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2023-03-19 09:01:44
강렬한 OST가 함께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 Kill Bill Vol.1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더 브라이드
쿠엔틴 타란티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자신의 삶에 마지막 작품을 촬영 중에 있다는 소식이다. 그가 10 펴늬 작품만을 감독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이유로 그의 10번 째 작품을 촬영하는 중이라 나오는 말이다. 그가 자신의 말을 번복하더라도 더 많은 작품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예산 영화 ‘저수지의 개들’로 데뷔해 존 트라볼타 주연의 ‘펄프 픽션’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감독이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가 있는지라 호불호가 갈린다.
어릴 적부터 밖에서 뛰어놀기보다는 집 안에서 영화 보기를 좋아한 덕분으로 영화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의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그의 영화에는 오마주한 장면들이 자주 들어가며, 본인이 직접 작품에 출연하기도 한다.
강렬한 OST 사운드가 아직도 귓전에서 울릴만큼이나 음악 선곡에 있어 탁월하며, 킬빌이 진행되는 동안 마치 사이렌 소리와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다 갑자기 상황을 마무리하는 듯 멈춰 서는 사운드는 그 다음 씬을 예상하게 만든다.
킬 빌 Kill Bill
우마 서먼 배우가 이소룡 배우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착용해 큰 키를 한껏 활용하며 장신長身으로서 시원시원한 액션을 보여준다. 또한 사랑의 달콤함으로 가득 차야 할 결혼식에서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보인 액션 역시 인상적이다.
전신마비 상태에서 의식이 돌아와 발가락을 움직여 보다 불현듯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이곳이 아님을 자각한 뒤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는 더 브라이드의 모습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며 이후에 그녀가 보여줄 씬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전력질주하는 무자비한 액션은 스토리 따윈 전혀 필요 없다는 듯 보이지만, 과거의 회상 장면과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가 교차되며 극은 진행된다.
우마 서먼의 매력과 쿠엔틴 타란티노의 연출력, 적절한 OST가 잘 어우러져 속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영화 '킬 빌 Kill Bill'이다.
Relative contents
-
- [SIWFF 데일리] 개인에겐 마땅한 이유가 있고, 우리에겐 남을 판단할 권리가 없다
개인에겐 마땅한 이유가 있고, 우리에겐 남을 판단할 권리가 없다
개막작 <더 제인스> 리뷰감독] 티아 레슨, 에마 필더스
시놉시스] 경찰은 비밀 조직의 여성 일곱 명을 체포했다. 그들은 암호명과 눈가리개, 아지트를 활용하며, 안전하고 저렴한 불법 임신중단을 찾는 여성들을 위해 비밀리에 시술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들의 이름은 ‘제인’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효력을 발휘하기 전, 그들은 ‘제인 로’의 이름으로 약 11,000건의 임신중단을 도왔다.
한국에서도 2021년 이후 낙태죄가 없어지면서 임신중절수술은 합법화가 되었다. 어찌보면 생명을 죽이는 일이기에 이를 합법화해도 되는가에 대한 문제와 여성의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2019년 낙태법이 위헌 결정이 나면서 유예기간을 두다가 2021년부터 임신중절수술을 합법화의 길로 들어섰다. 이러한 법리적 판단의 첫 걸음이었다고 볼 수 있는 ‘로 대 웨이드’ 판결과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임신중절수술을 도왔던 제인의 이야기가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상영이 된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던 작품이었다.
여성을 무시하는 법은 똑같이 무시하라
법이라는 것은 사실 강제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 앞에서 이 법이 나를 무시했으니 나도 그 법을 무시하겠다는 이 용기있는 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사회의 진보는 어찌보면 그 시대 속에서는 조금 괴팍하고 급진적인 인물들의 파격적인 행보를 통해서 문제가 제기되고 공론화가 되면서 발전해나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임신중절수술은 불법이었으며 결혼한 여성이 아닌 이상 피임약과 피임기구를 처방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 없는 상황이거나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에는 마피아나 갱단을 찾아가 위험천만한 불법시술을 해야했고, 그 과정에서 죽어가는 여성들의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임신중절수술의 필요성과 이 문제가 굉장히 정치적임을 깨달은 여성들은 ‘제인’이라는 이름 아래 임신중절수술을 원하는 여성들과 이러한 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그들을 보호하면서 시카고에서 유명해지게 된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그 유명한 경구를 따르는 것이 아닌, 여성의 권리를 위해 악법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악볍이 폐지되기 전까지 불법이라도 최선을 다해 여성들의 권리를 지키고자 노력한 이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지금 당연하게 생각되어지는 여성 인권이 있기 까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싸움을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평범하다1970년대 미국에서의 여성은 그 권리가 거의 없었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타자를 치는 일에 불과 했고, 아주 극소수의 여성만이 전문직으로 나갈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의 진보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그 진보 속에 여성의 권리를 외치는 당은 없었다. 여성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믿음이 팽배한 사회 속에서 ‘제인’은 이를 이용해서 경찰의 감시망을 요리조리 피해갔다. 이 얼마나 통쾌한 작전인가.
기존 ‘제인’은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를 찾거나 그 기술이 있는 남성들에게 그 수술을 부탁했다. 그래서 프론트와 수술실을 따로 두면서 프론트에서는 ‘제인’ 멤버들이 여성들에게 수술 과정을 설명하면서도 걱정하는 여성들을 진정시키는 일을 담당했다면 수술실에서는 남성이 그 수술을 집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가장 믿었던 수술 집도의 ‘마이클’이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진 그들은 마이클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마이클이 의사가 아닌데 이런 수술을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는거 아니야?’라는 어찌보면 무모한 생각과 함께 마이클에게 수술 방법을 교육받고 직접 그 수술에 나선다.
그렇게 재편된 제인은 프론트와 수술실을 굳이 나눌 필요가 없었고, 한 장소에서 대기와 수술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행각은 곧 시카고 경찰에 의해 발각되고, 들이닥친 경찰들은 코 앞에 있는 제인들이 수술했다는 사실을 모른채 있지도 않은 의사를 찾아다녔다. 여자는 수술을 집도할 수 없다는 편견 속에 갇힌 것이다. 시대가 자신들을 무지몽매하다고 본다면 애써 이를 바꾸려고 하지 말고, 이를 이용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강구하면서 사회의 통념을 깨부시면 된다는 그들의 아이디어에 무릎을 탁 쳤던 순간이었다.여성의 권리를 위해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던 임신중절수술을 결과적으로 합법화로 이끌었던 ‘제인’의 활동들. 그들이 ‘제인’으로서 활동을 하며 임신중절수술을 하려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느낌은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기에, 그리고 그 당시에는 불법이었기에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그 이유를 만들어내야 했던 그들. 하지만 ‘제인’ 멤버들은 ‘개인에게 있어서 이유는 충분하고 그 이유의 경중은 없다. 또한 우리가 뭐라고 그들을 판단하는가?’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남의 선택에 대해 판단할 권리가 없다. 여성의 인권을 넘어 우리 역시 우리만의 잣대로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았는지 그 섣부른 판단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었다.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시간표
2022-08-26 13:00
메가박스 상업월드컵경기장 MX
1022022-08-27 13:30
메가박스 상업월드컵경기장 MX
211
-
- [JIMFF 데일리] 도덕과 기회, 그사이에 선 우리
도덕과 기회, 그사이에 선 우리
한국경쟁 섹션 영화 ‘그 애와 나랑은’ 리뷰
감독] 임진희
출연] 박수연, 정혜자
시놉시스] 밴드에서 작사를 하는 해온은 할머니의 시를 가사로 써 방송 오디션에 합격한다. 그리고 그날, 할머니의 시가 다른 노래 가사를 표절한 표절 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요즘 가요계에서 들끓고 있는 표절 문제. 그동안 많은 사람이 쉬쉬해왔던 표절 문제가 한 번 크게 터지면서 연쇄적으로 여러 가수 및 뮤지션들의 표절과 도덕성 문제에 대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표절의 문제에 이번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한국경쟁 작품인 ‘그 애와 나랑은’은 어떤 입장에 있을까?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아?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문제를 그냥 넘어가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인 문제에서는 사소한 것에도 트집을 잡지만 나 자신에 관해서는 조금 더 편하기 위해 더 알아보기 귀찮다는 이유로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영화 ‘그 애와 나랑은’은 작사가이자 보컬로 활동하는 해온에게 닥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작사가지만 제대로 된 작사는 아직 해보지 않은, 그래서 경연에 나갈 곡의 작사를 할머니가 노인 대학에 다니며 집필한 ‘그 애와 나랑’을 활용한다. 할머니의 뛰어난 시구에 손녀인 해온은 할머니에게 그 비결을 물어보고, 할머니는 노래 하나를 불러보라고 시킨다. 해온은 아이유 노래의 ‘분홍신’을 부르고, 할머니는 그 가사를 시로 옮겨적으면 된다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한다.
할머니의 시들이 가사를 베낀 표절 시라는 것을 깨달은 해온은 그토록 원하던 방송 오디션 본선 진출이라는 기회를 포기하고, 팀원들을 설득한다. 팀원들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할머니 이름을 작사가로 올리면 화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문제의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방송 출연을 고집하지만 결국 모든 책임을 지며 해온은 방송 오디션에 출연하지 않는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면서까지 도덕적 책임을 지려는 손녀의 모습을 보면서 할머니 역시 자신이 이장희의 노래를 표절한 것이라며 노인 대학에서 고백하고 반성한다. 과연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있을 때 사소한 문제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는 두 가지 갈림길에서 모두가 도덕적인 올바름을 선택할 수 있는지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던 17분이었다.
실수를 딛고 일어날 수 있기를
작사가이자 보컬인 해온은 스스로 아직 작사를 할 수 없어 고뇌에 빠진다. 조금 더 멋진 가사와 노랫말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심과 열망에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것이다. 해온을 보면서 처음에는 실수를 할 수 있고, 서툴 수 있다는 점을 아직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의 표절 사건으로 인해서 해온은 자신의 꿈이었던 오디션을 포기하고 하루하루 힘없이 살아가고 있었고, 할머니는 해온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도덕적인 문제를 바로잡고 다른 이의 가사가 아닌 자신만의 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첫 자작시를 해온에게 선물로 주는데, 이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해온은 처음으로 자신의 노트를 펴 가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 하는 것에 실수를 할 수 있고, 부족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실수와 무지를 받아들이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발전을 거듭해 나가면 된다. 이러한 새로운 도전과 잘못의 인정이라는 태도를 할머니를 통해 배운 해온이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가사를 써 내려가는 용기를 얻지 않았을까 싶다.
17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과연 우리는 얼마나 도덕적으로 떳떳한가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전하고 있었던 영화 ‘그 애와 나랑은’. 그저 뮤지션들의 도덕적인 문제라고만 생각해왔던 표절이라는 소재를 현실의 우리 역시 그 갈림길에 언제든지 놓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 작품이었다.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시간표
2022-08-13 10:30
CGV 제천 1관
207
2022-08-15 10:30
메가박스 제천 3관
402
-
-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단편영화 추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늘의 큐레이션 주제는 바로 '짧지만 강렬한 단편' 영화입니다.
이 게시물 혹은 씨네픽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동일 내용의 콘텐츠 게시물에
자신이 보고싶은 영화에 대해 적어주신다면 다음 콘텐츠를 올릴 때 여러분들의 댓글을 바탕으로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작해볼까요?٩( ᐛ )و
유월
ⓒ 네이버 영화
synopsis
한시도 몸을 가만두지 않고 춤추는 소년 유월은 어느날 사립초등학교에 발발한 집단무용증
(a.k.a. 댄스바이러스)의 원흉으로 지목당하며, 질서에 목매는 담임선생 혜림과 옆반 선생들에게
추격당하기 시작하는데…
cine pick!
한예종 영화과 졸업 작품으로 유튜브에서 누적 조회수 620만회를 기록한 <유월>은
첫 오프닝부터 아이댄스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했다.
러브빌런
ⓒ 네이버 영화
synopsis
고요한 밤, 도로를 질주하는 커플인 메구와 교환, 그리고 다빈. 졸음이 쏟아지는 교환은 껌을
찾지만 마지막 남은 껌은 다빈의 입 안에 있다. "껌 씹으면 잠 좀 깨실 것 같애요?” 교환은
옆자리에서 곤히 잠든 연인 메구의 눈치를 보는데...
cine pick!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무엇까지 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이옥섭 감독의
영화 <러브빌런>은 독특한 이야기와 신비로운 분위기가 매력적인 영화이다.
오늘의 초능력
ⓒ 네이버 영화
synopsis
하루에 한 번, 숨을 참으면 투명인간이 되는 초능력을 가진 지우. 어느 날 편의점에서 물건을
가지고 몰래 나가려다 알바생에게 잡혀 경찰서로 가게 된다. 거기서 자신처럼 하루에 한 번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민성과 하늘을 날 수 있는 하진,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김공익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들 모두 초능력을 오늘은 발휘할 수 없었다는데…
cine pick!
SF와 판타지 장르의 영화를 주로 만들던 이민섭 감독의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
<오늘의 초능력>은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이야기로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여름, 버스
ⓒ My Little Sunshine 유튜브
synopsis
시내버스 운전기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영화
cine pick!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 <여름, 버스>는 제목처럼 여름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으며, 정겨운 모습들이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든다.
하코다테에서 안녕
ⓒ 네이버 영화
synopsis
두 남녀가 이별여행을 떠난다. 하코다테의 차분한 겨울 설경을 배경으로 배우 안소희와
정준원의 목소리가 입혀진다. 그들은 눈 쌓인 거리를 걷고, 사진을 찍고, 아늑한 공간에서
따뜻한 차를 마신다. 두 남녀의 목소리는 사람이 없는 하코다테의 공간 속을 부유한다.
cine pick!
<더 테이블>, <조제>, <최악의 하루> 등 서정적, 감성적 연출이 돋보이는 김종관 감독의 단편영화로
하코다테의 겨울 풍경에 두 배우의 나레이션이 들어가 짧은 영화이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
- 정순 | 운전대 주인이 바뀌는 과정을 차분히 쫓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견과류 식품 공장에서 일하는 '정순'(김금순)은 외롭다. 남편과는 사별했고, 딸 '유진'(윤금선아)은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까. 그런 그녀 앞에 '영수'(조현우)가 나타난다. 공장에서 같이 일하고, 동료들과 등산도 같이 하면서 정순은 그에게 빠져든다. 정순은 주변의 시선을 걱정하며 더 나아가지 못하지만, 영수의 거듭된 구애에 마침내 마음을 연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뿐, 정순의 일상은 이내 파괴된다. 영수가 공장 직원들 사이에서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겠겠다며 정순과 찍은 은밀한 영상을 젊은 관리자 '도윤'(김최용준)에게 보여준 것. 영상이 일파만파 퍼져나가면서 정순은 충격에 빠지고 칩거한다. 유진이 엄마를 대신해 가해자들을 경찰에 신고하지만, 정순은 딸을 만류하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추스르고 새로운 내일을 열기 위해서.
세련된 범죄 드라마, <정순>
범죄, 특히 성범죄 사건을 소재로 삼는 영화는 두 가지 문제를 마주한다. 성범죄를 어떻게 묘사할지, 그리고 피해자의 서사를 어떻게 구성할지가 관건이다. 범죄의 양상과 경과를 관객에게 전달할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얼마나 구체적으로 보여줄지, 어느 정도의 자극까지 허용할 지에 대한 판단이 늘 애매하기 때문.
이에 더해 피해자에게 어떤 서사를 부여할 지도 문제다. 만약 피해자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묘사한다면 범죄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서는 범죄 사건과 수사 과정으로부터 쾌감과 재미를 끌어내기 위해 피해자를 플롯의 도구로만 활용한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박훈정 감독의 <브이아이피>처럼 해당 이슈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작품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매혈기>와 <버티고>로 주목받은 정지혜 감독의 신작 <정순>은 흠잡을 데가 많지 않다. 주인공 정순의 성범죄 피해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그 심각성을 명확히 인지시키는 연출이 인상적이기 때문. 그뿐만이 아니다. 중년 여성 피해자의 감정선을 우직하게 쫓으며 그녀의 고통뿐만 아니라 재기 과정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즉, <정순>은 세련됐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드라마다.
엄마, 아줌마, 노동자의 틀을 깨다
<정순>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우선 전반부는 정순의 일상을 비춘다. 정순이라는 인물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모습인지를 약간의 거리를 둔 채로 차분히 포착한다. 이때 정순의 일상 속에 정작 '정순'의 모습은 없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녀는 직원, 엄마, 아줌마의 탈을 쓰고 바쁘게 살아간다. 공장에서는 다른 여직원의 화장이 너무 진한 거 아니냐고 참견하는 오지랖 많은 아줌마다. 그러면서도 친한 동료들과는 등산도 같이 가는 활달한 직원이다. 또 집에서는 평범한 엄마다. 결혼을 앞둔 딸이 결혼식 준비는 잘하고 있는지 걱정을 놓지 못한다. 그 사이에서 한 개인이자 주체로서 정순의 모습은 많지 않다.
하지만 영수가 공장에 취직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정순이 영수의 작업을 도와주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그들의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한다. 물론 엄마로서 결혼을 앞둔 딸과 예비 사위의 반응을 걱정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흉을 보지 않을까 우려도 한다. 하지만 그 걱정마저 떨쳐내면서 정순은 영수 앞에서 온전한 자기 자신을 되찾는다. 그 순간 엄마, 아줌마, 노동자로서는 맛볼 수 없는 짜릿한 행복이 그녀를 감싼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그러나 <정순>의 분위기는 일순간 전환된다. 영수 앞에서 찍은 은밀한 영상이 주변인들에게 유포된 것. 대명사로만 불리던 그녀가 '정순'을 맛본 바로 그 순간이 동의 없이 타인에게 공개되어 버렸다. 그녀가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은 이제 그녀에게 가장 큰 고통과 수치를 안긴다.
그녀의 일상으로 가득한 전반부가 평화와 행복으로 가득하다 보니 정순의 추락이 초래한 분위기 전환은 유달리 날카롭고 뼈아프다. 이는 카메라의 구도와 움직임에서부터 느껴진다. 사건 이후부터는 전반부와 달리 핸드헬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또 대상을 보다 가까이에서 포착하며 인물들의 호흡과 변화를 보다 역동적으로 담아낸다. 그 덕분에 혼란상도 더 자세히 느껴진다.
특히 정순의 심경 변화를 포착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범죄 해결보다는 피해자에게 철저히 초점을 맞추면서 자칫 그저 변덕처럼 보일법한 괴로움을 절절하게 묘사한다. 정순을 온종일 누워서 집에 칩거하다가도, 경찰 수사에 협조하기도 하고, 이내 빨리 일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다가도 특정한 계기로 인해 참아둔 분노와 한을 토해내기도 한다.
이러한 묘사 덕분에 <정순>은 평범해 보이면서도 세련됐다. 범죄 자체의 잔혹함을 강조하고, 선정성을 윤리적 경계선까지 끌어올리면서 범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화법을 피해 가기 때문. 오히려 피해자의 심경 그 자체에 집중하다 보니 관객 뇌리에 경각심이 더 강렬하게 각인되기도 한다. 애써 일상으로 돌아오던 정순이 엄마를 목놓아 오열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정순이 운전대를 잡는 방법
이에 더해 <정순>은 정순을 피해자라는 틀에 가두지 않는다. 그녀가 스스로 틀을 부수고 나오는 모습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 과정은 고정관념을 역이용하기에 더 인상적이다. 영화는 고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이라는 설정을 살려 정순으로부터 주체성을 계속 뺏으려 한다.
하지만 정순은 그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다. 기꺼이 대항한다. 이 대목에서는 김금순 배우의 열연이 특히 두드러진다. 그녀는 노래 '지나가'를 반복해서 부르는데, 노래 가사와 노래 속에 담긴 정순의 감정선 변화만 따라가도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다.
정순의 변화는 다른 장면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운전대를 잡는 사람이 달라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중반부까지 정순은 운전을 할 줄 모른다. 영수나 유진이 운전하는 차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출퇴근을 한다. 그러나 운전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달라진다. 가해자를 피하거나 숨는 대신, 당당하게 맞서는 법을 깨우친다. 엄마, 아줌마, 공장 노동자라는 역할과 지위에 갇혀 있다가, 자기 힘으로 탈출하는 법을 익힌다.
비슷한 장면은 또 있다. 영수가 머무르는 모텔 앞에는 노숙자가 한 명 있다. 처음에 정순은 그 노숙자를 경계한다. 모텔을 드나들 때마다 그녀가 혹시 자기 얼굴을 알아보고 소문을 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종국에는 자기 힘으로 술 한 병, 담배 한 개비도 구하지 못하는 그녀를 안쓰러워한다. 이처럼 커져가는 정순의 주체성은 다른 피해자에게 전하는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처럼 보인다.
단 한 가지 옥에 티
다만 <정순>에도 옥에 티가 존재한다. 흡입력이 다소 부족하다. 독립영화임을 감안해도 관객을 휘어잡는 힘이 약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특히 초반부에서 문제가 두드러진다. 정순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제시하는 화법은 필연적으로 관객을 휘어잡는 힘이 떨어지기 때문. 기술적인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특히 음향이 아쉽다. 대사와 주변 소음이, 혹은 대사끼리 겹친 나머지 극장에서도 대사가 안 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도가 떨어지는 중년 여성의 일상 공간을 스크린 위에 비범하게 재구성하는 힘만큼은 확실히 남다르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수상, 제17회 로마국제영화제 2관왕인 이유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늦은 개봉이 꽤 아쉽다. 영화제 출품과 수상이 대체로 작년, 재작년에 이뤄졌다 보니 화제성 면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
Acceptable 무난함
담백하게 불타며 빛을 발산하다
-
- 정체성을 찾기 위한 네 친구의 모험
*개봉 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십 대 시절을 지나면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부모과 가족의 영향을 받고, 더 크게 보면 국가의 영향을 받는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은 한국 부모 밑에 자란 한국 사람이 된다. 너무나 당연한 정체성 인식과정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가족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을지 몰라도 국가적인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다가 다른 나라로 간 경우나 다른 나라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온 경우에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생기게 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다른 나라인 미국으로 건너갔다면 그 사람은 한국 사람일까. 아니면 미국 사람일까. 과거와 달리 다른 나라로 간 이민자들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그 이민자의 자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확립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이도저도 아닌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 끝에, 결국에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 찾아가게 된다.
아시아계 미국 입양인 오드리의 이야기
영화 <조이 라이드>는 어린 시절 미국 부모에게 입양된 오드리(애슐리 박)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오드리는 아주 어린 시절 중국에서 미국 부모님에게 입양된다. 어린 시절에 우연히 만나게 된 중국계 이민자 가정의 롤로(셰리 콜라)는 오드리와 중국계 아시아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더욱 가깝게 지내게 된다.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주변의 인종차별적인 상황을 같이 이겨내고 의지하면서 성공적인 성장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학장시절의 주요 순간을 짧은 편집을 통해 보여주면서 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경쾌하게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시아계 미국인이로서 겪게 되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 그 모든 경험이 결국 그들을 어떤 어른으로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면서 두 인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된 인물은 오드리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변호사가 된 그는 직장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알파걸이다. 그런 그는 상사로부터 중국에 있는 고객과의 계약을 따오라는 지시를 받고 친구 롤로와 함께 중국으로 향한다. 여기에는 롤로의 친척인 데드아이(사브리나 우)와 오드리의 대학 친구인 캣(스테파니 수)도 동행한다. 오드리의 중국 고객은 가족의 존재를 강조하며 며칠 뒤에 있을 파티에 오드리의 엄마와 같이 참석하라는 요구를 하게 되고, 그 일이 실행되었을 때 계약서에 서명을 하겠다는 답을 듣게 된다.
하지만 오드리는 아주 어린 시절에 입양되어 생모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이때부터 오드리와 세 친구들은 오드리가 입양될 때 관여된 입양기관에 찾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생모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영화가 보여주는 네 친구의 여정은 무척 경쾌하다. 영화는 입양 기관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중국과 한국, 미국을 오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코믹한 설정과 약간의 성적인 코드를 이용한 웃음코드가 오드리의 무거운 상황을 희석시킨다. 또한 그들이 중국의 문화나 분위기를 관찰하고 본인들이 끌리는 이성과 어울리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도 다른 인종과 관계없이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도 보여둔다.
네 아시아계 미국인의 로드무비
이들은 모두 아시아계 미국인들이다. 그중에서 오드리는 입양되어 진짜 부모를 모르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그동안 무시했거나 신경 쓰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인 다른 친구들보다 더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미국인 부모 밑에서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 표현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오드리는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중반 그가 중국의 문화나 한국의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왠지 모를 친숙함을 느끼는 모습에선 그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이 드러나게 된다.
오드리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오드리와는 다르게 자신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는 확고하게 알고 있다. 중국에 친척이 있고 중국어도 꽤 능숙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드리는 중국어를 하지 못하고,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도 낮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그의 부모가 어떤 모습일지, 그 부모를 만난 오드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게 만든다.
영화의 전반부는 미국에서, 중반부는 중국에서, 후반부는 한국에서 진행된다.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는데, 미국에서의 오드리는 그야말로 미국인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그가 중국으로 넘어가 중국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왠지 모를 친근함을 느낀다. 그렇게 그는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중국인의 사고와 행동을 받아들인다. 그가 느끼는 친근함 때문인지 중반부의 친구들은 모두 마음이 한없이 풀어져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상태가 된다. 그러다 한국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오드리의 생모에 대한 비밀이 드러나면서 중국 친구들과의 갈등이 심화된다. 그렇게 나쁜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는 후반부에서의 오드리는 한국인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오드리가 느끼는 정체성이 변화할 때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변하고, 그가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찾은 이후에 그 모든 혼란은 정리된다. 영화 <조이 라이드>는 그런 이야기 구조를 통해서 오드리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한편으로 영화 중반부에 포함된 성인 코미디 장면이 조금은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이면서 여성인 그들이 당당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고 행동한다는 측면에서 그들의 당당함이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오드리의 정체성에 따라 변하는 친구들과의 관계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은 네 친구가 파리로 함께 여행을 가서 밥을 먹는 장면이다. 그 마지막 식사가 인상적이다. 프랑스 파리의 식당에서 중식과 한식 요리를 먹으며 한국 맥주와 소주를 마시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세계 어느 곳에서도 각자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자신만의 정체성을 언제든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 인종과 국가가 뒤섞여 사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정체성을 알고 드러내면서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를 연출한 아델 림 감독은 과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각본을 썼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아시아계 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영화를 계속 작업해 온 것이다. 자신도 경험했을 정체성의 혼란을 영화 <조이 라이드>에 그대로 담았고, 그 혼란을 우울하게만 보여주지 않고 경쾌한 코믹 로드무비 형태로 설정하여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오드리 역을 맡은 애슐리 박은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으며, 캣 역의 스테파니 수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주연을 맡았었다. 이 두 배우를 포함해 코미디언으로 알려진 롤로 역의 셰리 콜라와 데드아이 역의 사브리나 우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아시안계 미국인 네 명이 주연을 맡아 이끌어가는 영화라는 점이 영화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영화 속 오드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을 생모를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고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만다. 영화에서 그가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과 발견 이후의 모습이 무척이나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 미국 이민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조이 라이드>는 다양한 웃음코드를 보여주고 있어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따뜻하고 경쾌한 영화다.
*본 포스팅은 배급사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의견을 반영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영화의 스틸컷은 [배급사]로부터 전달받았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주간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실 수 있어요.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https://taling.me/vod/view/53700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
- 자욱한 안갯속을 부유하는 눅진한 에로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구소산 정상에서 추락한 남성의 사망 사건을 담당한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인 '서래(탕웨이)'를 만난 후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중국인이라서 말이 서툴기는 하나, "마침내 죽을까 봐" 걱정했다고 말하는 등 서래가 남편의 사망 소식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단순한 유가족이 아닌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 서래. 그러나 해준은 사건 당일 서래의 알리바이를 파악하고, 잠복수사를 통해 그녀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하며, 그녀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잠정적으로 판단한 후 그녀에게 더욱 빠져든다. 반면에 해준의 관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서래는 그를 이용하는지 그와 사랑에 빠진 것인지 좀처럼 속을 알려 주지 않는다. 이렇게 진심과 의심 사이를 오가는 두 남녀의 관계는 조금씩 불이 붙는다. 서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보통 직선적이고 직설적이라는 인상을 남기곤 했다. 그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정인 복수심은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복수가 주제가 아니어도 다르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장편 작품인 <아가씨>는 그녀들의 사랑을 가슴에 날아와 꽂히듯 강렬하게 제시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선사한 영화 <헤어질 결심>은 다르다. '헤어질 결심'이란 제목만 봐도 그렇다. 제목만 놓고 보면 도통 헤어지겠다는 것이지, 헤어진 것인지, 헤어지는 중인 전지 그 의미를 쉽사리 파악할 수 없다. 영화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녹색인지 파란색인지 알 수 없는 드레스만큼이나, 바다에 핸드폰을 던지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사진만큼이나, 영화는 눅진하고 갑갑한 안갯속을 헤매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박찬욱 감독의 불륜 멜로는 해준과 서래 사이의 에로스를 맞춰나가는 묘미로 가득하다.
<헤어질 결심>은 모호하다. 영화의 장르와 구조부터 그렇다. 얼핏 보기에는 스릴러 혹은 범죄 영화이나, 정작 서래의 신분이 유가족이 아닌 용의자로 바뀌는 순간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진한 멜로로 급변한다.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누아르 영화와 진한 멜로드라마 사이에서 줄을 타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실제로 해준과 서래의 대화는 취조이면서 동시에 소개팅처럼도 보인다. 서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대해 정보를 알려주고, 서로에게 한 발짝씩 더 나아간다.
서래를 감시하는 해준의 시선도 그렇다. 그는 그녀가 남편을 살해했을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 그녀를 감시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그러나 정작 그가 지켜보는 것은 범죄 용의점이 아니다. 그는 그녀가 슬퍼하거나 밥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을 걱정하고, 홀로 드라마를 보다가 잠드는 상황을 동정하며, 그녀가 간병인으로서 할머니를 극진히 간병하는 모습에 빠져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관음적인 시선이고, 또 한편으로는 에로스가 사랑의 화살을 겨누는 듯 보이기도 한다. 서래 역시 범죄 용의자를 현장에서 체포하는 해준을 보면서 그가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마음을 연다. 취조실에서 고급 초밥을 함께 나눠먹는 둘의 모습에서는 형사와 용의자 간의 관계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의 다른 장치들도 둘의 관계를 확실하게 매듭짓지 않는다. 언어를 활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중국인인 서래는 기본적인 한국어만 구사하기에 일상어가 아닌 '유일한'과 같은 어휘는 '단일한'이라고 말하며, '붕괴'처럼 자연스럽게 사용되지 않는 단어로 의사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에 늘 중국어로 말하고, 그들은 진정으로 소통이 필요할 때 스마트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성 화자인 서래의 말이 번역기를 거치면 부자연스러운 남성의 목소리로 변환되듯, 그들의 소통도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마찬가지로 취조실 안에서 카메라는 그들을 서로 다른 공간에 가둔다. 서로 마주 보는 장면이라 해도 꼭 한 명을 창문에 반사시키거나 모니터 안의 모습으로 등장시키면서 둘 사이의 연속성을 깬다. 이러한 어긋남은 서래가 범죄 혐의를 벗기 위해 해준을 이용하는지 아니면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는지, 또 후자라면 그들의 사랑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두고 의심을 거듭하게 만든다.
이러한 모호함은 1막 이후 2막에서도 유지된다. 녹색과 파란색을 오가는 서래의 드레스와 도시를 감싼 안개는 여전히 사랑하는지, 이별한 건지, 단념한 건지 알 수 없는 두 남녀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정훈희의 노래 '안개'도 분위기를 고조한다.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다오"라는 가사는 상대방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또 막상 벗어나자니 그렇게 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을 안개에 빗대고 있다. 덕분에 안개가 자욱한 도시에서 펼쳐지는 형사와 용의자이자 동시에 남자와 여자인 둘의 눅진한 이야기는 좀처럼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질 결심>이 멜로드라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해준과 서래의 관계를 헷갈리게 만들면서도 박찬욱 감독다운 방식으로 관객을 그들의 눅진한 멜로 속에 초대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 중심에는 에로스가 있다. 사실 폭력성 외에 박찬욱 감독을 대표하는 특징이라면 전작인 <아가씨>에서 보듯이 섹슈얼리티를 꼽을 수 있을 텐데, <헤어질 결심>에서는 성애적 요소가 명시적으로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다만 이상하게도 야하게 보이는 대목들은 적잖이 있다. 서래의 DNA를 채취하는 장면부터 그녀가 양치하고 흡연하고 손에 붙 밴드를 입으로 부는 장면들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계속해서 서래의 입에 주목한다.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보면 입과 관련된 성은 성애의 첫 단계(구강기)를 의미한다. 이를 고려하면 해준과 서래가 에로스적 관계로 얽혀 들어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에로스적 욕동은 다른 방식으로도 표출된다. 해준과 서래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로에게 부족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모습에서도 입은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서래의 집을 감시하는 해준은 그녀가 좀처럼 밥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매 저녁을 아이스크림으로 대신하는 그녀를 걱정하는 해준. 이에 그는 취조실에서 비싼 초밥을 사주고, 중국식 볶음밥을 요리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한다. 한편 해준은 잠이 안 와서 잠복근무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그렇지만 서래를 감시할 때 그는 승용차 안에 누워 있더라도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잠을 잔다. 또 관계가 진전되어가면서 서래는 해준의 수면을 도와주며, 해준이 잠들 때까지 자신과 호흡을 일치시키면서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이때 영화는 아이스크림과 초밥을 먹는 서래의 입, 그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두 사람의 입에 포커스를 맞춘다.
이러한 두 사람의 에로스적 관계는 왜 이들이 제각기 붕괴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에로스적 욕동이 가족을 이루고 사회와 문명을 이루는 기반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사회적 질서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오히려 인간을 억압할 수 있고, 개개인도 에로스를 탐닉하면 본인이 문명과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면에서 에로스적 욕동은 인간에게 내재된 자기 파괴적인 욕망인 타나토스(죽음)적 욕동과 쌍을 이루기도 한다. 해준은 서래가 남편 사체 사진을 보겠다고 말할 때 동질감을 품고, 그래서 그녀에 대한 수사는 유리하게 진행된다. 이는 죽은 자(남편)의 시선으로 망자의 아내와 사랑에 빠질 이를 응시하는 카메라 시점이 독특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해준과 서래의 사랑이 그들을 의무로 규정된 사회적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창구이자, 동시에 깊어질수록 그들을 파괴하는 부메랑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해준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내와 의무적으로 섹스를 하던 중 서래를 떠올린다. 애정 없는 관계에 갇혀 있는 자신을 구해낼 방법을 찾는 데 성공한다. 또 그녀의 도움을 받아 오랜 기간 추적하던 범인을 잡는 데 성공하면서 경찰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데도 성공한다. 한편 서래에게도 해준과의 사랑이 진전되는 것은 자신의 이니셜을 그녀에게 새겨놓을 정도로 소유욕이 강했던 남편과의 강압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그들의 욕구는 커질수록 그들에게 또 다른 압력을 강한다. 프시케를 곤경에 빠뜨리려다가 오히려 자신의 화살에 찔려버린 에로스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 서래를 사랑한 해준은 경찰로서 하면 안 될 실수를 범하고, 성실한 경찰인 자신의 정체성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범죄자인 그녀의 죄를 밝히면 안 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서래도 마찬가지다. 해준이 자신을 포기하려 하자 오히려 더 사랑에 빠져버린 그녀는 자신의 모든 삶을 걸고 그를 쫓을 정도로, 경찰인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삶을 포기할 정도로 그에게 빠져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헤어질 결심>은 내용이나 연출적 특징에 비해 상당히 보수적인 영화이고, 그래서 여운이 짙은 작품이기도 하다. 서래의 범죄는 용서받지 못하며, 범죄와 얽힌 에로스적 관계는 해준과 서래 모두를 마지막까지 위협해 온다. 그러자 그들은 자의와 타의가 혼재된 채로 불륜이라는 범주 안에 머무르기를 택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과 사회적 관계를 보호하며, 결국 이는 강렬한 신파로 향한다. 많은 사랑 이야기가 그렇듯이 사랑의 타이밍은 언제나 엇갈리기 마련이고, 상대를 소유하려 하기보다는 놓아줄 때 진정으로 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당신을 떠났고 이제 내가 당신을 사랑하려 하니 당신이 나를 떠나네”라는 대사에 온전히 담겨 있다.
심지어 <헤어질 결심>의 신파는 뻔하지만 식상하지 않다. 1부와 2부, 산과 바다로 나뉘는 영화의 구성 덕분이다. 영화는 두 개로 쪼개져서 해준의 서래에 대한 사랑과 서래의 해준에 대한 사랑을 각기 맛보게 하는데, 이러한 구성은 사랑의 엇갈림마저도 하나의 영화적 장치로 활용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앞부분에서는 서래의 살인사건을 미결로 놔두어야 하는 해준의 사랑을, 뒷부분에서는 자신의 살인 사건을 미결로 만들어야 하는 서래의 사랑을 풀어낸다. 두 개의 미결 사건은 하나의 영화가 되어 그들의 관계를, 엇갈리고 빗나간 사랑까지도 서사적 완결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대조적인 장소나 소재는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구소산 정상에서는 남편을 떠밀어 살해하지만 호미산에서는 해준을 뒤에서 안아주는 서래. 서래가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는 증거를 담은 핸드폰을 건네는 해준과 그 핸드폰 대신 본인을 바다에 던져 증거를 인멸하는 서래. 그래서 <헤어질 결심>의 신파는 오히려 매력적이다.
단지 138분이라는 적지 않은 러닝타임에서 기인한 느슨함이 한 가지 아쉬운 점이다. 영화는 1막과 2막으로 나누어지는데, 사실 분기점에서 영화는 이미 절정에 다다르는 듯 느껴진다. 자신의 본심과 진실을 깨달은 해준이 '사랑한다'는 말만 하지 않았을 뿐 그 어떤 말보다 격렬한 사랑 고백을 한 순간 영화는 거의 끝에 도달한 듯 보인다. 1막에 꽤나 긴 분량이 주어졌기에 더욱 그렇다. 그 결과 산을 테마로 한 1막이 끝나고 바다를 테마로 하는 2막이 다시 시작될 때, 후일담처럼 느껴지는 2막에서 이야기가 다시 한번 절정에 이르기 전까지 영화의 템포는 다소 느슨해지는 인상이 남는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이 밝힌 대로, 그리고 전작인 <아가씨>처럼 1막을 '산', 2막을 '바다'라고 자막으로 표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다만 영화 자체가 안개에 싸인 듯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짜인 모호한 멜로드라마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아쉬움조차도 <헤어질 결심>의 질감과 감정선을 더 완벽하게 만드는 듯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내로남불이라는 명제에 담긴 감정을 완벽에 가깝게 영화적으로 풀어내다
-
-
-
- 영화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 1차 예고편
"우린 네가 그리웠어... 정말로."
-
- 영화 <생존: 두 개의 세계>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