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2023-03-19 09:01:44
강렬한 OST가 함께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 Kill Bill Vol.1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더 브라이드
쿠엔틴 타란티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자신의 삶에 마지막 작품을 촬영 중에 있다는 소식이다. 그가 10 펴늬 작품만을 감독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이유로 그의 10번 째 작품을 촬영하는 중이라 나오는 말이다. 그가 자신의 말을 번복하더라도 더 많은 작품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예산 영화 ‘저수지의 개들’로 데뷔해 존 트라볼타 주연의 ‘펄프 픽션’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감독이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가 있는지라 호불호가 갈린다.
어릴 적부터 밖에서 뛰어놀기보다는 집 안에서 영화 보기를 좋아한 덕분으로 영화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의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그의 영화에는 오마주한 장면들이 자주 들어가며, 본인이 직접 작품에 출연하기도 한다.
강렬한 OST 사운드가 아직도 귓전에서 울릴만큼이나 음악 선곡에 있어 탁월하며, 킬빌이 진행되는 동안 마치 사이렌 소리와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다 갑자기 상황을 마무리하는 듯 멈춰 서는 사운드는 그 다음 씬을 예상하게 만든다.
킬 빌 Kill Bill
우마 서먼 배우가 이소룡 배우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착용해 큰 키를 한껏 활용하며 장신長身으로서 시원시원한 액션을 보여준다. 또한 사랑의 달콤함으로 가득 차야 할 결혼식에서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보인 액션 역시 인상적이다.
전신마비 상태에서 의식이 돌아와 발가락을 움직여 보다 불현듯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이곳이 아님을 자각한 뒤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는 더 브라이드의 모습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며 이후에 그녀가 보여줄 씬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전력질주하는 무자비한 액션은 스토리 따윈 전혀 필요 없다는 듯 보이지만, 과거의 회상 장면과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가 교차되며 극은 진행된다.
우마 서먼의 매력과 쿠엔틴 타란티노의 연출력, 적절한 OST가 잘 어우러져 속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영화 '킬 빌 Kill Bill'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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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11월 3주 개봉영화!
압꾸정 Men of plastic , 2022
범죄도시 제작진과 마동석 또 뭉쳤다!
영화 "압꾸정"은 샘솟는 사업 아이디어로 입만 살아있는 압구정 토박이 대국이
한때 실력파였던 성형외과 의사 지우와 손잡고 K-뷰티 사업을 시작하는 내용을 담은 코미디 휴먼 드라마입니다.
마동석은 "압꾸정"에서 샘솟는 사업 아이디어와 타고난 '말빨'의 압구정 토박이 '강대국'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180도 변신합니다.
마동석 뿐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 역시 이 세계관에서 새롭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요
정경호, 오나라, 최병모, 그리고 오연서가 K-뷰티의 비하인드 스토리 속 유쾌한 웃음을 책임집니다.
임진순 감독은 자연스러운 코미디를 담아내기 위해 배우들이 주고 받는 대사에
배우 각자가 실제 생활에서 쓰는 말투와 표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현장에서는
애드리브에 대한 자율성을 열어두고 배우들의 자유로운 티키타카에 흐름을 맡겨 유쾌한 장면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웃음!케미! 말맛의 강력한 한 방 선사하는 '마블리'표 코미디!
이번주 추천영화 "압꾸정" 입니다.
탄생 A Birth , 2022
조선근대 개척자 청년 김대건
영화 "탄생"은 조선 근대의 길을 열어젖힌 개척자 청년 김대건의 위대한 여정을 그린 대서사 어드벤처로
바다와 육지를 넘나들었던 모험가이자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선구자였던 김대건의 진취적인 면모와 안타까운 순교를 감동적으로 그린영화입니다.
김대건의 역활은 윤시윤이 맡게 되었는데요 이제껏 본 적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탄생"은 마카오 유학, 불란서 극동함대 사령관 세실의 에리곤호 승선, 아편전쟁, 동서 만주 육상 입국로 개척, 라파엘호 서해 횡단,
백령도 해상 입국로 개척 등 3,574일의 역동적인 모험을 담기 위해 자료조사와 연구, 국학진흥원의 검수를 거쳤고
서울을 제외한 충남 논산, 태안, 보령, 충북 단양, 전남 여수, 전북 부안,
강원도, 경남 창원, 경북 문경, 대구, 제주도와 경기도 일대 및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촬영으로 영화를 완성시켰습니다.
세계지도 번역한 언어천재,
서해를 횡단하는 모험가!3,574일 동안 세상에 없던 길을 넘나들었던
청년 김대건의 생사를 넘나드는 모험기!
이번주 추천영화 "탄생" 입니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からこの恋が消えても , Even If This Love Disappears from the World Tonight , 2022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5천 여석을 매진시킨 올겨울 최고의 화제작!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리셋되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여고생 '마오리'와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고 있는 평범한 남고생 '토루'의 풋풋하고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원작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4,607:1의 역대 경쟁률을 뚫고
제26회 전격소설대상 미디어웍스 문고상을 수상한 이치조 미사키의 빛나는 데뷔작입니다.
국내에서도 교보문고 9주 연속 외국소설 1위 기록, 누적 판매부수 40만 부 돌파 등
특히 MZ세대 사이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단번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의 역주행과 영화화까지 이끌어내는 파급력을 보였습니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미키 타카히로 감독,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츠키카와 쇼 각본!
두 감독이 작정하고 만든 최고의 청춘 로맨스!
이번주 추천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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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칸라인
발칸라인
전쟁 액션 영화로만 볼 수 없는 영화. 이 영화는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시각으로 만든 영화라는 걸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뜻이다. 어느 쪽으로 편향되었어도 충분히 정의롭고 올바른 시각인 경우도 많다. 우리의 경우,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본놈들을 처단하는 내용은 그 자체로 옳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있다면 매국노들이겠지. 독립군이 일본군이나 정치가를 암살하고, 사살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올바르고, 민족의 양심에 따라 당연한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장면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없는 멍청이일 뿐이다. 즉,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자는 한국인의 피를 가졌어도 민족반역자인 것이다.
이런 분별력을 가지고 영화를 봐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동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대사의 비극에 관해 기본으로 알아두어야 하는 내용들이 있다. 예전에 '세르비안 필름'이 갖는 정치, 역사적 함의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먼저, 큰 그림으로 유고 연방의 해체와 그 지역의 인종, 종교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야 한다. 지도에서 보면, 그리스의 위쪽, 이탈리아 반도의 아드리아해 맞은 편에 붙어 있는 여러 나라가 있다. 주요 나라들로 세르비아, 보스니아, 알바니아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이 지역이 '발칸 반도'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 사이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참혹한 현대전쟁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비극이 발생했다.
영화 '세르비안 필름'은 유고 연방 해체 이후 1990년대 초반, 세르비아 군대가 보스니아 시민을 학살한 사건을 상징적으로 다루고 있다. 세르비아 국적의 감독이 자기 나라 군인들이 저지른 학살을 비판하는 잔혹한 영화를 만들어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올바른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반면 이 영화는 러시아와 세르비아 쪽이 옳다고 '주장'하는 영화다. 세르비아는 인종적으로는 세르비아인이고, 종교는 기독교이며, 정치적으로는 구 쏘련(러시아)과 가까운 나라다. 세르비아 아래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알바니아가 있는데, 알바니아는 종교가 이슬람이다. 세르비아와 알바니아의 국경에서 세르비아 쪽으로 '코소보' 지역이 있다. 이 지역으로 알바니아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알바니아인의 비율이 약 80%까지 늘어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제주도는 우리 땅인데, 제주도에 일본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도민의 약 80%가 일본사람으로 채워졌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고, 알바니아 사람들은 '코소보' 지역을 자치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구 쏘비에트 연방이 유지되던 시절, 유고 연방이 존재하던 시절에는 자치주가 유지되어 아무 문제 없이 서로 잘 살았다.
그러다 1989년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코소보 자치주를 인정하지 않고, 자치권을 박탈했다. 이때부터 코소보 지역에 살고 있던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분리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코소보 알바니아 사람들은 '코소보 해방군'을 결성하는데, 이들이 세르비아에 비하면 소수이긴 해도, 극단적 성향을 드러내면서 먼저 세르비아 경찰을 사살해 분쟁을 일으켰다.
유고 연방 정부는 세르비아 군대를 중심으로 코소보와 전면전을 치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세르비아 군대는 코소보에 살고 있는 알바니아 사람들을 학살했다. 세르비아가 코소보를 침략했다는 명분으로 나토(NATO : 북대서양 조약기구) 연합군이 코소보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나토는 이름이 북대서양 조약기구일 뿐, 실제로는 미국의 영향에 있는 형식적 조직이고, 미국은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럽 군대를 코소보에 지원한다.
나토가 개입한 이유는 한 가지, 유고 연방군대가 코소보를 침략했고, 알바니아 시민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볼 수 있지만, 코소보 해방군은 정규군으로 보기 어렵고, 마구잡이로 시민을 학살하는 야만적 집단으로 그려진다.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이 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코소보의 수도인 프리슈티나에 있는 유일한 공항을 탈취하고 러시아 군대가 도착할 때까지 버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임무를 띈 정예부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르비아는 자기의 영토에 들어와 살던 알바니아 사람들이 자치주를 박탈했다고 분리독립을 하고, 전면전을 일으킨 것에 대해 황당하고 분노가 치미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발칸 반도의 지난 역사가 너무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딱히 누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전쟁의 발발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전쟁을 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선을 이곳에서는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세르비아는 1990년대 이후 두 번에 걸쳐 보스니아와 알바니아 사람들을 학살했다. 이것은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는 전쟁범죄이며, 어떤 것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고, 변명할 수 없는 전쟁범죄다.
이 영화는 세르비아 영토 안에 있는 코소보 지역에서 벌어진 내전에 미국, 유럽 국가가 개입하고, 세르비아 쪽에서는 러시아가 개입하는 형태로 자치하면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할 수 있었던 위험한 내전이었다. 영화는 당연히 러시아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개입으로 나토군을 몰아냈다는 설정을 담고 있어 이 영화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발칸반도의 정세를 올바로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영화에서 학살 장면이 몇 차례 나오는데, 학살하는 주체는 코소보 해방군으로 설정되어 있는 산적들이다. 이들은 평범한 시민들이 타고 가는 버스를 세워 사람들을 죽이고, 여성과 아이들도 학살한다. 코소보 해방군은 알바니아 사람들이며, 이들은 이슬람 교도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러시아 정교 즉 기독교를 믿는 세르비아 사람들과 종교적 갈등을 빚고 있으며, '코소보 자치주'나 '코소보 분리독립'의 문제는 민족 분쟁이면서 동시에 종교 분쟁의 성격을 담고 있다.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영화이므로 적군이 코소보 해방군의 잔혹함을 드러내는데 비중을 크게 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세르비아 군대가 코소보에서 저지른 학살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영화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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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앞에 선 사회적 약자의 환상
2019년 영화 <조커>는 한 사회적 약자가 몰락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심리적 파탄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무관심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 내면의 절망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소외감, 무시당하는 상처, 그리고 이를 덮으려는 몸부림은 고통스러울 만큼 리얼했고, 결국 그를 비극의 주인공, 조커로 만들어 갔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이 전작의 이야기를 잇는다. 여전히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아서 플렉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가 꿈꾸는 사랑과 인정에 대한 허황된 욕망을 탐구한다. 이번 작품은 혁명의 영웅으로 떠오른 조커보다는 다시금 약자로 돌아간 아서의 이야기, 그리고 그가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커라는 정체성 사이의 갈등을 다룬다.
[첫 번째 감정] 아서 플렉의 패배감
아서 플렉에게 패배감은 평생을 관통한 기본 정서였다. 그는 태어나 한 번도 사회적 인정이나 보호를 받아본 적 없었고, 언제나 비웃음과 외면의 대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했고, 이상한 순간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증상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소외되었다. 그는 사회적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오히려 그로 인해 여러 차례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의 패배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는 여러 번 시도하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를 반복하며 점점 더 깊은 패배감에 빠져들었다. 그에게 있어 패배감은 일종의 디폴트 상태였고, 이로 인해 그는 점점 더 자신을 비하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패배감은 그가 조커로 변신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그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었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이러한 패배감이 그를 어떻게 억누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서는 스스로 이 사회에서의 위치를 극복해내지 못한 채, 끝없이 패배감을 체화하며 살아간다. 그는 조커라는 가면을 쓰며 잠시나마 패배감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그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두 번째 감정] 조커의 분노
조커로 변신하는 순간, 아서는 더 이상 아서 플렉이 아니다. 그는 그동안 쌓여온 패배감을 분노로 감추고,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당당함을 얻는다. 이 순간의 조커는 세상에 대한 복수심과 강한 자존감으로 무장한 채, 관객에게조차 매력적으로 비춰진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진정한 자신을 드러낸 듯한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분노는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의 표출이 아니다. 아서는 조커라는 가면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느껴왔던 모든 억압과 무시를 세상에 되돌려주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분노를 통해 세상에 맞서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당당함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분노의 표출은 그를 더욱 위험한 존재로 만들며, 주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긴다.
영화 속에서 할리(레이디 가가)는 아서에게 일부러 접근하여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가 사랑한 것은 조커였다. 즉, 그녀는 아서를 사랑한 것이 아닌 그의 분노와 그로 인해 얻어진 위태로운 매력을 사랑한 것이다. 영화는 조커로 변신한 아서의 모습을 뮤지컬과 같은 화려한 장면으로 표현하며 그를 영웅처럼 치켜세운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 남은 것은 다시 아서 플렉으로 돌아온 초라한 모습이다. 이 순간 관객은 아서의 현실과 그가 잠시나마 꿈꾼 조커의 허상을 동시에 보며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세 번째 감정] 아서 플렉의 억울함
아서의 삶에서 억울함은 그에게 남겨진 마지막 감정이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상황의 희생자라기보다는, 그저 사회적 보호의 부족으로 인해 만들어진 존재였다. 어렸을 적부터 그를 둘러싼 환경은 언제나 그를 소외시키고 억압했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며, 상황에 의해 끌려 다닌다. 그의 친구조차도 아서를 무서워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눈앞에서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건 아서 스스로 얻고자 해서 얻은게 아니며, 우연히 그에게 찾아온 삶의 굴레들이다.
아서에게 억울함은 그가 조커라는 인물로 주목받을 때조차 여전하다. 그는 조커로서의 정체성을 이용해 재판에 나서지만, 여전히 아서 플렉으로서의 자아는 조커가 얻는 주목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는 조커로서 사람들에게 환호받아도, 아서로 남아도, 결국 그가 느끼는 감정은 억울함뿐이었다. 이러한 억울함은 그가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게 되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이 억울함은 그의 패배감, 분노와 뒤섞여 그를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몰아넣으며 결국 그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몰락뿐임을 암시한다. 아서는 조커로서의 삶에서도, 아서 플렉으로서의 삶에서도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하며, 결국 그 억울함 속에서 파멸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 마지막 파멸의 순간에도 그는 그 억울함을 풀지 못한다. 그저 한 번 반짝했던 범죄자로 남을 뿐이다.
촬영이나 연기의 완성도는 높지만...
<조커: 폴리 아 되>는 사회적 약자가 어떻게 몰락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몰락의 과정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 영화는 조커라는 악당의 서사를 다루기보다는, 아서 플렉이라는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다. 아서는 태어나서부터 사회적 차별과 무관심 속에서 살아왔으며, 할리의 등장은 그에게 한 줄기 희망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녀는 아서의 일생 중 그를 사랑한다고 말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결국 그녀조차도 아서가 아닌 조커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그의 삶을 더욱 절망적으로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관객들은 조커의 환상적인 모습이 아닌 아서의 초라한 모습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는 감독이 아서의 삶을 끝까지 직시하게 함으로써 그의 서사를 마무리짓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관객까지 포함해 모두가 조커를 보고 싶어 했지만, 감독은 끝까지 아서의 현실을 강조하며 이 이야기의 본질을 상기시킨다.
영화의 연출과 배우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전작의 연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뮤지컬 장르를 도입하여 색다른 시도를 했다. 이러한 시도는 관객들에게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그만큼 새로운 장르적 도전을 통해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를 높였다. 하지만 그 뮤지컬 장르가 원래의 이야기와 잘 이어 붙지 않는다는 것은 관객들이 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되어버렸다. 촬영이나 화면이 고급스럽고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그게 이야기와 잘 연결되지 않으면서 이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이번 영화에서도 아서와 조커 사이의 심리적 갈등을 완벽하게 표현하며, 그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레이디 가가 역시 할리 역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그녀의 연기는 영화에 감정적인 깊이를 더했다.
이번 영화는 많은 관객이 기대했던 사회 변혁 이나 사회 파괴의 서사를 담고 있지 않다. 그 대신, 사회적 약자인 아서 플렉의 삶과 그가 꿈꾸는 허망한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며, 우리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는 배우들의 연기, 미장센의 아름다움, 그리고 뮤지컬 장면의 독창성으로 인해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조커라는 인물의 화려한 외양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아서 플렉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삶을 깊이 있게 조명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아서의 고통을 마주하게 하며, 그의 몰락이 결국 우리의 사회적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괴물을 바라보게 하는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4DM8_51b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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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일깨우는 ‘사랑’과 ‘공존’의 가치
▷한줄평 : 다시 죽음의 두려움조차 이겨낸 ‘소통’, ‘협력’, ‘사랑’, ‘희생’의 보편적 가치를 말하다
▷영화 : 미키 17(Mickey 17), 2025.2월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영화 <미키 17>에서 / 티모(스티븐 연), 카이 캇츠(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
우리 모두는 ‘익스펜더블’과 같은 존재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해도 매번 죽음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생체실험에 자신의 생명을 제공하는 ‘익스펜더블(Expendable, 소모품)’ 직군을 선택한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죽음을 피할 방도는 없다. “다시 만나!”라고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소각로(사이클러)에 뛰어들면 그만이다. 두려움도 반복되면 익숙해진다. 다시 프린트하면 되니깐. 이 순간 ‘미키’는 미키1, 미키2… 미키n과 같이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달리 벗어날 방법이 없다. 2054년 우주 행성 개발 시대에서조차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하층 노동자는 ‘위험의 외주화’의 도구가 될 뿐이다. 미키n이 갖는 존재의 가치를 논할 필요가 없다.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지점에 슬픔조차 불필요한 감정이 된다. 죽는 기분이 어떤지 묻는 동료의 질문에 ‘항상 무섭다’라고 말할 것 밖에 없다. 고귀한 새로운 생명의 창조와 탄생 일조차 이제는 간단히 버튼 하나로 3D 프린터로 뚝딱 만들어내는 단순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인간 존재의 가치를 말해주는 ‘탄생’과 ‘죽음’의 신비로움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 미키는 이런 소모품으로 자신이 소비되고 있음이 후회스럽다.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까?
어쩌면 <미키 17>에서의 새로운 복제인간의 탄생은 우리가 매일같이 잠을 자고 새로운 날을 맞는 것과 유사한 메커니즘을 갖는다. 미키가 과거의 자기를 폐기하고, 새롭게 탄생한 존재를 현재 살아있는 객체로 구분해 내듯, 우리는 연속된 생을 하루라는 날로 구분하여 매번 새로운 날들을 만들어 낸다. 3월 1일, 2일…n일 처럼 말이다. 시간의 영속적 흐름 속에서 특정 시간에 대한 의미 부여를 위해 강제로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어 쳇바퀴에 올려놓은 꼴이다. 매일매일 지옥과 같은 일상 속에서 자아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을 반복한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 교차하는 지점에 드는 아쉬움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대한 쓸데없는 감정 소모일 뿐이다. 그래서 미키n이든 제이바다n일이든, 이 세상의 모든 ‘익스펜더블(소모품)’들은 견디기 힘들 만큼 지루한 일상을 끊임없이 버텨내야만 한다. 그 짧은 간극 사이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각 개인들의 몫이다.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소모품으로 소비되는 미키n의 존재들
봉준호 감독은 이 지점에 미키17이 자신을 복제한 미키18을 마주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17번째 미키가 크레바스에서 죽었다고 착각한 이들이 18번째 미키를 리프린트하게 된 것이다. 이 세계에선 동일한 익스펜더블이 공존하는 '멀티플'은 불법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 상황이 발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둘 중 하나를 죽여야 한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서로 살아남기 위해 자기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존속이 행복할 것처럼 보였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마주해야 비로소 그 삶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은 계속 사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달라. 내가 죽으면 네가 사는 거잖아.’ 영화 <미키 17>에서 / 미키 17(로버트 패틴슨)
현재는 과거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결과물은 사뭇 다르다. 기억의 저장과 재생 과정에서 성품까지도 동일하게 반복 재생시키지는 못했다. 마치 기억의 저장소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끄집어내 나의 온전한 기억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과 같다. 미키18는 다혈질의 성향을, 미키17은 온유한 성품을 가졌다. 어쩌면 순간마다 달라지는 우리들의 내적 자아의 분열과 같다.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낸다.
미키의 이러한 다른 성품은 둘 중 어느 하나가 살아남을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 둘은 처음에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격하게 부정한다. 서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소통’이 만들어낸 대결과 파멸의 극복
기록된 역사는 정복자의 관점을 투영한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말 그대로 우연한 ‘발견’일뿐이지, 그 대륙에도 사람들이 이미 번성한 문명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최근에는 유럽인의 시각에서 사용한 ‘발견’이라는 말 대신에 ‘만남(Encounter)’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지금도 정복자의 시선이 담긴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s)’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당시에도 문명국가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잉카, 마야, 아즈텍은 대표적인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이다. ‘니플헤임’ 식민 우주 행성 개척은 생육과 번성을 꾀해왔던 인류의 역사와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외계인인데 왜 쟤네더러 외계인이래?" 영화 <미키 17>에서 / 나샤(나오미 애키)
이 프로젝트의 총사령관인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과 일파 마샬(토니 콜렛) 부부는 이런 정복자 DNA의 야욕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행성에 이미 살고 있었던 외계 생명체, 크리퍼 (Creeper)를 ‘추악한 외계인’이라 부른다. 그 옛날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을 ‘인디언(Indian)’이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크리퍼들이야말로 이곳 니플헤임의 원주민이며 외계인은 오히려 지구에서 찾아온 우리 인간들이다. 크리퍼에게는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체계가 있었으며, 그 수많은 개체들마다 각자의 이름(루코, 조코, 등)이 있을 정도로 공동체성을 보유하고 있는 종족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케네스 일당은 여전히 그들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마샬은 벌레의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다며 식민지 개척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크리퍼를 몰살할 계획을 세운다.
영화 <미키 17>에서는 이 지점에서 외계인을 포함한 타인을 대하는 탐욕스러운 인간 본성을 탐구한다. 아둔하고 차별적이며 폭력적인 케네스 마샬은 이 시대에 존재하는 수많은 독재자들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옆에서 이를 부추기며 소스(Sauce) 개발에 열을 올리는 등 사적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아내 일파 마샬과 조력자들의 존재는 현실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들은 철저히 계급을 나누고 명령과 복종을 강요한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대화와 타협, 소통은 늘 뒷전이다.
이젠 미키17과 미키18에게는 극복해야 할 공공의 적이 생겼다. 어떤 식으로든 케네스 일당으로부터 크리퍼의 파멸을 막아보겠다는 미키 17과 미키 18은 외계인과의 메신저 역할을 자처한다.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 인류와 외계 인간의 공존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이렇게 ‘소통’과 ‘협력’은 파멸을 이겨내는 과정이 되었고, 종국에는 ‘희생’을 통해 희망이라는 미래를 만들어 내었다.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외계 생명체를 만나러 가는 미키
죽음의 두려움조차 이겨낸 ‘사랑’과 ‘희생’의 가치
이러한 분열된 자아와 같은 또 다른 미키의 등장으로 인한 혼란, 생사의 키를 쥐고 흔드는 독재자의 압박, 처음 마주한 외계 생명체와의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미키17과 미키 18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케네스 마샬은 미키가 그동안 느껴왔던 ‘두려움’조차 이용하려 든다.
"너도 두려움을 느끼는 거지? 너도 인간이잖아, 중요한 존재지."
영화 <미키 17>에서 / 케네스 마샬 (마크 러팔로)
그러나 다시 살아날 것을 기대하며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영원한 사라져야 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다를 것이다. 이 ‘두려움’을 ‘희생’으로 치환 시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사랑’과 ‘공존’에 대한 염원이다. 사랑이야말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스스로가 가치 있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요인이 되었다.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멀리서 보이는 사랑하는 나샤(나오미 애키)와 미키 17을 바라보면서 ‘희생’을 선택한다.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나샤
봉준호 감독은 참으로 일관된 스토리텔러이다. 영화의 시간과 공간을 <설국열차>의 멈추지 않는 기차와 <기생충>의 어두침침한 지하실에서 <미키 17>의 미래와 우주로 옮겨 놓았을 뿐,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보편적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설득해 내려고 한다. 그동안 인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등장해 왔던 독재자, 아메리카 신대륙을 정복하러 나섰던 콜럼버스와 같은 야욕가, 인간의 생명의 존엄 따위는 관심조차 없는 정치가 등 부와 권력의 위계질서는 인간 사회가 유지되는 한 지속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타인과의 평화로운 공존의 모색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다. 영화 <미키 17>은 ‘사랑’, ‘협력’, ‘소통’, ‘희생’을 통해 이를 극복해 낼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는 바로 우리, 여기,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영화 <미키 17> 포스터
20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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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로봇이라고 꼭 인간이 되고 싶은 건 아니야
- SF 장르의 매력에 빠진 건 김초엽 작가의 소설 덕분이었습니다.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을 읽고, 근미래에 펼쳐질지도 모를 세상을 미리 엿보는 묘한 기분을 느꼈죠. 오직 과학적 상상력만이 써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 그전엔 몰랐습니다.그런데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마침 요즘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SF 장르라는 겁니다. 9일간의 영화제 일정 중 굳이 개막식 참석을 선택한 것도 이 작품을 전주 돔의 웅장한 대형 스크린으로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인데요. 아니나 다를까, 저는 <애프터 양>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습니다.애프터 양After Yang<애프터 양>은 안드로이드 ‘양’과 함께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백인 남성, 흑인 여성, 동양인 아이, 그리고 동양인의 얼굴을 한 테크노 사피엔스로 구성된, 사회가 ‘정상성’을 부여하는 가족의 형태와는 거리가 먼 4인 가족이죠. 극 중에서는 ‘양’을 안드로이드 대신 ‘테크노 사피엔스’라고 부르기에, 앞으로는 저도 그를 테크노 사피엔스라고 지칭하겠습니다.‘다름’에서 시작한 이 가족은 ‘평범’을 추구하는 여느 가족보다 대단하고 멋집니다. 입양한 아이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도록 아시아계 테크노 사피엔스를 데려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양’이 작동을 멈춥니다. 원작(단편소설 <Saying Goodbye to Yang>)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실 이 작품의 더 정확한 줄거리는 ‘테크노 사피엔스 ‘양’과 이별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 ⊙‘양’을 고치려고 동분서주하던 아빠 ‘제이크’는 ‘양’이 다른 테크노 사피엔스와 달리 기억 저장 장치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테크노 사피엔스 전문가는 ‘제이크’에게 ‘양’의 기억을 확인한 다음, 연구 가치가 있는 ‘양’과 그의 기억을 넘겨달라고 부탁하죠. 판독기를 통해 ‘양’의 사적인 기억을 살피던 ‘제이크’는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딸 ‘미카’는 아빠에게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제이크’는 “Just a documentary.”라고 답하는데요. 맞습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양’의 시선에서 기록(document)된 일상일 뿐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차량의 블랙박스와도 같죠. 그럼 도대체 무엇이 ‘제이크’를 혼란스럽게 한 걸까요?그것은 바로 로봇답지 않은 ‘양’의 모습 때문입니다. 그의 기억 장치에는 마치 인간의 추억과 같은 것들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연인처럼 보이는 한 여인, 인상적인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옷, 그 여인과 함께 들었던 노래 같은 것들이었죠. ‘인간이 아닌 존재’인 테크노 사피엔스가 인간처럼 기억하고, 행동하고, 심지어는 사랑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말해 ‘양’의 인간다움이 그를 혼란스럽게 한 겁니다. ‘제이크’는 고민합니다. ‘양’은 인간이 되고 싶었던 걸까?⊙ ⊙ ⊙영화는 이 지점에서 관객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과연 ‘인간이 아닌 존재’는 모두 인간이 되고 싶어 할까? 정체성에 관한 물음은 이렇게 등장합니다.저는 그동안 깨닫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로봇의 이야기, 그런 로봇을 안쓰러워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이었는지요. 인간과 로봇을 각각 다수자와 소수자에 빗대어 생각해보니,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성애자가 성소수자에게 “이성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슬프지?”라고 묻거나,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나처럼 살고 싶지?”라고 묻는 것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선을 넘는 질문이니까요.물론 ‘양’은 때때로 인간의 삶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양’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행복한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따뜻한 교감을 나누고, 입양 아동인 동생 ‘미카’의 뿌리를 찾아주기 위해 고민하며, 무가 있어야 유가 존재한다(There’s no something without nothing)는 꽤나 분명한 가치관까지 갖고 있죠. 그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고 물으면, ‘양’은 그저 이렇게 답합니다. “아마도 그렇게 프로그래밍된 것이 아닐까요?”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사회도 소수자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저 애초에 프로그래밍된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말이에요.⊙ ⊙ ⊙로봇과 인간으로 ‘다름’을 이야기하는 <애프터 양> 덕분에 인간 중심적 사고, 다수 중심적 사고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양’을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테크노 사피엔스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들을 호모 사피엔스와 같이 또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바라본 것이죠.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관객들은 아름답고 시적이며 따뜻한 SF 영화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집행부가 이 작품을 개막작으로 선정하는 데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은 이유를 너무나도 명백히 알 수 있었던 작품, <애프터 양>이었습니다.Summary진보한 기술이 일상에 스며든 가까운 미래, 제이크 가족 소유의 안드로이드 ‘양’은 아시아계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 입양한 딸 ‘미카’의 보호자 역할은 물론 그녀의 문화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형제인 셈이다. 어느 날 ‘양’이 갑작스레 작동을 멈춘다. ‘양’을 고치기 위해 여러 곳을 오가던 ‘제이크’는 양에게 기억을 저장하는 특별한 기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양’의 기억 데이터를 탐험하기 시작한 ‘제이크’는 자신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안드로이드 ‘양’의 사적인 시간들을 발견하기 시작하는데…. ‘양’은 과연 인간이 되고 싶어 한 걸까? (출처: 전주국제영화제)Cast감독: 코고나다출연: 저스틴 H. 민, 콜린 패럴, 조디 터너스미스, 말레아 엠마 찬드라위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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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특별하다는 뻔뻔한 주장
영화 〈헤일, 시저!〉(2016)와 넷플릭스 드라마 〈오, 할리우드!〉(2020)는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까지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다. 두 작품 모두 할리우드가 상징하는 이야기와 꿈의 크기를 잔뜩 부풀린다.
〈헤일, 시저!〉의 주인공 에디 매닉스는 영화사 캐피틀 픽쳐스의 대표다. 그는 잠시도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영화 제작이나 회사 관리 외에도 그의 일은 산더미처럼 많다. 그런데 캐피틀 픽쳐스 최고의 기대작 ‘헤일, 시저!’의 주인공이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영화계 인사들에게 납치당한다. 주인공이 사라지자 촬영 일정이 꼬이고, 수상한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달라붙기 시작한다. 에디는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하고 모든 것을 제대로 굴러가게 하려 고군분투한다. 그러던 중 에디의 능력을 높게 산 항공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온다. 에디는 과연 난장판인 할리우드를 떠나 더 좋은 조건의 항공 업계로 이직할까?
영화 〈헤일, 시저!〉 스틸컷 ⓒ네이버 영화
한편, 〈오, 할리우드!〉는 ‘멕’이라는 가상의 영화가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가난한 배우 지망생 잭 카스텔로, 재능 있는 흑인 게이 작가 아치 콜먼, 아치 콜먼의 연인이자 배우 지망생 록 허드슨, 필리핀 혼혈 감독 레이먼드 에인슬리, 흑인 최초로 오스카상을 받는 여배우 커밀 워싱턴 등등.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밑바닥에서 출발하지만 계급, 인종, 성적 지향을 따라다니는 편견을 뒤집고 기념비적인 영화 ‘멕’을 완성한다. 이들의 여정은 엉망진창인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좋은 영화가 나오는지를 보여준다.*
〈헤일, 시저!〉와 〈오, 할리우드!〉에는 할리우드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겼다. 아니, 애정 그 이상이다. 이들은 할리우드가 난장판임을 신랄하게 보여주면서도 그 난장판에서 피어나는 이야기·꿈의 가능성을 예찬한다. 영화 산업은 다른 산업과 무엇이 다르기에 그런 걸까? 왜 이들은 폭로하고 비판하는 대신 폭로하면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오, 할리우드!〉 스틸컷 ⓒ넷플릭스
이 질문은 예술 전체로도 확대될 수 있다. 왜 사람들은 대다수의 예술가가 생계를 걱정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술을 꿈꾸고 동경할까? 예술이 생산되는 구조적 착취의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도 왜 예술을 하겠다는 사람은 넘쳐날까? 왜 그들은 예술을 감상하고 즐기는 데서 그치지 못하는 걸까?
두 작품은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다만 난장판에 불과한 할리우드라도 당신을 감동시키는 영화를 만들어 내지 않았느냐고 샐쭉거린다. 대책 없는 뻔뻔함에 어이없을 정도다. 하지만 앞의 질문들은 그 누구도 명확히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이다. 예술을 한답시고 끙끙거리는 모두는 이 질문이 답변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만 예술가다. 모든 것이 명쾌한 질문은 꿈과 이야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어딘가 두루뭉술한 부분이 있어야 이를 어떻게 풀어낼까 하는 고민, 즉 예술을 하고자 하는 동기가 생긴다.
〈헤일, 시저!〉와 〈오, 할리우드!〉가 문제 투성이인 할리우드를 예찬함에도 밉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도덕을 기준으로 영화의 표현을 규제한 '헤이스 규약'이 기세 등등하던 시대에도, 공산주의자·게이·여성·흑인을 비롯한 수많은 타자가 적나라한 적의를 마주해야만 했던 시대에도 어쨌든 할리우드는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동의할지 말지는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도 있다. 호레이스 맥코이의 소설 《그들은 말을 쏘았다》(2020)는 할리우드가 얼마나 기형적으로 누군가의 꿈을 착취하면서도 아무 보상도 하지 않는지를 엿보게 해 준다. 이는 적당히 낭만적이고 두루뭉술한 설명이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기는 질문. 할리우드는, 예술은 여전히 특별한가?
*드라마 전반부가 할리우드 조감도를 흥미롭게 펼쳐놓는 데 반해 후반부는 ‘멕’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유치할 정도로 낭만적으로만 재현한다. 너무 뻔한 전개에 후반부의 몰입도는 확실히 떨어진다. 하지만 제이크 피킹이 연기한 록 허드슨이 실제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배우 록 허드슨을 오마주했다는 점에서 낭만적 유치함이 조금은 용인된다. 록 허드슨은 제임스 딘과 함께 당대 최고의 스타였고, 유명인사 중에서는 최초로 자신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오, 할리우드!〉 의 뻔한 로맨스(그중에서도 게이 커플의 로맨스)는 에이즈로 죽은 록 허드슨에 대한 헌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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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티 토르와 다시 돌아온 토르! 마블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Rabbitgumi 입니다!
토르의 새로운 단독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이번에 4번째 토르 단독 영화인데요.
1편과 2편에서 아쉬움이 가득한 평가를 받았던 시리즈지만,
3편에서 타이카 와이키키 감독이 연출하면서 재치 넘치는 영화로 재탄생했죠.
4편도 같은 감독이 연출해서 그 분위기는 유지됩니다.
그럼 과연 이게 효과적으로 마블에 안착했을까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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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는 아래 링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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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러브 어페어 :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 30초 예고편
소설가를 꿈꾸는 막심은 시골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사촌 형의 여자친구 다프네에게 자신의 복잡한 연애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편 막심의 이야기를 듣던 다프네 역시 남몰래 간직했던 자신의 연애담을 슬그머니 꺼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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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공식 티저 예고편
이탈리아 고전 동화 《피노키오》가 아카데미 수상 감독 기예르모 델토로의 손에서 스톱모션 뮤지컬로 재탄생한다. 말썽꾸러기 피노키오는 과연 인간 소년이 될 수 있을까? 그 여정을 따라가 보자. 초호화 목소리 출연진을 자랑하는 이번 작품에서는 이완 맥그리거가 크리켓 역을, 데이비드 브래들리가 제페토 역을, 그레고리 만이 피노키오 역을 맡았다. 그 외에도 핀 울프하드, 아카데미 수상자 케이트 블란쳇, 존 터투로, 론 펄먼, 팀 블레이크 넬슨, 번 고먼, 아카데미 수상자 크리스토프 발츠, 아카데미 수상자 틸다 스윈턴 등이 출연진에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