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서2023-04-28 19:57:19
<클로즈/Close, 2023>
루카스 돈트 감독의 신작인 <클로즈>를 시사회로 먼저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관람하고 왔습니다. 루카스 돈트의 전작인 <걸>도 인상적으로 봤는데, <클로즈>도 좋은 영화였습니다.
전작인 <걸>에서도 느껴졌지만, 루카스 돈트는 주인공의 심리와 감정을 굉장히 섬세하게 담아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이렇게 섬세한 터치는 극의 상황에 쉽게 몰입하고 주인공의 감정에 강력하게 이입할 수 있게 만듭니다. <클로즈>에서도 마찬가지로 끈끈했던 우정 사이에 생긴 거대한 벽을 마주한 주인공 레오의 감정선을 찬찬히 짚어내는데 성공하면서 상실의 고통을 딛고 한층 성장하는 성장 영화로서의 면모도 훌륭합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저지른 잘못을 자신이 스스로 고백하는 장면에 도달하는 순간, 착실히 쌓아 올린 감정이 마음을 흔듭니다.
촬영이 훌륭한 영화입니다.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시골이 굉장히 유려하면서도 아련하고 쓸쓸하게 다가옵니다. 마치 어떠한 사랑이나 우정이 타인에 의해 정의되지 않은 세계를 담아내는 것 같은데, 그 세계에 타인의 시선이 침범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아픔을 딛고 성장하는 과정을 잘 그려냅니다. 그리고 클로즈업을 굉장히 영리하게 사용하는데, 감정의 변화를 잘 담아내는 카메라가 인상적입니다.
두 소년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가 실로 대단합니다. 에덴 담브린과 구스타브 드 와엘이 보여주는 연기의 합이 단단합니다. <로제타>의 에밀리 드켄도 오랜만에 얼굴을 비추는데, 좋은 연기를 선보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레오 홀로 감정을 표출하는 장면이 많은데,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이용한다면 조금 더 흥미로워질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달까요. 그리고 담백한 연출이 인상적이긴 하나 이야기 자체가 독특하지 않고 다소 예상이 가능한 전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쉽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영화인만큼 좋은 영화고, 전작인 <걸>만큼 주인공의 감정에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어린 날의 상실과 성장을 꼿꼿하게 응시해 내는 영화였네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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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고 돌아 마주한 자신의 원죄
2010년부터 매년 가을마다 기존 장편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소재와 장르로 퀄리티 높은 단막극을 보여준 KBS 드라마 스페셜이 코로나 상황을 맞이한 시장 변화에 맞춰 2021년부터 선보인 ‘TV 시네마’ 프로젝트로, 11월 23일 CGV 단독으로 관객을 찾아온 영화 유포자들 리뷰입니다. 얼마 전 ‘귀못’도 그렇고, 작년에도 사회의 현실과 미래 모습을 담아 미스터리, 공포, 스릴러 등 각기 다른 장르의 ‘희수’, ‘F20’, ‘통증의 풍경’, ‘사이렌’으로 찾아왔던터라 익숙한 관객들도 많을 듯합니다. OTT 시장으로 인해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허물어져 반드시 변할 수밖에 없는 공영 방송이라는 틀에 맞추다 보니 아직 미완적 과정에 놓인 듯 보이지만 매해 시의적절한 이야기가 있어 관심 있게 지켜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이번 작품 역시 극장에 개봉 뒤 Wavve를 통해 선공개 스트리밍 서비스가 되고 2022년 12월 28일에 TV로 방영될 예정이니 참고하시고요.※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영화 유포자들 정보 및 예고편
당신의 취미 생활은 온 세상이 알게 될 겁니다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며 결혼을 목전에 둔 유빈, 약혼녀 선애가 해외 업무차 자리를 비우자 그의 오랜 친구 상범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며 클럽으로 그를 이끌고 갑니다. 그리고 어느 방에 끌려가 유흥을 즐기다, 쓰러지게 되는데, 일어나 보니 전날 밤의 기억과 핸드폰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급하게 돌아온 선애를 우여곡절 끝에 맞이하고 급하게 새로 폰을 개통하는 찰나, 의문의 사내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3천3백만 원을 구해오지 않으면 은밀한 취미를 세상에 공개하겠다는 협박을 받는데...
예고편│ Trailer
영제: The Distributors│감독: 홍석구│각본: 정우철출연진: 박성훈, 송진우, 박주희, 지민혁, 김소은, 임나영 외 多장르: 드라마, 범죄, 스릴러│상영 시간: 101분국가: 한국│등급: 15세 관람가평점: 관람객 9.0, 네티즌 7.46, 기자·평론가 4.0, 왓챠피디아 2.2제작: KBS , 아센디오│배급: 와이드 릴리즈(주)개봉일: 2022년 11월 23일시청 가능 서비스: 현재 극장 상영 중, 이후 Wavve 공개# 영화 유포자들 평점
사회 문제 인식을 전한다
2020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은 물론, 국제 사회에도 알려지며 외신들도 엄청난 주목과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N번방 사건’에 대한 고찰을 담아내려 합니다.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일반적 상황이라기보다 협박 받았지만 과거 자신의 행위로 인해 과연 누가 범인인가를 생각하기보다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강화를 향한 개개인 스스로의 의식 변화를 요구하는 모양새를 취하죠. 이는 현재 최악의 상황에 놓인 유빈이 회상하는 과거로 알게 되는 범죄 행위와 뻔뻔함이 묻어나 그가 말하는 인간적 해결 방법이란 모순적 발언에 씁쓸한 분노를 만듭니다. 결국 가해자를 마주한 마지막 장면에서 마치 거울을 본 듯 놀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자신의 범죄 흔적이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왔다는 걸 느껴지게 합니다.
현대인들에게 필수가 되어버린 채 점차 익명성이 하나의 특징이 된 소셜 네트워크의 빈틈을 파고든 사이버 범죄 속 숨어있는 가해자의 민낯에 접근하며 분노로 시작해 권선징악의 희망 사항을 전달합니다. 며칠 전 뉴스를 통해 호주에서 접한 ‘L 씨’처럼 끝까지 추적해 붙잡힌 그 실체에 어쩌면 약간의 카타르시스도 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브라운관에서 주로 활동한 박성훈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죄의식과 함께 혼돈에 빠지는 모습은 앞서 얘기한 그 미묘한 경계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도유빈이라는 인물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일종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KBS 드라마 스페셜 TV 시네마라는 테마로 제작된 영화라고 하지만, 아직은 그 사이에서 헤매는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를 보여주기엔 미장센이나 복선이 단막극 그 이상의 연출이 보이진 않고, 대사 역시 의도적이긴 하나 장면과 어울린다 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공영 방송의 가이드라인이 케이블이나 OTT에 근접하기엔 어려웠다고 할까요? 그렇지만 엔딩의 미러 장면은 노골적이라 해도 확실히 전달해 주고 싶은 메시지를 채워준 듯해 기억에 남았습니다. 과도기라 장점도, 단점도 명확했지만 앞으로 계속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줄 KBS 드라마 스페셜 TV 시네마에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네요. :)한 줄 평 : 개개인의 의식변화가 필요하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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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 한 여자를 사랑하다니, 그것도 이토록 격렬하게!
8★/10★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친밀성‧사랑의 미묘한 감정을 포착해 극적으로 만드는 데 가장 탁월한 재능을 가진 감독 중 하나다. 상류층 중년 여인의 마음에 불어닥친 고요한 폭풍을 펼쳐내는 〈아이 엠 러브〉(2011),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싶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 사회가 금지하는 사랑을 ‘식인’에 빗댄 충격적이고도 강렬한 러브 스토리 〈본즈 앤 올〉(2022) 등등. 그가 야심 차게 도전한 공포영화 〈서스페리아〉(2019)가 영 호불호가 갈렸다는 점을 복기해보면, 아무래도 감독의 재능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췄을 때 극대화되는 듯하다. 〈챌린저스〉는 이를 또다시 입증한다. 〈챌린저스〉를 본 관객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감독님, 제발 앞으로는 다른 데 한눈팔지 말고 이런 영화만 만들어주세요!”
여기 테니스 선수 아트가 있다. 아트는 ‘위대한 선수’는 아니지만 ‘훌륭한 선수’ 축에는 든다. US 오픈 우승을 노리고 있고, 의류 브랜드에서 테니스복을 협찬받으며, 자동차 광고를 찍을 정도의 선수 말이다. 아트는 US 오픈 도전 직전, 최근 좋지 않은 성적으로 하락한 자존감 회복을 위해 하부 리그에 참석한 상태다. 만약 이 대회에서 우승해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다면 US 오픈 우승이라는 목표에 더한층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런데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한 대회에서 뜻밖의 상대를 만난다. 패트릭이다. 모텔비를 결제할 돈도 없어 폐차 직전의 허름한 차에서 쪽잠 잔 후 대회에 참가한 그는 US 오픈은 고사하고 선수 랭킹도 처참한 별 볼 일 없는 선수다.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반전의 기회도 거의 없다. 그런데 경기가 묘하게 흐른다. 아트는 내내 예민한 채 긴장한 표정인데 되레 패트릭은 여유롭다. 심지어는 아트를 조롱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 이 둘에게는 테니스에 한정되지 않는 오랜 인연이 있다. 어쩌면 아련한 우정이고 어쩌면 지독한 악연이다. 둘은 필생의 라이벌이다. 테니스에서도, 사랑에서도.
태초에 타시가 있었다. 유망한 테니스 선수이자 퀸카인 타시는 청소년 시절 같은 대회에 참석한 아트와 패트릭을 단번에 매혹한다. 타시 앞에서 아트와 패트릭은 퀸카와 뭐라도 해보고 싶은 얼빠진 십 대 소년일 뿐이다. 문제는 타시가 폴리아모리가 아니라면, 두 사람 중 한 명은 쓴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얼빠진 두 소년과 달리 타시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정반대다. 훗날 부상으로 프로 데뷔 직전 선수 생활을 끝내고 코치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전까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실력과 멘탈을 갖춰 아트와 패트릭이 넘보지도 못할 레벨의 테니스 유망주였다. 테니스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타시는 침을 꼴깍 삼키며 자신들 중 누구를 선택하겠느냐 묻는 애타는 두 남자에게 답한다. 내일 시합에서 이기는 남자를 고르겠다고. 테니스 랠리가 사랑의 랠리로 확장된다. 스포츠가 사랑이 되고, 사랑이 스포츠가 된다. 절대로 지면 안 되는 게임의 시작이었다.
그 후 10여 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아트는 타시의 남편이자 그녀가 코칭하는 선수가 되었다. 타시는 패트릭에 비해 잠재력과 실력 모두 떨어지던 아트를 ‘훌륭한 선수’로 키워냈다. 10여 년 전의 시합에서 패트릭이 승리했다는 점을 덧붙여야겠다. 그렇다. 과거의 타시는 연인으로 패트릭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지금 아트가 타시의 남편이고, 그저 ‘구남친’일 뿐인 패트릭이 타시에게 능글맞게 굴며 아트를 조롱할 수 있는 이유는? 영화를 직접 봐야만 한다. 구구절절 줄거리 설명으로 10년간 불꽃 튀었던 세 사람의 관계 역동을 요약하기는 불가능할 테니까.
영화는 연애에서의 친밀성과 남성성 문제, 여성의 주체성을 넘나들며 아찔한 랠리를 이어간다. 그것도 격렬한 시합에서 통통 튀며 코트를 오가는 테니스공의 속도로. 현재 펼쳐지는 시합과 십수 년간 세 사람이 겪어온 과거를 교차하며 펼쳐내는 숨 막히는 랠리는 도파민을 폭발시킨다. 테니스, 사랑의 승자가 누구일지를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두 남자는 타시가 벌여놓은 사랑/테니스의 판 안에서 질투심과 열등감을 동력 삼아 움직이지만 종종 판을 뒤집어 게임의 주인이 되고, 한 여자는 능숙하게 두 남자를 주무르며 사랑/테니스에서 목표한 바를 이루지만 예측을 불허하는 욕망의 방향성에 종종 무릎 꿇는다.
이 최종 승부에서 아트와 패트릭은 이제 타시와 테니스를 두고 벌이는 싸움의 결판을 내야만 한다. 지금까지는 줄곧 타시가 이들 관계를 주도해왔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두 남자는 지금껏 타시의 장기말이었다.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생애 단 한 번 ‘남자’가 되어 타시에게 스스로를 증명해내야만 한다. 겉보기에는 번드르르하지만 속으로는 늘 타시가 떠날까 전전긍긍하는 아트와 유망주 시절 이후 모든 면에서 실패의 연속인 삶이었지만 성장하지 못한 채 소년 상태에 머무른다는 바로 그 이유로 종종 매력을 뿜어내는 패트릭. 누가 진짜 타시에게 어울리는 남자이고, 코칭받을 만한 테니스 선수인지 이 한 게임에서 모든 게 결정된다.
테니스 게임의 박진감을 돋보이게 하는 독특한 카메라 앵글과 아드레날린 솟구치게 하는 음악, 질척거리는 치정의 감정이 이렇게 다이내믹했던가 탄복하게 만드는 연출이 삼박자를 이루는 이 영화는 두고두고 반복해서 보고 싶을 만큼의 재미와 매력을 갖췄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수작을 볼 때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 감정의 역학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에 푹 빠지곤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래서 나는 〈챌린저스〉를 계기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재능을 추앙하기로 했다. 그는 이전부터 뛰어난 감독이었지만 보통 자기가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주제에 진지하고 느린 속도로 접근했다. 이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그가 〈챌린저스〉에서 지금껏 다뤄온 주제를 스포츠 영화의 박진감을 더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데에도 의심의 여지 없이 성공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자기 주제를 눈에 띄는 새로운 스타일로 그려내는 일, 결코 쉽지 않다. 그의 재능을 추앙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감독이 언젠가 다시 돌아오기만 한다면, 심지어 〈서스페리아〉 같은 ‘외도’도 눈감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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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욕과 모순으로 가득 찬 100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유포자들>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능력과 미모를 모두 갖춘 '선애(김소은)'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고등학교 교사 ‘도유빈’(박성훈). 그는 약혼자가 유럽 출장을 떠난 사이 절친 ‘공상범(송진우)'과 함께 클럽으로 향하고, 클럽에서 만난 여성들과 잊지 못할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집에서 눈을 뜬 유빈은 좀처럼 전날 밤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고, 핸드폰마저 사라지자 불안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의 전화가 걸려 오고, 수화기 너머 범인은 3천3백만 원을 구해오지 않으면 그날 밤 찍힌 유빈의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기 시작한다. 이에 유빈은 범인의 요구를 맞춰주면서도 그를 찾아내려는 계획을 짜기 시작하고, 자신의 과거와 직장을 오가며 숨겨져 있던 진실에 다가서기 시작한다.
디지털 성범죄는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가장 공론화가 많이 된 유형의 범죄라고 할 수 있다. 뉴스에서 접한 굵직한 사건만 해도 2018년 ‘버닝썬 게이트’, 2020년 ‘N번방 사건’에 이어 ‘제2 N번방 사건’까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디지털 성범죄의 급격한 증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작성한 ‘2021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접수된 피해 사례만 총 18만 8,083건에 육박한다.
디지털 성범죄의 위험성은 그 속도와 친숙함으로부터 기인한다. 현대인들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누구든 당할 수 있으며 피해 규모도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대중이 불안해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유포자들>은 바로 이 불안감을 전면에 내세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영화다. 디지털 공간에서 암약하는 유포자들이 누구이고, 그들의 범죄 행각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지를 낱낱이 파헤치려 한다.
<유포자들>의 목적은 분명하다. 디지털 범죄의 피해를 관객이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게 목표다. 주인공 도유빈의 설정만 봐도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고등학교 교사인 그는 두 학생을 체벌하면서 등장한다. 서울대를 노릴 정도로 성적이 뛰어난 학생과 곧 처남이 될 학생의 핸드폰에서 불법 촬영 사진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빈은 학생들을 몇 대 때린 후에 교실로 그냥 되돌려 보낸다. 그저 비슷한 짓을 반복하지 말라고 지적할 뿐이다. 해당 촬영물이 어디까지 유포됐는지, 공범은 더 없는지, 왜 그런 범죄를 고등학생들이 저질렀는지를 더 묻지도 않고 징계 절차도 밟지도 않는다.
영화는 이처럼 불법 동영상 이슈에 대해 꽤 무감각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핸드폰을 해킹당한 도유빈은 불법 동영상 유포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다. 그는 금전을 갈취당하며, 경력과 결혼이 깨질 위기에 처한다. 심지어 그가 (비록 의도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전 여자 친구와 성 동영상 촬영을 했다가 해당 영상이 유출된 적이 있다는 과거사가 드러난다. 그 난리를 겪고도 약혼자와 섹스 영상을 찍었다는 것도.
결국 <유포자들>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인드로 사태를 묵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디지털 성범죄를 방조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디지털 성범죄가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라고, 방관자들도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문제의식은 교도소에 수감된 본인이 자신에게 미소 짓는 허상을 보는 유빈의 마지막 장면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다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메시지가 과연 유효할지는 의문이 남는다. 이는 <유포자들>이 KBS 드라마 스페셜 2022-TV 시네마 작품이라는 점이 새삼 실감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좋게 말해 공익적 목적이 분명하고, 나쁘게 말해 이미 알고 있는 당연한 이야기를 구태여 길게 말하는 것 같은 인상이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는 의문이다. 우선 다루고자 하는 사회적 이슈가 너무 광범위해서 영화 자체가 피상적으로 느껴진다. <유포자들>은 다음 범죄들을 전부 등장시킨다. 리벤지 포르노 문제, 클럽과 약물 문제, 불법 촬영과 유포 문제, 해킹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 N번방 문제를 연상케 하는 음성 채팅방 내에서의 괴롭힘 등 다양한 사례들이 모두 제시된다. 하지만 해당 범죄 중 근본적인 원인과 처벌, 재발 방지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 깊이 깊게 이야기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어찌 보면 그저 관객들의 호기심을 돋우고 눈길을 끌기 위해 자극적으로 소비되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그 결과 영화는 무리수를 남발한다. 한 명의 주인공이 10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모든 범죄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해야 하니 각 에피소드 사이 연결고리는 헐거울 수밖에 없다. 도유빈을 나락으로 이끄는 여성, '다은(임나영)'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인터넷 방송 BJ인 그녀는 범인의 사주를 받고 유빈에게 접근한다. 약물로 유빈을 인사불성 상태로 만든 뒤에 엽기적인 성 착취 동영상을 찍은 후 돈을 받고 영상을 범인에게 넘긴다. 거칠게 말하자면 전형적인 '꽃뱀'이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물론 현실에서 꽃뱀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디어가 특정한 여성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의 주요 원인인 왜곡된 성 관념을 비판하는 영화라면 자가당착에 빠진 셈이다.
자연히 캐릭터들의 완성도도 하락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도유빈의 위기 상황을 설명하기에도 급급하기에 다른 인물들을 차분히 등장시켜서 활용할 여유는 없다. 결국 작중 유빈 외에 생동감이 느껴지는 인물은 전무하다. 그의 절친한 친구로 등장하는 상범은 영화의 전개를 한 번 꼬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약혼녀인 선애도 유빈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강조하기 위한 장면에만 등장한다. 굳이 그녀가 직접 등장하는 대신 그가 결혼을 앞둔 상황이라는 점을 알려주기만 해도 충분해 보인다. 유빈에게 의문을 품은 형사들도 이미 그의 과거사와 잘잘못이 모두 드러난 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영화의 흐름이 끊기는 느낌만 들 뿐, 특별히 긴장감을 불어넣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외에도 스릴러 영화로서의 장르적 완성도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복선이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서 서스펜스나 서프라이즈가 없다시피 하며, 반전을 유추하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유빈의 핸드폰에 전달된 작위적인 기프티콘의 존재가 대표적이다. 유빈에게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를 관찰하는 진범을 짧은 쇼트에 담아내는 연출도 마찬가지다.
결국 모든 문제는 장면마다 극의 분위기가 널뛰는 것으로 귀결된다. 영화는 진지한 스릴러와 유머러스한 코미디를 자주 오간다. 그런데 스토리의 얼개부터 등장인물의 완성도까지 정돈된 대목을 찾기 어려운 관계로 마치 서로 다른 두 영화가 하나로 붙여진 듯 느껴진다.
사실 <유포자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어렵지 않았다. 모든 초점이 주인공 1인에게 맞춰져 있으니, 주인공과 관객 사이에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면 원했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환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포자들>은 끝내 미션에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KBS 드라마 스페셜이라는 형식을 더 과감하게 활용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제목에 맞게 다양한 유포자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옴니버스 영화를 보여줬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그러면 영화에서 다루고자 했던 범죄들의 심각성과 문제점, 필요한 관심까지도 더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다룰 수 있었을 테니.
D(Dreadful, 끔찍한)
정의를 꿈꾸는 과욕이 일으킨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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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은 어째서 기생충을 선택했을까?
개봉 직전 칸의 선택을 받은 영화 <기생충>. 우리나라의 첫 황금종려상 수상작품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고, 그 기대만큼 사람들의 환호도 넘쳐났다. 그래서 나 역시 기생충에 대한 기대감을 안은 채 봤지만 볼수록 의문덩어리였던 작품이었다.
영화 <기생충> 시놉시스“폐 끼치고 싶진 않았어요”
전원백수로 살 길 막막하지만 사이는 좋은 기택 가족. 장남 기우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시켜 준 고액 과외 자리는 모처럼 싹튼 고정수입의 희망이다. 온 가족의 도움과 기대 속에 박사장 집으로 향하는 기우.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의 저택에 도착하자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가 기우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 뒤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사회적 계층의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
<기생충>이라는 작품이 빈부 격차가 드러나는 영화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교묘하게 그 차이를 드러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그 현실을 더 크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반지하와 대저택이라니,, 유치원생이 봐도 부자와 가난한자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이 돼서 너무 흑백논리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상을 받을만큼 역작이었나?
칸이 선택한 작품이라기에 기대했지만 굉장히 평범했던 작품이었다. 빈부격차 속에서 일자리를 찾아보려 기존의 사람을 없애고 자신들이 그 자리로 들어가려고 하는 모습은 한 번쯤 영화 속에서 봤던 장면들이니 말이다. 근데 그것이 가족 전체라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온 것일까?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만큼 과연 작품들이 뛰어난 영화였는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조금 당황스러웠다. 칸의 저명한 영화 관계자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한국영화를 많이 보고 자란 내 눈에는 내용이 뻔했고, 예상이 가능해서 보는 내내 이게 상을 받을 만한 작품인가? 의심스러웠던 영화였다.
그래도 연기력은 좋았던 작품
의심을 하면서 영화를 봤지만 영화를 중간이 끊지 않고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그 합이 너무나도 찰떡같았기 때문이다. 송강호와 최우식, 박소담 그리고 장혜진까지 진짜 가족을 보는 것처럼 연기가 너무 물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이질감 자체가 없었다. 그냥 실제 가족을 직접 보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찰떡같이 캐스팅을 했는지캐스팅 디렉터의 안목이 빛났던 작품이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뻔했지만 그들의 연기력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던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영화 <기생충>은 개인적으로 상을 왜 받았을까?하는 의문이 든 작품이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력만큼은 정말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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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두사와 싸우는 법
이 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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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필 감독의 작품은 어딘가 불편하다.
차마 건드리지 못했던 주제에 대해 과감하고 가감 없이 시선을 주는 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그저 고발의 목소리에서 그치지 않고. 이 불쾌감의 근원을 관객들의 마음속에서 끄집어 내 양지로 가져오는 역할도 자처한다. 덕분에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에 묻은 음습함이 얼마나 짙고 추했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알 수 있게 되었고. 이 마음이 뙤약볕에 잘 말려진 후 다시 제모습을 찾은 것을 보는 데서 오는 기시감도. 다시 품 속으로 마음을 돌려 넣을 때 오는 안도감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겟 아웃]과 [어스]에서는 인종 차별적인 문제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 영화 [놉]은 그 어떤 알 수 없는 존재가 주는 공포로 관객들을 마주하려 한다. 영화 개봉 직전까지 알려진 정보가 없어 이로 인해 관객들의 추측만 난무했다는 점도 이번 영화에 대한 기대를 키우는데 한몫했다.
한국에서 자신의 작품이 흥행한 것이 너무 기뻐 조동필이라는 애칭을 sns에까지 박제해버린 감독의 이번 작품은. 얼굴도 안 보고 그냥 데려간다는 셋째 딸 같은 영화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죠스의 재현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감독이 천재성을 드러내는 방법
사진출처:다음 영화
창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물이라는 말이 영화 [죠스]처럼 잘 어울리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제아무리 스필버그 감독이라 해도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해 맞부딪칠 수밖에 없었을 기술적(혹은 금전적) 한계는. 달랑 지느러미를 보여주며 상어를 연상시키는 쪽으로 영화의 방향을 수정하게 만들었다. 아직 트이지 않은 길 때문에 목표 지점을 눈앞에 두고 돌아가야 했을 감독의 눈물이 바다처럼 차올랐으리라.
그러나 그 “달랑”지느러미 하나는 감독이 눈물로 쌓은 바다 안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영화 한 편의 서스펜스도 바닷물처럼 차오르게 하는 일등 공신이 되었고. 제목만큼이나 강인한 턱뼈로 블록버스터 영화의 시초라는 전리품 같은 타이틀을 확신에 찬 채 우적우적 씹어 삼킬 수 있었다.
그 기념비적인 영화 이후로 몇십 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오히려 기술의 발달을 영화 전반에 내세워 뭐든 "보여주려"라는 시대가 당도했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으로 화려함을 강조하는 트렌드가 이제는 영화의 장애물이라고 판단했는지. 감독은 슬그머니 뒷걸음치는 것을 전략으로 삼은 듯하다.
[놉]은 영화 속 지느러미의 역할을 음향(음악)과 색채에 맡겼다. 그리고 그 미끼들의 효과는 영화계의 시초가 그랬던 것처럼 확실하고 효과적이다. 죠스의 움직임을 상징하는 소리들 만으로도. 영화 속의 긴장감은 저 멀리서부터 흩어지지 않고 끌어 모인 채 쌓이고.[놉]의 죠스는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고도 생생하게 관객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몇 번에 걸쳐 영화계의 시초에 대해 강조하는 것도 이런 점에서 맞물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제아무리 컴퓨터 그래픽이 눈을 사로잡는다 해도. 결국 본질은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없는 것에서 오는 공포라는 점을 감독은 진작에 간파한 셈이다.
바다만큼이나 끝과 속을 알 수 없는 하늘을 유유히 유영하는 UFO(라고 하자)를 바라보며, 죠스의 재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감독의 짠 내 나는 눈물바다가 아닌. 기술과 시초(초심)의 결합으로 한계 없이 하늘을 훨훨 날고 있다는 점이 다행으로. 그리고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UFO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
사진출처:다음 영화
이번 영화에서 공공의 적 역할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UFO이다. 전작들에 비하면 조금 SF 적이고 간접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UFO의 본질을 생각해 본다면. 이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영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에 걸맞게 UFO(Unidentified Flying Object)는 미확인 비행물체이며. 존재한다는 증거가 없으면 믿음의 영역에 들어올 수 없는 실체가 불확실한 것에 가깝다. 하지만 정확한 존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관심은 물론 음모론까지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면에서 보았을 때. 작품 속의 UFO가 가짜 뉴스, 혹은 비정상적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당기고 있는 그 무언가(헛소문,찌라시 등등)로 해석한다 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다들 그것이 유명해서, 혹은 궁금해서 맹목적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광기로 그것을 쫓지만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정확한 실체조차 알 수 없다는 면에서 보아도. 또한 (앞 주제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아주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공포의 대상을 그린 것마저도 헛소문의 실체나 퍼지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이 UFO가 반응하는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 정체불명의 괴물은 말 그대로 별 영양가 없어 보이는 관심에만 반응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관음의 마음이 있어 눈길을 주는 자들만을 삼킨다.
목마와 깃발만을 성심성의껏 골라 내뱉는 것에서도 관심에 있어서의 가짜, 혹은 자신에게 반응하지 않는 것은 충실히 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기본 정서인 "알 수 없는" 감정과 실체 없이 공포를 조성하는 데 있어 이런 것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리키(스티븐 연)로 대변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가짜 뉴스의 존재 자체에 사로잡혀 호기심을 드러내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UFO를 기회로 생각하며 어떻게든 실체 없이 달리는 말위에 올라타려는 태도를 보인다. 마치 그 뉴스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처럼.
결국 카더라 뉴스가 가진 비정형성에 관심이라는 독을 품은 사람들은, 모두 외눈박이 괴물에게 삼켜지는 형벌을 받고야 말았다.
나쁜 기적이란 무엇인가.;메두사와 싸우는 방법
사진출처:다음 영화
OJ(다니엘 칼루 유야)가 UFO와의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과정은 마치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와의 전투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신(God)들에게 페르세우스가 받은 것은 전투에서 실제로 쓸 "장비"들이었지만. OJ가 가진 무기들은 물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성품에 가깝다는 것이 차이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OJ는 영화 속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UFO에게도 이름을 붙인다. 하나하나 특별하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특성들도 함께 떠올리려는 듯이. 영화에서 이름이 붙은 것들의 대부분이 짐승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길들일 수 있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UFO에게 진 재킷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이해가 가능하다. 여동생에게는 오빠에게 뺏겼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이름이었지만. OJ에게는 첫 번째 말(Horse)임과 동시에 조련에 있어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이름이었을 것이다. 가장 낯설었고, 가장 힘들었지만. 자신의 직업 철학에 있어 근간을 세우게 해 준.
OJ가 이 사태를 스스로 나쁜 기적이라 불렀다는 것에서도 그의 작지만 확실한 신념을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찬찬히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성품 탓에. 결국 이 진 재킷의 성격을 파악하면 이 사태도 마무리될 것이라 믿었을 테니 말이다.
그에게 "길들인다"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그 생물이 가진 고유한 성격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대응한다는 것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이번 기회에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자신의 철학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여동생에게 이 낯설고 큰 위험을 양보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도 함께 얹은 채로. 마치 내 실력을 지켜 보라는 듯 동생에게 수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OJ는 페르세우스가 그랬듯 진 재킷에게 등을 돌려 접근한다. 거울을 대신하는 그림자와, 소리만으로 진 재킷의 위치를 짐작하면서. 이 고집스럽고. 그 어떤 소란에도 성급하지 않던 OJ의 태도는 결국 진 재킷의 목을 베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다.
그는 끝까지 현혹되지 않았고. 한 번쯤은 궁금증에 고개를 돌릴 법한 자신의 마음마저도 다잡았다. 이름의 무거움과 사물의 본질을 아는 자는 그렇게 끝까지 꼿꼿하게.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웃을 수 있었다.
마치면서
영화의 후반부는 발견했을 땐 이미 피하기 늦은 눈사태를 보는 것 같다. 제아무리 달려 도망친다 해도 발목을 잡아 끄는 눈덩이들에 잡아먹히고도 남을 듯한 압박감이 굉장하다.
그러나 영화 초반부는 제법 눈싸움을 할 수 있을 법한 그 덩어리를 만드는 것조차 힘들다고 느껴질 만큼의 지루함이 꽤 길다. 그마저도 조각조각 나 있다는 인상이 들어 과연 이게 먹히기는 할까.라는 의문이 애써 만들어 놓은 작은 눈덩이마저도 녹이는 것만 같다.
이런 단점을 제외하면 영화는 꽤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하게 한다.
또한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알아채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우연이겠지만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 바이럴 등의 이슈들에 대한 생각이 곧바로 떠올랐다.
마케팅을 비롯한 대다수의 관객들, 혹은 평론가들의 말들을 무시할 수 없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의 의견에 그저 휩쓸리듯 선동되는 것은 대중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닌 것을 늘 알아야 한다. 그러니 자신의 취향에 당당해지는 것. 또한 타인의 취향도 존중하는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것이 관객이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
시종일관 꼿꼿한 OJ의 태도가 유달리 마음에 남는다.
[이 글의 TMI]
1. 점프 스케어는 거의 없는데도 영화 분위기가 너무 무서움.
2. 그리스 로마 신화 덕후라 그런가 뭘 봐도 하나씩은 연상이 되는 듯.
3.휴가 중에도 영화 보고 리뷰 쓰는 나 칭찬해.(?)
4. 미키7 다 읽었다. 봉준호 감독님이 어떻게 이걸 영화로 만드실지 궁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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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홀로서는 것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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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스토리1이 1995년에 나온 이래, 2019년까지 네 편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1995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20대 중후반이다. 우디의 첫 주인인 앤디도 이제 서른이 넘었겠다.
내가 없는 사이 움직이고 말하는 장난감들이라.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보았을 법한 이야기이고, 픽사는 이를 구현했다.
심리학 네임드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따르면, 전조작기(2~7세, 앤디, 보니 또래)에는 아이들에게 상징적 기능이 발달한다.
물활론적 사고가 대표적이다. 인형도 살아있고, 장난감도 살아있고, 지나가는 강아지 고양이도 다 자기 말을 알아듣고, 자기들끼리 대화하고 그러는 줄 안다.
나도 고만할 때, 인형들을 동원해서 뭔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고, 필통 속 연필들을 가지고 밤새 떠들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병아리 인형의 머리에 짐을 올려두고 일을 시켜먹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나기도 한다.
토이스토리4가 개봉된 지 2년이 지났다. 어떠한 OTT에도 올라오지 않더니, 디즈니플러스가 달콤한 자본의 맛을 보여주었다.
앤디에게서 보니에게로 간 우디와 친구들. 보니는 앤디와는 다른 아이이고, 우디의 위상도 예전같지 않다. 한때 우디는 장난감들을 통솔하는 장난감대통령이었다면, 이제는 벽장 신세를 면치 못한다.보니는 드디어 유치원을 다니게 되는데, 유치원에는 장난감을 가지고 가지 못한다.
우디는 그런 보니가 영 걱정이다. 보니가 적응을 하지 못할까 봐서. 우디는 나름대로 아이들에 대한 통찰, 말하자면 짬이 있기 때문에 보니가 유치원 생활을 힘들어할 거란 걸 안다. 따라가겠다고 하자 다른 인형들은 우디를 말린다. 말리는 정도가 아니라, 다시 벽장에 집어 넣어버린다.
하지만 우리의 용감한 카우보이 우디는 보니의 가방 속으로 숨는다. 아니나 다를까 보니는 유치원 첫 시간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고, 심술궂은 남자애가 보니의 미술도구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우디는 보니의 가방에서 몰래 빠져나와 미술도구들을 제자리에 둔다. 보니는 그날, 처음으로 스스로 장난감을 만든다. 포크를 재활용해서 만들었으니 이름은 포키. 모양새는 엉성하지만 보니는 포키와 사랑에 빠진다. 아마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일 거다.
우디에게는 관심도 없고 포키만 끌어안고 사는 보니이지만, 우디는 포키가 도망가지 않도록 포키를 지킨다.
왜일까? 주인에 대한 충성심? 우디의 행동이 과해 보일 수도 있다. 인간에게 지나치게 개입하는 장면들은 누군가에게는 선을 넘는 행동일지도.
중반부에 우디는 그것을 '의리'라고 부른다.
주인과의 의리, 장난감친구들과의 의리. 토이스토리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우디에게 주어진 일관된 사명은 의리였다.
1편에서 앤디가 버즈를 갖게 되자 우디를 거들떠보지 않을 때, 버즈를 질투하여 창밖으로 밀어버리지만 버즈를 구해내면서 우디의 의리는 쭉 이어져왔다.
2편에서는 장난감들이 수집가의 손에 넘어갈 뻔한 우디를 지킨다. 그렇게 그들의 우정은 견고해진다.
3편에서는 앤디가 대학에 가면서 장난감들을 보니에게 넘겨준다. 장난감나라가 새로운 세계로 개편됨으로써 그들은 다시 한번 자기들의 우정을 다짐한다.
다시 토이스토리4로 돌아가보자. 포키는 자꾸 쓰레기통을 찾아 도망친다. 출신이 쓰레기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집에서는 집 안에 있는 쓰레기통에 처박히니 금세 찾아내지만, 보니 가족이 캠핑카 여행을 떠났을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어디든 쓰레기통만 보이면 들어가려는 포키와 기어코 찾아내는 우디.
우디는 한 골동품상점에서 옛 친구 보핍의 스탠드를 발견한다. 보핍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들어간 골동품상점은 장난감들의 지옥이다.
무시무시한 개비개비와 마네킹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소리장치가 고장나 아이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개비개비의 앞에 소리가 멀쩡히 잘 나는 우디가 제 발로 기어들어오다니.
그들은 우디에게 소리장치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지만 우디는 거부한다. 그래서 결국 포키 인질극이 시작된다.
우디는 포키를 찾으려다 놀이공원에서 보핍과 마주한다.
보핍은 예전의 그 공주가 아니다. 치마 대신 활동적인 바지를 입고, 청설모로 분장한 자동차를 험하게 몰고, 주인 없이 스스로 삶을 이끌어나간다. 우디는 보핍의 도움을 받아 골동품상점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선택되지 못한 수많은 장난감들도 만난다.
듀크 카붐이 대표적이다. 과대광고에 속아 듀크 카붐이라는 오토바이 타는 장난감을 샀지만 장난감이 어찌 광고와 같겠는가. 멀리 날아가지 못하는 듀크 카붐에 실망한 주인 '장'은 장난감을 버린다.
포키를 구하기 위한 우여곡절 가운데, 버즈는 우디를 구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가 놀이공원을 탈출하고 싶어하는 더키와 버니를 만난다. 개비개비처럼 한 번도 주인을 갖지 못한 인형들이다.
보핍, 버즈, 우디, 더키와 버니가 힘을 합쳐 포키를 구하려고 했지만 골동품상점에서 키우는 고양이 때문에 실패했을 때, 모두가 포기하기로 했지만 우디는 다시 포키를 구하러 간다. 그리고 결국 자기의 소리장치를 개비개비에게 내어준다.
'내 이름은 개비개비야. 사랑해'라고 아무리 외쳐보아도, 개비개비가 그토록 기다렸던 아이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간절히 원하는 어떤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삶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픽사는 <소울>에서도 반복한다.
우디는 절망한 개비개비를 데리고 보니에게로 간다. 그러다 놀이공원에서 길을 잃은 여자아이를 보게 되는데, 개비개비는 그 아이의 공포와 외로움에 공감하면서 그 아이에게로 간다. 아이에게 개비개비는 같이 길잃은 자가 되어 준다.
보핍의 진두지휘로 보니네 차와 만나기로 한 회전목마까지 왔을 때, 듀크 카붐은 난생 처음으로 장거리 날아오르기를 성공하면서 "장을 위하여!"라는 멋진 말을 남긴다.
모든 임무를 완성한 우디. 이제 보니네 차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우디는 돌아가는 대신 보핍과 주인 없이 스스로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이제 친구들과 작별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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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스토리에 출연하는 장난감들은 모두 성장한다.
앤디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우디가 다른 장난감들과 우정을 쌓고, 같이 모험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바뀐다.
그러는 동안 어린이였던 앤디는 대학생이 되고, 앤디는 장난감을 다른 사람에게 줄 줄 알 만큼 성장한다.
우디도 앤디 없이 못살 것 같았지만, 앤디가 떠날 때 잘 가, 나의 파트너라며 앤디를 보내줄 줄도 안다.
4편에서 가장 돋보였던 캐릭터는 보핍이 아닐까 싶다. 드레스를 입은 예쁜 바비인형이 아닌,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다만 아쉬웠던 건 보핍과 우디, 포키 외 다른 캐릭터들의 존재감이 미미했다는 점이겠다.
우디는 성장하여 더 큰 세상으로 떠났다. 온종일 주인 걱정만 하는 장난감이 아니라, 이제 장난감의 생을 제대로 살아볼 참이다.
우디와 버즈, 그 친구들이라는 세계관을 깨버렸다고 괜히 봤다는 리뷰를 몇 개 보았는데, 우디도 떠날 때가 되었고 우리도 우디를 놓아줄 때가 되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홀로서는 것이다.
개비개비의 끈질긴 집착으로부터, 듀크 카붐의 트라우마로부터, 우디의 주인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나에게 당연한 것들로부터 독립해야만 한다.
아이는 자라 부모를 떠나고, 부모도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 친구들은 자기 알아서들 잘 살고, 각자가 내던져진 세상에서 자기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 꽤 괜찮은 삶이 아닐까.
나는 토이스토리를 볼 때마다 결국 울어버린다. 그리고 올가을에 나를 울게 했던 책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안정을 추구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성장하지 못했다. 독에 갇힌 나무처럼 가지를 마음껏 뻗어나갈 수가 없었다. 고립되었다." (<밝은 밤>, 최은영, 문학동네, 2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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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썬더볼츠"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전에 1개, 끝나고 1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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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올리비아 콜맨 주연 [로스트 도터] 어워즈 예고편 최초 공개! 전 세계 37관왕 베니스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 아카데미시상식 각색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후보! "이 영화는 대단한 업적이다" 극찬에 극찬을 이어가는 걸작 [로스트 도터] 7월 14일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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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슈퍼노바> 티저 예고편
여기, 우리의 별이 머물렀다.
오랜 시간 서로의 구세주이자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최고의 친구로 지내온 ‘샘’(콜린 퍼스)과 ‘터스커’(스탠리 투치).
기억을 잃어가는 ‘터스커’와 그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샘’은
마지막 여행을 떠나게 된다.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여행이 끝나갈수록,
그들의 감정은 점차 고조되는데…
차마 사라지지 못하고 우주를 떠돌 마음의 파편,
그곳에 가장 빛나는 사랑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