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71세가 된 조반니 “난니” 모레티 감독의 최신작 <찬란한 내일로>는 그의 대단한 필모그래피를 고려하면 일견 수수해보인다. 난니 모레티는 본명과 직업이 같은 주인공을 직접 연기하며, 나이든 감독이 평생 잘 굴려왔다고 믿은 영화와 가족 양측에서 내쳐지고 비로소 얻은 깨달음과 후회를 코믹하게 펼쳐둔다.
<아들의 방>과 <악어> 시절부터 모레티와 오랫동안 합을 맞춘 마르게리타 부이, 실비오 올랜도 등 반가운 배우들이 극중 조반니의 오래된 동료나 부인으로 분하더니, 크레딧 롤을 대신하는 듯한 마지막 행진 장면에서는 아예 지금껏 협업한 배우들을 카메오로 불러내 클로즈업하기도 한다. 알바 로르바케르(일층 이층 삼층), 자스민 트린카(아들의 방), 다리오 칸타렐리(미사는 끝났다/아들의 방/악어/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등등), 줄리아 라짜리니(나의 어머니), 안나 보나이토(악어)와 리나 사스트리(에체 봄보)까지. 송경원 평론가의 말마따나, 그야말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대행진‘이다.
거장이 된 창작자가 자기 ‘사단’을 불러다놓고 (그동안 지겹도록 말해진) ‘영화 만드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우회적으로 논하는 자전적 작품은 생각보다 드물지 않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거장들은 자꾸만 일생의 마지막 정리를 하는 듯한 작품을 만들어왔는데, 그런 영화들은 종종 긴 세월의 노고를 함께 해준 ‘이너 서클’에 대한 우애나 자기 자신의 좋았던 시절에 대한 애틋한 치하를 필연적으로 담지하고 있어 관객인 내게 애수와 함께 아주 미약한 피로감을 불러일으킬 때도 있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반드시 사변적이라거나 습작적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확률상’ 그런 루프에 빠지기 쉬운 것도 사실인데, 노장의 자전적 필모그래피란 그런 습작성을 가릴 만큼의 노련함까지 갖추고 있어 소위 ‘흐름’을 타지 못하면 영화 내내 홀로 축제에 합류하지 못한 찝찝한 기분으로 뒤에 남겨지기 일쑤였다. 서사성의 결여, 자기애적 회고에 대한 반발감 때문에 만듦새를 돌아볼 새가 없어지고 그 무엇보다도 ‘감독의 리듬과 나의 리듬이 잘 맞는가’가 가장 중요해지고 마는 아쉬움. 굳이 꼽자면 내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나 빅토르 에리셰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그런 작품이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사적인 영화, 우회하지도 않고 그 어떤 서사적 덧붙임도 없이 본연의 ‘일 이야기‘로 직행하는 난니 모레티의 <찬란한 내일로>는 왜 아무런 거부감 없이 만점짜리 영화로 마음에 안착할 수 있었을까. 왜 이 화려하고 친밀한 출연진과 훌륭한 이탈리안 코미디로서의 연출과 노련한 ‘리듬감’을 보고도 이 영화가 편안하고 충만한, ‘자신과 너무 먼 나를 받아들이는’ 영화라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영화적 야심의 충족 대신 환대와 허용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장들(보다도 그들의 맹목적 추종자들)이 숱하게 저지르는 실수와 달리 난니 모레티는 ‘영화를 마음대로 해석해주는’ 관객에 대한 불만을 전연 느끼지 않고 오히려 모두의 즐거움을 보장하는 따스한 경청의 태도를 취한다. 영화도 그렇거니와 영화 바깥의 태도 역시 그러하다. 한국 관객들과의 씨네토크에서 그는 특정 장면의 ‘의도’가 헤집어질 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연출했다고 말하고,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물을 때 “영화는 크로스워드 퍼즐이 아니기 때문에 정답은 없고, 여러분도 몇 년 후 다시 보면 감상이 또 달라질 것”이라며 웃는다. 영화 속 조반니가 그의 영화를 맡게 된 낯선 한국 제작자들의 “사랑과 정치, 예술과 공산주의의 죽음”이라는 어마어마한 해석에 그저 “네, 맞아요”라고 수긍한 것처럼 그는 타인의 의견에 (그것이 폭력과 비윤리를 미화하지 않는 한) 절대적으로 열려있(게 된)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는 저 먼 한국에서 와서 소주로 건배를 권하는 제작자를 생경하게 생각지 않은 조반니처럼 ‘나를 따돌리지 않는’ 영화다.
극중 조반니가 처음부터 모든 종류의 충돌에 관대한 인물이었냐 하면 물론 아니다. 난니는 페르소나인 조반니를 상당히 짜증스럽고 고압적이기도 한 연출자로 그려내는데, 편집증에 가까운 그의 강박은 애꿎은 젊은 스탭들을 괴롭게 하고 ’우리(부부) 얘기만 빼고 다‘ 하는 그의 일방적 수다는 상대적으로 온화한 부인 파올라가 이혼을 결심케 만든다. 조반니는 혼자만의 의식에 집착하고 “단어 하나만 달라져도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 영화라면서 제작진과 배우들을 몰아세운다. “20테이크 정도만 더 찍자”는 조반니의 예사로운 말에 스탭들이 몰래 한숨을 쉬고, 스포트라이트나 즉흥 연기를 바라는 배우들은 “그 친구 클로즈업 안 해요”라든가 “카사베츠는 카사베츠고 이건 내 영화”라는 조반니의 단언에 허물어진다.
이런 조반니가 5년만에 찍고 있는 영화의 정체는 1956년 헝가리 혁명을 배경으로,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따른 이탈리아의 평범한 공산주의자들의 혼란을 담은 작품이다. 마을에 방문한 헝가리 서커스 단원들과의 심정적 연대, 정치적 노선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압박에 처한 지부 사람들은 고뇌하며 갈등한다. 조반니와 함께 전동 킥보드를 타던 프랑스 제작자 피에르는 고전적인 영화를 두고 이렇게 상찬한다:
서커스는 현대 영화의 은유잖아요. 줄 하나에 매달릴 뿐 앞일을 전혀 모르니까요.
감독님 영화는 체제 전복적이에요.
조반니는 손사래 치면서도 내심 뿌듯한 표정을 짓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집 나간 부인의 행방을 찾다 외동딸에게 동음이의의 잔인한 선고를 듣기도 한다:
아빠랑 있으면 늘 외줄 타는 기분이긴 해요.
40년간 13편의 영화를 공동 제작한 동업자이자 부인 파올라가 새 영화를 제작하는 현장에서 유망한 신진 감독 주세페를 밤새도록 가르치는 조반니를 보고 있노라면 이 ’외줄 타는 기분‘을 곧장 추체험할 수 있다. 스콜세지에게 무턱대고 전화를 걸고 온갖 인맥을 동원해 그 영화의 폭력성이 왜 정당하지 않은지 연출적으로 어떻게 부족한지를 설파하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완고한 침입자.
자기 영화 현장에서도 조반니는 마찬가지로 자기 ’원칙‘에 따라 소품, 의상, 촬영 감독과 캐스팅 디렉터들을 차례로 당황시킨다. 1950년대 물 상표부터 낡은 옷깃 표현까지 하나하나 간섭하는 그의 원칙이란 ’실제가 어떠했는지‘에 사활을 거는 척하면서도 결국 실제가 아닌 자신만의 고집에 복무하기에 허구적이다. “스탈린 포스터를 실제로 걸었더라도 내 영화에선 아냐”라든가, ”당시 실제 기사예요“라는 미술감독의 항변에 ”그건 상관없어요“라며 기사 캡션을 줄여 (자기 마음에 들게) 다시 제작해오라는 지시에서 이 원칙의 자의성과 이중성이 낱낱이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는 미학도 있지만 윤리도 중요”하다는 조반니-난니 모레티의 철학은, 넷플릭스-액션-(자칭)네오리얼리즘으로 요약되는 차세대 감독 주세페와 충돌하는 바로 그 장면에서 명료해진다. 키에슬로프스키를 거론하며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폭력 외의 다른 묘사는 전부 폭력에 대한 미화고 옹호라는 조반니의 지론은 넷플릭스식 액션에 익숙해지고 폭력에 매료된 현대 사회 관객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물론 젊은 영화 연출가는 ‘최면에 걸렸다 깨어나서 우는 날’이 올 거라는 경고를 거부하고, 밤새워 강의하며 제작진 수십 명을 대기시킨 조반니는 파올라에 의해 현장에서 쫓겨난다.
“사악함밖에 없는 영화잖아. 당신까지 그러면 안 되지. 안 그러더니 변했다”는 말로 파올라의 분노를 산 것만큼 심각한 문제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노감독의 뒤로 그 매혹적인 폭력의 묘사가 배우들에 의해 간단히 재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조반니는 그를 무시하고 흘러가는 - 점점 더 빠르게,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 세상의 속도로부터 완전히 유리되고 있다.
몇십 년간의 영화/결혼 생활 동안 상대를 돌아보지 않는 그의 완고함은 주변에 생채기를 내어왔다. “새 영화를 들어가서 상담을 줄일” 정도의 책임감으로 임하고 있고, “촬영장을 못 떠나겠어요”라며 기실 조반니를 떠나지 못했던 이유까지 자신도 모르게 설명한 파올라의 영화에 대한 (조반니 못지않은) 열정을 조반니만 우습게 알고 있다. 제작자 피에르가 사기 혐의로 붙잡혀 가면서 투자받기 어려워졌고, 못내 경멸하던 넷플릭스 투자를 꿈꿔봤지만 ‘왓더퍽’하는 모먼트가 없단 이유로 수정 요청을 받으면서 촬영은 점점 더 난항이 되어간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데려온 코끼리들은 싸움이 나고, 스페인 곰은 탈주해 숲으로 숨어들어가는 난장판이 프로덕션을 어지럽힌다. 오래 협업한 주연 배우 엔니오가 우물쭈물 의견을 밝히지 못하는 사이, 또다른 주연 배우 베라는 조반니가 싫어하는 뮬을 신고 “제게 연기란 재즈처럼 배우가 대본을 변주하는 일”이라거나 “누가 요즘 정치물 봐요? 이건 사랑 얘기예요. 모르시겠지만 그래요”라고 주장하며 대들지만 조반니에겐 그를 다른 ‘고분고분한’ 배우로 교체할 권위도 잃었고 사실 명분도 없다.
조반니는 자신만의 룰로 세상을 주물러왔지만 더이상 세상은 그의 틀에 만만히 잡혀줄 정도로 ‘고분고분하지 않다’.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은 폴란드 대사 예르치와 사랑에 빠진 딸처럼, 영화 속 의도되지 않았던 로맨스 서사를 쟁취하더니 현실에서도 결국 커플이 된 배우 베라와 엔니오처럼, 조반니와 같이 과거에 매이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생히 역동하고 반응하며 조반니는 외로이 그 생기를 억누르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이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타협하든가 잊혀지든가 둘 중 하나뿐이다.
만일 조반니가 묵묵함이라고 일컬어지던 불통, 장인정신이라고 오해되던 고집을 계속 발휘한다면 그의 영화도 삶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엔니오와 조반니의 다이얼로그가 암시하듯이.
“(주인공의 자살이) 영웅적이지 않나요?”
“과한 면이 없지 않죠. … 사실 영화 마지막 장면부터 떠올라서 나머지 대본을 썼어요.”
“언젠가는 하실 줄 알았어요. 주인공의 자살로 끝나는 작품을요. 감독님다워요.”
‘감독님답다’는 말에 멍해진 조반니는 “당신이 묻어있는 인물이 자살하는 결말인게 왠지 불길해”라던 파올라의 염려가 어떤 예지였는지 갑자기 깨닫는다. 혼자 사는 삶은 삶이라 부를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도 그를 찾아든다. 그래서 그는 세트장을 횡단이동해 옆방으로 건너가 (즉 그가 ‘원칙’에 충실하느라 앞만 보고 달렸을 때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옆’으로 나아간다) 침묵 속에 잠긴다.
결국 한국 제작자들까지 모두 모인 폴란드 대사관의 다국적 식탁에서 “결말을 완전히 바꿔야겠어요”라고 조반니가 운을 떼는 순간 모두의 대사들이 생생히 터져나온다. 연출적 감동을 자아내는 이 극적인 소란 속 조반니는 독백한다. “삶에는 ‘만약에’가 없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만약에’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가 바란 ‘만약에’란 소련의 압제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헝가리와 연대하며 폭력에 순응하는 대신 용기 내어 윤리를 선택한 1956년의 이탈리아이며(‘이탈리아 공산당은 이후 소비에트 연방과 결별하고 맑스, 엥겔스의 정신을 독자적으로 실현했다.’), 타인의 영향력이 자신을 침범하도록 놔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웃고 춤추고 노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이다(‘우리는 지금도 행복하다’).
찬란한 내일로 난니 모레티 감독 GV
with 씨네큐브 X 에무시네마 (에무필름) X 송경원 평론가
Q. 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가 작년 칸에 둘 있었다. 감독님의 <찬란한 내일로>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Fallen Leaves. 56년 헝가리 혁명이 배경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A. 두 가지 이유인데 첫째로는 근현대 이탈리아에서 공산주의가 갖던 의미를 다루고 싶었다. 또 그때 이탈리아인들이 소련의 영향에서 해방될 기회를 놓친 때이기 때문이다.
Q. 중간부터 극 중 극과 별개로 젊은 연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싸움이나 대사들은 마치 단막극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연출한 이유는?
A. 원래 겹겹의 구조를 좋아하는 편이다.
Q. 최근의 이탈리아 영화 제작 환경은 어떤 편인가? 극중 촬영과 실제 촬영 현장은 얼마나 다른가?
A. 다른 감독의 촬영을 멈추는 취미는 없고(ㅎㅎ) 춤도 안 춘다ㅎㅎㅎㅎ 예전의 나는 실제로 즉흥 연기를 반대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많이 누그러졌다. 조반니의 나머지 면과 나는 상당히 비슷하다.
Q. 감독님이 제일 애정하는 씬은 무엇인지? (송평은 이탈리아에 공산당이 있었냐고 배우가 맹하게 묻는 대본 리딩 장면부터 ‘아 내가 좋아할 영화다, 너무 재미있는 코미디겠구나’ 하고 확 끌렸다고)
A. 글쎄… 영화는 크로스워드 퍼즐이 아니기 때문에 정답이나 해답이 없다. 여러분들도 2년 후 다시 보면 또 감상이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탈리아 노래가 나오는 모든 씬, 그리고 그 젊은 커플이 나오는 장면을 좋아한다. 예전부터 50년간 함께 하는 커플을 (다큐멘터리처럼) 50년간 찍는 작업으로서 다루려고 시도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 그 숙원을 풀게 되었다. 또 커플 중 여자 쪽의 대사는 나의 개인적인 노트에서 가져와서 대본에 없는 대사다. 내 일기, 노트의 글들을 대사로 넣기 위해 연출한 것이기도 하다. 즉흥적인 결정이기도 했기 때문에 여배우는 당연히 대사를 다 외우지 못했고, 내가 카메라 옆에서 직접 말해준 장면도 있다.
Q. 극중 조반니의 촬영 현장을 구하는 한국인 제작자들이 나온다. 통역 격인 유선희 배우를 작년 칸에서 운좋게 만나뵀는데, 감독님에 대해 “20번 넘는 테이크를 찍는 완벽주의자”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수십 번 리허설한 대사를 현장에서 바꾸는 분”이라고 표현했다.
A. 감독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기, 음악, 변칙 등 상세한 요소들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71세가 된 대감독인 저라도 (현장에 따라 즉흥성을 발휘하는) 이 정도의 반항심은 있어야 한다는 거다. 동시에 그런 (일관된) 연출을 위해, 배우들이 좀 지름길로 가고 싶어할 때가 있으면 내가 단호하게 멈추기도 했다.
Q. 아까 언급한 주세페의 영화에 끼어들던 장면. 거기서 “영화의 윤리”라는 게 언급되는데, 오늘날의 영화의 윤리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A. 반복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오늘날의 영화 제작진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폭력을 우대하고 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Q. 이 영화가 그런 현상에 대한 해독제라든가 반작용이 될 것을 의도했는지?
A. 그런 것을 특별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관객을 만족시키려는 목적에 충실했기 때문에 나 역시 만족스럽다.
Q. 프랑스와 한국 제작자, 폴란드 대사 등 각국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유는?
A. 먼저 프랑스 출신의 제작자들과는 친분이 두텁다. 내게 프랑스는 거의 제2의 고향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다. 폴란드 대사 예르치는 오로지 그 배우를 위한 역으로 만들어넣었다(배우분 본명도 예르치). 오래된 친구이자 동료였고, 그를 위한 역할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제작자들에 대해서라면, 이탈리아 사람이 재깍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에서 온 사람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른 사람들이 영화를 살리고 영화를 마음대로/좋게 상상하고 해석해주는 부분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영화 산업이 얼마나 활발하고 독특한지는 잘 알고 있어 원래도 관심이 컸다.
(송평: 그 ‘마음대로 해석해준다’는 부분과 관련해서, 이 영화가 그런 접근을 너그러이 허용해주는 영화라고 느껴져서 아주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런 지점이 가장 좋았다)
Q. 마지막 장면의 행진이랄까 축제 같은 장면에서 처음에는 작게 사람들을 잡다가 점점 행렬 규모가 커지고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던 배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알바 로르와케르 등 감독님의 다른 작품에 나오는 배우들이었는데, 이런 연출의 이유는 무엇인지.
A. 주조연 배우들과 1회차 촬영을 했는데, 갑자기 공산당 리더로 엔딩에 잠깐 나온 엑스트라 배우라든가, 작가들, 조감독들, 그리고 한국 제작진들까지 이 영화와 연관된 모든 인물들이 포함되면 좋을 것 같아서 2회차 촬영을 했다. 그런데 편집을 끝낼 때쯤 10~30년 전의 내 영화에 등장한 배우들까지도 다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해서 다시 3회차 촬영으로 마무리했다.
(송평: 정말 대단원의 대행진이라 할 만하다…)
Q. (플로어 질문) 차 속에서 노래를 틀고, 다같이 따라 부르는 씬이나, 조반니가 혼자 축구공을 위로 뻥뻥 차올리는 씬 등 전 영화들의 오마주로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의도된 것인지?
A. 사실 그런 장면들은 하나도 의도되지 않았다. 45년 간의 커리어를 이어오다 보니 우연히 겹쳤을 것이다ㅎㅎ 촬영 들어가기 전 다같이 노래하는 장면은…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무 뜻도 없다.
Q. (플로어 질문)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나, <롤라>, <라 돌체 비타> 등등… 서커스라는 모티브도 그렇고 이탈리아 영화들에 대한 존경의 오마주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난니 모레티 감독에게 페데리코 펠리니란?
A. 씨네마 그 자체. 덧붙여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내 초기작에서 언급된 영화들은 사실 비판적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인용한 영화들이었는데 이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때 언급한 영화들을 비판받을 수 있는 자리에 놨다면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보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