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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의 영화2025-02-23 20:35:46

사랑한다고 XX! 「러브 라이즈 블리딩」

러브 라이즈 블리딩 Love Lies Bleeding

 



 

정신분석가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방을 지키겠다는 판단이자 결의'. 사랑에 대한 그의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사랑이란 일종의 자기 파괴다. '모든 이해란 오해'라는 니체의 말을 받아들였을 때도, 사랑은 일종의 자기 파괴다. 이해할 수 없는 필연적인 오해를 지키겠다는 결의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에서 '로맨틱'은 잠깐이고 지리멸렬한 갈등은 법칙이다. 성공하는 사랑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에 밖에 없다. 진짜 깊은 사랑은 서로를 파괴한다.

 

로즈 글래스가 연출한 「러브 라이즈 블리딩 Love Lies Bleeding」의 사랑은 어떤가. 헬스장 매니저로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앞에 보디빌딩 대회 우승을 꿈꾸는 자유로운 영혼 잭키가 나타난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그들은 스테로이드(?)를 나눠 맞으며 사랑을 나누고, 잭키가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는 날에 함께 지겨운 도시를 떠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가정폭력을 당하는 언니를 도우려던 ''의 시도가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결국 '잭키'는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폭력을 숨기기 위해선 더 큰 폭력이 필요한 법. 피비린내 나는 그들의 사랑은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진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단 주요 캐릭터들의 존재감이다. 여성 보디빌더 '잭키'를 연기한 케이티 오브라이언의 무게감은 말할 것 없고,''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 역시 지금껏 보여준 연기의 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지겹게 느껴지진 않았다. 약간 우스꽝스러운(변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음에도 위엄을 잃지 않는 에드 헤리스는 명불허전이다. 저런 머리를 하고 있는데도 무서운 건지, 저런 머리를 하고 있어서 무서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렬한 캐릭터 뒤로는 미덕과 아쉬움이 동시에 있다.

 

우선, 테마적인 면에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이다. ''이라는 것이 가질 수 있는 양태를 다면적으로 다루었다는 것이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영화적 미덕이다. 사랑의 힘이라는 것이 발현되는 구체적인 형태와 성격은 세계의 인구수만큼 많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인 잭키를 보자.

 

 

잭키



 

이 영화에서 ''은 중요하다. 우선 '잭키'부터가 순수한 힘을 쫓는 보디빌더이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도망쳐 거리의 삶을 살았던 '잭키'에게 힘은 곧 생존이다. 순수한 힘을 향한 '잭키'의 집착은 영화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사격장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면접 자리에서 '잭키'는 총 같은 도구보다 육체 본연의 힘을 더 믿는다고 말한다. 체육관 앞에서 몇몇 남자들과 난투극을 벌인 후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 ''에게 '잭키' "내가 그들을 이길 수 있어"라고 말하는데, 이는 '잭키' ''에게 처음으로 정색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잭키'의 힘은 미숙하고 약하다. 그것은 버려진 두려움에서 비롯된 자기방어기제이기 때문이다. '잭키'가 격투기 선수나 역도 선수가 아닌 보디빌더인 점도 의미심장하다. 사실 보디빌딩은 ''을 쫓는 운동이 아니라, '미美'를 쫓는 운동이다. 실제로 보디빌딩의 번역어는 '육체미'. 아름다운 몸(물론 여기서 '아름답다'의 기준은 근육의 크기, 강도, 균형 등이긴 하다)을 가꾸는 시합이지, 강력한 몸을 가꾸는 시합이 아닌 셈이다. 엄밀히 말해 보디빌딩은 스포츠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잭키'에게 원한 건 강한 게 아니라 강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잭키'는 시도 때도 없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근육을 관찰하고 포즈를 취하고, 누군가에게 강해 보이기 위해 불필요하게 선을 넘기도 한다(사격장 면접 씬과 헬스장 앞 난투극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으면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는 기대도 어리숙하고 헛되다. 영화 속에서 묘사된 보디빌딩 대회를 보면 그다지 큰 규모도 아님을 알 수 있는데, 그런 대회에서 상을 몇 개 받는다고 인생이 크게 변할 순 없다. 감독이 어디까지 현실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애초에 훈련만큼 휴식과 영양, 값비싼 불법 약물 등이 더 중요한 보디빌딩에서 '잭키' 같은 사람이 성공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작중에서 '' '잭키'에게 스테로이드를 권유했을 때 '잭키'는 매우 당혹스러워하는데, 이를 보면 그녀는 한 번도 약물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이때 '잭키' ''에게 스스로를 내추럴*이라고 말하는데, 정말 신념이 있어서 스테로이드를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다. ''가 스테로이드를 공짜로 제공하겠다고 말하자 '잭키'는 곧바로 중독에 빠진다).

 

결과적으로 '터프함', '강함'에 대한 잭키의 어리숙한 집착은 그녀를 살인자로 만든다. 사실 영화 속에서 '잭키'가 살인을 할 이유는 딱히 없다. 물론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폭력성 과다, 숨기고 싶은 과거(잭키가 처음 도시에 왔을 때 일자리 알선을 위해 ''의 형부와 원나잇을 했었다) 등이 엮여있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살인을 설명하긴 무리다.

 

정작 당사자인 '' 역시 '잭키'의 개입을 원치 않았음에도 굳이 그녀를 돕겠다고 나서 살인까지 저지른 건 순전히 '잭키'의 어리광이다. 물론 그 미숙한 집착이 개인의 개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문화 탓에 자라났다는 사실도 분명하지만.

 

 

*불법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보디빌더. 흔히 피트니스 업계에서 내추럴과 로이더는 함께 경쟁하지 않는다.

 


랭스턴



 

그에 비해 '랭스턴'(루의 아빠)이 가진 힘에의 의지는 결이 좀 다르다. 대형 사격장의 주인이자 총기 밀매 업자인 '랭스턴'은 실질적인 힘을 추구하고, 실제로 힘을 가지고 있다. '랭스턴'은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의 유력자다. 사업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깔끔하게 '처리'할 능력도 가지고 있고, 막대한 부를 축적해 공권력까지 손에 넣고 주무른다.

 

'랭스턴'이 가진 힘에의 의지가 어디서 비롯된 건지는 영화 속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어쨌든 영화 속 시점에서 그것은 '잭키'의 자기방어기제 단계는 넘어선지 오래로 보인다. 총을 좋아하냐는 자신의 질문에 '잭키'가 총보단 스스로의 힘을 믿는다는 엉뚱한 대답(사격장 매니저를 뽑는 자리였으니까)을 했을 때도, '랭스턴'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잭키'를 채용한다. 아마도 그것은 '잭키'가 힘에 대한 미숙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언젠가 자신을 위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지 않았을까(실제로 그는 '잭키' '처리'의 도구로 이용한다). 거울을 보며 스스로의 근육을 구경하는 '잭키'에게 사격을 경험시키면서 "진짜 ''은 이런 것"이라고 위계(?)를 보여주는 장면 역시 '랭스턴'이 가진 지배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예다.

 

그러나 강력한 힘을 가진 '랭스턴'의 지배 욕구는 단순하지 않고, 그래서 그의 욕구 역시 불완전하다. '랭스턴'은 힘이나 돈으로 찍어누르는 1차원적인 지배를 원하지 않고, 좀 더 완결적이고 총체적인 지배, 그러니까 '완전한 장악'을 원한다. 그에게 인간이란 사무실에서 애지중지 기르는 애완용 벌레 같은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 '랭스턴'이 딸인 ''를 자신의 사업(총기 밀매)에 끌어들이려고 한 것 같은 묘사를 생각해 보자. 보통 영화에서 성공한 갱이나 마피아들은 자식을 범죄로부터 멀리 떨어뜨려놓으려 하기 마련인데, '랭스턴' ''에게 사업을 가르쳐 주고 일에 방해되는 사람을 '처리'하는 방법까지 가르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 '랭스턴'의 묘사로 볼 때 그에게 인력이 부족해서 ''가 필요했던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랭스턴' ''를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했다. 다만 그에게 사랑이란 '자아의 연장'이자 '힘의 확장'과 유사한 개념이었을 뿐이다.

 

''의 언니가 가정폭력으로 병원에 입원한 것을 계기로 '랭스턴' ''는 불편한 재회를 하게 된다. 이때 '랭스턴' ''를 대하는 방식은 결코 미움이나 혐오가 아니다. 미움보다는 '그냥 내 말 듣고 시키는 대로 했으면 편하게 잘 살았을 텐데 사서 고생이냐'는 전형적인 K-아버지식 태도에 가깝다. 나아가 '잭키'가 저지른 실수 탓에 ''가 곤경에 빠졌을 때도 '랭스턴'은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를 돕는다.

 

그러나 극의 후반부 결국 그의 사랑은 힘을 갖지 못한 채 막을 내리게 된다. 그의 사랑은 끝없는 자기 확장 욕구의 발현 방식이었을 뿐, '자기 파괴의 감수'까지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 '랭스턴'의 입지를 흔들만한 비밀을 폭로하려 하자, '랭스턴'은 곧바로 돌변했다.



데이지와 베스



 

작중 양아치 남편 JJ로부터 끊임없이 폭행을 당하면서도 그를 떠나지 못하는 '베스(루의 언니)' ''를 짝사랑하는 '데이지'가 가진 힘의 욕구는 수동적이고 퇴행적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들에게도 욕구가 있다.

 

'베스'는 양아치 남편에게 가정폭력 피해를 당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떠나지 못한다. 일반적인 가정 폭력 피해자들의 경우와는 다르게 '베스'는 강력한 무력과 재력을 가진 아버지가 있음에도 JJ를 떠나지 못하는데, 이는 '베스'가 가진 왜곡된 사랑 탓이다. (작중 '베스'의 이야기가 많이 다뤄지지 않지만) 심각한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한 자신을 타이르는 ''에게 '베스' "너는 (자기 파괴적인) 사랑을 몰라"라며 JJ를 옹호한다. 이에 더해 '베스' ''와는 달리 아버지 '랭스턴'과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왔던 듯 묘사되는데, '베스'는 사랑이 가진 자기 파괴적인 속성을 온몸으로 수용하지만(JJ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악행 역시 감내했다) 그 의미를 오해하고 있다.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그래서 이해될 수 없는 타인을 지키겠다는 결의로서 사랑은 무비판적인 수동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힘을 가질 수 있는 사랑은 상대를 향한 적극적인 행동 양식이다. 베스가 진정 JJ를 사랑했다면, JJ의 인격적인 성장을 위해 힘썼을 것이다. 그게 JJ를 떠나는 방식이 된다고 하더라도.

 

데이지의 경우는 전형적인 '왜곡된 사랑' 그 자체다. 우선 영화는 데이지의 미성숙을 도드라진 방식으로 보여준다. 다 큰 어른이지만 우유와 사탕을 입에 달고 살고, 유아적인 표정과 말투를 가졌다. 다 빠져버린 치아의 상태를 봤을 때 아마도 그녀는 마약을 남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그녀는 ''에게 대마초를 권유하기도 한다).

 

'데이지' ''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짝사랑을 가지고, 이에 대한 ''의 반응으로 봤을 때 그 세월도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항상 기름진 머리로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데이지는 ''를 자신의 답답한 인생에서 탈출시켜줄 구원자처럼 여긴다. 그들이 체육관 화장실에서 처음 마주치는 장면을 보면, '데이지'를 귀찮아하는 ''는 마치 어린아이 어르듯 돈을 건넨다. 그러자 '데이지'는 상처받은 듯 실망하지만 이윽고 돈을 보고 웃는 낯을 보이는데, 이와 같은 '데이지'의 양가적인 모습은 영화 내내 계속 반복된다. 특히 시체를 싣고 가던 '잭키'를 목격한 이후, '데이지' ''의 약점을 가지고 선을 넘을 듯 말 듯 교묘하게 그것을 활용하는 태도를 보인다. '데이지'는 순수하게 ''를 사랑하는 순애보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데이지' ''를 목적으로 대하지 않는다(계속해서 '잭키' JJ의 자동차와의 연결고리를 묻는 것은 질문이 아니라 협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 삶에서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힘(목격자의 지위)을 가지게 된 '데이지'의 행동을 보았을 때, '데이지'의 사랑은 어린아이와 같은 형태의 퇴행적인 자기애에 가까운 셈이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힘을 가지는데 성공하는 인물은 ''. 오직 ''만이 주체적으로 '자기 파괴'의 결단을 내리는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우선 ''는 영화가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랭스턴'의 악행을 스스로 거부하고 독립에 (반쯤?) 성공한 상태다. '잭키'를 먼저 발견하고, 관계를 리드하는 것도 ''. '잭키'를 위해 매일 계란 노른자를 분리해 주고, 스테로이드를 제공한다(비록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러브 라이즈 블리딩」 속 주요 캐릭터들은 모두 파괴를 겪는다. '잭키'는 평생을 꿈꿨던 무대를 망치고 살인자가 됐고, '랭스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군 왕국을 잃었으며, '베스'는 엉망이 된 채 JJ를 잃고 '데이지'는 배신당한 채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이 중에 타인을 위해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아를 희생한 것은 ''가 유일하다.

 

''는 평생 아버지의 악행을 혐오하며 그와 닮지 않기 위해 우악스럽게 살아왔지만, 결국 '잭키'를 위해 피를 두 번 묻힌다(엉망이 된 JJ의 시체를 숨기며 첫 번째 죄를 저지른 후 영화의 결말에 또 한 번 결정적인 죄악을 저지른다). '잭키'를 위한 ''의 자기 파괴적 희생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요소는 바로 담배다. 작중에서 ''는 금연에 대한 언급을 여러 번 하면서도 계속 담배를 끊지 못하는데(금연 교육 테이프를 들으면서도 담배를 피운다), '잭키'가 떠나고 난 후 금연을 선언하고 실제로 금연에 성공한다.

 

그러나 '잭키'와 함께 사막을 떠나던 중 반쯤 죽었던 '데이지'가 다시 꿈틀거리고 ''가 이를 다시 처리(?) 하는데, 이때 결국 '' '데이지'가 가지고 있던 담배를 꺼내 물어버린다. 이 장면에서 '잭키'는 세상모르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는 타자를 지키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도덕적인 자기 파괴를 감행했고, 결국 (담배처럼) 자기 자신을 갉아먹을 것이 분명한 '잭키'와의 사랑을 스스로 선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랭스턴'의 저택에서 '' '잭키'가 힘을 합치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랭스턴'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잭키'의 거대화(?). 그러나 이 거대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 다시 말해 '잭키'가 그토록 갈망하던 '커 보이는 것 / 강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거대화)'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목숨을 걸고 '랭스턴'의 저택으로 돌아온 ''의 용기 덕이었다.

 

'잭키'는 모든 것을 잃고 친동생에게 전화해 "(너무 힘드니까) 넌 사랑하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 (베스와) 소리를 지르며 싸우다 가다도 "언니 사랑해!!"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힘에 대한 갈망이 가장이 없었던 '' 만이 진짜 사랑에 도달해 ''을 얻었다.



카메라



「러브 라이즈 블리딩」에서 힘을 갈망하는 마지막 주체는 카메라다. 이 영화에서 '형식'은 끊임없이 저 자신을 드러낸다. ''가 손으로 직접 막힌 체육관 변기를 뚫고 있는 매우 부담스러운 클로즈업으로 시작한 영화는 이후 땀에 젖은 육체와 의미심장한 문구들을 접사한다. 영화 중간중간에 종교화의 색채를 띤 사막 위의 생명체와 기물들을 '몽타주'하는가 하면, 폭력을 전시하듯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연극적인(극단적인) 조명 연출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다가, 종국에는 (약간?) 당혹스러운 CG까지 나아간다. 저 자신의 영화적인 스타일리시를 백분 활용하는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카메라 역시 힘에 대한 욕구(사랑)가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사랑은 어디를 향하며, 또 성공했을까?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은 (어느 영화나 다 그렇듯) 영화를 본 관객마다 다를 것인데, 나의 경우 개인적으로 반쯤은 성공했고 반쯤은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우선 개인적으로 카메라가 [내러티브 - 인물]보다 앞섰다고 보았다(앞서 언급한 클로즈업/조명/인서트들이 내러티브를 돋보이게 한다기보단 저 자신의 스타일에 더 집중한다). 이를테면 '잭키'가 스테로이드 취해 ''를 토해내는 환상을 보는 장면 같은 겨우, '잭키'가 겪고 있는 어떤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잭키'가 자신 속에 있는 ''를 토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이야기의 맥락('' '잭키'의 살인을 수습하고 있을 때다)으로 봤을 때 만약 토해내야 한다면 '' '잭키'를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이와 같은 스타일리시의 과잉은 캐릭터와 내러티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카메라라는 저 자신의 형식에 더 취하는 것으로 보여 아쉬웠다. 그러나 이는 A24 영화의 정체성이기도 하고, 로즈 글래스 감독의 성향이기도 해서, 사실 미덕의 문제라기보단 취향의 문제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종횡무진 활보하는 '스타일'의 수위를 조금만 더 낮췄다면 '80년대 미국 시골'이라는 배경과 '가부장제를 부시는 아웃사이더'라는 소재와 현대적인 스타일, 이 세 가지 부조화스러운 영화적 요소들이 조금 더 매력 있는 간극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인서트 컷들만 남기도 눈에 튀는 연출들을 배제했다가 영화의 후반부 거인화 장면이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왔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다.

작성자 . 먼지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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