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your bunny2021-03-23 00:00:00
<미쓰백>, 그들에게 펼쳐질 날들이 노을처럼 따스하기를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영화, <미쓰백>
이 영화를 떠올리면 미안하다는 마음이 앞선다.
전부터 쭉, 그리고 아직까지 변하지 않은 세상을 어린 아이들이 마주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넘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아도 부족할 소중한 아이들인데 아픈 기억만 쌓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미쓰백>은 우리 사회의 어딘가를 자꾸 쿡쿡 찌르는듯한 아픈 영화이다. '아동학대'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인데, 어린 시절 아동학대를 받아 마음을 굳게 닫고 살아가는 '상아'와 아동학대를 받고 있는 어린 아이 '지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상아는 자꾸 자신과 닮아보이는 이 아이가 눈에 밟혀서, 자신과 멀어지면 계속 아파하고 있을 어린 아이가 걱정되어서,
그리고 지은은 자신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준 미쓰백이 좋아서, 고마워서, 살고 싶어서, 함께 도망친다. 그들을 괴롭히던 폭력으로부터 도망친다. 인상 깊었던 장면들은 다음과 같다.
어린 시절 성폭행의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상대방에게 저항하다가 상처를 입혀서 살인미수죄로 감옥에 갔다 온 상아를 돌봐주던 사람이 있다. 바로 그녀의 사건을 맡았었던 형사인 '장섭'. 장섭은 상아가 아무 죄가 없고, 오히려 억울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가장 잘 알기에 죄책감을 가지고 항상 그녀의 옆에서 그녀를 돕고 있었다. 이 장면은 그런 장섭이 상아에게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꺼낸 뒤의 부분이다.
- 네 그 눈만 보면 숨통이 막혀. 나만 보면 불쌍하고 미안해 죽겠다고 질척대는 그 얼굴.
나는 장섭이 오로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인 자신이 진정한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자책,
어린 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줬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고 살아가는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
이런 감정들과 좋아하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아도 이를 알고 있었다.
아직 마음 속에 깊게 남아 있는 학대라는 상처로 인해 굳게 마음을 닫은 그녀였기에 일부러 더 모진 말을 내뱉는다.
어쩌면 장섭의 눈이 자신을 죄책감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엄마의 눈과도 닮은 부분이 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상아를 함부로 안타깝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이런 모진 말과 행동이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생겨난 그녀의 '방어막'이라고 느꼈다.
그냥 그녀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니 굳이 그 선을 먼저 넘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그녀의 지난 삶을 자세히 알지 못하니까.
그냥 '백상아'인 것이다.
투박하지만 다정한 사람, '미쓰백'.
어린 아이와 함께 대화해 본 적도 없기에 잘 모르고, 서투르다.
- 너한테 욕한 거 아냐. 나한테 한 거야.
아마 이 순간 속으로 함부로 욕을 쓴 자신을 자책하고 나서 이런 수습하는 말을 내뱉은 것이 아닐까?
서툴어도 하나하나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다.
대사 몇 마디 없지만 참 다정했던 장면이다.
상아는 놀이공원에 대해 아픈 기억이 있지만 지은이 가고 싶어 했기에 함께 갔다. 그리고 함께 노을을 바라보는데, 지은이 먼저 상아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말한다.
- 고맙습니다.
조금 놀란 상아도 지은의 손을 놓지 않는다.
상아의 투박함이 지은의 다정함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의 사별 후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이 있던 엄마와 그녀에게 가정폭력을 받던 어린 상아가 헤어지기 전, 놀이공원에서 마지막 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 나한테서 달아나, 멀리.
저 공허한 눈빛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린다. 거슬릴 정도로.
놀이공원의 회전목마가 배경이어서 이 장면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빠르게 지나가는 화려한 불빛, 사람들의 웃음, 알록달록한 색깔들을 뒤로 하고 보여지는 상아와 엄마의 시간.
상아와 엄마 모두에게 행복함 대신 죄책감, 미안함, 쓰라림만 남아 있는 시간.
자신에게서 달아나라는 나의 엄마.
나를 보는 눈빛에서 죄책감이 보이는 엄마.
상아와 지은에게 펼쳐질 날들이 저 노을처럼 따스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너무 많이 아팠으니까.
너무 아픈 기억들을 가지고 살아왔으니까.
"이런 나라도, 같이 갈래?"
상아와 지은이 엄마와 딸의 관계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는 그런 관계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함께 손을 잡고, 서로를 보듬어주면서,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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