 한지민과 그런 한지민이 지키고자 하는 아이 김시아. 그리고 이 둘을 보살피는 조력자로서이 이희준. 이렇게 3명의 배우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캐릭터를 잘 표현해서 부담스럽지 않게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지민 보다 훨씬 눈에 가는 배우가 있었다. 아동학대범 주미경 역을 맡은 권소현 배우였다. 솔직히 진짜 아동학대범 데려다가 영화를 찍은 줄 알았다.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영화 캐릭터로만 보인다기 보다는 현실 속 배우와 캐릭터가 겹쳐서 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간극이 영화 <미쓰백>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던 작품이었다.
아동학대의 사회적 환기
영화 <미쓰백>의 목적은 아마도 아동학대의 사회적 환기일 것이다. 그래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동학대 사건을 모티프로 해서 영화를 제작했다. 그런데 이것이 모든 영화의 한계인데 이런 아동학대가 있다!!를 보여줄 뿐 뭔가 직접적인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흡한 초동대처로 인해 분노를 느끼지만 그 분노는 영화가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다 사라지고 만다. 정치성이나 사회성을 디는 모든 영화 작품이 갖는 한계를 영화 <미쓰백>에서 다시금 느껴 더 안타까웠던 것 같다.
드라마 <마더>와 너무 비슷했던 작품
배우들의 연기력이 너무나도 뛰어났고 연출 역시 답답하지 않아서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 있었지만 안타까웠던 점은 드라마 <마더>와 이야기 구성이 굉장히 비슷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을 보는 느낌이 아니라 리메이크작을 보는 것 같았다. 사건의 구성과 연결이 비슷하다보니 장면장면마다 마더의 장면이 겹쳐보여서 오히려 아동학대라는 주제를 제대로 환기시키기 보다는 다음에는 저런 장면이겠구나, 그 다음에는 이렇게 진행될테고, 하면서 머릿속에서 자동 스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아동학대범에 대한 분노보다는 드라마 <마더>와 완전 똑같구나 하는 감상평이 먼저 나왔던 것 같다.
비슷한 작품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진 건 사실이었지만 영화 <미쓰백>은 배우들의 앙상블 만큼은 완벽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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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데 매력적이야 근데 이상해
즐겨 보는 영화들은 이렇다. 스토리가 뛰어나거나 영상미가 기막힌. 한 마디로 어느 한 면이라도 최소한의 완결성을 갖춘 작품을 보고자 한다. 그런 내게 <지옥의 화원>은 별종이다. '지상 최대의 여직원'을 가린다고 빌드업하다가 캐릭터 붕괴라고 느낄 만큼 생뚱맞게 끝내다니. 작년부터 영화를 보고서 왓챠 피디아에 별점을 기록 중인데, 말만 봐서는 0.5점이라도 던졌을 것 같다. 하지만 손가락은 3.5를 눌렀으니, 나 스스로도 의문에 답해야 했다. 이 영화가 왜?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작중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고, 관람객은 그 의미를 찾고 연결하며 감상한다. '메시지'라고 해서 반드시 교훈 담긴 말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시청각을 화려하게 자극하는 영상미가 전부이기도 하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웃기기만 한 코미디도 있고 말이다. 이 영화의 카테고리는 후자에 가까운데 시트콤 같은 상황을 보며 왁! 하고 터지는 웃음이 아니었다. 어이없는 헛웃음이 끊길 듯 끊기지 않다가 영화가 끝난다.
좀 더 언질 하자면, 러닝타임 마지막 부분에서 헛웃음이 가장 많이 터진다. 굉장한 허무함과 함께. 나름 특색 있게 쌓아온 모래성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며 사실은 이게 완성이라고 하는 느낌이었다. 애석하게도 완성된 모래성은 재미, 유쾌함, 감동, 여운, 그 무엇도 남기지 못했다. 완성 직전의 클리셰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렇게까지 결말 관련 혹평을 던지는 건 관람객보다는 창작자로서의 마음이 담긴 탓이다.
작품을 보는 동안 관람객은 그 세계에 흠뻑 빠진다. 한 사람을 두 시간 동안 집중해서 본다고 생각하면 당연하다. 게다가 일방적으로 보고 듣기만 한다. 얼굴 표정이며 말, 행동까지 세세하게 보니까. 이쯤 되어 이 영화 내용과 접목시켜 보아야겠다.
영화에서 제시하는 세계관은 딱 하나다.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들의 싸움 세계. 그 사람들이라고 맨날 쌈박질하는 건 아니다. 일할 땐 일하고, 싸울 땐 싸운다. 본업과 부업 개념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한 후에 사이드잡 하는 경우가 요즘엔 왕왕 있지 않은가. 독립된 공간으로 나누어 구분하지 않고, 한 곳(회사)에서 두 가지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회사들은 겸업을 허락해 주는지 피까지 흘려가며 쌈박질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 딱 한 사람은 계속 주시한다. 주인공인 나오코. 나오코를 포함한 두 명의 동료는 부업을 안 한다. 즉 어느 파벌에 들어가지도 않아서 회사에서 싸움할 일이 없다. 다만 싸움 자체에 무관심한 동료들과 달리 매번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흘끗 댄다.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을까.
나오코의 회사는 파벌 셋으로 나뉜다. '광견' 사타케 파, '대괴수' 칸다 파, 그리고 '악마' 슈리 파. 꽤 치열한 싸움 끝에 슈리 파가 승리하고, 사타케 파와 칸다파는 자연스럽게 슈리 파 아래로 합쳐진다. 이러면 사이드잡을 잃는 건가 했을 무렵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신입 '호조 란'.
약자를 괴롭히는 걸 못 참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싸움에 별 관심 없는데 어느덧 슈리 파를 이기는 바람에 회사 내 질서를 정리한 인물이다. 나오코의 내레이션처럼 만화영화 같은 설정이다. 사실 영화의 모든 요소가 그렇다. 나오코의 내레이션으로 상황이 전개되는 것도 그렇고, 인물들의 우스꽝스럽지만 진지한 태도도 그렇고. 싸움을 제일 잘하는 란과 주인공 나오코가 친구가 된 것마저. 둘은 드라마 얘기를 하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며 쇼핑을 하는 등 지극히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함께한다.
이제 또 하나의 변곡점. 다른 회사들의 수장을 이기면서 은근한 유명세를 떨치던 란. 이때 나오코가 란을 끌어들이기 위한 인질로 끌려간다. 게임으로 치면 보스몹이 나온 셈이다. 혼자 오라는 말을 착실히 따르며 란은 불구덩 속으로 자진해서 뛰어 들어갔다. 당연히 이길 것 같던 란은 주요 간부 4명 중 3명을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무너지고 만다.
란은 일명 '히로인' 역할이 아니었던 건가. 그들은 회사의 다른 직원들에게 란의 패배를 알리라며 나오코를 묶은 사슬을 풀어준다. 그리고 이제 힘을 숨기던 주인공 나오코는 자신의 싸움 실력으로 직원들 전부를 무너뜨린다. 쓰러진 란을 대신한 복수라기엔 제 안위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싸움 잘하는 집안의 딸로 타고난 능력이 있던 나오코는 아주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싸움이건 끼지 않고 멀리서 관망했고.
애석한 건 란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은 반대로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싸움으로 인정받길 원했는데 나오코의 압도적인 실력에 도망쳤다. 회사에서는 나오코의 의도대로 모든 공이 란에게 돌아갔다. 란이 없는 건 찝찝해도 그런대로 평화로운 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이번엔 나오코의 회사까지 찾아왔다. '지상 최대의 여직원'이라는 오니마루를 모셔오면서까지.
사타케, 칸다, 슈리 등 모든 직원들이 고전할 때 나오코가 싸움에 끼어든다. 이번에도 별 수 없이 제 힘을 발휘하며. 오니마루와의 경합은 만화영화의 끝판왕으로 치닫았다. 몸이 붕 뜨는 와이어 액션이나 에너지파 같은 CG를 동원해서. 결국 나오코의 승리로 모든 부업이 종결되는 듯했다.
그때 란이 돌아왔다. 핏빛으로 물든 유니폼을 입고서. 사라진 2주 동안 '최초 여직원'을 찾아가 한 수 배운다. 감독은 코미디 요소로 넣었겠지만, 수련 내용이 꽤나 시대착오적이다. 전화를 상냥하게 잘 받고, 커피 심부름을 잘하고, 복사기를 정확하고 빠르게 잘 쓰기.
사실 이런 요소는 틈틈이 보였다. 남성 직원이 등장하면 흐름이 조금 깨졌다. '지상 최대의 꽃미남'인 것 같은 효과를 넣는다거나 여직원들이 갑자기 탕비실을 바쁘게 정리하거나 시급한 와중에도 젤리 사놨으니 먹으라는 말에 걸음을 몇 번이나 멈춰 선다거나. 학원물을 성별만 바꿔서 그대로 오피스로 옮긴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구체적인 업무 내용은 나올 필요가 없지만, 완전히 잡무 위주로 돌아간다는 게 아쉬웠다.
이제 마지막. 수련에 수련을 거듭한 란과 나오코는 동등하게 싸움을 이어갔고, 결투는 옥상에서 끝이 났다. 란은 자신이 졌다고 생각했고 나오코에게는 무승부였다. 다시 예전처럼 밥 먹고 잘 지내자는 꽤 훈훈한 결말인 것 같았는데
남직원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뒤바뀐다. 여직원의 본분은 싸움이 아니라 잡무를 잘하는 것이라는 뜬금없는 설교를 시작하고, 란에게 사랑 고백을 던진다. 란은 그 말에 동화된다. 나오코가 걸어가는 뒷모습에 '완패'라는 단어로 끝.
별점 1.5점은 모두 이런 요소 때문이었다. 과장스럽고 우스운 상황은 코미디의 일부이니 괜찮았다. 서브 컬처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오히려 다양한 형태의 영화가 나오는 게 좋은 현상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맥락을 몇 번 끊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인물들의 모든 배경이나 노력을 '필요 없는 것'이라고 말하다니. 이건 창작자로서 지양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기꺼이 내용에 몰입하며 따라왔을 관객들에게 왠지 모를 배신감을 안겨주는 플롯이니까.
남직원과 여직원 사이의 위계를 슬쩍 내비치려는 의도였으면 또 모르겠다. 학원물이나 소년만화에서 흔히 보이는 설정을 성별 바꾼 채로 회사 배경에 옮긴 과정에서 조금 더 심도 있는 고려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모쪼록 실험적인 시도로도 영화의 퀄리티를 높이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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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그냥 풀이 아니었다 - 높은 풀 속에서
흥해라 이 영화
높은 풀 속에서 (2019)
- 차로 먼 거리를 이동하다 잠깐 정차한 남매
낯선 그 곳에서 꼬마아이의 구조요청을 듣고 높은 풀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시공간이 뒤틀린 풀숲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극한의 탈출미션 '높은 풀 속에서' 이 영화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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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란 투리스모 >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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