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2023-04-07 06:33:52
영화가 끝난 이후 오랜 시간 가슴 속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작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브랜든 프레이저, 퀴어와 비만 소재 가족간의 화해를 담은 <더 웨일>
오랜만에 퀴어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영화 '미이라'와 '조지 오브 정글'에서 백치미를 선보였던 '브렌드 프레이저'가 기존의 연기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무게감이 깊은 캐릭터로 출연한다.
현재 극장가에서 개봉 중인 영화로 박스 오피스 20위, 관람객 평점 8.29, 누적 관객수 5.3만 명이다. 사무엘 D. 헌터의동명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제 7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다.
시놉시스는 온라인 작문 교수 찰리는 8년 전 게이 연인과 사랑에 빠지며 가정을 버렸고, 그의 남자 연인은 그 후에 생을달리했고, 찰리는 심리적인 이유로 272kg이라는 거구가 된다.
영화는 비만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와 동성애라는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다.
두 가지 코드 모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들이며, 특히나 200 킬로그램이 훨씬 넘는 체중은 온라인 상에서도 자신의얼굴을 드러내기 곤란할 정도의 심리적 위축을 가져온다.
자신을 혐오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역겨운지' 묻는 그는, 한 순간 한 순간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기존의 가정 안에서 여성 아내와의 관계 안에서 낳은 딸은 그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다. 이성과의 결혼 후 동성에게 끌리는 배우자를 보며 버려진 혹은 남겨진 아내의 심정과 어린 시절의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있는 딸이 바라보는 아버지, 그리고 그러한그들을 이 땅에서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듬고 안아주는 이의 심정.
남우주연상은 브렌든 프레이저가 받았지만,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극 중 비중있는 자들의 삶 역시 고통과 우울로 점철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니 브렌든 프레이저는 그들을 대표해 받은 듯 싶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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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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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은선이라는 친구가 두 명 있었다. 있었다고 하는 이유는 한 명이 개명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 명밖에 없다. 나는 은선이들을 볼 때마다 실버라이닝을 생각했다.
구름에 가려진 햇빛이 만들어내는 가느다란 은색 선은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이 곧 갤 거라는 희망이다.
보통 이름에 쓰는 '은'자는 은혜 은(恩)자가 많을 테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레이스 라이닝이든 실버 라이닝이든, 아무튼 실제로 아직까지 은선이인 은선이는 먹구름 뒤 실버라이닝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조금 다른 아이였다. 다르다고 말하니 나에게 무척 관대한 기분이 든다.대학생활을 하면서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취업 준비나 스펙 쌓기 같은 유익한 것에는 하등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일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아무렇게나 사랑하고, 쉽게 상처받으며 휘청거리며 걸었다.
그때 은선이가 있었다.
팻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다. 아내와 불륜 관계였던 학교 선생을 시원하게 패버리고 아내인 니키에게 접근금지 및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병원에서 긍정적인 태도로 최선을 다 하면 한 가지 빛을 얻을 수 있다고 들었으니 긍정의 힘을 믿으며 다시 아내와 만날 거라고 생각한다.
감정 통제가 되지 않는 그에게 아내를 만나게 해줄 리가 없다. 불륜도 폭력도 문제이니 어느 쪽 편도 들기 어렵지만.
친구 로니의 저녁식사에 초대된 팻. 친구의 처제 티파니도 그곳에서 만난다.
(로니의 아내 베로니카 역으로 나오는 줄리아 스타일즈의 모습과 목소리가 반갑다. <너를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 본 캣의 얼굴 그대로에, 나이만 들었다. 매력적인 배우다)
식사 중 언니의 말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티파니, 집에 데려다준 팻에게 나한테 마음 있는 거 다 안다, 같이 자자고 하지만 팻은 거절한다.
팻의 뺨을 후려치는 티파니의 감정기복을 보통 사람들은 따라가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사람 제법 봤다.
영화여서 극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별 생각 없고 뜻도 없이 남자들을 만나고, 자는 사람들. 표면적으로만 보면 욕 먹기 쉽고, 욕 하기도 쉬운 사람들이다.
티파니도 자신을 "미친 과부 걸레"라 부른다.
그 말을 들은 남자, "나중에 술 한잔 할래요?"라는 말은 한번 자보겠다는 거다. 티파니는 아마 왕왕 그랬을 터.
그들의 기저에는 사랑으로 인한 상처가 있다. 그 전에는 손에 쥐면 부서질까 두려울 만큼 소중한 사랑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외부적 요인으로 깨지는 순간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사랑이 이렇게 가치없는 것임을 증명해야만 덜 상처받는다.
아무튼 티파니도 남편과 사별했다. 팻은 굳이 티파니에게 남편이 죽은 이야기를 계속 한다.
팻은 저돌적으로 접근하는 티파니에게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비닐봉지를 덮어 쓰고 달리기를 하는 또라이지만 아내를 향한 사랑은 일관적이다.
이 또한 일반적인 사랑은 아니다. 아내는 이미 떠났고, 그는 아내와 떨어져 지낸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형태도 없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아내를 마냥 기다리고 사랑하는 팻. 집착도 사랑이라면 사랑이다.
옛날 집과 직장을 찾아갔다가 경찰이 오기도 하고, 아직도 결혼식 음악이나 아내와 관련된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결혼식 비디오가 없어졌다고 새벽 3시에 온 집을 뒤지고 난리를 치며, 아내는 이용당한 거라고 피해망상에 빠진다.
난리를 치고는 또 미안하다고 울먹이는 것까지 너무나 핍진하다.
여기서 이웃 사는 남자애는 진짜 끔찍한데, 과제를 한다며 조울증 환자를 인터뷰하려고 하고 소동이 벌어졌을 때도 카메라를 가지고 나타난다.
우울증 환자를 보는 사회의 여러 가지 반응 중 하나다. 동정, 공포, 호기심 등등.
그런 팻에게 티파니가 불쑥 나타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지 않아도 감정을 통제하고 흥분하지 않아야 하는데, 우울증이나 감정조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변수를 통제하기 어려워한다.
티파니도 오기가 생긴다. 다른 남자들은 자자고 꼬시면 오케이였는데, 이 남자는 안 된다. 무슨 짓을 해도 안 된다.
결국 이 남자의 트리거인 아내에 포인트를 맞춘다. 아내에게 편지를 전해주겠다는 것.
하지만 조건이 있다. 자신과 함께 댄스 대회에 나가는 것.
자기를 아내 니키라고 생각하고 춤추라는 티파니, 춤이라고는 춰 본 적도 없는 팻.
처음부터 스텝이 엉키지만 둘은 감정의 교감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춤을 맞추어 나간다.
한편, 강박증 환자인 팻의 아버지는 팻이 있어야만 풋볼팀 이글스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글스에 배팅을 하기 때문에 더욱 예민하다.
겨우 팻을 설득해서 직관을 가지만 팻은 결국 거기서 도발하는 상대팀 팬을 또 시원하게 패버린다.
우리의 팻. 팰 때는 가차없다. 정신을 놓고 팬다.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사과하는 중에 제대로 열받은 티파니까지 찾아온다.
팻은 티파니와 만나기로 해놓고 말도 없이 약속을 어겼다.
티파니는 그의 탓을 하는 팻의 아버지에게 미신과 징크스에 대해 조곤조곤 반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름쟁이 팻 아버지의 돈을 다 따간 영감에게 '묻고 더블로' 배팅을 하자고 한다.
풋볼 대회에다가 댄스대회 점수까지. 10점 만점에 5점을 받으면 팻 아버지의 승리다.
누구라도 이기기만 하면 대박날 이중 배팅이다.
12월 28일, 댄스대회에 출전한 두 사람. 예상했듯이 그 대회에 팻의 전부인 니키도 온다.
팻과 티파니는 무대에서 지금까지 갈고닦은 기량을 선보인다.
심사위원 의점수는 정확히 5.0. 이글스도 이긴다.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과 티파니와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팻은 니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니키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인다.
티파니는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티파니를 쫓아 나간 팻은 티파니에게 편지를 건넨다.
팻은 지금까지 니키가 쓴 답장이라고 줬던 편지들을 다 티파니가 썼다는 걸 알고 있었다.
드디어 두 사람은 피해망상의 구름 위에서 현실로 무사히 착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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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팻이 니키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을 하는지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티파니가 나를 이렇게 멋지게 바꾸어주었다"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우울증은 흔한 병이다. 누구든 상처를 받으면 마음을 다칠 수 있다. 상처를 안 받아도 기질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
우울증이 있거나 우울증이 있는 가족이 주위에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정답을 아는 사람은 없다.
팻의 주치의 말처럼 약을 꾸준히 먹고 계획을 세우는 것. 그것도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함부로 말할 수는 없으나 우울증은 일부 유전적인 면도 있다.
문제가정처럼 비치지 않아도 도박중독에 강박증(아마도 도박 중독으로 인한 강박증이겠지만) 아버지, 영화 내내 수동적인, 겁먹은 듯한 어머니 아래에서 팻이 감정적으로 조금 미숙할 수도 있다.
가정에서부터 우울증의 토대가 깔린 시나리오였다면 가정을 조금 더 극적으로 보여주었겠지만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환자에 집중한 영화이다.
악화일로였던 팻과 티파니의 상처는 상처받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극복된다.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일 필요는 없을 테고,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사랑은 사람을 바꾼다.
"우리가 제일 잘 하는 게 사랑"이라는 영화 <마미>의 대사가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쉽게 많이 사랑해버릇하고 쉽게 다치고 상처받는 내 사랑도 이제는 특기라고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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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사라진 노동운동의 A컷을 찾아라!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멜팅 아이스크림(Melting Icecream)
South Korea/2021/70min/홍진훤 감독 작품
모든 달콤한 것들은 녹는다. 녹아 없어지기에 더 달콤하다. 〈멜팅 아이스크림〉에서 ‘달콤한 것’은 노동운동이다. 영화는 9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시대의 노동운동의 푸티지를 몇몇 회고를 동반하여 풀어놓는다. 그리고 이 서사는 수해로 훼손된 투쟁 현장의 A컷 사진을 복구하는 서사와 교차한다.
두 서사의 교차가 의미심장하다. 훼손된 A컷 사진은 노동운동의 은유다. 모든 노동자의 연대 투쟁을 강조했던 사람들은 제도권에 들어간 후 노동을 버리고 ‘민주화’만 강조했다. 노동자와 함께 싸웠으나 성과는 독차지했다. 영화가 세 명의 ‘진보’ 대통령 시대의 노동 투쟁을 보여주는 건 노동을 뺀 민주화가 노동자의 삶과 노동 현장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고발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시민과 노동운동의 거리는 좁혀지길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멀어졌다. 영화의 마지막, 코로나 시대에 ‘필수 노동자’라 일컬어졌지만 금세 버려진 노동자 집회를 무심한 듯 힐끗하고 지나가는 시민들의 모습이 이를 증언한다. 이제는 더 이상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는 노동 문제처럼, 훼손된 A컷 복구도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즉 〈멜팅 아이스크림〉은 철저한 실패에 관한 영화다.
지난 몇 년간 1970~8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관객의 호응을 끌어낸 영화가 많았다. 이들 영화는 반동분자 취급당하던 시민들의 명예를 복권하여 집단의 역량으로 재의미화한다는 점에서 분명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멜팅 아이스크림〉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왜 그들 영화에 함께 싸웠던 노동자(혹은 노동자인 시민)는 등장하지 않는가?
최근 개봉한 영화 〈재춘언니〉, 〈미싱타는 여자들〉이 떠올랐다. 〈멜팅 아이스크림〉의 문제의식에서 보면, 이들은 모두 변방으로 밀려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중심’으로 옮기고자 노력하는 영화다. 언젠가 다시 맛볼 날을 기다리며,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즉 노동 관점의 소중함)을 추억한다.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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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고양이들의 아파트
건물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재건축이든 상수도를 포함한 일대를 완전히 밀고 새롭게 만드는 재개발이든 집을 지키려는 사람과 지으려는 사람 사이의 갈등은 상대적으로 익숙했다. 중학교 교과서에서 보았던『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시발점이 되었고, 이후 훨씬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 생겼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일 거다. 길거리에서 어른들의 대화를 들었다. 이번엔 재개발 진짜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그를 마주 본 상대방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십 년 전부터 나왔던 얘기라고. 절대 못한다며 단정적으로 말했다. 어린 내게 이해하기엔 어려운 말이라 엄마에게 물었던 것 같다. 재개발이 뭐냐고.
엄마의 답은 간단했다.
이 동네가 없어지는 거야.
표현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기억난다. 놀라움과 걱정이었다. 아무리 내가 은색 대문 안 반지하 집을 싫어했어도 집은 집이었다. 쉬고, 먹고, 자고, 숨어있는 곳. 안전한 공간을 잃게 된다는 말에 불안해하자 엄마가 다독였던 것 같다. 그런 일은 안 생길 거라고.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가 나왔다가 흐지부지 된 적이 여럿이랬다.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자들이 강경했는지, 그 외 어떤 이해관계가 얽혔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것까지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어렸고, 지금의 엄마에겐 흐릿하고 머나먼 옛이야기이니까. 뭐가 됐든 재개발 일정이 정해지자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은 이동해야만 했다.
누가 그랬던가. 집은 터전이라고.
재건축과 재개발은 아주 달랐다. 동네를 허무는 건 집이라는 공간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동네 언니들과 밤마다 놀던 작은 공원이, 그들에게서 자전거를 처음 배웠던 가로등 아래 골목이, 심심할 때마다 놀러 갔던 옆집 동생 네를 잃는다는 의미였다.
이런 건 어느 때고 준비가 될 리 없다. 그렇기에 멋모르는 상황에서도 쫓겨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훗날 이 공간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큰 골목에서 작은 골목으로, 그리고 모퉁이를 돌면 나오던 은색 대문을 가늠할 수 있을까. 2,000세대가 넘는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위해 헐어낸 무수한 가구들. 모든 것이 흙으로 뭉개진 광경을 펜스 너머로 보며 깨달았다. 모든 게 다 사라졌다고.
그런데 사람과 달리 붕괴와 파괴를 인지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여전히 그곳의 거주한다면, 그 생명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사람들이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할 때에 아무것도 모르고 여전히 그곳을 집으로 여기는 존재들을 누가 끄집어낼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영화의 출발점은 여기서부터다.
드론의 시선이 첫 장면이었다. 딱 보기에도 높은 직사각형의 건물들, 그 사이를 연결한 길목, 초록의 향연.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아파트 단지.
초록이 우거진 이곳은 곧 흙으로 뒤덮인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잡았던 이들은 이미 떠났다. 오랜 세월 약국을 운영하던 약사도, 마지막 식사를 챙겨주듯이 고양이 밥그릇에 음식과 물을 담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고양이들은 약국 앞에서 햇빛을 쬐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길에 비비적대기도 하고, 가만히 앉아 세상 구경에 한창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약국 문이 굳게 닫혔다. 철문이 내려진 채로. 특정 날짜까지 영업을 한다는 종이를 보고서 우리는 그 의미를 파악하지만, 고양이는 한결같이 오던 자리를 찾아온다. 사람들을 기다리는 거라고 확신할 순 없으나 적어도 그들의 터전이 사라지는 중임을 절대 인지하지 못하는 건 맞겠다.
겁도 많고, 경계심도 많고, 무엇보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들을 어떻게 무너질 건물 밖으로 이동시킬 수 있을까? 떠난 사람들의 자리를 메우듯 제 발로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으니, 동물권 단체인 '카라'였다. 거주민들과 구분하여 표기를 쉽게 하기 위해 단체 이름을 언급했을 뿐, 그들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집중해야 할 건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다.
몇 천 세대가 살던 단지를 돌아다니며 곳곳에 숨어있는 고양이들을 찾고, 사진을 찍는다. 기록을 위함이다. 고양이가 얼마나 있는지, 각각을 무어라 부를지 알아보고 고민하기 위한. 배식도 잊지 않는다. 캔과 물을 빈 그릇 곳곳에 채워 넣어 굶주리지 않도록 한다. 어쩌면 고양이들에겐 큰 차이가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누군가가 자신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말을 걸고 있으니.
고양이 입장에서는 평화가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길에 떠도는 고양이들은 야생의 습성이 그대로 남아있어 사람 손을 탄 고양이들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예민하다. 사무실에 데려갔던 치즈가 딱 그러했다. 조금만 다가서도 하악질을 해대고, 사람이 손을 내밀면 할퀴거나 물고,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며 공간을 엉망으로 만들고. 이 고양이를 대하던 사람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왜 인상적이었냐 하면, 지긋지긋해 보여서다. 신념과 믿음, 그리고 사랑으로 똘똘 뭉쳤을 얼굴을 상상했는데 막상 마주해 보니 그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 지친 어느 직장인이었다. 뭐가 다르다고 생각했던 걸까. 결국 고양이는 고양이고, 사람은 모두 사람인데. 그때서야 이 다큐멘터리의 흐름에 집중이 되었다. 아주 먼 이야기만은 아닐 것 같아서.
고양이들을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는 과정은 무척 많은 일을 요했다. 앞서 말한 고양이 기록과 배식은 손톱만치도 안 되는 수준으로. 무엇보다 가장 어려워 보였던 건 포획이다. 다친 걸 치료하든 검사를 하든 중성화를 시키든 케어를 하려면 고양이를 데려가야 하는데, 마구잡이로 쫓아다닐 수 없으니. 해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고양이가 알 리 없지만 사람 또한 고양이의 마음을 모르니까 서로 비등비등한 셈 칠 수 있겠다.
이때 사람들의 모습은 꼭 고양이 같았다. 사냥감을 노리려고 조심히 다가서고, 들키는 순간 허탕 치고, 다시 때를 기다리고. 조심조심 살금살금, 그러나 재빠르게. 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자신들이 도와주려는 동물들을 그들이 닮아가고 있다는 걸.
한 사람이 나비야, 나비야, 애달프게 고양이를 찾아다니다가 다른 고양이를 발견한 장면이 생각난다. 음식 먹기에 집중한 고양이에게 나비는 어디 있느냐고 묻는 태도가 무척 자연스러웠다. 이름을 붙여서일까. 고양이, 그러니까 사람과 다른 동물을 찾는 게 아니라 그냥 어떤 존재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답답함을 듣는 것 같았다.
2시간 가까이 그들의 고양이 터전 이동 작전을 보다 보니 작게나마 나의 시선도 달라진 기분이었다. 왜 고양이를 도우려는 건지, 무엇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는지, 어떻게 이 지난한 과정을 지속할 수 있는지 등 궁금증이 사라졌다. 그저 받아들였다. 습관처럼 체화된 일의 계기를 콕 집어 말할 수 있을까. 말한다고 한들 그게 얼마나 정확할까. 그때의 순간적인 감정과 지금의 행동은 결이 다를 수도 있는데. 처음은 처음이고, 지금은 지금일 뿐이다.
카페에서 한데 모인 사람들이 이 작전에 대해서 논쟁을 펼쳤다. 겉보기엔 똑같이 고양이 구조 활동을 하지만, 그 의도와 의미가 완전히 다른 두 집단 사이의 갈등이었다. 어느 한 분이 강경하게 말했다. 이건 고양이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대단한 희생도 뛰어난 모성도 아니라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고양이에게 자신들은 캔따개일 뿐이라는 그 말에 왠지 모를 웃음이 지어졌다. 시원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자신의 생각을 특별히 꾸며내거나 돌려 말하지 않고 단호하게, 어찌 보면 날카롭게 찌르는 말투는 웬만큼 생각 정리가 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 특히 동물을 위하는 건 사람들의 모순된 반응(대단해/굳이?)이 양쪽에서 들릴 일이니 말이다.
나는 두 방향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고, 나 또한 그 사람들과 비슷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한 채.
재건축 현장 주변에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그래서 고양이들을 해할까 봐, 모자와 외투로 존재를 가리며 아직 터전을 옮기지 못한 고양이들에게 또 한 끼를 건네는 사람들. 고양이가 사람처럼, 사람이 고양이처럼 되는 순간들. 끝이 없음을 알면서도 끝내지 못하는 마음들. 기꺼이 책임지려는 이들의 노력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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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강의 <세이레>
본 글은 시사회 참석 후 씨네랩에서 리뷰 작성을 요청받아 작성한 것.
첫인상은 그저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져 헤드>를 떠올리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많다. 어떤 영화인지도 모르고 신청한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영화에 관련한 정보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포스터를 스크린에 띄워주는 바람에 배우들의 이름과 영화의 분위기만 짐작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상영되는 영화의 정보가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감독의 이름과 배우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여하간 그렇게 만나게 된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한국 공포 영화의 발전 가능성과 한편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영화를 만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혹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은 알겠지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많은 이유가 있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수백 번 읽어야 하고, 생각해야 하며, 대화를 나눠야 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어 본 사람은 영화를 만들 사람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니가 좋아하는 걸 해.” 영화가 끝난 후 기자 한 명이 감독에게 미신을 믿는지 질문을 던졌다. 감독의 대답이 이 영화의 아쉬운 부분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충족시켜 주었다. 감독은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미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관객은 믿음이 갈 턱이 없다. 이 영화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불가사의한 일은 마치 감독이 믿음이 가지 않아서 가려놓은 것처럼 가라앉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미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공포 영화의 새로운 인상을 만들어낸 까닭은 호러 영화의 공식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공식에 충실하다는 의미는 컨벤션의 의미가 아니다. 호러 영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억압”을 다룬다. 나는 공포 호러 영화를 볼 때 억압의 논리가 정당하지 않으면 그 영화는 실패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여하간 <세이레>는 미신이 소재이지만 영화를 끌고 나가는 원동력은 “죄책감”이다. 미신으로 영화를 끌고 가지 못하고 죄책감으로 영화를 끌고 가기에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보다는 밑으로 파고 내려간다는 느낌이 든다.
파고 내려가면서 영화는 종종 다른 길로 새는 듯한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썩은 사과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이 사과가 영화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니라 사족처럼 느껴진다. 겉은 멀쩡하고 속은 썩어있는 사과의 모습이 우진의 모습과도 닮았다는 감독의 대답은 더욱 사족 같다. 이 영화에서 사과가 계속 등장하는 것도 이상할 뿐 아니라 장모의 등장, 건강원 등은 어딘가 영화에 어울리지 못하고 그 주변을 배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부분은 발아되지 못한 씨앗의 느낌을 주는데 이것들만 가지고도 하나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중 단연 으뜸은 죽은 전 여자친구를 쌍둥이로 설정한 것이다. 이 부분은 나름 밀도가 있다. 긴장감도 충분하고 영화를 끌고 가는 원동력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이 설정 자체가 중간에 멈춰버린 느낌이다. 사실 쌍둥이 동생이 우진을 집 안으로 들이는 것과 집 안에서 속옷을 바라보는 이상한 쇼트들은 진전되지 않는다. 이것이 후반부에서 둘의 꿈속 정사 장면으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무언가 구멍이 뚫린 느낌이다.
이 정사 장면의 대응 장면은 우진의 마지막 꿈인 것인가. 영화에서 반복되는 악몽의 장면은 굉장히 많다. 마지막 악몽은 그의 아내가 그의 목을 찌르는 것이다. 이것은 죄책감에 대한 징벌적 장면으로 읽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동안의 악몽은 우리가 알고 있는 꿈의 개념으로 해석해도 된다고 보았을 때 왜 세영이는 사과를 먹고 싶다고 한 걸까. 그러니까 영화는 중요한 죄책감이라는 감정 자체로 영화를 이끌고 가지만 거기에 붙어있는 곁가지들은 영화를 멈춰 세우게 만든다.
그러나 몇 가지 디테일들은 인상적이다. 꿈 장면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도 시시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이유는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점이 존재하고 꿈이 현실보다도 더 우진을 설명해 주는 장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영화에서 지속되는 불길함 또한 지적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세영의 부고 문자를 받는 장면은 문자를 받기 전 줌이 먼저 들어간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줌 인 쇼트. 그러니까 카메라는 뭔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카메라와 편집은 이런 방식으로 불길함을 조성한다. <이레이져 헤드>로 향하는 마지막 쇼트까지 우진과 우진의 아이는 접촉을 했을까? 아직 한 번 본 것이어서 정확하지 않겠지만 접촉이 없다. 우진은 분유를 타기만 할 뿐 아이를 안거나 아이에게 스킨십을 하지 않는다. 감독은 영리하게 우진이 아이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아내가 막는 방식으로 연출한다. 결국 세영이가 유산했다고 했을 때 안도의 한숨은 현재의 아이에게 이어진다. 우진은 아이가 싫다. 그렇다면 그는 왜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게 되었을까? 이 질문이 영화를 위태롭게 만든다. 시사회에서 한 기자가 감독에게 왜 와이프의 말을 안 듣고 장례식에 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난 그 부분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세영이와 헤어진 지 1년 된 설정이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만약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맞다면 현재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는 무엇인가. 영화는 우진이라는 인물을 위태롭게 만든다. 자연 유산이었어도 마치 그가 아이를 유산시키려고 노력했던 뉘앙스를 부여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우진의 아이는 우진의 죄책감이 된다. 이것은 이 영화가 영화를 전개시키면서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던 공포를 모두 모아서 마지막 쇼트에 담은 것이 된다. 그렇다, 이제 우진은 평생 이 아이를 키워야 한다. 그가 죽을 때까지.
2022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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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친 삶속의 힐링 영화
여기! 본격 퇴사 권장 영화가 있습니다.
고단한 도시의 삶이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 사계절의
자연 속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며
지친 정신과 마음을 치료받는 힐링 영화!
무엇보다, SBS 방영 중인 '악귀'에서 너무나도 무서운 분위기 속의
미친 연기력을 보이고 있는 김태리의 힐링 가득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럼, 영화 리틀 포레스트 살펴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감독 : 임순례
각본 : 황성구
출연진 : 김태리, 류준열, 문소리, 진기주
개봉일 : 2018년 02월 28일
평점 : 9.01
스트리밍 : tvN, Wavve, 쿠팡
기획 의도
"잠시 쉬어가도, 달라도, 평범해도 괜찮아!
모든 것이 괜찮은 청춘들의 아주 특별한 사계절 이야기"
시험, 연애, 취업...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은 일상을 잠시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오랜 친구의 재하와 은숙을 만난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
평범한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은숙'과 함께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겨울에서 봄, 그리고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게 된 혜원
그렇게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며 고향으로 돌아온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된
혜원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는데...
여담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이가라시 다스케의 만화 <리틀 포레스트>를
한국 버전으로 리메이크하여 만들었다.
작품은 도시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농촌에서의 힐링을 보여주며 영화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및 군위군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영화의 힐링 때문일까, 개봉해 인 2018년도 최고의 한국 영화로 뽑히기도 하였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리틀 포레스트 결말을 살펴보자면...
편지 하나만 남기고 달랑 떠나버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겨진 편지를 읽고 또 읽어보지만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다.
뭔가를 해내야 하고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갑갑한 도시를 떠나
고향에서 사계절을 보낸 혜원(김태리)은
동네 친구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에게
쪽지 하나 남기고 다시금 조용히 고향을 떠난다.
이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집에는 문이 열려있겠을 발견하고
반가운 표정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어떻게 보면 다소 잔잔한 듯
아쉬움이 많이 남을 수 있는 결말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런 잔잔한 결말이라서 더욱더 영화가 잔잔하게
끝나지 않았나 싶다.
힐링 가득, 사계절을 보내며 만든 음식을 보면서
웃음과 치료를 받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입니다!
지치고 힘든 일상을 지내고 싶은 분들에게
숲속의 초록이와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한줄평 : 퇴사각, 시골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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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황스럽지만 결국 빨려들게 되는 그들의 우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 2022)
“당황스럽지만 결국 빨려들게 되는 그들의 우주”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액션, 판타지, 모험
러닝타임 : 126분
감독 : 샘 레이미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엘리자베스 올슨, 베네딕트 웡, 레이첼 맥아담스, 치웨텔 에지오프, 소치틀 고메즈
개인적인 평점 : 3.5/5
쿠키 영상 : 2개 (엔딩 크레딧 중간에 1개, 엔딩크레딧 후 1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줄거리
끝없이 균열되는 차원과 뒤엉킨 시공간의 멀티버스가 열리며 오랜 동료들, 그리고 차원을 넘어 들어온 새로운 존재들을 맞닥뜨리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 속, 그는 예상치 못한 극한의 적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타임라인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뉴욕에 남아있던 스티븐(닥터 스트레인지)은 전 연인 크리스틴의 결혼식에 참여하게 된다. 스티븐은 아직 크리스틴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남아있지만 크리스틴의 “행복하지?”라는 질문에 애써 괜찮은척, 행복한 척을 해 보인다. 그가 아주 지독한 후회를 느끼고 있는 찰나, 포탈이 열리며 괴물과 함께 멀티버스의 키를 쥐고 있는 소녀, ‘아메리카 차베즈’가 등장한다. 차베즈와 대화를 나눠본 결과, 여러 우주가 위험에 빠져있다는 걸 알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는 어벤져스 중 가장 유능한 마법사였던 완다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 다른 세계를 구하기 위해 여러 우주를 떠돌게 된다.
작년 12월 멀티버스의 시작을 알렸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개봉 이후 5달 만에 <닥터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했다. 제목부터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멀티버스를 팔 거야!”라고 선언한 이 영화는 말 그대로 혼란스러운 멀티버스 이야기였다. 영화를 보며 이 캐릭터들을 더 사랑하게 됐고, 2시간 동안 아주 즐겁게 즐겼다. 영화 안에 이것저것 차려진 메뉴가 참 많아 음미하기에 바빴다. 근데 정리가 덜된 밥상을 마음껏 즐기려다 보니 조금은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다운 눈호강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했을 때, 새로운 유형의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에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한 스티븐의 능력과 서사, 베네딕트 컴버배치 배우가 뿜어내는 매력. 그리고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영화가 보여준 웅장한 시각적 효과, 흔히 말하는 눈뽕! 그 눈뽕에 머리가 다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멀티버스’라는 키워드보다는 스티븐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이번엔 어떤 공간들을 보여줄지가 가장 기대됐다. <노 웨이 홈>에서도 스티븐이 만들어낸 공간을 볼 수 있었지만 다소 어색한 CG에 실망했던지라.. 그래도, 이번엔 닥터 스트레인지의 2번째 솔로 영화인데! 괜찮겠지!! 하며 희망 회로를 불타게 돌렸다. 그리고 희망 회로를 불태운 만큼 이 영화는 내가 만족할만한 퀄리티의 시각효과를 보여주었다. 첫 관람은 꼭 왕왕 큰 용아맥에서!!를 외친 보람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캐릭터의 색을 잘 살린 디자인과 다양한 우주의 모습, 반사의 활용, 영화의 메인 컬러 빨간색을 잘 활용해 시각적인 공포를 높인 부분, 역동적임과 동시에 긴장감을 높여주는 화면 연출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지금껏 본적 없는 어둡고 잔인한 마블 영화
마블 영화라고 하면 보통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이 봐도 괜찮은 영화, 슈퍼히어로 영화. 많은 관객들이 생각하는 마블의 이미지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좀 다르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배우들이 ‘새로운 마블 영화’,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라고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고, 예고편을 봐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듯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매우 어두운 톤을 갖고 있는 영화다.
분위기가 전보다 진중해지기도 했고, 어둡고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꽤 많다. B급 공포 영화의 명인으로 불리는 ‘샘 레이미’ 감독 특유의 역동적인 화면과 ‘마블 영화’라는 틀을 깨며 가감 없이 집어넣은 점프 스퀘어, 다소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상처와 액션 신들, 좀비물처럼 느껴지는 요소들도 꽤 많기에 ‘아이들과 함께 보는 마블 영화’라는 이미지는 잠깐 접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마블 영화’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색을 지켜낸 샘 레이미 감독의 능력에 감탄했다. 모 영화 같은 경우엔 마블 영화지만 너무 자신의 색을 지키는 바람에 말아먹은 경우도 있었는데…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정체성을 어느 정도 지키며 감독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닥터 스트레인지, 마블 영화로 이런 걸 한다고?
영화 개봉 전 공개된 홍보 영상 속, 샘 레이미 감독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 영화 정말 멋있다!’고 느꼈으면 한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아 이 영화 정말 멋있다!’ 150번도 더 말해 드릴 수 있다.
영화의 개봉일이 어린이날 전날이어서 그런지 ‘어린이날을 노리고 개봉한 마블 영화’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예고편을 안 보고 그 어린이날 연휴 개봉이 주는 느낌에 속은(?) 관객들이 꽤 많은 듯 보인다. 추가로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생각하고 간다면 꽤 놀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블이라고 이런 걸 안 하고 못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건 언제나 환영이다.
인간적인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이전에 개봉했던 <블랙 위도우>와 <노 웨이 홈>처럼 꽤나 인간적인 영화였다. 개인적으론 <엔드게임> 이후로 마블이 1대 히어로들의 상처를 하나둘 내놓고, 그것을 회복시키며 이들의 은퇴 수순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블랙 위도우>, <노 웨이 홈>, <호크아이>, 그리고 최근 예고편을 공개한 <토르: 러브 앤 썬더>와 이 영화까지. 커다란 전투를 마친 히어로들의 내면에 남은 아픔과 미련을 툭 까놓으며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안정감을 쥐어주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리 강인한 히어로여도 이들도 사람이기에 상처를 받고, 사랑을 하고, 아파하기도 한다. 스티븐의 경우는 능력을 얻고 칼자루를 쥐게 된 이후 연인 크리스틴과 헤어지게 됐고, 완다는 원치 않는 능력을 얻은 후 전투를 치르다 오빠 퀵실버와 연인 비전을 잃는다. 어디에도 풀어놓을 수 없었던 이들의 슬픔과 분노는 멀티버스의 문을 열게 되고, 스티븐과 완다는 멀티버스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깨우침을 얻는다.
사랑하는 모든 걸 잃은 완다, 어벤져스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을 때 언제나 이성적으로 결정을 해야 했던 스티븐. 큰 힘을 가졌기에 많은걸 희생한, 아픈 손가락이었던 두 사람이 한 영화에 나와 세상과 자신을 구해가는 과정이 개인적으론 다소 안쓰럽고 슬프기도 했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멀티버스를 꿰뚫는 단 하나의 키워드 ‘사랑’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스티븐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이별했고, 완다는 사랑을 지키지 못해 결국 악에 현혹된다. 얻지 못한 사랑을 마무리 짓기 위해 시작된 멀티버스 이야기는 돌고 돌다 결국 제자리를 찾는다. 스티븐은 깨진 시계의 알판을 고치며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던 완다는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죄를 알게 되고 또 다른 완다를 통해 위로를 받고 스스로를 희생하며 상황을 정리한다.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도 하고, 아프게도 하고, 지켜주기도 하고, 위로해주기도 한다. 각자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인물들은 조금씩 다른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들을 한 번에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랑’이다. <노 웨이 홈>에서 앤드류의 피터 파커가 그러했듯 스티븐 또한 또 다른 우주를 통해 사랑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위로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닥터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아쉬웠던 점
영화 자체는 정말 재밌었고, 타고난 과몰입러로서 온갖 감정을 다 동원하며 감상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았다. 개인적으론 완다를 100%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있었고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차베즈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며 다른 우주에 깜짝 등장한 캐릭터들이 그저 ‘작은 보너스’ 같은 느낌으로 반짝 빛났다 사라지는 것이 정말 아쉬웠다.
<완다 비전>을 본 관객이라면 완다가 왜 다크홀드에 손을 댔는지, 왜 드림 워킹을 하게됐는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겠지만, <완다 비전>을 보지 않고 영화 속 완다의 설명만 들은 관객이라면 그가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급발진을 한 빌런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완다의 마지막이 상당히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멀티버스 속 완다와 협력을 하는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 이상, 사실상 완다는 은퇴 수순을 밟게 될 텐데 이 캐릭터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한 게 못내 아쉬웠다. 매번 아픈 모습만 보였던 캐릭터인데 해방의 절차도 이렇게 어렵고 가슴 아프게 만들어버리다니… 속상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멀티버스의 문을 여는 새로운 능력자 차베즈는 배우의 매력, 서사와는 별개로 별다른 반짝임이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제 첫 등장이기도 하고, 멀티버스가 확장되며 차후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갈수도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기로 했다.
깜짝 등장한 캐릭터들은, 긴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영화에 프로페서가?!’하고 놀랐지만 별다른 의미 없이 지나쳐갔을 뿐… 아, ‘너를 믿는다’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하나 남기긴 했다…
최근 마블 영화를 보며 느낀 아쉬움들
마블이라는 프랜차이즈는 가히 독보적이고 거대하다. 마블 이전에도 마블 이후에도 여러 히어로 영화들이 제작되었지만 마블의 히어로들과 이들의 세계관을 이길 프랜차이즈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나 DC 히어로 같은 크고 훌륭한 다른 히어로 프랜차이즈도 존재하지만 대중들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히어로 영화’를 만들어온 곳은 마블이 아닌가. 마블은 마블만의 영화를 만들어냈고 그로 인해 관객들의 취향, 극장가의 풍경이 함께 바뀌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런 히어로 영화를 유치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이들의 거대한 자본력과 제작 형태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마블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거나 무조건적인 흥행 공식을 따르고 있는 건 팩트니까). 전세계적인 팬덤을 이끌고 있는 프랜차이즈인 만큼 마블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 다양하다. 실제로 2019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마블은 시네마가 아닌 테마파크에 가깝다.”는 한 마디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국내 팬들이 바라보는 마블의 이미지 또한 가지각색이다.
이번에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고 퇴장로에서 들은 이야기와 개봉 전, 후 SNS의 반응을 보면… 최근 마블의 이미지가 꽤 하락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장 눈에 띄는 불만들은 크게 <엔드게임> 이후 은퇴한 캐릭터들에 대한 아쉬움 / 예, 복습에 대한 부담 / 개연성의 실종, 캐릭터들의 매력 부재 등이 있다. <엔드게임> 이후 1세대 히어로들의 은퇴는 당연한 수순이었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치고 다른 아쉬움들을 짧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마블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프랜차이즈이다 보니 새로운 히어로가 등장한다 해도 이전의 캐릭터나 세계관을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상태에서 디즈니 플러스가 런칭되었고, 그 부담은 배로 늘어났다. 이번 영화만 해도 꼭 <완다 비전>을 봐야한다, <로키>, <왓이프>도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디즈니 플러스 역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기 전, 디즈니 플러스에서 <완다 비전>을 만나보라며 광고를 하기도 했다.
다른 시리즈를 모르면 새로운 영화도 온전히 즐길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를 공부하고 가야 하다니. 상당히 부담스럽고 피곤한 상황이다. 물론 실제로 ‘이걸 안 보면 이해 못 함!’ 정도의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어느 정도 설명을 해주긴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다음에도 디즈니 플러스 예, 복습에 신경 써야 할지… 걱정되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재밌게 즐길 순 있지만 ‘알고 가야 더 보이는 영화’라고 한다면, 결국 이전 것들을 보지 않으면 100% 즐길 수 없다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러다 정말 ‘고인물들만 볼 수 있는 영화’가 되는 건 아닐까?
오래된 프랜차이즈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는 그만의 특별한 감동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커다란 세계관 안에서 뛰노는 것도 정말 즐거운 일이란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 사이의 구분은 지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계속 이렇게 장벽을 높여간다면 자칭 덕후가 아닌 사람은 더 이상의 접근을 피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그리고 최근 들어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개연성의 실종이다. 활활 타오르는 덕심을 잠깐 내려놓고 말하자면, 영화는 분명 재미는 있는데… 가끔 개연성을 잃는다. 지금은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왜 이건 이유를 말 안 해주지?”라는 질문이 떠올라도 배우들을 보며 어느 정도 흐린 눈을 하고 있지만 이 흐린 눈 필터를 언제까지 장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쉬워도 다시 티켓을 끊게 되는 테마파크
전체적으로 아쉬운 부분들도 있고, 어떤 영화는 나를 크게 실망시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당분간 이 환상적인 테마파크 안에 머물 것 같다. 적어도 오래 함께해온 1세대 히어로들이 남아있는 한은 말이다. 이만큼 나를 즐겁고 슬프고 설레게 하는 프랜차이즈가, 이렇게 성공한 테마 파크가 또 없기 때문이다. 이래서 아쉽고 저래서 아쉽다고 말하면서도 토르가 개봉하면 당장 달려갈 내 모습이 벌써 눈에 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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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팬, 웬디의 시각으로 새롭게 재해석되다-영화 웬디
올해가 피터팬 탄생 110주년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피터팬을 재해석한 웬디 라는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개봉 전 시사회에 참석하여 영화를 관람하고 왔어요!
원작과 마찬가지로 판타지 장르의 성향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조금 다른 영화로 만들어졌는데요.
웬디가 중심 인물이 되어서 피터를 만나면서 한 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어요.
꽤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에요.
나이 듦에 대한 생각과 아이와 노인을 대비시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냅니다.
특히나 아름다운 섬의 풍경과 신비로운 고래의 모습이 눈길을 잡아두는 영화입니다.
단, 일반 판타지 물의 오락적인 성향은 적은 영화에요. 잔잔하고 진중합니다.
그래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조금 심심한 듯한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들은 유명한 배우가 나오지는 않지만 웬디 역을 맡은 데빈 프랑스의 좋은 연기를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봐주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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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유령인데 어쩌라고> 공식 예고편
나쁜 X이라고 부르든지 말든지. 라나 콘도어 출연의 새로운 시리즈, 넷플릭스에서 곧 공개 예정. 《유령인데 어쩌라고》를 시청하세요.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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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나리>
2021년 전 세계가 기다린 어느 한국 가족의 원더풀한 이야기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