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3-09 15:32:03
3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무료한 목요일에 활기를 더해줄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한눈에 정리해 드릴게요 :)
그럼, 3월 둘째 주!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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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첫날 14만 명이 찾은 ‘스즈메의 문단속’

혜성 충돌을 소재로 하면서 동일본 대지진을 간접적으로 다뤘던 <너의 이름은>,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를 다룬 <날씨의 아이>에 이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재난 3부작 마지막 작품으로 불리는 <스즈메의 문단속>이 지난 8일 개봉과 동시에 관객 수 14만 3천여 명을 끌어모았습니다. 이는 2017년 개봉한 <너의 이름은>의 오프닝 스코어인 13만 8028명을 뛰어넘은 기록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중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입니다. 이번 영화는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소녀 '스즈메'가 일본 각지에서 발생하는 재난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가는 이야기를 담았으며, 시코쿠, 고베, 도쿄 등 실제로 재난이 덮쳤던 일본 내 여러 지역들을 조명했습니다. 특히 지난 2011년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한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의 리히터 규모 9.0을 기록한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만든 영화인데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지난 8일 개최된 기자간담회에서 전작 <너의 이름은>의 대히트 이후 영화 제작에 있어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며, 단순히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일본 전체의 트라우마인 재해를 영화로 그려 재난을 잊었거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억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문'을 영화의 모티브로 삼은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 드라마 <도깨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며 '문'이 사람들의 일상을 상징하는 소재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 문을 여닫으며 집을 나서고 들어오는데, 재해라는 것은 그러한 일상을 단절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번 작품 역시 감독의 전작들에서 함께한 래드윔프스(RADWIMPS)가 OST에 참여했고, 다수의 할리우드 작품에서 활약한 작곡가 진노우치 카즈마 또한 함께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합니다.
조각가 권진규의 생애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된다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대미술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조각가 권진규의 다큐멘터리 영화 <권진규 이야기>가 제작될 예정입니다. 권진규는 1922년 함흥에서 태어나 1973년 51세의 이른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작가인데요, 일본 유학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시미즈 다카시에게 정통 근대 조각을 배우고 스승을 넘어섰다는 평가까지 받았으나 당시 현대추상조각이 대세였던 한국에서는 불상의 조형미를 탐구하고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던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가 드물어 경제적인 고난 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영화는 명필름과 권진규기념사업회가 제작을 맡았으며, 민환기 감독이 연출해 2024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권진규의 작품을 140여 점 소장하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은 영화 제작을 위해 관내 촬영에 협력하고 자료 등을 적극적으로 제공할 것을 약속했으며,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시민들이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심도 깊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브뤼셀판타스틱영화제 초청받은 이정재 연출작 ‘헌트’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가 브뤼셀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BIFF)의 비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BIFF는 스페인에서 열리는 시체스 판타스틱 영화제,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판타스포르토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장르영화제로 손꼽히는데요, 앞서 <헌트>는 제55회 시체스 영화제의 경쟁 부문 '오르비타' 섹션에 초청되어 현지 관객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헌트>는 이외에도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공식 초청을 비롯해 토론토 국제영화제, 판타스틱페스트, 판타지필름페스트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은 바 있으며, 브뤼셀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는 오는 4월 11일 개최될 예정입니다.
방송사·배급사·OTT 협의체,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누누티비’ 형사고소

불법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의 운영을 막고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저작권자들의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MBC, KBS, CJ ENM, JTBC 등 방송사는 물론 영화제작사 및 배급사들로 구성된 '한국영화영상저작권협회'와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 SLL, 웨이브, 티빙 등이 모여 '영상저작권보호협의체'를 구성했으며, 세계 최대 불법복제 대응조직인 ACE까지 합세해 영상물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인 '누누티비'에 대해 형사고소장을 제출한다고 밝혔습니다. '누누티비'는 국내 수사망을 피해 해외에 서버를 두고 OTT 콘텐츠와 드라마, 영화 등을 불법으로 제공하는 동시에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 등의 광고를 받아 수익을 올리는 사이트인데요, 여러 차례의 접속차단 조치에도 불구하고 주소를 우회하며 활발히 운영 중에 있습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총 동영상 조회수가 약 15억 3800회에 달하는 등 국내 OTT들보다도 많은 방문자 수를 기록했으며, 수익 창출을 위해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받고 있습니다.
영화로 재탄생하는 추억의 만화 ‘닌자거북이’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여러 편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영화로 만들어졌던 만화 '닌자 거북이'의 최신 애니메이션 영화 <닌자터틀: 뮤턴트 대소동>이 예고편을 공개했습니다. 닌자 거북이 시리즈가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공개된 예고편과 컨셉아트를 통해 마블 애니메이션으로 크게 히트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와 같이 실제 코믹북과 비슷한 질감의 컬러풀하고 독특한 연출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배우 겸 코미디언이자 각본가, 영화감독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 중인 세스 로건이 제작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을 연출했던 제프 로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폴 러드, 성룡, 마야 루돌프 등의 스타들이 출연을 예고해 기대를 모은 바 있습니다. 원작 만화의 오랜 팬이기도 했다는 세스 로건은 원제에도 있는 'teenage'에 초점을 맞춰 주인공 캐릭터인 레오나르도, 도나텔로, 라파엘, 미켈란젤로 배역에 모두 10대 연기자들을 섭외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십 대 이미지를 살리는 데 집중했다고 합니다. 올해 8월 4일 북미 전역에서 동시 상영 예정이며, 국내 개봉 일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HBO 드라마 ‘The Idol’ 폭로전으로 뭇매 맞은 ‘더 위켄드’

블랙핑크 제니의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알려져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으며 HBO 인기 드라마 <유포리아>로 이름을 알린 샘 레빈슨 감독의 HBO 신작 드라마 <The Idol>에 대한 폭로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The Idol>의 제작에 참여한 13인과의 인터뷰가 롤링 스톤지 단독 보도를 통해 공개되었는데요, 보도에 따르면 처음 감독을 맡았던 에이미 세이메츠가 하차하고 샘 레빈슨이 합류하며 드라마의 내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합니다.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은 원래 이 드라마가 '포식적인 연예 업계의 희생양이 되어 자신의 소속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여성 스타'의 이야기로 할리우드에서 일어나는 여성 착취를 고발하는 차원의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샘 레빈슨과 더 위켄드가 드라마를 공동 제작, 집필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위켄드는 드라마가 너무 여성의 관점에 치우쳐져 있다고 느꼈고, 릴리 로즈 뎁이 맡은 주인공 캐릭터의 비중이 너무 크다며 자신이 맡은 역할의 비중을 대폭 확대시켰다고 합니다. 한 제작진은 결과적으로 새 각본이 '강간 판타지'와 다름없었고 '그녀가 겪은 폭력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음악을 위해 남자에게 돌아가는 여성'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폭로전을 통해 HBO와 샘 레빈슨, 더 위켄드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는데요, 이에 위켄드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롤링 스톤지를 모욕하는 내용이 담긴 드라마 속 한 장면을 업로드하며 비아냥대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편, HBO 측은 해당 폭로에 대해 '드라마 제작진들은 안전하고 협조적이며, 상호 존중적인 제작 환경을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라고 밝혔으며, 릴리 로즈 뎁은 감독이 샘 레빈슨이 그녀가 함께 일했던 최고의 감독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해당 사건은 인터넷상에서 여러 분쟁을 불러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애프터 양’ 코고나다 감독, 스타워즈 드라마 ‘애콜라이트’ 합류

배우 이정재가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화제를 모은 스타위즈 시리즈의 실사 드라마 <애콜라이트>에 영화 <애프터 양>을 연출한 코고나다 감독이 합류했다는 소식입니다. 드라마는 스타워즈 세계관 속 '고 공화국 시대'의 말기를 배경으로 했으며 은하계의 어두운 비밀과 다크사이드의 대두를 그려내는 미스터리 서바이벌 호러 장르로 디즈니 플러스에서 단독 공개 예정에 있습니다. 앞서 이정재를 비롯해 매니 자신토, 조디 터너 스미스, 다프네 킨, 캐리 앤 모스 등의 배우 라인업으로 많은 팬들을 기쁘게 했었는데요, 레슬리 헤드랜드를 주요 감독으로 한 데 이어 <데어데블>,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 <위쳐> 등의 알렉스 가르시아 로페즈 감독과 영화 <애프터 양>, 드라마 <파친코>로 전 세계의 극찬을 받았던 코고나다 감독의 합류까지 전해져 더욱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현재 드라마는 촬영을 시작한 지 5개월 차에 접어들어 올해 5월까지 영국 전역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2024년 상반기 중으로 공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OCN, 티빙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생중계로!

케이블 채널 OCN이 오는 13일 오전 9시부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국내 독점 생중계할 예정입니다. CJ ENM이 TV조선에게 빼앗겼던 아카데미 시상식의 중계권을 4년 만에 되찾은 결과인데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로스앤젤리스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개최되며 미국의 코미디언 지미 키멜이 사회를 맡았습니다. OCN은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방송인 김태훈, 안현모에게 해설과 진행을 맡겨 풍성한 영화 정보와 현장의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며, 모바일 시청자의 경우 티빙 내 OCN 채널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CJ ENM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일찌감치 많은 화제를 불어 모으고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영화이자 34번째 장편영화 <파벨만스>의 수입, 배급을 맡아 오는 3월 22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럼 남은 한 주도 힘차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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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베 얀손 영화 후기 - 삶과 캐릭터란 자신의 Symbol을 보여주는 하나의 브랜드이다.
핀란드의 유명한 작가이자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탄생 시킨 토베 얀손은 유명한 조각가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토베 얀손은 아버지의 재능을 닮아서인지 미적 감각이 탁월하다. 화가이면서 삽화가이기도 했던 토베 얀손의 삶은 어땠을까? 영화 초반부에서 전쟁이 끝난 직후이자 1945년에 토베 얀손은 엄격한 예술가 아버지를 피해 새로운 거처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비비카라는 시장의 딸이자 각본 연출가를 만나 동성애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토베 얀손과 비비카의 사랑을 보여주는데 그만큼 비비카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는 토베 얀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끊임없이 성적인 노출 장면이 영화 겹겹에 나오는데 무민이라는 캐릭터가 탄생되기까지에는 토베 얀손의 파란만장한 삶을 엿볼 수 있다.
토베 얀손이 비비카를 만나고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그리면서 아동용 만화가가 되기 시작한다.
토베 얀손에게는 비비카라는 여성이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 없이 이 둘은 거침없이 사랑을 나누고 확인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서로 예술을 좋아하며 예술가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무민이라는 캐릭터가 지금까지 인기를 끌어온 것은 토베 얀손이 삶을 멋진 모험이라고 생각하는데 있어 담긴 토베 얀손만의 철학이 담겨있는 것 같다. 자신의 아버지는 토베 얀손이 그리는 무민이라는 만화가 예술이 아니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토베 얀손을 인정하게 되고 각본 연출가인 비비카 덕분에 연극으로도 탄생하게 되어 아동들에게도 인기를 끌게 된다. 만약 자신의 그림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무민이라는 캐릭터는 없었을 것이다.
무민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노력과 고난이 있었다.
사회주의적인 분위기가 있는 핀란드에서는 신문에 아동용 만화를 그리지 못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자유로운 연애를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나라에서도 성(SEX)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보수적인 것보다 진보적이다. 거침없이 사랑을 하고 거침없이 헤어지는 당시 핀란드 시대상의 분위기는 불륜을 매도하기보단 수용하는 사회였던 것 같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성적인 장면들과 노출은 자신의 신체 노출에 대한 개방적인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태도가 보인다. 그렇기에 사랑에 대한 관점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수많은 박수갈채를 받은 토베 얀손의 무민 연극은 당시 자유로운 핀란드 시대상의 분위기가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토베 얀손이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킴으로써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동화 작가로서 그녀가 살아온 인생 경험과 철학은 무민이라는 캐릭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찌 보면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들을 다르다고 억압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포용을 보여주는 게 맞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는 바이다. 토베 얀손이 탄생시킨 무민이라는 캐릭터도 단순한 캐릭터가 아닌 모험적인 삶을 좋아했던 다사다난했던 인생을 표현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지금 우리에게 무민은 어떻게 생각되고 각인되고 있을까?
삶이 모험이라면 캐릭터는 나 자신을 표현하는 심볼(Symbol)이다.
하니엘의 주관적인 영화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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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K로 담아낸 거대한 무의미
다큐멘터리에 스포일러랄 게 있겠으나, 그래도 스포일러를 포함한다고 미리 명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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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말은 비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이라 함은 현실이 아닌 것일진대, 현실은 참으로 지난하고 지리멸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현실적인' 고민들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현실적으로 먹고 살 만한지, 현실적으로 내 수준에 맞는 사람은 누구인지,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투자하는 게 옳은지. 나아가 '현실적인 조언 구합니다'라는 게시판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현실적인'이라는 말이 앞에 붙는다는 것은, 극대의 행복이 아니라 어느 정도 고만고만한, 내 능력 한에서 최대로 가능한 정도를 말하는 게 대부분이다. 턱걸이 같다. 턱걸이를 넘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고군분투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의미는 턱걸이를 할 철봉 위에 있다. 그것을 넘어야만 의미를 갖는다.
요즘은 주식에, 부동산에, 코인에, 그러니까 돈이 곧 의미다. 자산을 증식하지 못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무의미하므로 행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이라는 아름다운 착취 속에서 삶의 의미를 부지런히 찾아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의미한 건 무엇인가. 모이지 않는 월급, 오르지 않는 노동가치, 그러므로 살 수 없는 부동산, 애프터 없는 소개팅에서 지불한 돈, 건설적이지 않은 잡담, 뭐 그런 것들일까.
의미와 기호로 가득한 세상 너머, 해발 1,500미터 고지에 '오제'라는 습지가 있다. 그 습지는 인간으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지 않고, 인간 역시 그 무엇도 앗아가지 않는다. 박혁지 감독은 <행복의 속도>라는 제목으로 카메라에 풍경을 담았다. 아니, 그 속에 살고있는 사람을 담았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카메라가 집요하게 쫓는 대상은 대략 80kg의 짐을 지게에 싣고 걸어서 산장까지 가는 '봇카' 이가라시, 이시타카이다. 박혁지 감독은 광활한 습지를 4K의 해상도로 보여주고, 봇카들의 걸음을 뒤쫓는다.
나는 자본주의와 얼마간의 거리를 두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영화 초반 그들이 80kg를 지고 산을 오르고 걷는 걸 보면서 '모노레일을 깔면 안 되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우리나라는 산 곳곳에 모노레일이 깔려 있어 필요한 짐이며 도구들을 실어 올린다. 모노레일을 깔면 무거운 짐들을 금방 보낼 텐데. 게다가 '몸빵을 하면 돈은 많이 벌겠지?' 라는 생각까지.
그러다 후반부에 가서는,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자본주의적이며 포드주의 비슷한지를 생각했다. 히말라야도 아닌 산을 걸어서 짐을 옮기는 행위를 경제적이지 않다, 즉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노동의 가치를 그만 자본과 연결시키며,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도 역시 이 체제 속의 인간일 뿐이었다.
영화는 이가라시와 이시타카의 차별점을 조명한다. 둘 다 봇카이지만 둘은 꽤 다르다. 우선 이시타카는 '일본청년봇카대' 회장으로서 봇카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활동가이다. 겨울이 되어 오제의 산장도 문을 닫고, 봇카도 할일이 없어졌을 때 도시로 나가 봇카를 홍보한다.
이시타카가 걷는 도시의 거리는 오제의 속도와는 정반대다. 다급하게 점멸하는 신호등, 그에 맞추어 발걸음을 재촉하는 행인들, 다급한 발걸음 사이에 이시타카가 서 있다. 사람들은 봇카 일에서 어떤 보람을 얻는지 묻는다. 이시타카는 말한다. 산장이 있음으로써 내가 있고, 내가 있어서 산장이 있음이 좋다고.
행위에 보람이든, 의미든, 뭔가가 있어야 하는 걸까?반면 이가라시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도 모자라 목에 카메라까지 걸고 걷는다. 오제의 풍경을 카메라에 섬세하게 담는다. 두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여름방학을 맞아 큰아들을 데리고 짐을 가져다 주던 산장에 가기도 한다. 잠자리를 잡고, 뛰어놀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이가라시의 아내는 농장에서 일한다.
때는 설이다.
이시타카와 이가라시 가족 모두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시타카의 부모는 몸으로 하는 일인데 몸이 상하면 어떻게 할 건지, 그때 되면 어떻게 먹고 살건지를 묻는다. 물론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지만 이시타카의 표정은 어둡다.
이가라시는 노모에게 봇카를 하면서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노모는 마치 아이처럼 그 풍경을 반긴다. 이제 가기 힘들어진 그곳, 그 나무, 그 꽃들. 계절과 햇빛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감탄한다.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가라시는 대답한다. 누가 기다리고 있고, 시간이 정해져있다면 힘들었겠지만 자기 속도로 걷다 보면 도착하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고.
생각해 보면, 등산을 할 때 나 혼자 느릿느릿 걸어가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다. 그런데 여럿이 갔을 때 무리의 제일 끝에 산을 올라가면 그보다 힘들 수가 없다. 그때부터는 산의 풍경이고 뭐고 보이지도 않는다.
여기서 질문할 수 있겠다. 우리는 왜 힘든가.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
남들보다 빨리 걷기 위하여, 남들보다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하여 바삐 움직여야만 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인들이 등에 지고 있는 짐과 봇카의 짐 중 무엇이 더 무겁다고 말하기 쉽지 않을 거다.
카메라는 봇카들의 가쁜 숨, 무거운 발걸음을 집요하게 담다가, 그들의 가정으로 이동했다가, 또 오제의 광활한 자연을 비추기도 한다. 새로운 풍경이 아니다. MSG를 치지 않은, 그래서 맹맹하고 심심한 그들의 일상이다.
초반부에는 영화가 지루하다고 생각했고, 계속 이렇게 걷기만 할 것인가 생각했다. 기승전결도 없고 문제도 없으며, 변화라고는 오제에 찾아오는 계절 뿐인데. 114분의 시간을 어떻게 버티나.
봇카들이 걸음을 거듭하고, 나는 봇카들의 걸음을 눈으로 좇으면서 나는 어디로 걸어가고 있고, 어떤 의미들을 만들어내려고 애쓰고 있는지, 그 의미는 대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왜 내 눈에 아름다운 오제에 모노레일을 깔지 않는 저들이 이상했는가.
저들의 행위가 무의미하고 현실적이지 않게 보인 거지. 저렇게 힘든 일을 할 거면 도시에 나가서 돈을 버는 게 좋지 않을까, 같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생각.
그래서 행복의 속도는 무엇일까.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라는 말은 사실 틀린 말이다. 속도는 방향을 포함한 벡터값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의 속도란 행복의 속력과 방향을 내포한 제목일 것이다.
느림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다. 속력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으며 왜 가는지가 더 중요하겠다. 사물에서, 사람에게 덕지덕지 붙은 의미와 상징과 기호들을 걷어내야만 비로소 그것 자체가 보인다.
봇카들은 오제에 거대한 의미를 두지도 않고, 그들이 하는 일에서도 역시 내일은 더 빨리 가야지, 내일은 더 무거운 짐을 들어야지 하고 포부를 갖지도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자기 속도로 걸어갈 뿐.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어쩌면 너무 뻔하게도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떠올랐다.
우리들이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어쩌면 지난하고 외로울 길을 각자의 속도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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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렵지 않아
나는 ‘성장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제일 꺼리는 모순적인 성향이 있다.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두려움이 크지 않는가. 나만 그런 거라면, 그냥 주관적인 생각으로 알고 넘어가 달라. 아무튼, 성장 영화의 끝은 항상 내게 묘한 감정과 벅차오름을 선사해주지만, 그 기운들이 내게는 너무 벅차 시작도 전에 머뭇거리고 두려워진다. 그래서 아예 가볍거나 아예 무거운 작품들을 선호하게 된 것 같다. 기대가 아주 낮아야 보기 편하다고 할까. 아님, 영화제처럼 강제로 보는 것도 괜찮지만 워낙 영화의 퀄리티가 랜덤이라 위험도가 높다. 그래도 그것대로 재밌긴하다.
딴 길로 새버렸는데, ‘와일드’는 내가 좋아하고, 어려워하는 성장 영화이기도 하고, 워낙 칭찬이 많았던 영화였던 지라 기대감이 커져 버려서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이렇게 동아리를 통해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정말, 지금이라도 이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도 현재, 영화 초반의 ‘셰릴 스트레이드’와 같이 길 잃은 상태였기에 좀 더 이입되었다. 엄마를 잃고, 탈선을 시작한 셰릴는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방황하게 된다. 그래도 셰릴은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는 자였다. 그는 큰 결심을 안고, PCT 하이킹에 나선다.
운동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는 트래킹조차도 싫어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뉴질랜드의 경관을 보면서 트래킹하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경관을 구경하고 싶었다. 나는 죽을 때 절대로 서 있다가 죽진 않을 것 같다) 하이킹이라니. 정말, 아찔하다. 하지만 셰릴은 계속 일어서고, 꿋꿋하게 걸어간다. 몸에 상처가 나고, 발톱이 빠지고, 두려움을 느껴도 묵묵하게 계속 걸어간다. (2분에 한 번씩 그만두고 싶다 하여도) 이제 그는 길을 잃는 것에 무서워하지 않는다.
눈이 쌓여 길이 잘 보이지 않는 구간에서도 셰릴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가고, 해낸다. 그의 대장정이 끝나갈 때쯤에는 나도 함께 벅차오름이 부풀어진다.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희망과 길을 잃어도 다시 찾으면 된다는 지혜. 코로나 19로 많은 외부 활동들이 제한되고, 사람은 갇혀있다. 이에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감이 세상을 덮치는 중이라 생각한다. 번아웃과 막힌 벽들.
‘여행 영화’가 우리의 외부 활동에 대한 갈망을 다 채워주진 못해도, 간접적이라도 우리에게 선사해주며 자신만의 희망을 잃지 않게 다독여준다. ‘여행’으로 치유하는 모습을 보며, 다른 이들도 치유받는 이 과정이 새삼스럽게 신기하고, 우리는 어떻게든 이어진 존재가 아닐까. 역시 한 사람의 생애는 다양하면서도 많은 부분이 닮아있고, 이에 연결감이 언제나 존재한다.
‘와일드’의 주인공은 백인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동양인 여성이 그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당연, 공통의 고통 혹은 환희를 알기에, 결국 사람이기에 아는 것일 터. 이런 미디어의 전파력은 참 황홀하다. 나도 언젠간 나의 고통을 나누고, 나의 기쁨을 나누고, 나의 일부가 되어주고, 나의 일부가 되어 갈, 무엇을 창조하고 싶다. 참 욕심나는 경험들이다. 이런 욕심나는 경험을 지금이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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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지금, 이 순간은 진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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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 위시하는 이 세계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모르고 게임도 하지 않고 메타버스에 접속할 일이 없는, 나 같은 3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람에게는 너무도 낯설다.
AI에게 인격이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숱한 작품들에서 다루어져 왔다. AI 이전에는 복제인간이 있었다. 영화 <아일랜드>에서 클론에게 인간과 똑같이 자의식이 생기는 모습을 보며, 당시의 나는 꽤 두려워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복제인간일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아일랜드>로부터 15년이 지났지만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을 보면서도 덜덜 떨었다.
이제는 인간복제의 시대가 아니라, 가상인간 시대가 온 것 같다. 이미 AI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실제 사람처럼 행동한다. 행동하는 것은 누구의 의지일까. AI 인플루언서를 프로그래밍한 사람일까, AI에게 인격이 생겨버린 걸까.
에스파가 4인조가 아닌 8인조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황당함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했지만... 사람들은 에스파의 세계관을 받아들인다. 이제는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물론 지금 에스파의 'æ-에스파'들은 3D 애니메이션에 가깝다. 그에 비해 AI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진짜 사람 같다.
출처: 네이버 영화
<프리 가이>의 주인공 '가이'는 '프리 시티'에 산다. 은행원인 가이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보낸다. 금붕어에게 인사하고, 커피숍에서 늘 같은 커피를 마시고, 은행에 강도가 들어오면 하라는 대로 순순히 따르고, 퇴근하고, 또 아침이고, 출근하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매일 똑같이 "좋은 하루 보내지 마세요. 최고의 하루 보내세요!"라고 인사하는 가이는 40 가까이 연애 한 번 못해본 '모쏠'이면서도 자신과 커피 취향이 같고, 5옥타브의 여자 가수 노래를 좋아하는 여자라는 구체적인 이상형이 있다.
존재에 대한 의심과 자각 없이 반복되는 가이의 일상에 특이점이 나타난다. 5옥타브의 여자 가수 노래를 흥얼거리는 여자, '몰로토프 걸'을 만나게 된 것.
그 이후로 가이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과 자신의 '차이'를 알게 된 후, 선글라스를 빼앗은 가이의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자아 또한 확장되기 시작하여, 처음으로 그동안 마시던 커피가 아닌 카푸치노를 주문해 보는데, 바리스타와 늘 인사하던 경관 등 모든 사람이 당황한다. 이 장면은 마치 <트루먼쇼>의 트루먼이 예상 밖의 행동을 했을 때와 비슷하다. 가이가 선글라스를 껴보고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인지한 후 절친인 버디에게도 선글라스를 껴보라고 했지만 버디는 삶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가이와 가이의 친구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현실이 썩 만족스럽지 않아도 변하는 것은 두렵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 자신을 밀어넣는 모습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NPC일까? 우리가 NPC라면 주인공은 누구인가. 가이는 NPC가 되기 보다는 주인공이 되기를 택한다.
그래서 가이는 몇 번의 죽었다 살아나는 시도 끝에 몰로토프 걸과 말을 섞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몰로토프 걸은 레벨이 100이 넘고 자신은 1밖에 안 되니, 레벨부터 올려야 한다. 그때부터 가이는 사람을 죽이는 대신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레벨을 올린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우리 모두는 알고 가이는 모르는 사실. '프리 시티'는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다. NPC인 가이는 선글라스 낀 사람-실제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도, 싸우지도 않아야 한다. 그런 가이가 갑자기 각성을 하고, 가이를 지켜보는 현실세계의 사람들은 가이에 환호한다. 가이의 게임 속 스킨인 은행원 셔츠를 따 '블루 셔츠 가이'라는 별명까지 생기고, 혹자는 가이가 정체불명의 천재 해커라는 음모설을 제기한다.
가이가 이상형을 만나 행복하게 잘 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몰로토프 걸은 AI 캐릭터가 아닌 사람 '밀리'이니까. 게임회사 '수나미'의 대표 앤트완(앙투완)은 개발자인 '키스'와 '밀리'의 게임 '라이프 잇셀프' 코드를 훔쳐서 '프리 시티'를 만들었는데, '프리 시티2'를 출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블루 셔츠 가이가 인기를 얻게 되면서 난감해진다.
게임 코드의 개발자인 키스는 수나미에 들어가 앤트완 밑에서 일한다. 자신이 만든 세계를 되찾기 보다는 수나미에서 별 욕심 없이 일한다. 밀리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기업인 수나미 앞에서 일개 개인은 힘이 없다. 그러나 게임 속에 코드를 숨겨두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몰로토프 걸'로서 끝없이 게임 속을 헤맨다. 그러다 가이를 만나고, 게임 속에서이지만 가이에게 호감이 생긴다. AI라는 것을 알면서도.
몰로토프 걸과 가이는 게임 속에서 만났을 뿐인데도 취향이 너무 비슷하다. 그네를 좋아하고, 풍선껌맛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수나미는 '프리 시티2'의 론칭을 위해 블루 셔츠 가이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레벨업을 한 가이를 죽이기가 쉽지 않다. 결국 앤트완은 전 세계의 유저들을 무시한 채 리부트를 감행하고, 가이는 원래의 가이로 돌아간다. 그때 키스는 가이의 소스가 다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가이가 처음 각성했을 때처럼 해보면 어떨까? 바로 몰로토프 걸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다.
몰로토프 걸의 키스와 함께 모든 기억이 되돌아온 가이는 자신과 같은 NPC를 해방하고자 한다. 누군가의 설계대로 만들어졌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해방이다. NPC들은 파업을 시작한다. 키스 역시 앤트완에게 반기를 든다. 앤트완은 결국 서버를 물리적으로 박살내는 것을 택한다. 그러나 가이는 사랑하는 몰로토프 걸을 위해 바다 건너 밀리와 키스의 코드까지 달려간다.
앤트완과의 딜로 겨우 구해낸 '라이프 잇셀프'는 성공을 거둔다. 몰로토프 걸은 '누군가에 의해 프로그래밍되었겠지만'이라는 가이의 사랑 고백을 통해, 풍선껌맛 아이스크림과 그네, 5옥타브 여자 가수의 노래, 커피 취향이 바로 자신의 것이었음을, 그리고 가이가 몰로토프 걸을 만나면 사랑에 빠지게끔 프로그래밍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때 밀리에게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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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의 각성은 이상형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데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선글라스 낀 사람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 모든 것이 가짜가 아닐까 하는 의심. <트루먼쇼>, <매트릭스>와 맥락을 같이 한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의미없는 반복, 차이를 만들어나가는 것에 대해 말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프리 가이>는 충분히 들뢰즈적이다. 의미없는 반복의 굴레에서 살아가던 가이와 친구들, NPC들, 그리고 키스도 특이점을 발견한 후 차이를 만들어간다. 차이를 만들어나가는 삶은 그 전과 같을 수 없다. 모든 캐릭터들이 반복적이고 수동적이던 삶에서 자신을 능동적으로 굴려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키스와 밀리가 만든 '라이프 잇셀프'는 스스로 발전하는 AI들을 관찰하는 게임이다. 발전한다 함은 이전과 다른, '차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캐릭터들은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다. 직업적인 성취, 똑같은 생활이 아니라 창조적이며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게임 밖 사람들은 진짜 사람 같은 게임 속 AI들의 발전을 응원하고 지켜본다. 마찬가지로 프리 시티에서의 가이가 불가능할 것 같은 싸움을 마치고 바다 건너 세계로 달려가는 것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의심하지 않으면 반복할 수밖에 없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면 '헐벗은 반복'. 무한히 반복되는 삶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세트장 속 트루먼의 삶, 빨간 약을 먹기 전 네오의 삶, 앤트완 밑에서 시키는 것만 하던 키스의 삶은 진짜일까.
아무리 게임 속이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고 성장해나가는 AI들에게 그 세상은 가짜가 아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숨쉬고 있음을 느끼는 지금-여기가 바로 진짜 세상이다.
(매번 실패하지만, 그런 이유로 명상을 하라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사람 같지 않은 것과 사람 같은 것이 섞여 산다. 때리고 죽이고 배신하는, 사람 같지 않은 인물들이 이끌어가는 서사가 판을 치는 가운데, 인간이 서로를 돕고 스스로, 또는 누군가의 조력으로 성장하는 모습, 사람 같은 영화였다. 물론 주인공이 사람은 아니지만.
관람 포인트
* 라이언 레이놀즈는 그냥 가이가 아니라 핫 가이다.
* 앤트완 역을 맡은 타이카 와이티티의 연기가 킹받는다.
* 크리스 에반스가 영화 속에서 잠깐 킹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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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코코> 리뷰
멕시코의 전통과 디즈니 클리셰의 결합
멕시코의 어느 마을. 구두를 닦고 있었던 미구엘이라는 소년이 마라아치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원래 미구엘은 에르네스토 델라크루즈란 전설의 음악가를 동경해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대대로 신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던 가족들에 의해 음악을 금지당했단 내용이었다. 마라아치는 에르네스토였다면 바로 기타를 들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했을 것이라며 용기를 준다. 미구엘은 마침 죽은 자들의 날에 열리는 음악 경연 대회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지만 가족들에 의해 다시 퇴짜를 맞는다. 자신의 기타도 이 와중에 망가진다. 결국 미구엘은 에르네스토의 무덤으로 가 기타를 훔치기로 한다. 미구엘은 에르네스토가 자신의 잃어버린 조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에르네스토의 기타와 자신의 기타가 똑같은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타를 잡았을 때 미구엘은 사후 세계로 떨어지게 된다. 이승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축복을 받아야 했는데, 그것을 위해 미구엘은 에르네스토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헥토르라는 청년을 만나 에르네스토를 찾아간다.
'죽은 자들의 날'은 멕시코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에 실제로 있는 명절이다. 이 날에 사람들은 세상을 떠났던 가족들의 사진과 유품을 자신들의 집의 제단에다가 놓고 그들을 추모한다고 한다. 그러면 죽은 가족들이 그 제단을 방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날은 아즈텍 사람들의 제사였던 '영혼의 축제'에서 유래한다. 아즈텍 사람들은 사람의 삶이 꿈에 지나지 않고 죽음을 통해 진정한 삶을 획득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라 아즈텍 사람들도 해마다 죽은 사람들을 분류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이 때 죽은 사람들이 이승을 방문해 제물에 따라 풍요나 저주를 내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코코>는 사후 세계를 주요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음에도 이승처럼 화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오히려 영화의 사후 세계는 이승보다 더 활기차 보인다. 조그만 마을로 묘사된 이승에 비하면, 사후 세계에는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공중에 철로를 깐 전차들이 돌아다니고, 이승과 사후 세계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검문하는 경찰들로 가득하다.
죽은 자들의 날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은 분위기뿐만이 아니다. <코코>는 죽은 자들의 날이 세상을 떠난 가족을 기억하는 날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이야기 전체를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나서는 여행으로 꾸며낸다. 이승에 생전의 사진이 없으면 사후 세계에 있어도 영원히 사라진다는 새로운 설정도 추가되었다. 헥토르가 미구엘과 협력했던 이유도 미구엘이 축복을 통해 이승에 복귀할 수 있었기에 자신의 사진을 이승에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낯선 것을 통해 익숙한 것을 드러내는 디즈니의 영리한 변주가 돋보이는 모습이다. 영화 초반까지는 미구엘이 사후 세계 속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타를 들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미구엘이 한계를 딛고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다가, 영화 중반에 그 전략의 실체를 드러낸다. 드디어 미구엘이 에르네스토와 만나서 그의 축복을 받으려 했지만, 미구엘에게 다른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헥토르는 분노에 차서 에르네스토에 대한 진실을 폭로해버린 것이다.
미구엘은 그 폭로를 통해 에르네스토가 헥토르의 곡을 뺏고 헥토르를 독살한 점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헥토르는 자신의 증조할머니인 코코의 아버지, 즉 에르네스토가 아니라 헥토르가 자신의 잃어버린 조상이란 것, 그리고 미구엘이 좋아했던 에르네스토의 Remember Me라는 음악이 헥토르가 딸 코코에게 들려주고 싶어했던 음악이란 것을 고백한다. 헥토르는 시간이 지나고 더 이상 가족을 내버려둘 수는 없겠다 싶어서 에르네스토한테 가족에게 돌아가겠다고 선언해버린다. 그러나 에르네스토는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에르네스토는 헥토르의 곡이 없으면 공연을 못 하는 처지였다. 그래서 에르네스토가 헥토르를 독살하고 그의 곡을 뺏어서 인기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구엘의 가족들이 음악을 싫어하고 헥토르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헥토르가 꿈을 이루겠다고 가족을 버린 것도 괘씸하겠지만, 그가 죽어서 가족들에게 돌아왔단 점이 후손들에게도 큰 트라우마가 됐을 것이리라.
가족에 대한 기억, 여성들에 대한 기억, 이름 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
그들의 한을 안 모양인지 영화는 그 속에서 소중한 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들에 대해서도 조명한다. 남편이 떠나고 난 뒤 구두 장사를 해서 미구엘의 집안을 구두 명가로 만든 마마 이멜다, 그것을 계승한 코코, 미구엘의 할머니, 그리고 그것을 계승했던 가문 속 수많은 이름 없는 여성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 중 마마 이멜다는 영화 속에서 해결사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한편 영화에는 프리다 칼로라고 하는 멕시코의 유명 화가도 나온다. 그녀는 생전에 여러 장애를 딛고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었지만, 남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의 여성 편력 때문에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다. 이 배경 지식이 프리다가 미구엘을 도와주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에르네스토에게도 남편의 모습이 보인 이상, 이제는 에르네스토에게 영원한 인생이 좌우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에르네스토가 자신의 자손이라 찾아오는 정체불명의 꼬마(미구엘)한테 어마어마한 호의를 베풀어줬던 장면은 그가 디에고 리베라처럼 여성 편력이 있었다는 점을 암시해주는 증거이다.
<코코> 속 여성들에게 보내는 찬사의 정점은 마침내 이승으로 돌아온 미구엘이 코코한테 Remember Me를 불러주는 순간에 나타난다. 마침내 헥토르가 가족을 버리고 음악을 하러 갔던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했던 바람이 가족들에게 전달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노래를 들은 코코는 노래를 부르면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찾고, 헥토르의 사진을 서랍에서 꺼내 미구엘에게 준다. 그 이후 헥토르는 다시 기억되어 사라지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당연히 가족들이 가지고 있었던 트라우마도 해결되어 더 이상 미구엘에게 음악을 그만 두란 소리를 하지 않게 된다. 한편 미구엘이 사후 세계까지 다녀오면서 겪었던 그 기묘한 여정은 헥토르뿐만 아니라 헥토르로 대표되는 수많은 이름 없는 뮤지션들, 그리고 가장이 실종된 가장을 이끌어나갔던 수많은 여성들을 다시 기억에 각인시킨다. 그리고 에르네스토를 통해 꿈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기억에 상처를 입히진 않았는지, 더 나아가서 누군가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하지는 않았는지를 자문하게 만든다.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 과연 미구엘은 행복해졌는가?
하지만 <코코>가 이름 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의 회복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미구엘의 행복에 대한 영화라면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영화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았던 장면. 미구엘과 헥토르가 에르네스토를 만나기 전, 그를 만나기 위해 음악 경연 대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 때 그는 죽은 사람의 분장을 하고 관중들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 때 미구엘의 얼굴에는 성취감이 넘쳤다. 문제는 이미 에르네스토가 꿈의 파괴적인 결과를 미구엘에게 보여준 이상, 그 성취감은 가족을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박탈이 되어야 한다. 꿈과 가족. 그 양쪽을 다 만족시키기 위해 영화는 미구엘과 헥토르의 음악을 가족과 그들을 기억하는 수단으로 바꾸는 전략을 선택한다. 그 예로 분장을 했을 때 미구엘이 불렀던 곡은 자신이 사랑에 미쳐 있다던가(Un Poco Loco), 세계가 나의 가족이라던가(The World Es Mi Familia) 하는 식으로 자신을 드러낸 곡이었다면, 이후 가족들 가운데에서 부르는 곡은 가족들에게 자신을 기억해달라던가(Remember Me), 가족들 안의 사랑은 영원할 거라는(Proud Corazon) 내용이었다.
아까도 이야기했듯 죽은 자들의 날은 아즈텍 사람들이 이승을 꿈으로, 사후 세계를 진짜 삶으로 생각했던 사고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이승에서 '가족'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미구엘이 진짜 모습인가, 아니면 비록 죽은 사람처럼 행세를 해야 했지만 처음 의도했던 대로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사후 세계에서의 모습이 미구엘의 진짜 모습인가. 영화가 지니고 있는 따뜻함은 애써 이 고민은 쓸모가 없다고 재빠르게 결론을 짓는 듯하지만, 사후 세계의 활기찬 모습, 미구엘이 처음 기타를 치면서 보여준 행복한 표정, 한때 자신을 구하러 온 마마 이멜다한테 "나는 음악을 해야 행복한데, 그걸 뺏으려고 하잖아요!"라고 일갈했었던 것을 보면 아직 미구엘 안에 있는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미구엘에게 가족들이 초반처럼 음악을 뺏은 거나 마찬가지의 상황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어른들의 비정한 세계는 에르네스토를 통해 폭로됐고, 그리고 그 모습이 미구엘을 이미 여정으로 이끈 동력으로 작용했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날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지네마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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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삼삼한 맛의 드라마 레시피를 찾는다면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Recipe for Farewell
Cast
감독: 이호재
출연: 한석규, 김서형
Synopsis
점점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가는 워킹맘, ‘다정’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그녀의 남편 ‘창욱’이 소환된다. ‘창욱’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요리를 해보지 않았지만, 오직 아내의 소중한 한 끼를 위해 좋은 식재료와 건강한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 온 힘을 쓰며, 서투르지만 조금씩 가족의 소중한 의미를 깨달아가기 시작하는데… (출처: 왓챠피디아)
Review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흥미로운 섹션이 있습니다. 바로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OTT)에서 방영 예정인 드라마 시리즈를 미리 선보이는 ‘온 스크린’ 섹션입니다. 최근에는 드라마도 영화처럼 완성도 높게 제작해 극장에서 관람하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죠.
2022년 12월 공개 예정인 이 작품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미리 관객들과 만났습니다. 1부에서 4부까지만 관람했는데도 따뜻한 감동과 소소한 웃음이 가득한 작품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따뜻한 사람 이야기이자 맛있는 음식 이야기인 이 작품의 매력을 여러분께만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입니다.
⊙ ⊙ ⊙
강창래 작가의 이야기에 더해진 이호재 감독의 시선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강창래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강창래 작가는 암 투병을 하는 아내를 위해 처음으로 칼과 국자를 손에 쥐었습니다. 영화 상영 후 진행된 GV에서 강창래 작가가 “이 작품이 나에게는 드라마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고 말할 정도로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그의 에세이를 잘 영상화한 작품입니다. 강창래 작가는 자신의 아내가 김서형 배우가 연기한 ‘다정’처럼 자기 일에 열정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무척이나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영화관에 들어서기 직전까지도 에세이가 영화나 드라마로 재탄생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강창래 작가의 말처럼,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더없이 완벽한 휴먼 드라마였습니다. 강창래 작가가 쓴 인간적인 이야기에 이호재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더해진 결과였죠. 에세이도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장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강창래 작가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창욱’에게는 창작자로서 배울 점도 참 많았습니다(’창욱’의 성도 강 씨더군요). 글을 쓸 때는 ‘어떻게’보다 ‘왜’가 더 중요하다거나, 글쓰기를 숙제처럼 여기지 말고 즐겁고 행복하게 그냥 쓰라는 대사들이 그랬습니다. 사람 이야기이자 음식 이야기를 표방하는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보고 난데없이 창작에 관한 가르침을 얻을 줄은 몰랐습니다. 뭐, 배움은 어디에서나 오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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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하지 않아도 구미가 당기는 맛이 있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잘 만들어진 요리 ASMR 영상 같기도 합니다. 드립커피를 내리는 소리, 시금치와 콩나물을 무치는 소리, 굴비 굽는 소리, 냄비와 식기, 그릇과 그릇이 맞부딪히며 나는 소리까지, 생생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죠. 이호재 감독이 작품의 주인공을 ‘음식’이라고 생각하며 연출했다고 하니 말 다했습니다. ‘다정’을 위해 만드는 음식은 분명 맛이 덜한 무염식일 텐데도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침을 줄줄 흘리면서 보았습니다.
거기에 훌륭한 작가가 알려주는 음식 레시피는 또 얼마나 일품이게요. “맛있는 음식은 마음으로 만들어진다.”, “미각에는 기억을 불러내는 힘이 있다.”, “사랑과 정성이 깃든 음식이라야 배부르다.” 한석규 배우가 연기한 ‘창욱’의 내레이션으로 재탄생한 강창래 작가의 문장들을 듣고 있으면, 삼삼하니 맛있는 한정식을 천천히 음미하는 느낌이 듭니다. 새삼 한석규 배우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후하고 담백한지도 깨닫게 되더군요.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으리라 감히 예측해봅니다.
‘창욱’의 내레이션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금식은 그리움과 싸우는 것이다. 그리움만으로 사람은 죽을 수 있다.”라는 대사였습니다. 제가 앓고 있는 궤양성 대장염도 ‘다정’처럼 맵고 짠 음식을 지양하는 어느 정도의 식단 관리가 필요한 질병입니다. 증상이 악화되었을 때, ‘다정’처럼 철저하게 식단 관리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배고픔은 어떻게든 해결하면 그만이지만, 그리움은 바로 그 맛이 아니면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움과의 전쟁을 치른 기억들이 떠올라 ‘다정’에게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죠.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우리 삶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음식에 관한 다양한 고찰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강창래 작가는 GV에서 “관객들이 왜 재밌어하는지 궁금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화끈하고 짭조름한 음식만 맛있는 건 아니니까요. 화끈하지 않아도 구미가 당기는 영화가 있는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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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를 내리 보면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벌써 끝났어?”라는 말과 함께 관람을 끝마쳤습니다. 남은 여덟 개의 에피소드도 얼른 감상하고 싶네요. 대장암 환자의 투병 이야기라고 해서 마냥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이호재 감독이 이 작품을 ‘슬픈 시트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을 만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소한 웃음들도 숨어있습니다. 드라마가 공개될 12월을 기다리며, 강창래 작가의 원작 에세이를 열심히 탐독해야겠습니다.
Schedule in BIFF
2022.10.06(목)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15:30
2022.10.07(금)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16:00
2022.10.13(목) 소향시어터 20:00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10월 04일 -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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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의 반전의 반전이 살아 있는 19금 스릴러 / 기생충 같은 집? / 생각보다 높은 수위 / 한 명만 다 나옴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히든페이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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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못건드리는 양아치가 탄 버스에 하필 동석이형이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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