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5-02 20:06:37
[JIFF 데일리] 마음 가는 방향으로
<비밀 문자> 리뷰
OVERVIEW
비밀 문자 누슈에 대한 매료로 연결된 두 명의 중국인 밀레니얼 여성을 과거와 현재에 걸쳐 따라간다. 수백 년 된 이 언어는 여성 공동체의 연대, 희망, 생존을 위한 은밀한 지원 체계로 작동하면서 중국 여성들을 세대를 넘어 하나로 묶어왔다.
REVIEW
예외는 있었겠지만, 수천 년의 중국 역사에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복종해야 했고 읽거나 쓰는 것을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들은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비밀 문자인 ‘누슈’를 통해 때로는 신세 한탄을, 때로는 이루지 못할 꿈을 적어 내려가면서 여자들끼리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연대할 수 있었다. 이제 교육 기회가 균등해졌고, 여성의 권리도 전보다 나아지고 있기에 ‘누슈’는 더 이상 계승되기 어려운 ‘잊혀져 가는 문자’가 되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여성들만이 이해할 수 있었던 문자 ’누슈‘를 각자의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는 두 여성을 통해 ’누슈‘의 역사와 중국 역사 속에서 여성의 의미, 그리고 그들이 ’누슈‘로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조명한다. 물론 ’누슈‘의 원래 의미와는 정반대로, 그저 예쁜 캘리그라피로만 인식하고 상업화하려는 관료들의 모습은 어처구니없기도 하지만, 불평등 속에서 자신의 삶과 생각을 기록하려고 노력해 온 중국 여성들의 ’놀라운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전진수)
세상 다른 수많은 사회처럼, 중국 봉건사회 또한 여성을 기존 제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교육과 사회생활은 요원했고, 자연스레 여성이 스스로 남긴 기록도 많지 않았다. 심지어 전족으로 발 뼈를 부수고 살을 뭉쳐 손쉬운 이동의 자유마저 금했다. 거기서 “노예 같은” 생활을 했다는 여자들은 자기들만 아는 문자를 만든다.
함께 괴로워했던 여자들만의 문자. 그 문자로 시를 짓고 노래를 하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살아가자는 응원을 전했다. 아주 오래 비밀로 내려오던 문자는 세상에 알려진 후로 누슈(女书)라고 불린다. 문자 그대로 여자가 썼다는 담백한 명칭이지만 거기 얽힌 이야기들은 주렁주렁 많다.
영화는 누슈의 어제와 오늘을 고루 비춘다. 누슈의 전승자인 후신이라는 인물을 시작으로, 몇 년 전부터 누슈를 배우기 시작한 쓰무라는 인물을 더하고, 누슈를 실제로 집에서 배운 누슈의 마지막 명장이자 후신을 가르친 허 선생님까지 이어, 누슈를 계속하는 이들을 담는다.
이들은 누슈를 사랑하고, 누슈의 의미를 지키고자 하지만, 가뜩이나 생은 쉽지 않은 것. 의미까지 더해 업고 가기가 쉽지 않다. 세상은 이들의 누슈를 향한 애정과 같은 시선으로 누슈를 바라보지 않는다. 후신의 글자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위한 자리에서 선물로 주어진다. 은밀한 여자들의 글씨였는데, 술잔을 든 남자들을 위한 선물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글씨와 시로 시작한 누슈는 이제 춤과 공연의 대상이다. 누슈 글씨를 쓰고 있는 여자들에게 몰려온 남자들이 "마을 미녀"들이 글을 쓰고 있다며 동물원에 온 것처럼 굴고는 "친구 하자"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린다.
후신은 누슈로 상당한 성취를 이룬 인물이지만 이혼의 기억을 “여자로서의” 실패로 여기는 마음이 자꾸 올라온다. 다재다능하고 누슈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는 쓰무는 약혼자가 쉼 없이 던지는 말을 들으며 고민에 빠진다. 하루 만에 누슈를 해석해 왔던 듬직한 남자라 생각했응 텐데, 아직 결혼도 하기 전부터 쓰무를 들들 볶으면서도 자기는 부담 주고 있지 않다 말한다. 이들이 사는 오늘의 누슈를, 누슈의 기억을 가진 허 선생님도 바라본다. 그는 오늘날의 누슈가 원래의 누슈와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누슈 작품은 대다수가 자매애에 대한 것이다. 원부가를 지을 수도 있었겠지만, 누슈는 고통이 해소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에 마치 남자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여성 간의 연대와 지지를 택했다.
여전히 마을에는 새 신부가 나오고, 새로운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그중에는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이야기도 있겠지만, 사랑 아닌 것들도 사랑을 가장한다. 그 허위의 이면에는 몰이해와 몰상식이 있다. 누슈를 인정하고 누슈를 위한 행사에 서 있지만 정작 누슈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는 남자들처럼. 사랑과 결혼을 말하며 결국에는 상대가 취해야 할 도리를 가르치려 드는, 결혼도 하기 전부터 임신에 좋다는 쓴 약을 먹이고, 밥 먹으러 가는 길에 입에 귤이나 넣어주고, 여자가 알아들은 말을 굳이 되풀이해 설명하는 남자처럼.
봉건제도 속의 남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남자들의 몰상식이 횡행할 때, 누슈의 노래 가사는 생생하게 살아 여기까지 전해진다. 왜 여자들은 마음껏 놀 수 없는지, 왜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지 묻는 노래 가사는 본질을 비춘다. 이런 질문은 새롭고 급진적인 사상이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자연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것뿐인 것을. 대약진운동의 흐름 아래 남녀가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일을 했던 시절을 피부로 기억하는 이들은, 따로 교육을 받지 않아도 피부로 안다.
누슈를 둘러싼 남자들의 모습은 촌극에 가깝다. 어떻게 저러나 싶을 만큼 우당탕쿵탕 엉망진창이다. 방향성과 타깃조차 설정하지 않고서 상용화를 하겠다고 설치고, 누슈 관련 행사 무대에 '구색을 맞추기' 위한 여성조차 세워놓지 않은 주제에, 제막식 하나도 제대로 못 해서 현판을 떨어뜨리고 난리가 난다. 그들을 보며 역설적으로 누슈의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21세기에 저러고 있다니 봉건사회에선 어땠을까. 욕하고 때리지 않으면 다행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도망칠 수도 없는 발을 부여잡고 집안 모든 남자들의 발을 씻겨야 했던 여자들의 삶에 누슈가 어떤 의미였을지.
언어의 본질은 소통이다. 허 선생님과 후신 사이의, 편지를 읽고 틀린 문장을 바로잡아 주는 장면이 뭉클하니 아름다웠던 이유는 바로 그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담길 때 비로소 글자는 의미를 갖는다. (마케팅도 거기서 시작했어야 했다. 누슈 상용화로 뭐라도 해보려고 한 멍청한 중국 남자들이여.)
세상의 풍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양한 말을 듣고, 세파에 흔들리고, 그러면서도 후신과 쓰무를 비롯한 동시대의 수많은 여자들은 자기 삶을 살아간다. 어떤 여자는 유리 천장을 깨는 것이 너무 힘드니 그냥 이 자리에서 행복을 찾아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누슈를 받아들인 이들은 앞길을 몰라도 마음 편한 길로 걸어가 보겠다 한다. 내가 떠받들어 살려야 하는 세상이 아니라, 내가 강해질 때 새롭게 피어날 세상임을 인지한 것이다.
이들은 누슈를 통해 과거와 대화하면서 오늘을 넘기고 내일로 향한다. 누슈 가사 속의 든든한 큰언니들이, 괴로운 한 세상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지지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모르고 가는 길이라도 씩씩하게 나아갈 힘이 되어줄 것이다.
2023. 04. 29. 17:00 CGV전주고사 8관 (247)
2023. 04. 30. 19:30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358)
2023. 05. 01. 16:30 CGV전주고사 5관 (441)
Relative contents
-
- 잘 쓴 이야기의 여정
올해 초에 출판 편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편집 실무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을 배우는 수업이었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책의 무엇을 구매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는데 다른 것보다도 관점이 선명해서 흥미로웠다. 저마다 쉽게 대답할 수는 있지만 정답을 가늠하기란 어려운 그런 문제였다. 읽기 위해 구매하는 것이니 책의 내용을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책을 다 읽고 그 책을 팔면 기억이 사라지는가? 책이 더 이상 우리의 소유가 아니더라도 우린 그 내용을 알고 있다. 여타의 상품이라면 그럴 수 없다. 라면 한 봉지, 러닝머신, 양키캔들이나 책가방까지도 수중에서 사라지면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은 팔더라도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진 않는다. 뭐 유별난 차이인가 싶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그 얇고 세밀한 틈이 책의 지향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저작물이다. 저작권이 발생하는 저작물. 사상이나 감정, 아이디어와 같은 메시지를 일정한 표현 형식에 담으면 저작권이 발생한다. 그러니 아이디어 자체만으로는 저작권이 발생하지 않는다. 일정한 형태로 그 생각을 담아내야 한다. 저작물은 작가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책은 저자의 생각과 인격을 담아낸 저작물이다 보니 이를 편집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조심스러운 과정이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라고 하는 것이 미묘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함께 책을 만들어간다는 마음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책을 쓰고 편집하는 과정은 훨씬 어려워진다. 문장을 바꿔나가는 일에 있어서는 특히나 그렇다. 전하고자 하는 말뜻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꼭 작가 혼자만의 힘으로 책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편집자의 시선에서 비로소 더 정확해질 수 있으니까. 책을 만든다는 건 그런 점에서 파트너십이 필요한 일이다.
기묘한 협업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야 많지만 루시와 해리스의 관계만 한 상황이 또 있을까. 루시는 가업으로 물려받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 냈던 신간은 혹독한 평가를 들었고 경영난에 회사를 팔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지경까지 몰려있다. 다시금 좋은 작가를 찾아 신간을 만들어 반등의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데 마침 발견한 작가가 해리스 쇼였다. 아버지 대에 이미 계약금을 지불했고, 계약에 따라 책을 한 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단 한 권만 내고 50년째 신간 소식이 없었지만 유일한 기회기에 희망을 걸어야 했다. 다만 계약 조건이 있었다. 작가가 제출한 초고를 편집하거나 수정할 수 없다. 대신 작가는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책을 홍보해야 한다.
편집은 불가, 북투어는 가능. 인물들의 이유가 부딪히면서 상황은 흥미롭게 흘러간다. 아내와 사별한 후로 세상에 어떤 미련도 남지 않은 냉소적인 작가 해리스와의 북투어 과정은 험난했다.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던 이유가 사라졌으니 그의 입장에선 거리낄 것이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압류되어 빼앗길 위치에 놓인 집과 50년 전의 계약이었다. 노작가의 귀환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고 세상은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다. 해리스는 그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을 뿐인 루시의 실력을 의심하고, 루시는 해리스의 상태를 못 미더워한다. 여하튼 신간은 나왔으니 어떻게든 책은 팔려야 한다.
그동안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는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일을 하면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유독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만드는 건 '이건 일이니까 그냥 받아들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공동의 목표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의견을 아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으니까. 두 사람의 전사가 밝혀지는 과정은 그래서인지 여러모로 감동적이었다. 서로를 신뢰하는 결과를 얻기까지의 여정이 성실하게 묘사되니까. 신뢰라는 것이 그렇다. 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눈에 번해야 믿는다. 보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 신뢰에는 샛길이 없다. 빠르게 가로지를 방법도 없다. 관계에는 정독만이 존재한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베스트셀러'
-
- 액션과 드라마의 황금비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도 마약왕의 아들을 구하다가 죽을 뻔했던 '타일러 레이크(크리스 햄스워스). 그는 동료인 '닉'(골쉬프테 파라하니)과 '야즈'(아담 베사)' 덕분에 간신히 살아난 뒤 고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누린다.
그러던 어느 날, 미지의 인물인 '앨콧(이드리스 엘바)'이 그에게 구출 작전을 의뢰한다. 조지아 마피아 두목인 '다비트'(토르니케 브지아바)의 아내이자 타일러의 처제인 '케테반'(티나틴 달라키슈빌리)이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 아이들과 함께 감옥에 갇힌 채로 남편에게 학대당하고 있으니 제발 꺼내 달라고.
이에 타일러는 망설임 없이 처제 구출 작전에 뛰어든다. 전 아내인 '미아'(올가 쿠릴렌코)'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지은 죄를 대신 씻어낼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계승과 변주
죄책감. 타일러 레이크라는 캐릭터의 전부다. 그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인도 마약왕이 아들을 구출해 달라고 의뢰하자, 자기 아들을 겹쳐 보고는 불가능에 가까운 의뢰를 수락했을 정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긴다. 닉의 말마따나 아들을 지키지 못한 고통 속에서 사느니 죽는 게 났기 때문.
타일러의 캐릭터성은 그가 죽음을 맞이한 듯 보였던 <익스트랙션>의 결말이 특히 인상적인 이유였다. 인질을 구하는 데 성공한 혈투 때문이 아니다. 죽음으로써 아들에게 속죄하고, 몸과 마음을 잠식한 죄의식에서 스스로를 빼내는(Extraction) 구출극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속편 제작 결정이 의아했다. 아버지로서의 서사가 훌륭히 끝난 가운데 속편이 사족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익스트랙션 2>는 영리하다. 화려한 액션 안에 이야기를 녹여낸다. 전편의 서사를 계승하되, 다른 방향으로 완결한다. 아버지 타일러의 서사는 깔끔히 마무리된다. 그는 사투 끝에 깊고 무거운 죄책감을 직간접적으로 떨쳐낸다. 그와 동시에 타일러는 아버지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두 번째 기회를 잡는다. 시리즈도 홀가분해진 타일러와 함께 새로운 임무에 나설 판을 까는 데 성공한다.
지평선과 빌딩이 만나는 액션
우선 <익스트랙션 2>는 액션 영화의 본분에 충실하다. 스턴트맨 출신 샘 하그레이브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만큼 러닝타임 내내 눈을 사로잡는 액션이 가득하다. 액션 시퀀스는 크게 3개다. 조지아 감옥 탈출이 첫 번째 시퀀스다. 조지아 마피아 두목이자 다비트의 형인 '주라브'(토르니케 고그리치아니)의 추격을 피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펼치는 탈출극이 두 번째다. 마지막으로 타일러와 주라브는 비행장과 성당에서 정면으로 격돌한다.
첫 번째 시퀀스는 현란하다. 12분가량 이어진 전편의 원테이크 액션 시퀀스와 비슷하다. 감옥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기차를 타고 추격을 따돌리는 장면까지 20분에 가까운 원테이크 액션이 연이어 등장한다. 카메라는 자동차와 기차 내외부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속도감 있는 추격전을 담아낸다. FPS 게임을 보는 듯한 1인칭 시점도 역동성을 더해준다.
두 번째 시퀀스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호텔 건물에서 추격을 다시 한번 따돌리려는 타일러 일행과 주라브 간의 승부가 펼쳐지는 가운데, 앞선 시퀀스와는 다른 접근법을 선보인다. 감옥 탈출 시퀀스는 수평적이었다. 감옥 복도를, 운동장을, 도로와 숲 속을, 철로를 수평으로 가로지른다. 자연히 액션 동선도 앞뒤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호텔 시퀀스에서는 수직적인 움직임이 돋보인다. 주라브는 빌딩 밖으로 탈출하려는 시도를 봉쇄하고, 위아래에서 포위망을 좁힌다. 그러자 타일러 일행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나가지의 헬기를 탈취해 탈출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헬스장 같은 호텔 내부 시설 혹은 즉석으로 만든 부비트랩을 활용한 다양한 액션이 등장해 눈을 사로잡는다. 방향성이 다르다 보니 액션 시퀀스는 길지만 지루하지 않다.
액션과 드라마의 황금 비율
그런데 세 번째 시퀀스까지 오면 한 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액션 스케일이 줄어들고 화려함도 덜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퀀스의 경우, 타일러가 유탄 발사기를 활용하는 초반부를 제외하면 육탄전으로 가득하다. 앞선 시퀀스에서 등장한 헬기도 없고, 인원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자연히 감옥 탈출 시퀀스 수준의 임팩트는 없다. 다리 위에서의 교전이 클라이맥스를 장식한 전편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액션만 놓고 보면 이 선택은 부적절하다. 전체적인 쾌감을 저하시킨다. 그러나 드라마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신의 한 수다. 액션의 강도를 낮추는 대신 타일러의 과거와 아픔이 자세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타일러가 자기 자신을 구하는 또 다른 구출극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편에서 이어진 죄책감의 서사를 끝낼 기회도 생긴다. 적절한 완급조절 덕분에 자칫 단순할 수 있는 이야기에 매력이 더해진 셈이다.
실제로 감옥 시퀀스 전후로 타일러의 감정선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새 삶을 누리는 그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처제를 구출하라는 미션을 받은 후도 다르지 않다. 그는 살아볼 이유를 찾는 것뿐이라고 닉에게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나마 아들의 그림이 유일한 단서다. 그림을 바라보는 타일러의 눈빛에서는 새로운 임무가 단순한 구출 작전이라는 아니라는 점을 느낄 수 있다.
구원과 두 번째 삶
반면에 호텔 탈출 시퀀스 앞뒤로는 타일러의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액션에 힘을 뺀 만큼 드라마는 깊어졌다. 그와 ‘산드로(안드로 자파리쥐)’의 대화가 대표적이다. 아들과 비슷한 나이인 산드로에게 타일러는 여러 이야기를 건넨다. 아들이 죽은 이유, 자기가 지은 죄, 아들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 마치 고해성사를 보는 듯하다. 그는 아버지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처조카의 힐난도 순순히 인정한다.
아내와의 재회도 마찬가지다. 여동생과 조카를 은신처로 데려가기 위해 타일러의 집을 방문한 미아. 타일러는 그녀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 아들이 투병 생활하는 동안 파병을 핑계 삼아 가족을 떠났던 과거를 자책할 뿐이다.
타일러의 서사는 가장 초라한 액션 시퀀스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처조카를 구하는 사투와 죄책감과 싸우는 혈투가 동시에 펼쳐지다 보니 감흥이 제일 진하다. 배경이 하필 성당이라 더 의미심장하다. 성당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인간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는 신의 건물이다. 타일러는 그 안에서 자기 죄를 씻어내고, 두 번째 삶을 찾는다.
이는 갠지스 강에 빠져 죽음으로써 속죄하려 했던 1편 결말과 묘하게 대조된다. 미아의 마지막 말처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타일러의 모습으로 보여주며 영화는 끝맺는다. 미아는 전 남편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들은 파병 간 타일러를 비난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사람들을 구하러 간 영웅이라 불렀다고. 그러니 더 이상 자책하고 괴로워할 필요 없다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맺음과 새 출발
그러다 보니 <익스트랙션 2>는 <007 스카이폴>을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스카이폴>도 액션을 초중반부에 몰아넣었다. 반면에 후반부에는 상대적으로 스케일이 작은 액션을 배치해 드라마에 집중했다.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와 'M'(주디 덴치)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했고, 빌런 '실바'(하비에르 바르뎀)의 존재감을 부각했다. 그 덕분에 <스카이폴>은 이후 <스펙터>와 <노 타임 투 다이>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다.
<익스트랙션 2>도 마찬가지다. 타일러의 발목을 붙잡던 가족사를 완결하면서 전편의 서사를 능숙하게 마무리지었다. 다음 시리즈의 초석도 단단히 다졌다. 그의 새 삶을 응원하면서 이드리스 엘바와 함께할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예고한다. 산드로나 주라브처럼 완성도가 아쉬운 몇몇 캐릭터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시나리오를 작성한 조 루소의 이름이 엔딩 크레디트에서 유달리 눈에 띈다.
Acceptable 무난함
액션과 드라마의 탁월한 완급 조절로 시리즈의 토대를 닦다
-
- 추석연휴 영화 추천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스포일러 포함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23.09.27 개봉
판타지, 12세 관람가
한국, 98분
원작: 네이버 웹툰 <빙의>
출연: 강동원, 허준호 등
강동원 배우 용안 보는 영화로 유명해진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인배 역의 이동휘 배우가 여기저기서
어떻게 새벽 6시에도 저런 얼굴일 수 있냐며...
여기저기 퍼뜨린 덕에 저도 얼굴을 기대하고 갔는데
이번엔 벚꽃 날리는 효과 후광 효과 이런 건 없었지만
계속 저(카메라)를 쳐다봐서... 심장 아프더라고요
ㅋㅋ
아! 쿠키 한 개 있어요
엔딩 크레딧 1~2분쯤 나오고 쿠키 보여 주니까 나가지 마세요
뭔가 시즌 2가 나와도 될 법한 내용의 쿠키라서...
시즌 2도 기대해 보겠습니당
시놉시스부터 너무너무 재미있어 보여요
귀신을 믿지 않는 가짜 퇴마사, 근데 당주무당집 장손
결국 귀신을 잡는다는 이야기로 흘러갈 거라
무서운 거 1도 못 보는 저는 겁을 많이 먹었었는데요
15세도 아니고 12세 관람가다 보니까 무서운 장면은 거의 없어요
귀신 얼굴, 눈이 좀 기괴한데 그건 적응만 하면 괜찮고
오히려 사람 손가락 잘리는 게 여러 번 나와서 그게 제일 무서웠어요
솔직히 영화 시작하고 20분? 정도까지
무서운 분위기가 계속 연출돼서 나갈까 진짜 고민했는데
오히려 그 이후가 괜찮더라고요 왜지?
범천이 인간들에 여기저기 빙의해 다니는 장면이 있는데
유치해 해보이다가도 또 재미있고
사람들이 각기 다른 무기를 들고 천박사를 공격하는 게 재미있고요
천박사는 하나도 안 다치고 다 막아내는 게 또 웃기더라고요
미스터리, 판타지, 퇴마, 스릴러 등의 장르를 가지고 있지만
일단 이동휘 님이 껴 있다는 건
코미디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에 (??)
코미디 3분의 1, 판타지 3분의 1, 스릴러 3분의 1 같아요
아마 추석 연휴 개봉할 영화들 중에서
캐릭터, 스토리, 연출 삼박자가 가장 잘 맞는 영화 아닐까 싶은데요
귀신을 못 보지만 기가 막힌 칼을 가지고 있는 천박사와
귀신 들린 동생을 구하고 싶은 귀신 보는 유경을 붙임으로 인해
캐릭터가 가야 할 길이 확실해졌고
범천이 결국 설경에 봉인될 거라는 걸 시청자 모두 알고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봉인될지를 기대하는 거잖아요?
98분간 CG가 유치하지 않았던 적이 거의 없었는데
유일하게 엔딩에서 설경이 열리고 닫히는 거긴 최고였던 거 같아요
약간 디즈니 거울 나라의 앨리스 재질?
그에 반해 연출은 사알짝 유치했지만,,,
윤병희 박경혜 배우님께서 유치하지 않게
범천의 옆에서 잘 끌어 주신 것 같아요
솔직히 박경혜 님 손가락 잘리기 전 열연이 다 살림 . . .
박소이 배우 원래 여기 잘하는 건 알았지만
귀신 들린 연기 하는 건 처음 보는데요
눈빛이 정말 무섭고 말하는 게 귀에 착착 붙더라고요
진짜 대박적임......
내로라하는 대배우들 사이에서
박소이 배우 연기가 제일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짱짱
기생충 부부, 조이현 배우, 박정민 배우
그리고 블랙핑크 지수 님까지
다양한 분들이 카메오로 나오셔서 더욱 즐길거리가 풍부했습니다
특히 박정민, 지수 나오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데요
박정민 님의 신들린 연기와 지수 님의 신들린 미모......
*스토리: 5/5점
*연출: 5/5점
*영상미: 3/5점
*OST: 1/5점
*연기: 5/5점
-
- 남의 일로 볼 수 없는, 대만 드라마 속 역사 이슈
동명 게임으로부터 확장된 스토리에 흥미가 있다면, 그리고 학교를 소재로 한 콘텐츠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원작 게임으로부터 30년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원작보다 스토리에 힘이 떨어지는 면이 있기 때문에
게임상의 스토리만 기억하기를 원한다면, 비추한다!또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예고편을 보고 기대한 '호러/공포' 장르에서 멀어진다.
따라서, 공포물을 기대한다면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대만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한 콘텐츠
아픈 역사는 오래 기억된다. 보통의 사람을 등장인물로 내세워도 '어쩔 수 없는 시대상'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이며, 그 역사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녹아들어 있다.
<반교:디텐션>은 자국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대만이 만든 게임을 원작으로 하며, 게임이 흥행에 성공했고, 이후 영화에 이어 드라마로까지 제작되었다.
<반교:디텐션>의 줄거리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한 소녀 '팡루이신'의 원혼 덕분(때문)이다.
원작 게임과 이 드라마를 연결하는 주인공, 팡루이신이 생전에 추이화 학교를 다니던 때는 1960년대로, 당시 대만은 중국 국공내전에서 밀린 국민당이 이주해와서는 대만을 압박 통제하던 시기였다.
이 전에 있었던 2.28사건으로부터 국민당의 계엄령 시기까지는 대만의 아픈 역사로 남아있다.
드라마와 게임 실황을 보다 보면,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6.25 전쟁, 여러 민주화운동들, 제주 4.3 사건 등을 소재로 만든 콘텐츠를 볼 때와 유사한 기분이 든다.
아마 외국인이 영화 <1987>을 본다면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이토록 끔찍한 이야기가 나온 시대적 배경, 역사를 더 알고 싶게 만든다.대학 재학 중, 중국 천안문 사태를 소재로 한 연극 <차이메리카>를 관람한 적이 있는데, 당시 연극 홍보 페이스북에서 본인이 중국인 유학생이라고 주장하는 네티즌의 인상 깊은 댓글이 있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현재, 중국의 어린 세대들은 천안문 사태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런 연극을 중국인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드라마 <반교 디텐션>을 보면서 궁금증이 일었다. 중국은 이 콘텐츠를 차단했을까, 아니면 '역시 공산당이 더 낫다'며 시청을 권했을까?
현재 국제사회에서 파급력을 갖는 대만과의 수교 이슈
드라마 감상 후, 호기심이 생겨 조금 조사를 해보니, 대만과 중국의 갈등은 '역사 속 이야기'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며 대만은 하나의 나라가 아닌 중국에 속한 구역으로 인식했다.
다른 나라, 예를 들어 미국도 이를 받아들이며 1978년에 대만과 단교를 선언했고, 1979년 1월부터 중국과 공식 수교를 하기도 했다.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4025306, 중앙일보, 2021.4.1, 서유진 기자) 그러나, 이 기사에서는 대만과 미국의 외교 상황이 다시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미국 NASA 홈페이지에서 대만이 독립국가로 분류되어 있다고 한다.
이 전에는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식에, 단교 42년 만에 대만 대표가 초청받아 참석하기도 했다.(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10121074200009?input=1195m, 연합뉴스, 2021.1.21)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행보도 보인다. KOTRA의 2018년 뉴스를 보면, 중미 국가들이 대만과 단교 후 중국과 교류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한다.
*이 후 별다른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여전히 친중 행보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또한, 이는 그저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반중 전선을 구축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4월 3일에 한중 외교회담을 진행했다. 4월3일 이전, 이 회담에 대해 보도한 기사에 웃픈 표현이 나와 있다.
"미국을 겨냥한 중국의 훈수를 듣고 올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회담 참석자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미국을 외교 안보에서 중요한 동맹국으로, 중국은 가까운 이웃이자 최대 교역국으로 칭하며 '우리가 선택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표현했다.(출처: https://www.sedaily.com/NewsView/22K0TIBZR9, 서울경제, 2021.3.31, 강동효 기자)
선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선택 '하지 못하는'상황에 처한 우리나라 상황이 안타깝다.
조사하다 보니, 타국의 과거 역사 못지않게 우리나라가 현재 처한 외교상황의 문제도 난감하다.
OSMU, 원 소스 멀티 유즈
세계적으로 OSMU(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콘텐츠를 통해 다양한 미디어로 뻗어나가는 방식. 웹툰의 영화화와 완구 제작 등이 대표적이다)가 활발하다. 영화 오리지널 콘텐츠보다 '확실한 수익이 보장되는' 콘텐츠를 선호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웹툰을 기반으로 하는 영상 콘텐츠 제작이 활발한 편이다. 그 예로 애니메이션 <신의 탑>,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드라마 <미생> 등이 있다.
웹툰 활용 활성화를 계기로, 일진 미화가 아닌 다양하고 매력적인 소재의 이야기가 작품화되고, 웹툰 시장에서도 주류 장르의 변화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
- 토베 얀손 영화 후기 - 삶과 캐릭터란 자신의 Symbol을 보여주는 하나의 브랜드이다.
-
핀란드의 유명한 작가이자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탄생 시킨 토베 얀손은 유명한 조각가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토베 얀손은 아버지의 재능을 닮아서인지 미적 감각이 탁월하다. 화가이면서 삽화가이기도 했던 토베 얀손의 삶은 어땠을까? 영화 초반부에서 전쟁이 끝난 직후이자 1945년에 토베 얀손은 엄격한 예술가 아버지를 피해 새로운 거처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비비카라는 시장의 딸이자 각본 연출가를 만나 동성애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토베 얀손과 비비카의 사랑을 보여주는데 그만큼 비비카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는 토베 얀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끊임없이 성적인 노출 장면이 영화 겹겹에 나오는데 무민이라는 캐릭터가 탄생되기까지에는 토베 얀손의 파란만장한 삶을 엿볼 수 있다.
토베 얀손이 비비카를 만나고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그리면서 아동용 만화가가 되기 시작한다.
토베 얀손에게는 비비카라는 여성이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 없이 이 둘은 거침없이 사랑을 나누고 확인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서로 예술을 좋아하며 예술가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무민이라는 캐릭터가 지금까지 인기를 끌어온 것은 토베 얀손이 삶을 멋진 모험이라고 생각하는데 있어 담긴 토베 얀손만의 철학이 담겨있는 것 같다. 자신의 아버지는 토베 얀손이 그리는 무민이라는 만화가 예술이 아니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토베 얀손을 인정하게 되고 각본 연출가인 비비카 덕분에 연극으로도 탄생하게 되어 아동들에게도 인기를 끌게 된다. 만약 자신의 그림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무민이라는 캐릭터는 없었을 것이다.
무민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노력과 고난이 있었다.
사회주의적인 분위기가 있는 핀란드에서는 신문에 아동용 만화를 그리지 못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자유로운 연애를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나라에서도 성(SEX)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보수적인 것보다 진보적이다. 거침없이 사랑을 하고 거침없이 헤어지는 당시 핀란드 시대상의 분위기는 불륜을 매도하기보단 수용하는 사회였던 것 같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성적인 장면들과 노출은 자신의 신체 노출에 대한 개방적인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태도가 보인다. 그렇기에 사랑에 대한 관점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수많은 박수갈채를 받은 토베 얀손의 무민 연극은 당시 자유로운 핀란드 시대상의 분위기가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토베 얀손이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킴으로써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동화 작가로서 그녀가 살아온 인생 경험과 철학은 무민이라는 캐릭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찌 보면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들을 다르다고 억압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포용을 보여주는 게 맞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는 바이다. 토베 얀손이 탄생시킨 무민이라는 캐릭터도 단순한 캐릭터가 아닌 모험적인 삶을 좋아했던 다사다난했던 인생을 표현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지금 우리에게 무민은 어떻게 생각되고 각인되고 있을까?
삶이 모험이라면 캐릭터는 나 자신을 표현하는 심볼(Symbol)이다.
하니엘의 주관적인 영화 한줄평
-
- 우영우와 탑건이 대박을 친 이 여름에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2022년 여름, 대박을 친 두 작품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영화 <탑건:매버릭>을 빼놓을 수 없다.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블록버스터는 대박행 티켓이겠으나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는 생소하다.
우영우의 등장 이후로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진 듯하다. 얼마 전까지 자폐 스펙트럼, 자폐증이 관심을 끌 때는 자폐증을 가진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길에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많은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한 번도 없다고 대답하겠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무척 흔하다. 국내 발병율은 2% 정도라는데, 50명 중에 1명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말이다. 우리가 무작위로 만나는 50명의 사람 중 1명은 자폐증인데, 왜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을까. 그 사람들은 세상 밖에 안 나오기 때문이라는 걸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거리에 장애인이 없는 나라이다. 심지어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시위를 해야 하고, 그 시위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나라이다. 이동권 보장을 위해 시위하는 전장연 소속 장애인들은 비난받고, 드라마에 나오는 우영우는 신드롬을 일으키는 것이 제법 모순적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나라에는 나의 이동동선을 방해하지 않고, 내 눈에 띄지 않으면서 착하고 불쌍한 장애인만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대상화되고 물화되어 집밖에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존재. 드라마 속 권민우는 우영우 때문에 자기가 피해를 본다 생각하니 우영우를 공격한다.
그러므로 우영우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존재의 등장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있는 50명 중 1명이 수면 위로 나온 것일 테다. 모두가 우영우에게 봄날의 햇살 같은 최수연 또는 회전문을 통과하기 위해 왈츠 스텝을 맞춰주는 이준호가 되면 좋겠지만, 나도 내가 '권모술수 권민우'가 아니라고 보장하지 못하겠다.
<레인맨>의 주인공 찰리 배빗 역시 비슷했던 것 같다. 평소 사이가 안 좋을 뿐만 아니라 교류도 전혀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죽으면서 남긴 3백만 달러의 유산을 하나도 물려받지 못하게 되자, 3백만 달러를 물려받은 사람을 찾게 된다. 바로 정신병원에서.
존재조차 몰랐던 형이, 아버지의 유산 3백만 달러를 몽땅 받게 되었는데 심지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기까지 하다니. 형 레이먼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형이 하는 말은 대부분 '1루수가 누구야'라는 콩트의 대사인데, 두 명이서 하는 말을 혼자서 끝없이 중얼거린다.
찰리는 형 몫으로 남겨진 유산을 반 나눠가질 생각으로 형을 데리고 LA로 간다. 형의 담당의에게 알리긴 했지만 몰래 데리고 나가는 것이니 납치에 가깝겠다. 찰리는 자동차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사정이 영 좋지 못하다. 3백만 달러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쉬운대로 반이라도 있으면 숨통이 좀 트이는 상황이다. 그러니 형을 데려가 유산 상속에 대한 법정 다툼으로 자기 몫을 찾겠다는 생각이다.
찰리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자폐증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거의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인 뷰익을 타고(정원의 장미도 유산으로 받긴 했다), 찰리와 레이먼드는 긴 여정을 떠난다. 비행기를 탔더라면 좋았겠지만 모든 비행기 사건사고를 외우는 레이 때문에 비행기도 타지 못한다.
좁은 차와 모텔 안에서 레이먼드는 끝없이 '1루수가 누구야'를 중얼거리고, 규칙에 너무나 민감하고, 소리에도 너무너무 예민하다. 그렇다고 찰리와 소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몇 시에는 TV쇼를 봐야 하고 몇 시에는 불을 끄고 무슨 요일에는 무엇을 먹고. 모든 게 정해져 있다. 팬케이크를 먹을 때 메이플 시럽이 미리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지 않으면 레이는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찰리도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다. 말이 통하지도 않고 대화도 안 된다. 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무것도 바뀌지도 않고 사람들은 레이를 보며 수군거린다.
구박데기 같지만, 사실 레이에게는 비범한 능력이 있다. 우영우가 법전을 통째로 외우는 것과 같이, 숫자를 외우고 계산하는 데는 천재인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이쑤시개가 246개라는 것을 단번에 알고, 복잡한 곱셈도 바로바로 출력된다.
돈 때문에 자폐증 형을 납치할 정도로 돈에 환장한 찰리의 머릿속에 전광석화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길로 찰리는 레이를 데리고 라스베이거스로 간다. 라스베이거스는 해가 지지 않는 곳이다. 도박장의 화려한 불빛들은 사람들에게 최면을 거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레이의 눈은 손바닥만한 이동식 TV에 고정되어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차 안에서도, 레이는 레이만의 세계에서 산다.
레이는 6벌의 카드를 모두 외워 찰리에게 큰 돈을 안겨준다. 마음에 드는 여자도 만난다. 권민우가 우영우에게 "우영우 변호사는 그런 거 모르나?"라고 물으며,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무성(無性)의 존재로 보는 것처럼, 찰리를 비롯한 사람들은 레이가 여자에게 호감을 느낄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레이도 똑같은 사람이기에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찰리는 레이와 여행(?)을 하며, 레이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고 알아간다. 사실 찰리는 자기 속얘기를 타인에게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아버지의 장례식 때, 에피소드 하나를 얘기하며 애인이 무서울 때 어떻게 했냐고 묻자 '무서울 때는 레인맨이 와서 노래를 불러줬다'고 했다. 레인맨은 찰리의 상상 친구.
어느 날, 찰리가 목욕을 하려고 욕조에 물을 받자 레이는 발작을 일으킨다. 아기가 뜨거운 물에 덴다는 이유였다. 찰리는 물에 안 데였다며 레이를 안심시키다 깨닫는다. 모두가 형의 존재를 비밀에 부친 게 아니라, 레이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무서울 때마다 노래를 불러준 사람은 상상 친구 레인맨이 아니라 형이었다. 레이는 찰리를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월브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돈에만 환장하고 사람들과 대화도 못하는, 사람들을 이용할 생각뿐인 찰리는 괜찮은 이웃인가. 레이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만이 위험한가.
형제는 함께 지내며 서로를(정확히는 찰리가 레이를. 레이는 찰리에게 관심이 없다) 알아간다. 찰리는 이제 돈보다는 형과 같이 지내고 싶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가 않다. 형은 치료가 필요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니까.
케이마트에서 파는 팬티를 입어야 한다고 몇날며칠 난리 브루스를 추는 레이에게 찰리는 "케이마트는 구려"라고 화를 냈다. 의사와 함께 월브룩으로 돌아가게 된 레이에게 의사가 케이마트에 가자고 하니, 레이는 대답한다. "케이마트는 구려."
*
형제는 헤어진다. 이제 약간의 소통이 되는 것만 같던 마법같은 순간에 헤어진다. 농담도 하고 같이 웃기도 하고, 레이가 책에서 보고 외워버린 "1루수가 누구야" 콩트도 비디오테이프로 준비했는데, 형제는 헤어져야 한다.
기차를 탄 레이는 단 한 번도 찰리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결코 무지한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찰리는 외로워지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가족은 외롭다는 우영우 아빠의 말처럼.
*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와 톰 크루즈의 미모가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한스 짐머의 음악과 1980년대 미국의 레트로한 영상미는 덤이다.
<레인맨>은 특수아상담을 연구하고 책도 쓰신 모 교수님 강의에서 추천받았던 영화이다. 교수님은 영화 속 레이의 모습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과 꽤 비슷하다고 했다. <탑건>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대박을 친 이 여름에, <레인맨>을 조심스럽게 영업해본다.
-
- 좀비를 뚫고 라스베가스의 금고를 털러가자! - 아미 오브 더 데드 리뷰
잭 스나이더의 신작 좀비 영화 아미 오브 더 데드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어요.
이미 많은 분들이 보셨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잭 스나이더가 리메이크 했던 새벽의 저주에서 빠른 좀비로 인해 만들어졌던 스피디 함을 기대하시는 분들은 조금 실망하실 거에요.
이번 아미 오브 더 데드는 새벽의 저주의 속편도 아니고 약간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알파 좀비라고 하는 지능을 가진 좀비가 등장하고, 사회도 구성하죠.
일반 좀비들은 여전히 느리지만 알파 좀비의 일원은 빠르게 뛰어다녀요.
그리고 좀비가 있는 구역이 라스베가스로만 한정됩니다. 어느 정도 통제에 성공한 모습이죠.
주인공들은 라스베가스의 어느 금고로 가서 돈을 가져오려고 합니다.
하이스트 영화의 틀에서 전개되어서 팀을 조직 하는 것 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액션도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어요.
그래도 과거 좀비 영화의 B급 감성과 A급 화면들이 적절히 잘 믹스된 것 같아서 저는 재미있게 봤어요.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클릭해 주세요! :)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 ?씨나병의 영화정보 #15? ?영화관 아르바이트?!?
?씨나병의 영화정보 #15? ⠀ ?열다섯 번째 주제? ⠀ ? 영화관 알바?! 영화관 아르바이트에 대한 모든 것!
-
- 넷플릭스 <로키 앤 키 시즌2> 티저 예고편
곧 공개 예정인 《로크 앤 키》 시즌 2의 공식 티저 예고편. 아버지가 살해된 후, 가족의 옛날 집으로 이사한 세 남매. 엄청난 힘과 능력을 주는 마법의 열쇠가 이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
- 영화 <올빼미> 런칭 예고편
그날 밤, 세자가 죽었다. 맹인이지만 뛰어난 침술 실력을 지닌 ‘경수’는 어의 ‘이형익’에게 그 재주를 인정받아 궁으로 들어간다. 그 무렵, 청에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8년 만에 귀국하고, ‘인조’는 아들을 향한 반가움도 잠시 정체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러던 어느 밤, 어둠 속에서는 희미하게 볼 수 있는 ‘경수’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진실을 알리려는 찰나 더 큰 비밀과 음모가 드러나며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진다. 아들의 죽음 후 ‘인조’의 불안감은 광기로 변하여 폭주하기 시작하고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경수’로 인해 관련된 인물들의 민낯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