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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2021-03-23 00:00:00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미국/2007)

사막처럼 건조한 염세주의자의 목소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2007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사막처럼 건조한 염세주의자의 목소리

 

 

 

만드는 영화마다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코엔 형제는 퓰리쳐상 수상작가 코맥 메카시의 동명 소설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영화화했다. 미국 개봉 후 평단의 찬사를 받았으며 2008년, 제80회 아카데미상 8개 부문(작품상 포함)에 노미네이트되었고 4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남우조연상)을 석권하여 화제작이 되었다. 

 

 

 

줄거리는 르웰린 모스(조쉬 브롤린),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그리고 에드 톰 벨(토미 리 존스), 세 남자가 이끌어간다.

 

 

 

영화가 시작되면 황량한 사막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모스는 영양 사냥을 하고 있지만 총알은 자꾸만 빗나갈 뿐 별로 수확이 없다. 한편 보이스오버로 에드 톰 벨 보안관의 목소리가 들린다. 세상은 자꾸만 흉악하게 변해간다는 그의 느릿느릿한 사투리에는 감정이 담겨있지 않고 문장에는 수식어도 없다. 건조하다. 사막의 열기에 중요한 무엇인가가 증발해버린 듯하다.

 

 

 

문득 모스의 눈에 사막과 어울리지 않는 어떤 물체가 들어온다. 망원경으로 보니 자동차들이다. 날렵한 동작으로 사방을 경계하며 다가가니 멕시코인들끼리 대단한 총격전을 벌였던 모양이다. 거래에 실패한 마약더미와 저만치 떨어진 나무 아래 앉은 채로 죽어있는 사내 옆에 돈가방이 놓여있다. 실패한 하루의 사냥과 대조적으로 돈가방은 그에게 큰 행운으로 보였을 것이다.

 

 

 

부상을 입고 물 한 모금을 원하는 한 명의 생존자를 뒤로한 채 돈가방만 챙겨 하우스 트레일러로 돌아온 모스는 생존자를 버려두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 잠을 이룰 수 없다. 새벽에 물 한 통을 들고 다시 현장으로 가보니 그 생존자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렸고 마약거래와 관계 있는 갱단이 도착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만 그들에게 발각되고 만 코스는 트럭을 버리고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 아내 칼라(켈리 맥도널드)를 친정으로 보낸 뒤 자신은 돈가방과 함께 달아난다. 그런데 가방에는 추적장치가 들어있었다.

 

 

 

그로부터 참혹한 범행현장에서 모스의 트럭을 발견한 보안관 벨, 갱단에게 고용되어 추적장치를 따르는 청부살인업자 쉬거, 돈가방을 든 모스 등, 세 남자의 쫓고 쫓기는 복잡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스크린은 거듭되는 살인으로 지옥 같은 이미지를 담아낸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매우 문학적이다. 아마도 소설을 영화화했기 때문이겠지만 코엔 형제가 만들어낸 은유적인 영상과 배우들의 연기력에 힘입은 바도 클 것이다.

 

 

 

황량한 사막과, 그 사막에서 아직 숨이 붙어있는 사람을 별 망설임 없이 버리고 돌아서는 카우보이 모스는 무척 닮아있다. 불모의 사막에서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로 장면이 바뀌어도 인간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카메라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관심이나 배려 등, 사랑을 표현하는 그 무엇도 담지 않는다. 기쁨의 웃음도 감동의 눈물도 배제한다. 그대신 건물들을 훑고 지나갈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 건축한 건물들 속에서 하나, 둘, 잔인하게 죽는다.

 

 

 

그들의 죽음에 꼭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살인청부업자 쉬거의 의무는 그를 고용한 사람에게 돈가방을 찾아주고 가방을 훔친 모스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는 자동차가 필요해서, 그의 계획에 방해가 되어서, 혹은 그의 기분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죽이고 또 죽인다. 그의 캐릭터를 잘 드러내는 것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무기, captive bolt pistol(혹은 cattle gun)이다. 이는 주로 가축을 도살하기 전에 고통을 덜어주고 피흘림을 막아 좋은 육질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쉬거는 짐승을 죽이는데 사용하는 무기로 사람을 죽인다. 그에게는 효과적으로 그리고 단번에 상대를 죽임으로써 유혈이 낭자한 현장을 남기지 않는 효율성이 중요할 뿐이다.

 

 

 

쉬거의 앞에서 그에게 득이될 거래를 제시하거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생명 부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쉬거에게는 두 번째 기회를 용납하는 관대함이 없으며 생명을 중시하며 가치판단을 하는 도덕적 잣대도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예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듯하다. 이렇게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하는 쉬거라는 인물은 절대적인 악, 혹은 악마로 그려진다.

 

 

 

쉬거의 추격을 받는 모스에게서는 자유의지를 가졌으되 많은 선택의 가능성 사이에서 계속 실수를 저지르는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는 절대적으로 악하지도, 또 선하지도 않다. 다만 어쩌다가 양심과 도덕을 무시하고 욕심을 따르는 잘못된 선택을 한 후 결국 댓가로 목숨을 지불하게 된다. 베트남전에서 살아남은 용접공이기도 한 모스는 어쩌면 그를 따라붙은 쉬거라는 인간쯤이야 그가 물리칠 수 있는 만만한 상대로 오해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대개 운명을 만만하게 보듯이 말이다.

 

 

 

벨은 아버지에 이어 보안관직을 맡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악을 응징하겠다는 위대한 사명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뜨거운 사막의 바람에 그의 열정이 어쩌면 모두 말라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하루하루의 평화를 바라며 은퇴를 기다리고 있는 노인에 불과하다. 그가 모스의 뒤를 쫓는 이유는 같은 마을 주민을 보호해야겠다는 최소한의 의무감 때문이지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벨은 그의 직업에 필요한 상식, 눈뜨고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자꾸만 악해지는 세상을 안타까워하는 도덕성,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경험으로 얻은 인생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사건을 추리하는 전문가로서의 능력 등은 지녔으나 악에 맞서 싸우려는 열정과 끈기, 육체적 강인함 등은 없다. 악이란 끈질기게 싸워서 물리쳐야하는 대상인데도 말이다. 평화를 원한다고 악으로부터 피하면 피할 수록 악의 영역만 넓혀주게 될 뿐이다.

 

 

 

아무튼 악에 맞서 싸우기에 벨은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고 또 나이만큼 지친 것 같다. 실력에는 도덕성, 전문성, 열정, 건강 말고도 신념 및 목표를 이룰 때까지 '지치지 않는 것'도 포함되는데.

 

 

 

은퇴 후 벨은 아내에게 그가 꾼 두 가지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번째 꿈에서 벨은 보안관이었던 아버지가 그에게 준 돈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두 번째 꿈에서 그는 아버지와 함께 눈 덮인 산에서 말을 타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머리를 숙이고 불을 든 채 벨을 지나쳐 앞서 갔다고 했다. 아마도 어둡고 추운 곳에 벨이 도착하기 전에 불을 피워놓기 위해서일 것이라는 추측을 덧붙인다.

 

 

 

이제 우리에게는 벨처럼, 지켜야할 어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채,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 코엔 형제는 어쩌면 지독한 반어법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영화의 우리말 제목은 여지를 남기지 않고 단정적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보다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뜨겁고 건조한 사막처럼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인생에 지친 벨 같은 노인들이야 점점 거세지는 악에 대항할 의지를 잃었다 하더라도, 아직 기운 있는 젊은이들에게서만큼은 악을 상대하여 이겨내려는 끈질김, 열정들을 기대라도 할 수 있도록 말이다(©2021. 최수형).

작성자 . breeze

출처 . blog.naver.com/breezeinju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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