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혁2023-03-27 10:49:36
평범해진 벌크업
샤잠! 신들의 분노
2019년 개봉한 영화 <샤잠!>은 북미 1억 4천만 달러를 포함해 전 세계 3억 6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작품이다.
"마블"을 비롯해 자사의 "DCEU"를 생각하면, 흥행이 조촐하다만 반응이 나쁘지 않았기에 곧장 속편 제작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개봉 일자가 미뤄졌고 겨우 잡은 일정은 <아바타: 물의 길>과 겹쳐 한 번 더 피하게 되었다.
근데, 이번에는 달라진 "DCEU"의 기조로 흥행을 한다 해도 3편 제작도 불투명하다. - <블랙 아담>의 흥행 실패로 전면적인 "리부트"를 선언했다!
전작으로부터 여전히, "샤잠"으로 활동하는 "빌리"와 친구들의 앞에 "아틀라스의 딸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빌리"와 친구들에게 "샤잠"으로 변할 수 있는 슈퍼 파워를 빼앗으며, 도시와 가족들을 위험을 빠트리게 하는데...
1. 점잖아진 성장
속편에 위치한 영화 <샤잠!: 신들의 분노>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시리즈"에 속한 작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작의 마지막부터 "빌리 뱃슨"을 비롯하여 "샤잠"이 늘어나 "팀"이 되었고, 이번 속편의 빌런으로 등장하는 "아틀라스의 딸들" 역시, 또 하나의 집단이다.
그러면서 "집단 vs 집단"으로 늘어난 캐릭터들로 커진 규모는 교통정리가 소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신들의 분노>는 특별하진 않지만, 벌크업을 이루는 데에 성공한다.
이번 속편에 등장하는 메인 빌런 "아틀라스의 딸들"부터 설명이 필요하나 명료한 동기와 "헬렌 미렌"과 "루시 리우"로 맡은 배우들의 매력만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 "샤잠"은 설정에서 다양한 위인들의 재능을 하나씩 분배되어 당위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분산된 캐릭터성으로 '평면적인 캐릭터가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걱정도 해보지만 이야기는 "빌리"의 성장담으로 "슈퍼 히어로의 고민과 성장"이라는 장르의 특성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번 속편 <신들의 분노>는 너무나도 평범해진 영화가 되었다.
전작 역시, 크게 도드라진 영화는 아니었지만 "유치함"으로 관객들의 호불호를 만들어 편을 가르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속편은 더 극으로 가는 게 아니라 중도를 지향하며, 전작보다 더 대중적인 영화가 되었다. - 이런 부분은 전작보다 더 나아졌다는 인상을 남긴다!
2. 그래서, 뭘까?
하지만, 그렇기에 마땅히 특별한 점을 찾기가 어렵기도 하다.
그나마, 찾아본다면 중간에 불타버리는 "슈트"로 <블랙 아담>이 연상된다.
이외에도 <분노의 질주>와 같은 영화들을 말하는 "메타 발언", "애나벨 인형", 다리가 무너지는 장면은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등이 떠오르나 <샤잠!: 신들의 분노>를 봐야 하는 차별화까지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메인 빌런 "헤스페라"의 심리 변화와 갑작스러운 "저스티스 리그"의 캐릭터의 등장은 이야기의 개연성까지 따져볼 부분도 있으니 무난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 tmi. 1 - 극 중. "캡틴 마블"이라고 불리는 장면이 있는데, "샤잠"으로 불리기 전에 해당 캐릭터의 이름이 "캡틴 마블"이었다.
· tmi. 1. 1 - 다만, 인수 과정에서 상표 등록을 "마블"에서 하면서 부득이하게 개명했다!
· tmi. 2 - 쿠키 영상은 2개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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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색자>와 <택시 드라이버>의 비교 분석
필자는 과거, <수색자>와 <택시 드라이버>를 본 적이 있었다. <택시 드라이버> 시청 당시, 웰메이드 영화임은 분명했지만 왠지 모를 꺼림칙함이 있었는데 그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채 지나 보냈었다. <수색자>를 보았을 때도 약간의 비슷한 감정을 느끼긴 하였지만 <택시 드라이버>만큼의 불쾌감은 아니었다. 당시엔 두 영화의 관련성을 알지 못하였으나 수업을 통하여 두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의 비등함에 흥미를 갖게 되어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두 영화를 선정하였고 그 과정에서 처음 <택시 드라이버>를 보았을 때의 불쾌함의 원인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1956년 존포드의 <수색자(The Searchers)>와 1976년 폴 슈레이더가 각본하고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을 맡은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두 영화에서 같은 주제를 다른 장르를 통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내러티브 구조를 중심으로 비교하고 의미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우선, 영화 탄생의 시기적 배경과 영화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를 살펴본 후에 영화 속의 인물과 환경, 영화적 스타일 면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영화 탄생의 시기적 배경
우선 영화 탄생의 시기적 배경을 알아보고자 한다. 할리우드 시대에 서부극의 시작이자 기존 서부극의 컨벤션을 확립했던 존포드는 1956년, 기존의 30, 40년대 서부극과는 다른 수정주의 서부극을 만들었다. 분위기는 달라졌는데 이전과 같은 스튜디오에서의 고전 영화들이 더 이상은 통용되지 않게 된 50년대, 존 포드 또한 2차 대전 이후 새로운 이데올로기나 사회적 흐름 속에서 스스로 성찰적으로 바뀌게 되면서 역사관, 사고방식에 변화가 있었고 수정주의 서부극의 시작이자 <수색자>를 감독이자 작가로서 개인의 예술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기존 서부극의 평면적인 인물에 더 이상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50년대의 관객의 변화 또한 <수색자> 탄생에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선한 백인과 악한 인디언의 대립구도를 만들어 관객을 백인의 입장에 위치시키던 할리우드 기존의 이데올로기적 전략의 전통방식을 무너뜨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개봉 당시보다도 1970년대 이후에 걸작으로 재평가받았다.
누벨바그, 뉴웨이브의 영향이 할리우드 쇠퇴기에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작가주의적이고 개인적인 예술로서 영화를 바라보게 되면서 완벽하게 영화적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할리우드 영화가 부활하면서 누벨바그 영향을 받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찍는 개인적인 영화들이 많아지고 이는 영화 체제 변화에 변화를 줌으로써 고전 할리우드 영화를 재해석하는 장르적 만개가 일어난다. 고전 할리우드에서 B급 영화 취급을 받던 장르들을 누벨바그 감독들이 재해석하면서 자기 영화를 불러오게 된다. 이를 뉴아메리칸 시네마에 적용시키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우디 알렌과 같은 뉴할리우드 감독들이 누벨바그 시대 감독들이 재해석한 고전 할리우드를 또다시 패러디하고 오마주 해내는 와중에 마틴 스콜세지는 존포드의 <수색자> 구조를 가지고 필름누아르식으로 변형한다.
주제 (내러티브 구조 분석)
1868년 미국 텍사스, 남북전쟁이 끝나고도 쉽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황야를 떠돌던 이든 에드워즈가 어느 날 한때는 연인이었지만 동생 아론과 결혼해 버린 마사와 그의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내 인디언(코만치 족)으로부터 습격을 받아 가족들이 살해당하고 조카 데비는 인디언 추장 스카에게 납치된다. 이에 이든은 아론이 양아들로 키우던 인디언 혼혈남아 마틴 폴리와 함께 데비를 찾으러 떠난다. 광적인 열정으로 오랜 수색 작업 끝에 데비를 찾아내지만,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데비는 추장 스카의 아내가 되어 반 인디언의 상태였다. 이에 이든은 데비를 구하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죽일 생각까지 하지만 마지막엔 생각을 바꿔 데비를 구출한 뒤 마을로 데리고 돌아오고 그는 다시 마을을 떠난다.
베트남전에서 생사의 극한 경험을 하고 뉴욕으로 온 트레비스는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낸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택시운전사로 취직하여 밤새워 근무를 하지만 여전히 쉽게 잠들지 못하고 근무가 끝난 아침엔 극장으로 가 포르노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뉴욕의 밤거리를 달리는 트래비스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거리의 쓰레기라고 생각하며 나날을 보내던 중, 공화당 선거운동캠프에서 일하는 베시에게서 본인을 구원해 줄 천사의 모습을 느끼고 다가가지만 첫 데이트에서 포르노 극장에 데려가면서 둘의 관계는 깨져버린다. 그런 상태에서 트레비스는 우연히 13살의 어린 창녀 아이리스를 만나게 되고 아이리스를 구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정신이상자 수준의 망상에 빠진 상태로 대통령 후보를 암살할 계획으로 체력단련을 하고 총까지 구입하지만 이 또한 실패해 버린다. 그 길로 아이리스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아이리스를 구하고 포주들을 살해한 뒤 본인도 자살하려 했으나 경찰에 체포되고 이는 매스컴에 알려지면서 그는 영웅으로 등극하게 되고 그는 다시 택시 운전사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내용으로 케네디 대통령 암살, 워터게이트 사건, 베트남전 패배 등의 사건을 통해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던 70년대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잘 나타나 있다.
이든이 남북전쟁에서 패한 후,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남군 장교로서 절망감과 외로움에 사무친 인물이라면 <택시 드라이버>의 트레비스는 베트남전의 후유증으로 절망감과 외로움에 빠져있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두 작품의 서사적 구조를 보면 ‘사회의 쓰레기 제거'로 할리우드식 영웅전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색자> 같은 경우는 평화로운 마을이라는 질서에서 코만치로 인해 무질서가 되고 회귀하여 다시 질서를 되찾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의 질서이다. 이를 <수색자>는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택시 드라이버>는 필름 누아르라는 장르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또한, 50년대 이후, 작가주의적 성향이 더욱 깊어지면서 서브텍스트 또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평면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전사, 다른 인물들의 스토리 등 심층적으로도 볼 필요가 있다. <수색자>에서 이든과 마사의 관계에서 이든의 채울 수 없고 말할 수 없었던 사랑이 이든의 분노의 원천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내재된 분노가 이든이 돌아오지 못하고 황야를 떠도는 이유를 더 깊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두 영화는 국가(남북전쟁과 베트남전)란 이름으로 불려 갔다가 돌아왔을 때, 이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와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삶에 복귀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자의 외로움과 분노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폭력성과 영웅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인물과 환경 (인물 분석)
<수색자>의 이든은 기존 서부극, 과거의 영웅적인 총잡이와는 다르게 문제를 가진 인물로, 극 중에서 데비에 대한 태도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깨지는 것을 발견한다. <택시드라이버>의 트레비스 또한 서부극의 총잡이 같은 인물이지만 실은 부정적인 인물로 같은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존 포드의 서부극 시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영웅주의가 팽배하였지만 60~70년대로 넘어가면서 영웅주의를 깨는 영화들이 등장한다. <수색자>의 이든 또한 정의와 명예에 목숨을 걸었던 기존의 영웅적인 총잡이와는 다르게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떠난다(극 중에서 여자는 초반에만 등장하지만 이후에도 그러한 의미들이 등장한다). 동생과의 관계에서도 약간의 문제가 있는, 돈으로 거래하는 관계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트레비스 또한 망상과 현실의 구분에서 혼돈하다 결국 극한에 이르러 폭발하는 인물로 그 폭발의 결정적 계기는 베시와 아이리스라는 두 여자로부터 받은 배신감이라고 할 수 있다. 베시에게 거절당한 뒤, 구원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영웅이 되고자 한다. 트레비스가 아이리스를 구해주려 하지만 거절하는 아이리스는 이미 인디언이 되어버려 자신을 구하러 온 이든을 경계하는 데비의 모습의 변주라고도 할 수 있다.
<수색자>에서 마틴에 대한 이든의 태도에서도 이든의 불완전함이 드러난다. 마틴이 자라면서 피부색이 어두워지자 ‘널 몰라보았다’며 이후 마틴에 대한 태도가 차가워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구하러 간 데비가 인디언의 여자가 되자 굉장한 적대심을 드러냄으로 이든의 인종차별적인 행동들을 볼 수 있다. <택시 드라이버>에서는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특징이기도 한 특징으로 트레비스를 굉장히 마초적인 남성으로 그려내면서 자신이 더러워진 도시의 구원자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살인자이자 영웅으로 그려낸다. 이런 구조를 통하여 <수색자>는 영웅처럼 보이지만 비도덕적이고 문제 있는 인물로, 인물 자체를 통해 미국의 폭력성과 영웅주의를 비판하고, <택시 드라이버>는 트레비스와 뉴욕의 상반된 거리라는 공간적 배경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영화적 스타일 (영화의 형식)
각 영화들이 어떤 영화적 스타일을 통해 주제를 드러내는지, 메타포와 촬영 기법 등을 통해 알아보겠다.
캄캄한 집 안에서 마사를 따라 문 밖을 나가 이든을 보여주는 도입부와 데비를 데리고 돌아온 이든을 반기는 사람들이 데비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갈 때 카메라도 어두운 집 안으로 들어가 황야에 홀로 남은 이든을 찍는 마지막 장면은 <수색자>의 형식상의 특징 중 그 형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취한 형태이다. 여기서의 ‘문’ 또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 ‘문’은 가정과 황야, 문명과 야생 등 문 안과 문 밖의 세상이 완전히 다른 선과 악을 구별해 주는 이항대립 구조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때까지의 서부극에서 분명하게 보여주었던 경계이기도 하다. <수색자>의 도입부와 마지막 장면에서는 ‘문 안’이 가정이지만 문명화된 사회를, 밖은 야생, 즉 무질서를 의미한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줄곧 문 안과 밖을 항상 구분시키도록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데비를 발견하고 끌어안으며(사진 1, 사진 2) ‘집으로 가자’는 장면도 동굴의 문 밖은 야생을 의미하며 데비와 이든은 문명으로 문 안에서 대화를 한다. 이와 같이 야생과 문명사회를 구분시킴으로써 미국의 이중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택시 드라이버>에서는 뉴욕의 낮과 밤의 상반된 거리를 이중적인 공간으로 볼 수 있는데, 조국을 위해 싸우고 돌아왔으나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며 그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에 야간 택시 기사로 근무를 하며 밤거리만을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수색자>의 도입부에서 남북전쟁이 끝나고 군복을 입고 찾아왔으나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고향으로 홀로 찾아온 이든과 대응되기도 한다.
트레비스의 군복 또한 의미가 있는데, (사진 3)의 일자리를 구하러 간 트레비스는 군복을 입고 있고, 후보를 암살하러 가는 장면(사진 4)에서도 군복을 입고 모히칸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있다. <수색자>의 직접적인 변형이기도 하며 트레비스가 본인이 베트남전 군인이었음을, 인디언의 존재를 상기시킴으로 미국이 가지고 있던 폭력성을 그래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군복은 그가 그가 베트남전에서의 후유증을 더 잘 보여주고 있으며 (사진 3)은 뉴아메리카시네마의 특징 중 하나인 이중프레임으로 구성된 프레임이기도 하다. 체력 단련을 하는 장면에서 보이는 그의 등 뒤의 큰 상처(사진 5)는 전쟁에서 얻은 것으로 짐작되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포르노 극장(사진 6)에서의 첫 영화는 교육받지 못하고 홀로 살며 아무런 배경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여가 수단으로, 일상에 복귀가 어려움을 극대화시켜주고 있다. (사진 7)은 첫 데이트에 베시를 포르노 극장에 데려간 뒤 베시에게 성토당하는 장면.
<택시 드라이버>가 야생에서 들어온 남자를 배척해 버리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라면 뉴욕이라는 도시는 미국사회 특수성을 대변하는 공간이자 서구 현대문명의 일면을 상징하는 공간이고 문화이며 경제의 중심이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뉴욕의 거리는 그런 뉴욕의 거리와는 다르다. 이러한 뉴욕의 거리의 상반됨을 강조하는 요소 중 하나가 베시가 근무하는 ‘공화당’ 캠프이다. (사진 8) 우연히 대선 후보와 비서를 태우는데, ‘공화당’은 트레비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천사가 일하는 곳이고 정치 행보상 미국의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실상은 지저분한 썩어빠진 이야기들이었다. 이러한 사건과 총은 트레비스에게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트레비스는 낮-꿈꿔왔던 천사 같은 외모의 대선 캠프에서 일하는 여자-과 밤-13 살의 창녀, 포주화된 뉴욕의 뒷골목-을 떠돌며 미국의 이중성을 본 것이다.
(사진 9) 자신의 방에서 대통령 후보 저격을 위해 거울을 보며 연습을 하는 트레비스는 일종의 의식을 치르며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져들고 정작 암살에는 실패하고 도망치는 모습과 대조를 이루며 영화의 주제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뉴욕의 택시 기사 트레비스는 뉴욕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관찰하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충분하게 보여진다. 뉴욕의 밤거리를 보며 트레비스가 내뱉는 독백(사진 10)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구조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대사라고도 볼 수 있다. 너무나 어둡고 쓰레기 같은 뉴욕을 보면서 ‘이 사람이 과연 무엇을 위해 싸웠나’에 대한 의심, 생각을 하게 만들고 소시민이 스스로 성찰하게 하는 얘기로 이 영화를 완성시켜 준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그는 ‘인간쓰레기’인 포주들을 죽이고 자신의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자신의 머리를 겨누며(사진 11) 미소를 짓는다. 그의 미소에선 천사 같은 순진성과 악마 같은 잔인성이 공존하며, 여기까지 트레비스가 보여주었던 망상과 행동은 위기에 빠진 전통적인 미국적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욕망의 징후이자 절망적인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억눌리고 비틀린 한 외로운 인간의 내면적 광기를 탐색하면서, 베트남 전쟁 이후 영웅이 존재할 수 없는 세계에서 집단적인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는 미국 사회의 병폐를 담고 있는 두 영화를 통해 단순히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만 느껴져서 처음에는 느끼지 못하였던 것, 전쟁 이후 국가를 위해 자신은 내어 바친 개인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로 돌아온 인물들의 외로움이 이제야 조금은 감응되는 듯하다.
<택시 드라이버>는 고독감과 좌절감으로 망상에 빠져든 한 퇴역한 군인의 모습을 통해 70년 미국 사회가 앓고 있던 베트남 전쟁 후유증을 탁월하게 그려낸 사회 심리 드라마이지만 기존의 영웅물에만 적응하고 있었던 나에게 기존 영웅물들과는 다른, 비도덕적이고 문제 있는 인물을 그대로 표현한 인물설정으로 적잖이 당황하게 했다. 영웅주의를 비판하고 미국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필름 누아르의 표본의 영화임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택시 드라이버>가 서부극에서 필름 누아르가 되기 전에 이미 <수색자>는 서부극의 형태를 한 필름 누아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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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리에 박히는 강렬한 영화
지난 5월 12일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5월 25일 개봉 예정인 <더 노비스> 초청 시사회에 참석했다.
처음 가보는 광화문 씨네큐브라 굉장히 기대했는데 영화관 시설 자체는 좌석 사이에 거리도 넓고 아주 만족스러웠다.
다만 영화관 내 취식이 안돼 커피를 마시며 영화를 못 본점은 다소 아쉬웠다..ㅠㅠ
아무래도 관리 인원이 적다보니 극장 내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취지가 아닐까 싶다.
본격적으로 <더 노비스> 관람 후기 및 개인적인 리뷰를 다뤄보도록 하겠다. 스포일러는 최대한 없이 적으려고 하는데, 혹시 영화 정보에 민감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25일 개봉 이후 다시 이 글을 찾아주시면 감사하겠다.
? 영화 <The Novice>
1. 강렬한 심리 스릴러물
▶ 영화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주인공의 '1등'을 향한 광기어린 집착에 관한 심리 스릴러물]이다. 살인자도 없고 피해자도 없고 사건도 형사도 없지만 <더 노비스>는 스스로의 영혼을 살인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심리적 스릴러물이다.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을 좀 먹는 열등감과 오직 1등을 향한 집착으로 인해 망가지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내내 범죄 수사물보다 더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영화 초반에는 주인공의 심리와 모습으로 하여금 관객에게 '와 정말 힘들겠다.' '엄청 훈련이 힘들겠네' 등의 공감을 사게하는 듯 하지만, 종장에는 관객을 철저한 관찰자로 만든다. 관객은 불안감에 좀먹힌 주인공의 모습을 러닝타임 내내 보면서 처음에는 안쓰럽다가도 종장에는 '저렇게 까지 해야하나?' '끔찍하다'와 같은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주인공이 불안해하는 이유, 광기어린 집착에 대한 타당성 등을 정확하게 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관객은 그저 1등을 향한 광기어린 집착에 대한 묘한 불쾌감과 그런 모습에 끔찍함을 느끼게 된다. 굉장히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매력적인 플롯 구성이다.
▶ 이런 주인공의 집착과 불안감을 잘 연출한 영화를 생각하면 역시 2019년에 개봉한 영화 <블랙 스완>이 떠오른다. 애시당초 이번 영화 <더 노비스>의 감독 로던 헤더웨이가 이번 작품을 두고 “조정을 소재로 한, <블랙 스완>의 느낌이 드리워진 <위플래쉬>” 라고 말을 했을 만큼 <블랙 스완>의 분위기와 정말 흡사하다. <블랙 스완>역시 발레를 하는 주인공이 배역을 따내기 위해 질투하고 집착하는 모습을 카메라 무빙과 혼란스러운 컷 전환을 통해 잘 연출한 작품이다.
2. <위플래쉬>가 떠오르는 색다른 음악 연출
▶ 영화 <더 노비스>는 음악적 연출에 있어 상당히 진심이다. 영화 내내 대사 없이 음악과 카메라 연출로 주인공의 긴장감, 불암감을 표현하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 엄청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조정'이라는 물 위에서 하는 스포츠를 소재로 삼고 있는 이 영화는 물 위에서의 <위플래쉬>라고 생각이 들만큼 음악과 연출적인 면에서 정말 많은 신경을 썼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음악 사용이 다소 클리셰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테지만, 앞서도 설명했 듯이 범인이 나오지도 귀신과 같은 무서운 존재가 나오지도 않는데 오직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데 있어 적절한 음악 사용을 통해 컷을 전환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연출이 아닐 수 없다.
? 반가워요 '이사벨 펄먼' 배우님 !!
▶ 마지막으로 이사벨 펄먼 배우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09년에 개봉한<오펀 : 천사의 비밀>을 제외하고는 배우님이 나오는 다른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오펀 : 천사의 비밀>에서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인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으신 배우이다. 이번 <더 노비스>에서는 한 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당시에는 밖으로 배출하는 광기어린 연기를 보여주셨다면 지금은 자기 자신을 좀먹는 소름끼치는 내적인 연기를 보여주신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더욱 다양한 작품에서 얼굴을 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이번 영화에서 너무나 좋은 연기를 보여주셨다. 사실상 <더 노비스>는 이사벨 펄먼 배우님 1인극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 한줄 평
" 뇌리에 강렬하게 박히는 강렬한 스포츠 심리 스릴러물, 그런데 거기에 <위플래쉬>같은 음악적 긴장감을 더한. "
※ 아래 글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요! 영화 보고 나서, 다시 돌아와서 의견을 적어주세요! ※
? 개인적으로 궁금해요!
▶ 곧 영화를 보시게 된다면 이번 영화를 감상하시고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좋겠다. 사실 이 영화의 결말이 일정 부분 열린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과연 다른 분들은 어떤 결말로 이 영화를 이해하셨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결말 부, 주인공은 비와 천둥이 치는 악천우 속에서도 홀로 경주를 마치고는, 기록을 적는 게시판에 가서 기록을 적고 기록과 함께 자신의 이름도 지워버린다. 이후 숙소를 나오며 영화는 엔딩 타이틀이 올라간다. 이 부분에서 주인공의 기록을 관객은 알 수 없다는 점과 주인공이 이름을 지우고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영화는 열린 결말로 끝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이 집착을 벗어버렸다기 보다는 결국 1등이 되지 못해 포기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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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더 위험한 '콘크리트 유토피아'
황궁아파트에 어서 오세요
영화의 배경은 주인공이 머무르고 있는 ‘황궁 아파트’ 이외의 모든 것이 무너졌다는 가정하에 시작한다. 난장판이 된 세상. 집을 잃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동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법이 사라진 아파트 밖 세상. 화폐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 그런 세상에서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는 며칠 안 남은 듯하다. 아파트의 주민이었던 민성과 명화. 둘은 신혼부부다. 가족이 됐다는 즐거움과 집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자연재해가 벌어졌다. 아빠한테 안 가도 될까? 불안해하는 명화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민성. 하지만 돈도 무엇도 의미가 없이 생필품만 있는 이 세상에 부부만 덩그러니 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뭐라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무작정 밖으로 나가는 민성. 어렵게 복숭아 캔 하나를 구해왔다. 명화랑 먹어야지! 막연한 바람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민성의 집에 입이 하나 더 늘었기 때문이다. 부부의 아파트에 아들과 어머니 모자가 들어왔다. 명화는 아들에게 나눠주고 싶어 하지만 민성의 생각은 다르다. 아니 일단 우리부터 살아야지.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사소한 의견 차이가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 같다. 사실 이 아파트에 손님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는 외부인들이 서서히 문제가 되고 있었다. 민성은 명화와는 다르게 원주민들이 아닌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나가길 바라고 있다. 폭풍전야의 황궁 아파트. 어느 날 아파트의 어느 호수에 불이 났다. 모두 어쩔 줄 모를 때 한 남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불을 진압한다. 남자의 이름은 김영탁.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김영탁을 중심으로 아파트가 가진 문제들을 하나, 둘씩 해결해 나간다.
지옥도이자 천국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취한 전략은 ‘재난이 왜 벌어졌는가’에 집중하지 않고 이 이후의 리액션에 집중한다. 재난 이후의 상황을 그리는 작품이야 많았다. 올해 공개됐던 <정이>만 봐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다. 외국영화의 경우에는 <미스트>가 그랬다. 그리고 우리가 대중적으로 잘 알고 있는 재난영화로는 <설국열차>가 있다. <설국열차>가 설정한 ‘기차 밖의 상황’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유사하다. 매우 춥기 때문에 탑승객(거주민)들은 밖으로 나가면 존재 자체에 문제가 발생한다. 공간 안에 이 인물들이 온갖 수를 써서 잔류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계급 격차가 발생한다. <설국열차>의 경우에는 ‘칸’으로 등장인물들에 차등을 두며 계급을 나눈다. 공간을 통해서 인물 간의 계급과 현 세태가 받아들일 사회구조가 모순적인지를 드러내는 봉준호 감독이 구사한 일종의 비유법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 <설국열차>와 공통점을 가진다. 우선 한 공간을 바탕으로 계급 격차를 나눈다. 외부 세상이 전부 무너졌는데 계급 격차가 어떻게 나뉠까에 대한 부분이 영화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로서 사회를 어떻게 풍자하는지가 가진 영화의 핵심으로 작동한다. 어떻게(how), 누가(who) 계급을 나누고 또 그사이에 들어가는가에 대한 묘사가 영화가 묘사하고 싶었던 한국 사회의 구멍이자 그림자가 된다. 반대로 차이점은 비유의 방식이다. <설국열차>가 꼬리 칸과 머리 칸의 대비를 통해 사회계급 간의 격차를 비유로 드러냈다면 이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 삶의 현실적인 부분과 닿아있다. 한국적인 특성으로 리얼리티를 높인 셈이다. '봉테일' 봉준호 감독이 디테일한 부분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높인 것과 유사하게 영화 플롯 구조의 입체성을 부여했다.
나는야 박찬욱 키드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엄태화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다. 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박찬욱 감독의 향이 어느 정도 풍겨있다. 최근작 <헤어질 결심>에서 중요했던 건 시점이 엇갈린다는 것이다. 해준과 서래는 서로 사랑했다. 하지만 그 시점이 엇갈려 서로 사랑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시점의 엇갈림은 민성-명화 두 인물의 관계, 또 영탁과 그 나머지 인물들 간의 이해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 <박쥐>에서는 작품에 서려있는 광기를 묘사하기 위해서 카메라나 음향이 굉장히 중요했다. 후반부 즈음에 김혜숙 배우 캐릭터 쪽에 클로즈업 역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있어 핵심으로 작동한다. 또 영화에서 기괴하게 틈입하는 청각적인 대사가 몇 줄 있다. 이 부분은 <친절한 금자씨>에서 복수의 아이러니를 표현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했다.
그중 영화에서 박찬욱 감독의 향수가 느껴지는 지점은 장면의 시각화다. ‘적당히 잘 사는 아파트’를 영화에서 미술로 표현한 방식은 <박쥐>의 태주가 머무르는 집이 연상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시각적인 디테일을 하나하나 다 챙긴 지점이 초반부에 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장면인데, 그 단역/엑스트라 동선이 깔끔하다. 또 이야기 듬성듬성 들어가 있는 유머가 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건조한 분위기에 유머가 들어간 것과 유사한 특징이 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있다. 영탁(이병헌)의 가장 마무리 장면은 <복수는 나의 것>의 엔딩신 아이러니와 병치된다. 이런 디테일한 요소도 박 감독의 영향이 느껴지는 것과 별개로 가장 크게 ‘나는 박찬욱 키드다’라는 인장을 쾅 박은 부분이 있다. 대표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OST 삽입곡이 있다. 이 장면을 딱 둘러싸고 ‘왜 이 노래가 들어가야 했는가’에 대한 부분, 또 그 이전에 이 노래를 부르는 인물의 캐릭터 자체가 박찬욱 감독의 캐릭터 작법과 유사한 지점이 있다.
거시적이면서 미시적으로
영화가 한국사회를 반영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일단 주요 인물들 대부분이 무슨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집’에 대한 집착이 서려있다. 명화/민성 부부는 신혼부부다. 이 부부는 집을 얻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이 영화 대사로 표현된다. 이 대사로 표현된 부분은 재난 이후에 인물들이 대화할 때도 등장한다. 이 대화를 나누는 신에 첫 등장하는 금애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집단의 우두머리가 갖고 있는 위선을 대표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화의 층수마다 재난 이전에 사람들이 서로 계급을 나눴다는 묘사가 등장한다. 이 부분이 영화의 어떤 지점에서 중요한지 체크하며 보는 것도 작품의 재미요소다. 이 외에도 영화에서 주민들의 직업, ‘집단이 합의해서 내린 의사결정’의 맹점, 유토피아의 진정한 의미까지 작품이 갖고 있는 ‘한국적인 요소’가 걸리적거리지 않고 더 극적인 분위기를 유발하는 장치가 된다는 점은 영화의 굉장히 큰 강점이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분노에 공감할 수 있고 그 토대에 부동산이 있다. 엄태화 감독이 부동산이라는 소재를 탁월하게 해석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영화의 더 큰 장점은 반대측면에 있다. 바로 박보영 배우가 맡은 ‘명화’ 캐릭터 세팅이다. 이런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에서 ‘명화’와 유사한 인물은 흔하다. 우리 한국사회에도 명화와 비슷하게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박보영 배우는 이를 디테일하게 살릴 수 있을 만큼 선한 미모를 가지고 있다. 캐스팅만 보면 ‘이 영화에서 너무 전형적인 패턴으로 묘사된 것 아니냐’라고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핵심에 이 명화의 말을 어떻게 터트려서 마무리지었는지가 있다. 또 이 인물이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을 때 바로 반대에서 ‘마냥 그렇지만은 않아’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장르의 클리셰를 주파하는 좋은 선택지였다.
왜 다들 잘하지
이 영화에서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 같은 장점은 배우의 연기다. 아마 이 영화가 입소문을 탄다면 배우들의 호연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병헌 배우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잘 묘사한다. 어떻게 입체적인가? 초반부에 등장하는 것 보고 ‘아 이 사람 후반부에 이렇게 될 것 같네’의 너머를 묘사한다. 점점 드러내는 광기가 아니라는 점이 아주 중요했다. 이 부분은 이야기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데 있어 아주 중요했는데, 한국 최고의 남자배우답게 정말 잘 이해해서 표현했다. 이런 유사한 캐릭터는 우리가 <악마를 보았다>나 <마스터> 같은 빌런 연기로 자주 볼 수 있었다. 또 선한 사람이 파멸을 맞이한다는 설정은 <달콤한 인생>에서도 봤던 모습이다. 이 이병헌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뚫고 나오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다. 아마 내년 백상예술대상 같은 시상식에서 후보 지명 될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김도윤, 박지후 배우 역시 경력에서 손꼽힐 만큼 의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박서준, 박보영 배우는 그동안 전형적인 영화에만 출연했다. 키 크고 잘생겼지만 어딘가 허당인 구색이 있거나(<드림>, <청년경찰>)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특화(<과속스캔들>)가 된 캐릭터였다. 이 작품에서 두 배우는 필모그래피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다. 특히 박서준 배우는 열정이 느껴졌다. 김선영 배우는 후반부를 보면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한국영화의 수많은 캐릭터들을 정공법으로 부숴버린다. 이 사람이 <세 자매> 분했던 배우라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박지후/김도윤 배우는 <벌새>나 <럭키 몬스터>에서 봤던 연기의 연장선상 같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이 두 배우의 연기가 당연히 좋았지만 혜원/도균이 캐릭터 핵심은 인물 연출이다. 관객분들이 이 두 사람의 특정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실 것 같다.
이 배우들의 호연을 뒷받침하는 데 있어 청각적인 요소를 다 잡았다는 점은 영화의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정말 큰 장점이다. 영화에서 배경음악으로 삽입되는 것도 자연스럽게 묻어 나왔다. 하지만 모든 대사가 다 들리는 것은 이 부분은 이야기가 한국사회의 집단이기주의를 풍자하고자 했던 메세지적인 측면에 설득력을 부과한다. 심지어 영화 카메오에 한 배우가 나온다. 이 배우는 속삭이는 딕션으로 유명한데 이 분 마저도 대사가 다 들린다. 저번주 개봉작 <더 문>과 대비된다.
정말 굳이
전체적으로 모든 요소가 딱 달라붙은 스릴러물이지만 굳이 트집을 잡아보자면 영화가 무겁다는 점이 단점이다. 영화가 행복해지는 작품은 아니다. 올해 <범죄도시 3>이 1000만 관객을 넘었다. <엘리멘탈>은 또 600만 관객을 동원했다. <밀수>는 400만을 넘어 손익분기를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세 작품은 시각적으로 유쾌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인물의 감정이입으로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대비되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정말 굳이’ 뽑는 단점이고 이야기의 완성도의 관점에서 <범죄도시 3>이나 <엘리멘탈>보다 더 훌륭하다.
그리고 이야기에서 한 키워드가 뜨문뜨문 등장한다. 김영탁 캐릭터에서도 보이고, 엔딩 시퀀스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장면들이 관람에 지장이 가는 건 아니지만 이해 못 하는 관객이 어느 정도는 있지 않을까?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떤 걸 보여준다는 발상은 오히려 문제의 근원을 따진다는 점에서 좋은 연출이지만 이미 밀도 높은 블랙코미디에 곁가지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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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했지만 발전하지는 않은 마동석 유니버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베트남 납치 살해범 검거 후 7년 뒤, 광역수사대로 소속을 옮긴 ‘마석도’(마동석). 어느 날, 그는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사망 사건을 조사하다가 신종 마약 범죄가 개입한 정황을 포착한다. 이에 그는 강남 클럽과 술집을 중심으로 마약 수사를 벌이기 시작하고, 일본 야쿠자가 마약을 유통한 증거를 확보한다.
한편, 마약 공급 책임자인 '주성철'(이준혁)은 야쿠자로부터 받은 마약을 빼돌려 사업을 키우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이에 야쿠자는 킬러 '리키'(아오키 무네타카)를 보내 주성철을 제거하려 한다. 때마침 야쿠자와 협력한 한국인 공범을 쫓는 마석도의 수사망도 주성철을 향해 좁혀 오면서 마약 사건 규모는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변화를 천명하다
2017년에 첫 발걸음을 내디딘 <범죄도시> 시리즈. 영화 2편으로 MCU(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말이 나올 만큼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예상치 못한 흥행이라서 더 빛났다. 1편은 역대 한국 청불 영화 흥행 3위라는 기록을 썼다. 2편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팬데믹 기간 최고 흥행작 자리도 차지했다.
한계도 있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단순했다. 마석도 대 범죄자. 악랄한 범죄자를 마석도가 시원하게 때려잡는 내용이었다. 1편도, 2편도 다르지 않았다. 한계는 캐릭터로 극복했다. 배우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가져온 마석도, 감초 같은 활약을 보여준 장이수, 서로 다른 결의 잔인함을 보여준 빌런 장첸과 강해상까지.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인물들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범죄도시3>는 변화를 추구했다. 시리즈의 새 동력을 찾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마석도 못지않은 인기 캐릭터인 장이수를 과감히 배제했다. 마석도의 팀원도, 액션 스타일도 달라졌다. 빌런이 둘 등장해서 대립 구도가 복잡해졌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다. 영화는 더 통쾌하고, 더 웃기다. 하지만 발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순간 머뭇거린다. 시리즈의 관성에 기대면서 자기 발목을 붙잡고 말았다.
통쾌한 주먹과 유쾌한 웃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액션이다. 전편에서 마석도는 주먹 한 방을 앞세워 범죄자를 제압했다. 이번에는 복싱 액션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거리에서 행패 부리는 불량배를 만난 마석도. 그는 날렵한 몸놀림, 간결한 펀치, 연속적인 공격으로 그들을 제압한다.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던 괴한을 힘으로 제압한 전편과는 사뭇 다르다. <이터널스>에서도 볼 수 있었던, '마동석'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잘 드러난다.
기존 장점은 유지하면서 액션은 더 통쾌해졌다. <범죄도시> 표 액션은 리액션이 특징이다. 마석도가 주먹을 휘두른 뒤의 상황을 역동적으로 담아낸다. 깡패는 주먹에 맞아 날아간다. 그들 덕분에 주변에 있던 벽이나 가구 같은 구조물도 같이 깨진다. 슈퍼맨 때문에 무너지는 건물과 폭발하는 주유소를 강조한 <맨 오브 스틸>을 보는 듯하다.
코미디 분량도 늘었다. 2편도 1편보다 코미디에 힘을 준 인상이 강했는데, 3편에서는 강도도 세지고 빈도도 늘었다. 특히 시리즈를 모두 본 관객이 지루하지 않게 하는 연출이 돋보인다. "5 대 5 중에 누가 5야?"와 같이 전편에서 화제가 된 대사를 변형하거나 일반적인 예상이 아닌 허를 찌르는 상황 전개를 보여주는 식이다. MCU라는 같은 줄임말을 쓰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가 보여주는 유머와 결이 유사하다.
현실을 놓치지 않는 이야기
현실을 품은 서사도 인상적이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사회적 열망을 반영한 일종의 집단 판타지라고 볼 수 있다. 근래 한국 사회에서는 엄벌주의에 대한 갈망이 커졌고 형량 강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처럼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상황에서는 환상 하나가 필연적으로 생겨난다. 강력한 힘을 가진 누군가가 정의를 실현해 주기를 바라는 열망이다. 마석도의 속 시원한 주먹을 향해 환호와 탄성이 쏟아지는 이유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절묘한 타이밍에 적절한 환상을 보여줬다. 각 시점마다 대중적으로 주목받은 범죄를 소재로 삼았다. 1편은 조선족 범죄를 다뤘고, 2편은 연쇄살인범이 빌런이었다. <범죄도시3>도 마찬가지다. 최근 이목을 끌었던 마약 범죄를 다룬다. 그 덕분에 마석도의 활약은 또 한 번 쾌감을 선사한다. 주먹이 변호사라고 하거나 조금 더 맞아야겠다는 대사도 시리즈의 정체성과 매력을 보여준다.
새로운 빌런 활용법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더 짜릿하다. 만약 <범죄도시3>가 마석도 대 범죄자 구도를 답습했다면 자칫 역풍을 만날 수도 있었다. 피로도가 쌓일수록 자기 복제라는 비판 여론을 피하기 어려울 테니. 하지만 이번에는 함정을 잘 피해 갔다. 악역 한 명의 역할을 주성철과 리키로 나눴다. 지략이 돋보이는 부패 경찰과 일본도 달인 야쿠자가 서로 견제하는 신선한 구도를 만들었다. 관계는 복잡해지고 서사는 풍부해졌다. 더 많은 적을 상대하는 마석도의 분투도 자연히 돋보인다.
결정적인 순간 망설인다
아쉽게도 <범죄도시3>는 변했지만, 발전하지는 않았다. 변화를 진보로 이어가는 데 실패했다. 눈에 띄는 문제는 빌런이다. 악역을 둘로 나눠서 색다른 구도를 만든 시도는 좋았다. 활약도 없지는 않다. 리키는 무자비하게 상대방 숨통을 끊는 위압감을 발산한다. 주성철은 마석도와 리키를 모두 속이고 목적을 이룰 뻔한 지략을 자랑한다. 그러나 둘 모두 강한 임팩트는 없다. 장첸이나 강해상하면 생각나는 명대사도 없다.
눈에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중요한 설정이 정작 서사에 제대로 녹아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성철은 부패 경찰이다. 경찰 직위를 악용해서 자기 범죄를 감추고 사업을 넓힌다. 부패 경찰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악역은 시리즈에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내부의 적은 사법과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마석도의 영웅성도 한 차원 더 파고들 기회였다.
즉, 마석도와 주성철의 대립은 관객인 신뢰하는 판타지 속 경찰과 불신하는 현실 속 경찰의 대결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판타지와 현실의 대결인 셈이다. 따라서 이 설정을 잘만 활용한다면 영화의 결말에는 더 강렬한 카타르시스가 깃들 수 있었다. 실제로 작중 주성철의 존재감이 가장 큰 장면은 그가 사람을 죽이거나 음흉한 미소를 지을 때가 아니다. 정체를 숨긴 채 경찰 대 경찰로 마석도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영화는 부패 경찰이라는 설정을 그 장면에서만 활용한다. 다시 꺼내지 않는다. 주성철이 '경찰'로서 마석도를 위기에 빠뜨리거나 수사를 방해하는 대목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그저 평범한 범죄자이자 마석도에게 붙잡힐 어린양에 불과하다. 오히려 중간 빌런처럼 등장한 리키가 마석도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힌다.
변화와 발전은 다르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범죄도시3>는 도전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시리즈의 관성에 의지한다. 물론 장수 시리즈라면 일종의 공식을 갖기 마련이다. 8편까지 나온 <해리포터> 시리즈도 프리벳가 4번지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는 해리가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고, 호그와트에서 사건의 흑막을 밝히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래도 잘 나가는 장수 시리즈는 각 단계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장면만큼은 바꾸려고 노력한다. 해리가 아니라 볼드모트 시점에서 영화를 시작하기도 하고(불의 잔), 호그와트로 가기 전에 그리몰드 광장 12번지나 마법 정부 같은 새 장소를 등장시키거나(불사조 기사단), 프리벳가 4번지가 등장하지 않기도 한다(혼혈왕자).
<범죄도시3>에서는 이런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는 악역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제목이 나온 다음에는 길거리에서 벌어진 범죄를 간단히 정리하는 마석도를 보여준다. 농담을 주고받는 마석도와 팀원들이 그 직후에 나오고, 본격적인 사건이 등장한다. 전편의 전반부와 토씨 하나 빼지 않고 똑같다. 등장인물과 대사만 조금 다를 뿐이다.
마무리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혼자 걸어가는 마석도의 뒷모습을 비춘 후, 회식으로 끝낸다. 시리즈 관성에 그대로 기댄다. 좋은 설정을 손에 쥐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이유다. 그러다 보니 장이수의 복귀를 암시하는 쿠키 영상은 반가운 만큼 걱정된다. 혹시나 익숙한 길로 회귀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깃들기 때문이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이미 한국 영화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한국 영화계가 양극화됐다는 비판을 받을지언정, 이처럼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닌 프랜차이즈는 찾아보기 어렵다. 주말 사전 개봉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위협할 정도니까. 이 시리즈의 흥행은 한국 영화 부흥과 큰 관련이 없다고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확실한 매력으로 무장한 <범죄도시> 시리즈가 앞으로는 조금 더 나아지길 바란다. 단순히 변하는 게 아니라, 진일보하고 발전하길 바란다. 이미 8편까지 기획된, 이 유쾌하고 통쾌한 시리즈를 오래도록 만나고 싶으니.
Acceptable 무난함
일보 전진과 일보 후퇴. 시원한 주먹만큼 과감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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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그렇게 산이 되었다
간만에 마이너한 영화를 보았다. 정말 러닝타임이 긴 영화였는데, 그만큼 여운도 긴 영화였다. 한 남자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을 넘어 중년을 향해 가는 나이까지를 그린 영화인 만큼 꽤나 대서사시인데, 영화는 고요한 분위기를 놓지 않는다. 마치 우리네의 인생의 대부분은 별일없이 흘러간다는 듯이. 별일 없이 흘러가는 듯 보였지만 고뇌의 끈을 놓지 않았던 주인공의 치열함은 결국 그에게 삶을 선사했다. 비로소 만족할 만한 사람도 얻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도 생기는 희노애락 말이다.
1. 어릴 적 친구에 대한 기억이란
나도 10대때의 기억을 점령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내 10대에 주된 기억에 그들이 남아있다. 내 생일 축하 파티에 놀러오던 그들, 가끔은 쓸데없는 기싸움을 하기도 하던 그들처럼 피에트로에게도 브루노는 유년 시절의 강렬한 기억이었다. 재미없는 도시가 아닌, 예상할 수 없는 일이 가득한 자연에서의 삶을 당연하게 여기던 브루노는 피에트로에게 신기하고도 대단한 아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과 산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피치 못하게 헤어졌을 때에도 꾸준히 서로에 대한 기억을 놓지 못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기억이 강렬했고, 서로를 좋아했고, 헤어짐이 아쉬웠기에 기억이 오래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2. 사람에게는 각자의 때가 있다.
피에트로는 브루노와의 갑작스런 이별 이후, 많이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석 엘리트 코스를 권하는 부모에게 반항을 하고, 내외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아버지의 죽고 나서야 집에 돌아온다. 그야말로 불효자가 따로없다. 그 이면에는 친우였던 브루노의 인생에 함부로 개입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는 불만도 있었을 것이고, 틀에 박힌 길을 가고 싶지 않은 그의 모습을 받아들여주지 않은 부모에게 본 때를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이 브루노와 피에트로, 그 둘을 다시 연결시켜 주었는데, 둘은 아버지의 유언과도 같았던 산 속 집을 지으며 다시 새로운 우정을 쌓아나간다. 그 과정에서 브루노는 본래 자신의 터였던 시골, 자연과 함께하며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찾아낸다. 목장을 지어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만들 생각을 했던 것이다. 참으로 그다운 생각이었다. 거침없이 자신의 뜻을 펼쳐내는 그를 보며 피에트로는 조바심에 사로잡힌다.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책, 친구에 대한 부러움 등이 그를 고뇌에 빠지게 하려던 찰나, 그는 브루노의 응원을 받고 다시 글을 쓴다. 그리고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찾아간 히말라야에서 사랑하는 여자도 만나고, 그의 인생에 화양연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참 인생은 간사하게도 피에트로에게 봄을 주면서도 브루노의 인생에는 겨울을 준다. 이번에는 브루노가 피에트로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어간다. 그 교차점을 보면서 '인간은 다 자신의 때가 있구나'라고 느꼈다. 브루노의 화양 연화, 피에트로의 화양연화, 그 시기가 같을 수만은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보면서 괜히 씁쓸했고, 가슴이 아팠다.
3. 산에게 던진 각기 다른 질문
피에트로는 산에서 자아를 찾았다면 브루노는 산에서 살고 있지만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계 속 규칙에 맞춰 살려다 보니, 가랑이가 찢어져 버린 것이다. 둘 다 산에서 자신의 답을 찾았지만 산에게 묻는 질문이 달랐고, 그에 따른 답과 결과도 달랐던 것 같다. 피에트로는 산에서 아버지를 발견했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이해하며 자신의 한계를 뚫고 나갔다면, 브루노는 산이 만든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우물 안에서 허우적댄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도시 사람인 피에트로에게 산은 새로운 정답을 선사해 줄 수 있는 곳이지만 브루노에게 산은 고향이지만 자신이 뚫고 나가야 할 한계점이기도 했다. 브루노의 조상은 자연을 벗어나 본적이 없고, 도시 속 인간의 삶보다는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이 더 익숙한 사람들이었기에 브루노에겐 그것이 더욱 익숙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도 자급자족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기에 인간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브루노는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약간의 교육이 필요했고, 그 지점을 피에트로의 부모는 궤뚫고 있었지만 브루노의 아버지가 그 기회를 날린다. 그저 자연이 좋았던 어린 피에트로에게는 그런 부모의 행동이 브루노의 인생을 망친다고 생각했겠지만 피에트로와
브루노는 엄연히 입장이 달랐던 점을 생각하면 그들의 부모는 오히려 현명한 판단을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둘을 보면서 느낀 것은, 모든 사람이 같은 곳에 있어도 누군가는 오답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정답을 도출해 낸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오답을 발견한 사람은 영원한 실패자일까? 아니다. 그 사람의 답은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피에트로의 답이 산에 있었던 것처럼 어쩌면 브루노의 답은 도시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4. 동네 산의 꼭대기를 정복해 산이 되어버린 브루노, 그를 기억하는 피에트로
피에트로는 브루노와 술을 마시면서 자신들의 아지트와도 같은, 그 오두막이 지어진 산을 정복한 자가 브루노고 자신은 그 산을 제외한 여덟개의 산을 정복한 사람이라면 둘 중 누가 더 우월할까를 대결한다. 이 대사가 이해될 듯 말 듯 했는데, 아무리 피에트로가 히말라야를 오르고, 명산에 올라도 그에게 있어 마음 속 에베레스트는 브루노와 놀고, 집을 함께 지었던 그 뒷산인 것이다. 그의 마음 속 에베레스트를 쥐고 흔드는 브루노는 다른 어떤 명산을 다녀온 그보다도 더 우월한 존재로 보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대사처럼, 그는 다시는 그 뒷산을 올라가지 못하고, 다른 낯선 산들만을 해매고 다닐 것이다. 피에트로에게 그 뒷산은 곧 브루노이기에, 낯선 산들을 해매며 브루노를 향한 미안함, 슬픔을 게워낼 것 같다. 청년이었던 피에트로에게 아버지가 자아를 찾는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면, 중년에 나이에 다가서는 피에트로에게 브루노가 그의 인생의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피에트로 마음 속의 에베레스트, 마음 속 중심이 되어 그의 남은 인생 산행의 별빛이 되어 길을 밝혀주고 길을 안내해 줄 것이다.
아, 이 영화는 산을 담아내는 카메라 무빙이 정말 장관이다. 보실 분들은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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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빼로데이에 보기 좋은 영화 추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신청 받은 주제는 바로 '빼빼로데이에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이 게시물 혹은 씨네픽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동일 내용의 콘텐츠 게시물에
자신이 보고싶은 영화에 대해 적어주신다면 다음 콘텐츠를 올릴 때 여러분들의 댓글을 바탕으로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작해볼까요?٩( ᐛ )و
찰리와 초콜릿 공장
ⓒ 네이버 영화
synopsis
세계 최고의 초콜릿 공장, 윌리 웡카 초콜릿 공장의 공장장 윌리 웡카는 초콜릿 속의 황금티켓을 찾은 어린이 다섯 명에게 자신의 공장과 제작과정의 비밀을 보여주겠다는 선언을 한다.
cine pick!
1천 3백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이 영화는 1억 5천만 불의 제작비로 완성하여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2주 연속 정상을 차지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홀리데이트
ⓒ 네이버 영화
synopsis
싱글이라 서러운 게 아니다. 또 혼자냐는 잔소리가 지겨울 뿐. 우연히 만난 동병상련 남녀, 명절용 파트너로 계약 체결! 사귀는 척만 하기로 했는데, 자꾸 생각이 난다.cine pick!
매 공휴일마다 싱글이냐는 가족들의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사귀는 척을 하기로 하며 진행되는 스토리이다. 킬링타임용으로 보기 좋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초콜릿
ⓒ 네이버 영화
synopsis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에 신비한 여인 비엔이 초콜릿 가게를 차린다. 비엔의 초콜릿으로 상처를 치유한 마을 사람들은 사랑이 넘치는 모습으로 변하지만, 마을 시장은 그런 변화를 아니꼬워한다.
cine pick!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로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잔잔하면서도 그 안에 강한 울림을 주며, 의상을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이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 네이버 영화
synopsis
짝사랑의 마음을 몰래 편지로만 남겨두었던 라라진. 어느 날 그들에게 썼던 비밀
러브레터가 발송 되면서 아슬아슬한 연애 소동이 시작된다.
cine pick!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영화를 를 공개했던 그해(2018)에 가장 많은
다시보기를 기록한 영화 2위에 오를 정도로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양과자점 코안도르
ⓒ 네이버 영화
synopsis
도쿄의 인기 양과자점 ‘파티쉐리 코안도르’를 무대로 한 조각의 케이크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꿈과 인생이 담긴 달콤 쌉싸름한 감동 드라마
cine pick!
영화는 올해 제26회 산타바바라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 경쟁부문에서 최고상을 수상
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파리로 가는 길
ⓒ 네이버 영화
synopsis
영화 제작자 남편 마이클과 함께 칸에 온 앤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예정되어 있던 일정을
건너뛰고 파리로 가기로 한다. 마이클의 사업 파트너 자크가 앤의 여정에 동행하고, 파리
까지의 낭만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cine pick!
코폴라 감독의 영화 감독 데뷔작이자 감독의 실제 경험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프랑스
를 직접 여행하는 것 같은 생생한 영상미와 감미로운 음악으로 여행의 낭만을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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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질 결심, 사랑의 시간차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영화
?Rabbitgumi 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이 개봉했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탔던 영화인데요.
탕웨이와 박해일이 주연을 맡았죠.
이번에는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좀더 말랑말랑한 영화에요.
여전히 미장센은 아름답고 화면전환도 무척 좋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도 좋죠!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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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팜 스프링스” 후기입니다. 엔드 크레딧 직전 훈훈한 짧은 쿠키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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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플래시> 메인 예고편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스피드! 빛보다 빠른 슈퍼 히어로가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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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극장판 천재 추리 탐정 셜록홈즈> 메인 예고편
19세기 런던!
날카로운 추리와 뛰어난 과학 지식을 겸비한 최고의 명탐정 ‘셜록 홈즈’는
부자들만 노리는 신출귀몰한 도둑 ‘화이트 스톰’을 체포한다.
4년 후, 출소가 얼마 남지 않은 ‘화이트 스톰’이 버나드 캐슬 교도소의 악당 ‘불곰’과의 대결 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탈옥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데…!
전설적인 대도둑 ‘화이트 스톰’을 잡기 위한 ‘셜록 홈즈’의 상상초월 과학 추리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