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혁2023-07-14 20:23:19
[극장에서 본] Mother Knows Best
<보 이즈 어프레이드, 2023>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주인공 '보'가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조우한다"라는 내용의 작품이다.
그래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이를 맡은 감독 '아리 에스터'의 전작 <유전, 2018>과 <미드소마, 2019>는 아시려나?
이것만으로도 이번 <보 이즈 어프레이드> 또한 예사로운 영화는 아닐 것이며, 그저 깜짝 놀래는 공포 영화가 아니라 어딘가 불편한 느낌을 줄 거라고 말이다. -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1. Mother Knows Best - 라푼젤 (Tangled, 2010)
사람이 "성장" 하는 데에 있어 먼저, 만나는 사람은 "엄마"이고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데, 이를 "모성애(母)"라고 말한다.
근데, 해당 작품을 비롯해 외적인 부분에서 "모성애(母)"는 성경에서 말하는 무조건적인 사랑 "아가페(Agape)"로 묘사된다.
단적으로 "임신"만 보더라도, 10달이라는 시간 동안 먹고 싶은 것은 물론이고 하고 싶은 것도 제한되고 신체에 대한 변화를 겪는 무조건적인 희생이 강요되니 정의에 들어맞는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꼭,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 <케빈에 대하여, 2012>를 보면, 주인공 "에바"는 "케빈"을 낳고서 침대에서 황망하게 앉아있는 모습과 우는 아이를 공사장으로 데려와 울음소리를 소음에 묻히는 장면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들을 통해서, 영화는 "여성에게 모성애(母)는 본능인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 후천적이고 학습적인 부분이라면 우리는 누굴 통해서 이를 배우는 걸까?
본 작품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모나'는 '보'에게 '보'의 할머니이자 자신의 어머니에게 학대받은 기억과 함께 '나는 저렇게 하지 않겠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이런 다짐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걸 알 수 있다.
'집'을 비롯해 관객들이 보는 카메라 즉, 꽉 막힌 스크린의 4면은 극 중. 선택에 주저하는 "보"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선택'이라는 행동부터 자신의 주관이 투영되는 행동인데, 언급하자마자 "모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그녀의 이상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자신의 상담 내용을 듣는 장면들까지 "엄마"라는 이유로 모른체했던 수많은 폭력들로 영화는 '엄마가 좋아?'라는 질문에 확답을 내린다!
· tmi. 1 - 당초, 4시간으로 상영될 예정이었으나 흥행 때문에 3시간으로 합의했다.
· tmi. 2 - 'A24'에서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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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I'll Take Care of You
원하든 원치 않든 삶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고
거기엔 아주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김지연, 「마음에 없는 소리」 p.194그냥 무난하게 살아도 공들일 것이 참으로도 많은 삶. 여기, 양쪽의 세계를 넘나들다 어느 한쪽도 놓지 못하고 더욱더 지극하고 괴로울 공들임을 자청한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SYNOPSIS
한 무리의 친구들과 함께 여름을 보내고 있는 10대 네지마. 그런 네지마의 인생이 라이벌 패거리의 지나를 만나면서 꼬이기 시작한다. 적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비밀리에 연인 관계를 맺는다. 네지마는 조직원으로서의 자아와 지나를 향한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데, 그 누구도 이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이제 네지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 본 작품은 감독의 창작 의도에 따라 2:1 화면비로 제작되어 상영 시 스크린 상하좌우에 여백(윈도박스)이 포함됩니다.
감독
마리옹 드세뉴라벨
출연
리나 엘 아라비, 에스테르 베르네-롤랑드 등
노랗고 어둑한 상영관 안이 까맣게 물들고, 까만 화면이 빛을 품은 이미지로 발현한다. 귓전을 때리는 음악과 화면 중앙을 크게 채운 이름들. 인물의 뒷모습을 바스트 샷으로 잡은 첫 씬이자 첫 컷, 그리고 엔딩크레딧 같은 롱테이크를 보며 생각했다. 어, 나 이거 좋아할 거 같아. 동시에 용두사미로 끝날까 봐 커지는 기대만큼 괜히 조마조마해지는 마음. 간단한 시놉시스만 읽고 보는 영화의 묘미는 이런 게 아닐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무리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네지마. 서로를 굉장히 잘 아는 듯 얼굴만 봐도 웃음부터 나오는 사이였다. 여름 바캉스를 어디로 떠날 작정으로 일상을 평화롭게 보내던 중 네지마의 시선이 문득 멈춰 선다. 복도에 가득한 짐. 짐의 크기나 규모로 보아서는 이사를 온 것 같다. 왠지 모를 호기심인지 네지마는 짐의 주인이 내는 소리를 홀린 듯 따라간다. 그리고 보았다. 앞으로 자신에게 온갖 혼란을 안겨줄 여성, 지나를.
학교. 반주 소리만 듣고 무슨 노래인지 맞추는 게임에 학생들은 치기 어린 경쟁심을 부렸다. 네지마도 눈을 반짝이며 소리에 집중하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도발에 은근히 응한다. 그 공간에는 지나도 있었는데, 네지마는 그와 슬쩍슬쩍 눈을 맞춘다. 그러다 완전히 지나에게로 시선이 쏠리게 된다.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그 목소리에.
이미 엘리베이터 안에서 엇갈리듯 끝없이 닿았던 시선. 둘은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눈빛으로 모든 게 통하는 것 같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호기심을 드러내고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설 수 있으면 좋았으련만, 애석하게도 지나가 속한 무리는 네지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 하지만 네지마는 지나에게 사적인 마음을 품었고, 양쪽에서 티 나지 않게 줄타기를 하려 든다. 네지마 무리가 늘 차지하던 벤치에 떡하니 누워있는 지나를 말로 설득해 내쫓으려는 식으로, 친구들이 지나와의 접점을 만들지 않게.
그러나 네지마는 서툴다. 설명이 불충분했다. 무작정 나오라고,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우리 자리라고 하면 누가 설득이 될까. 애석하게도 네지마의 마음을 모르는 친구들은 지나를 위협하면서까지 그 자리에서 쫓아낸다.
문제는 여기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사촌 지나가 다쳤으니 지나 무리도 가만있을 리 없다는 게. 두 집단의 사이는 점점 나빠지기만 한다. 친구들의 도 넘은 행동에 지나는 크게 상처받고, 둘 사이는 시작도 하기 전에 갈라선 것 같지만 풍덩, 시원한 물이 둘의 갈라진 틈을 메운다. 서로 한 번씩 아픔을 주고받은 셈이다.
네지마는 아파트 복도에서 저도 모르게 지나에게 입을 맞추고, 그 자리를 도망친다. 샤워하면서 입술을 벅벅 문질러봤자 마음에 새겨진 흔적이 사라질 리 없다. 자꾸만 걷잡을 수 없이 깊어가다가 둘은 자신들만의 비밀 아지트를 옥상에 만든다. 비치 타월 같은 러그를 깔고, 가볍게 먹고 마실 음식물을 두고. 우리가 자유롭게 누비는 땅에 비해서는 협소한 공간이지만, 사방이 뻥 뚫렸기에 마냥 자유로워 보인다. 둘만의 바캉스 같기도 하고.
아지트 안에서의 안전함이 현실에서도 무난히 넘어갈 줄 알았는지, 순간 넋이 팔렸는지, 그들은 처음 입맞췄던 복도와 비슷한 파티장에서 입을 맞춘다. 시작은 몰래였지만 계단에서 올라오는 네지마의 친구들은 둘이 무얼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목격하고, 네지마를 힐난한다. 배신이라고.
이 배신은 단순히 사랑을 숨긴 것에 대한 말이 아니었다. 네지마는 알제리에서 온 사람이고, 알제리는 국교가 이슬람교이니 주변의 매몰찬 반응은 당연하기도 하다. 동생마저 언니인 네지마를 외면해서 완전히 홀로 고립된 네지마, 유치원 때부터 함께 알고 지낸 남자인 친구만이 네지마를 두둔하는 동시에 네지마를 공격했다.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며.
네지마는 스쳐가는 말처럼 지나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다 쿨한 줄 안다고. 그래서 그런 척을 해야 하는데 너한텐 솔직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지나를 택하는 순간 삶을 지속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그래서 꽉 막힌 틀 밖에서 자신을 기다려주는 유일한 사람인 지나를 외면하고 만다. 앞서 말한 것처럼 네지마는 서툴다. '남들이 알고 있는 네지마'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외면하고 욕구를 참아왔으니.
도무지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10대인 이 두 사람이 뭘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갈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은 도망치는 것으로, 한 사람은 계속 연락을 시도하는 것으로 각자의 방향만 추구하다가 뜻밖에도 지나의 사촌 언니가 홀로 있는 네지마를 찾아온다. 겁주거나 경계하려는 게 아니고 조언을 하고자. 이렇게 도망만 다니지 말고 선택을 하라고.
그리고 끝내 네지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정반대인 양쪽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옥상에 자그마한 텐트를 설치하고, 지나를 불러다가 이곳을 보여주고, 밖에선 서로를 싫어하는 것처럼 굴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솔직하게 있자고.
아파트 복도에서 옥상, 그리고 옥상의 작은 텐트까지. 그들이 솔직해질 수 있는 자유의 범위는 점점 좁아져만 갔다. 그럼에도 현실과 바람 어느 한쪽을 버리지 않고 최대한 융화하고자 했던 네지마의 노력이 잔상에 남는다.
아직은 아늑하고 비좁은 세계일지라도 소중한 둘의 세계가 현실과 맞닿을 수 있기를. 희망을 버리기엔 네지마의 선택이 무척 희망차므로, 나 또한 그 희망에 물들고 싶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SIWFF
8/25(THU) ~ 9/1(THU)
2022-08-28 | 17:00 - 18:21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4관
2022-08-31 | 16:30 - 17:51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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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베스(2015년)
박제욱
1. 맥베스 서사
'서양 문학은 결국에는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다.' 라는 우스겟소리가 있다. 그만큼 그둘은 역사속에서 가장 강력하고 새로운 문학가들이었다. 그 중 셰익스피어는 여러 희곡들로 특히 4대 비극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아마 전세계 누구나 한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다. 내가 그 중 가장 매력적으로 끌리는 작품은 맥베스였다.
2015년에 저스틴 커젤 감독의 손에 의해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다시 한번 각색 되었다. 간단히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자비로운 왕 던컨 왕이 집권중인 스코틀랜드. 역적 맥도널드가 내란을 일으켜 던컨왕의 지위를 위협하게 된다. 글래미스의 영주 맥베스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나선다. 맥베스는 맥도널드를 처치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전쟁이 끝나고 맥베스와 그의 동료 영주 뱅코우는 세 마녀의 예언을 듣게 된다. "글래미스의 영주이자, 코더의 영주, 그리고 장차 위대한 왕이 될 맥베스"라는 예언과 뱅코우는 "맥베스보다는 못하나 자손 대대로 왕을 낳을 것이다."라는 예언을 듣느다. 그 예언에 의해 맥베스는 심한 고뇌에 빠지게 되고, 자신의 부인의 욕심에 못이겨 이내 던컨왕을 살해하게 된다. 왕이 된 이후에는 뱅코우의 아들에 대한 불안함과 심한 광기에 휩싸여 미쳐버리고 세 마녀를 다시 찾아가게 된다. "버넘 숲이 던시네인 언덕을 넘지 않는 이상 너는 몰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가 낳은 남자는 맥베스를 해칠 수 없다."라는 예언을 받는다. 그 말에 맥베스는 다시 광기를 다스리게 된다. 하지만 결국에는 버넘 숲이 던시네인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맥베스는 어미의 배를 찢고 나온 맥더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단순한 예언에 의해 정의롭고 용감했던 한 영주가 광기에 휩싸여 한 나라의 왕이 되고 그 이후에는 폭군이 되고 자신의 동료들에 의해 불명예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을 맞이한다. 영화는 마지막으로 왕의 검을 들고 있는 왕궁 속에서의 멜컴 왕자와 전장 속 맥베스의 시체 앞에 있는 뱅코우의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무리 된다.2.미장센
영화 맥베스를 보게 되면 실제 스코틀랜드의 당시 시대가 이랬을 것이라는 기분이 들고 셰익스피어의 각본이 실제 이야기라면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라는 감동을 받게 된다. 그 만큼 감독이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도 여러 미장센과 연출을 통해 배우의 연기를 극대화 시키고 갈등 상황을 독특하게 표현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번재 눈에 띄는 점은 불이다. 영화 초반 불의 이미지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갈등 및 감정을 아주 탁월하게 설명해 낸다. 불이라는 이미지는 여러가지 의미로 계속 반복 제시된다. 영화는 맨처음 맥베스는 자신의 딸을 화장하면서 시작한다. 여기서 불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 이후 영화 중반부에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던컨왕 살해를 두고 심각한 고뇌와 갈등을 겪게 된다. 맥베스가 처음 예언을 들었을 때는 자신의 충성심과 죄책감 때문에 불안함에 빠져 왕을 살해할 수 없다고 하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레이디 맥베스는 자신의 남편을 왕의 자리에 추대할 수 있다는 여왕이 될 수 있다는 탐욕에 빠지게 된다. 대립되는 두 인물의 대화 속에서 항상 레이디 맥베스쪽에 머무는 물체가 있다. 바로 빛, 불이다. 항상 레이디 맥베스의 등 뒤에는 횃불 또는 초 등이 비추고 있다. 왕위에 대한 도전과 그 의지가 그녀에게만 머물었지만 그 불이 맥베스 쪽으로 이동하는 순간 맥베스가 스스로 다짐하게 되고 던컨왕을 살해하게 된다. 영화 중반부 불은 곧 의지를 뜻한다. 극의 중.후반부 맥베스에게 반기를 든 맥더프의 가족 모두를 맥베스의 병사들이 잡아와 사형에 처하게 하는 장면이 있다. 어린 아이까지 화형을 하는 이 장면은 아마 의지를 뜻하기도 하면서 맥베스의 광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버넘숲이 던시네인을 넘어 오는 장면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는 맬컴 왕자와 맥더프 그리고 잉글랜드 군 1만명이 버넘숲의 나뭇가지로 위장을 하여 던시네인을 넘어오는 버넘숲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맥더프가 버넘 숲에 불을 지르고 그 불에 탄 버넘숲의 재가 던시네인을 넘어 맥베스의 성으로 향하면서 던시네인을 넘어서는 버넘숲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불은 맥베스의 최후를 뜻하는 종말이자 죽음이 될 것이다. 이렇듯 불은 영화 처음부터 죽음의 이미지를 담으면서 의지, 광기, 종말 및 죽음까지 이어졌다.3.등장인물
맥베스 원작 자체에서부터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서양 문학사 최고의 악녀라고 할 수 있는 레이디 맥베스를 탄생시키면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갈등을 볼 수 있다. 위에 첨부한 맥베스 포스터를 보게 되면 마치 마이클 패스벤더(맥베스역)의 머릿 속에 마리옹 꼬티야르(레이디 맥베스 역)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극중에서 둘의 관계가 이러하다.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로부터 예언을 듣게 된 후로 완전히 맥베스의 머릿속에 들어서 그의 욕망과 탐욕을 일 깨우는 것에 노력한다. 하지만 맥베스의 광기는 통제 하지 못한 그녀는 이내 질병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필자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인물관계는 맥베스와 뱅코우의 관계이다. 맥베스와 뱅코우는 세마녀에게 예언을 듣게 된다. 재밋는 점은 왕이 될 사람이라는 예언과 자손 대대로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맥베스와 뱅코우가 동시에 같이 듣는 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맥베스는 자신의 탐욕에 의해 왕이 되려고 노력을 할 것이고, 그 후 자신의 왕위를 오래 간직하기 위해 뱅코우의 아들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뱅코우 역시 맥베스가 코더의 영주가 됬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이 예언이 진실일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되고 전우였던 맥베스를 멀리하고 아들과 함께 도망치려 할 것이다. 개개인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는 두 예언이 동시에 한 장소에서 들었다는 이유로 영화의 가장 큰 비극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되어준다.4. 무엇이 맥베스를 타락 시켰는가
맥베스는 본래 신분이 명예롭고 위대한 장수이자 영주였다. 그런 지위와 명성덕에 그의 몰락이 더 돋보이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타락 시켰을까. 첫째는 바로 스코틀랜드의 기후 혹은 풍경이라고 생각된다. 과거에 맥베스를 접할 때는 커젤 감독의 영화처럼 실제 스코틀랜드의 척박한 풍경을 보여준 작품은 없었다. 높은 산 하나 외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없는 황량한 토지, 그리고 괴물이나 나올 것 같이 어두침침한 나무들로 빽빽한 버넘숲을 영화는 잘 표현해주며 심지어 흐릿하기만 한 스코틀랜드의 날씨까지 영화에서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둡고 우울한 기후와 배경이 이 영화의 분위기를 비롯하여 맥베스의 감정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 가장 맥베스를 타락시킨 것은 세마녀의 예언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말'일 것이다. 처음 맥베스를 혼동시킨 것은 예언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뱅코우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두가지 예언을 듣게 됨으로서 두 인물은 서로 대립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곤경을 치루게 된다. 레이디 맥베스의 탐욕에 빠진 속삭임도 맥베스 그를 타락하게 만든다. 그 이후에 새로 듣게 되는 세 마녀의 예언 또한 다시 한번 맥베스를 안심시키기도 하지만 곧바로 그가 몰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언이 될 수도 예언이 될 수도 있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맥베스를 혹은 맥베스의 주변인물들의 운명을 타락시킨 비극의 근원일 수도 있다.5.대사
맥베스는 역설의 영화로도 보인다. 영화의 초반 세 마녀로부터 우리는 한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선한 것이 악한 것, 악한 것이 선한 것"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 속 전쟁이 끝난 전쟁터에서 빠져나오면서 맥베스가 이런 말을 한다. "이렇게 흉하고도 좋은 날은 처음이오." 이 두 대사는 사실 말이 안되는 서로 상반 되는 개념들을 늘어 놓는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일 된다는 느낌을 우리는 받을 수 있다. 나는 이 대사를 통해서 세 마녀의 예언이 사실은 예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말은 사실 맥베스 내면의 욕구였을 수도 있다. 다만 선한 것이 악한 것이고 악한 것이 선한 것이 듯이 맥베스 또는 우리는 매사에 갈림길에 놓이지만 그 갈림길이 무엇인지도 그리고 우리가 어떤 갈림길에 들어서게 됬는 지도 모른다. 어떠한 선택지가 있는 지 모른채 자신의 욕구와 의지에 따라 역사가 흐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치 스코틀랜드의 거대한 대자연 풍경처럼 인간 한사람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운명 그 운명에 거스르려고 한자의 비극을 맥베스라는 작품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6.고전이 주는 힘
고전이란 참 매력적인 존재이다. 예술가들은 예술을 할 때 아마 처음 이런 질문에 스스로 빠질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것인가 혹은 성공한 사례들을 모방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완벽한 창조물을 새롭게 만들어 보고 싶어 할 것이다. 나도 예술가라면 당연 그렇게 해야된다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수세기전 과거의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큰 호응을 끌어낸 작품들의 방식이 현대의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나는 이 질문의 답이 곧 고전의 가치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 그 자체의 본성을 건드리는 예술. 그것이 고전들의 장점이 아닐까. 그 고전들을 현대의 기술과 멋으로 새롭게 각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또한 예술가의 재능이라고 생각 된다. 대표적인 예로 영화계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B급이 되어버린 과거의 인기있던 장르들의 요소들을 섞어서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어낸 감독이 쿠엔틴 타란티노이다. 또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명한 건축물인 두오모 대성당 역시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왜 로마시대에 가능했던 돔 형식의 건물(판테온)이 왜 지금은 불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건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듯이 장르를 막론하고 고전이 주는 힘은 예술에게 있어서 고귀한 가치이다. 그저 고리타분하다고 오래됬다고 밀어두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옛것을 바라보고 재창조하는 일도 예술의 긍정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커젤 감독의 영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틀을 거의 건드리지 않는 선택을 취하면서 그 속에서 영화가 할 수 있는 여러 시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새롭게 맥베스를 각색했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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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트 블란쳇의 괴물 같은 지휘에 내내 압도당하다
성공이란 이런 것
성공이란 이런 것이다. 인터뷰 대기 중인 타르.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청중 앞에 섰다. 인터뷰의 취지는 새로운 책을 홍보하는 것이다. 서로 인사를 나눈다. 대화가 시작된다. 첫 번째 주제는 성별에 관한 이야기다. 남/녀 지휘자를 나누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에 관한 질문이다. “아니요. 큰 차이점은 없는 것 같아요. 우주 비행사를 예로 들어봅시다.” 영어 발음을 들려주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를 설명한다. 다른 소재는 타르의 파트너다. 특별한 성 정체성이 타르의 마에스트로 생활에 지장이 갔냐는 질문이다. 딱히 없다. 다른 주제는 지휘자에 역할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 지휘자들이 인간 메트로놈이 된다는 것에 동의하나’는 질문이다. 다음 주제는 객원 지휘자와 메인 지휘자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 의견을 설파하는 타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베를린의 마에스트로답게 답변에 머뭇거림이 없다.
누가 봐도 타르는 성공한 인물이다. 물론 클래식계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팬데믹의 영향이 있긴 하지만 그녀는 업계 최고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타격까지는 오지 않는다.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리디아. 오늘도 여지없이 일을 하고 있다. 리디아의 수행비서로는 프란체스카가 있다. 일정을 공유하는 프란체스카. 그런데 이유가 무엇인지 프란체스카에게 뭔가 이상이 있는 듯하다. 관객들만 아는 찜찜함은 일단 뒤로 무시한다. 대학교 교수직을 겸임하고 있는 리디아. 어떤 남학생이 수업에 들어왔다. 리디아는 그때까지만 해도 잘 몰랐다. 교수로서 존경도 받고. 성공한 마에스트로로서 명예와 권위를 쓸어 담고 있었다. 이제, 그 높은 위치에서 조금씩 비틀대기 시작한다.
곡선으로 휘기
이 <타르>는 불친절한 영화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명확한 서사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보통 a라는 일이 있으면 b가 그 결과로 따라온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영화 문법 중 하나다. 당연하다. 우리가 아는 세상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화법은 그런 쪽이 아니다. 리디아가 처하는 수많은 상황이 있다. 이 갈등의 배경은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실제 이 사람이 이런 행동을 했는가? 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리디아와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는 선배 마에스트로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 연출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할 것 같은 리디아의 마에스트로 활동과도 관련이 있다. 이 장면들이 어떤 식으로 연출됐는가? 는 후반부 리디아가 어떤 인물들과 회의를 진행하는 신에서도 알 수 있다(물론 이 장면 아니어도 이런 연출은 자주 보인다). 영화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있어 핵심이 될 수 있는 것들을 과감하게 삭제해서 더 거리감이 있는 시각으로 주인공을 바라보게끔 도와준다.
이렇게 전형성을 탈피한 연출 방식은 영화의 가장 처음, 두 번째 시퀀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살짝 ‘이거 이런 영화야’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볼 때 극장에 살짝 늦게 들어갔다. 영화관에 들어가니 상영관에 가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알려주는 영상이 나왔다. 그리고 직후에 영화 첫 장면이 나왔다. 첫 장면이 뭐였을까? 바로 엔딩 크레디트이다. 엔딩 크레디트는 보통 ‘엔딩’에서 나오니까 이 장면은 그렇게 부르기에는 좀 모순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프닝을 시작하는 영화는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장면이 굉장히 길다는 점, 바로 직후의 인터뷰 신이 사실상 영화의 핵심으로 작동하는 세 가지 소재였다는 점, 극후반부에 대한 묘한 수미상관이 그에 대한 근거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순서를 뒤엎고 시작한 셈이다. 또 앞 문단에도 썼던, 리디아와의 인터뷰는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한다. 보통 이런 연출 방식을 가졌던 영화는 차고 넘쳤다. 이번 달 개봉작에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리디아의 행보를 전반부에서 어떻게 수거했는지를 생각하고 보니 <타르 TAR>의 성과가 눈에 들어왔다.
운동과 방향
영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 중 하나는 방향이다. 영화는 많은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에서 타르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신이 몇 번 나온다. 그런데 그 와중에 쿵쿵쿵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귀찮은 것이 스크린을 타고 관객에게 까지 전달된다. 이 소음 연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흥미롭다. 어쩔 때는 등 뒤 스피커에서 들린다. 또 어떤 때는 오른쪽 뒤에서 들린다. 이 소리의 방향은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운동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 영화는 한 장소에 또각또각 걸어가는 인물들의 동선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 리디아 타르라는 인물이 영화에서 어떤 일에 처하는가? 와도 관련이 있다. 리디아가 이런 일들을 맞이하는 이유, 자아가 약해서는 무조건 아니다. 오히려 리디아는 자기만의 세계와 예술세계를 확실하게 정립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리디아가 여러 일들에 직면하는 이유는 이렇게 뚜렷한 자기 주관 때문인 걸로 묘사된다. 영화가 이 예술세계로 인해 무너지는 내면을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은 영화에서 가장 큰 신선 함이자 강점으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강박과 불안이라고 하는 것의 속성을 탐구한 것이다. 글쓴이가 이 글을 쓰는 지금 잘 생각해 보면, 아예 고민 없이 사는 사람을 나이가 들수록 못 봤던 것 같다. 다들 마음속에 불안 하나쯤은 품고 산다. 이렇게 일상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감은 늘 일상 속에 있다. 그리고 어디서든 갑자기 튀어나온다. 이는 영화에서 제시되는 음악 중 하나인 존 케이지의 <4분 33초>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인간의 결함을 어디에서 찾는가?라는 영화의 발상이 <4분 33초>의 접근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매번 생각 외의 어떤 것으로 예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어떤 것은 빼고 줄이면서 지독한 예술과 삶의 불완전성을 그린다. 처음 느꼈다. 없어지게 함으로써 이 모든 인생사의 일들이 자연재해처럼 느껴지게 하는 표현방식도 있다는 것을.
그냥 어려운 영화가 아니야
이렇게 어려운 영화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연출하지 않았다. 이런 연출 방식과 신선한 인물서사를 그리는 데 있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다. 이번 아카데미 수상이 유력하다고 알고 있다. 이 값을 한다. 영화 전체적으로 러닝타임에서 휘몰아치는 광기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잔잔한 것이 있다. 이렇게 모순적인 설정을 보여주기 위해 이 리디아라는 인물은 내면에서 단단한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이 단단한 내면이 점점 약점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는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는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인물은 두 개의 큰 에피소드를 마주하게 된다. 하나의 에피소드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혹시?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런 인물의 내면을 그렇게 놀랍지 않다. 이 글을 쓰는 글쓴이나 읽는 여러분도 다 이런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이 봐 왔다. 이건 사실 말이 쉽지 실제로 캐릭터를 구현하고 표현하기는 굉장히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입체적인 캐릭터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타르가 담당하는 대사가 굉장히 많다. 우선 타르가 등장하는 인터뷰 신은 긴 롱테이크 몇 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 말 많은 인터뷰를 롱테이크로 했다? 안 그래도 많아 보일 것 같은 장면을 어떻게 외웠는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이 롱테이크의 장면만 덩그러니 있는 것은 또 아니다. 리디아가 처한 입장이 영화에서 다양하게 제시됐기 때문에 표현해야 하는 감정의 폭이 넓어야 한다. 분노, 좌절, 우울함, 즐거움, 행복 같은 감정 이면에 돌아버릴 것 같은 인물의 내면을 품고 있어야 한다.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이 끌고 가는 영화 서사를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이렇게 구구절절 영화의 특성을 썼다. 이 영화에 설명하고 싶은 것들이 굉장히 많다. 신선했기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이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불규칙적인 사건 제시로, 위치를 뒤엎어 만든 인물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직선적으로는 달리지만 좀 특별한 방식으로 서사를 전복하고 있다. 영화는 전형적인 것을 아예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장면에서 집에 쫓아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집에 쫓아간다고 하면 보통 누군가가 사는 공간을 생각하기 쉽다. 여기서 뒤집어진다. 이 어떻게? 의 방식이 영화에서 사건을 보여주는 방식 중 하나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인물을 낙하시켜 떨어트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모호하게 표현해서 인물에게 더 집중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집중시키거나 그렇지 못하게 영화를 촬영을 설정한 부분도 흥미롭다. 이는 오케스트라에 대한 비유나 리다아가 안고 있는 묘한 어설픔, 약간의 섹슈얼한 몇 인물들의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다.
또 좀 특이한 제목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영화 제목은 좀 이상하다. ‘타르’와 ‘TAR’가 두 번 들어간 것이다. 타르 타르? 뭔가 과거의 영화 제목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TAR가 총 두 번 반복된다. 이 부분은 흥미롭다. 영화 내적으로 리디아가 작곡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와도 관련이 있다. 예술과 인생의 상관관계를, 또 둘 중 하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묘사한 인물 설정이 탁월하다고 느껴진다.
이 외에 아쉬웠던 점은 동양인에 대한 묘사다. 뭐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상대적인 걸 보여주고 싶어 이런 연출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얼핏 보면 이 나라 사는 분들이 살짝 기분 나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또한 영화의 엔딩 역시 이런 맥락에서 좀 ‘아니다’라고 느낄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 장면을 지켜보는 입장이 어떤 사람들과 오버랩되는지를 생각해 보니 영화의 모호한 부분이 좀 깔끔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호불호가 갈릴 엔딩이라은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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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이와 사랑에 빠지고, 점차 무뎌지고, 또 다시 낯선 이가 되어가는 쌉사름한 인연(因緣)
소개
런던의 도심 한복판, 부고기자이지만, 소설가가 꿈인 ‘댄’(주드로)은 출근길에 눈이 마주친 뉴욕 출신 스트립댄서 ‘앨리스’(나탈리 포트만)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삶을 소재로 글을 써서 드디어 소설가로 데뷔하게 된 ‘댄’은 책 표지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난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에게 ‘앨리스’와는 또 다른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안나’ 역시 ‘댄’에게 빠져들었지만 그에게 연인이 있음을 알게 되고, ‘댄’의 장난으로 우연히 만난 마초적인 의사 ‘래리’(클라이브 오웬)와 결혼한다. 하지만 ‘댄’의 끊임없는 구애를 끊지 못한 ‘안나’는 그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이 둘의 관계를 알게 된 ‘앨리스’와 ‘래리’는 상처를 받게 되는데…
모든 인연은 우연이라 생각되기 쉽지만, 사실 필연일 것이다.
앨리스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은 영국과 미국의 차도가 반대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우측통행이라는 미국과는 반대되는 규율이 있기 때문에, 댄과 앨리스는 만났다. 영국에서 너드 같은 안경을 쓴 부고 기자 댄과 붉게 물들인 커트 머리의 미국인 스트립댄서 앨리스, 너무도 다른 사람이기에 충돌하여 만나게 된 것이다.
‘클로저’에서 4인의 관계는 엉키고 설킨다. 모두 한없이 이기적이다.
이방인을 마주친 첫 순간을 기록하는 안나. 그 순간의 소중함을 아는 섬세한 인물이다. 전형적인 성숙한 어른 여자로 보이지만, 사실 전형적인 회피형이다.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지만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크게 말을 얹지는 않다가 저지르고 사과한다.
래리는 넷 중 가장 평범하다.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에, 마초적인 남성이다. 자신은 다른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도, 다른 남자와 만나는 부인은 용서할 수 없는 찌질한 남자. 순간의 감정을 누르지 못한다. 특히 남성성에 관해 예민하다. 댄과의 잠자리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누가 더 좋았냐고 취조한다. 안나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자, 분노에 휩싸여 ‘slag’라 칭한다. 댄을 처참하게 만들기 위해 복수의 방법으로 스트립 클럽에서 마주친 앨리스와, 그리고 이혼을 청하러 온 안나와 잠자리를 갖는다. 그것이 래리가 댄에게 느낀 가장 모욕적인 감정이고, 참을 수가 없던 것이기에. 또한, 댄 역시 그럴 줄 알기에.
댄은 섬세하고 다정하다. 작가를 꿈꿔왔고, 소설가가 된 만큼 감각에 예민하다. 영화 초반부, 담배를 끊었다던 댄은 앨리스와 만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헤어진 후에도 담배를 끊지 못한다. 정작 흡연자던 앨리스는 끊었는데 불구하고 말이다. 댄은 끌림에 쉽게 매혹되기도,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있기도 하다가 뒤늦게 알아차리는 면이 있다. ‘자신과 안나’의 관계는 ‘래리와 안나’의 관계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같았다. 안나가 한 번 자주면 이혼해 주겠다는 래리의 부탁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너진다. 래리와 잤다는 말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은 앨리스에도 세상이 무너지고,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앨리스의 뺨을 친다. 섬세하고 다정하던 것이 매력이던 댄은 결국 래리와 다를 바 없었다.
<클로저>는 <졸업>(1967, 마이클 니콜스)으로 아메리칸 뉴웨이브에 한 획을 그은 ‘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영화이다. 마이크 니콜스는 해피엔딩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남녀가 식장에서 도망쳐 버스에 탄 것이 엔딩인 ‘졸업’에서조차 주연 배우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다. 결국 똑같은 길을 걷게 될 거라는 것을 암시한다. 비관적이다. 우리가 클로저를 보며 마음 어디 한 편이 불편한 것은 너무나도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와 내 친구와 나의 연인,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클로저>에서는 ‘앨리스’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추구한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우리는 평생 서로를 모른다. ‘클로저’가 될 수 없다. 우리는 평생 서로에게 낯선 사람일 것이다. 온전히 나를 이해해 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스스로조차도 모르는데 그 누가 알 수 있겠나. 하지만 점점 아는 체를 하게 된다. 인연을 맺고 긴 시간을 함께하고, 대화를 나누면 그 사람을 안다고 착각한다.
익숙함에 속지 않는 것.
미련이 남지 않도록 감정에, 그리고 현재 관계에 충실하는 것.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앨리스에겐 이 3가지가 있다. 댄이 간과한 점은 자신이 쓴 소설처럼 철없고 자유분방하고 그저 어리다고 생각한 것. 자신이 그려낸 ‘앨리스’인 줄로만 알았던 그는 ‘제인’을 모른다. 스트립 클럽, 래리는 자신을 제인으로 칭하는 앨리스에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격분하지만, 사실 그녀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입국 심사장에서 드러난 앨리스의 여권을 통해 알 수 있다.
앨리스의 진짜 이름은 ‘존스 제인 레이첼 ’이다.
영화 초반부, 앨리스는 댄과 함께 공동묘지에서 ‘타인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묘비를 본다. 엔딩, 댄은 앨리스와 처음 갔던 세 명의 아이를 구하고 죽었다는 묘비를 발견한다.
‘앨리스 에이리스 – 벽돌공의 딸’ '불속에 뛰어들어 아이 셋을 구하고 숨지다'
앨리스는 불같이 거침없이 관계를 향해 달려들었고, 끝이라고 생각된 순간에는 깔끔히 놓았다. ‘순수한 사랑’ 말이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어른스러운 사람은 스트리퍼에 어리다는 취급을 받던 ‘앨리스’이다. 앨리스는 성숙한 체하는 세 명의 아이 댄, 안나, 래리를 구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간 제인(나탈리 포트만)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낯설고 매력적이다. 완벽한 Stranger로. 묘비명은 앨리스 캐릭터를 투영한 함축된 글인 것이다.
"where?"
사랑은 형체가 없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랑한다면 느낄 수 있다.
어느 순간엔가 사랑이 어디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결국 이별이 다가오는 것이다.
교통사고처럼 예기치 못하게 만났으니, 헤어짐 역시 그렇지 않을 이유 없다.
댄은 앨리스에게 눈을 떼지 못했던, 낯설기만 하던 첫 순간을,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 주던 두 눈을
다른 낯선 이를 만나더라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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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차별과 아픔을 공감해 주길 바라며...
1. 여름의 아이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많은 국민들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다. 피난처를 찾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전쟁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푸틴은 살인을 중단하라는 도보에 새겨진 문구가 눈에 띄는데 전쟁이 지속됨으로써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피해를 본다. 그렇기에 이 단편 영화는 전 세계에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이 겪는 불편함에 대해 호소하고 있다.
2. 내 방
지안은 삼 남매 중에 장녀인데도 자신의 방이 없다. 동생들과 방을 같이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안에게도 고민이 있으니 학교 스터디 그룹에서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친구들은 혼자 방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공부를 하는 영상을 찍어 공유하지만 정작 지안에게는 동생들이 어질러놓은 방을 치우느라 바쁘고 공부하기도 힘들다. 그런 지안은 소외감을 느껴 짜증 나기만 하는데...
자신의 방이 없다는 건 어쩌면 괴로운 일이다. 그렇기에 지안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지안에게 중요했던 건 자신의 친구들처럼 과외도 받고 싶고 집도 넓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안타깝게 느껴졌다.
3. 오늘만 재워줘
정훈은 누나와 함께 빨래방을 가다가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현아를 발견한다. 현아는 정훈에게 한 번 만이라도 재워달라고 부탁하지만
정훈은 거절한다. 그런데도 현아는 계속 부탁을 하면서 따라와 정훈의 방 장롱에 몰래 들어간다.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란 정훈이 현아를 보고 자신의 방에서 나가라고 하지만 현아는 말을 듣지 않는다.
사실 현아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 현아의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출소해 현아의 어머니에게 폭력을 일삼았고 현아는 자신의 어미니에게 폭력을 대물림 당했다. 그래서 정훈에게 한 번만 방에 재워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정훈은 자신과 일면식이 있는 남자도 데려와 잠을 재워준다.
그렇게 자신도 누나에게 너무 착하면 사람들이 얕본다고 말을 듣는다. 그렇지만 정훈도 우울하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자신도 좋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현아가 자신에게 그러한 말로 상처를 줬고 희망도 꿈도 없는 공시생의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나버린다.
이 단편 영화는 감독이 말하길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아는 지인이 부모에게 가정 폭력을 당했는데 그걸 영화로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배경이 서울 강동구인데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방황하고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걸 잘 표현한 단편 영화가 아닌가 싶다.
4. 가을바람 불르면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종수는 한국말이 서툴다. 그런 종수를 좋아하는 같은 반 친구인 지희는 종수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시 쓰는 법도 가르쳐 준다. 지희는 시를 잘 쓰는 덕분에 상도 받았지만 종수는 시 한 편도 서툴게 쓰는 아이이다.
그래서 지희의 시 쓰기 수업에 참가한다. 지희는 일단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체험을 해보고 사물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종수에게 알려준다.
종수는 애들에게 놀림받고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에 슬픔과 분노를 느끼지만 어머니가 연애할 때 받았던 아버지가 쓴 러브레터를 보고 서울로 이사를 가는 지희에게 시 한 편을 주려고 밤새 시를 쓴다.
다문화가정에 태어난 아이의 외로움과 차별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이 영화에서는 관객들에게 어김없이 보여준다.
2023.09-19 (화) 14:30 롯데시네마 은평(롯데몰) 7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기간: 09월 13일 -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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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적인 씨네필 INFP를 위한 영화.zip
영화를 좋아하는, 그리고 영화를 즐겨 보는 씨네필들에게 가장 많이 나오는 MBTI 유형을 혹시 알고 계신가요?
믿거나 말거나! 본인만의 세계를 꾸리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지만 동시에 공감 능력이 매우 높은 감정적인 유형 , INFP가 바로 그러하다고 하는데요!
영화를 멀찍이 떨어져 하나의 ‘작품’으로 감상하기보다 작품 속 인물의 감정에 이입하거나, 인물 사이 관계의 틈에 들어가 감상하길 즐기는 INFP형은 특히 상상력이 매우 풍부한 유형이기에 영화를 ‘본다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더 나아가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영화를 그려나가는 유형입니다.
주관적이고 감상적이며 공상적이기도 한 INFP형에게 ‘영화’만큼 좋은 탈출구는 없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SF 영화도,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로맨스 영화도, 눈물 펑펑 쏟아낼 수 있는 드라마 혹은 다큐멘터리까지 장르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을 즐긴다고 합니다.
이처럼, 안 본 영화 없을 것 같은 INFP형에게아예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언제 봐도 좋을 영화를 추천해드리려 합니다.
잇츠 CINE PICK!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2001)판타지, 가족, 모험, 액션 | 영국, 미국 | 152분 | 전체 관람가
감독 : 크리스 콜럼버스 | 출연 : 다니엘 래드클리프, 루퍼트 그린트, 엠마 왓슨Your a wizard, Harry
해리 포터는 갖은 구박을 견디며 계단 밑 벽장에서 생활한다. 11살 생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해리에게 초록색 잉크로 쓰여진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전설적인“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보낸 입학초대장이었다. 그리고 해리의 생일을 축하하러 온 해그리드는 해리의 진정한 정체를 알려주는데. 그것은 바로 해리가 굉장한 능력을 지닌 마법사라는 것!
해리는 이모네 집을 주저없이 떠나 호그와트행을 택한다.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에 있는 비밀의 9와 3/4 승장장에서 호그와트 특급열차를 탄 해리는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와 론 위즐리를 만나 친구가 된다. 이들과 함께 해리는, 놀라운 모험의 세계를 경험하며 갖가지 신기한 마법들을 배워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해리는 호그와트 지하실에 `영원한 생을 가져다주는 마법사의 돌'이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해리의 부모님을 죽인 볼드모트가 그 돌을 노린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해리는 볼드모트로부터 마법의 돌과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지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는데...
씨네pick :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들은 우리 안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페이지를 넘겨서든, 스크린을 통해서든, 언젠가 당신이 다시 돌아왔을 때, 호그와트는 언제나 그 곳에서 당신을 반겨줄 거예요. 마치 집에 돌아온 것처럼.”이라는 J.K.롤링의 말 만큼이나 이 영화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 또 있을까요? 시리즈 1편이 나온 지도 벌써 20년이 되었지만, 해리포터를 볼 때만큼은 기숙사 배정 모자를 쓴 학생이 되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게 됩니다. 그 누가 알까요? 인간 틈에서 마법사가 함께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걸!500일의 썸머 (2009)코미디, 드라마, 멜로/로맨스 | 미국 | 95분 | 15세 관람가
감독 : 마크 웹 | 출연 : 조셉 고든 레빗, 주이 디샤넬Most days of the year are unremarkable.
운명적 사랑을 믿는 남자 ‘톰’ 모든 것이 특별한 여자 ‘썸머’에 완전히 빠졌다.
사랑은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썸머’ 친구인 듯 연인 같은 ‘톰’과의 부담 없는 썸이 즐겁다.
설렘으로 가득한 시간도 잠시 두 사람에게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 찾아오는데…
설레는 1일부터 씁쓸한 500일까지 서로 다른 남녀의 극사실주의 하트시그널!
씨네pick : 2010년 국내 개봉 이후, 2016년과 2021년 극장 재개봉은 물론이고, 로맨스 기획전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작품 <500일의 썸머>는 볼 때마다 다른 감정이 드는 영화로도 잘 알려져있습니다. ‘썸머’에게 이입되기도, ‘톰’ 그 자체가 되기도 하는 이 극사실주의 로맨스 영화는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매우 섬세한 연출의 영화입니다. 여름을 앞둔 요즘, 특히 더 생각나는 영화이기도 한데요. 감성 가득 음악은 물론, 영상미까지 듣고보고뜯고맛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애니메이션, 판타지, 모험, 가족 | 일본 | 126분 | 전체 관람가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 출연 : 히이라기 루미, 이리노 미유
한번 만난 인연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을 뿐이다.
금지된 세계의 문이 열렸다!
이사 가던 날, 수상한 터널을 지나자 인간에게는 금지된 신들의 세계로 오게 된 치히로..
신들의 음식을 먹은 치히로의 부모님은 돼지로 변해버린다.
겁에 질린 치히로에게 다가온 정체불명의 소년 하쿠.
그의 따뜻한 말에 힘을 얻은 치히로는 인간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사상 초유의 미션을 시작하는데…
씨네pick : 애니메이션의 새 역사를 쓴 작품으로, 아직까지도 이 작품을 뛰어넘는 애니메이션은 없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작품성과 흥행 모두를 잡아낸 영화이다. “일찍이 10살이었던 사람들과 앞으로 10살이 될 사람들에게.” 라는 프레이즈처럼 어느 연령대에 시청하더라도 센과 치히로가 있는 터널 저편으로 빨려들어가게 되는데요. 어느 상황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으로서, 이 영화를 볼 때만큼은 잠시 환상 속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오늘 하루의 끝이 영화로울 수 있도록
씨네픽이 여러분을 영화 속으로 두둥실 띄워보내 드릴게요
Wingardium Leviosa!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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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닥터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Rabbitgumi 입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한 지 한 주가 지났습니다.
여전히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고 있는데요.
최근 마블 영화들의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있죠.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는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마블 영화에요.
완다의 서사가 꽤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어, 시리즈인 완다비전의 내용을 알고 가야 캐릭터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여러가지 영화에 대한 느낌을 전달 드립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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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메인 예고편
마블의 새로운 강력한 히어로 ‘샹치’의 탄생과 베일에 싸여 있던 전설의 미스터리 거대 조직 ‘텐 링즈’의 실체를 다룬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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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1차 예고편 - 고백 편
“시작은 막차였다”
집으로 가는 막차를 놓친 스물한 살 대학생 ’무기’와 ‘키누’는
첫차를 기다리며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좋아하는 책부터 영화, 신고 있는 신발까지 모든 게 꼭 닮은 두 사람은
수줍은 고백과 함께 연애를 시작하고 매일매일 행복한 시간을 쌓아간다.
“내 인생의 목표는 너와의 현상 유지야!”
하지만 대학 졸업과 함께 취업 준비에 나선 두 사람은 점점 서로에게 소원해지고
꿈과 현실 사이의 거리 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기 시작하는데...