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tto2023-05-17 17:41:18
쏟아지는 금빛 토사물, <슬픔의 삼각형>
이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 및 관람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지난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을 보고 나오는 길에 친구에게 질문했다. ”부르주아들을 놀려 먹는 영화들은 왜 이렇게 재밌을까?” 더 넓게는 인종적, 젠더적 권력을 전복하는 내용이 구미가 당길 때도 있다. 어떤 영화들은 그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조롱하며 어떤 때에는 특별한 잘못이 없음에도 죽여 버리기도 한다. <슬픔의 삼각형>은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올라가는’ 유머를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를 단 채 스크린에 걸렸다. 결과는 8분 간의 기립박수와 완전히 압도당한 채 용산역 지하철 플랫폼을 터덜터덜 걷는 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슬픔의 삼각형>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부터,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이런 멋진 제목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고편과 황금색의 무언가를 토해내는 포스터를 보고는 저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해서 벼랑 끝까지 떠밀릴지 확인하게 되기만을 기다렸다.
보기 전에는 구토를 하는 장면이나 침몰하는 요트, 식탁 앞에서 사진을 찍어대는 젊은 남녀의 모습 같은 이미지 때문에 <더 메뉴>처럼 긴강감을 높이면서 조금 더 신랄한 유머를 구사하는 정도를 예상했다. 그리고 요트 위가 가장 중요한 공간일 거라는 상상도 했다. 그런데 젊은 커플과 그들의 유치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너무나 시의성 있어서 미치도록 웃긴) 갈등에서 시작해 요트, 무인도로 옮겨 가는 파트 분배가 흥미로웠다. <슬픔의 삼각형은> 너무 고지식하지도, 지나치게 가벼워서 생각을 못하게 만들지도 않는 적절한 유머를 구사한다. 그러면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깔깔 웃을 수밖에 없는 장면, 놀람과 역겨움, 웃음을 동시에 토해내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도록 만드는 장면들로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슬픔의 삼각형>은 루이스 부뉴엘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처럼 반복적이고 연극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연출을 이어나가거나, <더 메뉴>처럼 하나의 소재를 붙들다 이내 불타 없어져버리지 않는다. 고통을 주기보다는 오물을 뒤집어씌우면서 조롱하고, 제 업보 때문에 바보같이 죽어버리는 캐릭터보다는 깔끔하게 수장해버리는 방향을 택하면서 구조를 하나씩 전복해나간다. 거기에 매끄러운 촬영과 과장된 캐릭터를 그렇지 않게 연기하는 배우들이 더해지면서 세련된 영화가 된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직접 말했듯, 동시대 관객들이 극장에서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리며 즐길 수 있는 영화로 거듭났다. 먼 미래에 누군가가 21세기를 비틀어 묘사한 가장 신랄하고 웃긴 영화를 찾는다면 주저 없이 추천해 주고 싶다. 바위를 든 채 번뜩이는 눈을 한 가모장제 사회마저.
실은 시사회를 처음 가봐서 티켓 수령할 때부터 엄청 우왕좌왕했다… 줄이 두 개로 나뉘어 있는 데에서 1차 당황, 직원분께서 내게 ‘구토 방지용 봉투’만 주시고 팜플렛은 안 주셔서 2차 당황. 하지만 출석체크를 무사히 마치고 이 넓은 용산 CGV에서 내가 해냈다..!! 하는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섰다. 상영관에 들어갔는데 자리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ㅎㅎ 비록 옆에 앉은 남자분이 지각 + 상영관 안에서 음주 + 중간에 퇴장하기…를 모두 해내셨지만 영화도 정말 재밌었고 첫 시사회 경험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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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은 없지만 엘리베이터에 있는 사람들은 죽게 됩니다 [반전리뷰/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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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씨내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초대 받은 황보! 황보가 먼저 본 팜스프링스는 과연 어땠을까...? *시사회 초대는 영화 전문 플랫폼 [씨네랩]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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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물소, 광기 어린 인간들, 진정 누가 짐승인가?
푸줏간(도축장)에서 도망친 물소가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닌다. 마을 남자들은 폭주하는 물소를 잡기 위해 나서고 이웃 마을 남자들까지 몰려들자 한바탕 대소동이 벌어진다. 평화롭던 마을은 물소를 제압하려는 남자들로 인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버리고, 인간과 짐승의 구분이 사라져 버린 물소 사냥은 점차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광기로 변해간다.
※ 잘리카투(또는 살리카투) JALLIKATTU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의 수확축제인 퐁갈에서 진행하는 전통있는 집단 경기다. 황소를 남자들 무리 속에 풀어놓으면 참가자들은 황소의 등에 올라타서 최대한 오래 버티거나 소를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는데, 이 과정에서 살벌한 장관이 펼쳐진다. 리조 조세 펠리세리 감독의 <잘리카투>는 잘리카투 경기를 묘사하는 영화는 아니다. 확실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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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최종병기 앨리스> 메인 예고편
"한번만 더 때려줘?" 정체를 숨긴 본투비 킬러 겨울(aka. 앨리스)과 잘생긴 또라이 '여름'의 하드코어 액션 로맨스 왓챠 오리지널 ⟨최종병기 앨리스⟩ 6월 24일 금요일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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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7월 3주차의 극장가를 달군 영화들과 박스오피스 다함께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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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7월 셋째 주, 1위를 차지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그 뒤를 잇는 굳건한 <엘리멘탈>은 역주행을 넘어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대표작은이 되면서 꾸준한 관객들이 호평 속 기분 좋은 흥행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주말 관객수 120만명을 넘기면서 5일째 누적관객수 170만,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인공지능 '엔티티'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에단 헌트의 활약을 그린 영화로, 완성도 높은 액션으로 호평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시리즈에서는 시속 100km로 달리는 기차 위에서 악당과 맨몸 액션을 선보이고 이후 등장하는 절벽 추락씬등 짜릿한 톰크루즈의 도전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엘리멘탈>은 428만 관객 돌파와 함께 역대 픽사 영화 중 국내 매출 1위까지 달성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주말을 지나 누적 관객수 428만 명을 돌파해 멈출 줄 모르는 흥행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엘리멘탈>의 흥행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이목이 집중되고있습니다.
재개봉 첫날 6위로 출발했던 '여름날 우리'는 재개봉 3주차에 오히려 순위가 두 계단 상승하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두 청춘스타 허광한과 장약남이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첫사랑의 모든 순간을 완벽한 케미로 그려내며 많은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있으며 여성 관객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누적 관객수 20만 명을 돌파하며 경이로운 역주행 신화를 작성해 나가고 있는 <여름날 우리>의 흥행 추이에 이목이 집중이 됩니다.
<범죄도시>의 흥행으로 전체 매출액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6월 한국영화 매출액에서 92.8%를 기록했다고하며 팬데믹 이전 한국영화 97.3% 수준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눈 뗄 수 없는 CG 액션, 릴 웨인, 에이셉 라키 등 레전드 힙합 뮤지션들이 다수 참여한 강렬한 ost들로 채운 힙한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5위를 차지하며 누적관객수 87만을 기록하며 점점 순위권에서 밀리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7월 셋째주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이 북미 박스오피스1위를 차지했습니다. 아동 성노예와 구출 이야기를 다룬 <Sound of Freedom> 2위, <인시디어스: 빨간문>이 3위 <인디아나존스: 운명의 다이얼>이 4위를 기록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PART ONE>은 북미 공개 첫 주말 매출액 5600만 달러를 넘기며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습니다. 이 수치는 해당 시리즈 중 3번째로 높은 기록으로 영화 제작비에 가까운 수익을 첫주에 내면서 성공적으로 시리즈를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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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기다리는 동안,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결정하지 않는 것도 결정이라니. '무의사결정'이란 말 참 매력적이다. 처음 들었을 때 인생의 진리를 한 마디로 정리한 기분같았다. 결정하지 않는게 대체로 No를 뜻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결정하지 않는 것에도 책임감과 무게감을 부여하고 있다. 좀 더 쉽게 접근하자면 의사결정을 확률에 맡기는 것도 비슷한 종류일 것이다. 확률에 내면의 자신감과 책임감 문제를 맡길 수 있다. 앞면의 이순신이냐, 뒷면의 숫자가 나오냐에 따라 결정이 달라진다. 이파리를 하나씩 뜯어서 기다 아니다를 정한다. 요즘엔 기계가 대신 결정해주기도 한다더라. 여긴 아예 있던 일도 없던 일로 만드는 시공간초월 무의사결정이 있다. 바로 영화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에서.
취향의 문제겠지만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무려 최근에 본 눈이 부신 <너의 이름은>을 보고도 아직은 그렇다.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명언 때문덕이기도 하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던 순간이 많아서 탐이 났다. 대리만족도 됐고 시간을 바꿔봐야 어차피 별로 대단하게 바뀌지 않는 걸 보고 안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늘 눈에 아른거리는 건 마코토의 모습이었다. 바보같고, 오지랖 넓고, 당당한 마코토.
우연히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었을 때 마코토는 바보같았다. 대단한 걸 바꾼게 아니었다. 동생이 대신 먹은 푸딩, 엊그제 먹은 철판구이 고기, 노래방 계속 가기. 갑자기 닥쳐온 쪽지시험은 그렇다 치자. 절친인 치아키와의 캐치볼 공의 노선을 다 알아서 잡는 용도로 쓴다. 세상에, 그 능력을 그렇게 쓰는데도 마코토니까 이해가 간다. 그렇게 평범하게 써서 좋았다. 용돈은 다시 타서 쓰게 시간을 되돌리지만 복권당첨번호를 써먹으려고 쓰진 않는다. 주가조작도 안했고 누구 돈을 뺏지도 않았다.
물론 그 중엔 정말 바보같은 결정도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치아키가 고백한 게 두려워서 없던 일로 만들었다. 한두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어떻게 말할지 잘 생각하고 돌린 것 같지도 않다. 맨날 할말 없으면 뜬금없이 동생 얘기를 해버리니까. 그래놓고 고백받은 기억 때문에 어색해서 치아키를 피해다녔다. 몰랐던 것이다. 때로는 같이 용기내 문을 열지 않으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 코 앞에서 영영 닫혀버리는 것이다. 상대는 기억하지 못하는 그 순간으로 내 마음은 이미 살금살금 문이 열려버렸는데 덫에 걸려버린 것이다. 거절하지도 승낙하지도, 듣도 보도 못한 고백은 이제 그녀의 기억에만 존재한다. 치아키는 아프지도 않게 차였고 마코토는 아무한테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아야 한다. 잔인하다.
자신이 치게 될 사고를 남이 치게 만들고 나니 엄한 사람들이 다쳤다. 자신에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변수처럼 일어났다. 괴롭힘 당하던 친구는 억눌린 화풀이를 했고 그 결과 친한 친구 유리가 다치고 말았다. 유리는 다치긴 했지만 그 일로 좋아하던 치아키가 남자친구가 되었다. 마코토는 가장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이 순간에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시간을 돌리는 이 축복같던 무의사결정에 기뻐했던 자신에게 주는 벌일지도 모른다. 이미 그녀는 그 고백도, 치아키도 놓쳤고 유리와 같은 반 친구에게 없어도 될 상처를 주었다. 많은 여주인공이 무너져버릴 순간, 그녀는 울지 않는다.
마코토는 이 상황에서 오지랖이 넓다. 변화가 있다면 그녀 자신을 위해서 쓰던 타임 리프가 이제 소중한 다른 이들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던 무의사결정 대신 시간을 돌려 능동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친한 친구 고스케의 여자친구 만들어주기에 남은 기회를 거의 다 써버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다시 바보같았다. 치아키의 타임리프 질문에 얼어버려서 다시 회피용으로 시간을 되돌려 버렸다. 결과는 참혹했다. 소중한 고스케를 잃는 것이 분명해졌다.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시간 앞에서 그녀는 주저 앉아 미친 사람마냥 시간을 멈춰달라며 절규했고 그 소원을 들어주면서 치아키는 마코토와 이별해야 했다. 하고픈 말도 하지 못하고 괜한 소리만 하면서 마코토는 멋없이 치아키를 보내야 했다.
다시 한번 시간을 돌릴 기회가 생겼을 때 마코토는 이상하고도 멋진 결정을 한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열심히 달려가서 이 모든 것의 시작으로 돌아가 끝낸다. 이번엔 회피하지도 않고 치아키와도, 모든 사실과도 당당하게 마주한다. 그녀가 치아키를 좋아한다는 것마저도. 모든 상황을 치아키에게 털어놓고 그를 그가 있던 미래로 보내는 것. 굳이 그를 돌려보내는 건 대체 왜일지 생각해봤다. 여러번 볼 때마다 미래에서 기다리겠다는 치아키의 멋진 말에만 심취해서 그 뒤로 당당해진 마코토는 잘 생각하지 못했다. 치아키는 미래에서 시간을 되돌아왔고 이미 일찍 떠났어야 하지만 떠나지 않고 여기 시간의 흐름에 맡겨버렸다. 그조차도 무의사결정을 한 건 마찬가지다. 그 먼 시간을 지나 보고 싶었던 소중한 그림도 보지 못했고, 마코토도 좋고, 그에겐 과거이지만 여기선 현재인 이 시간이 좋아서라는 멋진 핑계가 있을 뿐.
그래서 마코토는 치아키를 위해 결정한다. 자신이 울어버릴 일인데도. 이제 시간을 되돌리는 게 얼마나 본인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잔인하고 아플 수 있는 일인지 마코토는 알고 있다. 어쩌면 치아키의 그 고백, 마코토 모르게 치아키도 꽤 여러번 고백했다가 없었던 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소중한 친구 고스케가 이미 여러 번 죽을 운명이었던 것을 구해주었던 것을 마코토가 몰랐듯이. 아무도 모르는데 나만 감당해야하는 괴로움을 알기에 마코토는 좋아하는 치아키가 더 이상 시간을 오가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현재이자 마코토에게는 미래인 그 시간에서 치아키가 행복하길 바라기에, 그가 좋아하는 그림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게 여기 남아 그가 그의 시간에서 행복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치아키를 찾아가는 게 그녀가 내린 결론일 것이다. 그렇게 치아키는 미래에서 마코토를 기다리고 마코토는 현재에서 치아키에게 달려간다.
기다린다, 달려간다, 문이 열린다. 나도 모르게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와 연결짓고 있던게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것을 글의 끝자락에서야 깨달았다. 글의 방향을 정하지 않고 쓴 무의사결정적 글이라니 부끄럽지만.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어쩌면 내겐 생애 첫 시다. 언니의 책상에서 어릴 적부터 의미도 모르고 읽었던 시였다. 애기 때는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아서 이 시가 어디가 좋아서 언니가 책상 안에 끼워넣었을까 했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가만히 있다가 생각나곤 하는 시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엔딩이 혹시나 아쉬웠거나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나는 치아키와 마코토의 모습을 보여줄 시로 이 시를 꼽겠다.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마코토는 달라져있다. 여전히 덜렁대고 바보같지만 당당하다. 여전히 무의사결정을 생의 곳곳 틈틈히 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치아키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아주 어렵고도 쉬운 결정을 했다. 마코토는 시간을 달리지 않으면서 시간을 달리고 있다. 타임 리프도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먼 곳에서 오지 않는 치아키에게, 아주 먼데서 오는 치아키에게 가고 있다. 달려가고 있다. 치아키가 그러하듯이.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쾅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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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베스(2015년)
박제욱
1. 맥베스 서사
'서양 문학은 결국에는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다.' 라는 우스겟소리가 있다. 그만큼 그둘은 역사속에서 가장 강력하고 새로운 문학가들이었다. 그 중 셰익스피어는 여러 희곡들로 특히 4대 비극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아마 전세계 누구나 한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다. 내가 그 중 가장 매력적으로 끌리는 작품은 맥베스였다.
2015년에 저스틴 커젤 감독의 손에 의해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다시 한번 각색 되었다. 간단히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자비로운 왕 던컨 왕이 집권중인 스코틀랜드. 역적 맥도널드가 내란을 일으켜 던컨왕의 지위를 위협하게 된다. 글래미스의 영주 맥베스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나선다. 맥베스는 맥도널드를 처치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전쟁이 끝나고 맥베스와 그의 동료 영주 뱅코우는 세 마녀의 예언을 듣게 된다. "글래미스의 영주이자, 코더의 영주, 그리고 장차 위대한 왕이 될 맥베스"라는 예언과 뱅코우는 "맥베스보다는 못하나 자손 대대로 왕을 낳을 것이다."라는 예언을 듣느다. 그 예언에 의해 맥베스는 심한 고뇌에 빠지게 되고, 자신의 부인의 욕심에 못이겨 이내 던컨왕을 살해하게 된다. 왕이 된 이후에는 뱅코우의 아들에 대한 불안함과 심한 광기에 휩싸여 미쳐버리고 세 마녀를 다시 찾아가게 된다. "버넘 숲이 던시네인 언덕을 넘지 않는 이상 너는 몰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가 낳은 남자는 맥베스를 해칠 수 없다."라는 예언을 받는다. 그 말에 맥베스는 다시 광기를 다스리게 된다. 하지만 결국에는 버넘 숲이 던시네인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맥베스는 어미의 배를 찢고 나온 맥더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단순한 예언에 의해 정의롭고 용감했던 한 영주가 광기에 휩싸여 한 나라의 왕이 되고 그 이후에는 폭군이 되고 자신의 동료들에 의해 불명예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을 맞이한다. 영화는 마지막으로 왕의 검을 들고 있는 왕궁 속에서의 멜컴 왕자와 전장 속 맥베스의 시체 앞에 있는 뱅코우의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무리 된다.2.미장센
영화 맥베스를 보게 되면 실제 스코틀랜드의 당시 시대가 이랬을 것이라는 기분이 들고 셰익스피어의 각본이 실제 이야기라면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라는 감동을 받게 된다. 그 만큼 감독이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도 여러 미장센과 연출을 통해 배우의 연기를 극대화 시키고 갈등 상황을 독특하게 표현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번재 눈에 띄는 점은 불이다. 영화 초반 불의 이미지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갈등 및 감정을 아주 탁월하게 설명해 낸다. 불이라는 이미지는 여러가지 의미로 계속 반복 제시된다. 영화는 맨처음 맥베스는 자신의 딸을 화장하면서 시작한다. 여기서 불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 이후 영화 중반부에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던컨왕 살해를 두고 심각한 고뇌와 갈등을 겪게 된다. 맥베스가 처음 예언을 들었을 때는 자신의 충성심과 죄책감 때문에 불안함에 빠져 왕을 살해할 수 없다고 하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레이디 맥베스는 자신의 남편을 왕의 자리에 추대할 수 있다는 여왕이 될 수 있다는 탐욕에 빠지게 된다. 대립되는 두 인물의 대화 속에서 항상 레이디 맥베스쪽에 머무는 물체가 있다. 바로 빛, 불이다. 항상 레이디 맥베스의 등 뒤에는 횃불 또는 초 등이 비추고 있다. 왕위에 대한 도전과 그 의지가 그녀에게만 머물었지만 그 불이 맥베스 쪽으로 이동하는 순간 맥베스가 스스로 다짐하게 되고 던컨왕을 살해하게 된다. 영화 중반부 불은 곧 의지를 뜻한다. 극의 중.후반부 맥베스에게 반기를 든 맥더프의 가족 모두를 맥베스의 병사들이 잡아와 사형에 처하게 하는 장면이 있다. 어린 아이까지 화형을 하는 이 장면은 아마 의지를 뜻하기도 하면서 맥베스의 광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버넘숲이 던시네인을 넘어 오는 장면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는 맬컴 왕자와 맥더프 그리고 잉글랜드 군 1만명이 버넘숲의 나뭇가지로 위장을 하여 던시네인을 넘어오는 버넘숲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맥더프가 버넘 숲에 불을 지르고 그 불에 탄 버넘숲의 재가 던시네인을 넘어 맥베스의 성으로 향하면서 던시네인을 넘어서는 버넘숲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불은 맥베스의 최후를 뜻하는 종말이자 죽음이 될 것이다. 이렇듯 불은 영화 처음부터 죽음의 이미지를 담으면서 의지, 광기, 종말 및 죽음까지 이어졌다.3.등장인물
맥베스 원작 자체에서부터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서양 문학사 최고의 악녀라고 할 수 있는 레이디 맥베스를 탄생시키면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갈등을 볼 수 있다. 위에 첨부한 맥베스 포스터를 보게 되면 마치 마이클 패스벤더(맥베스역)의 머릿 속에 마리옹 꼬티야르(레이디 맥베스 역)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극중에서 둘의 관계가 이러하다.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로부터 예언을 듣게 된 후로 완전히 맥베스의 머릿속에 들어서 그의 욕망과 탐욕을 일 깨우는 것에 노력한다. 하지만 맥베스의 광기는 통제 하지 못한 그녀는 이내 질병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필자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인물관계는 맥베스와 뱅코우의 관계이다. 맥베스와 뱅코우는 세마녀에게 예언을 듣게 된다. 재밋는 점은 왕이 될 사람이라는 예언과 자손 대대로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맥베스와 뱅코우가 동시에 같이 듣는 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맥베스는 자신의 탐욕에 의해 왕이 되려고 노력을 할 것이고, 그 후 자신의 왕위를 오래 간직하기 위해 뱅코우의 아들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뱅코우 역시 맥베스가 코더의 영주가 됬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이 예언이 진실일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되고 전우였던 맥베스를 멀리하고 아들과 함께 도망치려 할 것이다. 개개인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는 두 예언이 동시에 한 장소에서 들었다는 이유로 영화의 가장 큰 비극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되어준다.4. 무엇이 맥베스를 타락 시켰는가
맥베스는 본래 신분이 명예롭고 위대한 장수이자 영주였다. 그런 지위와 명성덕에 그의 몰락이 더 돋보이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타락 시켰을까. 첫째는 바로 스코틀랜드의 기후 혹은 풍경이라고 생각된다. 과거에 맥베스를 접할 때는 커젤 감독의 영화처럼 실제 스코틀랜드의 척박한 풍경을 보여준 작품은 없었다. 높은 산 하나 외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없는 황량한 토지, 그리고 괴물이나 나올 것 같이 어두침침한 나무들로 빽빽한 버넘숲을 영화는 잘 표현해주며 심지어 흐릿하기만 한 스코틀랜드의 날씨까지 영화에서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둡고 우울한 기후와 배경이 이 영화의 분위기를 비롯하여 맥베스의 감정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 가장 맥베스를 타락시킨 것은 세마녀의 예언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말'일 것이다. 처음 맥베스를 혼동시킨 것은 예언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뱅코우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두가지 예언을 듣게 됨으로서 두 인물은 서로 대립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곤경을 치루게 된다. 레이디 맥베스의 탐욕에 빠진 속삭임도 맥베스 그를 타락하게 만든다. 그 이후에 새로 듣게 되는 세 마녀의 예언 또한 다시 한번 맥베스를 안심시키기도 하지만 곧바로 그가 몰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언이 될 수도 예언이 될 수도 있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맥베스를 혹은 맥베스의 주변인물들의 운명을 타락시킨 비극의 근원일 수도 있다.5.대사
맥베스는 역설의 영화로도 보인다. 영화의 초반 세 마녀로부터 우리는 한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선한 것이 악한 것, 악한 것이 선한 것"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 속 전쟁이 끝난 전쟁터에서 빠져나오면서 맥베스가 이런 말을 한다. "이렇게 흉하고도 좋은 날은 처음이오." 이 두 대사는 사실 말이 안되는 서로 상반 되는 개념들을 늘어 놓는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일 된다는 느낌을 우리는 받을 수 있다. 나는 이 대사를 통해서 세 마녀의 예언이 사실은 예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말은 사실 맥베스 내면의 욕구였을 수도 있다. 다만 선한 것이 악한 것이고 악한 것이 선한 것이 듯이 맥베스 또는 우리는 매사에 갈림길에 놓이지만 그 갈림길이 무엇인지도 그리고 우리가 어떤 갈림길에 들어서게 됬는 지도 모른다. 어떠한 선택지가 있는 지 모른채 자신의 욕구와 의지에 따라 역사가 흐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치 스코틀랜드의 거대한 대자연 풍경처럼 인간 한사람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운명 그 운명에 거스르려고 한자의 비극을 맥베스라는 작품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6.고전이 주는 힘
고전이란 참 매력적인 존재이다. 예술가들은 예술을 할 때 아마 처음 이런 질문에 스스로 빠질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것인가 혹은 성공한 사례들을 모방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완벽한 창조물을 새롭게 만들어 보고 싶어 할 것이다. 나도 예술가라면 당연 그렇게 해야된다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수세기전 과거의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큰 호응을 끌어낸 작품들의 방식이 현대의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나는 이 질문의 답이 곧 고전의 가치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 그 자체의 본성을 건드리는 예술. 그것이 고전들의 장점이 아닐까. 그 고전들을 현대의 기술과 멋으로 새롭게 각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또한 예술가의 재능이라고 생각 된다. 대표적인 예로 영화계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B급이 되어버린 과거의 인기있던 장르들의 요소들을 섞어서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어낸 감독이 쿠엔틴 타란티노이다. 또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명한 건축물인 두오모 대성당 역시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왜 로마시대에 가능했던 돔 형식의 건물(판테온)이 왜 지금은 불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건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듯이 장르를 막론하고 고전이 주는 힘은 예술에게 있어서 고귀한 가치이다. 그저 고리타분하다고 오래됬다고 밀어두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옛것을 바라보고 재창조하는 일도 예술의 긍정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커젤 감독의 영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틀을 거의 건드리지 않는 선택을 취하면서 그 속에서 영화가 할 수 있는 여러 시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새롭게 맥베스를 각색했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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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 여배우들, 한 곳에 모인다면 누가 이길까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 강렬한 여성 캐릭터들! 이 다섯명이 한 곳에 모인다면 누가 이길까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정신병원의 싸이보그 ‘영군’
“싸이코가아니라 싸이보그에요”
<헤어질 결심> 타지에서 갖은 고생을 한 ’서래’
“한국에서는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친절한 금자씨> 죄를 뒤집어 쓰고 독기 품은 ‘금자’
“언니 이제 밥도 많이먹고 약도 많이먹고 빨리죽어”
<박쥐> 시모, 남편 뒤치다꺼지와 학대까지 당하다 뱀파이어로 변신한 ‘태주’
“저 부끄럼 타는 여자 아니에요”
<아가씨>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엄격한 보호아래 살아가는 귀족 ‘히데코’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박찬욱 감독의 거의 모든 영화에서 여성캐릭터가 핵심적으로 등장합니다.
위의 영화들 말고도 <스토커>, <리틀 드러머 걸>에서도 여성이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이끌어가죠.
박찬욱 감독의 신작에는 손예진 배우가 출연한다고 하는데요.
또 어떤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보여줄지 너무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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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미결로 남는 완전한 사람
때론 인생이 너무 보잘 것 없어 보일만큼
아슬아슬 줄타기를 탈 때 내 안에 더욱 깊게 파고드는 사람이 있다
비록 우리 사랑의 결과는 미결로 남았을지라도
그 사람은 이미 내 마음 속에 완전하게 남아버렸다
마음 속에서 그를 떼어내고 완전히 헤어지기 위해서
결국에는 마음 먹을 결심이 필요한 수준까지 와버린 것이겠지
그렇게 온전히 내 모든 민낯까지
전부 내놓을 만큼
모든 것을 주고 싶을 만큼
간절한 사람
우리를 둘러싼 서사 속
수많은 의심을 잠재울 만큼
나에게는 그 자체로 완전한 사람
그렇게 작은 의심은 관심이 되고,
마침내 완전한 결심이 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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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성보다는 감독의 고집이 더 중요했다
90년생들은 알 것이다. 정도에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지브리와 해리포터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그런 추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브리의 신작이 나온다는 사실은 설레이게 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브리의 최근작들이 조금 주춤했던 적이 있긴 하지만 그 신작들도 거의 10년은 된 작품이니 새로운 지브리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그래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고들 하던데 그 팬심 하나로 영화를 보러 갔다. 보고나니 느껴지던 것은 영화가 정말 관객의 눈치를 볼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관객이 어떤 것을 보여줘야 좋아할까를 고민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예술혼과 철학을 담는 데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가는 관객의 몫이지만 관객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일념이 보여서 좋았다.
1. 인류애가 사라진 전쟁의 시기, 선택에 갈림길에 선 주인공
이 영화의 중요한 화두는 죽음이다. 죽음을 당한 사람도 있고, 죽음을 목도한 이들도 있고, 죽음을 방관한 이들도 있다. 전쟁의 시기에 들어서면, 여러가지의 방식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끝없이 생겨난다. 그런 시기를 살아내고 있는 마히토는 어느 날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괴기한 새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어떤 환상의 세계로 인도된다. 그 세계는 새 생명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니 태초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 같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된 세계인 것은 확실한데, 그 곳에서 마히토는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의 젊은 나날을 보게 된다. 미래에 화재로 죽게되는 그녀는 태초에 세계에서 불을 다루는 것을 보니 그녀의 삶에서 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매개체인 것 같다. 이런 세계를 보고 있자면 인간의 운명은 어쩌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결국 만나게 되는 어떤 매개체는 존재하는 것 같다. 내 삶에서는 그것이 글인 것 같은데, 글 쓰기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은 직업으로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글로 먹고 살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아무말 대잔치 글을 써내고 있는 것을 보면 철자와는 뗄 수 없는 걸까 생각한다. 아니, 그냥 이과적 머리가 없는 인간의 변명일까.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의 운명은 결국 정해져 있는 걸까 싶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현재의 집중해야 한다고 다시 생각을 고쳐먹는다. 과거는 지나간 일이니 어떻게 할 수 없으나 현재, 미래는 결국 한 인간의 선택으로 결정되는데, 현재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나의 미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거지같은 과거에 얽매여 있을 것인지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마히토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과거에 매여 있었다면 어머니를 죽였던 전쟁의 광기를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구축할 수 있는, 자신만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그 세계에 남아 있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히토는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거지같은 현실이라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 현실을 도피해 새로운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 보다는 현실에 부딪혀 보고 싶었던 것 같다고 이해했다.
2. 다소 허무한 결말
영화가 전체적으로 친절하진 않다. 결말에 현실 세계로 돌아온 마히토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등등 모험을끝내고 돌아온 그의 모습을 끝으로 뒷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아 엥? 스럽긴 하다. 뭐, 돌아오고 바로 끝나는 게 어딨어 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어보니 약간 구운몽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걸까. 꿈에서 깨어난 마히토의 삶은 관객이 알아서 상상하라는 뜻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마히토는 그 곳에서의 경험들을 점점 잊어갈 것이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 깊게 자리해 결국 그의 인생의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어머니의 죽음을 덜 떠올리게 될 것이고 새엄마와의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 생활에 적응해 나갈 것이다. 마치 불로 인해 죽게 되었어도 '널 낳았던 멋진 일'을 놓칠 수 없다는 마히토 엄마의 말을 곱씹고 있자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살다보면 간헐적으로 좋은 일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 나의 과거가 거지같았을 지언정 이 거지같음이 영원하지 않고, 뜻밖에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인생은 예상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오는 것이기에 한 번은 살아볼 만 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라고 내 나름의 결론을 내었다.
영화가 친절하지 않으면 보는 동안에는 당황을 하게 되는데, 오히려 곱씹게 되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나름의 정답을 찾으면 그걸로 영화 한 편 다 본 게 아닐까. 그러다보니 오히려 영화의 메시지가 정확하다 못해 관객을 가르치려고 하는 영화들이 더 비호감을 느껴질 때가 있다. 이번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은 관객에게 메시지를 정확하게 구현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여기저기 숨겨놓은 듯하다. 그리고 마무리조차 정확하게 짓지 않았다. 관객에게 불친절한 영화이긴 한데, 모든 해석의 자유를 관객에게 넘긴 것 같다. 혹자는 그걸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혹자는 어떻게든 의도를 찾아내고자 기를 쓸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답을 찾아 합리화를 할 수도 있다.
그 결론이 뭐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관객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저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어떻게 보면 지독히도 예술가스러운 그의 기질이 느껴져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계속 타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영화로 돈을 버는 사람이지만 뚝심이 없는 것만큼 멋없는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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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은 없지만 엘리베이터에 있는 사람들은 죽게 됩니다 [반전리뷰/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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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보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다! 영화 팜스프링스 리뷰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씨내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초대 받은 황보! 황보가 먼저 본 팜스프링스는 과연 어땠을까...? *시사회 초대는 영화 전문 플랫폼 [씨네랩]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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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잘리카투> 티저 예고편
폭주하는 물소, 광기 어린 인간들, 진정 누가 짐승인가?
푸줏간(도축장)에서 도망친 물소가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닌다. 마을 남자들은 폭주하는 물소를 잡기 위해 나서고 이웃 마을 남자들까지 몰려들자 한바탕 대소동이 벌어진다. 평화롭던 마을은 물소를 제압하려는 남자들로 인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버리고, 인간과 짐승의 구분이 사라져 버린 물소 사냥은 점차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광기로 변해간다.
※ 잘리카투(또는 살리카투) JALLIKATTU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의 수확축제인 퐁갈에서 진행하는 전통있는 집단 경기다. 황소를 남자들 무리 속에 풀어놓으면 참가자들은 황소의 등에 올라타서 최대한 오래 버티거나 소를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는데, 이 과정에서 살벌한 장관이 펼쳐진다. 리조 조세 펠리세리 감독의 <잘리카투>는 잘리카투 경기를 묘사하는 영화는 아니다. 확실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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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최종병기 앨리스> 메인 예고편
"한번만 더 때려줘?" 정체를 숨긴 본투비 킬러 겨울(aka. 앨리스)과 잘생긴 또라이 '여름'의 하드코어 액션 로맨스 왓챠 오리지널 ⟨최종병기 앨리스⟩ 6월 24일 금요일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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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7월 3주차의 극장가를 달군 영화들과 박스오피스 다함께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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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7월 셋째 주, 1위를 차지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그 뒤를 잇는 굳건한 <엘리멘탈>은 역주행을 넘어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대표작은이 되면서 꾸준한 관객들이 호평 속 기분 좋은 흥행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주말 관객수 120만명을 넘기면서 5일째 누적관객수 170만,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인공지능 '엔티티'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에단 헌트의 활약을 그린 영화로, 완성도 높은 액션으로 호평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시리즈에서는 시속 100km로 달리는 기차 위에서 악당과 맨몸 액션을 선보이고 이후 등장하는 절벽 추락씬등 짜릿한 톰크루즈의 도전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엘리멘탈>은 428만 관객 돌파와 함께 역대 픽사 영화 중 국내 매출 1위까지 달성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주말을 지나 누적 관객수 428만 명을 돌파해 멈출 줄 모르는 흥행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엘리멘탈>의 흥행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이목이 집중되고있습니다.
재개봉 첫날 6위로 출발했던 '여름날 우리'는 재개봉 3주차에 오히려 순위가 두 계단 상승하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두 청춘스타 허광한과 장약남이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첫사랑의 모든 순간을 완벽한 케미로 그려내며 많은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있으며 여성 관객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누적 관객수 20만 명을 돌파하며 경이로운 역주행 신화를 작성해 나가고 있는 <여름날 우리>의 흥행 추이에 이목이 집중이 됩니다.
<범죄도시>의 흥행으로 전체 매출액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6월 한국영화 매출액에서 92.8%를 기록했다고하며 팬데믹 이전 한국영화 97.3% 수준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눈 뗄 수 없는 CG 액션, 릴 웨인, 에이셉 라키 등 레전드 힙합 뮤지션들이 다수 참여한 강렬한 ost들로 채운 힙한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5위를 차지하며 누적관객수 87만을 기록하며 점점 순위권에서 밀리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7월 셋째주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이 북미 박스오피스1위를 차지했습니다. 아동 성노예와 구출 이야기를 다룬 <Sound of Freedom> 2위, <인시디어스: 빨간문>이 3위 <인디아나존스: 운명의 다이얼>이 4위를 기록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PART ONE>은 북미 공개 첫 주말 매출액 5600만 달러를 넘기며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습니다. 이 수치는 해당 시리즈 중 3번째로 높은 기록으로 영화 제작비에 가까운 수익을 첫주에 내면서 성공적으로 시리즈를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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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기다리는 동안,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결정하지 않는 것도 결정이라니. '무의사결정'이란 말 참 매력적이다. 처음 들었을 때 인생의 진리를 한 마디로 정리한 기분같았다. 결정하지 않는게 대체로 No를 뜻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결정하지 않는 것에도 책임감과 무게감을 부여하고 있다. 좀 더 쉽게 접근하자면 의사결정을 확률에 맡기는 것도 비슷한 종류일 것이다. 확률에 내면의 자신감과 책임감 문제를 맡길 수 있다. 앞면의 이순신이냐, 뒷면의 숫자가 나오냐에 따라 결정이 달라진다. 이파리를 하나씩 뜯어서 기다 아니다를 정한다. 요즘엔 기계가 대신 결정해주기도 한다더라. 여긴 아예 있던 일도 없던 일로 만드는 시공간초월 무의사결정이 있다. 바로 영화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에서.
취향의 문제겠지만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무려 최근에 본 눈이 부신 <너의 이름은>을 보고도 아직은 그렇다.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명언 때문덕이기도 하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던 순간이 많아서 탐이 났다. 대리만족도 됐고 시간을 바꿔봐야 어차피 별로 대단하게 바뀌지 않는 걸 보고 안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늘 눈에 아른거리는 건 마코토의 모습이었다. 바보같고, 오지랖 넓고, 당당한 마코토.
우연히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었을 때 마코토는 바보같았다. 대단한 걸 바꾼게 아니었다. 동생이 대신 먹은 푸딩, 엊그제 먹은 철판구이 고기, 노래방 계속 가기. 갑자기 닥쳐온 쪽지시험은 그렇다 치자. 절친인 치아키와의 캐치볼 공의 노선을 다 알아서 잡는 용도로 쓴다. 세상에, 그 능력을 그렇게 쓰는데도 마코토니까 이해가 간다. 그렇게 평범하게 써서 좋았다. 용돈은 다시 타서 쓰게 시간을 되돌리지만 복권당첨번호를 써먹으려고 쓰진 않는다. 주가조작도 안했고 누구 돈을 뺏지도 않았다.
물론 그 중엔 정말 바보같은 결정도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치아키가 고백한 게 두려워서 없던 일로 만들었다. 한두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어떻게 말할지 잘 생각하고 돌린 것 같지도 않다. 맨날 할말 없으면 뜬금없이 동생 얘기를 해버리니까. 그래놓고 고백받은 기억 때문에 어색해서 치아키를 피해다녔다. 몰랐던 것이다. 때로는 같이 용기내 문을 열지 않으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 코 앞에서 영영 닫혀버리는 것이다. 상대는 기억하지 못하는 그 순간으로 내 마음은 이미 살금살금 문이 열려버렸는데 덫에 걸려버린 것이다. 거절하지도 승낙하지도, 듣도 보도 못한 고백은 이제 그녀의 기억에만 존재한다. 치아키는 아프지도 않게 차였고 마코토는 아무한테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아야 한다. 잔인하다.
자신이 치게 될 사고를 남이 치게 만들고 나니 엄한 사람들이 다쳤다. 자신에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변수처럼 일어났다. 괴롭힘 당하던 친구는 억눌린 화풀이를 했고 그 결과 친한 친구 유리가 다치고 말았다. 유리는 다치긴 했지만 그 일로 좋아하던 치아키가 남자친구가 되었다. 마코토는 가장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이 순간에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시간을 돌리는 이 축복같던 무의사결정에 기뻐했던 자신에게 주는 벌일지도 모른다. 이미 그녀는 그 고백도, 치아키도 놓쳤고 유리와 같은 반 친구에게 없어도 될 상처를 주었다. 많은 여주인공이 무너져버릴 순간, 그녀는 울지 않는다.
마코토는 이 상황에서 오지랖이 넓다. 변화가 있다면 그녀 자신을 위해서 쓰던 타임 리프가 이제 소중한 다른 이들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던 무의사결정 대신 시간을 돌려 능동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친한 친구 고스케의 여자친구 만들어주기에 남은 기회를 거의 다 써버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다시 바보같았다. 치아키의 타임리프 질문에 얼어버려서 다시 회피용으로 시간을 되돌려 버렸다. 결과는 참혹했다. 소중한 고스케를 잃는 것이 분명해졌다.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시간 앞에서 그녀는 주저 앉아 미친 사람마냥 시간을 멈춰달라며 절규했고 그 소원을 들어주면서 치아키는 마코토와 이별해야 했다. 하고픈 말도 하지 못하고 괜한 소리만 하면서 마코토는 멋없이 치아키를 보내야 했다.
다시 한번 시간을 돌릴 기회가 생겼을 때 마코토는 이상하고도 멋진 결정을 한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열심히 달려가서 이 모든 것의 시작으로 돌아가 끝낸다. 이번엔 회피하지도 않고 치아키와도, 모든 사실과도 당당하게 마주한다. 그녀가 치아키를 좋아한다는 것마저도. 모든 상황을 치아키에게 털어놓고 그를 그가 있던 미래로 보내는 것. 굳이 그를 돌려보내는 건 대체 왜일지 생각해봤다. 여러번 볼 때마다 미래에서 기다리겠다는 치아키의 멋진 말에만 심취해서 그 뒤로 당당해진 마코토는 잘 생각하지 못했다. 치아키는 미래에서 시간을 되돌아왔고 이미 일찍 떠났어야 하지만 떠나지 않고 여기 시간의 흐름에 맡겨버렸다. 그조차도 무의사결정을 한 건 마찬가지다. 그 먼 시간을 지나 보고 싶었던 소중한 그림도 보지 못했고, 마코토도 좋고, 그에겐 과거이지만 여기선 현재인 이 시간이 좋아서라는 멋진 핑계가 있을 뿐.
그래서 마코토는 치아키를 위해 결정한다. 자신이 울어버릴 일인데도. 이제 시간을 되돌리는 게 얼마나 본인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잔인하고 아플 수 있는 일인지 마코토는 알고 있다. 어쩌면 치아키의 그 고백, 마코토 모르게 치아키도 꽤 여러번 고백했다가 없었던 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소중한 친구 고스케가 이미 여러 번 죽을 운명이었던 것을 구해주었던 것을 마코토가 몰랐듯이. 아무도 모르는데 나만 감당해야하는 괴로움을 알기에 마코토는 좋아하는 치아키가 더 이상 시간을 오가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현재이자 마코토에게는 미래인 그 시간에서 치아키가 행복하길 바라기에, 그가 좋아하는 그림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게 여기 남아 그가 그의 시간에서 행복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치아키를 찾아가는 게 그녀가 내린 결론일 것이다. 그렇게 치아키는 미래에서 마코토를 기다리고 마코토는 현재에서 치아키에게 달려간다.
기다린다, 달려간다, 문이 열린다. 나도 모르게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와 연결짓고 있던게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것을 글의 끝자락에서야 깨달았다. 글의 방향을 정하지 않고 쓴 무의사결정적 글이라니 부끄럽지만.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어쩌면 내겐 생애 첫 시다. 언니의 책상에서 어릴 적부터 의미도 모르고 읽었던 시였다. 애기 때는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아서 이 시가 어디가 좋아서 언니가 책상 안에 끼워넣었을까 했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가만히 있다가 생각나곤 하는 시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엔딩이 혹시나 아쉬웠거나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나는 치아키와 마코토의 모습을 보여줄 시로 이 시를 꼽겠다.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마코토는 달라져있다. 여전히 덜렁대고 바보같지만 당당하다. 여전히 무의사결정을 생의 곳곳 틈틈히 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치아키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아주 어렵고도 쉬운 결정을 했다. 마코토는 시간을 달리지 않으면서 시간을 달리고 있다. 타임 리프도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먼 곳에서 오지 않는 치아키에게, 아주 먼데서 오는 치아키에게 가고 있다. 달려가고 있다. 치아키가 그러하듯이.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쾅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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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베스(2015년)
박제욱
1. 맥베스 서사
'서양 문학은 결국에는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다.' 라는 우스겟소리가 있다. 그만큼 그둘은 역사속에서 가장 강력하고 새로운 문학가들이었다. 그 중 셰익스피어는 여러 희곡들로 특히 4대 비극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아마 전세계 누구나 한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다. 내가 그 중 가장 매력적으로 끌리는 작품은 맥베스였다.
2015년에 저스틴 커젤 감독의 손에 의해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다시 한번 각색 되었다. 간단히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자비로운 왕 던컨 왕이 집권중인 스코틀랜드. 역적 맥도널드가 내란을 일으켜 던컨왕의 지위를 위협하게 된다. 글래미스의 영주 맥베스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나선다. 맥베스는 맥도널드를 처치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전쟁이 끝나고 맥베스와 그의 동료 영주 뱅코우는 세 마녀의 예언을 듣게 된다. "글래미스의 영주이자, 코더의 영주, 그리고 장차 위대한 왕이 될 맥베스"라는 예언과 뱅코우는 "맥베스보다는 못하나 자손 대대로 왕을 낳을 것이다."라는 예언을 듣느다. 그 예언에 의해 맥베스는 심한 고뇌에 빠지게 되고, 자신의 부인의 욕심에 못이겨 이내 던컨왕을 살해하게 된다. 왕이 된 이후에는 뱅코우의 아들에 대한 불안함과 심한 광기에 휩싸여 미쳐버리고 세 마녀를 다시 찾아가게 된다. "버넘 숲이 던시네인 언덕을 넘지 않는 이상 너는 몰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가 낳은 남자는 맥베스를 해칠 수 없다."라는 예언을 받는다. 그 말에 맥베스는 다시 광기를 다스리게 된다. 하지만 결국에는 버넘 숲이 던시네인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맥베스는 어미의 배를 찢고 나온 맥더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단순한 예언에 의해 정의롭고 용감했던 한 영주가 광기에 휩싸여 한 나라의 왕이 되고 그 이후에는 폭군이 되고 자신의 동료들에 의해 불명예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을 맞이한다. 영화는 마지막으로 왕의 검을 들고 있는 왕궁 속에서의 멜컴 왕자와 전장 속 맥베스의 시체 앞에 있는 뱅코우의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무리 된다.2.미장센
영화 맥베스를 보게 되면 실제 스코틀랜드의 당시 시대가 이랬을 것이라는 기분이 들고 셰익스피어의 각본이 실제 이야기라면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라는 감동을 받게 된다. 그 만큼 감독이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도 여러 미장센과 연출을 통해 배우의 연기를 극대화 시키고 갈등 상황을 독특하게 표현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번재 눈에 띄는 점은 불이다. 영화 초반 불의 이미지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갈등 및 감정을 아주 탁월하게 설명해 낸다. 불이라는 이미지는 여러가지 의미로 계속 반복 제시된다. 영화는 맨처음 맥베스는 자신의 딸을 화장하면서 시작한다. 여기서 불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 이후 영화 중반부에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던컨왕 살해를 두고 심각한 고뇌와 갈등을 겪게 된다. 맥베스가 처음 예언을 들었을 때는 자신의 충성심과 죄책감 때문에 불안함에 빠져 왕을 살해할 수 없다고 하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레이디 맥베스는 자신의 남편을 왕의 자리에 추대할 수 있다는 여왕이 될 수 있다는 탐욕에 빠지게 된다. 대립되는 두 인물의 대화 속에서 항상 레이디 맥베스쪽에 머무는 물체가 있다. 바로 빛, 불이다. 항상 레이디 맥베스의 등 뒤에는 횃불 또는 초 등이 비추고 있다. 왕위에 대한 도전과 그 의지가 그녀에게만 머물었지만 그 불이 맥베스 쪽으로 이동하는 순간 맥베스가 스스로 다짐하게 되고 던컨왕을 살해하게 된다. 영화 중반부 불은 곧 의지를 뜻한다. 극의 중.후반부 맥베스에게 반기를 든 맥더프의 가족 모두를 맥베스의 병사들이 잡아와 사형에 처하게 하는 장면이 있다. 어린 아이까지 화형을 하는 이 장면은 아마 의지를 뜻하기도 하면서 맥베스의 광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버넘숲이 던시네인을 넘어 오는 장면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는 맬컴 왕자와 맥더프 그리고 잉글랜드 군 1만명이 버넘숲의 나뭇가지로 위장을 하여 던시네인을 넘어오는 버넘숲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맥더프가 버넘 숲에 불을 지르고 그 불에 탄 버넘숲의 재가 던시네인을 넘어 맥베스의 성으로 향하면서 던시네인을 넘어서는 버넘숲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불은 맥베스의 최후를 뜻하는 종말이자 죽음이 될 것이다. 이렇듯 불은 영화 처음부터 죽음의 이미지를 담으면서 의지, 광기, 종말 및 죽음까지 이어졌다.3.등장인물
맥베스 원작 자체에서부터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서양 문학사 최고의 악녀라고 할 수 있는 레이디 맥베스를 탄생시키면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갈등을 볼 수 있다. 위에 첨부한 맥베스 포스터를 보게 되면 마치 마이클 패스벤더(맥베스역)의 머릿 속에 마리옹 꼬티야르(레이디 맥베스 역)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극중에서 둘의 관계가 이러하다.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로부터 예언을 듣게 된 후로 완전히 맥베스의 머릿속에 들어서 그의 욕망과 탐욕을 일 깨우는 것에 노력한다. 하지만 맥베스의 광기는 통제 하지 못한 그녀는 이내 질병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필자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인물관계는 맥베스와 뱅코우의 관계이다. 맥베스와 뱅코우는 세마녀에게 예언을 듣게 된다. 재밋는 점은 왕이 될 사람이라는 예언과 자손 대대로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맥베스와 뱅코우가 동시에 같이 듣는 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맥베스는 자신의 탐욕에 의해 왕이 되려고 노력을 할 것이고, 그 후 자신의 왕위를 오래 간직하기 위해 뱅코우의 아들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뱅코우 역시 맥베스가 코더의 영주가 됬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이 예언이 진실일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되고 전우였던 맥베스를 멀리하고 아들과 함께 도망치려 할 것이다. 개개인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는 두 예언이 동시에 한 장소에서 들었다는 이유로 영화의 가장 큰 비극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되어준다.4. 무엇이 맥베스를 타락 시켰는가
맥베스는 본래 신분이 명예롭고 위대한 장수이자 영주였다. 그런 지위와 명성덕에 그의 몰락이 더 돋보이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타락 시켰을까. 첫째는 바로 스코틀랜드의 기후 혹은 풍경이라고 생각된다. 과거에 맥베스를 접할 때는 커젤 감독의 영화처럼 실제 스코틀랜드의 척박한 풍경을 보여준 작품은 없었다. 높은 산 하나 외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없는 황량한 토지, 그리고 괴물이나 나올 것 같이 어두침침한 나무들로 빽빽한 버넘숲을 영화는 잘 표현해주며 심지어 흐릿하기만 한 스코틀랜드의 날씨까지 영화에서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둡고 우울한 기후와 배경이 이 영화의 분위기를 비롯하여 맥베스의 감정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 가장 맥베스를 타락시킨 것은 세마녀의 예언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말'일 것이다. 처음 맥베스를 혼동시킨 것은 예언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뱅코우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두가지 예언을 듣게 됨으로서 두 인물은 서로 대립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곤경을 치루게 된다. 레이디 맥베스의 탐욕에 빠진 속삭임도 맥베스 그를 타락하게 만든다. 그 이후에 새로 듣게 되는 세 마녀의 예언 또한 다시 한번 맥베스를 안심시키기도 하지만 곧바로 그가 몰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언이 될 수도 예언이 될 수도 있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맥베스를 혹은 맥베스의 주변인물들의 운명을 타락시킨 비극의 근원일 수도 있다.5.대사
맥베스는 역설의 영화로도 보인다. 영화의 초반 세 마녀로부터 우리는 한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선한 것이 악한 것, 악한 것이 선한 것"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 속 전쟁이 끝난 전쟁터에서 빠져나오면서 맥베스가 이런 말을 한다. "이렇게 흉하고도 좋은 날은 처음이오." 이 두 대사는 사실 말이 안되는 서로 상반 되는 개념들을 늘어 놓는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일 된다는 느낌을 우리는 받을 수 있다. 나는 이 대사를 통해서 세 마녀의 예언이 사실은 예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말은 사실 맥베스 내면의 욕구였을 수도 있다. 다만 선한 것이 악한 것이고 악한 것이 선한 것이 듯이 맥베스 또는 우리는 매사에 갈림길에 놓이지만 그 갈림길이 무엇인지도 그리고 우리가 어떤 갈림길에 들어서게 됬는 지도 모른다. 어떠한 선택지가 있는 지 모른채 자신의 욕구와 의지에 따라 역사가 흐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치 스코틀랜드의 거대한 대자연 풍경처럼 인간 한사람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운명 그 운명에 거스르려고 한자의 비극을 맥베스라는 작품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6.고전이 주는 힘
고전이란 참 매력적인 존재이다. 예술가들은 예술을 할 때 아마 처음 이런 질문에 스스로 빠질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것인가 혹은 성공한 사례들을 모방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완벽한 창조물을 새롭게 만들어 보고 싶어 할 것이다. 나도 예술가라면 당연 그렇게 해야된다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수세기전 과거의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큰 호응을 끌어낸 작품들의 방식이 현대의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나는 이 질문의 답이 곧 고전의 가치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 그 자체의 본성을 건드리는 예술. 그것이 고전들의 장점이 아닐까. 그 고전들을 현대의 기술과 멋으로 새롭게 각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또한 예술가의 재능이라고 생각 된다. 대표적인 예로 영화계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B급이 되어버린 과거의 인기있던 장르들의 요소들을 섞어서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어낸 감독이 쿠엔틴 타란티노이다. 또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명한 건축물인 두오모 대성당 역시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왜 로마시대에 가능했던 돔 형식의 건물(판테온)이 왜 지금은 불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건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듯이 장르를 막론하고 고전이 주는 힘은 예술에게 있어서 고귀한 가치이다. 그저 고리타분하다고 오래됬다고 밀어두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옛것을 바라보고 재창조하는 일도 예술의 긍정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커젤 감독의 영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틀을 거의 건드리지 않는 선택을 취하면서 그 속에서 영화가 할 수 있는 여러 시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새롭게 맥베스를 각색했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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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 여배우들, 한 곳에 모인다면 누가 이길까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 강렬한 여성 캐릭터들! 이 다섯명이 한 곳에 모인다면 누가 이길까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정신병원의 싸이보그 ‘영군’
“싸이코가아니라 싸이보그에요”
<헤어질 결심> 타지에서 갖은 고생을 한 ’서래’
“한국에서는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친절한 금자씨> 죄를 뒤집어 쓰고 독기 품은 ‘금자’
“언니 이제 밥도 많이먹고 약도 많이먹고 빨리죽어”
<박쥐> 시모, 남편 뒤치다꺼지와 학대까지 당하다 뱀파이어로 변신한 ‘태주’
“저 부끄럼 타는 여자 아니에요”
<아가씨>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엄격한 보호아래 살아가는 귀족 ‘히데코’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박찬욱 감독의 거의 모든 영화에서 여성캐릭터가 핵심적으로 등장합니다.
위의 영화들 말고도 <스토커>, <리틀 드러머 걸>에서도 여성이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이끌어가죠.
박찬욱 감독의 신작에는 손예진 배우가 출연한다고 하는데요.
또 어떤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보여줄지 너무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