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5-09-20 22:10:03
[30th BIFF 데일리] 세대와 경험을 넘어 흐르는 우정
영화 <흐르는 여정> 리뷰
세대를 넘어선 특별한 우정을 담은 영화 <흐르는 여정>이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신다. 삶의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시작되는 이야기는 사소한 만남 속에서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흐르는 시간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주인공 춘희는 세상을 떠난 남편과 함께한 집을 정리하고 새 아파트로 이사한다. 남편이 아끼던 피아노와 자동차, 식물들을 새집으로 들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 이웃 주민 민준과 함께 이를 정리하며, 세 사람은 서로의 삶을 채우는 특별한 우정을 쌓아간다.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일상은 평범하지만 사랑스럽고, 자연스러운 유머와 따뜻함이 묻어난다. 영화는 세대 차이나 편견에서 오는 갈등을 억지로 넣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관계만으로 마음을 잇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삶과 죽음의 흐름을 섬세하게 담아낸 점도 주목할 만하다. 피아노 선율과 함께 흘러가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작은 친절과 마음의 교류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다. 특별한 사건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채우며 함께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따뜻한 여운과 오래 기억될 감정을 선사한다. <흐르는 여정>은 피아노와 우정이 함께 흐르는 소소하지만 깊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상영스케줄
09-20 2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09-22 19:30 CGV 센텀시티 6관
09-23 16:00 CGV 센텀시티 5관
09-24 14: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10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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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는 소설의 기본, 갈등은 최고의 소재"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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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게는 <브로크백 마운틴>부터 가까이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까지, 나는 브로맨스(라 칭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영화에 크게 동하는 편이 아니었다. 반면 <윤희에게>나 <캐롤>과 같은 영화는 겨울이면 생각난다. 그건 아마도 내가 여성이기에 여성-남성, 여성-여성의 감정선은 따라갈 수 있으나 남성-남성의 감정선은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일 거라 짐작한다.
<장르만 로맨스>는 별안간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여, 지금 왓챠 오리지널로 핫하다는 <시멘틱 에러>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 재미있는 걸 왜 여태...
아무튼, <장르만 로맨스>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극중 김현(류승룡 분)의 말처럼, "관계는 소설의 기본, 갈등은 최고의 소재"임을 충실히 살렸다.
출처: 네이버 영화
"사랑 맞아요. 제가 알아요."
중첩된 관계들이 서로의 바깥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 김현-미애-성경 가족, 김현의 새 가족, 김현-남진-유진, 김현-순모-미애 등 이들은 태엽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관계의 중심에는 김현이 있고, 영화는 김현을 중심으로 주변인들을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이 관계들 중 속편한 쪽은 어디에도 없다. 잘나가는 소설가이지만 7년째 작품을 내지 못하는 김현과 그런 김현만 보고 사는 출판사 대표 순모. 순모는 김현의 전 부인 미애와 비밀리에 연애 중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혼란스러운 아들 성경은 이상한 관계에 빠진다. 김현은 친구였던 남진과 절연했는데, 술 취해 찾아간 남진의 집에서 유진을 만난다. 남진은 유진을 사랑하고, 유진은 김현을 사랑한다. 정말 단 하나의 관계도 편치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을 숨기지 않는다. 이 영화의 매력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거나 중상모략을 꾸미거나 누군가를 함정에 빠뜨리는 인물이 없다는 점에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정확하게 사랑한다고 말할 뿐이다.
김현을 찾아온 유진은 다짜고짜 사랑을 고백한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랑. 그래서 상처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랑이다. 그렇게 김현의 집에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다음 날 학교 강의에서 교수와 학생으로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만 유진은 숨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강의를 듣고, 김현이 앉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는다.
사랑한다고 해서 일상을 무너뜨리고, 당신이 사랑을 받아주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망가졌다는 식으로 피해자가 되어 죄책감을 전가하지도 않는다. 유진의 아버지 장례식에서, 유진의 마음은 문학적 동경일 거라고 재단하는 김현에게 안겨 유진은 말한다. "사랑 맞아요. 제가 알아요."
오히려 일상이 무너진 건 미애 쪽이다. 십 년 전에 김현과 이혼했는데도 김현에게 애인이 생긴 것 같다는 순모의 말에 날카로워진다. 결국 아들까지 속여가며 강원도 여행을 갔는데도 머릿속에는 김현 생각뿐이다. 바람나 헤어진 전남편에게 애인이 또 생긴다는 것은 충분히 예민할 만한 일이다. 그런 미애를 보며 순모가 불만을 가지는 것또한 그럴 만하다.
김현 때문에 서로 예민해지는 바람에 여행을 망친 미애-순모 커플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가 난다. 보험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동승자 신상까지 조사를 해야 하기에 미애는 택시를 잡아 탄다. 30년지기 친구의 전처와, 전남편의 30년지기 친구가 연애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 때문이다.
순모는 연락이 닿지 않는 미애 때문에 운다. 모든 것이 다 까발려지고 난 뒤에도 운다. 결국 김현에게도 고백한다. "내가 먼저 미애 좋아했어." 미애 앞에서 우는 순모에게 미애는 역시 말한다. 사랑한다고. 화를 내면서도 미애가 타고 떠난 택시의 번호판을 열심히 찍고, 여행일정이 마음에 안 들어도 최선을 다하고, 우는 모습도 좋다고 말하는, 그게 사랑 맞지, 달리 뭐가 사랑일까.
상처받은 사람의 뒷모습은 거의 다 똑같다
김현-미애의 아들 성경을 보자. 성경은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청소년이다. 성경은 가뜩이나 여자친구가 임신을 한 바람에 헤어졌는데 이혼한 부모의 부적절한 행위까지 목격한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쟤 왜 저러나' 싶은 인물이더라도 우리는 성경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게다가 엄마는 눈에 다 보이는 거짓말로, 아빠의 절친과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 세상에 내던져진 성경이라는 존재는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 거리를 배회한다.
떠돌이 강아지가 된 성경에게 나타난 정원. 정원은 옆집 이웃이다. 집 나온 성경을 보살펴주고, 같이 놀아주는 정원의 마음을 성경은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정원도 사랑일 수 있지 않느냐 하겠지만, 우선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사랑은 범죄다. 어른은 어리숙한 미성년자를 사랑할 것이 아니라, 잘 돌봐주어야 한다. 학창시절에 선생님을 사랑하는 학생의 마음은 정상, 그런 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교사는 비정상인 것처럼. 그러나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갈 수 없는 성경은 정원에게 빠진다. 정원을 사랑한다기 보다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여자'라는 환영을 사랑한다.
정원의 남편이 돌아왔을 때 성경은 남편을 패버리고 경찰서에 가는데, 정원의 남편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성인 남자의 눈에 성경은 미성년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상대도 안 되는 놈'일 뿐이다.
집으로 돌아온 성경은 엉엉 울어버린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운다. 표면적으로는 정원의 거절 때문이겠지만, 그동안의 외로움과 서러움, 혼자 남은 아이의 불안과 공포가 내재되었을 것이다. 결국은 성경은 사랑의 경험으로 성경은 성장할 것이다. 이성의 사랑과 찌질하게 우는 자신을 도닥여주는 부모의 사랑.
사실 아들이 거리를 떠돌며 사랑을 갈구할 때, 아버지 김현은 유진의 집에 있었다. 유진의 소설 때문이었다. 학부생의 습작이라고 무시했던 작품을 출판사에서 호평하자, 김현도 작품을 읽어 보고는 7년만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 김현과 유진이 같이 작업하여 장편 하나를 완성해낸다.
예술계의 사정과 젊은이의 재능을 이용하는... 뭐 그런 이야기들은 일단 차치하도록 하자. 그들은 같이 쓴다. 쓰고, 이야기하고, 싸우고, 술 마시고, 또 쓴다. 왕가위의 <아비정전>을 조그만 TV로 보며, 유진은 자신이 아비(장국영 분)와 닮았다고 말한다. "상처받은 사람의 뒷모습은 거의 다 똑같거든요."
급기야 술에 취한 김현은 골목에서 유진의 뒷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는데... (나 이런 거 좋아했네, 라는 말을 이해했다.)
유진은 게이라는 이유로 학과 내에서 조롱받고, 남진의 질투심으로 김현과 유진이 연인관계라고 소문이 퍼져 김현이 두문불출하고 있을 때, 스스로 뉴스에 출연해서 자신이 김현을 사랑하는 건 맞지만 그런 관계는 아니라고 일축한다. 이토록 정확하고 성실한 사랑을 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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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만우절 딱 하루에만 존재하는 나라가 있다. 리투아니아 내에 있는 '우주피스 공화국'이다. 면적 0.6제곱킬로미터로, 공원 크기의 나라이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정식 국가라고. 김현은 유진의 집에서 우주피스 공화국의 사진을 본다.
뉴스를 보고 찾아간 유진이 집을 내놓고 사라지고 자신에게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김현은 베낭을 메고 리투아니아로 향한다. 그리고 기적처럼(예상되기는 해도) 그곳에서 유진을 다시 만난다. 유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김현에게 유진은 다시 외친다. 사랑한다고. 어쨌든 만우절이고, 만우절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날이다.
어디에선가 어려운 사랑을 하고 있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황인찬, <무화과 숲>)이라는 시가 떠오르는 이야기.
관람 포인트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런 장르에 홀린 것 같다. 이렇게 영화 속 인물들이 잘 되길 빌어본 게 얼마만인지... 추천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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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성실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에서 사랑을 지켜낸 여자들.
‘J스페셜:올해의 프로그래머‘는 각 분야의 영화인을 프로그래머로 선정하여 자신만의 영화적 시각과 취향에 맞는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는 섹션이다. 올해로 5회 차가 된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배우이자 가수, 그리고 이제는 감독으로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이정현이다. 그녀는 자신의 출연작 3편과 선정작 3편, 총 6편의 영화를 통해 스크린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내가 이번에 감상한 영화는 이정현 감독의 <꽃놀이 간다>와 안국진 감독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이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영화 정보
안국진
AHN Goocjin
Korea
2014
90min
DCP
Color/B&W
Fiction
청소년 관람불가
시놉시스
"미안해요, 그러니까 내가 죽이는 거 이해해 주세요. 전 그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에요. 제가 이래 봬도 스펙이 좋거든요. 잠도 줄여가며 투잡 쓰리잡 열심히 일했어요. 근데 아무리 꾸준히 일해도 빚은 더 쌓이더라고요. 그러다 빚을 한 방에 청산할 기회가 찾아왔는데! 왜 행복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기는 걸까요? 이제 제 손재주를 다르게 써보려고요.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5포 세대에 고함! 열심히 살아도 행복해질 수 없는 세상, 그녀의 통쾌한 복수가 시작된다.
* 해당 상영작은 J 스페셜클래스가 포함된 상영회차(상영코드 131)에서만 코리안시네마 단편 <꽃놀이 간다>와 묶음 상영 됩니다.
상영정보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2025.05.01 13:00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2025.05.03 21:00
영화리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10년 만에 전주에서 다시 상영되었다. 안국진 감독과 이정현 배우는 영화 상영 후 스페셜 클래스 시간을 통해 그때 당시를 회상했다. 이 작품은 이정현 배우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이정현 배우는 <꽃잎>으로 데뷔하여 큰 주목을 받았지만 그 뒤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아 가수로 활동했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권유로 <파란만장>에 출연하는 등 영화배우로서의 활동에 시동을 거는 그때, 운명처럼 찾아온 영화가 바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이 영화는 2015년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제36회 청룡영화상, 제3회 들꽃영화상에서 이정현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또한 제52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영화 부문 시나리오상을 수상하며, 상업성과 예술성을 두루 인정받았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이정현 배우를 위해 쓴 극본은 아니라고 했다. 극본에 쓰인 ‘수남’이라는 인물을 누가 수정 없이 연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와중 그것을 수정 없이 해낸 배우가 바로 이정현이었다고 한다. 이정현의 소속사에서 캐스팅 제안을 거부했지만 박찬욱 감독의 추천으로 이정현 배우가 출연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디에도 없던 여성캐릭터. 사랑과 삶을 지키기 위한 광기와 묘한 사랑스러움이 매력적인 ‘수남‘이라는 캐릭터는 무척이나 독보적이다. 이 등장인물은 감독의 어머님이 모티브라고 한다. 남자로서 여자의 일생을 제대로 그려내기 어려웠기 때문에 어머니의 삶과 사랑을 이 영화에 녹여내었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이 무한하고도 끊임없는 헌신적인 사랑의 형태가 이해가 됐다.
수남은 수많은 선택의 시간을 지나왔다. 첫 번째로는 여공으로 살 것인지, 엘리트로 살 것인지를 선택하게 된다. ’엘리트’의 삶을 선택한 수남은 여자는 무엇보다 ’몸매=가슴‘이중 요하다는 선생님의 말을 한편에 새기지만 곧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컴퓨터의 세상이 도래했고, 자신보다 더 큰 ‘가슴’은 곳곳에 있었으며 성실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하룻밤의 실수로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 평생을 꿈꾸게 된다. 그녀의 마음만큼은 ’실수‘가 아니었다.
규정은 늘 ‘집’을 먼저 사자고 말하며 우리 아이에게는 나처럼 살지 않게 기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청각장애로 인해 보청기를 끼고 있던 규정이 청력을 정말 소실하게 되며 수남의 권유로 집을 사려고 했던 2천만으로 인공와우 수술을 받게 된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으나 갑자기 인공와우에 문제가 생기며 손이 기계에 절단되는 사고를 겪게 된다. 그 후, 규정은 폐인이 되어버렸고 그런 규정에게 죄책감을 느꼈던 수남은 규정이 그토록 원했던 ‘집‘을 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잠을 줄여가며 청소, 요리, 신문 배달, 명함 날리기 등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10년 간 계속하지만 집 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결국에는 은행에서 1억 4천만 대출까지 동원해서야 집을 마련하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수남은 성실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사랑도, 일도. 이 모든 게 사랑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이 여자가 성실하다는 건 명백한 일이다. 이러한 헌신적인 사랑의 형태는 좀처럼 찾아보기도 힘들고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혐오스러운 마츠코가 생각나기도 하는 수남의 일생은 비극의 연속이다.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르며 그녀의 삶은 점점 빠져나갈 구멍이 사라진다. 희망이 생기는 순간, 저지되는 희망은 더 큰 절망으로 그녀를 찾아온다.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일군 수남에게 세상은 언제나 가혹했다. 어떤 상황이 찾아와도 그녀가 저지른 그 ‘죄’보다 앞서는 건, 그녀가 얼마나 성실히 살아왔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남은 끝내 울지도, 제대로 분노하지도 못한다. 세상은 그녀의 삶을 죄로 낙인찍고 그 죄를 옹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 죄가 어떤 절박함 속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를.
꽃놀이 간다
영화 정보
이정현 LEE Jung-hyun
Korea | 2025 | 28min | DCP | Color | Fiction | 12세 이상 관람가 | World Premiere
시놉시스
지병을 가지고 있는 수미는 죽음을 앞둔 엄마의 병원비가 계속 밀리는 상황에서 병원의 ‘중간 정산' 때문에 입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이 조금만 더 기도하면 엄마가 살아날 거라는 믿음을 확신하며 병원에서 난동을 피우고 강제 퇴원을 시켜 집으로 데려온다. 모든 게 뜻대로 풀리지 않지만 다음 주 시작되는 꽃놀이 관광에 엄마를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상영정보
2025.05.01 13: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2025.05.04 10:00 CGV 전주고사 4관
2025.05.06 20:30 메가박스 전주객사 6관
수미는 엄마의 간병을 도맡아 하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엄마의 병원비가 밀려있는 상황에서 병원에서 난동을 피우고 강제 퇴원을 시켜 집으로 데려온다. 꽃놀이 관광에도 함께 갈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질 거라는 믿음과는 다르게 엄마의 상태는 점점 나빠진다. 엄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집을 내놓았지만 불경기라 팔리지 않고, 그 집 때문에 기초수급수령 자격이 되지 않았다. 그녀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절망적인 상황에도 여전히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과연 꽃놀이 관광을 갈 수 있을까?
이정현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비극적인 삶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꽃놀이 간다>에서는 연출자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또 다른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의도치 않게 두 영화는 참 많이 닮아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무한 경쟁과 생존의 논리 속에서 ‘성실한 사람’이 어떻게 밀려나고 지워지는지를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단순하게 피해자로 표현하지 않고 버텨내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감당해 낸 한 여성의 치열한 삶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정현 감독의 첫 연출작 <꽃놀이 간다>는 창신동 모자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라고 한다. 한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이면을 고요하고도 섬뜩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수미의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현실의 벽에 부딪혀도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불안정한 시스템과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어 흥미로웠다. 이정현 감독이 두 번째로 연출한 단편 영화가 곧 공개된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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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부유하는 도시인과 일상의 접촉
시놉시스
<푸르스름한>은 모호한 분위기, 느낌, 존재의 연약한 상태를 묘사한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릴리트 크락스너 Lilith KRAXNER, 밀레나 체르노프스키 Milena CZERNOVSKY
출연: Leonie BARMBERGER, Natasha GONCHAROVA
리뷰
<푸르스름한>은 명확한 줄거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 영화가 아니다. 사이에 끼인(in between) 일상 속 순간의 분위기와 느낌을 이미지와 사운드로 포착하는 일종의 아방가르드 영화다. 코로나 시기 구상된 <푸르스름한>은 판데믹 동안 사회와 일상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느낀 설렘과 두려움을 표현한다. 그럼에도 <푸르스름한>의 줄거리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너무나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던 탓에 소통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다시 세상과 연결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원제 <Bluish>는 본래 파란색의 색채와 우울한 기분을 모두 뜻하는 단어다. 제목의 중의적 의미는 파란색의 이미지를 통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물의 이미지다. 물에 둥둥 떠 있거나 샤워를 하고, 수영을 하는 장면들은 단단하게 뿌리내린 고체 상태로서 인간이 아닌 액체 상태의 인물을 형상화한다. 일종의 정화 행위로서 샤워는 신체와 접촉하는 물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는 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의 실제 시간에 맞먹을 정도로 롱테이크로 촬영된 샤워 장면은 가시적이지 않지만 우리의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순간들을 재탐색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행위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현대인의 하루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행위는 무엇일까? 단연코 스크린 타임일 것이다. 깜깜한 밤에도 놓지 못하고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의 색채 또한 파란색이다. 스마트폰의 블루 스크린은 세상과 소통되길 원하면서도 단절된 현대인의 불안을 형상화한다. 이를 잠재우려는 듯 주인공은 명상 영상을 틀어놓고 잠에 든다. 수동적인 관람이 아니라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시각적 이미지를 모두 암전시키고 마치 실제로 주인공과 함께 자리에 누운 듯 고요한 명상 영상에 집중한다. 음향이야말로 관객의 신체에 가장 가깝게 접촉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여전히 평면의 한계로 인해 카메라가 두 여성의 일상에 밀착하면 할 수록 관객의 시선은 관음이 된다. 그래서 <푸르스름한>은 관객으로 하여금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게 만든다. 영화에는 세 번의 눈맞춤이 등장한다. 첫 번째 눈맞춤은 병원 대기실에서 만난 아이와 함께 눈을 깜빡이는 장면, 두 번째는 데이팅 어플에서 만난 사람과의 눈맞춤, 그리고 마지막은 완전히 낯선 사람과의 눈맞춤이다. 영화 속 인물들뿐만 아니라 관객 또한 얼굴 클로즈업 정면샷을 통해 배우와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프랑스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관계를 얼굴의 현현으로 설명한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상대방의 얼굴, 그것은 참된 인간성의 시작일뿐만 아니라 일종의 윤리적 호소로서, 또는 저항할 수 없는 명령으로서 나에게 다가온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타자를 환대할 수 있다. <푸르스름한>은 혐오가 재미가 된 시대에 파편화된 타자의 얼굴을 다소 투박하지만 온전한 형태로 기워 넣음으로써 일상 속 blue의 순간들을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상영스케줄
2025.05.02(금)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21:00 (상영코드:259)
2025.05.03(토)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20:30 (상영코드:375)
2025.05.04(일) 메가박스 전주객사 4 17:30 (상영코드:449)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2025.04.30~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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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시> | 지나치게 디즈니다워서 엉망인 100주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소원을 이뤄주는 마법사 '매그니피코 왕'(크리스 파인)이 다스리는 왕국 '로사스'. 100살이 된 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뤄지길 고대하는 소녀 '아샤'(아리아나 드보즈)는 매그니피코를 도우러 간 자리에서 우연히 그가 숨겨 온 어두운 진면목을 발견하고 혼란에 빠진다.
그런 아샤 앞에 무한한 힘을 지닌 특별한 '별'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별은 염소 '발렌티노'(앨런 튜딕)에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별의 힘을 믿고 매그니피코의 음모를 막기로 결심한 아샤는 일곱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그녀의 계획을 먼저 눈치챈 매그니피코는 야욕을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폭주하기 시작하고, 아샤와 친구들은 예상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디즈니의 모든 것'이 문제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각자 고유한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픽사 애니메이션은 아동뿐만 아니라 성인 관객에게도 소구력이 있다. 예상 못한 뭉클함에 눈물 한 방울 흘리는 경험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도 마찬가지다. 특유의 이미지가 가장 공고한 제작사라고 볼 수도 있다. 디즈니만의 매력 두 가지는 백 년간 변하지 않았으니까. 바로 동화와 뮤지컬이다. 물론 디즈니도 <주토피아>, <모아나>, <겨울왕국>처럼 동화를 변주하기는 했다. 그러나 드림웍스처럼 동화를 파괴하고 재창조하지는 않았다. 또 설령 작품 평가가 부정적이어도, 디즈니의 음악만큼은 대체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100주년 기념작 <위시>는 이러한 디즈니만의 이미지를 온전히 구현하려는 노력이 가득 담긴 선물 세트다. 지극히 동화적인 이야기에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피터 팬> 같은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작품의 오마주가 가득하다. 귀를 즐겁게 하는 뮤지컬 음악 사이로는 디즈니 특유의 교훈과 새로운 사회에 발맞추려는 변화가 깃들어 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디즈니스러운 만듦새는 끝내 <위시>의 발목을 잡는다. 지난 100년 간 쌓아 올린 디즈니의 유산을 한 데 모아놓고 보니, 그들끼리 충돌하면서 여러 모순을 드러내고 만다. 그로 인해 <위시>는 자기만의 매력도 좀처럼 찾지 못한다. 결국 디즈니의 소문난 잔치에는 먹을 것도, 즐길 것도 없어지고 말았다.
평범해도 괜찮아. 어차피 동화니까.
<위시>의 이야기는 평범하다. 동화책을 읽어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형식만큼이나 전형적이다. 늘 그렇듯이 악의를 지닌 악역과 그로부터 고통받는 공주가 등장한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공주는 여러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예상대로 빌런을 꺾는 데 성공한다. 권선징악이라는 환상은 뛰어난 기술력과 아름다운 목소리 덕분에 더 빛난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평범한 이야기를 비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위시>가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임을 고려하면 오히려 초심을 찾으려는 시도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상술했듯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본래 맛깔나게 동화를 들려주는 할머니나 유모 같은 존재였다. 관객에게 순수한 즐거움과 희망을 주는 것이 디즈니 작품의 목적이었고, 디즈니의 매력이었다.
<위시>의 그래픽과 음악만 봐도 초심을 강조하려는 듯한 흔적이 역력하다. 우선 기존 작품에 비해 단순하고 직관적인 그래픽이 눈에 띈다. 동물 털까지 세밀하게 만들어낼 줄 아는 최신 기술력을 좀처럼 뽐내지 않는다. 외려 직접 그리거나 손으로 나무를 파내 만든 판화로 찍어낸 듯한 느낌이 강하다. OST도 마찬가지다. 그 유명한 디즈니의 오프닝 음악을 변주한 선율이 가득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위시>는 지극히 동화답기에 오히려 신선하다. 지난 몇 년간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항상 변화를 쫓느라 바빴다. 동화가 아닌 소재를 찾거나, 동화를 변주하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시도는 관객을 매료하기도 했지만, 디즈니만의 개성을 잃고 픽사 작품을 닮아간다는 비판을 낳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위시>의 지극히 원형적인 이야기가 역으로 인상적일 여지가 분명히 존재한다.
형식과 내용의 충돌
문제는 <위시>의 동화적인 형식이 정작 내용과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시>는 제목대로 소원에 대한 동화다. 로사스 국민은 매그니피코 왕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소원을 맡긴다. 왕은 매달 로사스를 위협하지 않는 소박한 소원 하나만을 이뤄준다. 그는 로사스 사람들은 자기가 맡긴 소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왕에게 소원을 안전히 맡기는 데에 만족한 채로 살아간다.
아샤는 이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한다. 소원을 이뤄주는 기준을 자의적으로 정하고, 공익을 위해 개인의 소원을 희생하며, 소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자유와 가능성을 평생 뺏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래서 아샤는 왕 대신 별에게 소원을 빈다. 로사스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소원을 되찾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살도록 해달라고. 그러자 이 소원을 들은 별은 땅에 내려와 아샤와 함께 모든 소원을 되찾는 여정에 나선다.
<위시>는 이 과정을 통해 다음처럼 말한다. 소원을 이룰 개개인의 자유와 가능성은 별처럼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고, 구속될 수 없는 존재니까. 이 대목이 발단이다. <위시>의 교훈은 형식만큼이나 동화적이다. 그런데 그 교훈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은 동화로 포장될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다. 그 결과 <위시>는 동화와 현실, 형식과 내용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동화로 노래할 수 없는 현실
실제로 <위시>의 교훈은 익숙한 현실을 소환한다. 우리 모두 하나의 별이니 자존감을 갖고 전진하자는 말은 어디선가 많이 들은 이야기다. 이는 개개인에게 주어진 역량과 가능성을 살리고, 재능을 오롯이 발전시켜 최상의 결과를 만들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난 수십 년 간 우리 사회를 지배한 미국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이고, 더 나아가 능력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발현인 셈이다.
그런데 스크린 너머 관객의 현실에서 <위시>의 교훈은 이미 빛을 잃은 지 오래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소원을 지녀도 재능과 가능성을 찾을 수 없는 환경에 처했거나, 재능을 알더라도 계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도 소원을 이루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데 인색하기도 하다.
심지어 마이클 샌델 교수의 지적대로 운이 따라 성공한 사람들에게 모든 과실이 쏠리고, 실패한 이들과의 차이가 벌어지고, 패자들이 멸시받는 일이 많아지기도 했다. 즉, 스크린 너머의 현실에서는 능력주의에 대한 회의감, 기회의 평등에 대한 의문, 신자유주의 체제애 대한 불신이 나날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소원을 이루자'는 <위시>의 교훈은 제목만큼이나 꿈같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자연히 <위시>의 메시지는 하늘에서 땅으로는 내려와도, 스크린 너머까지는 닿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을 동화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순간 거부감을 키울 뿐이다. 동화로 포장할 수도 없고, 환상만으로 해결될 수도 없는 현실을 기만하는 것 같은 위선마저 느껴진다.
동화라서 보이는 구멍
물론 <위시>는 나름대로 형식과 내용, 메시지와 현실의 간극을 메우려고 애쓴다. 유머, 노래, 화려한 CG를 총동원한다. 하지만 끝내 동화라는 한계를 벗어나려 하지는 않으며, 결국 동화라는 이유로 생략된 수많은 현실은 수많은 구멍을 낳는다. 우선 동화라는 이유로 평범한 이야기를 옹호할 수 없다. 오히려 드라마는 너무 경직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겨울왕국> 감독인 크리스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캐릭터도 매력이 없다. 전형적인 동화의 주인공인 아샤와 그의 아버지는 흥미롭지 않다. 귀여움만 어필하는 염소도 <겨울왕국> 속 스벤에 비하면 존재감이 부족하다. 반전을 염두에 둔 '왕비'(안젤리크 카발)도 근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한 '주체적인 여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나마 매그니피코가 강렬하다. 행적은 뻔하지만, 과하게 무게 잡는 대신 유머로 잔뜩 무장한 악역이라서 차라리 새로워 보이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는 디즈니의 야심 찬 변화도 설득력을 잃는다. 아샤에게는 일곱 난쟁이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성별과 인종으로 이뤄진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다양성을 부각하려는 시도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인종별로 고정관념적인 외모를 활용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으니까. 당장 아샤의 가장 친한 친구 '달리아'(제니퍼 쿠미야마)만 해도 동아시아인임을 보여주기 위해 키가 작고, 통통하며, 안경을 쓴 여성으로 그려졌다.
이에 더해 동화의 근본적인 한계가 또 한 번 디즈니의 발목을 잡는다. 아무리 다양한 인종과 성별이 작품 내에 공존한다고 해도 다양성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저 병풍에 불과하다. 동화는 특정한 주인공 한 명의 이야기이고, 필연적으로 그의 특징만 부각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처럼 디즈니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줘야 할 변화도 <위시>에서는 결국 모순으로 귀결된다.
엔딩 크레디트만 빛난다
그럴수록 <위시>에는 100주년을 기념하겠다는 강박만이 남는다. 물론 강박의 순기능도 있다. 모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교집합 내지는 프리퀄 같은 오마주는 디즈니 작품을 보며 자란 관객에게 독특한 감동을 안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녹아 있는 엔딩 크레디트 역시 100주년에 걸맞은 인상적인 순간을 선사한다.
다만 이 모든 노력은 찰나의 기쁨일 뿐이다. 과거의 영광은 변화한 현실을 보지 못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할리우드에서도 꿈과 환상을 가장 오랫동안, 가장 잘 그려내기로 유명했던 디즈니의 100주년 기념작 치고는 중요한 미덕을 여럿 빼먹은 셈이다. 그러니 <위시>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 안에 담긴 디즈니의 현재와 미래가 마냥 화려해 보이지는 않으므로.
Poor 형편없음
동화와 현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표류 중인 디즈니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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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 스프링스 시사회 영화 후기 - 타임 루프로 커플 만들기 어렵지 않아요!
에이브와 탈라의 결혼식에서 무한 타임 루프를 하게 된 나일스는 현재를 반복해서 살게 된다. 모든 죽는 방법을 써봐도 현재로 되돌아오는 타임 루프는 사실 어느 사막에 있는 동굴 입구에서 시작되었는데 로이라는 할아버지가 나일스를 죽이려고 계속 쫓아온다. 하지만 나일스는 세라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려다 우연찮게 같이 동굴 입구로 들어가게 되고 둘은 에이브와 탈라의 결혼식 아침 첫날에 깨어나게 된다. 세라는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고민을 하다가 나일스를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 싸우다가 친해진다. 그리고는 무한 타임 루프를 벗어날 방법을 찾으러 세라는 간다. 과연 사막에 있는 동굴 입구에 존재하는게 무엇이길래 타임 루프를 반복하게 될까? 나일스는 로이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타임 루프를 겪게 된다면
얼마나 삶이 피폐해지는지
알려주는 영화!
너를 끈질긴 악연으로 만나다 좋은 인연으로 만났다
그러다 사랑으로 번져가~
나일스는 찌질하고 코믹스러운 캐릭터지만 그런 나일스에게도 타임 루프로 인해 세라라는 인연을 만났다. 둘은 처음에는 끈질긴 악연이 될 뻔했지만 나일스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세라는 나일스에게 매력을 느꼈고 사랑을 나누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랑에도 권태기가 있듯이 둘의 사이가 나빠지기도 했고 벗어날 수 없는 타임 루프로 인해 세라는 자신이 저지른 업보라고 말한다. 나일스는 이에 한 술 더 뜬 채로 상상 속이라고 하거나 꿈속에 있거나 다중 우주를 벗어난 시물레이션 오류까지 언급한다. 그렇다. 나일스의 언급이 일부 맞았는게 이 영화에서는 양자 물리학을 다루는 개념이 나온다. 세라가 타임 루프를 벗어나기 위해 양자 물리학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고 수많은 이론을 바탕으로 동굴 입구에 있는 에너지 존재를 찾아낸다. 그리고는 온갖 방법을 써서 탈출하려고 한다. 또한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자신의 현실에서 안식처를 찾는 것과 지독한 인연이라도 나중에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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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기울어진 세상을 헤엄쳐
SYNOPSIS.
위험에 빠진 아이, 이상하고 귀여운 수호 동물과 마주치다
PROGRAM NOTE.
절친 타이스와 함께 수영 대회를 준비 중인 열한 살 소녀 아마. 아마는 스스로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네갈 출신인 아마의 부모님은 망명 신청을 거절당해 더이상 합법적으로 네덜란드에 거주할 수가 없다. 어느 날 남동생과 엄마가 불시에 잡혀가고, 도망친 아마는 아빠를 찾아 헤매던 중 거대한 호저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의 수호신>은 네덜란드에 있는 수많은 불법 이민자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실에서 착안한 판타지 영화다. <나의 수호신>은 자신의 집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쫓겨나는 상황에 직면한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집의 의미’를 묻는다. 이민자 이슈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논란 중 하나이지만, <나의 수호신>은 인권이라는 큰 틀 안에서 우정과 연민의 힘으로 해피엔딩을 맞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소망하는 작품이다. (최은영)
우리가 사는 도시를 집어들고 가방 털 듯 탈탈 털면, 거기서 후두둑 떨어지는 동물들은 개, 고양이, 햄스터… 같은 것만이 아닐 거라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읽었더라. 생각지 못한 동물들이 후두둑 떨어질 거라는, 정글에서나 볼 거라고 생각했던 동물들이 실은 우리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그 말을.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나와 비슷한, 아주 닮지는 않았어도 대충 엇비슷한, 그리고 나와 다르지만 대충 예상했던 사람의 범위, 그 바깥의 누군가를 분명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도시 한복판에서 마주칠 거라 생각하지 않듯이.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익숙한지 아닌지 고작 그 문제다. 누군가의 상상력 하나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진 것처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려 본다면, 우리 모두 똑같이 그릴 수 있을 것처럼.
우리의 주인공 아마는 그렇게 도시를 탈탈 뒤집으면 조금 당혹스러울 법적 지위를 가진 채로,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살고 있다. 성격도 밝고, 공부도 잘하고, 네덜란드 최고의 수영 선수를 보며 꿈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는 될성부른 수영 유망주 어린이이기도 한데, 대회 하나를 나가려고 해도 ‘써도 될 것’과 ‘써서는 안될 것’을 신중하게 골라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아마가 사는 집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마을 같다. 아이들을 씻기고 자신도 씻기를 즐겨 하는 이웃이 샤워기를 틀면 계단참으로 물이 주르륵 흐르는, 그만큼 연결되어 있는. 그러나 아마의 가족은 이런 상황에 불평을 일삼기보다 자연스러운 생활의 풍경으로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다. 아빠와 장난칠 때나 썼던 소금 통 하나를 사러, 그 심부름 하나로 아마의 생활이 영영 달라질 때까지는.
집에 있던 아마의 어머니와 동생은 “불법 이민자”여서 잡혀 가고, 아마는 놀이터에 숨어서 일을 나가신 아빠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아마의 세상이 전체적으로 기울어 있음을 관객은 이내 깨닫게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앵글이 항상 기울어 있다. 학교도, 경찰서도, 집 바깥도, 전부 다 기울어 있다. 아마가 아빠를 찾아 들어간 “드 로테르담” 건물, 아빠의 일터 또한.
이 기울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불법 이민자”에 대한 편견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는 스스로가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이 불법 이민자이고 그 편견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사무직과 청소 일에 대한 편견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일한 업체의 이름은 Sunshine services이지만, 역설적으로 선샤인이라고는 전혀 빛나지 않는 밤에만 일하고, 밤으로 취급받는다. 세계가 기울어 있는 것이 사실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서글픈 현실에 갑자기 거대한 호저가 나타난다. 영화 자막에서는 고슴도치로 번역되었지만, 호저는 고슴도치와 다르다. 꿀벌과 말벌 정도의 차이랄까. 고슴도치가 가시를 있는 힘껏 세워도 멀리서 (그러니까 그 가시가 나를 공격하기 않을 거리에서) 보면 귀엽겠지만, 호저가 가시를 세우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그로테스크하다.
나는 호저라는 생물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호저를 처음 봤는데, 심지어 인도의 동물원에서 야행성 동물들을 모아 놓겠다고 조명을 있는 대로 침침하게 해 둔 어둠 속에서 그 가시가 파르르 서는 모습으로 처음 보았다. 뭔데 저거. 뭐야. 왜 무서워. 무서움을 익히 아는 다른 동물보다, 전혀 모르는 생물의 가시가 더 무서웠다. 알고 보니 호저는 정말 만만치 않은 생물이었다. 호저의 가시에 공격을 받으면 맹수도 배겨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 <나의 수호신> 원제인 ‘토템’답게, 이 영화 속 거대한 호저는 귀엽기만 하다. 도시 속의 사람은 내지 못한 위로의 울음소리를 호저가 낸다. 제목이 <나의 수호신>인데 자막에는 ‘토템’으로 나와, 수많은 어린이 관객들이 엄마에게 “토템이 뭐야?”를 물어야 했음은 아쉬운 포인트지만… (참고로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토템은 “부족 또는 씨족과 특별한 혈연관계가 있다고 믿어 신성하게 여기는 특정한 동식물 또는 자연물. 각 부족 및 씨족 사회 집단의 상징물이 되기도 한다.”)
커피 머신도 사랑이 필요하다며 쓰다듬는 사람이 있는 도시에서, 아마는 그저 호저와 함께 걷는다.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면 같이 걸을 상대도 없는, 대도시 속 외로운 아이의 삶. 집이었던 곳은 경찰과 개의 손에 마치 범죄자의 소굴처럼 취급되며 서슴 없는 수색의 대상이 되지만, 호저는 깡통 차기 놀이 상대가 되어 준다. 마치 전통 속 여우 사냥의 한 장면처럼, 아마가, 사람이, 개에게 쫓기는 장면이 현실에서는 연출되지만 호저는 파르르 가시를 세워 아마를 지켜준다.
극중에서 호저를 볼 수 있는 인물은, 아마와 마음의 결을 같이 하는 이들뿐이다. 애초에 아마의 옆에 서 있었던 이들을 제외하면, ‘그리오grio’ 그러니까 가수이자 시인인, 노래로 이야기를 전해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일을 사명으로 품은 이들밖에 없다. 이는 영화를 포함한 예술의 기능 중 주요한 한 지점을 짚는다. 기울어진 세상에서도 노래는 계속되어야 함을.
‘온 세계가 당신의 조국’이라는 네온사인이 무의미하게 빛나는 거대한 도시에서, 정작 도시 안에서 평생을 자란 사람을 밀어내는 도시에서, 아마는 호저의 등에 올라 기울어진 세상을 걷는다. 이 차가운 현실에, 이야기 하나를 놓는다. 그 순간 세상은 변한다.
기울어진 세상에서도 ‘상자 바깥에서, 틀을 깨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이 그리오grio의 후예, 그러니까 이야기가 잊히지 않도록 하는 이들인지 모르겠다. 아마가 외로운 여정을 걷는 내내 곳곳에서 아마를 먹이는 손길이 있었듯이, 이 외로운 도시를 가방 뒤집듯 탈탈 털면, 생각지도 못한 동물들이나 사람들과 함께, 환대의 손길 또한 함께 후두둑 떨어질 것이다.
아마는 앞으로도 기울어진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아마의 정체성은 ‘네덜란드인’에서 ‘경계인’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 경계인임을 우리는 언제 깨달을 수 있을까. 여기 계속 사는 거냐는 질문, 아마와 타이스 두 아이의 물음에 부모님의 대답은 동일했다. “그래, 당분간은.” 이사를 가든 추방을 가든, 결말이 어떻든 우리 여기서 당분간은 살아갈 존재들임은 동일하다. 도시를 뒤집어 탈탈 털면 후두둑 떨어질 존재들이라는 사실만큼은 동일하다.
그게 다르게 취급되는, 기울어진 세상을 우리 살아가지만, 이 기울어진 세상에서 노래와 환대의 손길은 계속되니, 새처럼 날아드는 그 손길과 멜로디를 따라 계속 헤엄쳐갈 일이다. 씩씩하게!
9월 15일 20:00-21:37 롯데시네마 은평 5관
9월 17일 16:00-17:37 롯데시네마 은평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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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만에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다녀왔습니다 l 해물은 싫지만 이 짬뽕은 좋아요ㅣ선우정아님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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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랜만에 제 이야기겸... 영화제 이야기겸....
무엇보다... 현생에 지친 모두를 위해 제가 힐링 받았던 순간들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영상을 보시고 다들 조금이라도 마음에 여유를 느끼셨으면 좋겠군요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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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2> 공개일 발표
진짜 게임이 시작된다. 《오징어 게임》 시즌2, 12월 26일 공개 그리고 마지막 시즌 2025년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 황동혁 감독의 편지 : "진짜 게임이 시작됩니다. 시즌 1으로 큰 사랑을 받고 믿기지 않았던 많은 일들이 벌어진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께 시즌 2의 공개 일정과 시즌 3 제작 소식까지 알리는 편지를 쓸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쁘고 설렙니다. 시즌 2 첫 촬영 날, '와, 내가 다시 오징어 게임의 세계로 들어와 이걸 찍고 있다니' 하는 생각에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3년 만에 다시 만나는 오징어 게임의 세계가 여러분께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시즌 1 엔딩에서 복수를 예고했던 성기훈은 다시 돌아와 게임에 참가합니다. 과연 그는 자신의 말대로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를 맞이하는 프론트맨 역시 이번에도 만만치 않을 듯 합니다. 이들이 보여줄 치열한 대결은 내년 공개될 시즌 3, 그 대망의 피날레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새로운 오징어 게임의 여정을 구상하며 싹 틔웠던 아이디어의 씨앗을 시즌 3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펼치고 비로소 완결할 수 있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멋진 모습으로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남은 작업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곧 만나요 여러분" ‘오징어 게임'의 제작자, 작가, 감독 황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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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더 하더 데이 폴> 공식 예고편
서부영화는 올드하다는 편견을 깨라! 개척시대 서부에 새로운 피를 수혈할 짜릿한 액션과 스릴의 복수극. 조너선 메이저스, 이드리스 엘바, 자시 베츠, 레지나 킹, 델로이 린도, 러키스 스탠필드, RJ 사일러, 에디 가세기, 대니엘 데드와일러, 디온 콜 등 호화 출연진. 제임스 새뮤얼이 연출을, 숀 ‘제이지’ 카터, 제임스 래시터, 제임스 새뮤얼, 로런스 벤더가 제작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