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3-04-27 07:50:31
피칠갑 가스라이팅에서 탈출해 혁명적 갓생 살기
〈렌필드〉 리뷰
7★/10★
시작은 사소했다. 그러나 그 사소한 시작이 모든 걸 바꾸었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 렌필드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돈을 벌고자 드라큘라 백작을 만난다. 하지만 비서가 돼달라는 드라큘라의 제안에 솔깃해 이를 받아들인다. 렌필드의 일을 간단하다. 햇빛을 쬐면 안 되는 드라큘라의 거처를 마련하고 그가 계속 강한 힘을 가진 불멸의 존재로 남을 수 있게 ‘먹이’를 공급하는 것.
렌필드는 나름의 ‘양심’을 발휘해 사람들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만 고른다. 하지만 드라큘라는 ‘순결한’ 피를 원한다. 드라큘라의 힘을 나눠받아 기쁘게만 살아오던 렌필드가 자기 존재와 행위에 의문을 품는 최초의 순간이다. 그러던 중 렌필드는 거대 범죄 조직에게 가족을 잃은 열혈 형사 퀸시를 만나 우연히 생명을 구하는 일의 가치를 깨닫고 드라큘라의 욕망과 자기 욕망을 조금씩 분리해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드라큘라는 유능한 비서인 렌필드를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 없다. 나아가 범죄 조직과 공조해 지금처럼 몰래 도망 다닐 필요 없이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고용주와 노동자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임박한 것이다.
피가 낭자한 B급 고어 액션과 코미디를 버무린 영화 〈렌필드〉는 영화 그 자체로서의 재미도 충분하다. 독특한 콘셉트의 영화를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인상적이다(특히 드라큘라로 분한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가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어 액션과 코미디가 자아내는 쾌감과 웃음에 고용주와 노동자,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의 노사 관계 전반에 관한 의미 있는 질문과 통찰까지 새긴다. 적극적인 메시지 독해 없이 봐도 즐겁겠지만, 영화에 담긴 의미까지 살펴본다면 재미가 더 커질 것이다.
먼저 렌필드가 생명 구하기의 가치를 깨닫고 느끼는 최초의 감동에 주목해보자. 이전까지 렌필드는 자기 욕망을 완전히 잊은 상태였다. 즉 고용자 드라큘라의 욕망이 곧 그의 욕망이었다. 때문에 구체적인 업무 지시가 없어도 자기가 먼저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직업적 소명’을 다했다. 물론 고용자와 노동자의 욕구가 일치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자본주의 사회가 모두 ‘돈’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듯이 말이다. 문제는 이 공동의 목표가 공공에게 해가 될 때다. 자본주의가 이윤을 내려면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하거나 환경을 파괴해야 하듯이, 렌필드가 드라큘라를 만족시키려면 누군가의 생명을 헤쳐야만 한다. 이는 렌필드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요컨대 누군가를 죽여 드라큘라에게 갖다 바치는 렌필드에게는 생명의 소중함을 자각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퀸시의 진정성 어린 감사 인사로 렌필드의 가치관에 균열이 인다. 드라큘라의 먹잇감이 사실은 소중한 존재였다면? 그리고 사실은 자신이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데 더 큰 행복을 느낀다면? 더불어 자신의 노동 없이는 드라큘라의 악행이 지속될 수 없는 것이라면?
문제는 렌필드의 각성이 즉각적인 실천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드라큘라의 가스라이팅 때문이다. 그는 자신만이 렌필드에게 삶의 의미와 힘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렌필드에게 자신이 준 힘이 달콤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그러다 끝내 렌필드가 돌아오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자 또 다른 사람을 구해 렌필드의 일을 맡긴다. 새로운 행복을 찾은 렌필드는 자꾸만 흔들리고 약해진다. 드라큘라 없이는 자신이 정말 보잘것없는 존재라면? 자신이 그저 누군가로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일 뿐이라면? 각성 이후 방황하는 렌필드를 붙잡아주는 건 퀸시다. “그(드라큘라)와 맞서기 전엔 자유로워질 수 없어요.”
이처럼 〈렌필드〉는 꽤나 과격한 혁명을 주창한다(렌필드와 퀸시가 문자 그대로 드라큘라를 몽둥이찜질하는 장면을 보라). 렌필드가 자본주의로 피폐해진 노동자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힐링 산업’을 전유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집단 상담 치료에서 권태롭고 무기력하게 반복될 뿐이던 ‘동반의존자(codependent)’라는 말이 자본주의 노사 관계를 거스를 노동자 연대로 탈바꿈되는 장면 말이다. 렌필드가 드라큘라에게 받은 힘을 바탕으로 그와 싸움을 벌이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내재적인 것이든 학습한 것이든 세상을 뒤엎고 선한 자기 욕망을 실천할 힘이 있다. 다만 자본주의 가스라이팅을 거스를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의 역능과 욕망을 새롭게 정향하려는 B급 고어 코미디의 시도가 당신에게도 무언가를 촉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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