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3-05-04 13:06:08
[JIFF 데일리] ‘올란도’로부터 시작되는 트랜스젠더 계보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Orlando, My Political Biography
폴 B. 프레시아도/France/2023/98min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란도》*는 어느 날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이 바뀐 올란도가 수백 년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울프가 사랑했던 여성 비타 색빌 웨스트가 모델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즉 《올란도》의 설정과 작품이 쓰인 배경을 결합하면, 이 소설이 트랜스 여성을 향한 동성애적 욕망에 기반한 이야기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이 쓰인 게 1928년. 출간 100주년을 앞둔 지금, 폴 B. 프레시아도 감독은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에서 《올란도》를 다시 읽는다. 그럼으로써 올란도로부터 이어져오는 트랜스 계보를 써내려가고자 한다.
《올란도》는 프레시아도 감독에게 경외와 분노를 동시에 자아낸다. 트랜스 서사의 ‘원형’으로 삼을 만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경외를, 모든 트랜스젠더의 자서전은 《올란도》를 능가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동시대의 수많은 트랜스가 귀족이자 시인이었던 올란도가 누린 특권에서 이질감을 느낀다는 데서는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즉,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은 《올란도》에 대한 헌사이자 이를 비판적으로 넘어서기 위한 시도다.

영화에는 동시대의 수많은 올란도‘들’이 등장한다. 젠더 이분법이 포섭하지 못하는 모든 존재는 ‘올란도’다. 영화에서는 8세부터 70세까지의 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non-binary, 자신을 성별 이분법으로 분류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일컬음) 26명이 《올란도》와 자기 서사를 오가며 ‘원형’을 변주한다. 동시대의 올란도들은 현대의 젠더 이분법보다 버지니아 울프가 백여 년 전 그려낸 세계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 물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한 것도 많기에 최초의 올란도와 그 후예는 완전히 같지 않다. 《올란도》의 시적 아름다움이 가능케 하는 자유를 노래하다가도 정신병원, ‘남성’과 ‘여성’뿐인 신분증이 야기하는 불안,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법의 문제 등을 수시로 소환하는 동시대 올란도들의 이야기를 보라. 요컨대, 이들은 ‘최초의 올란도’를 재연하는 동시에 이를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한다. 어디까지가 ‘원형’이고 어디부터가 ‘변형(trans)’인지 모를 이야기는 우리를 성별 이분법의 기나긴 역사와 이 폭력적인 체제가 양산한 트랜스젠더의 경험, 감정의 궤적으로 인도한다. 패러디와 유머를 활용해 기어이 폭력적인 규범 속에서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낸 올란도들의 이야기는 쾌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올란도 이후에도 수많은 트랜스젠더 아이콘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가 올란도와 마찬가지로 그 후예들이 동일시하는 대상이 되었다. 미국에서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크리스틴 조겐슨이 대표적이다. 수잔 스트라이커가 쓴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보면, 조겐슨의 유명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편지를 하도 많이 보내서 미국 어디에서든 주소 없이 ‘크리스틴 조겐슨’이라고만 써서 편지를 붙여도 그녀의 집에 배송되었다고 한다. 올란도의 후예들이 동일시하는 건 대중에게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가시화한 인물뿐만이 아니다. 모든 특권에 반대하며 혁명을 주창한 급진적 트랜스젠더 활동가들도 동일시의 대상이다. 동시대의 올란도들은 여러 번의 동일시를 통해 젠더 이분법이 누더기로 만든 트랜스젠더 계보를 복원한다.
영화의 마지막, 인상적인 세 장면이 연달아 나온다. 첫 번째는 의사가 《올란도》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수술하는 장면이다. 의사는 “폭력뿐이었다(Violence was all)”는 구절을 오려내고, 책에 실린 올란도의 얼굴을 동시대 올란도들의 얼굴로 교체한다. ‘정신병자’로 낙인찍혀 의료 조치의 대상이 되어야 할 존재는 트랜스젠더가 아닌 그들을 주변화한 젠더 이분법이라는 점을 ‘수술’이라는 트랜스젠더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 의료 행위로 패러디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당당히 스스로가 트랜스젠더라고 말하는 어린이들의 ‘올란도 선언’이다. 아이의 이미지는 대개 이성애 규범적인 핵가족의 미래를 상징하는 보수적 상징으로 활용되지만,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에서는 그렇지 않다. 트랜스젠더임에도 우울하지 않은 아이들의 얼굴은 올란도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앞으로도 다채롭게 변주되어 이어질 것임을 분명하게 암시한다.
마지막은 《올란도》 출간 100주년인 2028년을 맞아, 《올란도》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판사가 체제의 폭력에 시달려온 존재들에게 논바이너리 국가의 시민권을 부여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최초의 올란도(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식민주의‧제국주의의 관성을 거부하고 배제된 자들을 위한 국가와 권리를 선포하는 장면, 즉 권력을 전유하는 장면으로 독해할 수 있다.
이 진지하고 감동적이면서도 풍자 정신이 충만한 블랙/코미디가 최종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시적 세계에서만 가능했던 트랜스젠더의 자유를 현실로 가져오라는 것.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은 퀴어가 나오는 작품의 문학성은 예찬하면서도 정작 현실의 문제에는 눈감는 사람, 독특한 상상력으로 우리를 속박하는 규범의 경계를 넘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독창적‧실험적 영화다.
*국내에는 ‘올랜도’로 번역된 것이 더 많으나 영화의 제목에 맞춰 편의상 ‘올란도’로 표기한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 초청으로 제24회전주국제영화제에 기자로 참석해 작성한 글입니다.
★이 영화는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4월 30일 13시, 5월 3일 17시 30분, 5월 4일 16시 30분에 상영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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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버나움(Capernaum/2018/레바논, 프랑스)
-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
<무정지옥(無情地獄)>
가버나움은 이스라엘 북부의 도시이름이다. 예수 당시에는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세관도 있어 제법 큰 도시였다. 예수가 이곳에서 가르침과 기적을 많이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버나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아 예수는 가버나움의 멸망을 예언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배경은 가버나움이 아니라 레바논의 빈민촌이다. 멸망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이렇게까지 가난하고 피폐할 수 있을까 싶은 동네여서 '가버나움'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것 같다.
빈민촌의 한 소년이 친부모를 고소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소년의 이름은 자인. 출생증명서가 없어 존재와 삶이 입증될 수 없는 어린 아이.
원고와 피고, 피고의 변호사 등이 법정에 속속 도착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법원은 취재진들로 둘러싸여 이 재판이 세간의 눈길을 끄는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자인의 부모는 무지하고 무능하며 가난하다. 7-8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출생 신고도 하지 않았을 정도. 자인은 약국을 전전하며 거짓으로 약을 처방 받아 동생들과 함께 '마약주스'를 만들어 판다. 그리고 자인의 집 주인인 아사드의 가게에서 일을 한다. 그의 몸무게 보다 더 나갈 듯한 가스통을 끌차에 싣고 힘겹게 끌며 이리저리 배달하는 자인의 뒷모습은 비극 그 자체이다. 언뜻 보기에 아사드가 자인에게 친절한 것 같지만 그에게는 속셈이 있다. 자인의 어린 여동생 사하르를 탐내고 있었던 것. 이것을 이미 눈치 챈 자인은 사하르가 생리를 시작하게 되자 동생의 앞날이 걱정되어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날 선물로 닭을 들고 자인의 집에 들른 아사드는 집세를 올리지 않는 조건으로 사하르를 요구하고 자인의 부모는 이를 수락한다. 싫다고 울며 부르짖는 사하르를 강제로 아사드에게 보내는 부모에게 격분한 자인은 가출을 하고 만다.
집과 멀리 떨어진 좀 번화한 동네에서 일자리를 구하려 했지만 미성년인 자인에게 차례가 올 리 없다. 거리에서 방황하다가 에티오피아 여성 이주 노동자 라힐을 만난다. 라힐에게는 젖먹이 아들 요나스가 있었다. 테마파크의 잡역부로 일하던 그녀는 짐에 숨겨 아들을 일터에 데려가 화장실에 가둬놓고 몰래 젖을 먹이며 키우고 있었다.
라힐이 밖에서 일하는 동안 자인이 그녀의 판잣집에서 요나스를 돌보기로 하고 함께 지내게 되지만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가짜 체류증이 만료되어 새 체류증을 만들어 보려고 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그녀는 불법체류자로 체포되고 만다.
라힐이 돌아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자 집에 있는 것들을 팔고 마약주스도 만들며 자인은 버텨보지만 집세가 밀려 쫓겨나고 보니 도무지 헤쳐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시장통에서 만난 난민 소녀에게 돈이 있으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한편 불법 체류증을 팔면서 인신매매를 하던 시장의 상인 아스프로가 집요하게 요나스에게 눈독을 들이며 감언이설로 자인을 꼬드기자 해외로 나갈 돈이 필요했고 요나스를 돌보기에 힘이 부쳤던 자인은 요나스를 아스프로에게 넘긴다.
해외로 가려면 출생증명서가 필요하다는 아스프로의 말에 서류를 가지러 집에 들른 자인은 동생 사히르가 너무 어린 몸으로 임신을 하게 되어 합병증으로 죽고 말았음을 알고는 아사드를 칼로 찌르고 체포되는데 바로 그 구치소에서 라힐을 만난다. 자인의 끔찍한 삶이 라디오 방송에 소개되었을 때 그에게 소원을 묻는 진행자에게 자인은 '내 부모를 고소하는 것'이라는 답을 하게 되어 그의 비극적인 삶이 법정에서 파헤쳐지게 된것이다.
<가버나움>은 무정한 사회에서 어린이라는 약자가 겪게 되는 비참한 현실을 그린 사회고발 영화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역할에 해당되는 일들을 실제 경험한 비전문 연기자들이라고 하며 감독 나딘 라바키는 "가버나움재단"을 세워 이 비전문 연기자들의 어려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니 그녀는 영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이상주의자인 모양이다.
가난해서 배우지 못하고, 배우지 못해서 노동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일이 없으니 가난의 자리에 주저앉게 되고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시도로 감독은 자식이 친부모를 고소한다는 극적인 소재를 선택한 것 같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처지라고 하여도 부모가 자식을 팔며 자식이 부모를 고소하는 상황만큼 무정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자식이 열 두 살인지, 열 세 살인지도 모르는 부모.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돌봄도 받지 못해 비쩍 마른 몸으로 생계의 전선으로 내몰리는 어린 소년. 생리를 시작하게 되자마자 준비되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결혼'이라는 이름아래 팔려가는 어린 소녀. 난민들에게는 구호단체의 손길이라도 미치지만 보호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자국의 어린 아이들은 지옥 같은 현실을 견딜 수 밖에 없다는 감독의 직설적인 고발이 비현실로 다가와 죄책감이 들 정도이다.
도시의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옳으냐.
앵벌이나 노숙자에게 돈을 주는 것이 옳으냐.
관료주의적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옳으냐.
이러한 의문이 타인을 돕는 행위를 가로막는 질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도 나보다 힘들고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편이, 답하기 어려운 의문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들을 외면하고 지나가는 것보다는 인간적이지 않을까(©2020.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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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리뷰
자격지심은 항상 자기 전 침대 머리맡에 내려앉는다. 침대에서 뒤척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잡생각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아닌가? 그 반대던가? 여하튼 그 생각들이 발전적인 고민이라면 퍼뜩 일어나서 어디에 메모라도 해두겠지만 이건 그런 고상한 종류의 고민이 아니다. 내 선택과 결정의 정당성을 앗아가는 비열한 질투심이다. 시기와 질투는 강한 원투펀치를 날린다. 일말의 성취를 느껴 알차게 하루를 보냈다 한들, 자기 전에 그런 상상을 해버리면 끝장이다. 그 한방에 K.O. 오늘 하루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모든 과정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눕기 전에 SNS로 슥 훔쳐봤던 지인의 일상이 눈앞에 사라지지 않고 아른거린다.
질투는 풍부한 감정이다. 감정의 온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이유를 갖는다. 예컨대 식어버린 질투의 본질은 불안이다. 고착화된 일상 속에서 돌파구는 사라진 것만 같을 때 눈에 들어오는 건 타인의 결괏값이다. 불안에서 시작된 질투심은 특별히 어떤 액션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불만족은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망상은 꼬리를 문다. 때때로 질투는 강력한 힘이 된다. 동기부여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라이벌을 통해 발전적인 피드백을 자신에게 던질 수도 있다. 질투에 눈이 먼 사람은 기꺼이 자신을 다그칠 수 있다. 자신을 괴롭히는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필요 없다.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기들을 건넨다.
이 영화에서 특히 재밌었던 부분은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으로 감정을 묘사한다는 데 있다. 브래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폐부를 찌른다.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브래드는 불만이 있었다. 한때 동문수학하던 친구들은 이젠 비교조차 어렵다. 할리우드의 거물 감독, 헤지펀드사 대표, IT 회사를 팔고 마우이에서 지내는 친구. 백악관에서 일했던 친구는 이젠 교수다. 한가닥 하는 동창들과 비교하는 일은 멍청한 일이지만 그러고 나면 실패했다는 생각이 든다. 애써 그들의 인생 중 어느 한 부분은 실패했겠거니 넘겨 짚기에도 부질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인생은 화려한 성공으로 점철되어 있으니까.
과거의 일이기는 하지만 언론사를 운영하기도 했고 피바디 상을 탄 적도 있다. 지금은 비영리사업을 하고 있다. 영화에서 짧게나마 언급되는 브래드 씨의 인생 궤적이 흥미로웠다. 적어도 눈으로 보이는 그의 객관적인 위치는 나쁘지 않았다. 그가 문제로 삼는 건 조건이다. 브래드 씨는 조건을 상상하며 끝없이 가정에 빠졌다. 단순한 질투는 현재의 상태를 비교하는 데에서 그친다. '저 돈이 내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 지위를 내가 누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들은 먼지처럼 가볍다. 그렇지만 불안과 열패감이 만들어내는 환상은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디테일해 살아온 날들을 끌어안고 침몰한다. 선택할 수 있었던 과거를 시뮬레이션한다고 생각해보면 지금의 결과치가 얼마나 불만족스러울지는 명확하다.
하필 그런 망상을 하는 때가 아들의 대학 면접을 위해 투어를 다니는 중이었다는 점은 극을 더 풍성하게 꾸민다. 대학, 싱그러운 젊음이 넘나드는 공간을 거닐며 브래드 씨는 더 짙게 망상에 빠진다. 대학생들은 여전히 이상적인 세상을 꿈꾼다. 우리가 바꿀 수 있다 혹은 바꿔야 한다는 생각들. 동시대를 살지만 어쨌거나 먼저 살아봤던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 대한 솔직한 감상은 청년에겐 다르게 다가온다. 좀 더 직설적이게 표현하면 꼰대의 변명이다. 한때 이끄는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다니는 본인의 모습이 초라해진 것만 같으니까 속이 보이는 보호막을 친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한 번 사는 인생에 이런 결과물이면 망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한번쯤 하지 않나. 공들인 과정이 변수로 무너지는 순간을 마주하면 더욱 그 부질없는 망상에 집착한다. 무너져보면 조건을 바꿔본다. 최선의 결과물을 상정해두고 일생의 선택을 소거한다. 했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을 고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돌아가서 선택을 바꾼다 한들 원하던 방향대로 흘러가진 않을 거란 점이다. 생각보다 인생에 능동적인 선택이란 게 많지 않다. 인생이 그런 식이다. '받아들이기 싫으면 어쩔 건데?'하고 몽니를 부린다. 물길은 거세고 내가 놓는 돌멩이 몇 개로는 그 흐름을 바꿀 수 없다.
브래드 씨의 인생에 나의 과정이 겹쳐 보여 그런지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오! 좋은 일 하시네요'하는 답변에 반응하는 일과 현실과의 간극을 생각하며 느끼는 감정들. 그 까끌까끌하게 씹히는 감정의 조각들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영화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이 퇴사를 하면서 브래드 씨에게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일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돈을 많이 벌어서 기부를 하는 게 낫다'라고. 저기서 좋은 일이라는 표현이 비영리사업의 모든 과정을 평가절하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과 현실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이상적인 방법. 이건 어디까지나 영역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을 한다. 인생을 꼭 정량 평가로 계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의 입장에서는 재화의 형태 아니라 아쉬울 수야 있겠지만 부족한 인생은 아니다.
처음엔 저 나이가 되었을 때 저렇게 될까 걱정했다. 결국 잘못 살았다고 후회하고 싶진 않았다. 살면서 시기가 맞지 않을 때도 있고, 사람이 맞지 않을 때도 있다. 멍청한 판단을 하는 때도 있고 완벽한 선택을 하는 때도 있다. 실수도 있고 실패로도 이어지겠지만 열패감을 갖진 말아야 한다. 무슨 일이든 일단 선택을 하면 최악은 면하고 차악에서 차선까지는 운에 노력을 더하면 보답받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최선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내 손을 벗어난 문제다. 브래드 씨의 말처럼 세상을 사랑할 수는 있어도 소유할 수는 없었다. 역으로도 가능하다. 세상을 소유할 수는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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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으면 좋은 거 아니겠어?
말레피센트를 이은 여성 빌런 캐릭터를 디즈니에서 또다시 선보였다. 체감적 반응은 말레피센트보다 더 파급력이 큰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한 영화계 불황을 잠시나마 잊게 할만한 흥행과 대중의 평가가 인상적이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그저 패션을 앞세운 영화라고만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영화는 상류층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던 예술을 대중적인 시각에서 다시 재해석한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대중문화의 등장을 화려한 옷을 매개로 자신의 욕망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현대 여성들의 근원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패션은 시대정신의 반영
영화의 배경은 70년대, 영국 런던이다. 70년대의 영국을 가장 빨리 이해하려면,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 중 하나인 보헤미안 랩소디를 떠올리면 된다. 그 시절의 섹스 피스톨즈, 등 펑크 록 가수들이 영국 전역을 넘어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펑크 록이란 '누가나 할 수 있다'라는 평등주의적 "Do it yourself"라는 슬로건을 내밀며, 단순한 음악부터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했던 장르로 평가받는다. 미국에서의 펑크록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음악을 상징하는 movement의 성격을 띄었다면, 영국에서의 펑크록은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부의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악화되고, 상류층에 대한 적대감, 계급 의식에 대한 적대감 등에 대한 표현이 적나라해졌던 상황을 고려해 영국의 상황을 비관하는 디스토피아적인 시선을 그린 음악 장르였다. 이런 펑크록의 정신은 패션에도 큰 변화를 일으키는데, 펑크록 신봉자들이 구현한 패션은 가히 모스트모던적인 패션으로 평가받을 만큼 극에 달한 자유와 그에 따른 난해함을 동반했다.
이런 영국의 시대적 상황에 따라 펑크 록이 등장했던 70년대의 영국에서는 크루엘라의 등장이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크루엘라와 바로네스 사이의 개인적인 서사가 존재하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바로네스와 크루엘라의 대결은 상류층의 패션과 상류층을 비난하는 대중들이 구사한 포스트모던적인 패션의 대결에서 그 당시에는 포스트모던이 우위를 범하던 시기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며, 크루엘라는 대중들이 원하는 예술을 보여준 펑크록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상류층의 패션을 대변하는 바로네스를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골탕먹이는 크루엘라의 모습은 자유분방하게 상류층을 거리낌없이 골탕먹이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대변한 일종의 혁명가였는지도 모른다.
빌런이 사랑받는 이유 그리고 사랑받는 빌런이란
크루엘라와 바로네스는 엄밀히 따지면 빌런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투명하게 착한, 신데렐라가 없다.
그렇다면, 크루엘라가 선한 쪽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바로네스와 크루엘라는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른 인물이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나의 경쟁자를 끌어내려서라도 내 존재감을 빛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점이 그렇다. 이렇게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려면 착한 척은 내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바로네스와 크루엘라의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네스는 정말 절대적으로 악하다못해 싸이코패스가 되어버렸지만 크루엘라는 일말의 양심은 간직하고 살아간다. 위험한 욕망을 실현하는 사람을 빌런이라고 가정한다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빌런은 인간다움을 간직한 빌런들이다. 나쁜 짓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완벽하게 미치지 않아서 이 나쁜 짓의 근원적 이유가 이해가 가는 캐릭터들이다. 크루엘라가 그렇다. 아마도 죽은 자신의 엄마가 심어준 최소한의 사회성 덕분일 것이다. 바로네스와 크루엘라는 정말 많이 닮았지만 바로네스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범해서는 안되는 선을 넘어가 몸만 인간으로 살아가는 괴물이 되었고, 크루엘라는 엄마의 존재, 친구들의 존재재만으로도 그녀에게는 큰 버팀목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면서도 바로네스의 명성 외에는 그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 것으로 최소한의 양심은 지켜가면서 골탕먹인다. 그렇게 그녀가 가진 최소한의 양심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녀의 위험한 욕망을 응원하게 만든다.
그녀의 삶을 통해 우리가 얻을 메시지는 뭘까. 착한 척은 버려두고, "내가 하고 싶다는데, 누가 말려"의 마인드로, 속된 말로, 개썅마이웨이로 살아가는 그녀가 항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남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유념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그녀의 발칙한 무례함은 오히려 시원함으로 다가왔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남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우리도 우리 자신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자신의 욕심에 대해서 조금은 솔직해져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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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들만의 리그(1992)> 리뷰
평생 스포츠와 관계 없는 일상을 살았고, 올림픽 시즌엔 늘 소외감을 느꼈으며, 올해에도 어김없이 도쿄 올림픽 열기에 동참하지 못하는 소시민이지만, 시즌이 시즌인 만큼 스포츠가 주요 골자인 영화를 감상했다. 바로 페니 마셜 감독의 《그들만의 리그(1992) 》다. 미국 의회도서관 선정 영구 보존 영화로도 꼽혔다고 하는 만큼 영화 내에서 문화적, 사회적 텍스트를 구석구석 살피는 것도 영화를 감상할 때의 한 가지 재미일 것이다. 물론 ‘신예로만 꾸려진 스포츠 팀’과 ‘급작스럽게 몰락했으나 어쨌든 유능하긴 한 코치’의 조합에 질렸을 수도 있고, 세월이 흐른 만큼 영화의 세련미를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겠으나 이런 지점은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데에 큰 장애물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그들만의 리그》가 다큐멘터리인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가볍게라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영화의 스토리적 배경인 AAGPBL의 창립 과정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단 것이 아니라, 여성 프로 야구 경기가 미국을 휩쓸게 된 까닭엔 세계대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단 이야기다. 세계 2차 대전. 아마 의무교육기간에 모두가 들었을 서구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시점이 이 때였다. 특히 “미국 정부는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을 국방 산업과 경제 전역으로 호출(서재철, 2016)”하였다. 그러나 국가가 장려한다 한들 ‘Rosie the Riveter’는 분명 통념에 위배되는 일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여성 스포츠, 흙 위를 달리고 굴러야 하는 야구 경기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겐 어처구니가 없는 처사다만- 몹시도 여성적이지 못한 일로, 권장한다는 건 얼토당토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선수단에게 주어지는 여러 제약은 우리에게 영화적 장치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 선수들의 증언에서 비롯되었다. 예컨대 선수의 몸을 보호하기 어려워 보이는 스커트형 유니폼, 숙녀가 되기 위한 필수 교양 수업, 상당히 강력한 사적인 생활 제재 따위가 이에 해당한다. 유감스럽게도 언론의 태도나 일부 유니폼 규정은 20세기로부터 특별히 달라지지 않은 듯 보일 때도 있으나, 최소한 아들을 데리고 원정을 다녀야만 하는 에블린(비티 슈람)같은 선수나, 외모가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탁월한 능력을 보았음에도 스카우트되지 않는 일은 감소했으리라 믿는다-혹은 믿고 싶다-. 이중에서도 마라 후치(메간 카바나프)가 스카우트 되던 장면과, 여성 프로 야구를 홍보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요구되었던 여러 ‘노력’ 에 관해선 선수 개인의 항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의 벽이 존재한다는 걸 실감케 한다. 확실히, “여성과 스포츠는 결국 여성과 남성의 문제, 혹은 여성과 사회의 문제라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전통적, 관습적인 이유가 있다(김은영, 이혜란., 2004)”고밖에 말하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특히 구조적인 요소를 지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선수들에게 사실상의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위에서 짧게 이야기한 스커트형 유니폼을 입지 않을 때엔 더 이상 선발된 야구 선수일 수 없으며, 신문사 촬영팀의 인터뷰에 기꺼이 응하지 않는다면, 여성 프로 야구 리그는 존속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가정이 그들을 몰아붙인다. 이밖에도, 더불어 선수들이 심각하게 자각하진 않았으나, 관객에게 울림을 주는 장면 역시 있다. 전미 여성 프로 야구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자작곡 가사엔 캐나다와 스웨덴을 비롯한 국가 이름이 등장하는데도 미국에 사는 흑인 여성은 모집 대상조차 아니었던 점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장면은 능력이 출중하다면 어떤 인재든 등용한다는 능력주의가 기실 미국 사회의 백인 남성에게만 적용된 것이 아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브레히트까지 인용할 생각은 없으나, 《그들만의 리그》는 영화 내에서 이들의 여정이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점을 넌지시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어느 정도의 껄끄러움을 남기는 데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점에서 이 영화가 지닌 사회문화적 가치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스토리에 진입하기 전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젠 《그들만의 리그》의 주인공 격인 도티&키트 자매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언뜻 보기에 둘은 야구 경기를 한다는 것 외에 크게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야구를 향한 태도 역시 크게 다르다. 언니인 도티 힌슨(지나 데이비스 & 트레이시 레이너)은 능력이 출중하나 야구에 뜻을 두지 않았으며, 동생인 키트 켈러(로리 페터 & 캐슬린 버틀러)는 도티에 비해 실력이 뛰어나진 않으나, 야구에 대한 열정은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이 외, 자매의 연결고리를 부각시킬만한 외모가 닮았다던가, 공유하는 습관이 있다던가 하는 장면은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도티와 키트의 관계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따로 있다. 키트가 언니에 대해 열등감을 품고 있다는 점이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 도입부에서부터 키트는 강하게 불만을 토로한다. 도티와 함께 있을 때 스포츠 실력에 대한 비교를 당하는 것은 물론, 외모에 대한 비교까지 당하는 경우가 잦다고. 그러던 와중 게임에 임하던 순간, 팀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 언니에게 키트는 불만을 품는다. 길게 이끌 수 있었으나, 제법 짧게 묘사된 이 갈등은 결국 키트가 트레이드 되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편의상 도티와 키트를 주인공격의 인물이라 명명하긴 했으나, 영화가 이 둘의 서사에만 오롯이 집중했다고 보긴 어렵다. 우리는 키트가 트레이드 된 후 라신느에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쏟아 부었는지 알 수 없고, 남편인 밥(빌 풀만)이 전쟁에서 돌아오자마자 야구를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도티가 어떤 결심을 하고서 경기장으로 복귀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키트가 도티에게서 승리하는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고자 했다면 그의 노력이 촘촘히 쌓여지는 순간을 삽입하여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순간,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시퀀스를 넣었어야 했는데, 페니 마셜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티가 감독인 지미 듀간(톰 행크스)의 말을 듣고 야구에 대해 숨겨진 자신의 열정을 깨닫고 돌아오는 모습을 삽입하지도 않았으며, 키트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후 크게 좌절하는 모습을 넣지도 않았다. 감독이 잡아주는 숏이란 그저, 도티가 놓친 공과 승리를 만끽하는 도티를 멀어지는 샷으로 넣어준 것이 전부다.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투수에게 높은 공을 치라고 했던 도티가 자신의 실수에 대해 크게 자책하는 모습 역시 없다.
그렇기에 나는 도티가 마지막 순간 공을 놓친 건, 그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의 유명한 대사, “결과를 알고 있을 때 우리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처럼, 언니인 자신이 아니라 야구를 위해 온몸을 날리는 키트를 위해 기꺼이 손을 놓은 것은 아니겠는가, 하고. 전미 선수로 뽑혔을 때부터 가지 않겠다고 말했던 도티는 지미가 감독직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을 때에도 나서서 게임을 지휘했을만큼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지미가 야구를 사랑했던 자신의 삶을 망친 5년에 대해 털어놓는 순간에도 감정적으로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남편이 돌아오자마자 미련없이 짐을 싸 고향으로 떠나고자 했으며, 진심으로 키트가 아닌 자신이 트레이드되길 원했다.
생각해보자. 처음부터 도티가 전미 야구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오로지 하나, 동생 키트가 떠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기 위함이었으며, 그가 남편이 돌아왔을 때 자신이 경기 내에서 어떤 위치인지 알면서도 야구를 떠나면서까지 피하려 했던 것은 혹시 모를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나, 자신의 기량이 떨어졌다던가, 부상을 입었기에 나오는 내적 갈등 때문이 아니라, 키트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키트를 밀어내면서까지 피치팀에 남으려 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일 뿐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를 다시금 경기장으로 부른 건, 남들이 몇 번이고 말한 ‘숨겨진 야구에 대한 열정’때문이 아니라 ‘하나뿐인 자매 키트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야구를 향해 온 몸을 내던지는 동생에게서 야구를 떠나는 것 정도로 화답해선 안된다는 생각에 돌아왔을 테니까. 그러하므로 도티와 키트는 모두 승리한 것이라 봐도 무방할 터다. 도티는 자매를 되찾았고, 키트는 야구를 되찾았으며, 둘 모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았으므로. 그러하니 이 자매가 닮은 부분은, '야구를 한다'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있어선 누구보다 고집이 세다는 점이며, 어려운 시대임에도 꺾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했다는 점에 있으리라.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끝으로, 영화 속 몇 남성 캐릭터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좀 섭섭한 일일 것이다. 예컨대 마라의 아버지, 마라의 남편이 되는 넬슨, 도티의 남편인 밥, 그리고 감독인 지미 듀간(톰 행크스)까지. 이 당시 여성들은 남성들의 트로피로 존재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및 문화가 팽배했으나, 그것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무의미한 것인지를 이들이 함께 증명하기 때문이다. 같은 여성마저 마라를 향해 ‘야간 선수로 세우라’고 이야기하지만, 마라의 아버지와 남편인 넬슨은 그에게 크나큰 자부심을 품고 있다. 지미의 말에 따르면 ‘흔치 않은', 몇 안되는 똑똑하고 괜찮은 남자 밥은 스포츠라는 전통적 여성상과 어긋난 일을 하는 아내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포용한다. 단순히 남성들이 없는 자리를 '계집애'들이 들러리로 채웠다 생각하였으나, 선수들이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발휘하는 것을 발견한 지미는 자신의 리딩 방식도 바꾸려 노력(!)하는 것은 물론 도티에게 찬사를 보내며, 다른 팀의 감독직이 왔음에도 거절하기에 이른다. 그러니 보라, 건강한 관계 속에서 상대를 나와 동등한 인간이라 인정할 때 우리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달리 말하자면, 접점 없이 먼 자리에서 선수를 조롱하던 남성 관객은 성 차별주의자의 관점에 입각하여 선수를 오로지 구경거리로만 취급하였고, 여성 프로 야구 리그를 창단했다 한들 자본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여성 선수를 경제적 손실을 방어할 대체물정도로만 인식했던 월터 하비의 태도는 인본주의적 사상에서 크게 어긋났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이 영화 내의 모든 여성과 남성 캐릭터는 각각의 위치에서 우리에게 성별과 인종을 떠나,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90년대식 인간적 온정을 사랑한다.
★★★★
참고문헌
김은영, 이혜란. (2004). 여성스포츠의 성립배경과 페미니즘적 제 이론 고찰. 한국여성체육학회지, 18(2), 35-45.
서재철. 2016. 영화《그들만의 리그(1992)》에 대한 여성스포츠역사 및 사회적 성 역할 관점의 `교육적` 읽기. 한국여성체육학회지 3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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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생일인 배우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9월 30일, 바로 오늘! 오늘이 바로 생일인 배우 분들이 여럿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오늘 생일인 배우가 나온 드라마 혹은 영화를 추천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오늘 생일인 배우가 나온
드라마 혹은 영화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각시탈
ⓒ KBS Drama Classic
synopsis
삶에 지친 우리들에게 시원한 한방을 선사할 한국판 슈퍼히어로 각시탈의 대활약을 그려낼 드라마.
이름없는 영웅의 운명을 택했기에 목숨 같은 사랑을 버려야 했던 남자.
그리고 그를 지키려 했던 여자의 영영 사무칠 애절한 사랑 이야기
cine pick!
허영만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로 방영 시기 수목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였다.
제13회 대한민국 국회대상에서 올해의 드라마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KBS 연기대상에서는 4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굿 닥터
ⓒ KBS StarTV: 인물사전
synopsis
대학병원 소아외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전문의들의 노력과 사랑을 담은 휴먼 메디컬 드라마,
cine pick!
유수의 드라마 시상식에서 17개 부문에서 수상한 작품이며,
미국, 일본, 터키에서 리메이크를 할 정도로 인기를 끈 작품이다.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으로 화제를 모았다.
메이즈 러너
ⓒ 네이버 영화
synopsis
삭제된 기억, 거대한 미로로 둘러싸인 낯선 공간
모든 기억이 삭제된 채 의문의 장소로 보내진 ‘토마스’'.
‘토마스’는 미로에 갇힌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상황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매일 밤 살아 움직이는 미로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의 존재와 대립하며,
지옥으로부터 빠져나갈 탈출구인 지도를 완성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미로의 문이 열리고 그들은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cine pick!
제임스 대시너의 3부작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한국에서는 누적 관객 수 28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하며 박진감 넘치는 영화로 미스터리 스릴러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면 꼭 추천드립니다.
이장
ⓒ 네이버 영화
synopsis
아버지 묘 이장을 위해 흩어져 지낸 오남매가 오랜만에 모이며
세기말적 가부장제와 작별을 고하는 이야기.cine pick!
국내부터 해외까지 다양한 영화제에서 관심이 폭발했던 작품이다.
'배우들의 합이 돋보이는 가족 드라마'라는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
한낮의 피크닉
ⓒ 네이버 영화
synopsis
함께 있으면 괴롭지만 자꾸만 신경 쓰이는 가족과의 예기치 못한 캠핑 여행,
막막한 미래와 잔뜩 구겨진 인생 속 청춘들의 치기 어린 여행
혼자여도 괜찮은 줄만 알았던 나를 찾아가는 여행까지…cine pick!
세 편의 단편영화가 담긴 영화 <한낮의 피크닉>.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며,
일상의 이야기를 담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셉션
ⓒ 네이버 영화
synopsis
타인의 꿈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는 특수 보안요원 코브.
그를 이용해 라이벌 기업의 정보를 빼내고자 하는 사이토는
코브에게 생각을 훔치는 것이 아닌, 생각을 심는 ‘인셉션’ 작전을 제안한다.
성공 조건으로 국제적인 수배자가 되어있는 코브의 신분을 바꿔주겠다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고,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최강의 팀을 구성, 표적인 피셔에게 접근해서 ‘인셉션’ 작전을 실행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들과 마주하게 되는데…cine pick!
크리스토퍼 놀란이 10년간 시나리오를 쓰고 다듬었던 작품으로 독창적인 스토리와 더불어 치밀하게 짜인
이야기 구성이 많은 이들로 하여금 영화를 보게 만들었다. 스토리뿐만 아니라 OST도 굉장히 호평을 받았다.
은주의 방
ⓒ TVING
synopsis
인생이 제멋대로 꼬인 셀프휴직녀 '심은주'가 셀프 인테리어에 눈뜨며
망가진 삶을 회복해가는 인생 DIY 드라마 '집도 인생도 셀프수리 중! 행복 시작!'
cine pick!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은주의 방>은 소위 말하는 착한 드라마로
자극적이지 않아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알고있지만,
ⓒ JTBC
synopsis
사랑은 못 믿어도 연애는 하고 싶은 여자 유나비와 연애는 성가셔도 썸은 타고 싶은 남자 박재언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
cine pick!
<알고있지만,>에서 솔지완 커플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서지완 역의 윤서아 배우!
발랄하고 통통 튀는 매력적인 연기를 볼 수 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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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리키에게 "괜찮아요, 리키."
'켄 로치' 감독은 2016년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알게된 감독이다. 그때 당시 영화를 보면서 인간이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사회권 속 복지의 모순과 왜곡, 형식주의의 비판을 하는 영화라서 상당히 인상깊은 영화였다. 그리고 <미안해요, 리키> 역시 현대 사회를 꼬집는 또 하나의 영화를 켄 로치는 만들어 냈다. 켄 로치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는 현대 사회를 꺼내는 능력도 있지만 어둡고 무거운 주제와는 달리, 따뜻한 색을 이용한 촬영으로 대비되어 영화가 흘러간다. 그래서 영화를 볼수록 마음 한 쪽이 더 씁쓸해지고 사회가 미워지게 된다. 이것이 켄 로치의 매력이라 생각한다.#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노동
<미안해요 리키>는 택배 기사 '리키'와 가족간의 이야기로 주로 노동권을 다루고 있다. 사회에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노동을 해야한다. 노동으로 돈을 벌면 다시 사회에 살아갈 수 있고 더 살아나기 위해 우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살아간다. 하나의 꼬리가 풀렸을 때 그 회로는 위태로워지고 우리는 그 회로에 잠길 수 밖에 없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 잠겨진 사람의 올바른 인권과 노동의 가치를 꼬집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다. 충분히 우리 주변에 일어날 수 있는 현실성에 씁쓸한 공감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라는 방안에 골똘히 생각하게 만든다.
가족
왜 대한민국이 저출산 국가가 되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큰 이유는 맞벌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물질과 자본에 중요도가 높아짐에 따라 자칫 물질만능주의로 넘어가려는 사회에 자녀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기 힘든 모습이 매체나 기사를 통해 우리 광경에 더러 보인다. <미안해요 리키>는 각박한 사회에 대한 일면을 꼬집는다. 일과 가족의 충돌을 보여주며 우리가 겪고 있고, 우리가 할 수 밖에 없는 선택들을 공감과 생각으로 나누어준다. 그리고 영화가 끝으로 다가서면 물질과 자본에 대한 미움이 든다. 이딴 게 뭐라고 우리는 이렇게 치열하고 각박하게 살아야 하는가. 현재 우리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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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두렵지 않아요 테레즈 / 캐롤 명대사 모음 ?????
- BGM Day 7 - Sweet Sorrow
Day 7:
https://soundcloud.com/day7official
https://twitter.com/Day7C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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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리뷰/해석:동성애에 대한 시선을 바꿔준 영화, 사랑에 조건은 없다.
#타오르는여인의초상#퀴어영화#동성애
오랜만에 너무 볼만한 영화를 본거 같습니다. 영상이 길지만 시청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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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장난 론> 30초 예고편
비봇을 갖는 것이 유일한 소원인 소심한 소년 '바니'에게도 드디어 '론'이라는 비봇이 생겼다. 그러나 첨단 디지털 기능과 소셜 미디어로 연결된 다른 비봇들과 달리, 네트워크 접속이 불가능한 고장난 '론' 자유분방하고 엉뚱한 '론'으로 인해 벌어지는 엉망진창, 스릴 넘치는 모험을 함께하며 '바니'는 진실한 우정이 무엇인지 점 점 깨닫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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