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3-05-24 06:53:33
작은 우연들과 상상들이 모이고 모여 일으키는 강력한 힘
영화 <우연과 상상> 리뷰
2021년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게 있어 의미있는 해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 이렇게 한 해에 두 작품을 공개했을 뿐더러 드라이브 마이 카는 칸 영화제 각본상, 우연과 상상은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감독 세계를 인정받아왔지만, 그의 감독 세계와 우상을 더욱 견고히 하였다.
이 중 필자는 <우연과 상상>을 이야기하고 싶다.
3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로, 이 3편의 단편은 서로 연계되지 않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전작들에서 보여주는 일부 씬들에 대한 실험적 시도나 재편성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 예를 들어보자면, 첫번째 단편인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에서 택시 씬은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후반부 가후쿠랑 다카츠키가 차에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문은 열어둔 채로"는 대화 스타일이나 영상의 톤이 전체적으로 '열정'이 연상됐으며, "다시 한번"은 해피아워에서 온천으로 놀라가서 서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처럼 옴니버스이기에, 3가지 단편을 통해 감독이 보여줄 수 있었던 각자의 스타일을 보여줬다고 생각이 든다.
영화는 설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많은 대화를 통해 상황과 설정을 나열하는데, 그것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흥미롭게 전개되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특유의 담담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영상미 덕분에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는 현실적이면서 신비롭다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영화는 SF, 판타지 같이 비현실적이지 않으면서 그 상황과 분위기는 전혀 평범하지 않고, 때로는 서스펜스까지 존재하는 신비로움을 풍긴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의 사건들은 정말 제목 그대로, '우연'과 '상상'들로 부터 이루어진 사건들이다.
우연히 만나고, 어떠한 상황을 떠올리고, 누군가를 떠올리고, 우연이 알아채는 수많은 우연들과 상상들이다.
이런 작고 작은 우연들과 상상들은 개별적으로는 정말 작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모이고 모여 보이지 않게 강력한 힘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점점 영화의 힘에 사로잡히고, 그렇기에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면 큰 여운을 남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전작인 <아사코>나 <드라이브 마이 카>에 비해 장소의 변환이나 인물이 적어 소품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지닌 영화적 연출과 영화적 힘은 여전히 강력하게 발휘한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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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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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은선이라는 친구가 두 명 있었다. 있었다고 하는 이유는 한 명이 개명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 명밖에 없다. 나는 은선이들을 볼 때마다 실버라이닝을 생각했다.
구름에 가려진 햇빛이 만들어내는 가느다란 은색 선은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이 곧 갤 거라는 희망이다.
보통 이름에 쓰는 '은'자는 은혜 은(恩)자가 많을 테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레이스 라이닝이든 실버 라이닝이든, 아무튼 실제로 아직까지 은선이인 은선이는 먹구름 뒤 실버라이닝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조금 다른 아이였다. 다르다고 말하니 나에게 무척 관대한 기분이 든다.대학생활을 하면서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취업 준비나 스펙 쌓기 같은 유익한 것에는 하등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일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아무렇게나 사랑하고, 쉽게 상처받으며 휘청거리며 걸었다.
그때 은선이가 있었다.
팻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다. 아내와 불륜 관계였던 학교 선생을 시원하게 패버리고 아내인 니키에게 접근금지 및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병원에서 긍정적인 태도로 최선을 다 하면 한 가지 빛을 얻을 수 있다고 들었으니 긍정의 힘을 믿으며 다시 아내와 만날 거라고 생각한다.
감정 통제가 되지 않는 그에게 아내를 만나게 해줄 리가 없다. 불륜도 폭력도 문제이니 어느 쪽 편도 들기 어렵지만.
친구 로니의 저녁식사에 초대된 팻. 친구의 처제 티파니도 그곳에서 만난다.
(로니의 아내 베로니카 역으로 나오는 줄리아 스타일즈의 모습과 목소리가 반갑다. <너를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 본 캣의 얼굴 그대로에, 나이만 들었다. 매력적인 배우다)
식사 중 언니의 말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티파니, 집에 데려다준 팻에게 나한테 마음 있는 거 다 안다, 같이 자자고 하지만 팻은 거절한다.
팻의 뺨을 후려치는 티파니의 감정기복을 보통 사람들은 따라가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사람 제법 봤다.
영화여서 극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별 생각 없고 뜻도 없이 남자들을 만나고, 자는 사람들. 표면적으로만 보면 욕 먹기 쉽고, 욕 하기도 쉬운 사람들이다.
티파니도 자신을 "미친 과부 걸레"라 부른다.
그 말을 들은 남자, "나중에 술 한잔 할래요?"라는 말은 한번 자보겠다는 거다. 티파니는 아마 왕왕 그랬을 터.
그들의 기저에는 사랑으로 인한 상처가 있다. 그 전에는 손에 쥐면 부서질까 두려울 만큼 소중한 사랑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외부적 요인으로 깨지는 순간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사랑이 이렇게 가치없는 것임을 증명해야만 덜 상처받는다.
아무튼 티파니도 남편과 사별했다. 팻은 굳이 티파니에게 남편이 죽은 이야기를 계속 한다.
팻은 저돌적으로 접근하는 티파니에게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비닐봉지를 덮어 쓰고 달리기를 하는 또라이지만 아내를 향한 사랑은 일관적이다.
이 또한 일반적인 사랑은 아니다. 아내는 이미 떠났고, 그는 아내와 떨어져 지낸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형태도 없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아내를 마냥 기다리고 사랑하는 팻. 집착도 사랑이라면 사랑이다.
옛날 집과 직장을 찾아갔다가 경찰이 오기도 하고, 아직도 결혼식 음악이나 아내와 관련된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결혼식 비디오가 없어졌다고 새벽 3시에 온 집을 뒤지고 난리를 치며, 아내는 이용당한 거라고 피해망상에 빠진다.
난리를 치고는 또 미안하다고 울먹이는 것까지 너무나 핍진하다.
여기서 이웃 사는 남자애는 진짜 끔찍한데, 과제를 한다며 조울증 환자를 인터뷰하려고 하고 소동이 벌어졌을 때도 카메라를 가지고 나타난다.
우울증 환자를 보는 사회의 여러 가지 반응 중 하나다. 동정, 공포, 호기심 등등.
그런 팻에게 티파니가 불쑥 나타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지 않아도 감정을 통제하고 흥분하지 않아야 하는데, 우울증이나 감정조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변수를 통제하기 어려워한다.
티파니도 오기가 생긴다. 다른 남자들은 자자고 꼬시면 오케이였는데, 이 남자는 안 된다. 무슨 짓을 해도 안 된다.
결국 이 남자의 트리거인 아내에 포인트를 맞춘다. 아내에게 편지를 전해주겠다는 것.
하지만 조건이 있다. 자신과 함께 댄스 대회에 나가는 것.
자기를 아내 니키라고 생각하고 춤추라는 티파니, 춤이라고는 춰 본 적도 없는 팻.
처음부터 스텝이 엉키지만 둘은 감정의 교감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춤을 맞추어 나간다.
한편, 강박증 환자인 팻의 아버지는 팻이 있어야만 풋볼팀 이글스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글스에 배팅을 하기 때문에 더욱 예민하다.
겨우 팻을 설득해서 직관을 가지만 팻은 결국 거기서 도발하는 상대팀 팬을 또 시원하게 패버린다.
우리의 팻. 팰 때는 가차없다. 정신을 놓고 팬다.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사과하는 중에 제대로 열받은 티파니까지 찾아온다.
팻은 티파니와 만나기로 해놓고 말도 없이 약속을 어겼다.
티파니는 그의 탓을 하는 팻의 아버지에게 미신과 징크스에 대해 조곤조곤 반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름쟁이 팻 아버지의 돈을 다 따간 영감에게 '묻고 더블로' 배팅을 하자고 한다.
풋볼 대회에다가 댄스대회 점수까지. 10점 만점에 5점을 받으면 팻 아버지의 승리다.
누구라도 이기기만 하면 대박날 이중 배팅이다.
12월 28일, 댄스대회에 출전한 두 사람. 예상했듯이 그 대회에 팻의 전부인 니키도 온다.
팻과 티파니는 무대에서 지금까지 갈고닦은 기량을 선보인다.
심사위원 의점수는 정확히 5.0. 이글스도 이긴다.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과 티파니와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팻은 니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니키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인다.
티파니는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티파니를 쫓아 나간 팻은 티파니에게 편지를 건넨다.
팻은 지금까지 니키가 쓴 답장이라고 줬던 편지들을 다 티파니가 썼다는 걸 알고 있었다.
드디어 두 사람은 피해망상의 구름 위에서 현실로 무사히 착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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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팻이 니키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을 하는지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티파니가 나를 이렇게 멋지게 바꾸어주었다"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우울증은 흔한 병이다. 누구든 상처를 받으면 마음을 다칠 수 있다. 상처를 안 받아도 기질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
우울증이 있거나 우울증이 있는 가족이 주위에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정답을 아는 사람은 없다.
팻의 주치의 말처럼 약을 꾸준히 먹고 계획을 세우는 것. 그것도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함부로 말할 수는 없으나 우울증은 일부 유전적인 면도 있다.
문제가정처럼 비치지 않아도 도박중독에 강박증(아마도 도박 중독으로 인한 강박증이겠지만) 아버지, 영화 내내 수동적인, 겁먹은 듯한 어머니 아래에서 팻이 감정적으로 조금 미숙할 수도 있다.
가정에서부터 우울증의 토대가 깔린 시나리오였다면 가정을 조금 더 극적으로 보여주었겠지만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환자에 집중한 영화이다.
악화일로였던 팻과 티파니의 상처는 상처받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극복된다.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일 필요는 없을 테고,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사랑은 사람을 바꾼다.
"우리가 제일 잘 하는 게 사랑"이라는 영화 <마미>의 대사가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쉽게 많이 사랑해버릇하고 쉽게 다치고 상처받는 내 사랑도 이제는 특기라고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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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위해 총은 울리나.
이 글은 영화 [355]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 이제 뭐해?"
영화 [무뢰한]에서 자신의 분량 촬영을 마친 대배우 전도연이 울먹이며 한 말이라 했다.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연기력을 가진 그녀에게 마저도 충무로는 쉽사리 작품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성이라는 것이 21세기인 지금도 이렇게 장벽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에피소드였다.
그러나 PC(Political Correctness)는 영화판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여성 영화라는 타이틀을 가진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여태까지 억눌려 있던 여성들의 서사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런 흐름은 조금씩 목소리를 높여 자신들의 파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제 남자가 없어도, 혹은 남자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액션 영화들에서도 여성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미스 슬로운]과 [제로 다크 서티]에서 액션뿐만이 아니라 지략까지 확인받은 제시카 차스테인을 앞세운 것만 봐도. 영화 [355]가 얼마나 이 흐름에 정점을 찍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다.
세계 5개국의 요원들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였다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영화 [355]가 가진 세 가지 포인트들을 리뷰로 정리해 보았다.
지킬 자격이 없는 자들의 공허한 총성.;과연 무엇을 지키는가.
사진출처:다음 영화
정확하게 케이퍼 무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팀을 이뤄 무언가를 탈취해 내는 영화의 특징답게,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각각의 포지션에서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단지 자신의 주특기에 따라 전방에 나서는가 아닌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그리고 이런 역할의 차이는 각 캐릭터의 "지켜야 할 존재"의 유무에서 온다.
명백하게 지킬 것이 있는 그라시엘라(페넬로페 크루즈)와 카디자(루피타 뇽오)는 현장에서 은퇴해 더 이상 "총질"을 하지 않거나 상담 정도의 역할을 맡고 있고, 자신만이 지켜야 할 전부이자 무기인 마리(다이앤 크루거)와 메이스(제시카 차스테인)은 무차별 공격 캐릭터에 가까운 것을 통해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총을 들지 않으려 하던 카디자가 연인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총을 잡고, 자신의 성향과는 맞지 않지만 어쨌거나 함께한 동료를 지키기 위해 겨우 흉기를 사용하는 그라시엘라를 보면. 그녀들이 자신의 일생을 바쳐 지키려 하는 것이 얼마나 한 사람의 캐릭터를 잘 바꿔놓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문제는 이 지켜야 할 "무언가"의 리스트에 팀 355가 스며들게 하는 과정이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다. 너무 급작스럽다는 표현이 좀 더 알맞을 것 같다.
마리와 메이스는 만나기 전에도 각자가 속해있던 단체에서 황소고집으로 유명했으며, 서로 죽인다 해도 그 어떤 어색할 것도 없는 사이인 채로 만나게 된다. 팀 355에 합류한 과정까지는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고 치부하며 넘어갈 수 있겠으나. 그녀들이 작은 임무 후 펍에 모여 맥주와 함께 개인적인 수다를 떠는 장면은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급속도로 쌓아 올렸다고 퉁치기엔 그들 사이의 서사가 너무 가볍고 형식적이라. 오히려 영화 앞부분에 공들여 쌓아올린 갈등이 모래성처럼 허망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지켜내겠다고 다짐한 세계 평화는 영화 내에서 조금은 부가적으로 느껴진다. 위기의 크기나 심각성을 주인공들이 오롯이 견뎌내며 파이널 빌런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기에, 마지막 전투에서 느껴야만 했을 비장함은 팀 355의 완전체가 모이는 속도만큼이나 느리고 산만하기만 하다.
세계 평화는커녕 영화 한 편마저도 지켜내지 못할 듯한 그녀들의 활약을 보며, 차스테인이 갈겨대는 총소리가 참으로 공허하게 느껴졌다. 대체 누구를 위해 총은 저렇게 울어야만 했을지는 알 수 없다.
여성 영화?;그 자격도 없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여성들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혹은 남성에게 "뒤지지" 않는 액션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다짐은 영화 전반에 잘 녹아 있다. 차스테인도 훌륭하지만 영화 [355]에서만큼은 다이앤 크루거의 압승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마치 터미네이터처럼 목표를 위해 돌진하고, 방해하는 모든 것은 지게차로 밀어버릴 배짱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그녀의 능력 또한 영화에서 십분 발휘되기에 영화가 진행될수록 심리적인 축이 차스테인에서 다이앤에게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덕분에 액션 시퀀스에서 질 것이다. 혹은 밀릴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든든하다는 믿음이 마음 두둑이 쌓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의 염색체에 들러붙어 절대 떼어 버릴 수 없는 성별을 꼭 한 번은 보여줘야 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은 것만 같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남자에게"배신 당해 울고, 그들을 모이게 한 요소가 배신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을 너무 쉽게 믿으며, 높은 힐을 신고 뛰어다닌다. 드레스를 입어 반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미인계도 빼먹지 않는다.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알겠으나, 문제는 그 어떤 것도 입 밖으로 꺼내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입안에 맴도는 어린아이의 투정 마냥 임팩트가 없다. 그들이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후련함이나 뭉클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점이 영화가 지닌 어정쩡함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더불어 후속편을 암시라도 하는 듯한 주인공들의 대사는, 마음 가득 말라붙기 시작한 눅진하기 짝이 없는 탄산음료 같은 찝찝함을 선사한다.
그 어떤 여성을 대변할 수 있는 영화도, 후속편이 만들어질 만큼의 후련함을 주지도 못한 영화이기에 이 거북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페어플레이 하자;그게 무엇이든
사진 출처:다음 영화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자신이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 했다.
부족한 언어 실력 때문에 분량이 적을 수도 있고, 그나마 있는 대사마저도 어색할 수는 있다. 하지만 존재감이 너무 부풀려져 청중, 아니 관객들이 영화를 보기 전 부터도 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캐릭터가 영화에 존재한다.
극 중 린미셩(판빙빙)은 세계 제3차 대전을 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한 물건의 암호를 푸는 정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할은 카디자도 충분히 해 낼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으므로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다.
또한 (흑화 한) 세바스찬 스탠은 그 물건을 얻기 위해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쏘아 죽일 만큼 잔인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미 장치가 활성화되어 쓸모없는 역할이 된 린미셩을 곱게 방에서 내보내는 자비를 베푼다.
마치 동양의 모든 신비가 거기에 담겨 있는 듯한 급작스러운 차(Tea) 문화의 전파와 독(Poison)의 효능 검증도 영화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팀 355가 들이닥쳐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정도의 보안 상태가 엉망인 세바스찬 스탠의 집이었다면 총알 한발씩으로도 이미 그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린미셩은 단지 결승전에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버젓이 포스터에 등장하고 있다. 포스터 상으로 보면 다이앤 크루거와 같은 위치에 놓인 그녀가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영화를 위해 노력한 모든 사람들의 그 애쓰는 마음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등장하는 것만으로 다른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영화에 "끼워 넣기" 위한 안간힘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 믿겠지만, 애석하게도 그 생각은 머리부터 숨기고 보는 닭들이나 하는 생각일 뿐이다. 결국은 이 모든 아집의 합이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품격마저도 함께 떨어뜨리는 것을 왜 매번 모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그것이 영화이든 겨울 운동회이든 상관없이.
페어플레이하자.
청중들이 외치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면, 그나마 유지했던 연주자의 자리에도 앉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면 혼자만 남게 되던가.
마치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차여신의 절규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끝낼 것처럼 치명적이고 전투적이었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고군 분투는 영화를 살리기 위한 안간힘의 향연임이 너무도 자명했다.
게다가 다이앤 크루거가 이렇게 홀대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는 난생처음이라 많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그 어떤 요소 하나 제대로 자기주장하지 못하는 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해 온 노력에만큼은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손뼉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니 속편 생각은 속 편하게 접어두시길 바란다.
[이 글의 TMI]
1. 다이앤 크루거 진짜 멋있었음.
2. 그 와중에 다이앤이 하는 독일어 들려서 신났음.
3. 그렇게 그 신남이 영화에서 신나는 마지막 포인트였다고 한다.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355 #제시카차스테인 #다이앤크루거 #페넬로페크루즈 #루피타뇽오 #액션영화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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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펜서 (SPENCER, 2021) 리뷰
- 2022년 3월 16일, 개봉한 영화 <스펜서>를개봉 전 CGV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시사회에 다녀왔다.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오랜만의 영화관 방문이라 설렜던 것 같다.우선, <스펜서>를 관람하기 전 간단한 사전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왕세자비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것이 아닌 특정 시간 안에서 다이애나가 느꼈을 감정에 집중한다.영화에서 사전 설명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 없이 관람하러 간다면 초반에 다이애나에게 몰입하기 어려울 것이다.나는 왕세자비의 이야기라길래 그녀의 삶을 쭉 나열한 영화일 줄 알았다. 그래서 간단한 정보만 읽고 관람했는데 보면서 기존에 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고 정보가 아예 없는 관객이 접하긴 불친절하겠다고 생각했다.관람 후기<스펜서>는 다이애나의 일생 중 크리스마스 당일과 전후 3일 동안의 이야기를 다루며 영화는 진행된다.큰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고 한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어쩌면 잔잔하다 느낄 수 있다.그러나 다이애나가 처한 상황과 그 속에서 느낀 불안감, 억압, 고통 등이 연출과 음악으로 정말 잘 표현됐다.현악기를 주로 사용한 듯한데 이 현악기들의 음이 무겁고 혼란스러워서 다이애나의 감정이 음악적으로 전달이 잘 된다.오래간만에 귀에 잘 들려와 박히는 음악이었다.또 유독 프레임 중앙에 있는 다이애나를 중심으로 대칭이 이뤄진 컷들이 눈에 들어왔다.그게 어쩐지 왕실 억압 안에 갇힌 다이애나 그 자체 같기도 했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다이애나가 더 와닿았던 것 같다.사실 이 영화는 연출로도 다이애나를 잘 표현한다.많은 말이 필요 없이 시선으로 다이애나를 억압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다이애나를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질 것이다.그 시선들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내가 다 숨 막혀진다. 어딜 가나 존재하는 사람들, 빠르게 도는 소문.별장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과 그녀를 찍기 위한 파파라치들, 특히 파파라치들은 영화 전개 내내 대사로 언급만 있다가 처음 등장한 씬이었는데 프레임 꽉 차게 들어차 있는 파파라치들과 끊임없이 터지는 플래시들로 그녀가 파파라치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짧은 순간에 설명이 가능했다. 짧고 굵은 임팩트영화는 내내 우울하고 불안하다. 다이애나는 폭식과 거식, 구토를 반복하고 환각을 보며 스트레스 받고 고통받아한다.그러다 다이애나가 자살시도 직전 자유롭게 내달리는 장면 이후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아닌 자신의 원래 성인 스펜서로 살아가기 위해 별장을 나가는 장면은 그녀가 고통받던 생활에서 벗어남을 의미해 안도감이 들다가도 그녀의 일생의 끝을 알고 있기에 마냥 행복하게 바라볼 수 없어서 씁쓸했다.조금 더 일찍 자유를 맞이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항상 영화를 볼 때 도입부 5분가량을 가장 집중한다. 영화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으니까스펜서는 그 부분이 차가 다니는 길에 죽어있는 꿩이었는데 그 꿩을 사이로 차들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영화 후반 다이애나는 직접 꿩이 되겠다 언급했는데 어쩐지 도입부에 그 꿩이 다이애나를 비유한 게 아닐까 싶다왕실에서의 삶에 고통받던 다이애나는 시체나 다름없었을 것이고 계속된 통제에 시달리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을 테니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이 떠오르기도 하고<스펜서>는 상당히 따뜻한 색감으로 영상 자체도 매우 예쁘다. 왕실 일부를 다르다 보니 화려한 장식과 소품들은 덤앞서 말했듯이 큰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가 아니다 보니 스케일도 크지 않고 잔잔하다 생각할 수 있다.그러나 한 인물 몇 십 년간 느꼈을 감정과 내면을 짧은 시간 안에 표현해낸 게 대단하고 영상미도 예쁘고 음악도 영화랑 정말 잘 어울리니꼭 한번 관람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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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독립‧예술영화의 최대 축제, JIFF 개막식 이모저모
2024년 5월 1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이 4,000여 명의 관객이 참여한 가운데 공승연, 이희준 배우의 사회로 열렸다. 이번 영화제에는 국제경쟁 부분에 747편, 단편과 장편을 합한 한국영화 부문에 1,513편이 출품되어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독립과 대안이라는 가치로 다양한 영화를 선보여왔다”는 민성욱 공동집행위원장의 말에 더한층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팬데믹 강타의 후유증이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고, OTT의 등장으로 기존 영화 산업을 관통하던 모든 공식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여러모로 영화계는 격변의 시기를 통과하는 중이다. 그 와중에도 독립‧예술영화의 기반을 오랫동안 다져온 전주국제영화제에 이토록 많은 작품이 출품되었다는 건 영화인들이 안팎의 위기에도 영화로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의미일 터.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지난해의 슬로건을 올해도 유지한 이번 영화제가 어떤 영화를 펼쳐낼지가 유독 기대되는 이유다.
개막식에는 민성욱, 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의 축사와 우범기 조직위원장 겸 전주 시장의 개막 선언, 개막 축하 공연, 경쟁 부문 심사위원들의 심사 기준 언급 등의 순서로 채워졌다. 국제경쟁 부문 심사위원을 맡은 유지태 배우는 누군가 정성들여 만든 영화를 심사위원의 주관으로 평가하는 일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면서도 "이번 영화제가 지금도 골방에서 글을 쓰는 감독과 작가, 예비 배우들을 위한 영화제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역대 최대 출품작 중 어떤 작품이 수상의 영예를 누릴지 궁금증이 증폭된다.
한편 개막작으로는 최근 베이징국제영화제에서 예술공헌상을 수상한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이 선정되었다. 각각 월경전후증후군인 PMS와 공황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두 남녀가 서로를 도우며 연대와 희망을 벼려내는 영화다. 생리 때만 되면 평소의 차분하고 사려 깊은 성격과는 달리 공격성이 마구 분출되는 후지사와는 이 문제로 난처한 일이 반복되자 새로 들어간 회사를 2달 만에 그만 둘 수밖에 없을 정도로 증세가 심하다.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공황장애가 찾아온 야마조에 역시 이 때문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 둘이 어린이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자그만 회사에서 함께 일한다. 서로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상대가 불편하고 짜증나기만 했지만 우연한 계기로 상대 역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는 조금씩 ‘참견’하는 ‘오지랖’으로 서로를 보듬어나간다. 야마조에의 말마따나 둘 사이에는 이해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서로를 도와줄 수는 있다. 〈새벽의 모든〉은 이 사소한 사실을 차근히 펼쳐내 보인다.
두 사람이 벼려내는 연대의 장소가 회사라는 점은 눈여겨볼만하다. ‘회사’는 자본주의의 핵심인 장소다. 회사에서의 끝없는 경쟁과 자기 갱신은 인간의 정신을 소진시키다 이내 탈진시킨다. 모든 정신 질환의 원인이 자본주의일 수는 없지만, 동시대 정신질환의 많은 특징이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회사에서 만나 회사에서 연대한다. 아무도 없는 주말 저녁의 캄캄한 회사에서 서로를 위로하는 순간을 쌓는 식이다. 그들이 하는 노동도 마찬가지다. 밤하늘의 별자리와 관계된 제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며, 두 사람은 기존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밤’의 의미를 되새긴다. 밤은 어둡고 깜깜하지만 해가 떠 있을 때는 미처 볼 수 없는 별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인간은 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지구 밖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제품 개발 과정에 별에 얽힌 신화적 이야기를 덧대 밤에만 가능한 서사를 탐색하기도 한다.
여기서 밤은 정신 질환자가 침잠하는 세계의 은유다. 지구 밖에도 무한한 우주가 있지만 인간의 내면에도 그만큼 큰 우주가 있다. 때문에 두 사람이 노동하면 노동할수록, 즉 인간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적 활동에 충실할수록 자본주의가 옥죈 내면의 세계가 깊어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야마조에의 말마따나 두 사람에게는 여전히 미래 전망이 없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두 사람만 알 수 있는 세계를 탐닉함으로써 결코 자본주의가 잠식할 수 없는 자기 내면의 무한한 공간을 마주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두 사람 회사 사람들이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는 장면을 배경으로 올라가는 것 역시 우리가 자본주의의 일터인 회사를 다른 방식으로 재의미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아기자기하게 관계 맺으며 조금은 여유롭게 일하는, 나의 모든 것을 갈아 넣을 필요가 없는 동시에 일과 삶을 괴리시킬 필요가 없는 그런 일터의 가능성 말이다. 그곳에서는 일할수록 불행해지는 현대인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것만 같다. 〈새벽의 모든〉은 정신 질환에 관한 차근하면서도 급진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5회 국제전주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개막작 〈새멱의 모든〉 상영 시간은 아래와 같습니다. 다른 영화 상영 시간은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5월 1일 19:30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001)
-5월 2일 13:30 CGV전주고사 3관(120)
-5월 5일 10:30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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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알고 있는 <영웅>의 질문 '누가 죄인인가?'
꼭 이루고 싶은 꿈
"나 이번에도 가" 안중근은 쉽지 않은 말을 가족에게 전했다. 왠지 모르게 무덤덤한 어머니. 그와 반대로 안중근의 아내는 슬퍼하고 있다. 아이들 곁에 있어주는 아버지가 그렇게도 어렵나? 아내 김아려는 울며 사정하고 있다. "집도 팔고, 예물도 팔고, 온갖 물건 다 팔았소. 나라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라고!" 금방 온다는 약속도 무색하게 될 것 같다. 떠난다면 어쩔 수 없다. 안중근을 보내는 가족들. 대의명분을 위해서 아들과 남편을 희생해야 할 때가 여지없이 온 듯하다.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과의 이별을 겪으며 마음 안에서 울었다.
시간이 지났다. 독립군 부대에 도착한 안중근. 때는 경술국치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몇 전투에서 이긴 안중근. 전쟁 포로로서 일본군 몇을 잡아놨다. 독립군은 이 일본군 몇몇을 처형하려고 한다. 총을 발포하기 직전이다. 겁에 질린 일본군. 그러나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깐!" 처형하는 독립군을 멈춰 세우는 독립군 대장 안중근. 하나하나 비틀어 죽여야 할 놈들이지만 인도주의로, 대의명분을 위해 일본군을 풀어주기로 한다. 청산유수의 화법으로 다른 독립군을 설득한 것이다. 그 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독립군 소대에 폭탄이 날아든다. 일본군의 급습이었다. 안중근이 풀어준 일본군이 독립군 소대를 습격했다. 너무 많은 희생을 한 독립군. 동지들의 시체 속에서 안중근은 일본군의 가슴속에 흉터를 내려 총구를 겨눈다. 과연 그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의외로 감탄한 것
영화에서 장점으로 뽑을 수 있는 부분은 때깔이었다. 초반부에 이토 히로부미와 설희가 어느 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에 그림자가 진 연출이 두드러진다. 그 밑의 일본군 졸개는 얼굴 정면으로 밝게 보여준다. 반대로 김고은 배우가 맡은 설희는 흰 화장을 하고 있어서 두 사람의 얼굴 톤 대비로 인물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뮤지컬 신에서 김고은 배우가 노래를 부를 때 굉장히 어둡다가 빛을 활용해서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방식은 영화를 뮤지컬처럼 표현한 좋은 연출이었다. 또 실내, 실외 가리지 않고 빛을 이용한 주인공을 조명시키는 방법은 영화 화법을 좀 더 간편하게 만드는 나름의 해결방안 중 하나였다.
또 정성화, 김고은, 나문의 배우의 퍼포먼스는 어마어마했다. 김고은 배우가 맡은 설희는 사실 극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모두 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의 결과를 알고 있다. 그래서 설희가 직면한 문제가 좀 싱겁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김고은 배우는 이를 전혀 싱겁지 않게 연기한다. 사랑하는 주변인을 잃고 분노하는 한 여성의 내면을 매번 다른 눈물연기로 소화하는 능력은 역시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설희라는 인물의 눈물이 조선의 분노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설희에게만 배당되기 때문이다. 즉 나라를 대표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를 보여주듯 김고은 배우는 강강강의 빠른 템포 연기를 잘 소화한다. 뿐만 아니라 나문희 배우의 연기도 영화의 강점으로 돋보일 만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윤제균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봤다. '이 <영웅>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아니라 아들을 숭고하게 떠나보내야만 하는 조마리아 여사의 애달픈 감정'이라고 언급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이 부분을 어느 정도는 살린 건 사실이지만 굉장히 전형적이고 상투적으로 묘사한 느낌이 있다. 이런 식의 신파 연출은 우리가 자주 봐왔다. <부산행>에서 봤었고 <비상선언>에서도 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투적인 연출을 뚫고 보여주는 나문희 배우의 카리스마는 극에서 가장 압도적이었던 요소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방에서 그림자 진 얼굴과 함께 보여주는 슬픈 표정연기는 영화의 모든 이야기와 정서를 내포하는 엄청난 연기다. 작년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에서 양조위 배우가 맡은 만다린의 연기처럼 극을 이해한 배우의 좋은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성화 배우가 맡은 안중근 역은 이 사람이 뮤지컬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안중근이라는 배역에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 군데군데 보인다. 목소리 톤과 눈빛연기로 영화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조악한 캐릭터들
두 시간 동안 영화를 강박적으로, 분석적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과연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맞을까.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어디서 봤던 캐릭터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박진주-이현우 배우가 맡은 마진주-유동하는 극에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제시되는 캐릭터들이었다. 찾아보니 원작 뮤지컬 <영웅>에서도 이 두 캐릭터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영화를 위한 만능 치트키는 아니다. 그럼 뭐 하러 각색을 하나? 각색을 한 보람도 없이 이 두 인물은 안중근의 곁에서 단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옆에서 '우와 대단해요'만 할 뿐이다. 극후반부쯤에 영화에서 동귀어진하는 장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 동귀어진이 안중근 의사랑 그렇게 크게 상관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인물이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는 지점 덕에 조악하게만 느껴지면 다행이다. 이 박진주-이현우 두 배우는 한 영화를 기점으로 이미지 변화가 절실함을 느낀다. 박진주 배우는 오래전 <써니>에서, 또 올해 <정직한 후보 2>에서 봤던 캐릭터의 연장선상을 보여준다. 심지어 자연인 박진주의 <놀면 뭐 하니?>의 출연 행보도 겹쳐 보인다. 그냥 가창력이 좋고 코미디 잘할 것 같으니까 섭외한 게 너무 티가 나서 거의 모든 것이 다 예상이 된다. 이현우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이 이현우라는 배우는 머지않아 커리어의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봤던 이미지가 <종이의 집 : 공동경제구역>에서 나왔고, 역시 <영웅>으로 이어지는 것은 작지 않은 문제다.
또 우덕순, 조도선 캐릭터 역시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구멍이 많이 보인다. 일단 이 두 사람이 영화 전개에 구멍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이 두 인물이 어떻게 퇴장하는가? 에 대한 근거가 더 묘사돼도 영화의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조재윤, 배정남 배우는 낡은 연출의 피해자처럼 느껴진다. <한산 : 용의 출현>에서 잠깐 나왔던 일본 장수는 어디 가고 좀 실없고 유치한 아저씨만 영화에 나온다. 배정남 배우가 맡은 캐릭터 역시 이상한 연출의 희생양이 되었다. 가령 이 사람이 처음 등장할 때 상의를 탈의하고 나온다. 여기서 이 인물이 상의를 탈의할 이유가 단 1가지도 없다. 그냥 '너희들 이런 거 좋아하지?' 싶어서 넣은 것이다. 심지어 그 상의를 탈의하는 장면 자체가 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해외에서 독립운동했던 분들이 신분 숨기는 거 모르고 이 영화를 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심지어 그걸 몰랐다고 하더라도 짧은 장면, 대사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 아닐까? 또 이 배정남 배우의 조도선 캐릭터 역시 구석구석 보이는 '윤제균스러운 캐릭터 특징'이 보인다. 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싫어할 법한 캐릭터 설정이 나왔다.
이는 조연캐릭터들과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김고은 배우가 맡는 설희 역시 이 이야기에서 비중이 있어야 할 이유가 그렇게 선명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물론 영화에서 키포인트가 되는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할이긴 하다. 그런데 굳이 이걸 설희의 서사를 깊게 다 보여줄 이유는 없다. 위에서 '조선의 평범한 소시민'을 대표하는 인물로 설정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거의 돌림노래처럼 '나라의' '꿈' '조선'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민족주의적인 소재가 이 인물로 표현되지 않아도 안중근 자체가 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극후반부에 안중근과 조마리아 여사와의 관계에서도 이것이 내포되고 있다. 이 덕에 설희가 갖고 있는 모든 인물 서사가 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이 불필요함은 설희의 퇴장 신 덕택에 더 두드러진다. 이 설희의 공간적 배경은 너무 대놓고 그린스크린 티가 난다.
이거 어디서 봤는데
윤제균 감독이 연출했던 전작 <국제시장>은 왠지 모르게 <포레스트 검프>를 연상케 한다. 뭐 그럴 수 있다. 한국의 현대사는 기이할 정도로 많은 영화적 소재를 만들어냈으니까.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아무나의 아버지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도 괜찮은 작품 하나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윤제균은 이 선을 잘 타며 많은 관객들에게 감정적인 설득력을 차곡차곡 전달하는 감독이었다. 어떤 평론가들과 소수 관객들은 싫어할지 몰라도 쌍천만이라는 스코어는 절대 부정할 수 없다. K-상업영화의 시발점 같은 느낌? 이는 윤제균 감독이 자기화에 능한 예술가라는 말과도 닿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오마주와 변용은 느껴진다. 일단 초반부에 독립군과 일본군의 전투 신이 있다. 어떤 장면은 롱테이크로 묘사된다. 롱테이크를 이용한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생각난다. 뭐 이건 <1917>도 시도한 바 있으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워낙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군데군데 보이는 장면전환과 색감, 조명, 상하 움직이는 카메라의 공간이동이 박찬욱의 영화들 특히 <박쥐>가 생각난다. 군중이 모여서 노래 부르는 구도는 <레 미제라블>(2014), 설희의 특정 뮤지컬 신은 <알라딘>의 'speechless'가 연상된다. 어떤 구도는 김지운의 <밀정>을 갖고 온 듯하다. 개인적으로 글쓴이는 창작자 윤제균의 작품들을 동의하기 어렵다. 글쓴이가 스노비즘이라? 아니다. 윤제균이 상업적으로 감각이 좋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감각으로 이렇게 소심한 연출을 보고 싶지는 않다. 좀 더 개인적인 안중근과 독립운동 서사가 나오길 바랐다. 이거 오마주 한 것 굳이 볼 바에 그냥 역사책 한 권과 <알라딘>을 한번 더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작지 않은 구멍들
영화에서 느껴지는 큰 구멍은 두 개였다. 우선 영화에서 하이라이트에 매가리가 없다는 점이다. 윤제균 감독이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서사 내내 쌓다가 터트리는 극후반부의 감정전달이다. 그러나 영화 러닝타임 2시간 전부 과한 연출만 반복되다 보니 이 후반부가 좀 얕게 느껴진다. 극에서 삽입되는 노래들 가사 거의 대부분이 '장부' '조국' '꿈'이 반복된다. 또 노래마다 고음역대를 지르는 하이노트가 하나씩은 있다. 웅장한 편곡이 대다수다. 이러다 보니 영화 내내 산만한 기운이 후반부 힘을 줘야 할 때 분산되는 느낌이 든다. 분명히 감동적이어야 하는데 '1절을 못하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내 반복되는 패턴이 후반부에 또 나오면 그게 왜 하이라이트일까?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이 '영웅'이고 주인공이 안중근 의사면 어느 정도 기대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 연출은 영화에서 굉장히 큰 단점으로 느껴진다. 뭐 윤제균 감독 본인이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전개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 바가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후반부 조마리아와 안중근의 대화만큼이나 영화 내적으로 물리적인 분량, 밀도가 얕은 영화 연출은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이렇게 분량이 부족하다보니 스릴러로서 과정이 주는 긴박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과정 묘사도 과한 연출때문에 기억이 잘 안 난다. 이게 어려워야 암살 당시의 쾌감과 모자의 이별에 감동이 느껴질 텐데 말이다. 이렇게 필요한 쪽에 이야기가 없는 것들은 안중근 가족의 서사에도 마찬가지다. 조마리아와 김아려의 서사에 몰입할 만큼의 양이 없으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후반부에 잠깐 나오는게 전부다. 오히려 이 가족애를 강조한 연출보다 만두가, 또 불필요하게 적나라하고 길었던 폭력 장면만 기억에 남는다.
동귀어진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동귀어진이다. 뜻은 '상대방과 같이 죽음으로서 뜻을 다한다'라는 의미다. 설희도, 안중근도 동귀어진을 목표로 조국의 독립을 바라고 있다. 이 분들의 숭고한 희생은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사실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역사를 다뤘다면 더 사려 깊게 접근해야 한다. 김지운 감독이 <밀정>으로, 박찬욱 감독이 <공동경비구역 JSA>으로 보여줬듯이 말이다. 그러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서사와 '너네 이거 좋아하지'식의 몇몇 연출 때문에 감독의 진정성이 그렇게 깊게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이 영화가 <아바타 : 물의 길>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둘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쓴이는 동귀어진의 이미지가 아닌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해 더 집중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사건으로 희생된 건 아니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봤던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처연한 감정전달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내내 감정적인 이 영화. '누가 죄인인가'라는 질문에는 뭔가 설득력이 없다. 아픈 역사를 아는 우리 모두 다 누가 죄인인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릴 수도 있고, '누가 죄인인지' 동시에 물을 시대가 된 지금 윤제균 감독의 질문은 와닿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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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년 만에 다시 만난 기념비적 SF
잘생긴 사람이 부산 사투리로 어떤 말을 한다. 남자는 입담이 엄청 좋다. 이 남자의 이름은 '사이먼 도미닉', 이하 '쌈디'다. 굉장히 좋은 행보로 AOMG의 사장을 지나 현재 한국 힙합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이 남자. 이 사람의 언더신에서의 행보는 아주 훌륭하다. 여전히 그는 한국 힙합의 전설이 되어 좋은 음악을 발표하고 있다(글쓴이도 쌈디를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 이름을 처음 알리게 된 계기는 MBC의 <아바타 소개팅>이다. 그렇게 잘생긴 사람이 말을 저렇게 재미있게 한다고? 그 프로그램 자체의 아이디어도 신박했다. 일단 누군가가 직접 보이지 않은 채로 타인을 대하면 민망한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내 일 아니거든. 이 프로그램은 그 지점을 똑똑하게 활용하며 지금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몇몇 레전드 클립을 남겼다.
어떤 영화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건 대단한 일이다. 단순히 <범죄도시 2>에서 손석구 배우의 카리스마로 그가 스타덤에 오른 것도 굉장히 좋은 일이다. 일단 손석구 배우 개인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어떤 영화가 TV 프로그램 몇 개 만들다 못해 '아바타'라는 개념 자체를 갖고 온 것이라면 그건 감독이 선견지명이 있다고 보는 게 당연하다. 아, 이 영화는 이 선견지명만 남기고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SF 명작이 되어 그렇게 남아있다. 12년을 돌아 메타버스를 꿰뚫은 영화를 만나보자. 다음 주 수요일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하는 <아바타>다.
아주 먼 미래
2150년. 상이군인 제이크 설리는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가족도 없이 혼자서 사는 것 같다. 나라를 위해 투신했지만 보상이 노력한 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에게 잊히고 있는 제이크. 어떤 술집에서 웬 부랑자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다. 정신을 차릴 즈음 누군가가 말을 건다. "이 자가 제이크야?" "맞는 것 같은데요." 남자 둘은 제이크를 끌고 어딘가로 향한다. 도착한 곳은 일종의 연구실이다. 여기가 뭐하는 데야? 처음 겪는 상황이다. 어리둥절한 제이크.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 그레이스 박스는 싹수가 없다. 아무튼 제이크에겐 임무가 주어진다. 1kg당 2천 달러나 하는 물질 언옵테늄을 채취하는 것. 이 언옵테늄이 있다면 가상의 행성 판도라를 개발해 인류의 평화로운 삶을 기약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대규모 부대를 판도라에 파견하는 인류. 판도라에는 원주민 나비족이 살고 있었다. 인류는 나비족과의 공존을 위해 가상으로 된 몸 '아바타'를 만들어 외계인과의 소통에 나선다.
아바타를 통해 외계인과 통신하는 제이크. 임무를 하던 도중이었다. 원래 판도라에서 살던 외계 동물에게 공격을 받고 무리에서 낙오된다. 절망스러운 상황. 헤매던 제이크를 오마티카야 부족의 여전사 네이티리가 발견하고 그를 구해준다. 묘하게 시작되는 인연. 사실 네이티리는 제이크에게 화살을 겨눴지만 사살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바로 지역의 수호신 같은 존재 에이와가 이를 제지한 것. 제이크에게 뭔가 다른 걸 느끼는 네이티리. 살고 있는 고향으로 데려간다. 술렁이는 부족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와의 계시를 받았다는 네이티리의 말에 제이크가 부족과 함께 동화되는 것을 허락한다.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동상이몽인 채로 서로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과연 아바타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기념비적이라고 할 수 있지
글쓴이는 97년이다. 이 영화의 개봉 연도는 2009년이다. 이때 <무한도전>이 인기가 많았다. <무한도전>의 팬이었던 나. 엄마는 많이 바빴기 때문에 주말이 아니면 극장에 갈 수 없었다. 토요일 저녁 6시 40분. 애매한 시간대에 표 예매를 잡았다. <무한도전>이 삶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에 극장 가기 직전까지 엉엉 울었다. "우리 아들. 왜 그래? <무한도전> 보고 싶어?" 지금 다시 생각하면 이마빡을 손바닥으로 쳐버리고 싶지만 아무튼 그땐 <무한도전>에 진심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 3시간 분량이 끝나고 난 뒤 뭔가 신세계가 열린 느낌이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SF였던 <아바타>. 메이플스토리를 필두로 한 아바타 게임은 적지 않았지만 그걸로 이런 서사를 짰다는 건 굉장히 신선한 시도였다.
13년이 지났다. 마블이 휘황찬란한 영화들을 발표하고 드니 빌뇌브가 <듄>을 발표했다. 긴 시간 동안 SF 장르에 햇살 같은 축복이 내렸다. 그런데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아바타>의 임팩트를 넘어선 SF가 없었다는 것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도 파란 피부에 신기하게 생긴 외계인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 무슨 날개 달린 외계 생물체를 달고 비행하던 쾌감은 지금 봐도 신선하다. 어릴 때야 '그때 그거 쩔었지'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분명하게 이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이 영화가 가진 시각적 쾌감은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거장이 가진 연출력 덕택에 나왔다. 180분 동안 살짝 진부할 수도 있는 스토리를 매 번 다른 느낌으로 끌고 간 감독의 개인능력이 돋보인다. 괜히 기념비적인 SF가 아니다.
뭐가 있냐면
일단 시각화 수준이 대단하다. 이 영화는 SF영화다. SF영화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시각적인 게 중요할 것이다. 기존의 세계를 새로 만드는 게 이 영화의 주요 과제다. SF이니 만큼 기존에 없는 대신 설득력 있게 사실적으로 가상의 현실을 구현해야 한다. 이곳에서의 CG 연출은 우리를 설득하기 충분하다. 일단 나비족을 CG로 연출한 방식은 '적당히 신선하다'라는 말과 어울린다. 우리는 살면서 외계인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이 영화에서는 사람처럼 구성하되 외관만 살짝 빗겨 난 형식을 썼다. 또 부분적으로 근육질의 묘사도 인간의 것을 따온 것이 보인다. 다들 '불쾌한 골짜기 이론'에 대해 알 것이다. 기괴함과 신선함의 차이는 정말 간발의 차다. 그런데 이 영화가 초반부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유지하고 있었던 건 이 시각 연출의 힘이 크다. 또 판도라에 사는 외계동물 연출도 공룡을 연상케 하는 좋은 시각화였다. 우리 인류가 처음 탄생하기 이전에 공룡이 살았다. 그리고 판도라 역시 도시를 개발하기 이전이다. 이 점에서 '인류의 역사와도 닮으면서 신선함을 유지했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공룡들을 활용한 액션도 이 영화의 강점 중 하나다. 타고 다니는 동물이 있다. 이 타고 다니는 동물을 가지고 하는 전투신이 이 영화에서 제시되는데, 실제로 이 동물들을 타고 싸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 CG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장면을 구성했다는 이야기인데 운동의 디테일이 구석구석 살아있어 생동감을 더한다.
이런 시각화를 뒷받침하는 이야기 구성도 눈에 들어온다. 사실 이 영화 줄거리 별 것 없다. 자연을 개발하려는 인간과 원주민의 대립은 우리 역사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를 설정한 건 어느 정도 노림수가 있다. 우선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것도 분명히 의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감독이 하고자 했던 메시지와도 관련이 있다. 그런데 글쓴이의 생각은 이야기를 통해 힘을 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시각화에 힘을 빡 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아바타'라는 매개체를 통해 외계 문명과 소통하는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럼 3자의 관점에서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하는 게 뭘까? 외계인과의 신기한 소통 과정일 것이다. 그러면 이야기를 신선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각화에 힘을 주는 것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가 조금 진부하더라도 액션과 CG에 힘을 주는 방식은 우리 요즘 할리우드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단 올해 국내에서 800만 관객을 동원한 <탑건 : 메버릭>만 봐도 그렇다. 따지고 보면 베테랑 조종사 메버릭의 이야기가 서사의 전부다. 그럼에도 메버릭의 저세상 액션 하나만큼은 정말 끝장났다. 이렇게 이 영화가 후의 상업영화들에 적지 않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건 그렇게 어려운 가정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외계인들과의 소통' 중 어떤 것을 소재로 삼았는지 생각해보면 이는 감독의 노림수가 꼼꼼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단 주인공 제이크의 인물 설정이 흥미롭다. 바로 하반신 마비라는 점이다. 이 하반신 마비라는 특성은 1) 초반부에 아바타를 연결하고 난 다음의 카타르시스 2) 아바타 프로젝트에 참여할만한 근거 제시 3) 후반부 인물의 선택지에 합리적인 근거 제시라는 점에서 꼼꼼하다. 또한 액션 신에서 탈것이 되어주는 동물과의 교감을 넣은 것, 후반부에 인류와의 대립이 있는 것, 네이티리의 전투신까지 '이걸 넣으면 영화의 시각적 요소가 풍부해질 것'을 고려한 티가 난다. 일단 아크란과의 교감과 비행은 극에서 중요한 위치도 차지하면서 불필요하게 삽입하지 않았다. 인류와의 대립 액션신은 핵심 인물들의 내적 변화를 꼼꼼히 만들었기 때문에 일반 관객들도 '그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나?'를 설득할 수 있다. 또한 네이티리의 맨몸액션은 초반부에 이 인물이 어떤 캐릭터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방식 중 하나다. 이 사람이 내적으로 강인하지만 그렇다고 빈틈이 아예 없는 인물은 아니라는 걸 경제적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12년을 돌아 다시 직면하다
이 영화에서 주요하게 작동하는 테마 중 하나는 '인간의 것은 과연 무엇인가?'다. 대사에서도 언급된다. '모든 에너지의 것들은 잠시 빌린 것이며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라고. 이 영화가 개봉한 2009년 12월부터 세계는 다양한 사건을 맞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팬데믹 사태를 겪어도 변하지 않았던 뜨거운 감자는 사실 명확했다. 바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지구 온난화 문제였다.
감독이자 각본가 제임스 카메론은 이 지구 온난화 문제에서 환경에 대한 소재만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이야기 전개는 어디서 봤다. 또 소재는 우리 책에서 많이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익숙한 소재를 갖고 왔다고 해서 절대 깊이가 얕지 않다. 인류가 자기를 희생하기 위해 타자들을 어디까지 희생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과학의 진일보를 어디까지 바라볼 것인가, 복제인간은 과연 인간과 어떤 차이점을 갖는가,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논의, 대화와 소통 없는 의사소통 방식까지 영화는 다양한 층위로 이루어져 넓은 이야기를 한다. 과연 이게 2009년의 세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일까? 아닐 것이다. 금세 우리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생각난다. 팬데믹 사태를 불신했던 몇몇 정상들도 생각난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찾을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인형에 대한 논의는 뜨거운 감자였다. 이런 일에 대해 감독은 각각의 해결책도 제시하지만 결정적인 키워드로 어떤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뭐. 사람에 따라 고리타분하게 느낄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인 걸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0여 년을 지났지만 시대상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유효하다는 것은 제작자들의 인사이트가 탁월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단순히 눈요깃거리로 뛰어난 영화가 아닌, 우리 스스로의 삶에 대해 통찰해보면 좋은 영화가 <아바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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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이 영화 어렵게 승인 받았습니다. 극찬 받은 이 영화 꼭 보세요.[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콜드스킨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배급사)의 사용 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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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재개봉 예고편
당신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가요?
어김없이 홀로 새해를 맞은 서른두 살 ‘브리짓’
그런 그녀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정반대의 두 매력남.
내 여자에게만 다정한 스윗남 ‘마크’와
사랑에 직진하는 ‘다니엘’ 사이에서
그녀의 다이어리는 행복한 상상으로 채워지는데…
‘브리짓 존스의 일기’ 첫 페이지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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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점보> 메인 예고편
당신을 뒤흔들 강렬한 사랑의 움직임
“내가 널 느껴. 그게 진짜 사랑이야”수줍음 많은 소녀 ‘잔’은 또래와 어울리지 못한 채
놀이공원 야간 청소부로 일하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잔이 유일하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존재는 환한 불빛을 밝히며 돌아가는 거대한 놀이기구.
잔은 ‘점보’라는 이름을 붙여 사랑을 속삭이고, 점보 역시 그런 잔에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점보와의 교감으로 잔은 행복을 찾기 시작하지만
잔의 엄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설상가상 놀이공원에서는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점보를 철거할 계획을 세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